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피스토 펭귄클래식 78
클라우스 만 지음, 오용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재밌다. 아버지 토마스 만이 <파우스트 박사>를 썼고, 아들 클라우스 만이 <메피스토>를 쓰다니. 클라우스 이사람 평생 참 스트레스 많았을 거 같다. 아버지 토마스 만은 말이 필요없는 독일의 문호고, 큰아버지 하인리히 만 역시 당대의 소설들을 쓴 작가에다가 적극적인 사회운동가로서 평생을 독일 내외에서 반파시스트 운동을 펼친 인물이었으니.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대 작곡가 아드리안 레버퀸(이라고 읽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일생에 관한 것이었으면 <메피스토>는 독일의 경향각지를 떠돌며, 아니, 날아다니며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비범한 자' 그러나 천재까지는 아닌 자들영혼을 수집하던 악마를 그렸을까? 궁금하시지? 큰 맘 먹고 가르쳐드린다. 잘생긴 연극배우의 한 시절, 나름대로의 성공담을 그린 소설이다. 희극전문배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필생의 작품은 괴테의 <파우스트>. 그 가운데서도 메피스토펠레스에 관한 한 당대에 따라올 수 없는, 연기의 천재 헨드릭 회프겐. 원래 이름은 하인리히 회프겐, 애칭으로 하인쯔라고 불렸으나, 일찌감치 뜻을 세워 헨드릭으로 이름을 바꾼다. 독일에서도 헨드릭이란 이름은 많이 쓰지 않는 모양. 왜냐하면 '헨릭'이 워낙 많아 곧잘, 자주, 늘 헨드릭이란 이름을 표기할 때 헨릭이라 써서 우리의 주인공 헨드릭 회프겐을 열받게 한다. 이게 다 뜻이 있는 거다. 흔한 이름 하인리히 말고, 많은 사람들이 헷갈리는 이름인 '헨드릭'이 언젠가는 '헨릭'하고 뚜렷하게 구분하여 일컬어질 것이고, 그때 자신의 진정한 성공 또는 승리가 이루어진다는 거.

 이 인간, 헨드릭. 성공 말고는 아무 생각 없는 작자다. 아니다. 성공을 위해 정말로 엄청나게 다방면으로 생각이 많은 인간이다. 국가사회주의당이 별볼일 없을 때는 문화 볼셰비키를 등에 업고 연극계에서 깝치더니,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자신의 성공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브루크너 박사 가문의 딸과 어울리지 않는 결혼을 하고, 드디어 나치가 집권을 하자 곧바로 그녀와의 이혼을 감행해버린다. 아, 브루크너 가문의 딸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데 사실 이런 건 독후감을 쓰는 인간이라면 쪽팔린줄 알아야 하는 거고, 그래서 난 그녀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하는 지금 무지 쪽팔려 하면서 독후감을 쓰고 있는 바, 하여간 어쨌든 헨드릭 이 어처구니 없는 인간은 서슬퍼런 나치의 치하에서도 오직 하나, 혹시 나치가 망한 다음에 어떤 체제가 올지 몰라, 예전부터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운동을 해온 동료 하나를 수용소에서 빼오기도 하는 놀라운 수완을 보여준다. 어딜 가도 살아남는 인간. 여기서 '어딜 가도'의 '어디'는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곳이다. 당신과 내가 지금 먹고 사는 직장일 수도 있고, 대한민국의 신체건강하고 발기 잘 되는 남자들이면 빠짐없이 가야하는 군대에서는 특히 그렇고, 심지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한때는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헛소리를 해대던 대학 까지 교육기관에서도 그렇고, 청와대, 국회의사당 등의 정치판에선 말 할 것도 없고, 하다못해 주민등록 등본 떼러 가는 동 사무소에서도 한 때는 마찬가지였다. 놀랍게도 성당, 교회, 절, 원불교 교당, 대순진리회 도량 등의 종교집단에까지. 그 어딜 가도 결국엔 떵떵거리며 살아남는 해바라기, 또는 쥐새끼들. 이것들의 대표선수가 헨드릭 회프겐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 해바라기 또는 쥐새끼들이 약삭바르고 비겁하기만 한 찌질이들이라고? 천만의 말씀. 찌질이들은 어딜가도 찌질이. 이 인간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가 집단이 요구하는 능력을 지녔다는 거. 적어도 보통 이상의 능력. 근데 하나, 균형감각, 특히 바름과 바르지 않음에 관한 균형을 잡는데 매우 서툴든지 아니면 특정 목적상 그따위 균형감각은 애초에 모른 척하기로 작정을 했든지, 심하면 의식 깊은 곳에서 옳고 그름의 판단을 하지 않게 심리적으로 막아놨든지 하는 경우다. 그리하여 화장실 옆에 책상을 두고 그곳에서 근무하라고 명령할 수 있는 거고, 인민혁명당이란 있지도 않은 조직을 만들어 사형선고를 받게하고는 판결을 받자마자 목매달 수 있는 거고, 무솔리니가 됐든 히틀러가 됐든 일단 내 배 부른 게 최고의 선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거다. 그거 아무나 못한다. 균형감각을 잃어버렸거나 아예 없거나 있긴 있는데 없는 것처럼 살기로 작정한 똘똘이 스머프들이나 하는 것이지.

