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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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가죽 위로 피가 맺힌다. 그가 내게서 멀어지고 내가 나 자신으로 되돌아올수록 우리는 각자 스스로를 되찾는다. 그는 나 없이, 나는 그 없이, 서로의 몸 안에 잃어버린 것을 견디며 살아남는다. 남겨진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인류학자 나스타샤 마르탱은 캄차카 화산 지대에서 곰의 습격을 받는다.

그녀는 용감하게 싸웠다.

그녀의 표현을 빌리자면 곰은 그녀를 먹지 않고 떠났다.

얼굴 전체와 오른쪽 다리가 찢기고 턱 일부는 곰의 입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무참한 공격에서 살아남은 나스타샤는 여러 차례 수술을 받지만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었다.

이 책은 살아남은 그녀의 기록이다.

변한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에서 탈피하고자 그녀는 다시 캄차카로 돌아간다.


남자들과 여자들, 그리고 어린 여자애들 앞에서 이토록 속수무책으로, 이렇게까지 무기력했던 적이 없는데. 알몸으로 묶인 채 누군가가 주는 밥을 먹으며 나는 인간성의 경계에,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의 끄트머리에 선다.



나라면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까?

나라면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질문했다.

그녀의 고통이 전혀 짐작이 되지 않았기에.

손끝에 조그만 가시만 박혀도 아픔을 못 참는데 곰의 이빨에 난도질당한 채로 살아남은 사람의 그 고통은 육체적 고통보다 정신적 고통이 더 컸으리라 짐작만 할 뿐이다....





너는 이제 미에드카(에벤어로 곰과의 조우에서 살아남은, 곰의 표식을 받은 사람을 지칭. 이 이름을 가진 자가 이제 반은 인간이고 반은 곰이라는 생각을 나타낸다)야,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사는 자.



그녀는 곰과 자신이 동일시되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곰에 속해있고, 곰도 자신에 속해있다는..

꿈에서 그녀는 곰의 공격을 받던 순간을 계속 마주한다.

나라면 미쳐버렸을 거 같다.

그런 장면을 꿈꾸는 것도 무서울 텐데 그건 꿈이 아니라 진짜 일어났던 일을 복기하는 거였으니까...

친구들의 동정 어린 시선을 피해 자신을 되찾기 위해 돌아온 캄차카에서 일부의 사람들은 그녀를 미에드카라며 꺼린다.

곰이 그녀를 계속 따라다닐 거고 그래서 그녀의 모든것이 불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그녀를 더 힘들게 한다.




나는 우리의 삶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고 얇지만 단단한 내공이 담긴 책을 읽으며 전혀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다.

자연에 동화된 사람들은 문명인이라 자부하는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아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이야기가 소설이 아니기때문에 더 생생했다.

소설이라면 정말 맘 편하게 읽을 수 있었을테고 주인공의 용기를 맘껏 칭찬할 수 있었겠지만 이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이야기였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이 고통이었고, 용기였으며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나는 태곳적 만남을 따라 끝까지 갔지만 다시 돌아왔고 여전히 살아 있다. 이종교배가 일어났지만 나는 여전히 나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를 닮은 무엇인가에 애니미즘 가면의 특징을 더한 채로 나의 안과 밖은 뒤집혔다.



나는 다짐한다. 언젠가 이 순간을 모두 기록할 거라고.



이 책이 그녀에게 위안을 주었을까?

그랬으리라 믿는다.

자신의 고통과 생각과 마음과 감정을 글로 옮기는 동안 그리고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그녀가 느꼈을 모든것들을 조금씩 나눠가졌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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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소굴 세계문학전집 4
프란츠 카프카 지음, 강두식 옮김 / 빛소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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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길, 즉 마을의 큰길은 성이 있는 산으로 통하지 않았다. 단지 성이 있는 산에 가까이 접근하는 듯하면서, 사실인즉 짓궂게 구부러지곤 했다. 하여튼 성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렇다고 도무지 가까워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중에는 이 길이 틀림없이 성으로 구부러져 들어갈 것이라고 K는 끊임없이 기대했다. 이런 희망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오히려 너무나 지쳤기 때문에 이 길을 단념해 버릴 수 없었다.



이 끝없이 계속되는 <성>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도대체 <성>은 뭘까?

