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구르 유목제국사 744~840 - 막북 초원에 고립된 위구르의 발전 모색 유목제국사
정재훈 지음 / 사계절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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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은 솔직한 이유는, 에드위드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의 마지막 부분, 동로마제국마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하여 멸망하는 장면이었다. 오스만 투르크. 이제 마지막 한 방이면 위대한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쪼개놓을 찰라, 난데없이 몽고군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아 영광의 시기를 뒤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민족. 튀르키예의 조상들은 로마사를 읽으면서도 갑자기 튀어나왔다. 로마 제국사에서 로마의 가장 큰 적수는 제국 초기엔 라인강변 주변의 갈리아족과 게르만족, 중기에는 골족과 고트족, 서로마가 망한 이후에는 페르시아였다. 역사가의 서술에 황제가 직접 적군의 창이나 칼에 맞아 전장에서 목숨을 다했던 건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있었을 뿐이다. 제국사 내내 거의 이름을 내지 않았다가 난데없이 등장해 기어이 동로마제국의 숨통을 끊어놓은 오스만 투르크, 투르크 족. 이들은 15세기까지 지금의 튀르키예 동쪽 황야지대에서 유목을 하던 투르크 사람들을 조상으로 한단다. 이 투르크 족은 유라시아 대륙의 저 동쪽 다싱안링(대흥안령)산맥부터 고비사막의 북쪽을 따라 서쪽의 알타이 산맥까지를 일컫는 막북 지역에 거쳐했던 다양한 유목민족 가운데 하나였다. 이들은 흉노, 돌궐, 위구르처럼 하나의 제국을 건설하지는 않았고, 각 유목 제국의 일원에 포함되어 생활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3세기를 전후해 몽골이라는 거대국가에 밀려 위구르 시대에 이미 ‘튀르키’라는 부족을 이루어 서쪽으로 밀리고 밀리면서, 대륙을 횡단하는 동안 다양한 인종과의 혼혈도 이루어지며 튀르키예 동쪽에 거의 최초로 정주하게 된 민족으로 보인다.

  여기까지는 몰랐다. 여태 유럽에서는 사납기로 이름이 난 타타르 족의 한 가지로 그 지역에서 유목을 하고 있었는 줄 알았을 뿐. 그러다가 다른 소소한 민족처럼 훈족이나 몽고족에 의하여 밀리고 밀리다 결국 서방에 압력을 가해 발칸쪽으로 옮겨 동로마제국과 국경을 맞닿게 된 것쯤인 줄 알았다. 여기서 궁금증을 조금, 많이도 아니고 조금 풀어볼 셈으로 <위구르 유목 제국사>를 읽기로 했던 것.

  또한 가지가 현대 중국의 큰 골치거리 가운데 하나인 신장∙위구르 지역에 관한 것. 내가 알기로는 티벳 고원을 장악했던 토번 족이 세력을 떨친 신장하고, 고비 사막 이북, 윈깡 동쪽을 장악한 위구르. 이게 연결이 잘 안 되더라는 것. 토번과 위구르를 알기 쉽게 말해 견원지간이라고 알고 있었다. 근데 그들이 언제 신장 지역에 합류해서 뜻을 합해 신장 위구르의 자치 독립을 주장하게 되었는지,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도 궁금했다. 물론 이건 이 책 <위구르 유목 제국사>가 다루는 744~840년까지의 연구에서는 밝히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기미는 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론 혹시 했다가 역시 했지만.


  흉노와 말갈, 위구르 등 유목민족은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먹고 살 것이 부족했다.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건 유목의 대상인 가축과 가축들이 줄 수 있는 몇 가지, 그리고 거의 바랄 수 없을 정도의 수렵과 채집뿐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거친 땅에서 나오는 양질의 철, 즉 만들어봤자 쓸모도 없는 농기구가 아니라 세계 최고 수준의 칼과 창과 화살촉을 만들 수 있는 철. 두고두고, 천 년을 넘는 동안 세상 어느 인종도 넘볼 수 없는 전쟁기술인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백발백중의 실력은 인구 수보다 더 많은 말과 좋은 철로 만든 화살로 만들어진다. 그러나 먹고 살기 팍팍하고, 입을 것도 없고, 누릴 것도 없다. 이래서 그들은 죽기 아니면 살기의 심정으로 물자가 풍부하다못해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중국 땅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 그러다가 자신들도 조금 누려보려고. 나중엔 최고급의 중국산물(비단이나 차, 도기, 장신구 같은 사치품)을 노략질하거나 자기들 말과 교환해 오아시스 지역의 나라들에 내다 팔아 자기들의 부를 키워보려고.

  사람이란 다 마찬가지다. 아예 해보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우연이라도, 한 번 제대로 된 밥상을 경험해보면 그걸 한 번 더 받아보고 싶고, 어느 집에 불을 싸질러 옥가락지를 하나 뺏아 손가락에 끼워봤으면 두 손가락, 다른 손의 손가락에도 끼워보고 싶어지는 것이 인지상정. 게다가 기동력있게 타고 다닐 말도 있지, 스나이퍼를 능가하는 활도 있는데 뭐가 무서워서.

