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앨리 스미스 계절 4부작 4
앨리 스미스 지음, 김재성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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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을 다 읽었다. 3년 반 걸렸다. 이젠 제일 먼저 읽은 <가을>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곤혹스러웠던 느낌만 남았을 뿐. 다행히 이후 <겨울>, <봄>, <여름>은 훨씬 재미있고 수월하게 읽었다. 계절 4부작에 들어와서 앨리 스미스는 브렉시트, 난민 수용과 구치custody, 환경 등 정치 문제에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 초기 작품에서 읽었던 발랄한 엽기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좀 아쉽다.

  <여름>이 제일 재미있었다. 별점을 준다면 넷 반이 적당할 듯. 차마 다섯까지 올리지 못하겠지만 넷은 많이 아쉽다.


  본문을 시작하고 바로 다음 페이지에 이렇게 쓴다.

  “불과 몇 달이 지났을 뿐이다. 이 나라에서 평생 또는 생의 대부분을 산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추방 협박을 받아 추방되기 시작한 그때로부터.

  그리고 결과가 바란 대로 나지 않자 정부가 의회를 폐쇄해 버린 그때부터.

  많은 이들이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며 거짓말을 한 사람들에게 투표하여 권좌에 앉혀놓은 그때로부터.

  어떤 대륙은 불타고 어떤 대륙은 녹아내린 그때로부터.

  전 세계의 권력 쥔 자들이 종교, 민족, 섹슈얼리티, 지적능력, 정치적 입장 등의 잣대로 사람들을 가르기 시작한 그때로부터.”

  다음 장chapter로 가면 구체적인 시점이 나온다. 브렉시트 시행 1주. 나는 헷갈린다. 1주週 7일? 1주周 365일? 헷갈림은 책을 다 읽을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좋다, 중요한 건 아니니까.

  생의 대부분을 산 사람들을 체포, 추방하기 시작하고, 의회를 폐쇄하고, 오스트레일리아는 불타고, 북극의 빙하는 녹아내리지만 많은 사람들은 라디오, 텔레비전,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말했다. ‘그래서So what?’ 앨리 스미스는 통탄한다.

  “역사가 확증해 주었듯 우리가 무관심할 때 무슨 일이 생기는지, 정치적 무관심의 배양이 어떤 결과를 낳는 지에 대해 각종 사실을 나열해가며 이야기하고 출처와 그래프와 사례와 통계를 사용하여 예증하는 데 평생을 바칠 수도 있지만, 그 또한 부인하고 싶다면 누구나 단숨에 일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힘센 한 마디로… ‘그래서?’” (p.15)

  백기완이 노랫말을 쓴 <임을 위한 행진곡>의 한 소절,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가 퍼뜩 생각났다. 무서운 말이다. 투쟁을 위해 내가 앞장선다. 대열에 서지 않은 자, 너희들은 모두 죽은 자, 시체들이라는 웅변.

  앨리 스미스가 말하는 무관심의 배양과 ‘산 자여 따르라’의 공통점은 자신과 다른 의견은 전혀 받아들일 기미가 없는 것. 오직 자기 뜻만이 유일한 진실이고 가야 할 길이라는 주장이다. 합의 불가능의 최고선임을 선언하는 모양새인데, 의도는 알겠다. 일단 넘어가자.


  “이 나라에서 평생 또는 생의 대부분을 산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추방 협박을 받아 추방되기 시작한 그때” 라고 했는데, 이게 오늘 이야기해야 할 제일 큰 주제이다. 이들이 누구일까?

  1.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유입한 난민

  2.  노턴과 북동부 지역에서 브라이턴으로 집단 이송된 수많은 노숙인

  3.  중국인들이 뱀이든가 천산갑을 잡아먹어 발생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

  이래서 <여름>의 큰 주제는 수용 또는 격리이다. 잉글랜드 현대사에서 격리가 브렉시트 또는 COVID-19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1차 세계대전 때도 2차 세계대전 때도 있었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이 얽히고설켜 서로 안면을 트고 좋은 관계를 지니게 되는 건 <봄>의 경우와 마찬가지고 같은 플롯인데, 이 작품 속에서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잉글랜드에서 낳고 소년시절까지 자란 후 독일로 돌아가 조금 지내다가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 백 살이 넘은 대니얼 씨. 이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해군이 지원 입대하려 했으나 해군 당국으로부터 깨끗하게 거절당하고 대신 이곳 저곳의 수용소를 거쳐 마지막으로 서남부 섬에 집단 수용된다. 이때 잉글랜드 병사는 이들에게 적대감이 거의 없었다. 심지어 시내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고 오다가 무겁다고 병사가 소총을 건네고 자기는 맨몸으로 잠깐 걷기도 했을 지경이었으니. 길지 않은 수용기간을 끝낸 1943년에 대니얼은 다시 해군에 입대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한다.

  전쟁 전부터 영국에서 살던 모든 독일인이 다 대니얼처럼 영국을 조국으로 알고 산 건 아니다. 간혹 정말 스파이도 있었다.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켄 폴릿이 쓴 액션 스릴러 소설 <바늘구멍>이 대표적이다. 대니얼과 그의 아버지는 가장 널럴한 등급인 3등급으로 분류되어 그나마 편한 수용소로 간 듯.

  근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수용소는 주로 휴양소에 있는 대규모 위락시설을 변조하여 만들어, 물론 당사자들이야 불편하겠지만 그나마 쾌적한 장소와 편리한 위생시설 등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로부터 70년이 흐른 201X~202X년의 난민 수용소나 노숙인 숙소 같은 곳은 <겨울>, <봄>에서도 봤듯이 다양하게 골 아프다. 작품 속에서 수용시설을 주관하는 민간 기업은 꾸준하게 AS4S. <겨울>에서는 저작권 감독 회사로 <여름>에선 민간 전력회사의 외양을 갖추었다.

  여기에 새로이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COVID-19 격리수용이다. 초기 단계에 영국 정부는 거의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사람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해서야 감염자 자가 격리를 주문했는데, 전세계와 마찬가지로 마스크나 검진 장비 부족으로 주로 노인들이 집단적으로 사망했나 보다. 사람들은 열이 조금 나고 몸살 기운이 있으면 자신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는 지도 모르고 스스로 알아서 끙끙 앓다가, 지독히 개인적인 유럽인들인지라 혼자 죽어도 아무도 모른 채 며칠이고 지나갔으니, 그것 참. 하여간 이런 의미에서 자가 격리도 수용의 일환으로 보고 이 목록에 오른 것.


