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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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4년에 서울에서 나, 인천외국어고등학교 다니다가 때려 치우고 검정고시로 고졸학력 취득한 다음에 예술종합학교에서 문예창작으로 공부했다. 2005년에 창비 신인상을 통해 소설가 말석에 자기 방석을 깔았으니 이때 나이 약관 스물한 살. 떡잎부터 알아보는 빛나는 재능이었다는 말이지. 예전에야 고등학교 다니다가 수업시간에 얻어 터지면서 소설 끼적인 것이 신춘문예 당선하고 뭐 그런 일이 있었지 21세기 들어오면서는 이런 일이 굉장히 드문 것 같다. 하긴 전에도 무척 드물어서 이런 작가가 등장하면 신문에도 나오고 그랬겠다. 그래, 그때나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지 그동안 뭐 중대가리에 뿔날 일 있었겠어?

  김사과. 이름 들어본 건 오래 전이다. 당연히 본명은 아닐 터. 이이는 예명으로 하필이면 사과를 택했을까? 어떤 사과일까? 아담의 목에 걸린 사과? 트로이의 파리스한테 건넨 아프로디테의 사과? 아니면 하필이면 뉴턴이 낮잠에서 깰 때 바로 앞에 떨어진 사과? 홍옥? 국광? 부사? 골드? 루비에스? 아니다. 어쩌면 왕실에 들어온 두번째 왕비가 전처소생인 공주에게 내민 독약 묻힌 사과일지도 모른다. 앗, 말하고 보니까 독 바른 사과에 더 가까울 거 같다.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맛있니? 그래서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사람 하나 낼름 잡아먹는 이야기 전문가. 사람을 먹는 행위. 이거, 섹스에 관한 은유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로 사람의 피부와 지방과 근육과 혈액을 요리해서 입에 넣고 씹으며 차례로 조금씩 혀로 이동시켜 식도 쪽으로 밀어 삼키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세상에. 처음 읽는 김사과의 작품인데 처음부터 이러시면 우짜라고? 하긴 이름이 새큼해서 언젠가는 읽었겠지만 하느님이 보우하시면 끝날까지 김사과를 읽지 않고 조신할 수 있었을 텐데.


  작품의 주인공 정지용은 주장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보드라운 살갗을 만질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아이고, 그럼. 말하면 뭐해. 세상사람 다 같은 기분이지. 하지만 아니다. 나는 틀림없이 사랑하는 사람의 보드라운 살갗을 만지면 기분 좋다. 그냥 좋다. 이유가 있을 필요도 없다. 근데 정지용은 그것도 이유가 있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몸을 찢어 놓는 데 아주 잠깐의 시간이면 충분하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카니발리즘에 환장을 한 주인공의 이름이 정지용. 나는 순간 휘까닥 돌았다.

  정지용? 鄭芝溶?


  “傳說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의와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안해가

  따가운 해ㅅ살을 등에지고 이삭 줏던 곳.

  ― 그 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  (『정지용전집1』 1988.7. 증보판. 민음사 p.46~47)


  이런 노래를 부른 정지용. 주인공 이름을 지어도 참.

  근데 정지용의 아빠는 또 정대철. 이이 이름도 입에 익숙하지? 직업은 오손그룹 회장이다. 1980년대 중반에 오손그룹 창업자이자 정지용의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놓는 바람에 크고 작은 아버지, 고모들과 질퍽하게 그룹 계승전쟁을 치뤄 최종적으로 승리한 정대철 씨는, 그냥 신비주의적 도라이 회장이라고 생각하면 맞다. 계승전쟁 이후 정대철은 점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존재로 변신한 직후 소박한 교육자 집안의 이십대 중반 참한 처녀 은미라와 14년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재혼했다. 정대철의 전처는 호주로 이민을 갔다, 모로코 부자와 재혼했다, 하는 불확실한 소문만 창궐했다.

  정지용은 소련 붕괴를 이틀 앞둔 1991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버지 정대철이 오손그룹 신입 남자 직원과 바람이 나 열흘째 소식이 두절된 가운데 엄마와 이모, 외할머니, 산부인과 여의사, 여자 간호사들, 온통 여자로 둘러 싸인 포스트 모던한 세상 밖으로 나들이를 나왔다. 아들 정지용을 출산한 교육자 집안의 참한 규수 은미라는 이후 남편처럼 사람들이 점점 두려워하는 존재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나라의 상류 부르주아 계층을 지배하는 장치로 삼은 것은 매달 첫째 주 금요일 저녁 집 안뜰에서 연 자선 파티였다. 인기영화를 테마로 해당 영화에 걸맞은 상상 속의 부르주아로 변신, 계산된 인공적인 태도로 관계를 맺는 허위의 인종들.

  어떠셔? 이 정도까지는 즐겁게 읽었다. 엽기발랄한 상상력과 이에 맞춤한 문장들이 착착 감기는 맛이 상당했다. 등장인물의 성격도 적절하게 파국적이다. 신입 남자사원과 바람이 나서 열흘 넘게 세상에서 사라진 거대 그룹회사의 총수 정대철이 정말 호모섹슈얼? 만일 누가 정대철에게 직접 묻는다면 아마 그냥 껄껄 웃고 말 걸? 그러거나 말거나, 세상에서 뭐라고 하건 진실은 정대철의 입 밖으로 한 마디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 오손그룹은 이렇게 사이코패스 성향이 조금은 있는 회장의 드라이브로 무섭다는 1990년대 IMF의 고공폭격도 무사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모든 회사는 위기를 한 번은 겪는 법. 2002년, 오손그룹이 부도위기에 처했다는 소문이 들고, 당연히 주가가 곤두박질치면서 그룹이 급격히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정확히 2005년에 그룹의 회장부인 은미라가 자택에서 시신으로 발견된다. 사인은 심장마비. 은미라의 시신은 이상하게도 5년 동안 왕래가 전혀 없던 여동생이 발견했다.