  애초에, 자기들 기준에 북쪽에 크고 긴 성을 지어 오랑캐 유목 민족들이 담을 넘어오지 못하게 인프라 건설에 힘을 쏟은 진나라 시황 때부터 중국인들은 벌판에서 오직 싸움만 가지고는 이들을 방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중국인들이 즐겨 쓴 방법이 이이제이以夷制夷, 오랑캐로하여금 지들끼리 대가리 터지게 만드는 전술이었다. 정말 다싱안링 산맥부터 사마르칸트, 부하라를 거쳐 우크라이나 동부지역까지 진출했던 돌궐도 세가 줄어들자 당나라 조정은 이를 이용해 위구르를 견제했고, 돌궐이 시새푸새해지니 돌궐 대신 토번을 이용해, 토번과 위구르한테, 너네 쟤네하고 싸우면 이겨? 열심히 이간질을 해왔던 거다. 중국도 다 자기들 살기 위해서. 안녹산의 난이 일어나 중원과 에그머니, 낙양, 그리고 궁전이 있는 장안까지 점령당하자 당현종은 꽁무니를 빼고 그 자리에 앉은 숙종이 한 일은, 북쪽을 향해 굳게 닫혀있는 문을 열고 위구르 군을 불러오는 것이었다. 안녹산, 안사도 원래 돌궐족, 오랑캐 출신으로 당나라에 와 운이 좋아 현종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하더니 허파에 바람이 들기 시작, 그깟 황제, 나도 한 번 해보자, 칭제를 해 나라를 세워 연燕이라 했다. 그러니 안사의 난으로 죽어나간 건 애먼 당나라 사람들이었으나 정작 쌈질은 돌궐+소그드족과 위구르족이 주로 담당했던 거다. 이 한 방으로 사실 당은 제대로 맛이 가서 점점 쇠망의 길로 접어든다.


  부록을 빼면 360쪽. 이 분량으로 아무리 96년사에 불과한 짧은 역사를 기록한 것이지만 위구르를 제대로 이해했다고 뿌듯해지기는 힘들 듯. 근데 그건 이 책을 쓴 사학자 정재훈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보기에도 워낙 부실한 기록밖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처럼 보인다. 유목지역이 워낙 넓고, 인구밀도가 낮고, 종족들이 많아 그만큼 다툼과 파괴가 잦았기 때문에 그나마 기록이 된 것들도 다른 어느 곳보다 결정적인 망실이 많았을 것이다. 유물들의 보존도 그만큼 힘들었으며, 사람 손이 닫지 않는 유적은 그만큼 빨리 폐허로 만들어버리는 것이 자연의 힘이라 변변한 유적 하나 없는 역사학의 황무지가 고비사막을 중심으로 앞뒤에 펼쳐진 거대한 초원지대. 그리하여 남은 역사 자료라 함은 거의 대부분이 중국인에 의하여 기록된 문서일 터이고, 당연히 역사는 기록한 자들의 편집이라, 중국인의 눈, 중국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을 것. 이제 벌판에 묻힌 비석 몇 개에 풍화된 채 남겨진 비석문으로 중화의 서고를 채운 자료를 최대로 반박하며 새롭게 쓰는 역사라는 아쉬움을 모른 척하는 것도 야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구르 유목 제국사>를 읽은 다음에는, 역사책 한 권을 끝냈다는 뿌듯함이 들지 않는다. 처음으로 읽는 유목 제국사이긴 하지만, 짧은 역사이기 때문에 위구르의 스토리가 다양하지 못해 그런 측면도 있겠고, 당연히 있었겠지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위구르 문화 역시 유물과 함께 사라졌을 것이며, 사용하는 문자는 있었으되 이들의 생활이나 사상을 기록할 만큼 다양하지 않아 그저 흘러가 잊힌 민족.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사이에서 휘리릭 사라진 하자르 족처럼, 분명 있기는 했지만 남기지 못한 제국을 찾는 일, 결과물을 읽는 것. 어째 좀 짠하다.

  중국인들, 당이나 명의 눈에 위구르와 마찬가지로 오랑캐夷로 불린 우리는 왜 사라지지 않았을까? 이 책을 읽은 내가 낼 수 있는 답은, 정주민이었기 때문에. 즉 스스로 먹고 마시고 기록하고 즐기고, 위계 세우고 문화를 만드는 독자생존이 가능해 국경을 넘어 중국까지 들어가 약탈을 할 필요가 없어서 그랬다. 중국에 새로운 왕조가 생길 때마다 우리에게 보낸 의심은, 저것들이 다른 세력과 연계해 우리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지 결코 우리가 독자적으로 침략하리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태종과 고종이 대를 이어 그리도 죽자사자 고구려를 멸망시킨 이유가, 걔네들은 내버려두면 여진이나 말갈, 몽고처럼 쳐들어올 거 같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하여간 역사만큼 야박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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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1-22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옌롄커, 《그해 여름 끝》
화요일. J.M. 쿳시, <서머타임>
목요일. 천쓰안, <제일 가까운 장애인 화장실이 어디죠?>
금요일. 김혜진, 《축복을 비는 마음》

자목련 2024-11-22 09:35   좋아요 1 | URL
김혜진의 단편집이 반갑습니다^^

Falstaff 2024-11-22 10:13   좋아요 0 | URL
아휴, 괜찮았습니다. 삼십대 후반에 쓴 작품집인데 솜씨가 만만치 않더군요. ^^

꼬마요정 2024-11-22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넓은 초원을 누빈 대신 자신들의 기록을 잃었군요. 역사는 너무 야박합니다ㅜㅜ

Falstaff 2024-11-22 10:14   좋아요 1 | URL
넵. 그저 짠하지요. 중국 변방에서 살아남은 우리가 대단합니다.

yamoo 2024-11-22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민에 보는 뽈님의 역사서 리뷰!!

Falstaff 2024-11-22 16:5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정말 역사 책은 오랜만입니다.
 