 근데 재미난 것이 클라우스 만이 자신의 매부, 그러니 누나의 남편 그륀트겐스가 헤르만 괴링의 비호를 받으며 나치 체제에 동참한 것을 모델로 했다는 거. 책에서 보자면 브루크너 박사의 (등장하지 않는 인물인) 아들이 클라우스 만이 되겠다. 그럼 부르크너 박사는? 당연히 토마스 만이다. 얼마나 사실과 가까운가 하면 세월이 흘러 책의 사실상 주인공, 헨드릭 회프겐의 모델 그륀트겐스의 자손들이 이 책을 판매중지해달라고 소송까지 했다니 말 다했다. 문제는 실화와 너무 가깝게 묘사를 해서 처음부터 이 책이 어떻게 흘러갈지 대강 짐작을 할 수 있겠더라는 거. 그럼에도 재미나다. 400쪽에 이르는 장편소설이지만 언제 읽었는지 모르게 후딱 지나간다. 당신의 엉덩이가 질기다고 생각하면 비록 삼복중이라도 시도해보시고, 질기지 않으면 이 여름이 가고 드디어 선선한 가을이 쳐들어올 때, 한번 읽어보시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슬픈 카페의 노래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을 읽고 한방에 메컬러스한테 홀딱 반해서 <결혼식 하객: 국내엔 "고딕소녀"란 엽기적인 제목으로 나왔다>에 이어 <슬픈 카페의 노래>까지 왔다. 매컬러스 3부작으로 일컫는 것을 다 읽었고, 이젠 매켈러스는 더 찾지 않을 거 같다. 국내에 소개된 이이의 다른 한 권은 <불안감에 시달리는 소년>이란 단편집. 그건 그냥 패스 예정.

 카슨 매컬러스가 고딕 작가라고 분류되는 이유는 그녀의 주요한 세 작품에서 모두 키가 매우 큰 소녀, 여인이 등장하는데 당시 독자들이 보기엔 좀 괴기스럽다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그렇다고 이이의 작품을 고딕이란 그로데스크하고 우울한 시각으로 볼 필요는 전혀 없다. 이 책, <슬픈 카페의 노래>도 조지아 주의 소도시라고 짐작되는 곳의 한 카페에서 벌어진 슬픈 사랑의 비극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의 전작들은 미국 남주 지역의 소도시를 배경으로 기본적으로 따뜻한 작가의 시선으로 본, 일면 선량한 미국인을 그렸지만, 여기선 서로 어긋나는 세 사람의 애정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 요새 그거 한 근에 얼마나 가는지 모르지만 한 시절엔 빌어먹을 사랑 때문에 약먹고 죽고, 애인이 약먹고 죽은 줄 알고 단도로 자기 가슴 푹 찔러 죽고, 강에 빠져 죽고, 심지어 동시에 두 작것들이 손잡고 절벽에서 떨어지기도 하던 시대가 있었다. 근데 사랑, 그거 참. 사랑에 빠지는 데엔 이유가 없는 것. 상대가 190cm에 육박하고 아주아주 건장한 체격에다가 돈에 관한 집착으로 사사건건 법적 소송을 걸어버리는 별난 성격의 여성이더라도 그이의 무엇에 반해 사랑에 빠지건 거기엔 어떤 이유도 없는 거다.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는 못생긴 척추장애인, 자주 이들을 낮추어 부르는 말인 '꼽추'일지언정 누구에겐가 이유없는 사랑을 받지 말라는 법도 없다. 상습적인 강도질과 폭행, 심지어 면도칼 싸움을 걸어 죽인 남자의 귀를 말려 자랑삼아 지갑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악당이라도 누구한테는 조건없는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왜? 그게 사랑이니까. 원래 사랑이라는 것이 눈깔에 얇은 막이 한 꺼풀 덮혀 있는데 우라질 그놈의 엷디 얇은 꺼풀이 원래의 모습을 온갖 프리즘으로 왜곡시키기도 하고 분칠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게끔 하기 때문. 뭐 혼인을 해본 경험이 있으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빌어먹을 눈깔 위에 덮힌 꺼풀의 프리즘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는데 사람 환장하는 약점이 있긴 하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사랑은 조건이 없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인류 역사상 수없이 되풀이한 사랑의 트라이앵글. A는 B를 사랑하고, B는 C를 사랑하고, C는 A를 한때 사랑하다가 이젠 그게 완벽하고 돌이킬 수 없는 증오와 복수의 다짐으로 변하는 거. 많이들 보셨지? 그걸 1940년대 쯤으로 보이는 미국 남부, 평생 처음으로 눈이 내리던 해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걸작이나 명작까진 아니더라도, 매력적인 소설.