  브라이튼의 작은 바닷가 마을에 그란로 가족이 살았다. 엄마 아빠가 대판 싸우고 아빠가 자진해서 집에서 나가버렸다. 빈집을 구하러 왔다갔다 하다 보니 처자식이 사는 집의 바로 옆집이 매물로 나와 있어서 그 집에 들어갔다. 이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안 한 거 같은데, 아내에게 열쇠 하나를 복사해 주었다. 이거 별거 맞아? 하여간 이렇게 3년 살다가 아빠 제프리는 웨일스 출신의 공부하는 여성 애슐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고, 애슐리와 이쪽 집 사람들, 전처와 딸 사샤와 지독한 사춘기의 절정에 달한 아들 로버트와 소 닭 보듯 하며 살다가 갑자기 말을 하지 않기 시작했다. 자세하게 얘기하지 않겠지만 애슐리의 학문적 내공도 대단한 거 같다.

  사샤도 똑똑하긴 한데 사샤가 속으로 무척 사랑하지만 겉으로는 맨날 다투기만 하는 동생 로버트는 가히 영재 수준이다. 이런 아이들이 영국의 공립학교에서는 주로 왕따를 당하는 법. (실제 생활이 아니라) 사이버 공간에서 독한 린치를 당하고 견디지 못해 전학을 했건만, 다니던 학교 아이들이 이쪽 학교 애들한테 토스를 해주는 바람에 똑 같이 왕따를 당해 학교에 취미를 딱 작파해버린 상태이다. 사샤가 밤 늦게까지 에세이 숙제를 마치고 다음 날 아침 학교에 들어서려는 순간, 로버트가 문자를 보낸다.

  “지금 십 스트리트로 꼭 좀 와줄 것. 3분쯤 도움 필요함.”

  명색이 누나에, 정확하게 인용한 것이 아니라 실감나지 않을 터인데, 부탁하는 것이 어쩐지 좀 애절해보여 친구한테 대리 출석 부탁하고 달려갔다. 로버트가 아무 표정 없이 앉아 있더니 누나 손을 잡고 자기 품으로 가져간다. 그러더니 그거 있지? 유리로 만든 타이머 용 모래시계. 그걸 순간접착제로 누나 손가락 몇 개에 찰싹 붙여놓고 도망간 거다. 유리, 얇은 유리. 남매 사이가 좋다. 좋아도 너무 좋다. 침착한 누나. 이 와중에도 농담한다. 마침 옆으로 온 커플 샬럿과 아서에게 (손가락을 쓸 수 없어서) 전화기를 건네주고 문자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는데:

  “이례적인 유대(bonding)의 경험을 하게 해줘서 고맙구나.”

  이 선한 커플은 사샤를 병원에 데려가 사샤의 손가락에서 모래시계 유리를 떼 내고 피부를 꿰맨 다음 집에까지 데려다 주었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커플은 엄마, 사샤, 로버트와 함께 저 북쪽 노퍽, 일찍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머물렀던 곳까지 여행을 떠난다. <봄>에서도 본 거 같은 장면이지?


  하나만 더. 앨리 스미스는 환경론자이다. 그의 주장은 그린로 가족의 엄마 그레이스의 신념으로 확고해지는데, 엄마는 화석연료를 태워 움직이는 운송수단을 거부한다. 그러면 자전거와 전기자동차 말고 없다. 당연히 선한 커플이 운전하는 차 역시 전기차. 그래서 노퍽까지 함께 갈 수 있었던 것. 이 노퍽에 2차 세계대전 당시 수용 경험이 있는 대니얼 할아버지가 요양원에 있어 보러 간 길이다. 엄마 그레이스는 이정도 수준이고, 똑똑한 딸 사샤도 우상이 그레타 툰베리. 음. 모든 에너지를 전기로! 이게 답이다. 그러나 전기는 무엇으로 만들어야 빈곤층 등 사회적 약자들도 전기의 혜택을 계속 누리며 살 수 있을까? 이제 이것 좀 궁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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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 문학동네 시인선 183
김상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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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미는 말한다. 시가 잘 써지지 않을 때 연애시를 쓴다고. 마감일이 다가오면 어쩔 수 없다는데, 오호, 이름이 난 시인은 그렇구나. 여기에 연애시를 쓰는 팁을 하나 가르쳐준다.


  “먼저 짝짓기에 관계되는 모든 낱말을 머리에서 끄집어 쭉 쓴 뒤, 이것들을 연결해 시를 만든다. 이렇게 쓴 긴 시들은 리듬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에 단번에 쓴다. 연애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연애의 바벨탑이라고 하면 너무 유치해서 짝짓기로 표현했다. 그러면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이나 동물도 다 속하게 된다.”  (세계일보 기사 발췌)


  브레인스토밍? 예상 외다. 연애시가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다고? 프로세스가 있어서 공정을 따라 가며 완성되는 것을 우리는 생산이라 부른다. 그러니까 연애시, 적어도 김상미가 쓰는 연애시는 생산물이라 말할 수 있다. 맞아? 말은 이렇게 했지만 나는 모르겠다. 이렇게 해서 생산한 시 한 편을 읽어볼까? 안 된다. 전문을 인용하기에 시가 길다. 이이의 시가 대체적으로 길어 전문을 옮기는 건 짧은 독후감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니 <병 속의 편지>에서 조금만 인용해보자.


  벌거벗은 마하*야, 젊디젊은 마하야, 인생은 짧다, 한번 보면 모두가 반하는 네 몸, 그 몸으로 계속 사랑을 나누어라, 인생이란 이 끝없는 사막에서 맛보는 오아시스 같은 섹스, 그 사랑을 붙들고 놓지 마라, 네 몸 위에 누웠다 간 썩은 정신이나 영혼 따위는 신경도 쓰지 말고, 네 팽팽한 젖가슴과 네 탄탄한 허벅지에 와 꽂히는 황홀한 시선들을 즐겨라.  (부분. p.50 *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그림 제목)


  이것이 시의 한 문장이다. 두번째 문장은 위 인용보다 세 배쯤 되는데, 세계일보 기사처럼 “짝짓기애 관련된 단어”는 두번째 문장이자 마지막 문장에 몽땅 실려 있다. 관련 단어를 연결하는데 그냥 연결하면 당연히 시가 아니니까 여기에 사람 사는 걸 보탠다. 예컨대:


  “사람은 사랑하는 만큼 보이고, 결코 모를 것 같던 사람의 마음도 사랑의 행위 중엔 훤히 다 드러나 보이기 마련, 그러니 너에게 공손히 허리 굽혀 장미를 꺾는 이들, 그들이 네 인생도 꺾어버릴까 두려워 마라,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그 열정의 시작도 그 끝도 사실은 모두 잔혹한 짝짓기에서 이루어지는 것, (후략)”   (같은 시. p.50)


  읽을 때는 그럴 듯할 지 모르겠지만 정말 시에 쓴 대로 결코 모를 것 같던 사람의 마음을 섹스 중에는 훤히 다 알 수 있을까? 그럼 섹스가 일종의 관심법? 철원에 도읍한 저 태봉국의 황제 궁예가 주특기로 삼던 것 말이지? 에이, 아서라.


