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번 날게 하소서 - 이어령의 서원시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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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처럼 연인처럼 혹은 광기 어른 사람처럼 일상성에서 탈출하는 탈영병이 되어라. 그 행복한 우연의 오타와 오역 속에서 당신은 때때로 바늘귀를 향해 뛰어오르는 낙타의 놀라운 천국을 보게 될 것이다.

 

출판사의 사정으로 오래 묵혀두었던 이어령 선생님의 글이 그분의 유작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날게 하소서>라는 시에 선생님의 구술 해설을 덧붙여 서문을 완성했고, 열세 가지의 생각들이 담겼습니다.

선생님의 '생각'의 방식에 놀랐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생각의 방향 등이 젊은 사람들도 넘기 못할 벽처럼 열린 마음입니다.

같은 걸 보고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의 말은 저에게 또 다른 세상을 알려줍니다.

 






같은 통나무인데도 자르는 방식에 따라 이렇게 전연 다른 무늬가 생겨나는 것처럼 우리네 삶의 무늬도 그와 같이 변한다.

새로운 방식으로 내 삶의 통나무를 잘라보고 찍어보고 깎아보면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나라로 들어가는 통과사증을 받을 수 있다.

 

뒤집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삶에는 거꾸로 된 거울 뒤 같은 세상이 있다. 불행이 행이 되고, 행이 불행이 되는 새옹지마의 변화가 있다.

 

21세기는 놀이와 상상, 그리고 창조적 힘으로 끝없이 삶을 허구와 이미지로 충만하게 하는 인간 - 호모픽토르의 세기라고 할 수 있다.

 

 

 

글을 읽으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달리하게 된다.

좁고 어둡고 갇힌 생각에서 넓고 밝고 열린 생각으로 나 자신이 넓어져 가는 기분이다.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 분의 글에서는 편협함이 깃들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넌즈시 깨우쳐 준다.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 책에 담긴 생각을 읽어 가면서 나 역시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그 생각은 이전의 생각과는 다른 것들이다.

 

이어령 선생님의 생각을 읽는 시간이 소중했다.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알아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걸까?

 

"어찌 보면 가르치지 않고 방치하는 게 창조성을 죽이지 않는 방법일 수 있어요. 생사람은 생각의 야성이 살아 있는 사람이거든. 생사람. 참 좋은 말이잖아. 견고한 틀과 사고로 무장한 사회와 조직은 생사람을 잡아요."

 

 

생각 없이 살아가던 내게 '생각'의 힘을 준 책이다.

천 가지 색깔의 물고기 떼를 보고 자라는 아이들의 모습에 내 모습을 담가본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색을 몇 가지 색상으로 정의해서 가르치는 세상에서 색은 그저 빨강, 노랑, 파랑 등으로 인식될 뿐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은 알고 있다. 그저 빨강, 노랑, 파랑의 색들조차도 다른 색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샘물을 퍼 써야만 새 물이 고인다. 고여있는 지식도 퍼내야 새로운 생각이 새 살처럼 돋는다.

 

 

자신의 말을 실천하고 사신 분 같다.

조용한 꾸짖음이 나를 깨어나게 한다.

 

어렵지 않은 글로 다양한 생각들을 접하고 나니 안일했던 마음에 새로움을 채우고 싶어졌다.

내 안에 고여 있는 생각을 퍼내야겠다.

새로운 생각들이 새 살처럼 돋아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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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심장 스토리콜렉터 100
크리스 카터 지음, 서효령 옮김 / 북로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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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지 않았어, 로버트. 넌 나를 믿어야 해."

 

LAPD 로버트 헌트는 하와이로 휴가를 갈 계획이었다. 그날 밤 비행기로.

하지만 반장은 그를 호출하고, 헌트가 도착했을 때 반장의 사무실엔 FBI가 있다.

전대미문의 살인범이 로버트 헌트를 지목했다. 그리고 그는 그가 아는 사람이었다.

