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창비시선 505
권선희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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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5년에 강원도 도청소재지 춘천에서 태어나 자라 고등학교까지 거기서 졸업했다. 고2 때 외가가 있는 강릉에서 열린 율곡백일장에 시를 쓰는 친구 보조로 따라갔다가 엉겁결에 참가했는데 덜컥 상을 타는 바람에 시 쓰기에 관심을 가졌지만, 책도 별로 읽지 않고 그냥 노는 게 즐거워 팔호광장 부근을 주름잡고 좀 놀았던 듯. 대학입시에서 당연히 전기, 후기 다 떨어지고, 백일장 등등에 상탄 내력을 감안해 서울예술대학 문창과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했으니 1983년 봄. 그러니까 소위 “빠른” 65년생이다. 애초에 공부하고는 담을 쌓던 시인. 권선희가 소싯적에 어떻게 놀았고, 시방은 어떠냐 하면:



  청춘 수장고



  한 사십년 전쯤으로 세월 되감아

  운교동 팔호광장 모퉁이 민속 주점 커튼 틀추면

  생애 첫 막걸리 손가락으로 찍어 맛보던

  단발머리 가시내들


  따라만 간 놈은 근신

  술잔 받고 안 마신 놈은 유기정학

  몇잔 마신 것이 겁나서 도망쳤다 잡힌 놈은

  그만 무기정학


  근신 받은 놈은 줄창 반성문 쓰다 시인이 되고

  유기정학 받은 놈은 용케도 선생이 되고

  무기정학 받은 놈은

  제법 큰 장례업체 대표 부인이 되어

  그날 팔호광장 기념 계 모임 회장까지 등극했는데


  새끼가 새끼를 치는 나이에도

  3차는 언제나 금기 만발했던 시절로 돌아가

  운교동 팔호광장 초겨울 주점 앞 설까진 가시내들

  짝다리 신나게 흔들고 있다   (전문. P.78~79)



  흠. 그렇군. 권선희가 고등학교 다닐 때 팔호광장 막걸리 집에서 술잔 받기도 전에 선생한테 덜컥 들켜버린 가시내군. 이것들이 아직도 춘천, 아마도 친정 나들이 겸해 만나 2차도 아니고 3차까지 가는데 꼭 막판엔 근신, 정학 기념비가 흑석에 박인 팔호광장 쪽으로 가는군. 말이 광장이지 그게 광장이긴 하니? 좁아 터진 촌구석에서.

  어떠셔? 어릴 때부터 좀 삐딱했겠지? 서울예대에 들어가서도, 아마 서울예전에서 서울예대로 바뀌고 한 2, 3년 됐을 때였을 텐데, 시를 가르치는 선생이 자기 시하고 비슷하게 쓰는 아이들한테만 잘 썼다고 했던 모양이지? 그래서 권선희가 이랬단다.


  “교수님은 왜 교수님의 시와 비슷하게 쓴 친구들의 시만 잘 썼다고 하시는 겁니까? 잘 썼다고 하는 시들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잖아요?”


  결과, 시 가르치는 시 수업에서 쫓겨났단다. 원래 문학 하면서 가르치는 선생들이 거의 다 비슷하게 밴댕이 소갈딱지인 걸 어린 권선희는 몰랐겠지. 수업에서 쫓겨난 건 세계일보 인터뷰 기사에 실린 인터뷰 내용이다. 시 선생들 밴댕이 소갈딱지 이야기는 내가 지금 하는 거고. 근데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이 권선희의 시집 가운데 처음 읽었고, 이전까지 권선희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을 읽어보면 권선희처럼 시를 쓰면, 모르긴 몰라도 신춘문예 같은 거는 사주팔자에 나오지 않는 게 (거의)확실하다. 내 마누라 돈 떼먹고 도망간 춘천 여자 한선희는 마흔이 넘어 결혼했지만, 또다른 춘천여자 권선희는 대학 졸업하자마자 백령도 해병대에 근무하는 장교님한테 시집을 가 아들 낳고 살다가 남편 따라 포항도 갔나 보다. 이때 포항제철이 주최하는 ‘샘물 백일장’에 남편의 권유로 아들하고 나가서 덜컥 장원을 했고, 그래서 잡지 『포항문학』을 발간하는 동인모임에 참여를 했으며, 이 잡지 『포항문학』에 작품을 실은 것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신춘문예나 문학지 추천 아니면 어떠랴, 시만 좋으면 되지. 심통맞게 까탈 부리지 말자.

  이렇게 저렇게 살다가, 직업군인 남편이 제대를 하고 군무원으로 있을 때, 권선희는 본격적으로 시를 써볼 요량으로 구룡포를 택했다. 한 3년 정도면 시집 한 권 만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세상에 여편 이기는 남편 있어? 그래서 구룡포로 기어들어 갔고, 정말로 구룡포 타령만 세 번 했으니, 첫째가 《구룡포로 간다》이고, 둘째가 《꽃마차는 울며 간다》이며, 셋째가 바로 이것이니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춘천여자가 2000년에 구룡포에 들어가 2024년에 셋째 시집을 낳았다. 사는 게 그렇지 뭐.

  권선희의 시는 그냥 읽으면 된다. 읽기를 마치는 순간 독자는 시를 다(는 아니겠지만)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이해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시집에 1번으로 나오는 시를 읽어보자. 정말인지 아닌지.



