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명학수 지음 / 창비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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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학수. 처음 들어보는 작가. 메이저 가운데 하나인 창비에서 첫 소설집을 냈으니 괜찮겠지, 단순하게 생각하면서 도서관 신간도서 코너에 올라와 있는 걸 골랐다. 근데 책 앞날개에 실린 사진을 보니, 어라, 벌써 시간의 손톱이 몇 번 할퀸 듯한 사진이 실려 있다. 작가 소개도 내가 읽어본 가운데 제일 짤막하다.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군. 조선일보 신춘문예 출신인데 창비에서 책을 내? 조금 더 뒤져보니까, 경기도 동두천 출신의 1966년생이란다. 그러면 50대에 등단을 했고, 책 저 뒤편에 있는 “작가의 말”로 추측해보면 이상李箱의 레몬을 찾아 헤맨, 즉 십 년가웃의 습작시절이 있었음 직하다. 어디까지나 추측임을 전제로 말하건대, 40대에 습작 시작, 만 쉰하나에 등단, 쉰일곱에 첫번째 단편집을 낸 거다. 흠. 밥벌이는 따로 있겠군 그래. 아니면 고마우신 마나님이 벌어 먹여주어, 명선생은 1년에 5백 파운드의 가욋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었겠고.

  여기까지는 그냥 농담이다. 이제 나올 진심은, 첫번째 단편집이라 하더라도 작품 속엔 오랜 공력이 담겨있다는 거. 구태여 문장을 섬세하거나, 감각적이거나, 중의적이거나, 비유의 혼돈 속에 머물게 하지 않는다. 단편답게 이야기가 곁가지로 흐르지 않으면서 제대로 스토리 라인을 따라 걷는다.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요즘 우리나라 작가들의 화법과 차이가 나서,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고만고만하지 않아 더 눈에 확 띄었는지도. 나는 즙 짜는 것, 즉 감정의 과잉을 좋아하지 않는다. 우울의 골짜기는 혐오한다. 피 토하면 불쾌하고. 하필이면 내가 근래에 읽은 작품들만 그랬겠지. 시, 소설이 대개 그랬다. 희곡은? 너무 많이 벗기고, 죽여서 끔찍했다. 인생 두 번째 책 읽기에 접어든 내가 주로 다른 나라 작품에 몰두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런데 명학수는 다르네. 좀 일찍 습작을 시작하고, 15년만 더 빨리 등단을 해서 계속 작품을 써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물론 단편집 달랑 한 권 읽고 한 방에 이리 상찬을 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지만, 여덟 편이 담긴 책 안에서 <호수>,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은하>, 이렇게 네 편이 마음에 들었다면 꽤 쏠쏠한 수확이다.

  <호수>. 그렇고 그런 세미나에 초청을 받아 콘도형 리조트에 간 작가, 화자 ‘나’. 비는 오고, 세미나에 참석하기 싫고, 밖에 나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있는데, 옆에 있던 여자가 우산을 쓰고 가더니 잠깐 서서 ‘나’에게 말한다. “같이 쓰실래요?” 그렇게 했다. ‘나’는 이 동네에 있다고 들은 호수가에 가 매운탕에 소주 한 병 하려 했다니까, 여자는 시내에 닭백숙 잘 한다는 곳이 있어 거기 가는 길이라고 같이 가겠느냐고 한다. 그렇게 했다. 호수가 정말 이 근동에 있기나 하나? 있었단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수진은 고등학교 문예부 동창들과 십년 만에 만났다. 수진, 세영, 종수, 영민, 지연 등등과 함께 1차 하고, 2차 하고, 3차로 등단한지 3년이 된 잘 나가는 작가 기훈의 오피스텔로 갔다. 석촌호수의 오피스텔에 고등학교 졸업하고 십년 밖에 안 되는 청년이 혼자 살면, 부모를 잘 만났거나, 20대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행운아다. 문제는 다들 술을 많이 마셨고, 수진이 두통이 생겨 기훈이 준 진통제를 먹었는데 오히려 더 심해져 구토도 하고 정신을 잃어 침실에 들어가 기훈의 침대 위에서 잤다는 거다. 새벽에 일어나 도망치듯 가면서 보니, 기훈은 거실 소파에서 자고 있고, 나머지 친구들은 한 명도 없다. 기훈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몰카를 찍었다는 소문이 돌던 모범생이었다. 수진은 혼돈에 빠진다. 나한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대학 4학년생 커플. 5월에 지하철을 타고 서울랜드로 데이트를 가려다가 하도 가족단위 승객들이 많아 엉겁결에 과천 경마장, 요즘 말로 경마공원에서 내린다. 그냥 재미로 복승식 마권을 사서 돈을 건다. 근데 신기하지, 영주가 배팅한 말 두 마리가 1등, 2등으로 들어와 32.5배의 배당을 받는다. 물론 약간의 세금은 제하고. 말에 관한 아무런 정보와 지식 없이 아홉 마리 가운데 두 마리를 맞힐 확률은 9C2, 9!/(2!*7!), 즉 36분의 1이다. 두 번 연속 맞힐 확률은 (1/36)^2=1/1296. 세 번 연속 맞힐 확률은 (1/36)^3=1/46656. 쉽게 말해서 영주는 계속 맞힌다. 뭐가 씌운 게 확실하다.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계속, 계속. 그러다가 ‘나’의 형이 결혼을 하는 바람에 한 주를 쉬는데, 어떻게 되게? 읽어 보셔야지.

