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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느질하는 여자
김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12월
평점 :
김숨이 쓴 <바느질하는 여자>를 숨 가쁘게 읽었다. 오랜만에 읽은 아름다운 소설. 남자는 죽어도 쓰지 못하는 서늘하고 엄정한 미학. 영원히 끝나지 않는 담배씨만 한 한 땀 한 땀을 무한하게 계속해야 하는 천형의 바느질. 누비. 책을 넘겨 처음 부분을 읽으면서 마치 최명희의 <혼불> 1부 도입부를 보는 것 같은 낯섦과 흥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의식을 팽팽하게 잡아당기는 서늘한 서술. 이것이 놀랍게도 첫 장부터 마지막 630쪽에까지 균일하게 깔려있다. 바늘 가운데서도 가장 작은 누비바늘에 자신의 생애와 삶을 거느라 충만과 행복과 사랑을 포기하는 세 모녀 이야기.
1974년생 작가가 바느질과 수의를 포함한 한복과 옷감에 관하여 숱하게 많은 사람들과 책에 신세를 져 잘 빚은 자기 같은 작품.
주인공이자 바느질하는 여자인 수덕. 이이는 경주 인근의 농촌 동네에서 오직 누비옷을 만들어 파는 것을 업으로 성姓이 다른 딸 둘을 키워낸다. 누비바느질이 수덕이고, 수덕이 누비바느질. 큰 딸 금택이 아홉 살, 작은 딸 화순이 일곱 살 때 삼륜차의 속명이었던 ‘딸딸이’를 타고(작가가 차종을 혼동한 것이 틀림없다. 아무리 없는 살림이라도 삼륜차를 몰고 하루 종일 운전해 이삿짐을 옮길 수는 없었으리라. 차 성능이 그렇게 안 됐다는 얘기다.) 농촌 마을의 빈집이자 앞으로 세 모녀의 온 생을 바칠 ‘우물집’으로 이사를 하는 것으로 긴 이야기는 시작한다. 내성적이고 어머니에게 복종하며 바늘에 관한 집착이 심하지만 바늘은 언제나 자기로부터 빠져나가는 금택. 반면에 선천적인 손재주가 번뜩이지만 바늘과 바느질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화순. 이들을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바라만 보고 있는 어머니. 어느 날, 자매가 집 마당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을 때 어머니가 아이들을 불러 자신의 작업실이자 방 자체가 어머니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서쪽 방에 들여, 누비 바늘 하나씩을 건네준다.
바늘. 바늘의 속성은 찌름이고, 찌름으로 인한 상처, 상처에서 딸려 나오는 양귀비 색 피, 이런 것들을 다 합해 싸늘한 잔인함 또는 긴장. 작은 딸 화순은 바늘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 그냥 책상 위에다 휙 던져놓지만, 금택은 진심으로 갖고 싶었으나 함부로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해왔던 귀한 것이라 가슴에 ‘바늘’을 안고 자다 자신의 왼쪽 젖꼭지를 찔러 가슴에 모란꽃 한 송이를 피워버린다.
이후 팽팽하게 이어지는 성이 다른 자매 사이의 갈등과 그걸 번히 알면서도 바라보고 있기만 하는 어머니 사이의 트라이앵글. 원래부터 세 명이 만들어가는 화음은 서로가 서로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질 때 가장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것. 단언하니, 김숨의 <바느질하는 여자>에서 우리는, 아니, 나는 근래 가장 아름다운 트리오, 가장 절묘한 삼중주의 투쟁과 화해와 조합과 견제와 염탐과 배려와 조화와 침잠을 보았다.
정말 아름다운 소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숨의 주변엔 책으로 만들어 나오기 전에 꼼꼼하게 읽어줄 사람들이 없었나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시간적 배열에 관해서 일목요연하게 줄을 세우는 데 작가는 재주가, 없어도 그냥 없는 게 아니라, 치명적일만큼 없기 때문이다. 스토리를 이어서 만드는데 정말 섬세하고, 아름다운 씨줄과 날줄을 엮을 줄만 알았지, 세부각론으로 들어가면 구조가 완전히 망가지고 마는 현상이 벌어진다. 이런 작가들에겐 작품을 발표하기 전에 미리 읽어보고 앞뒤 연결에 관해 지적해주는 사람의 존재 여부가 상당히 중요하다.
뭘 가지고 그러냐고?
책을 읽는 내내 노트북 켜놓고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메모해놨는데, 노트북을 켤 수 없었을 때를 빼고도 A4 용지로 두 장이 넘어간다. 예를 들어보자.
제일 먼저 단박에 알 수 있는 것. 자매의 나이 차.
“금택은 열 살, 화순은 여덟 살 되던 해 학교에 들어갔다. (147쪽) 한 살이 어렸지만 화순은 금택보다 키가 한 뼘 정도 더 컸다. (210쪽) 1961년 소띠생인 금택과 1962년 범띠생인 화순 자매까지 삼대에 걸친 여자들이 모여 살았다. (455쪽)”
“경주에는 예비고사장이 없었기 때문에 화순은 도청이 있는 대구까지 나가 예비고사를 치렀다.”(297쪽)
→ 1962년 2월생이 예비고사를 마지막으로 본 이들이다. 화순의 생일이 빨라서 예비고사를 봤다고 치면 소위 80학번. 그러나 대학 다니면서 박정희가 죽고 학살이 일어났으며 통금이 없어졌다. 즉, 아무리 늦어도 79학번은 돼야 한다. 물론 여덟살에 국민학교에 들어간 화순은 아무리 빨라야 81학번이라서, 예비고사도 못 치뤘겠지만.
