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을유세계문학전집 89
유리 트리포노프 지음, 서선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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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포노프의 작품은 이 <노인> 말고 예전에 경희대학 출판부에서 찍은 <교환>이란 얇은 책 말고는 없는데 그것도 아쉽게 절판이다. 트리포노프는 <노인>을 1978년에 발표를 하고 3년 후인 1981년에 세상을 떠나 이 작품이 그의 유작이 된다고 하는데, 1925년생이니 만 53세에 완성한 소설이다. 겨우 만 53세에 두 남녀 노인(들)의 신체적 노쇠와 남자 노인의 상태를 이리 잘 묘사했단 뜻이다. 거참. 정작 본인은 56세밖에 살지 못해 노인이란 세월을 겪어보지도 않을 운명이었음을, 이땐 몰랐을 거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
 책의 주인공 파벨 예브그라포비치(‘창비’나 ‘열린책들’에서 찍었으면 모르긴 몰라도 “빠벨 옙끄라뽀비치”라고 썼기 십상이다), 인생의 황혼을 만나 나이 50이 훌쩍 넘어도 아직까지 철딱서니 없는 아들과 아들놈의 전처와 지금 처, 딸과 사위, 이렇게 좁은 집에서 살고 있는데 식솔들한테 새로운 넓은 집으로 이사할 수 있게 당의 주택보급위원회에 신청도 좀 하고 힘도 쓰라고 날이면 날마다 독촉을 받으면서, 틈틈이 미하일 숄로호프가 일찍이 대작으로 완성한 <고요한 돈강> 시절의 위대한 카자흐 영웅 세르게이 키릴로비치 미굴린이 1919년에 독자적으로 백군 데니킨을 토벌하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간 사건을 심각하게 조사 연구하고 있던 노인이다. 파벨이 한 잡지에 미굴린에 대한 글 또는 논문을 발표한 것을 5년이나 지나서 발견한 옛 친구이자 파벨의 첫사랑이자 영웅 미굴린의 두 번째 아내였던 아샤, 즉 안나 콘스탄티노브나 네스테렌코가 읽고 그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1970년대의 파벨은, 그리고 많은 노년세대들은 그들의 자식세대와 거의 완전한 불통 상태로 접어들게 되는데, 그리하여 옆집에 사는 사별한 아내 바냐의 절친한 친구 폴리나는 말로는 영웅의 집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공립양로원에 불과한 기관으로 들어가기로 작정하는 걸 보고, 그래도 자식들하고 같이 살거나 살아주는 것이 노인들의 의무 또는 즐거움, 그것도 아니면 관례의 하나라고 생각하는, 그냥 보통 노인이다. 그렇게 이제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던 파벨에게 첫사랑이자 자신이 직접 만나보기도 하고 재판과정에 참여하기도 한 미굴린이란 한 영웅의 두 번째 아내이기도 한 아샤의 편지를 받고, 그것도 대단한 흥미와 관심을 표명하며 동시에 옛 시절의 소년다운 사랑을 듬뿍 담은 정다운 글을 받고는 다시, 당시 1919년 10월에 있었던 미굴린의 이상 상황에 대한 길고 긴 상념에 빠진다.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카자흐 지방의 반혁명과 동러시아에서 옛 귀족을 중심으로 한 백군 저항세력에 오랜 고통을 겪은 소비에트 내 작가들은, 이 시기가 아주 중요한 작품의 소재였을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카자흐 지방의 내란은 역시 앞에서 얘기한 미하일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 강>이 압도적이고 총체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고, 동러시아 백군의 반혁명투쟁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로 대표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는 <고요한 돈 강>의 일부인 한 명의 영웅의 행위를 따라가면서 동시에 노인들의 기억에 완전 의존하는 왜곡된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즉, 아샤의 기억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남아 있어서 여러 가지 객관적 사실은 아예 관심이 없거나 기억 자체가 삭제된 상태로 파벨에게 전달을 할 수 있는 반면, 파벨은 그간 숱한 자료를 다 갖고 있어 아샤가 하는 말의 특정 부분만 골라 다시 사건을 구성할 수 있게 된다.
 자, 벌써 얘기 다 한 거 같다. ① 파벨 또래 1970년대 모스크바 노인들은 젊은 세대들과 거의 불가능한 의사소통의 벽 안쪽에서 마치 게토처럼 폐쇄되어 있는 상태였고, ② 아샤로 인해 5년 만에 다시 파벨의 관심과 자료의 재정리에 착수한 그의 작업에, 노인들 특유의 기억하고 싶어 하는 사실만 추려서 기억하는 능력이 더해진 새로운 아샤의 증언을 확보하였으나 전에는 많고 넘쳤던 시간이 이젠 지극히 한정된 길이만 남겨두고 있는 상태. 따라서 ①과 ②의 해소가 소설의 결말이 되겠다고 지금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①번 문제가 어떤 수순에 의하여 해소되는지는 절대로 이야기해주지 않을 것이고, ②번 문제는 과연 딱 그 하나의 것만 가지고 있을지, 아니면 또 누군가의 한 부분의 기억이 머릿속에서는 완전 소거된 불완전한 기억일 수도 있을지, 만일 그렇다면 그게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가르쳐주지 않겠다.
 이렇게 써 놓으니까, 일반적으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한 사건을 전개하는 형식의 소설이라고 말 하는 것 같은데, 내가 읽기론 그랬다. 마치 대학에 입학해 학교 도서관에 가니까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우리나라에서 소설 쓰는 사람은 뭘 먹고 살 수 있었을까 의심스러워했다가, 제대하여 복학해 다시 도서관에 가니까 이젠 광주항쟁 없었으면 또 소설가들은 어떻게 재료를 구할 수 있었을까 신기해한 거처럼. 그래서 특별하게 이 책을 읽어보시라 권하기는 그렇고, 카자흐 기병의 용맹한 전투를 필두로 하는 고요한 돈 강 유역에서 펼쳐지는 로망을 꼭 한 번쯤 경험해보시면 좋을 텐데 그러기 위해선 역시 <고요한 돈 강>을 읽어보시리라, 이거 한 편이면 너무 충분히 만족하시리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시간이 부족하고 정성이 모자라고 또는 그놈의 귀차니즘이 몰려온다면 비록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다르지만 고골이 쓴 <타라스 불바>로 대신하시는 것도 뭐 무난하겠지.
 물론 이 책 <노인>도 수작이다. 이 점을 말하지 않고 독후감을 마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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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4
E. L. 닥터로 지음, 정상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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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글래스33라고 하는 개새끼, 너 기억나?”
 “…… 그리고 마까르시라고 하는 그 사악한 늙은이……”
 “…… 그 작자들은 공산주의자들 모두와 내연의 관계였다는 죄책감 속에서 살았다고 난 확신해……”

