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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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후밀 흐라발, 정말 내 취향이다. 이 책이 지난 해 말 서울의 종잇값을 올린다고 소문이 짱짱해 1월에 사서 이제야 읽었다. 1월달에 책에 관해 별 정보 없이 샀다. 그러길 다행이지 만일 자세하게 살펴봤더라면 본문만 130쪽도 되지 않는 중단편 소설을 선뜻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1월에 이 책을 받은 첫 느낌이, 출판사 문학돈내의 얄팍한 상술 말고는 별로 없었다.

 정말 내 취향이다.

 한 늙은이가 있다. 1인칭 시점의 주인공 한탸. 이이는 35년간 폐지 압착을 해오고 있다. 젊어서부터, 그니깐 한 1910년대 중반부터 폐지를 압착한 한탸에게도 세계사의 격랑은 피해가지 않아서 근대사의 화약고였던 발칸반도의 서북쪽에선 왕조의 멸망, 오스트리아에 의한 지배, 1차 세계대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인접국가와의 갈등, 독일의 심각한 영향력 전개, 2차 세계대전 발발과 종전, 공산주의 체제 수립 등을 지하실의 압착기계와 더불어 겪어 나갔다. 35년 전부터  폐기되는 종이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했던 한탸는 오래 전부터, 왕조와 귀족사회가 무너지며 그들의 개인 서재에 있던 고급 장정의 책들을 자연스럽게 읽게 되면서 스스로 조금씩 조금씩 뭔가를 알게 된다. 과거 어느 작가, 철학자가 써놓은 아름다운 글들과 사상에 관하여.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10쪽)

 조상, 아니면 적어도 선배인류로부터 받은 지식과 지성의 선물을 압착, 즉 폐기하기가 너무나 아까워 그는 한 권씩, 인류사상의 보물들을 집에 가져가기 시작한다. 수천권의 책이 한탸의 침실에 쌓이고, 이제 침대 위 선반을 고정시켜 놓은 녹슨 못 하나만 툭 부러지더라도 한탸는 몇백 kg이나 되는 책더미에 깔려 몇년 남지 않은 목숨이나마 재촉할 수밖에 없는 처지. 35년이란 세월. 내가 올해 직장생활 만 31년 차. 지긋지긋하면서도 이미 내 일부가 된 느낌. 그렇게 이해할 수 있는 한탸의 소망. 압착기 역시 기계의 수명이 다 했으니 그간 벌어놓은 돈으로 은퇴와 더불어 자신이 한 세월 함께 했던 고물기계를 사서 기계와 함께 사는 것.

 

 앞에서 말했듯 이 책은 매우 짧다. 더 이상의 스토리는 당신에게 분명한 스포일러. 근면하고 성실하고 대단한 지성까지 갖추게 된 늙은 한탸. 그의 소망대로 만족할 만한 죽음과 만날 수 있을까. 흐라발의 놀라운 비유. 인류의 지성은 격변하는 세계사에서 그나마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위하여, 얼른 도서관으로 달려가시라. 책 너무 얇다. 문고판 형식으로 만들어 책값을 확 내리든지, 작가의 다른 작품과 합해서 한 권을 만들라는 의미로 직접 사지 마시라는 뜻. 작품은 진짜 좋은데 출판사가 넘 후진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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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7-11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ㅎ 나중에 이 책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23-07-11 17:02   좋아요 0 | URL
ㅎㅎ 고맙습니다. 뭐 굳이 다시 읽어보실 것까지 있겠습니까.
도서관 다니시면, 지금 품절인 <영국왕 모셨지>는 ^^ 읽어보셔도 좋을 듯합니다만.
 
