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니의 초상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6
로버트 네이선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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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로버트 네이선은 1894년에 뉴욕의 저명한 세파르딤 유대인 가문의 자제로 태어났기는 한데, 단언하노니, 네이선의 작품은 한 권도 더 읽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세파르딤 유대인? 이슬람은 무려 4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다. 이를 북북 갈면서 반도 수복과 무어인에 대한 복수를 꿈꾸던 서고트족의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백 년 전 중국 명나라가 발명해 막강한 몽고족을 굴복시킨 신무기, 소총을 수입해 드디어 무슬림을 이베리아 반도에서 싹 쫓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사벨과 페르난도의 눈에는 무슬림이나 유대인이나 그게 그거다. 무슬림은 아니지만 내버려 두었다가는 언젠가 다시 무슬림으로 하여금 이베리아 반도를 재탈환하게 만들지도 모를 불온분자들. 실제로 무슬림이 4백년을 내리 통치했던 건 아니다. 중간에 서고트족이 한번 되찾기는 했었다. 이때 세 불리했던 무슬림이 아프리카 사하라 북쪽의 무슬림에게 긴급 무선통신을 보내 (돈쓰돈돈 도도쓰돈 쓰쓰쓰 돈돈돈……) 지원군이 도착했는데, 이 지원군이 진짜 무슬림 원리주의자 비슷한 족속이어서 반도인들을 더 강압적으로 통치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뭐 아나? 특급 작가 포이히트방거가 쓴 <톨레도의 유대여인>에 이런 게 좀 나온다. 이 당시 죄 없는 유대인들이 (세상에 죄 없는 인간이 어딨어? 그냥 당한 것에 비하면 죄가 덜하다는 의미이지) 서고트 족속의 눈 밖에 난 거라고 짐작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 다른 데 가서 인용하지 마시라. 망신당하기 십상이다. 이리하여 반도를 회복한 이사벨과 페르난도는 석달도 되지 않아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은 유대인은 당장 이 나라를 떠나라, 하는 알함브라 칙령을 내려 거의 모든 유대인들이 맨몸으로 쫓겨나 주로 서부 인도로 향했다. 이들의 후손 가운데 한 명이 아.마.도. 가명 조지프 앤턴, 본명 살만 루슈디…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건 루슈디가 이때 이베리아 반도에서 쫓겨난 세파르딤 유대인 이야기를 하도 재미나게, 많이 써서 그렇다. 루슈디는 무슬림 집안 출신의 바람둥이. <악마의 서>를 써서 눈알 하나를 잃었어도 (이슬람법 상 사면되었으나 무슬림 환자들한테는) 아직도 완전히 집행되지 않은 사형수이자 비종교적 무슬림이다. 하여간 이때 고민이야 했겠지만 잽싸게 기독교로 개종해서 이베리아 반도에 남은 유대인을 일컬어 서부 세파르딤, 또는 이베리아, 또는 세파르딕 유대인이라 한단다.

  별 재미도 없고 황당하기만 한 소설의 독후감을 읽는 수고로움에 대한 보상으로 그냥 한 번 소개했다. 뭐 일종의 시시한 잘난 척이기도 하다.

  로버트 네이선이 저명한 세파르딤 유대인 가족의 일원이라고? 여기서 저명하다는 건 사는 곳이 뉴욕이니까, 그냥 돈이 많은 집안이라 생각하면 딱 맞다. 이 정도로 이해하시면 될 듯. 로버트도 스위스에서 사교육을 받은 다음에 하버드에 입학했으나, 일찍 장가드는 바람에 가족 먹여 살리느라 학교 때려치우고 글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 몇 개가 영화화되는 바람에, 아따 이거다, 문학성이고 뭐고, 소설 역시 잘 팔리는 대중소설이 대빵이다 싶어 줄창 대중소설만 쓰다 갔다. 많은 작품을 양산했지만 이제 독자는 <제니의 초상>과 <주교의 아내>만 아주, 아주, 아주 드물게 읽어보고 실망할 뿐이다. 영화로 만든 건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안 봤다. 혹은 보긴 봤는데 잊었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제니의 초상>에는 제니퍼 존스와 조셉 코튼이 출연했다니 아주 오래전 KBS 명화극장에 나왔었을까?


  작품은 일인칭 화자 ‘나’의 시점이다. 독후감은 3인칭으로 쓰겠다.

  주인공은 이벤 애덤즈. 초상 속 인물은 제니 에플턴. 작품은 ㅆㄴㄹ, “씨나락”, 귀신 씨나락 까먹는 얘기다.

  이벤 애덤즈는 훗날 영화의 주인공이 될 인물이니까 당연히 잘 생기고 허우대 멀쩡한 청년이다. 게다가 여태까지는 뉴잉글랜드 지역의 풍경만 죽어라 하고 그리던 화가. 일찍이 프랑스 파리에서 그림 공부를 했지만 작품 목적상 극도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얼마나 가난하냐 하면 자주 끼니를 거를 정도. 시간적 공간이 아무리 미국 대공황 시기라고 한들 불과 몇 년 전에 그림 공부를 위하여 파리 유학을 시켰고, 유학 중 파리의 명소와 카페와 음식점을 섭렵할 수 있었을 정도인 가문의 자제가, 마치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의 주인공 수준이면 이게 말이 되나?

  그러나 역시, “예술가의 괴로움, 추위와 굶주림이 아닌 다른 종류의 혹독한 괴로움”이라는 것이 있으니 그건 “천재의 생명이, 자기 작품이 생명의 즙이 얼어붙은 채 꼼짝없이 죽음의 계절에 붙들려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것”이란다.

  1981년에 이 책을 번역한 이덕희는 그때는 몰랐겠지만 만년에 질병으로 고통을 받게 되자 정신적 고통이 육신의 고통에 비하여 보잘것없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다. 이 책의 중판이 나오고 1년이 지난 2016년에 세상을 뜬 마지막 아날로그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이덕희의 불운한 말년을 생각하면 이벤 애덤즈의 “영혼의 즙”이 얼마나 황당한 발상인지 헛웃음이 나올 뿐이다.