 



  굿당 차리고 을매 되지 않을 때였지. 한 날은 경주 안강 사는 노인네가 갑자기 눈이 안 보인다고 내를 부르데. 고추가 빨갛게 야물 때니 가을이었어. 가보이 마 그런 오두막이 조선 천지 또 있겠나. 엉기성기 수숫대에 흙 반죽한 벽은 기울고 변소도 옳게 읎는 외딴집에서 할미 하나가 구르듯이 기듯이 나와 이 굿쟁이를 맞데. 헛간보다 못한 방 윗목에 앉은 영감 반질반질한 골분 단지가 젤로 값나가는 살림 같더라. 방바닥을 베어 물 듯 엎드려 빌고 비는 당달봉사 앞에서 징은 쳤다만, 사실 아무것도 안 보였어. 정처 없는 귀신들 다 불러제끼며 이 불쌍한 인생을 어찌하면 좋겠냐고, 죄 없는 눈은 왜 가렸냐고, 목이 쉬도록 따지고 대들어도 답을 안 주시더라 못 주시더라. 무당보다 더한 팔자가 가엾어 디립다 징만 쳤지. 징에 기대 내가 펑펑 울었지.   (전문. P.10)



  그려, 사는 게 고단해 당달봉사 무당도 되고, 굿판에 앉아 징도 치고, 그 얘기를 듣고 시도 쓰고 그러는 거다. 세상에 어렵지 않은 사람 살이가 어디 있간? 다 그런 거지. 이렇게 권선희는 구룡포로 내려가 과매기나 씹는 대신 거기서 사는 어부, 상인, 해녀, 택시운전수, 무당 등등 주민의 신산한 삶을 그렸다가, 2019년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에 덜커덕 유방암 진단을 받는다. 이때 병실에선 유방암, 위암, 대장암, 침샘암 이렇게 네 명의 암환자가 입원해 있었고, 서로 언니 동생 하면서, 때마침 펜데믹 시절이어 환자들끼리 더 친밀할 수밖에 없었기도 했지만, 역시 암은 암이라서 모두 다 완쾌, 즉 5년 생존하지는 못하고 기어이 세상을 뜨는 사람도 있었을 터. 시절은 하필이면 세밑이라.



  크리스마스이브들



  코로나로 면회조차 금지된 크리스마스이브

  물 좋기로 소문난 청담동 여성 전용 암 전문 요양병원 13층 복도 끝 방


  위암 말기 황.선.희는 밥 못 먹은 지 한달째 모가지만 길어지고

  유방암 2기에 림프 전이가 있는 권.선.희는 방사선 치료에 곤죽이 되어 누웠다

  똥줄이 불편한 대장암 박.영.이는 비스듬히 걸터앉아 신랑 생일 선물로 스웨터를 짜고

  혀 밑 움푹 도려낸 침샘암 이.경.자는 닭발 국물을 데워 마신다


  택배 상자 가득 단팥빵이 왔고 옥수수차가 끓는다

  박영이가 황선희의 등을 쓸어내린다, 말없이

  이경자가 황선희의 부은 발을 주무른다, 말없이

  권선희가 커튼을 걷었다


  창 너머는 하필 눈발 치는 크리스마스이브

  로터리 대형 트리 축복이 온 누리 다 퍼져도 닿지 않는

  끝 방, 민머리 이브들 언니와 언니와 언니가 되어

  서로의 눈길을 쓸고 있다   (전문. p.46~47)



  그리스마스이브의 복수형을 써서 ‘크리스마스이브들’이 제목이면, 크리스마스를 맞은 암 요양병원에 입원한 여성들을 일컫겠지. 앞에서 말한 네 명의 암환자가 실명 혹은 가명으로 등장한다. 서울에서도 제일 물 좋다는 청담동. 창을 넘으면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창문 안쪽은 암, 암, 암, 암환자. 위암 황선희가 명을 잇지 못한 거 같다. 이때 오롯한 고독을 나눠진 네 명의 이브 가운데 한 명인 권선희는 한 명의 상실이 PTSD로 작용, 퇴원한 후에도 쌍욕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세상이 더러워서. 이 고질은 종합병원 정신건강과의 집중 치료를 받고 나서야 사라졌다고.

  이렇게 권선희의 시는 삶이다. 시인의 스코프 안에 들어온 사람, 시절, 환경, 과거지사 이야기. 나는 그래도 이런 촌스러운 시가 암호로 가득한 소위 현대시보다 더 좋다. 근데 시집 한 권을(꼴랑 한 권임에도) 내리 읽으니까 금방 지겨워진다. 좁은 지역의 비슷한 스토리가 계속되는 바람에. 그러면 구룡포 시리즈는 이제 더 이상 없는 거지? 그래야겠지? 설마 구룡포만 파먹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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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4-11-18 1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날도 춥은디 왜 자꾸 찡헌 것만 읽고 계세요 ㅎㅎㅎ시험 망했다고 질질 짜는 고삼이들 비하면 안락하고 배부르고 따스한 도서관 수호자 아입니꺼... 이제 전 당분간 (일가기 전까지) 백수니까 백작님하고도 많이 놀아 드려야지 ㅋㅋㅋㅋ니랑 안놀아 하지 마시구요!!!! ㅋㅋㅋㅋ

Falstaff 2024-11-18 10:20   좋아요 1 | URL
우짰든 시험 끝나서 축하합니다!
앞으로 사이좋게 재미나게 놀아보자고요. ㅋㅋㅋ

우끼 2024-11-18 21:01   좋아요 2 | URL
근데 반열님 왜 폴스타프님은 벡작님이에요? (끼어들기)

반유행열반인 2024-11-18 21:21   좋아요 2 | URL
영감님 하면 없어보이잖아요... 그리고 수염이 하얘서요!!!!! 그리고 백과전서파 마냥 백과사전 같이 뚜꺼운걸 맨날 엄청 읽고 써재끼심...(아무거나 주워다 붙임)

반유행열반인 2024-11-18 21:23   좋아요 2 | URL
쓰고보니 제 블로그 아니고 폴스타프님 서재네요...죄송합니다 야 우끼야 왜 여기서 이래 가자 저리로...죄송합니다 아직 애기라서 아무데나 이러고...(질질 끌고감)

Falstaff 2024-11-19 04:1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어디면 어떻습니까. 저는 아무 생각 없이 호칭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ㅋㅋㅋ

coolcat329 2024-11-19 1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춘 수장고‘ 읽으며 웃다가 ‘크리스마스 이브들‘ 읽고 살짝 울컥했네요.
디립다 징만 쳤지. 징에 기대 내가 펑펑 울었지... ㅠㅠ 이 부분도 ㅠㅠ