눈에 멀찍이 보이지만 절대 다가갈 수 없는 곳.

성을 향해 걷지만 가도 가도 닿지 않는 곳.

그 성으로 가는 길은 왜 그리 어려운 걸까?

토지측량사 K

성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코 성에 가지 못하는 K.

<성>을 읽으며 카프카가 말한 <성>은 우리의 꿈, 이상, 허상이 아닐까 생각했다.

손에 잡힐 듯 안 잡히는 것.

그것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방해자들이 넘치고 시기와 질투가 따라온다.

그것을 견디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결국은 닿지 못하는 인간의 운명을 카프카는 몽환적인 모호함으로 말했을지도 모르다.

나의 이상, 나의 꿈들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있지만 그것은 결코 완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하는 허상일 뿐...





실체 없는 위용을 자랑하는 <성>

그것은 바로 우리가 열심히 쌓아 올리고 있는 온라인의 공중누각이 아닐까?

어느 날 갑자기 데이터에 문제가 생기면 몇 년을 꼬박꼬박 기록해 놓은 것들이 싸그리 사라지는 그런 신기루 같은 것.

마을 사람의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지만 결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그 신기루.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닌 세상.

그래서 항상 자고 일어나면 달라지는 한계치에 도달하지 못하고 계속 끌려가는 이 세상.

카프카의 세상을 몇 번 돌아봤지만 손에 잡힐 듯 명확한 것은 없었다.

그건 우리가 열심히 시간을 들여 꾸며대는 이 디지털 세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성>이라는 허울 좋은 공중누각을 향해 끝없이 걷고 걷는 디지털 유목민들.

현실에선 아무것도 없지만 그 세상에서는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그곳.

이름 없는 K는 자기가 토지측량사라 우기고 그걸 또 <성>에서는 맞다고 해준다.

현실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세상에서는 내가 원하는 가면을 쓰고 내가 원하는 누군가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아는 거 같지만 전혀 알 수 없는 가면 쓴 사람들과 가면 쓴 나는 그렇게 <성>을 향해 나아간다.




"당신은 바보 아니면 어린애, 그것도 아니면 지독하게 교활하고 위험한 인간일 거예요."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인간의 마음들.

아마도 카프카는 도달하지 못할 허상을 좇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한 거 같다.

카프카 자신도 밖에서는 '나 이런 사람이오'라고 말하지만 정작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을 마주하며 스스로를 쥐어뜯은 게 아닐까.

처음에는 <성>이 어떤 모습으로 K를 받아들일까 궁금했지만 끝으로 갈수록 <성>은 도달할 수 없는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좇다 늙어버린 수많은 영혼들이 머무는 곳이 바로 카프카의 <성>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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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넘 숲
엘리너 캐턴 지음, 권진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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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계속 무표정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크게 안도했다. 그러니까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라도 뭔가 숨기고 있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미라도 버넘 숲을 속이고 있었다. 그건 쓸모 있지.



뉴질랜드 배경의 영미소설은 낯선 단어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생소한 삶도.

그곳에 난입(?) 한 미국인 억만장자는 비현실적이다.

표지의 저 손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산사태로 도로가 묻힌 코로와이 고개.

그곳엔 기사 작위를 받게 되는 손다이크의 주인 오언 다비시의 집에 있다.

그곳을 사려하는 미국인 억만장자 르모인.

그리고 그곳에 게릴라 가드닝을 꾸미려는 <버넘 숲>의 미라.



언제부터 버넘 숲이 사업체였죠?



버려진 땅에 작물을 가꿔서 그곳에서 나는 작물로 자급자족을 꿈꾸는 <버넘 숲>

이 비영리 단체를 자신의 은폐물로 써먹을 궁리를 하는 미국인 억만장자.

기사 작위에 취해서 전혀 관심도 없었던 자연보호에 살짝 다리를 걸쳐 놓은 다비시는 극비리에 손다이크를 르모인에게 팔아버릴 생각을 한다.

각자 다른 생각으로 손다이크에 모인 이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몰랐지만 속 시원한 반전이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책장이 자꾸만 얇아지는데 이야기는 절정을 달리고 있어서 정말 간이 콩알만해졌는데...





그렇게 생각해요? 그 사람은 문자 그대로 우리가 지지하는 모든 것의 정반대에 있는 사람이에요.



