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자들
존 그리샴 지음, 남명성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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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간범, 살인범 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동안 교도소에서 썩고 있는 결백한 사람들을 짊어지는 일을 자처한다. - 21p

 

수호자 재단은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의 누명을 벗기고 그들의 자유를 수호하는 비영리 단체다.

자신이 배심원으로서 유죄 판결을 내린 사람이 알고 보니 누명을 쓴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된 비키 골리가 자신의 회사를 조카들에게 팔고 그 돈으로 수호자 재단을 세웠다.

컬런 포스트.

그는 한때 변호사였다. 그러나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일에 환멸을 느낀 그는 법정에서 뛰쳐나온다.

신경쇠약으로 한동안 병원 신세를 지던 포스트는 이혼을 하고 신부가 된다.

그리고 그에겐 수호자 재단을 통해 죄 없이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구제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갇혀 있는 걸까? 죄를 지은 사람들 대신!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포스트와 수호자 재단이 퀸시 밀러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한 노력들을 따라가다 보면 공권력이 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무슨 짓을 했는지가 적나라하게 보인다.

작은 마을의 실세.

정의를 위해 일하는 '척' 하지만 뒤꽁무니로는 마약을 유통하고, 마약을 들여오기 위한 일들을 눈감아 주고, 그들을 비호해 주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하지만 아무도 그 무소불위의 자그마한 권력에 도전하지 못한다.

무언가를 눈치챈 척도 못한다. 그랬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 있으니까.


모두가 알면서도 모두의 눈을 가렸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머리 좋은 누군가 있습니다, 포스트 씨. 당신은 기적 없이 이 범죄를 해결할 수 없을 겁니다. - 121p

 

 

22년 전 백인 변호사를 죽인 흑인 운전사 퀸시의 죄를 입증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플래시.

그의 자동차에서 발견된 플래시엔 혈흔으로 보이는 무언가가 묻어 있었고, 증인으로 불려 나온 사람들 모두가 거짓말로 위증을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물인 플래시는 보관 창고가 불이 나는 바람에 사라지고 없다. 사진으로만 남은 플래시의 혈흔처럼 보이는 이물질 때문에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은 퀸시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이제 그때 퀸시를 범인으로 만든 사람들은 죽거나, 나이가 많이 들어서 은퇴의 삶을 살고 있다.

그때 위증을 했던 자들 역시 자신들의 과거를 숨기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포스터는 퀸시의 누명을 무엇으로 입증할 수 있을까?

 

 

대부분은 퀸시의 누명을 벗기는 이야기지만 수호자 재단에서 맡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퀸시의 자유를 향한 희망이 되어 준다.

포스트의 시각으로 설명되는 이야기는 담백하고 결정적이다.

 

 

뭔가 격정적인 액션이 가미되었다면 이야기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포스트의 시선으로 이야기되는 과거와 현재의 일들이 담담하지만 현실처럼 다가오기에 나는 이야기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천천히 죄어오는 스릴러의 맛

입안에서는 밋밋한 맛이었지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순간 느껴지는 진득한 맛

<수호자들>은 두리안 같은 맛이 난다.

 

 

지독한 냄새를 참고 인내하면 천상의 맛을 얻게 되는 두리안.

<수호자들>의 이야기가 그런 맛이다.

 

 

교도소는 갇혀 있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악몽이나 다름없다. 특히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들에게 교도소는 일정 수준의 정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매일 투쟁해야 하는 장소다. 결백하다는 증거가 나왔음에도 여전히 감방을 나갈 수 없는 사람은 말 그대로 미칠 지경일 터다. - 249p

 

 

끝없는 기다림.

잘못된 판결이었다는 증거가 나와도 자신들의 결정을 철회하지 않으려는 공권력.

죄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계속 보류 상태에 두는 시스템.

누군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기다림.

 

 

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일은 단시간에 이루어지지만

한 사람의 누명을 벗기고 그에게 자유를 주기 위한 시간은 한없이 늘어지기만 하는 게 현실이다.

