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서광들
옥타브 위잔 지음, 알베르 로비다 그림, 강주헌 옮김 / 북스토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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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서광들은 책을 사랑하고, 아끼고, 모으는 사람들의 다양함에 대한 이야기다.
11편의 단편들이 다양한 감성의 애서광들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 소설의 화자는 아마도 옥타브 위잔 자신인 거 같다.
이야기에 "나" 라는 화자가 등장하는데 정작 "나"에 대해선 이름이 나오지 않으니 말이다.

책을 사랑하면, 책을 모으게 되고, 그러다 보면 본의 아니게 수집가가 된다.
물론 전문적인 수집가들은 따로 있지만.

이 애서광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바로 그 에서광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의 이야기다.
시지스몽의 유산에서 이 상처 입은 여인의 잔인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시지스몽의 상속자이자 약혼녀였던 앨레오노르는 결국 결혼하지 못하고 시지스몽의 상속자가 되었다.
50이 넘도록...

18~19세기에 50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했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할만하다.
시지스몽은 결혼도 미룬 채 평생을 책을 수집했다. 그런 그가 죽고 나서 그 책들을 약혼녀에게 상속한다.
시지스몽은 그의 책들은 절대로 팔 수 없으며, 일 년에 한 번 그의 생일에 장서벽을 가진 친구 몇몇에게만 그의 서재에서 12시간을 지낼 수 있다고 유언을 남긴다.
그의 장서벽 친구들은 어떻게든 그의 책들을 가져오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가장 기발한 계획은 그의 상속자인 엘레오노르와 결혼해서 그 서재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말이지 끝간데를 모르는 사람들의 행태이다. 엘레오노르를 두 번 세 번 농락하는 일이라는 걸 그들이 알턱이 없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엘레오노르의 잔인한 복수극이 펼쳐진다.
그녀의 기발한 복수극에 망가지는 책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 통쾌하기도 했다.
책이 아무리 소중하다 한들 사람이 먼저란 걸 잊으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었으니까.

이 책에는 수많은 저자의 이름과 작품의 이름이 나온다.
거의 19세기 이전의 것들이라 잘 모르는 작가와 작품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나폴레옹 1세의 수첩에서는 우리가 아는 바로 그 나폴레옹이 등장한다.
아마도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1871년 5월 23일 튀릴리 궁전이 함락되고 그 과정에서 불타오르는 궁의 약탈이 시작된다.
시민군의 한 병사는 불타는 궁전을 보면서 약탈당하는 보물들을 보면서 그제야 자신들이 한 짓이 어떤 것인지 깨닫는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 병사는 남김없이 타버릴 그 궁의 모든 물건들을 바라보며 기념품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하고 상자 하나를 가지고 나온다. 그러나 그는 결국 총을 맞고,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옆에 있던 H 백작에게 그 상자를 건넨다.
그 상자 안에는 책이 3권 있었지만 도망치는 와중에 2권은 잃어버리고 한 권만 남았다.
병사는 죽고 H 백작은 그 책을 자신의 가방에 넣어둔다.
병원에서 정신이 든 백작은 그 책을 펼쳐보다 그것이 나폴레옹 1세의 수첩 중 한 권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예부터 큰 야망이 없었다. 나를 현재의 위치에 끌어올린 것은 상황이었다. 그렇다. 나는 당장이라도 황제직을 내려놓고 싶다. 이 세상의 허영과 공허를 내던지고, 백작부인이 동의한다면 그녀와 따뜻한 고향에 돌아가 오손도손 함께 살고 싶다.

 

 

나폴레옹이 이렇게 전원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걸 나는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용하고, 사색적인 사람이었고, 전쟁보다는 평화를 그리워했으며 자연 속에서 고요한 삶을 살기를 바랐던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현지에서 사랑을 조달하고, 멀리 있는 사랑에게도 아낌없는 사랑을 전했던 바람돌이기도 했다.
위에서 말했듯 나폴레옹은 정말 자신의 욕망이 아닌 상황에 의해 전쟁을 감행했을까?
그의 나머지 수첩이 미국에 보관되어 있다는 각주를 보면 이 이야기가 근거 없이  쓰여진건 아닌 거 같다.