  1957년에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상미는 졸업하고 사상공단의 공장과 작은 사무실의 경리를 거쳐 서울에서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한 동생과 서울에서 합류한다. 서울에서 작은 회사(들)에 다니는 내내 시를 쓰다가 1990년에 작가세계를 통해 서른일곱 살에 시인으로 데뷔했다. 이후 이 시집까지 모두 다섯 권을 냈으니, 인생의 별의 별 맛은 다 봤다고 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셈이다.

  이 닭띠 시인은 육십대가 되니 시 쓰는 일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가? 이이의 다른 시집은 읽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시들이 거의 길다. 무대도 거창하다.



  파리에서


  파리에서 닷새를 보냈다 너무나 와보고 싶었던 도시

  말도로르의 노래처럼 취해서, 엄청나게 취해서

  밤새도록 드럼통 세 개 분량의 피를 빤 빈대처럼* 취해서

  격한 파리의 숨결, 파리의 공기, 파리의 장소들에 취해서

  오랫동안 사랑했던 이들이 아낌없이 살고, 사랑하다, 죽어 묻힌

  몽파르나스 묘지와 페르 라세즈 묘지에 취해서

  보들레르의 악의 꽃, 초록빛 압생트에 취해서

  뜨겁게 뜨겁게 취해서

  빅토르 위고의 불멸의 꼽추, 카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위해 울리는

  노트르담대성당의 저녁 종소리가 너무나 애절해서

  내 곁을 툭 치거나 총총히 사라지는 여인들의 뒷모습이

  너무나 보바리 부인을 닮아서 (후략. p.60)   *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


  파리 관광, 시인이니까 좋게 말해 문학 답사 가서 지은 노래 한 수에 브레인스토밍해서 끄집어낸 숱한 인물들 로트레아몽, 보들레르, 빅토르 위고, 플로베르를 넘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코르타사르가 묻힌 몽파르나스 무덤과 몰리에르, 발자크, 비제 등이 묻힌 페르 라 세즈 묘지까지 총출동시킨다. 앞부분에서만 그렇다는 말이다. 저렇게 연 구분도 없이 꼬박 두 페이지 반, 모두 마흔네 행에 이르는 시에 별의 별 문인, 시인, 소설가, 극작가, 셰익스피어, 제임스 조이스, 스콧 핏제럴드 등 영어로 글을 쓰던 사람들까지, 김상미가 파리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을, 일단 나열하고, 이 사람들을 적당하게 연결해서 한 방에 쓴 시로 보인다. 김상미가 말한 것처럼. 긴 시들의 경우에 리듬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에 한 번에 일필휘지로 쓴다고 시인이 직접 말했듯이 이 시도 그랬을 것이다. 며칠 전에 읽은 시인이자 소설가 임솔아는 시 한 편 쓰는 데 적어도 쉰 번, 50번 이상의 퇴고를 한다고 하는데 아마 두 시인이 다른 과인 모양이다. 아쉽게도 나는 퇴고 열나 하는 쪽이 더 좋다. 좋아도 많이 더 좋다.


  “리듬이 끊기면 안 되기 때문에 단번에” 쓰는 시들의 경우, 아마도 제일 중요한 건 아니더라도 매우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시를 읽을 때의 리듬감, 즉 운율일 듯하다. 김상미의 거의 모든 시가 길다. 다 긴 시라서 그의 주장대로 리듬이 끊기지 않게 쓰였고, 그래서 운율은 척척 맞아 들어간다. 마치 가사문학을 읽는 것 같기도 할 정도로. 오해하지 마시라, 가사문학 역시 우리나라의 훌륭한 시 장르라고 나는 주장하니까. 사람들이 이 책에서 많이 인용하는 시 가운데 하나가 <포커 치는 개들>이다. 이 시 역시 길어서 전문을 인용할 수 없어서 앞부분만 조금 따오겠다.


  “남자다운 척, 남자다운 척, 남자다운 척 있는 대로 폼 잡다 어른이 된 남자와 여자다운 척, 여자다운 척, 여자다운 척 있는 대로 내숭 떨다 어른이 된 여자가, 결혼한 지 십오 년 만에 큰 집을 장만했다며 우리를 초대했다. 근사한 정원인 척하는 잔디밭과 몇 그루 꽃나무를 지나 실내로 들어서니, 우아하고 세련된 척하는 가구들과 전문가 뺨치는 오디오 시설에 영상 기기들까지 척, 척, 척 설치해놓고, 자랑스레 우리를 반기며 아주 행복한 척, 에로틱한 척 은밀한 침실까지 슬쩍 보여주었다.” (부분. p.23)


  읽으면 읽을수록 입에 착착 감기면서 리듬을 타는 건 맞는데, 아우, 너무 말이 많다. 여자건 남자건 하여튼 나이 들면 말이 많아져서… 다른 분은 모르겠고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 나? 말 많아질까봐 독하게 마음먹고 입 다물고 살려 노력하고 있다.

  시인 김상미에게는 미안한 말씀이오나, 시는 간결한 것이 좋다. 물론 김상미라고 긴 시만 있는 건 아니다. 짧은 시도 있다.



  미스터리



  모든 꽃은

  피어날 땐 신을 닮고

  지려 할 땐 인간을 닮는다


  그 때문에

  꽃이 필 땐 황홀하고

  꽃이 질 땐 눈물이 난다  (전문. p.15)



  필 때는 신god, 질 때는 인간. 그래서 필 때는 엑스터시, 질 때는 눈물. 일단 신이 황홀이란 건 알겠다. 신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새롭게 가톨릭의 임금자리에 오른 레오 14세에게 하나 물어보고 싶다. 신이 사람을 만든 다음에 왜 그렇게 사람을 한시도 쉬지 않고 들들 볶았는지. 잘 익은 사과를 뻔히 보면서도 따먹지 말라고 그런 거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인간은 또 들들 볶여가면서도 신을 그렇게 황홀하다고 찬송을 했고, 지금도 하고, 앞으로는 할지 안 할지 모르는지.

