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잖아요
나탈리 사로트 지음, 클로에 고티에.권현정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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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네 권째 나탈리 사로트를 읽는데, 오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탈리 사로트가 정말 천재라서 그가 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①애초 엄마 배 속에서 나올 때부터 평균 이상, 전 인류의 상위 1~2퍼센트 안에 드는 고급 두뇌를 지니고 ② 무지하게 좋은 커리큘럼을 가진 교육과정을 거친 인간들만 즐길 수 있는 작품을 썼는지, 아니면 어떻게 하다 보니 굳어진 스타일을 동 시대의 잘난 척하기 좋아하는 평론가들이 마구 띄워주는 바람에 천정 높을 줄 모르고 이름값을 날렸는지, 둔한 내 머리로는 가늠할 수 없다고. 네 권까지 달린 것이 아까워, 최근에 민음사 세계문학 시리즈 467번 <향성>은 읽어봐야겠다 싶었다가, 그래도 내돈내산하기 겁이 나 동네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했다.

  그나마 사로트의 희곡은 소설에 비해서 그나마 접수가 되는 편이다. 도무지 적응하기 쉽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면 일단 읽고 보는 거, 이것도 병이지? 나도 미친다, 미쳤다.


  본문이 77페이지에서 끝나는 짧은 희곡. 짧다고 우습게 봤다가는 쌍코피 터진다. 원래 사로트가 그렇다. 어느 작품 하나 빼지 않고 다 짤막하다. 근데 뇌세포가 도무지 적응하기를 꺼려한다. 대단한 공통점이다. 소설의 경우엔 소위 신소설, 누보 로망, 찬쉐가 쓴 <오향거리>의 주인공 X여사처럼 사물을 보긴 보되 거울에 반사된 모습으로만 보다가 보살급의 남편이 현미경을 사주자 현미경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기 시작하는 것처럼, 사로트 표 누보 로망도 로브그리예처럼 사물과 사람을 현미경을 통해 관찰하는 것 같이 미시적 묘사로 일관하는 바람에 독자의 인내심을 극한까지 치닫게 만든다. 거기에 비하면 희곡은 얼마나 친절한가 말이지. 내가 지금 이렇게 쓴다고 해서, 희곡은 그러면 읽으면 딱 감이 잡히겠구나, 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귀족의 후예답게 사로트의 희곡은 프랑스의 유구한 부조리 연극의 바탕 위에 놓여 있다. 쉬운 말을 어렵게 하자면 그렇다. 그냥 쉽게 말하면, 배우가 말하는 대사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거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남1, 남2, 남3, 그리고 여. 대개 남자들과 여자가 나오면 남자들은 헛소리만 하고 여자는 진리의 말씀을 시전하다 결국 남자들에 의해 망가지는 드라마가 보통인데, 이건 거의 전적으로 대개의 (극)작가가 이런 구도로 (극)작품을 생산하기 때문에 독자가 갖게 되는 선입견이다.

  등장인물은 한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 팀원들인 것으로 보이고, 방금 업무상 회의를 마친 듯하다. 회의를 하다가 여자는 무슨 의견을 말하려 하다가 할듯 말듯, 결국 아무 의견 없이 회의를 끝낸다. 이제 해산해 밖으로 나온 남1과 남2는 왜 여자가 의견을 말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주인공인 남2가 여자에 대하여 말한다.


  “아, 알아요… 명석한 두뇌는 아니죠… 그렇지만 우리가 말하고 있었던 건 누구나… 훌륭한 지식인이 아니어도… 그녀는 판단할 수 있어요, 그렇죠, 다른 사람들처럼. 그러니 여기, 그녀 안에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 여기… 이곳에… (손가락 두 개를 이마에 갖다 댄다.) 여기에 그녀의 작은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왜 ‘작은’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안심하고 싶은 걸까요… 그녀는 그녀 안에 자기 생각이 있어요, 생각이 여기 있죠, 감춰진 채. (하략)” (p.10)


  제목 <여기 있잖아요>에서 “여기”란 여자의 머리. 뇌 속, 생각하는 장치가 있는 위치를 말한다. 또는 여자 자신이 있는 곳일 수도 있다. 나는 위 대사를 읽고, 이 대사가 남2의 긴 대사 가운데 거의 처음에 나오는 것이라서 그랬는지, 나탈리 사로트가 페미니즘에 관하여 말하려 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남2가 분명히, “여자도 생각할 줄 안다. 비록 작은 생각이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근데 사로트가 적극적인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페미니즘 작품도 쓴 거 같지 않은데…. (더 읽어보자.)

  남1이 퇴장하고 남3이 등장한다. 잠시 후 객석에서 누군가 종이를 구겨서 뭉친 걸 무대로 던진다. 희곡에서는 남3이 그걸 한 손으로 멋지게 잡아 펼쳐 읽은 후에 남2에게 보여준다. 종이에는 “불관용”이라 적혀 있다. 불관용不寬容. 관용을 베풀지 말아라? 관용을 베푸는 것이 불가능하다? 뭐가?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뒤에 붙어 있는 해설에 불관용에 관하여 나와 있어 그걸 읽어보았는데도 그렇다. 어제 혈액검사 하느라고 하루 쫄쫄 굶고 빈속에 소주와 막걸리를 부어 꽐라가 된 후유증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사실 어제 염하고 시체 비슷한 수준까지 갔다가 오늘 하루 벌벌 기었지 뭐야, 분명 중요한 메시지 같은데도 모르겠고, 모르겠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오늘은 좀 봐주시라. 술이 웬수다.

  하여간 주인공 남2는 회의 때 여자가 의견을 내지 않은 데 대하여 화를 낸 걸 사과한다. 다음에 여자가 대사를 한다. 여자의 대사를 보면 남2가 이들의 조직에 조금 더 우월한 권력을 쥐고 있는 것 같다.