  때는 1938년 겨울. 공원을 지나 집으로 가던 중이다. 훗날 센트럴 파크가 될 공원에서 셋방 겸 작업실이 있는 웨스트사이드에 가려면 양 방목장을 건너야 한다. 아휴. 다른 곳도 아니고 뉴욕의 센트럴파크 옆에 양sheep목장이 있었다니! <제니의 초상> 뒤로 가면 이벤이 제니를 그린 초상을 팔아 선수금으로 3백 달러를 받는데, 1백 달러 정도는 자기 용처로 쓰고 2백 달러로 양목장 부근의 아무런 맹지라도 땅 좀 사놓지! 책을 읽는 내내 이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니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는 도시 뉴욕의 양목장 말이지.

  하여간 무거운 화구가 든 가방을 든 채 양 방목장을 가로질러가려는 건 당연히 차비가 없어서다. 방목장 부근의 몰가街. 안개가 자욱한 가로를 굶주려 기진맥진 걷고 있었으니 머리가 약간 이상해진 상태였을 지도 모른다. 근데 안개 낀 밤중에 거리 복판에서 어린 소녀가 혼자 돌차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고, 그저 일상적인 대화가 오고 갔다. 소녀가 말한다. 이름은 제니. 자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선생님만 괜찮다면 함께 가고 싶다고. 이벤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안개 낀 밤중에 거리에서 혼자 놀고 있는 어린 여자 아이를 다 큰 남자가 경찰관에게 인계하는 게 아니라 함께 거리를 가는 모습이 다른 사람, 특히 경찰에게 눈에 뜨인다면, 유괴범이나 변태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하여튼 함께 걷기 시작한다.

  자기는 부모와 함께 호텔에서 생활한다고. 어린 시절의 유진 오닐처럼 부모가 배우이고 지금은 햄머슈타인 뮤직홀에서 밧줄 위에서 요술을 부리는 공연을 한단다. 공연이 늦게 끝나 시간에 맞춰 호텔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둘이 걸으며 이벤이 들은 이야기다. 그는 직감한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햄머슈타인 뮤직홀은 수년 전 이벤이 소년이었을 때 이미 박살난 공연단체 아닌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오전에만 학교에 간다는 제니도 유행에 뒤떨어진 구식 차림새이고. 옛날식 코트와 이젠 아무도 쓰지 않는 보닛. 어디서 봤더라? 맞다. 미술관의 계단 위에 걸린 그림, 누구더라? 부라슈? 그림 속의 소녀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 제니가 보닛 챙 아래로 이벤을 올려다보며 억양 없는 목소리로 노래한다.


  어디서 내가 왔을까

  아무도 모르네 ―

  그리고 내가 가고 있는 곳으로

  모두들 가네.

  바람은 불고,

  바다는 흘러 ―

  그래도 누구 하나 알지 못하네


  작품이 절반 이상 지나면 위 노래 가사가 결정적 결말을 나타낸다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초장에는 큰 관심 없이 지나가게 된다. 아니, 벌써 이 책을 선택한 걸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여간 몰가의 끄트머리에 도착하자 제니는 더 이상의 동행을 거부한다. 돌아서 가기 바로 전에 제니는 이벤에게 말한다.

  “제가 자랄 때까지 선생님이 기다려주셨으면 해요. 하지만 그러진 않으실 테죠, 아마.”


  4일 후, 이벤은 제니를 스케치한 그림이 담긴 가방을 든 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매튜스 화랑을 지난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화랑에서 헨리 매튜스를 발견한 이벤은 그에게 자신의 그림을 보여주고, 곤혹스러운 처지를 당한 마음 약한 매튜스 씨는 건성으로 그림을 휙휙 보다가 제니의 스케치를 보고는 당장 그것을 사버린다. 30달러. 이건 대단히 좋습니다. 이전에 어디선가 이런 어린 소녀를 본 적이 있답니다. 어디였는지 말할 수는 없지만요. 같은 소녀라는 말이 아니고 분위기가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매튜스는 이벤에게 풍경이 아닌 초상을 그려볼 것을 권한다. 특히 여성을 그리라고. 남성의 초상은 이미 예전에 끝났지만, 여성의 초상은 늘 새롭고 신비한 것이란다.

  몇 주가 지나고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되자 호수가 꽝꽝 얼어붙었다. 이벤이 호수 위에서 낡은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가 다시 만난 제니. 몇 주가 흘렀을 뿐인데 제니는 그 새 더 큰 것 같다.

  다시 몇 주가 지난 춥고 지저분한 셋방에 돌아와보니, 셋방 주인 지크스 부인이 방에 손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불편한 기색으로 전한다. 또다시 제니. 더 큰 모습. 이젠 다 자란 숙녀 같기도 하다. 지크스 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어떠셔? 속성으로 커버린 제니하고 이벤 사이에 불장난이 생기겠어, 안 생기겠어? 물론 빵 줄 사람은 생각하지도 않는데 미리 우유부터 벌컥벌컥 마실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ㅆㄴㄹ 소설임을 명심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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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오스
후안 까를로스 오네띠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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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네티O’Nety 가문은 스페인과 아프리카 사이, 지브롤터 최남단에 위치한 영국령의 아일랜드 또는 스코틀랜드 출신 영국인 가문이었는데 이름을 이탈리아 식으로 오네띠Onetti로 바꾸고 우루과이 가는 배에 오른다. 그의 손자 가운데 한 명인 카를로스는 브라질 귀족 가문의 딸 오노리아 보르헤스와 결혼해 순서대로 아들, 아들, 딸을 낳아 이름을 라울, 후안, 레이철이라 했다. 셋 중에 가운데 후안 카를로스 오네티 보르헤스가 오늘 소개하는 책 <아디오스>를 쓰고, 9년 여 전에 내가 읽은 <조선소>를 쓴 우루과이의 소설가이다. 생몰은 1909년~1994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에서 출생해 21세 때 사촌 마리아 아말리아와 첫번째 결혼을 하고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서 로이터 통신사에서 일했다. 46세 때인 1955년에 귀국해 저널리즘 일을 하다 시립도서관장에 올랐다. 이때 라틴아메리카는 전반적으로 독재체제가 유행할 때라 반체제작품을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하는 심사위원의 한 명으로 지목돼 잠깐 나랏밥도 자시고(보람찬 빵생활도 하시고) 이런 체제에 염증을 느껴 1974년,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스페인으로 날아가 정착해 1994년 마드리드에서 죽었다. 

  <조선소>에서 보듯이 사람이 좀 염세적이었지 않나 싶은데 여든다섯까지 살았다. 자신도 그렇게 오래 살 줄은 몰랐다고 나중에 한 마디 했단다.