  좋다, 그건 나중 일이고, 꽃 질 때는 인간이라서 눈물이 나? 대구counterpoint로 생각하면 황홀의 반대 개념으로 고통? 말 되네. 황홀, 엑스터시 그리고 오르가슴 역시 일종의 통감, 고통의 다른 감각이니까. 아니면 뭐 비슷한 개념으로 사는 일 자체가 눈물이 난다는 건가? 게다가 꽃이 지는 상황이니까. 뭐 읽는 사람마다 다르겠지. 시잖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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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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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일찍이 옥타비아 버틀러 <킨>의 유명세를 알았건만 이제야 이 책을 읽은 것은, 책방 광고문에 과학소설, SF라는 문구가 자꾸 거슬렸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SF 장르를 무조건 경원하는 건 아니다, 라고 믿는다. 읽기는 읽는데 즐기지 않는 독자의 수준으로 말하자면 브래드버리, 스트루가츠키 형제, 스타니스와프 렘 등 지구 대표선수들의 작품은 즐겁게 읽었고, 지금도 열심히 읽으려고 (나름대로) 애쓴다. 근데 <킨>은 독자들이 워낙 열광을 해서 그랬는지 영 손에 잡히지는 않더라는 것. 그리하여 도서관의 관심도서 목록에만 올려진 채 몇 년을 기다리다 이제야 읽기 시작했다. 5백 페이지를 훌쩍 넘어가는 장편소설임에도 손에 잡자마자 후딱 읽히는 흡인력이 있었으니, 이야기가 그만큼 재미있고, 책의 편집 역시 눈이 피곤하지 않게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옥타비아 버틀러는 1947년에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에서 구두닦이 아버지와 백인가정 가정부 사이에서 무한정 수줍음을 타는 외동딸로 태어났다. 초년에 빈곤했지만 말년에 작가로 팔자가 피는 사람들의 소년시절 공통점을 그대로 빼다 박아서, 옥타비아 역시 어려서부터 시립 도서관을 열심히 들락거리며 책읽기에 몰두했는데, 이때부터 SF 작품에 집중했던 모양이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교 마지막 2년과 이후 2년을 보태 4년 학력으로 셈해주는 패서디나 시립 단과대학을 마쳐 준학사 학위를 얻었다. 옥타비아가 열두 살 때부터 과부생활을 유지하던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비서로 일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있어서, 아마도 속기를 공부했었던 것 같다. 작품 속 주인공 다나도 패서디나에서 살았고 훗날 비서가 되기 위하여 타자와 속기를 배운 적이 있어서 나중에 잘 써먹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여간 옥타비아 버틀러도, 작품 속 다나도 여러가지 잡일을 하면서 창작에 힘을 써 드디어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린다. 다만 <킨>의 다나는 어려서 부모가 일찍 죽어 자식이 없는 외삼촌의 집에 살면서 학교를 졸업하고 나중에 백인 남자와 결혼하는 바람에 거의 인연을 끝내는 게 차이가 난다.


  주인공 에드나, 애칭으로 다나가 1976년 6월 9일, 스물여섯 번째 생일에 사건이 일어났다.

  다나는 주로 인력소개소를 통해 부품가게나 창고 같은 곳에서 재고 조사 등의 주로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하며 적은 돈을 벌어 호구지책으로 삼으면서 틈틈이 소설을 쓰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일을 하다 우연히 백인 남자 케빈과 알고 지내다가, 서로 문학에 뜻이 있음을 알고 점점 친해지기 시작, 급기야 가족 또는 친척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급속결혼의 메카 라스베가스에 가서 혼인신고서에 인감도장을 찍었다. 케빈의 가족이라고는 누나 한 명 밖에 없었다. 어려서부터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누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다고 자학하는 흑인 소녀와 뗄 수 없는 짝궁으로 지냈으나 키 작고 나이 많고 쪼잔한 매형의 영향 때문인지 동생이 흑인 여성과 혼인한다는 얘기를 듣고 정 그렇다면 의절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다나도 예외가 아니어서 어릴 때부터 부모처럼 의지하고 살던 외삼촌이, 몇 채의 작은 아파트를 소유한 나름대로 좀 사는 남자였는데, 반대할 수는 없지만 정말 백인 남자와 결혼하면 자기 재산을 몽땅 침례 교회에 기부하고 죽겠다고 했다. 이런 편견과 어려움을 뚫고 결혼에 이르렀으니 둘이 정말 사랑했던 것 맞겠지? 맞다. 적어도 이 소설의 에필로그가 끝날 때까지는.

  둘은 각자의 아파트에서 살았었지만 이제 혼인을 했으니 살림을 합쳐야 할 판. 그래서 작가 지망생 답게 산처럼 쌓여 있던 책을 어느정도 정리한 다음에 케빈의 아파트로 다나가 들어간 것이 1976년 6월 8일. 이제 번듯하게 합법적 부부로서 한 지붕 살림을 시작한 다음 날, 다나가 싸가지고 온 책을 책꽂이에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현기증이 밀려오더니 휘리릭, 책도, 책꽂이도, 집도, 심지어 케빈도 단방에 사라져버리고 다나 혼자 숲 가장자리 녹지로 순간이동을 해버린 거였다.

  다나가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거리다 보니, 아이 하나가 강 한가운데 빠져 열심히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아이가 물에 빠지면 어떻게 보이는 줄 아시나? 마치 수영을 할 줄 아는듯 전력을 다해 팔다리를 허우적거린다. 이러는 바람에 사람 많은 수영장에서도 아이가 물에 빠져 버둥거려도 숱한 어른들은 그걸 보면서 어린 아이가 헤엄을 치고 있다고 생각해 그냥 내버려두다가 죽게 만드는 거다. 다나가 보기에 아이는 벌써 이런 단계를 넘어서 거의 움직임을 멈춘 상태. 수영을 할 줄 아는 다나는 얼른 강으로 뛰어들어가 엎어진 아이의 고개를 물 밖으로 향하게 하고 강둑으로 끌고 나온다. 강둑에서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정색 긴 드레스를 입은 빨간 머리의 예쁘게 생긴 아이 엄마가 온몸을 떨며 어쩔 줄을 모르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터. 아이를 내오니 이미 얼굴이 새파랗게 변한 채 숨도 쉬지 않고 맥박도 이미 멈춘 상태였다. 다나는 1970년대에 학교에서 배운 구급법인 인공호흡을 하기 위해 빨간 머리 아이의 입에 자기 입을 대고 숨을 훅, 불어넣었다. 와중에 이 모습을 본 작은 체구의 아이 엄마는 남부 말투로 다나한테 뭐라 욕을 하는 거 같았는데, 다나는 대꾸할 새도 없이 연신 인공호흡을 계속할 뿐이었다. 지성이면 감천? 빨간 머리 아이가 드디어 숨을 훅 내쉬고, 울컥울컥 물을 토하더니 흐릿하게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고, 아이 엄마는 뭔가에 놀란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이 때 다나는 관자놀이에 찬 금속의 감촉이 닿는 것을 느꼈다. 이게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 큰 키에 마른 체격의 남자가 자기 머리통에 은빛 나는 길고 무서운 총을 겨누고 있었던 거였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나 총을 들이대는 순간, 다나는 곧 자신이 죽음에 이를 것이라는 본능적 상태에 이르러 몸 속에서 아드레날린이 풍풍 분비되고, 그러자마자 다나는 이 장신의 남자와 빨간 머리 아이와 엄마의 눈 앞에서 갑자기 훅, 사라져 버리고 다시 1976년, 케빈의 아파트, 책장과 책 앞으로 다시 순간이동을 했던 거였다.


