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친데 대산세계문학총서 187
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박상화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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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 빌헬름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은 1772년,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에 열렬한, 광적인 프로테스탄트 집안에서 태어난 독일의 시인, 문학평론가, 철학자, 문헌학자, 소설가, 동양학자, 기타 등등으로, 그의 형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과 소위 예나 낭만주의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했다. 예나 낭만주의라고 별 건 아니고 그저 독일의 예나 지역에서 노발리스, 피히테, 프리드리히 쉴러,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 캐롤라인 셸링 등과 낭만주의 서클을 결성해 낭만주의라는 새로운 문화운동을 펼친 일을 말한다.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이 어떤 세월인데 누가 어떤 낭만주의를 주장했는지, 알면 좋겠지만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외울 필요도 없으며, 아무리 기억하고 있어도 어떤 시험문제로도 나오지 않는다. 그저 오직 하나, 이때 우리가 잘 아는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죤의 할아버지이자, 독일계 유대 철학자이자, 신학자 모세 멘델스죤의 딸, 도로테아 베이트도 멤버였는데, 슐레겔은 유대교 여성이며 유부녀인 도로테아와 확 불장난을 해버렸고, 원래 이렇게 재미난 일은 북풍의 들판에 붙은 들불처럼 한 순간에 확 번지는 법이라 금방 동네가 시끄러워져, 어마 뜨거워라 싶은 슐레겔이 “관능적 사랑과 영적 사랑의 결합을 신성한 우주적 에로스의 알레고리로 찬양”하는, 쉽게 얘기해서 화끈한 불륜을 변명하기 위하여 1799년에 쓴 유일한 소설이 <루친데>라는 거만 일반 상식으로 알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흠. 알려드리지. 슐레겔과 도로테아 베이트의 화끈한 불륜 이야기는 도로테아의 남편 베이트 씨 귀에도 들어가 둘은 당대의 지성인 커플답게 짝 갈라섰다. 유대교에서는 이혼이 가능한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혼 서류에 인감도장 꾹 눌러 찍은 도로테아는 1804년 프리드리히 슐레겔과의 결혼을 위해 유대교를 버리고 개신교로 개종을 해버린다. 초장에 밝혔듯이 슐레겔 집안이 열렬한, 그리고 광적인 개신교 집안 수준을 넘어서 시아빠 자리인 요한 아돌프 슐레겔 선생이 시인이면서 루터교 목사였으니 지가 결혼하고 싶으면 개종을 안 하고 배겨? 근데 4년 후인 1808년에 도로테아가 남편 슐레겔을 살살 꼬드겼는지, 아니면 바가지 벅벅 긁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부는 가톨릭으로 다시 개종을 해버린다. 목사 집안에서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리하여 요한 아돌프 슐레겔 목사님은 열번째 자식인 프리드리히를 호적에서 확 파버릴 수는 없고, 하여튼 온 가족이 협심 단결하여 프리드리히 부부만 나타났다 하면, 눈알을 허옇게 뒤집어 깠다고 한다.

  근데 프리드리히 슐레겔이 세계 문화사에서 그렇게 중요한 사람인가? 그런가 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마추어들은 그냥 이런 가십을 즐기기만 하면 될 거 같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까, 독후감이 갑갑하게 됐다. 아무리 18세기 소설이라 해도 그렇지, 참 재미없다. 이 작품보다 무려 50년 전에 잉글랜드 소설가 헨리 필딩이 발표한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60년 전에 나온 새뮤얼 리차드슨의 <파멜라> 등등과 비교하고, 우스개소리로 “재미없는 독일 소설”임을 감안하더라도, 어떻게 이리도 흥미유발 요인 없이 썼는지 말이야. 물론 자신과 도로테아의 불장난을 변명하기 위해 썼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사랑, 어화둥둥 내 사랑 타령으로 도배가 되어 있다. 이 시절 소설들이 거의 사랑을 위해 복무했을 때이며, 위키피디아 얘기대로 “낭만주의 발기인” 가운데 한 명이어서 늘 발기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당대 수준으로 보면 굉장히 야한 묘사도 등장하긴 하지만, 이 작품이 슐레겔이 남긴 “단 한 편의 소설”이라서 그런지 분명 소설은 소설이되, 소설처럼 읽히지 않기도 하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서간문일 때도 있고, 지문 같은 거 다 뺀 대사로만 구성되어 있는 챕터도 있고, 막 헷갈리기도 한다.

  슐레겔이라고 읽는 율리우스와, 도로테아라고 읽는 루친데를 중심으로 위 단락에서 이야기했듯 열라 “관능적 사랑과 영적 사랑의 결합을 신성한 우주적 에로스의 알레고리로 찬양”한다. 이걸 써 놓으니까 뭐 할 말이 쑥 들어가 버리더라고. 어떻게 하겠어. 이쯤에서 말아야지.

  그런데 하여간 낭만주의란! 아니면 내가 좀 병적이어서 그랬나? 지극히 낭만적인 대목이 나온다.


  “그러므로 사랑의 수사학이 자연과 순수함에 대한 변호를 모든 여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여인의 부드러운 가슴속에는 신성한 관능의 성스러운 불꽃이 비밀스럽게 깊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것은 비록 황폐해지고 훼손될지언정 결코 완전히 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p. 42)


  하여간 수컷들이란. 여인의 가슴에서 신성한 관능과 성스럽고 비밀스러운 불꽃을 발견하는 게 낭만주의라니. 흠. 그건, 슈레겔 선생, 불꽃이 아니라 그건 그냥 지방fat일 걸? 그게 남자들의 오랜 로망이란 건 알지만, 이젠 그런 얘기 좀 그만 읽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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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 게이하트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2
윌라 캐더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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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라 캐더는 참 좋아하는 작가이다. <나의 안토니아>와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이 딱 두 편으로 나는 단박에 이이의 팬이 되었다. 이후 캐더에게 퓰리처 상을 가져다준 <우리 중 하나>의 참혹한 번역서 때문에 완벽하게 맛이 가긴 했지만. 그래도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를 출간했다는 걸 알자마자 단박 구해 읽어야 했다. 역시 네브래스카. 광활한 무대. 대륙성 기후라서 여름엔 몹시 덥고 겨울에는 눈보라와 강추위가 엄습하는 엄혹한 벌판. 플랫 강이 흐르는 작은 마을 해버퍼드 중심가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서쪽 끝자락에 시계수리공 게이하트 씨의 집이 있다. 1킬로미터는 한여름의 더위와 한겨울의 추위라면 다녀오기에 꽤 먼 거리라고 여긴다. 다만 딱 한 사람, 이 집의 둘째이자 막내딸인 루시 게이하트를 제외하고.

  해버퍼드 중심가에 유난히 빨리 움직이는 점 하나. 그게 루시였다. 부단히 움직이는 작은 빛이자 둥지로 돌아가는 작은 새 루시는 금빛이 감도는 갈색 눈동자에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한 피부, 그러나 붉은 작약처럼 색이 깊고 벨벳 같은 입술과 볼을 지녔으며, 직접적이고, 거침없고 유쾌한 성정을 가졌다. 친구들이 사랑한 것은 루시의 명랑과 기품, 앳되지만 아름다운 생명만이 누리는 독특한 광채였으리라.

