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셀의 한 가족 제안들 29
샹탈 아케르만 저자, 이혜인 역자 / 워크룸프레스(Workroom)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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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나, 오랜만에 내 스타일이예요. 당신한테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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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24-12-13 2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12-14 05:06   좋아요 1 | URL
ㅎㅎㅎ 내일 지구가 망하더라도 재미나게 살자고요. ㅋㅋㅋ

수이 2024-12-14 10:41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님 별 다섯개 작품 궁금해서 후다다다닥
 
귀신들의 땅
천쓰홍 지음, 김태성 옮김 / 민음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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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쓰홍陳思宏은 1976년, 타이완 용징永靖향에서 농부의 아홉째 자녀로 태어난 퀴어 소설가, 영화배우, 역자이다. 자식 많이 낳은 농부는 당연히 아이들이 공부를 계속하는 것보다는 얼른 자기 밥벌이를 시작했으면, 하고 바랐겠지. 그러나 천쓰홍은 책읽기를 좋아하여 아버지가 보던 신문, 여동생의 책꽂이에 꽂힌 책을 주로 읽었고, 학교에 다니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위키피디아는 소개한다. 고등학생 시절에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혔지만 가족들은 왜 하필이면 자기네 집에서 동성애자가 나왔는지 이해하지 못했으며, 곱게 생긴 외모 때문에 친구들에게도 놀림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니 아버지 바람대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할 수 있었을까. 천쓰홍은 푸런輔仁 대학에서 영문학과와, 국립타이완대학 연극학과를 졸업한 후, 남자친구와 베를린에 정착해 주로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 커플이 법적 “파트너”로 등록했다고 하는데, <귀신들의 땅>에서 말하는 것처럼 동성결혼을 의미하는 것 같다.

  <귀신들의 땅>은 도서관의 관심도서목록에 오래 보관하던 책이다. 읽으려면 상호대차를 해야 해서 차일피일하다가, 이번에 <67번째 천산갑>이란 책을 출간했다기에, 그 책을 희망도서 신청하면서(하려다 안 했다) 전작인 <귀신들의 땅>을 먼저 읽어보자 싶어 그렇게 했다.

  같은 타이완 작가 가운데 얼른 생각나는 사람이 <서자孼子>를 쓴 바이센융. <서자>와 <귀신들의 땅>은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동성애자인 것이 드러나 집에서 쫓겨난 아들. 즉 퀴어소설이라는 점. 타이완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동성간 결혼을 합법화, 2017년에 동성간 결혼 금지가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아직 ‘결혼’ 대신 ‘동반자 등록’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시아 지역에서 동성애에 관해 상당히 관대하다고 볼 수 있을 텐데, 천쓰홍이 1976년생, 이이가 성인이 된 시절까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심했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이라고 크게 좋아졌을 것 같지는 않다.


  작품의 주인공 톈홍는 작가의 고향이기도 한 타이완 중부의 시골, 아주 작은 마을 용징永靖에서 낳고 어린시절을 보낸 후, 동성애 성향을 목격한 어머니에 의해 집에서 쫓겨나 우여곡절을 겪은 다음 베를린에서 젊은 애인 T를 만나 동성결혼했다. 베를린에서의 동성결혼이라고 해서 이 작품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볼 수는 없다. 당연히 경험 가운데 몇 조각은 작품에 반영을 했겠지만.

  5백쪽에 달하는 장편에 한 가족 이야기. 어머니 아찬과 아버지 아산에게 당연히 각자 한 권 분량은 족히 넘을 이야기가 있고, 순서대로 5녀2남 도합 일곱 명의 자녀 개개인들 역시 한 권 분량의 소설로도 다 쓰지 못할 인생이 있는데, 그걸 몽땅 합쳐 소설 한 권으로 썼으니 얼마나 구절양장 같이 얽히고설켰는지 짐작을 하실 터, 부모, 형제, 자매들의 우여곡절과 궁상은 옮기지 않겠다.

  1970년대 중반에 건설업자가 용징 최초의 타운 하우스 열 동을 짓는다. 원래 타이완 중부의 큰 지주였지만 내전에 패배한 장제스 정권이 들어서서 토지개혁을 하는 바람에 그저 그런 시골부자가 됐다가, 그럼에도 여전히 대지주의 소비습관을 버리지 못했던 톈홍의 할머니가 하필이면 백세까지 장수하는 바람에 있던 재산마저 말짱 다 말아먹어 찌그러진 집안으로 전락했던 톈홍의 아버지 아산. 아버지는 트럭을 구입해 각종 농산물을 도시의 소매상에게 내다 파는 일을 했다가, ‘빈랑’이라고 아시지? 발암물질이 있어서 구강암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지만 중독성 또한 있어 주로 남중국 일대 주민들이 늘 우물거리면서 붉은 침을 찍찍 뱉게 하는 열매, 그걸 농부들과 협력해서 대량으로 내다 팔아 차익을 챙기면서 잠깐 여유로운 시기를 맞았고, 딱 그때 3층짜리 타운하우스 한 동에 입주했다. 빈랑 사업을 시작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아 다섯 딸의 학비를 모두 낼 수 있었으며, 매일 저녁 흰 쌀밥과 돼지고기를 삼킬 수 있는 건 물론이고, 연초에 드디어 첫아들을 낳더니 연말에 이왕 낳은 김에 둘째 아들도 한 번 더 쑥 뽑아냈다. 이렇게 세상 빛을 본 일곱째 막내이자 두번째 아들이 오늘의 주인공 톈홍. 말 그대로 생로병사를 시작한다.