  이런 플롯이다. 같은 구성이니 스토리를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러니 하고 싶은 말만 하자.

  이후 다나는 1976년 6월 9일 저녁에 두번째 순간이동을 하는데, 빨간 머리 아이는 빨간 머리 소년으로 성장한 상태였고, 이 때는 서기 1815년이었으며, 화딱지가 나서 마구간에 불을 싸지른 전력이 있는 소년이 이번엔 손에 불붙은 나무 막대로 방 창문 커튼에 불을 붙여 조만간 타 죽으려는 순간이었다. 즉 소년이 죽을 위험에 처하면 다나가 1976년에서 19세기 초로 순간이동 뿐만 아니라 시간이동까지 하는 것인데 이건 예쁘게 생긴 빨간 머리 소년의 의지에 의해서도, 다나의 의지에 의해서도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차원을 넘어서는 알지 못하는 힘에 의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 빨간 머리 소년 이름이 예쁘장하게 생긴 것하고는 다르게 ‘루퍼스.’ 이름이 매우 불량하다. 큰 악마 루시퍼와 하여간 비슷하다. 그래서 위험에 빠지면 사정 불문하고 20세기 후반에 사는 다나를 확 끌어당기는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고. 아이가 사는 곳이 메릴랜드의 와일린 농장이란다. 아빠는 톰 와일린. 자신은 루퍼스. 흑인 소녀이지만 노예가 아닌 자유민 앨리스의 친구. 당연히 19세기 초의 백인 남자 답게 지금이야 친구지만 사춘기 넘어서 부랄 굵어지면 그때도 친구겠어 어디?

  다나의 머리를 확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헤이거 와일린 브레이크. 1831년에 태어나 1880년에 졸한 다나의 오랜 할머니. 이 할머니가 작성하기 시작해 나무 상자에 대를 이어 써내려간 일종의 족보에 의하면 루퍼스 와일린과 앨리스 그린우드가 결혼해 헤이거 와일린이 출생했다는 내용. 그러면 빨간 머리 소년 루퍼스가 다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사고뭉치 꼬마가 살아남아 다나의 집안과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죽을 만하면 다나를 부르고, 또 죽을 만하면 다나를 부르는 거다. 다나와 한 번은 백인 남편 케빈도 이 차원을 넘어 여행을 해 케빈은 무려 5년 동안 있기도 하건만, 실제 1976년의 시간은 며칠 밖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시대가 19세기 초반의 미국. 게다가 노예제도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던 메릴랜드가 무대이니 당연히 백인에 의한 흑인 노예에 대한 온갖 악랄한 학대가 등장한다. 하지만 독자는 차원여행은 이미 클리셰의 범주 안에 들어갔고, 노예제 고발도 익숙하다. 이제는 오히려 아프리칸 미국인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아시아 인에 대한 공격과 차별을 거론하는 시대가 됐으니 만시지탄이기도 하고. 그래서 누군가 내게 이 책이 어떠냐고 묻는다면, ① 재미있다, ② 분량과 관계없이 훅훅 읽힌다, 그러나 ③ 플롯이 이미 낡았고 새로운 읽을 거리가 없어서, ④ 굳이 읽고 싶다면 이 책보다는 콜슨 화이트헤드가 쓴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를 권하겠다,고 말하겠다.


  조금 더 추가하자면, 1976년에서 1810년대로 떠나면서 이들이 소통하는 언어 사이에 사투리와 백인과 노예의 사용 언어 차이 말고는 별 어려움이 없는 것이 어색하다. 근 170년 가까운 격차. 우리나라면 순조 임금 시절인데 당시 사람이 쓰던 언어를 지금 사람이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다? 믿지 못하겠다.

  하나 더 말하자면, 다나의 백인 남편 케빈은 1810년대 미국에서 무려 5년 이상을 살다가 탈출한다. 근데 19세기에 루퍼스 와일린은 댕기열로 추정되는 열병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케빈이 일종의 토착병에 제대로 된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을까? 지금은 사라진 온갖 전염병이 창궐하고, 위생 관념이 거의 없었던 거친 시절에 복닥이느라 얼굴에 외과적 상처는 얻었을지라도 질병 한 번 경험하지 않은 것은 가히 기적적이다. 뭐 그렇다는 거다. 심각하게 시비하는 건 아니고 이런 것도 좀 신경썼으면 어땠을까 싶은 정도.

  대신 다나와 케빈은 현대과학이라는 초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니 서로 퉁치면 된다. 실제로 책 속에 다나의 일반상식적 의학 지식은 당시 의사보다 훨씬 우월한 의료지식으로 무장한 상태이다. 이것 말고도 다양하게 150년 전 사람보다 탁월한 조건을 가지고 있을 터, 이 지식의 적절한 사용이 별로 보이지 않는 것이 조금, 많이는 아니고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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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수정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21
조너선 프랜즌 지음, 김시현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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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너선 프랜즌은 1959년 여름에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변두리 마을에서 스칸디나비아계 아버지와 동유럽 이민자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의 혈연 계통은 작품 속의 부모 이니드와 앨프리드 램버트 부부와 같다. 그곳에서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한 일고여덟 시간 남쪽으로 달리면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가 나오는데, 두 마리의 앵무새를 야구팀 이름으로 사용하는 이 도시의 변두리 부자 동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생 수정>에서도 가족의 고향집은 세인트주드에 있다. 미국인들은 세인트루이스를 기점으로 서쪽을 서부, 동쪽을 동부라고 생각하니까, 세인트루이스가 정확하게 미국의 중부도시이다. 작품 속에서도 램버트 집안의 세 남매는 세인트주드를 중부도시라고 일컬으니 읽으면서 세인트주드를 세인트루이스와 인접한 작고 부유한 동네로 여겨도 무방하다. 그러면 책을 읽기가 수월해진다.