Falstaff 2024-11-22 09:20   좋아요 1 | URL
앗, 지금에야 댓글을 읽다니... 잠깐 미쳤나 봅니다. ㅋㅋㅋㅋ
어제 약물... 알코올에 취해 오늘 도서관 땡땡이 치나까 평소 안 보이던 것이 다 보이네요.

coolcat329 2024-11-26 19:09   좋아요 1 | URL
앗 저도 폴스타프님의 댓글을 이제야 봤습니다. 가끔 이렇게 댓글 놓칠 때가 있지요. ☺️
 
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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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적 영토로 말하자면 아일랜드는 물이 좋아 좋은 작가가 많은가 봅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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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사꽃 그대 얼굴 더봄 중국문학 전집 11
거페이 지음, 심규호 옮김 / 더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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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사꽃? 한자어로 하면 도화桃花. 우리나라에서는 복숭아 가지를 귀신 쫓는 용도로, 꽃의 살煞, 즉 도화살은 “여자가 한 남자의 아내로 살지 못하고 사별하거나 뭇 남자와 상관하도록 지워진 살”이라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온다. 이건 예전 식으로 살을 푼 것이고, B급 문화를 대변하는 나무위키는 “매력을 어필하는 능력, 일종의 매력 살”이라고 주장한다. 그럴 듯하다. 그러면 거페이가 말하는 “복사꽃 그대 얼굴”은 무엇일까? 화끈하게 가르쳐드리지. 책의 1장 “육손이”에 등장하는 잘 생긴 외간남자 장지위안을 말하는 거다. 남자가 얼마나 멋있게 생겼으면 뻣뻣한 털이 숭숭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복사꽃이라고 했을까? 궁금하지?

  거페이는 1964년생, 올해 환갑을 맞은 용띠 아저씨로, 올 여름에 <봄바람을 기다리며>를 아주 즐겁게 읽었다. 그래서 책 읽은 바로 그날 검색해 거페이가 쓴 “강남 삼부작”이란 것이 있어 중국에서 가장 알아주는 마오둔 문학상을 받았다는 걸 알았다. 이 삼부작 가운데 첫 권이 바로 <복사꽃 그대 얼굴 人面桃花>. 두번째 권 <산하는 잠들고 山河入夢>과 세번째 권 <강남에 봄은 지고 春盡江南>. 거페이가 마음에 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봄바람을 기다리며>가 중국 남자 작가들, 류전윈, 옌롄커, 쑤퉁, 위화 같은 이들만큼 심한 과장과 거친 묘사가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중국판 고난의 행군이었던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의 현대사 속의 사람들을 그렸으면서도 그랬다. 이런 차별성이 마음에 들어 서슴없이 <복사꽃 그대 얼굴>을 집어 들었는데, 아이고, 이 책은 안 그러네.


  중국에서 복숭아 나무, 복숭아 꽃 그러면 1번이 도연명의 무릉도원이요, 2번이 유관장의 도원결의를 떠올린다. 물론 내가 그렇다는 말이다. 근데 도연명, 이이의 성 도陶는 항아리 ‘도’니까 무릉도원, 동정호의 남쪽 호남 무릉에 복숭아 정원이 있는 별천지, 유토피아, 율도국하고 관계없지만, 도연명이 작가 거페이와 한 고향인 장시성 사람이다. 저 먼 시절에 초나라 땅, 장강 이남이며, 원나라 시절 이전부터 희극戱劇(알기 쉽게 얘기해서 ‘차이니즈 오페라’)로 이름을 낸 지역이기도 한데, 이곳의 작은 고을 푸지普濟의 지주 루칸 선생도 희극을 즐기며 도원명의 무릉도원을 꿈으로 알고 살았다. 이 양반이 약 2백 무畝, 2백 마지기를 소작주고 자기 손으로는 노동하지 않는 천생 지주였지만, 알고 보면 이이의 꿈이 별유천지비인간의 유토피아를 만드는 거였는데, 누구나 똑같이 일하고, 소출은 n분의 1로 나누며, 똑같이 지은 집에서 같은 품질의 음식과 의복을 향유하며 사는 거였다. 동리의 모든 집과 집은 지붕이 있는 통로로 연결하고 통로를 따라 장강에서 끌어온 물이 흘러 같은 물을 마시며 사는 거였다.

  말이 그렇다는 거다. 삼부작의 제1권 <복사꽃 그대 얼굴>의 막이 올라가자마자 이런 꿈을 꾸고 있던 루칸 선생은 멘탈 디스오더, 미쳤다. 양저우揚州의 교육기관 부학府學에서 파면당해 푸지로 돌아온 아버지는 향리에 은거해 (쉬운 얘기로 과거에 합격하지 못해) 서당 훈장질로 먹고 살던 딩수쩌와 시서를 즐기며 친밀하게 지내다가 50세 생일 선물로 딩 선생한테 받은 장려 한유가 그린 진품 “도원도桃園圖” 때문에 그랬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믿을만하진 않다. (1957년에 베이징시와 장쑤성이 합동으로 도원도를 감정한 결과 위작으로 밝혀졌다고 원주에서 밝힌다. 그러나 이걸 믿어야 할지, 원주 역시 소설의 한 부분으로 생각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런 식의 원주가 속속, 과한 빈도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루칸 선생이 딩수쩌와 이상은李商隱의 시 “무제 2”를 논하다가 ‘금두꺼비’를 ‘금매미’로 읊어 두 양반이 서로 귀싸대기를 후려 갈기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딩수쩌의 앞니가 쑥 빠지는 지경을 목격하더니 이 일 이후로 미쳤다는 주장도 유력하다. 이때 까지는 금두꺼비면 어떻고 금매미면 어떠랴, 독자들은 생각하리라. 그러나 천만의 말씀. 1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상은의 시 속에 나오지도 않는 금매미가 아닌 진짜 실물, 작은 호박으로 눈을 해 박은 순금 매미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게 사연이 참 많다는 말이지. 사랑하지만 한 순간도 성적인 터치를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떠나는 남자가 여자한테 남기는 정표로. 게다가 순금이다, 순금.

