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락의 아내
토레 렌베르그 지음, 손화수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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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모두들 내게서 세상을 빼앗아 가려는 걸까?

 

 

2020 노르웨이 최고의 소설 <톨락의 아내>는 내게도 최고의 소설이 되었다.

광기 어린 문체는 서서히 시선을 압도하고, 간결한 문장들 뒤에서는 폭풍이 몰아쳤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넘치는 강렬한 해일이 페이지를 넘길수록 점점 더 증폭되어 심장을 죄어온다.

 

단순한 느낌의 책 한 권이 몇 백 페이지를 넘어가는 양장본의 묵직한 스릴러 대표작들을 능가한다.

북유럽 스릴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북유럽 문체에 어지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톨락의 아내>는 톨락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당연히 독자들은 톨락을 절반은 이해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주인공이니까.

주인공은 '절대'라는 메시지는 은연중에 독자 모두가 가지고 있는 '필수'의 감정이다.

그럼에도 나는 톨락이 애처로웠다가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다.

 

톨락은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와 애증의 관계를 형성한다.

독자는 절대 톨락을 이해하고 싶지 않지만 이해하게 되고, 미워하고 싶지만 애정 하게 된다.

이 모순된 감정 때문에 나는 톨락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아내 잉에보르그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톨락.

톨락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사랑했던 잉에보르그.

그 두 사람의 보금자리에 들어와선 안되었던 뻐꾸기 한 마리.

오도.

 

아버지의 말은 내 삶의 기반이 되었다.

 

 

그릇된 눈으로 세상을 보았던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상과의 단절을 선사했다.

소통과 관심보다는 배제로부터 자라난 톨락.

그를 이해하고 품은 건 잉에보르그뿐이었다.

언젠가는 톨락이 세상 밖으로 나올 거라고 믿었던 순진함이자 자만심이 잉에보르그를 숲속에 묶어 두었다.

 

그리고 잉에보르그는 어느 날 모두의 시선에서 사라지고 만다.

 

오도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는 사람이다.

 

 

이웃의 아이를 키우게 된 톨락.

자폐증이 있는 오도는 톨락과 어느 면에서 아주 닮았다.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오도를 잉에보르그는 살뜰히 챙겼다.

그리고 그 살뜰했던 마음만큼 진저리를 쳤다.

 

과거에 보지 못한 것을 지금 볼 수 있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고 있는 감정.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고 있는 상황.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고 있는 현실.

 

한 사람의 독백이 가져오는 오만가지 감정들이 태풍처럼 몰아친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멈추면서 읽었다.

 

죽음을 앞둔 남자의 자기 독백이 얼마나 특별할까? 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지금껏 내가 만난 스릴러의 주인공 보다 더 스릴 있는 톨락의 이야기는 짧게 이어지는 문장들 때문에 더 길게 느껴졌다...

 

문학 스릴러.

문학작품인데 스릴러를 읽는 느낌이다.

토레 렌베르그가 스릴러를 쓴다면 <요 네스뵈>는 설자리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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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척
레이철 호킨스 지음, 천화영 옮김 / 모모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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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소리가 들린 뒤에야 차가 눈에 들어왔고, 그때까지도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훗날, 나는 이 순간을 되돌아보면서 어쩌면 내가 앞으로 닥칠 일을 알고 있던 게 아닐까 궁금해하곤 했다. 인생에서 일어난 모든 일이 나를 이 한 지점으로, 한 주택으로 이끈 것은 아닌지.

그에게로 이끈 것은 아닌지.

 

 

영원한 고전 <제인 에어>를 현대적 버전으로 각색했다는 <기척>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게 쫄깃했다.

 

고급 주택단지 '손필드'에서 개 산책 아르바이트를 하던 제인에게 일어난 일.

이런 문장 앞에서 사람들은 어떤 상상을 할까?

로맨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제인 앞에 백마 탄 왕자가 나타나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릴 것이다.

장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고급 주택 단지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에 제인이 얽히게 될 것이다.

 

<기척>은 두 가지 장르가 맞물려서 독자들을 정신없게 하는 작품이다.

 

나는 앉아서 바쁘게 머리를 굴렸다. 무엇을 말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내 삶을 나눌 수 있을지 궁금했다. 지금 여기서 틈이, 기회가, 약간의 거짓을 가미한 진실을 말할 호기가 있었다. 그렇게 하면 손톱 관리니 반지니 에두르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개 산책 알바 틈틈이 개 주인들의 보석을 훔치는 제인.