  <은하>. 합평 수업이라고 있다면서? “라떼”는 그런 거 없어서 어떻게 하는 건지도 모른다. 하여간 합평을 했다니 문과거나 문창과 재학중일 커플이 주인공들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서 열일곱 살 커플의 임신, 출산, 육아기가 있었다. 어느 소설가가 그걸 소설로 써서 제목을 <은하>라고 했다. 커플은 다퉜다. ‘나’는 미니홈피 내용도, 그 소설에도 관심이 없었는데 미영은 허구가 아니라 더 흥미를 느꼈다. 시간이 지나 ‘나’는 군대에 갔고, 미영은 강릉으로 떠나 그걸로 이별이었다. 몸이 멀어지면 사랑도 멀어지는 게 진리니까. 그러나 몇 년 후, 미영은 소설집 《은하》를 출간해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다. 찌질한 ‘나’는 미영의 팬미팅에 졸졸 따라가서 뭔가를 물어보려 한다.

  재미있게 읽은 순서다. 당연히 읽는 사람마다 재미있는 작품이 다를 수 있고, 순서도 다를 수 있다. 그게 정상이다. 그러니 내가 꼽은 작품과 순서가 당신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양해하시고 그냥 넘어가기 바란다.

  명학수. 얼른 장편도 하나 쓰기 바란다. 너무 늦게 시작했다. 이제 쓸 수 있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바란다. 고목나무에 꽃이 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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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7-16 1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니 쉰줄이면 백세시대에 아직 반백년 남았구만요 왜 벌써 남의 셔터 내리는 소리하세요 ㅋㅋㅋ팔백작님은 (술 줄이면 줄였으먼) 120세 까지 살 거니까 쓸 날이 쓴 날 보다 많이 남았을지도 몰라요 ㅋㅋㅋㅋ (강제로 독후감 공장 가동 연장+설비 증설로 픽션 사업까지 문어발 경영 요구)

반유행열반인 2024-07-16 10:06   좋아요 1 | URL
아 저도 이 작가 등단 소설 폴이라 불리는 명준 제목만 읽고 궁금한데 안 봄 ㅋㅋㅋ했던 게 벌서 여러해 전인데 이력 찾아보니 독특하긴 하네요 ㅋㅋㅋ 수학선생 출신이라니 팔백작님도 수학과잖아 ㅋㅋ역시 글쓰기도 이과가 문과 이긴다...쳇
1966년 경기도 동두천 출생
―성균관대 회계학과 3년 수료
―극단 ‘허리‘에서 2년간 배우 및 스태프로 활동
―학원 수학 강사로 재직

Falstaff 2024-07-16 16:52   좋아요 0 | URL
음하하하.... 읽어보니까 명 선생은 무지 젊게 살았더만요. 특히 예능은 파도타기 아녀요? 쉰 넘어 글 내놓기 시작한 사람 가운데 제대로 파도타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아휴, 이런 양반 응원 안 하면 누굴 응원하겠습니까. ㅎㅎㅎㅎ

2024-07-16 1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07-16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지음, 윤진 옮김 / 엘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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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에 세네갈 다카르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는 생루아의 군사기숙학교를 졸업하고 바칼로레아를 통과, 프랑스로 날아가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공부하며 세네갈의 초대 대통령이자 시인인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에 집중한다. 그러다 학위논문을 때려치우고 소설을 쓰기 시작하는데, 이는 작품 속 화자 디에간 라티르 파이와 매우 비슷하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역대 공쿠르상 수상 작품을 검색하다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최초로 사하라 이남 지역 작가가 받은 공쿠르상이란 타이틀도 얻었는 바, 이 “최초의 사하라 이남” 이란 타이틀이 작품의 실질적 주인공인 T.C. 엘리만의 장면과 겹쳐 보이기도 해서 더 재미있었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세네갈 출신의 천재적 작가로 한 시절 파리의 소설판을 뒤흔든 T.C 앨리만의 행적을 추적해가는 과정이다. 적지 않은 독자, 저널리스트, 작가가 이 작품을 문학이 사람의 삶에 어떻게 연관을 맺는가, 하는 측면에서 감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내가 읽어보고 책을 굳이 규정한다면 문학보다는 정치적인 작품에 가깝지 않을까 싶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문화권과 식민지였던 지역에서 프랑스어로 교육받고, 프랑스어로 문학 작품을 쓰는 인텔리겐치아들의 딜레마에 관한 것이라고 읽었는데, 오독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렇겠지.


