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오피셜 뱅크시
알레산드라 마탄자 지음, 정다은 옮김 / Pensel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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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그림을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 날아가는 풍선은 소녀가 놓친 걸까요? 아니면 잡으려는 걸까요?

세상은 생각처럼 보일 뿐입니다.

정답은 없죠. 저 그림의 의미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겁니다.

뱅크시는 그 어느 것도 규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에 사람들이 공감하고 열광하는 거 아닐까요?

 

 

이름만 알았던 뱅크시를 책으로 만났습니다.

철저한 익명꾼 뱅크시.

마탄자를 통해 뱅크시의 예술 세계를 따라갑니다.

 

뱅크시의 작품엔 쥐와 원숭이가 많이 등장합니다.

쥐는 세상 어디에나 있고, 재빠르며, 친숙합니다.

그리고 구석구석 안 다니는 곳이 없죠.

아마도 제 생각엔 뱅크시가 세상 구석구석 안 다니는 곳이 없고, 어디에나 있으며, 아주 재빠르다는 걸 은연중 표현한 거 같습니다.




경찰이 공권력을 대표하는 집단이라면 저 손가락의 의미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니들이 아무리 떠들어대고, 뭘 해봤자다. '이거나 먹어라!"

우리의 현재에 꼭 맞는 작품 같다고 전 생각했습니다.

 

 

뱅크시는 한 사람일 수도 하나의 단체일 수도 있습니다.

뱅크시의 정체는 이 글을 쓴 마탄자도 모릅니다.

뱅크시와는 메일로 인터뷰를 하고 궁금한 걸 물어보고 답을 받죠.

마탄자 역시 다각도로 뱅크시를 연구하고 있지만 정체를 알지는 못합니다.

 

뱅크시의 작품을 책으로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예상치 못한 작품들과 마주합니다.

격정적이고, 파괴적인 세상의 단면을 보여주지만 그곳엔 뱅크시가 숨겨 놓은 위트와 유머와 풍자가 담겼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있자면 심각해지다가도 웃음이 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군인에게 몸수색을 당하는 소녀의 그림 다음에 반대로 소녀에게 몸수색을 당하는 군인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게 바로 역지사지일까요?

그림이지만 속이 다 후련합니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인생을 즐겨라





최근 죽음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뱅크시 역시 죽음에 대하 한 마디 합니다.

 

죽음은 눈 깜짝할 사이에 모두에게 다가온다.

그러니 인생은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한다.

 

사신의 얼굴이 스마일입니다.

왠지 친숙하니 덜 무섭네요.

죽음이 저렇게 찾아와 준다면 고통스럽지 않게, 가뿐한 마음으로 따라나설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15분 정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앤디 워홀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뱅크시 버전을 들어보실래요?

 

 

미래에는 누구나 너무 유명해지는 바람에 다들 15분 만이라도 익명으로 지내길 원할 것 같거든요.

 

 

 

 

여러분은 앤디 워홀과 뱅크시 중 누구에게 한 표를 주실 건가요?

 

복면을 쓴 사람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던질 태세를 합니다.

이 문장을 읽고 떠오르는 손에 든 물건의 이미지는 대부분 위험한 무기일겁니다.

화염병, 수류탄, 돌멩이, 칼 등등 모두 누군가를 해칠 수 있는 물건들이겠죠.

사람을 상하게 하고, 세상에 위험한 파편을 남길 어떤 물건.

뱅크시의 복면 사내는 꽃다발을 들고 있습니다.





이런 그림 앞에서 누군들 미소 짓지 않을 수 있을까요.

 

뱅크시의 그림엔 세상을 향한 울분과 동시에 희망이 있습니다.

그 희망이란 누군가의 작은 실천이나 행동으로 바뀔 수 있는 상황들입니다.

모두가 꽃다발을 화염병이나 수류탄 대신 던진다면 그 꽃다발을 맞은 상대는 아마도 내내 아플 겁니다.

보이지 않는 비수로 인해 상처가 오래도록 남아 있을 테니까요...

 

그라피티

거리의 예술가

익명의 예술가

뱅크시

 

그가 2022년 대한민국의 현실을 표현한다면 어떤 작품을 남길까요?

저는 <언오피셜 뱅크시>를 보는 내내 이 생각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 담벼락에 뱅크시가 작품을 남겼다면 그건 내 것일까요?

뱅크시의 작품이 담긴 담벼락을 떼어내 팔 수 있을까요?

지저분하게 남의 집 담벼락에 누가 이런 걸 그렸어? 하고 그 그림을 지워버렸다면?

