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전할 땐 스칸디나비아처럼 - 은유와 재치로 가득한 세상
카타리나 몽네메리 지음, 안현모 옮김 / 가디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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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사우나


배움의 사우나라는 말이 과연 어디에 쓰이는 말일까요?

이 말은 장소를 가리키는 핀란드식 표현입니다.

배움이 있는 곳. 바로 학교랍니다.

여러분도 사우나에 가시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들을 들으시는 경우가 종종 있으실 겁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수다 속에서 뜻하지 않은 삶의 지혜를 얻을 때처럼 핀란드에도 무수히 많은 사우나에서 인생을 배운다고 합니다.

그러니 핀란드에서 학교의 다른 말로 배움의 사우나를 쓴다고 합니다.

학교라는 말은 왠지 경직된 느낌인데 배움의 사우나라고 하니까 더 허심탄회한 느낌이 드네요.

 



깃털로 암탉을 만들다니


 

깃털로 암탉을 어떻게 만들까요?

이 말은 안데르센의 우화에 뿌리를 둔 스웨덴의 표현입니다.

노르웨이에서는 '깃털로 암탉 다섯 마리를 만든다'

덴마크에서는 '깃털이 쉽게 암탉 다섯 마리가 된다'라고 표현합니다.

왠지 어떤 표현인지 느낌이 오시죠?

바로 말이 옮겨지면서 부풀어지는 과정을 표현한 말입니다.

와전된 말이 어떤 피해를 주는지 살면서 한 번씩은 겪어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본질은 없고 카더라만 있는 말.말.말.

조심 또 조심해야 할 게 말이죠.

 




북유럽 스타일의 그림과 전혀 생소한 관용어들의 조합은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북유럽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널리 쓰이는 50가지 관용구를 담은 이 책을 읽다 보면 언어가 삶을 관장하는지 삶이 언어를 관장하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우리와 사는 환경이 많이 달라서인지 정말 들어본 적 없는 표현들이 많아서 소제목만 보고서는 뭘 뜻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가끔 너무 짧은 설명들 앞에서는 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어서 아쉬웠지만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기분이 들어서 재밌기도 했어요.

 

간결하고, 어딘지 퉁명스러우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올 거 같은 표현들.

이 색다른 표현들을 읽다 보니 늘 생각하던 방식에서 약간 벗어난 기분이 참 홀가분합니다^^

북유럽 스타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인테리어에만 북유럽 스타일을 사용하지 마시고 일상생활에서 이 가지 관용구들을 적절하게 사용해 보시면 어떨까요?

생소한 표현들을 듣게 되는 주변 사람들 반응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전 궁금해서 여기저기 써먹어 보렵니다.

 

일단 울 랑님에게 오늘부터는 "오~ 맛있는 청어여~" 라고 불러 보려고요.

그럼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바나나 껍질에 미끌~ 새우 샌드위치에 미끌~ 거리면 안 되지만

할머니 이처럼 헐렁거려 보고는 싶네요^^

 

 

 

무슨 말이냐고요?

궁금하면 14,500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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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imson Lake Road 크림슨 레이크 로드 라스베이거스 연쇄 살인의 비밀 2
빅터 메토스 지음, 최호정 옮김 / 키멜리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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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형사가 주인공인 책들을 몇 권 읽었는데 읽으면서 계속 화가 나고 찜찜하고 불편했던 건 바로 그녀들의 위치였다.

능력 있고, 직감적이고, 범인을 추려내는 능력이 있음에도 남자들의 세계에서 그녀들은 하나같이 무시당하고, 부당한 취급을 받는다.

 

제시카 야들리.

사진작가를 꿈꿨지만 검사가 된 여자.

화가였던 자신의 남편이 연쇄살인마라는 트라우마를 가진 여자.

천재인 딸을 살인자 남편에게서 보호하려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여자.

지긋지긋한 검사 때려치우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려고 퇴직 신청을 해 놓은 여자.

그러나.

'처형자'라는 이름이 붙은 크림슨 레이크 살인자는 사프롱이라는 화가의 그림을 모방한 살인을 벌이고 있었다.

다행히도 피해자 한 명이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 그녀와 야들리는 '친구'가 된다.

서로의 상처를 알아 본 두 사람의 우정은 어떻게 이어질까?

 

사실.

읽으면서 범인을 알아챘다.