  <아디오스Los Adioses>는 1953년작. 즉 아르헨티나에서 쓴 중편소설이다. 책은 프롤로그, 본문, 에필로그로 되어 있다. 놀랍게도 프롤로그는 안또니오 무뇨스 몰리나가 썼다. 재미있는 책 <폴란드 기병>과 <리스본의 겨울>을 쓴 작가. 독자가 책을 헤매면서 읽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본문이 110페이지 조금 넘는 수준이니까 분량을 확보해준다는 의미도 포함해 몰리나의 서문을 프롤로그라는 이름으로 붙여 파는 모양이다. 사실 나 같은 보통의 독자가 한 방에 읽으면 약간 멀미가 날 수도 있겠다. 프롤로그가 책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다. 오네티도 당대의 라틴 아메리카 작가답게 다분히 붐문학적 구성을 따라 작품을 쓰는 작가라서.

  몰리나의 프롤로그를 보면,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이 이 작품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나사의 회전>은 한 부유한 지방 저택에 입주한 가정교사와 아이들, 그리고 출몰하는 유령들이 엮는 ㅆㄴㄹ,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데, <아디오스>는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농구팀 센터를 지내면서 농구 최강국 미국과 결승전에서 맞짱을 떠 영광의 준우승 경험이 있는 남자가 나이들어 결핵에 걸려 아르헨티나 산악지방에 있는 요양소 부근의 호텔과 별장에서 점점 병이 심해지는 내용이다.

  스토리만 크게 보면 그렇다는 말. 병자들이 모인 지역이라는 폐쇄성, 결코 밝은 색채를 띨 수 없는 의사와 간호사, 호텔 호스티스, 정류장 인근에서 술집과 우체국을 겸하는 잡화점 주인, 스물다섯 살 처녀들만 네 명이 죽은 별장을 관리하는 부동산 중개인. 구성부터 좀 우중충.

  그러나 산 속에 자리해 맑은 공기, 상쾌한 바람, 아름다운 자연. 이건 오네티가, 몇번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르헨티나 산악지역으로 신혼여행 갔던 지역을 기억해서 작품의 배경으로 깔았다고 한다.


  중편소설이지만 줄거리 소개가 좀 길다. 인상깊게 읽은 작품이라서. 물론 독자마다 감상을 다를 터이니 감안하시옵고.

  결핵요양원이 있는 산골 이야기는 토마스 만의 <마의 산>에서 충분히 익숙하다. 그러나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산촌. 들어가면 걸어서 퇴원하는 예가 거의 없는 요양원으로 한스 카스트로프가 7년을 보낸 다보스 플라츠 근방의 국제요양원과는 여러가지로 비교하기 힘들다. 1930년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 수준, 부르주아 전용과 일반 시민 전용 요양소의 차이 정도. 그리하여 <아디오스>의 요양원, 숙소로 사용하는 호텔의 환자, 숙박객, 휴양객, 의사, 간호사, 종업원들은 절대로 알프스 중턱의 국제요양원과 인근 소도시에 사는 환자와 철학자가 나누는 신학, 철학, 과학, 인문학적 대화를 나눌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래서? <마의 산>보다 쉬운 착한 소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마의 산>보다 착하다는 것이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후안 오네티의 문장과 구성이 쉽게 읽히게 하지 않는다. 그래도 내 마음에 딱 들었다. 무엇보다 문장과 구성과 분위기가 내 스타일. 작품의 화자는 요양원과 호텔으로 가는 정류장 옆의 잡화점 주인. 술도 팔고, 별정우체국도 겸한다. 그러니 환자들에게 오는 편지는 전부 이곳을 거쳐야 하고, 이건 마음만 먹으면 편지 몇 통 정도는 수신자에게 전해주지 않고 ‘나’가 펴 보고 불태워버릴 수도 있다는 뜻. 시간적 배경이 1938년이니 이 정도 행위는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보통 인정되는 범위에 드는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이 휴양지에 들어와 산지 15년차. 12년 전에는 한쪽 폐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정말 얼마 되지 않는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이다. 이곳은 폐결핵 환자들의 요양지로 알려진 코르도바주의 산악도시 코스킨을 모델로 한 가상 지역.

  작품을 시작하면 키가 크고 햇볕에 그을리지 않은 흰 피부에 확신 없이 움직이는 길쭉한 손을 지닌 남자가 느릿하고 소심하고 꿈뜬 모습으로 가게에 들어온다. 오늘 버스를 타고 도시에서 들어온 남자. 비슷한 얼굴을 15년 간 보며 살아온 ‘나’가 그를 보니 병을 고치지 못할 것이고, 병을 고치겠다는 일말의 의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마흔 살 언저리쯤 됐나? 큰 키에 떨 벌어진 어깨를 가지고 있지만 구부정한 자세. 틀림없이 중병은 아닐 것이다. 가망이 전혀 없지 않더라도 병을 고치지 못할 사람. 이제 ‘나’는 이런 사람은 척 보면 안다. 이이가 전직 국가대표 농구선수.

  더 높은 지역의 구식 호텔에 짐을 푼 농구선수는 수도행 기차가 들르는 날이면 편지 두 통을 주머니에 넣고 버스를 타거나 걸어서 시내에 나가 우체국에서 직접 편지를 부친다. ‘나’가 운영하는 별정우체국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마도 자신이 누구한테 편지를 보내는지 알리지 않고 싶기 때문일 것. 그러면 뭐해? 그들의 답신이 ‘나’의 별정우체국에 도착하는 것을. 답신 역시 두 통이 온다. 한 통은 여자가 쓴 것임이 틀림없이 녹색의 동글동글하고 큼직한 글씨체. 다른 한 장은 주소를 타이프한 봉투.


  의사 군스는 농구선수에게 걷는 것을 금하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 상태가 나쁘지 않는 농구선수는 그 말을 들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결혼할 생각인 남자 간호사와 호텔의 키 큰 호스티스 레이나의 말을 듣고 알았는데, 농구선수는 호텔 말고 숲 속에 있는 작은 산장을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사실 이건 조금 나중의 이야기기는 한데 일어난 일을 일일이 다 말할 수 없어서 처음부터 본론으로 갔다. 농구선수한테 손님이 왔다. 당연히 여자. 농구선수만큼은 아니지만 키가 크고 아들로 보이는 아이를 하나 데려왔다. 한 가족으로 보인다. 근데 처음에 선글라스를 쓴 키 큰 여자가 도착했을 때는 아이에 대해 아무 말도 없다가 나중에 갑자기 아이가 보이는 거다. 그러니 선글라스를 쓴 키 큰 여자는 틀림없이 농구선수의 아내거나 연인일 터.