“그녀들 중에는 조선 말기 명성왕후가 시해되던 해에 태어난 이도 있었다. 복례한복에 옷을 맞추러 올 때마다 금택과 화순에게 갈색 일제 캐러멜을 쥐어주던 그녀는, 백 살이 코앞이라고 했다.” (81쪽)
→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은 1895년. 그럼 이 이야기를 하는 시점은 적어도 1990년은 돼야 하는데 아쉽게도 1960년대 어느 날이다.
"‘서울 사대문까지 소문난 한복집이라고 큰올케가 입이 닳도록 칭찬을 해서 5천 원이나 주고 맞추어 입지 않았나. 뭔 누비저고리가 북어포도 아니고 뻣뻣해서 입을 수가 있어야지.’(82쪽)
→ 시기가 60년대 말. 당시 5천 원이면 4급(요새 7급) 공무원 석 달 봉급보다 많다. 지금 돈으로 약 800만 원. 이게 손바느질도 아니고 재봉틀로 박은 누비저고리 값이라면, 오버다.
그즈음 티브이에서는 이산가족 찾기가 한창이었다. (476쪽)
→ 이산가족 찾기는 1983년. 시점은 한참 후.
열아홉 살 되던 새 서울로 올라온 (중략) 국밥집으로 들어가 국밥을 시켰다. 10원짜리 동전 같은 기름이 떠다니는 국물을 허겁지겁 떠먹으면서, (후략) (588쪽)
→ 그녀 수덕은 1941년 생. 열아홉 살 때면 1959년. 당시 10원짜리는 동전이 아니라 지전이었다.
부령할매 첫 아이 죽어서 묻은 아기묘에 관한 이야기. 거기 갔다 온지 70년 됐다는 얘기 (p.602~605)
→ 이야기하는 시점이 1963년. 맏아들 죽은 게 70년 전이면 1893년. 부령할매 참 참 참 오래 살았다. 이제 겨우 스무살 넘은 둘째 아들이 있으니.
그러나 무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는 건 바로 이 대목이다.
“1963년인 그해, 수덕은 스물세 살이었다. 43년 전인 그해는 파독 광부 128명이 첫 출국을 한 해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첫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도 한 해로, 미국에서는 대통령 케네디가 암살을 당했다.”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했대요.’ 그녀(수덕)는 나풀나풀 흔들리는 녹원삼 너머로 향하는 눈길을 바늘로 끌어당겼다.” (600쪽)
이것이 남수덕, 두 자매의 엄마가 녹원삼 너머의 남자와 관계를 해서 임신을 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큰 딸이 1961년생이고 작은 딸이 1962년 생. 뭐 61년, 62년도 믿기 힘들긴 하지만 그렇다는 말이다.
이거 말고도 무지하게 많은데(PC에 메모한 것의 반의반도 인용하지 않았다) 그걸 어떻게 다 여기에 옮길 수 있겠나. 하여간 참담한 수준이다. 이 정도면 작가는, 그의 섬세한 문장 엮기 실력은 논외로 하고, 애초부터 ‘수열’을 구성하는 뇌의 발달에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근데, 재주 없으면 메모지에 써서 PC 옆에다 붙여놓고 소설을 쓰든지 하지 이게 뭐냔 말이다. 문학과지성사에서 봉급 받아먹고 교정, 교열하는 인간들도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혹시 싼 맛에 서울 마포구의 중학교 다니는 외국인 학생한테 알바시킨 거 아냐?
정말 섬세하게 힘들여 책 쓴 김숨.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게 불쌍한 만큼, 자신이 쓴 거 눈알이 빠지게 퇴고하지 않는 나쁘고 나쁘고 또 나쁜데다가 다시 한 번 더 강조해서, 나쁘기 그지없는 버릇은 반드시 고쳐야 할 것이다(서재 동무님들은 아시리라. 내가 지금 얼마나 말을 순하고 예쁘게 하고 있는지). 김숨. 당신도 알지?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를 50번 넘게 다시 고쳐 썼다는 거. 당신이 톨스토이보다 더 위대한 작가는 아니잖아.
정말 아쉬운 책이다. 김숨의 환상적이고 절묘한 형용사, 형용구, 형용절(이런 것이 있다면) 등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 저 까마득한 바늘 침 위 아득한 벼랑 위에 선 여인들의 비의를 이처럼 아름답게 묘사하다니. 그것만 따지면 나는 이 책을 올해 발견한 가장 훌륭한 한국문학으로 꼽을 수 있겠다. 그러나 소설은 정연해야 하는 산문. 위에 적어놓은 숱한 에러. 그것들을 무릅쓰고 이 책을 다른 이에게 추천할 수 있지는 아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