2번가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 139
에스키아 음파렐레 지음, 배미영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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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소설책인줄 알고 사서 읽었는데 사람들은 이 책 <2번가에서>를 에세이로 분류한다. 깜짝 놀랐다. 자신의 성장 스토리를 소설의 형식을 빌어 쓴 픽션 아니었어? 이 정도의 책은 장르 분류 없이 그냥 읽어도 재미있다. 난 원래 에세이는 안 읽는 습관이 있지만 지금 읽고 있는 게 에세이인줄 모를 경우엔 그냥 읽는 습관도 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좀 뻔뻔한 느낌도 드네.

 어린 에스키는, 자꾸 에스키, 에스키 하니까 어째 '애새끼' 하는 어감의 혼동을 피할 수 없긴 하다만 하여간 주인공 에스키는 어려서 부모님과 헤어져 시골의 할머니 밑에서 자란다. 왜냐하면, 1920년대 초반엔 도시 프리토리아에 흑인 가족이 살 수 없었으며, 직업이 있는 흑인만 거주할 수 있었는데 직업이 있는 부부 역시 동거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종족들이 서로 살인과 약탈을 서슴지 않았던 아프리카 인들에게, 특히 줄루 족에 의하여 저질러진 학살을 그들과 전쟁을 벌여 잔인하게 진압해 멈추게 한 영국인이 무지하게 고마운 존재였으며, 그 후에도 보어인과의 전쟁에 승리한 영국인들이 자신들을 약탈과 학살에서 해방시켰다고 여겨 일부 흑인 원주민들은 모든 유럽에서 온 백인을 하느님 또는 하느님의 자식이라고 여기기까지 했단다. 사하라 이남의 원시 비슷한 야만의 상태, 조지프 콘라드의 말대로 암흑의 핵심에 거주하던 이들에게 현대문명과 눈부신 피부를 갖고 있던 백인들의 사려깊게 보이는 교묘한 착취는 기꺼이 받아들일 만한 것이었던 모양이다.

 도시에 비교하여 더욱 열악할 수밖에 없던 시골에서 에스키의 뛰어난 지능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시험보는 족족 일등. 완고하고 정없고 툭하면 두드려 패는 할머니한테 어느날 엄마가 와서 에스키를 도시 프리토리아의 빈민 외곽지역, 폴란드의 게토보다 훨씬, 훨씬, 훨씬 더 비위생적이고 초라하고 곧 쓰러질 것 같은 동네에 살게 된 에스키. 그리도 그리워하던 부모품으로 돌아가 행복할 거 같았는데 인생이 원래 행복이란 걸 되게 미워하는지라 어린 에스키한테도 괴물을 하나 던져주었다. 바로, 아버지. 아버지로 인하여 집안꼴은 나날이 개판이 되어가고 없는 살림 더욱 비렁뱅이 비슷하게 변해가다가 그것도 모자라 어느날 하루, 감자와 카레가 펄펄 끓고 있는 솥단지를 아버지가 번쩍 들더니 엄마의 풍성한 티셔츠 속에다 쏟아부어버린다.

 그 다음은? 뭐 어떻게 보면 뻔하지. 고생고생 또 고생하면서 끈질기게 공부해 장학금 받아 남아프리카에 있는 흑인 전용 대학을 나오고, 직장을 얻고 또 고생하다가 결혼했는데 해고 당하고, 다시 직장을 얻고 공부를 더 하고 드디어 쨍하고 해가 떴다.

 그런데, 내가 자전적 에세이를 소설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가가 세상을 보는 눈이 일반적 출세담하고는 거리가 있다는 점. 음파렐레의 글엔 마땅하게 있음직한 미움이나 증오 같은 것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 불평등을 있는 불평등으로 묘사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는 인종분리정책, 아파르트헤이트가 어떻게 벌어졌고, 당시 아프리카의 상황이 이래서 그런 일이 생겼으며 그에 따른 현상은 어떠했다. 이렇게 차분하게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종분리 자체가 독자로 하여금 열을 받게 하는 장치이기 때문에 책을 읽어나가면서 슬슬 차오르는 분노는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열악하고 악랄하기까지 한 제도임에도 피해를 입어가며 나름대로 서로 어울려 악착같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가히 나쁘지 않다. 제도야 어차피 지배와 피지배, 수탈과 피수탈이 공식임을 알고 있으니까.

