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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아재비 ㅣ 창비시선 506
박경희 지음 / 창비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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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생 범띠 여사님 박경희는 참 살뜰하게 자기 프로필을 숨긴다. 충남 보령에서 출생해서 자란 박경희는, 전적으로 그가 낸 시집을 유추해 보면, 광부였다가 농부로 전업한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남동생이 하나 있는 것 같다. 대천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보령시는 얼핏 어업과 농업을 업으로 하는 반농반어 주민들로 구성될 것 같지만, 상당히 많은 매장량을 보유한 탄광도 보령시의 남동쪽 지역에 있다. 성주산이라고 하는 해발은 별로 높지 않지만 정상까지 오르다가 여차하면 땅이 이마를 칠 정도의 급경사로 악명을 떨치는 산도 있고, 이 산 서쪽 초입 계곡 가기 전엔 석탄 박물관이 있다. 이미 고인이 된 박경희의 부친이 광부에서 소작농부로 전업한 것도 이해가 된다. 석탄의 소비량이 80년대 들어 확 줄어들었으니까.
보령에서 자라 대학은, 나는 이승우가 졸업한 이 학교가 이날 이때까지 서울 4.19탑 근처 수유동에 있는 줄 알았는데 그새 경기도 수원 찍고 병점 아래 오산으로 이사 간 한신대 문창과를 졸업했으니 이때는 보령을 벗어나 생활했으리라 여긴다. 졸업한 이후에 어쨌건 고향에 돌아가 오래 살고 있는 것 같으며, 70년대 초반 출생답게 이이를 보는 할머니들이 드물지 않게 신랑감을 소개해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아직 혼인은 하지 않은 거 같다. 젊은 시절에 비구니가 되려 산에 올라 절에도 들어가보고, 고기가 먹고 싶어 혼자 산문을 빠져나와 읍내까지 가려다 너무 멀어 다시 돌아가본 적도 있는, 머리 긴 비구니였던 적도 있거나 여직 머리 긴 비구니로 산다… 시집 《미나리아재비》를 보면서 이러지 않았나 싶었던 거다. 그저 넘겨짚어본 거니까 절대 믿지 마시라.
이 책이 창비시선 506호. 505호가 지난 번에 소개한 권선희의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권선희는 동해 바닷가 구룡포, 박경희는 서해 바닷가를 낀 도시 보령의 농촌. 둘이 좀 친한 듯하다. 권선희의 시집에 실린, 잠수 중에 사고 나 죽을 뻔한 인공호흡 받은 할머니가 이 시집 《미나리아재비》에서도 나오는 걸 보니. 비슷한 성향의 시인끼리 친하게 지내는 건 좋은 일이다. 두 시집도 비슷하다. 구룡포 사람들과 보령 농부들이 사는 모습을 스케치하고, 가끔 덧칠도 하고, 거기에 자기 마음도 가져다 붙이며 살아가는 모습을 진짜 날 것보다 더 날 것처럼 보이게 하는 시. 근데 박경희는 권선희에 비하면 시에 자주 자기 가족들의 모습도 등장한다.
꿈자리
잠자리를 서쪽에 두던 엄니가 꿈이 시끄럽다고 동쪽으로 돌렸다
마루에 앉아 머윗대 껍질을 벗기면서
저승 갔으면 그쪽 세상에서 잘 살 일이지 이승은 왜 들락거리느냐고
보이지도 않는 분 타박이다
살았을 적에 그리 모질게 마음고생시키더니
무슨 할 말이 있어서 이승 문턱을 넘느냐고 사발째 욕을 퍼붓는데
옆에 있던 내가 슬금슬금 자리를 비키니
개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제집만 들락거렸다
이승 일에 저승 사람이 끼면 될 일도 안 된다고
소금 한줌 뿌렸다 (전문 p.18)
박경희의 시는 읽기 편하다. 마지막 줄, “소금 한 줌 뿌렸다” 읽기를 마치자마자 여태까지 위에서 읽은 시가 한 방에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꿈에 죽은 배우자가 나오면? 나오는 것까지는 좋은데, 그이가 내 몸에 손을 대면 나쁜 꿈이란다. 나는 꿈에 돌아간 부모 안 나오시는 게 그렇게 좋다. 시의 엄마처럼 한 번 갔으면 그곳에서 잘 사는 게 장땡이다. 괜히 여기저기 신경쓰지 말고. 나도 죽으면 아이들 꿈엔 얼씬거리지도 말아야지.