 

 33 미국의 공산주의자로 소련에 미국의 원자폭탄 정보를 건넨 스파이 혐의로 아내와 함께 처형당했다

 

 

 위는 후안 마르세의 소설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377~378 쪽에 나오는 대사와 각주다. 첫 문장에서 나오는 그린글래스의 각주(33)는 매우 잘못된 정보다. ①“소련에 미국의 원폭 정보를 건넨 스파이 혐의”, 즉 스파이 활동을 해서 기소, 재판 사형집행을 받은 것이 아니라, ② “스파이 활동을 하기로 불법으로 공모했다는 혐의로 기소”, 재판, 처형됐으며, ③ 죽은 사람은 책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에서처럼 다비드 그린글래스가 아니고 ④ 그의 누나와 매형인 에델 그린글래스 로젠버그와 줄리어스 로젠버그다. 우리나라 유명 출판사의 엉터리 각주가 어제 오늘이 아니니 새삼스레 침 튀지 않겠지만, 좀 주의해서 각주 달아라, 창비!
 위 네 가지 사실을 소설적 시각으로 각색하여 죽은 로젠버그 부부를 책에서는 폴과 로셸 아이작슨 부부로 바꿨고, 그린글래스는 완전히 가공인물, 그러나 아이작슨 부부의 가까운 이웃인 치과의사 나이 많은 셀리그 민디시로 했다. 로젠버그 부부에겐 마이클과 로버트라는 두 아들이 있었으나 <다니엘 서>에선 다니엘과 수전으로 변형시켰다(상세 내용은 책의 해설 450쪽). 그래서 책의 제목을 구약성경의 <다니엘 서 Book of Daniel>이면서도 죽은 자들의 아들 다니엘의 경험과 독백, 그리고 아들의 입장에서 당연히 했을 수밖에 없었던 사건의 재구성 등이 가능하며 서로 연계가 되게끔 구성했다.
 책은 1971년에 나왔는데, 진짜 책을 쓴 것은 1969년부터 70년 정도 됐을 터이니, 사실상 60년대 미국소설 및/또는 미국문화, 정서 같은 걸 다 아울렀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책을 쓰는 중에 미국 역사상 가장 컸던 대중 집회 우드스톡 록 페스티벌이 있었고, 그 전 1967년에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학생, 지식인, 사회주의자 등의 진보주의자, 인종과 젠더 해방론자, 히피, 저널리스트들이 징집영장을 펜타곤에 반납하기 위해 집결하여 시위하고 행진하다가 조국의 경찰로부터 무지막지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노먼 메일러, <밤의 군대들> 참조).
 로젠버그, 책에서 아이작슨 부부의 처형과 펜타곤 진격 사건과의 사이에 무엇이 있었을까. 로젠버그의 실제 아들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행동했는지 진실은 모르겠다. 소설에서는 아이작슨 부부의 아들 다니엘이 부모가 처형된 후 동생 수전과 함께 괜찮은 변호사 르윈 씨의 집에 양자 양녀로 입양되어 잘 교육을 받으며 성인이 된 후 참한 아가씨 필리스와 결혼, 독립해 아들을 하나 둔 상태에서, 수전이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전을 만나는 것에서 시작한다. 자살을 실행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수전을 고통스럽게 바라보면서 다니엘은 친부모가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고 거의 만나지도 못하다가 처형당한 사실이 수전의 인생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 자각하면서 드디어 십 몇 년 전의 사건을 재구성하게 된다. 그 와중에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실제로 로젠버그 부부가 그랬듯이 작중 아이작슨 부부 역시 공산당원으로 설정했다)의 아메리카 침공을 극히 혐오했거나 두려워한 미국이 해당 사건에 모종의 음모를 깔아두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에서 스스로도 사회주의 또는 평화주의, 심지어 히피상태로 변해가며 문제의 1967년 펜타곤 진격의 앞자리에 서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음모론 적 소설로 볼 수도 있겠다. 2차 세계대전은 세계만방에 미국의 힘, 특별히 전쟁 수행능력과 원자폭탄이라는 신무기를 과시한 중요한 기회였으며 이후 미국은 (약간 바람직하지 않은 의미를 포함해서) 자신의 뜻대로 세계적 질서가 만들어지기를 바랐으며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지구 유일의 경찰국가로 존재하기를 원했던 거 같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까지 미국의 가장 강력한 상대국이 있었으니 바로 소비에트 연방. 소련이 위협이 되기는 하지만 40년대 까지는 유일하게 거대 살상무기인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으며 남태평양의 작은 군도 하나 정도는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원자폭탄 시험발사장으로 거덜을 낼 수도 있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만들었다. 세계대전 이후 거의 모든 미국의 대통령과 국무장관은 완강한 보수정책과 반 소련, 반공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펴왔는데, 진짜로 미국이 그렇게 완강하고 공권력을 통 투입하면서 공산주의가 본토에 상륙할 수 있다고 믿어서 반공정책을 밀어붙였을까? 그럴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래도 이어지는 의문. 공산주의를 미국이 혐오했던 이유는, 1917년 레닌이 소비에트를 만든 이후 한 번도 끊이지 않고 유구한 전통으로 자리 잡은 독재, 공포 정치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민주주의를 국체로 한 미국 입장에서 두려웠을까, 아니면 정통 공산주의 이론에 입각한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상륙하게 되면 기껏 만들어서 유지하며 지금 한없이 향유하고 있는 소수의 부르주아들에게 몰락을 가져오게 될까 두려웠을까. 나는 두 번째라고 본다. 거의 대부분의 인구가 유럽에서 이민 온 백인으로 채워진 (비교적)신생국. 더하기, 유럽에서 항문이 째지게 가난한 하층계급으로 살다가 이제 갑자기 떼돈을 번 일천한 전통의 부르주아들의 집단. 여기에 가세한 높은 지능의 엘리트들. 이들 소수, 극소수가 거의 모든 방면에서 미국을 유럽보다 몇 배는 더 고집스런 보수국가로 만들었다. 불과 몇 대에 걸친 지독한 노력 끝에 자수성가한 (다시 한 번 강조하건데) “극소수”의 부르주아와 엘리트들에 의한 지도체제는 국가의 정치적 권력과 언론 등을 통한 여론형성과 일반 시민들의 의식까지 수정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혹시라도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대다수의 프롤레타리아에게 뺐길 수도 있다는 지극한 공포에 대항했을 것이다.
