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프랑크 베데킨트 지음, 이재진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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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의 정령: 地靈>과 <판도라의 상자> 2부로 되어 있는 연작 희곡 <룰루>. 희대의 팜 파탈 룰루와 그를 둘러싼 남녀들이 벌이는 엽기발랄한 잔혹극이다. 지난 세기 말에 알반 베르크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 <룰루 Lulu>의 대본을 읽으면서 경악했던 경험이 있다. 역사상 가장 엽기적인 팜 파탈은 은쟁반 위에 다소곳하게 올라온 세례 요한의 목을 들고 피가 빠져 창백하게 변한 입술에다 대고 키스를 날린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일 것이고, 가장 널리 알려진 팜 파탈로는 프로스페르 메르메가 쓴 <카르멘>의 타이틀 롤을 꼽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의 대본을 읽으면서 들은 이후 원본 희곡이 궁금하긴 했지만 희곡을 읽는 것보다는 실연을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우리라 생각해 여러 종의 DVD를 보았다. 그러나 세 시간을 훌쩍 넘기는 베르크의 미완성 오페라를 쇤베르크를 이어받은 현대음악으로 보고 듣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서 DVD 감상마저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당시에 대본을 꼼꼼하게 살폈다면 <룰루>가 <땅의 정령>과 <판도라의 상자> 2부로 이루어진 작품이란 걸 알았겠지만 그저 베데킨트의 <룰루>만 열심히 찾아 다녔을 수밖에. <땅의 정령> 대신 <지령地靈>과 <판도라의 상자>라고 제목을 단 책이 성균관대학 출판부에서 나와 있는 것을 모르고 열심히 <룰루>만 찾았으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그러다 올 여름, 지만지 드라마 시리즈에서 <룰루>를 출간했음을 알았고, 득달같이 내가 사는 동네의 시립 도서관에 도서구입을 신청해 어제(09.24, ’22)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모두 읽었다. 확실히 영상물을 보는 것보다 머리 속으로 극을 “나 홀로 연출”해가며 읽는 재미가 훨씬 좋다는 것도 새삼 확인해가면서.


  프랑크 베데킨트의 바이오그래피는 전에 <카이트 후작> 독후감에 소개한 바 있어 작가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곧바로 <룰루>로 들어가자.


  우리나라에서 <룰루>는 겨우 두 번을 공연했다. 첫 공연은 1980년 서울 문화회관(세종 문화회관의 오기인 듯) 별관에서 <루루>라는 제목으로 원작을 김창우 드라마터지(혹은 드라마투르기)가 공연에 맞게 대본화한 것이었고, 두번째는 1999년 동숭 아트센터에서 올린 <룰루>였는데, 1979년 파리 공연의 짧은 오페라 대본, 오페라를 목적으로 작곡가 알반 베르크가 직접 고쳐 쓴 축약본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상적인 <룰루>를 한 번도 공연한 적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봐도, <룰루 – 괴기 비극>은 1988년, 희곡을 쓰고 거의 백 년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수정 없이 원본 그대로 연출한 공연이 함부르크에서 막이 올랐다. 공연에 무려 다섯 시간이 들었다고 하니 제대로 무대에 올리기가 얼마나 힘든 작품인지 알 것도 같다. 우리나라에선 1999년 공연 당시 성균관대학에서 급하게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대본의 번역을 시도해 《지령, 판도라의 상자》를 출판부에서 찍었는데 이때 번역을 주도한 사람이 이 책의 역자인 이재진 단국대 명예교수이었으며, 나중에 보니까 당시의 번역이 하도 참담하여 이번에 다시 작업을 했다고 주장한다.

  독일에서도 독일어로 된 희곡의 정상적인 공연에 거의 백 년이 걸렸던 것은, 겉으로 보면 공연 전에 애초 희곡을 출간할 당시부터 문제가 됐던 비윤리성, 부도덕성, 성적 혼란, 음란함 등의 충격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심이다.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보자.