《미나리아재비》에는 <미나리아재비>라는 시가 들어 있지 않다. 그럼 왜 미나리아재비라고 제목을 달았느냐고? <더없이 깊고 짙은 여름>이라는 시에 이런 대목이 있어서.
어둠을 짚고 가는 별이 까마득해서 솟을대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 돌멩이를 던졌다
돌멩이 맞은 별이 까딱거리다가 뒤꼍 조릿대 숲으로 떨어졌다
달려가보니 집 앞 개울가
미나리아재비 앞에 앉은 별이 반짝거렸다 (3연 p.50~51)
윽. 까마득한 별에 돌팔매질을 했더니 그게 똑 떨어져 미나리아재비 앞에 떨어져 반짝였다고? 그렇다. 별, 별 무슨 별? 정답은 반딧불이.
반딧불이는 서둘러 간 발자국을 비추고
그림자 따라간 달빛은 돌아오지 않았다
내 건너 은행나무만 스러져가는 별을 쓰다듬었다 (부분. 같은 시 4연 p.51)
예쁘장한 서정시. 이 책에는 주로 삶의 곤고함을 다룬 시, 생활시가 많은데, 역시 이웃들, 이젠 젊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 환갑이 넘은 강씨 아저씨가 “마파람에 돼지 불알 놀 듯 하는” 동네 막내로 등장하니 보령 농촌도 심각하다. 시골 부동산에 관심있는 분은 조심하시라. 언제까지 땅값이 치솟을 줄 아시나? 진짜로 가 보면 귀신 나올 듯한 빈집이 널리고 널렸다.
그래도 박경희는 이런 촌에서 시를 쓰고 산다.
읎는 소리
농약 비료 안 뿌리고 똥거름으로 밭농사를 지으면 월급을 주고
땅이 더 거름질수록 해 월급, 달 월급, 별 월급을 준다면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까?
어림도 읎는 소리
써레질 끝난 논바닥을 환하게 바라보는 농부의 눈동자 속 소금쟁이와 개구리 울음소리가 출렁이고
땅 한평에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상추, 가지, 고추, 쑥갓, 토마토, 오이를 심어 이웃과 나눠 먹을 수 있다면
서로를 귀하게 여긴 밥상 위에
살구꽃잎이 먼저 든다면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까?
어림 반푼어치도 읎는 소리
온 세상 귀퉁이를 반딧불로 비춘다면, 반짝이는 숨죽임에 바람의 춤을 춘다면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까?
쓰잘데기읎는 소리
곰팡이 핀 벽,
바랜 3월 농사 달력에 삐뚤빼뚤 쓴 글자가 밭두둑처럼 길다
구신 씻나락 까묵는 소리 고만허고 나와서 밭에 돼지똥거름이나 뿌리라고! (전문 p.20~21)
보통 글자체로 쓴 1, 3, 5, 7연은 다분히 시인이 하는 말이고, 굵은 이탤리체의 2, 4, 6, 8연은 보령 농촌에서 농협 빚에 쪼들리며 직접 농사를 짓는 농부나 시인의 부모 정도의 사람들이 댓거리로 하는 말처럼 읽힌다. 시인도 고향에서, 농사짓는 농촌에서 살기가 만만하지는 않을 거 같다. 시골 출신 74년생 범띠, 집에서 떠나 대학이라고 졸업시켰더니 집에 돌아와 (시집 읽어 짐작하는 바대로만 하면) 돈벌이도 안 하고, 시집도 안 가고, 농사일도 변변하지 않고, 절에 들어가 중질도 제대로 못할 거 같으면서, 조잘조잘 알아듣지 못할 이야기만 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뭐 사는 게 다 그렇지만.