  엄마가 집에서 죽었을 때 주인공 정지용은 스위스 로잔의 숲 속에 있는 무진장 비싼 사립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정지용은 기숙사에서 탈출하지만 지가 가면 어디까지 가느냐고, 달랑 잡혀와 한국으로 송환해 버렸다. 이후 정지용은 강남의 공립 중학교를 다니다가 당연히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를 해서 억지로 검정고시를 마친 후 LA에 있는 사립고등학교를 거쳐 뉴욕대를, 전혀 학업적 성취의욕 없이 돈으로 강사를 구해 리포트를 대리로 작성시켜가며 억지로 졸업을 하기는 한다. 이럭저럭 뉴욕에서 10년 정도 지내는 동안 오손그룹은 기적적으로 생존하더니 제2의 성공시대를 열고 있었다. 이제 수출 중심의 제조업을 때려치우고 교육, 부동산, 추자 중심의 서비스업 회사로 거듭난 거였다.

  정회장은 미국의 사설 감옥, 유럽의 축구 리그, 그리고 아이비리그의 교육 산업을 깊게 연구해 이 모델을 사람에게 적용하기로 결심했다. 뉴욕 월가 직장인의 수학실력, 죄수의 야만성, 축구 선수의 체력을 갖춘 인간을 생산하여 세심하게 몸값을 매기고, 부풀리고, 다시 깎고, 또다시 부풀리는 무한경쟁의 인간시장을 만든다는 원대한 계획. 21세기는 진정한 인재 싸움의 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위하여 정회장은 L시와 손을 잡고 산업공단 부지 전부를 얻어 아시아신청년인재양성 센터를 건립하고 주위에 뉴타운을 개발하는데, 가장 중요한 거주 건물을 짓고 이름을 “레종드레브”라 했다.

  아들 정지용이 귀국하고 정대철 회장은 아들을 결혼시킨다. 상대는 교수 부모를 둔 역시 20대 처녀 최영주. 이젠 21세기를 맞아 지용의 엄마 은미라처럼 육체적 처녀라는 뜻과 같은 의미는 아니고 그저 젊은 여성을 그렇게 이를뿐이다. 최영주는 사랑은커녕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남자와 결혼하는 것에 헷갈려 하고 있는데, 유명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엄마의 적극적 조언으로 그래, 결혼해버리고 말지 뭐. 근사한 결혼식으로 하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와 아쉽게도 서울이 아니라 L시에 있는 아시아신청년인재양성센터 부지의 화려한 고층 주거 건물 레종드레브의 꼭대기 통합층 2백평 아파트에 신혼집을 차린다.

  이때부터 나는 책읽기가 지겨워졌다. 신혼부부가 하는 짓은 뭐? 당신이 생각하는 거 아니다. 이들은 서로 극존칭 비슷한 화법을 구사하며, 세상에서 할 일이 가장 없는 족속이며, 결혼 조건은 둘 사이에 아이 하나는 만들어야 하는 것. 그거 말고 뭐가 있을까? 뭐 별로 없다. 서로 사랑할 필요도 없다. 살면서 정이 들고, 그게 사랑으로 바뀌면 좋은 거고, 아니라도 뭐 그렇게 아쉬울 거 없는 사이. 그러니 할 거라고는 아내는 쇼핑, 남편은 바람. 이렇게 정식 코스를 밟아가는 정지용 앞에는 같은 아파트의 다섯 평짜리 단칸방, 그래도 월세가 150만원에 달하는 전망 좋은 방에 사는 독신녀이자 VJ 이하니. 이하니 자신은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고급스럽고 세련된 복장으로 차려 입고 건물 로비에 나섰건만, 정지용의 눈에는 어떻게 그리도 촌스러운 매치로 괜찮은 몸매를 둘렀는지, 한 눈에 봐도 사모님이 입다가 준 옷을 걸치고 외출한 가정부였다. 그런데 이 촌스러움에 끌리는 정지용.

  부르주아가 아주 가난하지는 않지만 확실하게 자신이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의 인물에게 호감을 느끼면? 당연하지, 선물하고, 생전 먹어보지 못한 비싼 밥을 사주고, 드럽게 무거운 병에 든 겁나게 비싼 위스키를 퍼먹이고, 한 번 하고, 정지용 정도의 최고급 부르주아가 이하나라는 여성이 마음에 들었다면 다시 보고싶지 않을 때까지 살 수 있는 서울시 강남구 도산공원 앞에 널찍한 아파트를 이하나의 이름으로 전세 얻어주고, 자신의 신용카드 한 장을 주어 기쁨이 넘쳐나는 사치를 향유할 수 있게 해주고, 암만해도 투자에 비해 효용이 너무 작다고 생각되는 날이 오면, 먹어 버린다. 정말? 정말 카니발리즘, 먹어 버린다고? 에이, 내가 그걸 어떻게 확정해. 읽어 보셔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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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그리움으로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04
박재삼 지음 / 실천문학사 / 199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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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 저 깊숙한 곳에서 30년 묵은 시집 한 권을 찾았다. 시집 초판이 1996년. 내가 시집을 샀을 때도 1996년. 30대 혈기방장하던 시절이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까 그때 이 시집을 읽은 특별한 감회 없이 왜 그저 책꽂이에 꽂아두고 그것으로 말았는지 이제 알겠다. 젊은 시절 박재삼의 시집이었다면, 예컨대 <春香이 마음>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울음이 타는 가을 江>의 마지막 연이었어도 그렇지 않았을 듯하다.


  저것 봐, 저것 봐,

  너보다도 나보다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江을 처음 보겠네.


  아마 외우고 또 외웠겠지. 하지만 《다시 그리움으로》는 지병인 고혈압, 만성신부전, 위하수, 신경통 등에 시달리던 60대 시절의 박재삼, “사라져버린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 대신 성큼 눈앞에 다가온 것 같은 죽음의 전조를 문득문득 보고 있었던 터. 실제로 그는 이 시집을 내고 다음 해에 64세의 많지 않은 나이로 세상을 접고 만다. 그러니 삶을 마감하려는 듯 세상을 정리하기에 몰두한 백조의 노래를 30대 청년이 즐거이 감상할 수는 없었겠지.