  아르헨티나에서는 한여름인 크리스마스와 새해 전야의 파티. 이때 전혀 병색이 없는 어린 여성이 산골 휴양지에 도착해 보잘것없는 무도회장으로 꾸민 ‘나’의 잡화점으로 들어와 춤도 추지 않고 한 자리에 앉아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모습. 도시에서 떠나기 전에 전보를 쳤지만 기다리라 한 남자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여자는 몰랐겠지. 전보가 도착하려면 이틀 이상 걸린다는 걸. 그래서 ‘나’는 파티가 끝난 새벽 여자, 차라리 소녀를 구식 호텔에 데려다 준다. 이 여자도 농구선수를 찾아온 손님이다.

  독자가 읽기로, 선글라스를 낀 키 큰 여자는 겨울에, 어린 여자는 여름에 농구선수를 찾아온 것 같은데? 하여간 농구선수는 어린 여자를 포르투갈 처녀들의 방갈로로 데려가 한 주일을 지낸다. 그리고 어린 여자는 도시로 돌아간다.


  문제는 위에서 말한 것이 전부 화자 ‘나’의 내레이션이라는 거. ‘나’는 확신에 차서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왜곡이 많고 ‘나’가 본 것에만 ‘나’의 해석으로 진술했던 내용이다. 그러니 여태 ‘나’의 진술을 믿고 따라간 독자는 당연하게도 ‘나’와 함께 왜곡, 잘못된 해석으로 미끄러졌던 것.

  그런데 독후감을 쓰는 나는 이제 진짜 딜레마에 빠진다.

  이 책이 왜 특별한지를 말하고자 하면 책의 뒷부분, 호텔에서 이들을 직접 서빙했던 호스티스 레이나와 남자 간호사의 말을 들어야 하는데, 그걸 소개하면 흥미로운 책의 결정적 스포일러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본문을 읽기 전에, 워싱턴 주립대 교수였던 볼프강 A. 루칭이 쓴 이 책의 에필로그를 먼저 읽은 걸 후회하고 있어서 뒷부분과, 농구선수와 두 여자의 관계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걸 알면 ‘충격적인 결말’이 시시해지고 말 터이니까.

  그래서 바라건대, 본문이 겨우 110페이지 조금 넘어가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합쳐도 150페이지에 불과한 중편소설이라 직접 읽고 판단하시는 것이 좋겠다.

  다만 이 책이 1953년에 나온 것이고 루칭 교수도 에필로그를 53년에 썼을 터, 그이의 에필로그 속에 든 여성차별적 의견/표현이 언짢을 수 있으니 조금 너그럽게 읽어야 하실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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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5-12-17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르는 작가인데...찾아보니 <조선소>도 있네요...<나사의회전>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라니....그리 재밌는 소설은 아닌 듯보이지만...그래도 뭔가 아우라가 느껴지는 소설처럼 보입니다. 별5개리니...저도 주문해야 겠습니더~~^^

<말한마리..>는 어제 배송되어 왔습니다. 아마도 다음달에나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왜냐면 지금 <특성없는 남자> 1권 열심히 읽고 있거든요~ㅎㅎ 읽을수록 무질은 참..제 취향입니다.^^ <생도 퇴를레스의 혼란>은 지루해서 덮었는데..<특성없는 남자>는 작가의 철학이 주가 된 작품이라 읽는 맛이 있네요..ㅎㅎ

Falstaff 2025-12-17 17:02   좋아요 0 | URL
이 책, 재미는 있습니다. 북적북적 앱에 토 안 달고 5별 준 책인데요, 읽는 사람에 따라 좋고 안 좋고 차이가 많을 거 같아서 말입죠. 선뜻 사서 읽어보시라 권하기가 쉽지는 않네요. ㅎㅎ
 
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6
오타비오 카펠라니 지음, 이현경 옮김 / 들녘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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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오타비오 카펠라니를 위키피디아 검색해봐도 이탈리아어로 된 거밖에 없어 구글번역을 시켰더니, 이거 뭐, 진정한 구글번역이라서 도무지 어느 한 구석 가져올 것이 없다. 시칠리아 카타니아 출생의 1969년생. 근데 어떻게 나보다 더 늙어 보여? 어쨌거나 고대의 고귀한 시칠리아 피라이니토의 카펠라니Cappellani di Pirainito 가문 출신이란다. 그러니까 가족 조상이 귀족이었다는 것인데, 그게 뭐 어쨌다고?

이 책을 고른 건, 다른 때처럼 이탈리아 서가를 어슬렁거리다가 마음에 딱 차는 역자의 이름을 보고 골랐다. 이현경. 이탈로 칼비노, 프리모 레비,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움베르토 에코 등을 우리말로 번역하고 이탈리아 대사관 주관의 제1회 번역문학상과 이탈리아 국가 번역 문학상을 받은 이. 이 역자 덕분에 특히 칼비노를 읽을 수 있었다. 이현경이 번역했으면 기대에 어긋날 리가 없다 싶어서.

그리고 이 책이 들녘의 ‘일루저니스트 세계의 작가’ 시리즈 가운데 한 권이라는 점도. 벌써 10여 년이 흘러 이제 시리즈의 많은 책들이 품절, 절판되었지만 이 시리즈를 통해 읽은 책이 제법 있다.

출판사의 책 소개를 읽어보면, “소설 형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니 “조직보다 자아가 먼저인 21세기형 패밀리의 탄생”이니 말이 많은데, 물론 틀린 말처럼 읽히지는 않지만 이것보다는 마지막 단정인 “대중문화 코드에 기반을 둔 블랙 유머”라는 표현이 딱 와 닿는다. 즉 어떻게 말을 하던 간에 <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는 대중소설이라는 점. 그게 어떻냐고? 재미있다는 뜻이다. 심지어 마피아 패밀리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도 이 책은 특히 뒤로 가면 갈수록 끌리는 맛이 있었다. 역시 패밀리 이야기는 죽고, 죽이고, 깔끔하게 죽이고, 그것도 폼나게 죽이는 장면이 나와야 제 맛이지.