  세인트주드. 성聖 주드. 익숙하지? 야나기하라가 쓴 우중충한 이야기 <리틀 라이프>의 주인공이 주드. 이 책의 마을 이름 성 주드, 세인트 주드. 좌절하는 사람, 절망스러워하는 사람의 수호성인을 마을 이름으로 가져다 붙인 거다. 그러면 이 책에서도 좌절하는 사람, 절망스러워하는 사람이 등장하겠지? 맞다. 소설의 주인공이라면 마땅히 좌절하고 절망스러워해야 하는 법. 그러나 생각하기 나름. 세상에 한 번도 좌절하고 절망하지 않은 사람 있으면 두 명만 이름 대봐라.

  이 책 <인생 수정>을 발표한 것이 2001년. 벌써 사반세기가 흘렀다. 당시에 프랜즌은 전미도서상을 받았으며 퓰리처상, 더블린 국제 문학상 최종후보에 올랐다가 장렬하게 바나나 껍질을 밟았다. 시그리드 누네즈가 쓴 <그해 봄의 불확실성>에 이 작품에 관한 일화가 나온다. 한 출판업자가 조너선 프랜즌이 <수정correction>이란 제목의 소설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한다. “끔찍한 제목이군. 세 부 정도밖에 안 팔리겠어.”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김시현 번역판이 은행나무에서 출간했다가 이번에 은행나무 세계문학 에세 시리즈 21번으로, 남성 작가 작품으로는 머네인에 이어 두번째로, 중판(또는 개정판)이 나왔다. 이 정도가 <인생 수정>과 관련한 작가의 바이오이다.


  미국의 중부 지역에 있는 마을 세인트주드는 장로주의가 득세한, 즉 보수적 색채가 강한 곳이다. 이곳 마을의 작지 않은 주택에 일흔다섯 살의 앨프리드 램버트와 그의 아내 이니드가 살았다. 작품은 이니드가 온갖 잡동사니로 가득 찬 지하실에서 펜실베이니아 스벤크스빌 이스트 인더스트리얼 서펀티 24, 액슨 주식회사로 발송하는 등기우편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 한 권이지만 820페이지가 넘는 장편소설이니 곧이곧대로 말하자면, 몸 속에서 파킨슨 병이 맹렬하게 진행중인 앨프리드는 왕년의 기계 엔지니어로 특허 두 개를 갖고 있는데, 액슨 주식회사가 마침 엄청난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앨프리드에게 특허를 5천 달러에 팔라고 권유하는 문서였다. 앨프리드는 이 문서에 동의해 서명하고 세인트주드의 공증인에게 공증까지 받은 다음에 이니드에게 우체국에 가서 서류를 등기로 발송하라고 부탁했었다. 이니드가 암만 생각해도 1만 달러는 받을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래서 조금 머뭇거리기는 했으나,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그냥 서류를 어디다 두었다가 깜박 잊은 거였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순서대로 아들 개리(그리고 며느리 캐럴라인과 세 손자), 아들 칩, 딸 데니즈를 두었는데, 작지만 탄탄한 은행의 부점장 개리가 후에 이야기를 듣더니 이건 수십만 달러짜리라고 난리를 죽이는 일이 생긴다. 하지만 고집불통의 아버지 앨프리드는, 네 일이 아니니까 신경 끄라며 단칼에 정리해버리고 5천달러에 서명한 거다. 더 이상은 미리 알 필요 없다.

  이렇게 시작한 소설은, 앨프리드와 이니드가 이제 생의 마지막일 수도 있는 크루즈 여행에 오르기 위하여 뉴욕의 둘째 아들 칩의 아파트를 향하고, 뉴욕 공항에서 아들 칩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막이 오른다. 작품은 후기 자본주의의 정점에 올라선 미국이 거의 마지막으로 호황을 누려, 상장회사의 자본시장이 무려 35퍼센트 성장하는 시기의 마지막 부근이 시간적 공간이다. 곧 러시아와 한 시절 위성국가였던 나라들, 태국과 한국 등지에 외환위기가 닥칠 예정이니 1996년에서 97년으로 보면 적당하겠다. 지독하게 개인주의적이고 탐욕스러운 후기 자본주의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전 미국을 휩쓸던 시절, 한 가족으로 축소, 축약된 미국 혹은 세계를 조망하고 있는데, 작품의 해설 속에는 “가식적인 사회규범으로 점철된 램버트가의 숨막히는 일상 속에서 억압과 굴욕은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대물림된다.”라고 하고 있으나, 천만의 말씀. 그렇게 거창하게 읽으면 읽다가 지쳐 죽겠다. 그냥 그 시절의 미국 가정이다. 비록 아버지 앨프리드가 좀 가부장적이고 완고하고, 고집불통에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꽉 막힌 구석이 있지만 평생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맹렬하게 돈을 벌었으며, 나중에 알려지지만 꼰대들 특유의 불친절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도 부모의 영향 때문에 성격이 고착되었다고 할 근거는 거의 없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아버지 때문에 아이들이 빗나갔을, 빗나간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객관적인 시각으로 보면 자식 농사는 기중 잘 지은 편이다.


  맏아들 개리. 마흔은 확실하게 넘었다. 좋은 대학 졸업하고 금융권에 취직하기로 결심했는데, 너무 크고 좋은 곳 말고 상대적으로 두각을 드러내기 마땅한 작지만 알찬 은행을 골라 들어가서 정말로 두각을 나타내 부행장 자리에 올랐다. 물론 망한 프로젝트도 담당했던 적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대단한 이익을 가져온 은행의 보배 비슷한 수준. 덕분에 진짜로 돈 많은 집의 외동딸 캐럴라인과 결혼하는데 성공해, 아들만 셋 낳고, 집에서 (약식)미식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저택에 살며, 세상에 돈 아까운 줄 모르고 사는 처자식한테 조금 불만이 있지만 당연히 공처가에, 아버지처럼 완벽한 옹고집은 아니지만 아내와 아들한테 왕따 당하고 있는 걸 자신도 안다.