  가상의 인물 T.C. 엘리만. 1915년생. 아버지는 프랑스의 세네갈병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하고, 쌍둥이 삼촌과, 형사취수 관습에 의하여 삼촌과 혼인한 어머니와 지내다가, 어머니의 의지에 따라 세네갈 내 프랑스학교를 다녔고, 워낙 출중한 실력으로 학교 신부가 강력하게 권하여 프랑스 파리로 유학해 공부하던 중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출간한다. 20대 초반의 세네갈 출신 흑인 작가 엘리만이 쓴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는,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에 파리로 유학 온 세네갈의 후배 작가(지망생)이며 화자인 디에간 라티르 파이가 보기에 “대성당이자 투기장”이었다. T.C. 엘리만이야말로 진정한 작가이며 일찍이 사용된 적 없는 희귀한 단어를 사용해, 문학의 하늘에 단 한 번 떠오른 별이었다. 진정한 작가는 진정한 독자들 사이에서 목숨 건 논쟁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어서, 진정한 독자는 항상 전쟁중이라고 주장한다. T.C. 엘리만은 고전이 아니라 세 가지 으뜸패를 가진 컬트로 존재하는데, 첫째가 알 수 없는 이니셜로 된 이름이고, 둘째가 단 한 권의 책만 남겼으며, 셋째로는 흔적 없이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의 존재가 사라져버렸다는 거였다.

  1938년에 출간한 이 책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는 어떤 평판을 받았을까? 먼저 세네갈의 교과서에 나온 것을 보자. 이 책은 “아프리카 흑인의 걸작으로 프랑스에서 본 적 없는 책이었다. 그러나 날개를 꺾어버린 암흑 같은 문학적 사건이 터졌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에서도 어김없이 “아프리카 흑인”이 쓴 걸작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이 말 속에는 “흑인 주제에”, “야만적인 식민지 출신의 야만적인 흑인” 주제에 곧잘 쓴 작품이란 의미도 숨어 있었을 지 모른다. 실제로 이 책 한 권을 내고 일체의 모습을 감춘 엘리만에게 평론가들은 “검은 랭보”라는 계관을 씌워 주기도 한다. 그러다 평론가들은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을 뜯어보고, 이 작품이 저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 르네상스, 바로크, 낭만을 거쳐 현대문학까지 거의 전 세대에 걸친 걸작에서 결정적인 문장과 스토리와 플롯을 그대로 따온 완벽한 표절작품인 것을 밝혀낸다. 이 소식을 들은 해당 걸작을 생산한 문인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후손들, 작가를 찾을 수 없으니 책을 낸 출판사를 고소해 거액의 보상금과 범칙금을 물려, 출판사는 도산하고, 책 전량을 회수했으며, 모든 재고 역시 폐기해버렸다. 이렇게 1938년 말 이후부터 아무도 T.C. 엘리만의 소식을 듣지 못하게 된다. 이 사건은 이제 흑인 천재가 아니라, 폭력적이고 미개한 암흑의 아프리카라는 식민주의적 관점을 더욱 강화할 정도로 지나치게 비관적인 작품의 대표로 꼽히면서 독자와 비평가와 저널리스트와 작가들로부터 잊혀진다.

  그러나 거의 무한대의 독서를 한 엘리만은 의도적으로 서구 문명사회가 만들어낸 무수한 걸작들을 콜라쥬 또는 짜깁기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 다른 의미에서 문화통합적 작업을 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자신이 프랑스 국적의 “백인”이었다면 평론가, 독자들이 자신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차려 그에 걸맞은 평가를 했을 것이라고. 그리하여 엘리만은 어떤 변명이나 반박도 없이 그저 무대에서 사라져버렸을 뿐이다. 유럽의 어느 작가와 비교해도 그들의 문화, 문학, 문명에 대한 이해와 습득이 뒤쳐지지 않았던 젊은 흑인을, 짧은 시간 동안 진정한 아프리카산 천재로 떠받들다가 단숨에 “표절”이라는 최악의 구렁으로 던져버린 사람들.

  그래도 프랑스 사람들, 재미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쓴 책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에 프랑스 최고의 문학상이라는 공쿠르상과 상금 10유로, 14,800원을 주었으니. “최초의 사하라 이남 작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나는 한 명이 더 떠올랐다. 알제리 출신으로 프랑스어로 작품을 쓴 아시아 제바르. 제바르는 심지어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일컫는) 마그레브 최초로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생을 마치면서 결국 자신이 작품을 쓰게 해준 프랑스어에 경의를 표했다. 시대가 변해 어떻게 바뀌었을 지 모르지만 제바르를 아카데미 회원으로 올리면서 북아프리카 흑인에게 자리를 줬으니 좀 덜 까불라고 눈짓을 하지는 않았을까? 아니겠지, 설마.

