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저항의 미학 1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133
페터 바이스 지음, 탁선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평점 :
3권 1,450 쪽에 이르는 방대한 장편소설. 겨우 세권 가지고 '방대하다'는 형용사를 쓰는 이유는, 바이스가 글을 쓰는 방식 때문이다. 모든 페이지가 빽빽하게 빈틈 없이 채워진다. 쉼표와 마침표를 제외한 어떤 문장부호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대화는 간접화법으로 이루어져있어서 읽다가 보면 지금 주인공 '나'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니면 간접대화를 하는 화자의 이야기인지 아리송할 수 있는데, 그건 한 문단이 열 댓 쪽에 이르는 촘촘한 문장들을 읽어내다가 한 순간 긴장의 끈을 놓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쉽게 얘기해서 1,450쪽, 번역한 한글 기준 원고지 6,700매에 이르는 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과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한다는 뜻. 세 권 읽느라 여드레 동안 변비증상을 감수해야 했다.
집중과 긴장은 읽는 사람의 고충이고, 무엇을 위해 그런 생 고생을 감수하느냐, 즉 돈과 시간과 독자의 긴장과 집중을 봉헌해가면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 내 소감은, 당연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재미? 하나도 없다. 1975년에 1권을 발간했다. 당시 유신치하 대한민국에선 번역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번역물이 나왔었으면 정말 대단한 의식화 교재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같은 동쪽 독일 작가로 바이스한텐 이모 뻘 혹은 큰 누나 뻘인 안나 제거스는 며칠 전에 독후감 썼던 <제 7의 십자가> 서문에서, "이 책을 작고한, 그리고 생존해 있는 독일의 반(反)파시스트들에게 바친다" 라고 헌정의 말을 붙혔다. <저항의 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37년 부터 1945년 까지 독일과 스페인, 그리고 스웨덴을 무대로 숱한 독일인들이 벌인 반 파시스트 운동, 그것을 겸한 공산주의 운동을 건조한 문장으로 써놓았다. 그러나 독자가 감탄하는 것은 독일의 반 파시스트와 공산주의 운동을 쓰기 위하여 바이스는 부조, 조각, 회화, 문학, 역사를 다 합하여 근본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에 관하여, 억압과 수탈과 불평등과 고문과 처형에 대한 통섭적인 미학을 다 동원했으니 그가 인용한 목록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 이 부조를 세 청년이 바라보며 토론하는 과정에 등장한 그리스 신화, 프란시스코 어쩌구저쩌구 고야가 그린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테오도르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 호의 뗏목>, 화가가 누구인지 얘기할 필요도 없는 <게르니카>, 단테의 <신곡>, 카프카의 <성>, 거기다가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흔히들 가우디 성당으로 알고 있는 성가족 대성당) 등등.
정말 감탄하는 건, 바이스만 놓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유럽의 작가들이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길, 즉 심미안이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 1권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방을 에워싼 석벽에서 몸뚱이들이 솟구쳐 올랐다. 서로 뒤엉킨 채 혹은 파편으로 조각난 채, 떼 지어 펼쳐지는 몸뚱이들. 홀로 남은 토르소, 치켜든 팔 하나, 찢긴 옆구리, 또 상흔을 담은 한 점 살덩이, 어렴풋이나마 원래의 형상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싸우는 몸짓이었다. 잽싸게 몸을 빼고, 공격하고, 몸을 막고…(중략)… 쩍 벌어진 상처, 딱 벌린 입, 퀭하니 응시하는 눈, 곱슬곱슬한 턱수염으로 감싸인 일그러진 얼굴, 휘날리는 주름진 옷자락. 오랜 풍우에 마모되어 곧 사라져버릴 듯, 그러면서도 방금 탄생한 듯 모든 부분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표현력을 간직하고…(후략)…"
이런 세부 묘사, 마치 옆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도록 상상력을 동반하여 세쪽 반에 걸쳐 이어지는 2000년 전의 부조. 기독의 신 이전에 세계를 지배했던 이교(그리스신화)의 신들의 얼굴은 후대에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무참하게 깎여버린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 읽으면서 독자로 하여금 부조의 실제 모습에 관한 무한한 궁금증과 작품을 보고 묘사한 놀라운 글솜씨에 매료당하게 하는 것. 난 책을 넘기자마자 그냥, 뻑.갔.다.