  루칸 선생의 무남독녀 외동딸 이름이 슈미秀美. 맞다. 일용 엄마하고 같은 이름이다(이 독후감은 탤런트 김수미 씨 별세 닷새 전에 썼다. 고인도 웃고 넘길 거 같다). 루 선생은 실성한 상태에서 계속 다락방에 머무르기만 했다. 1년에 한 두 번씩만 밖에 나와 세배를 받을 뿐 하루 종일, 일년 열두 달 다락방에서 기와 모양 그릇, 와병을 쓰다듬으며 지냈다. 그러다가 하루는 다락방에 불을 싸질러 선생이 평생을 읽던 서책과 도원도와 와병을 몽땅 태울 뻔했다가 억지로 두 개를 건졌으니 가장자리가 검게 탄 도원도와 이 와병. 이후 억센 사내들을 불러 다락방을 다시 고쳤고, 해가 바뀐 1901년의 늦봄. 마당엔 복사꽃이 분분한 시절에 등나무 가방을 든 루칸 선생이, 이게 웬 일이니, 이 날이 열다섯 살 슈미가 세상에 태어나 두번째로 월경을 시작하는 날이었는데, 자기 발로 다락방을 걸어 나와 마당에 혼자 서 있는 딸 슈미한테 자기는 떠난다고, 말하고, 갔다가, 금방 돌아와서 하시는 말씀이, “푸지에 비가 올 거야.” 두리번거리다가 헝겊으로 만든 우산을 펼쳐보지만 다 헤진 우산이 살만 남아있어, 다시 뒤로 돌아, 그냥 갔다. 그리고 날이 바뀌기도 전에 정말로 푸지엔 비가, 그것도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게 슈미가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모습이었다.


  실성한 가장을 찾으러 동분서주하는 엄마. 그리고 집안의 회계이자 청지기 바오천. 이런 와중에 노파가 찾아온다. 그리고 하는 말이:

  “붉은 보라빛 상서로운 구름이 동남쪽에서 날아와 나리 발 밑에 떨어지더니 순식간에 기린으로 변했어. 그러자 당신네 나리가 그걸 올라타고 하늘로 올라갔지. 하늘로 올라가면서 손수건을 한 장 떨어뜨리는데…”

  하면서 더러운 손수건을 내민다. 손수건 가를 따라 이집 하녀 시췌가 수놓은 것이 확실한 지라, 갔네, 갔어, 그런데 어디로 갔나?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푸지에서 제일 가까운 대처 메이청에서 어머니의 동생 장자위안이 불쑥 나타난다. 드디어 나왔다, 장자위안. 앞에서 말한 순금 매미를 남기고 떠날 사람. 어머니는 슈미더러 처음엔 외숙이라고 부르라 했다가 금방 외삼촌이라 부르면 된다고 한다. 근데 장자위안은 그냥 사촌오빠라고 부르면 좋겠단다. 원 참, 족보가 이러면 어떻게 해? 가족 중에 ‘추이롄’이라는 이름의 하녀가 있다. 저장성 후저우가 고향인데 초년 팔자가 드세 기구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다섯 군데의 기원妓院, 기생집과 네 곳의 시집을 거쳐 루칸 선생이 몸값을 치르고 데려왔다. 이 방면에 워낙 빠삭한 여자라서, 슈미에게 귀띔을 하기에, 생각해봐라, 엄마는 완溫씨고, 남자는 장씨거늘 어떻게 남매일 수 있겠니?

  그럼 뭐야? 뭐긴 뭐야, 혼외 연인이지. 그러나 하나 더. 장지위안이 무엇을 남기고 떠날 거라고? 맞다 금으로 만든 매미. 작은 호박으로 눈알을 해 박은. 아빠 루칸 선생은 이상은의 시 “무제 2”의 금두꺼비를 금매미라 했다가 크게 싸움을 하고 절친끼리 의절을 한 사람. 장지위안 역시 무릉도원, 유토피아, 율도국을 꿈꾸는 사내다. 그 역시 개개인이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 혼인하고 싶으면 누구와 혼인하면 되는 세상, 그게 아빠와 딸이라도, 엄마와 아들이라도 관계없는 세상을 꿈꾼다. 다만 루칸 선생과 다른 점은 모두 평등하고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법을 바꾼다는 변법變法과 혁명을 해야 한다고 설파하며, 정말로 그것을 위해 계를 짜고 열성분자로 활약 중이다.

  세상에 뜻대로 되는 건 별로 없다. 아빠와 절교했지만 슈미가 선생으로 모시는 딩수쩌의 심부름으로 옆동네 샤좡에 사는 쉐 거인(擧人: 가장 낮은 과거에 합격한 사람) 쉐쭈옌의 집에 갔더니 거기 장지위안이 있던 거다. 쉐거인의 집 앞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연못에 낚시를 늘인 곱추가 있었으니, 나중에 알고 보니 장쑤성에서 가장 유명한 밀정이었다. 스토리가 되려니까 슈미가 장지위안을 쉬쭈옌의 집에서 만났을 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나중엔 쉬쭈옌이 자기 집에서 잡혀 목이 잘리고 몸뚱이는 장강의 백사장을 뒹구는 신세가 된다. 다행히 추포하러 온 관군이 과거 합격 동기라서 관아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는 대신 단칼에 죽게 하는 관용을 베풀긴 했지만 이걸로 장지위안의 변법과 혁명은 사실상 종을 치게 되고, 세 불리함을 부인하지 못하는 장지위안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금 매미를 남기고 밤길을 나서, 불과 며칠 후 장강의 얼음에 박힌 발가벗은 주검으로 발견되고 만다. 세상에 변법, 법을 바꾸고 혁명을 하는 게 쉽나 어디? 이렇게 1장 “육손이”는 막을 내리고 더욱 드라마틱한 2장 화자서로 넘어가, 또다른 유토피아, 율도국의 비극을 맞는다. 3장은? 유토피아, 무릉도원을 직접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주인공, 그리고 마지막 4장에서야 작고 초라하게 도화만발한 장면으로 삼부작의 1권 <복사꽃 그대 얼굴>은 막을 내린다.