책의 종말에서는 나름의 수집가들이 모여 미래를 예견하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에서 예견한 것들이 현재에 실존하는 경우도 있어서 옥타브 위잔의 예리함이 돋보이는 이야기였다.

인쇄술이 이미 최고점에 이르렀기 때문에, 우리 종손들은 인쇄로 책을 만들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때쯤이면 인쇄술이 시대에 뒤진 방법이 될 것이고, 지금은 아직 초기 단계에 있는 사진에 의해 쉽게 대체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단한 통찰력이다.
책이 사라지고 사진으로 대체될 거라는 생각.

셀룰로이드로 만든 펜대처럼 가볍고, 5~600단어를 담아내는 원통형 기록 장치가 만들어질 겁니다.
주머니에도 너끈히 들어갈 겁니다. 여기에 어떤 목소리라도 복제될 겁니다.
개개인이 전기를 보유하게 될 겁니다. 어떻게든 교묘하게 전기를 휴대해서, 주머니에 넣거나 목이나 멜빵에 걸친 작은 장치를 쉽게 작동할 수 있을 겁니다.
.
.
.
스토리그라프에 대해 말씀드리면, 저자가 직접 편집자가 될 겁니다.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낭송한 소리를 원통에 녹음하고, 판매허가를 얻은 원통을 직접 판매할 것이고, 원통은 소비자에게 우편으로 전달될 겁니다.



 

유튜브, 전자책, 오디오북, 독립출판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예견.
그  앞에서 나도 나름의 미래를 예측해보지만 머리만 복잡해질 뿐.
그럼에도 종이책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종이책이 주는 그 느낌들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애서광들은 나에게 다채로움을 주었다.
다양한 생각방식을 건드려주었고, 책에 대한 욕심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주었다.
무언가를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나는 그렇게까지 광적인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나는 그냥 애서가일뿐
애서광은 되지 못할 거 같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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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록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7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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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세상에나 신분이란 게 존재해.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아."
가구라는 고개를 숙였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모든것을 쏟아 만들어낸 DNA 수사 시스템이 계급 제도를 강고하게 만드는 도구였을 뿐이라니.....


도예가의 아들로 태어난 가구라.
그의 아버지는 장인이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로 로봇이 그의 도자기를 똑같이 복제해 내자 영혼 없는 복제품은 진짜를 이기지 못한다는 그의 신념은 그를 TV 앞에 세웠다.
로봇이 복제한 작품과 자신의 작품은 분명 구별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TV 앞에서 무너졌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구분은 어려웠다.

가구라는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하고 그가 믿었던 예술의 영혼보다는 과학을 신봉하게 된다.

국가가 국민의 DNA를 관리한다.
범죄를 가리기 위해서만 사용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법을 만든 자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길을 만들어 놓는다.
그것이 플래티나 데이터이다.

국가의 기밀로 지정되어 몰래 시스템을 구축해오던 그들은 그들의 무기를 세상에 내보낼 준비를 시작한다.
범죄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의 증거를 이 시스템에 입력하면 범인의 몽타주까지 사진처럼 나오는 게 이 시스템의 장점이다.
이 시스템 구축에 앞장섰던 가구라.
하지만 의문의 살인이 계속되고, 범인은 그들이 가진 데이터에서 분별이 되지 않는다.
NF13으로 명명된 범인을 찾기 위해 발로 뛰는 아사마 형사
조작된 증거로 범인으로 몰리게 되는 가구라
이들은 이 짐작하기 어려운 사건을 어떻게 풀어 나갈까?


