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결사 수첩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시부사와 다쓰히코 지음, 김수희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입사식에서 공통된 성격은 신입회원에게 어떤 종류의 공포심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공포감을 잘 견딘 자는 완전히 다른 인격이 되어 신세계에서 다시 태어난다.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마치 추리소설을 연상시키는 제목의 책은 말 그대로 비밀 결사에 대해 쓴 책이다.

말하자면 지구상에 알려진 온갖 비밀 결사 단체에 대해 말하고 있는 책이다.

 

아이들의 놀이에서 이미 우리는 비밀결사의 세계에 있다.

비밀결사 가입자들이 하는 입사식은 하나의 '놀이'라고 이 책은 전하고 있다.

'비밀'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뭔가 특별해지는 게 있다.

그래서 비밀단체, 비밀 클럽 등은 신입들에게 가혹한 신고식을 치르게 한다.

그 신고식에서 얻게 되는 공포심은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기도 하고, 다른 사람과 달라 보이게 만든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는 비밀결사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인간의 역사엔 왜 이런 비밀결사 단체가 있어야만 했을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 이유는 아마도 획일화되고, 프레임에 갇힌 세상으로부터 눈을 돌리고, 부당함을 알리고, 갇힌 세계에서 벗어나려 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들이 닿아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세에는 중세적 관념에서 벗어나려 했던 '여성'들에게 '마녀'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들을 화형 시켰다.

남자들 보다 똑똑하고, 남자들이 씌워놓은 여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려 했던 여자들을 '마녀'로 통칭해서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다.

 

디오니소스는 원래 그리스 고유의 신이 아니었다.

디오니소스는 기원전 8세기 이후, 그리스 신들 무리 속에 포함되게 되었다.

 

 

고사와 재생의 신, 풍요의 식물신이었던 디오니소스.

이 풍요의 신을 기리던 축제는 '바카이'로 불리는 여신도들의 광란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동물이나 어린아이들을 갈가리 찢어 생육을 했다고 전해진다는데 정말일까?

 

부두교들이 자신들을 올바른 그리스도교 교도라고 믿고 있다면?

부두교의 좀비는 진짜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게 아니라 가사 상태로 구덩이 안에 매장되었다가 다시 끌려 나온 것이다.

부두교엔 '에르줄리의 배'라는 바다 제사가 있다. 모형 배에 다양한 제물을 싣고 먼바다를 향해 띄워 보내는 의식이다.

 

종교에는 원시 때부터 있었던 의식들이 포함되어 있다.

다만 세대가 거듭되면서 형식과 관습에 치우치는 경향이 커졌고, 몸으로 표현하는 동작들이 외면받았을 뿐.

그 형태는 거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밀결사들은 아마도 그런 외면받은 것들의 원형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결과가 아닐까?

 




책을 읽으며 영화나 소설들에서 다루었던 여러 가지 비밀단체들에 대한 공부도 되었다.

서양 문물에 잠재되어 있는 이런 비밀 결사 단체들의 이야기는 창작물의 소재로 쓰이기 딱 좋다.

추리, 스릴러, 공포물들에 쓰인 비밀 단체들에 대해서 거의 빠짐없이 담아 놓은 책 <비밀결사 수첩>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프리메이슨, KKK, 장미 십자단, 악마 숭배, 마술 서클 등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의 집합체다.

 

호기심을 일으키는 단체들에 대한 뒷배경이나, 만들어진 이유, 이어져 내려오는 이유들이 담겨 있어서 장르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소재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가질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연식이 오래된 것이라 현재의 상황과는 다른 경우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1960년대에 쓰인 것을 지금 옮겨왔으니 시대상을 감안하고 읽어야 한다.

그래도 '비밀단체'를 좋아하거나 서양의 장르소설을 탐닉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다양한 소재들을 알려주는 단초가 될 것이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와 다빈치 코드류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책에 담긴 많은 비밀 단체들을 섭렵하는 재미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니와 마고의 백 년
매리언 크로닌 지음, 조경실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 둘 나이를 합치면 백 살이네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17살 레니.

엉뚱하고, 거침없고, 똑똑한 레니.

레니의 세상은 병원 안 병동이 전부다.

또래 친구도 없고, 부모님도 없고, 찾아오는 방문객도 없다.

그러나 레니는 병원에서 소중한 인연을 맺는다.