  루시의 아버지 게이하트 씨는 일리노이 밸빌의 독일인 마을에서 바이에른 출신 이민 부부의 아들로 출생했다. 독일인 후예답게 클라리넷과 플루트를 상당한 수준으로 연주할 줄 알았고 바이올린과 피아노도 교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했다. 결혼할 때 아내가 130만 제곱미터, 40만 평에 조금 못 미치는 농지를 가져와 처음부터 부농이랄 수 있었지만, 게이하트 씨는 아내가 세상을 뜨자마자 토담대, 토지담보대출을 받아 다른 토지를 구입해 이제는 두 땅 모두 저당 잡힌 상태였다. 부부는 맏딸 폴린을 낳고, 이어서 아들만 둘 낳았으나 일찍 여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낳은 딸이 루시인데 루시가 여섯 살 때 엄마가 세상을 떠서 열여덟 살의 폴린 언니가 엄마 대신 키웠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 집의 가장 큰 문젯거리는 아버지 게이하트 씨. 속이 없는 양반이다. 천생 한량인데 미국에서도 저 벽촌에 속하는 네브래스카 시골의 작은 마을 해버퍼드에서 시계방을 운영한다. 땅 욕심은 왜 그리 많아 40만평도 모자라 담보 대출을 얻어 또 땅을 사놓고는, 농사일은 전혀 관계하지 않는다. 물론 자신도 복장이 편하지는 않겠지만 하여간 집안 살림과 농사, 루시 보살피는 일 몽땅 다 폴린이 맡아야 했다. 내가 윌라 캐더라면 루시 말고 폴린을 주인공으로 해도 두툼한 소설책 한 권은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라니까. 그러면 게이하트 씨는? 본업이 동네 음악대 대장 같다. 은판 사진 속 독일인 무명 시인 같은 외모로 염소 턱수염과 콧수염을 기르고, 지적이고 느긋한 녹갈색 눈을 한 게이하트 씨는 매일 한결같은 삶을 즐기며 생활한다. 적어도 그렇게 생활하려고 노력한다. 건강과 단순한 즐거움이 최고의 가치로, 푸른색과 금색이 섞인 음악대 유니폼에 가장 큰 만족감을 지니며. 나중에 나이 들어 음악대원들도 늙고 사라질 때부터는 새롭게 체스에 취미를 들여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인물. 이러니 토담대 대출받은 돈의 이자 갚느라 안달하는 것도 역시 맏딸 폴린의 몫이다. 폴린은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엄마쪽을 닮아 짧은 몸에 짧은 팔다리, 그리고 바지런한 품성을 지닌 선한 여성이지만 어려서부터 아빠가 특히 좋아하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루시한테 정을 몽땅 빼앗기면서도 동생을 자기 딸처럼 돌보며 살아야 했던 여성. 넘치는 질투를 타고났지만 덕성과 인내와 선함으로 덮어가며 평생을 숫처녀로 살다가 눈을 감은 우리의 폴린이, 나는 너무너무 불쌍해 마지않았다. 그러나 폴린이 그냥 그랬다는 거다. 세상이 다 그렇듯이 소설 역시 다 그런 거라서, 착하기만 하고 개성이 별로 없는 인간은 주인공으로 발탁하지 않는 법이거든.


  본격적으로 루시 이야기를 해보자. 재능이 있어 피아노를 공부하기 위해 열여덟 살에 시카고로 유학을 갔다. 그러나 워낙 무사태평한 성격의 루시는 자기의 앞날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음악은 그저 자연이 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이며, 피아노를 배워 고향 해버퍼드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돈벌이의 한 방편으로 생각할 뿐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1901년, 루시의 시카고 생활 세번째 크리스마스 연휴 막바지에 해버퍼드에서는 그러나 이야기가 좀 달라져 있었다. 두 달 전, 루시는 파울 아우어바흐 지도교수가 좋은 자리를 얻어주어 자신의 친구인 중년의 바리톤 가수 클레멘트 서배스천의 공연을 본 것. 서배스천은 연주회에서 연가곡 <백조의 노래>를 포함한 슈베르트를 노래했다. 앵콜을 사양하겠다는 안내에도 불구하고 그의 프랑스 친구들이 “클레망”을 연호하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서배스천은 바이런 시의 <우리 둘은 작별했네>를 노래했다.


  우리 둘은 작별했네

  조용히 흐르는 눈물

  마음이 둘로 부서졌네

  오랫동안 이어질 이별


  당신의 뺨은 창백하고 싸늘하네

  차가운 입맞춤보다도

  분명 그날이 예고해줬네

  이 이별의 슬픔도


  크리스마스 연휴가 끝나는 즉시 시카고로 돌아가야 한다. 클레멘트 서배스천 전담 반주자 제임스 목퍼드는 다리를 저는 장애인인데 골반뼈에 문제가 생겨 런던에서 몸을 돌보는 사이에 서배스천의 연습 반주자를 뽑는 일종의 오디션이 있어서. 아무리 그래도 루시는 어려서부터 마을에서 제일 잘 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던 겨울철 플랫 샛강 얼음판 위의 스케이트를 포기할 수 없다. 많은 청춘들 가운데 짐 하드윅과 선두를 형성해 힘차게 스케이트를 타는 루시 게이하트. 그러다가 하늘 같은 말이 끄는 썰매가 도착하고, 마을에서 이름난 부잣집의 성격도 인물도 반듯한 청년 헤리 고든이 등장해 스케이트 끈을 매더니 단박에 선두그룹에 합류한다. 눈치 채셨지? 어느새 저녁별이 내리고 저 먼 곳의 아득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행복이 영원한 것일 듯한 분위기. 이럴 때 어울리는 디즈니 만화영화 주제곡 가사에 이런 것이 있다. “자, 입맞춰, 분위기가 좋잖아? 그래 그렇게 입을 맞춰요, 입맞춰!” 하지만 1901년이다. 혼인서약에 서명할 때까지는, 알지? 유학 3년이면 루시가 스물한 살, 해리 고든이 루시보다 여덟 살이 많다니까 스물아홉 살. 둘 다 완벽한 성인임에도.