남부 어딘가에서 큰 사고를 치고 쫓기는 몸으로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죽은 친구의 이름으로 살면서 이전 위탁가정에서 알게 된 존의 집에서 지내고 있다.

훔친 보석으로 집세를 내고 존의 집에서 탈출하기만을 벼르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인은 손필드에서 운명적으로 '에디'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주인공 제인과 실종 상태로 남아있는 에디의 부인 '베'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쫄깃한 이야기는 로맨스와 미스터리 그리고 스릴러를 잘 섞어놨다.

그래서 읽는 동안 멈추기 쉽지 않았다.

 

신데렐라 스토리에 스릴러를 접붙이기해서 탄탄한 이야기를 만들어낸 레이철 호킨스.

첫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글의 몰입감이 장난 아니다.

어디서 많이 읽은 거 같은 이야기인데 전혀 새롭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작품에서 남성들은 곁가지에 불과하다.

 

자기 보호 본능이 강한 '제인'

자수성가하여 부의 세계를 이룩한 '베'

모든 걸 가지고 태어났지만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블랜치'

 

<기척>은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작가의 글 솜씨에 빛나는 반전을 입혀줌으로써 독자의 예상을 깨게 만든다.

그리고 계속 생각하게 만드는 숙제를 남겨둔다.

 

<제인 에어>의 현대적 재해석은

결코 주인공의 정석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독자는 제인이 못마땅하지만 왠지 측은해 보여서 이해해 보려 애쓰게 된다.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이 나쁜 건 아니니까.

휘둘리지 않고, 교묘하게 상대를 움직일 줄 알지만 알고 보면 자기보다 월등히 교묘한 인간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제인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독자들의 연민을 자극하는 <기척>.

 

욕망으로 가득한 여인들이 만들어 내는 진정한 스릴러 <기척>

제목만 보고는 별거 없겠지.라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기척>의 <기척>을 제대로 못 느낀 겁니다.

 

오늘도 당신의 주변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잘 헤아려 보세요.

그것이 당신에게 행운이 될지, 불운이 될지는 당신이 어떻게 상황을 잘 이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우리 모두 21세기 <제인>이 되어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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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담 싸부 - Chinese Restaurant From 1984
김자령 지음 / 시월이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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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러나 어떻게....'

 

 

평생을 중국집 주방에서 세월을 보낸 건담 두위광.

중식의 대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만 비가 새는 허름한 가게가 그의 현재다.

70대 두위광에게 찾아온 위기.

그런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과 그를 배신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다양한 생각들을 독자에게 던진다.

 

<대장금> 드라마가 한창 인기 있을 때 드라마를 통해 음식에 대한 진정성을 배웠다.

음식이란 만드는 사람의 철학과 마음이 담긴 '약'이다.

기본에 충실하되 먹는 사람의 건강까지 생각해서 만드는 요리는 시든 꽃에 물을 부어주는 것과 같고

물욕에 물든 마음으로 만드는 요리는 건강한 사람도 시들게 한다.

 

"요리는 먹이는 일이다. 무슨 말인 줄 알아?

맛있게 만들어 내는 거, 그걸로 솜씨를 뽐내고 칭찬을 듣는 거... 그런 건 저 아래에 있는 거다. 속이지 않고 좋은 재료를 쓰고, 적당한 값을 받고, 청결하고, 그 마음도 깨끗한 거...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이지. 요리는 거기다가 누군가를 먹인다는 마음, 베푼다는 생각이 있어야 한다. 그 진심이 있어야 진짜 요리, 최고의 요리가 나온다."

 

 

누군가를 먹이는 일.

요리는 진심이 있어야 최고의 요리라는 두위광의 말은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하는 우리에게, 기본을 잊은 우리에게 짙은 울림을 준다.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건데, 이제는 돈을 벌기 위해 그 모든 것을 생략해 버리는 삶을 살고 있는 거 같다.

 

중국집 주방이 세상의 전부였던 두위광은 70이 넘어서 늘 가게로 직진하던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옮겨본다.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가 처음 깨달아 가는 모습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본 거 같다.

 




건담은 잘 먹는다. 먹성이 좋다는 뜻의 한자어다.

어릴 때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건담 두위광.

몸으로, 어깨너머로 중식을 배웠던 두위광.

그는 자신이 배웠던 방법으로 가르쳤다. 왜? 그 방법 밖에는 알지 못했으니까...

 

세대 간의 갈등과 실패자의 도전과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 없이 남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의 모습들이 우스꽝스럽게, 적나라하게, 짠하게 그려진다.

책을 읽는 내내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났다.