 

 

 

이 모든 게 수호자 재단의 책임일까? 우리가 그의 사건을 맡지 않았더라도 그는 결국 여기 누워 있게 될 운명이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자유를 향한 꿈과 우리의 그를 돕겠다는 열망이 그를 목표물로 만들고 말았다.

나는 양손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운다. - 325p

 

 

포스트의 활약이 이어지면서 퀸시는 점점 위험해진다.

그의 누명이 벗겨지는 걸 원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퀸시는 감옥에서 공격을 받고 살해당하기 직전까지 간다.

목숨이 위험해진 퀸시는 누명을 쓴 채로 죽게 될까?

 

 

퀸시를 감옥에 보낸 이들은 모두 잘 살고 있다.

넘보지 못할 부를 이루고 사는 사람.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

무언가를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살려는 사람.

그들을 설득해가는 포스터의 모습은 그가 성직자이면서 변호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자신의 삶이 없는 포스터.

누명을 쓴 사람들을 의뢰인으로 둔 그는 늘 아무것도 지니지 않으려 한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바퀴가 달아버린 자동차 한 대뿐이다.

수호자 재단 역시 경비를 댈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열악하지만 퀸시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이길 승산이 있어 보여서 덤벼드는 힘 있는 법조인들에겐 상당한 수수료가 남는다.

 

 

이 모든 게 현실이다.

너무나 현실적인 이야기 앞에서 웃픈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수호자들>

 

 

하지만 <수호자들>을 읽으며 세상을 움직이는 '마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꾸준히 유대감을 쌓아가는 프랭키의 모습과 자동차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백방으로 자신의 모든 힘을 쏟는 포스터와 수호자 재단을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고 조금이라도 자신의 힘을 보태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들이 정의를 살려내는 과정이 <수호자들>에 담긴 힘이다.

 

 

노련한 이야기꾼 존 그리샴은 세상의 부당함과 그 부당함을 넘어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려냈다.

나쁜 마음들이 작당한 일은 결국 좋은 마음들이 작당한 일을 이기지 못한다.

어딘가에서 나는 '무적'이야!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죄 있는 자들에게 존 그리샴은 들려주고 있다.

'무적'의 삶은 없다는 것을.

'무적'으로 살아온 만큼의 시간 이상의 고통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수호자들>이 시리즈로 나왔으면 좋겠다.

프랭키의 숨은 활약과 포스트의 강단과 비키와 메러디스의 솜씨를 더 보고 싶다.

그들은 좋은 마음들을 대표하는 캐릭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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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베니스의 개성상인 1~2 세트 - 전2권
오세영 지음 / 문예춘추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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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6년 8월 3일

안토니오 코레아

 

 

유승업.

안토니오 코레아가 베니스공화국 시민이 된 날이다.

칠천량 해전에서 일본군에 포로로 잡혀 일본으로 향해야 했던 승업.

개성상인이었던 아버지와 어머니, 동생 명이와 단란한 삶을 살았던 승업은 어느 날 몰래 염탐을 하러 온 일본군에게 가족이 몰살당하는 광경을 목격한다. 이후 친척에게 거둬져 상인의 일을 배웠으나 전쟁이 터지고 나라가 어수선하자 군인이 된다.

그렇게 전쟁에 참가했던 승업은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간다.

조국으로 돌아갈 날만 바랐던 그였지만 승업의 운명은 그를 멀리로 이끈다.

조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승업을 눈여겨보았던 스님의 도움으로 그는 프란체스코 카를레티라는 이탈리아인의 노예가 되어 일본을 빠져나간다.

 

 

카를레티와 스테파노 신부의 도움으로 베니스에 정착하게 된 안토니오는 스테파노 신부의 가업인 델 로치 상사에서 일하게 된다.

이탈리아어와 라틴어를 배우고 글도 배웠던 안토니오는 그곳에서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를 잡는다.

베니스공화국은 유리로 유명한데 교황청에 유리 납품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그 유리 납품에 안토니오가 참여하게 된다.

 

 

승업아. 거래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이익을 먼저 고려하는 것이다. 자기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은 상인으로 자격이 없다. 그리고 상대의 이익도 당장의 이익보다는 장래의 이익이 윗길이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에게 전달하는 수단이 신의다.