 다만 책의 후반부로 가면 완전히 성인이 된 에스키아 음파렐레, 너무 잘난 척을 해서 밥맛이 없어지기도 하는 게 매우 아쉽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잘 난 줄 다 아는데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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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들을 위한 학교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8
사샤 소콜로프 지음, 권정임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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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판 포스트 모더니즘이라고 하는데, 이런 책의 맹점은 불과 닷새 전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게 어떤 내용이었더라, 한참을 생각해야 겨우 가늠할 수 있다는 거. 맞아, 지적 장애가 있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가 바라보는 세상과 생각의 확장 같은 것을 쓴 책이다. 성경에 나오는 바울과 사울을 모티프로 특수학교의 교장, 지리교사, 생물을 가르치는 여교사 등에 관한 지적 장애아의 대뇌 안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을 순행과 역행의 기차노선을 빗댄 시간의 혼돈과 비벼버린 섞어찌개.

 이 책을 읽으면서 은근히 열 받은 건, 작가 사샤 소콜로프가 지적 장애와 정신착란을 헷갈려 하는 상태에서 소설을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 책을 "나의 친구이자 이웃인 지적 장애아 비차 플라스킨에게" 헌정하는 것으로 보아 진짜 지적 장애아와 무수한 대화를 나누어 아이(작가가 지적 장애'아'라고 했으니)의 생각 속에 벌어지는 여러가지 스토리를 채집했을 것이 틀림없지만, 문제의 장면이 나오는 모든 문장이 지적장애아의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생각이 아니라 그 아이가 진실로 그렇게 믿고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도록 쓰여 있다는 거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유년기에 작은 소도구(장난감이라 생각하면 더 좋겠다) 하나만 가지고 온갖 스토리가 마치 진짜로 일어나고 있다는 듯이 자기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유년의 아이가 자기가 지금 전개하고 있는 대하 서사시가 정말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스토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상상 속에서 격렬한 전투 중에 큰 부상을 입었으나 그걸 무릅쓰고 홀로 적진을 향해 조자룡의 헌 칼을 휘두르다가도, 개똥아 염병하지 말고 얼른 와서 밥 먹어, 엄마의 성질난 한 마디에 여태까지 잘 가지고 놀던 소도구를 방바닥에 휙 팽개치고 밥 먹으러 달려간다. 정신의 상태를 측정할 때, (성인이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자) 이런 경우 엄마한테 줘박히지 않기 위해 얼른 밥먹을 태세를 갖추는 경우는 정상, 엄마의 열화와 같은 아우성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적군의 마지막 한 명 까지 조자룡의 헌 칼로 베어 자신을 정말로 영웅으로 확정한 다음에야 화면이 꺼지는 상태가 정신착란이다. 물론 내 생각. 어디 가셔서 인용하지 마시라. 개망신 당하기 십상이다.

 소콜로프의 <바보들을...>의 주인공(작가가 책을 헌정한 인물과 같은) 비차 콜로스킨은 사람들과 시간의 미궁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그리하여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 과거에 이미 발생했던 것인지, 앞으로 생겨날 일인지, 아니면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상영되고 있다고 여기거나 아예 그에 관한 이해를 하지 못한다. 지금 눈 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무턱대고 두드려 패기만 하는 교장선생새끼가 교실에 들어 왔서 난리를 치는 것인지, 자애롭고 친절한 지리 선생님이 스팀 파이프 위에 앉아 계신지, 어여쁘기 그지없는 생물 선생님이 앞으로 내가 결혼할 어여쁜 신부인지, 헷갈리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는, 인물, 시간, 사건의 사차원 속에서 살고 있다.

 이게 지적 장애야? 정신질환 아냐?