섬뜩하다.
생각할수록 미래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되는 거 같아서 두렵다.
플래티나 데이터의 존재가 무엇인지 밝혀지는 지점에서는 나도 모르게 온갖 감정이 복받친다.
디지털이 많은 것들을 바꿔 놓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많은 생활의 편리를 가져왔지만 반대로 많은 소중한 것들을 밀어냈다.
우리 삶에서...

좋은 제도, 좋은 정책, 좋은 법률, 좋은 규칙들을 아무리 만들어 내어도 결국 그것들을 악용하는 사례들은 늘 있어왔고, 늘 있고, 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그것들을 악용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편리함이 결코 안전한 건 아니라는 걸 이 이야기를 읽으며 생각하게 된다.
기술의 발전이 모두를 안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건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기술의 발전으로 어쩜 모두가 더 불안하고, 불행해지는 건 아닐까?

"공무원은 자기들 일을 편하게 하기 위해 국민 정보를 모으려 들지. 하지만 그렇게 모은 정보를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 결국 나쁜 놈들 손에 넘어가 서민만 고통받지."



그저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서 국가가 편할 대로 모은 정보들이 어떻게 악용되는지는 말해봐야 입이 아플 지경이다.
보이지도 않는 작은 칩에 내 모든 정보가 담겨 있고, 거리 곳곳의 감시 카메라에 노출되어 있으며
집에서도 마음 놓고 휴식을 취할 수 없는 세상이다.
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얻은 건 생활의 편리함이지만
우리가 잃은 건 진정한 자유가 아닐까?

어디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자유
국가가 국민을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제도들이 결국은 몇몇의 사욕을 채우기 위함임을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미등록자를 읽고
이 미등록자들에 대해 생각한다.
소수인 그들이 지배하는 다수의 세상.
다수인 우리는 소수인 그들로부터 우리를 지켜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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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맨 모중석 스릴러 클럽 45
로버트 포비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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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같은 작가의 악랄한 데뷔작!

 

이 말이 맞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걸 예감하는 순간에도 아니길 간절히 바래보지만...

2018년 범죄 스릴러 부분에서 난다 긴다 하는 무수한 범인을 만나 보았지만
블러드 맨의 범인이야말로 가장 악랄하고도 처연한 것이 압도적이지 않나 싶다.

제이크 콜.
콜리지라는 아버지의 성을 버리고 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FBI에서 일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유명한 화가이지만 제이크에겐 그 재능이 대물림되진 않았다.

대신 제이크는 머릿속으로 기상 천외한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죽기 전 마지막 순간을 그리는 능력이 있었다. 그 괴상하고 섬뜩한 재능은 아버지의 것을 뛰어넘었을 뿐 아니라 괴물들을 사냥하는 데 빛을 발했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제이크는 삼십 년 가까이 얼씬도 하지 않았던 고향 몬탁에 도착한다.
고향에 오지 않는 동안 전혀 연락도 없이 지내던 아버지가 치매와 함께 허물어져서는 분신을 했기 때문이었다.
두 손에 불을 지르고 거실 창을 깨고 마당 수영장으로 뛰어든 그의 아버지는 영영 두 손을 잃었다.
화가로서의 그의 생이 끝난 것이다. 그러나 의식이 돌아온 아버지는 그 뭉뜩한 손으로 병실 벽에다 그림을 그린다. 얼굴 없는 남자의 모습을...
아버지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치려 한 걸까?
아버지가 그린 얼굴 없는 남자는 누구일까?

제이크의 귀환과 함께 잔인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삼십 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제이크의 어머니는 살해당했다.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진 채...
그리고 제이크는 집을 떠나 방황했다. 약과 술에 절어서.
그런 그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을 때 그의 온몸엔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탈리아어로 된 단테의 신곡 지옥편 중 제12곡
그것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그의 인생에서 몇 개월의 기억이 사라졌다.


