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창비시선 367
민영 지음 / 창비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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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년 갑술생 개띠 시인 민영이 여든 살 때 출간한 시집. 근데 이이가 환갑 넘어 찍은 시집 《유사를 바라보며》 와 별로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해가 바뀌었으니 벌써 이 시인이 어느새 망백望百. 정말 세월이 겁난다. 외로울 땐 바람에 삐걱이는 사립을 닫듯 눈을 감겠다는 <단장斷章>을 외웠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반 세기 가까운 시간이 휙, 지나쳐버렸으니, 그런데도 아직 시를 쓰고 있으니 참 무서운 세월이고 무서운 시인이다. 시들은 2007년, 그의 나이 일흔다섯부터 여든까지, 칠십 대 후반의 시작詩作 모음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이야기는 《유사를 바라보며》와 많이 다르지 않다. 저 아득한 유년시대를 보낸 만주 간도의 화룡현, 그곳에서 함께 놀던 동무들, 여자아이들, 아직도 장백산, 즉 백두산 밑으로 유연히 흐르는 해란강변 옆에 잠든 아버지. 그리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지워지지 않는 화인火印인 어머니. 더 어린 시절 까뭇한 기억 속의 고향인 철원까지. 사내 나이 예순이나 여든이나 거기서 거기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십 년이 지날 때까지 여전히 병든 아내의 발톱을 깎고, 저 만주 간도에서 함부로 아버지의 따귀를 갈기던 일본 순사에게 분노하고, 그곳에서 늙어갈 동무들의 주름진 얼굴을 상상한다.

  그러나 노인의 시를 읽는 일은 다른 의미에서 슬프다. 이이만 그런 것도 아니다. 시인이 나이가 들면 주변의 사소한 것에도 다 정령이 깃드나 보다. 저문 강에서 삽을 씻었던 정희성도, 신춘문예 삼관왕의 문학천재 출신 오탁번도, 한 바탕 농무를 추어 창비 시선 1번을 기록한 신경림도, 세월의 부드러움, 시간이 쓰다듬은 일상 구석의 누추하고 가련한 것들, 해 저물면 도로를 굴러다니는 낙엽 속에서도 노래를 찾는가 보다. 이런 시들을 새삼 소개하고 싶지는 않다.


​  칠십 대 후반에 쓴 민영의 시집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할 곳이 있다》에서 제일 마음을 끈 것은 본문 속에 든 것이 아니라 시집에 들어가기 전에 읽으라는, <서시序詩>였다. 전문을 소개한다.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꽃도 철 따라 피지 않으리라

  그리고 구름도

  嶺 넘어 오지는 않으리라


​  나 혼자 남으리라

  남아서 깊은 산 산새처럼

  노래를 부르리라

  긴 밤을 새워 편지를 쓰리라


  산마루(嶺)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무엇이 있기에 다시는 높은 고개 넘어 이쪽으로 넘어오지 않겠다는 것일까. 앞 연에는 주어가 없다. 누가, 무엇이 오지 않겠다고 했는지 밝히지 않았다. 시는 독자마다 다 개별적인 해석이 가능한 영역이다. 나는 그것을 시인, 민영 자신이라고 보고, 영 넘어 있는 것은 피안, 피안의 세계, 이곳인 사바의 반대편에 있는 깨달음의 장소인 죽음의 자리라고 본다. 그곳엔 꽃도 철 따라 피지 않는다는 건, 언제나 피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철, 계절이란 것이 아예 없다는 뜻일 수도 있을 터. 저 피안 너머 있는 구름 조차도 다시는 삶과 죽음의 산마루를 넘지 않는 곳에 시인은 혼자 남겠다는 다음 연. 그곳에서 노래를, 산새처럼 노래를 부르고 긴 긴 편지를 쓰겠단다. 그러니 산마루 너머 있는 것은 피안일 수도 있고 시의 세계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할 곳이 있다》를 시인은 자신의 마지막 시집, 노래책이라고 여긴 것은 아닐까?

  아니나 달라? 제1의 목차에 둔 시에서 그는 저 오래 전에 아름다웠지만 이제는 어디로 가버린 젊은 것들을 찾고 있다.


  이 가을에


  가을이 깊다.

  이역만리 먼 곳에서 날아온 새들

  갈대밭에 내려앉아 지친 몸을 쉬고,

  이슬에 젖은 연분홍 꽃잎들이

  불어오는 바람에 깃을 여민다.


​  생각해보아라

  얼마나 모진 세월을 살아왔는지,

  이제 너에게 남겨진 일은

  그 거칠고 사나운 역사 속에서

  말없이 떠난 이들을 추념하는 일이다.


  아, 모두 어디로 갔단 말이냐

  끝까지 올곧고 아름다웠던 젊은이들,

  시월 상달에 이 눈부신

  서릿발 치는 푸른 날빛 속에서

  어디로 가야 만나볼 수 있단 말이냐!  (전문)


  늙은 시인을 기어이 영탄하게 만든 끝까지 올곧고 아름다웠던 청년들은? 다 죽었다는 말이다. 진짜 숨을 거두었다고?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건 독자의 마음에 맡긴다. 변절도 죽음과 같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는, 한 때는 올곧고 아름다웠던 젊은이들의 “살아있는 시체들”을 숱하게 보고 있지 아니한가. 그저 시인은 거칠고 사나운 역사 속에서 말없이 떠난, “말없이 떠난 젊은이들”을, 그들 만을 추념할 뿐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는 “살아있는 시체”를 위한 공간은 없다. 늙은 시인에게 주어진 일은 오직 하나, 그들을 추념하는 것이며, 어느새 운동성은 휘발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노쇠, 닳음, 누추한 기억, 이 모든 것들을 통틀어 “추억”이라고 부른다. 노 시인은 그것을 먹고 사는구나.

  여든이 가까운 노인에게도 지워지지 않는 그리움의 단어는 어머니. 어느 날 밤, 이 어머니가 시인의 꿈에 나왔다.


  꿈에 본 어머니께


  어머니,

  제가 사는 이 세상

  왜 이렇게 눈부신가요?


​  새들은 새들끼리

  굴참나무 숲에서 지저귀고,

  하늘에는 새털구름

  강물처럼 흘러갑니다.


​  어머니 계신 그 세상에도

  보리이삭 파랗게 패었습니까?

  저 앞 새밋들에

  실개천 한 오리 반짝이며 흘러가고,

  자운영 핀 밭둑 위에

  노랑나비 춤추며 날아갑니다.  (전문)


  그림 하나 본다. 당연히 풍경화. 들에 한 오리, 2킬로미터는 족히 반짝이면서 흘러가는 실개천의 밭둑엔 자운영이 피어 있고, 자운영이 있으니 노랑나비도 춤을 춘다. 봄이 와서 세상은 이리 눈부신데 어머니 계신 산마루 넘어도 시인이 즐기는 봄 속의 들판 같으냐는, 그러기를 바란다는 늙은 아들의 시. 전형적인 노시인의 시다. 언덕마루에 올랐을까? 아니면 그것도 쉽지 않아 TV 프로 <여섯시 내고향>을 통해 푸릇 보리이삭 팬 들을 보았을까? 아무러면 어떠랴. 시집에 이 비슷한 시들이 많다. 늙은 시인들이 내는 시집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나도 이젠 시인 민영과 작별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모두 아홉 권의 시집 가운데 세 권을 읽었고 가지고 있으며 두 편의 시를 외운다. 그러면 됐다. 더 바라 무엇 하겠는가. 민영에게 고맙다. 덕분에 반세기 가까운 세월 동안 가끔 쓴 소주 한 잔에 안주 삼아 당신의 시를 읊었고 앞으로도 자주는 아니지만 또한 그럴 터이니. 당신도 나 같은 독자가 있는 것을 조금은 위안 삼을 수 있으리라. 잘 가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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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와 생명의 불 - 살만 루슈디 장편소설 문학동네 청소년 15
살만 루슈디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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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음으로 해서 우리말로 번역해 나온 살만 루슈디의 픽션 단행본은 다 읽었다. 자서전 한 권이 또 있지만 자서전은 내 취향이 아니어서 영 손에 안 잡힌다. 책값이 오지게 비싸기도 하고.