가장 중요한 주인공은 돈 루 쉬오르티노. 시칠리아 출신의 이탈리아계 미국인. 뉴욕의 암흑세계를 대표하는 대부들 가운데 한 명. 뉴욕이 워낙 커서 한 명의 대부가 지배하는 건 불가능하다. 돈 루와 또다른 이탈리아 출신의 ‘존 라 브루나’와 더불어 뉴욕을 거의 양분하고 있는 밤의 실력자. 하지만 라 브루나와 더불어 늙어가 이제는 은퇴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노인이다. 이 바닥에서 뼈가 굵은 만큼 현명하고, 자존감이 강하지만, 세대 차가 많이 나는 손자 루 쉬오르티노 주니어에 대한 사랑이 좀 과하다.

돈 루는 손자 루에게 끊임없이 강조한다. 누구한테나 존경받는 사람이 되라고. 하지만 그것을 즐기지는 말라면서 꼭 필요한 순간에만 힘을 사용하라고. 젊은 루가 더 젊었던 시절에 시내 한가운데 간이식당에서 자잘한 일 때문에 얼굴이 박살나 돌아온 적이 있었다. 이때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바보녀석. 멍청한 놈 같으니! 드디어 널 이렇게 만든 놈을 손 봐줄 때가 왔구나. 하지만 지금 당장 그놈을 죽이면 안 돼. 이번엔 그냥 넘어가자. 시대가 변했거든. 한 가지 명심할 게 있어. 그런 놈들은 말이다, 슬픈 눈빛으로 죽여야 돼. 네가 놈을 죽이는 걸 슬퍼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보여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돈 루의 철학에 의하면 보스가 되는 건 지배하고 장악한다는 뜻이다. 상납금도 마찬가지. 상납금은 지불하는 게 아니고 거두어들이는 행위를 말한다. 돈 루는 오직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는 데 방해되는 자들만 살해했다. 거기서 벌어들인 돈은 다시 투자해 사업을 키우고, 날로 커지는 사업 덕택에 지역 사람들 모두 행복하고 삶에 만족할 수 있었다. 그들을 괴롭히는 다른 세력들로부터 철저하게 보호해주었으니까. 물론 경찰과 FBI의 견해는 이것과 조금 다르기는 하지만. 이제 자금의 흐름이 문제였다. 날이 가면 갈수록 자금 운용이 투명해져 거두어들인 돈을 어떻게 합법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하는 돈세탁이 가장 큰 문제였다. 이때 돈 루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LA를 중심으로 하는 영화산업. 대규모의 자금이 흘러 들어오는 영화산업 이야말로 돈세탁을 하는 데 그만이었다. 그래서 돈 루는 손자 루를 LA로 보내 친구들이 만든 무비 스쿨에 가담하게 해 스타쉽 영화사를 차려(아마도 인수해서) 대표 자리에 앉혔다.

어디에나 한 명의 골통은 있다. 스타쉽에서는 감독 레오나르드 트랜트. 이탈리아 출신 영화감독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체성을 버리기 위하여 남자 이름에 의례 붙는 알파벳 ‘o’를 떼어버려 레오나르도가 아니라 레오나르드라는 이름을 선택한 골통 감독은 노골적으로 시오르티노 가문이 어떻게 돈세탁을 하고 있는지 자기가 알고 있다고 협박하기에 이른다. 자기도 CG를 사용해 영화를 만들고 싶으니 CG회사를 하나 차리자는 조건을 디밀면서. 너무 길어져 중간을 뚝 떼고 말하자면, 이 영화사의 복도에서 폭발 사건이 터진다. 할아버지는 돈 루를 즉각 LA에서 시칠리아의 카타니아로 보내 손자를 카타니아의 거물 살 스칼리에게 보호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할아버지 돈 루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맞수 존 라 브루나. 자기가 사람 한 명을 보낼 터이니 스타쉽 영화사의 비어버린 사장 자리에 좀 앉히면 안 되겠느냐고. 돈 루는 즉각 라 브루나의 부탁을, 말 그대로 흔쾌하게 받아들인다. 어차피 누가 와도 새 사장은 라 브루나의 바지사장일 뿐이니 하다못해 신문배달 소년이나 성냥팔이 소녀가 와도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쯤은 뻔히 알고 있다.

시칠리아 카타니아의 대부 가운데 한 명인 살 스칼리는? 할아버지 돈 루 덕분에 뉴욕에서 ‘스칼리 아마레티’ 제과점 체인을 열어 갈퀴로 돈을 긁었다. 아마테리는 시칠리아 식 과자를 말하는데 ‘살 삼촌’이라 불리는 살 스카리는 영화 <나 홀로 집에>에서 나오는 키 작은 악당 조 페시와 아주 흡사한 외모를 지녔고, 하는 짓도 좀 그렇다. 근데 돈 루가 손자를 맡기기에 살 삼촌이 이제는 너무 커져 버렸다. 뉴욕에서라면 감히 돈 루 앞에서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겠지만 전통적인 지역 마피아가 딱 자리를 잡고 있는 시칠리아에서야 아무리 돈 루일지언정 살 삼촌을 가볍게 대할 수 없는 처지. 살 삼촌은 뽀대를 잡기 위해 손자 루에게 그냥 밥을 먹여줄 수는 없고, 아마테리 과자의 광고를 위한 영어 카피를 뽑으라고, 과자점 2층에 작은 사무실 하나를 내주었을 뿐이다.

살 스칼리 수하에 건달 세 명이 있다. 투치오, 누치오, 눈치오. 이름 같은 건 사실 알 필요 없지만, 하여간 이 가운데 한 명이 전직 마피아 패밀리인 고지식한 노인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어가 노인 역시 당연한 질서라고 여기는 상납금을 받으려다가 우연히 현장에서 마주친 경찰관의 얼굴에 총을 갈겨 죽여버린 사건이 터진다.