 물론 세계대전 전에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때는 영국과 프랑스라는 유럽의 맹주가 많은 부분을 통제해와 전후 세계처럼 스스로 전 지구적 패권을 쥘 필요도 없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젠 세상이 바뀌어 세계 도처에서 촉수를 뻗는 공산주의의 뿌리를 파 없애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했으며, 그리하여 미국 대통령을 위시한 행정부와 입법부는 그들이 한국과 베트남 등에서 벌이고 있고 벌일 예정인 전쟁에 원자폭탄을 사용할 것을 언제나 심각하게 고려했다. 실제로 그랬고, 원폭투하를 반대한 맥아더는 한국전쟁 중에 군복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때 로젠버그 사건, 즉, 이 책에서 아이작슨 사건이 일부 조작된다. 내가 ‘일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미국은 권력이 의회에서 나오는 나라이기 때문. 즉, 아무리 인도적 견지에서 맞지 않더라도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에선 하나의 규범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이 엄연하게 존재했고 실제로 공산당이었던 아이작스 부부의 행동엔 스파이 까지는 아니더라도 스파이 활동을 하기로 의식적으로 또는 의식하지 못한 상태로 ‘불법으로 공모’했을 수도 있었거나 적어도 그렇게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했겠다는 얘기. 이 책에서도 아이작스 부부가 완전히 무죄라고는 주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히려 더 신뢰가 가는 것. 다만 어떤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조금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것이 책을 쓴 1971년까지 국가기밀로 구분이 되어 작가가 여전히 자료에 접근할 수 없었든지, 아니면 기소장에 구체적 불법행위의 내용이 적혀있지 않았든지 할 터인데, 어떤 경우라도 명백한 불법행위를 밝히지 않는 것은 “필연적으로” 음모론을 만들어낼 충분한 가능성을 갖는다는 데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그 문제를 파헤친 소설.
 문제는 정부권력에 의하여 부당하게 중범죄자가 돼버린 개인, 아이작슨 부부. 극소수 부르주아와 엘리트로 구성된 저 높고 높은 신들의 전당에서 조작한 공산주의에 의한 위협과 공포, 거부감들이 일반 시민 층에도 이미 충분히 전파되어, 아이작슨 부부는 독후감에서 제일 먼저 밝힌, 스페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벌써 악당, 개새끼니 사악한 늙은이니, 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비단 아이작슨 부부, 몇 년 후 형 집행으로 전기의자에서 통구이가 되어 죽어간 부부에게 국한한 일일까? 그들의 아들과 딸의 이름으로 아직 시민들 옆에서 생존해야하는 다니엘과 수전. 20세기 미국에서 공산주의자라는 주홍글자를 달고 전기의자에서 처형된 부모를 둔 남매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의 부모를 경원하고, 미워하고, 무서워했던 우리에게 이 남매들의 삶이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한 시절, 미친 시절에 깊게 생각하지 않았던, 제도상 가벼운 폭력이 남은 사람에게 던져주는 숙제. 이것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책.
 조작된 음모론, 솔직히, 남 얘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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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창비시선 313
이정록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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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씨. 거참 독후감 쓰기 힘드네. 한 20분 가까이 쓴 거 몽땅 지우고 다시 시작한다. 시집 읽었다고 ‘시작한다’가 ‘시작詩作’을 의미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이래봬도 내가 주제꼴은 안다. 내가 시를 쓰면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꼴값을 한다고.
 이정록. 이 사람의 시집을 읽다가, 정말로, 한 치 거짓 없이 말 하건데, 눈알이 확 뒤집어지면서 앞에 환한 광명이 비추는 것이, 아하, 대한민국의 시에 건강한 알통이 사라져버린 것이 그간 몇 해이던가, 육모방망이로 뒤통수 언저리를 한 방 얻어터진 듯한 느낌을 숨기지 못했다. 이런 시 읽어보는 게 얼마만이냐! 이성부 이후 처음 아닌가 싶어 얼른 이성부를 검색해봤더니, 오호라, 5년 전에 이미 드런 세상을 떴다. 늦었지만 명복을 빈다. 물론 이성부와 이정록의 시작법은 상당히 다르다. 그냥 알통이 닮았다는 것 뿐.
 시집은 모두 4부로 되어 있다. 내 읽기로, 각 부마다 처음 나오는 시가 이 책의 대표 시들이다. 먼저 1부의 첫 번째 시 한 번 읽어보자.

