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 - 마키아벨리에서 조조까지, 이천년의 지혜 한 줄의 통찰
김태현 지음 / 리텍콘텐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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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베푸는 자를 해칠 때에 덜 주저한다.

요즘은 깊게 읽는 책들보다는 가볍게 읽고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책들이 좋다.

한두 문장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만드는 문장의 힘이 좋다.

그 문장들을 마음에 새기고 손으로 써보는 것도 좋다.

그 취향에 알맞은 책으로 <세상의 통찰, 철학자들의 명언 500>이 있다.


마키아벨리부터 법정 스님까지 

동서양과 문학과 현실 속에서 마주한 명언들을 한데 모아 놓은 책이다.

원어와 함께 담겨 있는 점이 더 좋다.





관대함처럼 자기 소모적인 것은 없다. 당신이 그 미덕을 행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그 미덕을 계속 실천할 수 없게 된다.



참 모순되는 말인데 진리이기도 하다.

당연함을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마키아벨리 시절에도 많았나 보다.



종교는 일반인에게는 진리이고, 현자에게는 거짓이며, 권력자에겐 유용하다.


마치 지금 우리나라를 빗댄 말 같아서 씁쓸하다.


이 책엔 마키아벨리와 같은 통치자와 쇼펜하우어 같은 철학자, 괴테와 같은 대문호들과 조조, 법정 스님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좋은 문장들이 500개가 담겨 있다.


각 카테고리에 담긴 문장들을 그때그때 펼쳐 읽으며 그날의 기분과 마음가짐에 맞는 말을 찾아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에 좋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답을 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뼈아픈 사실을 얼마 전 깨달았다.

그것도 혼자 깨달은 게 아니라 친구에게 깨우침을 받았다.

누군가가 내게 어떤 이야기를 하면 나는 그냥 들어주면 되는 것을 그 말에 해답을 찾으려고 쓸데없는 짓을 많이 하며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며칠 마음이 시끄러웠다.

이렇게 이 문장을 마주하니 마음이 가볍다.

시끄러웠던 시간 동안 나는 마음 정리가 되었나 보다.

법정 스님의 말에서 기운을 얻는다. 

내가 가진 '맑은 가난'이 더 또렷 해진다.

불필요한 것.

없어도 살 수 있는 것.

그것을 남과 비교해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불행해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봐야겠다.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것들만으로 충분히 사람 노릇하며 살 수 있다.

그러니 뭘 더 바라겠나.

최근 들어 자주 접하게 되는 문장들이 바로 나 자신과의 대화였다.

이 책에서도 발견한 법정 스님의 말씀.

정말 나 자신과의 대화를 놓치고부터 나는 내가 아닌 내가 되어 살고 있었다는 걸 이제 깨닫고 있다.

이젠 나와의 대화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다.


이렇게 글들이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길을 알려준다.

그것을 알아보느냐 못 알아보느냐가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 갈 테지..


열심히 살 때다.

좋은 문장들을 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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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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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내게 미소를 지었고, 그 미소는 30년 동안 계속되어 나는 그 미소 한 귀퉁이에 매달려서 수많은 심연을 건너왔다.


마치 숨겨져있던 오래된 고전소설을 읽은 기분이다.

내가 알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 아주 먼 시대의 이야기.

그러나 이 이야기는 내가 알지 못하지만 그리 멀지 않았던 과거가 배경으로 흐르고 있다.


주인공 미모의 목소리로, 그를 지켜보았던 또 다른 시선의 목소리로.

수도원 지하에 숨겨진 조각상과 함께 스스로를 유폐한 한 남자의 죽음 앞에서의 회상은 그렇게 현재와 과거를 함께 묶어 두었다.


왜소증으로 태어난 미모. 미켈란젤로 비탈리아니.

그저 여자로 태어난 비올라 오르시니.

조각가의 재능을 타고난 미모와 천재적인 기억력의 소유자인 비올라.

두 비범한 영혼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피에트라달바에서 '우주적 쌍둥이'로 만난다.


1910대~1940년대 그 사이에 존재했던 두 영혼의 이야기는 이탈리아의 시대상과 맞물려 차곡차곡 이야기를 쌓아간다.