  둘째 아들 칩. 형처럼 고등학교까지 세인트주드에서 다니고 동부에 있는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 드디어 부모한테서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공부를 잘해서 코네티컷의 D 대학에서 텍스트 공예학 조교수로 임용되었는데 당시 조건이 5년 임기의 교수직을 끝내면 곧바로 종신교수로 임용하는 거였다.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열공에 열공을 더한 모범생으로 부자가 되지 않고도 미국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무턱대고 믿었던 순진한 지식인이었다. 쉽게 말해 모든 경제활동에 적합하지 않은 인간이었다는 거. 맨해튼의 아파트에서 살면서 늘 비싼 월세 때문에 빠듯했으나 하여간 교수 월급으로 충당할 수 있어서 다른 선택은 하지 않았다. 오늘 독후감은 이 둘째 아들에 관해서만 쓰겠다. 작품은 부모와 세 자식들 이야기가 전부 나오는 바람에 8백페이지가 넘어간다. 그거 다 소개하면 내일 아침까지 써도 모자란다.

  막내 딸 데니즈. 서른두 살. 둘째 오빠 칩보다 더 좋은 대학을 다니다가 마음먹은 바가 있어서 중도에 때려 치우고 이탈리아와 프랑스, 오스트리아를 돌며 요리를 배웠다. 필라델피아로 돌아와 요리 공부를 더 하고 고급 레스토랑에 취직한다. 이때 자신의 사수이자 셰프를 잘 만나 이후 요리 솜씨가 일취월장한 것은 물론이고 셰프에 대한 존경심이 사랑으로 바뀌어, 키 작고 못생기고 나이 많은 유대인 셰프와 결혼에까지 이른다. 물론 오래 살지는 못하지만. 이후 벤처 사업체를 거액에 팔아 평생 일할 필요가 없어진 거부에게 고용되어 필라델피아 최고의 레스토랑에서 수석 셰프 자리에 오르고 각종 메스컴에 등장하는 등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사장과 한 침대에 들었다가 엉뚱하게 사장 아내가 들이닥치는 바람에 사장과 딱 한 번의 불륜, 그리고 사장 아내와의 지속적인 동성애가 발각나 단칼에 해고당한다.

  어떠셔? 이 정도면 자식 농사를 망치지는 않았다. 사회생활 하다가 보면 잘 될 때도 있고, 얼마동안 고난의 행군을 할 때도 있는 법. 이 정도면 괜찮은 농사라 할 만하다. 그러니 “가식적인 사회규범으로 점철된 숨막히는 일상 속에서 억압과 굴욕”이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물림된다”는 건 어째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그럼 둘째 아들 칩에 관해 좀 더 이야기해보자.

  D 대학의 성실한 텍스트 공예학 교수 칩 램버트가 종신교수로 임용되기 바로 한 학기 전에 일이 벌어진다. 자기 수업을 들었던 멜리사라는 학생이 문제였다. 전 학기에 칩을 유혹하려다 실패로 끝나고 만 전력이 있는 멜리사가, 칩의 말에 의하면, 자기를 강박적으로 쫓아다녔다고 하는데, 칩의 차에 팔딱 뛰어 타더니 모텔에 가자는 거였다. 칩이 생각하기에 이제 자기 학생이 아니니까 뭐 그리 크게 잘못될 일이 있을까 싶었다. 이때 칩이 서른여덟에서 아홉. 근데 멜리사 하는 말이 모텔에 가기 전에 어디 한 군데 들렀다 가자고 한다. 그렇게 했다. 어느 건물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멜리사는 멕시칸A 라고 하는 미未승인 향신경성 약물을 가지고 왔다. 그렇게 둘은 모텔에서 멕시칸A를 먹어가며 몇 날 며칠동안 천국에 머물렀다. 오직 그거만 하면서. 이 멕시칸A는 부모가 마지막 크루즈 여행을 하는 배 안에서 한 번 더 등장할 예정이기도 하다. 엽색 여행이 끝난 후에 멜리사는 학교 과제인 리포트 작성에 곤란을 겪으면서 칩에게 리포트의 방향과 기타등등의 지도편달을 부탁했고, 칩은 그렇게 했다. 이후 멜리사는 학교 당국에 이제 한 학기만 있으면 종신교수가 될 칩이 자신과 부적절한 사제간의 관계를 맺었으며 그 대가로 자신의 리포트를 대신 써주었다고 고발하고, 칩은 당연히 해고당한다.

  이제야말로 좌절과 절망의 단계에서 성 주드의 돌보심만 바라게 된 칩이 어떻게 영화사와 연결이 됐고, 영화사 사장의 권유로 시나리오를 한 편 쓰는 과정에서 사장의 비서인 줄리아 브라이스와 애인관계를 만든다. 근데 칩이 지금 벌이가 없잖아? 그는 동생 데니즈에게 2만5백 달러를 빌려 돈이 떨어질 때까지 줄리아와 데이트를 즐기며, 돈이 떨어지자 자기 전공 책을 팔아 또 줄리아와 함께 극장과 식당에 가더니 본격적인 빈털터리 신세가 되고, 시나리오를 받은 사장은 한 번 휙 읽어보고는 자기 딸의 낙서용 종이로 제공하고 만다.

  이 상태에서 성 주드는커녕 세인트주드에서 부모가 크루즈 여행을 위해 자기 아파트로 쳐들어온 것. 이에 맞추어 동생 데니즈도 아파트에 왔는데, 있는 돈, 없는 돈, 그리고 마침 돈이 똑 떨어지는 바람에 여러가지 식료품, 특히 1킬로그램짜리 연어를 훔쳐 팬티 안에 숨겨 나오는 장면이 포복절도할 만한데, 그렇게 점심 재료를 준비해 놓았으나, 아뿔싸, 부모에게 소개하기로 한 여자친구 줄리아가 그날 부모가 있는 아파트 안에서 칩에게 난데없는 이별을 선언하더니 그냥 나가버리는 거였다. 칩은 부모가 몇 년만에 뉴욕에 왔든 말든, 자기한테 2만5백 달러를 꿔준 데니즈가 왔거나 말거나 줄리아를 찾아 나서고, 결국 셰프, 사실은 해고당한 셰프인 막내딸 데니즈가 점심을 새로 만들어 먹고 크루즈 선박에 오른다.

  사실 줄리아는 기혼녀였다. 남편은 리투아니아의 젊은 미국 대사이자, 군부실력자인 지타나스 미세비치우스. 지금 그는 리투아니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니다. 갔다가 왔다. 영화사에서 우연히 칩을 만난다. 돈 한 푼이 아쉬운 칩은 지타나스가 준비하는 리투아니아에서의 대 세계적 특히 대 미국 사기극에 고용되어 애인의 법적 남편 바로 옆 좌석에 앉아 리투아니아로 날아가고, 결과적으로 돈을 벌기는 번다.