  톈홍은 여덟 살 무렵에 빨간 반바지를 입고 다니는 옆집 왕씨네 아들 징쯔총에게 유별난 정을 느낀다. 징쯔총도 톈홍을 귀여워해 함께 극장에 가면 무릎에 앉히고 영화를 보곤 했는데 당시가 시골 용징에서 거의 처음 상영하는 영화였음에도 톈홍은 스크린을 바라보는 대신 엉뚱하게 빨간 반바지 사이로 자꾸 손을 집어넣어 징쯔총한테 쿠사리도 받고 그랬다. 하여간 그러다가 중학교에 들어가고, 하필이면 거의 정신병자 수준으로 학생들을 두드려 패던 담임선생의 친아들 샤오촨에게 그게 어떤 감정인지도 모르고 하여간 무슨 감정을 느낀다. 무슨? 무슨은 무슨이야, 연애감정이겠지. 톈홍의 일방적인. 하지만 담임은 둘 사이를 의심할 만한 장면을 직접 목격하고 그렇지 않아도 미친년 같던 폭력 성향에 불이 붙어 학교 나무에 묶어놓고 상급 아이 몇 명을 불러다가 매타작에 들어갈 때, 바로 옆을 지나던 톈홍의 형 톈이는 그걸 슬쩍 보더니, 그냥 가던 길 갔다. 진짜 형 맞다. 이래봬도 나중에 용징 현장까지 해먹는 형. 업무상 배임으로 임기도 못 채우고 감방에 가긴 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샤오촨의 엄마이자 담임선생이 집으로 쳐들어와 당장 다른 학교로 전학하라고 난리법석을 한 번 떨더니 정작 자기 아들을 전학시키고 나중엔 캐나다로 이민을 가버렸다. 샤오촨은 톈홍과의 연애감정 때문이 아니라 나중에 고향을 못 잊어 홀로 다시 용징으로 와 터를 잡긴 해도.


  이렇게 세월은 흘러, 톈홍은 베를린에서 살다가 가난하고 젊은 청년 T를 만나 연애를 하고, 동반자 등록을 한다. T는 톈홍과의 관계를 부모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크리스마스 시즌을 빌어 발트해에 인접한 고향 라뵈 집으로 간다. 가긴 갔다. 가서 크리스마스 전날 저녁식사, 작은 만찬을 하면서, 이미 얼굴이 수세미처럼 구겨져버린 아버지와 대판 싸움을 하고 의절을 해버렸다.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온 커플은 가난 속에서 어렵게 살다가, T는 네오 나치 집단에 들어가더니 어깨와 팔뚝 사이에 18과 44라는 숫자를 문신으로 새기고, 꼭 N자를 새긴 비싼 미제 운동화만 신기 시작했다. 간단하게 18은 1번째와 8번째 알파벳, AH, 아돌프 히틀러를 의미하고, 미제 운동화 N은 나치의 첫 글자와 같다. 같긴 같지만 결국 동료들에게 동성애 성향이 뽀록이 나고마는 T. 험한 세상을 만나 T는 약물에 취한 상태에서 톈홍과 극한 싸움, 육체적 결투를 벌이게 되는데, 애당초 순혈 아리안족하고 왜소한 남부 중국인하고 상대가 되겠어? 이 결과 톈홍은 짧지 않은 세월 베를린 교도소에서 콩밥을 먹고, 출소하고, 다시 타이완 용징으로 귀향해 누나들을 만나는 이야기.

  원래 누나가 다섯 있었지만 다섯째 누나 차오메이는 스스로 험하게 죽었다. 약을 충분히 먹은 다음에 넷째 언니 결혼식장에 들어가 칼로 자기 몸을 북북 긋더니 얼굴에 비닐 봉지를 덮고는 죽은 개와 고양이를 던져버리는 개울에 처박혀서. 넷째 누나는 이때의 충격으로 ‘백악관’이라 불리는 용징 최고의 저택 2층에 있는 자기 방에서 한 발짝도 떼지 않고 지낸다. 하나 있는 형은 업무상 배임에 따른 징역형을 마치고 출소해 백악관에 들어가 넷째 누나 수발을 하고. 그리하여 베를린 감옥에서 출소한 기념으로 생두부를 함께 먹을 사람으로는 이제 딱 하나 남아 타운하우스 아버지 집을 지키고 있는 첫째 누나 수메이, 타이베이에서 민원 공무원 일을 하는 둘째 누나 수리, 타이완 최고의 뉴스 앵커한테 날이면 날마다 두드려 맞으며 사는 아름다운 셋째 누나 수칭. 그리고 어린 시절 친구, 어쩌면 절친, 말 그대로 친구였던 샤오촨. 여기에 한 명만 더 보태자면, 제목 <귀신들의 땅>이니까, 이미 귀신으로 살기 시작한지 꽤 된 아버지 아산의 유령. 이렇게 기구하게 살아온 사람들. 이야기가 속도감이 있어서 그렇지 딸 셋과 막내 아들이 만났을 때, 맏이는 이미 나이 육십이 됐거나 근처까지 간 세월이 흘렀다. 징글징글한 삶의 이야기들.