 * 표지 보시라. 담배를 머리 위로 들고 있는 카슨 매컬러스의 사진, 머리카락 아래부터는 놀랍게도 '띠지'인데, 거기 뭐라 써있느냐 하면 "유려한 문장으로 빛나는 장영희의 최고 번역작". 장영희 선생이 평소 깔끔한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수필가이며 영문과 교수라서, 게다가 이미 2009년에 생을 마감했기 때문에 이 표지의 중판(초판본은 장영희 생전인 2005년 간행)에서 이렇게 써놓은 거 같다. 그래 처음부터 눈에 불을 켜고 얼마나 매력적이고 깔끔한 한국어 문장을 구경할 수 있을까 했다가, 거기까진 아니고 그냥 평범한 수준의 번역이었다. 띠지의 현란한 문구에 기대하지 마시라.


 


댓글(4)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7-08-03 1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불안감에 시달리는 소년>은 패스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ㅎㅎ 번역 저도 기대했는데 딱히 크케 좋은 줄은 모르겠더라고요. ㅎ

Falstaff 2017-08-03 12:59   좋아요 0 | URL
아, 옙! 고맙습니다. ㅎㅎ 전 이런 ˝패스하라˝는 답글 정말 좋아합니다. ㅋㅋㅋ

공쟝쟝 2022-02-16 11:00   좋아요 0 | URL
두분은 이미 카슨 매컬러스 전작하고 계셨어 ㅋㅋㅋㅋ
이 재밌고 좋은 글이 왜 북플에서는 연결이 안된다고 나왔죠? ㅎㅎㅎ
소설 참 좋더라고요. 동화같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하고. 읽고 술마시면서 글쓰다 보니 저 자신을 여주인공에 동일시 해서 척척해지고 말았다네....

Falstaff 2022-02-16 11:12   좋아요 0 | URL
저도 북플로는 연결이 되지 않아요. 2년여 전에 알라딘 북플이 터진 적이 있는데, 그때 함께 얻어터진 사람들이 몇 있어요. 그 가운데 한 명이라서, ㅋㅋㅋㅋ
 
독을 품은 뱀 펭귄클래식 125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최율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번째 읽은 모리아크. 대한민국이 유별나게 좋아하는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작품. 근데, 이 책 정말 좋다. 완전 내 스타일이다. 아, 읽고나서 나, 맛 갔다. 초장에 말하노니 여기까지 읽고 덥석 미끼 물지 마시라. 당신 취향이 아닐 수도 있다.

 오직 자신밖에 모르는 남자 노인 이야기. 책을 넘겨 본문이 나오기 전에 처음 읽을 수 있는 문장을 옮겨본다.


 "가족이라는 이 원수, 증오와 탐욕에 갉아 먹힌 이 마음, 이 비천한 마음을 당신들은 불쌍히 여겨주기 바라오. 이 비참한 마음이 오히려 당신들의 온정을 끌어당기기를 원하는 거요. 지리멸렬한 인생 내내 그 슬픈 정열은 아주 가까이까지 다가온 빛을 쫓아버리곤 했었지. 어쩌면 그 빛이 이 마음을 어루만지고 불타오르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사실 그 마음을 감시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이들은 실체 없는 범상한 기독교인들이었소.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죄인을 걸려 넘어지게 하고, 진리의 빛이 더 이상 밝아오지 못하도록 항해하는지!"


 위 인용문, 한글로 씌여진 이 글(좋은 문장은 아닐지언정 그건 번역한 사람의 책임이지 모리아크 잘못은 아니다)을 읽자마자 뻥, 대책없이 다가오는 당혹과 동의. 가족이라는 원수, 증오와 탐욕. 가족 내에서 구성원 간에 가할 수 있는 심리적 폭력. 전혀 소설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넘쳐나는 호기심이라니. 모리아크라면 잘난 척하는 남편에게 비소를 탄 음식을 먹여 독살을 기도할 수도 있을 것이며(떼레즈 데케루), 호텔방을 전전하면서 혼자 힘으로 자란 딸의 방문을 안 그런 척하며 애타게 기다릴 수도 있다(밤의 종말). 이 책에선 가족간의 갈등과 상처주기가 어떤 식으로 나타날까? 아, 이 궁금증을 어찌할꼬. 어찌하긴 뭘 어찌해 서둘러 페이지를 넘기기만 하면 될 것을.

