자폭조항 LL 시리즈
쓰키무라 료에 지음, 박춘상 옮김 / 황금가지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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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와 SF의 황홀한 결합!

 

왠지 뭔가 엄청 있어 보이는 카피

615페이지의 분량을 자랑하는 황금가지의 신간으로 신감각 SF 경찰 소설이다.

전작은 읽지 못했으나 경찰 범죄 소설을 개별적인 이야기라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근 미래

근접 전투에 맞게 개발된 2족 보행형 병기인 기갑 병장이 발달하고 이 기술을 도입한 드래군이 창설된다.

경시청은 특수부대를 조직하고 그 특수부대원들의 활약을 그린 것이 첫 번째 이야기 기룡경찰이다.

 

자폭조항은 기룡경찰 시리즈 2편으로 첫 장면부터 대량 살상이 발생되며 시작한다.

특수부대가 조직되고, 기갑 병장에 탑승할 수 있는 대원들은 모두 용병들이다.

일본인이지만 일본에서 살아 본적 없는 스가타

러시아 경찰이었던 유리

그리고 테러리스트 라이저

이 세 사람만이 기갑 병장에 탑승할 수 있다.

 

다이코쿠 부두에서 밀수품을 하역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세관을 비롯 경찰과 관계자들이 모두 학살당하고, 학살의 주동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그곳에 기모노란 명칭이 붙은 기갑병장이 밀수품으로 들어와있었다.

영국 고위직의 방문을 앞둔 시점에서 벌어진 기갑병장 밀수는 모두의 촉각을 곤두서게 만든다.

 

오키쓰의 지휘 아래 밀수사건을 조사하던 특수부에 수사 중지 명령이 내려진다.

 

 

 

 

 

경찰이라는 닫힌 조직 안에서 특수부 현장 수사원들이 겪는 비난과 해코지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것은 현장뿐만 아니라 이사관인 미야치카와 시로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지하철 노성 사건 이후로 더욱 그렇다.

 

닫힌 조직 경찰 내에서 특수부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나는 특별한 인재들만 모인 곳이 특수부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배척당하고, 적대시하는 조직인 줄 몰랐다. 모든 경찰들의 못마땅한 시선을 받으며 모임에서도 제외당한 형사들의 심정이 건조하지만 절절하게 그려진다.

어쨌든 유능한 지휘관 오키쓰는 명석한 두뇌와 외교부에서 갈고닦은 실력으로 굴하지 않고 교묘한 방법으로 수사를 계속 진행시킨다.

그리고 부두 밀수 사건의 배후에 아일랜드 IRF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라이저 라드너.

전직 테러리스트. 사신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IRF에 몸담았다가 조직을 이탈한 라이저는 그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배신자는 직접 처형하는 게 IRF였다.

그녀 앞에 그들이 나타난다. IRF의 결성을 주도한 자이자 시인인 킬리언 퀸. 그가 처형단을 이끌고 그녀를 찾아왔다.

 

 

 

이가 딱딱 떨릴 만큼 한기가 돌았다. 공포였다. 킬리언 퀸과 세 수행원들은 공포를 남기고 갔다.

하지만 라이저가 이토록 떠는 것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먼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죄 때문이었다. 그것은 텅 빈 영혼 속에서 줄곧 되울리던 잔향이기도 했다.

 

이야기는 현재의 도쿄 상황과 라이저의 과거를 오가며 진행된다.

일본 소설의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건조함과 딱딱 끊어지는 문체 때문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이 쓰키무라의 글은 색다른 재미를 준다.

마치 유럽 작가와 일본 작가의 콜라보라고 할까?

도쿄 현재를 그릴 땐 경직된 느낌과 건조함이 곁들인 문체인데, 라이저의 과거를 그릴 때는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것처럼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로 꽤 감상적이다.

그래서 하나의 소설에서 두 가지 이야기를 맛본 느낌이다.

 

자폭조항에서 라이저만큼 강렬한 캐릭터는 킬리언 퀸이다. 마치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섞어 놓은 거 같은 이 인물은 시인이다. 시인으로 이름을 날리고 그 명성으로 조국을 위한 투쟁에 앞장선다. 모두가 그런 줄 알았다.

