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마법도구점 폴라리스
후지마루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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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 품은 생각이 강렬해지면 마법이라는 개념이 생겨. 마법이 물건 안에 깃들면 마법 도구가 되고, 사람 안에 깃들면 마법사가 되는 거야.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건 어떤 걸까?

보통은 그런 능력이 생겨서 일어나는 일들이 마법 세계에는 종종 있다.

상대의 생각이나 마음을 읽는 능력은 어쨌거나 도움이 되니까.

 

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 도노는 반대로 왼손이 다른 사람에게 닿으면 자신의 마음을 들켜 버린다.

자신의 생각이 여과 없이 상대방에게 노출되는 상황 때문에 도노는 사람들을 꺼리게 된다. 그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자꾸 악몽을 꾸던 도노의 머리맡에는 항상 열쇠 꾸러미가 놓여있다.

그러다 어느 날 식당에서 한 학생이 한 말에 혹하게 된다.

골동품 가게 폴라리스가 다름 아닌 고민을 해결해 주는 곳이라는 정보였다.

열쇠 꾸러미의 정체를 알아 내기 위해 찾아간 폴라리스엔 도노가 다니는 대학에서 가장 미인으로 소문난 쓰키시로가 있었다.

 

"내 마법에는 사연이 있어. 새벽 3시 33분, 별이 총총히 뜬 밤에만 완전히 통제할 수 있어."

 

 

새벽 3시 33분.

쓰키시로가 마법을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이다.

도노가 왼손을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자신의 마음을 들키는 것과 달리 쓰키시로는 왼손에 마법이 깃들어서 마법 도구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도노의 열쇠 꾸러미에 담긴 의미

저주가 깃든 나무에 담긴 할아버지의 염원

소원을 이루어주는 드림캐처의 진실

죽은 자가 걷는 거리의 비밀.

 

마법은 저주다. 불완전한 마음이 빚어내는 고통 덩어리. 나는 세상의 진실을 접하게 될 예정이었다.

 

 

마법이 존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내게도 절실하게 필요한 게 마법인데.

마법 도구의 할인으로 죽은 자들을 돌려보내 준다면 그래서 못다 한 말들을 나누며 응어리를 걷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한 일이었다.

쓰키시로와 도노가 함께 운영해 가는 마법도구점 폴라리스를 찾아 오는 사람들의 사연은.

쓰키시로의 새벽 3시 33분은 또 다른 생명이 밤하늘에 깃든 시간이다.

서로의 상처를 극복해가는 방법들은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일이다.

 

겉으로 보이는 순간이나 상황들로만 누군가를 판단했을 때 갖게 되는 오해들

그게 오해라는 걸 알면서도 풀지 못하고 담아두는 사이에 사람들의 마음에는 원망과 좌절과 고통이 스민다.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상처가 되어 저주로 남는다.

그러니 응어리진 상처는 풀어내는 것이 좋다.

머리는 알지만 마음이 따르지 않는 이 방법은 정면돌파 밖에는 답이 없다.

회피하고, 우회하려고만 하면 마음은 더 엉킬 뿐이니까.

 

마법도구점 폴라리스를 찾은 사람들의 문제를 풀어가며 응어리진 마음도 풀어가게 된다.

단순한 이야기와 뭔가 어리숙한 문체는 오히려 마법 세계의 특별함을 보여주는 거 같다.

 

인간적이지 않아서 더 인간적인 모습들을 통해서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다.

나는 그토록 간절한 염원을 남길 만큼 누군가를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마법은 어쩌면 언제든 옆에 있는 것인데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려서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게 아닐까?

 

소소한 마음의 염원을 키워보면 내게도 마법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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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 머리를 한 여자
스티븐 그레이엄 존스 지음, 이지민 옮김 / 혜움이음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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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크 머리를 한 여자는 그가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삶을 스스로 무너뜨리기를. 그렇게 되면 그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앉아서 감상만 하면 될 뿐.

 

 

10년 전 루이스, 리키, 가브리엘, 캐시디는 사냥 금지 구역에서 엘크 떼를 만난다.

그들은 마을에 풍족한 고기를 공급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꺼이 사냥을 한다.

 

루이스는 어린 엘크의 질긴 생명을 끝내지만 그 어린 엘크가 임신 중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다.