 평민 출신의 무지하게 머리 좋은 나, 루이는 적어도 법원 안에선 이루지 못하는 것이 없는 신화를 일군 변호사. 프랑스 최고의 변호사 수가(酬價: 보수로 주는 대가)임에도 의뢰인들이 종로 5가 광장시장 부터 서대문 로터리까지 줄을 섰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인물이다. 스스로도 전력을 다 하여 의뢰인들을 승소를 위해 날밤 새우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니 변호사 개업 30년 만에 무지막지한 돈을 벌어들였다. 무지막지해도 정말 무지막지하게 무지막지한 돈을. 명색이 변호사라 거침없이 돈세탁의 모든 기법을 휘황찬란하게 선보이면서 유럽 거의 모든 나라 은행의 비밀금고 안에 금괴와 현금의 형태로 고이 잠들어 있다.

 하지만 머리가 좋은 것, 즉 지능이 발달한 것과 현명한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누구나가 갈구하는 행복, 그걸 찾는 일에 결정적으로 실패한 루이 선생. 로스쿨 수석일지언정 결혼을 하자마자 급속하게 발생한 아내와의 갈등이 세상에서 자기 경우에 국한한 일이라고 속단한 루이, 급기야 첫 아이를 낳자마자 아내의 모든 총기가 아이에게로만 기울어지는 것을 보고 드디어 아내는 나를 사랑하기를 포기했다고 지레짐작해버린다. 그래서 루이의 모든 열정은 변호사로서의 성공과 집에서 만족시키지 못하는 성적 갈증을 밖에서 해소하는 일에 바쳐진다.

 근데, 여태 얘기한 것을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이제 다 늙어 변호사업도 은퇴하고 심장병까지 도져 오늘 낼 하는 루이가 가족, 특히 아내에게 자신이 죽은 다음에 읽어보라고 쓰기 시작한 편지 속에 들어 있는 거다. 프랑스 어디에 붙어있는지는 모르지만 칼레즈(검색해도 안 나온다)의 거부(첫째가 장자요, 둘째가 거부고 셋째가 이인데 화수분이지요, 할 때 그 거부)가 이제 다 죽을 단계에 돌입해 집안엔 아들, 딸 내외, 손자 손녀 내외, 어린 증손녀까지 몽땅 다 모여, 우리 아빠, 우리 할아버지 언제 죽나, 이거에만 모든 관심을 맞추고 있다. 아, 또 하나. 나한텐 국물이 얼마나 떨어질까, 하는 거하고. 심지어 처자식들은 이 영감이 얼마나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 나중에 밝혀지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어마어마한 돈을 갖고 있는 노인네다.

 문제는 벌써 한 40여 년 전부터 처자식이 한 편을 먹고 노인 혼자 따돌림을 당했다는 거. 자신이 벌어온 돈으로 먹고, 자고, 싸고, 입고, 배우고, 시집 장가가고, 즐겼으면서 한 번도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명백한 증거만 해도 수백가지를 댈 수 있는 노인, 루이. 그에게 가족 구성원이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자신에게 온 힘을 다해 상처를 입히기만 하는 원수, 증오의 대상이자 결코 화해하고 싶지 않은 이물질들이다. 그리하여 '나' 루이는 이제 죽음을 바로 눈 앞에 두고 최선을 다해 아내와 아이들과 자손들에게 경멸과 조롱과 빈 손을 선사하느라, 진짜로 죽을 힘을 써서 편지를 써내려 간다. 길고 긴 편지.

 위 문단의 첫 문장을 다시 반복한다. 문제는 노인 혼자 따돌림을 당했다는 거. 이렇게 믿고 있다는 거. 가족간에 애정을 느낄 아무런 이유를 노인은 갖고 있지못해 자신의 모든 유동자산은 결코 이들에게, 처자식과 자손들에게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럼 기부? 천만의 말씀. 기부를 하려면 고심해서 결행했던 온갖 방법의 돈세탁을 거꾸로 다 까발려야 하는데 명백한 범죄행위를 존경받는 변호사로 평생을 보낸 사람이 어떻게 중인환시리에 밝힐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그는 오늘 낼 하는 심장병 환자의 몸으로 일찌기 자신이 만들어낸 사생아를 찾아 파리로 여행을 떠나는데, 과연 그에게 어마어마하게 어마어마한 재산을 몽땅 다 줄 수 있을까? 힌트는, 명석한 사람도 언제나 명석한 후손을 생산하는 건 아니라는 진실.

 죽음을 눈 앞에 둔 노인. 평생 자신이 가족에게 가했던 비폭력적인 폭력은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고, 자신에게 가해진 가족들의 비폭력적인 폭력에만 몰두하여 가족을 원수, 증오와 탐욕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존재로 규정한 불쌍한 노인. 아, 이 부르주아 노인같이 자기만 아는 인간을 불쌍하다고 하면 이거 또 개박살나는 거 아닌지 몰라. 좋다, 글로 쓴 건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쓴 건 내가 책임진다. 자기만 아는 부르주아 늙은이라도 불쌍한 건 불쌍한 거다.

