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행성 1~2 - 전2권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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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번식 속도와 놀라운 진화 능력을 보여 주는 한 동물 종의 침략을 받고 이곳에 쫓겨 와 있는 게 우리의 슬픈 현실이다.

 

 

바스테트 여신의 이름을 가진 고양이 바스테트는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고양이 144마리, 인간 12명, 돼지 65마리, 개 52마리, 앵무새 1마리 총 274명을 데리고 신세계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들이 육지에 닿기도 전에 뉴욕이 쥐들의 소굴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다를 헤엄쳐 그들이 타고 있는 배를 공격하는 쥐 떼들을 맞이한 고양이 바스테트와 그를 믿고 신세계를 찾아 따라온 자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예언가라는 소명을. 과연 내가 아브라함, 모세, 차라투스트라, 부처, 예수의 뒤를 이어 예언가라는 명칭에 걸맞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모든 종을 아우르는 세상의 여왕이 되고 싶은 바스테트는 뉴욕에 도착하자마자 사랑하는 연인 피타고라스를 잃는다.

미국 쥐들의 왕 알 카포네는 뉴욕을 점령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남은 인간들을 소탕하려 한다.

가장 높은 빌딩의 꼭대기 층들에서 연명하는 인간과 동물들은 알 카포네의 공격으로 빌딩들마저 쓰러지자 공포에 휩싸인다.





고양이 바스테트의 시점으로 본 인간들은 정말 한심하기만 하다.

하지만 하나도 틀린 구석이 없으니 뭐라 변명하기도 어렵다.

인류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도 소통을 이루지 못하고 싸움박질을 하는 모습들을 고양이의 시선으로 보고 있자니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제3의 눈을 통해 인간 역사의 지식을 쌓은 바스테트.

인간을 한심하게 여기면서도 모든 종을 아우르는 여왕의 자리에 오르기를 희망하는 바스테트.

바스테트의 희망 사항은 실현이 될까?

 

 

 

오랜만에 읽는 베르베르의 <행성>은 색다른 사색을 부여한다.

다른 동물종의 눈으로 보는 인간의 모습은 정말 못나 보인다.

 

인간들 유전자 깊숙한 곳에는 죽음의 충동이 새겨져 있어. 외부의 적을 향해 총구를 돌리는 게 인간들이지. 이래서 자기 파괴적인 인간들 대신 우리 고양이들이 지구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 거야.

 

 

<행성>은 소통과 공존에 관한 이야기다.

소통을 방해하는 바벨 바이러스의 발상은 정말 베르베르의 상상력에 다시금 열광하게 만든다.

바스테트의 생각처럼 모든 종들의 대표에게 제3의 눈을 이식해서 서로 소통하게 된다면 어떤 세상이 될까?

인간종으로 인해 황폐해져가는 지구의 모습을 보는 와중에 <행성>을 읽게 되었기에 바스테트의 생각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수많은 동식물이 인간에게 이롭지 않다는 이유로 멸종되었다.

어쩜 다른 동식물종에겐 인간이 가장 불필요한 동물로 멸종되길 바라는 종일 수도 있지 않을까?

 

<행성>을 읽으며 인간이 저지르는 일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급변하는 기후변화에도 우리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환경이나 기후변화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어쩜 <행성>에서처럼 인간의 문명을 파괴하는 쥐 떼들이 몰려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방어를 하게 될까?

그랜트 장군처럼 핵무기를 쓰게 될까?

 

 

 

천성이 <나쁜> 동물은 없습니다. 지구 생태계의 조화를 수용하는 동물과 그렇지 않은 동물이 있을 뿐이죠.

 

 

인간이 만들어 낸 문명이 지구를 파괴하고, 나아가 수많은 종들을 멸종시켰다.

이제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그런 인간들에게 경종을 울릴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반성의 기회를 준다.

바스테트의 생각처럼 자연의 순리대로 다른 종들을 존중하며 살 수는 없을까?

 

무지함을 배움으로 극복한 인간종은 그랜트 장군을 대표자로 선택했다.

이후의 지구의 운명은 어찌 될지 생각만 해도 씁쓸하다.

이야기 중간중간 삽화처럼 끼어있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새로운 버전은 인간의 역사에서 위대함과 무지함을 동시에 보여준다.

더 이상 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종이 없기를 바란다.

그들과 공존하며 살아갈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인류의 문명은 지구에서 자취를 감출 거 같다.

