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메이징 브루클린
제임스 맥브라이드 저자, 민지현 역자 / 미래지향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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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깨달음이 왔다. 우리는 같은 신세구나. 갇혀 있어.

 

 

60년대 뉴욕의 허름한 동네.

마약이 있고, 다양한 인종이 머물고, 교회가 있고, 이탈리아 갱들이 있는 도시.

그곳 광장에서 총성이 울리면서 시작되는 어메이징 브루클린.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 때문에 처음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고 그 많은 인물들이 왜 등장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주인공 위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주변인들의 이야기도 함께 돌아가서 복잡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어느 이야기에나 있는 고비를 넘기면 그 인물들이 주는 감정들이 점점이 박혀온다.

시대가 다르고, 사는 곳이 달라도 결국 그 사람들은 바로 내 주변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들이고, 지금도 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딤즈가 못 견디게 싫어하는 게 있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 불평을 끊임없이 해대는 사람들이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에 불평을 한다.

 

 

고만고만하게 사람들.

삶이 고달픈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불평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기 어려운 그곳.

 

한낮의 총성은 그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준 거 같았다.

너무 무심하게 보아오고, 묵인하고, 외면했던 삶의 모든 것들로부터 깨어나라는 듯이.

 

다양한 인종들과 다양한 세력들이 고만고만한 삶에서 우위를 점유하려는 갖가지 행동들과 생각들이 어메이징 브루클린 안에 있었다.

어째서 60년대 일까?

작가가 설정한 60년대엔 무엇이 있었을까?





그 시대 그 사회가 가졌던 인종 문제, 마약 문제, 꾸역꾸역 살아내기 바빴던 빈민층의 연대

피부색으로 사람을 다르게 취급했던 시간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냥 그것에 묻어가려는 사람도 있었고, 이꼴저꼴 보고 싶지 않아서 환상 속에서 사는 사람도 있었다.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그때의 이야기지만 지금 이 시간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변하듯 변하게 하나도 없는 그들의 모든 것이 지금이 현실에도 그대로니까..

그래서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고 나서 현실을 되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변한 듯 변하지 않은 현실을...

 

가난한 사람들은 여전히 불평불만을 입에 달고 있고,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고,

마약도 여전히 돌아다니고,

갱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세를 넓히려 하고,

현실에 있지 않고 꿈속에 사는 사람들도 여전하다.

 

가진 자들은 가진 거 없는 자들을 외면하고

가진 게 없는 자들은 그럼에도 끈끈하게 서로를 챙겨준다.

어메이징 브루클린은 어메이징 월드다.

모든 곳에서 이 이야기와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들이 흐르고 있으니까...

 

그렇게 정의를 실현함으로써 당신은 누군가를 위해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죠. 그러니 어찌 보면 당신과 나는 결국 같은 일을 하는 거예요. 오물을 치우는 일. 누군가 살아간 흔적들을 추적하고,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실수들을 찾아서 정리하죠.

 

 

세상은 지 자매가 말한 것처럼 묵묵히 정의를 실현해가며 사는 사람들로부터 지켜진다.

세상에 아무리 많은 범죄가 넘쳐난다 해도 정의를 실현하는 사람들에게는 역부족이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복잡함과 편안함이 함께 공존한다.

복잡한 인간사에서도 우리는 그들이 모두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건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마음과도 같다.

 

우리 모두는 평안하게 살고 싶어 하고,

우리 모두는 평안하게 살 권리와 의무가 있으니까.

 

어메이징 브루클린.

그곳엔 평안하게 살고 싶어 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것은 결코 어메이징 한 게 아니었다.

그것을 어메이징 하게 느끼는 현실이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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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방 - 나를 기다리는 미술
이은화 지음 / 아트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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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 세상을 바꾸거나 구원하지는 못하겠지만 내 삶을 바꾸거나 더 풍요롭게 만들 수는 있다고 믿는다.

 

 

미술관처럼 꾸며진 5개의 방은 주제가 있다.

발상, 행복, 관계, 욕망, 성찰의 이름이 붙은 방에 12점의 그림이 걸려있다.

익숙한 그림도 있고, 처음 보는 그림도 있다.

 

<발상의 방> : 예술의 관념을 깨기 위해 싸우고 도전했던 미술가

 

세계 최초의 추상화가는 칸딘스키가 아니었다.

힐마 아프 클린트.

평생 은둔하며 그림을 그렸지만 살아생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내 작품을 내가 죽은 뒤 20년 동안 봉인하거라."