 

 

뭐가 시인이야..... 이건 살인마야.

 

 

 

교묘한 말로 상대를 현혹시키고, 현혹된 상대를 테러로 이끌고, 그 상대의 가장 아끼는 것을 제거함으로써 더 이상 존재의 이유를 말살시키고 그러한 모든 걸 아울러서 자신의 필요에 따라 목숨을 바치게 만드는 악랄한 수법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갈취하는 살인마 킬리언 퀸. 그런 퀸에게서 도망친 라이저를 처형하기 위해 그가 직접 찾아왔다.

과연 그의 속내는 무엇일까?

 

이 시리즈 기대된다.

촘촘하게 엮인 인과관계들과 보이지 않는 "적"으로 인해 이야기가 점점 더 흥미로워질 거 같기 때문이다.

경찰 조직 내의 "적"인지 국가 정부 내의 "적"인지 알 수 없는 적은 때론 아군이 되었다가 때론 적군으로 돌아서기에 도통 정체를 알 수 없다. 하지만 오키쓰는 이미 "적"의 정체를 희미하게나마 윤곽을 잡고 있는 거 같다. 단순한 경찰 소설일 줄 알았는데 더 깊은 무언가를 담고 있다.

 

자폭조항은 기갑병장에 숨겨진 비밀과 그에 탑승할 수 있는 사람이 왜 용병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일본 특수부대의 비밀 병기를 일본 경찰이 아닌 용병이 담당해야 하는 이유.

 

 

고작 5년 때문에. 5년 뒤에는 당연하다는 듯이 일반화될 기술인데. 5년의 우위를 위해서 사람 목숨을 버리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미도리는 군사 세계에서 통용되는 그 논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작가는 자폭조항을 통해서 겉돌고 있는 특수부 내의 인물들이 좀 더 서로를 알아가게 되고, 각자의 숨겨진 이야기들이 드러나면서 전우애를 느끼게 되는 틈을 주어 경찰 조직 내의 왕따 집단인 특수부대원들 간에 신뢰를 쌓아가는 단계를 마련한 거 같다.

 

내부의 "적"을 어디까지 추적할 수 있을까?

전작의 기룡경찰을 찾아 읽어야겠다.

일본 소설에 맛 들이게 만든 자폭조항.

다음 편을 기다리게 만드는 자폭조항.

모처럼 기다림이 즐거울 거 같은 새로운 시리즈를 알게 되어 기분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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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피센트 디즈니의 악당들 4
세레나 발렌티노 지음, 주정자 옮김 / 라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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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피센트.

몇 년 전 동명의 영화를 안젤리나 졸리 주연으로 보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디즈니 만화의 악역에 이름이 있었다는 걸 몰랐다.

그저 배경으로 마녀라는 이름으로 존재했을 뿐이다. 나에겐.

말레피센트가 가장 강력한 마녀이며, 잠자는 숲속의 공주와 연관된 그 마녀라는 사실을 어른이 되어서야 알게 된 뒤로

이 디즈니 악당들에 대한 관심도가 생겼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가 제작되기를 바랐었다.

라곰 출판사에서 디즈니 시리즈 악당 편이 나오고 말레피센트는 4번째 시리즈다.

전 시리즈를 안 읽어도 개별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모든 시리즈의 인물들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 같다.

마치 미드 원스 어폰 어 타임처럼.

그 이야기에도 책이 한 권 나오고, 그 미완성의 책에 쓰이는 이야기에 따라 디즈니 캐릭터들의 운명이 바뀌기도 했다.

악당들 저마다의 사연을 보고 있노라면 악당으로 태어난 자들은 없다.

악당으로 만들어졌을 뿐.

그것도 사소한 오해와 불신으로...

말레피센트에도 드라마와 같은 책이 존재한다.

미래를 보여주는 책.

말레피센트는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로 진행된다. 그래서 영화를 소설로 엮은 것이라 믿었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요정의 아이로 태어났으나 다른 생김새 때문에 요정들로 부터 배척받는 말레피센트.

죽도록 버려진 아이를 거둬들인 건 요정들의 유모.

웃기다.