그래서 이야기의 재미가 반감되었냐고 묻는다면 아.니.다.

느낌이 왔으나 이걸 어떻게 풀어내는 작가인지 궁금했고, 야들리 주변의 문제들이 살인 사건 보다 더 엽기적이라서 집중해서 읽어야 했다.

 

검사의 남편이 연쇄살인마였다니.

게다가 천재적인 딸은 엄마 몰래 아빠를 만나고 있었다.

전작을 읽지 않아서 에디 칼이라는 인간이 어떤 종류의 살인마인지 알 수 없었지만 사형수라는 타이틀을 가진 살인범이라니 아마도 끔찍했을 거 같다.

그런 그에게 범인의 특징을 알려주고 조언을 들어야만 하는 야들리의 심정이 내게도 전해져 와서 몸서리가 쳐졌다.

 

희석되지 않은 상처는 돌고 돌아 복수의 칼날이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탓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살인자라 해도...

 

검사 출신 작가의 이야기에는 깊은 함정이 있었고

그 직업군이 가진 오만함과 편견들이 직설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검사와 판사를 쥐락펴락할 줄 아는 변호사 딜런 애스터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굳건한 바위를 달걀로 박살 낼 수도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딜런 애스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야들리와 애스터 사이가 좋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시리즈를 어떤 식으로 명명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제시카 야들리 시리즈라고 부르고 싶다.

연약한 듯 강단 있고, 감당할 수 없는 상처를 감당해 내며 범죄에 대한 소명을 다하는 검사 야들리.

극과 극을 달리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타라의 범상치 않은 모습은 다음 편에서 타라가 어떻게 변신하느냐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을 거 같다.

타라가 자신의 아버지와 대화하면서 복선을 깔아 놓았기에 다음 편에는 아마도 타라의 말이 현실이 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그녀의 선택에서 나는 그녀가 검사이기 전에 인간이기를 선택한 것을 이해하기로 했다.

그 선택은 그녀가 고통을 아는 사람이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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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 윌북 클래식 첫사랑 컬렉션
제인 오스틴 지음, 송은주 옮김 / 윌북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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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살의 앤은 열아홉 살 때와는 생각이 크게 달라졌다. 레이디 러셀을 원망하지도, 그의 말대로 따른 자신을 탓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비슷한 처지의 젊은이가 자신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위해 당장 눈앞의 불행을 감수하라는 말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윌북의 첫사랑 컬렉션에 담긴 4권의 책 중에 내가 선택한 책은 제인 오스틴의 <설득>이다.

영국 작가의 글은 미국 작가의 글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제인 오스틴은 신랄하면서도 통통 튀고, 통통 튀는 거 같으면서도 진중하다.

그의 작품들에는 그 시대의 허영이 살아 숨 쉬고, 그 시대 청춘의 고뇌가 피어오르고 그 시대 속물들의 마음이 까발려진다.

어쩜 영국 귀족들의 허세와 허영 아래 숨겨진 찌질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가가 제인 오스틴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 글들을 읽다 보면 진정한 "귀족적"이라는 뉘앙스가 무엇인지를 느끼게 한다.

 

설득의 앞 부분에 나오는 전형적인 귀족 엘리엇 경이 가장 즐겨 보는 책은 바로 준 남작 명부다.

아내가 죽고 세 딸을 키우는 엘리엇 경은 자신의 멋진 외모와 지위만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아내가 죽은 이후 맏딸 엘리자베스가 안주인 노릇을 잘 해나가고 있지만 부모로부터 멋진 외모를 물려받았을 뿐 씀씀이 큰 나이 먹은 노처녀로 자랐다.

막내는 지위는 낮지만 걱정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둘째 딸 앤은 미모도 보잘것없이 나이만 먹은 노처녀였다.

그나마 앤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는 엄마의 친구 레이디 러셀뿐이었다.

하지만 그 레이디 러셀로 인해 앤은 꽃다운 나이를 그냥 흘려보내게 되었다.

 

영국 드라마 <다운트 애비>를 보면 아들이 없는 크롤리 가문의 영지와 재산은 딸들에게 가 아닌 친척 남자에게 남겨지게 된다.

그래서 크롤리의 큰딸 메리가 유산 상속자와 결혼을 하게 된다.