  4장이 일종의 에필로그인 셈. 내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너무 긴 에필로그를 뽑는다. 거의 한 권 수준이니 원 참. <복사꽃 그대 얼굴>에서도 4장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숨길 수 없었다. 하긴 2권, 3권으로 넘어가기 위해 그랬는지도 모른다. 하여간 나도 3부작 끝까지 달려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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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11-15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독후감:
월요일. 권선희,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화요일. 오노레 드 발자크, 《결혼 계약》
목요일. 에드나 오브라이언, <시골 소녀들>
금요일. 정재훈, <위구르 유목 제국사>
 
연기 대산세계문학총서 189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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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반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중부 오룔 지방의 귀족 지주 집안 출신이다. 그리고 부르주아다. 얼핏 귀족에다 지주라면 무조건 부르주아일 것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 러시아에서는 천만의 말씀이다. 하도 땅이 큰 나라라서 지주도 지주 나름이고, 땅도 땅 나름이다. 투르게네프 집안도 재산의 대부분이 아빠 집안에서 내려 받은 게 아니라 엄마가 당당한 여지주로 넓고 넓은 소작지를 적절하게 분배해 그나마 성실하고 양심적인 관리인들을 배치해 부를 유지하고 있었던 거다. 투르게네프도 작품 속에 러시아에서 지주 해먹기의 어려움을 여러 번 호소한 적이 있다.

  투르게네프는 귀족 부르주아의 자제답게 모스크바대학,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을 거쳐 베를린 대학에 유학한 후 서사시를 발표하는 등 문학활동을 하다가 내무성 공무원으로 들어가 2년 만에 때려치웠다. 전업작가 한다는 핑계로. 1852년에 당국에 심각하지는 않은 이유로 체포되어 61년까지 약 10년 간 고향에 연금당해 이 시절에 쓴 짧은 소설을 모은 것이 《어느 사냥꾼의 수기》다. 투르게네프 가운데 제일 낫다. 무식한 내가 읽기에 그렇다는 말씀.

  연금생활, 얼핏 읽으면 나라에서 연금받아 생활하는 거 같은데, 이럴 때 한자어를 썼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軟禁 강도가 가벼운 감금생활이 끝나자마자 우리의 이반 투르게네프는 유감없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서유럽으로 튀어 나머지 생애 거의 대부분을 보내며, 작품활동도 활발하게 한다. 물론 파리, 베를린, 이 책의 주요 무대로 나오는 바덴바덴 같은 곳에서 아빠가 오룔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하고, 물론 연애도 하고, 유명인사도 사귀면서. 그러나 투르게네프의 머리 속엔 언제나 Green green grass of home, 자기가 무슨 톰 존스나 되는 듯이 고향의 푸른 잔디가 삼삼했으니 당연히 러시아의 자연 풍광과 기억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노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기질을 이야기할 때 제일 지긋지긋했던 것이 소위 엽전론이었다. 해방 후 지식이나 자본적 기초가 완벽하게 없던 시절, 하는 사업은 당연히 완벽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고, 그걸 일제가 충분한 지식과 자본으로 ‘훌륭하게’ 완성했던 기억에만 싸여, “하여튼 엽전이 하는 건 어쩔 수 없어.”나 “저러니 엽전, 엽전 하는 거야.” 같이 비아냥거리던 거, 나는 목격했다. 이 비슷한 걸 1990년대에도 써먹은 적이 있다. 기억하시려나? 당시 자민련 총재하던 김종필(편히 쉬시라)의 “충청도 핫바지론.” 투르게네프도 조국 러시아 역시 서둘러 서유럽의 과학, 사상, 철학, 체제, 양식, 건축, 생활 등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어 얼마나 속을 태우는지.

  이 책의 제목은 팜파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리나 파블로브나 라트미로바와 그리고리 미하일로비치 리트비노프 사이의 연애에 중점을 두지 않고 러시아 사람 모두, 러시아 전부를 잠시 올랐다가 흩어지고 마는 “연기”라고 한 것에 주목했다. 투르게네프는 한 남자를 두 번이나 골로 가게 만드는 일종의 악녀 이리나 이야기에 맞먹거나 더 중요한 무게로 러시아의 서구화를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모든 것이 급히 어딘가로 서둘러 가고 있지만, 모든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풍향이 바뀌면 모든 것은 반대쪽으로 몰려간다. 그리고 거기에서 똑같이 지칠 줄 모르는, 요란하고 불필요한 유희가 다시 시작된다. 최근 몇 년 동안 자기 눈앞에서 시끄럽고 떠들썩하게 일어났던 많은 일이 떠올랐다…… ‘연기다.’ 그는 속삭였다.” (p.259)


  사랑 이야기만큼 다양하게 독자를 매료시키는 것이 또 있을까? 이중에서도 또 불륜만큼 궁긍증을 유발시키는 것도 없을 듯. 투르게네프는 바로 이 불륜을 바늘 끝으로 톡 찌르고 있다.

  주인공 리트비노프 입장에서 이 불행한 사랑은 1862년 8월 10일, 독일의 유명 휴양 온천도시 바덴바덴에서 시작한다. 바덴바덴에 와서 온천과 도박을 즐길 수 있는 특출난 예술 애호가 X백작을 비롯한 소수의 러시아 명문 귀족 과 최신 유행을 좇는 부르주아, 장군들을 일컫는 “우리 사회의 정화精華”가 모인 ‘교제의 집’ 도박장이 첫 무대이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사회의 정화 다음 계급으로 밤바예프, 호인이지만 실속 없는 로스티슬라프, 구바료프, 보르실로프 등 그저 그런 지주 수준의 계급이 있어서 주머니 사정이 좀 괜찮은 리트비노프도 이 ‘약간 처지는’ 그룹에 속한다.