 

간만에 읽은 베르베르의 상상력은 이 지구의 주인이 인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지구 최상의 포식자인 인간은 이제 파괴의 문명이 아니라 공존의 문명을 이루어 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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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이웃들 - 우리 주변 동식물의 비밀스러운 관계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지음, 류동수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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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모든 동식물을 해로운 것과 이로운 것으로 나누는 기존의 사고방식은 내려놓아야 한다.특정 수확물만 일방적으로 최대화하는 일은 자연계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종의 빈약화를 낳는다.

 

 

세계적인 원예학자 안드레아스 바를라게의 <선량한 이웃들>을 읽는 시간은 관심 없는 것들에 대한 무지함을 깨는 흥미로운 일이었다.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와 흰방울새 소리를 찾아 들으면서 나이팅게일의 다채로운 울음소리와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내는 113데시벨의 우렁찬 소리를 드는 순간은 짜릿했다.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이 소리들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참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만 듣고 살았어 내게 나이팅게일의 노랫소리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먹이사슬의 최고 위에 군림하는 인간은 다양한 생물의 종을 멸종하게 만들었다.

그중에는 단지 입맛에 안 맞고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씨앗을 뿌리지 않은 종들도 있었다.

우리가 즐겨 먹는 바나나는 하나의 종만이 살아남았다고 한다. 만약에 바나나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생기면 지구상에서 바나나는 영원히 사라질 거라는 뉴스를 보았을 때만 해도 설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그 심각함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정원을 가꾸며 정원을 찾아오는 모든 동식물을 이웃으로 이야기하는 <선량한 이웃들>은 정원의 생태계를 통제하려 하지 말고 이웃들과 잘 지내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도시에서 정원 가꾸기를 한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과도 같다.

거의 아파트의 숲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정원은 먼 나라 이야기와도 같다.

그럼에도 곳곳에서 꽃을 키우고 베란다에 식물들을 키우는 분들이 많다.

마당이 아니라 베란다여서 찾아오는 이웃이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읽어두면 유익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다.

 




그림들이 정교하면서도 예뻐서 작가가 직접 그린 걸까? 생각했는데

슈트트가르트 뷔르템베르크 주립도서관의 소장 도서 중에서 선별한 도판들이란다.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안드레아스가 말하는 선량한 이웃들과 잘 지내는 방법이다.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곤충에게 겁먹고, 징그러워하는 이유는 그들과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도시에서만 살아서 벌레들만 보면 도망치기 바쁜데 사실 그 벌레들이 나에게 어떤 해를 끼친 적은 없다.

내가 그들을 쫓거나 발로 밟은 해를 끼친 것에 비하면..

 

자신이 직접 정원을 가꾸며 배우고 익힌 살아있는 지식들을 아낌없이 전달해 준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정원 꾸미기에 관심이 있는 분들.

정원은 없지만 자연의 섭리로 내가 피하고 싶은 동식물을 퇴치하고 싶은 분들.

자연을 벗하며 살면서 접하지 못했던 동식물들에 관한 지식이 필요한 분들.

내가 알고 있는 이 이웃들에 관한 상식이 옳은 건지 확인해 보고 싶은 분들에게 읽어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정원을 가꾸지 않고도 정원의 이웃들을 손쉽게 알아갈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이 정원이 한국이 아니라 독일 정원이라는 점이 조금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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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눈 키우는 법 - 우세한 눈이 알려주는 지각, 창조, 학습의 비밀
베티 에드워즈 지음, 안진이 옮김 / 아트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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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우세한 눈은 표정의 단서를 찾고, 상호작용의 전반적인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상대의 시각적 몸짓 신호와 얼굴 표정과 목소리의 음색에 주목하지만 말로 표현되는 언어는 그만큼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덜 우세한 눈은 대화에 조용히 참여한다.

 

우세한 눈이 알려주는 지각, 창조, 학습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은 <보는 눈 키우는 법>

참 흥미로운 책이다.

내 눈은 어느 쪽이 더 우세할까?

 

<보는 눈 키우는 법>은 더 우세한 눈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소개한 책이다.

그러려면 우선 우세한 눈이 어떤 눈인지를 알아야 한다.

간단한 테스트가 3가지 나온다. 나는 '오른쪽 눈'이 우세한 사람이다.

오른쪽 눈은 좌뇌를 관장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뇌를 발달시키기 위한 노력을 부단하게 해야겠다. 세상을 공정(?) 하게 바라보려면...

 





우선 눈 편향의 차이를 눈여겨보면 무엇보다 대화중에 우세한 눈을 판별해서 그 눈과 소통할 수 있다. 다음으로 상대와의 관계가 가벼운 만남 이상일 때, 우세한 눈과 덜 우세한 눈의 여러 패턴을 알고 있으면 다른 사람의 진정한 자아를 적어도 일부는 들여다볼 수 있다.