​  <루카와 생명의 불>은 동화라고 하기에도, 소설이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한,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를 대상으로 한 소위 ‘청소년 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다. 중학교에만 올라가면 당연히 읽어야 하는 외국소설로 <제인 에어>나 <전원교향악> 같은 걸 꼽으니 암만해도 이 책을 중학생에게 권하기는 조금 미안할 정도다. 역시 초등학교 고학년이 좋겠다.

  루슈디는 1988년에 출간한 <악마의 시> 때문에 1989년에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로부터 ‘파트와’라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게 이 파트와는 절대적인 명령 비슷하게 받아들여진다고 들었다. 이어서 그의 목숨에 백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붙었으니 루슈디는 세상의 어느 외진 곳에서 자신의 소재를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알게 하고, 특별한 훈련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받으며 하루, 한 주, 한 달을 연명해야 했을 것이다. 물론 열 살 먹은 아들 자파르와 작년에 결혼한 두번째 아내 마리엔 역시 루슈디와 함께 거의 구금상태에 달하는 보호조치를 받아야 했다. 안가에서 지루한 생활을 보내면서 친구 없이 소년시절을 보내야 하는 아들 자파르를 보기가 딱해 루슈디는 십대 초반을 위한 청소년 소설 <하룬과 이야기 바다>를 써서 자파르가 열두 살이던 1990년에 출간한다.

  세월이 흘러 1998년에 모함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은 루슈디에게 내려졌던 파트와 선고를 취소해서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생명의 위협은 없어졌지만 어려서부터 무슬림 환경에서 자란 루슈디는 파트와 취소 결정에도 불구하고 마음 놓고 생활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조심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하여간 <하룬과 이야기 바다>를 출간하고 20년이 지난 2010년, 루슈디는, 힘도 좋지, 두번째 아내 마리엔과 두번째 이혼을 하고 둘 사이에 난 열두 살짜리 둘째 아들 밀란을 위해 또 한 편의 청소년소설을 써 출간하니 바로 <루카와 생명의 불>이다. 이 책이 나올 때 둘째 밀란은 열두 살, 첫째 자파르가 서른 살. 열여덟 살 터울이고, 당연히 이복 형제다. <루카와 생명의 불>에서도 루카보다 열여덟 살이 더 많은 형 하룬이 등장한다. 이야기 폐색증에 걸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오래 전에 지구의 두번째 달에 가서 큰 모험을 한 적이 있는 바로 그 하룬이 맞다. 이 나이든 형은 열두 살짜리 어린 동생을 바라보더니 씽긋 웃으면서 “너도 이제 모험을 떠날 때가 됐다.” 라든지, “이럴 줄 알았어. 너도 우리 집안 사람으로 마법의 세계로 들어갈 나이가 됐어.”라고 동생의 모험을 부추기는데, 실제 생활에선 형이 첫째 엄마, 둘째가 둘째 엄마, 그리고 지금은 셋째 엄마, 몇 년 있다가 넷째 엄마하고 사는 반면, 소설에선 아빠 라시드 칼리파가 오직 조강지처인 ‘소라야’ 엄마하고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았다는 거다.

  다양한 생각이 펼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임을 감안하시어, 내 의견과 다른 분께는 미리 양해를 당부하건대, 나는 2022년 노벨 문학상을 살만 루슈디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흔을 훌쩍 넘은 노인네가 당연히 글도 무지 재미나게 쓰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으로 무장을 한 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받을 만한데다가 올해 8월에 테러를 당해 팔의 신경 절단, 간 손상, 한쪽 눈 실명이라는 험한 꼴을 당했으니 이왕 밥 딜런도 받고, 가즈오 이시구로도 받고, 화장실, W.C, 즉 윈스턴 처칠도 받았으며 심지어 아돌프 히틀러도 수상 대상자였던 그까짓 노벨 문학상 하나 주면 안 되겠나 했었는데 아니, 아니 에르노라니,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도 않았다. 뭐 그랬다. 못 받을 줄 알았고 아마 앞으로도 못 받겠지만 진짜 받았으면 싶었던 작가는 메릴린 로빈슨이었고.


​  힌두스탄 어로 문자라는 뜻을 가진 ‘알리프바이’ 나라가 있었는데 이 나라에 또 ‘카하니’라는 도시가 있단다. 루카가 사는 곳이다. 루카의 아버지 라시드 칼리파 씨는 이야기꾼으로 이름이 난 사람으로 웬일인지 루슈디는 칼리파 씨의 직업을 특정하지 않는다. 돈을 받고 이야기해주는 만담가나 스탠딩 코미디언이라기엔 힌두스탄이라는 지역과, 이미 21세기도 10년이나 지난 시절이라 컴퓨터 게임이 일상이 된 시대에 아직도 자기집을 보유하고 넉넉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안정된 직업이라고 보기 힘들기는 한데, 주요 독자층이 아직 먹고 사는 문제에 깊은 생각이 없는 십대 초반의 아동일 터에 이이의 직업이 뭐냐, 하고 야박하게 따지진 않겠다. 하여간 칼리파 씨는 20년 전에 큰 아들 하룬과 함께 이야기 바다로 어려운 모험길에 나선 적이 있었다. 이이가 벼락을 맞는다. 카하니에 “거대한 불고리” 서커스단이 들어왔다. 이 서커스단에는 주로 길들인 야생동물의 멋진 쇼로 유명하지만 동물들 꼬락서니 하나는 정말 가관이었다. 암사자는 충치, 암호랑이는 눈이 멀었고, 코끼리는 굶주려 뼈가 앙상하고 다른 동물들도 지독하게 비참한 상태였다.

  어느덧 62세가 된 칼리파 씨가 학교를 마친 막둥이 루카의 손을 잡고 서커스 단 옆을 지나고 있을 때, 아버지는 동물들을 보더니, 서커스가 동물들에게 못할 짓이라면서 자신은 서커스를 보러 가지 않겠다고 결정을 한다. 루카도 동물들을 보니까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덩치가 크고 무서운데다가 성미가 급하고 화를 잘 내며 좀처럼 웃지 않는 ‘불꽃단장’ 아아그를 향하여 이렇게 저주를 퍼붓는다.


​  “동물들이 당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불고리가 당신 천막을 활활 태워 없애기를!”


​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왜 그거 있지 않은가, 학생들의 종알대는 떠드는 소리가 갑자기 한 순간에 싹 사라지며 조용해지는 찰라, 바로 이 비슷한 마술적 침묵의 짧은 시간이 발생했으며, 루카의 말이 널리 퍼져 하늘을 채우고 눈에 보이지 않는 운명의 여신들의 집에까지 도달한 것 같았는데, 하여튼 루카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집으로 가버렸다. 하지만 그날 공연에 어떤 동물도 조련사와 단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으며, 서커스단을 몽땅 뛰쳐나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져버렸고, 밤에 천막에서 불이 났다는 거다. 동물 중에서 ‘멍멍이’라는 곰과 ‘곰돌이’라는 이름의 진갈색 래브라도 종 개가 루카의 집에 나타나 이후에 루카의 가장 충직한 보호자 역할을 한다.

  하지만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에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카하니 시 위의 하늘, 실실라 강과 그 너머 바다 위에까지 별들이 유난히 찬란히 빛이 나서 도시에서도 은하수 흐르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던 날, 루카의 아버지 칼리파 씨가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든다. 이튿날이 밝아도, 사흘이 지나도. 의사들도 원인을 알지 못하고, 그저 누워 있다가 근력이 빠지면 세상을 뜰 수밖에 없다는 소견만 밝히는 마법의 병환.