시골 소녀들 은행나무세계문학 에세 18
에드나 오브라이언 지음, 정소영 옮김 / 은행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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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올해 여름에 93세 7개월 12일을 살다가 런던에서 생을 멈춘 조세핀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아일랜드 작가로 아일랜드는 물론이고 유럽 각지에서 이름을 낸 소설가였던 모양인데, 나는 이름도 몰랐다. 출판사 은행나무의 ‘에세’ 시리즈에서 이런 작가,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 독자 입장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이 시리즈의 18번으로, 열여덟 권 모두 여성 소설가가 쓴 작품으로 구성했다. 여성작가 시리즈가 이것 말고 다른 출판사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좋은 작품만 소개하면 되지 굳이 여성작가만 대상으로 하는 것에 불만이 생길 즈음, 은행나무는 드디어 에세 시리즈의 19번에서 처음으로 제럴드 머네인의 <평원>, 150쪽에 불과한 중편 정도의 소설을 찍어, 다음 달에 읽을 예정이다. 괜찮다고 여기는 작가 구성이 남자 한 명에 여자 18명 정도 되는 모양이다. 문학은 여성시대로 오래전에 완전히 바뀌었다. 1번으로 나온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는 다른 출판사 책으로 읽었고, 2번부터 한 권도 빼지 않고 집중하고 있다. 좋은 책만 찍어라, 읽는 건 내가 한다. 별로 소용은 없겠지만 광고와 영업도 해준다.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소설 말고도 회고록, 극작, 시, 단편소설도 썼다고 하는데, 하여간 전업작가로 2019년까지, 그러니까 88세에 낸 마지막 장편소설 <소녀>까지 쉬지 않고 뭔가를 썼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으로 1960년부터 64년까지 출간한 시골소녀 3부작, <시골 소녀들>, <외로운 소녀들>, <행복한 결혼을 한 소녀들>일 것 같다. 필립 로스는 오브라이언을 가리켜 “현재 영어로 글을 쓰는 가장 재능있는 여성”이라고 평했다고. 로스가 이렇게 말한 것이 언제 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요즘에 이렇게 주둥이를 함부로 놀렸다가는 네가 뭔데 재능이 있고 아니고, 여성이고 남성이고를 말하느냐고 경향각지를 막론하고 오지게 얻어 터졌을 듯하다. 안 그랴? “가장 재능있는 여성” 속에 은근히 여자가 이 정도면 잘 쓴다고 해줄께, 뭐 이 비슷한 뉘앙스가 보이는 거 같아서 그렇다. 내가 여자라면 로스의 말이 달갑지 않을 것 같다. 반면에 아일랜드의 대통령이었던 매리 로빈슨은 “그녀 세대의 가장 위대한 창의적인 작가 중 한 명”이라 평했다. 매리 로빈슨은 여성 대통령이었다. 성을 불문하고 오브라이언이 창의적인 작가라고 칭찬한 것이니 얼마나 깔끔하느냐는 것이지. 필립 로스가 좀 그래. 예쁘장한 여자 제자를 뒷말 나오지 않게 자빠뜨릴 생각 하는 늙은 것들이나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말이지.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완전 아일랜드 혈통(뭐 이런 혈통이란 게 있기는 있다면 하는 얘기지만)으로 어린 시절에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를 다니며 천주교에 깊은 영향을 받은 초년시절을 지냈다. 1930년생이니 이이의 작품 속 소녀시절은 주로 1940년대 중후반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당시 천주교 아일랜드는 1960년대 우리나라의 의식하고 많이 다르지 않았다고 여기면 될 듯하다. 그중에서도 시골이면 완고함, 특히 여성의 규범, 특히 성과 몸가짐에 관한 사회와 가정의 압제와 강요는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을 발표한 1960년이 되면 많이 나아지기는 했을지언정 그렇다고 여성이 대놓고 자신의 성적 욕망과 흥분상태를 묘사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았을… 않았다고 한다. 18세를 넘어 이제 사회에서 확실한 성인으로 인정받아 음주와 흡연, 섹스를 포함한 연애의 자유를 얻었어도 임신과 피임에 관한 정보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고, 남의 눈에 띄는 것이 마땅하지 않아 연인이 더블린발 런던행 비행기를 타도 시간을 달리 해 각자 출발해야 하던 때였다.


  이 시기에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열네 살 먹은 사춘기 소녀가, 작품에서는 확실하게 드러내지 않는데, 초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작해 곧 본격적인 사춘기로 접어들었을 정도의 화자 ‘나’ 캐슬린, 애칭 ‘도티’와, 제목이 시골 소녀”들”이어서 이미 알 것 다 알 거 같고 가까이 사는 이웃집 동급생 브리짓, 애칭 ‘바바’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이들 가운데 특히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도티가 몸 속의 성적인 발현이랄까 끌림 혹은 열정을 고스란히 표현하여, 1960년대 초의 아일랜드 문단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고 한다. <시골 소녀들>은 가톨릭 교회와 정부와 문화계 저명인사들로 하여금 대단히 열을 받게 했으며, 당장 금서로 지정된 건 물론이고, 분서갱유의 변까지 당했다고 하나, 이건 특정 공개장소에서 불을 싸지른 건 아니고 그냥 그런 말이 전해진 것이었는데 2015년 조사에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밝혀졌단다. 그렇다 해도 이게 당시의 유럽 변방, 아일랜드의 수준이었다. 어떠셔? 겁나게 웃기지?

  도대체 어떤 장면인데 그러냐고? 독자들은 작품의 시대가 1940년대임을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도 16세면 결혼을 하고 17세에 아이를 낳아, 18세에 이혼해 미혼모가 되던 시절. 동네에 늙어 골골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며 잡화점과 술집을 하면서 돈 깨나 모아 책의 전반부에서 도티의 주정뱅이 아빠가 빚을 많이 져서 은행에 넘어간 도티네 집과 48만5천 평에 이르는 농장을 인수하는 알부자 노총각 잭 홀랜드와, 프랑스 사람으로 더블린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주말이면 이곳 시골에 와 평온한 시간을 지내는 유부남 미스터 젠틀먼, 본명 드모리에 씨. 이들은 열네 살의 도티를 절대 소녀로 보지 않고 신붓감으로 보거나 바람피울 내연녀의 대상으로 대한다. 둘의 공통점은 도티네 집에 비하면 엄청 돈이 많다는 거. 드모리에 씨는 진짜로 부르주아 비슷하다는 거. 도티는 어떨까? 은근히 자기 무릎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잭 홀랜드는 옷과 몸이 더러워서 싫고, 난생 처음으로 진짜 키스를 가르쳐준 미스터 젠틀먼 씨한테는 자글자글하고 간질간질하고 쪼르르한 성적 반응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젠틀먼 씨를 사랑하고, 젠틀먼 씨 역시 자기를 사랑할 것으로 믿는다. 3년, 4년이 지나면 그게 사실로 밝혀지기는 하지만.

