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이스퀼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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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이 돌 아래 에우포리온(Euphorion)의 아들, 아테나이의 아이스퀼로스가 잠들도다. 그는 곡식이 풍성할 젤라(Gela)의 들판에서 죽음에 제압되었으나, 그의 힘과 용맹은 마라톤의 숲이 말해줄 것이며, 또한 이를 시험해본 더벅머리 페르시아인들이 전해주리라.”


  이것이 아이스퀼로스 본인이 직접 쓴 자신의 묘비명이다. 즉, 죽음의 침상에서 아이스퀼로스는 자신을 그리스 비극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든 극작가가 아니라 2차 페르시아 전쟁의 마라톤 전투와, 3차 페르시아 전쟁의 살라미스 해전에 마흔 다섯 살의 나이로 참전한 늙었으나 용맹한 전사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역자 천병희는 아이스퀼로스가 참전한 페르시아 전쟁을 기점으로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가 소아시아 이오니아 지방에서 아테나이로 옮겨와 그야말로 찬란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어보면, 애초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병력을 비롯한 다양한 방면으로 무력의 열세를 딛고 그리스가 세 번의 승리를 이끌어낸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까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운데서도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의 기적은 아이스퀼로스로 하여금 10년 터울로 극적인 승전의 감격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하게 만들었으리라.

  아이스퀼로스는 기원전 525/4년에 귀족 에우포리온의 아들로 아테네 근처,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근방 부천 정도에서 태어났다. 지금부터 2,546년 전에 태어난 사람이니 그에 관하여 구체적인 자료는 당연히 남아있지 않아서, 군인으로서는 위 단락에서 이야기했고, 이제 극작가로만 남았는데, 문예진흥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그리스의 참주僭主tyrant 페이시스트라토스에 의하여 시작한 연중행사, 디오뉘소스 축제 중에 열린 비극경연대회에서 열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던 그리스의 대표적인 극작가이다. 이이가 비극경연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을 때는 마라톤 전투와 살리미스 해전의 딱 한중간 시절인 기원전 484년, 그의 나이 마흔 살 때였다. 천병희의 해설의 영향을 받아 조금 과장된 생각을 보탠다면, 마라톤 전투 승리의 기적을 경험한 아이스퀼로스는 죽음을 마주한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적진 앞에 섰던 비극적 분위기가 그로 하여금 위대한 비극작가로 등극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한다.

  아이스퀼로스는 주인공 한 명과 코러스로 구성되는 그리스 비극의 전통에서 여러 등장인물과 코러스를 동시에 무대에 올려 드디어 대화가 가능하게 만들어 연극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의의가 있다고 한다. 이이 바로 앞에 읽은 그리스의 희극 전문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자신의 작품 곳곳에서 소크라테스를 시류에 영합하는 소피스트로 악평을 늘어놓은 반면, 자신의 전공인 희극과 반대로 비극만 쓰다가 죽은 아이스퀼로스에게는 열렬한 찬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세상은 돌고 돌면서 발전하고 진화한다. 살라미스 해전이 끝나고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이스퀼로스는 훗날 로마의 베르길리우스가 죽음을 맞는 그리스 식민지 시칠리아의 쉬라쿠스로 가서 공연을 하고 작품도 만들며 지내다가 쉰일곱 살 때 아테나이로 돌아와 다시 뒤오니소스제의 비극경연대회에 참가하지만 대회에 첫 출전한 스물여덟 살의 소포클레스한테 밀리고 만다. 아이스퀼로스는 허탈했겠지. 그리고 다시 힘을 모아 『테바이』 3부작을 다음해 경연대회에 올려 다시 우승을 획득한다. 이후 또다시 10년이 흐른 후, 68세의 그는 필생의 역작인 『오레스테이아』로 경연대회의 열세 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을 차지하고 다시 시칠리아로 가서 70세를 일기로 자신의 묘비명을 쓰기에 이른다.

  아이스퀼로스 본인에게는 페르시아 전쟁, 이 가운데서도 두 번에 걸친 믿기지 않는 승리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잊히지 않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마흔 살에 시작한 열세 번의 경연대회 우승도 전쟁의 신 아레스와 제우스의 손길이 스치지 않았더라면 도무지 이길 수 없던 전투와 비교해서 사소했을 정도로 경각에 스스로의 목숨이 왔다 갔다 했던 일종의 트라우마. 그래 자연스럽게 이이의 드라마에서 다수의 전쟁과 살육의 장면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아이스퀼로스를 호전적인 작가라고 볼 수는 없다. 그리스 시대에는 숱하게 국가간 전쟁이 발발했고, 그게 없던 평화시절엔 하다못해 수다하게 내전이라고 발생했던 시기라, 전쟁, 습격, 도적/해적, 약탈 등은 쉼없이 벌어지던 일상의 한 가지였으니.


  이이의 작품은 ‘아테Ate’ 여신이 막강한 영향력을 빼놓고 말하기는 힘들 듯하다. 그의 거의 마지막 작품이자 백조의 노래인 『오레스테이아』에서도 아테 여신은 무대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천병희의 후주annotation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테는 광기, 광기에서 저지른 행동, 거기서 벌어지는 불행.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의미하는 여신으로,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개념 중 하나다.”

  이어서 네이버 지식백과의 설명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어리석은 실수와 미망을 의인화한 여신이다. 제우스와 불화의 여신 에리스의 딸인 아테는 신과 인간들을 현혹시켜서 어리석은 행동을 저지르게 만든다. 제우스의 노여움을 사서 올림포스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던져졌다.”