모든 것을 가진 사람과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 만나면 어떻게 될까?

버넘 숲 회원들은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도 모른 채 손다이크로 간다.

<버넘 숲>이 인정받는 단계가 될 거라 믿는 사람들의 순진한 마음을 이용하는 건 언제나 가진 자들이다.

얼마나 많은 카르텔들이 눈속임으로 자신들의 뱃속을 채웠을까?

미국의 억만장자는 뉴질랜드쯤은 나라라고 생각도 안 하는 느낌.

수많은 불법을 저지르고 남의 재산을 몰래 빼돌려도 결코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자들.

이야기를 읽으며 르모인때문에 혈압이 오른다.

아마도 지금 우리 상황 때문에 더 거슬리는 거 같다.


텃밭에서는 진실이 올바름의 형태를 취하지 않았고, 옳음의 반대가 틀림도 아니었다.



가진 자들이 공공의 이익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이익만 고려하면 손다이크처럼 희토류를 깔고 앉아 있어도 도둑놈을 들여 다 퍼가게 놔두는 것이다.

우리의 제주가 그렇듯이...

21세기에도 남의 자원을 버젓이 빼돌리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비영리단체에도 영리가 개입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게 된다는 것도

어떤 쐐한 느낌이 있다면 절대 가지 말아야 하지만 자신의 이익에 초점이 맞춰지는 바람에 무시했던 그들은 그렇게 골로갈 뿐이다.

서로 다른 계층은 계급이 없는 이 시대에도 계급을 이룬다.

<버넘 숲>은 우리나라 대왕 고래 시추 프로젝트를 보는 거 같다.

유령회사가 작성한 보고서를 믿고 수천억을 쏟아붓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정부.

르모인은 뉴질랜드 정부로부터 의뢰를 받고 자원에 대한 조사를 착수하다 희토류를 발견한다.

그러나 그런 사실은 쏙 빼고 전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고서를 보내고 도둑질을 한다.

우리나라 대왕 고래 시추 프로젝트는 없는 석유를 있다고 말하고 그걸 확인한다고 시추 작업을 하면서 빼돌린 돈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 길이 없다.



그들이 저지른 짓은 무단 침입 그 이상이었다.



그들 모두 무단 침입을 정당화했다.

어쩜 우리는 진실을 외면하는데 길들여졌는지 모르겠다.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처럼 보였던 토니만이 진실을 외쳤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아무도

진실은

듣지 않는 세상에...

엘리너 캐턴.

참 묘한 작가다.

사회 공분을 살 만한 이야기를 마지막에 스릴러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그 끝은 정말이지 그렇게 열어버린다고?

스티븐 킹과 버락 오바마가 왜 추천했는지 알 거 같다.

경악스러운 결말로 무척 인상적인 작품이 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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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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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스라엘인들' 은 시온주의를 내세워 도둑질을 하면서도 양심을 깨끗이 유지하고 싶어 해.


샤일록하면 문학사에서 가장 비열하고 잔인한 유대인으로 회자되는 캐릭터죠.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로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한 주인공에게 1파운드의 살을 베어내기로 합니다.

이로써 유대인의 악명 높은 고리대금과 비인간적인 모습은 서양사에서 유대인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샤일록 작전>은 그래서 뭔가 의미심장합니다.

유대인의 존경심을 받는 인물이 아닌 유대인의 악명을 드높인 이름을 사용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이야기엔 맹목적인 애국보다는 유대인인 작가가 생각하는 유대인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하며 읽었습니다.

어쩌면 그러한 생각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사람이 필립 로스라는 이름을 사칭해서 자신과는 조금 다른 길을 가는 설정으로 한 사람 안에 깃든 두 가지 마음을 대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 비추어 <샤일록 작전>에서 필립 로스가 느끼는 감정도 이중적이지 않나 싶어요.

보수와 진보로 나뉘는 대한민국의 현실과 디아스포리즘과 시온주의로 나뉘는 이스라엘의 문제가 다른 듯 같게 느껴집니다.

같은 국민이지만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다르지 않네요.

게다가 필립 로스 자신은 미국계 유대인이고 자칭 필립 로스라고 하는 자 역시 미국계 유대인입니다.