나도 모르게 그려지는 건담 식구들의 이미지가 좁은 주방에서 웍을 돌리고, 화력 좋은 불앞에서 땀을 흘리고, 담벼락에서 담뱃불을 피우며, 좁은 홀안을 우아하게 돌아다닌다.

두위광 만큼이나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때론 나를 반성케 하고, 나를 응원하게 하고, 나를 위로한다.

 

대충 배고픔을 때우면 그만이라는 나의 식사에 대한 생각이 '잘 만들어 먹어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건담 싸부>를 읽는 내내 익숙한 중국집 냄새가 코 끝을 스쳤고, 들어 보지 못한 재료와 음식들이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드라마나 영화로 나온다면 이 음식들과 식재료들을 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본경이 만든 음식과 나희가 제조한 칵테일.

건담 싸부가 만든 중국식 냉면을 먹어 보고 싶다.

 

기본이 무너진 세상에서 고집스럽게 기본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아는 세상이 유지되고 있는 게 아닐까?

곡비소 같은 사람들이 허울좋게 세워 놓은 '독'만 남은 세상을

두위광과 본경, 원신, 나희 같은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 갈 것이다. 조금씩, 느리지만 기본에 충실하게...

 

중국집과 중국요리가 저 멀리 있었는데

<건담 싸부>를 읽고 나니 바로 코앞에서 가까이 느껴진다.

<건담 싸부>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줄도 몰랐던 편견의 세상을 아주 조금 까발려 준 이야기다.

단지 보이는 것 그 이면의 행간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건담 싸부>는 그저 재밌는 이야기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당연히 생각해 봤어야 하지만 외면받은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푸짐한 잔칫상을 얻어먹고 나왔다는 생각 뒤로 뭔가 끈끈한 뉘우침이 함께 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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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되더라 남에게 건넸던 말을 나에게 건네면
김완석 지음 / 라곰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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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비원으로 일하면 마음이 긁히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산타 할머니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위로가 되어준 것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었다.

작은 배려나 사소한 언어에서 시작됐다.

 

스물아홉.

희귀성 난치병인 섬유근육통을 앓고.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직업(아파트 경비원)을 가지고 있는 김완석 작가의 글들이 가을비처럼 촉촉하게 마음을 적신다.

 

아파트가 뭐라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뭐라고.

세상에 없는 갑질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곳.

아파트 공화국에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품격을 어디로 말아 드셨는지 알 수 없다.

고급 아파트일수록 더 무참한 인격 모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에서 경비 일을 하며 스물아홉의 청년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다.

우리가 듣고도 믿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글 곳곳에 묻혀있다.

그렇다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글이 아니다.

그래서 이 담담하게 쓰인 글들이 자꾸 마음을 적셨다.

 

음식물 쓰레기통은 숨만 잠깐 참으면 금방 잘도 비워지던데, 사람에게 쌓인 감정 쓰레기는 어디에 비워야 하는 걸까?

 

나의 감정에만 치우친 말은 상대의 언어도 시들게 만든다.

나는 상대방에게 따뜻한 말을 듣기 원하면서, 정작 나의 언어는 차가웠다.

 

 

 

글 어디에서도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그저 있었던 일을 담아내고 그 일을 겪으면서 자신을 추스르는 마음이 있을 뿐...

 

누군가를 미워하고, 비난하는 글이었다면 공감하면서도 괴로웠을 텐데

그렇지 않기에 읽으면서 내내 내 마음도 굳건해졌다.

마음이 궁핍한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고, 자신의 격을 떨어뜨리지 않고 사는 법을 배우고, 차가운 언어 대신 따뜻한 언어를 찾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가 겪는 고통이 매일 조금씩이라도 덜어지기를 바라고

그의 일터에서 사람들이 건네는 말이 조금씩 따뜻해지기를 바란다.

그에게 팀장님 같은 상사가 있어서 다행이었고, 아직은 따뜻한 마음과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는데 위로받았다.

 

겉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는 진리를 또다시 배웠다.

가진 게 많아도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의 격도 가난해진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자신의 격을 지켜내는 사람이다.

나의 격은 남이 아닌 내가 지켜내는 것이다.

스무 날의 청년에게서 '자신의 격'을 지켜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배운 느낌이다.

 

공동주택인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자신들이 무심코 한 말이나 행동이 어떤 상처가 되어 돌아오는지 안다면 상처 주는 말을 줄일 수 있을 거 같아서.

 

옛말에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말이 있다.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결국은 나에게 배가 되어 돌아온다는 뜻이다.

무심코 한 못돼먹은 말이나 행동은 결국 나에게 되돌아온다.