 

 

예상보다 빠른 승진에 뭔가 찜찜함을 느끼던 안토니오의 예감대로 유리 납품은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베니스공화국은 교황청에서 파문을 당하고 만다.

메디치 가문과 바르베니 추기경의 세력을 등에 업은 아카데미아 델 치멘토가 유리 납품권을 따내기 위해 공작을 펼치고 있었다.

사면초가에 처한 안토니오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승부수를 띄우는데...

 

 




루벤스의 <한복 입은 남자>의 그림 한 장에서 탄생한 이야기는 읽는 내내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실제의 역사와 상상의 이야기를 잘 접목시킨 이야기는 개성상인의 배짱과, 결단력,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잘 보여준다.

진짜 안토니오 코레아의 삶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1600년대에 베니스공화국에 살았던 실존 인물의 삶을 이렇게 멋지게 그려낸 것은 팩션이라는 장르의 매력을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시련보다는 운이 좋았던 안토니오의 삶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쟁쟁한 이름들 때문에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읽으며 유럽의 역사와 함께 그들의 무역관계도 공부한 느낌이다.

상상이기에 그럴 수 있겠지만 전 세계 곳곳에 우리나라 사람이 없는 곳이 없는걸 보면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오래전부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먼 길을 떠난 누군가가 존재했고, 그 누군가가 겪었던 시련들이 떠올라서 짠한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라도 오래전 먼 길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삶을 유추해 보는 시간이 좋았다.

타국에서 외로웠을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안토니오 코레아가 한국인으로서, 개성상인으로서 스스로의 위엄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일구어 모습.

어디에서든 부지런하고, 열심히 배우고, 자신의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그들로 인해 새로운 뿌리를 내리게 된 핏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렇게 소설로나마 그들의 멀고 먼 여정을 그려볼 수 있어서 애틋했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마당이오. 그렇다면 상사가 살아남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총지배인을 기념해서 코레아 캄파넬라 상사라고 정하는 것이 어떻겠소?"

코레아 캄파넬라 상사!

그 말을 듣는 순간 안토니오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혈혈단신으로 베니스로 와서 베니스 제일의 무역상사 총지배인이 되었고, 이제 자신의 성을 상사명으로 쓰게 된 것이다.

 

 

초판이 나오고 30년이 되었다.

원래의 이야기에서 현대 상사맨의 이야긴 덜어내고 안토니오 코레아의 이야기만을 살렸다.

혈혈단신으로 이탈리아까지 가서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안토니오 코레아.

안토니오의 이름이 상사명이 되는 장면에서는 내 마음이 더 벅차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다시 읽은 <베니스의 개성상인>

그때보다 삶이 녹록지 않다는 걸 아는 나이여서 그런지 실존 인물이었던 안토니오 코레아의 삶을 더 응원하게 된다.

나라면 그처럼 그 먼 타국에서 홀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루벤스를 불러 자신의 초상화를 남길 정도로 열심히 살아왔던 그림 속의 남자.

그 그림이 오랜 세월을 견뎌내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누군가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안토니오들의 간절한 마음이 닿아서였던게 아닐까.

어떤 사연들을 가지고 고국을 떠났는지 모르지만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로 조국에 되돌아왔다.

그들의 영혼이 안토니오 코레아를 통해서 편안한 안식을 취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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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황소연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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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살인이라는 짐을 지고도 잠이 왔다!

 

 

윌북의 호러 컬렉션 세 번째 이야기는 에드거 앨런 포의 작품 25편이 실린 단편집이다.

읽기는 젤 먼저 시작했는데 젤 나중까지 읽어야 했다.

모든 이야기에 죽음이 담겨 있었다. 마치 죽음이 해결해야 할 숙제인 거처럼...

 

얼마 전 보았던 영화 <페일 블루 아이>가 연상되었던 <어셔가의 몰락>을 시작으로 기이하고 섬뜩하며 오싹한 이야기들이 줄을 잇는다.