  그러면 어느 수준의 성적 묘사인데 그리 수모를 당하고, 엄마가 평생 딸을 수치스럽게 생각하게 됐느냐고? 나중에, 4년이 지나 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 수녀원 부속 기숙학교에 바바와 함께 입학했다가 숨막히는 기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어 퇴학을 당하고, 나이 깨나 먹었으니 자립하기 위해 더블린에 가서, 집이 거덜이 난 도티는 잡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바바는 대학에 진학해 하숙집에서 함께 살고 있을 때, 둘은 더블린의 돈 좀 있는 유부남과 노총각을 꼬여 (주로 바바가) 이들한테, 속된 말로 줄 듯 말 듯 밀당을 즐기며 고급요리와 비싼 술을 마시며 젊음을 즐긴다. 노총각과 바바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지만, 유부남은 도티와 절대 그런 사이가 될 수 없으니, 도티의 마음에는 또다른 유부남인 미스터 젠틀먼, 드모리에 씨가 있었기 때문이다. 유부남-점원, 노총각-여대생이 두 커플을 이루어 유부남의 집에 가서 간신히 선을 넘지 않고 스릴을 즐기고 온 날, 하숙집 앞에 검은 승용차가 서 있었고, 승용차 안에는 오랜만에 등장한 드모리에 씨가 들어 있었으니 다시 나이든, 아마 40은 당연하고 50 가까운 꼰대를 하염없이 사랑한 도티는 그만 스르르 오금에 힘이 풀렸던 거다.

  어느 정도 묘사인지 빨리 말하라고? 알았다, 알았어. 둘은, 둘만 하숙집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마주보고가 아니라 나란히, 옆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오늘은 정말로 할 거야, 하고 말 거야. 이러다가 드모리에 씨가 도티의 전신 나신을 보고 싶어한다. 그래서 홀랑 벗었고, 도티 역시 나도 보고 싶어요, 요 지랄을 해 드모리에의 늙은 몸도 홀랑 벗었더니, 역시 당신 생각대로 그냥 흐물흐물 한 것이 매달려 있었는데, 도티가 만져보니까 몽글몽글한 게 귀여웠더라, 뭐 이런 수준이다. 이 정도에서 끝난다. 그걸 지칭하는 단어도 사용하지 않았다. 1960년대면 남학교 화장실 벽엔 “어제 친구네 집에 갔었다. 마루에서 친구 누나가 치마를 입은 채 만세를 부르며 낮잠을 자고 있었다. 집에는 친구 누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등등의 패관문학이 절정을 달했을 때인데, 이 정도 가지고 뭔 금서에, 출간금지에, 분서갱유라는 유언비어까지 떠도느냐는 것이지.


  하여간 그렇다. 내가 읽기엔 문장이 지극히 간결하고, 담백한 데다가 주인공 도티와 바바가 만드는 불량 소녀의 감정이 인상적이어서 마음에 드는데, 한 가지가 머뭇거리게 되는 게 있다. 주로 도티의 마음 속에서 벌어지는 이 섬세한 간질간질, 충동, 그리고 그렇게 느끼게 만드는 나이 먹은 남자들의 터치를 어떤 방식으로 보아야 할지 조금 난감했던 걸 말해야겠다. 1940년대 유럽식으로 볼 것인지, 남성에 의하여 저질러지는 성적 추행으로 봐야 할지. 지금 시각으로 보면 당연히 열네 살짜리 소녀한테 저지르는 성추행이라서 처음엔 그렇게 읽었다가, 점점, 작가 에드나 오브라이언이 남성에 의한 성추행에 관한 인식/기억이라기보다 사춘기 소녀 속에 감추어진 리비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으로도 읽힌다. 이렇게 말하는 것 같기도 해서 난처했다. 어떻게 읽어야 마땅한가? 이런 감정을 솔직히 이야기하는데 나름대로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을, 이 난삽한 독후감을 읽는 분께서는 감안해주시면 좋겠다. 섣불리 말했다가는 얻어 터질 거 같고, 그냥 넘어가자니 비겁하고 찜찜할 것 같았다. 몇 방 얻어 터지는 것이 찜찜하거나 비겁한 거 보다 나을 거 같아서 굳이 말미에 꺼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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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계약 을유세계문학전집 13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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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편 정도 분량의 소설 두 편, <결혼 계약>과 <금치산>이 들어 있다. 제목을 “결혼 계약”이라고 했고, 분량도 많아 나도 애초에 이 작품에 초점을 맞춰 독후감을 쓰겠노라 작심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다 읽기도 전에 아이쿠, <금치산>이 더 재미있었다. 물론 재미가 있고 없고는 독자의 기호에 따른 것이라 내 말이나 의견을 믿을 필요는 없지만 하여간 그랬다는데 뭐. 두 작품 다 발자크 특유의 세밀 묘사에 독자는 턱이 툭, 떨어질 지경까지 몰리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금치산>에서는 간혹 지겹디 지겹게 겪어야 하는 세밀묘사가 사람 본성의 내밀한 음험함이랄까, 반감 같은 거, 누구나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기는 좀 거북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발자크는 아무렇지도 않게 툭, 던지고 마는 데, 비록 그의 왕정주의적 시각이 거슬리는, 거슬려도 많이, 많이 거슬리는 진짜 골통 보수적 시각이긴 하지만서도, 이 촌철의 무심한 내던짐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 물론 발자크의 진짜 면모는 작품을 다 만들어 놓은 듯, 모든 일은 정의롭게 흘러가게 만들어놓고, 결국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 여태 쌓아 온 공든 탑을 한 방에 무너뜨리는 절묘한 결말로 독자의 눈이 홱, 돌아가게 만드는 솜씨이지만, 나는 자칫 지루한 장광설의 늪으로 빠질 수도 있는 위험 속에서 사람의 감정(이랄까, 심리)를 포착하는 솜씨에 눈이 갔다. 그게 어떤 장면인지 밝히지 않겠다. 쉽게 말해서 나보다 우월한 사람을 나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더 경원하고 미워하는 심리 같은 거. 이렇게 힌트를 드리면 <금치산>이 그리 길지 않은 작품이니 직접 읽으면서 어떤 장면 가지고 이리 유난을 떠는지 어렵지 않게 찾으실 수 있을 듯.