 

 

 붉은 마침표

 

 

 그래, 잘 견디고 있다
 여기 동쪽 바닷가 해송들, 너 있는 서쪽으로 등뼈 굽었다
 서해 소나무들도 이쪽으로 목 휘어 있을 거라,
 소름 돋아 있을 거라, 믿는다

 

 그쪽 노을빛 우듬지와
 이쪽 소나무의 햇살 꼭지를 길게 이으면 하늘이 된다
 그 하늘길로, 내 마음 뜨거운 덩어리가 타고 넘는다
 송진으로 봉한 맷돌편지는 석양만이 풀어 읽으리라


 아느냐?
 단 한 줄의 문장, 수평선의 붉은 떨림을
 혈서는 언제나 마침표부터 찍는다는 것을  (전문. 10쪽)

 

 

 시가 쉽다. 시를 해체해서 이해해야할 만큼의 은유도 아니고, 감정의 분비도 없고, 그냥 노골적 은근함으로 그리움과 서로 하나됨을 노래하고 있다. 거기다가 무척 건강하다. 요새 숱하게 읽은 감상의 과잉분비, 주체 못하는 은유, 이해할 수 없는 상징은 없다. 첫 번째 시부터 마음에 탁, 들었다.
 위에서 얘기했다. 각 부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시들이 제일 좋거나 재미있다고. 이어서 2부의 첫 시를 읽어보자. 진짜로 읽기 전에 마음을 단단히 해야 한다. 자칫하면 턱이 내려앉을 수도 있으니까. 준비하시고,