 과연 아집과 악의로 단단하게 뭉쳐진 노인 루이는 세상과 화해를 하고 숨을 거두었을까? 노벨상 수상작가의 소설에서 말이지. 그랬다면 어떻게 그랬을까? 궁금하셔? 안 알려드림.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7-08-02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사막> 읽고 완전 반해서 그 뒤로 펭귄에서 나온 이 사람 작품은 올클리어!! ㅎㅎ 좋은 작가임에 틀림없습니다.

Falstaff 2017-08-02 10:12   좋아요 0 | URL
앗, 저도 4분기엔 <사랑의 사막>을 읽어봐야겠습니닷! ㅋㅋ
 
7인의 미치광이 펭귄클래식 54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로베르토 아를트, 이 사람이 1900년 아르헨티나 출생. 바야흐로 당시 아르헨티나는 세계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 그에 대한 부작용을 겪느라 (아직까지 이어지는) 치안불안, 정치적 혼돈상태에 휩싸여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숱한 인민들은 현실의 불안에 적절하게 대처할 대상이나 행위 또는 장치가 없었다(고 한다). 사회가 안정되지 못할 땐 그저 적절하게 씹어줄 특정 대상이나 계급이 필요한데 마땅한 재료가 등장하지 않으니 몇몇 도라이들이 등장하여 다수에 대한 무작정 테러를 꿈꾸는 걸로 대체하고, 이 책이 바로 대량테러를 획책하는 몇 명의 도라이들을 그리고 있다. 물론 아르헨티나 역사에 관해선 전적으로 문외한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 추리하는 한도에서 말하자면 이들 대량살상을 통한 세계정복에 나선 아수라백작의 후예, 아니 할아버지뻘인가? 하여간 같은 종족들의, 책의 제목처럼 미치광이 같은 일탈을 그린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알려드릴 것은, 7인의 미치광이가 등장하기는 하는데, 그들이 서로 모여 작당을 하고 일을 저질러 끝내 비극적으로 최후를 맞는 건 이 책의 후속작인 <화염 방사기>에서 나오는 모양이다. 나도 그 책은 읽지 않았고 앞으로도 읽지 않을 거 같아 정확하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하여간 읽는 사람에 따라 마지막이 중동무이되는 듯한 느낌을 갖을 수도 있다.

 작가 로베르토 아를트 자신이 어려서부터 무능력한 아버지한테 날이면 날마다 얻어 터지는 걸 낙으로 알고 자라다가 드디어 사춘기가 되고, 그러거나 말거나 아버지의 폭력이 도무지 줄지를 않자 열 여섯 먹은 어느 날을 잡아 에이 썅, 이 집구석 아니면 내가 어디 살 곳이 없을 줄 알아? 가출을 감행한 전력이 있다. 책의 주인공 에르도사인, 이 인간이 작가 아를트의 분신인 거 같은데, 그를 통해 작가가 소섯적에 겪어서 인생을 살아가는 오랜 세월 내내 스스로 자존감을 파괴하고 굴욕감과 증오심의 상승 게이지를 올려준 건, 대한민국에선 대체로 술취한 아버지가 그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아르헨티나의 아를트 씨는 맨정신에 자기 친아들, DNA의 절반이 자기와 같이 배열된 친아들을 상대로 거침없이 구사했던 가정 폭력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랬나? 작중 주인공 에르도사인, 직업이 수금원이다, 회사의 채무자로부터 큰 돈을 수금해 입금시키면, 받아온 돈에 비례해 급여를 받지만 객관적으로 쥐꼬리만한 봉급 밖엔 되지 않아, 어느날 부터 조금씩 조금씩 수금한 돈을 개인 용처에 써버리다가 누군가가 회사에 투서를 해서 당장 내일 오후 세시까지 갚지 못하면 손모가지에 은팔찌 둘러야하는 신세에 떨어진다. (가정교육은 중요한 겨.)

 에르도사인이 600 페소 7 센타보를 구하기 위해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만난 인간들이 주술사를 둘러싼 희대의 도라이들. 러시아 혁명을 능가하는 세계혁명을 꿈꾸는 족속들. 그러니까 시대적 배경은 적어도 1920년대 이후라고 봐야겠다. 주술사 곁에 모여든 공금횡령 회사원, 창녀들의 기둥서방, 골드 러시에 청춘을 바친 황금 탐험가, 세상의 가장 큰 가치를 도박장의 룰렛 소리로 특정한 약사, 유부녀이며 사촌인 여인에 대한 미움으로 여자의 남편을 기꺼이 삶의 진흙탕으로 던져버린 돈 많은 룸펜 등등.