  이걸 다시 말하면, 이제는 어느새 박재삼보다 오래 살아 더 멀리 가버린 늙어버린 나는 그의 차분한 청산곡曲을 담담하게 따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무려 3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구비구비 굴곡을 겪으며 빠르고 느리게, 잠시 동안은 조금 멈췄다가 드디어 바다에 닿는 강물을 노래한 시인은 이미 길을 마감하는 언저리에 도착했다. 이 노래를 뭐라고 이름할까? 마땅하게 붙일 것이 없었겠지. 그리하여 시인은 無題, “제목 없음”이라 해버렸다.



  無題



  그대는 태어나기를 

  그럴 수 없이 예뻤다마는

  그 위에

  나의 想像力이 加味되어

  안 보이게 되어야

  더욱 美人으로 나타나는 것이여.


  그러나 어쩔꼬,

  그대가 이승을 떠났는데로

  자주자주

  내 앞에만 오는 걸 보니

  신통해 못 견디겠는걸.

  저승에서나

  다시 만날는가 싶지만,

  나는 저승이 있다고는

  이제는 믿지 않는걸.   (전문. P.14)



  시집에 <無題>라는 제목의 시가 무려 아홉 편이 들어 있다. 물론 거개가 죽음하고 깊이 연관된다. 무제만큼 시집에 자주 제목으로 등장하는 건 허무虛無. 허무 역시 바로 옆이 죽음 또는 죽음과 아주 가까이 있는 깊은 잠의 상태일 것이다. 박재삼은 이렇게, 시조 형식으로 노래했다.



  痛恨의 虛無



  그 사람 언제 오려나

  애터지게 기다려도


  죽어 땅 속에 묻혀

  영영 모른 체하고


  뒷산에

  산새 울음만

  멍청하게 들리네   (전문. p.34)



  그런데 제목은 참 촌스럽다. “통한의 허무.” 이것 말고도 “虛無의 내력”과 “虛無의 갈매기 울음”도 있다. 無題와 虛無에 필적하는 은유지만 이제는 직유가 되어버린 단어 가운데 청산靑山도 있어서 시인은 이렇게 노래한다.


  그러나 뒤에 서 있는

  아득한 靑山은 아직도

  옛날 그대로인 것 같아

  결국 거기에 가서

  묻힐 일만 뚜렷이 남았네.  (<靑山을 보며> 부분. p.48)


  이런 시들은 내가 20대 시절에 읽고 숭앙하던 시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때 이 시집을 읽었다면 여태 내 마음 속에 이렇게 아득하게 시인의 이름 “박재삼”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계유생 시인과 독자 나는 적절하게 연이 맞는다고도 할 수 있겠다. 청년 시절의 내가 젊은 박재삼을 읽었듯이, 이제 시집을 사놓고 30년이 흘러 나이든 나는 죽음을 한 발짝 앞에 둔 박재삼의 시를 읽는다. 그리하여 다시 한번 더 無題.


  無題


  잠시라도 쉴 때에야

  하늘에 구름도 보지

  그것을 못 하고

  길만 바삐 가다 보면

  어느새

  캄캄한 밤이 되어

  구름도 숨어버려.  (전문. p.16)


  시인은 이렇게 살았나 보다. 쉬지도 못하고 길만 바쁘게 가는 바람에 어느새 구름도 숨은 어둔 밤을 향해. 그는 1967년, 서른네 살 때 고혈압이 발병, 1차로 6개월 동안 병원신세를 진다. 아마도 뇌졸중이었을 듯하다. 누룩 대신 카바이드를 섞어 속성으로 숙성한 막걸리와 불량한 필터가 달리거나 아예 필터조차도 없는 저급한 담배를 마다하지 않던 당시 삼십대들에게 드물지 않은 경우였다. 내 호적등본에도 한 분 있다.

  그리하여 이제는 저 앞에 인용한 “소리 죽은 가을 江”은 아주 작은 흔적으로만 보인다.


  산골물은 졸졸졸

  산 속을 누벼 흐르다가

  결국은 바다에 들고 만다.  (<불변不變하는 것과 그렇지 않는 것> 부분. p.44)


  이제 그를 한 마디로 하자면, “인생 다 살았다.” 보면 볼수록 인간 삶이란 것의 작음만 눈에 띄는 시인. 그것들이 서로 잘났다고 아웅다웅 하는 것이 마치 아이들 옹알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박재삼보다 더 오래 살았으니 나도 그렇게 세상을 보느냐고? 아니다. 아직 아니다. 박재삼은 뛰어난 시인이었고, 나는 그냥 한 명 범부일 뿐인 것을.



  자연과 인간의 차이 1



  낮에는 해

  밤에는 달이

  차례차례로 떠서

  하늘에서

  땅을 향하여

  늘 환히 밝히고 있건만

  말 없는 가운데

  하나 지치는 일 없네.


  그런 가운데

  오직 머리가 똑똑하다는 사람만이

  너무 변덕이 심해서

  늘 옥신각신 잘 싸워

  부끄럽기만 하네. (전문. p.30)



  이 시집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는 역시 내가 우러러보는 시인 민영의 발문을 읽는 일이다. 아직 나이가 어려 전쟁에 휩쓸리지 않았던 민영과 박재삼이 당시 부산에서 이들의 스승인 김상옥의 소개로 만나 이후 오랜 세월 이어간 우정과 일화가 읽을 만하다. 죽도록 부지런히 써도 돈과는 거리가 먼 시 작업을 하는 친구들. 그러면서도 서로의 시업을 독려하고, 돕고, 그리고 더 자주 질투하는 젊은 민영과 젊은 박재삼을 읽는 일. 피싯 옷을 수도 있다. 그때는 그렇게 살았구나. 세월이 가는 일은 세상이 더 야박해지는 일일 수도 있구나.

  이제는 박재삼도 민영도 세상 사람이 아니다. 저승을 믿지 않는다니 두 양반이 넋이나마 만나지 못했겠지만 그래도 혹시 영혼이라는 것이 만일, 아직도 있는 거라면, 넋이나마 가난하지 않고, 아프지 않고 편안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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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10 12: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장 움푹한 곳에 오래된 시집이 저도 좀 있는데요. (아 정말 시집을 사지 않은게 너무 오래되었네요) 오늘 집에 가면 그 움푹한 곳의 시집을 꺼내 먼지를 털고싶다는 느낌이 드는 리뷰입니다.