돌아올 때는 언제나 훨씬 부풀려 온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부메랑은 던질 때 보다 돌아올 때 더 강한 힘으로 날아온니까.

 

비가 오는 날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리고 하루 종일 마음이 따뜻했다 서늘했다를 반복했다.

거친 사람들의 이야기에 서늘했고, 그들을 보듬고 나아가는 작가님의 성숙함에 따뜻했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롤 모델을 찾고 싶다면 이 책에 담긴 아파트의 무례한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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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하우스
피터 메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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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죽이는 일은 처음이 힘들지, 일단 저지르고 나면 그 뒤는 한결 수월해지는 법이다.

 

 

한 달 전 뺑소니 사고로 아들을 잃은 핀 매클라우드 형사.

그에게 루이스 섬에서의 살인 사건을 수사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

그가 맡고 있던 에든버러의 살인사건과 유사한 점이 발견되어 조사해 보라는 홈스 컴퓨터의 지시가 그를 다시 고향인 루이스 섬에 발을 디디게 한다.

18년 동안 떠나 있던 곳.

죽은 자는 언제나 주먹질로 동네 사람들을 괴롭혔던 에인절이었다.

 

섬에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그 사람은 천장에 부딪히지 않으려고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있었다. 방이 비록 크진 않지만, 서 있는 자세로 봐서 2미터 40센티미터는 족히 넘어 보여다. 다리가 굉장히 길었고, 바짓단은 검은색 부츠 안쪽으로 말려들어가 있었다. 체크무늬 셔츠의 끝자락은 허리띠를 두른 바지에 집어넣고, 그 위로 모자 달린 파카를 걸친 채였다.

 

본토와 떨어져 다른 언어인 '게일어'를 사용하는 루이스 섬.

그곳엔 매년 구가 사냥이 벌어진다. 일종의 성인식이자 통과의례였다.

갓 태어난 새나 다 자란 새는 잡으면 안 되고 그 중간의 새들을 잡는다.

2천 마리의 중간 새들이 인간의 "입맛"을 위해 도살되는 "구가 사냥"이 아직도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었다.

 

블랙하우스는 자연석으로 벽을 세우고 짚으로 지붕을 이은 전통적인 가옥 형태였다. 사람의 거처는 물론 축사 역할도 했다.

 

토탄으로 인해 검게 그을린 집들.

그래서 루이스 섬의 집들을 블랙하우스라고 부른다.

다시 찾은 고향은 핀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했을까?

 




처음 만나는 스코틀랜드 작가 피터 메이.

탄탄한 글이 쉼 없이 조여오는 블랙하우스는 읽는 내내 루이스 섬의 따스함과 서늘함이 공존하는 작품이었다.

섬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하고

섬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만 통용되는 삶의 방식이 육지와는 또 다른 매력과 함께 답답함을 동반한다.

섬이라서 그곳의 삶은 그들만의 방식이 있고, 그들만의 언어로 된 공동체는 종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비틀어진 삶을 이어갔다.

 

고립된 지역에서 드넓은 세상으로 탈출한 사람과 그곳에 어쩔 수 없이 발이 묶인 사람.

한없이 사랑했지만 보상받지 못한 사람.

수없이 주먹을 휘둘렀지만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친구였던 사람.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짓을 저지른 사람.

그들이 모여 사는 그곳엔 그들만의 방식이 있었다.

처벌과 침묵.

많은 작품들 속에서 만났던 섬사람들의 행위보다 점잖은 루이스 섬의 처벌과 침묵은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그러나.

핀을 이곳으로 부른 범죄는 그렇지 못했다.

 

더위 속에서 나는 루이스 섬에 몰아치는 비바람을 느꼈고

새들의 비명을 들었으며

수많은 새들의 시체와 마주했고

묻지 못한 비밀과 대면했다.

피터 메이가 잘 숨겨 논 비밀이 까발려지는 순간 나도 모르게 책장을 앞으로 넘겼다.

어딘가에서 놓친 복선을 찾느라...

 

섬에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 비슷한 이야기를 새롭게 풀어 내는 것은 작가의 필력에 있다.

피터 메이는 그 필력을 지닌 작가다.

블랙하우스는 넓은 시야로 과거의 이야기와 현재의 이야기를 교차 시키면서 범인을 추적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범인을 잡는 것에 몰입하지 않는다.

범인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누가 살인자일까? 가 아니라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가 중요한 이야기다.

 

루이스 섬 3부작의 서막 블랙하우스.

쫄깃한 이야기에 반해서 나머지 시리즈를 기다리는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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