착한 요정의 타이틀을 가진 요정들이 자신들과 조금 다르다고 말레피센트를 왕따시키고, 못마땅해하고, 사라지길 원한다는 게.

그런 마음으로 어떻게 착한 요정짓을 할 수 있을까?

말레피센트는 자신이 다른 학생들보다 더 똑똑한데도 교사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교사들은 다른 학생들에게 보여주는 애정이나 보살핌을 말레피센트에게는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다.

요정 왕국은 유모와 요정 대모가 다스리는데 두 요정은 자매지간이다.

유모는 요정이면서 마녀의 핏줄을 지녔다.

그래서 요정 대모와 묘한 대칭을 이룬다.

유모는 말레피센트를 딸처럼 키우지만 요정학교에서 그녀를 배척하는 걸 막지는 못한다.

결국 착한 요정 시험날 말레피센트는 가장 아끼던 까마귀들이 위험에 처한 걸 알게되고 그녀의 분노가 그녀를 변신 시킨다.

그 날 말레피센트는 초록용으로 변신하고 요정나라를 불태웠다.

그 일로 말레피센트는 모든 요정의 적이 되었고, 가장 강력한 마녀로 거듭났다.

그리고 말레피센트는 오로라 공주의 탄생 기념일에 초대받지 못하고 그 이유로 그녀는 오로라 공주에게 저주를 내린다.

오로라 공주가 16살이 되는 날 물렛가락에 찔려 죽을 거라는 저주는 착한 요정들에 의해 잠에 빠지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그 착한 요정들은 요정학교에서 말레피센트를 골탕 먹이던 요정들이었다.

동화.

아름다운 이야기도 그 이면을 들추면 추악한 면이 나온다.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

다른 것을 나쁜 것으로 규정짓는 것.

누군가에겐 착한 요정이지만 누군가에겐 사악한 요정이 될 수 있다는 것.

말레피센트와 오로라의 관계가 드러나며 이야기의 끝을 가늠할 수 없게 만든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찾기 위했을 뿐이었는데...

꼬임에 빠져 무엇을 잃는지도 모르고 행해진 마법.

마법엔 응당 그에 해당하는 대가가 따른다는 걸 알게 된 이야기.

왜 어린 여자들은 목숨을 구하려면 남자가 필요하죠?

왜 공주는 자기 목숨을 구하기 위해 직접 사울 수 없냐고요.

왜 저주를 직접 풀지 못하냐고요?

왜 그런 일에는 왕자가 필요하죠?

 

 

말레피센트의 이 말에는 디즈니의 반성이 엿보인달까?

디즈니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많은 여자아이들을 연약하고, 왕자를 꿈꾸고, 스스로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항상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연약함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 자란 여자아이들은 은연중 스스로 자신을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세상이 바뀌고 시대의 흐름에 부흥하고자 공주 대신 악당을들 이야기함으로써 그 안에 그동안의 반성의 기미를 써넣은 거 같다.

사실 꽤 괜찮은 접근법이었는데 읽는데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끊어지는 문장들 때문에 책을 읽는 데 거슬림이 있었다.

그것이 원작의 문제인지 아니면 번역의 문제 인지 잘 모르겠지만, 문장들이 매끄럽게 이어지는 게 아니라 토막토막 잘리는 느낌 때문에 감정이 이어지지 않아서 답답했다.

게다가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의 변화무쌍함도 이야기를 읽어가는 데 방해가 되었다.

가장 멋진 반전과

가장 멋진 이야기 소재가 될 수 있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어쨌든

이 방대한 프로젝트는 디즈니 캐릭터들이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아니라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원대한 포부로 이어지는 거 같다.

가장 강력한 마녀 말레피센트.

태어나면서부터 버려진 아이를 사랑으로 감싼 유모

그 유모의 품에서 자신을 잃지 않았던 말레피센트는 가장 사랑하는 것을 잃음으로 괴물이 되었고

가장 사랑하는 것을 얻음으로써 모든 걸 잃었다.

어쩜 디즈니 악당들 중에서 가장 외롭고, 애틋한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영화와는 다른 이야기로 그녀의 아픔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

괴물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괴물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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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시간 하늘콩 그림책 시리즈 7
이자벨 심레르 지음, 박혜정 옮김 / 하늘콩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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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콩 출판사 포스팅 볼 때부터 눈독 들이던 그림책이다.