이 이야기를 읽고 난 내 머리엔 "아름답다"라는 말만 새겨졌다...


비올라는 후작의 외동딸이지만 단지 그저 여자였을 뿐이었고

미모는 왜소증을 가진 난쟁이였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오르시니 가문의 비호 아래 부를 쌓아가고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를 알아보고 그를 공부시키고 단련시켰던 비올라와 미모의 인생은 세월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미친 영향력이 역전되기도 하고, 비등해지기도 하고, 균등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을 넘나든다.


하늘을 날고 싶었던 비올라.

신념도 굳건했던 비올라.

자신의 오빠들보다 더 역량 있었던 비올라는 그저 가문의 영향력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었다.

이 안타까운 영혼에 빙의된 수많은 여성들의 비애를 느끼자니 이 시대에 태어나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 깊게 새겨진다.








사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교차된 이야기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묘한 긴장감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이탈리아 어느 곳을 가면 미모 비탈리아니의 조각을 볼 수 있을 거 같고, 비올라와 함께 누웠던 톰 마소의 무덤이 존재할 거 같다.

구구절절하지 않아서 구구절절하게 느껴지고, 신파가 아니라서 더 가슴 조이게 만든다.


두 번의 전쟁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그보다 더 빠르게 변하는 가치관, 사상, 생각, 민중의 마음.

그 안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려는 세력들의 물밑 작업들이 세밀하게 독자에게 전해진다.


미모의 손에서 태어난 피에타.

세상에 잠시 나왔다 사라진 미모의 피에타.



우리는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유폐하는 겁니다.

사제는 그녀를 거기에 가둬 둔 자들은 스스로를, 그들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던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마치 멸망처럼 찾아온 그 재앙이 모든 걸 사라지게 했고, 사라졌던 재능을 다시 되살렸다.

신의 계시처럼...


진중한 이야기로 표현되는 격렬하지만 격렬하지 않고, 잠잠해 보이지만 잠잠하지 않은 사랑이자 우정인 우주적 쌍둥이의 이야기.

곧 숨이 끊어질 듯 고통스러운 죽음의 순간에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놓지 못하는 미모의 애잔함.

남은 인생의 모든 것을 바쳐 그녀 곁에 머물렀던 한 남자의 순애보.

그 마음을 아는지라 떠나지 못하고 그의 피조물에 안착한 날고 싶었던 귀한 영혼.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믿었다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화를 냈다는 죄.



작가의 시대에 대한 통찰력으로 인해 미모와 비올라가 살았던 그 시대의 혼란함이 그 어떤 역사책 보다 진실되게 보였고

자신들의 세상에서 조금 다르게 살아보려 했던 두 사람의 삶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비극에 허무함도 느꼈다.

그 어떤 전쟁도 자연을 이기지 못하지...


얼마나 많은 인생이

얼마나 많은 권력과 정치와 이익 앞에서 허물어졌을까.




"나는 우뚝 선 여자다."

"나는 당신들 만큼 귀하다."



비올라의 외침이 바람이 되어 귓전을 때린다.

그렇게 울부짖었던 마음이 깎여갔던 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은 얼마나 재가 되었을까..

미모의 시점에서 보는 비올라에 대한 모든 것이 저 문장으로 대체되는 시점이 이 이야기의 모든 것이 아닐까.


또 한 번 내 마음에 숙제를 내준 이야기다.

시대에 편승해서 살 것이냐

내 생각대로 살 것이냐.


답은 비올라의 외침에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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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5
오스카 와일드 지음, 이근삼 옮김 / 빛소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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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언제까지 젊음을 유지하고 있겠지. 6월의 오늘 이후로는 결코 늙지 않을 거야. 만약 반대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는 게 나 자신이고, 늙어가는 게 이 초상화라면! 그렇다면...... 그렇다면......난 모든 걸 다 내놓을 거야! 그래, 이 세상에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내놓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라면 내 영혼이라도 내놓을 거야!"



소원을 빌 때는 신중히..