  해리는 삼십대를 앞에 두고 이제 반려를 찾아야 하는 단계. 오랫동안 주판알을 튕겨본 바, 작지만 해버퍼드의 유일한 은행 은행장의 아들이며 틀림없이 차기 은행장이 될 자신이 한낱 시계공의 딸과 결혼하는 건 사실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사업차 온갖 곳을 다니며 많은 여자를 만났지만 루시 같은 여자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 신중한 청년은 세인트조지프에 살며 지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은행의 은행장의 딸인 스물여섯 살 먹은 해리엇 아크라이트와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헤리엇은 서둘러 구속되기 싫다는 이유로 미혼을 유지하고 있었을 뿐, 만일 상대가 해리 고든이라면 언제든지 결혼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해리 고든이 미처 알지 못했지만 야무지게 재산을 관리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즐길 줄 아는 미덕도 가지고 있었고. 그건 책의 막바지에 드러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궁리해봐도 자신한테 깊은 찌릿함을 선사하는 여자는 교회의 쥐처럼 가난하고 여간해서 자기를 칭찬하려 하지 않는 루시뿐이라 결론을 내리고, 시카고로 돌아가 4월 중 뉴욕 오페라단이 시카고 순회공연을 하는 주에 일주일간 함께 오페라를 보자고 제의한다. 당연히 제의를 수락하는 루시.

  그러나 루시에게는 1월 4일의 오디션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을 한 다소 지쳐 보이는 눈의 남자. 바리톤이 자주 그러하듯 아주 큰 덩치. 키가 크고 퉁퉁하며 넓은 어깨를 한 시카고 사람. 지난 10월 공연을 보며 루시는 생의 진실을 알게 됐고, 사랑은 그저 말랑말랑한 감정이 아니라 비극의 동력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시는 서배스천을 통해 “새까만 물처럼 인간을 집어삼키는 열정을 발견”하고 말았다. 즉 세상이 공포와 위험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데, 이게 어떤 의미인 줄 짐작이 되지? 서른 몇 살의 나이를 초월한 점잖고, 예의바르며, 애틋하지만 경건한 사랑. 아뿔싸, 그러나 서배스천은 지난 10월의 공연에서, 부르지 않겠다는 앵콜곡을 노래하며 이미 이들 사이의 사랑이 어떻게 될 지 왕창 큰 복선으로 깔아놓았다. 이걸 놓치는 독자는 설마 없겠지?


  그러면서도 “교회 쥐처럼 가난하고 칭찬하지 않는 루시”와 함께 서배스천이 공연을 떠난 4월의 한 주 동안 <아이다> <오텔로> <라 트라비아타> 그리고 <로엔그린>을 돈 한 푼 안 들이고 구경했으면서, 그것도 모자라 <로엔그린>을 본 날 비싼 레스토랑에 들어 아주 비싼 식사와 겁나게 비싼 와인을 따며 청혼하는 해리한테 퇴짜를 놓는 루시. 루시는 50대 중장년 유부남이자, 당대 최고의 지휘자이며 귀족인 로버트 레스터 경의 사위인 서배스천을 염두에 두고 “자신이 원하는데 차지하지 못할 것이 무어냐는 생각이 들”었었다. 이런. 그러면 비싼 오페라 네 편과, 식사와 와인은 거절을 했어야지, 쯧쯧. 설마 돈이 아까워 그러진 않았겠지만 해리는 홧김에, 나중에 해리 스스로 고백하듯, 정말로 홧김에 두 주만에 해이럿 아크라이트 양과 혼인을 맺고 고향 헤버퍼드 최고의 부자이며 유지로 말뚝을 박는다.


  이야기는 낡았다. 이후 몇 가지 비극이 연속되면서 독자의 누선을 적신다. 틀림없이 신파극이며 상투적이다. 그럼에도 윌라 캐더가 그리는 대자연의 광경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맺는 방식, 점잖고 기품있는 문제 풀이 같은 것은 상투적인 신파도 매우 근사하게 읽히게 만든다. <나의 안토니아>와 <대주교에게 죽음이 오다> 이후 마음에 맞는 윌라 캐더를 읽었다는 거 하나로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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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6-14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린은 주인공이 아니지만 그러나 폴린의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데에서 저는 이 책과 작가가 참 좋았어요!!

자목련 2024-06-14 10:24   좋아요 0 | URL
맞아요, 주인공만 내세우지 않고 주변의 인물까지 전체를 잘 아우른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Falstaff 2024-06-14 16:21   좋아요 0 | URL
답글이 늦었습니다.
정말 폴린, 짠합니다. 읽는 내내 그랬습니다. 보면 이 책 속에 불쌍하지 않은 인간이 없더라고요.

moonnight 2024-06-14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Falstaff님 리뷰에 궁금해져서 보관함에 넣습니다. 나의 안토니아 작가로군요@_@;

Falstaff 2024-06-14 16:22   좋아요 1 | URL
크게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분량도 짧아서 편하게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

stella.K 2024-06-14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새 저녁별이 내리고 저 먼 곳의 아득한 무언가를 향해 손을 뻗는 행복이 영원한 것일 듯한 분위기. 이럴 때 어울리는 디즈니 만화영화 주제곡 가사에 이런 것이 있다. “자, 입맞춰, 분위기가 좋잖아? 그래 그렇게 입을 맞춰요, 입맞춰!”
표현 좋네요. 신파에 상투적이라니 일단 읽기는 어렵지 얺겠습니다.
글치 않아도 관심이 가던데...^^

참, 금요일 입니다. 왜 다음 주 리뷰 예고 왜 안 하십니까? 잊으셨나요? ㅠ

Falstaff 2024-06-14 19:27   좋아요 0 | URL
ㅎㅎ 다음 주 예정은요
월요일. 프리드리히 슐레겔, <루친데>
수요일. 츠쯔젠, <백설까마귀>
금요일. 오노레 드 발자크, 《회개한 멜모스∙아듀》
인데요, 미리 소개하는 게 뭐 티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은근히 쪽팔리더라고요. ^^;;

stella.K 2024-06-14 19:44   좋아요 0 | URL
아유,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을...
이거야 말로 팔님의 시그니처 같은 건데. ㅎㅎ
잘 올리셨습니다. 다음 주도 기대하겠습니다.
좋은 주말 보내십시오.^^
 
험볼트의 선물 - 1976 퓰리처상 수상작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44
솔 벨로 지음, 전수용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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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솔 벨로. 솔 벨로는 처음에 <오기 마치의 모험>을 읽고 얼마나 학을 떼었는지 곧바로 읽을 생각으로 함께 사 둔 <허조그>를 다섯 달 동안이나 먼지만 쌓게 만들었던 적이 있다. 그랬다가 <허조그>가 참 재미있어서 원래 계획에 의하면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을 솔 벨로를 연달아 찾게 만들었지 뭐야? <비의 왕 헨더슨>과 <오늘을 잡아라>. 그리고 눈에 띄기만 하면 솔 벨로는 무조건 읽겠다고 작심까지 했다. 그러다가 문학동네에서 이 책을 다시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어찌 망설임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대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해 첫빠따로 읽었다. 어휴, 솔 벨로의 거침없는 수다라니. 즐겁게 지긋지긋한 사흘 반이었다.