  마법의 세계에는 천상에 지혜의 호수가 있고, 호수의 물은 ‘시대의 새벽빛’을 받으며 ‘시간의 강’으로 흘러 ‘지혜의 호수’를 이룬다. 지혜의 호수는 ‘지식의 산’ 그늘에 있으며 이 산꼭대기에서는 ‘생명의 불’이 타오르고 있단다. 이제 아버지 칼리파, 위대한 이야기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단 한 가지, 지식의 산 위에 타고 있는 생명의 불을 훔쳐와 그걸 아버지의 벌어진 입에 넣는 것뿐. 아무도 깨울 수 없는 아버지를 위하여 루카는 ‘멍멍이’ 곰과 ‘곰돌이’ 개를 데리고 이미 생명이 다한 신들의 고향인 마법의 땅으로 길고 험한 모험의 길을 떠난다. 연말연시에 이제 청소년기에 돌입하려는 소년들을 위한 좋은 읽을 거리를 소개하는 포스트로 2022년을 마감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소년 만세! 그대들에게 21세기의 축복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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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2-31 0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필독서하니까 친구생각나요. 중학교 입학전에 필독서라고 적힌 갱지를 받았는데 , 그 중에 갈매기 조나단? 읽고 이게 뭐냐!! 하며 그때부터 책과 담 쌓았다고 ㅋㅋ 전 아이 초등고학년 추천도서에 새의 선물 있어서 놀랐던 기억납니다. 주인공이 아이라지만 ㅠㅠ 그러고보니 악마의 시도 읽어야하네요. ~ 골드문트님 건강하시고 새해 복도 마니마니 받으세요. *^^*

Falstaff 2022-12-31 08:52   좋아요 1 | URL
ㅎㅎㅎ 갈매기 조나단과 책 손절. 굉장히 익숙한 장면입니다. 고딩 1학년 때 친구가 그거 읽었다고, 인생책이라고 을매나, ˝티나는 은근함˝으로 자랑을 하던지 말입니다.
새의 선물이 초딩 고학년 추천도서란 건, 아이고, 책 골랐던 교사들이 읽어보지도 않고 세상에나...
루슈디는... 한밤의 아이들 읽으셨어요? 저는 그게 악마의 시보다 더 좋았는데요. 광대 샬리마르, 무어의 마지막 한숨, 피렌체의 여 마법사, 하여간 루슈디는 다 좋더라고요.
리릭 소프라노 님, 목소리 억양 다 예쁘시던데 ㅋㅋㅋㅋ 새해엔 복이라기보다 구체적으로 연초에 로또 한 번 딱 붙어버리기를 앙망합니다!!!

Falstaff 2022-12-31 09:01   좋아요 3 | URL
아, 그리고요, 올해 제가 제일 맛있고, 멋있게 읽은 책이 바로 보부아르의 <레 망다랭>이랍니다. 올해에는 Top 10을 꼽지 못할 정도로밖에 책을 읽지 않아 올해의 픽 같은 페이퍼를 쓰지 못했는데요, 만일 썼다 하면 <레 망다랭>을 올해의 책으로 꼽았을 거 같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읽어보셔도 좋을 거 같습니다. 그럼 확실하게 로또 붙으실 겁니다. ^^;;;

stella.K 2022-12-31 12:32   좋아요 2 | URL
앗, 저는 골드문트님 올해의 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안하실건가요?
전 문트님 올해의 픽 <나는 고백한다>일 줄 알았더니
<레 망다랭>이군요. 아, 그 책은 작년에 읽으셨나요? ㅎㅎ
어쨌든 올핸 이미 많은 알라디너들이 올해의 픽을했고
다음 달에 픽 해주세요.ㅠ

유명한 작가들은 노벨문학상 안 줍니다.
그리 말씀하시면 쿤데라니, 하루키도 받아야 할 텐데 꼼짝도 안하잖아요.
저도 아니, 아니 에르노 왜...? 멍 때리긴 했어요.
메릴린 로빈슨 누군가 했더니 제가 오래 전에 <길라아드>를 읽었더라구요.
내 스탈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점수를 줬더라구요.
리뷰에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아서 아직도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아마도 문트님이 리뷰 쓰신다면 1위 자리를 내놔야겠죠.
전 오래 했으니 문트님의 리뷰를 기다립니다.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22-12-31 14:12   좋아요 2 | URL
으아, 감격입니다. 제 선택을 기다리시는 분이 계셨다니요. ㅜㅜ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나는 고백한다>는 작년 베스트였습니다. ^^
올해에는 작년의 반 정도밖에 안 읽었습니다. 연초에 퇴직을 하고 백수 생활에 적응하느라 나름대로 몸살을 좀 앓았던 거 같습니다.
발자크의 <잃어버린 환상>,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이미 고전이라 제가 새삼스레 픽이니 뭐니 하면 오히려 실례일 거 같고요, 좋았던 작품은 <레 망다랭> 외에
비트키예비치의 <탐욕>과 브루노 슐츠의 <브루노 슐츠 작품집> 이건 상당히 비슷해서 한 권으로 쳐도 좋을 거 같습니다.
에인 랜드, <파운틴 헤드>
포이히트방어, <톨레도의 유대여인>
베데킨트, <룰루>
서보 머그더, <프레스코>
루슈디, <피렌체의 여 마법사>
이 정도랍니다.
<불만의 집>도 좋았지만 리스트에 올릴 정도는 아니었고요, 이거 말고도 좀 섭섭한 작품도 몇 있었습니다. 폴란드 작가들의 책 두 권은 리스트에 올리긴 했으나 제가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별점은 둘 다 네 개를 주었답니다. ㅎㅎㅎ

로빈슨은 글을 참 아리게 써요. <길리아드>보다 저는 <하우스키핑>과 <홈>을 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른 책도 얼른 번역해 나오기 바라는데 도무지 그럴 거 같지 않군요.
별.K 님도 새해 좋은 일만 생기기 바랍니다!!

유부만두 2022-12-31 09: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서전 재밌는데요~~~~ 난 읽었는데요~~~

Falstaff 2022-12-31 09:51   좋아요 2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ㅎ 고맙습니다. 곧바로 도서관 관심도서로 찜했습니다!
분명 복 받으실 겁니다. ^^

잠자냥 2022-12-31 09: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화장실 처칠!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올해 그래도 루슈디 줄줄 알았어요. 그래도 황천 갈 뻔했는데 점수 좀 더 주지…. ㅋ

Falstaff 2022-12-31 09:54   좋아요 3 | URL
그죠? 정말 아슬아슬하게 황천 바로 옆길로 빗겨 서서 말입죠. 상 한 번 주지 ㅋㅋ
W.C 윈스턴 처칠, 워싱턴 칼리지, 그리고.... ㅋㅋㅋㅋ ‘워매 씨바......ㄹ‘

페넬로페 2022-12-31 1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살만 루슈디의 작품을 아직 한 편도 읽지 않았는데 그의 픽션을 다 읽으신 골드문트님!
역시나~~
항상 읽고 싶은데 다른 책이 앞을 가려서요. ㅎㅎ
골드문트님!
올해도 열심히 책 읽으시고 글 올리시는 모습이 언제나 알라딘 서재를 빛나게 하십니다.
내년에도 잘 따라가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22-12-31 14:13   좋아요 2 | URL
아이고, 이렇게 좋은 말씀을 해주시고.....
페넬로페 님이야말로 서재를 반짝반짝하게 해주시지요! 내년에도 많이 배우겠습니다.
복 많이 받으셔요, 언제나, 늘..... ^^

coolcat329 2022-12-31 2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루슈디 책 한 권도 안 읽어봤지만 저도 노벨문학상을 루슈디가 받길 바랬었습니다.
내년엔 꼭 루슈디를 읽어보겠습니다.
골드문트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시길요~🎆