  그리고리 미하일로비치 리트비노프는 상인 집안 출신의 성실한 퇴역관리의 아들이다. 기숙여학교를 나온 어머니는 선량하고 열광적이지만 성질도 있다는데, 남편보다 스무 살이나 적어 만족시키지 못한 리비도의 영향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성질 있는 어머니는 아버지를 재교육시키기 시작했고, 그 결과 미하일은 관리생활을 때려 치우고 큰 영지를 거느리는 지주로 변신했다. 이 과정에서 원래 강하고 견디기 힘든 성격이 어느새 온순하게 바뀌었는데 암만해도 원래 이 영지가 어머니 소유였으며, 생존하기 위해 어머니 자신이 강골의 여지주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 아들이 모스크바 대학에 입학하자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다 마쳤다는 듯이 어머니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접고 말았다. 리트비노프는 이 일을 계기로 대학을 중퇴하고 영지로 내려와 시골 생활을 하고 있었다.

  10년 전인 1850년대초. 한 시절 눈부신 광휘를 날리던 대 귀족 오시닌 공작 가문이 급격하게 몰락해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류리크의 후예로 순수한 러시아 혈통을 자랑했으나 이상하게 폭삭 무너져 벽지로 추방당했다가 훗날 복권 됐지만 공작 직위의 복권을 말하는 것이지 날린 재물까지 회복시켜준 것은 아니었다. 이때 리트비노프의 아버지가 이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으며, 마침 모스크바에서 학교를 다니던 아들 역시 수시로 공작 댁을 방문했는데 척하면 척이듯, 맏딸 이리나한테 한 눈에 반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천상의 외모를 지닌 아름다운 이리나. 하지만 하느님은 몽땅 다 주는 양반이 아니어서 이리나 파블로브나는 변덕스럽고 야심만만했으며 무모하고 오만해 자기 속을 주지 않는 아이였다. 오시닌 공작이 보기에도 이리나의 빼어난 외모가 자기 집안을 곤경에서 구해줄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으니 당연히 거의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을 터. 이 아가씨의 눈에 한갓 시골 영지의 지주 아들이 눈에 차겠느냐고? 이리나는 두 달 동안 리트비노프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으로 괴롭히다가 마치 뇌우가 몰려오듯 사랑을 느꼈던 것 같다. 그게 만일 사랑이라면 말이지만.

  이미 스무 살을 넘긴 리트비노프는 당장 청혼을 한다. 반면에 이리나는 둘 다 너무 젊으니 남의 눈치도 볼 겸, 아직 청혼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해 속 없는 애인은 요청을 받아들인다. 공작 내외가 보기에 사위짜리가 돈은 좀 있는 집안 같아도 아무래도 가문이 좀 껄쩍지근하다. 지주가 뭐야, 지주가. 적어도 백작, 남작은 되어야지. 이때 황제가 오랜만에 모스크바를 방문하면서 귀족을 대상으로 대 무도회를 개최한다고 초청장을 보내왔다. 공작은 없는 살림에 이리나에게 좋은 무도복을 맞춰 입히고 대 무도회에 ‘귀족의 의무로’ 참여하는데 어라, 이리나는 리트비노프에게 무도회에 가지 말 것을 부탁한다. 말이 부탁이지 강요 비슷하다. 그래서 그렇게 했고, 이리나는 자기 스스로 미리 짐작했듯이 대 무도회의 가장 빛나는 별로 반짝였으며, 한 순간에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의 모든 왕가, 귀족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 사흘만에 리트비노프를 퇴짜놓고 페테르부르크행 트로이카에 오른다.


  그러나 1862년의 바덴바덴에서 리트비노프가 기다리고 있던 여인은 타티아나 페트로브나 셰스토바. 6촌 여동생이자 약혼녀다. 수다장이 고모 카피톨리나 마르코브나와 함께 드레스덴에서 살고 있으며 3일 전에 도착한 바덴바덴에서 리트비노프와 좋은 시간을 보내려 트렁크를 꾸리고 있는 중이다. 착하고 수줍으며 리트비노프의 러시아 영지에서 겨우 2백 베르스타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영지를 가지고 있는 지주 집안의 외동딸이다. 겨우 2백 베르스타? 땅이 크면 그깟 220km 정도면 이웃이다, 이웃. 마차 타고 열라 가도 도중에 강도떼만 안 만나면 3일밖에 안 걸리니까.

  8월 10일 앞서 이야기한 비슷한 계급의 남자들과 즐겁지만 유쾌하지 않은 잡담을 늘어 놓고 있던 리트비노프는 검은 베일이 달린 챙 넓은 모자를 쓴 키가 크고 날씬한 부인이 계단을 오르다가 흘낏 그를 발견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19세기에는 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앞에서 실컷 설레발을 쳐놓았으니 이 날씬한 부인이 누구인지 다들 눈치 채셨지? 맞다, 그 여자.

  이리나가 가는 곳에는 그림자처럼 한 남자를 볼 수 있으니 퇴직 7등 문관에 불과한 신분의 포투긴. 이 양반이 중요한 조연인 것은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러시아의 서구화, 러시아 엽전론 등을 거의 모두 포투긴의 입을 통해 발언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를 열렬히 사랑하면서 열렬히 증오하는 서구주의자. 정부청사에서 20년간 근무했다가 이리나한테 꼴딱 반해 스스로 망가져버린 남자. 대강 감이 잡히시지?