  그러니까 『오레스테이아』의 원형이 광기냐, 어리석음이나 미망이냐, 하는 차이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천병희의 후주가, 역자니까 당연하겠지만, 더 진실에 가깝다. 『오레스테이아』, 즉 오레스테스 3부작을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는, 세상의 어떤 가문보다 복잡하고, 질기고, 오래 지속하고, 추악하고, 비정하고, 난잡하기까지 한 오레스테스 가문의 저주받은 내력에 관해서 미리 읽어보고, 가능하면 충분히 익숙해질 만큼 다양한 작품을 섭렵한 뒤에 감상하는 것이 좋기는 하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이 어디 그럴 시간이 있을까. 이런 분들은 그저 간단하게 탄탈로스→펠롭스→아트레우스→아가멤논→오레스테스로 이어지는 골치 아프지만 세계적인 가문이라도 검색해보면 좋을 것이다. 독후감에선 가문 내력은 말고 작품에서 주로 문제가 되는 것들만 뽑아보면,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 원정을 위해 수천 척의 배를 띄웠으나 (남)서풍이 불지 않아 출전하지 못하고 나날만 보내고 있었다. 그리하여 점을 봤더니 아가멤논의 어여쁜 맏딸 이피게네이아를 죽음으로 희생시켜야 바람이 불어 출항할 수 있다는 신의 계시가 내려, 아가멤논은 정말로 자기 맏딸을 희생의 대 위에 서게 만든다. 전쟁이 끝나고 아폴로의 저주를 받은 명 예언자 카산드라를 대동해 개선한 아가멤논을 아내 클뤼타이메스트라(‘클뤼타임네스트라’의 고어형이라고 함)는 시사촌동생이자 연인인 아이기스토스와 공모해, 욕조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천을 뒤집어 씌운 다음 자신이 직접 (칼 또는) 도끼로 머리를 쪼개 죽인다.

  어머니와 당숙이 자신을 해칠까 몸을 숨긴 오레스테스는 나그네인 것처럼 변장을 하고 친구 퓔라테스와 함께 궁으로 돌아와 누이 엘렉트라와 공모해서 어머니를 (칼 또는) 도끼로 찍어 죽여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 아이기스토스 역시 살해해버린다.

  죽은 어머니 클뤼타이메스트라의 혼백이 호출한 복수의 여신들에 쫓기는 신세가 된 오레스테스는 아폴론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아폴론은 아테나이에 가서 여신 아테네 주재로 심판을 받으라고 한다. 이에 아테나이에 도착해 재판을 받아 유무죄가 동수를 기록, 아테네 여신의 캐스팅 보트로 무죄를 선고하고 여신은 복수의 여신들을 설득해 자비의 여신으로 탈바꿈하게 만든다.

  이렇게 차례대로 <아가멤논>,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 그리고 <자비로운 여신들>이란 제목을 달았고, 이 3부작을 합쳐 『오레스테이아』라고 칭한다. 이건 지극히 간략하게 내용만 스케치했을 뿐이고 직접 읽어보면 디테일이 무수하게 달려 있다. 특히 크리스타 볼프가 쓴 <카산드라>는 <아가멤논>과 내용이 거의 비슷하지만 볼프가 누군가, 지극히 재미있는 해석, 그리고 색다른 덧붙임을 엮어 나가고 있다. 휴고 폰 호프만슈탈이 대본을 쓰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엘렉트라>는 <제주를 바치는 여인들>과 같은 플롯이지만 곁가지를 다 쳐내고 오랜 시간동안 냉혹한 어머니와 당숙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던 엘렉트라에 초점을 맞춰 드라마틱한 오페라로 만들어냈다.


  『오레스테이아』외에도 라이오스→오이디푸스→에테오클레스/폴뤼네이케스 3대를 그린 『테바이』 3부작도 매우 훌륭한 것처럼 보인다. 3부작 가운데 남아 있는 유일한 작품이 마지막 3부 격인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인데, 아시는 것처럼 테바이의 일곱 성문을 일곱 명의 장수가 제비를 뽑아 공격하기로 했고, 이중에 일곱 번째 성문은 성주 에테오클레스의 동생이자 오이디푸스의 아들인 폴뤼네이케스가 맡는다. 이에 형 에테오클레스는 자진해서 동생을 맞아 싸우기로 했다가, 서로가 서로한테 창을 꽂아 동시에 죽음을 맞는 비극이다. 이 라이오스→오이디푸스→에테오클레스/폴뤼네이케스 가문을 좌우한 것 역시 아가멤논의 집안과 마찬가지로 아테 여신의 작업이라고 봐도 괜찮겠다.