  솔 벨로의 입심은 초장부터 현란하다. 극을 견인하는 등장인물은 화자 ‘나’ 찰스 시트린, 유대 이름으로 처키 치트린. 위스콘신 촌놈으로 대학에 다니다가 1930년대에 혜성처럼 등단한 20세기 첫 번째 아방가르드 작가 폰 험볼트 플라이셔의 담시집을 읽고 홀딱 반해 무작정 그를 만나기 위해 뉴욕에 가 주당 3달러짜리 방에 머물며 ‘풀러’라는 선술집에 일자리를 얻은 인물이다. 세월은 무상한 것이라 1940년대 후반에 이르면 과작의 시인 험볼트의 명성은 점점 작아지다 결국 달팽이 지나간 길처럼 어느새 자취도 없어진 반면 ‘나’ 찰스 시트린은 50년대 들어 연극과 영화 버전으로 크게 히트한 <폰트렌크> 덕택에 큰 돈을 만지게 되었다. 험볼트가 이 꼴을 보니 “배알이 뒤틀릴” 수준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심기가 좀 불편하지 않았을까? 자기하고 한 번 말이나 해볼 생각으로 뉴욕으로 왔던 꼬맹이가 이리 크게 성공했으니. 게다가 점점 조증과 울증의 교차 공격을 받기 시작한 험볼트는 이렇게 꼬아댄다.


  “찰리 시틀린을 봐. 위스콘신주 메디슨에서 와서 우리집 문을 두드렸지. 그런데 이젠 백만장자가 됐어. 대체 어떤 작가 어떤 지성인이 그런 큰돈을 벌겠나? 케인스? 그래. 케인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지. 경제학 천재에다 블룸즈버리의 왕자였지.” 험볼트가 말했다. “그는 러시아 발레리나와 결혼했어. 돈은 따라왔고. 그런데 시트린이 대체 뭐라고 그렇게 부자가 됐나? 우리는 가까운 사이였어. 그런데 그 친구는 어딘가 좀 꼬인 데가 있어. 그렇게 돈을 벌었는데 왜 구석에 틀어박혀 지내? 시카고에는 왜 간 거야? 정체가 밝혀질까봐 겁이 난 거겠지.”  (p.8~p.9)


  험볼트는 원래 뭐든 다 가진 남자였다. 금발의 미남이고 체구가 크며, 진지하고, 재치있고, 박식한 인물. 헝가리계 유대인 이민자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해 큰 부자였으나 대공황을 만나 가진 것 모두를 파산하고 얼마 안 지나 심근경색으로 급사하는 바람에 갑자기 맨땅에 처박히긴 했지만. 천재적인 문학적, 시적 영감으로 적어 나간 담시가 공전의 히트를 해 시대의 총아로 부상한 거였다. 그는 ‘나’ 찰스, 찰리를 “꽤 잘 생긴 친구, 좀 약은 편이고 일찍 대머리가 될 것 같은데 감정이 풍부해서 문학을 사랑하고 감수성이 있는” 젊은이로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잡지에 서평을 쓰는 일자리를 구해주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는 10년 정도로 끝났다. 원래 작품 수가 많지 않은 과작의 시인이라는 한계를 결국 극복하지 못하고 소수의 전문가들 사이에서 인정받다가 그것으로 종 친 예술가. 그는 1940년대 말부터 망가지기 시작한 반면, ‘나’는 50년대 초에 큰 돈을 벌게 되어, 험볼트는 바로 이 돈 때문에 ‘나’에게 반감을 갖게 된 거였다. 게다가 말년에 접어들어 엄청난 우울감에 시달려 결국 정신병원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들락거렸다는 건, 들어가 있을 때가 있고, 나와 있을 때가 있다는 말인 즉, 병원 밖에 있을 때는 꼭 ‘나’와, 정작 ‘나’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백만달러의 재산을 신랄하게 야유하는 것에서 재미를 찾았다. 그러니까 ‘나’의 입장에서 험볼트를 정의하자면, 예전에 신세를 진 적 있지만 이젠 완전히 “진상”이다, 진상. 그렇다고 내놓고 막 대할 수도 없는. 대강 이해 가시지?

  인간이 망가지면 참으로 다양한 방면으로 망가지는 것이 보통이다. 험볼트도 예외가 아니다. 일찍이 미국의 빈민가에서 안티 크리스트가 뛰쳐나오리라 생각한 미국 문학계에서 험볼트가 나타나 신사처럼 행동하고 매력적인 작품을 쏟아내 콘래드 에이킨, TS 엘리엇, 아이비 윈터스 등이 호평을 받았던 시절엔 생각지도 못할 망나니가 되어 버렸다. ‘나’의 작품 <폰 트렌크>의 연극 공연장 앞에 자신의 후원자 다수와 피켓에 머큐로크롬으로 붉게 “이 연극의 원작자는 배신자다!”라고 쓴 채 연좌농성을 하기도 하고, 친구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몸집이 크고 피부가 희면서 아름다운 아내 캐슬린을 윽박질러 파티가 끝나기도 전에 퇴장한 것까지는 그럴 수 있지만, 차를 몰고 오다가 핸들을 잡지 않은 팔을 휘둘러 캐슬린의 눈두덩을 시퍼렇게 염색시키는 지경까지 갔으니, 이걸 어쩔꼬? 며칠 후, 캐슬린은 프랑스 제과점에 간다고 나가서 다시는 험볼트의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텍사스 시골로 가서 티글리 씨와 재혼해 살다가, 두번째 남편이 죽고나서야 다시 ‘나’와 상봉을 할 때는 이미 험볼트도 세상에 없었다.


  뉴욕에 도착해 오전에 재비츠 상원의원, 로버트 케네디 상원의원과 함께 해안경비대 헬리콥터를 타고 뉴욕 상공을 비행해 센트럴파크 태번온더그린에서 열린 정치인 오찬에 참석했다가 밖으로 걸어나온 ‘나’는 우연히 그를 본다. 벨라스코 극장의 모퉁이를 돌면 바로 나오는, 거의 허물어지는 수준의 일스컴 호텔 앞에서 허름한 옷을 입은 험볼트의 얼굴에는 이미 죽음의 기색이 완연했다. 그는 ‘나’를 보지 못한 채 병들고 지저분한 행색으로 막대형 프리첼을 점심으로 먹고 있었다. ‘나’는 주차된 차 뒤에 숨어 그를 지켜보았고, 결코 다가가지 않았으며 곧 자리를 떴다. 다음날 아침 ‘나’가 사는 시카고행 727 제트기 안에서 <타임스>에 실린 험볼트 사망 기사를 읽었다. 그는 새벽 세 시쯤 쓰레기통을 비우러 나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으며 곧바로 시city의 시체안치소에 들어갔는데, 안치소에 시poetry 읽는 사람이 없는 바람에 무연고자 신분으로 안치되었다.

  마지막 날 험볼트를 본 일, 이건 ‘나’ 찰스 시트린에게 작지 않은 회한을 주지만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그냥 넘어가자.


  근데, 솔 벨로의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 가운데, 혹시 정상적으로 이것저것 부부간에 서로 사랑하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인내해서 짜증나는 일 참아가며 보통 사람처럼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사는 커플을 혹시 보신 분 계시면 거수.