 

그 어떤 답도 정답이라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건 그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의 생각일 테니까요.

뱅크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걸 겁니다.

 

세상은.

세상의 모든 일은.

그것을 대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판단과 결단으로 정해지는 법이죠..

 

뱅크시와 만나는 동안 세상이 좀 더 살만해졌습니다.

그의 작품과 그의 의도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저처럼 살만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은 분명 더 좋아질 테니까요.

 

여러분도 틀에서 벗어난 생각을 위해

이 겨울 뱅크시를 함께 만나 보시면 어떨까요?

아마도 저처럼 살만한 세상과 불온한 세상 사이에 놓인 뱅크시의 재치와 풍자와 유머를 맘껏 누리실 수 있을 겁니다.

 

답답할 땐 뱅크시!

<언오피셜 뱅크시> 곁에 두고 자꾸 펼쳐 볼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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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시대정신이 되다 - 낯선 세계를 상상하고 현실의 답을 찾는 문학의 힘 서가명강 시리즈 27
이동신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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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는 필요충분조건으로 '낯섦'과 '인지'의 상호작용을 가진 문학 장르다. - 23p

어떤 새로운 것이 등장했을 때 그 낯섦을 그대로 인정하는 것과 그것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인식의 틀로 재조정하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여전히 그 인지적 낯섦을 유지하는 두 번의 작업을 하는 장르가 바로 SF라 할 수 있다. - 26p

 

 

서울대 안 가도 들을 수 있는 서울대 강의 서가명강 27번째 이야기는 SF에 대한 강의다.

이동신 교수의 명쾌하고 즐거운 이야기는 SF를 판타지와 같은 부류로 생각하고 있었던 내게 제대로 된 분류법을 알려주었다.

 

SF 소설을 좋아한다.

가장 두껍고, 엄청난 세계관을 가졌으면서도 때론 친숙하고, 때론 이해하기 힘든 세상을 만들어 낸 책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단연코 댄 시먼스의 <일리움>과 <올림포스>를 말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며 SF의 세계를 맘껏 누렸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 작가들의 SF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을 읽으면서 번역서들에서 느꼈던 차가운 미래가 따뜻한 미래로 전환되는 기쁨을 누렸다.

장르문학 불모지였던 한국문학에도 몇 년 새에 장르문학이 빠르게 성장하고 이제 K-장르소설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SF는 아직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최근에 읽은 SF 소설들로 인해 우리에겐 우리 정서에 맞는 SF 소설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 중이었다.

그 와중에 <SF, 시대정신이 되다>를 읽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가끔 내 궁금증을 채워주거나, 내 지식을 깊게 채워주는 책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이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을 읽는 건 낯선 단어들을 만나는 일이기도 했다.

노붐, 인지적 낯섦, 외삽, 사변 소설

다 처음 들어 보는 말이다. 책을 시작하기 전에 이 단어들에 대한 설명이 있었지만 책을 읽으면서야 깨닫게 되었다.

SF의 길은 쉬운 듯 어렵고, 어려운 듯 쉽다.

 

공상과학소설이라고 알려진 SF 소설들.

타임머신과 우주선과 다중우주와 외계인과 온갖 시간대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장르.

문학에 속해 있지만 문학 대접을 받지 못했던 SF가 이제야 조금씩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시간을 뛰어넘고, 공간을 확장하며 답을 찾는 매혹의 세계

 

참 적절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SF 소설을 읽으면 현실에 있지 않고, 공간이란 개념이 우주 어딘가로 뻗어가지만 그 세계에서 인간다운 것을 찾으려는 점은 일반 소설들과 다를 바가 없다.

SF는 '공상' 과 같은 뜻으로 떠올렸지만 이젠 그 공상들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로봇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담겨 있고, 홀로그램 역시 사용되고 있는 영역이며 우주선도 이미 저 광활한 우주를 날고 있음이다.

그러고 보면 스타워즈의 광선총이 어딘가에서 시험 사용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타임머신도 이미 개발되어 있다는 말도 나오는 정도이니 SF는 우리 현실에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다.

 

가치 중립적이라는 사실에서 가치를 끌어내는 작업이 바로 SF가 해야 할 일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는 작가가 많이 나와서 신기했다.

그러다 알게 됐다 내가 SF 소설을 많이 읽었거나 좋아한다는걸.

그러니 아는 작가가 많고, 읽었거나 본 책과 영화가 많은 것이었다!

 

SF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서 우리나라 SF 소설의 빛나는 앞날이 보였다.