<설득>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귀족의 이름과 가문의 재산이 딸들에게는 물려줄 수 없다는 사실이 웃프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쪽은 결혼과 동시에 "성"이 바뀌기 때문인 거 같다.

엘리엇 경은 자신의 영지와 이름을 물려받을 친척을 찾지만 왠지 엘리자베스와는 격이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생각엔 그쪽은 이 제의에 별 흥미가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엘리엇 경의 '멋대로 생각'때문에 엘리자베스마저 혼기를 놓치고 만다.

엘리자베스와 앤은 올바른(?) 짝을 만나서 가정을 이룰 수 있을까?

지금이라면 결혼에 목매지 말고 혼자 잘 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 시대는 결혼 안 한 귀족 여자는 불명예 그 자체이니까 어쩔 수 없이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기를 응원하게 된다.

 




오만과 편견에서도 그랬지만

설득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두 마음은 엇갈리고, 상대를 잊지 못하고, 돌아돌아 자신들의 자리를 찾게 되는 과정.

그 과정에 쓸데없는 오지라퍼들의 입김이 지름길을 놔두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알려준다.

어쩜 그랬기에 더 간절하게 서로를 알아봤는지도 모르겠지만.

 

8년 반의 긴 시간.

남자는 당당한 어른이 되어 성공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8년 반의 긴 시간.

여자는 시들어가는 꽃처럼 여겨지며 의무감에 짝을 찾는 모습으로 남아있다.

누군가의 <설득>이 그리 설득적이지 못했다는 상황을 보여준다.

 

제인 오스틴은

남의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할 거면 좀 더 신중해져야 한다는 말이 하고 싶었나 보다.

사람을 가진 것으로 만 보지 말고 그가 앞으로 가질 수 있는 것을 보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결혼은 서로의 가치를 지위와 가진 것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더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먼 시대, 옛날이야기 같지만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앤과 웬트워스가 누군가의 <설득>에 의해서 헤어지는 결심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결혼의 불행은 모두가 마땅히 찾아야 하는 '사랑'의 결여에서 생기는 것이다.

'사랑'이 아닌 '돈'과 '권력'이 수많은 청춘들의 가슴을 짓밟아 놓고 그들의 마음을 얼음으로 바꿔 놓는다.

그 얼음 가슴들 사이에서 태어난 무수한 얼음조각들이 이 세상을 얼음왕국으로 만들어가 가고 있는 건 아닌지...

 

21세기에 읽는 제인 오스틴의 <설득>

넷플릭스에서 영화도 개봉된다고 해서 원작부터 읽어 봤다.

원작을 능가하는 영화는 없지만 <설득>이 모든 이들의 마음을 잘 <설득>했으면 좋겠다.

 

나 역시 쓸데없는 오지라퍼의 습성을 조금씩 버리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냥 나는 나만 잘하면 되니까.

누군가를 <설득>하기 보다 나 자신을 우선 <설득>하자.

 

새 시대 새로운 번역으로 제인 오스틴을 다시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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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강 캐트린 댄스 시리즈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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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죽음에 대한 공포, 신체 절단에 대한 공포, 그리고 가장 매혹적인 자주성의 상실에 대한 공포. 군중이 동요하는 순간 게임은 끝난다. 그때부터 개인은 생존이 유일한 목표인 생물의 무력한 세포에 지나지 않는다. 군중이라는 생물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서슴지 않고 희생한다. 세포들은 짓밟히고, 질식하고, 척추가 부러지며, 부러진 늑골에 폐가 찔린다.

 

 

제프리 디버의 캐서린 댄스 시리즈 4번째 이야기는 <고독한 강>이다.

솔리튜드크리크 클럽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비상구가 막힌 곳에서 사람들은 패닉에 빠진다.

모두가 살려고 서로를 헤치는 광기의 시간. <고독한 강>은 그렇게 시작한다.

 

<옥토버리스트>를 읽다가 집중하지 못하고 팽개쳤던(?) 나는 디버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벽돌 책 <고독한 강>을 잘 읽을 수 있을지, 이번에는 디버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았다.

두툼한 두께의 이야기는 책장을 호로록 넘기게 만들었고,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내가 예측한 일들은 모두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래서 다들 제프리 디버를 칭송했구나!

동작학 전문가인 CBI 특별수사관 캐트린 댄스.