Falstaff 2025-07-10 18:48   좋아요 1 | URL
아이쿠, 잘 읽어주셨다는 말씀 같아서 고맙기 그지 없네요. ㅎㅎㅎ
옛 시집, 읽어보시면 가끔 후끈 얼굴이 달아오를 수도 있고요, 그땐 그랬지 슬쩍 웃을 수도 있고요, 뭐 그렇더군요. 이런 걸 다 합쳐서 추억이라고 하잖습니까. 읽고 즐기셨으면 좋겠습니다.
 
정신병동 수기
크리스티네 라반트 지음, 임홍배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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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읽은 크리스티네 라반트. 이 책도 우리나라에서 처음 번역, 출판한 라반트인 모양이다. 유럽에서는 나름대로 이름을 떨쳐 국제 크리스티네 라반트 학회도 만들었고, 크리스티네 라반트 문학상도 제정되어 2016년부터 상을 주고 있다 한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크리스티네 톤하우저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 다음은 이이의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내용을 바탕으로 썼다.

  크리스티네 라반트는 1915년 7월 오스트리아 카린티아의 라반트 계곡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광부 아버지와 삯바느질하는 어머니의 아홉 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톤하우저Thonhauser이나 2차 세계대전이 끝나 본격적으로 문학활동을 하던 1948년에 이름을 자기가 태어난 고장인 라반트Lavant로 바꾸었다. 20세기 초의 오스트리아. 패전국 산골의 다산 가정 자녀들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줄 수 없었겠지만, 이중에도 불행한 아이들은 그로 인해 치명적 질병을 앓아야 했다. 이 악마의 발톱이 크리스티네를 할퀴었다. 신생아는 훗날 유방으로 성장할 오른쪽 가슴과 목, 얼굴에 ‘음낭’ 또는 ‘왕의 악마’라고 불리는 질병, 마이코박테리아 경추 림프절염에 걸렸다. 사진처럼 목 부분에 만성적인 종괴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음낭처럼 생겼다고 ‘음낭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행스럽게 빈민 특별의료를 지원해 1924년, 아홉 살 때 약 60킬로미터 떨어진 종합병원에 입원, 안과과장 아돌프 프루처 박사를 만나는 행운을 얻어 거의 잃을 뻔한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와 그의 아내 폴라 프루처 여사가 크리스티네의 문학적 소질을 알아보아 릴케의 시집을 선물하는 것으로 시작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출판사를 알아봐 주는 등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이름이 아돌프라고 다 나쁜 종자만 있는 건 아니다. 원래 흔한 이름이었다가 전쟁 이후에 다시는 “아돌프”를 구경하지 못하는 운명을 맞았지만. 시력을 완치한 어린 크리스티네는 집까지 갈 교통비가 없어서 엄마와 함께 60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했던 모양이다. 이때 병원에 입원하고, 병동에 입원한 소녀들, 주임의사, 간호사, 기타 관리인, 그리고 엄마/언니와 함께 퇴원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이 책 《정신병동 수기》 제일 앞에 실린 <어린 아이>에 고스란히 나온다.

  대개 이 림프절염이 결핵부터 시작을 한다고. 그럴 확률이 청년일 경우는 대부분이고, 유소년일 경우엔 10퍼센트 미만이라지만 크리스티네는 1927년, 열두 살에 결핵까지 걸렸다. 혹은 결핵에 걸린 것을 발견했다. 다시 종합병원에 입원한 어린 크리스티네한테 병원은 고선량의 뢴트겐을 사용해 “실험적으로” 치료했는데, 이것에 효과를 얻었는지 결핵은 거의 완치, 림프절염도 놀랄만큼 좋아졌다. 다만 고선량을 사용한 후유증으로 오른쪽 가슴과 목, 얼굴에 화상을 입었고, 머리 부분이 온도변화에 유난히 민감한 성향을 지니게 됐다고. 그래서 이이는 이후 종종 머리에 스카프를 착용한 상태로 지냈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한 1930년대 초반, 직업교육을 받다가 중도에 그만 둔 크리스티네는 다시 부모의 비좁은 아파트로 돌아와 그림과 글쓰기에 전념했다. 작품을 써서 출판사에 보내 거의 출판을 할 듯하다가 결국 거절을 당했을 때 이이는 이미 깊은 우울증 상태에 돌입해 있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1935년에 수면제 서른 알을 한꺼번에 먹어 자살을 시도했지만 사흘만에 다시 깨어나, 또다시 극빈층 의료지원 프로그램 혜택을 받아 6주 동안 정신병동에 입원하니, 이 때의 경험으로 쓴 작품이 이 책의 표제작인 <정신병동 수기>이다.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당이 유대인 멸절에 앞서 시행한 것이 아리안 족의 탁월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형이나 불구, 유색인과 유대인을 효과적으로 제거하는 것이었다. 내용을 알고 있는 크리스티네 입장에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1938년은 1년 안에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생을 접은 다음이었다. 이제 특별히 기댈 만한 의지가지가 없던 라반트는 더욱 불안에 휩싸여 숨죽이고 살다가 39년에 서른다섯 살 연상인 화가이자 지주출신인 하버니히씨와 결혼했다.

  특히 오스트리아 병합 후 불안 속에 살던 크리스티네 라반트는 전쟁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문학 창작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이의 여러 산문 또는 소설 작품은 스스로 발표하기를 꺼려해 결국 사후에 출간되기도 했는데, <정신병동 수기>도 이 범주에 든다. 아마 작가적 부끄러움이 그렇게 반영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는 이 책에서 표제작을 제일 먼저 읽었다. 생소한 시각과 생소한 문법을 사용하여 사물과 인물을 응시하는 것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을 출판하는데 머뭇거렸을까? 실제 경험을 묘사한 작품이라 자신 스스로의 부끄러움이 많았으리라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이이는 1964년에 과부가 되고 9년을 더 살다가 1973년 6월, 쉰여덟 살 생일을 한 달도 남기지 않고 뇌졸중으로 삶을 접었다.


