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독산동 문지아이들
유은실 지음, 오승민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림만 넘겨 봤을 때는 미쳐 몰랐다.

그저 독산동에 오래 살았던 친구가 떠올랐을 뿐이다.

그 친구 덕에 나도 독산동에 놀러 갔었다.

이름만 알고 있었던 동네는 첫 느낌은 내가 살던 곳보다는 덜 복잡한 느낌이었다.

어딘지 낡았지만 그리운듯한 느낌을 그곳에서 받았다.

오래전 내가 누비고 다녔던 골목길 가득한 대학로의 정서를 본 느낌이었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공장이 가까이 있어서 친구들과 놀다가 다치더라도 근처에 있는 엄마나 아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동네.

공장이 가까이 있어서 가끔 친구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동네.

공장이 가까이 있어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인형을 가지고 놀 수 있었던 동네.

 

 

하지만 교과서에는 그런 동네가 살기 나쁘다고 쓰여 있었다.

은이는 그런 동네에 살고 있었지만 우리 동네가 가장 살기 좋은 동네라고 생각한다.

 

 

 

 

"아빠, 교과서도 틀릴 수 있어?"

"넌 교과서가 틀린 것 같니?"

"엄마, 선생님도 모를 수 있어?"

"넌 선생님이 모르는 것 같니?"

"선생님은 딴 동네에 사니까, 우리 동네를 잘 모르는 거 같아."

 

 

 

 

"우리 동네는 우리 은이가 잘 알지."

 

 

그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이 전부인 아이가 자신의 동네를 자랑스러워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문장들을 읽어 가며 그게 다가 아님을 깨닫는다.

 

 

교과서 만드는 사람도, 교과서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모른다.

이 동네가 얼마나 좋은 동네인지를...

그곳에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동네 분위기...

 

 

은이에게 이곳은 다정하고, 활기차고, 안전하고 즐거운 곳이다.

공장이 들어찬 이곳이 삶이 터전인 사람들 틈에서 은이는 행복하고 안전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모르는 외부인들의 눈에 독산동은 공장이 많아서 살기 나쁜 동네일뿐이었지만...

 

 

어른들이 그어 놓은 선.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편견.

어른들이 구현해 낸 세상.

그것들이 가진 밑천이 바닥을 드러내는 건 아이의 해맑은 시선이 부여한 세상의 온기였다..

 

 

우리가 사는 어느 곳이나 살기 좋은 때도 살기 힘든 때도 있었다.

지금 독산동은 은이가 기억하던 예전과는 다를 것이다.

40년이 넘도록 살았던 내 친구의 집도 이젠 사라졌으니까...

 

 

변두리.

예전에 많이 썼던 말이다.

변두리 하면 떠오르는 동네 이름들이 있었다.

그리고 변두리 하면 떠오르는 동네의 풍경도 있었다.

그것 역시 외부인의 편견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살기 좋은 편의 시설로 중무장한 지금 우리의 모습에선 그때의 정서를 찾을 수 없다.

살기 편리해지면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이 어떤 것인지조차도 잊고 사는 우리.

내가 어릴 땐 온 동네가 서로 오고 갔다.

명륜동 그 동네의 집집마다 내 학교 친구들이 있었고 내 동생의 친구들이 살았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선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얼굴도 모른다...

 

 

나의 독산동은

내게 어린 시절의 우리 동네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그래서 간만에 어린 시절을 배회하는 중이다...

 

 

터전을 잃은 그 많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 실 끝의 아이들
전삼혜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른 우주에서도 시아와 나는 엮여 있다고. 붉은 실처럼.

 

 

베이, 진, 륜, 토토, 렌은 모두 유리다.

평행 우주에 속한 또 다른 나.

그들이 지구에 왔다.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그들은 각자의 지구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누군가를 죽였다.

붉은 실로 이어진 '홍연자'를.

 

"사랑에 빠지는 것도 홍연자고, 사고를 치는 것도 홍연자고, 나랑 다른 지구의 나도 홍연자고."

 

 

지구의 멸망을 가져오는 건 '시아'였다.

다른 사람의 고민을 대신 짊어지는 능력을 가진 시아가 멸망을 위해 죽임을 당해야 하는 거였다.

시아를 알지도 못했던 유리는 그렇게 시아를 발견하게 되고, 무한 반복될 거 같은 루프 속에서 인연은 점점 깊어만 갔다.

유리는 시아를 죽일 수 있을까?

 

전삼혜 작가의 붉은 실 끝의 아이들은 새로운 차원의 SF였다.

평행우주의 나

그들은 모두 초능력을 가졌고, 자신의 별을 구하기 위해 가장 사랑하는 이를 죽여야만 했다.