  그런데 어째 좀 덜 재미있게 읽었다. 이미 죽은 귀신이 직접 말을 한다고 해서 <귀신들의 땅>이 윌리엄 포크너 근처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좀 뭣하고, 성소수자에 관한 퀴어 소설이라는 것도 이제는 특별하지도 않고, 궁상스런 삶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은 내력이 있으니 눈에 쏙 들어오지도 않았으며, 하여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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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2-13 0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 《투계》
화요일. 클레어 키건, 《푸른 들판을 걷다》
수요일. 에드나 오브라이언, <8월은 악마의 달>
목요일. 박경희, 《미나리아재비》
금요일. 이반 부닌, 《샌프란시스코에서 온 신사》
 
- 제6회 최계락문학상 수상작
서정춘 지음 / 큰나(시와시학사)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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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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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라도 순천에서 마부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하고 어려운 초년 팔자를 견디던 서정춘은 야간 중고등학교를 졸업한 1959년에 상경, 김승옥이 소개해준 출판사에 들어가 일을 하며 틈틈이 시를 쓴다. 스물일곱 살 때인 1968년에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잠자리 날다>가 당선하면서 시인 말석에 자리를 깔았지만 거의 모든 사람들은 등단하자마자 소멸하거나 은퇴해버린 숱한 시인, 작가 가운데 한 명이라고 여겼다. 그럴 수밖에. 세월이 흘러 1996년, 시인 면허증을 따고 28년이 흘렀으며 41년생 서정춘이 쉰다섯 살이 되어 정년퇴직을 하고나서야 첫번째 시집 《죽편》을 세상에 내놨으니. 20세기 말에 서정춘의 《죽편》을 읽은 평론가, 동료 시인, 작가, 독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신시新詩라도 되는 듯, 세기말에 축복을 받은 느낌이었다. 나도 그랬다.

  5년이 더 흐른 2001년에 《봄, 파르티잔》이 나와 다시한번 시 읽는 즐거움을 경험하고, 그만 게으른 내 귀에 서정춘의 시집이 나왔다는 풍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20년이 넘게 흐르는 동안. 나도 시인처럼 정년퇴직을 한 다음에야 다시 ‘서정춘’이라는 이름을 볼 수 있었고, 마음에 담았다. 그랬더니 결국 눈에 띄었다. 도서관 서가에 다른 시집과 확 구별이 될 정도로 얇은 시집, 《귀》. 판권지까지 45쪽에 불과한 시집에 무려 서른여섯 편의 시를 담았다. 서정춘은 3단의 시인. 키가 짧고, 가방끈이 짧고, 시가 짧아서 3단短.

  그를 독자에게 널리 알리게 된 가장 중요한 시 <죽편 1>도 그랬다.


  여기서부터, ――멀다

  칸칸마다 밤이 깊은

  푸른 기차를 타고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  <竹篇·1 ― 여행> 전문, ≪죽편≫ 22쪽


  《죽편》, 《봄, 파르티잔》에 이은 세번째 시집 《귀》. 여전히 초절정 3단 시인의 경지에 이르는데, 어째서 그럴까, 이젠 앞의 두 시집만큼의 효용이 덜하다. 시집의 제일 앞에 일행시이며 표제작인 <귀>를 배치했다.


  하늘은 가끔씩 신의 음성에겐 듯 하얗게 귀를 기울이는 낮달을 두시었다   (전문. P.9)


  낮에 나온 반달은 하늘의 귀라는 건데, 내가 아는 서정춘스럽지 않게 하늘의 귀는 “신의 음성에게” 향해 있다. 이이가 그동안 좀 아팠다더니, 그래서 말술을 마시다가 이젠 딱 한 잔의 탁주에서 한 모금도 더하지 않는다더니, 어느새 신에게 귀의했나보지? 하긴 아닐 수도 있다. “꽃 그려 새 울려놓고 / 지리산 골짜기로 떠났”던 ‘봄’이라는 파르티잔 적的 자연현상도 신일 수도 있을 테니까. 음. 이 시집이 나왔을 때 시인은 겨우 예순네 살밖에 안 되었는데.

  이 시집에서 가장 글자 수가 많은 작품은 <아름다운 독선(獨善)>이다. 시인들은 자주 시 자체가 시의 주제이다. 이 시도 그렇다. 서정춘에게 시를 쓴다는 건 사실 자신의 독선이라 말하는데, 또한 사실 시인의 독설이 아닌 시를 쓰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나? 이 시 작품은 시 자체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자기가 시를 쓰는 행위를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는 듯이 읽힌다.


  그러니까,

  나의 아름다운 봄밤은 저수지가 말한다

  좀생이 잔별들이 저수지로 내려와

  물 뜨는 소리에 귀를 적셔보는 일

  그 다음은, 별빛에 흘린 듯 흘린 듯

  물뱀 한 마리가 물금 치고 줄금 치고

  一行詩 한 줄처럼 나그네길 가는 것

  저것이, 몸이 구불구불 징한 것이 저렇게

  날금 같은 직선을 만든다는 생각

  그래서는 물금줄금 직선만 아직 내 것이라는 것

  오 내 새끼, 아름다운 직선은 독선의 뱀새끼라는 것   (전문. P.11)


  그래, 그러니까 서정춘의 시가 짧을 수밖에. 직선이라니까. 유크리드 공간에서 점과 점을 잇는 가장 가까운 선은 직선이다. 직선을 긋듯 시를 쓰면 나머지 우다다다 수다를 떨 필요가 없어지고, 은유와 직유는 소멸시켜야 하며, 눈물과 설사와 땀과 피조차 건조기 레벨을 극한까지 올려 바싹 말려야 한다. 서정춘은 이렇게 건조하고 직선적인 시를 써놓고 함빡 웃으며, 오 내 새끼, 내 뱀새끼, 하고 킬킬 웃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말술을 마셨겠지. 모자란 수분을 보충하느라고.