딱 이때를 맞추어 뉴욕에서는 존 라 브루나가 바지사장 프랭크 에라에게 카타니아 출장을 명령하고, 돈 루 역시 살 삼촌이 자기 손자 루한테 당연하고도 마땅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신경쓰여 전설의 칼잡이이자 돈 루 쉬오르티노의 충실한 경호원인 ‘협죽도’ 그러나 이제는 늙은 노장 핍피노와 함께 카타니아로 돌아오니 어찌 한 탕 칼부림, 총부림이 벌어지지 않으리오. 하지만 특히 이런 잘 쓴 대중 폭력 소설이야말로 함부로 스토리를 이야기했다가는 욕이나 푸짐하게 얻어 터지기 마련이라, 그걸 뻔히 알고 있는 내 입에서 더 이상의 말이 나오기를 기대하지 마시라. 우짰든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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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5-12-16 13: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 님 얼굴은 1970년대 생 얼굴이군요?! 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5-12-16 15:52   좋아요 1 | URL
하여간 잠자냥님 짓궂으셔 ㅋㅋㅋㅋ
 
패스토럴리아
조지 손더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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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살아 있는 작가 가운데 미국에서 단편소설을 제일 잘 쓴다는 조지 손더스. 나도 이이의 《12월 10일》을 흥미롭게 읽고 관심을 갖게 됐다. 제일 잘 쓴다는 표현에 동의하는지는 다음으로 하자. 이 책도 손더스의 소설집. 82쪽 분량의 표제작을 포함해 모두 여섯 편을 실었다. 이 가운데 분량이 제일 많은 <패스토럴리아>를 소개한다.


  망해가는 가상의 테마파크. 화자 ‘나’와 재닛은 저 원시시절, 동굴에 사는 구석기 혈거인들로 분장해 정말로 동굴에서 산다. 관람객은 입장할 때 받은 팜플렛을 통해 산 중턱의 동굴에 혈거인들의 주거지가 있는 걸 확인하고 ‘나’와 재닛을 구경하러 올 수 있다. 작은 문제 하나는 동굴까지 오려면 그리 짧지는 않지만 현대 도시인한테는 조금 부담스러울 거리를 걸어야 한다는 것. 안에 진짜 모닥불을 붙여 놨지만 그래도 어두컴컴한 굴 속에 머리부터 디밀어야 하는데 머리 하나 디밀어 보는 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거기까지 기어올라오느라 흘린 땀이 아까워 주로 가족 단위의 관람객이 드디어 동굴 안으로 입장하면 가죽 옷을 입은 ‘나’와 재닛이 원시인처럼 방문객은 알아듣지 못하는 이상한 언어로 소통하면서 동굴벽화를 그리고 있거나 자잘한 풀잎 씨앗 같은 것을 고르고 있어야 한다. 이들이 무엇을 물어보더라도 현대어로 대답하면 규칙 위반이다. 원시인 컨셉.

  예를 들어 관람객이 “동굴에서 지내면 용변은 어떻게 보나요?”라고 물었는데 “일회용 봉투를 설치할 수 있는 (좌변기 비슷하게 생긴) 틀이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동굴에서 나간 다음 관람객 설문지에 “아, 원시인들이 영어를 알아듣고 영어로 대답을 하는군요!” 하는 응답을 받을 수 있다. 그러면 규칙 위반. 테마파크가 장사가 잘 되면 별 문제없이 지나갈 수 있어도 여차하면 일신상 불이익을 받을 충분한 이유가 된다.

  ‘나’는 아내 루이자와 아들 넬슨을 둔 삼십대 유부남. 넬슨이 좀 아프다. 그래서 보수가 좋은 이 일을 계속해야 하고, 발이 크고 얼굴은 작게 쪼그라든 파트너 재닛은 쉰 살이 되었건만 사고뭉치 아들 브래들리 때문에, 사고를 쳐도 보통 사고를 쳐야지, 그걸 합의하고 보석금을 내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재닛 역시 일자리를 잃을 수 없는 처지. 세상 사는 일이 피곤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그리 흔해? <패스토럴리아>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


  테마파크의 사장 노드스트롬은 ‘나’와 재닛에게 적지 않은 급여를 주는 대신 철저하게 원시인으로 살기 원한다. 원시 동굴에는 관계자용 대형과 소형 출입구, 이렇게 두 개가 있는데, 식량도 대형 출입구에 염소 한 마리를 밀어 넣고, 소형 출입구로는 토끼나 닭 같은 작은 짐승의 사체를 공급한다. 그러면 ‘나’는 흑요석 재질의 석기시대 칼로 가죽 벗기는 일을 하고 재닛은 불을 피워 고기를 삶는다. 매일 염소를 먹으니 재닛은 군 염소가 이제 “너무 지겨워서 비명이라도 지르겠어!”라고 ‘나’에게 불평한다. ‘나’는 이렇게 재닛이 영어로 말하는 것이 불편하다. 규칙 위반이니까.

  근데 오늘 아침엔 염소가 오지 않았다. 메모 한 장만 달랑 보냈다.

  “버티시오. 버티시오. 염소는 올 테니까. 젠장, 너무 오만해지지 마시오.”

  노드스트롬이 보낸 메모. 이래서 오늘 아침은 굶었다. 점심과 저녁은 ‘예비 크래커’를 씹고 버텼다. 커피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예비 크래커도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얼른 먹어야 한다. 이 와중에 재닛이 불평한다.

  “내일도 염소가 없으면 나는 여기서 나가 언덕을 내려갈 거야. 하느님한테 맹세해. 두고 봐.”

  또 영어다. ‘나’는 불편하다. 말이 그렇지 내려가긴 뭘 내려가? 목구멍이 포도청인 걸. 훌륭하신 아드님 브래들리가 편하게 내버려두겠다.

  하루를 마감하는 늦은 오후. 유일한 통신 시설인 팩스로 ‘파트너 일일 평가 양식’이 도착한다.

  태도상 곤란한 점이 눈에 띄는가? (답변: 띄지 않는다.)

  나의 파트너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답변: 아주 좋다.)

  ‘명상’이 필요한 ‘상황’이 있는가? (답변: 없다.)

  ‘나’는 좋은 게 좋다. 재닛의 사정을 뻔히 알면서, 비록 재닛이 함부로 영어를 쓰고 근무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평가서를 쓸 수는 없다. 봉급쟁이들 다 그런 거지 뭐. 근데 위에서 말한 가족 관람객의 질문, 당신들이 눈 똥은 어떻게 처리하세요? 이걸 그 자리에서 영어로 대답한 재닛을 노드스트롬은 벌써 알고 있다. 설문지를 통해. 그래서였을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원시동굴의 출입구에는 염소는커녕 토끼나 닭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흠. 고객설문지, ‘고객 간단 평가’.

  전반적 인상 (답변: 완벽해! 아주 좋아!)

  학습가치 (답변: 그들이 어디서 응가를 하는지 배웠다. 옛날이나 지금 모두.)