최근에 읽은 <천 개의 파랑> , <테스터>, <굿바이 욘더>, <막 너머에 신이 있다면>,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붉은 실의 아이들>, <너의 다정한 우주로 부터>등 이 SF 소설들에게서 얻은 미래의 시간과 공간, 인공지능과 인간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보았기 때문이다.

책에선 번역서들 소개가 많았는데 교수님께서 앞으로 SF에 대한 강의를 하시려면 우리 작가들의 SF 소설을 많이 읽어보시고 강의에서 언급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SF 소설은 낯선 세계를 그리지만 그곳에서 현실의 문제를 들여다 보고, 해결해가는 힘을 기르게 된다.

외면 받는 현실문제를 SF 소설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기에 최근들어 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급부상 하는 게 아닐까?

 

SF는 우리의 미래를 다양하게 꿈꾸게 만드는 문학이다.

어떤 미래로 나아갈지에 대한 선택지를 주는 문학이다.

그러니 앞으로 SF를 덕후들만 좋아하는 장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SF는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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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물었다 - 소중한 것들을 지키고 있느냐고
아나 아란치스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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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을 이야기하자면 죽음은 삶으로 이어지는 다리이다.

우리는 다수가 믿고 있는 '정상적인 것'을 뒤집어야만 한다.

 

 

완화의료 전문가 아나 클라우디아.

조금 생소한 직업이다. 그러나 이런 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몇 년 전 나는 호스피스 병동에 갔었다. 자리가 있는지 알아볼 겸, 그곳이 어떤 곳인지 미리 볼 겸.

죽음을 앞에 둔 환자들이 머무는 곳. 호스피스 병동.

입구에서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들어가면 다시 나올 수 없을 거 같았던 곳이었다.

두려운 마음이 제일 컸다. 이곳에서 보호자로서 환자와 함께 지낼 생각에..

병동은 내 예상보다 따뜻했던 느낌으로 기억된다. 일반 병원과 다를 게 별로 없게 느껴졌을 만큼.

 

아마도 그때부터 죽음에 미리 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죽음은 예고 없이 아무 때나 약속 없이 자기 마음대로 찾아오니까.

나이가 들어서 병이 생겨서 죽음에 이른다는 건 어쩜 행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불시에 사고로 갑작스럽게 간다면 아무런 준비를 할 수 없을 테니...

그 해는 죽음이란 단어가 내 어깨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어느 나이대가 되면 죽음과 친해지게 된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죽음에 대한 부고장은 더 이상 슬픔보다는 덤덤함으로 남는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준비된 죽음을 보면 나도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다들 죽음에 대한 대화는 가급적 피하려고 하니까.

 

<죽음이 물었다>

첫 페이지 추천사부터 마음이 끌리는 책이었다.

먼 나라 브라질의 죽음 역시 우리와 다르지 않으니까.

저자 역시 대학을 다니는 동안 고통스러운 환자들을 보면서 힘들어했다.

말기 환자들에게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말을 들었고, 자신이 나중에 해야 할 말인 걸 깨달았다.

그렇게 그녀가 찾은 자신의 진로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을 방치하지 않는 일이었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이 그녀의 길에 확신을 주었다.

 

사람들은 결국 살아온 대로 죽는다. 의미 있는 삶을 살지 못했다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이할 기회를 가질 가망도 없다.

 

 

우리 아빠는 중환자실에서 요양원으로 옮기는 도중에 돌아가셨다.

이미 의식도 없었고, 자가 호흡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게 없었다. 우리의 선택지는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기계로 연명하는 삶을 택할 건지 이동 중에 죽을 수 있음을 알지만 이동할 것인지.

아빠의 죽음 어디에도 '의미 있는 죽음'은 없었다.

그리고 우리는 의료진 그 누구에게도 '위로' 같은 건 받지 못했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할 수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에게 받았던 그 차가운 느낌.

설명해도 당신들은 몰라.

당신 아버지는 살 수 없어. 그래도 우리는 저 호흡기를 우리 손으로 뗄 수 없어.

이미 죽은 상태였지만 기계 호흡을 멈출 수는 없어. 이 병원에서 나가는 방법은 다른 곳으로 옮기는 거야.(이것도 간호사가 몰래 얘기해 준거였다.)

머리는 이해하는데 가슴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냉정해져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가족들을 생각하는 의사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내가 만난 건 아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에 위로받은 느낌이다.

죽음은 아무리 준비해도 늘 부족하다. 마주할 두려움 앞에서 강건해지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까.

그걸 지켜보는 남겨지는 사람들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완화의료는 그 과정을 환자와 가족이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이제 '어떻게 죽음을 준비하냐'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 만약 죽음이 찾아온다면 나는 나를 위해서도, 그리고 남겨질 사람들을 위해서도 준비를 하고 싶다.