  “하, 제가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결코? 제가 거위처럼 목에 밀어 넣기만 한다? 당신… 당신은, 당신만 ‘생각하신다?’… 당신은, 당신은 ‘아신다?’ 우리는 그것을, 당신의 ‘진실’을 ‘목구멍에 밀어 넣지’ 않아요, 그냥 밀려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는 그저 ‘받는 거예요’. 게다가 저는 그렇게 했어요… 저는 불평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말이 되는 소리예요?” (p.17)


  그럼 이건 뭘까? 남2를 비롯해 여자에 비해 조직에서 조금 더 권력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1과 남3은 여자의 의견을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의견을 받아 그것을 자신(남2)의 의견에 동의한 것처럼 만들어서, 세계사적 의미로 과장해 말씀드리자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극)작가는 결코 확실하게 말하지 않지만, 그렇게도 읽힌다. 사로트 자신이 1차세계대전이 발발하고, 1917년 러시아혁명 당시 가족과 함께 소비에트 정권을 피해 파리로 망명을 했으니 스스로 느끼고 있는 의식의 범위가 세계사적 의미로 확장할 수도 있을 터이니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불관용의 딜레마가 한 번 더 내 머리 속에서 터져버리는데, 불관용의 법칙을 어디에 적용하느냐, 이게 문제다. 제목에 밝힌 것처럼 “여기”에 불관용의 딱지를 붙여? 불관용이란 말 자체가 문제라면, 불관용의 반대말인 관용이란 단어도 문제다. 관용이 있으니 불관용이 있을 것. 관용과 불관용은 각종 소통의 부재로 야기되는 문제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을 불관용하느냐, 이것은, 어떤 문제까지 관용하느냐와 뗄 수 없는 관계가 있고, 사로트가 겪은 20세기 전체에 걸쳐 이 관용과 불관용은 다른 어느 시대보다 커다란 비극을 만들었으니.

  그럼 관용과 불관용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사로트가 거기까지는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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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마르코폴로의 도서관
그라치아 델레다 지음, 나윤덕 옮김 / 마르코폴로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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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긴 이탈리아 어느 지역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그라치아 델레다가 1876년에 태어나서 결혼하기 전까지 살던 샤르데냐 섬사람들의 외지인에 대한 텃세는 여간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반대로 말하자면, 같은 주민들은 대단한 결속력으로 결집되어 있었을 것이다. 뭐 당연히 서로 이익의 충돌이 되지 않는 선에서이기는 했겠지만. 그리하여 외지 사람이 이곳으로 흘러 들어와 괜찮은 집안 사람과 혼인하고, 이후 성실하게 처가의 업을 이어 성공을 할 정도라면 당연히 한 작품의 주인공 또는 주인공을 적극적으로 훼방하는 갑급 조연 정도를 맡는다. 그런데 이 작품 속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것보다 조금 무게가 나갈 엑스트라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반면에 섬 구성원의 한 명이, 그것도 귀족 집안의 따님께서 야반도주에 성공해 밤배를 타고 바다 건너 장화를 닮은 반도에 나가, 한 평민과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해서 아들 하나를 낳고 잘 살다가 아쉽게도 이른 나이에 죽었는데, 이 아들이 나중에 머리통이 커지자 어머니의 고향에서 살고 싶다며 귀향했을 경우에는 어떨까? 나도 궁금했다. 뭐 놀랍지는 않지만, 이 책에서는 동네가 쌍수를 들고 귀족도 아닌 청년을 환영한다. 음, 그렇군.

  그라티아 델레다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는 여성 작가. 전에 <악의 길>을 읽은 기억이 나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해 읽었다. <악의 길> 역시 샤르데냐 섬의 주도 누오로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베리즈모 오페라였다. 그걸 읽으면서 재미는 있지만 암만해도 이젠 구식이 된 이야기라서 아쉽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는 여기에다 그 동네 사람들의 핏줄에 밴 가톨릭 종교 의식儀式과 의식意識을 완전히 도배하는 바람에, 엎어치고 메쳐도 골수 유물론자인 나는 3미터 파고 속에 통통배 탄 것처럼 멀미가 나 견디기 쉽지 않았다. 작품도 이미 옛날 옛적 스타일이라서 내가 혹시 80~90년 전 유럽사람이라면 모를까 21세기도 웬만큼 달려온 이 시점에 굳이 참아가면서 읽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라고 쓰면 틀림없이 과장, 작품에 대한 혹독하고 무책임한 비평일 터이니 읽는 분께서 좀 디스카운트해 이해하셨으면 좋겠다.


  샤르데냐 섬의 갈테 마을에 악마처럼 혈색이 붉고 폭력적인 귀족 돈 차메 선생이 살았다. 이이는 성녀같이 아름답고 차분한 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님과의 사이에 위로 아들 둘, 아래로 딸 넷을 두었으니, 생떼 같은 두 아들은 전쟁에 나가서 죽었는지 염병을 앓다가 죽었는지 하여간 작품 시작도 하기 전에 세상 하직했고, 나이 든 순서대로 루트, 에스테르, 리아, 노에미 이렇게 네 따님이 있었다. 돈 차메가 처음부터 성질 더럽고 폭력적인 건 아니었다. 심지어 두 아들을 잃었을 때까지도 안 그랬다. 천사 같은 마리아 크리스티나 마님이 세상을 접으면서 돈 차메는 조상들이었던 남작들의 난폭한 성질이 발현된 것처럼 딸들에게 엄격하고 못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네 딸을 집안에 고립시켜놓고 젊은 남자가 집 밖에 세 번만 지나가면 사실여하를 불문하고 딸들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사람을 꼬였길래 남자가 집 앞에서 어정거리게 했느냐고 닦달을 할 정도였다. 딸들한테만 그런 것도 아니어서 주민들과도 온갖 소송과 불평, 불화를 만들었고, 하루 종일 이웃집 처마 아래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욕설이나 험한 시비를 붙자고 해 사람들이 아예 길을 돌아다녔으니 오죽했겠을까.