  그런데 이런 시는:



  낮달을 헹구다



  올라라

  홀어미

  설거지에

  씻긴

  달

  시렁 위에

  올라라

  白磁 접시의

  달

  홀어미의

  달

  올라라   (전문. P.18)


  서정춘의 생모는 시인이 첫돌을 지내고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떴다. 마부 일을 하며 혼자 아이를 키울 수 없어 계모를 들였다. 계모도 아이를 낳았으니, 남이 낳은 자식보다 내가 낳은 자식이 더 귀한 것은 당연한데, 이게 어려운 관계다. 나쁜 계모 소리를 듣지 않으려 많은 계모들이 오히려 자기 새끼들에게 더 (자기 생각으로)엄하게 한다고 하는데, 원래 아이는 그것 또한 오해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수 있는 관계. 어떻게 하든 힘든 사이이다. 서정춘도 이런 어려운 사이에서 피가 거꾸로 솟아 날선 호미를 계모에게 엣다 이거 맞고 죽어라, 힘껏 던진 적도 있다 하는데, 결국 해결은 세월이 해주는 법, 학교 졸업하고 집 떠나기 전에, 핏덩이 자기를 살린 사람이 생모가 아니라 계모였다는 걸 깨우치고 계모를 얼싸안고 한없이 울었단다. 이런 내력을 알면 장독대 위에 하얀 접시에 물 한 그릇 떠놓고 자식새끼 잘 되라 치성 올리는 홀어미가 시인의 계모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숨길 수 없다. 집, 고향, 대숲을 떠나기 전에 얼싸안고 한없이 울어 진짜배기 엄마, 아들 하기로 했던, 그러나 환갑이 넘어도 가슴패기 저 한구석이 조금은 서먹한 엄마와 아들.


  비백飛白. 오탁번의 시에서 처음 발견한 단어. 날릴 듯 흘린 글씨체. 시인이 섬진강 여울을 길목에서 비석 하나를 보았던 모양이다. 비석을 봤겠나, 비석에 새긴 글씨를 본 것이지. 그것을 서정춘은 아하, 이게 비백체飛白體렸다, 싶어 시를 썼다……, 이렇게 읽으면 오해. 섬진강 여울길을 가다 은빛으로 튀어오르는 연어 떼를 발견한 시인. 그는 은어의 휘날림을 보고, 누가 시인 아니라고 할까봐, 비백 글씨체를 연상한다.


흘림


  저것이냐 飛白 어느 흘림체 먹물에서 보았던 飛白 오늘 섬진강 여울에서 시린 니쏘리로 여러 번씩 보인다 飛白 돌자갈에 몸을 갈며 여울물 차오를 때 보이는 飛白 은장도 빛깔의 은어 떼가 보인다 飛白 저 역류(逆流)의 힘!  (전문 p.27)


  “니쏘리”가 뭐냐고? 치음齒音. ㅈ, ㅊ, ㅉ 으로 시작하는 소리로 들린다는 뜻이다. 훈민정음 언해에 나온다. ㅈ는 니쏘리니 즉卽자 처럼 펴아나난 소리가타니 갈바쓰면 짜慈자처럼 펴어나난 소리 가타니라. 요즘 고문 안 배우지? 그럼 그냥 넘어가자. 하여간 시인은 연어가 날리는 모습을 소리로 표현하자면 ㅈ, ㅊ, ㅉ 계열로 시작하는 음이어야 하고, 형태로 쓰자면 飛白이었다는 거다.


  이렇게 시 하나하나를 뜯어 읽으면 여전히 서정춘은 매력적이다. 나는 아쉽게도 앞선 시집 두 권을 몽땅 읽어서 이번에 읽은 《귀》는 조금 아쉬웠다. 독자는 원래 야박한 법이다. 앞선 시집보다 조금 낫거나 아니면 조금 다른 시들을 읽기 원했는데, 좋기는 하지만 서정춘을 읽을 때의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한 정도였다는 건 말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이제 여든세 살이 된 노 시인. 하여간 오래, 건강하게 사시라. 삶이 허락하면 그래도 시 몇 편은 더 만들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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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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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나 번스는 1962년생 범띠 여사님으로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가톨릭 지역인 아도인Ardoyne에서 출생했다. 작중 주인공 어밀리아 러빗의 집도 이 동네. 허버트 스트리트 어귀에 있고, 친구는 로버타, 퍼걸, 버나뎃, 빈센트, 마리오, 서베스천, 보시 등이 있는데 북아일랜드 독립투쟁이 발생하여 친 영국 진영과 친 아일랜드 진영 사이에 무력충돌이 발생해 많은 사상자를 낸 일종의 내전 상태인 ‘트러블’이 벨파스트 아도인에서 처음 일어난 1969년의 어느 목요일에 아이들은 겨우 일곱 살 왔다갔다 했다.

  1815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북부지역에 다마스크 직물공장을 이전 설립하면서 공장 직공들이 살기 위해 서른 채의 집이 들어서며 만들어진 아도인 지역에는 1850년 무렵 세 개의 작지 않은 제분소가 들어서며 더욱 큰 외형의 틀을 잡기 시작했다. 주로 잉글랜드에서 이주한 개신교도와 아일랜드 토박이 가톨릭교도들이 차근차근 상호투쟁과 집단폭력의 유구한 전통을 만들고 있었다. 최초의 유의미한 상호폭력은 ‘얼스터의 문제’ 라 불리기도 하는 1920년부터 22년까지 있었던 최초의 트러블이었다. 이때부터 종교를 기반으로 한 독립 내전에 벨파스트에서만 최소 5백명이 죽었고 5만 명이 협박을 받아 북부 아일랜드를 떠나야 했다.


  그러나 이 최초의 트러블은 오늘 이야기할 역사가 아니다. 번스가 직접 경험하고 기록한 것은 1969년에 새롭게 시작해 위키피디아 기록상 16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01년까지 계속한 트러블이었다.