 

 

 작명의 즐거움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싸 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아난열정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봄 가뭄에 졸아붙은 올챙이 눈, 그 작고 깊은 끈적임을
 천배쯤 키워놓으면 바로 콘돔이거니, 달리 요약 함축할 길 없어
 개펄 진창에 허벅지까지 빠지던 먹먹함만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나란히 써놓고
 머릿속 뻘구녕만 들락거려보는 것이었다  (전문. 31~32쪽)

 

 

 이 시를 읽는 도중에 사무실의 숱한 선남선녀가 대책 없이 웃어젖히며 눈물까지 질금거리는 나를 보고 지들끼리 한 마디 했다. “부장님 왜 지랄이셔? 약 먹었대?” 그러거나 말거나 이쯤에서 난 이정록이란 인간이 뭐하는 인종인지 궁금해져 책 앞날개에 있는 그의 사진을 째려봤다. 이크. 걸리면 빗맞아도 한 방에 가겠구나. 1964년 홍성 생이라는데 책 읽어보면 그중에서도 돈자랑 힘자랑 하지 말라는 광천이 고향일 거 같다. 하이고 입조심 해야지. 어딘가 좀 미진해 네이버 검색했더니, 작은 아이 졸업한 고등학교 한문교사란다. 현직이. 재빨리 아이한테 문자 보내서 너 이정록 선생이라고 있었느냐, 했더니 대답이, 아버님, 전 이과생이라 모르겠습니다.
 다시 시를 보시라. 교사 이정록은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을 학생들한테 제시해보라고 했을 거다. 이런 주제면 고딩들 좋아 죽는 수준이겠지. 그래서 별의 별 것이 다 나온다. 그걸 칠판에 적은 다음에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었건, 아니면 쪽지에 써서 내라고 했건 간에 그중에서 선생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들만 골라 주욱 나열해놓고, 여기다 자기가 생각했던 이름 세 개,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보태 시를 만든 거다. 시 쓰기, 참 쉽죠? 그렇다. 쓰기 쉽고 읽기는 더 쉬운 시. 이게 진짜 아냐?
 2부로 말할 거 같으면, 이 시집 총 4부 가운데 입심이, 정말 대단한 부분이다. 처음부터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개불장화로 시작해 이어서 시인의 어머니가 풀어놓는 충청도 사투리 걸쭉한 입담이, ………, 허, 말을 말아야지 어떻게 그걸 다시 문자로 옮겨.
 이어서 3부엔 이미 돌아간 아버지의 여러 모습, 여류 작가가 쓴 책에서 그동안 너무도 흔하게 봐왔던 무능력하고 폭력적이고 심지어 패륜에 가까운 ‘이기적인 가장’과 달리 큰 그릇과 넉넉한 마음이 여유로운 농촌형 아버지상과 시인의 고향 혹은 퇴색해가는 농어촌의 풍경을 그려낸다. 4부에 접어들면 “내 일만으로도 죽을 지경이라고 엄살 피울 때”에서 “족진 머리처럼 나는 뒷전인 채 피붙이들 때문에 먹먹”(<멱> 101쪽)하게 성장한, 즉, 누군가의 슬하膝下에서 어느덧 누군가의 어미아비가 된 자신을 투영하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나이 먹는다고 일컫는다. 시집 한 권에서 독자는 낳고 엄마의 급성 유방염으로 고름젖을 빨며 자라고, 콘돔을 보며 ‘물안새’라고 일컬을 줄도 알게 되면서 벌써 엄니, 아버지의 옛 모습을 추억하는데 뒤 돌아보니 어느새 자기 무릎 아래에 새끼들이 올망졸망한 거다. 한 인생이 얇은 시집 한 권에 다 들어 있는 거.

 

 발문을 이 시대의 수다꾼 한창훈이 썼다. 이이가 이문구의 뒤를 잇는 입담의 세자라고 그의 20대 때 내가 일찍이 선언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로 공감이 가는, 공감, 절대공감, 동감, 절대동감인 대목이 있어 도저히 소개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겠어서 짧게나마 인용한다.

 

 “이를테면 시인 직업도 국가자격증이 있고 자격증 취득 시험을 면접으로 본다 치자.