어떤 금기는 어겼을 때 절대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죄책감에서...

 

평생 그는 잘못된 곳을 바라봤다.

 

 

인디언 자치구에서 두 친구는 빠져나왔고, 두 친구는 남았다.

그러나 10년 뒤 이 친구들에게는 죽음이 찾아온다.

새끼와 함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엘크가 돌아왔다.

복수를 위해...

 

뭔가 서정적인데 꽤 잔인한 장면들이 군데군데 포진해 있는 <엘크 머리를 한 여자>

백인과 함께 사는 루이스에게 일어난 일은 착란이었을까?

아니면 그의 죄책감이 그를 10동안 야금야금 좀먹었던 걸까?

인디언 자치구를 도망쳐 나와 백인 여자에게 정착했으면서도 그는 항상 떠돌았다.

 

언제가 자신에게 벌어질 일을 예감한 듯이

어쩜 스스로 그날을 준비했는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되풀이할 수 있게.

 

인디언의 설화와 그들의 현재 삶과 인디오들의 삶을 한꺼번에 보여주는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소름 끼친다.

인간과 인간의 대결이 아니라서 예측할 수 없었고,

예측할 수 없어서 더 조마조마했다.

상상이 만들어낸 허상에 시달리는 사람들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가까스로 이 세상에 돌아온 너는 만신창이가 된 트럭에서 찢어 낸 담요에 몸을 감싼 채 길 끝자락에 위치한 집 옆에 서 있다. 차가운 발은 더 이상 단단한 발굽이 아니며 손에서는 손가락이 나오기 시작한다.

몇 시간 전만 해도 너는 그의 눈에 '열두 살'로 보였을 거다. 1시간 전에는 인디언 자치 지구를 향해 달아나던 살인자의 품에 안겨 있는 새끼 엘크였다. 그전에는 무리 가운데 떠돌던 인식, 갈색 몸에서 갈색 몸으로 순환하던 기억이었다.

 

 

 

엘크는 돌아왔다.

자신을 죽인 살인자들을 처단하러.

한 사람은 맞아 죽었고, 한 사람은 아내와 직장 동료가 엘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살해했다.

두 사람은 엘크가 뿌린 오해의 씨앗을 먹고 서로를 죽음으로 몰았다.

엘크의 살육으로 시작해서 인간의 살육으로 끝날 거 같았던 이야기는 급 반전을 맞는다.

 

그녀는 경사지를 향해 오른손을 뻗고 손바닥을 펼친 뒤 손가락을 쭉 편다.

 

인디언의 손짓엔 언어가 담겼다.

마지막 살벌한 농구 경기 장면은 영상미가 있어서 머릿속에서 필름이 도는 느낌이었다.

설원에 뿌려진 핏방울이, 배를 가른 시체들이, 짓밟힌 개의 사체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지만

마지막 페이지에서 안도의 한숨이 쉬어지는 건 독자에 대한 배려 같았다.

 

근데

정말 엘크가 사람의 형상으로 환생할 수 있는 걸까?

이성은 다 지어낸 거라 말하지만 감성은 왠지 그럴 것만 같은 엘크 머리를 한 여자.

무더위에 읽으면 더 좋을 거 같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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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 이야기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4
엘리자베스 개스켈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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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 작가 엘리자베스 개스켈.

<고딕 이야기>라는 제목에서 어딘지 모르게 다른 세계가 느껴진다.

뭔가 어둡고, 답답하고, 망령들이 우굴대는 그런 세상.

 

 

일곱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긴가민가 하는 궁금증과 함께 으스스한 분위기를 가졌다.

읽고 있으면서도, 읽고 나서도 좀체 떨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다.

이게 개스켈 스타일인가?

 

 

<실종>은 진짜 있던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거 같아서 그 근거를 찾아 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지금처럼 형사들이 있어 수사를 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글 앞에서 지금도 실종되는 사람들을 그려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은 그 사람의 행적을 조금이라도 쫓을 수 있지만 이 이야기에서 실종된 사람들은 그 행적조차도 모른다.

그 적막함과 절박함이 글로 전해져 내 안에 담기면 그 실종의 존재가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 비현실적 존재 외에는 아무것도 현실적인 것이 없었다. 그 존재는 악마의 강풍처럼 내 육신의 눈을 뚫고 들어와 뇌에서 불타올랐다.