  이 불길한 소식은 친구 보시가 듣고 왔다.

  “트러블이 있을 거야. 오늘 밤에 시작한대. 데리에서는 벌써 시작했고 엄청 위험해진대.”

  보시의 아빠는 폭동이 일어나 총격, 포격과 백병전까지 일어날 테니 치워 놓은 장비(총)을 꺼내야 하며 아니면 아도인을 뜨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고 전한다. 지금 아이들은 크럼린 로드, 천주교측 아이들이 사는 허버트 스트리트는 크럼린 로드 건너 개신교 지역인 샨킬의 아이들하고 매우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울려 같은 길거리에서 어울려 놀았는데 앞으로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아이들은 당연히 몰랐다.

  트러블이 시작한 목요일 저녁 6시에 어밀리아의 집에서는 그 나이에 또 임신한 엄마 머라이어와 돌러스 이모, 믹 오빠와 오빠 친구 쳇 맥데이드, 그리고 리지 언니가 있었다. 해외 상선을 타는 아빠 톰 러빗은 남아메리카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아버지의 취미가 전세계 모든 유명병원에 입원하는 거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여성들인 각 나라, 각 지역의 간호사와 아름다운 추억을 쌓는 것이지만.

  책을 읽기 전에 미리 알아두면 좋은 것이 있다. 벨파스트 지역 사람들은 일찌감치 트러블과 무지한 폭력을 마치 주님의 은총인 양 백 년이 넘게 호흡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성질 자체가 사납다. 그리고 종종 드럽고, 싸움에 임해서는 결코 양보가 없으며, 버릇없는 것들을 위한 훈육 목적의 사랑의 매는 권총으로 버릇없는 것의 양쪽 무릎을 쏴버려 평생 교훈을 잊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당연히 주로 피해를 입는 사람은 조금 우쭐하기 시작하는 사춘기 소년들이었다. 어밀리아의 친구 보시가 트러블을 예언하고 이후 일 주일 동안 도로 이쪽 아도인 쪽에서는 열세 채, 저쪽편 샨킬 쪽에서도 아홉 채에 누가 불을 싸질러 집이 홀라당 타버리고 말았다. 이 와중에 어밀리아는 우리집에 불이 나려면 앞으로 여섯 채가 더 탄 다음이어야 하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가 사나운 엄마한테 귀싸대기만 한 대 얻어 터졌다.

  여기까지가 스물세 개의 이야기 가운데 첫번째 것이다.


  두번째로 제임스 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는 제임스가 그래서 혹시 남자 주인공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어밀리아의 엄마 머라이어는 네 자매인데 이 중에 제일 큰언니가 아도인 구시가 반쪽자리 집에서 완두콩보다 작은 씨앗을 착상시킨 상태로 1953년에 남편과 함께 잉글랜드로 이사해버렸다. 잉글랜드에서도 세월은 흘렀고, 완두콩은 제임스라는 이름의 그리 건강하지는 않은 아들로 변신했으며, 자라는 내내 엄마와 함께 아버지가 취미삼아 자행하는 가정폭력에 대책 없이 당하고 있었다. 열두 살이 됐을 때는 아빠 새끼가 정신을 잃었는지 관자놀이부터 턱부근까지 심각한 상처를 입히고도 집중적인 구타를 자행해 9주 동안 집중치료실에 들어갔다 나온 바 있었는데, 이후 제임스는 주로 친구나 친지의 집에서 생활하다가 4년이 흘러 16세가 되자 잉글랜드 군에 입대했다. 그리하여 1969년 11월 제임스는 하필이면 벨파스트로 파견되어 폴스 로드 인근 순찰업무를 하고 있었다. 근데 팍 떠오르는 것이 있었으니, 벨파스트에 자기 친척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거. 그리하여 선물을 한 아름 챙겨 동료 군인 세 명 포함해 네 명이 외가 친척인 러빗 가족을 방문하기에 이르렀다. 집안에는 머라이어와 돌러스, 세이디 이모, 이모부 토미, 아홉살 정도의 사촌 리지, 이야기를 못들은 또다른 동생 어밀리아, 자기보다 세 살 정도 적어 보이는 믹, 믹의 친구인 잭 멕데이드, 테리, 리엄 등이 있었다. 서먹서먹하기도 하고 가끔 화기애애한 친척들을 만나고 돌아가는 길에 확실한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는 믹이 제임스를 불렀다.

  제임스의 아버지 브라이디 톤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귀물, 울프 톤의 회중시계를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울프 톤은 옛 시절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기수였다. 제임스는 다음에 잉글랜드에 갔다 올 때 가져다 주겠다고, 보상할 필요 없다고, 그냥 주겠다고 해서 믹이 벨파스트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친절로 감격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이날은 그걸로 끝이다.

  제임스의 아버지는 위에서 보신대로 골통 가운데 상 골통이라 제임스가 벨파스트에 있는 1971년에 잉글랜드에서 살해당했다. 장례식에 참석하고 다시 귀대할 때 울프 톤의 회중시계를 가져왔고, 이번엔 아도인의 버틀러 스트리트 인근을 스무 명이 한 조가 되어 순찰을 했으며, 임무 도중에 술 취한 작은 중늙은이를 검문하다가 가볍게 때리는 걸로 시작했는데, 당연히 제임스도 가담하지 않을 수 없어서 군화발로 엎어진 중늙은이를 뒤집어 보기도 하고 뭐 그러다가, 누군가가 칼로 찔렀는지 칼과 칼집을 닦는 동료가 눈에 들어왔다. 죽어 늘어진 중늙은이를 보니 팔뚝에 유니언잭, 신과 얼스터 문신을 한 걸로 보아, 이크, 개신교도가 틀림없다. 이제 폭력을 사용하는 데 당하는 인간이 누군지 그렇게 골똘하게 생각하지 않고 그냥 저질러보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당연히 피해자는 때려도 반격할 무기를 가지고 다니지 못하는 민간인인 경우가 더 많았고.