부조를 감상하며 자연스레 2000년 전 페르가몬의 아탈리드 왕조를 둘러싼 대 갈리아 족 전쟁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부조라는 역사적 배경으로 넘어가고, 왕조 특권층의 신격화를 위하여 그리스 신화를 차용한 부조를 만들게 되었을 것이라는 사유로 확장되어 간다.
작가의 미학적 관점을 만일 1권에 국한한다면 책의 주제와 상관없이 바이스의 미학만을 즐겨도 적어도 책값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미학의 궁극점은 앞에서 말한 지배와 피지배, 수탈과 피수탈, 주인과 노예화의 과정을 위한 것이며, 크게는 이런 과정 또는 구조의 해체, 작게는 독일의 파시즘을 타도하기 위한 인민들의 희생과 도전의 역정을 그리는데 복무한다.
주인공 '나'는 어떤 면에서 운이 좋은 인간이다. 유대인 출신으로 나치의 지랄발광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부모님과 함께 원적지原籍地 체코로 귀국하고 거기서 곧바로 파시스트 프랑코를 타도하기 위해 국제 여단이 있는 스페인으로 떠난다. 스페인에서는 전선이 아니라 후방 병원에서 근무하며 평생 멘토랄 수 있는 '호단'이란 이름의 의사를 만나고 (여기까지 1권), 패전 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평생 잊지 못할 명작 <메두사 호의 뗏목>을 직관하는 기회를 갖는다. 이어 스웨덴으로 망명하여 나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스웨덴 사정에 따라 체포되지는 않지만 곤고한 시련을 겪으며 불세출의 드라마 작가이기는 하나 비겁한 면이 충만한 극작가 브레히트와 교류한다(여기까지는 2권). 3권은 내내 스웨덴에서 거주하며 드디어 공산당에 입당을 하게 되는데, 독일에 스파이로 잠입하여 활동하는 등 지극히 위험한 일은 당에 의하여 거부되어 안전하게 스웨덴에 머무르며 동료들의 노력과 희생을 기록하는데 전념한다. 이런 사람 어디나 있다. 희한하게 자신한텐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 떨어지지 않는데 나중에 희생자들이 쟁취한 열매를 따는 사람. 바이스는 그들의 희생을 기록하는 업적이라도 있지, 그런 것도 없이 날로 먹는 사람, 숱하게 많다. 그게 인생이니까.
공산주의 운동사에 관하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당 우파에 의한 테러로 뒤통수가 터져 죽어 베를린 시내를 흐르는 운하에 던져진 다음, 죽은지 다섯달 만에 떠오른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스파르쿠스 단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바이스를 비롯한 서구 공산주의자들의 고민도 언뜻 드러난다(바이스는 결코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지는 않았다). 소비에트 연방의 방침에 어긋나면, 곧바로, 죽거나, 숙청당하거나, 처형당한다. 세 경우, 죽음, 숙청, 처형은 다 같은 말이긴 하지만, 숙청과 처형은 지독한 고문이 뒤따를 수 있는 불행한 확률이 그냥 죽음의 경우보다 상당히 높다. 바이스는 레닌과 격렬하게 충돌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언뜻 비칠 뿐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프롤레타리아에 새로이 등장한 지배자가 독재를 한다는 의미일 뿐이란 것.
이 정도면 얘기 얼추 한 거 같다. 예술품, 문학과 시, 역사를 아우를뿐더러 유럽의 현대사, 그 중에서 공산주의 운동사에 관한 총괄적인 이야기란 것.
PS 1. 내겐 특별한 즐거움을 준 것이 있었다. 오랜 궁금증 가운데 하나가,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그렇게 무장할 동안, 히틀러란 도라이가 하나 등장해서 막강하게 힘을 기르는 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승전국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눈 뻔히 뜬 채로 모른 척했을까, 하는 거. 바이스의 말이 100% 맞지는 않겠지만 궁금증의 일단은 풀렸다. 매우 타당한 이유를 그가 제시했기 때문에.
PS 2. 할 말 이제 정말 다 했다. 이 책이 내가 2017년에 읽은 매우 기념할 만한 작품이 되겠지만 당신한테 권하지는 않겠다. 집중해서 끝까지 다 읽느라고 죽을 똥을 쌌는데 당신도 그 고생을 한 번 당해보라고 할 수 없어서 그렇다. 그래도 읽겠다면 그건 팔자다. 만일 이 'PS 2'를 읽고도 책을 선택하신다면, 절대로 날 원망하지 마실 것.
부록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