  졸지에 왕 에테오클레스가 죽음을 맞아 섭정을 맡게 된 크레온은 에테오클레스에겐 국장을 베풀지만 테바이 공격에 적극 협조한 폴뤼네이케스는 시신을 거두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고 개들의 먹이가 되도록 만든다. 시신에 손을 대기만 해도 참형에 처한다고 공고를 했으나 누이 안티고네는 형벌을 기꺼이 감수하고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 주는 이야기 <안티고네>로 이어진다. 이 이야기는 소포클레스 비극전집과 카를 오르프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에 실려 있다. 이렇게 다양하게 섞여 있는 그리스 비극을 서로 연결해서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주의할 것은 비슷비슷한 구성으로 쓰인 작품을 단번에 여럿 읽으면 간혹 멀미가 나는 수가 있으니 짬짬이 다른 책들도 함께 읽으면서 감상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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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1-29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스퀼로스에 관해 쏙쏙 들어오게 정리를 넘 잘해주셨네요. 저도 아이스퀼로스 읽을 때, 이 내용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시 기억을 끄집어내서 정리했습니다^^
👍

Falstaff 2022-11-29 11:58   좋아요 1 | URL
ㅋㅋㅋ 고맙습니다. 이 책, 정말 재미나요! 을유에 이어 두번째 읽었다니까요! ^^
 
쇼샤 페이지터너스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지음, 정영문 옮김 / 빛소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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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읽으셔요! 제가 5년 전에 쓴 독후감 제목이 "이 책 찍어줄 다른 출판사 없나요?" 였을 만큼 재미납니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원수들, 사랑 이야기>하고 비슷한 내용인데요, 둘 다 좋아요! 다만 시대가 변해서 유대인들의 "희생자의식 민족주의"가 조금 거슬리기는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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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11-28 19:0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
저장하고 갑니다^^
하고 나니 집에 있을것 같네요ㅋㅋ
있다고 하네요^^

Falstaff 2022-11-28 19:10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레이스 님은 그럴 거 같았습니다. ^^

햇살과함께 2022-11-28 20: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첨 들어보는데 폴란드 작가네요.
노벨문학상도 탔고요.
골드문트님 무작정 영업에 궁금하네요!!

Falstaff 2022-11-28 20:39   좋아요 3 | URL
아 글쎄 재미있다니까요! ㅎㅎㅎㅎ
재미 없으면 제가 책값 드리겠습니다.....라고 쓸까 말까 하다가 ㅋㅋㅋ 아닌 걸로.
 
자유 국가에서
V. S. 나이폴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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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겔 스트리트>, <도착의 수수께끼>,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 <세계 속의 길>에 이어 다섯 번째 나이폴로 고른 책. 아메리카 본토는 물론이고 도서지역까지 모조리 점령한 유럽인들은 트리나다드 섬에 상륙하여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원주민들을 거의 멸종시켜버렸다. 이후 섬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농장을 건설, 유지하고자 했으나 노예해방 이후 노동력이 필요해진 백인들은 이를 보충하기 위해 인도, 중국 등지의 이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이때 인도에서는 그래도 영어 깨나 하는 최상위 브라만 계급을 중심으로 많이 몰려와 정착했고, 이 속에 뭄바이에서 출발한 나이폴 가족이 들어 있었다. 이리하여 1932년에 V.S. 즉 비디아다르 수라지프라사드 나이폴이 태어난다. 이후 V.S의 성장과정은 웬만한 건 그의 작품에 모두 들어 있다. 후에 트리니다드 토바고가 되는 섬의 미겔 스트리트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학교를 다녔고, 학교에서 단연 발군의 학업 성취로 열여섯 살에 트리니다드 정부에서 장학금을 받아 가족, 친척의 열광적인 배웅을 받으며 섬을 떠나 열여덟 살에 옥스퍼드에 입학한다. 3년 후인 1953년에 아버지가 심장발작으로 별세했을 때, 나이폴은 생애 마지막으로 고향을 방문하고 다시는 트리니다드 섬에 발을 딛지 않는다. 즉 갈색 피부의 영국인으로 살고자 했을 뿐이다. 이리하여 나이폴의 원형질에는 인도의 뭄바이, 트리니다드의 포트오브스페인, 런던의 얼스코트, 옥스퍼드, 그리고 만년의 삶을 살게 될 스톤헨지가 바라다보이는 월트셔의 농촌 마을로 이어진다. 하지만 작품 속에서 나이폴의 영혼은 뭄바이, 포트오브스페인, 영국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를 끊임없이 떠도는 새로운 유형의 디아스포라로 규정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때때로 작품을 읽기 시작해 진도를 나가다 보면 분명히 아름다운 문장, 섬세한 감성의 포착, 삶과 전원과 자연과 인간에 관한 명상들이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이런 묘사가 하도 장황하여 오히려 나가 떨어질 위험이 있는 경우가 있다. 나이폴도 이런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나 오늘 소개하는 <자유 국가에서>는 잘 읽히고 심지어 재미도 있다. 430쪽 분량으로 부담도 별로 없다. 그의 장기이기는 하지만 지루함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는 장황한 사색 없이 그리스에서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로, 인도 뭄바이에서 미국 워싱턴으로, (트리니다드토바고일 수 있는) 제3 세계에서 영국 런던으로, 정치상황이 매우 복잡한 아프리카 한 나라의 수도에서 남부 관할구역으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다시 이집트의 룩소르로 가는 로드 무비 식 옴니버스 형식이다. 결국 처음과 끝, <피레우스의 방랑자>와 <룩소르의 서커스단>를 내놓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라고 주장하여, 모두 네 편의 단편과 중편 하나의 관계가 서로 이어져 있다고 읽을 수 있는데, 이게 작가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 출판사가 규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독자가 읽기에 그런 것은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그저 순서에 따라 각기 독립된 이야기로 즐기면 되지 않겠나 싶다.