 

 

어느 날 쓰레기통에서 무언가를 훔치는 노인을 간호사들에게서 구해준 레니는 미술을 배우는 로즈룸에서 그녀와 재회한다.

그녀의 이름은 마고.

마고와 레니의 나이를 합치면 백 살.

두 사람은 서로의 인생을 이야기하며 로즈룸에서 우정을 쌓아간다.

마고가 레니에게 말해주는 마고의 83년의 삶.

레니가 마고에게 말해주는 레니의 17년의 삶.

그것들은 그림이 되어 한 장씩 로즈룸에 걸린다.

 

 

"우리 그 이야기들을 그림으로 그려요! 한 해에 그림 하나씩이요!"

 

 

어린 소녀 레니의 어른스러운 생각들이

마고의 파란만장한 인생이

밤하늘의 별들처럼 반짝이는 이야기다.

 

 

촉촉해지는 마음이 어느새 눈물을 뿜어내는 <레니와 마고의 백 년>

 




죽음을 앞에 둔 레니와 마고.

은퇴를 앞둔 아서 신부님

짬짬이 레니의 침대에 와서 쉬고 가는 빨강 머리 신입 간호사.

유머러스하고 친절해서 레니에게 점수를 많이 따 놓은 폴.

레니를 통제해서 레니를 열받게 만드는 재키.

로즈룸을 지키는 피파

이들이 나누는 소소한 우정이 계속 마음을 적셔온다.

그러다 끝에 가서 눈물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정말 울고 싶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마고와 험프리의 모습에서 내 미래를 그려본다.

이렇게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삶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는 아빠를 위해 나는 레니처럼 할 수 있을까?

 

 

북유럽 소녀의 시니컬함과 영국 할머니의 다감함이 읽는 내내 내 마음을 톡톡 건드린다.

17년의 삶이 83년의 삶만큼이나 평탄하지 않았던 레니.

83년의 삶 동안 잃은 것도 많았지만 자신을 사랑해 준 사람들 곁에 머물렀던 마고.

두 사람이 나누는 서로의 삶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이 그려낸 그림들이 잔잔하게 각인되는 <레니와 마고의 백 년>

 

 

세대 간의 갈등과 세대 차이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은 현실 속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우정을 쌓고, 서로의 경험을 나누는 <레니와 마고의 백 년>을 읽으며 '우정'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닫힌' 마음으로 살고 있는지.

'열린' 마음으로 살고자 하면서도 속된 말로 스스로 경계를 쌓아 올리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봤던 시간이었다.

 

 

마고와 아서처럼 경계 없이 나이 들고 싶고

레니처럼 거침없지만 배려심 많은 어린 친구를 사귀고 싶다..

 

 

세대 차이 때문에 소통이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 쌓은 벽을 무너뜨리지 않아서 소통이 어려운 것이겠지.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새해를 따뜻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참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R.U.R - Rossum's Universal Robots 로숨 유니버설 로봇
카테르지나 추포바 지음, 김규진 옮김, 카렐 차페크 원작 / 우물이있는집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0년 전 '로봇'이란 단어를 만든 희곡작가가 있다.

카렐 차페크.

그의 희곡이 그래픽노블이 되어 세상에 나왔다

 

책을 읽으면서 차페크에 대해 궁금해진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100년 전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걸까?

<R.U.R>에 담긴 얘기는 인공지능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우리조차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는 지독한 유물론자였고 무신론자였어요.

그는 과학으로 신을 몰아내고 마지막 하나까지 모든 것을 직접 만들려고 했어요.

 

 

로숨 박사는 인간을 만들기 원했다.

스스로 창조자가 되어 과학으로 인간을 만들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이루었다.

10년이 걸리는 일이었다. 인간을 만들어 내는 일은.

 

로숨 박사의 조카는 로숨 박사가 만든 인간의 불필요한 부분을 삭제한 로봇을 대량 생산했다. 단순히 값싼 노동력과 아프지 않을 노동력, 사고가 나도 폐기처분하면 그뿐인 노동력을 위해 로봇을 생산했다.

 

 

 



인간의 노동력이 필요한 많은 부분은 로봇으로 대체되고, 급기야 사고를 줄이기 위해 로봇에게 약간의 고통을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면 스스로를 파괴할까 봐...

 

완벽한 인간이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거요.