  모든 일은 그리 크지 않은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는 쇤 박사의 선행에서 시작한다. 몇 년 전 겨울에 쇤 박사는 길거리에 맨발로 서서 꽃을 팔고 있던 어린 소녀를 거두어 교육도 받게 해주고 잘 먹여 통통하게 살이 오르게 해준다. 당시에 이름이 없던 이 소녀가 룰루인데, 쇤 박사는 아이를 ‘미뇽’이라 불렀다. 아이가 성장해 십대 후반이 되고, 당시 십대 후반이라면 이미 완전한 여성으로 성장했다고 봐도 되는데, 그래도 쇤 박사가 미뇽하고 성적 접촉이 있었는지 아닌지 작가는 확실하게 밝히지 않지만, 쇤 박사는 미뇽을 배뚱뚱이의 늙고 자그마한 영감인 병원 원장 골 박사한테 시집 보낸다. 골 박사는 룰루를 새 이름 ‘넬리’라고 부르면서 아내이기 이전에, 혹은 아내이면서 귀여운 소유물 정도로 취급하며 룰루에게 피에로 복장을 입혀 화가 슈바르츠한테 초상화를 그리도록 부탁한다. 슈바르츠는 여태까지 보았던 모든 여성보다 흰 피부와 통통한 몸매에 환상적인 눈빛을 가진 룰루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림을 그릴 때조차 골 박사는 룰루의 곁을 비우지 않아 애만 태우던 슈바르츠는, 어느 날, 역시 화백 슈바르츠에게 쇤 박사가 부탁한 자기 약혼녀의 초상이 얼마나 완성되었는지 보러 와 골 박사-룰루 커플을 만났다가 골 박사만(룰루는 모델을 해야 하니까) 자기 아들 알바가 연출하는 공연의 시연회에 거의 억지로 데려가는 틈을 타 룰루에게 손을 대려 한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고 시간만 흘러 나중엔 마치 <배따라기>에서 쥐도 못 잡은 형수와 시동생 꼴이 되어버린 이들 앞에 허겁지겁 나타난 골 박사는 둘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어 뇌 깊숙한 곳의 혈관 하나가 퐁, 터져,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만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룰루는 슈바르츠 화백하고 두 번째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씨 좋은 쇤 박사가 자신의 배경을 이용해 슈바르츠가 그림 그리는 실력과 별 상관없이 대단히 유명한 화가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거의 백만장자의 자리까지 오르게 해준 결과였다. 이제 유명한 화가가 된 슈바르츠가 자신을 ‘이브’라고 부르며 계량할 수 없이 사랑하는 것도 아는 룰루. 그러나 룰루는, 앞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육체적 첫 남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쇤 박사가 참의원 폰 차르니코프 씨의 외동딸 샤를로테 마리 아델라이데 양과 약혼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이 쇤 박사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 저 속에서부터 밀려 올라오는 질투를 어찌할 줄 모른다. 이 와중에 쇤 박사는 도덕적 기준이 높은 화가에게 자신과 룰루의 관계를 털어놓고 이를 들은 화가는 쇤과 룰루가 했네, 했어. 그것도 여러 번, 매우 많이 했네, 이렇게 생각해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골방으로 홀로 들어가 새파랗게 날이 선 면도칼로 자기 목을 스윽, 그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쇤 박사는 약혼을 취소하고 이제 본인이 룰루와 결혼해 살고 있는데, 결혼하면 좋을 거 같았지? 천만의 말씀. 쇤 박사는 앞에서 죽은 골 박사만큼은 아니지만 이미 많이 늙어 몸과 마음, 특히 몸의 특정 부분이 시들시들해지는 바람에 도무지 만족을 할 수 없는 룰루가 여러 남자, 그러니까 예스럽게 말해서 샛서방을 두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데 그깟 샛서방들을 빼고 얘기해도, 쇤 박사와 룰루 사이에 젊은 남자가 하나 있었으니, 골 박사 죽기 전 잠깐 얘기했던 쇤 박사의 아들 알바. 시인인 것은 확실하고 작곡가인지 극작가인지 하여튼 극공연을 위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룰루를 아버지가 전에 부르던 애칭인 ‘미뇽’이라고 자기 새엄마를 부르는 거였다. 룰루가 보기에 알바가 참 딱해서 오래된 진실 하나를 고백한다. 자신이 알바의 엄마이자 쇤 박사의 아내를 독살했다는 거. 그럼에도 룰루에 대한 알바의 사랑은 식지 않는다. 이 둘의 이야기를 2층 난간에서 듣고 있던 쇤 박사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오직 룰루 하나만을 위해 유력한 집안의 외동딸과의 약혼도 취소해버리지 않았는가 말이지. 자신은 룰루를 위해 큰 희생을 하나 했던 거였는데, 자기 전처가 죽은 내력은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고 알바와 하는 짓이 눈에 시어 권총을 들이밀고 그걸 룰루의 손에 쥐어준 다음 자살을 하라고 총구를 룰루의 가슴에 향하도록 만든다. 이러다가 집안 구석구석에 숨은 샛서방들이 도처에서 도망하려고 튀어나오는 찰나, 틈을 잡은 룰루는 총구를 쇤 박사 쪽으로 돌리고, 때마침 등을 지고 선 쇤 박사를 향해, 권총의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무차별 난사하기에 이른다. 죽어 늘어진 쇤의 머리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룰루, 이미 영혼이 떠나 창백해진 입술 위에 자기 입술을 포개며 1부 <땅의 정령>의 막이 떨어진다.


  2부 <판도라의 상자>까지 모든 이야기를 소개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할 듯하다. 그건 직접 책을 사거나, 빌리거나 해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하여튼 이런 작품이 20세기 초반에 다른 나라도 아니고 독일에서 출간을 했다니, 나오자마자 곧바로 검열에 걸려 모든 책에 대한 회수조치 처분을 받았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 터. 위에서처럼 골 박사, 슈바르츠 화백, 쇤 박사, 알바 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참 다양한 인물이 추가된다. 생각해보시라. 공연 시간만 다섯 시간이 넘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등장인물이 나올 지. 그런데 이들의 행동양식에 관해 이야기해보자면, 독후감이 너무 길어질 거 같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진짜로 책을 읽은 다음 든 생각은, 독일어 사용권의 스위스 사람인 베데킨트가 혹시 독일의 부조리 문학을 선도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는 점만 이야기하고 오늘의 독후감을 접겠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 역시 흥미진진한 독서생활을 경험할 특별한 기회를 잡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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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0-07 0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완전 빨려들어갈 듯 이 리뷰를 읽었네요. ㅎㅎ

Falstaff 2022-10-07 12:1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러셨습니까. 2부 <판도라의 상자>로 가면 내용이 완전히 달라져요! 무대도 독일에서 시작해 파리를 거쳐 런던까지 옮아가고요.

그레이스 2022-10-07 1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배따라기 ...^^
흥미진진하긴 하네요.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Falstaff 2022-10-07 12:18   좋아요 2 | URL
화가하고 룰루가 숨바꼭질 하는 장면은, 읽자마자 배따라기부터 생각나더라고요. ㅋㅋ
베데킨트가 없었다면 독일 드라마는 무지하게 재미 없는 상태가 계속되었을 거라고들 하더군요.
한 여자한테 넋이 빠져 난리가 나는 작품이 또 생각납니다. 카렐 차페크가 쓴 드라마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입니다. 열린책들 <곤충극장>에 실린 희곡인데요, 거기서는 소녀 티를 막 벗은 여자가 아니고 무려 3백년을 산 절세미녀 마르티 이야기. 읽어보셨을 듯합니다. ^^

mini74 2022-10-07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이 정신없는 집구석은 뭔가요 ㅎㅎ 룰루 몸에 꿀 발렸나요. 이게 무슨 ㅎㅎㅎ

Falstaff 2022-10-08 17:20   좋아요 1 | URL
ㅋㅋ 꿀 발라요? 나인 하프 위크. 명작입니다. 진짜 꿀 바르는 장면 나옵니다. ㅎㅎ

coolcat329 2022-10-08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대의 팜므 파탈이라니 이 자체로도 엄청 끌립니다.
저는 우선 카르멘으로 워밍업을 하고 룰루로 가겠습니다.😅

Falstaff 2022-10-08 17:21   좋아요 2 | URL
카르멘은 비제가 워낙 잘 만들어서 그런지 메르메 원작이 별로더라고요. ㅎㅎㅎ

coolcat329 2022-10-08 18:09   좋아요 2 | URL
그럴 거 같아요. 오페라 전혀 모르지만 카르멘은 정말정말 보고 싶어요.
노래, 의상, 내용 다 너무 좋아요~

독서괭 2022-11-09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아요 눌러놓고 자세히 못 읽었던 리뷰인데, 넘 재밌네요. 줄거리가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1부 마지막이.. 그럼 2부 내용은 대체?? 완전히 달라진다니 궁금합니다. 쇤 박사 골 박사 왠지 웃겨요 ㅋㅋㅋ

Falstaff 2022-11-10 05:30   좋아요 1 | URL
전 1부가 더 재미 있었습니다. 근데 스토리는 넘 흥미롭지요? ㅋㅋㅋ 기가 막힌다니까요. ^^

바람돌이 2022-11-09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막장 쇤박사님 집안에 진짜 룰루는.... ㅋㅋ 항상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쓰시는 골드문트님이십니다.