제이크가 아버지 때문에 돌아온 곳.
그의 어린 시절이 잠들어 있는 곳.
몬탁엔 제이크와 함께 오래전 범인이 다시 돌아온다.
마치 제이크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고 작정한 듯이.
그리고 대서양에서부터 거대한 태풍 딜런이 발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다시 시작된 연쇄살인
그리고 거대한 태풍
비밀을 감추고 두려움에 떠는 아버지
거대한 태풍으로 인해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고 제이크도 더 이상 이 살인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떠나기로 한다.
아내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 아내와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더 이상은 이런 일을 하지 않고 평범한 인생을 살기 위해 그는 FBI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살인범을 잡지 않고 떠나야만 그의 아내와 아들을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떠나려고 준비를 마쳤을 때 블러드 맨이 나타나 그의 아들과 아내를 납치해간다.

가장 끔찍한 살인 현장의 묘사
역대 가장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
그리고 역사상 가장 큰 허리케인
그리고 죽은 자들의 마지막을 그리는 범죄 수사관.

날씨와 살인과 광기 어린 화가와
온몸에 문신이 새겨진 수사관
그리고 오래된 비밀
그 비밀을 간직하고 공포에 떠는 화가

이 조합으로 이야기는 끝까지 읽는 이의 마음을 조마조마하게 만든다.
마치 퍼즐처럼 여기저기 널브러뜨린 조각들이 맞춰져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어갈 때쯤
책을 덮을 수도 계속 읽을 수도 없는 묘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처럼 끝을 알고 싶지 않은 스릴러는 처음이다...

로버트 포비의 데뷔작이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헐렁한 느낌을 준다.
범인에 대해 이토록이나 불친절한 설명을 하는 작가는 없었다.
범인의 동기, 범인의 생각, 범인의 행동을 독자에게 이해시킬 마음이 전혀 없는 거 같다.
그래서 더 끔찍하고, 더 잔인하고, 더 공포스럽다.

이 작가 로버트 포비.
더 다듬어진다면 최고의 스릴러 작가가 될 거 같다.
악랄하다는 평이 맞다.
악랄한 작가의 악랄한 범인.
읽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그것들이 밤사이 꿈속에서 오고 갔다.
웬만큼 스릴러에 단련되어 있다고 자부했지만 이번만큼 적응하기 힘든 이야기는 처음이다.


끈적한 공포와 극치의 잔인함이 스멀스멀 영혼을 갉아먹는 느낌이다...
절대 밤에 읽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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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아이 - 아홉가지 무민 골짜기 이야기 토베 얀손 무민 연작소설 6
토베 얀손 지음, 이유진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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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가지 이야기가 무심하게 펼쳐진다.
한 단락이 끝날 때마다 마음에 잔물결이 일렁인다.
생각의 깊이를 늘어뜨리면 한없이 파고들어갈 이야기들
모든 이야기엔 부드럽게 감추어진 신랄함이 묻어있다.

 

 

깊이 숨겨 두어야 할 남모를 꿈을 너무 일찍 말하고 다니면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잘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하면 재미가 없긴 하지.

 

 

잘하는 일과 꿈꾸는 일의 간극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은 한 가지만을 허용한다
놀이공원과 침묵의 공원 사이 어딘가에서 헤물렌은 방법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그를 걱정하는 친척들에겐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 뿐.

보이지 않는 아이

세상의 관심과 돌봄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들
그들은 투명인간이 되어 유영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무관심할 뿐이다.

무관심과 빈정거림 속에 투명해진 닌니
목에 달린 방울소리로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이
닌니는 무민 가족의 무심한듯한 보살핌 속에서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관심을 가져야만 비로소 보이는 이 세상 수많은 것들.. .


선물 꾸러미를 하니씩 보내서 방 안 수집품이 줄어들 때마다 할머니의 마음도 가벼워졌지.