Falstaff 2022-12-31 20:38   좋아요 3 | URL
첫 작품을 잘 고르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밤의 아이들이나 광대 샬리마르, 피렌체의 여 마법사 쪽으로 하시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ㅎㅎㅎ
이 양반의 입담과 환상세계 같은 것하고 합이 맞지 않으면 의외로 낭패를 볼 수도 있을 거 같더라고요.
쿨캣님도 내년에 좋은 일만 펑펑, 불꽃처럼 작렬하기 바랍니다! 펑, 펑 퍼벙, 뻥!!!!! 하고요. ^^

coolcat329 2022-12-31 20:45   좋아요 3 | URL
네~한밤과 광대가 있습니다! 한밤으로 시작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독서괭 2023-01-01 0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살만 루슈디가 8월에 테러를 당했군요??! 어휴, 무섭네요. 메릴린 로빈슨 누군지 몰라서 찾아보고 왔습니다 ㅎ 레 망다랭이 골드문트님 올해의 책이라고요?? 그럼 담지 않을 수 없네요.
골드문트님 새해에도 솔직하고 재미난 리뷰 많이 써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Falstaff 2023-01-01 07:08   좋아요 3 | URL
레 망다랭 처음 백 페이지 정도는 ˝버티셔야˝ 합니다. 관문을 통과하시면 이후로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ㅎㅎㅎ 메릴린 로빈슨의 <하우스 키핑>이나 <홈>도 올해엔 좀 사료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ㅋㅋㅋ
독서괭님, 올해 ‘진짜 대박‘ 두 건 만 터지세요! ^^

그레이스 2023-01-02 2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 서재에서 살만 루슈디의 오래된 책을 자주 보네요.
2023년에도 책 소개 기다리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므세요~~

Falstaff 2023-01-03 05:45   좋아요 2 | URL
그레이스 님도 책 소개 자주 해주세요!
늘 건강하시고, 돈 많이 버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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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 - 교도관의 수기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세르게이 도블라토프 지음, 김현정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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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리 픽션을 쓴다고 해도, 작가가 가장 자신하는 건 당연히 자기가 직접 경험해본 것을 서술하는 일이리라. 세르게이 도블라토프는 레닌그라드에서 연극연출가로 활약하던 도나트 이사아코비치 매치크와 아르메니아인 연극배우 노라 세르게예브나 도블라탄 사이의 아들로, 2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피해 피난지로 떠났던 우랄산맥 남서쪽 바시코르토스탄 공화국의 수도 우파에서 1941년에 태어난다. 3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레닌그라드로 돌아온 가족은 훗날 도블라토프가 <여행가방>을 챙겨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줄곧 레닌그라드의 루빈시테인 거리에서 산다. ‘도블라토프’라는 이름은 아르메니아 출신 어머니의 성을 따른 것으로 “도블라탄”을 러시아 ‘남성형’으로 만들어, 확실한 기억은 아닌데 아마도 아버지가 일찍 숟가락을 놓는 바람에 어머니 쪽 성을 취했다고 알고 있다. 확실하지 않다. 작가 가운데 일찍 아버지 여윈 인간들이 어디 하나 둘이어야지.

  원래 작가가 될 싹수가 있는 인간들은 좀 일찍 조숙해지는 경향이 있어서(그래서 키가 안 큰다, 키가!), 열여덟 살에 대학에 들어가 하라는 공부는 하지도 않고 이듬해인 1960년, 열아홉 살의 도블라토프 역시 한 살 위의 아샤 페쿠롭스카야와 결혼한다. 아샤와의 결혼은 도블라토프가 거의 최초로 심각한 후회를 낳았긴 하지만, 도블라토프가 쉰 살도 되지 않아 죽은 반면에 아샤는 아직도 살아 있다. 오래 사는 게 이기는 거다(여성 만세!). 도블라토프는 대학을 3년 다니다가 퇴학당한다. 왜 그랬는지 눈에 훤하다. 인문대학 핀란드어 과라니, 공부는 하기 싫지, 첫 해는 연애하다 망쪼가 들었고, 혹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싶어서 선택한 결혼은 둘 다에게 인간이 인간에게 만들어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지옥을 선물하고 말았으니, 지가 배겨낼 수 있었으면 오히려 그게 기적이었을 거다. 당시 소비에트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로 대학 다니다 퇴학당하면 자기 생각과는 전혀 관계없이 징집을 당하는 순서가 남았는데 도블라토프는 하필이면 저기 멀고 먼 코미 공화국 구석에 있는, 정치범도 아니고 살인, 강도, 강간, 중대한 횡령, 사기 등의 흉악범을 주로 격리시키고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만든 수용소 교도관으로 근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코미 공화국? 나도 처음 듣는 지명이다. 구글 검색해보니 우랄 산맥 서쪽, 광활하긴 하지만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동유럽 벌판의 북동쪽으로 한도 없이 펼쳐진 평야지대. 공화국의 수도는 책에서도 자주 거론하고 있는 식티프카르. 도블라토프는 이곳에서 처음 9개월을 근무하고 나머지 2년 3개월은 레닌그라드 근교 수용소에서 복무하다 제대한다. 레닌그라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일찍이 도스토옙스키가 하도 파먹어 그곳 근교라고 해봐야 별 울림이 없으니 도블라토프는 연작 《수용소 – 교도관의 수기》에서, 경험은 레닌그라드 근교에 위치한 수용소의 것을 일부 차용했을지는 몰라도 지역 배경은 코미 공화국의 수용소로 국한했다. 작가가 쓰기에도, 독자가 읽기에도 보다 공감할 수 있을 선택이라 할 수 있겠다.


​  도블라토프의 《수용소 – 교도관의 수기》는 원래 열다섯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미국에서 출판을 위해 다시 정리하다가 대폭 수정해 작가가 출판사 편집장에게 보내는 열다섯 개의 편지와 단편 열 네 편을 엮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하여 열다섯 부part가 전부 개별적 제목을 갖고 있다. 작가가 편집자에게 보내는 첫 번째 편지에 그는 이십 년 전에 경험한 소비에트에서의 수용소 교도관 근무 기억과 관련한 작품을 쓴 적이 있고, 그것을 어렵사리 보존했는데, 이걸 책으로 출간하려니 수용소 문학은 솔제니친 이후에 조종을 울렸다고 인식하는 출판계 인심을 안타까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솔직히 나도 그렇다. 도스토옙스키, 솔제니친, 거기다가 저 멀리 가면 <부활>을 쓴 톨스토이에 의한 러시아/소비에트의 잡범, 정치범 수용소는 물론이거나와 이후 숱한 유대인, 집시, 공산주의자 제노사이드를 위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 수용소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듣고 읽어서 귀에 더깨가 지고 눈이 지물지물할 정도니까.

  그리하여 도블라토프는 항변한다. “솔제니친은 죄수였지만요, 저는 교도관이었습니다.”라고. 그러나 나는 이 다음에 하는 말에 더 주목했다.


​  “솔제니친에 따르면, 수용소는 지옥입니다. 제 생각에 지옥은 우리 자신(교도관)들인데 말이죠……”


​  정말? 정말이다. 수용소뿐만 아니고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지옥이다. 왜 그런고 하니 사람들 자신이 지옥이니까. 만일 도블라토프의 수용소 스케치가 진실에 가깝다면 우리나라의 일반 교도소를 포함한 국군 교도소, 지금은 경기도 장호원으로 이전했지만 흔히들 남한산성으로 부르던 곳에서 근무하는 교도관보다 훨씬 어려웠다고 믿는다. 워낙 오지에 홀로 떨어진 곳이라 먹는 것도, 입는 것도, 자는 것도 죄수와 별반 다를 것 없고, 심지어 사는 것마저 비슷해 인생의 막장에 다다른 죄수들에게 아주 가끔은 린치를 당할 수도 있으며, 여기에 위 아래 계급의 눈치까지 봐야 하는 신세가 수용소 교도관이었을 테니 말이다.