 

 아니, 면접 오면서 소주병 들고 들어오는 사람이 어딨어요? 술병은 입구 우산꽂이 같은 곳에 두고 들어오세요. 아무리 해장이라도 그렇지, 국가행정 알기를 원…… 저기요, 초상났어요? 그만 좀 우세요. 화장실 거기 있으니 콧물 좀 닦으시고요. 으이그, 다른 곳으로 얼른 전근해야지, 이게 무슨 짓이야 그래. 그리고요 제발 면접관 앞에서 피 좀 토하지 마세요. 화장실 옆에 따로 각혈실이 마련되어 있으니 거기를 이용해주시구요. 피 토하면 곧바로 자격증 준다는 말은 브로커들이 하는 소립니다. 속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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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3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정말 웃기고 생동감 있네요.. 시도, 발문도, 리뷰도..덕분에 이번주 힘차게~ 쭈욱~

Falstaff 2017-11-13 10:25   좋아요 0 | URL
진짜 재밌고 건강한 시집입니다. 시집을 아무리 뒤져봐도 책의 제목 <정말>이 정말 안 나온다니까요. ㅋㅋㅋ
 
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창비세계문학 47
후안 마르세 지음, 한은경 옮김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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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처음 듣는 작가. 2017년 11월 현재, 알라딘에서 이 작가의 모든 책을 검색해보니 <떼레사……> 말고는 <여대생과 좀도둑> 딱 한 권이 더 있는데 절판됐고, 출판사는, 망했다. 근데 이렇게 재미나게 소설을 쓰는 작가가 왜 이리도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참. 내가 읽은 책은 스페인에서만 7판 째 찍은 책을 번역한 거다. 그래서 맨 앞에 작가의 “7판 작가의 말”을 붙였다. 초판 찍은 다음에 10년 만에 7판을 찍었으니 스페인에선 말 그대로 베스트셀러였던 모양이다. 하긴,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현대 스페인(어) 문학에 관심을 두어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한 건 영미, 불, 독, 일문학과 비교하면 얼마 되지 않긴 하지만. 책의 초판이 1966년이다. 무대는 1933년생인 작가가 23세였던 1956년. 그러니까 자신이 젊었을 때에 겪은 스페인 내 학생운동 세대의 지난 모습을 10년이 지난 다음에 뒤를 돌아보고 쓴 작품이란 뜻. 스페인 판 386이라고? 아몰랑.
 1956년부터 한 1년 반 가량의 시대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벌어진 학생운동, 그 속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의 모습. 당시 유럽 어느 지역하고 비교해도 지난 세기 계급 또는 계급에 따른 차별이 강하게 잔존했던 시절에 (쁘띠)부르주아 계급의 자재들과 도시빈민 사이에 엄혹하게 존재했던 늪. 입으로는 평등과 분배를 웅변하지만 실생활에서 혈관을 타고 흐르는 계급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젊은이들, 가운데 (쁘띠)부르주아 자재들은 결코 두 계급 사이에 입을 벌리고 있던 늪, 이젠 늪도 늪 나름이라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냥 더러운 물이 조금 고인 웅덩이 정도로 좁아졌을지언정 그걸 건너려하지 않는다. 반면에 빈민 그룹의 대표 젊은이, 삐호아빠르떼(‘신분상승을 노리는 속물’이라고 각주에 적혀있다. 이하 “속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마놀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신발을 신은채로 철벅거리면서 웅덩이를 건너 상대에게 손을 내민다. 한 방에 신분상승을 이루려는 속셈으로.
 이렇게 너절하게 쓰니까 재미없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마르세가 깔아놓은 건 젊은 남녀 간의 상열지사. “마르떼”는 ‘쁘띠’도 아니고 그냥 ‘부르주아’의 딸. 속물 마놀로가 오늘도 생업에 충실하기 위하여 바르셀로나에서 고급 오토바이 한 대를 (나중에 팔아먹을 속셈으로) 훔쳐 타고 바닷가로 놀러갔는데, 거기 한 여름별장에서 (쁘띠)부르주아 처녀총각들이 모여 파티를 벌이고 있는 광경을 보고 만다. 갖고 있는 거라고는 잔머리와 용기밖에 없는 마롤로. 아무렇지도 않게 파티에 참석하고 아주아주 괜찮은 아가씨 하나를 발견했으나 금방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버린 다음 그냥 괜찮은 아가씨를 발견, 진을 콜라에 탄 칵테일 꾸바리브레 한 잔을 들고 접근, 크, 키스에 성공한다. 그랬더니 이 아가씨, 금세 열이 올라 아랫배와 허벅지를 슬쩍슬쩍 마롤로의 몸에다 대고 비비적거리는 거 아냐? 으때, 재미 좋겠지. 그렇다. 읽는 재미, 죽인다. 이런 장면들이 야하지 않고 아주 장난스런 필체로 슬쩍, 마치 검지와 중지만 써서 튕기는 듯한 묘미. 이 다음이 궁금하시다고? 몇 달 후, 여름별장 2층 창문을 넘어간 마롤로. 드디어 달빛이 교교한 가운데 거의 홀랑 벗은 채 자고 있는 마루하 아가씨 방의 창문을 넘고, 숨죽여 침대에 올라 아가씨 옆에 눕는 데 성공하는데, 그러고 마느냐고? 아니, 다른 (모든)것도 성공한다. 