가진 것을 모조리 나누어주고서야 비로소 만나는 자유
세상을 누리며 사는 것과 즐기며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단절됐던 관계들이 그것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회복되고 더 좋아진다는 건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다
마치 스니프처럼

누군가 경험을 나누려 해도
듣지 않고
단정 짓고
자신의 잣대로만 해석한다면
스스로 뼈아픈 고통을 감내하고 난 후에야 깨우치게 된다.

모든 인간은 경험에 의한 동물이다.
자신의 경험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새겨지지 않는다.
그래서 수많은 명언과 선대의 지식과 경험이 존재해도
늘 똑같은 실수가 벌어지는 이유가 된다.


모두 절대로 서로를 걱정하지 않기로 하면서 떳떳하게 자유를 누릴 기회가 더 많아졌다.


무민파파의 일탈은 결국 일상으로 돌아와야 함을 일깨워준다.
일상의 소소함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자유임을 온몸으로 보여준 무민파파.


무민이야기
그냥 단순한 동화 같은 이야기라 생각했다가.
뒤통수 맞은 느낌이다.

보이지 않는 이야기는
보려 하지 않으면 볼 수 없지.

 

 

 *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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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맨 앤드 블랙
다이앤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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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까마귀들은 생각과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아무것도 잊지 않는다.


윌리엄 벨맨.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남자.
그 남자의 운명에 죽음이 드리운 건 어릴 때 장난삼아 새총을 날렸던 그 순간이었을까

10살 소년들
윌리엄, 찰스, 프래드, 루크
그들은 숲속에서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윌이 새총으로 그 떼까마귀를 겨냥하기 전까진.
아무도 윌이 그 먼 거리의 그 떼까마귀를 맞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윌 자신도 자신이 총알이 빗나가길 바랐고, 민감한 떼까마귀가 기척을 느끼고 날아가길 간절히 바랐다.

살생.
그것에 대한 애도 없이 소년들에게 그 죽음은 색과 찜찜함으로 남았다.

벨맨 가문의 남자의 이름은 세 가지였다.
폴, 필립, 찰스
윌이 아버지 필립은 어머니의 사랑은 듬뿍 받았으나 아버지의 사랑은 받지 못했다.
마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라와 결혼했지만 부모의 축복은 받지 못했다.
아들을 낳은 뒤 그는 부모의 마음이 돌아설 거라 믿었지만 그들은 돌아서지 않았고, 필립은 벨맨가의 이름을 아들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다른 이름을 지어주었다면, 분명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게지.

 

 

부잣집 둘째 도련님은 부모님의 냉대화 가난을 견디지 못했다.
그는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도망을 쳤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무도 몰랐다.
윌이 자라서 청년이 되면서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오르내리던 소문은 더 이상 회자되지 않았다.
윌은 필립을 쏙 빼어 닮았으니까.

윌의 백부 폴은 윌을 자신의 아들 찰스보다 더 미더워했다.
찰스는 방직공장에 미련이 없었고 다른 곳에 마음이 있었다.
윌은 사업을 하는데 천부적인 자질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윌을 인정하지 않았다.

죽음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윌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다.
딱히 그를 애도할 이유가 없었다.
그가 막 비상을 시작하려 할 때 그의 어머니 도라가 죽음의 세계로 갔다.
아직은 어린 윌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그녀를 애도하지도 못했다.
그는 슬픔을 일로 승화시켰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그는 로즈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결혼했다.
윌이 행복에 빠져 있을 때쯤 그의 친구 루크가 한 겨울에 물에 빠져 죽었다.
떼까마귀의 시체를 들추며 장난을 치던 루크였다.

루크의 장례를 치르고 그는 그 일을 잊었고, 더 일에 매달렸지만 그에겐 가족이 있었다.
행복감을 느낄 때 그의 백부 폴이 죽었다.
그의 일이 윌에게 떨어졌다. 윌은 백부의 죽음 앞에서 공장일만 생각했다.
그의 빈자리를 그가 메꿔야 했다.
그리고 그는 진정한 벨맨씨가 되었다.