그러나 그렇게 신중하게 빈 소원보다는 무심결에 마음에 있는 소리가 울릴 때 그 소원은 이루어진다.

6월의 어느 날 도리언 그레이가 무심코 바랐던 소원 하나가 이루어졌다.

자신을 복제해 놓은 것 같은 초상화가 자기 대신 늙어버렸으면 했던 그 바람은 누구의 힘인지 모를 힘으로 인해 이루어진다.

도리언 그레이가 세상의 때, 세상의 악, 추함과 어리석음과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느낄 때마다 세월의 상처를 입는 것은 초상화였다.

나 대신 늙어가는 초상화 속의 내 모습을 두려움과 동시에 희열을 느끼며 바라보는 도리언 그레이.

그가 조금 더 영글었을 때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았을까?

그가 헨리를 만나기 전 그 소원이 이루어졌다면 그는 다른 생각으로 살았을까?






이 그림에는 죄의 타락을 드러내 보이는 명백한 상징이 있다. 인간이 그 영혼에 가져다주는 파멸의 부단한 흔적이 있다.



스펀지 같은 사람이 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스펀지처럼 주변의 것들을 흡수한다.

다만 흡수되는 것의 대부분이 사람들이 경계하는 것들이라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도리언 그레이에게 헨리가 그랬다.

묘하게 격동시키는 말들도 도리언의 순수함에 타격을 주고, 그를 어둠으로 이끈다.

신랄한 이야기로 그를 자극하고 그가 갈등하는 걸 즐긴다.

그날 그림이 완성되는 날 도리언 그레이가 자신의 초상화를 보며 빌었던 그 소원도 헨리 때문이다.

영글지 못한 순수함에 교묘한 불안을 조성해서 흔들리게 만드는 뱀 같은 혀.

바질이 헨리에게 도리언을 소개하지 않으려 한 이유가 거기 있었다...

죄는 죄를 부르고

악은 악을 부르고

그것에 물든 마음에 양심이 피어난다.

도리언 그레이는 결국 자기 파괴의 화신이 되었다.

그는 자기 대신 늙어가고 변해가는 초상화를 보면서 그저 회피하려고만 했다.

회피야말로 상황을 더 악화 시키는 것인데.

마흔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들어 갈 건지는 스스로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젊음을 얻었지만 동시에 불안도 함께했다.

그가 자신의 초상화를 매일 보며 마음을 다졌더라면 어땠을까?

젊음도

부도

명예도

권력도

그걸 다스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도리언 그레이는 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순수한 영혼에 악의 씨앗을 뿌리는 헨리 같은 사람에게서 조언을 구한 도리언의 잘못일까?

그에게 헨리를 소개한 바질의 잘못일까?

사람은 자신을 알지 못하고

남을 눈을 통해서 자신을 보려 할 뿐이다.

그것이 도리언 그레이가 헨리를 못마땅해하면서도 그의 말을 듣고 흔들리는 이유다.

도리언 그레이가 믿어야 했던 건 자신의 초상이다.

자신의 행동에 따라 삶의 가치가 반영되는 초상을 믿었더라면 그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오스카 와일드의 이 이야기는 돌고 돌았을 뿐

철학자들이 말하는 '고독'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사람의 비참한 말로가 아닐까?

헛되이 돌아다니며 사람들 틈에서 영양가 없는 시간을 보내느니

그 시간을 자신의 초상을 마주하며 삶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자신의 완성을 꿈꾸는 철학자들이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드는 이유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은 '너 자신을 알라'는 오스카 와일드식의 또 다른 버전이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남의 생각에 흔들리지 말고

나를 똑바로 직시하며 살라는 경고다.

휘둘리고 흔들리는 삶은 결국 내가 나를 해치는 삶이라는 걸 도리언 그레이가 말해주고 있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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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로 보다, 근현대사 - 한국 근현대사의 순간들이 기록된 현장을 찾아서 보다 역사
문재옥 지음 / 풀빛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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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추체험이 있다. 직접 역사의 현장에 들어가 마치 과거의 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이때, 공간은 나로 하여금 역사의 시간 속에 몰입하게 해 주는 드라마 세트장인 셈이다.