 

 

여성 3대에 걸친 비극.

누군가의 죗값은 대를 걸쳐 그녀들이 치뤄야 했다.

시대 안에 갇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개스켈은 잘 그려내는 거 같다.

스스로를 저주할 수 밖에 없는 사람. 누가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브리짓에게 당신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양한 사회활동을 했던 경험으로 당시 여성들의 모습을 이야기속에 녹여낸 엘리자베스 개스켈.

딱 꼬집어서 이래서 공포스럽다기 보다는 스멀스멀 퍼지는 안개처럼 두려움의 기운이 스며있는 글들이다.

봄날의 화사한 햇빛을 묘사해도 개스켈이 표현한다면 그 햇빛 자체도 저주가 될 거 같다.

 

 

에세 세계문학 4번째 <고딕 이야기>

엘리자베스 개스켈을 만나 고풍스러운 공포를 체험했다.

읽으면서 조마조마하고, 읽고나면 그 조마조마함이 근거 있는 불안으로 자리 잡는다.

현재의 시간이 아니라서 더 매력적임과 동시에 당시 여성들의 고단함을 넘어서는 의지를 함께 느낄 수 있었다.

 

 

에세의 세계문학을 세 권 읽었는데 그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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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초월 1
우다영 외 지음 / 허블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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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기억을 마음속에 너무 오래 품으면 그 기억은 누구의 기억도 아니게 된다.

 

 

우다영, 조예은, 심너울, 문보영, 박서련

다섯 작가의 중단편이 담긴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모두 어떤 이야기의 시발점이 될 것이다.

 

각자의 이야기의 프리퀄인 이야기들 앞에서 이후의 이야기들을 상상해 본다.

이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이들은 다음 이야기에서 어떤 존재들일까?

이 세계는 다음 이야기에서 어떤 작용을 할까?

 

SF 불모지라고 생각했던 한국에서 젊은 작가들이 뿜어내는 이야기들은 거대하지 않아서 좋다.

소소한 보통의 삶에서 일어날 수도 있을 거 같은 이야기들이 가지를 뻗어 전혀 다른 이야기와 세상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미래를 예견하는 사람들의 데이타를 모아 만든 AI.

그 AI는 대재앙을 예견한다. 결국 인공지능은 인간이 만들어 내는 데이타로 통계를 낼 뿐.

세상을 구할 수 있는 건 인간의 자정능력일 터. 과연 한 사람의 힘으로 대재앙을 막을 수 있을까?

 

무엇이든 집어삼키는 호수. 그 호수에 자신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버리는 사람들.

그들이 버린 것들이 차올라 거대한 괴물을 토해내는 호수를 보며 자연을 인간을 위해 마련한 각종 재해들이 떠오른다.

 

운석 충돌 이후 생긴 초능력자들. 그들을 통제하려는 정부.

<커뮤니케이션의 이해>는 소통과 차별과 편견을 초능력을 가진 자들을 통해 보여준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니까...

 

인간 유년의 기억칩을 이식받는 로봇.

이 로봇에게도 정체성이라는 게 있을까?

인공지능 로봇은 어째서 인간이 되고 싶은 걸까?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

 

이 지구가 다른 외계행성 사람들이 죽은 후에 다시 태어나는 장소라면?

나는 어떤 행성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어쩜 모든 생명체는 각각의 행성에서의 삶을 끝마친 후 다른 행성으로 이동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닐까?

 

짧지만 기가 막힌 이야기들의 향연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한국의 SF에는 무한한 인간애가 담겨 있어서 좋다.

이 다섯 작품들의 이후의 이야기들을 읽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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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와타야 리사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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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널 친구라고 생각한 적 없어.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고등학교 때 동경하던 선배를 대학생이 된 후에 만나 사랑에 빠진 아이.

소우와 함께 여행지에서 만난 소우의 친구 커플.

놀랍게도 남친의 친구 애인은 유명한 연예인이었다.

 

동성 친구 하나 없을 거 같은 냉정 맞은 사이카.

어색한 분위기를 살려보려 친근하게 대했지만 왠지 무시당하는 느낌이 드는 아이.