  ‘나’ 찰리 시트린의 첫사랑은 나오미 루츠였다. 위스콘신 살 때 고등학교 동창생. 이때부터 찰리의 머리 구조는 보통의 고등학생들과 달라, 갑자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넘나들기 시작해 쾨슬러, 사르트르, 비트겐슈타인을 망라해버리니, 참 나, 이런데도 왕따를 당하지 않았다는 게 기적일만큼, 도무지 시내의 모든 고등학생과 교사를 통틀어도 찰리와 대화 가능한 인물을 구할 수 없었다는 전설이 있다. 찰리와 나오미는 그런 거 말고 나머지 부분에 관해서만큼은, 그러니까 1940년대 연애하는 하이틴이 겪는 모든 과정은 알뜰하게 밟아가며, 찰리는, 겁도 없이 나오미와 남은 생 전부를 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나오미는 다른 남자를 골라 홀라당 결혼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하마터면 죽음을 부를 수도 있었을 찰나에 기적적으로 나오미의 딸이 등장해 다시 연락이 닿아 만나 확인해본 바, 나오미는 구름 꼭대기쯤에서 내려오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오리무중의 언설을 도무지 견딜 수 없어, 평생 이런 이야기만 듣고 살다가는 나이 서른도 되기 전에 요실금이 올 거 같다는 공포에 휩쓸려 찰리가 뉴욕으로 험볼트를 보러 간 사이에 후딱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리고 만 거였다.

  이어서 애칭 ‘데미’라 불리는 애나 뎀스터 퐁벨이라는 좋은 집안의 아가씨와 깊고 깊은 연애를 했다. 데미는 ‘나’가 <폰 트랜크>의 대성공이라는 기회를 얻어, 이제야 아버지에게 ‘나’를 남편감으로 소개할 수 있겠다 싶어 <폰 트랜크>의 기사나 화보 같은 걸 스크랩해서 당시 투자를 위해 베네수엘라에 출장계획이 있던 아버지와 함께 날아가다가, 그만 공중폭발로 부녀가 동시에 생을 접었다. ‘나’ 찰스는 당연히 시신이나마 찾고자 베네수엘라로 갔지만 아무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고, 그 사이에 언젠가 장난 비슷하게 교환했던 서로의 백지수표에 험볼트가 $6,763.58의 금액을 써넣고 이를 현금으로 찾아가버렸다. 당시 젊은 찰리 시트린에게는 어마어마한 돈이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험볼트가 평생에 걸쳐 악담을 할 만큼 큰 돈을 벌기 시작할 때, ‘나’ 찰리 시트린은 괜찮은 신교도 집안의 아가씨 데니즈와 혼인을 한다. 데니즈와의 사이에 딸 둘을 낳고 잘 사는 듯하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솔 벨로의 주인공이라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포기해야 마땅한 전례를 따라 갈라섰는데, 데니즈는, 유대인 주제에 감히 나와 이혼을 하려고 해, 시카고에서 가장 지독한 변호사를 고용해 ‘나’의 전 재산을 홀딱 빨아버리려 한다. 실제로도 그렇다. 데니즈와 이혼 소송중에 새롭게 레나타라는 아들 하나 딸린 돌싱녀와 연애를 하고 있기는 하다. 근데 이 레나타는 ‘나’를 완전히 호구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결혼을 하자고 몇 번 제의를 했지만‘나’ 찰리는 이혼소송이 완전히 다 끝나기 전까지 그러고 싶지 않은 거다. 그리고 사실 알고 보면 ‘나’가 거의 알거지 수준이라는 것도 밝히고 싶지 않다. 솔 벨로의 작품 속 남자들의 삶이 대부분 이렇다. 이걸 재미로 알아야지 뭐.


  다시 첫 애인 나오미 루츠로 돌아가서, 사실 크게 볼 일 없는 나오미 루츠를 소환하는 이유는, 나오미가 찰리 시트린을 도무지 참아주지 못하고 다른 남자한테 시집가 버린 이유가 찰리의 과도한 현학성, 장황한 단어의 사용, 끝도 없는 주절거림 때문이다. 책을 읽어보면 정말로 실감난다. 얼마나 말이 많고, 쉬운 이야기를 어렵게 하려고 난리를 벌이는지. 나는 당연히 찰리보다 나오미와 비슷한 부류라서, 본문만 744쪽에 이르는 길고 긴 장편소설을 읽으며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경험도 했고, 속이 미식거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리라인은 누가 솔 벨로 아니랄까봐 재미 만땅인데, 이제 다른 독자께 권하니, 벨로의 사변적 설레발쯤 아무것도 아닌 듯 견딜 수 있으면 가볍게 도전하시고, 아니면 약간의 허들 정도로 여겨 조금 각오를 하시든지, 그것도 아니면 일단 책을 사놓고, 언제든 내가 한 번은 읽고 만다, 날마다 새로운 마음을 가질 지표로 삼으시면 될 듯하다.

  다른 거 다 빼고, 그러면 온 힘을 다해 세계 인텔리겐치아의 지도자가 되기를 추구했으며, 승리에 대한 분석을 믿었고, 시보다 ‘생각’을 선호했으며, 좀더 높은 문화적 가치를 지닌 하위 세계를 위해 우주 자체를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던 폰 험볼트 플라이셔가 남긴 선물이 뭐냐고? 정말 선물이 있다. 이제 다른 건 몰라도 경제적으로 다 죽어가는 찰스 처키 시트린을 위한 인공호흡. 그게 뭔지는 안 알려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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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4-06-12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뱅글뱅글@_@;;; 오늘을 잡아라 읽어볼까 하고 전집에서 빼놓았던 게 언제인지@_@;;; Falstaff님 리뷰로만 솔 벨로를 만나게 될 것 같은^^;;;;;

Falstaff 2024-06-13 06:14   좋아요 1 | URL
<오늘을 잡아라> 빡세지 않습니다. 잘 읽히고 재미도 있습니다. 당연히 명작은 아니지만요. ^^;;
 
부영사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최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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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걷는다 라고 피터 모르간은 쓴다.

  어떻게 하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길을 잃어야 한다. 모르겠다. 네가 배우게 되겠지. 나는 길을 잃기 위한 하나의 지표를 원한다. (<부영사>, 민음사. 최현무 역. 1984년 8월. p.5)


  그녀는 걷는다, 피터 모건은 쓴다.

  어떻게 하면 되돌아오지 않을 수 있을까? 길을 잃어야 해. 모르겠어. 배우게 되겠지. 나는 길을 잃었다는 걸 알려주는 표시를 원해요. (<부영사> 문학과지성사. 최윤 역. 2024년 3월. p.9)



  “이데아총서” 17번으로 나온 <부영사>가 40년 전에 내가 읽은 우리나라 최초의 번역이다. 최현무 역의 금속활자본.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다. 2년 후인 1986년에 이용숙은 뒤라스의 중편소설 두 편이 실린 《길가의 작은 공원 / 아반 사바나 다빗》을, 김인환은 유명작이자 우리나라에서 출세작인 <연인>이 <애인>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중단편집 《복도에 앉은 남자》를 번역 출간했다. (<모데라토 칸타빌레>는 책장 저 속에 숨어 있나보다. 못 찾겠다.)