  이이의 바이오그래피를 길게 쓴 것은, 책에 실린 세 작품 가운데 처음 두 편, <어린아이>와 <정신병동 수기>의 내용이 작가의 경험을 많이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세번째 작품 <마귀 들린 아이>는 앞의 둘과 다른 내용, 서양 중세시절부터 내려오는 기형아이에 관한 미신을 아직도 믿는 시골 지역 이야기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체인즐링Changeling.

  아기가 기형이다. 이 책의 주인공 소녀 치타는 소리를 듣고 내용을 이해하기는 하지만 말은 하지 못한다. 아마 선택적 실어증 같다. 아이들과 놀 때, 자기 혼자 있을 때는 짧지만 한 문구를 우물우물 말하고는 한다. 북쪽의 다른 지역에서 흘러 들어온 렌츠라는 이름의 하인이 등장할 때까지는 그나마 어린아이 답게 천진하고, 귀여움도 받고, 벙어리라 은근히 더 배려도 받으면서 잘 지냈다.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일 터이니까 자연스럽기도 하다.

  렌츠가 체인즐링, 아기 바꾸기 이야기를 한다. 젖먹이 치타가 혼자 집에 있을 때 마귀가 나타나 치타의 몸에 자기 새끼를 씌우고, 치타는 마귀가 데리고 갔다는 거다. 유럽 지역마다 마귀가 아니라 집시일 경우도 있다. 하여간 렌츠는 마귀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진짜 치타를 다시 데려오려면 치타를 발가벗겨 놓고 외눈박이 하녀 엄마 부르가가 아주 힘껏, 모질게 아홉 번을 때려야 한단다. 너무 아파 마귀의 새끼가 치타의 몸에서 살 수 없어 자기 엄마인지 아빠인지 하여간 부모 마귀를 찾아간 다음에야 마귀가 진짜 치타를 치타의 몸에 보내줄 것이라고. 아니면 치타를 거의 숨이 넘어갈 때까지 물에 빠뜨려야 한다고. 하지만 엄마 부르가는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딸 치타에게 그런 모진 일을 할 수 없다. 완벽하게 그렇다. 엄마가 무슨 이유로 사는 데? 근데 어떻게 치타를 때리거나 흐르는 물에 빠뜨릴 수 있을까?

  그러나 소설작법 7장 2절. 불운한 예언이나 주문은 언제나 들어맞는다. 기억하시지?

  처음에 <정신병동 수기>를 읽고, 별 다섯 만점, 했다. 이어서 <마귀 들린 아이>와 <어린아이>까지 다 읽은 다음에는 넷 반 정도. 하긴, 별점이 뭐가 중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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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왕
마자 멩기스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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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aaza Mengiste. 이름을 ‘마자’라고 쓰는 건 알겠는데, 성이 멩기스테? 이탈리아와 전쟁을 두 번 치룬 경험이 있어서 이탈리아 식 발음으로 ‘멩기스테‘라고 쓴 건가? 에티오피아의 공식 언어는 암하라어와 영어이다. 그러면 알파벳으로 표기한 Mengiste는 ‘멩기스트’ 혹은 ‘멩기스티’로 써야 할 것 같다. 하긴 뭐 어떻게 써도 상관없다. 문학동네가 우리나라 메이저 출판사 가운데 하나니까 멩기스테라고 쓴 이유가 있겠지.

  마자 멩기스테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1974년에 태어난 범띠 에티오피아계 미국인이다. 멩기스테가 출생한 1974년에 에티오피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우리나라에도 방문한 적 있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를 폐위하고 혁명 후 본격적인 권력투쟁으로 접어든다. 3년이 지나고 최종적으로 멩기스투가 권력을 잡았는데, 혁명에 이은 권력투쟁은 거의 언제나 매파가 잡는 법이라, 멩기스투는 1977년에 집권을 한 후에 곧바로, 당시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유행했던 대로 사회주의 군사 독재의 전범을 이룬다. 공식적으로는 전립선 수술 중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도 멩기스투의 작품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인 모양이다. 진짜 그랬다는 건 아니다. 위키피디아 같은 곳에서도 그렇게 짐작한다고 쓰여 있다. 이때 마자 멩기스테 가족들도 어마 뜨거라 싶어서 더이상 아디스아바바에 머물다가는 귀신도 모르게 숨 넘어갈 것 같은 위기의식을 느껴 멩기스투 집권 다음 해인 1978년에 에티오피아를 탈출, 순서대로 나이지리아, 케냐, 미국으로 거처를 옮겼다.

  마자 멩기스테가 공부를 곧잘 한 모양이다. 풀브라이트로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뉴욕대학으로 돌아와 문예창작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당연히 소설을 썼는데 첫 작품이 <사자의 시선 아래서 Beneath the Lion’s Gaze>이고 두번째 작품이 <그림자 왕>이다. 데뷔 후 두 작품 모두 부커상 최종심까지 올랐다가 장렬하게 바나나 껍질을 밟았다. <사자의 시선 아래에서>는 아직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하지 않았다. 세번째 작품도 있는 모양이다.


  그림자 왕이 무엇일까? 누굴 일러 그림자 왕이라 하는 것일까?

  영화 <광해>를 떠올리시라. 두 명의 이병헌. 이 가운데 한 명은 진짜로 훗날 광해군이라 불릴 당시의 왕이고, 다른 한 명은 시장판에서 특정인을 흉내내는 잡배 광대 하선. 근데 광해가 병에 걸려 정사를 돌보지 못하게 되자 미자 아빠, 내시 역의 장광과 허균 역을 하는 류승룡이 하선을 발탁해 임시로 왕 역할을 하게 만든다. 이때 하선을 칭하기를, “그림자 왕.”