 

그러나 곧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될 겁니다. 모두가 살아있는 기계를 만들기 시작할 거예요. 그러면...

인간이 인간을 위해 봉사를 하거나 물질의 노예로 사는 삶은 끝이 날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을 하게 될 겁니다.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며 살아가겠죠.

 

 

로봇으로 세상을 재창조하기를 원한 사람은 로봇이 궂은일을 도맡아 하면 인간은 완벽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쪽에선 로봇으로 세상이 재창조되면 인간은 일자리를 잃고, 일거리가 없는 인간은 삶에서 기쁨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로봇에게 전쟁을 가르친 인간들.

인간으로부터 파괴를 배운 로봇은 인간을 멸종시키기로 결정한다.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이 인간의 명령을 받을 이유는 없으니까...

 



인간에게 배운 방법대로 인간을 멸종시켜가는 로봇.

로숨 박사의 연구 일지를 요구하며 인간을 조여오는 로봇들.

마지막 남은 인간들은 로숨 박사의 일지를 불에 태운다. 그리고 로봇의 침공을 받고 죽는다.

 

모든 인간이 사라진 지구에 혼자 살아남은 인간 알퀴스트.

그에게는 로봇을 만드는 공장을 건설할 임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인간 없이 로봇이 만들어질리가 없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자잘한 일을 도와주는 로봇에게 만족했다.

그러나 점점 인간이 갈망하는 편리함 때문에 로봇을 단순 기계에서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처럼 느끼고, 인간처럼 행동하길 바라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 진화하기를 포기한 채 로봇으로 대체되기를 원하는 거 같다.

스스로 학습해서 점점 인간다와지는 로봇은 결국 인간이 원하는 미래의 인류가 아닐까?

 

<R.U.R>에서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인간처럼 서로를 아끼고, 서로를 위해 희생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커플의 탄생은 또 다른 진화된 인류를 위한 발판인 걸까? 그래서 이 이야기가 더 섬뜩하다.

 

스스로 창조자가 되기를 원했던 단 한 사람의 연구로 인해서 인류가 사라진 세상.

그곳에서 인간처럼 감정을 느끼게 되는 로봇이 탄생한 세상.

그 이후에 탄생한 생명체는 과연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발전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는 지금 세상에서 모두가 한 번쯤 그 이후를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는 이야기 <R.U.R>

인류가 사라진 세상을 마주한 페이지 앞에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건 아마도 이미 그러한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우리 스스로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100년 전 한 편의 희곡에서 탄생한 '로봇'

그것을 실존하게 만든 '과학'은 그저 이야기에 불과했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내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 희곡에서 다룬 인류의 멸망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다.

 

<R.U.R>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그래픽노블은 단순한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기에 수많은 생각거리를 남겨둔다.

2023년 새해 첫 리뷰를 남기고 싶을 만큼 인상적인 이야기였다.

우리가 영화나 소설을 통해 알고 있는 인류와 인공지능의 싸움은 벌써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인간의 안이함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인간이 외면하는 노동의 가치를 잃었을 때 어떤 결과가 올지를 미리 체험할 수 있는 이야기 <R.U.R>

많은 분들이 읽고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만의 꿈들 - 장소, 풍경, 자연과 우리의 관계에 대하여
리베카 솔닛 지음, 양미래 옮김 / 반비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체포 이상의 더 가혹한 대우를 받지 않은 이유는 돈 그리고 땅과 연관되어 있었다.

 

 

나에게 네바다의 이미지는 시체 저장소다.

해리 보슈에서 네바다는 연쇄살인마 '시인'의 시체 저장소였다.

사막의 건조함, 끝도 없이 넓은 광활함, 아무도 찾지 않는 곳.

그곳은 살인마들에게 자신의 죄를 은폐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었다.

이런 네바다는 '눈처럼 새하얀'이라는 의미를 가졌다.

 

 

미국과 영국은 네바다에서 핵실험을 했다.

40년간 한 달에 하나씩 핵폭탄 실험을 했다. 그러기 위해 그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의 땅을 빼앗았다.

그리고 민간인의 출입을 불허했다.

핵폭탄이 터지고, 버섯구름이 솟구치고, 땅은 신음했고, 구름이 퍼져 내려앉은 낙진은 바람 따라 날아갔다.

사람이 덜 사는 곳으로 바람이 불 때마다 폭탄을 터뜨렸다고 하니 아주 계산적이고 치밀한 은폐였다.