에드거의 이야기엔 살인자들이 모처에 도사리고 있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악랄함이 모자라다. 완벽하게 시체를 처리하고도 스스로를 못 이겨 자백 아닌 자백을 한다.

그러나.

자신을 놀려먹고 골탕 먹이는 친구(?)에게 복수하려는 자의 반격은 끔찍하다. 대체 그 아몬티야도가 뭐길래 아무런 의심 없이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따라갔을까?

지구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 그 배에 타고 있던 선원들은 유령이었나? 아님 병 속에 수기를 넣어 보낸 이가 유령이었나?

 

초자연 현상에 관심이 많았고, 인간의 잔인한 면을 엿보았으며, 죽음 이후의 세계를 생각했던 작가 에드거 앨런 포.

병약했던 그의 삶이, 아니면 기억에도 없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실종과 어머니의 죽음을 묵도한 그의 일생은 늘 죽음과 함께 죽은 영혼들을 그리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작품을 통해 에드거는 스스로를 죽이고,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한여름 밤의 꿈처럼 덧없었다.

 

자기 자신의 분열된 모습을 마주했던 윌리엄 윌슨처럼 그도 또 다른 자신을 마주하고 있었을 거 같다.

나는 포가 죽고 싶은 자신과 살고 싶은 자신을 저울질하며 현실과 환상을 오고 갔다고 생각한다.

그의 갈망이 글 곳곳에서 유혹하고 있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지 못하게 만든 에드거 앨런 포.

<검은 고양이>는 어릴 때 읽었던 것과 조금 다른 기억이었지만 공포스러움을 일깨우는 데는 어릴 때 읽었던 순한 맛(?)보다는 더 끔찍한 맛이었다. 내게 검은 고양이는 곧 복수의 화신이라는 공식을 남겨 주었던 <검은 고양이> 는 읽을 때마다 인간 본성의 잔인함을 일깨우는 이야기다.

 

짧은 이야기들이라 호로록~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걸렸다.

그건 글 속에 담긴 섬뜩함이 이야기를 몰아서 읽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병약했던 에드거 앨런 포의 머릿속에 담긴 이 이야기들은 어쩜 그의 병약함을 더 가속화 시켰는지도 모른다.

죽음, 유령, 부활, 살인, 복수, 고문, 기이한 현상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글로 써 내려갈수록 화수분처럼 이런 이야기들이 생성됐을 것이다.

그 덕에 우리가 장르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발전시킨 공포문학의 세련됨을 즐기고 있을 수 있는 셈이다.

 

내 머리 위 어딘가에서 날카로운 칼날을 품은 추가 서서히 허공을 가로지르며 내려오고 있는 중인 거 같다.

갑자기 온 사방의 벽이 나를 향해 달려드는 거 같고

철로 만든 사각 방을 서서히 달구는 붉은 눈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기분이다.

에드거 앨런 포가 남긴 잔상들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거 같다.

이 지워지지 않는 느낌들은 내 삶에서 어떻게 표현되게 될까?

 

 

이 책을 읽으면서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을 들었다.

포의 작품들 속 현실은 어쩜 '거울 속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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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브램 스토커 지음, 진영인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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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자는 무릎을 꿇고 무척 흡족한 모습으로 몸을 기울였다. 천천히 다가오는 관능적인 모습이 무척 흥분되면서도 혐오스러웠다. 여자는 고개를 숙이며 입술을 짐승처럼 핥았다. 혀로 하얗고 날카로운 이를 핥는 동안 달빛 아래 붉은 입술과 혀가 촉촉하게 빛났다. 여자가 고개를 더 숙이자 얼굴이 내 입과 턱 근처까지 왔는데 내 목이 목표인 것 같았다. 여자는 감시 가만히 있었다. 혀로 이와 입술을 핥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 뜨거운 숨이 내 목에 닿았다. 내 목 피부가 달아올라 욱신거리는 느낌마저 들기 시작했다. 간지럼 태우는 손이 가까이 왔을 때처럼 피부가 곤두섰다. 달아오른 목 피부로 부드럽게 떨리는 입술의 감촉이 느껴졌다. 날카로운 두 치아의 끝이 목 피부에 가만히 닿았다. 나는 나른한 황홀경에 빠져서 눈을 감고 기다렸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두 번째 읽는 드라큘라에서는 전에 느끼지 못했던 관능적인 유혹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아마도 첫 번째 읽었을 때는 내 머릿속에 담긴 드라큘라의 모든 아류들과 원작 비교하기가 풀가동되었기에 잘 감지되지 않았던 감정인 거 같다.