  프랑스인들은 애초부터 엘리만을 작가로 보지 않고 미디어를 장식할 현상으로 보았던 거였다. 예외적인 흑인으로, 이념에 대한 전장battlefield으로. 프랑스 평론가, 저널리스트, 작가, 독자들은 아프리카 작가의 글에 대해서, 그들의 글쓰기나 창작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는데, 이 점은 T.C. 엘리만이나,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나, 아시아 제바르나 마찬가지일 지도 모른다. 여전히.


  위에서 1938년 말 이후에 엘리만의 소식을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아니다. 독일군이 점령한 파리에 엘리만이 나타나 종종 들르던 카페에서 술 한 잔을 하고는 했다. 이때 파리에 주둔한 독일군 근위대 대위가 프랑스 문학, 시와 소설을 매우 좋아하고, 많이 알기도 했는데,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을 출판하고 쫄딱 망한 출판사 제미니에서 근무하다가 호텔 접수원으로 옮긴 직원이 대위에게 엘리만의 책을 소개한 적이 있고, 대위가 우연히 엘리만을 만나 서로 안면을 텄다.

  이 내용은 작품 가운데 모두 네 번 나오는 “전기적 요소”라는 제목의 챕터로, T.C 엘리만의 사촌 여동생 ‘시가 D.’가 파리, 암스테르담에서 화자 디에간에게 해준 말과 자료 속,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정보 등을 근거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화자가 아닌) 작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작품 사이 사이에 첨가한 윤활유로 기능한다. 그 결과, 필요한 것보다 조금 과하게 길게 묘사한 느낌이 드는 시가 D.의 은인이자 동성의 연인인 아이티 시인을 통해 엘리만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머물며 시간이 날 때마다 라틴아메리카 각지를 여행하는 장면에서 독자는 엘리만이 어떤 이유 때문에 라틴아메리카에 왔고, 몇 달, 몇 주씩 각지를 돌아다니는지 금방 눈치채게 만든다.

  화자는 마지막으로 엘리만을 정리하기 위해 결국 엘리만과 자신의 조국인 세네갈로 돌아온다. 이때 세네갈에서는 시민단체 BMS(“끝까지”라는 뜻의 결사)의 단원이었던 파티마 디오프의 분신자살이 있었고, 이를 계기로 큰 규모의 대정부 시위를 계획하고 있었다. 파리에서 화자 디에간과 함께 문학 동아리를 형성했던 콩고민주공화국인 무심브와도 콩고로 귀국해 모국 안에서 문학을 도모하기로 하는 등 여러 정치상황이 벌어지지만, 그것 참, 디에간(의 문학적 미래 또는 설계)와 세네갈의 정치현황과, 친구 무심브와의 결단 사이가 좀 서걱거린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서른 살의 작가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문장에 멋을 좀 많이 부린 것 같다. 작품 속에서 독자의 태도 같은 것을 몇 번 이야기하는 바람에 이렇게 말했다가 아무래도 코피 터지지 싶기도 하다. 작가는 시가 D.의 입을 통해 작품을 “잘못 읽는 것은 죄”라고 하니까. 젊어서 그런지 작가가 좀 살벌하지? 어떻게 오독이 죄니? 독자가 오독하게 만든 작가 잘못 아냐? 뭐 “독자 만세”를 주장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쉽고 편하게 이야기하면 될 것 같은 걸, 굳이 어렵고 화려하게 쓰다보니 독자로 하여금 피곤하게 만든다. 그런 문장이 가끔 나온다면 아이 깜짝이야, 놀래 줄 마음이 있지만 조금 심했다. 베드 씬도 꼭 필요하지 않은 장면에, 필요한 것보다 찐하게 등장하지 않나 싶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바람직하다, 라고 할 수도 있어서 그냥 귓속말로 하고 싶기는 하지만.

  작가는 “뒤에 무엇이 남을까? 문학이다. 문학이 남았고, 영원히 문학만이 남을 것이다. 문학이 답이고 문제이고 신앙이고 치욕이고 자부심이고 삶이다.”라고 결론 내리고 싶어 하건만 불과 몇 페이지 뒤에는 또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녀도 결코 백인이 될 수 없”으며 엘리만 역시 “식민지화는 피식민자들에게 황폐와 죽음과 혼돈을 심”고 “그보다 더 심한 건, 식민지화가 이루는 가장 악마적인 성공은, 바로 자신들을 파괴하는, 바로 그것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심는” 것이라고 두번째 결론을 내리고 싶어한다.