 에르도사인이 원래부터 파렴치한 횡령범이었겠는가. 다 돈이 원수지. 아니. 돈이 무슨 죄가 있나. 삶이 원수다. 날이면 날마다 아버지의 채찍에 엉덩이 살이 갈라지는 체력단련을 받고 자라서 대뇌의 뭔가가 이상작동을 했는지 생각 외로 에르도사인은 보통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기괴한 기계장치를 개발하는, 소위 발명에 관해 특출난 재주를 갖게 된다. 그가 7인 그룹의 리더인 주술사에게 제시한 대량 테러 방법은, 페스트나 콜레라, 염소와 독가스를 사용하여 대량 살상을 하자는 화생 폭탄의 개발. 그럼 공장이 필요하고, 세포 대원들을 훈련시킬 장소가 필요하고, 모든 사업을 가능하게 할 돈의 원천이 필요한 것. 어떻게 재원을 마련하느냐하면, 수 명의 몸 파는 여인들의 기둥서방으로 활약하고 있는 인간이 주도하여 대규모의 사창가를 운영하는 그림을 그렸다. 사창가는 뭐 맨입으로? 그리하여 종잣돈이 필요한데 이건 우리의 에르도사인의 처사촌, 돈은 많은데 인색하기 짝이 없는 한 인간을 유괴하여 수표를 발행하게 한 다음 깨끗하게 죽여버리기로 정한다.

 모든 것이 주술사를 둘러싼 기상천외의 인간들 머리 속에서 벌어지고 때론 정말로 납치, 수표발행, 현금인출 등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절대로 실제적인 살인이나 세균 또는 화학적 독극물이 살포되는 장면은 나오지도 않는다. 심지어 정말로 그렇게 할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하다가 그냥 작품은 끝나버리고 만다.

 그렇다고 이 책이 재미 없을 거라 속단하지 마시라. 정말로 살인이 벌어지고 대규모 살상까지 이루어지면 난 읽다가 말았을지도 모른다. 거기다가 실감나라고, 칼에 찔렸다면 살해당한 사람의 자상자국이나 벌어진 살 틈새로 콸콸 쏟아지는 피 같은 거, 총에 맞았다면 총알이 피부를 뚫고 들어간 자리와 관통해 밖으로 나온 자리의 벌어진 자리, 그딴 거 읽을 때의, 으, 그 불편함이라니. 걱정하지 마시라. 단 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 라고는 얘기하기 힘들지만 궁극적으로 그것도 사실은 죽음에 이르는 행위가 아니란 면에서, 그렇게(한 컷도 나오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도 있다.

 잘 쓴 소설은 거의 전부 심리소설이다. 이 책 역시 무수한 미치광이들의 무수한 엽기적 상상과 행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으로 심리소설이다. 1차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인 불황을 맞이한 부에노르 아이레스의 보통인간들이 어떻게라도 살아야 하는, 그러나 진짜로 살기엔 힘들고, 더럽고, 치사하고, 아니꼬운 현실에 대한 거대한 은유. 나는 이렇게 읽었다. 재미나게.

 그러나 당신한테는 권하지 않겠다. 읽던 말던 당신이 결정하고 책임져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두 빚는 여자
은미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 보시라. 중간 아래 오른쪽에 뭐라 써있느냐 하면, "은미희 소설". 나, 장편소설인줄 알았다. 맞지? 그냥 '소설'이라고만 써 있으니까. 350쪽 가량의 장편소설. 근데 단편소설집이다. 좀 정확하게 써 놓으면 안 되나? 아, 단편도 재미있게 읽는다. 근데 장편인줄 알았다가 단편을 읽게되는 일은 피하고 싶다는 얘기다.

 소싯적엔 단편을 훨 좋아했다가 이젠 유장한 장편이 더 좋다. 단편은 짧은 분량 안에 작가가 한 방에 쇼부를 치고 싶어하는 (죄송합니다. 건전하지 못한 단어를 써서) 경향이 있어, 정말 제대로 쇼부를 치면 좋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엔 '조금 무리', 일본말을 첨가해 말하자면 '조또 무리'한 경우를 왕왕 보게된다는 말씀.


 1. 그리하여 등장인물들은 다분히 극단적으로 비정상적인 설정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책의 첫번째 작품 <다시 나는 새>의 등장인물인 여자와 '이다'. 여자는 열살 연하의 애인과 헤어지고, 인근 고아원에서 이다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 자기 집에 있는 피아노를 치게 허락하고, 이다는 여자가 지겨워하는 줄 분명히 아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더 긴밀한 관계를 갖자고 요구한다. 고아원에 주민등록 초본 상 주소를 둔 똑똑한 여자애 이다가 하는 말과 행동과 집요함 등은, 열살은커녕 한 서른 댓 먹은, 미저리 성향이 다분한 여자처럼 보인다. 물론 소설에서 열살 먹은 아이가 서른 다섯 먹은 미저리와 달라야하는 건 아니지만 이 경우, 왜 하필이면 고아원 소녀를 택해 이런 대사와 행동을 시켜야했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물론 평론가들은 일반독자와는 달리 이런 것에 관하여 깔끔하게 정리해서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줄 수 있겠지만 그럼 독자는 책 한 권 읽는 거 가지고 모자라서 평론가들이 이 책을 해석한 책을 또 읽으라고? 만일 소녀 이다에 관한 깊은 철학이나 논점이, 있다면 이는 독자에게 과하게 어려운 작품일 것이고, 없다면 설정 자체가 위에서 말한 '조또 무리' 아니겠느냐, 하는 것. 이건 물론 완전 아마추어 독자의 얘기이니 크게 신경쓰지 마실 것.