  훗날 광해군이라 불리는 조선의 15대 왕 역시 임진왜란 당시 자신의 아빠 선조가 한반도 서북 모서리 의주에 짱박혀 숨어 있을 때 왕을 대신해 동쪽 모서리 함경도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등장해 군사와 의병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다가 화살인지 조총인지 맞은 적 있다. 광해 자신도 한 시절에 그림자 왕이었을 수도 있으니, 세상 재미있지? 근데 한 번 그림자 왕을 했던 인물은 진짜 왕한테, 저것이 감히 나를 사칭했다는 말이지, 라는 질투심 유발죄로 시기가 끝나면 치도곤을 당하는 것이 보통이다.

  에티오피아의 그림자 왕은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 중에 나타났다고, 마자 멩기스테는 주장한다.

  1935 을해년. 일 두체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끄는 이탈리아 왕국군이 1896년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의 패전을 복수할 겸, 아프리카 식민지를 개척할 겸해서 비교도 되지 않을 막강한 화력을 동반해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다스리는 에티오피아 제국의 땅에 군화발을 디민다. 1차 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유럽 열강의 식민지 확장을 염두에 두어 나름대로 그럴 듯한 무기체계와 훈련된 병력을 보유했었지만 1935년에는 전쟁을 할 수 없을 지경의 초라한 군사력만 지니고 있었다. 검은 제복의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심지어 항공기에서 독가스를 분사해 살아있는 모든 동물을 제거하면서 동시에 하천과 우물 등 식수자원을 고갈시키며 보무당당,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향해 짓쳐 나갔다. 이에 화들짝 놀란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황제궁에서 마지막으로 분당 78회전의 플라스틱 음반으로 에티오피아 공주와 적국인 이집트 장군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주제페 베르디의 <아이다>를 들은 다음에 열차를 타고 수도를 빠져나가 영국 바스로 도망한다. 조선의 광해 아빠 선조 닮았지?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정복한 이탈리아 군은 즉각 승전을 발표하고 본격적으로 이탈리아가 에티오피아를 식민지로 다스리겠다고 세계만방에 고한다.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아무리 국제연맹 총회 연단에 올라 세상이 놀랄만한 웅변술로 이탈리아의 무력 불법 침략과 독가스 살포 같은 비인도적 행위를 규탄해도 파시즘의 나라 이탈리아와 독일, 그리고 일본에게는 쇠 귀에 경 읽기, 또는 마이동풍.

  유럽식 전쟁술의 기준으로 보면 이탈리아가 전쟁에 이긴 건 분명한데, 그럼 이탈리아가 실질적으로 다스렸느냐, 하는 점에서는 의문이다. 마자 멩기스테는 절대 그럴 수 없었다고 하고, 당시 세계정세를 봐도 이탈리아에 그럴 여력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음. 독후감이 너무 길어지는군. 요점만 말하자.

  이탈리아의 실질 통치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건 에티오피아 전역, 특히 북부지방을 근거로 하는 무장한 지방세력과 흩어진 정부군들이 꾸준히 국지적 게릴라전을 활발하게 전개해서 주요 대도시를 제외하고 이탈리아가 통치할 수 있는 지역이 거의 없었다. 1936년에 전쟁이 끝나자마자 베니토 무솔리니는 스페인 내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고, 불과 3년 후에 있을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흉흉한 유럽 분위기에서 에티오피아에 전념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황제가 도망가고 없는데 저항군이 누굴 의지해 전투를 벌일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지. 그리하여 작품 중에서 지방 군벌인 키다네는 하녀이자 주인공이며 자신이 강간한 적이 있는 어린 처녀 히루트의 제안으로 ‘없음’이라는 뜻의 ‘미님’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병사들이 께름칙하게 생각하는 (일종의)나팔수가 황제와 우연히 거의 비슷한 외모를 지니고 있어서 하일레 셀라시에를 참칭, 황제 역할을 대행해 전장에 등장해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게 한다. 손톱에 새까맣게 때가 끼고, 맨발로 지내 굳은 발꿈치가 쩍쩍 갈라졌으며, 구멍 난 것을 꿰매지도 않은 남루한 옷을 입은 농부에게 황제의 복장을 입혀 그림자 왕으로 용맹한 에티오피아 민병들 앞에 나타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왕, 황제의 옷을 입은 농부 미님이 주인공이 아니고 하녀 히루트가 주인공인 것은 작가 마자 멩기스테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그러했듯이,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도 여성들이 직접 총을 들고 전투에 임했다는 것을 세계의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1930년대의 에티오피아는 반half봉건적 사회였던 모양이다. 히루트의 아버지 파실은 1차 전쟁에 뛰어들어 이탈리아 병사 다섯 명을 죽였다. 당시에 사용하던 구식 우지그라 소총을 아들이 있었으면 아들에게 물려줄 텐데 무남독녀 딸 히루트만 있어 딸에게 물려주면서 총기 사용법과 죽음을 위한 장비의 엄혹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가르쳐준다. 지역 군벌 체콜레 역시 1차 전쟁에 참여해 혁혁한 전공을 세운 바 있으며 작중 중요한 등장인물인 키다네의 아버지로, 젊은 시절에 주인공 히루트의 엄마이자 파실의 아내가 될 젊은 게테이를 강간한 적이 있었다. 게테이는 키다네보다 몇 살 위이지만 곧잘 키다네를 업어 키워 둘의 사이는 매우 가까웠다. 이후 세월이 흘러 파실과 게테이가 비슷한 시기에 죽자, 키다네는 게테이의 딸 히루트를 데려와 하녀로 고용한다. 근데 말이 하녀이지 거의 노예라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서 주목. 이제 곧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이 발발해 남자들의 숫자가 대폭 줄어들자 여성들도 실제 전투에 참여해서 싸웠다는 어떤 의미에서 페미니즘 적 사실. 이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국을 위해 외세와 싸운 여성. 그리고? 1930년대 중반이며 황제는 에티오피아 땅이 아니라 런던의 온천 휴양도시 바스에서 최고급 오디오 시스템으로 침략국 이탈리아의 국가대표 작곡가 주제페 베르디의 작품 <아이다>를 듣고 있다. 에티오피아의 패배와 왕 아모나스로의 죽음, 그리고 적국 이집트의 장군을 사랑해 자진해서 그와 함께 죽음을 선택하는 에티오피아 공주 이야기를. 그러면 작가는 패전한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와 기원전 에티오피아의 패전한 왕 아모나스로와 어떻게 관련을 맺어줄까를 궁리하는 대신, 제정 철폐 등의 근대적 정체, 이를 위한 여성의 노력을 발견하기 위해 더 힘을 쏟아야 했지 않았을까? 물론 작품의 프롤로그, 1974년 아디스아바바 철도역에서 여성 혁명군의 모습이 잠깐 등장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주인공이 하녀 히루트와 진정한 주인공인 민병대원 모두는 사실 군벌 키다네와 그의 아내 아스테르의 노예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작품이 끝날 때까지 오직 대 이탈리아 항전에만 열을 올리고, 히루트는 자신을 강간한 키다네에 대한 복수의지에 불탈 뿐, 자신들의 계급과 해방, 도망간 황제의 폐위 같은 건 꿈도 꾸지 않는다. 끊어진 목걸이처럼 히루트의 목에서 어깨까지 이어지는 흉한 상처가 집안 안주인 아스테르가 휘두른 말채찍에 의한 것이었음에도. 아스테르는 히루트의 손에 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적군이라서가 아니라 적대적인 계급의 잔인한 분자라서. 아, 물론 아스테르의 경우엔 저자와 마찬가지로 여성이기 때문에 각성을 하기는 한다.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히루트와 함께 이탈리아 군의 포로가 된 아스테르가 적군 병사들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자 우리의 주인공 히루트와 작가 마자 멩기스테는 이렇게 되뇐다.