  독후감의 앞쪽에서 내가 이 책을 정치적 작품으로 규정하고 싶어한 것은 이 두 가지 결론 가운데 피식민지 경험이 있고 지금도 사실 반식민 상태에 있는 지역의 인텔리겐치아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정치적 딜레마가, 문학이라는 다소 형이상학적 논제보다 우선하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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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메니코 스타르노네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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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에서 가장 저명한 문학상을 꼽으라면, 이탈리아어로 쓴 전세계의 모든 작품을 대상으로 하는 스트레가상 Premio Strega를 든다고 한다. 책 소개글을 보면, 이 작품 <끈>이 아니라, 작가 도메니코 스타르노네가 스트레가 상을 받은 작가라고 쓰여 있다. 저명한 상을 받은 작가가 쓴 작품이니까 믿고 읽으라는 의미겠지. 작가 소개 가운데 나도 재미있게 읽은 건, 이이가 나폴리의 얼굴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 엘레나 페란테일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다는 거였다. 나는 물론 우리말 번역으로 읽어서 뭐라 주장할 게 없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이 읽는 페란테와 스타르노네의 문장이 상당히 유사한 모양이지? 하여간 스타르노네는 이 의심을 단호하게 부정했다고 한다. 혹시 알아? 숨 넘어가기 바로 전에 사실 페란테가 나야, 하고 숟가락 놓을지?

  <끈>은 스타르노네가 스트레가 상을 받은 2001년에 퓰리처 상을 받은 런던 출생 뱅골 이민자의 딸인 줌파 라히리가 번역해 미국 시장에 출간한 것이 화제가 되었던 모양이다. 앗, 그러고보니 내가 아직 라히리 작품을 한 권도 안 읽어봤네. 서둘러 읽어봐야겠다. 이젠 나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하여간 여기까지가 내가 <끈>을 읽기 전에 작가와 작품에 대해 알아본 모든 내용이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 작가가 스트레가 상을 받은 작품,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되지 않았고, 미국에서도 영어번역본을 2023년에야 팔기 시작한, <비아 제미토의 집>도 한 가정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위키피디아를 봐도 이이가 가정 이야기 스페셜리스트, 라는 건 아니고, 그런 것처럼 보인다. <끈>은 크게 3부로 되어 있다. 반다와 알도 부부와 1965년생 아들 산드로, 69년생 딸 안나로 이루어진 가정.


  1부에서는 30대 부부의 갈등이 주제다. 때는 1974년. 나폴리에서 타의 모범이 되는 인텔리 가정을 만들어가던 반다와 알도. 알도는 나폴리 대학에서 교수로 있다가, 60년대 후반부터 몰아치기 시작한 인간해방과 자유주의의 급류에 휩쓸려, 자신의 행복이 가정을 위한 의무를 선행한다는 신조가 생기기 시작했고, 때마침 로마의 대학에 교수자리가 생기자 얼른 제의를 승낙해 주말부부를 하기 시작했다. 근데 재직하고 있던 로마 대학에서 제자 가운데 당연히 젊고 예쁘고 예의 바른 리디아라는 이름의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알도 선생은 자신의 행복과 기쁨을 위하여 가족이란 굴레를 벗어 버리고 리디아 곁으로 훨훨 날아가는 데 성공하지만, 집안에서, 그것도 나폴리 문화에 푹 젖어 있는 가정 주부 입장에서 아내 반다는 꼭지가 돌아버린다. 그리하여 1부는 반다가 집을 나간 남편 알도에게 독설 가득 담아 쓴 편지로 되어 있다.

  “친애하는 신사 양반, 제가 누군지 잊어버리신 거라면 기억을 되살려드리지요. 저는 당신의 아내랍니다.”

  아직도 그의 아내다. 그렇다. 반다는 끝까지 이혼에 동의하지 않았다…… 라기 보다, 알도 입장에서도 굳이 골치 아프게 이혼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이유가 없었다. 그냥 행복하기만 하면 되니까. 리디아도 애초에 알도의 아이를 생산하고 싶은 마음이 없던 터라 뭐 그냥 그렇게, 주말에 한 번씩 나폴리로 내려가 아이들하고 겁나 서먹서먹한 시간을 보내고, 처음 마음먹기로 하루 종일 식당 가서 밥 먹고, 소풍 가고, 롯데월드 놀이동산에도 가려 했지만 결국 그저 서너 시간 겨우 시간 때우다가 허겁지겁 로마행 기차를 타던지, 얼른 피아트 132에 올라 고속도로를 타던지 했던 거였다.

  상상이 가시지? 반다한테 한 주먹 하는 오빠가 없던 것이 알도에게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는 그는 죽을 때까지 모른다. 앞에서 나온 페란테의 나폴리 4부작 읽어보신 분은 뭔 얘긴지 아실 것.


  2부는 이로부터 한 40년 지나 로마의 이들 부부 집이다. 70대 부부는 여름 휴가를 바닷가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에구머니, 집 안이 난장판이다. 심지어 애지중지 기르던 고양이 라베스도 사라졌다. 아래층 사는 90대 전직 판사에게 물어보니, 며칠 전에 남녀 두 사람이 반다-알도 부부의 집 전용 현관에서 얼쩡거리는 것을 보았단다.