  즉 《수용소 – 교도관의 수기》에서 주로 등장하는 것은 교도관과 교도관 사이, 교도관과 죄수 사이의 갈등이며 잘못된 해소방법 정도로 읽기 전부터 어느 만큼은 짐작할 수 있어서 읽기에 뭐 그냥 그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다른 독자의 경우는 모르겠는데, 역시 얘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섭섭한 도블라토프의 건조하고 불친절한 문장이다. 아래 인용은 멋있어서가 아니라 작가의 어법이 이렇다는 의미에서 소개한다.


​  “6시까지 나는 병영을 어슬렁거렸다. 두 번 정도 나를 행정조로 어딘가를 보내려고 했다. 나는 후리예프 대위의 명령 수행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나를 편안하게 내버려두었다. 상사만이 궁금해했다.”


​  문장이 간결하고, 형용사나 부사에 의한 수식이 (거의)없다. 그리하여 독자는 이이의 열다섯 작품을 브레이크 없이 쉽게 읽어갈 수 있다. 이런 문장들이 건조하게 연결되지만, 연결된 문장의 총합은 독자로 하여금 도블라토프의 의도를 공감하게 만든다.

  잘 읽었다. 두 번째 도블라토프로 손색이 없기는 하지만 나는 <여행가방>이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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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2-29 08: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도 중간중간 툭툭 터지는 심드렁 유머가 재미있었습니다…..만 역시 도블라토프는 <여행가방>이 최고지요. <외국 여자>까지는 읽어보세요~!

Falstaff 2022-12-29 08:24   좋아요 3 | URL
옙! <외국여자>는 꼭 읽어얍지요! ㅎㅎ 고맙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12-29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 사는 곳은 지옥, 에 공감하고 들어왔다가 자기 자신이 지옥, 에는 양 무릎 탁 치고 제가 키 155인 이유도 함께 알아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12-29 17:5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그러셨군만요!

그레이스 2022-12-29 1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여행가방> 작가였군요. 수용소라는 곳은 감시자나 수용자나 모두에게 지옥이란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교도관도 있어야하고 수용소도 필요한 곳이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는 게 슬프죠. 그나 저나 <여행가방> 어딘가에 있을텐데...ㅋㅋ

Falstaff 2022-12-29 17:56   좋아요 0 | URL
ㅎㅎ 감옥은 어쩔 수 없어도 수용소는 이제 없어져야 합니다.
<여행가방> 재미나게 읽으셔요! ^^

그레이스 2022-12-29 18:51   좋아요 1 | URL
그렇네요^^
제가 수용소라는 단어를 혼동해서 썼군요;;;
수용소는 비공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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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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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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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구로의 장편 두 편을 읽고 학을 뗀 나는 세번째로 단편집을 골랐다. 미리 말하건대, 이 책이 나의 마지막 이시구로가 될 것이다. 단정하지 말자고 몇 번을 다짐했지만 일단 지금은 이렇게 마음먹었다. 이이의 글이 아름답지 않아서? 아니다. 오래전에 달을 떠나 지구에 도착한 키 크고 늙은 토끼 열아홉 마리가 스웨덴 한림원의 지하에 모여 추첨을 통해 수상자를 결정한다는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생산품을 가지고 내가 문학적으로 이렇다, 저렇다, 따따부따 할 계제가 아니다. 단편소설 다섯 개가 실린 책에서 더 읽을까, 이쯤에서 확 내던져버릴까 신중하게 고민하게 만든 작품이 두 개나 있었다면 다른 건 모르겠고 이 가즈오 이시구로와 나는 극적으로 합이 맞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왜 이시구로는 작품을 이런 식으로 쓸까?


​  특히 두번째 실린 단편 <비가 오나 해가 뜨나>는 이시구로가 마음먹고 희극, 즉 코미디를 쓰기로 작정을 한 거 같은데, 코미디 속에서 사람 사는 모습, 물론 속물들의 속물성을 드러내 보이기는 한다. 책 속에서 유일하게 음악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고 애호가 수준의 남녀가 나오는 작품이다. 스페인에서 영어학원 강사를 하고 있는 레이먼드가 런던에 와서 대학동창 에밀리와 찰리 커플의 집에 며칠간 묵기로 했다가 바로 첫날에 벌어진 에피소드를 그렸다. 에밀리와 찰리 사이에 혼외 연애에 관한 심각한 오해가 생겨 불화가 벌어진 상황에 레이먼드가 도착했고, 찰리는 업무 때문에 또 날을 맞춰 프랑크푸르트로 출장을 떠나버렸다. 에밀리와 레이먼드가 2박 3일을 보내야 한다. 에밀리 역시 회사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 가버려 혼자가 된 레이먼드. 심심한 시간을 죽이다가 부엌에서 에밀리의 수첩을 발견하고, 그 속에 틀림없이 레이먼드 자신을 빗대 “징징이 왕자”라고 한 것 같아, 순식간에 열을 받는 바람에 ‘징징이 왕자’가 쓰여진 페이지를 손으로 구겨 버린다.

  이후에 아차 싶은 레이먼드. 남의 수첩, 혹시 짧은 일기일지도 모를 수첩을 왜 열어봤냐고, 성질 까칠한 에밀리한테 귀퉁백이 한 방 얻어 터질까봐 전전긍긍하던 차에 공항에서 건 찰리의 전화를 받고 이웃집 부부의 큰 개 핸드릭스가 쳐들어와 한 바탕 난리를 죽였다고 변명을 하란다. 그리하여 레이먼드는 일부러 조명등을 자빠뜨리고, 화분을 쓰러뜨렸으며, 소파를 칼로 째버리라는 찰리의 의견은 좀 과격하다 싶어 무시하고, 주방에서 설탕 그릇을 엎어 놓고, 찰리의 레시피대로 집안 구석구석 개 냄새를 풍기기 위해 냄비에 정향과 냄새나는 장화를 끓이는 동안 개의 시선으로 어디가 합당하지 않은지 엎어져 탐색을 하다가 집안을 좀 더 개의 방식으로 어지럽히는 와중에 예정 귀가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한 에밀리한테 들켜버리는 순간까지. 나는 이시구로가 무슨 마음으로 이렇게 있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허구를 만들기 위해 종이를 낭비하고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의 수첩을 열어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에티켓을 장착한 남자가 그걸 은닉하기 위해 집주인이자 친구의 얼토당토 하지 않은 처방을 그대로 따른다고? 그래서 레이먼드 일생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모션을 하고 있는 것을 에밀리한테 들켜버린다고? 이거 연출한 티가 너무 나지 않나? 혹시 모르겠다. 누군가 영화로 만들자고 하면 또 한 번 떼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책에서 얼마 안 되는 분량이기는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음악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장면을 이렇게 허비하다니. 하여간 이시구로는 나하고 맞지 않는다. 이 단편에서 레이먼드의 어처구니없는 장면을 삭제하면 할 이야기가 없었을까? 아니다. 있다.