스텐포드 대학시절의 룸메이트. 루시엔 폴터.

잘린 여자의 머리 둘을 차 트렁크에 싣고 어딘가로 가던 루시엔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자신이 배달하던 물건이 끔찍한 것임을 알게 되었고, 자신을 구해줄 사람은 헌터뿐이라고 생각해 그를 불러달라고 한다.

 




독자를 속이는 작가들의 스킬이 점점 강도를 높이고 있다.

웬만하면 스릴러 독자들은 작가의 속임수를 간파하기 때문이다.

악의 심장도 그렇다.

처음에 범인은 자신의 실수를 반성하고 뉘우치며 예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살인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그의 진술은 그 사람을 뒤에서 조정하는 사람이 있다고 믿게 했다.

그러나 나는 왠지 의심스러웠다. 그래서 혹시 다중인격자? 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무참하게 깨졌다.

 

역대급 사이코패스들을 모두 합쳐 놓은 특급 사이코패스의 등장!

 

이자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걸 좋아합니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모두요.

 

 

역대급 연쇄살인범을 만났다!

책장을 넘기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다음 페이지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상상하기가 두려웠다.

 

이 살인범은 모든 장르 소설의 살인범들을 합친 슈퍼 울트라 초 특급 살인범이었다.

납치, 고문, 살인, 인간 피부 수집, 토막, 식인...

게다가 자신이 저지른 모든 범죄를 기록했다.

살인 백과사전을 만드는 범인이라니 읽고 있는대도 믿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미국의 차기 슈퍼스타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도 만들 수 있어.

 

범죄심리학 전공자였던 두 사람.

한 사람은 LAPD 형사가 되었고, 한 사람은 연쇄살인범이 되었다.

두 사람의 두뇌게임, 아니 심리 게임은 읽는 내내 감탄하게 된다. 누구에게? 헌터에게!

그래서 이 로버트 헌트라는 이름의 형사가 맘에 들었다. 첫 등장부터 젠틀한 이미지였지만 루시엔 같은 작자와 맞서서도 절대 흥분하지 않았다.

루시엔이 헌터의 영혼을 탈탈 털어대도 헌터는 잘 견뎌낸다. 정말 멘탈 갑이다.

아주 작은 사소함 마저도 모두 계산하고 계획한 뒤에 움직이는 루시엔.

그는 상상하지 못할 방법으로 헌터와 FBI를 농락한다.

 

범죄자의 심리를 알기 위해 스스로 살인자가 되어 살인의 백과사전을 쓴 루시엔.

그가 헌터와 벌이는 심리 게임의 위력은 루시엔이 입을 벌릴 때마다 내 머리를 강타한다.

어디에서도 만나 본 적 없으나 이미 무수히 만나 본 소설 속의 살인마들을 모두 합쳐 놓은 루시엔.

그가 그 어떤 범죄자 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자신의 궁금증을 위해 벌인 일들 때문이다.

범죄연구라고 보기 좋게 포장했지만 그는 그저 살인마일 뿐. 그 어떤 것도 그를 위해 정당화하고 싶지 않다.

소설 속 인물이지만 이토록 거부감과 함께 공포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자는 처음이다.

이런 건 사람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뿐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80건의 살인을 25년 동안 저지르면서도 한 번도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살인자.

매번 수법을 바꿔서 똑같은 방법을 쓴 적이 없는 살인자.

전국에 자신의 아지트를 만들어 놓고 살육을 저지르는 살인자.

조력자를 두지만 때가 되면 가차 없이 해치우는 살인마.

자신이 짝사랑했던 친구를 첫 번째 피해자로 만든 살인마.

 

이 역대급 연쇄살인마를 나는 아무 준비 없이 만났다.

그래서 더 소름 끼치고, 정말 이런 자가 세상에 있을까 봐 겁난다.

 

작가 크리스 카터는 내가 좋아하는 북유럽 스릴러의 제왕 요 네스뵈와 비슷한 행보를 걸었다.