Falstaff 2022-11-10 05:31   좋아요 0 | URL
하여간 스포일러는 좋지 않다고 믿거든요. ㅋㅋㅋ 이 책처럼 재미나 경우는 더 하고요. 그래야 새로 읽는 분이 더 재미나지 않겠습니까. ㅋㅋㅋㅋ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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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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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모신 하미드의 근본을 따라가면 펀자브와 카슈미르 출신의 후예, 그러니까 <악마의 시>를 써 세계적 명성을 누리기 시작한 살만 루시디와 한 고장 사람이다. 하지만 하미드 개인으로 보자면, 세 살 때 미국 스탠퍼드로 유학을 한 아빠의 손을 잡고 캘리포니아에 가서 아홉 살 때까지 지내다가 파키스탄으로 귀국해 파키스탄 라호르의 미국인 학교에 다닌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하미드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동부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을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이 정도면 파키스탄 은수저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하미드는 한 술 더 떠서 전공인 경영학 외에도 심심풀이로 토니 모리슨 등을 사사하며 소설을 쓰기도 하다가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기에 이른다. 이게 2000년. 이듬해 하미드는 연봉 8만 달러의 대졸 초임을 주는 기업평가 컨설팅 업체에 취직해 필리핀 등지의 아시아 지역을 출장 다니는 한편 소설 쓰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모신 하미드의 작품 목록에, 비록 그가 파키스탄 아메리칸이기도 하지만, 아시안 무슬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2001년에 911 테러가 발생한 후 이후 무슬림 아시아 국가 또는 정부와 아주 복잡한 상황에 직면했으니.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한 모신 하미드의 책을 원본의 출간 순으로 보면 <주저하는 근본주의자>(2007),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2013), <서쪽으로>(2017)의 순인데 <주저하는…>에는 뉴욕 무역센터 빌딩 테러 이후 미국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공격과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냉담한 시선 등을 잘 그리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서구의 공격을 피해 유럽으로 피난하는 아시아 난민들을 묘사했다. 이 두 작품 사이에 발표한 <떠오르는….>은 이것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아라빈드 아디가가 써서 맨-부커 상을 받은 수작 <화이트 타이거>를 한 번 더 읽는 느낌이 든다. 일단 현대화, 근대화 말고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파키스탄이나 인디아를 예상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시골 출신, 그것도 깡촌 출신의 소년이 대도시로 옮겨와 온갖 고난과 부정부패 속에서 살아가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거부가 되고 등등의 장면을, 모신 하미드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이게 무슨 자기계발서인 것처럼 가볍게 읽기에 즐거운 2인칭 소설을 써 놓았다.

  세상에 소설문학이 다 진지할 필요는 없다. 비록 삶이, 당신의 것이나 내 것이나 마찬가지로 온통 비극으로만 직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마저 전부 비극이어야 한다면 과연 그걸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나부터 당장이라도 소설 읽기를 멈추고 말리라. 만일 당신이 이 책을 읽으려 한다면,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같은 묵직한 주제를 기대하는 대신, 한 발랄하고 기발한 작가가 자신은 경험해보지 못한 가난한 열대 아시아의 촌놈을 오로지 자신의 상상력에 의하여 조금씩 신분상승의 기회를 부여하고, 자본주의와 부패와 권위주의의 밀림 속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게 하는 경쾌한 독서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시면 좋겠다. 물론 이 와중에 적절한 애정, 제일 재미있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등장하고, 거기에다 약간의 베드신까지 등장하면 금상첨화일 터이다. 힌트를 드리자면,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베드신도 있다, 있어.


  주인공의 이름은 책이 끝날 때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저 2인칭 대명사인 ‘당신’으로만 대신한다. 이이가 사는 아시아의 시골을 소개해보자면, ‘당신’이 1930년 전후 출생인데, ‘당신’이 혈중 빌리루빈 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해 노란 색을 띤 눈의 흰자위를 갖는 질환, 즉 황달에 걸렸지만 높은 소아사망율에 단련된 부모는 ‘당신’이 그리 쉽게 죽지는 않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던 시절이니 한 1935년 정도일 가능성이 높은 시기에, ‘당신’은 물론이고 동네의 누구도 초콜릿, 리모컨, 스쿠터, 운동화라는 것을 단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거 혹시 하미드의 첫번째 에러 아닌가 싶다. 이후 ‘당신’의 80대 중후반까지 시간이 흘러 201X년이 되는 터, 70~80년 전, 대략 1940년으로 말할 거 같으면, 파키스탄이나 인디아의 멀고 먼 시골이 아니라 도쿄는 아니더라도 교토에서도 초콜릿과 운동화는 먹어보고 신어본 아이도 있었겠지만, 리모컨, 스쿠터라는 건 구경조차 못했을 터이다. 하여튼 일제 강점기 말 조선반도의 시골 정도로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이깟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독자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려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소도구를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뭐 솔직히 말해, 그건 아니겠지만서도…

  원래 소작농이었던 아버지는 도시로 나가 월 1만을 받는 요리사로 있다. 1만이라는 돈이 시골에서는 큰 돈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도시에선 결코 그렇지 않아 할머니, 엄마, 누나, 형, 그리고 ‘당신’까지 다섯 입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그저 1년에 서너 번 집에 들러, 밤이 깊어 아이들이 잠에 빠지거나 빠진 척을 하면, 엄마의 손을 이끌고 벌판으로 나가 사랑을 나누고 한 주일 정도를 보낸 다음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는 했다. 물론 자식 사랑도 깊은 양반이긴 했지만 빈 주머니에선 자식 사랑마저 그리 깊게, 많이 나오는 법이 아니니 독자가 이해해야 할 밖에. 이렇게 살다가, 황달 걸린 아들에게 약이랍시고 무즙만 떠먹이는 아내를 보던 아버지는 드디어 함께 도시로 가자고 선언을 해, 선언 한 달 만에 온 가족이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승객을 실은 버스의 지붕에 올라 몇 시간이고 달려서 도시에 도착한다. 이제 서막이 올랐다는 거다.

