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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아름다운 이스라엘인들' 은 시온주의를 내세워 도둑질을 하면서도 양심을 깨끗이 유지하고 싶어 해.
샤일록하면 문학사에서 가장 비열하고 잔인한 유대인으로 회자되는 캐릭터죠.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로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한 주인공에게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내기로 합니다.
이로써 유대인의 악명 높은 고리대금과 비인간적인 모습은 서양사에서 유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샤일록 작전>은 그래서 뭔가 의미심장합니다.
유대인의 존경심을 받는 인물이 아닌 유대인의 악명을 드높인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이야기엔 맹목적인 애국보다는 유대인인 작가가 생각하는 유대인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며 읽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생각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필립 로스라는 이름을 사칭해서 자신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는 설정으로 한 사람 안에 깃든 두 가지 마음을 대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 비추어 <샤일록 작전>에서 필립 로스가 느끼는 감정도 이중적이지 않나 싶어요.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디아스포리즘과 시온주의로 나뉘는 이스라엘의 문제가 다른 듯 같게 느껴집니다.
같은 국민이지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다르지 않네요.
게다가 필립 로스 자신은 미국계 유대인이고 자칭 필립 로스라고 하는 자 역시 미국계 유대인입니다.
자신과 분리하기 위해 필립 로스는 자신을 사칭하는 자를 모이셰 피픽이라 부릅니다.
점잖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두 소중히 지키던 유대인의 가치관이 썩어버린 모습...
외국에 살면서 자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복잡한 마음이 깃들게 마련입니다.
팔레스타인들을 그들의 영토에서 내치면서 분쟁을 키워오는 이스라엘의 행동이 그들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그런 감정을 필립 로스는 대학 친구 조지의 입장에서 마구 퍼부어대죠.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들 간의 분열.
이 모든 것을 이야기로 풀어내기에 많은 제약이 있었던 필립 로스는 할시온이라는 수면제를 복용함으로써 제정신이 아니었던 이야기를 먼저 풀어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에서 자신의 행세를 하는 필립 로스에 대한 독자들의 상상력을 키워버리죠.
저도 읽는 내내 저 피픽은 분명 상상 속 인물이라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피픽은 미국에서 사설탐정으로 개인 경호원까지 하던 중 케네디 대통령이 피픽을 필립 로스로 착각하는 실수(?)로 인해 가짜 필립 로스로 행세하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나치로 인해 학살을 당했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서 그 보복을 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인가?
이 의문이 필립 로스를 괴롭혔던 거 같습니다.
왜 안 그러겠어요..
떠돌이 유대인이 한곳에 정착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습니다. 그곳은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타국에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 지식인의 입장에서는 동조하기 쉽지 않겠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이 무슨 짓을 한 거지? 우리의 위대한 경험이 우리를 바꿔놓았나?"
필립 로스는 자신을 사칭하는 자를 찾아 이스라엘로 향합니다. 그곳은 지금 전범인 데미야뉴크의 재판이 벌어지고 있죠. 필립은 거기서 자신을 피픽으로 착각한 은퇴한 보석상으로 부터 거금을 후원받습니다.
피픽과의 언쟁으로 열받아있던 필립은 말없이 그것을 받지만 그날 조지와 함께 아랍인들의 재판에 다녀오는 길에 이스라엘 군인들의 기습을 받아 몸수색을 당하면서 거금을 잃어버리죠. 호텔로 돌아온 필립은 이미 피픽이 자신의 방에 먼저 와 있는 걸 발견합니다. 필립을 본 피픽은 스마일스버거에게 받은 돈을 돌려달라고 합니다. 필립 로스는 피픽을 쫓아내고서 다음 날 일찍 이스라엘을 떠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새벽에 찾아온 피픽의 애인 징크스양은 피픽이 데미야뉴크의 아들을 납치할 계획이라고 그를 말려달라고 필립에게 애원합니다. 필립은 그녀의 애원을 뿌리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스마일스버거의 100만 달러짜리 수표.
레흐 바웬사의 육각별.
리언 클링호퍼의 여행 일기.
유대인에 대한 신랄한 평가가 담긴 <샤일록 작전>
읽으면서 이 복잡한 민족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네요.
그것을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순 없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건 실제 있었던 일을 쓴 글이 아니야. 당신은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해 조금도 모르기 때문이오. 당신은 객관적인 현실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소. 그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있어.
필립 로스는 자신이 이스라엘에서 겪은 일을 소설 형식을 빌려 썼습니다. 끝부분의 스마일스버거와의 대화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 가지 첩보작전에 상당수의 명성 있는 유대인들을 관여시키는 방법,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작전에 휘말려 가담한 줄도 모르게 가담하고 마는 현실.
필립 로스가 이스라엘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는 동안 그들이 노린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필립 로스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요?
바로 <샤일록 작전>이라는 이 소설을 집필시키기(?) 위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까요?
유대인이란 민족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이 이야기를 읽으며 혼란스러웠습니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 있는 이 이야기에서 저는 그들을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살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팔레스타인들의 고통은 당연한 게 아니니까요..
필립 로스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지 그저 마음이 쓰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