  이 핀토르 가문의 따님들 가운데 셋째 따님이 제일 예쁘다던데, 이 셋째 따님 리아 아가씨가 가뜩이나 좁은 섬에서도 지루한 일상만 해야 하며,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귀족 딸들을 노예처럼 일을 부리는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못살아, 못살아, 나는 못살아, 유행가 가락처럼 입에 달고 살더니 달도 없는 새까만 밤에 깨끔발을 하고 그대로 내빼 버렸다. 소문에 의하면 이 집의 충직한 하인 에픽스가 리아 아가씨를 연모하여, 연모가 뭐야, 사랑도 그런 사랑이 없어서, 리아 아가씨가 진정으로 원한다면 아가씨의 행복을 성취시켜주기 위해 기꺼이 함께 동네 바깥 다리까지 동행을 해주었고, 거기서 지나가는 마차에 태워 항구에 도착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주었다는데, 야밤에 무슨 마차, 아마도 뭔가 수를 써주었겠지. 하여간 부두에 도착해 날이 밝자마자 연락선을 타고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간 리아는 언니들과 동생한테 편지를 부쳐 말하기를, 자기는 가축 파는 상인과 결혼해 차비타베키아에서 유복하게 살고 있다고. 얼마 후에 다시 편지를 보내 알리기를 아들을 낳았다고. 자매들은 편지를 받고 결코 리아에게 답장하지 않았다. 평민, 그것도 가축상인과 결혼을 했으니 이제 가문의 명예에 먹칠을 한 꼴이라 그랬다는데, 정말 그래서 그랬는지, 아니면 세 자매는 결혼은커녕 연애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날이면 날마다 팍팍하게 살고 있건만,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은 리아한테 질투가 나서 그랬는지,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리아가 낳은 아들이 자기들의 조카인 건 확실해서, 리아한테는 엽서 한 통을 보내지 않았어도 조카 자친토 앞으로 출생 선물 같은 걸 보냈고, 리아가 젊은 나이에 숟가락 놓은 다음부터, 자친토는 매년 부활절과 성탄절마다 이모들한테 열심히 안부편지를 부쳤던 모양이다.

  악마처럼 혈색이 붉은 돈 차메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면, 어느 날 마을 밖 다리, 하인 에픽스가 리아를 배웅했던 곳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는데 시신에서 외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심장발작 때문에 죽었거니, 당시엔 과학수사나 부검 같은 말이 없어서 그렇게 결론을 내고 그냥 파묻었다. 한 때 언덕에 올라 눈에 들어오는 모든 땅이 자기 소유였던 것이 아내 죽은 다음부터 소송이니, 술값으로 다 날려서 이제 투박한 농장과 저택만 남은 상태로, 집에 남은 딸들은 앞에 남은 구만리 같은 세월에 시집 가기는 애초에 텄고, 귀족한테 허용이 되지 않았던 농장의 과수원에서 딴 과일 등속을 몰래몰래 팔아 생계를 이었다니 거 참,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근데 알고 보면, 하인 에픽스가 한 일, 자기 딸 도망할 때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동네 밖의 다리까지 배웅해준 것을 돈 차메가 알아내 잔뜩 열이 올라 에픽스를 때려 죽이려 했고, 맞대응할 생각도 못한 하인 에픽스는 삐질삐질 뒷걸음질 치다가 정말로 맞아 죽을 거 같아서 그냥 손에 잡히는대로 돌을 하나 들어 휙 던졌더니 그게 하필이면 뒤통수를 정통으로 때렸단다. 돌을 맞은 돈 차메가 허청걸음으로 곧 쓰러질 것 같았는데 그럼에도 20~30미터 이상을 비틀거리면서 기어이 비운의 다리 위까지 도착해 거기서 자빠져 죽어버렸다.

  이때 벌써 10년 동안 핀토르 가문의 하인으로 일했던 부처님 가운데 토막 에픽스는 이후 자기가 주인을 죽였다는 죄책감으로 남은 생을 남은 세 따님을 위해 바치기로 작심을 해서, 세상의 어떤 하인보다 더 지극하게 루트, 에스테르, 노에미 아가씨를 보살피고, 먹여 살리고, 보초 서고, 나름대로 아가씨들 결혼시키려 눈알을 굴리며 늙어갔다. 가뜩이나 충실한 사람이 가톨릭에 입각한 희생까지 뒤집어썼으니 딱 결론이 나지? 이 작품은 에픽스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하고.


  돈 차메가 죽고 20년이 흘렀다. 그러니까 착한 에픽스는 30년 동안 품삯 한 푼 안 받고 하인 노릇을 한 건데, 딸들도 이를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귀족 신분의 고귀한 인간이 하찮은 하인에게 미안하다거나, 언제 주겠다고 허튼 약속을 하거나, 기타등등 아쉬운 얘기를 하기도 싫고, 할 수도 없어 그냥 뭉개기만 했다. 딱 이럴 때 이탈리아 반도에서 편지가 와 말하기를, 조카 자친토가 세관에 다니다가 도무지 비전이 없는 직장이라 세르데냐의 이모댁 근처에서 살고 싶다고 하는 거다. 하나만 알려드리지. 자치토가 세관에서 일한 건 맞는데, 전직 선장이었던 신사가 큰 돈을 납부하기 위해 세관에 들고 와 세관장이 발행한 영수증을 받으려 했는데, 이때 사무실에 혼자 있던 자치토가 세관장이 외출을 해 없으니 돈을 자기한테 맡기고 내일 와서 세관장이 서명한 영수증을 받으라 했다. 거액의 현금이 어쨌거나 수중에 들어온 자치토는 퇴근 사이렌이 울리자마자 곧바로 튀어나가 도박장에서 거액을 몽땅 잃고 만다. 다음날 선장이 와서 영수증을 요구하니까 자치토 하는 말이, 선생께서 내게 돈을 언제 주셨는데요? 나는 받은 적이 없나이다. 이렇게 세관에서 해고당했다. 선장이 이를 불쌍히 여겨 자치토를 자기 집에 불러 밥도 먹이고, 옷도 사 입히고, 좋은 말로 젊은 사람의 실수를 덮으면서 앞으로 열심히 살라고 충고를 했건만, 이를 잔소리로 여긴 자치토는 도무지 견디지 못하여 샤르데냐 이모들한테 가겠다고 한 거다. 이를 들은 선장 부부는 기꺼이 뱃삯과 자전거를 한 대 사주고 앞날의 성공을 기원했단다.