예전 미드 <라이 투 미>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읽고 거짓말을 가려내는 형사에 대한 드라마를 재밌게 봤었는데 캐트린 댄스는 사람들의 동작 언어를 알아내는 기술을 가진 형사다.

하지만 그녀의 실력은 초장에 실수로 범인을 놓쳐버리고 나는 이 생소한 기술을 가진 주인공에게 조금 맥이 빠진다.

음... 이게 다는 아니겠지?

 

물론, 그렇다. 이게 다가 아니다.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가는 지능범이 조용히 움직이고, 캐트린 댄스는 심문하던 범인에게 총까지 뺏겨 버리고 정직에 준한 벌을 받는다.

무기 소지 금지. 민사부 소속으로 쫓겨난 캐트린 댄스에게 솔리튜드크리크클럽의 수사를 도우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처음부터 주인공 스타일 너무 구겨지는 거 같은데, 거기다 밉살스러운 포스터는 사사건건 댄스를 못마땅해한다.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입만 살아 움직이는 포스터는 이야기 내내 신경을 거스른다.

 

"지나가는 사람 몇 명 붙잡고 황당한 소문을 퍼뜨리면 게임 끝이죠. 그게 뉴스를 타고 블로그에 실리면서 산불처럼 순식간에 번진 겁니다."

 

거짓 정보로 사람들을 공포에 빠뜨리는 범인.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공간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광경은 글로 읽는데도 소름이 돋는다.

거짓말이 어떻게 사람들을 광기로 몰아가는지.

어떻게 멀쩡한 사람들이 한순간에 자아를 상실하는지.

거짓말처럼 벌어지는 상황이 이해되면서도 이해되지 않는다.

 

외로움과 넘치는 시간을 게임으로 달래는 영혼들에게 그 게임들이 심어 둔 살의.

그것을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실현하고 싶어 하는 욕구.

하지만 대부분은 직접 나서지 못한다. 그래서 공급이 생긴다. 수요가 있는 곳엔 반드시 생기는 공급.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말 몇 마디로 무시무시한 파괴와 대혼란을 일으키는 것.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

 




하나의 이야기만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캐트린 댄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같이 진행된다.

그리고 모두 예상을 빗나간다.

아슬아슬하게.

 

만족을 위한 무언가를 얻고자 하는 저항할 수 없는 욕구, 근질거림을 잠재우고 갈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죽음과 부상과 피를 구경하는 것이 바로 그의 '겟'이었다.

 

 

누군가의 불행과 고통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들.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비밀리에 활동하는 사람들.

킬러 보다 더한 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정말이지 끔찍했다.

우리가 단순히 바쁘다는 이유로, 조금 덜 신경 쓸 수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허락한 게임의 시간들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되돌아오는지 알게 된다면.

단순한 게임으로 치부했던 총 쏘고, 칼로 베고, 폭탄을 터뜨리는 일들이 아이들의 잠재의식을 어떤 식으로 세뇌하는지 알게 된다면.

세상이 말세라고 도리도리만 하지 말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제프리 디버는

정말 아무렇지 않게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작가다.

이야기가 중반을 지나면서 "등잔 밑이 어둡다!"를 외쳐댔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캐트린 댄스 시리즈는 여러모로 내 뒤통수를 세 번쯤 때린 거 같다.

이제부터 제프리 디버를 모두 섭렵할 생각이다.

책장에 담긴 디버의 작품들을 눈에 보이는 곳으로 꺼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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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카미유 클로델 - 생의 고독을 새긴 조각가
이운진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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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삶이든 다를 바 없겠지만, 카미유 클로델의 삶에는 여성으로서의 한계, 예술가의 소명과 욕망, 그리고 사랑과 실패, 병과 소외, 급변하는 시대의 풍경이 큰 물살로 어우러져 소용돌이치고 있다.

 

카미유 클로델에 대한 지독한 감정 이입이 도입부부터 느껴지는 <여기, 카미유 클로델>.

미술사에서 카미유가 차지하는 자리가 얼마만큼인지 모르지만 그녀가 로댕에게 끼친 영향력은 알아챌 수 있었다.

많은 여성들이 미술계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졌기에 어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카미유 클로델에 대한 이 책에서 직접적인 표현보다는 간접적인 표현 때문에 로댕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뀔 거라는 생각이 든다.