  독후감의 첫 문단에서 나는 V.S. 나이폴을 새로운 유형의 디아스포라 족race으로 규정하는 것이 옳다고 슬쩍 제안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의 방랑을 보면 오랜 세월 이방의 참견을 받거나 식민지였던 그리스에서 영국에 의하여 주권의 상당부분을 빼앗겼던 이집트로의 여행인 <피레우스의 방랑자>, 식민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인도인이 세계의 심장인 미국의 워싱턴에서 정착하는 <무리에서 벗어나 한 개인으로>, (영국 식민지였던 트리니다드토바고로 보이는) 제3국에서 런던으로 온 남자의 방황을 그린 <누구를 죽여야 하는지 말하라>, 과거 식민 모국 출신 백인이 대통령이 권력을 쥔 아프리카 나라의 수도에서 왕 시해가 진행중인 왕의 남부 관할지역으로의 여행을 다룬 <자유 국가에서>, 그리고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모두 과거에 식민지였거나, 식민지에 버금갈 정도로 주권을 빼앗겼던 나라였거나 식민 국가 출신 해당지역의 백인 공무원이다. 즉, 주인공이 흑백을 불문하고 해당 지역에서는 거의 완벽하게 이방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하여 역자 정희성은 책 뒤편의 작품해석 제목을 “포스트 식민 시대 유랑자들의 쓸쓸한 초상”이라고 적절하게 달았고, 내용 역시 충분히 수긍할 수 있었다. 물론 약간의 과장이 있는 것 같았지만.

  우리도 과거 일제에 의한 강점, 즉 식민 시절을 겪었다. 하지만 식민 모국인 일본이 전쟁 마지막에 인류 역사상 유일한 한 방, 리틀보이와 팻맨에 얻어터져 나이폴, 그리고 역자 정희성이 말하는 포스트 식민 시대를 겪지 않았고, 겪을 수도 없었다. 포스트 식민 시대라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식민주의에 의하여 수탈을 당하느라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피식민국가의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도 없이 부유한 식민 모국,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승전국의 “필수적이지만 현지인들이 기피하는 작업을 위한” 하층 노동자로 유입하고, 이질적인 문화에서 생활하다가 차츰 적응하는 일을 말한다. 여기서 ‘적응’이라고 하는 건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상당한 시간 동안 죽도 밥도 아닌 상태를 필연적으로 겪어야 하는 난점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면 적극적으로 식민 사업에 뛰어들지 않았던 미국으로의 유입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경우가 다를 뿐이지 결국 필요한 인력의 유입과, 유입한 인력들의 오랜 적응기간과 혼란이란 입장에서는 거기서 거기다. 우리도 한 시절에 아메리칸 드림 하나만 가지고 미국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경험이 있으니.

  뭄바이에서 고관집의 요리사 하인 출신이었던 ‘나’ 산토시는 계단 밑의 작은 공간, 이모네 집에서 일만 생겼다 하면 징벌로 처박혀야 했던 해리 포터의 계단 밑 창고 같은 곳에서 먹고 자야 했는데, 그것보다는 동네의 비슷한 또래 하인들과 함께 밤 늦게까지 두런두런 수다를 떨다가 가끔 술이라도 생기면 한 잔 씩 하면서, 그냥 길거리에서 자던 습관이 있었다. 주인이 정부 일로 워싱턴으로 발령이 나서 어렵사리 함께 워싱턴 비행기를 탔는데 아파트에 도착하자마자 피곤한 주인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잠에 빠져버렸고, 산토시는 아무리 뒤져봐도 자기가 잘 공간은 보이지 않는지라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나가 문 앞에 몸을 구부리고 엎어져 잔다. 물론 아침에 눈을 떠보니 현관문은 자동으로 닫혀 있어서 집 안으로 들어갈 방법도 알지 못하고. 이런 상황이니 인도 출신의 디아스포라는 지역적 분리 이외에도 상상도 하지 못한 문화충돌까지 겪어야 한다.

  나도 한 번 폼을 내보기 위해 요즘 유독 유행하는 단어를 굳이 써보자면, 나이폴은 이런 현상을 핍진하게 서술하고 있다. 흠. “핍진”이라고 쓰니 발음은 뭔가 쿨 한 느낌이지만, 이 단어를 쓰려면 반드시 괄호 치고 한자어를 명기, 분명하게 밝혀야겠다. 逼眞과 乏盡이 발음은 같지만 내용은 거의 반대라고도 할 수 있구나. 웬만하면 이 단어는 쓰지 않는 게 좋겠다.


  하여간 결론은, 재미있는 책이라는 것. V.S. 나이폴을 처음부터 쉽게 읽은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듯하다. 깊은 사색을 동반해야 할 것 같은 치밀한 서술에 지쳤거나, 한 이야기 또 하고, 또 한 이야기 다시 한 번 더 하는 것이 걱정스러워 나이폴을 읽기 머뭇거린다면 이 책을 권하겠다. 가장 문턱이 낮아 쉽고 편한 나이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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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25 1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놔 항상 사두고 닐지 않은
책들이 피드에 올라올 때마다
이렇게 맴에 가책을 느끼게
되는지요 ㅠㅠ

나이폴 선생의 책을 잔뜩 사
두고 선뜻 못 집어 들고 있
습니다.

문턱이 낮다고 하시니 해가 가
기 전에 도전을...

Falstaff 2022-11-25 10:56   좋아요 2 | URL
ㅋㅋㅋ 그게 뭐 한 두 권이겠습니까. 책 좀 읽는 사람들은 다 그럴 거예요.