  여기까지 이야기해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줄거리를 대강 짐작하실 수 있을 듯. 당신이 옳다. 자친토는 샤르데냐 섬 갈테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에픽스의 오두막 옆집에 사는 포로이 할머니의 손자 잔안토니오에게 아코디언을 사주고, 동네 사람들 전부한테도 포도주를 사주는 활수한 씀씀이를 자랑한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는 훤하게 다 안다. 자친토가 써 제끼는 돈을 알고 보면 동네의 고리대금업자 칼리나 여사한테 고리로 얻은 돈이며, 이것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는 아가씨들의 재산이 거덜날 것임을. 이 와중에 핀토르 가문의 딸을 위하여 에픽스가 영웅적인 하인 노릇을 하지 않겠느냐, 하는 건데, 뒤로 가면 갈수록 이야기는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점점 더 가톨릭적 은혜와 구원, 고행으로 회전, 지극한 상투성을 띈다. 그러니까 독자가 생각한 것 보다 남은 이야기가 훨 더 많으며, 그게 읽기에 지겹다는 말이다. 아 씨, 잘 나가다가 말이지. 그래도 이런 점 때문에 이야기는 베리즈모에 머물지 않지만. 근데 베리즈모는 재미라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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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3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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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 가운데 세번째 작품. 나만 그런 건 아닌 걸로 알고 있는데, 대개 1부 <가울>을 읽은 독자들이 경끼(‘경기’가 맞는 말인 건 아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경기’ 보다는 ‘경끼’라고 쓰는 게 여러모로 의사전달이 잘 된다. 그리하여 ‘경끼’)를 해서 이이의 계절 4부작 연달아 읽기를 사부작(의태어) 즈려밟고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들었다. 나도 <가을> 읽고 경끼했다. ‘경끼’에서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뭐가 있다? 맞아, 이 다음엔 토사곽란이다. 경끼는 어떻게 하고 넘어갔다 쳐도 토사곽란까지는 가고 싶지 않아서, 그럼에도 언젠가는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을 다시 읽게 될 줄은 짐작했지만서도, 쉽게 <겨울>을 뽑아 들지 아니하게 되어, 세월만 4년 가까이 흘려보냈던 거였다. 그래 <겨울>을 읽어보니까 어라, 생각보다 수월하고 재미있고, 앨리 스미스 특유의 말장난이 재치 만땅이어서 곧바로 <봄>까지 읽었다. 그래도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앨리 스미스 초기 작품들보다는 아무래도 재미가 좀 덜하긴 하다.

  이렇게 쓰고 여태 쓴 걸 다시 읽어보니, 염병이나, 이걸 쓴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헛갈려서 좀 더 알기 쉽게 말씀드리자면, 개인이자 자연인으로 인간의 뇌활동이 야기하는 특정인의 일탈에 관한 (초기 작품 속)이야기가, 계절 4부작처럼 전 세계적 정치, 환경, 위험과 위협, 난민문제 같은 거대 담론보다 훨씬 내 흥미를 돋구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글이라는 것이 한 번 길을 정하고 나면 다시 옛길로 돌아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으니 앨리 스미스는 이제 더욱 본격적으로 소설 속에 다양한 정치를 탐색할 것 같다. 흠. 앞으로 이이의 작품을 선택할 때는 더 조심해야겠군.


  대개 예술 장르에서 “봄”이라는 건 희망과 생식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근데 이 스미스의 <봄>은 종이에 인쇄해 놓기도 끔찍한 차별과 독선과 악의적인 혐오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한 번 읽어보자.

  “이제 우리는 사실 따위는 원치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어리둥절함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반복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반복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권력을 쥔 자들이 진실은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건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그녀는 배에 뜨거운 칼이 꽂혀 비틀릴 것이라고, 또는 당신 목을 매달 밧줄을 가져오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원의원들이 반대 당 위원들에게 자살하라고 외치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다른 권력자들을 가리켜 토막을 쳐 비닐봉지에 넣어 냉장고에”

  이게 작품의 첫 페이지인 13쪽 전문이다. 이런 문장들이 문단을 바꾸지도 않으면서 더욱 강화된다.

  “우리는 고문 같은 이미지들을 원한다. 우리는 그들에게 접근해야 하고, 우리가 접근해 백인 아닌 누구에게든 린치라는 걸 행사할 수 있다고 그들이 생각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연중무휴로 흑인/여성 국회의원, 아니 공적 위치에서 우리가 싫어하는 어떤 일이든 하는 모든 여성, 아니 공적 위치에서 우리 맘에 들지 않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강간 위협과 살해 위협을 하길 원한다.”