  대학에 같이 다닐 때 에밀리와 레이먼드가 음량이 작은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고 엘라 핏제럴드와 사라 본을 비교하며 같은 곡을 누가 부른 것이 더 매력적인지 속닥거리던 추억을 회상해도 충분하지 않았겠나 싶다. 다른 네 편엔 기타, 기타, 색소폰, 첼로 연주자들의 세계가 펼쳐지니 여기선 비전공 딜레탕트 또는 상당한 수준의 아마추어 감상자가 엮는 음악에 관한 날줄을 보태도 충분히 좋았을 것이다. 이 책에는 제목 "녹턴"과는 달리 음악에 관한 진지하고 침잠하며 사색적인 모색은 결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이렇게 하라고 강요할 권리가 없다. 창작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몫이니까. 대신 나는 (하여튼 노벨 문학상을 탔으니까) 거장이라고 일컫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읽으며, 그걸 손모가지라고 달고 다녀서 이딴 단편을 쓰고 자빠졌느냐고 푸짐하게 욕을 퍼부을 수는 있다. 스캣 시대의 두 여왕, 엘라 핏제럴드는 이난영이요, 사라 본은 최진희라고, 아무 책임없이 비교할 권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  표제작 <녹턴>도 마찬가지였다. 린디 가드너, 첫번째로 실린 <크루너>에서 이탈리아 베네치아로 이혼여행을 온 토니 가드너와 드디어 이혼을 감행한 아내 린디가 등장한다. 린디는 성형수술을 해 얼굴에 온통 붕대를 두른 상태에서 같은 모양인 재즈 색소포니스트 스티브와 친교를 맺고, 내일 음악관련 시상식에서 올해의 재즈 연주상을 재능이라고는 뭣도 없는 제이크 마벨이 받는다는 이야기, 그리고 천재적인 색소포니스트 스티브의 연주 CD를 듣고는 엉뚱한 일을 벌인다. 호텔의 행사장에 몰래 잠입해 올해의 재즈 연주상 수상자에게 주는 트로피를 훔쳐 스티브에게 전해준 것. 스티브는 경악을 하고 당연히 트로피를 원래 있던 장소에 다시 가져다 놓기로 해 한밤중에 둘이 다시 행사장으로 향하는데, 이런 엉망진창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이걸 코미디라고, 희극이라고 하면, 좋다, 희극이라고 하자, 그러나 아무리 희극이라도 달에서 온 늙은 토끼 열아홉 마리의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노벨 문학상 수상자라면 좀 그럴 듯해야 소설이든지 장난이든지 하는 것이지, 이건 뭐 습작 다섯 편 쓰고 간신히 “운 좋게” 등단해 이제 문단 말석에 쭈그려 앉은 신삥이나 끼적거릴 정도를 가지고 말이야. <녹턴> 역시 영화로 만들어 돈맛을 본 경험이 있는  작가의 의도를, 수상하게 여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내가 이시구로를 지극히 좋지 않게 생각하는 건 맞다. 그의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에 의문을 갖고 나름대로 정당한 사유로 의심하게 됐으며 급기야 혐오를 하는 것뿐이지 (비록 뭣도 모르기는 하지만) 개연성이나 작품성 같은 것에 관한 비난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도 단편소설은 제외하기로 한다. 나중에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의 기분으로는 이렇게 선언한다.


​  내가 또 가즈오 이시구로를 읽으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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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12-27 06: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흑. 저의 녹턴을…
그너저나 “나를 떠나지마 never let me go”는 읽어주시고 장은 그 다음에 지지시…

Falstaff 2022-12-27 06:56   좋아요 2 | URL
저도 독후감을 어떻게 써야하나, 궁리궁리하다가 솔직하게 쓰기로 작정했는데요, 솔직한 것도 쉽지는 않았답니다. -_-;;

유부만두 2022-12-27 07:01   좋아요 3 | URL
솔직한 리뷰가 최고죠.

Falstaff 2022-12-27 07:21   좋아요 0 | URL
흑흑... 고맙습니다.

잠자냥 2022-12-27 09:56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유부만두 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가 제가 하고 싶은 말이라서 깜놀. ㅎ

coolcat329 2022-12-27 0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결국에 이시구로와는 파국에 이르셨습니다. ㅠ
녹턴 사놔서 언젠가 읽겠지만 골드문트님 생각이 아주 많이 날 거 같아요.ㅋㅋ
솔직한 글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2-12-27 07:22   좋아요 1 | URL
에휴. 댁에 있는 책이면 꼭 읽으셔야지요.
뭐 저하고 합이 맞지 않는 것 뿐이니 넘 걱정하지 마세요. ^^;;;

반유행열반인 2022-12-27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 신랄신랄신랄해서 노벨상 받은 아저씨가 쳐맞는데 왜 저까지 같이 아픈지 모르겠네요 ㅋㅋㅋ저도 네버렛미고랑 남아있는 나날이랑 클라라와 태양 세 개만 읽었는데 앞에 두 개까진 그럭저럭 하다가 클라라 보면서는 골드문트님처럼 아 얘 왜 이렇게 썼을까..뭔가 심오한 뜻이 있는데 나만 못 알아차리고 있을까 아님 심오한데 못 알아차리는지 고민하면서 읽게 만들려고 (사실 아무 것도 없음) 이렇게 썼을까 고민을 했더랩쇼...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모셔만 놨는데 그래서 읽을 일은 이건 삼십년 더 밀릴 수도...

Falstaff 2022-12-27 11:41   좋아요 1 | URL
ㅎㅎㅎ 책 읽는 사람의 팔자요 숙명입지요.
제아무리 심오해도 독서에 관한 한 독자가 대빵입니다. (그렇게 주장해주세요 ㅜㅜ)

건수하 2022-12-27 0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도 이시구로 좋아하는데.... 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으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 독특해서 좋았어요. 녹턴은 안 읽어봤으니 자세히는 나중에 읽겠습니다 ^^

Falstaff 2022-12-27 11:42   좋아요 1 | URL
이 독후감 쓰면서 제일 곤란했던 건요, 저도 몇 몇 작가들에 관해서는 거의 ˝빠˝ 수준으로 광분을 하고, 누가 그이 작품이 개판이더라 하면 뺑, 돌아버리거든요. 그것도 알고, 이시구로 좋아하는 분 많은 것도 알면서 이런 독후감을 쓴다는 게, 그게 쉬웠겠습니까. 그저 이시구로 팬들의 아량을 바랄 뿐입지요. 흑흑흑....

건수하 2022-12-27 11:45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저도 솔직한 리뷰를 좋아합니다 ^^ 그래서 댓글 단 거죠. 앞으로도 계속 솔직한 리뷰 부탁드립니다! 😃

yamoo 2022-12-27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장이라고 일컫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을 읽으며, 그걸 손모가지라고 달고 다녀서 이딴 단편을 쓰고 자빠졌느냐고 푸짐하게 욕을 퍼부을 수는 있다...

폴스타프 님...그니까 이시구로 작품들을 제가 3권 읽으려고 했는데, 그럴때마나 든 생각이었는데, 그 지점을 아주 정확히 짚어주셔서 속히 후련합니다! 네, 저도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더랬습니다!!ㅎ

이시구로와 저는 합이 꽝입니다~~ㅎㅎ

Falstaff 2022-12-27 11:44   좋아요 0 | URL
아이고.... 꽝-합이면 안 읽으셔야지 뭐 3권까지 계획을 세우셨습니까. ㅎㅎ

다락방 2022-12-27 09: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너무 재미잇게 읽었습니다. 저는 이시구로에 대한 호감이나 비호감 어느것도 갖고 있지 않고 심지어 <날 보내지 마>는 좋게 읽었으며 <녹턴>도 별 넷이나 주긴 했지만, 골드문트 님이 말씀하시는 ‘전하는 메시지에 의문을 갖는‘다는게 어떤건지 알 것 같아요.

손모가지.. 라고 하실 때는 뜨끔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제가 쓰는 글이 제 손이 쓴다고 늘 생각해왔으므로... 손모가지, 가 중요한게 맞습니다!!