서로 잘 보내주는 시간을 갖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남겨지는 상처는 그 격이 다르다.

어쩜 완화의료는 환자 보다는 남겨질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 자고 일어나면 죽음과 가까워진다.

이 사실을 새기며 산다면 지금보다는 조금 더 현명하게 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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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 - 작가정신 35주년 기념 에세이
김사과 외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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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23인의 작가들이 '소설'에 대해서 에세이 한 편씩을 내놓았다.

작가정신 출판사 35주년 기념 에세이 집으로 <소설엔 마진이 얼마나 남을까>는 작가 오한기의 에세이 제목과 같다.

 

일단 다시 쓸 수 있게 된 점. 오늘도 썼다는 사실, 오늘도 쓸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하다는 사실. 그 뜻깊은 기록이어서 의미 깊은 작업 일지가 되는 것이다.

 

 

'소설'을 쓰는 작가들에겐 화수분 같은 이야기의 원천이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매일 같이 쓰고 또 써도 마르지 않는 이야기들이 그들에게서 넘칠 거라고 생각했다.

그저 책을 읽고 그 느낌을 남기려고 리뷰를 쓰는 나와는 차원이 다른 '소설가'라는 직업.

그러나 이 에세이 속의 작가들은 누구라도 전혀 쉽지 않았다.

 

한 줄 써놓고 멍 때리고,

쓰긴 쓰는데 뭔 소린지 모르겠고,

써야 하는데, 써야지, 쓸 거야를 외치지만 고요한 키보드 세상.

쥐어짜듯이 글을 짜내는 작업자로서의 '소설'

소설가란 타이틀을 땄지만 그것은 어떻게든 이어가야만 하는 무게로서 어깨를 쳐지게 하는 힘을 가졌다.

때론 남들에게 했던 충고가 내게로 돌아올 때 느껴지는 당혹감들

매일 소설을 써야 한다는 강박이 그들의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멋있어 보이는데

마치 백조처럼 쉴 새 없이 손가락을 두드리며 생각을 찍어내야 하는 소설가라는 직업.

 




결국 소설이 써지지 않을 때 할 수 있는 일이란 소설을 쓰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뭘 써야 한다는 거지? 이것이 글쓰기의 난제이자 괴로움의 원천이다.

 

 

23명의 작가들은 익숙한 이름보다 낯선 이름이 더 많다.

그래서 새롭다.

같은 주제인데 다 다른 글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어떤 글에서는 고뇌가, 어떤 글에서는 위트가, 어떤 글에서는 자유로움이, 어떤 글에서는 성실함이 풍겨온다.

 

읽고 맘에 드는 글을 만나면 앞으로 돌아가 작가의 이름과 간략한 프로필을 보고 기억해둔다.

아는 작가의 이름 앞에서는 역시!

새로운 작가의 이름 앞에서는 대표작을 읽어봐야지! 다짐한다.

 

제목과 작가의 이름과 간략한 이력들 사이로 사진이 들어있다.

작가의 작업실이기도 하고, 풍경이기도 하고, 무언가를 생각나게 하는 찰나이기도 하다.

23색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다르게 말하지만 결국 하나를 말한다.

 

23인의 '소설'에 대한 끄적임을 세 마디로 줄이면 바로 이렇다.

 

 

닥치고, 써라. 당장!

 

매일 글로 시작하고 글로 마무리하는 하루.

누군가에겐 꿈꾸는 일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꿈꾸던 일이었지만 버거운 일이 되어버리기도 한 '소설'

그들의 고뇌가 있기에 나 같은 독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섭렵하며 꿈꿀 수 있다.

이 한 권의 책이 소중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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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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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둘, 셋, 넷, 다섯 구의 시체. 내 무의식은 계속 그 수를 세면서 진실에 쌓인 더께를 긁어내는 미술품 복원 전문가처럼 우리의 우정을 긁어댔다.

 

 

10년 지기 친구.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 에밀리와 크리스틴.

두 사람의 여행엔 스릴과 즐거움이 있다. 물론 위험도 있다. 그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방법이 좀 과격하긴 하지만.

 

1년 전 우리는 여행을 떠났다.

매년 우리는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의 자유를 만끽했다.

그해도 그런 여행이었다. 내가 성폭행을 당하기 전까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크리스틴이 나를 구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도와 시체를 처리했다.