 나는 이 책들을 각각 복학생과 사회초년생 신분으로 읽었는데, 그만 단번에 뒤라스에게 빠져버렸다. 이중에서도 특히 <부영사>. 뒤라스는 읽을 때마다 마음을 완전히 채워주는 포만감이 들지 않고 뭔가 놓쳐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 읽은 후에, 눈을 뒤집고 찾아봐도 속을 털어놓을 책 좋아하는 인간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뒤라스 독후를 이야기하기가 버거웠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하여튼 <부영사> 초입을 더 읽어보자.


  "수많은 경사지가 사방을 가로지르는 광대하게 펼쳐진 일종의 늪지대, 가장 적의에 차 있는 지평선의 한곳을 향해 그녀의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 그녀는 그렇게 한다. 그녀는 여러 날을 걷고, 경사지를 따르고, 떠나며, 물을 건너고, 곧바로 나아가다가 좀더 멀리 있는 늪지대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 늪지대를 가로지르고 또 다른 늪지대를 향해 떠난다. 여전히 톤레샤프의 평원, 여전히 그녀는 알아본다. 톤레샤프만 따라가면 절대 길을 잃지 않을 거야. 그녀는 엿새동안 걷는다. 배 속의 아이는 점점 더 심하게 움직거린다."


  1984년 여름 이후, 뒤라스의 <부영사>를 읽은 다음부터 내게 똔레샵 호수와 메콩강은 로망이 되었다. 흐름이 눈에 보이지 않는 고요한 수면을 하고 있으나 흙이 섞인 물이 두려움을 주는 광대한 물의 벌판. 그러나 뒤라스의 거의 모든 것이 낯설었고 서걱거렸다. 하지만 매혹적이었고, 쉽지 않았다. 근 3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러 나는 결국 똔레샵 호수에 가볼 수 있었다. 빈 손을 벌리고 관광객을 쫓아오는 어린 아이들과, 쓰레기투성이인 호숫가와, 목에 커다란 뱀을 두른 채 ‘다라이’를 탄 꼬맹이들과, 무엇보다, 더럽고, 더럽고, 더러운 것들이 부유하는 호수 표면에 <부영사>고 뭐고 정이 뚝 떨어져버리고 말긴 했지만, 하여간 로망은 이루어져 버렸다. 한 세대가 지나서 그랬는지, 그만큼 내가 더 낡아져 그랬는지. 탓할 것은 세월 말고 없었다. 습지를 따라 걸어보지도 못했다. 외진 곳을 혼자 걷다 무슨 흉한 꼴을 당할지 누가 알랴 싶어. 현금 많이 가지고 다닌다고 소문이 난 코리언 아닌가 말이지.

  40년의 세월이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거의 새로운 책을 읽었다. 머리 속에 가지고 있던 조각들은 오직 하나, 애를 배고 만 십대 소녀가 가족한테 쫓겨나 톤레샤프 호숫가와 메콩강변을 따라 걷고 걷는 형상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랬을 뿐이었으면서도 무슨 셈법으로 뒤라스의 대표작을 이야기할 때면 <부영사>를 꼽았을까? 교만해서? 그럴 수도 있지. 되는 대로 막 뱉고 봐서? 그럴 수도 있고. 80년대 중순과 비교해 이제는 다양한 뒤라스가 시장에 나왔고, 독자층도 다양하다. 이를 두고 서강대 불문과 명예교수이자, 전 학과장이자, 천생 선생인 최현무, 필명 최윤은 “뒤라스의 작품 세계가 지닌 예외적∙변방적 특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성은 이제 세계적이 되었다. 다중적 해석을 허락하는 작품 세계와 점점 희박해지는 언어는 오독도 마다하지 않는 다양한 독자층을 만들어냈다. 명성과 이해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라고 딱부러지게 지적했다. 일찍이 김치수, 김화영과 더불어 소위 프로방스 학파를 이루면서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누보로망을 소개한 최윤의 지적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근데 몇 가지만 짚어보자. 그래도 뒤라스 깨나 읽었다고 생각하는데, 앞에서 말했듯이 이이의 작품은 서걱거리고 낯설어서 마음을 채우는 포만감을 느낄 수 없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초기 작품인 <태평양을 막는 제방>을 읽게 되었고, 처음으로 친근하게 책을 읽으며 소위 별 다섯 개를 매길 수 있었다. 이어서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도. 왜 그럴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뒤라스의 연표를 보면 각각 1950년과 53년에 출간한 것들이다. 이에 반해 <부영사>는 1966년, <모데라토 칸타빌레>가 1958년, <아반, 사바나, 다비드>가 1970년, <복도에 앉은 남자>는 1980년이다. 비록 적장자는 아니지만 마르그리트 뒤라스 역시 누보로망 계열의 한 명으로 볼 수도 있는데 (보기도 하는데), 1950년대 후기 작품부터 선을 그어 그러지 않았나 싶다. 만일 이이의 후기작들을 누보로망이라고 하는 걸 허용한다면, 누보로망의 개념처럼 “근대소설의 반항으로의 신소설”답게 독자가 스스로 주어진 텍스트를 자신이 직접 조합하고 추리하는 적극적 읽기를 당연하게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니 독자가 오독을 하든 말든, 작가 또는 역자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내 의견이다. 믿지 마시라.


  내게 뒤라스를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쉼표의 사용이다. 문장 속에 자유로이 널려 있는 쉼표. 쉼표가 나올 때마다 호흡을 같이 하면서 나도 덩달아 한번 쉬고 이어 읽는 과정. 나는 이게 즐겁다. 예컨대 이런 문장들.


  "그는 어린 시절 음악을 했었다고 말한 다음에, 좀더 분명한 어조로, 지방의 어느 학교로 전학하면서 피아노 수업이 중단되었다고 덧붙인 이후로는, 완전히 입을 다물고 있다. 그녀는 어느 학교였는지, 어느 지방이었는지, 이유가 무엇인지 묻지 않는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녀는 그가 말하기를 바라는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때때로, 어느 저녁에는 그녀도, 그녀 역시, 이야기한다. 누구와? 무엇에 대해서?" (p. 138)


  악보에는 쉼표가 있어도 그곳에서 숨을 쉬지 않고 다음 쉼표까지 갈 수만 있으면 그냥 건너 뛰어도 상관없다. 오히려 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뒤라스는 그렇지 않다. 쉬라고 콤마를 찍어놓은 장소에서 독자는 작가와 함께 숨을 한 번 쉬는 편이 좋다. 무언가 리듬을 느낄 수도 있고, 앞뒤의 문맥을 더 잘 이해할 수도 있고, 쉬어서 오히려 더 강조하는 것임을 알아챌 수도 있다.