  도시에 도착한 후 펼쳐지는 본론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그건 책의 목차에 다 나와 있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처럼 일단 ① 도시로 나가서, ② 적어도 조금은 교육을 받고, ③ 사랑엔 빠지지 말아야 하며, ④ 꿈이나 좇는 이상주의자는 멀리하고, ⑤ 중원의 고수를 찾아가 그에게 배움을 얻어야 한단다. 여기에 ⑥ 스스로, 자신만을 위해 일을 하고 ⑦ 폭력 사용도 마다하지 말아야 하며, ⑧ 무엇보다 부패한 관료와 친구가 되고, ⑨ 전쟁 기술자들을 후원해야 한단다. 이후에도 세 가지 해야 할 일이 더 있는데, 그건 이미 더럽게 성공한 다음에 고려하는 사항이니 굳이 아까운 지면에 보탤 이유는 없다. 다만 이후에 나올 세 가지 가운데 마지막 두 개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작지 않다는 정도만.

  서론을 소개했고, 본론으로 목차를 올리니까, 정말로 아라빈드 아디가의 소설 <화이트 타이거>하고 비슷하겠지? 그렇다. <화이트 타이거>를 읽어본 분은 굳이 이 책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듯한데, 그것도 쉬운 결정이 아닌 건, <화이트 타이거>가 그만큼 재미 있었을 것이니. 하여간 가벼운 분량의 책이라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치울 수 있어 부담없이 하루를 재미나게 보내기에 맞춤하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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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10-04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목차만 봐도 재밌습니다. ㅋ 남은 세 가지가는 또 뭘지 ㅎㅎ 궁금하네요.
킬링 타임용 책으로 찜해두겠습니다~^^

Falstaff 2022-10-04 11:4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정말 가볍게 읽기엔 최고입니다. 마지막 세 가지, 이건 클라이맥스라서 말씀드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어엿비 여겨 주세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2-10-04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금을 울리는 항목은 읽는 자에게!;;
9개도 어떤 흐름으로 갈지 짐작이 갑니다^^

Falstaff 2022-10-04 11:44   좋아요 1 | URL
오, 근데 예상 외일 수도 있답니다. 착한 소설의 결말이 대개 그렇듯이요. ^^

다락방 2022-10-04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보고 자기계발서인줄 알았는데 저자가 모신 하미드여서 뭐라고? 하고 읽었던 책입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굉장히 강렬했거든요. 그 911테러에 대해 주인공이 느끼는 지점에서 아무리 미국인이 되고 싶어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직장을 얻고 미국 여자를 사랑해도, 사람의 본질인 그 안에서 변화되지 않고 있다,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전 그 책 되게 좋아했거든요.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을 읽고 저도 나쁘지 않았는데 뭐라고 써놨더라 봤더니 별은 네개 주고 슬펐다고 썼네요. 사람이 참, 기록을 자세히 해야 되는데, 내용 기억나지도 않으면서 슬프다고만 써놔가지고 어린 시절부터 사랑에 빠졌던 남녀가 늙어서도 만났다 뭐 이런 어렴풋한 것만 기억이 납니다. 하하하하하.

그나저나 제가 골드문트 님 리뷰를 읽고 화이트 타이거를 살려고 했었는데 그 다음이 기억이 안나네요. 샀나 안샀나..

Falstaff 2022-10-04 11:47   좋아요 1 | URL
모신 하미드가 경영대학 출신이잖아요. 그가 자기계발서를 썼다고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라서 그저 휙~하고 지나쳤는데요, <서쪽으로> 독후감을 올렸더니 다락방님이 이 책을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하미드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아하, 그랬나? 그러면 읽어봐야지, 하고 샀다가 이제야 읽은 책입니다.
ㅋㅋㅋ 다락방님 덕에 재미난 책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22-10-04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타이거 다시 읽는 기분이라고요.
읽진 않았고 영화를 보았어요. 대충 그런 이야기구나 짐작이 되네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부터 읽어봐야겠어요. 이 책도 데려갑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베드신이 있긴 있다고요 ㅎㅎㅎ 늘 그렇듯 재미있게 리뷰 읽었습니다 ^^

Falstaff 2022-10-04 11:48   좋아요 1 | URL
근본주의자, 좋습니다.
ㅎㅎㅎ 제 독후감을 늘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stella.K 2022-10-04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베드신도 있다, 있어.ㅎㅎㅎ
왠지 딱 제 수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베드신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ㅋㅋ
작가가 진짜 은수저네요.
소설가들은 2인칭 소설 잘 안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신경숙이 ‘경숙의 난‘ 있기
바로 전 <엄마를 부탁해>인가 어디서 2인칭 소설 썼는데 괜찮았는데 말이죠.

Falstaff 2022-10-04 14:30   좋아요 2 | URL
작가 같은 사람, 프린스턴 경영학과 나와, 소설가도 되고, 초봉 8만 달러를 받기도 한데, 만일 거기다가 몸 좋고 생기기도 잘 생겼으면 얼마나 재수 없었을까요? ㅋㅋㅋㅋ
제가 읽은 2인칭 소설 가운데 제일 좋았던 건,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알렉시>였습니다. ㅎㅎㅎ 전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 영숙이 얘기는 안 한답니다. ^^
 
아리스토파네스 희극전집 1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아리스토파네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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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마흔 개의 희극을 생산해 온전한 열한 개 작품을 남긴 아리스토파네스를 사람들은 흔히 “희극의 아버지” 또는 “고전 희극의 왕자”라고 추앙한다.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 1》은 그의 열한 작품 가운데 초기 여섯 작품을 싣고 있다. 혹시 이 책을 읽을 다른 분이 있다면, 본문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씀드리는 바, 기원전 5세기,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에 열광적으로 공연을 했던 희극, 비극 말고 희극 작품을 21세기에, 학문적 관심이 아니라면, 드라마틱한 코미디로 읽기가 그리 쉽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리스토파네스를 통해 발견한 그리스 고전 희극의 특징은, 실제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을 했던 소크라테스와 그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전시에는 항상 그렇듯이) 아테네를 대표해 가장 적극적으로 전쟁을 통솔해나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도 명예로운 이름을 올리는 클레온과 극적으로 반목하여 희극에 실명으로 등장시켜 망신을 주고 있는 정치 드라마가 주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스 로마 고전의 선구자이자 권위자인 역자 천병희에 따르면, 아리스토파네스는 당대 가장 치열한 보수파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클레온의 민중선동적 주전론에 극적으로 반대한 건 당연하다고 쳐도, 소크라테스마저 철학자가 아닌 궤변론자로 인식해 당시 민중의 의식을 호도해, 능숙하게 익힌 논리로 사악한 것으로 하여금 올바른 것을 능히 이기게 만드는 법을 주로 가르치는 썩은 지식인 정도로 여겼다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에 사약을 들이켰으니 이 책에 실린 희극을 다 공연할 때까지 자신을 희화화 한 극을 전부 보았을 텐데, 원래 아내가 사나우면 사람이 점잖아지는 법이라서(나를 봐라, 나를 봐!) 그리 크게 열을 내지는 않았지만, 기원전 422년에 암피폴리스 전투 중에 전사해버린 클레온은 주전파답게 아리스토파네스와 격돌을 했던 모양이다. 당시의 보수주의자들은 얻을 것도 없이 이웃한 강국 스파르타와 만날 코피 터지게 싸울 이유를 납득하지 못해서 얼른 평화조약을 맺자고 한 반면 클레온을 수장으로 하는 강경파들에게는 이도 들어가지 않았던 건 물론이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해놓고도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린치를 가하지 않았던 당시의 아테네가 얼마나 문화적인 공기를 향유하고 있었는지는 유신과 5공을 겪은 우리는 아주, 아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터.