나는 시인이 시와 시집을 구룡포에서 낳든, 보령시 농촌에서 낳든, 동네 사람들 사는 모습을 스케치한 것보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훨씬 더 좋아한다. 이 시집도 마찬가지다. “절에 들어가 중질도 제대로 못”했을 거 같다는 추측도 이런 시에서 나왔다.
폐사지를 걷다가
오래전 비구니가 되겠다며 법당에 앉아 합장했다 깜박이는 전등이 부처님 말씀인 것처럼 머리 조아리다가 법당을 내려왔다 울리지 않는 범종이 귓가에 울렸고 스님 목탁 소리에 으스름달이 떠올랐다
눈빛이 흔들리는 물빛이라,
흔들리고 싶은 대로 흔들려야 한다는 말에
절 마당 구석에 앉아 훌쩍이다가 문득,
빈 절간을 지키는 개 반달이의 느린 걸음이고 싶어졌고 슬쩍 날아와 털신의 털을 뽑아 가는 박새 부리이고 싶어졌고 무너진 축대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목련나무를 스쳐 가는 바람이고 싶어졌고 극락전 앞 뒹구는 매미 허물이고 싶어졌다 바랜 단청 흐린 색으로 머물다 지워지고 싶었고 문살 나간 창호지 구멍이고 싶었고 그늘도 없는 폐사지에 머물다 간 구름이고 싶었다 요사체에서 병든 사내가 밟은 절 마당이고 싶었고 승복 말리는 빨랫줄이고 싶었다 그렇게 여러달 서성이는 발자국으로
머리가 긴 비구니가 되어 그늘 많은
도시로 돌아왔다 (전문.P.26~27)
아무래도 옆집 할머니, 뒷집 할아버지 고생한 이야기보다, 공장에 다니다가 기계에 끼어 아내와 두 아이를 두고 숨 넘긴 동생의 직장 선배 이야기보다, 시인이 자기 자신을 말하는 것에 훨씬 공감한다. 모두 4부로 되어 있는 시집에서 자신에 대한 시는 1부에 몰려 있다. 물론 다른 재미있는 시도 많고, 박경희의 이 시집을 소개하는 많은 신문, 인터넷 자료 역시 위에 내가 올린 시를 인용한 건 거의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읽은 시집에서는 내가 공감하는 시가 제일 좋은 법이다.
이 시집 《미나리아재비》에서 각종 매체에 가장 많이 소개된 시를 첨부하며 오늘 독후감을 끝낸다.
오소
나가 구십 하고도 거시기 두살인가 세살인가 헌디도 까막눈 아녀, 젓가락을 요로코롬 놔도 뭔 자인지 모른당께, 그냥 작대기여 헌디, 할멈이 서울에 있는 병원에 수술받는다고 병달이 놈 손 잡고 올라갔잖여, 병달이가 무신 일 있으믄 편지 쓰라고 봉투에다가 주소는 적어두고 갔는디, 나가 글씨가 뭔지 오치게 알어, 기냥 알았어, 라고만 혔지, 그때는 산 넘어가야 전화가 있을랑 말랑 혔어 암만,
어찌어찌 보름이 지났는디 이 할멈이 오지를 않는겨, 저짝에서 소쩍새가 쏘찌럭 소쩌 소쩌 여러날 우는디 환장허겄데, 혼자 사는 노인네들은 어찌 사나 몰러, 그나저나 수술받다 죽었으믄 연락이라도 홀 텐디 꿩 궈 먹은 소식이더라고,
병달이가 써준 봉투 생각이 나서 종이 꺼내놓고 뭐라 쓰야겄는디, 뭐라 쓰야 헐지 몰라서 고민허다가 에라 모르겄다, 허고는 소 다섯마리 그려 보냈당께, 근디 할멈이 용케 알아보고 열흘 만에 왔더만, 나가 글씨보단 그림에 소질이 있는 걸 그때 알았당께 (전문 p.23)
제목 “오소”는 五少: 휘파람을 부는 방법의 하나, 또는 嗷訴: 무리를 지어 호소함이 아니라, 소 다섯 마리, 5소. 할아버지가 수술받은 할머니한테 수술 잘 받았으면 “오소”했다는 말이다. 난 원래부터 형광등 기가 좀 있고, 별 생각 없이 읽었다가, 별 뻘짓을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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