 

 

상대의 우세한 눈을 알아보면 그에 맞춰 상황을 나에게 이롭게 이끌어 낼 수도 있다는 점이 뇌에 쏙~ 들어온다.

나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사람과 대화할 때 어떤 행동을 취해야 빨리 그 순간을 끝낼지를 알려주는 저자의 팁은 킵해야겠다.

 

항상 그림에 대한 목마름 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대로 따라 그려보면 나도 그림을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은 내게 부족한 우뇌를 발달 시키는 일이기도 하기에 좌뇌가 말하는 "그림 그리기 어려워!"라는 말을 잠재워야겠다.

 

우세한 눈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깔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이 결국은 뇌를 골고루 발달시켜서 내가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한다. 보통 뇌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단순함으로 뇌를 통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는 발상이 신선했다.

 

무엇이든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양쪽의 뇌를 다 사용하지 못하는 것 역시 내 인생의 풍족함을 반만 누리는 것이다.

머리가 복잡할 때 나는 주로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았는데, 이제는 종이와 연필을 놓고 드로잉 연습이라도 해야겠다.

그렇게 언어적 뇌를 재워서 좀 쉬게 하고 시각화하는 능력을 키우는 뇌를 깨우면 전혀 다른 것들이 보일 것이다.

그것은 상황을 다르게 인식하게 되는 차이를 준다. 그러니 그림이나 글씨를 쓰면서 늘 활성화된 뇌를 쉬게 해주고 비활성화되어 있는 뇌를 깨우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겠다.

요즘 주변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과 필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라 유행인가? 했었는데, 다들 자신들의 뇌를 발전시키고 있었던 거였다. 나만 게을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이 그리고 싶은데 전혀 소질이 없다고 지레 짐작하고 계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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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은 어디에
재클린 부블리츠 지음, 송섬별 옮김 / 밝은세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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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은 도대체 그런 짓을 왜 했을까?

 

 

아무리 곱씹어 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게 범죄다.

강간하고 죽이는 일은 그 어떤 사람이라도 이해도 대답도 못할 일이다.

 

비슷한 시간에 뉴욕에 도착한 두 여자 앨리스와 루비.

한 사람은 시체가 되었고, 한 사람은 죽은 그녀를 발견했다.

이야기는 죽은 앨리스의 목소리로 시작된다.

자신이 고향을 떠나 뉴욕에 오게 되고 루비를 통해서 발견되는 과정을 죽은 자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이야기.

<네 이름은 어디에>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평번한 하루에서 온전히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피해자임에도 들어야 했던 악담.

이름 없이 리버사이드 제인으로 불려야 했던 앨리스.

그녀에게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던 루비.

한 사람의 열정은 한 사람의 이름 없는 죽음에 온전한 이름을 부여해 준다.

 

눈물을 흘리거나 고함을 지르거나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울부짖으면서 몸부림쳐도 남자들은 야만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어. 내가 무슨 말을 해도 그의 행위를 멈추게 할 수 없었지. 그는 끝까지 욕망을 채우려고 내 몸 위에서 꿈틀거렸고, 뼈가 부서지고 피가 너무 많이 쏟아져 숨이 그 자리에서 끊어질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았어. 그는 마치 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이 나를 가차 없이 말살했지.

 

 

범죄소설이고 추리소설이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난 이야기다.

피해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죽음을 발견한 사람의 이야기까지 내레이터 형식으로 이어나가는 이야기는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다.

침묵하고 외면받았던 여성들의 조용한 움직임이 이야기에 담겼다.

잊히고, 지워졌던 여성들의 침착한 분노가 담겼다.

 

사진작가를 꿈꿨던 한 소녀에게 일어난 일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을까?

나는 그와 비슷한 죽음들에 대한 기사를 거의 매일 본다.

어쩜 기사화조차 되지 못한 이야기들도 수없이 많겠지.

어쩌다 여자들은 밤길을 무서워하고, 혼자 돌아다는 걸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세상의 절반은 여자인데...

내가 살아 있었더라면, 누군가가 그날 아침 나를 죽일 마음을 먹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뉴욕에 있는 동안 내내 서로를 찾고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었을 텐데. 우리는 결국 만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어쩌면 우리는 모두 스쳐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 스침에 앨리스가 있고, 루비가 있고, 이름 모를 제인들이 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웃이 되거나 친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온전히 집에 돌아올 수 있다면...

 

죽은 자의 말은 산자의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다.

 

새로운 형식의 추리소설이 필요한 분들.