 분명한 것은, 작가 사샤 소콜로프가 단 한 번도 지적 장애인이었던 적이 없었다는 거. 아무 생각 없이 읽고나서, 야 이거 참 참신한데, 여태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시도야, 라고 하면 매끄럽게 끝낼 수 있는 독후감이지만, 난 기어코 시비를 걸고 넘어가야 하는 거다. 조또 모르면서 막 써대지 말라고. 장애는 질병이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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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미학 1 대산세계문학총서 133
페터 바이스 지음, 탁선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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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권 1,450 쪽에 이르는 방대한 장편소설. 겨우 세권 가지고 '방대하다'는 형용사를 쓰는 이유는, 바이스가 글을 쓰는 방식 때문이다. 모든 페이지가 빽빽하게 빈틈 없이 채워진다. 쉼표와 마침표를 제외한 어떤 문장부호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모든 대화는 간접화법으로 이루어져있어서 읽다가 보면 지금 주인공 '나'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아니면 간접대화를 하는 화자의 이야기인지 아리송할 수 있는데, 그건 한 문단이 열 댓 쪽에 이르는 촘촘한 문장들을 읽어내다가 한 순간 긴장의 끈을 놓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쉽게 얘기해서 1,450쪽, 번역한 한글 기준 원고지 6,700매에 이르는 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과 긴장을 놓치지 않고 읽어야 한다는 뜻. 세 권 읽느라 여드레 동안 변비증상을 감수해야 했다.

 집중과 긴장은 읽는 사람의 고충이고, 무엇을 위해 그런 생 고생을 감수하느냐, 즉 돈과 시간과 독자의 긴장과 집중을 봉헌해가면서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 내 소감은, 당연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재미? 하나도 없다. 1975년에 1권을 발간했다. 당시 유신치하 대한민국에선 번역을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일 번역물이 나왔었으면 정말 대단한 의식화 교재의 반열에 올랐을 것이다.

 같은 동쪽 독일 작가로 바이스한텐 이모 뻘 혹은 큰 누나 뻘 안나 제거스는 며칠 전에 독후감 썼던 <제 7의 십자가> 서문에서, "이 책을 작고한, 그리고 생존해 있는 독일의 반(反)파시스트들에게 바친다" 라고 헌정의 말을 붙혔다. <저항의 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1937년 부터 1945년 까지 독일과 스페인, 그리고 스웨덴을 무대로 숱한 독일인들이 벌인 반 파시스트 운동, 그것을 겸한 공산주의 운동을 건조한 문장으로 써놓았다. 그러나 독자가 감탄하는 것은 독일의 반 파시스트와 공산주의 운동을 쓰기 위하여 바이스는 부조, 조각, 회화, 문학, 역사를 다 합하여 근본적으로 지배와 피지배에 관하여, 억압과 수탈과 불평등과 고문과 처형에 대한 통섭적인 미학을 다 동원했으니 그가 인용한 목록을 간단하게 소개하자면,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 이 부조를 세 청년이 바라보며 토론하는 과정에 등장한 그리스 신화, 프란시스코 어쩌구저쩌구 고야가 그린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 테오도르 제리코의 그림 <메두사 호의 뗏목>, 화가가 누구인지 얘기할 필요도 없는 <게르니카>, 단테의 <신곡>, 카프카의 <성>, 거기다가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흔히들 가우디 성당으로 알고 있는 성가족 대성당) 등등.

 정말 감탄하는 건, 바이스만 놓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어찌 유럽의 작가들이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길, 즉 심미안이 이토록 발전할 수 있었는가 하는 것. 1권 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방을 에워싼 석벽에서 몸뚱이들이 솟구쳐 올랐다. 서로 뒤엉킨 채 혹은 파편으로 조각난 채, 떼 지어 펼쳐지는 몸뚱이들. 홀로 남은 토르소, 치켜든 팔 하나, 찢긴 옆구리, 또 상흔을 담은 한 점 살덩이, 어렴풋이나마 원래의 형상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언제나 싸우는 몸짓이었다. 잽싸게 몸을 빼고, 공격하고, 몸을 막고…(중략)… 쩍 벌어진 상처, 딱 벌린 입, 퀭하니 응시하는 눈, 곱슬곱슬한 턱수염으로 감싸인 일그러진 얼굴, 휘날리는 주름진 옷자락. 오랜 풍우에 마모되어 곧 사라져버릴 듯, 그러면서도 방금 탄생한 듯 모든 부분 하나하나가 저마다의 표현력을 간직하고…(후략)…"