  책의 첫 작품으로 실린 <구름>의 타겟이 바로 소크라테스다. 여기서 궤변론자이자 개소리 전문가 소크라테스는 돈만 받으면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년들에게 옳은 것(正)과 그른 것(邪)을 토론자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는 기법을 가르쳐주는 일을 업으로 삼는다.

  젊은 시절에 시골에서 몸치장도 하지 않고 더운물에 목욕도 하지 않으며 벌떼, 양떼, 그리고 올리브 나무와 열매 같은 것들을 향유하며 행복한 생활을 하던 선량한 스트렙시아데스가, 지금은 비참하게 죽기를 앙망하는 중매쟁이의 소개로, 거만하고 사치스러운 도시 아가씨를 만나 결혼은 했다. 그리하여 둘이 신혼의 침상에 올랐을 때, 신랑의 몸에서는 지게미와 치즈와 양털 냄새가 진동을 한 것과 대조적으로, 샤프란 색의 옷과 프렌치 키스와 낭비와 식도락과 애욕과 욕정 덩어리였던 예쁜 신부의 몸에서는 향수 냄새가 흘렀는데, 이런 극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 사이엔 건장한 아들 페이딥피데스가 태어났다. 이 귀한 아드님이 대가리가 커지자 취미를 붙인 것이 마차 경주. <일리아드>에 보면 아킬레우스와 헥토르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마차 전투를 치루는데, 전쟁 중이라도 옛 사람들은 정취를 찾아 잠깐 휴전을 선언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레슬링, 권투, 달리기, 그리고 마차 경주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가. 바로 이 마차 경주에 우리의 페이딥피데스가 전력 투구를 시작했고, 그때나 지금이나 말 한 마리 건사하는 게 보통 버거운 것이 아니어서, 불쌍한 주인공 스트렙시아데스는 날이면 날마다 고리의 부채만 늘어가고 있던 거였다.

  생각하다 못해 아버지가 스스로 이웃하고 사는 소크라테스의 학습 방에 들어가 그로부터 채권자에게 돈을 갚지 않아도 되는 토론 법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게 마음대로 되나. 이제 늙어서 머리가 돌지 않아 열을 가르쳐주면 아홉을 잊고, 그나마 한 시간만 더 흐르면 그것도 잊어버려 놀라운 교수법을 지닌 소크라테스도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며 퇴학을 시켜버린다. 대신 아들 페이딥피데스를 받아들여 천하에 둘도 없는 말장난을 성공적으로 가르쳐주는데, 이게 과연 아버지 스트렙시아데스 마음대로 되기는 할까?

  이걸 읽으면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이던가에서 말했던 명언. 희극엔 최고의 악당이, 비극엔 최고의 선량한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그럼 누가 악당일까? 젊은 것이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말 타고 노는 일로 가산을 탕진한 아들? 아들에게 법을 거꾸로 세우는 말재주를 가르치는 소크라테스? 피해자이자 주인공인 스트렙시아데스는 아닌 게 분명하고. 결론은 소크라테스인데 하, 그것 참.


  클레온에게 악역을 맡긴 작품들은 몇 개나 나오지만, 작품 소개는 생략하고 마지막에 실린 <새>를 잠깐 이야기하겠다. 이 작품은 책에 실린 다른 것들과 확연하게 구분을 할 수 있는데, 이 보수주의자 아리스토파네스의 책을 읽으면서 유일하게 현실과 떨어진 상상의 세계로 독자와 관객을 인도하기 때문이다.

  <새>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획기적 분기점이 된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서 가차없이 코피가 터져 치명적 상처를 입은 직후에 쓴 작품이다. 도널드 케이건이 쓴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 시라쿠사 전투가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지만, 속상하게도 오래 전(2014년)에 읽어 왜 시칠리아까지 기어들어 싸웠는지, 어떻게 아테네가 패전했으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해서는 다 잊었다. 하여튼 이제 아네테 시민들에겐 일종의 공황상태가 벌어진 것은 확실하다.

  아리스토파네스의 <새>에도 이런 인간이 둘 등장한다. 에우델피데스와 페이세타이로스. 에우델피데스는 ‘낙천가’, ‘희망의 아들’이란 뜻이고 페이세타이로스는 ‘믿음직한 친구’라는 뜻이라고 431페이지 주석에 쓰여 있다. 이 순간, 팍, 머리에 떠오르는 다른 작품 하나. 발터 브라운펠스라는 유대인 작곡가가 만든 같은 이름의 <새>라는 오페라. 브라운펠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두 명의 주인공은 ‘좋은 희망’ (Hoffegut: Good Hope)과 ‘충실한 친구’(Ratefreund: Loyal Friend)가 비슷하다. 흉악한 그리스 신화, 후투티로 변신한 테레우스, 나이팅게일로 변신한 테레우스의 처 프로크네, 제비로 변신한 프로크네의 여동생 필로멜레의 다음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하여간 시라쿠스 전투에서 크게 패전하는 바람에 현타를 진하게 경험한 두 늙은이 에우델피데스와 페이세타이로스는 진한 현실 도피자가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이들은 도시 아테네를 떠나 숲 속에서 새들의 나라, 아직도 새들의 왕을 해먹는 왕년의 인간 테레우스가 변한 후투티의 영토로 들어가 초연하게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들은 후투티를 설득해서 제우스가 사는 하늘과 인간이 사는 땅 사이에 성을 건설해 신과 인간을 정복해버리라고 살살 꼬드긴다.