  집이 어떤 상태로 난장판이었느냐 하면, 온갖 가구의 서랍 속에 들었던 물건들이 다 내장에서 탈출해 거실 카펫이나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책장 꼭대기에 은근히 숨겨져 있던 큐브까지 누가 손을 댔으며, 결혼 첫해인 1962년부터 꼬박꼬박 쓴 가계부 철과 온갖 청구서, 영수증 철이 한 자리에 거꾸로 순서대로 뒤집혀 있는 것도 모자라, 혹시 반다가 보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결코 질리지 않는 주제인 40년 전 바람 피우던 시절의 편지까지 휘리릭 펼쳐져 있었으니, 알도가 속으로 얼마나 깜짝 놀랐겠느냐는 말이지. 그러니 결혼한 젊은 남자들아, 아내 가슴에 못 박지 말아라. 수십년이 흘러도 여전히 당신을 겨냥한 총알이 되어 있을 터이고, 그게 발사될 때마다 당신은 끔찍한 지옥 구경을 할 것이다. 그래서 세월이 가면 갈수록 아내 앞에서 벌벌 기는 거지. <끈>에서 알도 역시 딱 그렇다.

  근데 신기한 것이, 남의 집에 몰래 숨어 들어온 두 명의 도둑들이, 뭐 별 건 없었지만, 반다의 자연산 진주 목걸이와 서랍 안쪽에 꼬불쳐 둔 현금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는 거다. 더 기겁할 것은, 오랜 세월, 진짜 오랜 세월 저 장식장 꼭대기에 약간만 눈에 띄는 큐브의 비밀 서랍 속에 숨겨두고 알도가 옛 추억에 휩싸이거나, 반다한테 심하게 쿠사리를 먹었거나, 튼튼한 손바닥으로 귀싸대기를 두어 대 맞았을 때마다 아내 몰래 훔쳐보고 위안을 삼던, 꿈에도 못 잊는 리디아의 사진, 그것도 그냥 사진도 아니고 홀딱 벗은 나체 사진이 사라졌다는 거였다. 아 참, 이거 환장하네. 그잖여? 나도 이해는 하겠다. 하지만 아무리 꼼꼼하게 숨겨봐라, 그게 안 걸리나. 죽을 때까지 들키지 않고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면 그건 인생도 아닐 걸?

  여기에 하나 더. 키우던 늙은 수코양이 이름이 “라베스”였다. 알도는 그게 라틴어로 “우리집 짐승”이란 뜻이라고 줄창 주장해오고 있었다. 이 와중에 집을 턴 도둑이 서재의 라틴어 사전 “L” 권을 꺼내 쫙 펼쳐 놓았고, 펼쳐진 페이지에 하필이면 “라베스”에 밑줄이 그어져 있는 걸 반다가 봤다. 그랬더니 “라베스”가 무슨 뜻이냐 하면, 몰락, 함몰, 붕괴, 파괴. 고양이는 알도가 아니라 반다가 늘 곁에 끼고 살던 짐승이다. 그러니 반다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라베스야, 라베스야!” 다정하게 부르면서 그녀로 하여금 재앙, 불행, 추잡함, 파렴치함, 수치심이라는 말을 입에 담게 했다는 거다. 이것도 들켜버렸다. 알도, 참, 고고 마운틴, 갈수록 태산이지?


  3부는 부부가 휴가를 떠난 사이, 그러니까 도둑들에게 집을 털리던 날의 아들과 딸, 산드로와 안나.

  산드로는 세 명의 여자에게 네 명의 아이를 낳아 유럽 각지와 아메리카에서 키우고 있고, 안나는 비혼을 주장하며 쉼없이 짧은 연애를 하고 있는 중이다. 1974년에 아빠가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고, 75년부터 양육비를 보내기 시작했지만 자존심과 살림살이는 끝장을 보던 엄마는 아이들 양육비에 손 대지 않고 오직 아이들이 컸을 때 대학 학비로 쓰겠다고 이 악물고 다짐해, 나폴리의 집을 팔고 잔나 이모네 집으로 들어간다. 나폴리다, 나폴리. 이 정도는 언제나 가능한 동네. 몇 년 후 다시 가정이 합쳤지만 이때 조카에게 정을 듬뿍 주었던 이모는, 세월이 가서 자손 없이 숨을 거둘 때 자기 전 재산을 거의 몽땅 남자 조카 산드로에게 유증했고, 안나한테는 냄새나는 리라 몇 푼만 남겼을 뿐이다. 성차별은 아니고 작품을 보면 산드로가 워낙 사람들하고 친화적인 반면 안나는 성격이 야멸차다. 안나는 오빠한테 이모의 유언을 무시하고 그냥 딱 반반씩 나누자고 제의했지만 이미 아이를 넷 키우는 오빠가 그걸 허락하겠어? 오히려 말다툼이 생겨 혹시 주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더라도 깨끗하게 입 닦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이 사건 이후 남매는 서로 얼굴도 마주치지 않기 위하여 모든 노력과 정성을 들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갑자기, 난데없이 안나가 오빠한테 전화를 해서 다정한 목소리로 한 번 만나자는 거다. 바짝 긴장한 산드로. 하여간 누이가 만나자니, 그것도 오랜만에 만나자고 하니 거절하기도 쉽지 않은 법. 이들은 억지로 친절을 가장한 채 부모의 집에서 만나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는데, 안나가 말씀 하시기를, 부모란 (자기 부모가 그랬듯이) 어차피 자식들에게 상처를 줄 수밖에 없어서, 때가 되면 자식들에게 더 큰 상처를 받을 각오를 하고 살아야 하는 법이니, 부모가 더 늙어 정신 없어지기 전에 이 집을 미리 팔아 절반씩 뚝 떼서, 미리 상속을 해달라고 하자는 거다. 그런 후에 남매가 돈을 갹출해 좀 작은 집을 세 내 살게 하면 서로 좋지 않겠는가, 하는 것.