처음 보았을 때 색감도 좋지만 그림 디테일이 빼어나 몽환적인 느낌 때문에 신비로워 보였다.

 

 

 

 

 

 

 

 

 

다양한 푸른색

그 다양함에 붙여진 푸름의 이름들.

이렇게 많은 푸른색이 존재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저 사진에 나열된 푸른색들이 모두 쓰여서 이 그림들이 완성되었을 거 같다.

 

 

 

 

 

 

 

 

 

낮과 밤사이, 지나가는 시간에....

바로 푸른 시간이 있습니다.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그 어스름 시간을 그림으로 표현한 푸른 시간.

푸른 시간의 느낌을 그림과 짤막한 글귀로 담아낸 이자벨 심레르의 창작동화이다.

 

푸른색의 다양함과

그 푸른빛을 간직한 동물들의 자태가 아름답다.

사실 출판사 포스팅에서 그림들을 봤을 때 그 색감과 아름다운 화면에 저절로 정신을 쏙 빼앗기고 말았는데 책에선 그 화질에서 느꼈던 색감이 조금 톤 다운되어 보인다.

그것이 종이책의 매력이자 단점이겠지만...

화보처럼 나오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새 책에서 나는 종이 냄새와 그림 속의 푸른색이 어우러져서 이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푸른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 든다.

어스름 푸른빛에 잠긴 세상

그리고 그 세상 속에 파묻힌 생명체들의 모습들...

 

이렇게 자세하게 새들을 관찰해 본 적이 없는 거 같다.

푸른빛을 감싸고도는 다양한 색감들로 표현된 새들의 모습이 한층 더 깊고 아름다워 보인다.

 

내가 젤 무서워하는 뱀조차도 푸른빛이 감도는 자태가 신비로워서 그림이지만 쓰다듬어 보기도 했다.

무섭게 그려지지 않아서 더 아름다워 보였는지도 모르지만

이름 모를 동물들의 자태가 신비롭다.

 

 

요즘

그림책을 들여다보며 멍 때리는 시간이 좋다

그림 속에 들어갈 순 없지만

머릿속에 그림을 담고

그 안에서 내 맘대로 돌아다니는 공상이

나를 위한 휴식이다.

 

그래서 나름 그림책을 찾아보는 중인데 아이들 그림책들은 많아도 어른들을 위한 그림책은 많지 않은데

하늘 콩에서 나온 이자벨 심레르의 푸른 시간은 남녀노소 관계없이 누구나 그 신비로움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그림책이다.

 

낮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노을이 져가는 그 어스름 저녁 빛

그 빛들에 물든 자연과 동물들

작가는 어쩜 이렇게 꼼꼼하게 잘 잡아내었을까?

그런 아름다운 풍경들을...

 

글로 표현하는 것과

그림으로 표현되는 것은 조금 다르다.

몇 페이지의 구구절절한 글보다는 깔끔한 하나의 문장이 심금을 울리는 것처럼

그 하나의 문장보다 더 많은 걸 담아내는 것이 그림이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 가는 중이다.

 

그 어떤 표현보다

이 그림책 한 권이 어스름 저녁을 설명하는데 완벽할 거 같다.

섬세한 필치로 그려진 그림들을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마치 그렇게 하면 작가의 기분을 같이 느낄 수 있을 거 같아서...

 

 

참 아름다운 책이다.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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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드랑이와 건자두
박요셉 지음 / 김영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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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묘하게 마음에 안정을 주는 책이 있다

아무 때나 아무 곳이나 들춰지는 대로 눈길 가는 곳에서 읽어도 매번 새롭게 즐거움을 주는 그런 책.

그림 위주가 아니고

그렇다고 글이 많이 쓰인 것도 아닌 거 같은

시집처럼 작고 앙증맞은 이 에세이는

집에서 고요히가 아니라

들고나가서 약간 소란스러운 백색소음이 가득한 카페 구석 자리에 앉아 킥킥거리며 읽어야 제맛일 거 같다.

글을 쓰는 사람은

저마다의 표현법이 있다.