그리고 그가 탄생시킨 로버트 헌터라는 인물 역시 해리 홀레처럼 점점 막강해질 거 같다.

LA에 다혈질 형사만 있는 게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저런 짐승만도 못한 인간과 매일 대면하는 형사들의 고충이 어떨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심한 직업이 아닐까 싶다.

로버트 헌터 시리즈가 앞으로 계속 잘 나와주길 바란다.

<악의 심장>은 장르소설 맛집 북로드의 스토리 콜렉터 100번째 이야기에 걸맞은 인물을 독자와 만나게 해주었다.

 

루시엔 폴터는 사이코패스이자 소시오패스이다.

그래서 나는 그를 사이코시오패스라고 부르고 싶다.

다신 안 만났으면 좋겠다. 한니발 렉터 보다 더한 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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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 - 남방의 포로감시원, 5년의 기록
최영우.최양현 지음 / 효형출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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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감시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했기에 역사의 파고 속에 몸을 담글 수밖에 없었고, 그 물결의 압도적인 위력 끝자락에 애처롭게 흔들리는 조각배 같았던 그의 내면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는 할아버지가 남긴 기록을 손자가 책으로 엮은 이야깁니다.

민간인의 전쟁기록이기에 그 의미가 더 깊게 다가오는 책이었습니다.

남방 포로감시원으로 지낸 5년의 기록으로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 속의 조선인을 엿볼 수 있습니다.






형과 동생들 대신 군속으로 지원하여 입대한 최영우.

그는 전쟁에서 총을 들고 싸우는 군인이 아니라 공무원이라는 신분에 안심하며 배를 탔습니다.

2년이면 돈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수송선에 태워져 남방으로 향하던 조선인들에게는 식사로 호박죽이 배급되었습니다.

이때의 기억 때문에 그는 생전에 호박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한 달 만에 육지를 밟은 그는 인도네시아 자바 섬 말랑에서 포로감시원으로 생활합니다.

 

 

 

이곳 말랑에 있는 수용소는 제5 분견소라 불리고, 이곳에서 관리하는 포로는 약 오천 명이다.

포로들의 국적은 거의 화란인이고 영국인과 호주인도 섞여 있었다.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여인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아연실색했다. 피지배 민족의 비애가 뼛속까지 사무쳤다.

부대가 가는 곳에는 보국대 소속으로 징용된 조선 여인들이 반드시 있었다.

 

 

 

개인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당시 상황이나 보고 들은 것들을 자세히 묘사해서 마치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입니다.

일본군 부대가 가는 곳마다 위안소가 설치되었고, 수많은 여성들이 그곳에서 몹쓸 짓을 당했습니다.

이런 위안소가 100여 개가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희생이 있었을지 가늠하기도 힘듭니다..

 

 

그의 기록에 따르면 포로들에게 주는 음식도 형편없어서 많은 포로들의 체중이 줄고 건강이 나빠졌다고 합니다.

의약품도 모자라서 사망자가 속출했습니다.

일본군은 그런 포로들의 노동력까지도 악착같이 착취했습니다.

 

 

우리가 군복을 입고 군속의 문에 들어선 지 벌써 만으로 두해가 지났다. 약속된 기한이 지났는데도 우리와 교대할 부대는 오지 않는다.





전쟁 막바지라서 보급도 보충도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그곳에서도 사랑만은 넘쳤네요. 그는 인도네시아인과 백인의 혼혈인 한 여인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일본이 항복하고 전쟁에 패한 소식이 들리자 모든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일본의 패망은 곧 조선의 독립을 의미했으니까요.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지만 그녀는 어떻게 될까요?

 

 

일본군으로 복무했기에 일본 패망 이후 그는 불안했습니다.

같은 조선인들끼리 연합군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죠.

그는 싱가포르의 창이 전범 수용소로 보내집니다. 작별 인사도 못하고 그녀와도 헤어지게 됩니다.

창이 전범 수용소에는 조선인이 육칠백 명가량 있었습니다.