알고 보니 마루하 아가씨, 프로페셔널을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이 없는 게 아니라 (시절이 1956년이다) 그리 티내고 일을 치루진 않았지만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게 조용조용하게 만리장성을 쌓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서 잠깐 붙인 눈은 여명이 밝아서야 깨고 만다. 그 순간, 우리의 속물 마롤로의, 잠에서 덜 깬 시선은 방의 바람벽에 머물게 되고, 여명은 바람벽의 옷걸이에 걸린 검은 공단 유니폼과 앞치마와 머리그물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몇 달의 고생을 바쳐 드디어 자빠뜨린 마루하 아가씨는, 아이고, 여름별장 주인집의 하녀였던 것이다. 이런 걸 ‘폭망’이라고 한다며?
 마루하네 주인집, 그 속에서 외동딸의 이름이 책의 타이틀 롤, ‘떼레사’다. 1950년대 중반 스페인의 학생운동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던 소위 집행부, 또는 핵심으로 활약할 정도의 좌파. 떼레사와 그녀의 처녀성 훼손에 온 정열을 바친(적이 있는) 루이스 뜨리아스 데 히랄뜨로 대표하는 이들은 몇 년 지나면 빠른 시간에 스페인 내 좌파 운동이 그냥 생활, 삶의 작은 한 부분으로 바뀌는 걸 실감하게 되고 근본적으로 (쁘띠)부르주아 태생답게 지극히 자연스럽게도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의 자회사 사장, 여자 친구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기업의 계열사 사장 등의 기업가, 변호사, 의사, 정치가, 그것도 아니면 룸펜 부르주아 등으로 퇴행해버리고 만다. 그럼, 자본주의 힘이 을매나 대단한데. 우리도 봤잖아? 젊어서 말 그대로 가열차게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던 무수한 인간들이 보수당 국회의원도 되고, 도지사도 되고, 대기업 상무도 되고, 부사장도 되는 거. 여기나 거기나 자본주의가 여간 힘이 세야지.
 하지만 그건 10년 후에 일어날 일이고, 지금 1956년엔 철없는 부잣집 아가씨 떼레사는 마롤로, 이 작자의 온갖 행태, 경찰을 피하고 은밀하게 돌아다니고, 중의적 이야기를 잘 하고, 심지어 단문으로만 대답하는 것들로 자기 마음대로 넘겨짚어, 속물이자 양아치이자 오토바이 절도범이자 잘 생긴 바람둥이를 사회주의 운동, 즉 노동운동의 핵심으로 착각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얼치기 운동가 떼레사가 마롤로에게 진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기막힌 역전 상황. 마롤로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발의 미녀에다가 몸매 빵빵한 아가씨에게 접근해서 나스타샤 킨스키의 것과 비슷한 볼륨의 촉촉한 입술에 찐한 키스를 퍼붓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무리 재수가 좋고 운이 좋아도 어디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 있나? 마롤로, 온갖 곳에서 떼레사와 진한 키스를 하고 여기저기를 주물럭거려도 딱 마지막 하나, 그게 안 되는 거다. 이제 갓 스무 살 넘은 마롤로의 신체조건과 정념과는 무관하게, 예를 들어 나일론 팬티(이렇게 쓰는 거 보다 “나이롱 빤쓰”가 어감이 훨씬 좋긴 하다) 한 장, 딱 하나 남았는데 ‘바로 그 순간’(뮤지컬 노트 제목하고 비슷하지만 하여간 그 순간)에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려 늙은 식모가 출현해서는 눈알에 불을 키고 째려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끝장을 못 보는 거다. 그게 인생이지 뭐, 다 그런 거지.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사랑과 육체적 욕망을 사상적 동일성과 단단히 착각하는 떼레사. 떼레사를 사랑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하여간 그녀를 이용해 적어도 안정된 직장이라도 얻고 싶은 우리의 속물 마롤로. 그들을 둘러싼 (쁘띠)부르주아 계급과 도시빈민과 악당들과 (룸펜)인텔리겐챠 젊은이들. 그들의 환상이 비등점을 향해 끓어가는, 끓어갔던 시절, 1956년과 1957년의 스페인.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스페인(어) 소설, 은근히 끌리는 게 있단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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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2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이거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 정말 재밌네요.
빨랑 읽고 재미나다고 알라딘 동네에 소문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영화로 나왔어도 꽤 재미있을 거 같은데... 스페인에서는 나온 작품이 있을 것도 같아요.

아, 근데 왠지 <여대생과 좀도둑>이 곧 <테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 이 책일 거 같습니다.