  비번날이 오자 제임스는 사복으로 갈아 입고, 그러나 짧은 머리와 몸에 밴 행동 때문에 군인이라는 걸 줄줄 흘리며 당시 지구에서 베트남, 칠레와 콜럼비아를 제외하고 가장 험악한 동네인 아도인 지역으로, 주머니에 아버지의 침대 아래에서 찾은 울프 톤의 회중시계를 넣은 채 이모네 집으로 가서, 호출 벨을 눌렀지만 기척이 없다. 그리하여 주먹으로 현관을 쾅쾅쾅 치기 시작했더니 문이 빠끔하게 열렸을 뿐 방범고리가 걸린 눈구멍 이상은 개방하지 않았다. 머라이어 이모가 말했다.

  “가라! 넌 잉글랜드 놈이잖아. 이제 오지 마!”

  제임스는 별 말없이 뒤로 돌았고, 이제 귀대하려고 터덜터덜 걷기 시작했는데 한 무리가 자기 뒤를 좇는 지는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다가 좁은 골목길도 아니고 그냥 도로에서 제임스에게 울프 톤의 회중시계를 부탁한 사촌동생의 가장 친한 친구 잭 맥데이드가 제임스를 향해 막 뛰어가더니 등뒤로 훌쩍 날아 땅바닥에 쓰러뜨린 다음 양다리를 벌려 제압하고는 품 안의 칼로 제임스를 푹 찔렀고, 그걸로 제임스는 짧은 인생을 끝냈다. 이건 당시 벨파스트 사방에서 벌어지는 동기없는 범죄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누구도 증언하지 않는 범죄. 하지만 벨파스트 시민 모두가 알고 있다. 믹도 안다. 한때 절친이었던 잭이 자기 사촌을 죽이고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전설 울프 톤의 시계를 차지했다는 것을. 언젠가 기회가 오면 자신 역시 잭의 사촌을 죽이게 될 것임을.


  이렇게 작품은 폭력에 관한 이야기다. 북아일랜드 안에서의 아일랜드인과 잉글랜드인. 가톨릭 교도와 신교도. IRA에 의한 민간인에 대한 폭력. 민간인이 민간인에게 가하는 폭력. 남자가 서슴지 않는 성폭력. 알코올과 약물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 거의 모든 폭력이 나열되어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폭력도 포함한다.

  그런데 문제는 책이 재미없다는 것. 구성도 그렇고, 간혹 재치가 반짝거리는 건 맞는데 문장 역시 특별하지 않다. 스토리는 서로 유기적으로 연합해 성공적으로 하나의 서사를 만들지 못한다. 어밀리아는 난데없이 알코올 중독으로 빠져들어가고, 아홉 살 먹은 어린 친척이 벌써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알코올에 손을 댄다는 것을 한탄하고, 우울증과 공황상태, 중증 신경쇠약으로 신경정신과 입원 등등. 그저 작가가 경험했거나 목격한 것을 스물세 가지의 이야기로 쓴 것일 뿐. 이야기에서는 뒷표지의 구병모 말대로 십자포화가 쏟아지고 충격과 비극의 여진을 수습할 틈조차 없을지언정, 하이고 아마추어 주제에 더 무슨 말을 하오리까마는, 잘 쓴 습작 수준으로 읽히는 걸 우짜냐 싶다. 이렇게 쓰고야 마는 나도 내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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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2-11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두콩보다 작은 씨앗…ㅋㅋ
내용 요약을 재미있게 쓰셔서, 책이 재미없다는 말씀이 안믿어질려고 해요.

(밀크맨의 작가이군요. 저 이 책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Falstaff 2024-12-11 16:45   좋아요 0 | URL
ㅎㅎ 댓글이 늦었습니다. 낮술 한 잔 하느라고 말입죠.
칭찬하시는 거 맞죠? ㅎㅎㅎ 기분 좋습니다. 으쓱으쓱!

stella.K 2024-12-11 11: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는 예쁘네요. 수채화 느낌이 나는 게. 평점이 대체로 높은데요? 영국 사람 글 쓰는 게 좀 그렇기도 하더라구요. 저도 지금 영국 사람이 쓴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좀 지루합니다. 번역은 좋은데ᆢㅋ

Falstaff 2024-12-11 16:49   좋아요 1 | URL
평점이야 뭐 ㅎㅎㅎ 전 영미 문학을 좋아하는 편인데요, 하긴 걔네들이 세상만방 안 돌아다닌 곳이 없기도 하지만 말입지요, ㅋㅋㅋ 에세이는 안 읽는답니다. ^^
 
평원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9
제럴드 머네인 지음, 박찬원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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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은행나무의 세계문학 에세 시리즈는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시작으로 여성 작가들의 작품만 열다섯 번 출간했다. 그리하여 나는 여성시대를 맞이하여 여성작가만을 위한 세계문학 시리즈가 등장한 것으로 알았다. 작가의 젠더 불균형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구성도 만족스러워 여성 작가만 천착하는 것에 불만이 없었다. 작품만 좋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에 은행나무는 에세 시리즈의 열여섯 번째 순서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름을 크게 내지 않은 제럴드 머네인의 작품 <평원>을 선택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에세 시리즈에서 처음 나온 남성 작가라서. 별 일이 다 있네.