  그럼에도 오늘 독후감은 예정대로 표제작인 <결혼 계약>에 관해 쓰겠다. <결혼 계약>을 읽으면서 열라 메모를 해둔 것이 아까워 어쩔 수 없지 뭐.


  ‘결혼 계약’이 무엇이냐고? 나나 당신같이 그냥 보통의 사람들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대목이다. 신문기사에서 읽은 거 같은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서도 결혼할 때 특히 현금을 포함한 자산의 유지, 관리, 축적에 관해서 앞으로 어떻게 하자고 계약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그 정도로 뭘 가져본 적이 있어야 알지.

  유럽의 부르주아나 귀족들은 계약서를 써서 공증까지 받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무슨 계약? 혼인하고 신부와 신랑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동침을 해야 하며, 자녀는 열 명을 두고 이후엔 생산을 위한 일체의 행위를 금함. 삼시 세끼 가운데 아침은 공무에 의한 출장이 아닌 모든 경우에 집의 식당에서 해야 하며, 점심은 직장에서, 저녁은 가족과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정이 있는 경우 부부의 사전 합의에 의함.

  이런 거, 결혼 계약에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신부가 가져오는 지참금 금액과 방식. 방식이란 현금, 기타 동산의 형태, 부동산을 말하며, 간혹 환어음 형태라면 지급 기일까지. 이번에 알았는데 결혼 후 재산의 활용까지. 예를 들어 19세기 프랑스에 ‘마조라’라는 형태의 재산 형태가 있었는데, 일종의 귀족 집안이 영속해갈 수 있게 만드는 방안 가운데 하나였다. 만일 후작이라면, 작위를 이어갈 자손에게만 증여할 수 있는 (대부분 부동산 형태의) 자산으로 자손이 여러 명이라도 후작위를 이을 맏아들에게 귀속하는 재산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비슷한 형태로 볼 수 있는 것이 예컨데 종중재산을 들 수 있겠는데, 마조라는 철저하게 세습 재산, 작위를 세습하는 자손에게만 귀속하니까 조금 다르기는 하다. 하기는 뭐, 우리 집구석, 김포문중에서는 종중재산 전부를 제일 큰 장손께서 한 방에 다 말아 자셨으니까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다. 신랑측의 재산이 이러저러한데, 이 가운데 어디 어디 부동산을 마조라로 정해 절대 허물지 못하는 자산으로 한다, 이런 거까지 다 계약서에 적어, 공증인의 공증까지 받는다.

  그런데 예를 들어 신부가 10만 프랑의 지참금을 가지고 오기로 했는데 9만 프랑만 가지고 오면, 결혼 후 남편은 신부한테 1만 프랑의 빚을 지는 것이 된다. 뭐 그렇단다. 그래서 결혼에 따라 양가에서는 가문 최고의 공증인들을 대리인으로 삼아 철저하게 따지고, 지지고, 볶고, 튀기고, 무치고, 고는 과정을 겪는 모양이다. 여러모로 없이 사는 게 편할 수 있다. 위안으로 삼자.

  아무리 유럽 잡것들이라 하더라도 다 그런 건 아니고, 결혼을 신분상승이나 작위 확보 또는 경제적 곤란의 탈피 등 순정하지 않은 의도일 경우에 문제가 되었을 터. 국가의 왕실간 정략결혼일 때는 훨씬 더 심각했겠지.


  18세기 중엽에 마네르빌이라는 노르망디 귀족이 있었다. 이 양반이 평소 친분이 있던 리슐리외 원수(1696~1788 무지 오래 살았다)가 술김에 중매를 서는 바람에 보르도의 부유한 상속녀와 별다른 결혼 계약 없이 혼인을 했다. 마네르빌 씨가 보르도에 가서 아내가 소유한 랑스트락 성을 보니 얼마나 멋진 성인지 한 눈에 반해 노르망디 베생 지역의 영지를 모두 팔고 보르도로 이주해 가스콘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이는 대혁명기를 무사히 넘긴 후 1813년에 나름대로 편안하게 79세의 나이로 죽는다. 혁명 다음해인 1790년에 카리브해의 프랑스 영지인 마르크니크로 떠나면서 영지를 비롯한 모든 재산의 관리를 가문의 정직한 공증인 마티아스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데, 이 공증인이 실로 양심적으로 수완이 좋아 백작이 귀국할 당시엔 혁명군의 착복은커녕 높은 수익을 내 훨씬 더 부자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1800년에 아내가 죽은 다음 백작은 점점 수전노처럼 변해갔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한테도 예외가 없어서 용돈을 거의 주지 않았는데, 아들은 아들대로 반감이 커져 오히려 낭비성향은 날이 갈수록 커지기만 했다. 그려, 이런 반전을 발자크가 기가 막히게 포착한다니까. 아들 이름이 폴 드 마네르빌. <결혼 계약>의 남자 주인공 되시겠다.