 

 

리베카 솔닛의 글이 사람들에게 자꾸 읽히는 이유는 자료들을 쌓아두고 방구석에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직접 그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체험한 것들을 가지고 살아있는 글을 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글은 우리를 한곳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네바다 핵 실험장을 이야기하면서도 솔닛은 그에 걸쳐진 수많은 가지들을 언급한다.

 

 

핵실험을 리허설로 표현한 것은 솔닛의 글이 어떻게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되는지를 잘 표현한 말이다.

'안보'라는 탈을 쓰고 이루어진 모든 행동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보'의 탈을 쓴 '돈'이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서 자행된 일들은 대다수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건 내 생활 반경과 상관이 없는 것이었으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벌어지지 않는 이상 그것은 먼 곳의 일이고, 나에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들로 대부분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를 대신한다.

 

 

핵실험 책임자들이 발표한 성명 내용을 믿는다면, 그들에게는 인간의 죽음을 초래하려는 의도가 없다. 내가 나방의 죽음을 의도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들이 다운윈더를 생각하는 정도 또한 내가 곤충을 생각하는 정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이 광대한 우주에서 나방의 죽음이란 사소한 일인 듯하고, 시위(그날 아침 고속도로를 점령한 사람들의 힘)도 정부 권력에 맞서는 사소한 힘인 듯하다.

 

수년간 핵실험장을 찾은 내 행동이 군비경쟁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나는 지금도 모르고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냥 헛된 것만은 아니다. 내가 핵실험장을 찾은 것은 신념에 바탕을 둔 행위였고, 내가 한 일을 영영 정량화할수 없다 해도 아무튼 해보겠다는 결심의 소산이었다. 또 핵실험장을 찾은 행동이 나 자신에게 지대한 변화를 가져왔으므로 오로지 신념에 바탕을 둔 행위만은 아니었고, 나는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보답받았다.

 

 

 

솔닛의 글을 읽는 건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이다.

 

 

영상을 보는 것처럼 그려지는 유려한 문장들은 생각의 연상작용처럼 이미지를 그려낸다.

네바다 핵실험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는 헨리 소로를 만나고 불꽃 속으로 사라지는 나방의 춤을 보고

카우보이 밥의 모습을 떠올리며 있는지도 몰랐던 쇼쇼니족의 역사를 그려본다.

이런 생각의 타래가 솔닛을 읽는 기쁨이 아닐까?

솔닛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 읽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 모든 타래들을 잘 엮어 '글'이라는 직조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얻은 것이 바로 솔닛의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보답받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직접 발로 뛰어 작성한 기사가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듯이

직접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의 깊이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돌려놓는다.

리베카 솔닛을 통해 바라본 네바다 핵실험장과 바위에 계란 던지듯 그곳을 찾아 자신들의 신념대로 행동한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이 어딘가에서 그 보답을 받으리라 생각한다.

오랜 시간을 걸쳐서 나 같은 사람의 마음속에도 '사실'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안겨준 리베캇 솔닛.

이 솔직하고 옳은 글이 더 많은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워주었으면 좋겠다.

 

 

더 이상 망칠 수 없을 정도로 병들어 가는 지구, 그곳의 유한한 '장소'들이 무지와 욕심들에 사용당하지 않고

대다수 선량한 인간들과 보호받으며 살아야 하는 많은 생명체들에게 되돌아가기를 바란다.

 

 



전쟁과 발견이 서로 교차하지 않는다는 사실, 버넬이 자신이 가진 인류애를 거주민이 아닌 경치를 위해 몽땅 발휘했다는 사실, 요세미티에 관한 대중의 견해도 그와 유사한 방식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 우리가 가진 풍경에 관한 견해와 역사에 관한 견해의 간극속에 수많은 잃어버린 이야기와 파괴된 문화와 지워진 이름이 들어차 있다는 사실은 과연 무얼 의미하는 걸까?

 

 

2부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먼저 아름다운 풍광을 그리게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행되었던 만행을 담아 낸다.

 

 

내게 인디언은 벌거벗고 다니며 사람의 가죽을 벗겨내는 잔인하고 야만적인 종족으로 각인되었다.