자신과 분리하기 위해 필립 로스는 자신을 사칭하는 자를 모이셰 피픽이라 부릅니다.


점잖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모두 소중히 지키던 유대인의 가치관이 썩어버린 모습...



외국에 살면서 자국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복잡한 마음이 깃들게 마련입니다.

팔레스타인들을 그들의 영토에서 내치면서 분쟁을 키워오는 이스라엘의 행동이 그들에게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그런 감정을 필립 로스는 대학 친구 조지의 입장에서 마구 퍼부어대죠.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들 간의 분열.

이 모든 것을 이야기로 풀어내기에 많은 제약이 있었던 필립 로스는 할시온이라는 수면제를 복용함으로써 제정신이 아니었던 이야기를 먼저 풀어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에서 자신의 행세를 하는 필립 로스에 대한 독자들의 상상력을 키워버리죠.

저도 읽는 내내 저 피픽은 분명 상상 속 인물이라고 느꼈습니다. 게다가 피픽은 미국에서 사설탐정으로 개인 경호원까지 하던 중 케네디 대통령이 피픽을 필립 로스로 착각하는 실수(?)로 인해 가짜 필립 로스로 행세하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됩니다.

나치로 인해 학살을 당했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서 그 보복을 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인가?

이 의문이 필립 로스를 괴롭혔던 거 같습니다.

왜 안 그러겠어요..

떠돌이 유대인이 한곳에 정착하는 모습이 자랑스러우면서도 그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와닿지 않습니다. 그곳은 지켜내야 할 것들이 있는 곳이니까요.

하지만 타국에서 그런 모습을 보게 되는 지식인의 입장에서는 동조하기 쉽지 않겠죠.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우리들이 무슨 짓을 한 거지? 우리의 위대한 경험이 우리를 바꿔놓았나?"



필립 로스는 자신을 사칭하는 자를 찾아 이스라엘로 향합니다. 그곳은 지금 전범인 데미야뉴크의 재판이 벌어지고 있죠. 필립은 거기서 자신을 피픽으로 착각한 은퇴한 보석상으로 부터 거금을 후원받습니다.

피픽과의 언쟁으로 열받아있던 필립은 말없이 그것을 받지만 그날 조지와 함께 아랍인들의 재판에 다녀오는 길에 이스라엘 군인들의 기습을 받아 몸수색을 당하면서 거금을 잃어버리죠. 호텔로 돌아온 필립은 이미 피픽이 자신의 방에 먼저 와 있는 걸 발견합니다. 필립을 본 피픽은 스마일스버거에게 받은 돈을 돌려달라고 합니다. 필립 로스는 피픽을 쫓아내고서 다음 날 일찍 이스라엘을 떠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새벽에 찾아온 피픽의 애인 징크스양은 피픽이 데미야뉴크의 아들을 납치할 계획이라고 그를 말려달라고 필립에게 애원합니다. 필립은 그녀의 애원을 뿌리치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스마일스버거의 100만 달러짜리 수표.

레흐 바웬사의 육각별.

리언 클링호퍼의 여행 일기.



유대인에 대한 신랄한 평가가 담긴 <샤일록 작전>

읽으면서 이 복잡한 민족의 문제들을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네요.

그것을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순 없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복잡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건 실제 있었던 일을 쓴 글이 아니야. 당신은 실제 있었던 일에 대해 조금도 모르기 때문이오. 당신은 객관적인 현실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고 있소. 그 의미를 완전히 놓치고 있어.



필립 로스는 자신이 이스라엘에서 겪은 일을 소설 형식을 빌려 썼습니다. 끝부분의 스마일스버거와의 대화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여러 가지 첩보작전에 상당수의 명성 있는 유대인들을 관여시키는 방법,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작전에 휘말려 가담한 줄도 모르게 가담하고 마는 현실.

필립 로스가 이스라엘에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이는 동안 그들이 노린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필립 로스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요?

바로 <샤일록 작전>이라는 이 소설을 집필시키기(?) 위해 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까요?

유대인이란 민족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이 이야기를 읽으며 혼란스러웠습니다.

귀동냥으로 들었던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들이 모두 담겨 있는 이 이야기에서 저는 그들을 이해는 하지만 공감하지는 못할 거 같습니다.