그곳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비스킷과 옥수수 국물이 그들의 식사였으니까요. 늑골이 붙을 정도로 먹을 것을 먹지 못하는 수용소 생활은 고통스럽기만 했습니다.

 

 

132번.

그가 귀환선을 탔을 때 매겨졌던 번호입니다.

 

 

 

뒷산을 힘차게 오르던 에너지는 1947년 고국에 돌아오면서 고갈되었다. 한때 사냥개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 젊은이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활달한 청년은 남방의 포로감시원으로 5년을 외지에서 보내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원래 성격을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가고자 했었던 싱가포르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두고 온 그녀를 가슴에 묻고 살았을 겁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그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그가 포로감시원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담담하고 섬세하게 쓰인 그의 글들로 그 당시를 추측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세월을 살아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를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살았을 뿐이니까요...

 

 

과장 없는 개인의 역사를 읽었습니다.

포장 없는 개인의 삶은 그것 그대로 보일 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또 다른 역사의 이면을 보게 됩니다.

아픈 시대를 묵묵히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생각거리를 던져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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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리보칭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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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있고, 모든 동기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행동에는 결과도 있다.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세워진 특급 호텔.

그곳의 사장 바이웨이더가 새해 첫날 시체로 발견된다.

검사 왕쥔잉은 그 사건을 담당하게 되어 잔뜩 기대감을 가지고 출동했다.

창창했던 자신의 옛 영광을 이 사건을 통해 회복해 보려고 했지만 그곳은 이미 내로라하는 형사 차이궈안이 장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쥔잉은 자신의 존재감을 띄워줄 명탐정을 호출한다.

 

마치 셜록과 왓슨처럼 푸얼타이 교수와 그의 친구이자 의사인 화웨이즈가 등장하는 1장은 푸얼타이의 시선으로 사건을 보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 푸얼타이가 이 책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

뻔해도 너무 뻔했다!

 

4장으로 이루어진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은 각 장마다 새로운 추리를 보여주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인물들은 모두 이 캉티뉴쓰 호텔의 살인사건과 직간접으로 연결이 되어 있었고,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추리한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사건의 본질은 먼 과거로부터 시작한다.

 

얽힌 인연과

과거에 대한 복수와

신분세탁과

핑크 다이아몬드의 등장은 내가 읽은 추리소설의 엑기스들만 모아 놓은 거 같다.

 

조류학자이자 탐정인 푸얼타이

전직 경찰이었으나 성 상납이라는 치욕적인 이유로 파직된 뤄밍싱

뤄밍싱의 부인이었으나 이혼 후 변호사가 된 거레이

전설로 남은 대도 인텔 선생

 

네 사람이 추리하는 사건은 각자의 인연으로 말미암아 사건을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자석처럼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로 모이게 된다.

한 사람은 친구의 약혼식에 참여하기 위해

한 사람은 신년 파티에 초대받아서

한 사람은 살인 사건을 조사하다가

한 사람은 왕년의 실력을 되살려 무언가를 팔고 나서 다시 훔치려고.

 

그들의 이야기가 사건을 확대시키고, 과거를 불러들이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게 한다.

CIA까지 출동한 이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끝을 낼까?

장르 마니아들의 오감을 충족시켜 줄 소설이라는 찬사가 틀리지 않다.

많은 등장인물과 낯선 이름들, 희극적인 인물들의 이야기가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정말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범인으로 지목되고, 그들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느껴지는 황당함이 이 이야기의 매력이다.

 

추리하지 말고, 가볍고 즐겁게 읽는 것이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을 제대로 만끽하는 것이다.

 

범인을 잡겠다고 머리 쓰지 말 것!

 

리보칭.

처음 읽는 작가인데 기억해둬야겠다.

글이 술술 읽히고

얽히고설킨 실마리를 잘 풀어낸다.

 

마치 잘 알려진 고전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이 고전적인 느낌을 잘 간직하고 싶다.