윌이 참석하는 장례식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윌 조차도 그 남자를 설명할 수 없었다. 단지 그 남자를 보았다는 기억만 있을 뿐, 그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죽음은 그를 좀먹어 갔다.
슬픔을 슬퍼하지 못하는 윌은 더욱더 일에 매진했고, 그 결과는 그의 성공으로 이어졌다.
그가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를 떠났다.
열 살 이후로 죽음은 끈덕지게 윌의 곁에 머물렀다.
그가 기쁨을 누리기도 전에. 마치 그러면 안 된다는 듯이.
열병이 도시를 휩쓸고 그는 세 아이와 아내를 잃었다.
그들을 애도할 시간도 없이 그의 마지막 자식이자 맏이인 도라가 사경을 헤매었다.
그 무렵 그는 블랙을 만났고, 만취한 벨맨은 블랙과 협상을 시도했다.
정말 그랬을까?

죽음에 대한 소년의 죄책감이 블랙이라는 환상을 카웠을까?
그것이 하필이면 떼까마귀라서 더 마음에 그늘을 드리운 건 아니었을까?
떼까마귀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고 가는 길잡이였다.
벨맨은 블랙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벨맨&블랙이라는 거대한 장례용품점을 차린다.
마치 죽음의 성당 같은 위용을 자랑하는...
그것으로 그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다. 그와 도라의 시간을...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오니까요. 그게 곧 미래죠. 안 그런가요? 나의 미래. 당신의 미래. 모두의 미래.

 

 

미래의 끝은 죽음뿐이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모두가 외면하는 사실이었다.
죽음을 팔고 애도를 전시하는 벨맨&블랙은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성공 가도를 달릴수록 벨맨은 더욱더 두려움을 느낀다.
죽음이 비껴가도록 그는 최대한 몸을 낮췄다.
일에 몰두하며 이윤을 블랙과 똑같이 나누었다. 나중에 그가 나타나면 그에게 줄 요량으로.
그는 블랙의 아이디어를 차용했다고 생각했고, 나중에 그것이 어떻게 자신에게 죄를 물을지 겁을 먹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들은 젊은 나이에 남김없이 생을 마감했다.
그때
그 장소에서
그 죽음을 함께했던
그 소년들...


한 인물의 일대기를 말하면서 늘 죽음을 염두에 둔다는 건 어떤 걸까?
세터필드의 두 번째 작품 벨맨&블랙은 이야기의 깊이를 알아채기엔 조금 난해했다.
하지만 그녀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공감과 동시에 거부감을 남긴다.
죽음이 미래라는 그녀의 말은 옳지만, 그 옳음을 되새기며 살아가긴 싫다.

벨맨은 자신이 아꼈던 모든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다.
슬픔을 느끼는 대신 일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쌓인 슬픔은 그를 죄책감에 시달리게 했고, 다른 사람의 슬픔을 애도하는 상점을 짓기에 이른다.
정작 자신은 애도할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외면 하지만.

죄책감과 외면이 다른 곳에서 성공했다 하더라도 결국 자기 자신을 구하진 못한다는 뜻이다.
상실감을 감추려 노력한다고 해서 그 상실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남자는 그 죽음을 팔면서 부유해진다.
그렇다고 그가 그 부를 맘껏 누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죽음에게 빚이 있었다.
그 빚을 갚고자 그는 열심히 일했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었다.

죽음과 돈
둘 다 피해 갈 수 없는 운명의 짐이다.

벨맨을 통해서 세터필드가 말하고자 했던 건 뭐였을까?
죽음에 대한 경건함이 아니었을까?
다른 사람의 죽음을 공감하지 못하고, 그 죽음에 애도하지 못하고 돈만 좇는 우리에게
그녀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죽음을 경계하기 위한 가장 최선의 방법은 죽음에 대한 경건함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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