  그러거나 말거나 그리고리 미하일로비치 리트비노프가 친구들과 헤어져 호텔 방에 들어오니 방의 창가에는 헬리오트로프 꽃다발이 짙은 향기를 뿜으며 놓여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 궁금한 리트비노프가 사환을 불러 물어보니, 키 크고 좋은 옷에 베일을 쓴 부인이 보냈다고 한다. 아이쿠, 이제 사건이 본격적으로 벌어진 것. 딱 감이 잡히는 건, 이제 착하고 어여쁜 타티아나하고는 다 살았네,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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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4-11-14 13: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헬리오트로프 꽃다발인 이유가 있군요^^

Falstaff 2024-11-14 16:01   좋아요 0 | URL
앗, 읽고 계시는군요! ㅎㅎㅎ
 
우연은 비켜 가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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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76세의 줄리언 반스가 쓴 소설. 원 제목은 <엘리자베스 핀치 Elizabeth Finch>. EF라는 사람 이름의 문화사, 문명사 교수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핀치 교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그이의 이름을 줄여 줄곧 ‘EF’라고 약칭한다. 20대 말부터 40대 초의 늙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와 문명’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하는 것으로 보아 일반 대학은 아닌 것 같고 대학원인 것도 같고, 대학과정을 갈음하는 사회적 교육기관일 수도 있는 것 같은데 크게 중요하지 않다. EF가 주장하기를 교육의 최고 형태는 ‘협력’이란다. 그러니 수업은 교수가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 학생과 학생 사이의 원활한 협력으로 이루어지되, 이러한 협력의 과정이 엄격한 즐거움이 되길 희망한다고 했다.

  화자 ‘나’의 이름은 닐. 닐은 첫 수업에 들어와 EF의 교과 소개를 듣고 어쩌면 자기 평생 이번 한 번만큼은 제대로 찾아왔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하다. 그냥 한 방에 필이 팍 꽂혔다는 뜻이다.

  30대의 닐은 애초 글을 쓰거나 학문을 계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배우 수업을 받았다. 처음이란 것이 18세가 되고 처음이란 건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했다는 건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하여간 배우를 하기 위해 수업을 받았고, 자기 주민등록등본의 배우자 란에 오를 최초의 여자, 조애나를 그곳에서 만났다. 배우수업을 마치고 TV의 작은 배역과 내레이션도 했지만 도무지 생활비도 빠지지 않아 유람선 위에서 2인조 공연도 하고, 그것도 없을 때는 레스토랑의 웨이터도 했는데, 웨이터에서 안내원으로 승진하는 바람에 배우의 꿈은 영영 접어 버렸다. 이후 시골로 내려가 버섯농사도 짓고, 수경재배로 토마토도 심었을 때 딸 해나가 태어났다. 닐보다 조금 더 재능이 있던 조애나는 배우를 포기하지 못하고 런던에 머물기로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혼하는 바람에 정신이 사나워진 닐도 런던으로 올라와 대학원(이라고 치자고 앞에서 합의했으니)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근데 딸 해나는 누가 키웠을까? 조애나가 양육비도 받지 않고 키우기로 했나? 모르겠다. 안 나온다. 이후 혼외자가 하나 더 생기고, 두 번째이자 마지막 결혼생활 중에 아이 하나가 더 생기고 또 이혼하는데, 세 아이를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양육비 지급은 착실하게 한 듯하다.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를 결코 공적인 인물로 볼 수도 없고 EF 스스로도 전혀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대학교수이면서도. ‘협력’을 최고의 교육방법이라고 주장하는 EF는 그러나 철저하게 독립 연구자이며, 최고수준의 지식을 갖추고도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을, 개인적인 관심만 좇는 사람으로 보인다. 그러니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을 수밖에. 부촌인 웨스트 런던에서 살며 1890년대부터 1910년대까지 여성 무정부주의자들을 연구한 <폭발하는 여자>와 민족주의, 종교, 가정, 가족을 다룬 <우리에게 필요한 신화들>, 이렇게 두 권의 책을 출간했으나 지금은 다 절판이다. EF는 기존 상식과 다른 사고 체계를 가지고 산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인물을 형용사 세 개로 줄여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보이면 그런 묘사/문장/이야기는 늘 불신해야 합니다.”

  형용사 세 개로 정리하여 설명할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한 명도 없다는 뜻이다. 아주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데, 내 관점으로 보자면, EF의 주장은 십분 알아듣겠고, 8할 이상 동의하며 지지할 용의도 있지만 늘 함께 하면 상당히 피곤할 거 같다. 어떤 기분이 들게 하는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을 듯. 닐의 패거리는 닐과, 네덜란드인 안나, 선동가 제프, 감정적으로 불안한 린다, 더 많은 것을 찾는 도시계획자 스티비, 이렇게 대강 다섯 명이다. 수업이 끝나면 학생 술집에 모여 각기 다른 주장을 펴고 말다툼을 하지만 적어도 네 가지에 관해서는 의견을 일치한다.

  ① 어느 당이든 정권을 잡은 정부는 쓸모없다. ② 신은 거의 확실히 존재하지 않는다. ③ 삶은 산 자를 위한 것이다. ④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봉투에 담긴 술집 안주는 아무리 많아도 부족하다.

  이 네 가지 의견 가운데 교수 EF에 관한 호오는 들어있지 않다. 따라서 EF의 강의와 주장을 지지하는 닐과 안나가 있고, 반발하는 제프도 있으며, 아예 관심이 없는 축도 있으니 린다와 스티비.

  EF의 어법을 여기서 소개하지 않는 것은, 짧은 글에서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잠언 같기도 하고, 명상록 같기도 한 말들을 인용하기엔 나의 사고범위가 좁기 때문이다. 이런 것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이른바 모차르트 딜레마.

  “삶은 아름답지만 슬픈가, 아니면 슬프지만 아름다운가?”

  나는 이게 잘못된 가정이라고 생각하는 인종이다. 아름다움의 집합이 있고, 슬픔의 집합이 있는데, 어떻게 하다 보면 이 두 집합이 서로 교차하는 부분, 즉 교집합이 생기는 일이 잦아서 이런 딜레마가 생긴 거 같다. “대개 아름다운 건 슬프다.” 부사 ‘대개’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면 틀린 말이다. 같은 의미로 “가끔 슬픈 건 아름답다.” 상처를 입었거나, 심근경색이 왔거나, 닭튀김집 하다가 월세도 못 내서 쫓겨났는데 이게 뭐가 아름다운가 말이지. 그래서 앞 전제의 역도 부사 ‘가끔’이 빠지면 뒤통수 한 대 얻어 터질 수 있으니 조심해 말해야 한다. ‘가끔’ 보다는 ‘아주 가끔’이 더 좋다.