종로구에서 태어나 종로구에서 내리 살아온 나는 내가 늘 다니던 길과 장소에 그렇게 많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는 걸 모르고 살았다.

궁궐과 몇몇 사적들만 알고 있었지 내 발길 닿았던 곳곳에 역사가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그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를 읽는 시간은.

서양의 군대와 맞서 싸우면서 지켜낸 강화도는 임금의 피난처였다.

한국사의 축소판이라고 할 만한 역사를 품고 있다.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 몰래 염하를 건너 정족산성에 도착한 양헌수와 군사들.. 그들이 없었다면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 중인 조선왕조실록은 루브르에서나 볼 수 있었을 테지...



일제가 미두 거래, 주식, 금광 개발 등을 통해 일부 한국인이 벼락부자가 되도록 놔둔 것은 ㅅ람들에게 현실을 잊게 하는 마약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함이었다. 이를 통해 식민 통치의 부당함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려는 목적이 있었다. 한탕주의의 만연은 일제가 한국인에게 뿌려 놓은 새로운 의식 문화였다. 근대화, 식민화는 한국인의 의식까지도 변화시켰던 것이다.



인천 제물포항에서 쌀을 수탈하던 일본이 우리에게 심어준 한탕 주의.

그 온상이 되었던 곳. 차이나타운이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곳.

인천은 스치듯 지나쳤던 기억뿐이라 언젠가 이 책에 담긴 장소를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 공사관에서 덕수궁에 이르는 길의 이름은 영어로 "Kings's Road"라고 이름 붙였다.

좁은 골목길로 도망치던 고종의 모습을(아관파천) 떠올리면 그곳의 이름을 '왕의 길'로 이름 붙인 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명동 일대의 땅은 질어서 진고개란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 시대 가난한 이들이 살았던 이곳은 지금 한국의 금싸라기 땅이 됐다.

이곳은 일본인들이 도성 안에 살게 된 계기를 만든 일본공사관이 있었다. 경술국치의 현장이다.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는 남산 조선총독부가 있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선 미츠코시 백화점은 그대로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다.

남산, 명동, 남대문에 이르는 길을 저자는 '국치의 길'이라고 명명했다.

자주 찾는 곳이었는데 그런 역사적 사실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번에 명동과 남대문에 갈 때는 이 책에 담긴 곳들을 다녀보자 생각한다.

<장소로 보다, 근현대사>를 읽으며 가장 열받았던 장은 4장 독립운동의 현장 효창공원이다.

효창원이란 이름으로 조선 왕실의 가족묘가 있던 숲이 우거진 효창원. 이곳에 있던 1원, 3묘가 서삼릉으로 옮겨지고 일본인을 위한 공원과 행사장을 만들었다. 창경궁을 창경원이라는 동물원을 만든 것처럼.

해방 후 이곳에 김구 선생이 애국지사의 묘소를 만들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분의 유해를 모셨다.

그러나 이승만은 순국선열의 묘를 이장 시키려 했지만 여론을 의식해서 이루지 못했다.

그대신 그는 보란 듯이 효창운동장을 만들었다.

순국선열들의 묘소에 우거진 15만 그루의 나무를 베고 연못을 메워 운동장을 만들었다.

이 대목을 읽는데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한때 재봉 공장들이 즐비했던 창신동.

지금은 새롭게 변신 중인 창신동.

동대문 가기 전에 지나치던 동네 창신동.

그곳이 한때 채석장이었다고 한다.

무려 1961년까지 운영되었다고 하니 정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낙산공원이 예전에 돌산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채석장이 있었다는 게 이해는 되지만 처음 듣는 거라 내가 낳고 자랐던 옆 동네의 과거가 새롭게 다가왔다.

확실하게 아는 만큼 보이는 게 역사인 거 같다.

내 발길 닿는 곳곳이 역사의 현장이었고, 역사의 증인이었다.

장소는 모든 걸 품고 말없이 달라는지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

무심코 다니던 길이었는데 이제는 다른 느낌이 들 거 갔다.

한동안 시청 일대를 다닐 일이 있는데 이 책을 들고 가야겠다.