  신과 인간의 사이에 존재함으로써, 신들이 먹고사는 미세먼지, 즉 제물로 바친 짐승들의 연기를 중간에서 약탈해 이들을 굴복시키자는 것이다. 그래 곧바로 새들은 허공에 대규모의 성을 건설하게 되고, 힘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또 자연스럽게 나라를 건설하니, 나라이름을 “구름뻐꾹 나라”로 명명한다.

  이를 심각하게 여긴 프로메테우스가 전령 또는 스파이로 구름뻐꾹 나라로 내려와 하는 말이, 얘들아, 제우스한테 덤벼, 덤벼. 자기 딸을 아내로 보낼 때까지 개겨! 프로메테우스의 등장까지 발터 브라운펠스가 작곡한 <새>와 똑같다. 다만 브라운펠스는 새들 가운데 독수리라고 불리는 외로운 현자가 있어서 이렇게 조언해주는 것이 차이가 난다.


  “사람들의 우정이라고?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땅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먼지 구덩이 속에서 숨쉬는 그자들, 질투어린 눈길로 쏘아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고, 인생을 부정하는 천박한 것들이 우리한테 접근하고 있다는 걸 인식해라. 우리가 창공의 순정한 높이에서 우아한 궤도를 그리며 성스러움과 빛 가까이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었는가? 도대체 사람들이 우리한테 뭘 원하겠니?”


  브라운펠스는 극장에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 <새>를 직접 관람하고 자신 스스로가 대본을 각색해 자신의 작품 <새>를 만들었다. 멘델스죤, 쇤베르크, 말러 등 유대인과 유대 혼혈 작곡가들의 작품을 완전히 말살하려고 했던 국가사회주의 치하에서 그들의 견해를 완전 무시하고 만든 작품이니, 펠레폰네소스 전쟁의 끝물, 살벌했던 시기의 아테네에서 공연했던 비유적 희극을 자기 것으로 만든 건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을 듯했다. 하여간 아리스토파네스건 브라운펠스건 편안히 쉬시라.



내가 갖고 있는 발터 브라운펠스, <새> CD 표지. 그림이 독특하고 예뻐서 가져왔다.

 히틀러가 브라운펠스의 50% 유대혈통을 알지 못한 채 국가사회주의 독일의 국가를 작곡해달라고 부탁하자, 브라운펠스는 거칠게 거절했단다. 작곡했으면 더 우스운 꼴이 될 뻔했겠다.


 * 브라운펠스의 <새>의 결말은 아리스토파네스와 달리 제우스가 바람을 한 번 훅 불자 새들이 쌓던 허공의 성이 쑥대밭으로 허물어지고, 인간들 역시 새들에게 쫓겨나 다시 속세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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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9-30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쌩뚱 맞지만 그리스 사약은
어떤 스타일인지 좀 궁금합니다.

Falstaff 2022-09-30 17:05   좋아요 1 | URL
그리스 시대에 벌써 비소의 존재를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사약을 먹은 다음에 시간이 좀 지나 죽은 걸로 봐서 비소는 먹지 않았을 거고요, 생약 성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아니면 비소 먹고 곧바로 죽었는데, 주인공은 죽을 때 죽더라도 할 말은 다 하고 죽는다는 소설작법 3장 1절에 따라 후세의 인간들이 사약 먹은 다음에도 몇 마디 하게끔 연출했을 수도 있고요.
중국의 한나라 시대에는 짐이란 새의 몸 속에서 추출했다는 짐독을 사약으로 썼다는데 짐이란 새가 과연 있는지, 있다면 이마트에서 한 마리에 얼마 주면 살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울나라의 사약은 비상이라고 하는 비소가 있었음에도 생약 성분의 독을 사용했지만 그게 생약 성분이라 먹는 즉시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곧바로 죽지 못하거든요. 그래 사약은 대개의 경우 그냥 형식적인 절차로, 사약 마신 다음에 형리가 가서 수양대군이 단종 죽인 것처럼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하더군요.

coolcat329 2022-09-30 1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를 자신의 희곡에서 희화화하여 악당으로 묘사했군요. ㅋㅋ ‘희극엔 최고의 악당이 비극엔 최고의 선량한 사람이 등장‘한다는 말 정말 그런 거 같네요.

브라운펠스는 첨 듣는데 히틀러와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군요. CD표지 정말 예쁩니다. 브라운펠스의 오페라 <새>의 내용을 이미 알고 원작인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을 읽으니 골드문트님은 재미있으셨겠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

Falstaff 2022-09-30 20:00   좋아요 0 | URL
굳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_-;;
아무래도 너무 낡아서 말입죠.

브라운펠스의 작품도 재미있는데, 이이의 활동 자체가 나치에 의해 소위 퇴폐예술로 직혀서 ㅎㅎㅎ, 근데 퇴폐음악, 퇴폐미술 같은 거 찾아 즐기는 재미가 꽤 괜찮다는 말씀입죠. ㅎㅎㅎㅎ
물론 여기서 말하는 ˝퇴폐˝는 우리가 아는 단어가 아니라 나치의 시각에서 보면 퇴폐라는 뜻이긴 합지요. ^^;;

그레이스 2022-10-01 2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리스토파네스 읽을 당시에는 몰랐는데 읽고 난 한참 후에 그 풍자의 힘에 대해 새삼 느꼈어요.

Falstaff 2022-10-02 10:22   좋아요 1 | URL
옙. 아무래도 풍자는 희극이 제격입지요. 당하는 사람은 그만큼 더 환장하겠지만 말입니다. ㅋㅋㅋ
 
톨레도의 유대 여인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소설선집
리온 포이히트방거 지음, 김충남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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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온 포이히트방거(이후 “포이히트방어”로 표기)는 1884년에 뮌헨에서 부유한 유대인, 이라기보다 독일 시민으로 태어나 1차 세계대전에 보충병으로 징집당했다가 병명 불상의 이유로 의가사 제대를 했다. 포이히트방어 본인은 20세기 두 번의 불행한 큰 전쟁을 겪은 다음 유대인 말고 세계인으로 삶을 지속했지만 태어날 당시엔 ‘유대인을 위한 마가린’ 제조공장의 사장이었던 부친 지그문트 포이히트방어, 모친 요한나 네 보덴하임머 부부의 전통적 유대교를 지키는 집안 장남이었다. 뮌헨과 베를린의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하고, 1907년에 하인리히 하이네의 작품 <바하라흐의 랍비>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위가 취소를 당하기도 하고, 1920년대 히틀러가 집권한 이후 나치의 핍박을 받은 경험 등,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겪어야만 했던 온갖 신난의 경험이 그를 종교와 민족 등에 대한 깊은 사유로 이끌었을 수도 있겠다.