그 이유는 어릴때 보았던 서부영화속의 인디언들 때문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자기들의 만행을 어떻게 포장해왔는지는 서부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내게 야만적이고 무서운 종족이었던 인디언들이 얼마나 자연에 동화되어 선하게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면서 그들을 무참하게 살육했던 백인들의 역사가 자신들의 고난으로 포장되어 있는 것에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다.

남의 땅을 짓밟고, 모든 걸 다 차지하고서 원래 그 땅의 주인들을 한 곳에 몰아 넣어 자치구와 보존구역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만든 백인들의 찬란하도록 잔인한 역사.

나는 솔닛이 그러한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했다.

솔닛 역시 그러한 백인중에 한 명 이니까.





경제 활동(주로 금 채굴)에 필요한 땅을 개척하고 있던 그들 입장에서 걸림돌이 되는 원주민들은, 말하자면 금이 가득 찬 화석 강바닥에서 흙을 들어내듯 더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치워버려야 하는 존재였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요세미티의 이면에는 금을 캐기 위해 자행됐던 일련의 일들에서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구제책이었다.

대자연의 일부분을 국립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보호하며 그 풍광을 널리 알리는 대신 나머지 자연들은 파헤치고, 긁어 모으고, 파괴해버렸다. 그것에 대한 속죄가 국립공원이었다.

 




요세미티라는 이름은 아이러니하게도 백인이 붙이 이름이다. 이 요세미티라는 이름에는 '살인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정복자들이 알고 있었던 '회색곰' 은 "방종하고 약탈을 일삼은 성격" 에서 유래되었다. 원주민들에게 '회색곰'은 이런 뜻이었다

그리고 더 정확한 뜻은 "살인자" 였다.

본인들이 정한 이름의 정확한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채 붙여버린 이름 요세미티.

그러나 그 어디에도 요세미티의 진정한 뜻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그저 '회색곰'이라는 원주민어로만 알고 있을 뿐이다.

 

 

어떤 장소를 알아간다는 것은 친구나 연인을 알아가듯 그 장소와 친밀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장소를 더 잘 알아간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방식으로 참신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사그라들지 않는 심오하고도 심란한 방식으로 낯설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에서 인간은 제외되어야 할까?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진정 청정한 자연인걸까?

인간의 인위적인 행동이 자연을 자연그대로 두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수 많은 동물들과 식물들이 자연을 이루는 하나의 개체라면 동물에 속한 인간도 자연의 개체일 것이다.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가장 잘 알았던 원주민 인디언들.

만약 이주민들이 인디언들과 공존했다면 미국은 지금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보호'라는 이름하에 관리되고 있는 자연에도 인간의 손길이 필요하다.

그것은 관상용의 손길이 아니라 자연친화적 손길을 말한다. 그것을 꿰뚫어 보는 솔닛의 시선이 그래서 반갑다.

 

 

네바다 핵실험장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을 통해 솔닛은 세상을 움직이는 작은 발걸음을 이야기했다.

소소해보이는 발걸음들, 신념을 가진 발걸음들, 의지를 가진 발걸음들이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열심히 한 결과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서서히 많은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 놓으려 하고 있다. 수 많은 무심한 눈들의 촛점을 관심으로 돌리고, 듣지 않는 귀들을 열리게 하고, 침묵하는 입들을 열게 만든다.

 

 

<야만의 꿈들>은 솔닛의 글쓰기 출발점이다.

20년 전에 쓰인 이 글은 시간의 차이를 느낄 수 없고, 오히려 더 신선하게 다가온다.

불공정과 불합리를 향한 솔닛의 글은 수 많은 이야기의 가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더 친근하고 더 뿌리 깊게 각인된다.

나 역시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거 같았던 네바다 핵실험장과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이야기를 읽으며 결국 나 역시도 이곳들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네바다 핵실험장에서 뻗어나간 구름연기가 우리에게 비가 되어 내렸을 수도 있고,

요세미티 정복의 역사가 우리가 치뤄야 했던 고난의 역사와 닮아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그 역사적 전쟁에서 이겼고, 우리의 문화를 지켜가고 있지만 수 많은 잔재들도 함께 지고 가고 있다.

내가 가졌던 인디언 원주민들에 대한 편견들 역시 요세미티가 가진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이렇게 생각하니 세상 모든 것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고, 무엇 하나도 사소한 것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나비효과처럼

우리는 서로의 날개짓에 영향을 받고 살고 있다.