 

 

역사에서 '최초'는 중요하다. 최초로 이룬 자들만이 기록되기 때문이다. 아프 클린트가 칸딘스키보다 5년 앞서 추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서양미술사는 새로 쓰여야 할 것 같다. 최초의 추상화가는 칸딘스키가 아닌 아프 클린트였으며, 그림을 이젤이 아닌 바닥에 놓고 그린 혁신적 시도 역시 잭슨 폴록 보다 최소 40년은 앞섰다고.

 

 

힐마 아프 클린트가 역사에 기록되기를 바란다.

 

푸른 하늘에 대고 사인을 한 이브 클랭.

그의 블루는 명작이 되었다.

캔버스에 파란색을 칠한 것뿐이지만.

나는 그 파란색 앞에서 오만가지를 느껴야 할 거 같은 강박을 느낀다.

이것 역시 관람의 발상 전환인 걸까?






<행복의 방> : 일상을 새롭게 인식하게 만드는 작가

 

 

포장의 달인이자 예술의 달인인 환경설치미술가 크리스토 자바체프와 잔클로드.

두 사람의 프로젝트는 인상적이다. 역사적 장소를 포장하는 사람들이라니.

그들의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과정 자체가 바로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는 거 같다.

 

 

전쟁 속에서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아이들의 모습을 무심히 보고 있으면 고달픈 세상사를 잊을 수 있을 거 같다.

핀란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해변에서 노는 소년들>은 아련하기만 하다.

 

 

고야는 세상을 풍자한 그림들을 약국에서 팔았다.

그것도 자신이 살고 있는 집 1층에 있는 약국이다.

자신의 판화가 어떤 파장과 반향을 일으킬지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

 

 

 

<관계의 방> : 인간관계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감정

 

남자친구에게 받은 이별 편지를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보내 분석을 의뢰한 소피.

그 결과물을 전시해서 모든 사람들과 이별의 슬픔을 나눴던 소피.

소피도 대단하지만 자신들의 개성에 맞게 편지를 해석한 사람들도 대단하다.

 

반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은 볼 때마다 결혼식이 아닌 다른 것이 떠오른다.

마치 불멸의 존재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듯한 느낌이 든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불편함과 공포가 보인다.

결혼이란 그런 것이니까.

결혼 전에 존재했던 사람은 결혼 후에는 존재하지 않는 법.

그 존재에게 나를 다 맡겨 버려야 하는 순간의 공포를 아주 잘 그려낸 작품인 거 같다.

물론 고야가 내 말을 듣는다면 기암을 하고 쓰러질지도 모르겠지만.

 

<욕망의 방> : 권력과 욕망

 

피핑 톰은 엿보기 좋아하는 사람이나 관음증 환자를 뜻한다.

이 말은 영국의 고다이바 부인의 전설에서 유래했다.

남편의 가혹한 세금 징수로 인해 고통받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알몸으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던 고다이바 부인.

모두가 부인의 희생을 고맙게 그녀가 마을을 도는 동안 집안에서 창문을 꼭 닫고 있었다.

그러나 재단사 톰은 궁금증을 참지 못해 살짝 엿보았고, 그 후로 장님이 되었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는 설이 있다.

 

결혼 3년 만에 갖게 된 실레.

행복한 생활은 잠시였고, 이후로 찾아온 스페인 독감으로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한꺼번에 잃는다.

그리고 3일 후 실레 역시 독감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찰의 방> :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성찰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성찰하게 되는 가장 큰일은 전쟁일 뿐이다.

이 책에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한국인 어머니> 라는 그림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건네져 온다.

폴란드 작가의 이 그림에서 뒤쪽에 그려진 연기는 미군이 폭격을 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공산국가의 해석은 미군의 폭격이지만 나의 해석은 그 반대편의 폭격이라고 생각된다.

그림도 결국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것이다.

 

60점의 그림들에 담긴 이야기.

이 책에 담긴 이은화 저자의 글은 보충 설명 정도로 새기고

스스로 그림에 담긴 느낌과 해석을 해본다면 어떨까?

저자의 글과는 다르게 느껴지는 그림들 앞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 역시 스스로를 성찰하는 방법이기도 할 테니까.

 

그럼에도.

짧은 글로 그림 속에 담긴 감정들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좋았다.

주제별로 묶고 짧은 그림에 대한 정보만은 주어서 독자들에게 더 많은 사색을 하게 하는 책.

<그림의 방>은 내게 그런 책이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 아무 곳이나 펼쳐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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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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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진정시킨 것은 바로 리처드 파커였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그 대목이다. 무서워 죽을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내게 평온함과 목적의식과 심지어 온전함까지 안겨주다니.

 

 

파이 이야기는 얀 마텔을 세상에 알린 이야기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이 이야기가 주는 충격적인 반전 때문에 내게 파이 이야기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됐다.

