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비슷한 취지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관해서 쓴 적이 있습니다. 이번 역시 같은 뜻입니다. 제가 읽어본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마음에 들지 않는 리스트입니다. 한 번 더 강조. 제가 읽어본 것들입니다. 양서를 소개하는 것도 부족한 시간에 굳이 이런 리스트를 작성하는 건, 나만의 '비추' 목록도 몇몇 분에겐 도움을 줄 수 있을 정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일은 "난 이 책들이 좋다" 라는 제목으로 추천 리스트 역시 올릴 예정입니다. 혹시 열린책들 관계자 분들이 보시면 열 받지 마시라고 미리 말씀드립니다.
순서는 열린책들 시리즈 번호를 그대로 썼습니다.
시작하겠습니다.
9. 막심 고리키, <어머니>
이거, 교재다. 소설 아니다. 특정 운동을 위한 좋은 입문서일지언정 등장인물 가운데 누구 하나 지금 하고 있는 일에 회의하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는 책. 오직 하나, 혁명에 몸과 마음을 바치기로 작정한 철인같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다시 말하면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의 행위만 구경할 수 있다. 사회주의적 계몽주의의 대표 작품.
17. 조지 오웰, <1984년>
이미 화석화된 옛 시절의 유물. 기본적으로 조지 오웰이란 작자의 개념이 매우 맘에 들지 않는다. 정치를 하지 왜 소설을 썼어? 나 한테 욕 먹으려고?
18. 알렉산드르 이사예비치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이것도 옛 시절의 유물이자 아무리 열씨이이미 읽어봐도 도무지 문학의 분류에는 넣지 못하겠던데, 하여간 솔제니친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런 시절의 추억이 듬뿍 담긴 책이라 서슴지 않고 읽어봤는데, 이건 영어를 모국어 비슷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나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림. 당신이 스무살을 넘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이 책 읽은 다음엔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주장함.
24. 25. 어윈 쇼, <젊은 사자들>
그냥 통속 전쟁소설. 한 여자를 매개로 하여 극적인 인연이 생긴 세 남자들이 소위 젊은 사자들인데, 두 명은 미국군, 하나는 독일군. 공통점은 대단히 용맹한 군인들이라는 거. 이들이 책 말미에 서로 조우하여 총질을 해대는데,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400쪽이 넘는 책 두 권을 다 읽어야 이들이 어떻게 된다는 걸 알게 되는데, 전쟁영화의 결말하고 아주 똑같다. 뭐 시간 죽이기엔.....
60. 존 스타인벡, <의심스러운 싸움>
어차피 스타인벡을 읽으려면 <분노의 포도>를 피할 수 없다. 만일 <분노...>를 읽었다면 이 책은 전혀 고려해볼 필요가 없고, 읽지 않았다면 나중에 <분노...>를 읽을 때, 아 그때 <의심스러운....>을 읽은 것이 시간과 돈 낭비였단 걸 확실하게 인식할 것이다.
63. 대실 해밋, <몰타의 매>
후대 미국문학에 큰 영향을 준 추리소설. '샘 스페이드'란 이름의 탐정이 소설의 주인공인데 현대 미국 소설책에서 스페이드를 아주 자주 볼 수 있다. 그렇게 유명한 작품. 문제는 처음 나온지 벌써 100년 가까운 추리소설을 지금 읽으면서 재미나다고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 그게 비록 타임이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 가운데 하나라도 말이지.
64. 블라디미르 마야꼬프스끼, <마야꼬프스끼 선집>
난 번역한 시는 읽지 않는다! 근데 이 책이 시집인 줄 모르고 샀다. 돈이 아까워 다 읽기는 했는데 도무지 건질 만한 시가 많지 않다. 석영중 선생의 번역이 아까운 건 알지만 그래도 어쩌랴, 번역한 시하고는 어떻게 해도 친해지지 않는 걸.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서부 전선 이상 없다>
출판사 열린책들은 이 책 하나 가지고 혹독하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렇게 훌륭한 텍스트를 어째 이따위로 만들어 팔 수 있는가. 더구나 Mr, Know 시리즈에 이은 중판임에도 불구하고. 번역한 홍성광은 또 뭐하는 인간인가. 자기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인데 한 번도 들춰보지 않은 거야? 개판도 이런 개판이 있을까. 교정, 교열을 대한민국의 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는 외국인이 했다는 데 만원 건다. 이렇게 책 만들 바에 차라리 출판사 문 닫는 게 훨씬 양심적이다.