 

 이런 세부 묘사, 마치 옆에서 본 듯한 느낌이 들도록 상상력을 동반하여 세쪽 반에 걸쳐 이어지는 2000년 전의 부조. 기독의 신 이전에 세계를 지배했던 이교(그리스신화)의 신들의 얼굴은 후대에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무참하게 깎여버린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 읽으면서 독자로 하여금 부조의 실제 모습에 관한 무한한 궁금증과 작품을 보고 묘사한 놀라운 글솜씨에 매료당하게 하는 것. 난 책을 넘기자마자 그냥, 뻑.갔.다.

 부조를 감상하며 자연스레 2000년 전 페르가몬의 아탈리드 왕조를 둘러싼 대 갈리아 족 전쟁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부조라는 역사적 배경으로 넘어가고, 왕조 특권층의 신격화를 위하여 그리스 신화를 차용한 부조를 만들게 되었을 것이라는 사유로 확장되어 간다.

 작가의 미학적 관점을 만일 1권에 국한한다면 책의 주제와 상관없이 바이스의 미학만을 즐겨도 적어도 책값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미학의 궁극점은 앞에서 말한 지배와 피지배, 수탈과 피수탈, 주인과 노예화의 과정을 위한 것이며, 크게는 이런 과정 또는 구조의 해체, 작게는 독일의 파시즘을 타도하기 위한 인민들의 희생과 도전의 역정을 그리는데 복무한다.

 주인공 '나'는 어떤 면에서 운이 좋은 인간이다. 유대인 출신으로 나치의 지랄발광이 시작되기 바로 전에 부모님과 함께 원적지籍地 체코로 귀국하고 거기서 곧바로 파시스트 프랑코를 타도하기 위해 국제 여단이 있는 스페인으로 떠난다. 스페인에서는 전선이 아니라 후방 병원에서 근무하며 평생 멘토랄 수 있는 '호단'이란 이름의 의사를 만나고 (여기까지 1권), 패전 후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평생 잊지 못할 명작 <메두사 호의 뗏목>을 직관하는 기회를 갖는다. 이어 스웨덴으로 망명하여 나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스웨덴 사정에 따라 체포되지는 않지만 곤고한 시련을 겪으며 불세출의 드라마 작가이기는 하나 비겁한 면이 충만한 극작가 브레히트와 교류한다(여기까지는 2권). 3권은 내내 스웨덴에서 거주하며 드디어 공산당에 입당을 하게 되는데, 독일에 스파이로 잠입하여 활동하는 등 지극히 위험한 일은 당에 의하여 거부되어 안전하게 스웨덴에 머무르며 동료들의 노력과 희생을 기록하는데 전념한다. 이런 사람 어디나 있다. 희한하게 자신한텐 위험하고 어려운 일이 떨어지지 않는데 나중에 희생자들이 쟁취한 열매를 따는 사람. 바이스는 그들의 희생을 기록하는 업적이라도 있지, 그런 것도 없이 날로 먹는 사람, 숱하게 많다. 그게 인생이니까.