 2. 두번째 작품이 책의 표제작 <만두 빚는 여자>인데, 앞 작품 <다시 나는 새>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짓이라고는 주인공의 체내에 사정을 하고 아무 책임없이 그냥 떠나가는 것뿐이다. 물론 이 두 작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초지일관 찌질하고 무능력하고, 가끔가다간 사기꾼 기질만 충분한 세상의 모든 잡놈을 남성성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당신 주변에서 그래도 몇 명 볼 수 있는 긍정적 남성의 모습은 희한도 하지, 단 한 놈도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란 건 일찌감치 바람나 처자식 다 모른 체 딴살림 차려 아예 따로 살고, 난 오글조글한 형제들과 함께 모진 고생을 하는 어머니의 무릎 아래서 고생고생하며 자라는 건전하고 바람직한 유년시대를 형제와 공유하는데, 아 썅노무 것, 딸인 나는 남자형제들에게 집중하는 어머니의 헌신에 속수무책이었을 뿐아니라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삶으로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렇다. 언제나 그렇듯 그렇게 키운 아들새끼는 여전히 엄마한테 의존하기도 하고 안면 까고 불효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책 읽으면 이 땅에서 그냥 보통남자로 살기도 매우 팍팍해졌다는 걸 금방 알게 되는 교훈적 이야기들. 이런 얘기하는 것도 어째 좀 오싹한 건, 너도 예전에 그렇게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좀 당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지탄이 무서워서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곳곳에서 여전히 발견하는 처녀막 증후군. 책의 100쪽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를 보면 이런 묘사가 나온다. "초겨울 녘, 섬진강은 어느 때보다도 유순했다. 강변을 따라 이어져 있는 산줄기의 아랫도리를 그대로 품은 채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가는 섬진강은 어느 모로 보나 숫처녀를 닮았다. 모래톱마저 여자의 속살처럼 하얗고, 강 안쪽을 할퀴며 휘돌아 나가지 않는 성정 또한 숫처녀의 그것처럼 은근하고 깊었다."  정말 섬진강이 숫처녀를 닮아서 이런 묘사를 했을까? 산줄기의 (하필이면) 아랫도리를 그대로 품은 채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가는 게 숫처녀의 어디와 닮은 것일까? 숫처녀의 허벅지가 누구의 아랫도리를 '그대로' 품은 채 완만하게 곡선을 만들었을까? 이런 표현은, 섬진강을 처음부터 숫처녀에 비유하기로 결심을 하고 글을 썼기 때문에 나왔다고 본다. '모래톱마저 여자 속살처럼 하얗고 강의 안쪽을 할퀴며 휘돌아 나가지 않는 성정'이라니. 이거 혹시 남자가 숫처녀에게 경도하여 왜곡된 묘사를 한 경우의 대표적 사례라고 말한다면 오히려 이해가 가겠는데, 나만 그런가? 왜 하필이면 숫처녀라고 딱 꼬집어 말했을까? 한 스무살 가량의 남성 독자가 읽었더라면 혹시 깊게 감명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눈엔 역시 '조또 무리'.


 4. 같은 작품,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의 109쪽 보면, 대단한 여인의 능력이 나온다. "그러나 은숙은 그들을 사는 대신 싸구려 호프집에 들러 허리를 곧추세우고 앉아 오천 시시의 생맥주를 조갈 들린 듯 마셨다." 이거, 95 퍼센트의 확률을 갖고 말하는데, 구라다. 작가 은미희가 한 자리에 앉아서 조갈 들린 듯 오천 시시의 생맥주를 마셔보지 않아서 이런 묘사를 한 거다. 흔히들 얘기할 줄 모르겠다, 배불러서, 또는 오줌 마려워서 한 방에 오천 시시의 생맥주는 못마신다고. 웃기지마라. '조갈들린 듯' 마신다는 가정이면 오천 시시를 한 방에 다 마시고는 취해서 걸음도 걷지 못한다. 맥주 알기를 우습게 아는데 내가 계산해드리지. 맥주는 알콜 함량이 4%. 5,000 * 4% = 200 그램의 순수 알콜. 소주를 걍 20도라고 하면 한 병이 360 cc니까, 소주 한 병에 360 * 0.2 = 72 그램의 순수 알콜이 들어 있다. 그럼 200 그램은 약 세병의 소주와 같은데 그걸 "조갈 들린 듯", 그것도 상대적으로 몸무게가 안 나가고 간 내 알콜 분해효소가 남성보다 적은 여자가 벌컥벌컥 마셔? 그게 사람야? 경험해보지 않고 그냥 되는대로 생각나는대로 쓰는 거 역시 '조또 무리'.