 

불사이면서도 되살아나기 위해 인간의 뜨거운 피가 필요한 괴물.

물론 피가 없어도 내내 잠들어 있을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니까 드라큘라에겐 뜨거운 피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을 유혹해야 한다.

달콤하게.

겁먹지 않게.

자신에게 아낌없이 베풀 수 있게.

그리고 새로운 '동지'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끈적한 피

비린내 진동하는 뜨거운 피

보는 눈을 혼란스럽게 하는 붉은 피

드라큘라가 가는 곳마다 음산한 내음이 퍼진다.

사람들은 넋이 나가고, 무언가에 홀린 듯 자신을 내어 준다.

 

끈적한 블루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듯 인간의 피를 취한다.

거부할 수 없는 욕망에 취해 인간은 이 괴물에게 자신을 내어준다.

그리고 갈망하게 된다.

죽음으로 가는 길목에 장치해둔 달콤하고 황홀한 지배.

 

탐욕스러운 갈망과 욕구가 밤과 함께 찾아온다.

밤의 장막은 이 역겨운 공포를 스르르 감싼다.

유혹하듯 끈적이는 재즈 역시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 놓는다.

지금 드라큘라가 어딘가 존재한다면 그는 밤의 제왕으로 존재할 것이다.

끈적한 음악에 취해

끈적한 피 맛을 원해

끈적한 몸부림으로 죽음도 아니고, 삶도 아닌 중간계의 존재가 되어 밤을 맘껏 들이킬 테지..

 

인간으로서는 대항할 수 없는 괴물

심장에 못질을 해야만 영원한 안식을 줄 수 있는 괴물

그러나 누가 그 심장으로 향할 수 있을까?

 

브램 스토커는 이 무시무시한 괴물을 창조해 놓고

그에 필적하는 뚝심을 가진 반 헬싱을 만들었다.

그리고 인간 본성에서 가장 고결하고, 순수하면서도 진실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을 탄생시켰다.

괴물을 잡기 위해.

인간 세상의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편지로 이루어진 이야기는 상상력을 야기하고 하나의 편지를 전달하기가 수월치 않았던 시대를 떠올리며 조급해진다.

독자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다음 편지를 기다리는 심정이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이 편지들이 전달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스럽다.

 

원작을 읽으며 많은 아류작들이 어떤 대목에서 끌렸고, 어떤 대목을 차용하고, 어떤 대목을 발전시켰는지 보인다.

드라큘라가 브램 스토커 이후에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동시에 느끼면서 이 작품의 위대함에 감탄하게 된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내게 고전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들었다.

예전엔 멋모르고 읽었다면 이젠 드러나지 않은 것들을 찾아내는 눈으로 읽고 싶었다.

 

 

처음 <드라큘라>를 읽은 건 열린책들 특별판으로 나온 책이었다.

화려한 삽화를 보는 재미로 그래픽노블처럼 읽었다.

두 번째 읽는 <드라큘라>는 윌북의 호러 컬렉션으로 텍스트에 몰입해서 읽었다.

같은 이야기라도 번역가의 번역에 따라 조금씩 다른 해석들을 비교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문장의 순서가 바뀌어도 완전히 다른 느낌이라 새로웠다.

 

처음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드라큘라의 젠틀하면서도 세심한 유혹이 느껴졌고,

불굴의 의지로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인간 자체를 구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끌어모은 사람들이 보였다.

세상은 <드라큘라>같은 절대적 위험이 다가와도 조너선과 미나, 반 헬싱 같은 사람들이 뜻을 모아 물리칠 힘을 짜낸다.