 

카미유는 자신의 엄마에게 애정보다는 애증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진흙을 빗으며 자신의 재능을 표현했던 카미유는 가족들을 파리로 이주시켰다.

이것마저도 그녀의 엄마에게는 카미유를 미워할 충분한 이유를 더 가져다주었다.

 

채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깨닫는 일은 어쩌면 불운이며 어쩌면 행운이고 혹은 둘 다인지도 모른다.

파리에서 그녀는 그녀 자신이 되고 싶었다.

 

로댕을 만나기 전부터 자신의 작품이 로댕과 비슷하다는 말을 듣은 카미유에게 로댕은 어떤 식으로 각인되었을까?

아버지 나이의 로댕과 열렬한 사랑을 한 카미유.

그것은 정말 사랑이었을까?

사랑으로 포장한 종속의 관계였을까?

로댕은 카미유의 재능과 열정을 모두 가져갔다.

허울뿐인 약속은 종이 쪼가리에만 남았을 뿐.

어린 영혼을 갉아먹었던 건 아닐까?

 




당신이 이것을 보면서 느끼는 분노보다 이 형상을 빚으면서 느꼈던 내 고통이 훨씬 더 크니까요. 당신이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 즉 당신의 맹세와 약속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피투성이 돌 어딘가에서...

 

 

로댕과의 관계는 소문으로 번져 카미유에게는 상처로만 남았다.

가족들도 외면했고, 가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방아는 그녀 편이 아니었다.

철저하게 외톨이로 남은 카미유는 돌에 자신을 새겼다.

하고 싶은 말, 자신을 해명하는 말, 로댕에 대한 사랑과 울분과 분노와 애절함까지 모두 돌에 새겼다.

 

가능성에 한계를 긋는 시대의 관습에도 불구하고, 온 세상이 다 막아서더라도, 인생이 전혀 우호적이지 않을 때조차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그녀에게 그것은 조각이라는 사실만은 바꿀 수 없었다.

 

 

19살 처음 파리에 도착한 그녀는 매년 전시를 가졌다.

로댕을 존경했지만 로댕과 같다는 말은 듣기 싫었으니까.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과 로댕을 구별하는 법을 찾아냈다.

하지만 여자이기에 그녀를 인정하지 못한 사회적 환경이 그녀에게는 더 없는 모독이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의 작품들이 부당한 처사를 받는 것도 그녀에게는 모욕이었다.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 그 시대에는 틀린 것이었기에...

 

"이것들은 로댕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들이다."

"이것은 로댕의 것과는 전혀 다르다."

 

로댕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것이 카미유의 바람이었지만, 세상은 늘 로댕의 그늘 아래 카미유를 놓아두었다.

그 모든 것들이 카미유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분노하고, 절망하고, 절규하며 그녀는 스스로를 고독에 가두었다.

 

가난과 자격지심은 그녀를 파괴로 몰아갔다.

그녀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킨 사랑은 그녀 스스로 자신의 작품을 파괴하게 만들었다.

카미유 혼자 얼마나 외로웠을까?

 

예술적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 무너져가는 과정을 보는 것이 아프다.

카미유의 입장에서 카미유를 그려낸 작가의 글들이 그 아픔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관심 없었던 내가 카미유 클로델이라는 이름을 로댕의 연인으로 밖에 생각하지 못한 나를 그 시대 카미유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과 동급으로 보이게 했다.

 

나는 <여기, 카미유 클로델>에서 카미유를 처음 알았다.

로댕의 뮤즈가 아니라, 예술가 카미유 클로델을 처음 만났다.

 

가난과 무지의 시대가

한쪽의 영혼에 빨대를 꽂아 쭉쭉 빨아먹은 사랑이

여자라는 꼬리표에 달린 세상의 편견이

이미 명성을 얻은 남자의 그늘에 가려진 외로운 예술혼이

철저하게 파괴되는 과정을 보았다.

 

표지에 담긴 결연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어두운 표정의 카미유 클로델의 모습은

그녀가 살았던 세상의 모든 짐이 담긴 표정이다.

완고했던 예술가의 불행은 어쩜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21세기에 그녀가 환생한다면 가장 자기다운 모습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시대가 그녀를 묻어 버린 거 같다.

그녀의 작품을 직접 보면서 그 손길과 열정을 느껴보고 싶다.

이 책이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대변해 주는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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