  1940년 프랑스 엑상 프로방스에 머물던 포이히트방어는 독일이 서유럽을 침공하기 시작하자 포로수용소에 갇혔다가 미국 영사관의 도움을 받아 여장을 한 채 마르세유로 탈출에 성공한다. 당시 유럽을 탈출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경로인 독일-프랑스-피레네 산맥–스페인–리스본–뉴욕1이라는 힘겨운 과정을 거쳐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한 그는 그곳에서 후기의 대표적 장편소설인 <미국을 위한 무기>,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 그리고 <톨레도의 유대여인>을 발표한다. 우리말로 번역해 발매하고 있는 포이히트방어의 책은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문학과지성사, 2018)과 오늘 소개하는 <톨레도의 유대 여인> 두 권 뿐이다. 후기 작 뿐만 아니라 그의 초기 역사소설이자 작가로 명성을 날리게 해준 <유대인 쥐스>도 이른 시일 내에 소개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쉽지는 않을 듯.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함>은 “18세기 말 무렵 서유럽의 거의 모든 곳에서 중세는 말살되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무대는 이런 서유럽의 분위기와는 관계없이 세르반테스 시절과 비슷하게 여전히 “완고한 중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던 이베리아 반도, 스페인이었다. 옆나라에는 대혁명이 발생하면서 근대의 싹이 움트기 시작한 역사의 격변기 속 스페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록 식민지 전쟁에서 판판히 무릎을 꿇기는 했으나, 여전히 중세의 모습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축복받은 자연의 나라’ 스페인이었다면, <톨레도의 유대여인>의 무대는 세비야, 코르도바, 그라나다를 여전히 무슬림이 지배하고 있던 시절의 이베리아 반도, 이 가운데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 톨레도를 배경으로 한다. 자우메 카브레의 말에 따르면 “지구가 편평했던 시절” 이야기. 이제 고대가 끝나고 바야흐로 중세가 시작하려하는 때.

  특별하게 주인이라고 내세울 것 없던 이베리아 반도에서 최초로 통치권을 쥔 건 한니발로 대표하는 카르타고였다고 포이히트방어는 주장한다. 카르타고의 짧은 통치 시기가 지나가고 이어서 6백년 간 로마인의 지배를 거쳐, 서고트족 기독교도가 3백년간 통치한다. 이때 로드리고라는 이름의 멍청한 왕이 있었는데 최고의 영웅이자 명장인 쥴리아노 장군이 북 지중해 해안선을 지키러 출정하고 없는 사이 장군의 딸 플로린다를 무책임하게 자빠뜨리고 만다. 플로린다의 배는 불러오지만 돈 로드리고는 이혼할 수 없는 가톨릭 유부남①이었던 것.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쥴리아노 장군은 눈이 뒤집혔을지언정 명장답게 완전하게 가면을 쓴 채 왕을 접견해, 무어족의 씨를 말리기 위해 병력이 더 필요하다면서 왕의 군사를 빌려, 용감하게 무어족을 향해 전선으로 떠난다. 그러나 장군은 무어족과 연합해 거꾸로 창을 거꾸로 쥐고 스페인을 침공해서 돈 로드리고 부부를 참살, 이베리아 반도를 무어족에게 고스란히 가져다 바친다.2 무려 4백년 동안. 작품이 시작하기 백 년 전쯤, 산악지방의 험한 지형에 기대 생존한 마지막 서고트 족이 험한 자연에 의하여 단련된 야성으로 이베리아 수복 전쟁을 시작했고, 무려 4백년에 이르는 평화로운 시간 동안 화려한 면모를 자랑했지만, 시간의 풍화작용으로 인해 유약해질 대로 유약해진 무어족은 전쟁에 패해 순식간에 멸망의 길을 걷게 되는가 싶었는데, 이들은 지중해 남쪽 아프리카 무슬림에게 구원을 요청해 주로 사하라 남부의 거센 무슬림이 주축이 된, 수를 셀 수도 없는 병력을 이끌고 들어와 예전만큼은 아니더라도 남부 이베리아 반도의 상당 지역, 세비야, 그라나다, 코르도바에서의 지배를 유지하게 된다.②

  ①을 귀찮게 왜 썼느냐 하면, 이 로드리고 왕의 멀고 멀고 또 먼 후손이자 <톨레도의 유대 여인>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카스티야의 국왕 돈 알폰소 역시 이혼할 수 없는 가톨릭 국가의 왕이면서 표제 “톨레도의 유대 여인”인 라헬 이븐 에스라와의 사이에 사생아이자 외아들인 산초를 생산한다. 이걸로 봐서 스페인에서는, 나중에 헨리 2세의 웬수 같은 아내 엘레오노르3의 말을 참고하면 전 유럽의 이혼할 수 없는 왕들에겐 사생아를 만드는 전통이 내려온 듯하기 때문이다. ②는 작품의 시대를 작가가 자신에게 주어진 허구의 특권으로 약간 조정해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가 아빠 헨리 2세가 죽자마자 잉글랜드 군사를 이끌고, 당시엔 가히 세계대전이었던 3차 십자군 전쟁에 참전하면서 철없이 호전적이기만 한 카스티야의 왕 돈 알폰소 역시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수십만의 무슬림 군을 격멸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어떻게 해서든지 톨레도의 유대 여인 라헬에게 그녀의 고향이기도 한 세비야를 선물해주려 한다.