 공산주의 운동사에 관하여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민주당 우파에 의한 테러로 뒤통수가 터져 죽어 베를린 시내를 흐르는 운하에 던져진 다음, 죽은지 다섯달 만에 떠오른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스파르쿠스 단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바이스를 비롯한 서구 공산주의자들의 고민도 언뜻 드러난다(바이스는 결코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지는 않았다). 소비에트 연방의 방침에 어긋나면, 곧바로, 죽거나, 숙청당하거나, 처형당한다. 세 경우, 죽음, 숙청, 처형은 다 같은 말이긴 하지만, 숙청과 처형은 지독한 고문이 뒤따를 수 있는 불행한 확률이 그냥 죽음의 경우보다 상당히 높다. 바이스는 레닌과 격렬하게 충돌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언뜻 비칠 뿐이다. 프롤레타리아 독재란 프롤레타리아에 새로이 등장한 지배자가 독재를 한다는 의미일 뿐이란 것.

 이 정도면 얘기 얼추 한 거 같다. 예술품, 문학과 시, 역사를 아우를뿐더러 유럽의 현대사, 그 중에서 공산주의 운동사에 관한 총괄적인 이야기란 것.

 

 

 

 PS 1. 내겐 특별한 즐거움을 준 것이 있었다. 오랜 궁금증 가운데 하나가,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그렇게 무장할 동안, 히틀러란 도라이가 하나 등장해서 막강하게 힘을 기르는 걸,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승전국이 도대체 무슨 이유로 눈 뻔히 뜬 채로 모른 척했을까, 하는 거. 바이스의 말이 100% 맞지는 않겠지만 궁금증의 일단은 풀렸다. 매우 타당한 이유를 그가 제시했기 때문에.

 

 PS 2. 할 말 이제 정말 다 했다. 이 책이 내가 2017년에 읽은 매우 기념할 만한 작품이 되겠지만 당신한테 권하지는 않겠다. 집중해서 끝까지 다 읽느라고 죽을 똥을 쌌는데 당신도 그 고생을 한 번 당해보라고 할 수 없어서 그렇다. 그래도 읽겠다면 그건 팔자다. 만일 이 'PS 2'를 읽고도 책을 선택하신다면, 절대로 날 원망하지 마실 것.

 

 

 

 

 

 

부록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

아, 이 도둑놈 새끼들. 아예 신전을 통째로 뜯어왔다.

 

 

메두사 호의 뗏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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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7-05-18 1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사실 저는 세 권을 모두 한꺼번에 구입해놓고는...... 1권을 읽다가 포기....... 이게 잠깐 잠깐 짬을내어서 읽어낼 소설이 아니라는 걸 알고.. 정말 긴 여유시간이 주어진면 내쳐 읽어야지 하고 고이 책장 한켠에 모셔만 두고 있습니다. --;;
오죽했으면 이런 책이 있다고 하길래 이것마저 사서 이것부터 읽어야 하나..고민아닌 고민을..^^;;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6649409
<페르세우스의 방패> 부제가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 읽기˝ 더라구요.
어쨌든 저도 완독에 의미를 두며 읽어보려구요! ^^

Falstaff 2017-05-18 11:12   좋아요 1 | URL
1970년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이루어지던 동독에서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더라고요. 인민들 읽기 쉽게 좀 쓰지 말입니다. ㅎㅎ
내용이 어려운 건 아닌데 참 거, 뭐라고 해야하나, 하여간 읽기 쉽지 않은 건 맞더라고요.
에휴, 이미 저지르셨으니 고생하십시요. ^^;
 
W 또는 유년의 기억 펭귄클래식 110
조르주 페렉 지음, 이재룡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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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 사용법>, <사물들>에 이어 세번째 읽은 조르주 페렉. 이 사람이 어떻게 생겼다 한 번 보자.

나름대로 잘 생긴 유대인 청년이었다. 근데 나중에 이렇게 변한다.

 

 

 뭐 남자의 변신은 무죄니까. 나도 은퇴하면 턱수염 기르고 나비 넥타이 매고 다닐 거다.

 

 저 사진의 남자가 쓴 <인생 사용법>을 읽고 깜짝 놀랐었다. 햐 거참 재미난 작가네 싶어서. 그 책 때문에 페렉이 눈에 띄는 족족 골라 읽으리라 마음 먹었었다. 굳이 찾아서 읽는 건 아니고, 그냥 눈에 띄면.