베이, 진, 토토, 렌, 륜. 그들의 사랑을 그리는 작가의 솜씨는 특별하다.

인간적이지 않고 초월적이라서.

 

"세상은 이미 멸망한 게 아닐까?"

 

 

사랑을 잃은 자들의 눈에 세상은 온전해도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유리의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그 어디에도 숨을 수 없고, 그 어디에서도 그림자처럼 달라붙을 붉은 실의 한 가닥이 유리를 놓아주지 않을 테니...

 

뭐라고 딱 꼬집어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다.

풋풋하면서 잔인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살벌하고

진지하면서도 꿈같다.

이 모든 이야기는 유리의 꿈이기를 바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 - 한 글자로 시작된 사유, 서정, 문장
고향갑 지음 / 파람북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와 둘을 애써 가를 필요는 없습니다. 둘이 모여 하나를 품고, 품은 하나 속에 둘이 있습니다.

 

 

모처럼 곁에 두고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글을 만났다.

고향갑.

처음 읽는 작가님의 글이 참으로 고단하다.

그 고단함이 참으로 좋다...

 

 

4장으로 이루어진 책은

각 장마다 한 글자의 제목이 달렸다.

한 글자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나, 너, 우리의 이야기다.

 

가슴이 저리고

가슴이 아리고

마음이 들썩이다가

마음이 녹아든다.

생각이 생각을 더하고

글들이 깊이 있게 각인되어 책장을 넘기기가 조심스럽다.





69편의 글들 앞에서 나도 모르게 고요해진다.

내가 알지만 모르는 세상이 담겨 있고, 내가 안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뒷면이 담겨 있다.

따뜻한 온기를 가진 글이지만 서슬이 퍼렇다.

 

 

사랑의 온도는 더하거나 뺄 수 없어요. 각기 다른 두 개의 삼십육 점 오 도가 합해져도 여전히 삼십 육 점 오 도니까요. 그런 점에서 사랑의 온도는 체온과 일치해요.

 

 

나는 조잘거렸고, 그는 빈 종이컵에 소주를 채워 내 앞에 내려놓았다. 비움과 채움이 반복되었다. 측은이 측은을 채우면 다른 측은이 측은을 비웠다.

 

 

문학은 손으로 써내는 가슴 속 언어입니다. 어깨나 이마에 붙이기 위한 계급장이 아닙니다. 문학을 자꾸 크고 거창한 학문으로 격상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학문으로 격상시키는 순간, 문학은 '항문'이 되고 '똥'이 됩니다.

 

 

떨지 마라, 아내야. 당신은 손가락 하나를 잃었지만 세상은 가슴을 잃었다. 사람은 없고 밥그릇만 보이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설움을 앞에 두고도 고개 돌리는 세상에는 가슴이 없다. 숨소리를 따라 들썩이는 허파는 있어도 생명으로 쿵쾅대는 심장은 없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가슴이 차오른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내가 부끄러워진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먹먹해진다.

문장들 사이를 지나며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가 그만큼 특별해진다.

 

고향갑.

이름에서부터 온갖 그리움들이 담긴다.

이 작가님의 글을 처음 읽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부끄러움의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한 글자로 시작되는 이야기의 결들이 깊이 있어서 좋다.

곁에 두고 자주 읽어서 각인시키고 싶은 문장들이다.

이 책에 코를 박고 힘껏 들이마신다. 글들이 코로 들어와 심장에 박혀 벌컥거리며 혈관을 타고 뇌로 향했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앞에서 이렇게 부끄러움과 자랑스러움을 동시에 느끼게 될 줄 몰랐다.

왜 그런 느낌을 가졌는지 나는 설명할 수 없다.

 

내가 너무 안온하게 살았나 보다...

 

제목처럼 작고 슬퍼서 아름다운 것들에 묻혀서 그저 살아가고 있었다.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고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서 사는 삶은 다채롭지 못하다.

이 글을 읽으며 그동안 다채롭지 못했던 세상을 물들여 본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글이 고픈 사람들

깊게 음미하고 싶은 글을 찾는 사람들

자기 자신만 아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이 한 글자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지적 독자 시점 Part 1 01 전지적 독자 시점 1
싱숑 지음 / 비채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나의 세계가 멸망하고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세계의 결말을 아는 유일한 독자였다.

 

 

10년간 연재되던 웹소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 일명 멸살법.

이 이야기의 마지막 독자는 바로 김독자 한 명뿐이다.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이제 몇 개는 잊어버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살아남을 거란 사실이다.>

멸살법의 마지막 문장대로라면 살아남을 사람은 오직 김독자 한 사람뿐이다.

그가 이 멸살법의 유일한 독자니까.

 

독자는 작가에서 첨부파일 하나를 받는다.

오후 7시 이후로 유료화가 시작된다는 문자와 함께.