붉은돼지 2022-11-25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생은 뭐 워낙에 견문이 일천하고 당췌 근본이 천학이기는 허나, 나름 똥폼잡고 거들먹거리기를 좋아하는지라 뜻도 모르는 한자를 대충 통박으로 많이 쓰는 편인데, 핍진이 결핍의 그 핍진 말고 또 다른 뜻이 있는 줄은 오늘 아침에사 처음 알았습니다. 조문도면 석사가의라. 금일 큰 공부를 하였으니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지는....당연지사 않을 것이고.........................쓸데없는 소리는 각설하고, 가만 보니 골드문트님의 프사가 소생 프사의 거의 실사판이라 반가운 마음에 횡설수설 송구합니다.

Falstaff 2022-11-25 13:53   좋아요 0 | URL
알라딘 서재 터줏대감 님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리 댓글을 주시니 고맙습니다. 저 사진은 좀 된 거긴 합니다만 그래도 비슷하네요.

coolcat329 2022-11-28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이 작가가 인도인이었군요. <미겔 스트리트> 소설은 들어봤는데 작가가 인도인이라고는 전혀 생각못했습니다. 골드문트님의 작가 설명은 역시 재미납니다. ‘이방인‘을 주제로 하는 소설집~

Falstaff 2022-11-28 18:42   좋아요 0 | URL
나이폴은 충분히 집중 탐구해볼 만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근데 정말로 ˝집중˝하려면 꽤나 지루한 게 문제이긴 합니다만.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11-28 19: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이폴도 모아놓기만 하고 아직 못읽었습니다.
한권 읽었는데 책제목이 생각이 안나네요
제 기억으로는 세계속의 길이었던 것 같네요
마구 읽던 때라 기억이 전혀 안납니다 ㅠ

Falstaff 2022-11-28 19:10   좋아요 1 | URL
세계속의 길이 만만하지 않은데.... ㅎㅎㅎ 뭐 어떻습니까. 다 그런 것이지요.
 
캄캄한 낮, 환한 밤 - 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 대산세계문학총서 178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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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번째 읽는 옌렌커. 이이가 글 하나는 참 재미나게 잘 쓰는 건 알겠는데, 나 하고는 조금 맞지 않는다. 옌렌커는 저 중국 하남 땅, 즉 허난성 뤄양시 인근 출신으로 기름진 평야와 서쪽과 남쪽에 바러우 산맥이 있어 작품이 모두 이 동네를 무대로 하거나, 등장인물이 이 근동 출신이다. 다시 말해, 지금은 고속전철이 뚫려 베이징에서 두어 시간이면 도착하지만 옌렌커가 젊은 시절에만 해도 수도 베이징 구경은 현에서 한 두 명 정도 할까 말까 한 저 멀고 먼 두메산골이었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옌렌커의 작품 속에서, 거 참 희한도 하지, 내 눈을 잡아 끈 건 강간, 성폭력을 포함한 폭력의 과다한 사용과 상상력의 엽기적 발산이 주로 안 좋은 방면으로만 눈에 띄었다.

  처음 읽은 옌렌커였던 <풍아송>도 구도적이고 아름다운 제목과 달리(고백하건대 이때까지 옌렌커가 어떤 작가인지 몰랐다. 오직 하나, 제목이 너무 아름다워 골랐던 책이다) 주인공이 부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의 늙어서 쉬어 꼬부라진 부총장이 자기 집 침상 위에서 젊고 아름다운 자신의 아내와 포개진 모습을 보는 것으로 작품을 시작한다. 그리고 읽어갈수록 수위가 높아져 결국은 바러우 산 근방에 유토피아, 율도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마무리하는 걸, 제목 풍아송 보다, 아니, 제목만큼 아름답게 읽어줄 수 없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도 마찬가지였다가, <레닌의 키스>에 와서야 <풍아송>과 같은 무대인 바러우 산 기슭의 집단 촌에서 시작하는 ‘거대한’ 은유의 범람을 즐길 수 있었다. 이어서 <사서>도 괜찮게 읽은 바 있으나 옌렌커 특유의 마초적 과장은 내내 눈에 거슬렸던 것을 숨기지는 못했다.

  이번에 읽은 <캄캄한 낮, 환한 밤―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도 거북하게 시작한다. 작가가 자신의 실명을 숨기지 않는 건 뭐 그럴 수 있지만 그의 소설 속 소설 <캄캄한 낮, 환한 밤>의 출발선을 보자.


  “한 가지 일이 발생했다. 리李씨 집안의 둘째 리좡이 먀오苗씨 집안의 넷째 먀오쥐안을 강간했다.”


  이것은 소설 ‘<캄캄한 낮, 환한 밤―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 속에 나오는 소설 <캄캄한 낮, 환한 밤>의 시작부분이다. 여태까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옌렌커 작품 <레닌의 키스>에서도 작품에 동력을 제공하는 향鄕의 하급 공무원 류잉췌가 서우훠 마을에서 유일하게 장애가 없는 동네 처녀 쥐메이를 강간하여 딸 네 쌍둥이를 낳게 만든다. 나는 이런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옌렌커는 마치 작가 또는 지난 시절 남성의 특권인 양 별스럽지 않게 강간행위를 저지르게 구도를 짜는 거 같다. 성폭행이나 어울리지 않는 커플들의 동침 등이, 물론 어떨 때는 매력 있는 글루탐산 나트륨(인공 조미료) 역할을 할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과하면 금방 느끼해지고 질린다. 또 사람에 따라 유독 빨리 질리는 독자도 있다. 야한 장면 읽는 걸 즐기는 내 경우도 그런 편이다.