그러니 나와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외면하고, 관심 없었던 것들에 조금씩 시간을 들여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고, 입을 열어야겠다.

 

 

솔닛이 솔닛한 <야만의 꿈들>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이, 자연이, 장소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라는 생각을 가진 분들에게 읽어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내가 알지 못했다고 해서 이 세상에 나와 상관없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 - 나이의 편견을 깨고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리사 콩던 지음, 박찬원 옮김 / 아트북스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해가 갈수록 나는 더 용감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자유로워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내게는, 대단한 만족을 주며 많은 것에서 해방되는 과정이다. 나는 예전보다 타인에게 더 친절해졌고,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예전보다 훨씬 덜 신경쓴다.

 

 

나이가 들면 자연 사회의 여러 곳에서 문이 닫힌다.

특히 여성들에겐 그 문이 더 가혹하다.

그러나.

여기 나이가 들수록 더 멋진 인생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롤 모델로 삼고 싶은 여성들이 이 책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일찍 성공한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모두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나이에 '시작'이라는 걸 해서 자신의 인생을 알차게 꾸려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책장을 넘길 때마다 비어버린 자존감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당신의 나이가 몇 살이든, 젠더가 무엇이든 이 책에서 용감하고 온전하게 살 영감을 얻기를, 당신의 경험을 가장 강력한 도구로 삼아 당신 최고의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이 책의 작가는 서른에 드로잉을 시작해서 마흔네 살에 첫 책을 출간하고 마흔다섯 살에 결혼했다. 나이든다는 것에 대한 에세이를 블로그에 남기면서 그 글에 대한 독자들의 놀라운 반응에 힘입어 뒤늦게 꽃을 피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이 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베라 왕은 최연소 에디터로 15년을 보그에서 일했지만 편집장이 되지 못하자 사표를 내고 랄프 로렌의 디자인 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몇 년 후, 자신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직접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베라 왕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60대에 들어서 지금도 베라 왕은 자신의 손길이 모든 제품에 스며들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다.

 

 

중년에 일어나는 이 일을 중년의 '위기'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위기가 아니다.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일이다. 즉, 자신이 '살아야 하는' 삶이 아닌, 자신이 살고 싶었던 삶에 간절히 이끌리는 시간인 것이다.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자신을 놓아주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껴안기 위해 우주의 도전을 받는 시간이다.

브레네 브라운

 

 

40대에 마라톤을 시작한 크리스티 털링턴 번스.

49살에 서핑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불편한 몸으로 도전한 캐럴라인 폴.

50이 넘은 나이에 첫 그래픽 노블을 출간한 제니퍼 헤이든.

인상주의 화가이자 미술교사이며 패셔니스타이자 '속눈썹 카바레' 공연의 연기자인 95살의 일로나 로이스 스미스킨.

76살에 처음 붓을 든 그랜마 모지스.

 

이분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축 처졌던 어깨에 힘이 돌아오는 기분이다.

점점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불안하고, 이렇게 맥없이 살아도 되는 건지 고민이었던 시간이었는데 속이 뻥 뚫리는 거 같다.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롤 모델들이 이 책에 모여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다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옛날과 달리 수명이 길어졌고, 사람들은 나이보다 젊게 살고 있다.

그리고 여성들에게는 가사를 절약하는 문명의 도움도 많다.

그 시간에 무언가를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가정을 이루느라 포기했던 꿈이 있다면 그걸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지금이다.

 

젊었을 때보다 배의 노력과 시간이 들겠지만 그것이 바로 나이듬의 무기다.

노력을 들일 시간이 젊음보다 더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이 무기가 될 수 있다.

나는 최근에 그림 그리는 취미를 가졌는데 똥 손의 그림이지만 용감하게 공개를 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칭찬'을 해줘서 내가 그림을 시작한 게 잘한 거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을 읽으며 지금 수많은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졌다.

내가 그린 그림에 잘 그렸다고 아낌없는 칭찬을 주신 분들에게 받은 '기쁨과 용기'를 나눠주고 싶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일단 '시작하자!'라고.

몇 년 뒤 우리가 무엇이 되어 있을지는 내가 지금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달렸으니까.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분들.

무얼 시작하기에 터무니없이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분들.

이 나이에 뭘 할 수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들.

나이만 먹었지 쓸모가 없어.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

이 책의 주인공들을 만나보세요.

당신도 기운이 생길 겁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