  이렇게 조너선 프랜즌은 길고 긴 한 가족의 난장판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는데, 유쾌하다고 다 즐겁게 웃긴 건 아니라서 절대적으로 후기 자본주의 혹은 신자유주의와 가족간에도 극명하게 갈리는 개인주의의 비극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 작품 답게 결론은 가족, 가정. 하지만 그렇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돈벼락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읽어 보시라. 후회하지 않으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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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5-06-16 1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찾아보니 14년 전 조너선 프랜즌의 <자유>를 읽었네요... 민망하지만 그때 남긴 100자평엔 ‘술술 잘 읽히는데 골치 아픈 스토리, 마지막 감동‘이라고 적혀 있었네요...거기서도 어떤 가족이 나오는데 그 가족이 꽤나 골치 아팠던 기억만 남아있어요. 그 책을 읽게 된 계기가 좀 엉뚱한데요...우연히 미용실에 잡지를 보다가 나탈리 포트만 인터뷰를 읽었는데, 그녀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자유>라고 하더라고요...그래서 저도 덩달아 읽게 되었어요.ㅋㅋㅋ
<인생수정>도 역시 난장판 가족이 나오는군요...이 책도 이상하게 끌려서 찜해뒀는데 폴스타프님이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하시니 꼭 읽어보겠습니다!

Falstaff 2025-06-16 16:05   좋아요 1 | URL
저는 프랜즌이란 작가가 있는 줄도 몰랐답니다. 처음 읽었는데 썩 그럴 듯하더라고요. 더 읽어보려고 도서관 관심도서에 팍팍 쌓아 놨습니다. ㅎㅎㅎ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
임솔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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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솔아는 용감한 사람이다. 그의 기사를 검색하던 중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1987년 대전에서 출생.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혼자 글을 쓰면서 살았다. 왜 고등학교를 때려 치웠는지는 모르겠다. 학폭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였는지, 하도 책을 많이 읽어 인생무상을 조기에 알게 됐는지, 공부 수준이 따분했거나 시시해 보였거나 자기한테 전혀 필요 없는 것들만 가르친다고 여겼든지. 하긴 이런 것은 세월이 지나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찌감치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일찌감치 자기 인생을 글 쓰는 데다 묶어버렸다. 그리다가 스물세 살 때 검정고시를 보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에 들어가 서사창작을 전공, 졸업하기 전인 2013년 스물여섯 살에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시인으로 데뷔했다. 근데 언제 졸업했는 지는 모르겠다. 예종이란 곳이 나이 많은 만학도가 워낙 많은 곳이고, 재학 연수도 일반 대학처럼 딱 입학해 4년 후에 졸업하는 곳도 아니라서(이이가 다닐 때도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 시절엔 확실히 그랬다). 하여간 2017년 학기까지 마치고 졸업한 것으로 보인다. 2015년에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2017년에 신동엽문학상, 2020년 문지문학상, 2022년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아 필명을 드높였다. 이 책 《아무것도 아니라고 잘라 말하기》에 두번째로 실린 <초파리 돌보기>가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2021년 12월에 책을 찍은 문학과지성사가 화들짝 놀라서 즉시 연두색 스티커를 만들어 책 앞표지마다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수록”이 들어 있다고 알렸다. 젊은작가상은 문학동네에서 주는 거라 미리 알지 못해서 그랬을 거다.

  언제부터 작가들의 바이오는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겠다는 의지도 이해하겠다. 그럼에도 굳이 작가들의 개인사를 좀 알고 싶은 것은, 작품 속에 자주 작가의 삶이 용해되어 있어서 작품 속 어떤 장면이 소위 ‘자전적’ 이야기일까 궁금하기 때문이다. 이미 죽었거나 더 이상 작품활동을 하지 않는 작가들의 경우엔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막 가져오는데, 활동중인 사람들의 경우엔 조심스럽다. 그래서 점점 작가 소개를 줄이고 있는 것. 근데 오늘은 좀 길었다. 이 책을 읽고나서 벌써 닷새 이상이 흘렀다. 특히 단편집의 경우에 며칠만 지나가도 스토리가 머리 속에서 막 뭉개져 제대로 된 독후감을 쓰기가 난감하다. 이럴 때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임솔아가 살아온 세월이 소설만큼, 또는 소설 보다 더 소설 같을 수 있어서 좀 길게 썼다. 나쁜 의도는 전혀 없으니 작가 본인이나 주변인이 이 글을 읽어도 넓게 양해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싫으면 (비밀)댓글로 귀띔해주시고.


  소설집, 재미있게 읽었다. 읽고나서 곧바로 앱 북적북적에 별 넷으로 기록했다. 단편소설집에 별 넷이면 내가 내리는 거의 최상의 평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책 읽을 당시, 읽은 후의 ‘느낌’ 말고 지금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인 <초파리 돌보기>는 생각나지만, 닷새 전엔 처음에 실린 <그만 두는 사람들>을 더 재미있게 읽었다고 기억한다. 그렇다고 책 뒤에 실린 문학평론가 홍성희의 해설을 컨닝해 비슷하게 옮길 수도 없잖은가 말이지.

  헛소리를 좀 하자면, 왜 그간 독후감을 쓰지 못했을까? 오늘 일 때문이었다. 아침 아홉시 반에 예약하고 치과 가서 어금니 뽑았다. 전에 신경치료 한 건데 치은염인지 치주염인지 하여간 잇몸이 점점 내려앉아 음식물을 전혀 씹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뽑고, 임플란트를 하거나 앞뒤 이로 연결시키는 브리지를 하거나 나중에 결정해야 한다. 이를 뽑으면 술 못 마시잖아? 그래서 강제로 못 마시기 전에 얼른얼른 듬뿍 마셔 두느라고 어떻게 하다 보니 날마다 천국이었다. 생각을 좀 해보셔. 독후감 쓰는 거 하고 술 마시는 거 하고, 뭐가 중헌디? 당연한 이야기 아녀?

  나는 자주 말했다. 요즘 우리 소설은 한 배에서 나온 씨 다른 형제 자매 같다고. 한 번 읽고 이런 느낌이 드는 작가의 책은 다시 찾지 않는다. 주로 섬세한 감각으로 호소하는 작가들의 경우가 이 부류에 든다. 그러고 보니 저번에 읽은 박민정 독후감에서도 똑 같은 말을 했구나. 임솔아도 이들 같지 않아서 좋다. 맞다. 내가 우리 소설 읽기를 게을리해서 그렇지 좋은 작가는 늘 새로 등장한다. 이런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확실히 즐거운 일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전성기에 돌입하는 임솔아도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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