  닐, 어쩌면 작가 줄리언 반스의 도플갱어일 수도 있는 닐은 여기서 19세기 프랑스의 위대한 사학자, 철학자인 에르네스트 르낭의 말을 떠올린다. “나라state로 존재하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비단 나라라는 거대 집단 뿐만 아니라 개인도 항상, 매일, 작은 행동과 생각, 큰 행동과 생각에서 우리 자신을 속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종과 문화의 우월성에 관한 신화, 자비로운 군주, 오류가 없는 교황, 정직한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사는 건전한 국가, 국민, 개인이 되기 위하여, 역사를 알기는 알아야 하는데, 잘못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 각지에 거대한 식민지를 경영하는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문화와 문명과 의식수준, 교양, 측은지심 같은 것이, 짙은 피부에 휩싸이고 옷을 입지도 않고 전기와 내연기관과 화약무기를 모르고 살며 가끔 같은 호모 사피엔스 종의 고기를 먹기도 하는 인류보다 월등하게 우월하다고 오해하는 것이 편하다는 의미도 된다. 그러기 위하여 유럽인들은 쥐뿔도 모를 필요가 있다.


  기독교인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2부, 엘리자베스 핀치 교수가 암으로 사망한 후, EF의 모든 문서와 책의 관리를 위임받은 닐이 배교자 황제인 플라비우스 클라우디우스 율리아누스에 초점을 맞춘다. <로마제국쇠망사> 2권에서 가장 흥미로운 황제가 바로 이 율리아누스인데, 공부도 많이 해서 철학하는 황제로 이름을 높였고, 적어도 95포인트는 주어야 마땅할 전투력과 거의 100에 가까운 지휘력을 지닌 군사 지휘관이었다.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카다. 기독교를 공인했지만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죽음의 침상에서 억지로 세례를 받고 숨이 넘어간 콘스탄티누스 1세. 깔끔하게 후계를 정하지 못해 맏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는 자색 망토를 휘날리지 못했고, 둘째 아들 콘스탄티”우”스 2세가 차지했다. 당시 황제는 군부에서 자기 군단장이 황제다, 라고 선언하고 창을 거꾸로 쥔 채 지금 황제를 칭하는 자하고 내란을 벌여 이기기만 하면 황제가 될 수 있었다. 그래 처음에는 마음이 없던 율리아누스도 부하들이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콘스탄티우스와 한 판 맞짱을 뜨러 진군하다가, 콘스탄티우스가 병에 걸려 죽고 만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콘스탄티우스가 후계로 율리아누스를 지목하는 바람에 피바람이 불지 않고 평화롭게 황위가 이어졌다.

  율리아누스가 보기에 문화도, 문명도 없이 오직 유일신 하나만 믿어 조지는 기독교가 로마에 들어와 공인을 받자 지독하게 그리스 로마의 신들을 박멸하는 거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이 숱한 신전을 파괴하는 거였으니 말 다했다. 물론 당시 기독교겠지만 그들에겐 문화와 문명이 필요 없었다. 오직 믿기만 하면 다 알아서 해주겠거니 싶어서. 율리아누스는 기독교도들을 탄압하지 않았다. 그냥 내버려두었다. 다만 중용하지 않았을 뿐. 반면에 기독교도들은 자기들한테 명예롭기 그지없는 순교의 기회를 주지 않는 부드러운 탄압을 하는 황제가 더욱 미웠다고 반스는 주장한다. 그리하여 소설을 쓴다.

  황제 자리에 오르고 겨우 3년이 지나 율리아누스는 어리석게도 페르시아와의 전쟁에 참전한다. 로마사 전부를 대상으로 해도 용맹 황제로 한 손에 꼽을 만하게 용감하다. 그리하여 사막에서 싸우다 페르시아 잡병이 우연히 찌른 장창이 오른팔뚝을 스치며 황제의 간을 관통해버린다. 기독교는 이때 황제를 찌른 병사들이 두 명의 기독교도라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가필해 버렸다. 율리아누스가 아무리 훌륭한 황제라도 하다못해 순교의 명예를 주기를 거부한 반기독교도, 이것보다 더한 변절자, 배교자이기 때문에. 이교도는 용서할 수 있어도 배교자, 변절자는 눈 뜨고 못 보는 게 사막종교의 특성이니까.

  학문의 발전과 교양 교육이라는 면에서 비참하고 원시적인 상태였던 유대-기독교는 종교를 가진 문명이 아니라 자신을 뒷받침할 문명이 거의 없는 억압적 종교이며, 이것이 “로마에서” 기독교가 잘 팔릴 수 있는 독특한 장점 중 하나인 것이 분명하다. 문명은 나중에 생겨도 상관없고 없어도 그만이다. 그들에겐 종교가 문명이었기 때문에. 이 종교는 독자적이었으며, 유일했으며, 따라서 절대적이었고, 불가피하게 독점적인데다가 타협 불가능한 종교였다. 헬레니즘은 한 방에 가버렸다. 로마 역시 로마를 위해 “역사를 잘못 알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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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11-12 09: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디오북으로 1부를 들었는데, EF라는 인물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내용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Falstaff 2024-11-12 21:02   좋아요 1 | URL
노년의 작가들이 쓴 작품이 종종 그렇듯이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좀 세게 드러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확 읽어버리세요. ^^

은하수 2024-11-12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2부 읽고 있는데..
EF라는 인물은 참 규정하기 힘든 인물이라 읽으면서 머릿 속 어딘가에 붕 떠있는 느낌이예요.
쉽게 잡히지 않네요. 진도도 잘 안나가구요. 팔님 리뷰 읽으니
다시 분발해야겠다 싶네요.
기운이 납니다~~^^

Falstaff 2024-11-12 21:07   좋아요 1 | URL
이런 작품은 반스가 평소 쓰지 않았는데 그래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참 독특한 시각이었습니다. 국가, 정체, 집단, 그리고 개인을 유지하기 위하여 역사를 오해할 필요가 있다... 현상을 제대로 비꼬고 있습니다. 하여튼 반스는 놀라운 작가입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