  이 책에는 작가 옌렌커가 실명 등장한다는 건 위에서 말한 바 있다. 이 외에도 리좐, 리징, 리서, 먀오쥐안, 훙원신 등이 소설 속의 소설/시나리오(<캄캄한 낮, 환한 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이고, 영화제작에 종사하는 감독, 배우, 작가인 구창웨이, 장팡저우, 양웨이웨이, 궈팡팡 등은 옌렌커가 명리名利(명성과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쓴 소설(<캄캄한 낮, 환한 밤―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에 동원된 주요 인물로, 이들 모두가 책 속의 허구가 아니라 실제로 살며, 먹고, 사랑하고, 배설하는 생활인이라고 주장한다. 등장인물이 실제 인물이기 때문에 소설과, 소설 속의 소설/시나리오의 등장인물은 서로 직접 만날 수도 있고, 실제로 저장성에서 대학 교수를 하는 아버지를 둔 베이징대 대학원생 리징과 작가를 제외하고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 리좐의 아들 리서는 영화계 사람들과 직접 만나 5성급 샹그릴라 호텔의 일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는 일도 벌어진다. 물론 정말일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나는 믿지 않는다. 이 작품이 소설, 허구의 외향을 갖추고 있는 한, 설혹 이게 사실일지언정 나는 몽땅 구라라고 단정한다.


  작가는 50세 생일 전날 밤에 잠들지 못하고 깊은 사색을 하기에 이른다. 지금은 비록 베이징의 인민대학에 교수로 근무하고 있지만, 교수이자 소설가일 뿐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이름이 알려진 만큼 돈도 많지 않다는 생각에 이른다. 옌의 사색은 더욱 깊어진다. 결국 세상의 모든 예술은 명리를 위한 양복이자 중산복이라고. 예술의 고향은 명예와 이익, 명리이고, 명리의 고향 역시 예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자신이 명리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예술 뿐이니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지, 손흥민이었다면 축구의 고향은 명리이고, 명리의 고향 역시 축구라 할 것이고, 추신수는 야구와 명리가 서로의 고향이라 할 것이다. 할 줄 아는 게 그것 밖에 없는 천재들이니까? 이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하나라도 있는 사람이 인구 만 명당 몇이나 있나? 이들은 행복한 자들이다. 지들이 몰라서 그렇지.

  하여튼 옌 선생은 이제 황혼, 까지는 아니고 석양을 지나는 자신의 예술을 보면서, 명리를 위한 마지막 귀여운 사기를 한 건 도모하기에 이른다. 바로 영화. 자신의 작품을 소설로 쓰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돈으로 영화를 만드는데, 시나리오, 감독, 주연을 모두 자기가 하겠다는 거다. 작품을 구상하고 이게 어느 정도 구체화 되면, 빵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우유부터 꿀꺽꿀꺽 마시는 건 동서가 마찬가지라서, 소설로의 쩨쩨한 성공보다 이걸 영화로 만들어 수억, 수십억 위안의 박스 오피스를 기록하게 될 순간을 꿈꾸게 된다. 그리하여 시나리오 <캄캄한 낮, 환한 밤>을 쓰고, 그것을 쓰기 위한 실화 소설도 쓰는데, 이 둘을 합친 것이 바로 <캄캄한 낮, 환한 밤―나와 생활의 비허구 한 단락>이다.


  시나리오와 실화소설의 주인공 리좐은 위에서 얘기했듯, 열일곱 살의 나이에 열네 살 먹은 먀오쥐안을 강간하고, 당시 순박한 하난성 사람들은 이런 흉한 일은 백 년에 한 번 있을까 하는 짓이어서 당연히 먀오 씨가 강간범인 리좐을 때려 죽일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먀오 씨와 리좐의 아버지 리린 씨는 인품이 훌륭하고 생각도 깊은 사람들이라 더 흉한 일로 끝나지 않게 만들기 위해 궁리를 하다가, 동네에서 반평생 동안 민간학교 교사를 지낸 훙원신 선생의 중재로 이 둘을 약혼시키는 해법을 제시한다. 이에 리좐은 자기 왼손 식지를 잘라 약속을 지킬 것을 맹세하고, 먀오쥐안이 몸이 약해 결혼을 하면 좋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 여겨 일찍 혼인을 시키고 둘 사이에 아들 리서가 태어난다.