  지금 ‘나’와 재닛의 가장 큰 골치는 “아무도 고개를 디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전반적인 테마파크의 불황. 이 가운데서도 산 중턱까지 올라와 배우가 분장하고 있을 것이 뻔한 원시 혈거인을 구경할 정성이 없다는 점. 하긴, 이들보더 더 어려운 사람도 있기는 하다. 데이브 윌리. ‘지혜로운 산의 현자’ 역할. 이이는 끝장이 나버렸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관람객이 관람을 안 하려 한다. 이렇게 외딴 지역에 있는 사람이 끝장나면, 테마파크 근무자들만 이용하는 비관람객 전용 길에 이동주택을 가져다 가게를 차린 마티의 상점 역시 언젠가는 끝장이 날 것이다.


  어느 날 아침, 대형 출입구에 염소가 한 마리, 소형 출입구에 토끼 한 마리가 왔다. 더불어 ‘배급’ 관련 메모도 한 장. 추가 식량인 토끼는 우리(테마파크)의 존중을 보여주는 표시로 보낸다. 그러나 결핍과 도전의 시기를 맞아 직원재배치 문제를 정리할 때가 왔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는 없어져야 한다. 그나마 좋은 건 누군가는 계속 있을 것이라는 점. 그것이 당신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니 제공하는 특식을 즐기고, 걱정하지 말고, 감독의 연락이 오기를 기다리면 된다. 연락이 오지 않으면 바람이 당신의 문간을 지나간 것이라나?

  원래 딱 이럴 때 집에서도 문제가 생기는 법. 이른바 엎어치고 메침을 당하는 게 주인공들의 팔자거든. 외우내환, 불행은 한 번에 하나만 오지 않는다. 뭐 이런 거. 원래 몸이 좋지 않았던 ‘나’의 아들 넬슨은 이제 병원에 입원해 더 확실한 검사를 받고, 가능하다면 입원 치료를 해야 하고, 주책없이 현대 영어를 쏟아내다가 노드스트롬의 메모가 도착한 다음에 다시 웅얼웅얼거리는 원시언어를 사용하더니, 염병이나 하라는 심정으로 또다시 현대영어를 쓰기 시작한 재닛의 아들 브래들리는 직접 관람객의 자격으로 엄마의 직장까지 쳐들어와 자기가 사고를 쳐서 해결해야 하니 돈 좀 주십쇼, 해서, 빼도 박도 못하는 처지로 떨어졌다. 이날 오후, 다시 도착한 파트너 일일 평가 양식. 이미 노드스트롬은 팩스 통신을 통해 ‘나’가 재닛에게 엉뚱하다 할 만큼 후한 평가를 해온 것에 경고를 날린 바 있다. 어쩔까?

  ‘나’는 평가서에 이렇게 답한다.


  태도상 곤란한 점이 눈에 띄는가? (답변: 띄지 않는다.)

  나의 파트너를 전반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답변: 아주 좋다.)

  ‘명상’이 필요한 ‘상황’이 있는가? (답변: 없다.)


  근데 언제까지? 과연 언제까지 재닛에 대하여 좋은 평가만 할 수 있을까? 노드스트롬의 연락이 ‘나’의 문간 앞에 머물러 주춤거릴 때까지? 지나간 다음까지? 연락이 그냥 문간을 지나가준대? 이것 참, 피할 수 없는 현대 봉급쟁이의 딜레마이긴 하지만. 어쩌면 인간이 동굴 속에서 벽화를 그리고 풀잎에서 씨앗을 고를 때가 제일 행복했을 수도 있다. 기껏 살아야 서른다섯까지 살았지만 복장 하나는 편했을 거 아니냐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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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여자의 세상 - 스즈키 이즈미 프리미엄 컬렉션
스즈키 이즈미 지음, 최혜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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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스즈키 이즈미에 관해서 대략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책 뒤에 실린 ‘작가연보’를 바탕으로 보자.

  1949년 시즈오카현에서 요미우리 기자이며 태평양 전쟁당시 미얀마 종군기자였던 스즈키 에이지의 딸로 태어났다. 현립 이토고교에 다닐 때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졸업후에는 이토시청에서 근무하며 동인활동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1969년 스무살에 도쿄로 와서 모델, 바의 호스티스를 거쳐 성인영화계에 들어가는 한편 소설 작품이 소설현대 신인상에 응모해 총 756편 가운데 최종 후보 8편에 오른다. <처녀의 장난> <눈 뜸> <매춘폭행백서> <여성성장기> <절묘한 여자> <정염∙여인도> <이유 없는 폭행> <돈의 노예> 등의 성인영화에 본명 또는 가명으로 출연한다. 연극 <인력비행기 솔로몬> 공연에도 출연하는 한편 잡지 《11PM》 등에 누드 사진을 싣는다.

  자신이 쓴 희곡 <어떤 예감>이 실제 공연된다. 스즈키 이즈미 역시 다른 연극에 출연하고 낭시 국제연극제에 동행해 파리, 암스테르담에 체재한다.

  1973년에는 재즈 뮤지션 아베 가오루와 만나 약혼하고 이듬해 아베와 동거 중 크게 다투는 과정에서 왼쪽 새끼 발가락이 잘린 해프닝이 벌어진다는데, 이즈미의 수필에서 자신이 잘라 버렸다고 고백한다. 1976년에 장녀 아즈사를 낳았지만 아이의 아빠 아베 가오루는 정신병원에 입원했고, 다음 해에 이혼한다. 1978년엔 전남편이자 딸의 친아빠인 아베 가오루가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자살하고 1986년, 딸이 열 살일 때 스즈키 이즈미 역시 자기집 2층 침대에 팬티스타킹으로 목매달아 자살해버리니 이 때 나이가 36세 7개월이다.


  어떤 의미에서 스즈키 이즈미는 작가라기 보다 누드 모델, 성인영화 배우, 색소폰 연주자와 결혼과 이혼, 발가락 절단 소동, 자택에서 팬티스타킹으로 목매 자살 같은 색다른 에피소드로 이름이 높았을 거 같기도 하다. 이이는 1976년부터 82년까지 주로 SF 작품을 썼는데, 내가 읽어본 소감은 SF, 과학 픽션이라고 하기엔 좀 덜 과학적이라서 그냥 상상으로 외계인과 우주 같은 것이 나오는 공상소설로 보아야 마땅할 것 같다. 시대가 시대라서 페미니즘 작품도 들어 있을 것 같은데, 당시는 ‘우먼 리브woman lib’라는 말이 ‘페미니즘’에게 자리를 넘겨주던 과정이라 현대의 페미니스트가 생각하고 바라는 페미니즘 의식에 까지는 미치지 못하지 않았나 싶다.