<러블리 본즈>와 <한순간에>를 재밌게 읽으신 분들이라면 <네 이름은 어디에>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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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2
요 네스뵈 지음, 문희경 옮김 / 비채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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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든 해리를 헐뜯을 수 있고 실제로 그러는 사람이 많은 건 알지만, 누구도 그가 진정한 경찰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가 받은 몇 안 되는 축복이자 제일 큰 저주였다.

 

 

해리 홀레 12번째 이야기 <칼>.

읽는 내내 뾰족하면서도 묵직한 느낌이 온몸을 돌아다녔다. 낭자한 피 웅덩이와 함께...

 

전편 <목마름>에서 해리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를 보냈다.

마치 그 뒤에 올 죽음의 폭풍을 예고하듯이. 그래서 <목마름>을 읽으면서도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이 불운을 탑재한 형사에게 '행복'은 절대 가까이할 수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다음 편을 목마르게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이미 최악의 불행이 예상됐기에...

 

언제나 이야기는 예상대로 흐르지 않는다. 요 네스뵈의 이야기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독자들을 단련시킬 수 있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작가다.

여기저기에 뱉어 놓은 말들이 하나로 합쳐질 때.

그 뜻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대수롭지 않게 놓쳐버린 말들이 어느 순간 중요한 대목이 될 때.

앞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그 말들의 의미를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





해리의 단 하나의 사랑 라켈.

그녀가 죽었다.

피범벅이 된 채로 깨어난 해리는 기억이 없다.

사라진 기억 사이에 라켈의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스베인 핀네가 돌아왔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해리를 찾아서.

고통보다 더한 슬픔 사이에서 해리는 범인을 찾아 그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한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뭘 보고 싶었던 걸까? 뭘 볼까 봐 두려운 걸까? 뭘 보기를 바라는 걸까?

 

이제까지 나는 이야기 속에서 범인을 만났고, 그의 심리 상태를 알았고, 그의 복수심을 알았고, 그와 해리와의 관계를 알았다.

그래서 타당하기까지 했다. 그 모든 범죄들과 해리의 행동이.

<칼>에서는 그 모든 것들을 알 수 없었다.

철저하게 범인을 배제시킨 이야기 앞에서 그저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사람은 늘 가장 빠르고 확실한 사실 앞에서 언제나 머뭇거린다.

그렇게 머뭇거리다가 잊히거나, 묻히거나, 포기하거나, 없었던 일이 되기를 바란다.

가장 중요한 진실과 진심 어린 사과는 안중에도 없다. 뼈아픈 실수였더라도 그저 묻히길 바랄 뿐이다.

그러나.

진실은 언제나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가장 돌이킬 수 없을 때...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을까?

누군가 진실했다면?

누군가 진심으로 사과했다면?

누군가 자신의 속내를 먼저 터뜨렸다면?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이 알게 되겠지.

앞으로 우리는 이유를 알게 되겠지.

기운을 내요, 형제여, 햇빛 속에 살아요.

머지않아 우리는 모든 것을 알게 되겠지.

해리는 이 노래를 수없이 들었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는 의미의 노래만은 아니었다. 기만적인 자들이 얼마나 잘 사는지, 반면에 그자들에게 속은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에 시달리는지에 관한 노래였다.

 

진실 앞에서 해리는 눈을 돌렸고

진실 앞에서 라켈은 해리와 거리를 두었고

진실 앞에서 한 사람은 침묵했고

진실 앞에서 한 사람은 매일 고통에 시달렸다.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 눈에 기만적인 자들의 모습은 배신이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그의 본성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폭발한 것은 매일 그 고통의 실체를 눈으로 봐야 했기 때문이다...

 

"서부 출신 검은 머리 여자와 토텐 출신 빨간 머리 남자 사이에서 금발의 바이킹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니."

미소 지으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고 아이가 다시 눈을 감을 때까지 나직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제야 전율이 일었다. 그 눈빛이 죽음 저편에서 그녀를 쳐다보는 누군가와 닮아서.

 

시리즈 중간중간 뿌려 놓은 떡밥들이 이렇게 회수될지 몰랐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옳은 말이다.

사람을 병들게 하는 것은 가까운 사람들의 기만과 배신이다.

증거가 눈앞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들 모른 척했다.

누군가는 입을 열고 사실을 말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책임은 또 다른 희생양을 찾았을 뿐이었다.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희생되고, 기만적인 사람들은 살았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닐 테지만...

 

해리 홀레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늘 그 이야기가 시리즈의 백미라고 생각했다.

틀렸다.

해리 홀레 시리즈의 백미는 <칼>이다.

<칼>은 해리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잘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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