70. 71. 72. 제임스 존스, <지상에서 영원으로>
시간을 죽일 목적 딱 한 가지면 뭐 좋을 수도 있겠다. 미 육군에 헌정한 책. 따라서 무수한 마초들의 울뚝불뚝한 근육 구경은 실컷 할 수 있다. 읽어보니 이미 용도폐기된 남성성에 대한 옛 시대적 찬가 이상이 아니다. 흑백 영화, 몽고메리 크리프트와 프랭크 시나트라가 열연하는 흑백 영화를 보시는 것이 훨씬 좋을 듯.
79. 알렉산드르 세르게이 푸시킨, <예브게니 오네긴>
운문소설? 그런 것도 있어? 소설은 산문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행위가 아니었나? 혹시 모르겠다. 그리스 시대부터 유구한 서사시의 전통을 자랑하는 서양에선 그게 가능한지. 근데 그걸 번역하면,아냐, 아냐. 다른 사람은 감격할지 몰라도 나한텐 영 아냐, 아냐. 이건 소설도 아니고 시도 아냐. 그냥 오페라 대본이야.
84.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너무 지독한 사소설, 이라고 읽었다. 근데 읽어본지 하도 오래라 의견에 자신이 없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스트에 포함시키는 건, 그때 지독할 정도의 사소설이라고 머리 속에 확 박혀, 무지하게 오랜 세월 뛰어난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를 읽지 않게 했다는 그거 하나만 가지고도 충분하다.
102. 아서 코난 도일, <바스커빌 가의 개>
소년 시절의 추억은 건드리지 말고 그냥 내비두는 게 좋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했다. 1970년 쯤 소년중앙을 통해 처음 읽어본 코난 도일, 그 위명에 혹해서, 물론 소년시절처럼 극적인 감동까지는 아니어도 홈스의 환상적인 추리가 끝내주겠지, 싶었는데 똥 밟았다. 영국 드라마 <셜록>이 훨씬 재미있으니 그리 아시라. 역시 당신이 20세 이상이면 절대 비추.
136. 137. 138. 139. 140. 141. 앙투안 갈랑, <천일 야화>
여섯권의 <천일 야화>를 읽어보고 남은 하나는, 알라딘이 중국 북서부 지방의 회교도라서 청나라 식 변발을 하고 있었다는 거. 영국인 리처드 버턴 판은 어떤지 몰라도 앙투안 갈랑의 책은 차암 재미 없더라. 근데 그거 아셔? 셰헤라자데가 밤에 미친 왕한테 이야기를 해주고 둘이 드디어 침대에 들어 찐한 애정을 나눌 때, 침대 옆에서 셰헤라자데의 친동생 두냐자데가 광경을 빤히 바라보면서 침을 꼴깍 넘기곤 했다는 거.
148. 149. 150. 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 놀라울 정도의 인종차별적인 작품이 어떻게 아직도 읽히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론 지나간 시절의 지나간 소설가에 의한 화석이라서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거 참. 그리고, 세상에나 스칼렛 오하라가 미인이 아니라니! 그것도 책의 제일 앞에 스칼렛 오하라더러 미인은 아니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할 거냐고. 전형적인 대중소설. 대중소설이라서가 아니라 인종차별적 소설이라 이건 마땅히 도서관 지하창고에 짱박혀 있어야만 한다.
152.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예술을 위한 예술, 이란 관점을 빼면 하나도 남지 않는 소설. 영화나 만화 기타 매체에 의하여 과도하게 미화, 찬양된 작품. 프리즘을 통과한 파우스트가 바로 도리언 그레이.
159. 사드, <미덕의 불운>
솔직히 말하자면 사드란 이름에 혹해서 읽었다가 망했다. 뭐 이런 작자가 다 있어. 머리통 속에 딱 하나, 가학성애 말고는 아무것도 들지 않아야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다행. <미덕...>을 읽어 사드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어서 그의 다른 작품 <소돔...>을 아예 제쳐놓을 수 있었으니.
175. 이반 세르게예비치 뚜르게네프, <루진>
루진이란 이름의 잘 생긴 남자가 왜 사브르를 높이 처들고 파리 꼬뮌 한 가운데 있게 된거야? 결정적으로 너무 작위적인 설정 하나 가지고 이 리스트에 오름. 물론 <악령>에서 도스토옙스키가 뚜르게네프를 좀 비아냥 거린 것에도 영향을 받았음을, 흠, 숨기지 않겠음.
212.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울프는 "이 책들이 좋다"에도 리스트가 한 권 올라갈 거고 "이 책들이 싫다!"에도 하나를 올렸다. 이 책은 도무지 정이 안 가는데 물론 이건 내가 소설을 읽는 교양이 일천하기 때문이리라. 하여간 나하고 맞지 않는 책. 세상의 모든 소설가는 나 하나를 위해 소설을 쓰다가 죽는 사람들이니까 내가 싫으면 그건 이유가 있건 없건 간에 적어도 나한테는 진리다. 아냐?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