  폴은 1810년 말쯤 방돔 기숙학교를 졸업하고 귀가해서 아버지하고 3년을 보내는 동안 찍소리도 내지 못하는 바람에 저항능력을 상실함과 동시에 정신적 용기도 사르륵 사라지고 말았다. 폭군 아버지한테 억눌린 감정은 어떻게 변했을까? 한恨이지, 한. 하여간 그는 늘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며, 사유할 때는 비열하고 행동할 땐 무모했으며 오랫동안 어리석을 정도로 순진했는데, 순진한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를 불문하고 대개 희생자가 되거나 기꺼이 속임을 당하는 법이다. 아버지가 죽자마자 폴은 상속받은 현금자산은 국채에 투자하고 영지관리는 성실한 공증인 마티아스에게 맡긴 다음 타지에서 6년동안 잘 먹고 잘 지냈다. 나폴리 대사관을 거쳐 서기관 신분으로 마드리드와 런던을 비롯해 온 유럽을 다니면서 70만 프랑을 해 잡쉈다. 이럭저럭 현금자산을 다 까먹은 뒤에 토지자산에서 나오는 수입에 손을 댈 수밖에 없게 되자 온갖 사치를 뒤로(한 것처럼) 하고 고향 보르도로 귀향해 직접 랑스트락 영지에서 귀족적 삶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결심한다. 이제 자신은 영지를 더 크게 확장할 것이며, 귀족이니만치 결혼을 해 한 다스의 자녀를 생산할 것이고, 얼마 가지 않아 보르도의 국회의원이 되리라고. 근데 내가 잘 쓰는 말이 있지? 세상에 마음대로 되는 게 있으면 그게 인생이냐고. 폴 드 마네르빌도 인생의 앞길, 그것도 코 앞에 생각하지도 못한 엄청난 허들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세젤예, 나탈리 에방젤리스타 양.

  스페인 부르주아 가문 출신인 에방젤리스타 양보다 사실 나탈리의 엄마 에방젤리스타 여사의 멈추지 못하는 낭비와 사치, 이 낭비벽과 사치벽을 죽을 때까지 이어가고 싶어하는 욕심이 폴 드 마네르빌 백작의 가장 크고 험난한 난관이 되는데, 젊은 폴은 그런 줄도 모르고 그저 세젤예 나탈리의 미모에 눈이 뒤집혀 아무 생각도 없이 장모짜리의 뜻을 따르려 한다. 이때 유일한 폴의 지원군은 역시 늙은 가신이자 유능한 공증인 마티아스. 이미 은퇴해야 마땅할 정도로 나이가 든 노 마티아스는 노구를 이끌고 뱀 같은 에방젤리스타 여사의 의도와 여사의 대리인인 젊디젊은 공증인의 속셈을 환하게 알아차리고 여지없이 카운터 어택을 날려, 겨우겨우 폴 드 마네르빌 백작을 망쪼가 들지는 않을 정도로 만들어 놓는데, 노 공증인 역시, 생각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 아니어서,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결혼식을 하고, 파리로 가서 신혼살림을 차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시 보르도에 나타난 젊은 백작은, 서울 갔다가 남원 내려온 파립의 이몽룡처럼 거지 중에 상거지 꼴을 하고 있었던 거디었으니……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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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4-11-19 07:1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희 동아리에서 오늘 송기정교수님 모시고 강의듣습니다. 텍스트는 이 책이구요.^^

Falstaff 2024-11-19 07:25   좋아요 1 | URL
앗, 이런... 막 캥기는 걸요. 잘난 척한 거 다 뽀롱날 거 같아요. 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24-11-19 0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부 지참금 부분에서 빚지는게 돈 덜 가져온 신부 아니고 신랑인게 이상해요...채무자가 반대로 써진거쥬? (수능국어는 이런 식으로 대상 주체 바꿔서 오답 만드는게 허다해서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쳐 보게 만듦 ㅋㅋㅋㅋ)

Falstaff 2024-11-19 07:48   좋아요 2 | URL
아뉴. 신부지참금 10만에 서명을 했으면 얼마를 가져오든지 이를테면 신부계좌엔 10만이 있어야 하쥬. 모자라면? 신랑이 줘야, 메꿔야 하니까 빚 맞쥬? ㅎㅎ

coolcat329 2024-11-19 09:43   좋아요 2 | URL
저도 그 부분이 이상했는데 꼭 집어 질문해주셔서 속 시원하네요.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4-11-19 10:26   좋아요 0 | URL
뭔가 셀프 채무로군요...이러니 국어 점수도 잘 못 받지 ㅋㅋㅋ기초 산수 독해력 응용문제였군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4-11-19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폴스타프님 글 읽다보니, 딸 이름을 스텔라로! ^^나탈리 아닌가요?^^
마지막 단락 5번째 줄, 세젤예 스텔라...

Falstaff 2024-11-19 08:14   좋아요 1 | URL
앗, 오타네요.
집에 가서 수정해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페넬로페 2024-11-19 0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세어봤는데 포피노에 대한 설명이 17페이지더라고요 ㅎㅎ
요즘 시대에도 0.~~몇 몇 프로 상위 클라스에 사는 사람들은 이런 결혼 계약을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어요.
금치산도 괜찮았는데 너무 끝을 빨리 끝낸 것이 좀 아쉽더라고요^^

Falstaff 2024-11-19 15:29   좋아요 1 | URL
아이고... 그걸 다시 세 보셨어요? ㅎㅎㅎ
맞아요. 요즘도 이런 계약 할 거 같습니다. 제 팔자가 편해요. 이런 거 모르고 사는 인생. ㅎㅎㅎㅎ

yamoo 2024-11-19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간만에 별5개 출현!! 요거 찜~~~ 전차를모는기수 끝내고 읽으야 겠으요~~

Falstaff 2024-11-19 15:30   좋아요 0 | URL
오호, 화이트 읽으시는 군요. 진심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창비시선 505
권선희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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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에 강원도 도청소재지 춘천에서 태어나 자라 고등학교까지 거기서 졸업했다. 고2 때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열린 율곡백일장에 시를 쓰는 친구 보조로 따라갔다가 엉겁결에 참가했는데 덜컥 상을 타는 바람에 시 쓰기에 관심을 가졌지만, 책도 별로 읽지 않고 그냥 노는 게 즐거워 팔호광장 부근을 주름잡고 좀 놀았던 듯. 대학입시에서 당연히 전기, 후기 다 떨어지고, 백일장 등등에 상탄 내력을 감안해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으니 1983년 봄. 그러니까 소위 “빠른” 65년생이다. 애초에 공부하고는 담을 쌓던 시인. 권선희가 소싯적에 어떻게 놀았고, 시방은 어떠냐 하면:



  청춘 수장고



  한 사십년 전쯤으로 세월 되감아

  운교동 팔호광장 모퉁이 민속 주점 커튼 틀추면

  생애 첫 막걸리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던

  단발머리 가시내들


  따라만 간 놈은 근신

  술잔 받고 안 마신 놈은 유기정학

  몇잔 마신 것이 겁나서 도망쳤다 잡힌 놈은

  그만 무기정학


  근신 받은 놈은 줄창 반성문 쓰다 시인이 되고

  유기정학 받은 놈은 용케도 선생이 되고

  무기정학 받은 놈은

  제법 큰 장례업체 대표 부인이 되어

  그날 팔호광장 기념 계 모임 회장까지 등극했는데


  새끼가 새끼를 치는 나이에도

  3차는 언제나 금기 만발했던 시절로 돌아가

  운교동 팔호광장 초겨울 주점 앞 설까진 가시내들

  짝다리 신나게 흔들고 있다   (전문. P.78~79)



  흠. 그렇군. 권선희가 고등학교 다닐 때 팔호광장 막걸리 집에서 술잔 받기도 전에 선생한테 덜컥 들켜버린 가시내군. 이것들이 아직도 춘천, 아마도 친정 나들이 겸해 만나 2차도 아니고 3차까지 가는데 꼭 막판엔 근신, 정학 기념비가 흑석에 박인 팔호광장 쪽으로 가는군. 말이 광장이지 그게 광장이긴 하니? 좁아 터진 촌구석에서.

  어떠셔? 어릴 때부터 좀 삐딱했겠지? 서울예대에 들어가서도, 아마 서울예전에서 서울예대로 바뀌고 한 2, 3년 됐을 때였을 텐데, 시를 가르치는 선생이 자기 시하고 비슷하게 쓰는 아이들한테만 잘 썼다고 했던 모양이지? 그래서 권선희가 이랬단다.


  “교수님은 왜 교수님의 시와 비슷하게 쓴 친구들의 시만 잘 썼다고 하시는 겁니까? 잘 썼다고 하는 시들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요?”


  결과, 시 가르치는 시 수업에서 쫓겨났단다. 원래 문학 하면서 가르치는 선생들이 거의 다 비슷하게 밴댕이 소갈딱지인 걸 어린 권선희는 몰랐겠지. 수업에서 쫓겨난 건 세계일보 인터뷰 기사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다. 시 선생들 밴댕이 소갈딱지 이야기는 내가 지금 하는 거고. 근데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이 권선희의 시집 가운데 처음 읽었고, 이전까지 권선희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을 읽어보면 권선희처럼 시를 쓰면, 모르긴 몰라도 신춘문예 같은 거는 사주팔자에 나오지 않는 게 (거의)확실하다. 내 마누라 돈 떼먹고 도망간 춘천 여자 한선희는 마흔이 넘어 결혼했지만, 또다른 춘천여자 권선희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백령도 해병대에 근무하는 장교님한테 시집을 가 아들 낳고 살다가 남편 따라 포항도 갔나 보다. 이때 포항제철이 주최하는 ‘샘물 백일장’에 남편의 권유로 아들하고 나가서 덜컥 장원을 했고, 그래서 잡지 『포항문학』을 발간하는 동인모임에 참여를 했으며, 이 잡지 『포항문학』에 작품을 실은 것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신춘문예나 문학지 추천 아니면 어떠랴, 시만 좋으면 되지. 심통맞게 까탈 부리지 말자.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직업군인 남편이 제대를 하고 군무원으로 있을 때, 권선희는 본격적으로 시를 써볼 요량으로 구룡포를 택했다. 한 3년 정도면 시집 한 권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세상에 여편 이기는 남편 있어? 그래서 구룡포로 기어들어 갔고, 정말로 구룡포 타령만 세 번 했으니, 첫째가 《구룡포로 간다》이고, 둘째가 《꽃마차는 울며 간다》이며, 셋째가 바로 이것이니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춘천여자가 2000년에 구룡포에 들어가 2024년에 셋째 시집을 낳았다. 사는 게 그렇지 뭐.

  권선희의 시는 그냥 읽으면 된다. 읽기를 마치는 순간 독자는 시를 다(는 아니겠지만)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이해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시집에 1번으로 나오는 시를 읽어보자. 정말인지 아닌지.



 



  굿당 차리고 을매 되지 않을 때였지. 한 날은 경주 안강 사는 노인네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고 내를 부르데. 고추가 빨갛게 야물 때니 가을이었어. 가보이 마 그런 오두막이 조선 천지 또 있겠나. 엉기성기 수숫대에 흙 반죽한 벽은 기울고 변소도 옳게 읎는 외딴집에서 할미 하나가 구르듯이 기듯이 나와 이 굿쟁이를 맞데. 헛간보다 못한 방 윗목에 앉은 영감 반질반질한 골분 단지가 젤로 값나가는 살림 같더라. 방바닥을 베어 물 듯 엎드려 빌고 비는 당달봉사 앞에서 징은 쳤다만, 사실 아무것도 안 보였어. 정처 없는 귀신들 다 불러제끼며 이 불쌍한 인생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죄 없는 눈은 왜 가렸냐고, 목이 쉬도록 따지고 대들어도 답을 안 주시더라 못 주시더라. 무당보다 더한 팔자가 가엾어 디립다 징만 쳤지. 징에 기대 내가 펑펑 울었지.   (전문. P.10)



  그려, 사는 게 고단해 당달봉사 무당도 되고, 굿판에 앉아 징도 치고, 그 얘기를 듣고 시도 쓰고 그러는 거다. 세상에 어렵지 않은 사람 살이가 어디 있간? 다 그런 거지. 이렇게 권선희는 구룡포로 내려가 과매기나 씹는 대신 거기서 사는 어부, 상인, 해녀, 택시운전수, 무당 등등 주민의 신산한 삶을 그렸다가, 2019년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 덜커덕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이때 병실에선 유방암, 위암, 대장암, 침샘암 이렇게 네 명의 암환자가 입원해 있었고,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때마침 펜데믹 시절이어 환자들끼리 더 친밀할 수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역시 암은 암이라서 모두 다 완쾌, 즉 5년 생존하지는 못하고 기어이 세상을 뜨는 사람도 있었을 터. 시절은 하필이면 세밑이라.