그러나 그 도도하고 냉정 맞은 사이카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소우에게 청혼까지 받은 상황에서 아이는 사이카의 열정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든다.





몇 년 전 그해, 여름 손님(Call me by your name) 이라는 안드레 애치먼의 소설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는 그에 버금가는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섬세한 감정의 흐름과 세간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을 지켜가려는 그녀들의 노력이 참 예쁘고 단단하다는 느낌이 든 이야기였다.

남녀 간의 사랑이라도 이렇게 지고지순할 수 있을까?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음에도 저돌적으로 아이를 향한 마음을 표현하는 사이카.

평범한 가정에서 살아온 아이는 절대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이카의 마음을 알고 난 이후로 자신도 모르게 그녀에게 끌린다.

이 두 사람의 마음이 한데 합쳐진 것도 잠시 누군가 두 사람의 모습을 찍어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될 순간이 온다.

사이카의 소속사에서는 간신히 보도를 막고 두 사람에게 헤어지라고 한다. 잠시만. 잠잠해질 때까지. 사이카가 정상에 올라 자신들이 투자한 것을 회수할 때까지. 순진하게 그 약속을 믿고 사이카의 장래를 위해 헤어지기를 결심한 아이.

 

사랑은 그렇게 나보다 상대방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법이다.

 

이런 건 절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는 안전지대에 있을 수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 많은 만큼 삶은 평화롭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하나의 경계선이 사라지려는 것뿐인데 나는 이토록 불안정했다. 설령 자신이 그은 선이 아니더라도.

 

 

사회적 잣대 앞에서 굴복하는 커플이 얼마나 많을까?

사회적 잣대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커플은 또 얼마나 많을까?

수위 높은 장면들 앞에서 뭔가 어색하거나 거부감이 들 거라 생각했는데 그런 생각이 먼저 든 것은 나 역시도 선이 그어진 사람이라서일까?

 

궁금했었다.

퀴어 소설에서도 왠지 남녀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는 거 같았으니까.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를 읽으며 남자와 여자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그저 인간으로서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과연 지탄받아야 하는 일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랑의 행위는 어째서 남녀 간에만 허락되는 걸까?

그건 누가 정한 걸까?

사랑의 행위는 그저 사랑한다는 몸짓일 뿐이다. 그것을 성별로 나누면 금기가 될 뿐.

 

어느 대목에서도 거부감이나 거리낌이 없었으니 내가 열린 사람인 걸까, 아니면 작가의 필력이 좋았던 걸까?

 

사이카와 아이의 사랑을 반대할 이유가 나는 없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 사랑받았다면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도 사랑받아야 하니까.

 

처음 여성과 사귀면서 알게 된 건, 여성과의 연애는 남성과의 연애에 비해 순도가 높고 불순물이 적다는 것이었다.

 

 

작가의 필력 때문에 자신의 사적인 감정이 포함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었는데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깔끔한 이야기는 나오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에 관한 이야기였다.

쉽게 불타오른 만큼 쉽게 꺼져버릴 줄 알았지만 그 불씨는 누군가의 가슴속에서는 은은한 불꽃이 되어 살아 있었고,

누군가의 가슴속에서는 재가 되어 꺼져가는 불씨처럼 몸이 사그라 들었다.

 

우리의 관계는 타인에 의해 갑자기 중단되었다. 강제로 문이 닫힌 뒤로는 계속되지도, 변화하지도 않았기에 사랑의 절정, 그 완벽한 상태로 몇 년이고 보존됐던 거겠지.

사랑이 시들어가는 것을 지켜볼 필요가 없었기에 가장 빛나는 추억 삼아 몇 번이고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 왜 끝나버린 걸까, 안타까워하며 음미할 수 있었다.

 

 

와타야 리사의 작품은 처음인데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라는 소설 제목은 기꺼이 기억하고 있다.

문장의 흐름이 섬세해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독자들을 이해시키는 필력이 있는 거 같다.

 

처음부터 내내 좋아했어.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지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책을 읽는 동안 서서히 내게 스며들었다.

어쩜 어떤 경계에 서 있다가 이 책으로 인해 그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했다고나 할까.

 

경계를 넘는 사랑은 그 자체로 축복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기 때문에는 변명으로 자기 사랑을 지키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과도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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