이 책에도 존재한다.

숨겨 놓은 듯 뜻하지 않은 곳에서 어이없게 웃게 만드는 하나의 표현들이 이 책의 매력이다.

겨드랑이에서 건자두 냄새를 떠올릴 수 있는 작가의 표현력이 매 글마다 한 문장씩 들어 있어

그 문장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킥킥거리고 있는 나를 보는 기분이 유쾌하다.

요즘 웃을 일이 없는데 허를 찌르는 웃음이 곳곳에 포진해 있는 이 책 때문에 즐거웠다.

누가 시간을 돈으로도 살 수 없다고 했나. 나는 시간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다. 그림 그릴 시간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리고 있다니.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제멋대로 살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면 괴로운 일들도 박제화되어 영광의 트로피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졌다.

 

 

어지럼증과 구토가 함께 오면 뇌 관련 증세라던데... 아직 마치지 못한 그림책과 어제 그리다 만 그림들이 떠올랐다. 그런 개떡 같은 것을 유작으로 남기다니 왠지 분했다.

비슷한 일상을 아주 조금 다르게 보는 시선이 이토록 재미있는 일임을 잊고 있었다.

2019년 1월에 읽은 에세이가 건자두여서 왠지 좋은 출발을 한 기분이다.

앞으로도

일상의 소소함을 개성 있는 관점으로

그리고 써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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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서정시
리훙웨이 지음, 한수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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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소한 설정에 특이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왕과 서정시

고급 진 가제본의 위용과 1부와 2부로 나누어진 이야기는

각 부가 한 글자를 중심으로 서너 페이지로 구성되어 마치 단편 같은 느낌이 든다.

짧은 글들이 모여 장대한 이야기로 부풀려지는 느낌이랄까.

205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다

위원왕후가 그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다.

그러나

위원왕후는 시상식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렇게 단절한다. 잘 지내길.

죽은 위원왕후는 이런 메일을 리푸레이에게 남기고

그를 자신의 장례식에 초대한다.

노벨상을 받은 왕후의 타타르 기사에 나오는 장례식과 똑같은 방식의 장례를 치르면서 리푸레이는 왕후가 자살한 게 아니라고 의심한다.

그의 죽음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작가 리홍웨이는 진시황과 분서갱유에서 모티브를 얻은 거 같다.

제국의 왕

책을 읽기 전에는 이 제국이 하나의 나라이고 왕은 그 나라의 왕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제국은 첨단 IT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고, 왕은 이름 자체가 왕인 제국의 회장이다.

그가 영원한 영생을 얻기 위해 첨단 기술로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를 알게 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의식공동체

의식결정체

이동영혼

생소한 말들은 미래의 현실을 말해준다.

미래 사람들은 뇌에 칩을 심어 서로의 의식을 공유한다.

어디에서든 어떤 장치도 없이 사람들은 보고. 듣고. 말하고 느끼는 모든 것을 공유한다.

즉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으로 행하는 모든 SNS를 칩이 심어지면 다른 도구가 필요 없이 모두의 의식 공동체에서 서로 연결되어 모든 걸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것을 관장하는 제국이라는 이름의 회사는 이 기술로 세상을 장악하게 되고 제국의 보스는 왕이라는 이름으로 결국 세상의 왕이 되어 있다.

오래 걸려 읽었다.

생소한 형식의 글

기발한 생각

그리고 암울한 미래

한 번 읽어서는 이 이야기의 골자만 겨우 알아챌 뿐이다

왕이 불멸로 향하는 길에서 인류의 발목을 잡는 모든 언어 장애물 또는 걸림돌이 전부 문학에서 나오니까요. 문학은 인간 자신의 병균이고 서정성은 하느님이 아담과 하와를 쫓아낼 때 그들의 몸에 새긴 저주니까요.

다들 국내 정상급 대학의 교수, 정상급 연구기관의 학자나 전문가들이었어요. 모든 공장 전체적으로 책 태우는 사람이 1천여 명 되는데 그들 모두가 각계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들이었죠

 

 

 

그는 화로 앞을 지키고 있는 노인들을 보며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절을 올렸다. 글자가 담긴 종이 곁에서 문자와 지식, 이성의 총결산과 감성의 토로를 장례 치르듯 자신의 손으로 화로에 넣고 있는 행위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종이가 사라지고

필요한 글자 외의 글자들이 사라지고

모두의 의식이 조작되고 설계되고 재단되는 세상

왕이 추구하는 세상이었다.