  “저 사람에게 가게 해줘요. / 왜냐하면 세상에는 평생 생채기 없이 살아온 이들에게 주어져야 하는 자비가 있기 때문이다. 유서 깊은 역사와 귀족의 혈통을 지니고 태어난 이들을 위한 암묵적인 규칙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온전하게 유지되기 위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 있고, 상처가 많은 소녀들은 그 상처를 만든 이들 속에서 제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p.478~479)


  이거 개소리 맞지? 이런 작품이 부커상 롱 리스트도 아니고 숏 리스트까지 올랐다는 건 뭐지? 혹시 국적이 에티오피아-미국 이중국적, 이 가운데서도 특히 에티오피아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별 걸 다 의심하게 만든다.

  정말 히루트가 전투에 총 들고 나가서 이탈리아 병사를 죽이느냐고? 그렇다. 치열한 전투 도중에 불쌍하게도 급똥이 와 야전 변소에서 아랫도리 훌렁 까고 쭈그려 앉은 장동건 같은 외모의 이탈리아 청년을 총 쏴서 죽인다. 그러고는 넋이 빠져 전장을 마구 달리다가 그대로 적군한테 포로로 잡히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책은 재미있다. 그래서 6백쪽을 훌쩍 넘는 장편 소설이지만 생각만큼 오래 걸리지 않는 착한 책이다. 시간 죽이기에 좋지만 생각 많은 사람들한테는 별로 영양가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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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7-07 18: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티오피아가 궁금해서 이 책 읽을까했는데 의욕 꺾입니다. ^^

Falstaff 2025-07-08 05:54   좋아요 0 | URL
읏, 우짜 댓글을 못봤을까요. ㅜㅜ
근현대 에티오피아를 알려면 이 책, 괜찮습니다. 등장하는 사건을 위키피디아 참고 하시면서 읽으시면, 제 경우로 말씀드립자면, 궁금한 게 많이 해소되더라고요. ^^

꼬마요정 2025-07-08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도 진즉에 사두고 곧 읽을 예정입니다. 부커상 책들 요즘 재밌어서 광고에 혹해서 샀는데ㅜㅜ 그래도 재밌다니 열심히 읽고 같이 화 내면 좋겠어요 ㅎㅎㅎ

Falstaff 2025-07-08 16:55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읽어보셔야지요, 내돈내산 하셨는데요!
아무리 부커상 최종심 작품이라도 광고가 과했던 건 아닌지 뭐 그렇습니다만 후딱 시간 죽이기엔 좋습니다.
 
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장소미 옮김 / 녹색광선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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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처음 나왔을 때 한눈에 척 보고 희망도서 신청을 하려다가 아무래도 너무 올드 패션인 거 같아서 참았었다. 근데 책방 독자 서평도 괜찮고, 마침 도서관 서가에도 꽂혀 있기에 망설이지 않고 읽었다. 그리고 조금 고민.


  책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시점. 전쟁 끝난 날이 언제라고? 그래. 1918년 11월 11일, 빼빼로 데이. 책의 초판이 1920년이니까 실제로 작품의 시간적 공간은 1918년 겨울부터 19년까지라고 보아야 마땅하다. 이래서 고민이 생긴다. 다만 이건 전적으로 잘못된 세월에 청춘을 소비한 내 경우에 국한하는 것이니까 다른 독자들과는 관계가 없다는 점을 말해야겠다. 무슨 고민인가 하면:


  작품의 주인공은 49세의 과부 레오니 롱발. 애칭 레아 롱발. 경제적으로 풍요로웠던 시절에 행복한 사교계 이력을 끝마쳤다. 질서와 아름다운 속옷과 레이스 달린 비단 잠옷, 그리고 잘 숙성된 와인을 곁들인 공들인 요리를 좋아한다. 여사님의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하우스와인은 파리의 극히 제한된 계층만 홀짝거릴 수 있는 명품으로 알려질 정도. 눈치로 보아하니 19세기까지 토지를 매개로 한 부르주아, 즉 영주 정도의 계급이었다가 세월이 흘러 부동산을 정리하고 대부분 채권과 증권에 투자하여 배당금과 이자, 그리고 증권 가격 상승에 따른 차액으로 전혀 노동할 필요 없는 최고위층 부르주아이다.