나는 아직도 두 이야기 중에 어떤 이야기를 믿을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

그저 믿고 싶은 이야기만을 믿을 뿐.

 

 

삶에 대한 이야기다.

혼자 헤쳐가야 하는 인생길에 복병 같은 벵골 호랑이와 처치 곤란한 하이에나와 도와줄 수 없었던 얼룩말과 도와주지 못한 오랑우탄이 있다.

꼭 필요했음에도 인식하지 못해서 떠가게 두었던 바나나

인생의 부표처럼 보트에 매달아 놓았던 뗏목

그리고 낯엔 꿈과 환상을 심어주고 밤엔 산화되어 뼛속까지 갉아먹는 식물들의 군상인 섬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살아왔음에도 그 이야기를 믿지 않는 사람들까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는 환상적인 이야기에서는 현실을 찾고

잔인한 현실 앞에서는 환상이 가득한 모험을 찾는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리처드 파커를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공포심이자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리처드 파커가 인간이 가진 생존 본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본능이 파이를 조련하고, 단련시키고, 극복해 내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분리해서 그 끝없는 망망대해를 살아남은 것이다.


 

 

파이가 전해주는 두 가지 버전의 생존기는 극심한 공포와 외로움 속에서 생존해야 했던 어린 소년의 성장기였다.

나는 두 번째 버전에서 배신감을 느꼈다. 아름다운 소년의 생존기가 훼손된 거 같아서.

그리고 곧 깨달았다. 현실은 언제나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잔인한다는 사실을 내가 간과하고 있었다는 것을.

 

 

침몰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침춤호처럼 삶도 이유 없이 가라앉을 수 있다.

그럴 때 당신 안에 숨어 있는 리처드 파커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내 안에 리처드 파커는 무한한 인내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저 견뎌 내는 것.

언젠간 다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그런 낙천적인 마음이 없었다면 지금에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첫 파이 이야기는 초판 16쇄 발행인 2005년 12월 12일이다.

두 번째 파이 이야기는 초판 58쇄 발행일 2021년 8월 17일이다.

세 번째 파이 이야기는 개정판 1쇄 2022년 3월 29일이다.

 

 

세 권의 책이 나에게 왔고,

세 번째 파이 이야기의 발행일은 내 생일이다.

그러니 파이 이야기는 나의 인생책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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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지식인 - 아카데미 시대의 미국 문화
러셀 저코비 지음, 유나영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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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문화의 빈자리, 젊은 목소리의 부재, 어쩌면 한 세대의 부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1987년에 쓰인 책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면 방금 출간된 따끈한 책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의 이야기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얘기해 주고 있는 거 같다.

 

교양 있는 대중을 향해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말할 수 있으며 자기 전문분야 말고도 사회 공론장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을 공공지식인이라고 한다.

마지막 지식인은 그 공공 지식인의 부재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한 책이다.

 

종편이 생기고부터 뉴스 채널도 덩달아 많아졌고, 하루 종일 뉴스만 내보내는 방송도 생겼다.

그리고 시사 프로도 많이 생겼다. 그리고 패널이라는 이름으로 각계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요즘은 SNS를 통해서도 자기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들이 많고, 유튜브를 통해서 자신들의 생각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예전의 명사나, 학자들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에 나왔던 분들이 했던 말처럼 귀담아듣지 않게 된다.

들으면서도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미국의 이야기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대학은 학문을 연구하는 곳이 아니라 취업을 하기 위한 스펙을 쌓는 곳으로 전락했다.

교수들은 지식을 전수하고 새로운 열정을 태우는 것이 아니라 자리 보존만 할 뿐이다.

대학은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지 오래고, 나라가 혼란에 빠졌을 때 저항하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지식인이라고 불릴만한 사람들은 자기들끼리의 언어를 쓰며 새로운 기득권으로 자리 잡았다.

 

1987년의 미국의 걱정이 2022년 한국의 걱정이 되었다.

선견지명이 있는 글이었다. 이 글을 읽으며 더 안타까웠던 점은 그래도 미국엔 러셀 저코비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공공 지식인의 부재를 느끼고, 그것을 걱정하는 사람이 왜 우리에겐 없을까...





젊은 지식인들은 자기 시대에 당연하게도 대응해왔고, 또한 불필요하게 굴복하기도 했다. 인간이 제 마음대로 역사를 만들지는 못하지만, 인간이 역사를 만드는 건 사실이다. 선택은 뒷문을 통해 역사의 구조물로 들어온다.

 

예전엔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서 저명한 사람들의 글들을 접할 수 있었다.

칼럼이라는 형식으로 세상의 이슈나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일들이나 전문적인 것들을 쉽게 풀어서 대중에게 알리는 기능을 가진 글들이었다.