<드라큘라>는 이야기 속에서 단지 괴물일 뿐이지만

불멸이라는 점에서 끝없이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존재와 같다.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자이자 불멸의 존재는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 야만 존재할 수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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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메리 셸리 지음, 이경아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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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을 창조하기 시작했다.

 

 

조물주가 된 프랑켄슈타인.

그러나 조물주가 가져야 할 자애를 갖지 못한 프랑켄슈타인.

자신의 창조물이 끔찍한 모습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내팽개치고 달아난 못난이.

자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버려졌던 괴물의 고독과 슬픔과 절망은 누구의 몫일까?





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자신의 창작물을 보듬었다면 괴물의 탄생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이'를 내팽개치고 도망친 '부모'는 세상에 괴물을 풀어놨다.

 

사실.

모습만 괴물처럼 보였지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의 '그'는 혼자서 학습했다.

마치 인공지능처럼 사람들의 행동과 말을 흉내 내며 혼자서 인간으로서의 학습을 했던 괴물이라 불린 피조물.

 

그는 단지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다만

사람들에겐 그럴 마음이 없었을 뿐이었다.

 

자신의 욕망을 위해 실험해놓고, 그 잘못을 온전히 처리하지 못하고 그 순간을 모면하려 했던 자로 인해 얼마나 많은 목숨들이 허무하게 사라졌는지 <프랑켄슈타인>은 잘 보여주고 있다.

 

"나를 위해 여자를 만들어줘. 그러면 나는 그 여자와 함께 내 존재에 꼭 필요한 공감을 서로 나누면서 살 수 있을 거야.

 

 

공감할 수 있는 존재.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존재.

인간 속에 섞이지 못하더라도 소통할 수 있는 존재를 원한 것뿐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프랑켄슈타인>에겐 자신의 피조물이 하는 이야기는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괴물을 만들어냈다는 자괴감만 가득했을 뿐.

 

생긴 모습으로만 판단하는 사람들 모습에서 나를 보고

소통할 수 없고, 공감받지 못해 괴로워하는 피조물의 모습에서 나도 모르게 외면했을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가 어느 틈에 그어 버린 어떤 선 긋기가 한 영혼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면 그 책임은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빅터부터 시작해서 그가 만들어낸 피조물을 보고 도망치기 바쁜 사람들의 모습은 곧 우리 자신이니까..

 

더 웃기는 건

우리가 괴물의 이름으로 알고 있던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자의 이름이었을 뿐 피조물에겐 이름조차 없었다...

 

 

<프랑켄슈타인> 원작을 읽는 건 처음이다.

아류작들과 각종 영화와 드라마를 봤지만 원작의 진실은 알지 못했다.

21세기에 읽는 <프랑켄슈타인>은 우리가 만들어낸 인공지능일지도 모른다.

인간을 능가하는 능력을 갖추고 인간을 학습해서 인간보다 더 뛰어난 피조물이 되지만 인간의 두려움 앞에서 버림받아 천덕꾸러기가 된 인공지능이 인간이 되고 싶어서, 인간처럼 살고 싶어서 갈구하다 한계에 부딪혔을 때 결국 인간을 파괴하는 '괴물'이 될 것이다.

 

200년 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피조물을 외면함으로써 스스로 괴물이 되었다.

100년 전 카렐 차페크는 '로봇'을 창조하면서 그로 인해 인간의 멸종을 얘기했다.

 

<프랑켄슈타인>

이 이름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감정과 생각과 뻗어나간 연상작용은 인간으로서 지녀야 하는 '그 무엇'을 말하는 거 같다.

빅터가 책임감을 가지고 자신의 피조물을 가르쳤다면?

빅터가 도망치지 않고 피조물을 보살폈다면?

낳았다고 다 부모가 아니듯 하나의 생명을 보살피는 건 태어남 이후의 돌봄이 중요하다.

이 세상에 만연해 있는 돌봄의 부재가 200년 전의 호러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담겨있다.

 

그저 괴물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던 <프랑켄슈타인>의 진상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Damien Rice의 Elephant를 들으며 이름 없는 자가 내지르는 외로움의 절규를 듣는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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