  그래, 어차피 가족은 서로가 서로한테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팔자다. 이 절묘한 역학의 다차원 방정식을 도메니코 스타르노네는 참 맛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처음에 남자가 바람피고, 여자가 악을 쓰는 장면에서는 참 징글징글하더니, 읽으면 읽을수록, 진도가 나갈수록 슬며시 빠져들게 되는 매력. 거참, 스타르노네, 색다를 맛이 있는 작가다. 하여튼 이탈리아 소설이 블루오션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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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7-12 05: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화요일, 명학수, 《말의 속도가 우리의 연애에 미친 영향》
목요일, 츠쯔젠, <어얼구나 강의 오른쪽>
금요일, 빅또르 뻴레빈, <오몬 라>

moonnight 2024-07-12 0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_@ 다음주 예고까지 @_@;;; 뱅글뱅글@_@;;; 어쩜 이렇게 (첨 들어보는-_-;) 책들을 빠르고 깊게 읽어내시는지 늘 감탄하고 존경합니다. 계속 뱅글뱅글@_@;;;;;;;

Falstaff 2024-07-12 20:35   좋아요 1 | URL
에고.... 전 백수랍니다. 하루 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책 읽고, 술 마시고, 운동(속보, 저속 달리기)하고, 잠자고, 뭐 그런 것들이랍니다. ㅎㅎㅎ

stella.K 2024-07-12 0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재밌을 것 같습니다. 표지 그림도 독특하고. 특히 페란테와 같은 사람일지도 모르고 유수한 문학상도 받고. 정말 능력자네요. 가족 신파는 아닌 거 같네요. 함 읽어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4-07-12 20:36   좋아요 1 | URL
재밌습니다. 한 달 후에 이 양반이 쓴 다른 작품 <트릭>을 올릴 건데요, 그거 보다 <끈>이 좀 더 괜찮습니다. 저절로 주목하게 되는 작가더군요.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이문구 지음 / 아로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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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구, 이 책 못 읽겠다. 시방 도서관 열람실. 읽다가 웃음이 터지는데 이걸 뭐라 혀? 폭소? 홍소? 세상에 웃음 참기가 이렇게 힘든겨? 충청도 사람 책 읽다가 내 얼굴 그만 갱상도 하회탈 되네. 눈물까지 한 방울 맺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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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07-11 23: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문구는 백날천날 관촌수필만 알다 이거 읽으니, 이게 찐이더라구요 ㅋㅋㅋ아예 시골을 아저씨떼째 통째로 들고 내 앞에 철푸덕 던져줌 ㅋㅋㅋㅋ우리동네 읽고 또 순위 갱신되나 함 볼라고요 ㅋㅋㅋㅋ

Falstaff 2024-07-12 05:39   좋아요 1 | URL
우리동네, 재미나지요. ㅎㅎㅎ 은근히 남녀상열지사도 좀 섞여 있고 뭐 그런데 하도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사실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ㅎㅎㅎㅎ
개 잡아먹은 데 가서 곡하고 재배할 늠. ㅋㅋㅋㅋㅋ
 
네이키드 런치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31
윌리엄 S. 버로스 지음, 전세재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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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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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펭귄 클래식 세계문학 시리즈에서 나온 윌리엄 S. 버로스의 출세작 <정키>와 <퀴어>를 읽은 이후로, 그때도 헌책이기는 하지만 한 방에 두 권을 사는 만행을 저질러 두 권을 다 읽게 되었는 바, 다시는 버로스를, 적어도 돈 주고 사서 읽지 않겠다고 단단히 작심을 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버로스의 <네이키드 런치 : Naked Lunch : 개떡 같은 점심식사>를 읽은 건, 당연히 도서관 개가실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버로스는 잭 케루악과 함께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나는 잭 케루악의 작품이 눈에 띄었다 하면 보이는 족족 몽땅 읽어 치우는 반면, 도무지 이 윌리엄 S. 버로스는 못 읽어주겠다. 틀림없이 궁합이 맞지 않아서 그렇겠지만, 버로스의 마약(정키)과 동성애(퀴어)가 케루악보다 좀 더 지독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케루악의 대표작 <길 위에서> 속에 잭과 함께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멕시코시티까지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알코올에 허우적대고, 차량절도와 마리화나와 프리섹스의 골짜기로 빠지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의 실제 모델이 윌리엄 버로스인 건 미국 비트소설 좀 읽은 분은 다 아시겠지만, 어쩜 이렇게 다를까 싶다. 아, 먼저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자. 내 취향에 잭이 더 맞는다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빌이 잭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실제로 잭과 빌이 대단히 친한 사이다. <네이키드 런치>라는 이 책의 제목을 잭 케루악이 지어주었을 정도니까.