  우리나라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오스트레일리아(이하 “호주”)에서는 사뮈엘 베케트의 뒤를 잇는 천재라고 이름이 높고, 호주 땅을 떠나본 적도, (하다못해 나도 타본 적 있는) 비행기를 탄 적도 없으면서 십 년이 넘게 꾸준하게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자의 명단에 자기 이름을 올리고 있단다. <평원>을 읽어본 내 소감을 노벨상과 관련시켜 말해보자면, 아뿔싸, 세월이 너무 지났다. 작품은 스웨덴 한림원 지하실에 사는 늙은 토끼들의 취향과 맞아 떨어질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나하고 생일이 같은 1939년생으로 올해 85세. 한림원 토끼들은 이제 더 이상 늙은이한테 상을 안 주기로 결심을 한 것 같다. 스웨덴까지는 자기 차를 운전해서 달려갈 수 있는 거리에 살던 밀란 쿤데라도 한림원 구경을 못하고 죽었고, 커다란 팬덤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 필립 로스도 스웨덴 행 티켓을 끊었다가 취소하고, 끊었다가 최소하고 또다시 끊었다가 취소하면서 죽었다. 그러니 제럴드 머네인도 애초에 기대하지 않는 편이 만수무강에 좋을 듯하다.

  제럴드 머네인은 1939년 초에 빅토리아주 멜버른 변두리에서 경마장 도박에 재산을 날린 철없는 아버지의 네 자매 가운데 한 명으로 태어났다. 숱하게 이사를 다니다가 작은 만灣bay에 살던 부유한 할아버지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아 어린 제리는 수영도 안 배우고, 물도 바다도 마땅하지 않아 훗날 평원을 향해 내륙쪽을 바라보게 되었다고 역자해설에 쓰여 있다. 역자 해설에 나온 인생기가 위키피디아보다 훨씬 흥미진진하다. 열일곱 살에 맬버른에있는 라살 대학(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인 1957년에 난데없이 가톨릭 사제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들어갔으나 몇 달만에 못살아, 못살아, 하며 뛰쳐나온 후 얼마나 질려버렸는지 아예 신앙조차 잃어버리고 만다. 이제는 스스로 벌어먹고 살아야 하니 이후 13년간 공무원, 초등학교 교사, 공공기관 에디터 등을 하다가 이름을 밝히지 않은 교사를 만나 결혼을 하고 직장을 때려 치운다. 그리고는 전업 주부(主婦 말고 主夫)를 선언, 세 아이의 양육과 가사에 힘을 쏟는다. 동시에 틈틈이 워드 프로세서나 PC가 아닌 구형 타자기에 종이를 끼워 양손 둘째 손가락으로만 자판을 두드려가며 시와 소설, 단편소설, 수필을 쓰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아내가 먼저 떠난 일흔 살의 제럴드 머네인은 외딴 시골 마을 고로크Goroke의 ‘자기 방’에 머물고 있다. 그야말로 자기만의 방과 연금을 받고 있으니 늙었다 해도 이제 작품을 쓸 최고의 환경을 마련한 셈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카프카를 인용하며 자신의 방을 떠나지 않고 머물면 세상이 스스로 그 방으로 찾아올 것이라 한 바 있다.” (p.148) 카프카뿐일까? 루이 페르디낭 쎌린느가 쓴 <밤 끝으로의 여행>에 나오는 한 소년은 낡은 사진을 보면서 자신이 그곳에 가본 적은 없지만 진정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진정한 여행’은 가서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자연을 상상하고 정의하고 구성하는 일일 수도 있다. 어차피 짧은 시간이 지나면 직접 눈으로 보고 기억한 것조차 왜곡될 것이니.

  <평원>은 이런 의미에서 머네인의 작은 방에 스스로 들어온 호주의 광활하고 황량한 내륙 지역이었을 터.


  17세기부터 시작한 유럽인에 의한 식민지 지배는 당연히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시절과 똑같이 해변지역부터 유럽 문명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주로 호주 남동부에 몰린 대도시, 멜버른이나 시드니 같은 도시, 즉 ‘외곽 호주’에 머물지 않고 내륙 깊숙한 곳에 들어가 물론 농업도 일부 했지만 주로 거대 목축장을 운영했다. 말이 거대 목축장이지 희박한 인구밀도를 지녔던 백호주의 시대에 목장이란 소 한 두 마리가 목장 한 구석에 숨어버리면 찾는 데만 몇 주일이 걸릴 수 있고, 그것도 산채로 발견한다는 보장이 없을 정도로 광대한 땅덩어리라는 의미다. 주로 대단히 건조하지만 한 번 비가 쏟아졌다 하면 여태 그냥 저지인 줄 알았던 건천이 도도한 강이 되어 흐르면서 이럴 줄 몰랐던 초기 개척자들을 8백 킬로미터 떨어진 바닷가까지 휩쓸어버리기도 했다. 그리하여 한 번 내륙, 평원으로 들어온 사람들은, 주로 목축 부르주아로 구성된 넓은 땅 소수민들의 커뮤니티이기는 하지만 외곽호주 사람과 문화에 스스로 차별을 지었다.