 <W 또는 유년의 기억>의 W 섬, 남위 몇도 서경 몇도(몇 도인지는 잊었음)에 위치한 작은 섬. 섬나라라고 해두자.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남극 쪽으로 주욱 내려와 있는 익명의 섬. 그러면 W에 대한 설명은 됐고, '유년의 기억'만 남았다. 누구나 다 유년의 기억은 있는 법. 당신이 소설가라면 당신도 역시 적어도 한 작품에선 자신의 유년, 멀고 먼 파편들을 모아 모자이크처럼 맞추고자 해볼 것이다. 페렉도 그랬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장렬한 최후는 아니고 거의 모든 죽음이 그렇듯 그냥 허무하게 죽어버렸고, 엄마는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한 조각의 비누로 변신했다. 이후 고모네 집에서 자란 거 까지가 페렉의 유년시절. 나머지는 픽션.

 그리 나이도 많지 않은 화자, 가스파르 뱅클레가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들, 편편이 끊어져 아무도 이어주지 않는 시간의 파편들을 조합하여 쓰는 자서전. 이런 회상의 장면들. 쓸쓸할 수밖에 없는 상실의 시간에 대한 기억. 나 이런 거 좋아한다. 그것도 페렉이 아주 매력적으로 써놓았음에야. 근데 가스파르 하는 짓 봐라. 점점 나이먹어 나이 먹은 값을 하느라고 군대엘 갔는데, 어쩌면 페렉의 분신이기도 한 가스파르는 (저 위 사진을 보시라. 저딴 사람이 군대 규율에 잘 적응하겠는가) 작전에 나가 그 길로 탈영을 해버리고 만다.

 여기까지 좋았다. 탈영을 해 국경 밖에서 나름대로 그럭저럭 살고 있다가, 난데없는 사실 하나를 알게 된다. (독자들은 예상도 못했던 바)……… 이후 주욱 써나갔다가, 내가 지금 뭐하는 거야, 자각을 하곤 몽땅 지웠다. 해설, 작가 연보까지 몽땅 다 합해야 200 쪽밖에 안 되는 짧디 짧은 소설의 스토리를 더 이상 얘기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스포일러일 수밖에 없기에. 사실 탈영과 해외망명도 얘기하지 않는 편이 더 좋았을 걸 싶었는데, 그랬다간 정말 독후감 쓸 일이 없을 거 같아서 그냥 내비뒀다.

 섬나라 W. 페렉 스스로가 손기정이 금메달과 그리스 투구를 받은 베를린 올림픽의 해에 태어나서 그랬는지, W는 점점 상업화, 세속화되고 있는 올림픽 정신에 실망한 도라이 한 명이 인간들을 이끌고 들어가 세운 나라로, 모든 인간이 태어나서 오직 독하게 스포츠에만 기여하다가 생을 마감해야 하는 곳이다. 별 희한한 방식의 스포츠 제일주의. 말도 안 되는 스포츠. 오직 근육과 골격만 인생의 목표로 정해놓고 개인별 특성에 따른 육성 따위는 개한테나 던져준 집단. 이걸 읽으면서 난 자연스레 페렉의 부모를 죽음으로 몰고간 집단광기의 나치 치하 독일로 상상했다. 엄마를 비누 한 쪽으로 변신시킨 수용소의 광기로 치환해도 무방할 것 같다.

 문제는 W 섬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섬사람들의 사는 모습이 (나에겐 확실하게) 지루했다. 한 얘기 비슷하게 또 하고, 비슷하게 한 얘기 한 번 더하고. 페렉이 왜 이래, 했다니깐 글쎄.

 이 책을 당신한테 권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는데 앞 부분의 쓸쓸한 유년의 기억 때문이 아니라 W에다 대고 펼치는, 과하게 친절하고 상세하고 조밀한 묘사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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