  아오, 나는 이 첫 챕터에 정나미가 똑 떨어져버렸다. 근데 앨리 스미스가 이 책 <봄>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룰 정치현상이 세계 각지의 분쟁지역이나 독재와 학정 지역에서 대서양과 지중해를 거쳐 영국으로 흘러든 난민의 정당하지 않은 강제 수용이라, 물론 책을 다 읽은 후의 느낌이지만 이렇게 미리 말해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격노를 원한다. 분개를 원한다. 가장 격앙된 어휘를 원한다. 반유대주의자는 좋고 나치는 훌륭하며 소아 성애증 환자라면 정말로 최고다. 변태 외국인 불법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본능적인 반응을 원한다. 우리는 어린이이주자 연령 검사, 국민 98퍼센트가 추방 요구, 이주 행렬을 막기 위한 무장 항공기, 얼마나 더 수용해야 한단 말인가, 빗장을 닫아 걸고 아내를 감추어라를 원한다.”


  이 문제와 연관된 등장인물이 브리터니 홀, 브릿과 교복 차림의 열두 살짜리 이주 유색인 소녀 플로렌스. 브릿은 <겨울>에서는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소개한 바 있는 SA4A, <봄>에서는 HO, 즉 내무부 대행으로 여러 곳에서 산하 IRC(이민자 추방 센터)를 운영하는 SA4A 산하 가운데 한 곳, 런던 근교 소재 IRC에서 DCO(수감자 유치 관리관)으로 근무하는 젊은 여성이다. 플로렌스는 엄마하고 영국까지 도착했지만 엄마(가물가물. 밀항 중 익사?)를 포함한 가족, 친지, 친구 등 모든 사생활을 알리지 않은 밀입국자로 현재 위탁가정에서 살고 있다. 나이가 들어 열여덟 살이 되면 영국인으로 살아도 된다는 허가를 얻든지 어느 곳이 됐든지 간에 추방 처분을 당해야 하는데, 적어도 이 책에서 열두 살의 플로렌스가 모든 잉글랜드인, 스코틀랜드인을 가지고 노는 걸 보면 그야말로 대천사나 악마가 환생한 걸 보는 듯하다. 플로렌스를 만나 대화를 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꼬마 아가씨가 원하는 대로 친절과 편의와, 서비스를 무.료.로, 자.진.해.서 베풀어주며, 소녀가 원하는 대로 행위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심지어 브릿이 근무하는 SA4A의 IRC에 철저한 보안을 뚫고 들어와서 소장을 만나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질문과 관계없는 대답만 얻었을 뿐이면서도 소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직접, 자기 손으로 수용자들이 사용하는 더럽기 짝이 없는 화장실을 말끔하게, 혀로 핥아도 위생상 전혀 문제가 없을 정도로 깨끗이 청소를 하기에 이를 정도. 이 정도면 대천사나 악마의 환생 맞지?

  이 플로렌스가 오후 근무를 하기 위해 출근하는 브릿 앞에 나타나 몇 가지 질문을 해서, 브릿은 휴대전화로 직장에 휴가처리를 한 후 함께 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괴물 파충류가 산다는 네스 호수를 목표로 떠난다.

  그리고 북쪽의 한적한 플랫폼. 한 노인을 만난다.


  2018년 10월, 화요일 아침 11시 9분. 텔레비전 연출가 겸 영화감독 리처드 리스. 스코틀랜드 북부 어딘가의 기차역 플랫폼. 한 친구의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에서 자신을 지우려 하는 중이다. 그냥 서 있는 남자. 이쪽은 물론이고 반대편 플랫폼에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리처드 말고는. 열차는 자잘한 사고가 있어 연착 중이다. 그의 휴대전화는 커피가 반쯤 남은 뚜껑 닫힌 커피 텀블러에 담겨 런던 유스턴 로드의 프레타망제 식당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든지, 벌써 쓰레기차에 실려 어디론가 사라졌을 것이다.

  죽은 친구의 이름은 패디. 리처드보다 열일곱 살이 많은 퍼트리샤 힐. 리처드가 처음 일자리를 얻은 것이 조감독의 조수였다. 이때 한 영화작업이 패디의 대본 작품이었다고. 벌써 거의 50년 전. 여태 패디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초콜릿 한 조각에 난 잇자국의 흑백 이미지가 떠오른다. 비어트릭스 포터의 잇자국. 한 입 베어물고 내려 놓고는 헛간에 남겨 놓은 초코릿을 잊어버린 비어트릭스. 2차 세계대전 전에 생산된 초콜릿바에 남은 잇자국은 잇자국을 남긴 그녀보다 오래, 그녀가 죽은 천구백 몇 년 이후로도 수십년을 더 살아남았다. 리처드가 보기에 패디의 기억은 천재급이다. 리처드와 함께 열일곱 편의 영화 작업을 했으며 이 가운데 대표작으로 <고통의 바다>와 <앤디 호프눙>이 가장 유명하다. <앤디 호프눙>은 베토벤의 성악곡 “An die Hoffnung 희망에 부쳐”를 사람 이름인 줄 알아 An die가 Andy로 바뀐 일이다. 반은 영국인, 반은 독일인이라 양쪽 모두로부터 따돌림을 받아야 했던 활촉처럼 예리한 여자. 진정한 희망이란 사실 희망의 부재란 것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An die Hoffnung> 대본을 4주만에, 이야기하지 않음으로써 이야기하는 창의력이 풍부한 작품을 4주만에 써내려간 사람. 필생의 친구이자 단 한 번 연인이었던 동료.

  리처드는 그래서 무너졌다.

  스코틀랜드 북쪽, 자기도 어딘인지 모르는 시골역의 플랫홈에 서서, 이제 연착이 풀려 객차가 도착하면 슬쩍 객차 아래로 들어가 거대한 무게에 몸이 깔려 산산이 부서지기로 결심을 한 남자, 1970년대, 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 초반의 유명한 스타 텔레비전 연출자이자 영화 감독 리처드 리스.