책에 나온 장소들을 찾아 다시금 그 역사의 현장을 생각하며 느껴보고 싶다.

알면 알수록 더 알아야겠다는 욕구가 생긴다.

아이들과 서울 거리를 걸을 때 이런 역사를 설명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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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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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전히 집 안에 그와 함께 있었다. 가까운 곳, 때로는 지나치게 가까운 곳에, 그러나 늘 시야 바로 너머에 잠복해 있었다.




그와 그녀는 중고품 가게에서 눈이 마주쳤다.

스쳐 지나간 인연이었지만 몇 달 후 우연히 또 마주친다.

그리고 그동안 서로가 서로를 기억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애나와 바움가트너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바움가트너>는 중간 이름이다. 폴란트계 유대인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었다.

어느 하루 냄비를 태워먹고, 그 냄비를 치우다 손에 화상을 입고, 전기 검침원을 지하실로 안내하다 넘어져서 무릎을 다친 날

바움가트너는 애나가 죽은 지 10년이 되었다는 걸 불현듯 느낀다.

폴 오스터는 누군가 무심히 지나치다 불현듯 깨닫게 되는 찰나의 감정이나 기분, 상황을 기가 막히게 표현해 내는 재능이 있다.

70대의 노교수는 한결같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이어간다.

그 하루 동안 그에게 갑자기 찾아오는 기억들은 그를 잠시 멈추게 하거나, 그가 하려던 무언가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바움가트너>를 읽는 내내 나는 나의 70대를 경험하는 기분이었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생각이 어떻게 흐르는지,

몸이 따라오지 못하는 생각은 과거의 기억으로 껑충껑충 징검다리를 놓는다.


바움가트너는 그녀가 자기 몸으로 하는 일은 그녀가 알아서 할 바이고 따라서 그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는 강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애나 또한 그가 알아서 할 일은 그녀가 관여할 일이 아님을 알았기에 구태여 그에게 물은 적이 없었다.



어딘지 샌님 같은 바움가트너는 물러설 때를 알았다.

그것은 비겁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바움가트너식 합리적인 방어.

그는 그다지 분노하지 않았고, 그다지 미워하지 않았으며, 그다지 원망하지 않았다.

주디스에게 청혼한 날 그녀의 반응 앞에서 그가 무기력하게 돌아섰냐면 아니다.

그는 주디스와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그래서 나는 바움가트너가 좋다.

'무리' 하지 않는 사람. 바움가트너.

언제나 선을 지키는 사람 바움가트너.

그러나 꽤 현실적인 사람 바움가트너.

아버지의 장례에서 어머니에게 곧 무너져 내릴 그 도시를 떠나라고 말하는 바움가트너를 보며 세상 물정 모르는 글쟁이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품을 건 품고

버릴 건 버리고

뒤돌아 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불현듯 한순간의 시간에 과거로 달려가는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도 아니고

현실과 과거 사이에 끼어 세상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고약한 늙은이도 아니다.

바움가트너에겐 책과 글쓰기와 사색. 세 가지 동무가 있다.

인생의 동반자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텅 빈 공허함을 채워주는 세 동무들.

그는 끊임없이 채우고, 비우고 또 채운다.

그리고 현실에서의 소소한 인연들을 믿는다.

그를 둘러싼 사람들은 모두가 평화롭다. 이 평화로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서로에게 해가 되기보다는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바움가트너처럼 늙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의 마지막 장.

애나를 닮은 애나의 남겨진 글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사람의 방문을 기다리며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잠시 드라이브를 즐기던 바움가트너.

인간의 마지막은 정말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폴 오스터는 독자에게 마무리를 맡겼다.

나는 두 갈래로 내 맘대로 엔딩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르지만 크게 다를 거 같지 않은 나의 70대를 바움가트너를 통해 미리 들여다봤다.

과거가 쏜살같이 달려와 현실에 머무는 과정을

부모의 삶을 되짚어 보는 과정을

내 삶에 가장 중요했던 명장면들을 되살려보는 과정을...

스웨덴의 오베와는 또 다르게 미국의 바움가트너는 조용히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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