  표제작 <여자와 여자의 세상>이 어쨌거나 가장 페미니즘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작품이다.

  세상에서 남자를 보는 건 굉장히 드문 일이다. 인류는 원래 여자들에 의하여 경영되는 사회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가끔 남자가 눈에 띄기 시작했고 이들은 현생 인류와 다른 외모, 다른 성격, 다른 판단력을 지녀 세상을 끔찍하게 바꾸어 놓고 말았다. 사람이라면 생각하지 못할 기계장치, 서로가 서로를 효과적으로 죽일 수 있는 장비를 만들어 서로 죽이면서 힘을 과시하기도 했고, 석유와 석탄을 과도하게 태워 지구를 엉망인 상태로 만들어 놓아 석유가 거의 고갈되어 지금은 거의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에 의해 조달할 뿐이다. 밤이 오면 어둡고, TV 시정은 단 두 채널로 하루에 서너 시간씩 한정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 차를 타고 다니는 건 아주 특별한 경우인데, 항차 비행기는 어떻겠나. 외국에 다녀오는 사람이 생기면 신문과 TV에 출연해서 인터뷰까지 하는 세상이다. 일본만 그런 게 아니라 전 새계적으로 다 그렇다.

  이제 남자들은 거리에서 볼 수 없다. 만일 거리에 남자라는 아종 인류를 발견하면 즉시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그러면 당국은 남자를 체포해 지하에 넓게 만들어 놓은 특수 거주구역, 일종의 게토로 보내 그들끼리 생활하게 만든다. 여자가 남자를 볼 수 있는 건 고등학교를 졸업할 시기에 딱 한 번 거주구 관찰학습 기회가 딱 한 번 주어진다. 그곳의 남자들은 백이면 백 다 위축된 자세, 특이한 냄새, 기이한 골격, 판판한 가슴, 좁은 엉덩이를 가진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이 여자와 여자의 세상에도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한다. 당연히 여자끼리 하는 거다. 만일 어떻게 남자가 하나 있어서 여자 부부가 하는 일을 남자하고 같이 하면, 재수없어서 부자연스러운 임신, 즉 태내수정을 하기도 하는데, 이게 발각나면? 여자는 평생 교도소 같은 곳에 감금된다. 자연스러운 임신이란 여자끼리 결혼해서 정상적인 성생활을 즐기다가, 아이가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길 때 손잡고 병원에 가야 한다. 그러면 국가가 알아서 ‘네코’의 자궁에 아주 작은 올챙이 한 마리를 착상시켜준다.

  ‘네코’는 여성의 생식기를 일컫는 pussycat에서 유래한 바텀역, ‘다치’는 큰칼 대도大刀에서 유래한 탑 역할의 여성을 뜻한다.

  여기까지는 게르드 브란튼베르크가 쓴 <이갈리아의 딸들>과 유사한 면이 많다. 사실 스즈키 이즈미의 활동시기가 브란튼베르크가 <이갈리아의 딸들>을 발표해 영국과 미국에서 영어판이 나온 시기와 겹친다. 서로 다른 작가의 작품을 보고 힌트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이갈리아의 딸들>에서 남성은 여성보다 작은 체구와 소극적 태도, 수치스러운 생식기 보호대 착용 등으로 주피터/제우스 시절 이후 지속한 가부장 제도 하의 여성의 역할을 남성이 대신 맡은 플롯과는 조금 다르다. 스즈키 이즈미는 남성 종을 아예 눈에 띄지 않는 지하실에 콱 박아 놓고 여성끼리만 살게 한다.


  그런데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레이의 창문 아래로 새벽 네 시쯤에 이상한 옷을 입은 사람이 며칠 간격으로 지나가는 것을 발견한다. 레이는 계속 관찰을 하고, 그와 소통을 위하여 도자기 인형에 끈을 묶고 짧은 글을 써 그가 볼 수 있게 2층에서 인형을 내려뜨린다. 이렇게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만나기 시작한다. 레이가 그를 만났다. 히로. 남자다. 게토 안에서와 달리 히로의 몸에서 나쁘거나 불쾌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게토의 남자들은 늘 같은 환경과 일과 동족끼리만 살고 있어서 몸에서 냄새가 나거나 말거나 별로 신경쓰지 않아 불쾌한 냄새를 풍기는 반면, 이 히로라는 남자는 전혀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여자만큼은 아니지만 가슴이 불룩, 그러나 지방질 대신 단단한 근육이 튀어나왔고, 하여간 뭔지 모르겠는데 사람으로 하여금 몸을 비틀고 싶게 만드는 충동을 심어준다.

  지남철의 N극과 S극이 만났으니 어찌 찰싹 달라붙지 않을 수 있으리오. 이들은 히로가 숨어 지내는 옛 시절의 공장건물, 커다란 공장에 뒤에 있어 전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작은 숙소로 오전에 들어가 땅거미가 질 때까지 하루종일 서로의 액체를 교환한다. 아프게 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감각. 이게 뭘까? 오후로 접어드니 좀 덜 아프고 훨씬 많이 좋아지는 느낌. 간질간질한 통증 비슷한 거.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그것만 하고 잔뜩 지쳐 집에 오는 모습을 본 할머니가 단번에 눈치를 챘다. 할머니 젊은 시절에는 레이가 한 것 같은 걸 해본 사람이 무척 많았거든.

  할머니가 레이에게 말한다. 너는 병원에서 만든 아이가 아니야. 네 엄마가 오늘 네가 한 것처럼 남자를 만나 체내수정을 해 낳은 딸이 너다. 엄마는 병원에서 시술확인서를 얻지 못해 너를 낳고 곧바로 수감되어 아직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 너마저 그런 신세가 되게 할 수 없다. 레이는 내가 신고했다. 오늘밤이나 내일 새벽에는 게토로 들어가겠지.

  레이는, 자신이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냥 그렇게 알아듣고 작품이 끝난다.

  SF는 확실히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1970년대 후반에 이걸 SF가 아니라고 할 수 없었을 것 같기도 한 진퇴양난. 그런데 확실히 페미니즘 문학은 아니거나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한 거 같다.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의 색다른 작품이니 읽어볼 만하긴 한데, 굳이 권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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