Falstaff 2022-12-27 11:45   좋아요 0 | URL
ㅋㅋㅋ 글을 쓰건, 자판을 두드리건 하여간 그거 손모가지로 하는 건 맞죠?
오래 전에 음악 감상글을 하나 올렸다가, 중원의 고수가 제게 했던 말, ˝그것도 귓구멍이라고 뚫고 다니냐?˝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2-12-27 09: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 지지는 거 한번 보구싶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12-27 11:46   좋아요 0 | URL
흠. 당분간은 안 지지는 걸로... 나중에 사람들 거의 다 잊었을 무렵에 슬쩍 지져보는 걸로 하겠습니다. ㅋㅋㅋㅋㅋ

stella.K 2022-12-27 10: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하루키가 노벨상을 꼭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이 양반이 받았을 때 그럴바엔 하루키가 낫잖나 생각했스무니다. 근데 뭐 한림원은 워낙 잘 알지도 못하는 작가들 잘 찾아내기 대마왕이라 그러려니 합니다.
문트님의 손가락을 사랑해 주세요.😆

Falstaff 2022-12-27 11:50   좋아요 1 | URL
저는 언제나 후보엔 오르지만 상 받을 확률은 거의 없어 보이는 메릴린 로빈슨한테 한 번 미친 척하고 노벨문학상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매년 로빈슨한테 한 표 던지는데요, 올해엔 혹시나 해서 테러 당한 늙은이 루슈디가 불쌍해서 이 아재한테 상 좀 줘라, 하는 마음에 한 표 던졌고요. 제 정체가 알고보면 달에서 우주선 타고 도착한 늙고 키 큰 토끼거든요. ㅜㅜ

그레이스 2022-12-28 21:31   좋아요 1 | URL
저도 골드문트님처럼 같은 맘으로 루슈디에게 한표 던젔어요^^

Falstaff 2022-12-29 06:16   좋아요 1 | URL
앗, 제 옆에 옆에 마스크 쓴 토끼가 그레이스 님이었습니까? ㅎㅎㅎ

그레이스 2022-12-28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제가 안읽은 이시구로네요
써주신 내용 보니 안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손가락은 무사해야죠^^

Falstaff 2022-12-29 06:17   좋아요 1 | URL
에구, 제 말 믿지는 마세요! 그냥 이렇게 읽는 인종도 있구나, 선에서 이해하심이.... ^^

프레이야 2022-12-28 2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학을 떼다뇨 ㅎㅎ 울엄마가 잘 쓰는 말을 여기서 보내요. 사두고 안 읽은 책인데 읽어봐야겠어요 어서. 손가락 보존은 잘하시길 바랍니다 ㅎㅎ

Falstaff 2022-12-29 06:18   좋아요 1 | URL
앗, 어머니께서도. ㅋㅋㅋㅋ
사셨으면 읽으셔야지요. 저하고 달리 좋은 마음으로 감상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alummii 2023-01-01 0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27 일 포스팅 기다렸었는데 , 연말 느므 바빠서 깜박하고 이제사 봤어요 😆 학을 뗀....ㅋㅋㅋㅋㅋ 녹턴은 저도 평이 안 좋길래 안 봤었는데 워메.. 이것에서 종지부를 찍으셨군요 ! ㅋㅋ 😂 암튼 이시구로는 빠빠이✋️ 하는거로 하시고!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

Falstaff 2023-01-01 07:11   좋아요 1 | URL
ㅋㅋㅋ 이시구로 팬이신데 타박 안 하셔서 고맙습니다!!!
올해 하시는 일마다 좋은 일만 생기고, 예상하지도 않았던 행운하고도 가끔 마주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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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의 집
사샤 나스피니 지음, 최정윤 옮김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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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사샤 나스피니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바이오그래피를 클릭하면 이이가 1976년 10월 19일에 태어났다는 거 딱 하나만 나오고 나머지는 작품목록과 수상내역 밖에 없다. 책의 앞날개에 쓰인 작가소개 역시 홈페이지에 기술된 것 이상은 구경할 수 없다. 뭐 요즘 작가들은 이런 게 보통이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심지어 나는 ‘사샤’라는 이탈리아 이름이 모음 ‘a’로 끝나는 바람에 여자인지 알았을 정도다. <불만의 집>은 이이의 2018년 작품. 우리나라엔 2021년에 민음사가 번역 출판했다.


  작품은 거의 대부분이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 마렘마 평원의 끝자락에 솟은 산마르티노산과 두에(due: 두 개) 알리 봉우리, 이렇게 세 개의 산에 둘러싸인 골짜기 마을 ‘레 카세’에서 벌어진다. 레 카세 마을은 하나의 호텔, 성당 두 개, 두개의 바, 종탑, 상점, 담배가게 하나씩을 포함해 모두 스물네 집으로 구성되어 있고, 마렘마 평원 저 편에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엘레오노라가 살았던 집이 있는데, 책의 첫 머리에 산과 각 집에 누가 사는지 그림으로 그려져 있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레 카세 마을에서 한참을 걸어 그렇게 높아 보이지는 않는 산마르티노 정상에 올라가면 일찍이 1815년에 키 작은 코르시카 남자가 이 섬을 탈출해 워털루 전투를 벌여 영국과 프러시아 연합군하고 맞짱을 떴다가 심각하게 쌍코피를 얻어터진 엘바 섬이 보인다는 곳이다. 나도 미친 척하고 le case, maramma, toscana로 지도 검색을 해보니, 세상에나, 정말로 있는 지명이다. 실재하는 곳이라면 사샤 나스피니도 강심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산골에다가 철광석 광산의 광부들이 주로 사는 곳이라면 대개의 작가들은 가난할지언정 무뚝뚝한 정이 넘치는 곳으로 설정하려는 것이 보통이지만 사샤 나스피니는 지중해를 접한 광산지대 레 카세를 악과 범죄가 넘실거리는 작은 소돔의 성으로 만들어버렸다.

  책은 독특한 구성으로 쓰였다. 앞에서 엘로오노라를 작품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라고 했지만, 사실 <불만의 집>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 모두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마을 주민들은 하나같이 다 자신들만의 아픔과 상실과 불안과 어떨 때는 공격성과 도벽 같은 추악한 면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행위할 수밖에 없는 멀고 근원적이고 천부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리하여 이들이 서슴지 않거나 주저하면서도 범하는 비도덕 혹은 범죄, 눈속임 같은 것들은 자주 독자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이게 잘 쓴 문장이라서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고, 범죄 혹은 나쁜 행위라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은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 행위 인물의 불행이나 상실 역시 함께 묘사한다. 물론 거꾸로도 마찬가지다. 선량한 사람은 등장하지 않느냐고? 그럼 하나 질문. 세상에 선량한 사람이 있을까? 무턱대고 선량한 사람을 말하는 거다. 반면에 특별하게 범죄적, 폭력적인 사람이 있나? 있다. 마찬가지의 확률로 특별하게 선량한 사람도 있다. <불만의 집>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는 특별하게 범죄적인 인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특별하게 선량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위에서 내가 레 카세가 작은 소돔의 성이라고 말은 했을지언정, 당신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우리 모두 작은 소돔의 성에서 살고 있는 거다. 이 책의 등장인물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만큼, 당신도 만일 쓸 수만 있으면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게 꼭 좋은 건 아니지만.


​  많은 등장인물 가운데,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한 인물 한 명을 소개한다.

  레 카세 마을의 유일한 의사 에밀리오 살기니 선생의 의견에 따르면 자신이 큰 소리로 숱하게 말을 했음에도 델 카시노 가문은 핏줄끼리 쉴 새 없이 관계를 맺더니 결국 선천적 농아-난쟁이 쌍둥이 남매가 태어나고 말았다. 사촌끼리 혼인이면 유럽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왕왕 있었던 일이지만 살기니 선생이 보기에 핏줄끼리의 혼인의 결과로 태어난 두 명의 괴물이 일찍 죽을 것으로 봤으나 이들은 오히려 다른 혈육들이 흙에 덮이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쌍둥이 농아-난쟁이 남매는, 시간적 공간이 20세기 중반이었으니 통상적으로 동네의 또래 아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아, 자기들만의 “침묵의 시절”을 지내게 된다. 이들은 의사소통 방식으로 둘만의 수화를 만들어 놀고는 했는데 다른 보통의 사람들보다 특별한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자연의 움직임을 간파하는 능력. 이탈리아는 화산과 지진활동이 활발한 곳이라 크고 작은 지진이 늘상 일어난다. 젊은 시절에 마리엘라를 비롯해 많은 동네 여자들과 사통한 적이 있고 성당의 돈을 빼내 포도주를 사는 데 자주 써버린 적이 있으나 그동안 하도 많이 참회를 해서 아직도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를 씻어주지 않았다면 그건 외람된 말씀이지만 하느님이 너무 꽁해 있는 증거라고 발뺌을 하던 돈 라우로 신부도 신부 관사에서 자다가 지진을 만나 천장이 꽝, 무너졌는데 신부가 자던 침대 천장만 떨어지지 않아 목숨을 구해서 종탑으로 거처를 옮긴 적이 있었을 정도였다. 종탑에서 레 카세 마을을 굽어보는 뷰는 좋았지만 쉴 새없이 째깍째깍 거리는 시계 톱니 돌아가는 소리에 죽기 바로 전까지 미쳐버리기 일보직전이긴 했어도. 그런데 이 농아 난쟁이 남매는 아무리 작은 지진이라도 지진에 예민한 다른 동물보다 더 정확하게 이를 감지하고는 했다.