  <네이키드 런치>는 1962년에 출간하자마자 곧바로 외설 시비에 휩쓸린다. 그렇게 해서 실제로 재판까지 받았는데, 이 책에서 서문, 머리말 비슷하게 작품을 시작하기 전에 무려 41페이지 분량으로 노먼 메일러, 그리고 역시 <길 위에서>의 미친놈 무리 가운데 한 명인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법정 증인 심문 내용 요약을 실었다. 최종 재판 결과, 1966년 7월에 매사추세츠주 대법원은 <네이키드 런치>가 외설물이 아니라고 판정을 했다. 이 내용을 책 뒤편의 부록이 아니라 작품 앞에 실은 건 당연히 독자에게 <네이키드 런치>에 그런 자극적인 내용이 들어 있으니 열라 사 읽어보라는 뜻이 있겠지. 그리고 진짜 읽어보면 1960년대 초반 시각으로 외설적이기는 하다. 외설인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 적어도 당시 우리나라에서 출간했으면 반공을 국시로 하는 3공화국에선 출판사 폐업하고, 작가는 곧바로 끌려가 줘 터진 다음에 한 5년 장하게 콩밥 깨나 먹었을 듯.


  여기서 내가 말한 외설의 뜻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과해도 너무 과한 마약. 진짜로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이 작품을 쓸 당시에 버로스 자신이 쓰는 내내 마약에 취해 있었다고 보지는 않는데, 마약 상태에서 이런 문장이 나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쓰는 내내 시간 날 때마다, 시간이 없더라도 억지도 만들어서 짬짬이 온갖 종류의 마약을 지속적으로 빨아들였음이 거의 확실한 “것처럼” 작가 자신은 특정 사건이 흐르고 그걸 서술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 입장에서 보면 그저 한 단편들만 주욱 나열되어 있는 옴니버스를 보는 것 같다고나 할지, 하여간 독특한 시각을 견지한다. 실제로 버로스는 마약을 다루는 작가가 작품의 소재로 쓸 만한 유일한 소재는, “글을 쓰는 순간에 자신의 감각에 존재하는 것” 뿐으로, 자신은 “이야기, 플롯, 연속성을 억지로 삽입하려 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p.348~349) 그러니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지금 작가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 오리무중의 숲속에서 헤매게 되는 것.

  게다가 진짜 온갖 마약들을 아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것도 모자라 굳이 부록을 달아 각종 마약의 중독성과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기도 해서, 징글징글하기 짝이 없을 정도이다. 두번째로는 성애 장면이다. 야하냐고? 그렇다. 왜? 혹 하셔?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성애 장면은 내 취향하고 거리가 먼 동성애, 그것도 남성간 동성애 장면이다. 이것도 이성간 성애와 비슷하다. 가끔 가다가 어떻게 한 번 나와야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이지 이 책에서처럼 시도 때도 없이 주구장천, 그것도 자주 마약에 취해 여기다 옮기기 어려울 정도의 참혹한 환상 속에서, 그냥 동성애도 아니고 딱 그 부분만 클로즈업하는 건 문제가 있다.


  일찍이 <퀴어>와 <정키>를 통해 앞으로 거리를 두기로 했던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해 길게 독후감을 쓰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숱하게 등장하는 마약 중독자들의 망가진 모습만 한 두 장면 소개해볼까? 관두자. 괜히 밥 잘 먹고 그럴 필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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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07-11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 <길 위에서> 읽은 후 <퀴어>와 <정키>를 접하고 충격@_@;;;; 이 책은 앞부분 읽다가 덮어뒀었는데 Falstaff님 덕분에 생각났어요. 용기가 생기면 재도전해볼까합니다. @_@;;;

Falstaff 2024-07-11 15:24   좋아요 0 | URL
책꽂이에서 좀 더 묵혀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이거 쓸 때 늘 맛이 가 있는 상태여서 두 작품보다 더 난삽하더라고요.

잠자냥 2024-07-11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층격적이긴한데 참 재미없는 버로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7-11 15:24   좋아요 0 | URL
이 작자는 로또입니다. 저한테는 참 안 맞아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