  여사님의 애인은 벌써 6년 동안 연애를 하고 있는데 지금 나이가 스물넷. 작품 뒤로 가면 여사님은 쉰, ‘셰리’ 즉 귀염둥이, 자기, 여보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셰리’라고 불리는 당대 최고 미남 프레드 플루도 플루 집안의 외동아들인데 이 집도 애초에 부자가 아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최고 중의 최고 부르주아 집안이다. 심지어 자작이 플루 집안의 식객으로 머물고 남작도 이 사람들한테 껌벅 죽는 정도. 이 프레드, 즉 셰리가 남자 주인공을 맡았다. 셰리는 생긴 건 번드르르 하다. 어려서부터 가정부들이 돌려가며 키워 당연히 응석받이로 자라 이날 이때까지 세상만사 안하무인, 버르장머리 없는 청년으로 살았다. 일찍이 열일곱 살 때부터 금리생활자로 등극했는데, 공부를 못해 바칼로레아에 합격하지는 못했어도 셈 머리가 대단해서 마필, 보석, 자동차 등을 수집하고 두둑한 용돈을 써 댔지만 두 명의 자가용 운전수들의 장부를 꼼꼼히 살펴 운행거리와 연료비를 비교하며 닦달을 하는 등 좀스러운 부자의 면모를 과시했다.


  전쟁 끝나고 바로 직후의 파리를 무대로 했으면서도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의 <셰리>에서는 시민들 가운데 아주, 아주 극소수만 차지하는 부르주아 계급의 사랑만 열나 묘사하고 있다. 작품은 레아의 침실에서 벌거벗은 셰리가 아침부터 응석부리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이어서 며칠 안 지나 결혼식 전날 다시 레아의 침실에 들르고, 결혼을 하고, 마흔아홉 살 레아 롱발 여사는 이에 상심해 남부 유럽 각지로 여행을 떠나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셰리는 신혼생활에 당연히 있는 불편함과 레아를 향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앞에서 말한 가문의 식객인 자작이 머무는 호텔로 가서 몇 달 동안 방황하고, 뭐 이렇고 저렇고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만 한다. 그러니까 일부 독자들이 주장하는 문학 속의 삶의 모습을 완전히 증발시킨 작품이어서 읽으면서 상당히 불편했다는 말이다.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이런 작품을 읽을 때면 꼭 이렇게 생각을 해야 한다고 굳세게 배워서 그렇다. 카뮈가 쓴 <이방인>을 감동 깊게 읽었다는 것이 중요 죄목이었던 시절에 재수 없이 젊은 시절을 보낸 일단의 무리들은 대강 그러할 걸? 정오의 태양이 눈부시게 빛난다는 이유로 알제리의 식민지 청년을 권총을 쏴서 죽인다? 그걸 감명 깊게 읽었다고? 그러고도 네가 사람이냐? 이런 시절이었다. 나도 하필이면 딱 그때, 지랄났다고 딱 그때 청춘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말한 사람이 누구였느냐 하면,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쓴 백범사상연구소 소장이자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쓴 백기완 선생. 지금 말은 이렇게 해도 당시 청년한테 이런 충고가 얼마나 새롭고, 획기적이고, 따당, 쇠망치로 대갈빡 한 대 맞은 것 같았는지. 눈이 다 번쩍 띄어지더라니까. 92년이던가, 대통령 후보로 나왔을 때 이 양반한테 투표까지 했다는 거 아냐.

  이제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고, 세월도 알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금 알 거 같아서, 이까짓 소설책 한 권 읽으면서 구태여 그리 생각하지 않는 편이 여러모로 바람직하다는 건 충분히 이해를 하는 시절이 왔건만, 콜레트의 <셰리>는 사실 너무하기는 너무 했다. 일반 시민들은 전후 망가진 경제, 사회 속에서 하루하루 지내기가 무지하게 팍팍한 시절이었을 텐데, 등장인물은 부르주아, 귀족, 사교계 늙은 퇴물들, 일년 365일 로얄스위트룸에서 묵으며 유럽, 아메리카를 여행할 수 있는 이야기만 한다. 아주 넌덜이가 나더라고.

  그거 보면 공화국 프랑스도 참 오른쪽으로 멀리 간 거 같다. 콜레트가 1954년에 죽었을 때 프랑스 역사상 여자로는 처음으로 국장을 치뤄주었다잖아? 어떻게 봐도 자유, 평등, 박애하고는 거리가 좀 있는 양반 같은데 말씀이야.



  * 3별 반 정도가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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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2025-07-04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팔스타프님.
저같은 소인은 모두가 열광하는 책을 읽고 나서 아무도 안보는 독후감을 쓸 때조차 살짝 눈치를 보게 됩니다. 내가 멍청이라 이렇게 느낀 거 아냐? 하는 생각도 들고요 ㅋㅋㅋ
하여튼 드리고 싶은 말씀은 서재의 다른 분들과 다른 이런 견해를 써주실 때마다 참 감사할 따름입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팔스타프님처럼 읽진 못하겠지만, 나도 눈치보지 말고 내 의견 그대로 읽고 써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는 글이네요.
저희 애기들은 한국 나이로 5살이 되니 많이 건강해 졌어요. 결석이 잦던 재작년 작년과 비교하면 괄목상대할 정도예요. 저는 드디어 얼굴에 8자 주름이 생기기 시작했고요. 운좋게 흰머리는 안나네요. 이제 곧이겠지요.
가족들 모두 더운 여름 잘 나시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좋은 리뷰 감사드려요. 건강하세요!

Falstaff 2025-07-04 19:14   좋아요 1 | URL
오랜만입니다 케이 님. 이렇게 삐딱한 독후감을 올려야 등장하시네요. ㅋㅋㅋㅋ (농담인 거 아시지요?)
오, 아이들이 벌써 다섯 살이군요. 애 많이 쓰셨어요. 8자 주름도 다 훈장이겠거니 생각하시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시려나요?
케이 님도 건강하게 여름 잘 보내셔요. 집안에 두루 행운이 가득.... 아오, 이런 추상명사 말고요, 올 여름엔 그저 로또 한 방 꽝! 맞으시기 바랍니다. ㅎㅎ

반유행열반인 2025-07-04 21: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소인 심지어 새 책으로 이거 구매해놨는뎁쇼...읽기 싫다...

Falstaff 2025-07-04 22:24   좋아요 1 | URL
반쌤도 참. 걍 읽으셔요. 쇤네야 주둥이만 깐 찐 아마추어인뎁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