나는 밀워키에 살고 크리스틴은 회사일로 호주에 있다. 그녀는 매일 나에게 전화를 걸어주고, 음식을 배달시켜주고, 몇 시간이고 영상통화를 하면서 나를 돌봐줬다. 패닉에 빠졌던 나는 점차 일상으로 회복하고 남자친구도 생겼다.

 

첫 번째 살인이 벌어지고 1년 뒤 우리는 칠레로 여행을 떠난다.

칠레 여행에서 나는 남자친구 에런에 대한 얘기를 크리스틴에게 한다.

그리고 일이 벌어졌다.

또... 이번엔 크리스틴에게 그 일이 생겼다...

나는 이번에도 시체 처리하는 걸 도왔다.

아니, 이번에는 내가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했다. 아니 처리했나?, 이번에도 크리스틴이 하라는 대로 한 게 아닐까?

나는 더 이상 이런 비밀을 지키기 힘들어진다. 에런에게 더 이상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크리스틴이 이번엔 세계여행을 하자고 한다.

직장도 때려치우고 모아 놓은 돈으로 세계여행이라니!!!

 

미쳤니? 너랑 또 가게?

 

하지만 이번엔 반대다.

지난번엔 내가 공격을 당했기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번엔 크리스틴이 공격을 당한 거다.

내가 힘들었을 때 크리스틴이 나에게 버팀목이 되어 주었으니 나도 그래야 하는데...

크리스틴은 정말!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 거 같다!!!

나는 그녀가 무섭다. 그녀와 거리를 두어야겠다. 언제 시체가 발견될지도 모르는데 어쩜 저렇게 태연할 수가 있지?

 

그러던 어느 날

크리스틴이 찾아왔다. 내가 걱정돼서 직장도 때려치우고 고향으로 돌아왔단다!

날 돌봐주려고 왔니? 나를 감시하러 온 게 아니고??

 

나는 크리스틴이 무섭다.

크리스틴은 더 이상 내가 아는 그 크리스틴이 아닌 거 같다...

그런데 지금은 크리스틴이 문제가 아니다.

 

 

시체가 발견됐다!!

 

게다가 그 남자는 가족이 있었다.

그 가족은 부자였고, 목격자에게 거대한 상금도 걸어놨다.

나는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다. 모든 걸 밝히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

 

정당방위를 가장한 살인.

보통은 남자에 의해 여자가 희생되는 이야기들을 읽으며 무감각해졌었는데, 여자들에 의해 남자가 희생되는 이야기가 아무렇지 않게 흡수되는 걸 느끼면서 이런 이야기를 갈망하지 않았나 싶다.

 

에밀리와 크리스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에밀리의 입장에서 보면 크리스틴은 살인자에 가스라이팅을 일삼고 집착이 강하다.

에밀리의 남친들을 모두 끊어냈고, 에밀리를 독차지했다.

알고 보니 크리스틴은 전적이 있었다. 어릴 때 집에 불이 나서 부모님이 화재로 돌아가셨다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또 하나 나에게 감쪽같이 숨긴 크리스틴의 절친 제이미.

내가 제이미의 도플갱어였다면? 제이미는 자살한 게 맞는 걸까? 아니면 크리스틴이?

수많은 의문점들이 크리스틴을 범죄자로 몰고 간다.

 

크리스틴의 말을 듣고 보니 또 다른 목소리가 그 부분은 거짓말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건 진짜 기억이 아니었다. 내가 얼기설기 이어 붙인 편집본이었다. 두뇌는 그런 것이 가능하다. 결말을 다시 쓸 수 있다. 자기 보존, 자신을 옳은 존재로 만드는 데 집착하는 우스운 기관이니까.

 

 

이야기를 읽다 보면 헷갈린다.

소시오패스에 가스라이팅에 살인자 기질이 농후한 크리스틴이 어느 한순간 전혀 무고한 사람처럼 보인다.

이 모든 걸 크리스틴에게 덮어 씌우려고 작정하고 연약한 척하는 에밀리의 모습은 진짜인가?

친구는 유유상종이라는데... 둘 다 같은 과가 아닐까?

 

가스라이팅 당했던 사람이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을까?

마지막 줄을 읽는 데 소름이 돋는다.

이게 뭐지?

왜 이렇게 끝나지?

상황 종료된 거 아니었니?

다시 시작인 거야?

이번엔 파트너를 바꿔서???

 

안드레아 바츠.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를 폭풍처럼 몰아간다.

명백하게 한 사람을 타깃으로 몰아넣고 의심하지 못하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또 다른 사람을 의심하게 만드는 솜씨가 좋다.

 

읽으면서 대입해 봤다.

나는 크리스틴과인가?

아니면 에밀리과인가?

 

당신의 성향을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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