  드디어 열차가 도착했다. 리처드는 영국법에 의하여 강력하게 금지된 행위, 철도 레일로 내려가 몸을 굽혀 생각보다 좁은 열차 하부에 몸을 뉜다. 조금만 참으면 되리라. 거대해도 너무나 거대한 무게가 아주 짧은 순간의 고통,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고통의 순간을 지나면 곧바로 자신의 이름을 지울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리처드. 바로 이 순간.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섬찟함. 얼른 고개를 돌리는 찰라 열차의 강철 부품에 이마가 부딪혔지만 순식간에 솟구친 아드레날린 때문에 아픈 지도 모르고 눈길을 돌리니 아주, 아주 천연스러운 얼굴로 플랫폼 가장자리에 쪼그려 앉은 소녀가 말한다.

  “정말이지 그러지 마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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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5-04-28 12: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녀가 플로렌스, 북쪽의 한 노인이 리처드???인거죠?
저도 가을에 강력하게 막혀 안 나가기로 했네요^^

Falstaff 2025-04-28 16:38   좋아요 0 | URL
옙, 맞습니다. 이런 댓글 나오기 기다렸는데 은하수 님께서 ㅎㅎㅎ
두 명이 만나는 것이 결론이 아니고요, 이래서 한 고비 넘어간답니다. 두번째 이야기는 몽땅 모른 척 했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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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두 줄 만들었습니다. 내일 버릴 겁니다. 

  이번에는, 이 작자가 미쳤나, 싶은 책들도 좀 보인다,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올가 토카르추크 <태고의 시간들>, 움베르토 에코가 쓴 <푸코의 진자>를 버리다니 정말 미친 게 틀림없다, 라고요?황석영의 <객지>와 <장산곳 매>는 다른 전집류에 다 실려 있어서. 양선형의 <감상소설>은 많이 고민, 책장에 여유가 좀 있더라도 내치지는 않았을 터인데요. 모옌도 있고, 리영희 슨상님도 계시고 친애하는 김향숙 씨의 <겨울의 빛>도 끼었는데, 윽, 정세랑과 가즈오 이시구로, 코맥 매카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한테 이시구로와 매카시는 단지 시간 문제였습니다. 저는 두 양반을 정세랑, 김향숙, 리영희 선생, 모옌과 비교도 하지 않습니다. 뭐 제 마음인 것을요.

  케스터턴의 <브라운 신부 전집>은, 이제 보니까 1권만 읽고 별로 재미가 없어서 걍 처박아 둔 모양입니다. 띠지가 아직도 둘러 있으면 틀림없이 건들지 않은 거니까요. 이 책이 있었군요. 안 읽은 책. 크크크크....

  <세일즈 맨의 죽음>은 민음사에서 나온 다른 책이 있어서 금속활자본을 지하로 보냈고요, 레일라 슬리마니, 오르한 파묵의 책도 이번에 끼었네요. 파묵의 빨강머리는 요새 친애하는 이웃께서 읽고, 별로다, 해서? 후후...

  시모의 <릴라는 말한다>는 망설였습니다. 에이모 토울스는 다른 분 생각은 모르겠고 제가 읽기엔 별로라는 수준을 넘어 <모스크바의 신사>를 우연하게 잘 쓴 거 아닌가? 하는 마음까지 들게 했으니 당연히 여기 들어야지요.

  김애란과 김숨은 저도 좋아하는 작가이지만 그냥 그렇게 됐습니다. 강경애는 두 번 읽을 거 같지 않고요.

  <컬러 퍼플>이 후지다고요? 아닙니다. 제가 원래 소설가가 번역한 책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문장이 너무 좋아서, 어색할 만큼 기가 막혀서 원작이 훼손된 느낌이 강하거든요.

  <마이 퍼니 발렌타인>은 왜 버릴까요? 너무 야해서? 그건 아닌데... 잘 모르겠습니다. 뒷발에 채인 거 같습니다. 야하면 좋잖아요, 안 그래요?


​  오른쪽 줄 맨 위에 Advanced Learner's Dictionary는 손때 묻은 겁니다. 저 영어 못해요. 특히 중딩 때 한 선생이 미우면 과목 자체가 하기 싫어지지 않습니까? 저한테는 지방 국립대 나온 영어 선생이 그랬습니다. 이후 정신차리고 영어공부 졸라 했는데 성적은 전혀 좋아지지 않더라고요. 당연하지요. 과목 자체가 싫으면서도 오직 점수/석차 올리려고 공부하는 게 이게 발전이 있었겠습니까. 수업시간에 자기 실력이면 설대는 걍 갔을 거란 얘기만 줄창 하던 인간. 그 선생이 제 인생 최고의 허들이었습니다. 이 영영사전도 손때가 겁나 묻었습니다만 제 영어는 거기가 거기더라고요. 뭐 인생이 다 그런 것이지요 ㅋㅋㅋㅋㅋㅋ. 애들 볶지 마세요. 안 시켜도 할 놈은 다 하고, 시켜도 안 할 놈은 다 안 합니다. 대신 다른 거 잘 하는 게 하나 정도는 있더라고요. 하다못해 부모한테 대드는 거라도. (아이고, 진짜로 말하건데, 이건 우리 집구석 얘기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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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5-04-26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책 아까워서 안돼요 안돼요 안돼요 돼요 돼요...ㅋㅋ

Falstaff 2025-04-26 21:22   좋아요 0 | URL
이왕 벌어진 일, 확 해버리는 게 낫잖습니까. 저도 마음이 좋지는 않답니다. ㅎㅎㅎ

망고 2025-04-26 22: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왓 아까워요ㅠㅠ 버린다고 내놓으면 누군가 새주인이 나타났으면 좋겠어요ㅠㅠ

Falstaff 2025-04-27 06:02   좋아요 1 | URL
아내가 당근에 내놓으면 가져갈 사람 있다고 하네요. 일단 현관에 내놓기만 해야겠습니다.

hnine 2025-04-26 2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버리는 거 잘 해요^^ 비워야 또 채울수 있지요.