오랜 시간 멸살법을 읽어 준 독자에서 준 작가의 선물이다.

대단찮아 보였던 이 선물의 존재는 이후에 펼쳐질 세상에서 절대적인 것이 된다.

그동안 독자가 살아왔던 세상은 이제 사라졌다. 새롭게 유료화가 된 멸살법의 세상이 온 지구를 지배하게 되었으니까.

 

내 삶의 장르가 '리얼리즘'이 아니라 '판타지'였다면, 나는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한다.

그리고 한 번쯤은 그 게임의 세계가 현실이 되기를 갈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전지적 독자 시점은 우리에게 그 갈망을 충족시켜주는 세계이다.

그 게임 안에서 주어진 시나리오를 클리어하고, 보상을 받고, 아이템을 찾고, 그다음 시나리오를 클리어하면서 점점 레벨을 높이고, 사람들과 연대해서 팀을 이루고, 서로를 죽이며 미션을 이루어가는 세계.

하지만 그 미션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싱숑이라는 필명을 쓰는 한 사람의 작가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싱과 숑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이야기에는 균형이 담겼다. 한 사람의 독단이 빠진 이야기는 그래서 탄력이 붙는다.

게임을 알면 알아서 더 많은 것이 보이고, 게임을 몰라도 재미를 느끼는 데는 1도 어려울 것이 없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에서 현실을 찾게 되는 건 왜일까?

 

독자에겐 독자의 삶이 있는 거니까요.

 

 

책을 읽는 독자에겐 책과는 다른 독자의 삶이 있다.

하지만 전독시의 주인공 김독자에겐 책속의 삶이 주어졌다.

이 이야기의 끝을 아는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

하지만 이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을 아는 유일한 독자로서 독자는 독자적인 플레이를 한다.

그렇기에 이 세상은 새로운 시나리오가 필요하고, 독자는 자기가 알던 시나리오와 자신으로 인해 새롭게 생기는 시나리오를 잘 접목시켜야 한다.

그것은 독자라는 캐릭터가 성장하는 기능이기도 하다.

전지적 독자 시점의 이야기의 묘미는 바로 그것에 있다.

멸살법의 세상에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아는 유일한 독자인 김독자.

그리고 멸살법의 주인공이자 몇 번씩 죽음에서 회귀한 유중혁.

유중혁은 시나리오의 끝까지 가보지 못한 상태에서 회귀하여 자기가 지나온 길을 쉽게 돌파한다.

그리고 그 길은 회귀가 거듭될수록 거칠어지고 무참해지고 무감각해진다.

멸살법의 결말을 알고 있는 김독자 역시 스스로의 선택으로 인해 새롭게 추가되는 시나리오를 돌파해야 하는 부담감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가차 없이 나아간다.

현실이었다면 절대 하지 않을 일들도 할 수 있는 것이 독자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싶어 하게 된다.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판타지 소설임에도 인덱스를 많이 붙여야 했다.

게임 속 세상이 현실과 동떨어질 거라 생각했다면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다.

게임 속 세상은 현실보다 더 빠르고 원초적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세계가 이처럼 확실하게 펼쳐지는 세상은 없다.

그래서 남녀노소 불문하고 살아남기 위해 가차 없이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본성은 본성대로의 길을 가게 마련이다.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절망에 먹혀 날뛰는 인간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

진짜 위험한 놈은 타인의 절망을 권력의 비료로 사용하는 놈이다.

 

 

이 세계는 소설 속 인물들만 나오지 않는다.

첫 번째 시나리오가 가혹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멸살법의 세상에서 근본 없는 사람들이다. 데이타에 없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선택과 행동에 의해 이야기들은 자꾸 바뀌어 간다.

그래서 독자가 아는 멸살법의 세계는 점점 변해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인공 유중혁과 김독자는 세기의 대결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누가 주인공이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계에 적응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앓는다. 누군가는 광기로, 누군가는 광신으로, 또 누군가는 비합리적인 낙관으로.

 

 

독자가 멸살법의 세계를 앓는 방식은 무엇일까?

초반부 독자는 소설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그러나 자신의 팀을 꾸리고 사람들을 조종하며 나아가는 독자의 모습은 그가 소설대로의 끝을 원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전지적 독자 시점처럼 그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원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독자가 가는 길의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독자는 독자의 방식으로 싸운다.

나는 이 세계의 누구보다도 이 세계를 잘 알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일 강의 죽음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니, 난 이 세상에 적이라곤 없어!"

 

 

리넷 리지웨이는 젊고, 아름답고 게다가 굉장한 부를 상속받았다.

세상에서 가장 운 좋은 이 여자는 세상에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왜? 자신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친 적이 없으니까!