  크리스마스이브들



  코로나로 면회조차 금지된 크리스마스이브

  물 좋기로 소문난 청담동 여성 전용 암 전문 요양병원 13층 복도 끝 방


  위암 말기 황.선.희는 밥 못 먹은 지 한달째 모가지만 길어지고

  유방암 2기에 림프 전이가 있는 권.선.희는 방사선 치료에 곤죽이 되어 누웠다

  똥줄이 불편한 대장암 박.영.이는 비스듬히 걸터앉아 신랑 생일 선물로 스웨터를 짜고

  혀 밑 움푹 도려낸 침샘암 이.경.자는 닭발 국물을 데워 마신다


  택배 상자 가득 단팥빵이 왔고 옥수수차가 끓는다

  박영이가 황선희의 등을 쓸어내린다, 말없이

  이경자가 황선희의 부은 발을 주무른다, 말없이

  권선희가 커튼을 걷었다


  창 너머는 하필 눈발 치는 크리스마스이브

  로터리 대형 트리 축복이 온 누리 다 퍼져도 닿지 않는

  끝 방, 민머리 이브들 언니와 언니와 언니가 되어

  서로의 눈길을 쓸고 있다   (전문. p.46~47)



  그리스마스이브의 복수형을 써서 ‘크리스마스이브들’이 제목이면, 크리스마스를 맞은 암 요양병원에 입원한 여성들을 일컫겠지. 앞에서 말한 네 명의 암환자가 실명 혹은 가명으로 등장한다. 서울에서도 제일 물 좋다는 청담동. 창을 넘으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창문 안쪽은 암, 암, 암, 암환자. 위암 황선희가 명을 잇지 못한 거 같다. 이때 오롯한 고독을 나눠진 네 명의 이브 가운데 한 명인 권선희는 한 명의 상실이 PTSD로 작용, 퇴원한 후에도 쌍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세상이 더러워서. 이 고질은 종합병원 정신건강과의 집중 치료를 받고 나서야 사라졌다고.

  이렇게 권선희의 시는 삶이다. 시인의 스코프 안에 들어온 사람, 시절, 환경, 과거지사 이야기. 나는 그래도 이런 촌스러운 시가 암호로 가득한 소위 현대시보다 더 좋다. 근데 시집 한 권을(꼴랑 한 권임에도) 내리 읽으니까 금방 지겨워진다. 좁은 지역의 비슷한 스토리가 계속되는 바람에. 그러면 구룡포 시리즈는 이제 더 이상 없는 거지? 그래야겠지? 설마 구룡포만 파먹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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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11-18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도 춥은디 왜 자꾸 찡헌 것만 읽고 계세요 ㅎㅎㅎ시험 망했다고 질질 짜는 고삼이들 비하면 안락하고 배부르고 따스한 도서관 수호자 아입니꺼... 이제 전 당분간 (일가기 전까지) 백수니까 백작님하고도 많이 놀아 드려야지 ㅋㅋㅋㅋ니랑 안놀아 하지 마시구요!!!! ㅋㅋㅋㅋ

Falstaff 2024-11-18 10:20   좋아요 1 | URL
우짰든 시험 끝나서 축하합니다!
앞으로 사이좋게 재미나게 놀아보자고요. ㅋㅋㅋ

우끼 2024-11-18 21:01   좋아요 2 | URL
근데 반열님 왜 폴스타프님은 벡작님이에요? (끼어들기)

반유행열반인 2024-11-18 21:21   좋아요 2 | URL
영감님 하면 없어보이잖아요... 그리고 수염이 하얘서요!!!!! 그리고 백과전서파 마냥 백과사전 같이 뚜꺼운걸 맨날 엄청 읽고 써재끼심...(아무거나 주워다 붙임)

반유행열반인 2024-11-18 21:23   좋아요 2 | URL
쓰고보니 제 블로그 아니고 폴스타프님 서재네요...죄송합니다 야 우끼야 왜 여기서 이래 가자 저리로...죄송합니다 아직 애기라서 아무데나 이러고...(질질 끌고감)

Falstaff 2024-11-19 04:1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어디면 어떻습니까. 저는 아무 생각 없이 호칭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24-11-19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춘 수장고‘ 읽으며 웃다가 ‘크리스마스 이브들‘ 읽고 살짝 울컥했네요.
디립다 징만 쳤지. 징에 기대 내가 펑펑 울었지... ㅠㅠ 이 부분도 ㅠㅠ

Falstaff 2024-11-22 09:20   좋아요 1 | URL
앗, 지금에야 댓글을 읽다니... 잠깐 미쳤나 봅니다. ㅋㅋㅋㅋ
어제 약물... 알코올에 취해 오늘 도서관 땡땡이 치나까 평소 안 보이던 것이 다 보이네요.

coolcat329 2024-11-26 19:09   좋아요 1 | URL
앗 저도 폴스타프님의 댓글을 이제야 봤습니다. 가끔 이렇게 댓글 놓칠 때가 있지요. ☺️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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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영토로 말하자면 아일랜드는 물이 좋아 좋은 작가가 많은가 봅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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