다음 편 작품을 기다리게 되는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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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퍼맨 - 속삭이는 살인자
알렉스 노스 지음, 김지선 옮김 / 흐름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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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건 악몽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내 아들이 사라졌다.

그게 내가 첫 비명을 내지른 순간이었다.

 

 

아내를 잃고 아들 제이크와 함께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 온 케네디.

그의 직업은 작가이지만 아내의 죽음 이후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다.

자신의 슬픔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케네디에게 아들 제이크를 돌보는 일은 참, 너무 힘들다.

그래서 새로운 공간에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 새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그곳에서 아들 제이크에게는 이상한 일들만 생긴다.

 

20년 전 그 지역엔 위스퍼맨이라는 악명 높은 아동 납치 살해범이 있었다.

그를 감옥에 집어넣은 형사 피트는 아직도 찾지 못한 한 아이 때문에 위스퍼맨을 계속 찾아간다.

그런 와중에 한 소년이 실종되고 피트는 위스퍼맨의 모방범이 생겼다는 걸 직감한다.


 

"몇 주 전, 닐이 한밤중에 엄마를 깨웠답니다. 창밖에 괴물이 보였다고요. 정말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처럼 커튼이 열려 있었답니다. 하지만 거기엔 아무도 없었고...."

벡은 잠시 후 덧붙였다.

"닐은 그게 자기한테 뭐라고 속삭였다고 했답니다."

 

 

학대받고 돌봄 받지 못한 아이들의 창가에서 속삭이는 위스퍼맨.

그런 아이들을 납치해서 살해하는 위스퍼맨.

그가 정말 돌아온 것일까?

 

아버지와 아들.

그 가깝고도 먼 관계

한 아버지는 아들을 학대했고, 한 아버지는 알코올중독인 자신에게서 아들을 멀어지게 했고,

한 아버지는 엄마 잃은 아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알지 못해 갈팡질팡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아버지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들을 사랑했다.

 

한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에 대한 증오로 괴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한 아들은 아버지가 엄마를 학대했다고 생각하고,

한 아들은 아빠가 자기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걱정한다.

 


남자는 절대 열어서는 안 되는 문을 열었고, 지상에서 얼마 안 되는 이들만이 겪었거나 앞으로 겪게 될 경험을 했다. 남자가 오른 여행길은 안내서가 없는 길이었다. 어떤 지도에도 그 길은 나와 있지 않았다. 살인이라는 행위는 남자로 하여금 항애도도 없이 감정들의 바다 위를 헤매게 만들었다.

 

 

형사들, 범인, 평범한 아빠. 평범하지 않은 아들의 시점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책의 두께를 잊게 만든다.

그리고 끝에서 알게 되는 사실의 연관성은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독자의 상상력에 지뢰를 밟은 느낌을 준다.

20년간 형사를 담금질하면서 그의 죄책감을 잘근잘근 집어삼키며 희롱하는 위스퍼맨의 모습은 끝까지 반성의 기미가 없다.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알지 못해서, 자신이 끝까지 찾아내지 못했던 한 아이를 부모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형사는 매일 밤 술병을 앞에 두고 자신과의 힘겨운 싸움을 한다.

 

인생에서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모습.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

겨우 행복이 찾아왔나 싶었을 때 찾아오는 공포감.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택한 아들의 모습들이 이 이야기 한 편에 담겼다.

 

보통 스릴러의 조합과는 다르게 부성애를 다룬 위스퍼맨.

엄마가 부재인 가정에 점점이 박혀있는 슬픔들이 이야기를 채우면서 납치와 살인사건이 조용히 스며드는 이야기 위스퍼맨.

자기 직업에 진심인 형사들이 끔찍한 범죄자를 상대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행복을 빼앗기는지를 잘 보여준 작품이다.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으로 점철된 시절을 극복한 아이와 극복하지 못한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랄 수 있는지도 잘 보여준 작품이다.

모성애 중심의 이야기들 속에서 부성애의 애틋함을 맛볼 수 있었던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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