 

셸랄을 향하는 카르나크 호엔 신혼여행 중인 도일 부부와 푸아로 탐정이 타고 있었다.

어딜 가나 주목을 받는 도일 부부.

그러나 그들을 부지런히 뒤쫓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으니 그녀는 리넷 도일의 친구이자 사이먼 도일의 옛 약혼녀 자클린이다.

세상 부러울 거 없었던 리넷 리지웨이는 친구의 약혼자와 결혼했다. 자클린에게 남은 거라고는 약혼자 도일뿐이었는데 말이다.

그들이 신혼여행을 떠난 후로 가는 곳마다 자클린과 마주친다. 도일 부부는 자클린과 마주칠 때마다 자신들의 여행 계획을 바꿔 보지만 귀신같이 그들을 찾아내는 자클린은 이제 죄책감을 넘어 분노를 치솟게 한다.

 

이즈음 상류층엔 보석 절도가 유행한다. 위조품과 진품을 바꿔치기하는 수법으로 상류층의 보석을 훔치는 자가 있다.

이번엔 리넷의 진주 목걸이에 눈독을 들인다.

사람들을 선동해서 폭력사태를 유발하고 살인을 저지른 자도 카르나크에 타고 있다.

그리고 이 배엔 도벽이 있는 상류층 부인도 타고 있다.

이 어수선한 조합 가운데 푸아로가 버티고 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부터 뭔가가 벌어질 거 같은 예감을 느끼는 푸아로.

그가 같은 배에 탄 걸 마땅찮게 여기는 자가 있는 반면 그가 곁에 있어서 든든해하는 사람도 있다.

이 복잡한 마음들이 같은 배를 타고 나일 강을 건너고 있다.

과연 이 배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 말은 반짝인다고 해서 다 금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 말은, 그 숙녀가 부유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럽긴 하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또 다른 무엇도 알고 있지요.

 

 

단 하나를 빼앗긴 자의 증오심.

다 가졌으면서도 단 하나를 가진 사람의 것을 빼앗은 자의 죄책감.

가진 건 없어도 고급 지게 살고픈 욕망.

지루한 인생에서 재미를 찾고자 보석을 훔치는 자의 스릴.

상류층이라는 허울 아래서 도벽을 일삼는 자의 고고함.

선량한 마음을 지니고 뚝심 있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사람.

하나의 작품으로 이름이 알려졌지만 그 이후의 작품은 물 건너간 알콜중독자.

그 곁에서 자신의 인생을 저당잡힌 우울한 여자.

 

오리엔트 특급에서처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함께 배에 갇혔다.

그들 각자의 욕망을 담고 카르나크는 나일 강을 흐른다.

하나의 살인미수는 세 건의 살인을 불러온다.

 

"지금 내가 하고자 하는 게 그런 걸세. 진실, 완전히 드러나 빛나는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관련 없는 것들을 제거하고 있는 거지."

 

 

카르나크 호에 승선한 사람들의 진술을 듣는 푸아로는 자신이 사건 당일 숙면을 취한 것이 안타깝다.

하필 그날 어째서 그는 졸음을 참지 못했을까?

진실을 목격한 사람은 침묵하고 살인은 살인을 불러온다.

 

나일 강의 죽음.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10권 중에 한 권이다.

정식 완역본으로 출간되었다.

 

인간에게는 갖지 못한 것을 열망하는 욕망이 있다.

남의 것을 탐하는 걸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열망 말이다. 거기엔 항상 정당한 변명이 마련되어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손에 쥐게 된 부와 명예. 이것들이 뭔지도 모르고 지니고 살았던 사람들의 무력감이 호기심과 재미로 무엇을 탐하는지를 보여주는 나일강의 죽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만 그 증거가 없다는 걸 말일세. 이 사건은 논리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설명되는데, 실제로는 너무나도 불만족스럽다네.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살인범의 고백일세."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완전범죄.

푸아로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까?

어리석은 욕망이 자신의 목숨 값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달라질까?

살인사건의 목격자는 그걸로 살인범을 협박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살인범은 또 다른 살인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애거서 크리스티의 이야기가 좋은 이유는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굉장히 주체적이다.

그녀들은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고, 남자에게 휘둘리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을 "잘" 조정한다.

 

고전 추리소설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을 위트에 버무려 아무렇지 않게 내던지기 때문이다.

특별한 장치 없이도, 쓸데없이 잔인하지 않고도 재미지게 사건을 추리해가는 과정이 사람들의 마음속 욕망을 다독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애거서 크리스티는 탁월하다.

이미 알고 있는 얘기지만 완역본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돋보였던 나일강의 죽음.

많은 등장인물들의 삶을 엿보는 재미와 함께 죗값을 치러야 하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말들이 생각거리를 주는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