  토지와 가축을 토대로 한 부르주아들의 커뮤니티. 이들이 누리는 한정된 문화는 마치 수많은 식객을 거느린 맹상군 같은 고대 중국의 공자公子를 연상시킨다. 외곽 호주에서 자라고 공부하다 이제 평야의 것을 연구하거나, 예술로 표현하고 싶어하거나, 작중 주인공처럼 영화로 남기고 싶어하는 각종 학자, 예술가들은 어디인지 밝히지 않은 호주의 대평원 지대 부르주아들이 아지트 삼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위스키에 취해 있는 호텔로 모여 그들의 후원을 바라 열심히 자신과 자신의 작품 구성을 프리젠테이션 한다. 화자인 영화제작자는 이 가운데 한 부르주아의 마음에 들어 그의 저택 별관에 몇 년 동안 기거하며 영화를 찍고자 하지만 그러하지 못한다. 앞에서 페르디낭 쎌린느의 책에 등장하는 소년처럼 사진 한 장을 보면서 진정한 평야, 평야의 본질을 관객에게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작품은 결코 쉽지 않다. 내 경우를 말해보자.

  처음엔 한 영화제작자가 평원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좋고 아니어도 좋은데 한 편의 영화를 찍기 위하여 평원의 호텔에 들어온다. 이 호텔은 권태에 절고 전 부르주아들이 들러 위스키를 마시며 하루 종일 예술가, 작가들을 면담하면서 누구를 후원할까 선택하는 장소이다. 이들은 남는 것이 시간과 돈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 비록 해안지역의 호주인과는 관점이 다르나 나름대로 그들 고유의 방식으로 독특한 문화관과 예술관을 가지고 있다. 주로 평원에 대한 것이다. 오직 평원에 살았고, 그것도 아주 오래 살아서 평원이 내포하는 무수하고 뜻 깊은 침묵과 풍요, 때로는 헐벗음, 더위와 폭우 같은 자연현상, 외곽 호주인들은 알아채지 못할 핵심을 뜻한다.

  화자 역시 이들과의 면담을 기다리며 기다리는 동안 평야를 관찰하기도 하고, 별의 별 생각을 다 드러내는데, 나는 내가 뭐하러 평생 구경 한 번 하지 않을 것이 틀림없는 호주의 황량한 평원에 대한 글을 그것도 참 재미없게 쓴 것을 읽고 있는지 따분하기 짝이 없었다. 이 책을 통해 비록 2백쪽도 되지 않지만 나는 틀림없이 인내심 함양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얼른 얼른 후다닥 읽어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드디어 영화를 제작하는 화자가 부르주아 일곱 명과의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 장면을 시점으로 내가 읽는 속도는 매우 느려졌다. 이제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기 시작했던 거다.

  제럴드 머네인의 독특한 시각과 문장. 스토리는 차라리 없어도 좋다.


  “(화자 ‘나’는) 긴 대화를 통해서 이곳 사람은 일생을 일종의 또 다른 평원으로 이해한다는 확신을 얻는다. 이들은 오랜 세월에 걸친 여정이니 하는 진부한 표현은 좋아하지 않는다. (평원인 가운데 실제로 여행을 해본 사람이 극소수라는 것을 알고 거의 매일 놀라고 있다. (중략) 자신의 좁은 지역을 마치 그 새롭게 발견된 머나먼 땅 너머라도 되는 듯 정교하게 묘사하여 동등한 영광을 얻는 이들이 수십 배 더 많았다.) 그런데 그들은 이야기와 노래에서 ‘시간’을 말할 때면, 친숙하지만 두려운 평원처럼 그들에게 밀려오거나 물러난다고 표현한다.” (p.100)


  오랜 세월 평원에 거주하고, 평원의 독특한 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부르주아 목장주들은 자기 영지의 끝까지 말을 타고 가본 사람이 거의 없으면서 어디는 어떻고 등을 상세하게 말할 수 있다. 아마 내가 이 구절을 읽으면서 셀린느의 <밤끝으로의 여행>을 떠올렸는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이 작품은 애초에 기대했던 소설이 아니라 일종의 심리적 여행 또는 방황을 목적으로 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특정 목장주의 후원을 받아 그의 도서관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하면서부터 영화제작자는 평원의 형상을 필름에 담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갈수록 머네인의 문장은 독자를 확 잡아 끌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내가 (특정 부부의 아내) 그녀를 은밀히 지켜보는 동안 그녀는 자신의 현재 상황과 어떤 다른 여인이 차지하게 된 어떤 저택과 광대한 영지 사이의 간극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직은 들어가지 못한 드넓은 어느 평원을 사색하고 있는 것이다.” (p.110)


  이제 평원은 다양한 의미로 변화한다.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평원은 평원인 채로. 부르주아라고 해서이 광막한 평원 속에서 늘 행복한 건 아니다. 질식할 정도의 권태와 우울은 노동할 필요 없어 저절로 길고 길게 확장하기만 하는 시간을 보내야만 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제 화자, 영화제작자를 몇 년간 후원한 목장주도 이렇게 말한다.


  “날 보게. 내가 눈을 감고 있어. 곧 잠이 들 거야. 내가 의식이 없는 게 보이면 내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내 두개골을 깔끔하게 열어주게. 이렇게 술을 잔뜩 마셨으니 칼날 같은 건 느끼지 못할 거야. 맥이 뛰고 있을 그 창백한 뇌를 들여다보게. 칙칙한 색깔의 뇌엽들을 떼어내는 거야. 그리고 강력한 렌즈로 자세히 살펴봐. 그렇게 해도 평원을 알려줄 건 아무것도 보지 못할 거야. 평원은 오래전에 사라졌어, 내가 보고자 했던 그 땅은.” (p.133~134)


  제럴드 머네인이 하고 싶었던 말은 이거였는 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평원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머네인은 그것을 자기만의 방에 들어 앉아 오직 머리 속에서 이미 알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더 진중하게 읽을 것을. 경솔하게 달린 것을 후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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