  여기에 옌은 중국의 문제점 하나를 보탠다. 대학 입학. 요즘은 한참 덜 하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중국에서는 여간 공부를 잘 해야 대학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대학이 마찬가지로. 워낙 인구는 많고 대학은 적은데, 중국인들도 교육열이 대단하니 어쩔 수 없다. 말했듯 요즘에 덜 하단다. 리좐의 아들 리서가 베이징 대학 아니면 안 간다고 앙탈을 부리다가 1점 차이로 낙방을 한다. 그리고 평소 몸이 약했던 엄마는 어떤 일이 있어도 리서를 대학에 보내기 바라며 숨을 거둔다. 근데 촌에 돈이 있어야 재수를 시키지. 아버지 리좐은 아내이자 리서의 엄마 유해를 암에 걸린 노총각한테 팔아버린다. 노총각 죽을 때 관에 넣어 죽어서나마 혼자 살지 말라는 용도란다. 아들 리서는 이 때문에 아버지를 극혐하게 되고, 두번째 입시에서는 2점 차이로, 세번째는 3점 차이로 미역국을 먹는 것. 계속되는 재수, 삼수, 장수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리좐은 베이징에서 농촌공으로 일하고, 이때 베이징대 컴퓨터 공학 대학원에 재학중인 리징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어떻게 되느냐고? 쉰한 살이지만 육십대처럼 보이는 리좐과 리징. 동성동본이기도 한데 그렇지만 엄연히 여성과 남성이다. 그럼 둘 중 하나다. 서로 연애를 하거나, 그냥 알고 지내거나. 아참, 하나 더 있다. 리좐한테는 리서라는 아들이 있으니 리징이 연하의 남친을 사육할 수도 있겠네. 하여간 내 입에선 결론이 나오지 않을 테니 천생 읽어보셔야 답을 알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옌이 이제 몇 작품이나 더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이제 조금씩 자신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았다. 내 코드에는 맞지 않지만 글 하나는 정말 재미있게 쓰는데, 이이가 정말로 글쓰기를 멈춘다면 나마저도 조금 서운하겠다 싶다. 이것도 정이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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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22 15: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민해방군 출신 작가의 한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게다가 날이 갈수록 검열이 강화
되는 자국 내 상황도 영향을 미치
지 않았을까요.

<풍아송> <사서> 그리고 <인민>
등등의 추억이 스쳐 가네요.

Falstaff 2022-11-22 21:1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에이, 인민해방군 출신이라고 설마... 저도 국방군 출신입뎁쇼. ㅋㅋㅋㅋㅋㅋ
검열은 그럴 듯합니다. 하여튼 독재, 전제는 안 됩니다.

바람돌이 2022-11-22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 누군가가 중국 작가들은 좋겠다. 아무리 황당한걸 쓰도 다 그럴듯한 환경이 있다라고....
저는 옌렌커 작품은 <딩씨마을의 꿈>하나 읽었는데 진짜 타고난 이야기꾼이란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좀 더 읽으면 골드문트님과 같은 안목이 저에게도 생길려나요? ^^

Falstaff 2022-11-22 21:47   좋아요 1 | URL
헥, 에그머니, 제가 뭐라고 저 같은 안목...이라 말씀하십니까. 화끈, 쥐구멍 어디 읎나요? 후다닥.....

그레이스 2022-11-28 19: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옌렌커 잔뜩 사놓고 못읽고 있는 책더미!
이책도 얼마전에 사놓고 못읽고 있습니다

Falstaff 2022-11-28 19:11   좋아요 1 | URL
천천히 읽으셔요. 새털 같이 많은 나날입니다. ^^
 
머릿속의 새들 지만지 희곡선집
팔로마 페드레로 지음, 박지원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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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1957년에 태어난 닭띠 여사님 팔로마 페드레로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했으나 사회학보다는 연기와 연극 연출, 발성법, 연극 구성 등을 배우는데 더 심혈을 기울였단다. 당연히 학교에서 연극 활동을 했고, 졸업 후에도 독립극단인 “잡동사니”를 만들어 극작과 주로 길거리 공연과 아동극을 비롯해 다양한 실험적 연기 생활을 한다. 1981년에 독립극단 생활을 정리한 후에도 연기와 극작을 계속하는 한편, 역시 자본주의에선 돈이 최고라서 영화와 TV 드라마에도 출연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첫번째 희곡집인 《밤의 유희》와 두번째 희곡집 《머릿속의 새들》이 지만지에서 출간이 되어 있어 이번에 읽게 됐다.

  스페인 극작가로는 안토니오 부예로 바예호가 쓴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문학과지성사 2002)와 1965년생의 젊은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비평가>(지만지드라마 2019)를 인상깊게 읽은 적이 있어서 웬만큼 기대를 갖고 도서관에 희망도서신청을 해 읽었다. 그리고 즐거웠다. 비록 희곡은 분량에 비해 읽는 속도가 빠르기는 하지만, 본문만 438쪽을 하루만에 독파한 후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으며, 쓰기를 마치자마자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한파를 뚫고 나는 팔뚝만큼 굵은 붕장어 소금구이에 쐬주 한 잔 하러 눈썹을 휘날리며 어둠 속을 질주해갈 것이다.


  팔로마 페드레로의 극작품은 기본적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에 입각해 있다. 그리하여 폭력에 반대하고, 성실한 남편을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 등장해 스스로의 욕망이 잠들어 있음을 자각하며, 늙은 여인이 어려서 입양을 간 동생의 죽음을 보살피기도 한다. 종속적 삶을 살았던 부모와 달리 자신의 계발에 성공한 중년 여인은 사회적 성공에 올인하는 과정에서 모성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다 큰 딸에 의하여 반역을 당하기도 하고, 테러로 숨진 남자의 애인과, 아내와, 어머니의 모습을 한 무대에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제일 마지막에 실린 작품은 전작을 요약했다 하는데 가난한 연극인의 애환을 그렸다고 거칠게 요약할 수 있겠다.