수천 년 동안 살았던 곳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난 팔레스타인들의 고통은 당연한 게 아니니까요..

필립 로스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썼을지 그저 마음이 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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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진 산정에서
미나토 가나에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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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정말 인생을 돌아보는 등산이구나 느끼게 돼.



등산을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서 산에 오르며 스쳐 지나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과 스치며 작가의 머릿속엔 그들의 이야기가 떠올랐겠지.

그래서 이렇게 책이 되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4편의 이야기가 담긴 <노을 진 산정에서>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함께하게 된다.

각자의 사연으로 산을 오르는 그들에게 '산'은 무엇을 의미할까?





ㅡ 언젠가라는 말만 하고 있으면 그 언젠가는 영원히 오지 않아요.



산을 좋아하는 남편이 같이 가자고 했던 산을 가이드와 함께 오르는 여자.

동행한 이와 가이드 사이에 뭔가 있는 거 같은 느낌.

우리가 흔하게 뱉는 "언젠가 함께 가자, 하자, 만나자, 먹자, 보자." 하는 말들이 부질없다는 걸 알게 해준 이야기.

언젠가는 이 아니라 그래 하자!라고 대답했어야 했다는 뒤늦은 깨달음..

마음이 아련해지는 에피소드였다.

곁에 있는 사람과의 하루를 언젠가로 미루지 말 것.

<우시로타테야마 연봉>



ㅡ 너한테 산은 뭐야?

ㅡ 재생의 장소


이 대화에 이 책에 대한 모든 게 담겼다.

셋이서 산에 오르곤 했던 친구들은 이제 둘이서 산에 오른다.

여기 있지 않은 한 사람은 산을 좋아했고, 그로 인해 두 사람은 등산의 맛을 알게 되었다.

노래를 하는 친구와 바이올린을 하는 친구 그리고 그들의 반주를 맡은 친구.

산 정상에서 울리는 바이올린과 노래는 두 사람의 연주였지만 보이지 않았던 친구도 함께였다.

한 사람을 두고 사랑을 느꼈던 두 사람.

그 한 사람은 두 사람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알고 있었다면 누군가에게 더 마음이 있었을까?

이미 답은 정해져있었을까?

산 정상에 오른 두 사람만이 그 진실을 알고 있겠지. 어쩜 그곳을 함께 올랐던 나머지 한 사람은 진작에 알고 있었을지도..

<북알프스 오모테긴자>



"다녀오겠습니다 하는 사람, 나는 다녀오세요 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말했어. 반드시 돌아와 다녀왔습니다 하겠다고 약속하라고."



산을 좋아했던 남편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아빠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던 딸은 대학에 가서 등산 동아리에 가입한다.

엄마의 반대로 소원해진 모녀지간의 사이는 등산을 하면서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아빠의 얘기를 들려주며 녹아내린다.

아버지의 배낭인지 모르고 메고 가는 딸의 뒷모습에서 남편을 등을 보는 엄마의 마음이 애잔하다..

두 모녀의 앞으로의 등산은 행복하길... <다테야마. 쓰루기다케>


지금의 행복을 부정해서 어쩌려고. 부정한 지금이 과거가 되면, 또 그 미래의 행복도 부정하게 될 뿐이잖아.



대학 등산 동아리에서 친했던 두 사람은 소원한 관계가 되어 일 년에 한 번 엽서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처지가 됐다.

행복해 보이고, 완벽해 보이는 모습 안에서 곪아가고 있던 감정들이 솔직했던 한 사람의 편지로 인해 봇물처럼 터져 나온다.

잘 살고 있어 보였던 친구의 삶은 힘들었고,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내 삶은 끈기를 무기로 산을 벗 삼아 용케 난관을 극복해갔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진리를 잘 보여준 이야기 <부나가타케. 아다타라산>

산들의 이름이 어려워서 버벅댔지만 무심한 듯 날렵하게 정곡을 찌르는 삶의 진실이 담긴 이야기들이었다.

저절로 산에 오르고 싶어지는 이야기들.

정말 산에 오르다 보면 내 마음이 단단해질 거 같은 느낌이다.

동네에 자그마한 산이라도 올라야겠다.

그곳에서 스치는 사람들의 삶을 나도 유추해 보고 싶다.

그러다 내 삶을 그들에게 들켜버릴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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