Falstaff 2025-04-27 06:03   좋아요 0 | URL
맞아요! 미련하게 짊어지고 있는 것보다 낫습니다. ^^

우끼 2025-04-26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태고의 시간들과 푸코의 진자.. 업어오고 싶네요 ㅠㅠㅠ
양선형 소설이 망설여질정도로 좋나요??

Falstaff 2025-04-27 06:05   좋아요 0 | URL
양선형, 읽은 지 오래라 다른 누구와 기억이 헛갈렸을 수도 있습니다. 일단 이렇게 헛갈려도 그걸 확인하려 하지 않는다면 버려도 괜찮을 거 같지 않으셔요? ㅎㅎㅎ

꼬마요정 2025-04-26 23: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음... 이 책들의 자리를 다른 어떤 책이 차지하게 될 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ㅎㅎㅎ

Falstaff 2025-04-27 06:05   좋아요 0 | URL
이젠 책 안 살거라, 책장에 숨 쉴 공간이 생기는 거에 만족합니다. 수제 책장이라서 가로목이 막 휘어져요. ㅜㅜ

건수하 2025-04-27 09: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스터튼 전집 저도 1권 읽고 그 다음부터 재미없어서 안 읽었어요 ^^ 그래도 가지고는 있는데…

Falstaff 2025-04-27 15:45   좋아요 1 | URL
앗, 이런 댓글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요!
저만 그런 게 아니었다는 ㅋㅋㅋㅋ

2025-04-27 16: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4-27 1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산하는 잠들고 더봄 중국문학 전집 12
거페이 지음, 유소영 옮김 / 더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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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페이의 “강남 3부작” 가운데 <복사꽃 그대 얼굴>에 이은 2부. 무대는 전작 푸지의 상급 현인 메이청현縣. 거페이가 장시성江西省 사람이라 혹시 푸지普濟가 파양호 남쪽에 있는 푸저우抚州시市를 말하는 건 아니겠지. 1부 <복사꽃 그대 얼굴>의 주인공 루슈미의 아들 탄궁다譚功達, 우리말 발음으로 담공달 씨가 2부 <산하는 잠들고>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40여 년 전 메이청 현 서쪽 산간 평지에 있는 정원이 딸린 영국식 호화스러운 건물이지만 당시에 현의 감옥으로 쓰던 곳에서 슈미 여사가 1년 6개월 동안 수감되었는데 이때 옥 속에서 몸을 풀어 아들을 낳았으니 그이가 오늘날의 담공달 씨, 지금은 마흔살이 훌쩍 넘은 진짜, 진짜 모태솔로, 즉 숫총각이면서 노총각인 메이청 현장이며, 후에 현위원회 서기를 겸임하는 탄궁다 선생이다. 경자년 한여름인 7월3일생. 경자년? 1900년생, 노베첸토. 근데 문제가 있다. 책에 틀림없이 루슈미 여사가 경자년에 탄궁다를 낳았으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바람에 옥졸 메이스광이 데려가서 뱃사공 부자父子 탄수이진과 탄쓰에게 주었고, 이들은 아이를 탄쓰의 아들이라 생각하며 키웠다. 맞다. 그랬다. 그러다 탄쓰가 청나라 군인한테 죽임을 당해 할아버지 혼자 키우게 됐고, 아이가 여섯 살일 적에 어느 하루 길을 잃어 거리를 헤매는 것을 역시 자손이 없는 메이스광 선생이 포구에서 발견해 키우면서 정을 함빡 쏟았다. 아이를 잃은 탄 할아버지가 눈물바람을 하며 온갖 곳을 찾아다녀 드디어 아이를 발견해, 이 아이를 놓고 소송까지 갈 뻔한 것을, 그러면 탄 씨 성을 주어 탄 가문의 대를 잇되, 양육은 메이 집안에서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렇게 아이는 그날로 탄위안바오가 되었다가 위안바오元寶라는 이름이 지극히 봉건적이라서 큰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 훗날 위안바오 스스로 궁다功達로 개명을 했고 이름이 좋아서 그랬는지 메이청 현장까지 올랐다. 그런데, 뒤에 또 보면 구체적으로 아라비아 숫자까지 써서 1912년생이라고 딱 적어 놓았으니 경자 1900년 노베첸토가 아니라 1912년 임자생이 맞다.


  거페이가 좀 헛갈린 듯. 왜 사소한 거 가지고 목숨 거냐고 하실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여자 주인공이자 메이청현장 탄궁다의 비서이며 서로 마음, 순전히 마음으로만 깊고 깊은 사랑을 하게 되는 야오페이페이姚佩佩가 등장하면 좀 복잡해져서 그렇다. 야오페이페이는 상하이의 부르주아 집안 출신이다. 해방이 되어, 즉 1949년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페이페이의 아버지는 자본가로 낙인이 찍혀 어느날 늦은 오후에 야오페이페이를 데리고 나가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을 정도로 사준 다음날 총살형을 당한다. 이날 아침 페이페이가 학교에 가기 전에 자기를 품에 꼭 안아주던 엄마는 딸을 학교에 보낸 사이에 집에서 목을 매달아 죽어버리고. 졸지에 고아가 된 신세의 페이페이. 이때 메이청 현에서 소학교 교사와 아이 없이 결혼생활을 하던 고모가 득달같이 올라와, 사실은 친척 가운데 누구보다 먼저 집에 남은 가구나 패물 같은 재산을 거머쥐려 했건만 벌써 다른 친척들이 다 들고 가고 애먼 야오페이페이가 홀로 덩그러니 남아, 눈물을 머금고 데려다 키워야 하는 처지가 되었던 거다. 몇 해 갖은 구박을 해가며 하여튼 함께 살기는 했다. 그러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까짓 것을 키워봤자 도무지 보탬이 될 거 같지 않아 그냥 쫓아내 버렸고 갈 곳 없는 페이페이는 뒷골목 목욕탕 카운터에서 셈가지 파는 일을 했다. 좋게 말해서 박스오피스에 앉았다. 벌거벗은 남자 전용 목욕탕에서. 한겨울에 탄 현장이 과거의 혁명 동지이자 훗날 처절한 배신자가 될 바이팅위와 함께 공동목욕탕에 갔을 때 성질 겁나게 까칠한 소녀 야오페이페이를 눈 여겨 봤다가 나중에 현사무소 사환을 거쳐 비서까지 올렸던 거다.