지금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저마다 전문가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래서 보고 들으면서도 저게 맞는 건지를 의심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사실을 알리기보다는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만한 말만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모두가 전문가고, 모두가 옳다는 게 지금 현실의 함정인 거 같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자격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러셀 저코비의 걱정이 해결되는 날이 올까?

선택은 뒷문을 통해 역사의 구조물로 들어온다는 말이 묵직하면서도 공포스럽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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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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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앞에는 귀천이 없다. 금 젓가락이든 은 젓가락이든, 젓가락질하는 법은 왕도 노비도 다 똑같다.

 

아시아권에서는 거의 젓가락을 씁니다.

그리고 그 젓가락은 거의 나무젓가락입니다.

어딘가에서 한국인들만 쇠젓가락을 사용하는데 그것이 한국인들의 뇌를 더 똑똑하게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포크를 사용하는 서양인들보다 젓가락을 사용하는 동양인들의 뇌가 더 발달하는데 거기에 무거운 쇠젓가락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한국인의 뇌는 더 발달했다는 내용이 과연 타당한 건지 의구심이 들었는에 이 책 <너 누구니>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유작이며 한국인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는 젓가락을 통해 본 한국인입니다.

젓가락 하나로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읽으면서 감탄을 했네요.

늘 쓰던 거라서 공기처럼 그 존재감을 모르고 그저 당연한 걸로만 생각했는데 젓가락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젓가락 하면 바로 따라오는 것이 숟가락인데요, 숟가락을 통해 계급을 나누는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도 재밌었습니다.

젓가락은 한 짝만 가지고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젓가락은 늘 짝이 있죠.

우리의 짝 문화는 젓가락을 사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중국이든 일본이든 아이누든, 먹을 것을 옮기는 식도구의 이름이 직접 인체와 연결되어 있는 것은 한국뿐입니다. 손가락에서 젓가락이란 말이, 그리고 숟가락이란 말이 생겨난 것이지요. 그래서 손가락과 연결된 젓가락, 숟가락은 바로 내 몸의 피와 신경이 통하는 아바타인 것입니다.

 

그런데 숟가락 젓가락은 어떤가. 사이좋게 한곳에 나란히 놓인다. 젓가락은 두 막대가 짝을 이룬 것인데, 숟가락과 만나 또 하나의 짝을 이룬다. 이 단짝들은 급기야 한 몸이 되어 '수저'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다. 그렇다고 스포크처럼 서로 붙어 한 몸이 되는 게 아니다. 따로, 그러면서도 서로 조화로운 결합을 보이는 것이 '수저'의 철학이다.

 

 

우리의 짝 문화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적으셨는데 사회가 점점 개인화되어 가는 모습이 저도 씁쓸합니다.

불을 사용하는 인간은 음식을 익혀 먹게 되고, 음식이 익기를 기다리며 인내심이 생겼고, 불에 익힌 음식은 뇌를 더 발달하게 합니다.

인간은 음식을 나눠 먹으며 집단을 이루었고, 그것이 매머드 같은 큰 동물도 잡을 수 있는 힘을 주었죠.

"집단주의는 개인을 죽이는 게 아니야. 개인의 힘을 확장시키는 것이야. 개인(의 능력)이 개인 이상을 발휘하기 위해 집단을 형성하는 거라고, 그러나 오늘날의 집단주의는 개인을, 개인의 개성을 죽이잖아."

'최초의 전사'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 아니야. 최초의 역사를 만든 이는 싸움꾼이 아니라 '이야기꾼'입니다. 그 이야기 속 가장 큰 상징이 부지깽이를 든 여성입니다. 그게 우리나라에 오면 꼬부랑 할머니죠.

 

 

글보다 말이 먼저 생겼고, 말을 하면서부터 역사가 만들어졌는데 글로부터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바람에 글이 없던 350만 년을 다 지워버렸다는 말씀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어령 선생님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고, 그 시선들은 직관적이다.

그러나 근거를 댈 수 있는 직관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넓고 다양해서 '해박' 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젓가락 하나로 한국인의 모든 것을 풀어내신 솜씨가 시쳇말로 '장난 아니다'

 

작은 것에서 꼭 필요한 것들을 찾는 해박함을 가진이가 드물다.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 거시적인 이도 드물다.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더 좁아지고, 자기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거 같다.

 

이 책을 통해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짝' 문화와 '꼬부랑 할머니와 꼬부랑 고갯길'의 이야기를 되찾아 가는 시간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한류 콘텐츠가 세상으로 뻗어가고 있는 이 시점에 올바른 안내자를 잃은 기분이 들어서 매우 애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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