  톤레샤프 호수가를 무작정 걷던 소녀는 길가에서 아이를 낳고, 낳은 아이를 백인한테 떠 맡기고, 영양실조에서 온 것이 틀림없이 머리카락이 다 빠진 상태에서 10년 넘어, 걸어, 걸어, 걸어서 인도의 캘커타에 도착한다. 프랑스 대사관 앞까지. 마음씨 고운 대사부인 안-마리 스트레테르가 문턱에 놓아주는 음식 찌꺼기를 동료 거지, 한센병 환자들과 함께 먹기 위하여. 이때 건물 안에 전 라호르 주재 프랑스 부영사가 있었다. 말이라고는 자기 고향인 듯한 “바탐방”이란 단어 말고는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거지 여인이 갠지즈 강변의 캘커타까지 와서 부영사와 대사 부인과 어떤 관계를 만들었을까? 아무것도, 아무 관계도. 그것을 뒤라스는 쉼표가 가득한 문장으로 대답한다.


  "그녀는 마치…… 긴 직선 끝의 한 점처럼, 실상 별다른 의미 없는 사건들 끝의 한 점처럼 캘커타에 있게 된 것일까? 거기에는…… 잠과 굶주림, 감정의 소멸, 인과관계의 소멸만이 있었던 것일까?

  내 생각에 그 이상이야. 그녀가 사는 것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거야. 그녀 자신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아." (p.210)


  이것이 무슨 애니그마인지, 나도 모르겠다. 이 책을 다 읽은 당신 생각이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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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06-10 0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데아 총서 갖고 있는데,,, 어느 번역이 좋은가요? 다시 살까말까 고민중입니다. 사도 이데아총서에 있는건 갖고 있을듯요^^

Falstaff 2024-06-10 06:40   좋아요 1 | URL
같은 역자인 걸요 뭐. 그저 최선생이 교정 한 번 더 한 것으로 보시면 될 겁니다. ^^

그레이스 2024-06-10 08:14   좋아요 1 | URL
같은 분이셨나요? 헐 몰랐어요.ㅋㅋ
찾아보니 그렇네요.
최현무는 남자이름, 최윤은 여자이름,,,, 제 편견도 한몫 했네요. ㅎㅎ

Falstaff 2024-06-10 08:17   좋아요 1 | URL
당시에 뒤라스를 번역한 이용숙, 김인환, 다 여성이예요. ㅎㅎ

망고 2024-06-10 1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부영사...저는 중3때인가 부모님 서가에 있던 책을 읽었는데 그때는 부영사라는 단어의 뜻도 모르던 때였거든요ㅋㅋㅋㅋ이 책을 읽고 부영사라는 단어를 알게되었습니다. 근데 이 소설 그당시 읽으면서 이해를 하나도 못 했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참 어려운 책이라는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 커서도 손이 안 가던 소설입니다ㅜㅜ폴스타프님 인용하신 문장 읽어보니 어렴풋이 그때의 느낌이 나요. 뭔가 어릴때 맡았던 냄새를 다시 맡아서 반가운 느낌^^

Falstaff 2024-06-10 14:47   좋아요 1 | URL
에휴, 중3에게는 무리지요. 저는 아직도 헤매는 걸요. ㅎㅎ
추억이란 참... 그죠?

stella.K 2024-06-12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첨 들었을 땐 무슨 절 이름 같기도 한데 말입니다. ㅋ
와, 근데 뒤라스의 초창기 번역본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저는 얼마 전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다른 안 읽을 책과 함께 버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시 읽을 것 같지가 않아서요. 버전이 옛날 거이기도 하구요.
하루키를 좋아했다면 버전별로 가져도 좋을텐데 그건 제 전문은 아닌지라...
전 벌 받을 거예요. ㅋㅋㅋ

Falstaff 2024-06-13 06:16   좋아요 1 | URL
ㅋㅋㅋ 엽기 스텔라 님. 절 이름 ㅋㅋㅋㅋ
<해변의 카프카> 뭐 버릴 만한 책 아닙니까. 저도 미쳤다고 그걸, 헌책이었기는 합니다만, 돈 주고 사는 만행을 저질러버렸다는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벌 안 받습니다. ㅎㅎㅎ

blueyonder 2024-06-15 16:52   좋아요 1 | URL
저에게는 여전히 절 이름처럼 보입니다. ㅋ
 
피아노 조율사
궈창성 지음, 문현선 옮김 / 민음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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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대에서 연극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은 극작가. <남녀에 대한 게 아냐>를 쓰고 연출해 1990년에 “타임스 문학상” 연극부문 최우수상을 받았으니 이 정도면 대박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브로드웨이가 있는 뉴욕 한 가운데서 말이지. 이후 타이완으로 돌아온 64년 용띠 아저씨는 2003년 “유시 프로덕션 박물관有戱制作館”이라는 극단을 만들어 직접 연출가의 길을 걷는 한편 소설과 기타 산문도 꾸준하게 발표했다. 남들은 하나도 하기 힘든데 극작, 소설을 쓰는 명문 국립대만대학 외국어문학과 교수? 삼십대 시절에 더 이상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고, 정말로 십여 년 극작과 연출을 하다가 마음을 바꾸어 다시 소설도 쓰기 시작했단다.

  중편소설. 기가 막히게 널럴한 편집으로 본문이 196페이지에 끝난다. 큼지막한 활자에 열아홉 줄로 한 페이지를 메꾼 바람에 반나절이면 다 읽을 수 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가 “섬세하다” “아름답다” 같은 형용사를 발산한다. 맞는 말이지만 짧은 분량의 작품인 것을 감안하면 그리 돋보이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섬세, 감각, 아름다움으로만 치면 궈창성을 능가하는 작가 몇 명을 꼽는데 몇 초, 몇 분이면 충분할 듯. 극작, 즉 무대극을 쓰던 작가답게 독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데 더 초점을 맞추면 좋겠다.


  두 명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린쌍林桑. 3개월 전에 아내가 죽었다. 처음엔 피아노를 연주했다가 바이올린으로 전공을 바꾸어 유학까지 다녀온 20살 연하의 아내 에밀리가 운영해온 음악학원, 사실상 피아노 학원을 정리하기로 했다. 학원 사무실에 앉은 린쌍의 귀에 들리는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 3년 전, 성공한 사업가 출신인 린쌍은 결혼 1주년 기념으로 에밀리에게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어 주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기뻐하면서 오직 단 한 명의 청중, 남편 린쌍을 위하여 바이올린으로 <보칼리제>를 연주해주고 레퍼토리에 넣기로 했다지만, 린쌍이 듣기에 곡이 처연해서 생전의 어머니를 연상시키니 연주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연주 곡에는 들지 않았으나 린쌍의 머리에 박혀버린 곡이었다. 그런데 그 곡이 연주할 사람이 없는 2층 연습실에서 들려오고 있는 거였다.