궁금해서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같은 책 맞네요. <여대생과 좀도둑> 책 표지에 원제가 <Últimas tardes con Teresa>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Falstaff 2020-04-21 10:32   좋아요 0 | URL
그죠? 이거 정말 재미있어요.
엇, 제목만 보면 그럴 거 같네요. 전 <여대생..> 공연을 못봤거든요.
ㅋㅋㅋ 잠자냥님이 소문내면 금방 퍼질 겁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0-04-21 10:33   좋아요 1 | URL
네네,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같은 책이네요. 유일하게 국내 출간된 작품이 이것 뿐이라니 왠지 아쉽?? ㅎㅎㅎ

Falstaff 2020-04-21 10:39   좋아요 0 | URL
아, 전 짱구 같아요. 난독증이 생겼을지도...
하신 말씀의 뜻을 잘 못알아들었군요. ㅠㅠ
내가 쓴 것도 모르고 공연 운운했다니 ㅎㅎ 웃음만 나옵니다. ㅋㅋㅋㅋ
 

 

 

 며칠 전, 이야기 끝에 이젠 너무 자주 입끝에 올라 식상한 주제, 무인도에 가면 어떤 책? 이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고……. 진짜 아무 생각 안 났다. 그리하여 책 대신에 가스 라이터, 코펠, 칼, 3인용 텐트와 (낚시대 말고) 통발. 이렇게 다섯 개 골랐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인도 운운이, 내가 평생을 두고 읽는다면 어떤 책을 선택하겠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고, 그게 또 멋을 좀 부리느라 만일 내가 자유로운 독서가 가능한 정치범 또는 사상범으로 교도소에 간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겠는가, 라고 바꿔봤다. 그러니 교도소 운운도 소위 "필생의 책"을 선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제 마침 하던 일이 일찍 끝나 한 번 골라봤다. 다섯 개를 고른다는 전제로 시작했다.

 

 

 

1. 소포클레스, 천병희 역, <소포클레스 비극전집>

 누가 20세기에 그리스 비극을 읽어! 일갈을 하고 절대 나한텐 그리스 비극을 읽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건 내 장담대로 이루어졌다. 20세기에 난 그리스 비극은 절대 읽지 않았으니까. 세월이 흘러흘러 21세기가 되고, 카를 오르프가 작곡한 <외디페>를 보고 듣고, 어느새 내 책상엔 <소포클레스 비극전집>이 올라와 있었다.

 하루키가 나에게 가르쳐준 거의 유일한 가르침은 <노르웨이의 숲>에서 말하기를, "30년 이상 된 책을 읽어. 그건 이미 검증이 끝났다는 얘기야."란 대사.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는 30년 씩 100번을 더 지나 완벽하게 검증이 끝난 위대한 작품. 시대를 초월한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의 비극적 절망과 종말은 독자의 심장을 저며 놓는다.

진정으로 불쌍한 인류는 소포클레스를 읽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자들이다.

 

 

2. 베르길리우스, 천병희 역, <아이네이스>

 목마를 타고 침공한 그리스 군대에 의하여 완벽하게 괴멸된 트로이. 카산드라의 정확하지만 공허한 예언은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고 스스로 멸망한 가운데 장군 아이네이스는 늙은 아버지를 업고 불타는 트로이를 뒤로 한 채 새로운 약속의 땅 로마를 찾아 긴 항해에 나선다.

 영웅과 사랑의 서사. 서양 문학을 알기 위한 기초 텍스트가 아니라 정말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답고 영웅적인 개척자 이야기.

 

 

 

 

3. 황순원 전집

 

 

 

 

 

 

 

 

 

 

 

 위 책들. 모두 11권 가운데 열 권만. 11번째 전집은 황선생의 시들을 모아놓은 거다.

 조선어로 글을 쓸 수 없는 시절이 닥치자, 교사 직을 내려놓고 낙향해 침묵 속에 굳건하게 조선어로만 소설을 썼던 대나무 같은 이. 오직 작품으로만 말을 남긴 세계문학의 위대한 교사. 언어는 선생에게 종교였을 것이다. 개별 작품에 대한 호오는 다음으로 하고 시절을 뚫고 당대의 서정을 간결하게 품은 글의 만찬을, 교도소 안에서라면 만찬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4. 김수영 전집 1.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만, 김수영과 신경림으로 나는 시를 알았다.

 비록 이이가 혁명도 못하고 울화가 돋아 수유리 집구석의 방만 바꿔버리는 양계장 주인이었을망정, 그리하여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을 망정, 전후 폐허 속에서 진정한 선비였음이 그의 시 속에 온통 들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5. 최명희, <혼불>

 우리나라 소설문학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

 

 

 

 

 

 

 

 

 

* 이것들 말고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최인훈 전집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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