  그런데 아랫마을 아이들은 남매에게 친절했다. 주로 깍두기였기는 했지만 전쟁놀이에도 자신들을 ‘배려하지 않고’ 동등한 자격으로 끼워주는 것이 더욱 고마웠다. 전쟁놀이가 끝난 후엔 돈 라우로 신부가 살고 있는 시계탑까지 행진을 했다. 시계탑이 언덕 꼭대기에 있어서 난쟁이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올랐다. 아이들은 탑의 현관 앞에 남매를 세운 다음 현관문을 두드리고 한 박자 쉬었다가 뒤로 내빼 버렸다.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지나 기다리다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자 남매와 함께 마을로 돌아갔다.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던 1952년 여름. 그날도 역시 시계탑 앞에 남매가 서있었으며, 하필이면 갑작스레 비가 쏟아졌고, 이게 폭풍을 동반해 뇌성벽력을 치기 시작해서, 유난히 자연 현상에 민감한 남매는 혼절해 쓰러지고 말았다. 얼마 후 이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세상에나, 귀가 트여 온갖 소리가 다 들리더라는 말씀.

  여기까지는 꼭 동화같다. 이 다음부터 흥미진진하다. 오빠 줄리아노는 동생 피에라에게 동의를 구한다. 오래, 그리고 어렵게 사람들의 말을 공부해 이제 언어를 거의 습득한 이후의 일이다. 자신이 사람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자는 것. 그리하여 레 카세 주민들은 줄리아노와 피에라 델 카시노가 여전히 농아상태인 것으로 짐작하고, 자신의 이야기, 아무한테도 하지 못했지만 비밀을 누구한테 말하고 싶어하는 본능을 풀어버릴 대상으로 이들 남매를 선택한다. 나는 말하지만 저 사람은 알아듣지 못하니까. 다만 입술 모양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안다고 하니 남매 앞에서 이야기를 할 때는 눈을 마주치는 일 없이 반쯤 옆으로 몸을 비틀어서 온갖 비밀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디보 발렌티의 아내 마리엘라는 남자만 보면 몸이 근질거려 노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거치지 않은 남자는 레 카세에 한 명도 없을 것이고, 벤초니네 막내아들 게으름뱅이 필리포는 사실과 달리 정신나간 아이로 찍혔지만 그런 단정 때문에 오히려 일도 안 하고 먹을 것도 많이 차지하고 독후감에선 차마 쓸 수 없는 놀라운 경험도 할 수 있으며, 마리오 실베스트리는 병이 들어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형편없이 여윈 아내 아델라이데를 정성을 다해 병구완을 하지만 새로운 젊은 점원에게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있으며, 처음엔 동네 체스 챔피언이었다가 점점 이름이 나 세계 체스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가 이제 몰락해 귀향한 니코데모 템페스티는 사실 미군이 몰려오자 연애했던 이탈리아 여자와 마지막 사랑의 행위를 해보려다 술에 취해 다음날 귀대시간을 놓쳐 후퇴하지 못한 오스트리아 출신 독일군 병사 아미코 프리츠이며, 아델레 첸티니는 아사스티아 대령의 집에 하녀로 들어가 쉰일곱 살 먹은 대령의 눈에 들어 그의 아내가 되려는데 여집사 에테드라가 걸림돌이 되자 계단에 트랩을 설치해 엉덩이 뼈를 부서지게 만들었다는 등의 비밀 중의 비밀을 다 토설해버리고 말았다.

  사람의 대화를 “알아듣기”에 가장 빠르고 정확한 방법은 역시 책을 읽는 것이다. 피에라 델 카시노는 원래 총명한데다 ‘델 카시노’ 이름 앞에 관사를 붙이는 집안 답게 수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노래를 많이 들으면 따라 부르듯이, 책을 많이 읽으니 어느 순간부터 글이 쓰고 싶어졌으니, 무엇을 쓸까, 고민없이 그냥 그대로, 자기가 살고 있는 레 카세의 주민들이 갖고 있는 비밀을, 실제 인명과 실제 지명을 사용해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그걸 자기 이름으로 했다가는 난리가 날 테니까 필명으로 했다. 그런데 이게 대박이 났다. 원래 산마르티노 산과 두 개의 봉우리에 겨울마다 스키 관광객이 조금씩 오는 곳이지만 이젠 시도 때도 없이 이탈리아 각지에서 “레 카세”라는 동네 이름 하나만 보고 관광객이 몰려들어 진짜 골목과 바, 호텔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등 난리가 난다. 피에라는 심지어 자신의 메니저도 한 번 만나지 않고 철처한 비밀에 붙이면서, 이 책 <불만의 집>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되리라고 단언한다.


​  문장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이이의 다른 작품도 찾아봐야겠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잘 읽었다. 이탈리아 작가들은 참 특색 있다. 문장도 그렇고 쓰는 것도 그렇고, 특히 스토리도 묘한 매력이 있다. 이탈리아 소설, 확실히 블루 오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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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12-24 05:5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재미난데 파묻힌 거 같아서 안타까웠던 중…. 문트님 리뷰로 한번 흥해보길 바라봅니다. ㅎㅎ

Falstaff 2022-12-24 05:58   좋아요 1 | URL
넵. 이 책은 많이 팔려야 합니다. 그래야 나스피니의 다른 책도 번역해 나옵니다. ㅎㅎ

coolcat329 2022-12-24 07: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많이 팔려야 하는 책이라니 바로 접수하겠습니다.
이탈리아 소설이라니 더 신선한 느낌입니다.
즐거운 주말되세요~

근데 이미 ‘읽고싶어요‘ 한 책인걸 보니 예전에 잠자냥님 리뷰 읽고 했나봅니다.😅

Falstaff 2022-12-24 07:31   좋아요 2 | URL
ㅎㅎㅎ 편안한 메리 크리스마스 만드셔요!
이 책 명작이라고 하기엔 좀 모자라지만 재미있습니다. 즐겁게 읽으셨으면 좋겠습니다.

coolcat329 2022-12-24 07:46   좋아요 1 | URL
앗! 그러고보니 오늘이 크리스마스 이브군요! 골드문트님 즐거운 클리스마스 되세요!

그레이스 2022-12-24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소개하시는 글, 너무 재밌네요^^

Falstaff 2022-12-24 16:14   좋아요 0 | URL
앗, 그렇습니까? ㅋㅋ 으쓱으쓱!

그레이스 2022-12-27 09:58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제가 갖고 있을지 몰라서 책장 휙 둘러보는데 안보여요. 그래서 알라딘에서 구매하기 해봤는데, 전에 구매한 책이라고,,,, 뜨네요.
ㅋㅋ
놀랍지도 않습니다.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Falstaff 2022-12-27 11:52   좋아요 1 | URL
ㅋㅋㅋ 알라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병증입니다. 저도 가끔 겪어서 압니다. ㅋㅋㅋㅋㅋ

yamoo 2022-12-27 09: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개라뉘!!
뽈스타프 님, 이거 이거 리스트 추가해야 겠네요~

그나저나 표지그림이 정말 멋집니다!

Falstaff 2022-12-27 11:53   좋아요 1 | URL
이 책 재미나요! 명작 수준까지는 미치지 않으니까 크게 기대하지는 마시고요, 하여간 특색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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