  음악학원의 문을 닫는 날 들려오는 피아노 연주. 하필이면 <보칼리제>. 린쌍의 귀에는 무거운 침잠이 아니라 ‘무게 잃은 공허함’으로 다가온다. 알아보니 피아노를 옮기기 전까지 자기 의무를 다하겠다고 마지막 날에도 찾아와 조율 중인 조율사가 연주하는 거다. 연주 실력이 뛰어나 교습을 해보라는 권유를 거절하고 시간당 1,500 위안의 저렴한 조율비에 만족하는 야구모자를 쓴 남자. 그는 에밀리가 결혼하면서 가져온 뵈젠도르퍼 업라이트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눈에 힘줘서 다시 소리내 읽어보시라.

  “뵈젠도르퍼.”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여러 작품 속에 잘난 척하고 싶은 작가들이 입 밖으로 내는 피아노는 스타인웨이가 아니라 뵈젠도르퍼라는 걸 안다. 그걸 노골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고, 마치 지나가며 얼핏 봤다는 듯이. 그래서 이 작품 <심금자尋琴者: 피아노를 찾는 사람>에서도 뵈젠도르퍼 그랜드 피아노 대신 업라이트가 나온다. 그랜드 피아노일 경우 3억에서 4억은 줘야, 하이엔드는 훨씬 더 많아야 살 수 있을 걸? 당연히 오스트리아 메이드 오리지널. 그러나 이제 야마하가 인수하는 바람에 일본 기업이 됐다. 야마하? 이 책에서도 나오듯이 피아노의 전설 가운데 한 명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말년에 전용 비슷하게 연주했던 브랜드이며 에밀리 어린 시절에 집에서 연습했던 악기다.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 역시 린쌍이 에밀리한테 결혼 기념으로 사준 것으로 음악학원이 아니라 저택 거실에 놓여 있다. 에밀리 생전에 조율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서 조율을 해왔다. 다만 린쌍이 여태까지는 조율과 조율사에게 관심이 없어서 몰랐지만. 이렇게 세계 명품 피아노 3종 브랜드가 다 등장한다. 린쌍은 자수성가한 사업가.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인색하다는 것. 그럼에도 스타인웨이 그랜드 피아노를 선뜻 사 줄만큼 스무 살 어린, 그래도 서른여섯 살이었던 아내가 좋았다.


  그렇다고 이걸 음악에 관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면 맞지 않다. 물론 음악 이야기가 들어 있다. 다만 음악 이야기를 곁들인 인생, 위에서 <보칼리제>를 듣는 린쌍의 감상처럼 인생의 “무게 잃은 공허감”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음악은 <보칼리제>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그리고 슈베르트의 D.954와 D.960 소나타 정도 말하고 있으며 작품 자체보다는 연주자, 조율사, 피아노라는 악기, 음악적 재능과 성공의 복잡한 연결고리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먼저 조율사가 작품을 연구해서 곡과 예정된 연주자의 특성/성향에 가장 알맞은 상태의 음색을 내도록 조율을 하면, 연주자는 조율사가 조정한 건반을 연주할 뿐이란다. 내가 알기로 연주자도 조율에 직접적으로 참여해서 자기가 원하는 음색이 나올 수 있게 조율사에게 요구한다. 물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주자의 전속 조율사 정도가 되면 굳이 연주자의 요구를 듣지 않더라도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조건을 알 수 있겠지만 하여간 그렇다.

  작품에 등장하는 조율사는 이제 마흔세 살 정도의 젊지 않은 남자로 탈모증세가 심하고, 커다랗고 볼품없는 귀를 가졌으며, 얼굴엔 십대 시절을 휩쓸고 지나간 여드름 자국이 달 표면처럼 촘촘한 외모를 지녔으나, 음악적으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이제 자신의 재능에 대하여 누구도 관심을 두거나 거론하는 사람이 없어서 어떻게든 숨기고 싶어하는 비밀이 되고 말았지만. 이이는 어릴 적부터 음악 신동의 천성적 충분조건을 완전하게 갖추었다. 딱 한 가지, 가정 환경을 제외하고. 1958년 중국과의 진먼金門 포격전에서 한쪽 눈을 상실하고 현지 아가씨와 결혼해 3남2녀를 둔 아버지는 타이페이로 옮겨와 불법건물에서 만둣집을 운영했다. 그의 바람은 아들은 사관학교에, 딸은 사범전문학교에 들어가 학비 없이 괜찮은 직업을 갖게 하는 것이었던 바, 피아노 천재성이란 건 아버지 인생에 불효와 배반을 초래할 수 있는 위협으로 받아들였던 거다. 게다가 음악을 제외한 모든 과목은 평균 이하라서 야간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 조율사는 어떻게 대학에 진학했지만 도중에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재능이 있는 인간 가운데도 소수만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는 거, 그게 인생이지.


  조율사가 스타인웨이를 조율하기 위하여 린쌍의 집에 들락거릴 때 당연히 에밀리를 자주 보았고, 그리하여 말총머리를 한 남자친구도 본 적이 있었으나, 에밀리는 굳이 조율사를 경계하거나 회피하지 않았다. 마흔세 살이 되어도 결혼해본 적 없고, 여자가 있어본 적도 없는 조율사라고 해서 젊은 미인 에밀리에게 관심을 두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췌장암에 걸려 지극한 고통 속에 숨을 거둔 에밀리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린쌍을 보면서, 과연 린쌍도 자기 전처의 사생활을 알고 있었을까 궁금했다.

  이제 사업을 모두 접고 여유있는 말년을 즐길 수도 있는 린쌍은, 조율사의 훌륭한 솜씨와 뵈젠도르퍼와 스타인웨이에 얽힌 추억에 휩싸여 타이완에서의 중고 유명 피아노 판매 사업을 도모한다. 그리고 거의 즉각 조율사를 사업의 파트너로 채용해 일단 월급부터 지급해버린다. 그리고 훌쩍 뉴욕으로 떠난 두 남자. 볼품없는 조율사와 달리 예순이 훌쩍 넘었지만 183센티미터의 키에 짙은 눈썹, 높은 코, 반짝이는 은발 곱슬머리를 가진 린쌍은 뉴욕에서도 에밀리와의 추억이 있었으며, 후회만 절절하게 하게 만든 6년의 결혼생활 끝에 이혼한 전처와 온몸에 문신을 그린 무능력한 아들과 이제 반년도 남지 않은 삶만 부여받은 암환자인 전처의 남편이 있었다. 그리고 린쌍, 그가 아는지 모르는지 조율사는 감도 잡히지 않는 말총머리의 남자도.

  그렇게 사는 거지. 알면 뭐하고, 모른다고 한들 어쩌랴. 해는 저물고, 바람 불고, 눈보라도 치는 이역만리의 땅 뉴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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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6-07 05: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마르그리트 뒤라스, <부영사>
수요일. 솔 벨로, <험볼트의 선물>
금요일. 윌라 캐더, <루시 게이하트>

blanca 2024-06-07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원문으로 읽었으면 좀 달랐을까? 이런 생각 들었어요. 분량도 그렇고요.

Falstaff 2024-06-07 16:12   좋아요 1 | URL
옙. 조금 더 길게 써도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만 ㅎㅎㅎ 그거야 작가 권리니 어쩌겠나 싶더라고요. 오랜만입니다. 반가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