  당연히 페드레로가 노골적으로 여성주의적 시각을 견지했더라면 극이 조금은 경색되었을 터이지만 극작가는 적절한 선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관리control라고 해도 이것이 여성주의를 타협적으로 주장하거나 완곡하게 연마하려는 수작trick으로는 비치지 않는다. 다른 페미니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폭력과 테러리즘은 완전히 남성에 의하여 저질러지며, 얼핏 봐서 모든 피해자는 여성이라고 인식하게 시각보정을 유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지하철에서 테러가 발생할 경우, 가장 크게 다루어야 할 것은 ①테러리즘이라는 폭력이 왜 발생했으며, 이것이 ②고위층이나 상류 계급이 아니라 민간인들, 이중에서도 출근시간에 붐비고 냄새나는 지하철을 타고 다녀야 하는 시민 대중을 향하는 폭력이어서 더욱 악질적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마땅한다. 그러나 페드레로는 결국 피해자가 여성과 여성의 아이들, 여성의 남편들임에 강조점을 찍고 만다. 독자가 이 피해자들의 면모를 보자면, 세상에서 “여성의 아이들”과 여성의 남편이 아닌 남자가 있기나 한가? 오히려 “여성의 남편”을 강조함으로써 여성은 노동하지 않고 돈을 벌어오는 가장 남편에게 부속하고 있는 존재라는 걸 의도하지 않은 채 드러냈을 수도 있다. 하여간 결국 모든 사람이 피해자라는 말이다. 인류 역사상 수정과정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사람이 딱 한 명 있어서 그를 기독이라고 부르지만, 여성의 몸을 통해 세상 구경을 하지 않은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 여성주의를 다루는 “서툰 작가”들은 세상의 모든 남자는 폭력적이고 섹스만 파는 악당이며, 여성은 착하고 약한 피해자였다가 이제 여성주의 또는 인간에 새롭게 눈뜬 인물로 그리지만, 페드레로 같은 노련한 작가는 결코 그렇게 쉬운 길을 걷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그걸 맨입에 알려드릴 수 있나, 어딜. 천생 읽어보셔야 할 것이다.


  모두 여섯 편의 희곡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제일 인상 깊게 읽은 것은 두 번째로 실린 <밤의 눈>이란 작품이다. 물론 “인상 깊었다”는 것은 전적으로 내 취향에 맞았다는 개인적인 공감의 것일 뿐 다른 이에게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고 참고할 만하지도 않다는 점을 밝혀야 하겠다.

  읽으면서 든 생각은, 혹시 스페인, 이중에서도 마드리드엔 눈 먼 이들을 위한 특별한 뭔가가 있나, 했던 것인데, 저 위에서 인상깊게 읽었던 스페인 마드리드 출신(과달라하라 태생인데 그냥 마드리드 출신이라고 쳐주라)의 극작가 안토니오 부예로 바예호의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의 무대가 부르주아 만 다닐 수 있는 최고급 맹학교였던 때문이었다. <밤의 눈>에서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성숙한 여인이 길거리에서 맹인을 위한 복권을 파는 청년과, 호텔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지불하겠다는 구두 계약을 맺어, 다른 곳도 아니고 호텔방에 드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여자’ 루시아는 집에 머물고 거의 완전하게 남성/남편/아버지에게 종속되었던 어머니 세대와 달리 스페인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사회적 성공을 쟁취한 여성계급이다. 가정에서도 경제권을 확보하여 남편과 동등한 위치에 서게 되어 피곤한 직장생활을 마치고 귀가한 남편을 향해 당당하게 설거지를 주문할 수 있는 첫 세대. 십 년에 걸친 결혼생활로 자신의 남편에 대한 사랑은 어느덧 흐지부지한 생활의 권태로 변질되었으나 남편은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의심하지 않는 여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극한 권태를 누구에겐가 토로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와, 나중에 자신을 결코 알아보지 못할 눈 먼 ‘남자’ 앙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고자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게 쉽나? 자기 속을 생전 처음 보는 남자에게 탈탈 털어놓는 것이. 그러나 이게 웬일일까, 눈 먼 천사(앙헬)은 시각을 잃어버린 대신 후각, 청각, 촉각을 통해 여자가 느끼지 못하는 다양한 감각으로 세상을 알고 있었던 거다. 물론 장님이라고 해서 여성주의 작품에 나오는 남성의 시각인 성욕을 감추지는 않는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도 무대가 호텔의 객실, 침대가 놓여있는 곳의 밤이라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주인공들 간의 섹스를 감안(또는 기대)했을 것이다. 정말 이 나이든, 성숙한 여자와 앞을 못 보지만 여자보다 다양한 것들을 감각하는 남자는 하게 될까? 그건 안 알려드릴 것이고, 만일 한다고 해도, 남자는 여자에 의해 선택을 당했으며, 여자가 원한다면 다시는 자신을 찾지 못할 대상이라는 점을 감안하시라. 근데 다 읽고 나니 나는, 특히 여자, 루시아의 모습이 참 쓸쓸했다. 루시아가 여자라서가 아니라 사람이 나이 들면 다 루시아 비슷해지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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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11-18 2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덕분에 항상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알아가는 기쁨!!! ^^ 주말에도 쐬주 한잔 하시고 또 새로운 작가를 알려주세요. ^^

Falstaff 2022-11-19 11:25   좋아요 1 | URL
ㅋㅋㅋ 어느새 주말이군요! 지금 도서관에 나와 있습니다.
유진 오닐의 작품 <지평선 너머> 독후감 쓰려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 첫 페이퍼가 아닐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