 5. 173쪽 <편린, 그 무늬들>에선 참 대단한 첫 문장이 나온다. 단편 소설의 경우에 유독히 강렬한 묘사로 글을 시작하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 거 같다. 이 작품에선 이렇다. "나선형의 홈이 파인 드릴로 양쪽 관자놀이 부근을 뚫는 듯한 통증에 성모는 눈을 떴다." 이 문장만 딱 읽는다고 가정하면 <편린...>의 편린은 앞으로 벌어질 엽기 공포, 잔혹극의 시작이어야 하리라. 어젯밤에 1차 끝나고 2차 노래방가서 끝없이 주는대로 퍼마셔 간 속에서 알콜을 전부 다 분해하지 못해 아세트 알데히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두통에 시달리는 장면이다. 술꾼의 한 명으로 충분하게 이해되는 장면. 이럴 경우 아침에 눈을 뜨면 농담 아니라 정말로, 손끝 하나 움직이지 못할 거 같은 기분, 이러다가 내가 진짜로 죽는 거지, 라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바로 그 장면이다. 암만해도 그렇지, 그렇다고 드릴로 관자놀이를 뚫어버릴 거 같다니 이거 '조또 무리' 아냐? 물론 나도 농담처럼 다음과 같이 말하고는 한다. "철조망 있지? 그걸 왼편 관자놀이로 넣어서 오른쪽으로 뽑는 거야. 그리고 나서 그걸 양끝을 두 손으로 잡고 돌리는 거 같아." "도무지 고개를 수그리지 못하겠어. 눈알 쏟아질 거 같아서." 근데 이건 다 농담 비슷하게 하는 '말'이잖아.


 6. 같은 작품 198쪽에 보면, 앞의 5에서 나한테 술을 그렇게 먹인 친구새끼들이 왜 모였느냐 하면, 여행사해서 돈 좀 번 친구가 위암에 걸려 위를 들어낸 수술을 하고나서, 아, 세상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 싶어 친구들도 만나고, 맛난 것도 먹고 하여간 인생을 즐기려 특별하게 친한 동무들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문제는 "'자, 자 건배하자, 건배.' 여행사를 하는 녀석이 잔을 치켜들었다." 역시 은미희의 가까운 친지들 가운데 위암으로 수술한 병력이 있는 사람이 없거나 있어도 그리 친하진 않은 거 같다. 위를 들어낸 사람이 술을 마신다? 알콜은 100% 위에서 흡수되는 물질인데 문제는 위가 없다는 거. 위 한쪽을 잘라낸 사람은 죽을 때까지 한 번에 맥주 한 잔 이상을 초과해 마실 수 없다. 그것도 아주 느린 속도로. 죽기를 각오하지 않으면 말씀이다.


 더 써야 해? 에이. 사실은 이 정도에서 메모하는 걸 포기했다.

 그렇다고 은미희의 작품들이 후지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다만 나하고 별로 맞지 않을 뿐이다. 이 책이 2006년에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됐다는 카피가 책 위에 붙어 있는 걸로 봐서 평단의 평가는 내 기호와 차이가 많은 거 같다. 그리고 난 평단의 평가를 내 의견보다 더 믿을 만하다는데 완전히 동의한다. 하지만 이건 내가 쓰는 내 독후감. 평단과 나 아닌 다른 독자의 책에 대한 평가보다 내 의견이 당연히 더욱 중요하다. 아주 전형적인 단편소설의 구조, 이런 걸 평론가들은 탄탄한 구성이라고들 하는 모양인데, 거의 완벽한 교과서적인 구성 위에서 난 그냥 전에 많이 본 듯한 작품들을 읽은 기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7-07-31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00cc도 아니고 5000cc를 조갈 들린 듯이 마신다구요? 저도 한 술 하기는 하지만 ㅋㅋ 500cc 원샷하는 거, 소싯적에도 힘들던데요. ㅎ 작가가 술을 마셔본 적이 없는가 봅니다.

Falstaff 2017-07-31 15:06   좋아요 1 | URL
예, 틀림없이 원 셧 해본 경험이... 의심스러워요.
지난 시절의 에피소드. 서른 한 살 때던가 그런데 1,000cc를 얼마나 빨리 마실 수 있는지 다섯명이 토론을 하다가 드디어 실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24초 안에 마실 수 있느냐 없느냐, 당시 돈 5만원에 상당하는 재화를 거는 겁니다. 내가 이기면 각자한테 하나 씩이니까 20만원 버는 거고, 못 마시면 20만원 버리는 겁니다. 작가의 말대로 조갈이 난 듯 들이켜고 1,000cc 조끼를 탁자에 딱 내리치는 순간 스톱워치가 멈췄는데, ㅎㅎㅎ 7초 8 이었습니다. 내기는 약속한대로 이루어졌고요. 아, 먼 먼 시절 얘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