사람들의 의식을 한곳에서 관리하게 된 제국은 의식 공동체를 통해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것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정할 수 있는 단계를 이루었다.

그들은 디지털화된 의식을 통해 인간의 생각을 단순화 시키고 그 과정을 통해 불필요한 글자들을 없애 버린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잘 사용하지 않는 글자가 자연스레 도태되어 사라지는 거 같지만 글자가 사라짐으로 인해 그 글자에 담긴 뜻과 감정들도 함께 사리 진다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결국 인류는 의식공동체로 인해 기계회 되고, 획일화되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닌 주어지는 정보만을 습득하여 그 정보 위주의 생활만을 영위할 뿐이다.

인간은 편리에 의해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자각 없이 살아가는 세상이 된 미래.

아무런 의심 없이 편리한 세계를 이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그것에 의해 이용당하는 세상

언어에서 서정성을 제거해서 기계적인 언어와 사고로 인간을 융합하려는 계획

그렇게 최적화된 인류의 탄생은 시작되는 걸까?

심오한 이야기 한 편

가까운 미래에 벌어질지도 모를 이야기들

발전과 편리함이 가져다주는 부정적인 미래

그 미래를 위해 우리가 지금 지켜내야 하는 건 무엇일지를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였다.

최고의 연구진이자 대학에서 학문을 가르쳤던 엘리트들이 종이들의 장례식장에서 아무런 보수도 없이 책들을 불태우는 광경은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인간의 수명이 늘어나도 인간은 불멸이 아니기에 육체적 노화는 죽음으로 이를 수밖에 없다.

리푸레이는 왕후의 죽음을 조사 끝에 왕후와 왕이 제국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서로 아는 사이였고, 제국이 만들어진 이후 왕은 왕후의 인생 전체를 설계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즉 언젠간 왕후가 노벨상을 받을 것을 계획하고 20여 년 전에 미리 노벨상 시상식에서의 연설문 초안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다. 그걸 알게 된 왕후는 자신의 생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 목숨을 놓았던 것이다.

그러면서 리푸레이를 자신의 죽음으로 이끌어 제국과의 연관성을 알아차리게 만든 저의는 무엇일까?

이 이야기에서 가장 끔찍한 대목은

리푸레이 자신도 한때 제국에 몸담고 있었고, 왕의 눈에 띈 직원으로서 제국의 앞날에 관한 기획안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 기획안으로 칭찬받을 것을 기대한 리푸레이에게 칭찬 대신 한직으로 밀려난 인사가 이루어지고 그것에 반대해 사직서를 제출한 리푸레이는 그대로 제국에서 퇴출당하고 만다.

육체는 소멸되고 의식만 남은 왕은 자신의 의식을 이식할 후계자를 찾게 되고 그 후보자 중 1위가 바로 리푸레이였다.

제국은 리푸레이가 작성한 기획안대로 이루어졌고, 이 끔찍한 세계의 발판을 마련한 게 바로 자신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리푸레이.

그는 왕의 의식을 이식받아 왕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되는 걸까?

육체는 소멸해도 의식은 남는 디지털 유령.

왕은 자신의 의식을 이식할 대상을 찾는다.

번드르르한 말로 풀이하지면 윗 세대의 지혜를 공유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내 디지털 영혼에 너의 젊은 육체를 연결해 달라는 뜻이다.

이것이 왕이 갈망하는 불로장생의 방법이었다.

가끔은 지금보다 불편했을지언정

감성이 흐르던 아날로그 시대가 더 풍요로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90년대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스마트폰 세상 이전이라도 좋을 거 같다

적어도 그때는 사람들의 시선이 서로 얽히는 시간이 많았을 테니...

좁은 사각 세상에 코 박고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세상을 보는 시야도 딱 고만큼만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누구를 위한 세상을 살아내는 것일까

생각이 정말 많아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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