  전혀 여성으로 볼 마음도 없었던 탄궁다 현장이 무심결에 낙서를 한다.

  1961 – 1938 = 23

  1938 – 1912 = 26

  27 – 23 = 4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1961년. 1938년생 야오페이페이, 본명 야오페이쥔姚佩菊, 가슴에 국화를 단 아가씨 나이가 스물셋, 23세. 1912년생인 자신, 탄궁다와의 나이 차이가 26년이란 거다. 마지막 27 – 23 = 4는 안 알려줌. 그런데 정말로 탄궁다의 마음에 페이페이가 여자로 들어오지 않은 건 맞다. 앞부분에도 이런 뺄셈 낙서가 나오는데 탄궁다는 자신이 의식도 하지 않고 그저 이런 숫자 더하기, 빼기를 쓰는 습관이 있다. 당연히 스스로 의식은 하지 못하지만 저 무의식 중에 무겁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내용이겠다. 그러나 탄궁다는 애초에 여자를 파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동성애 혹은 발기부전 증세가 있거나 애초 성불구도 아니다. 저 천하의 배신자 바이팅위가 자기의 어리디어린 조카딸을 소개해 결혼하기 바로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뒤편에 가면 아이 하나 딸린 가난한 극성스런 과부가 덮치는 바람에 결혼까지 해버려 아이도 하나 낳는다. 죽으나 사나 사랑은 오직 하나 야오페이페이를 향하지만 과부와 살림을 합칠 때까지 그런 줄도 몰랐다. 뭐 그런 사람도 있겠지. 인구가 워낙 많잖아.


  거페이의 “강남 3부작”은 유토피아, 이백의 싯귀마따나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을 추구하는 작품이다. 근데 이게 말처럼 되는 거야? 아니, 세상에 한 곳이라도 있기는 있는 건가? 말 그대로 별유천지이건만 비인간, 인간은 빼놓고 얘기하자니 말이지. 1부 <복사꽃 그대 얼굴>에서도 다양한 유토피아를 구현하기 위해 몇 사람들이 발버둥을 친다. 슈미의 아버지 루칸 선생부터 시작해서, 진품인줄 알고 살았던 한유의 가짜 그림 <도원도> 이야기. 그리고 슈미 엄마의 혼외 연인이자 혁명가인 장자위안 역시 혁명을 통해 새 세상을 추구했으니 그게 바로 유토피아 아니겠느냐, 하는 것. 슈미 역시 흘러흘러 화자서라는 호숫가 마을의, 척 보면 유토피아와 가장 흡사한 공동체, 그러나 도둑 소굴까지 들어갔던 거다. 그러나 별유천지비인간인줄 알았던 화자서에서도 피와 살이 튀는 살인과 권력투쟁과 슈미를 향한 성폭행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렇게 참담할 수가.

  평생을 유토피아 건설에 정신을 쏟은 슈미의 아들 탄궁다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 마오 홍군에 들어가 혁명전쟁에 투신하다 이제 메이청현의 현장으로 부임한 탄궁다는 메이청현을 중국에서 가장 복된 땅으로 만들기 위하여 ①푸지 호수에 댐을 만들어 전기를 생산해 메이청현과 푸지에 광명을 가져오려 하며, ② 장강과 연결한 수로를 건설해 유통의 편리함과 더불어 농업용수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도 모자라 ③ 중국인의 최애 식품인 돼지 사육의 부산물인 분뇨에서 메탄가스를 농축해 연료와 기타 생산공장 운영에 사용하려 한다. 당연히 세가지 중점사업은 현민들과 현사무소 주요 간부들의 저항을 받으며, 심지어 작은 규모의 폭동까지 일어나고, 그걸 구경하다가 떠밀려 낭떠러지에서 미끄러지는 바람에 죽는 사람까지 생긴다. 이때 죽은 남자의 아내, 과부가 훗날 마흔살이 훌쩍 넘은 탄궁다의 동정을 수거해서 기어이 남편으로 삼는다니까.

  그러나 엄마 슈미에 이어 유토피아 건설로 자기 나이 드는 지도 모르고 사업에 몰두한 탄궁다를 기다리는 것은 예전 생사고락을 함께 하던 전우, 탄 현장의 직속 부하들의 배반, 그에 따른 추락뿐이었다. 자신은 몰락하고, 비서인 야오페이페이는 모실 상사가 몰락을 한 와중에도 현에서 성省으로, 당원이 되어 영전을 하려다가 인생이 삐그덕, 탄 전 현장보다 더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만다. 1부에서 슈미를 다시 보는 것처럼.

  탄궁다는 베이징에 있는 은인이 힘을 써주어 성 일대를 관찰하는 직을 얻어 길을 떠나 작은 마을에 도착하는데, 에그머니, 그곳이 예전에 슈미 엄마가 자신을 임신했던 화자서. 슈미 엄마 시절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이상적인 마을, 이상향, 별유천지비인간이 실체화되고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다. 애초에 무릉도원은 비인간, 인간이 없어야 가능하다고. 탄궁다는 자신이 본 이상적 공산주의가 실현되는 곳, 화자서의 본질을 알아낸다. 당연히 비극이지 뭐.

  재미있다. <복사꽃 그대 얼굴>만큼은 아니지만 읽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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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5-04-25 0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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