  마호메트 사후 80년에 안달루시아를 침공한 무슬림은 피레네 산맥에 이르는 전 이베리아 반도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유럽과 비교도 할 수 없이 우수한 무슬림 문화를 들여와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유럽에서 가장 아름답고 잘 정돈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로 만들었다. 코르도바는 서방 칼리프의 관저 소재지로 전 서방의 수도로 여겨졌으며, 관개시설을 개선하고, 이에 따라 상상도 못했을 정도로 토지가 비옥해지고, 고도로 발달한 무슬림의 광산, 제련기술, 정교하고 훌륭한 양탄자와 직물기술을 들여왔다. 코르도바 시에 학교가 무려 3천개가 있었으며 모든 대도시에 대학을 설립하고, 당연히 유명한 무슬림 도서관4을 만들었다. 그리스 철학을 새로운 사상 체계로 인정한 것은 당연히 피지배민족에게 온정을 베풀었다는 증거라서 기독교도를 위해 복음서를 아라비어로 번역한 것은 물론이고 유대인에게도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산악 서고트족의 침공으로 유입한 아프리카 형제국이 집권하자 사정이 바뀌어 자유로운 정신의 문명화된 무슬림 군주 역시 추방을 당하게 되었으며, 무수한 인구의 유대인에게는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두 가지 선택을 강요했다. 무슬림으로 개종을 하거나 떠나라고. 유력 유대 가문 가운데 하나인 이븐 에스라 가문에서는 아들 한 명을 이브라힘으로 개명을 하고 무슬림으로 개종시켜 그들의 재산을 지키게 하고 나머지 친척들은 기독교 이베리아 국가들로 떠났다. 이후 세월이 흘러 이브라힘은 대단히 총명한 중늙은이가 되었고, 원래 적지 않았던 재산이 유대인의 유전자를 타고 흐르는 셈법5에 의하여 세상에 몇 번째 되지 않는 거부를 쌓았다. 이런 이가 세비야가 아닌 톨레도의 옛집, 멀고 먼 과거 한 시절에 자신의 조상이 직접 지은 폐허 우물가에 앉아 고민에 빠진다. 카스티야의 제1 장관 돈 만리케 데 라라가 국왕 돈 알폰소에게, 패전으로 인한 경제적 피폐를 극복하고 다시 이베리아 반도의 수복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능력있는 재무장관으로 이브라힘을 추천했기 때문에.

  이브라힘은 제의를 받고 숙고를 해도 결정을 하지 못해, 오랜 무슬림 친구이자 의사이며 역사가, 철학자, 모든 지혜의 결집, 정신적 자유의 소지자라 할 수 있는 무사의 조언을 받아들여 맏딸 레히야, 아들 아흐메드, 친구 무사와 함께 세비야에서 톨레도로 이사를 결행한다. 이브라힘은 열세 살 이전에 쓰던 자신의 본명 예후다 이븐 에스라를 다시 사용하게 되며, 따라서 딸 레히야와 아들 아흐메드도 유대식 이름인 라헬과 알라자르로 이름을 바꾸어 사용한다.

  아직 어려 여인의 아름다움이 나타나지 않았던, 비록 상대가 왕이라도 조금은 거만한 성격의 라헬이 세월이 조금 흐르면서 어떠한 기독교도가 바라보아도 그의 입을 통해 “라 페르모사” 즉, “아름다운 여인”이란 단어를 뱉게 하고야 마는 미모를 갖게 되면서, 이 길고 긴 비극은 시작한다.


  대단히 재미있다. 본문만 750 페이지에 이르는 장편소설이지만 밤을 밝히게 만들 정도. 당신의 온전한 즐거움을 위하여 스토리의 거의 전부를 언급하지 않았다. 치밀한 구성에, 구태여 숨기지 않는 포이히트방어의 평화를 위한 주장이 가볍지 않다. 완전한 유대인 작가라서 실제 주인공 예후다 이븐 에스라에 과한 방점을 찍은 듯 하긴 해도, 곳곳에서 드러나는 그의 인간적 약점이 오히려 작가의 매력을 돋보이게 한다. 포이히트방어의 다른 작품을 빨리 더 읽고 싶다.


  1. 독일-프랑스-피레네 산맥–스페인–리스본–뉴욕의 경로를 다룬 대표작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쓴 <리스본의 밤>이 단연 돋보인다.
  2. 이 일화가 본문에 소개되지만, 작가는 이 이야기를 동화라고 선언한다. 서고트 족의 멸망은 망할 때가 돼서 망했다는 거다. 무슬림이 이베리아 반도를 6백년 동안 다스리다보니 유약해진 것과 비슷하게. 핸델의 오페라 <로드리고>의 스토리가 이 사건이다.
  3. 매우 복잡한 엘레오노르의 생애는 그냥 넘어가자. 매우, 매우 매우 복잡하다. 사실과 관계없이 이 책에선 엘레오노르가 질투에 눈이 멀어 헨리 2세의 애첩을 살해해 열받은 왕이 왕비를 15년 동안 유폐했다가, 왕이 서거하면서 자유의 몸이 된 것으로 설명했는데 뭐 그럴 수도 있고, 작품의 매우 중요한 터닝 포인트를 만드는 엘레오노르의 성격을 잘 보여주기는 한다.
  4. 무슬림 식 중세 도서관과 필사본에 관한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읽고 깜짝 놀랐었다.
  5. 유대인 작가 누군가가 그랬다(솔 벨로든가?). 유대민족이 세계에 남긴 탁월한 두 가지 업적이 악기 연주하는 거하고 고리대금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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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9-27 08: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리뷰도 “대단히 재미있”어요.

Falstaff 2022-09-27 13:44   좋아요 0 | URL
ㅋㅋㅋ 고맙습니다. 책은 훨씬 더 재미나요!!

coolcat329 2022-09-27 08: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읽고 싶지만 스페인 역사를 모르니 자신이 없네요.
우와 근데 책값이 놀랍습니다! 도서관에 신청하기도 눈치가 보이는 금액이에요.😬

Falstaff 2022-09-27 13:45   좋아요 2 | URL
세금 많이 내셨잖아요. 그냥 신청해버리세요!

그레이스 2022-09-27 09: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야는 제게 인상적인 화가라 장바구니에 넣어놓았구요
이 작품도 재미있을것 같네요

Falstaff 2022-09-27 13:46   좋아요 1 | URL
고야도 재미있는데요, 이 책이 좀 더 재미납니다.
참, 그림 좋아하시면 고야도 읽으셔야지요. ^^

바람돌이 2022-09-27 1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톨레도 제가 좋아하는 도시.
그래서 더 재밌어 보인다는... 골드문트님 서재는 항상 새로운 작가와 책이 가득입니다. ^^ 그런데 정말 책값이 사악하네요. ㅠㅠ

Falstaff 2022-09-27 13:47   좋아요 1 | URL
ㅎㅎㅎ 톨레도 가보셨군요. 혹시 산티아고 순례하시는 김에?
지만지 책이 다 그렇습니다. 그러고보니까 도서관에 구입 신청한 책의 거의 대부분 지만지 책이군요. 이러다 사서한테 찍히는 거 아닌지 몰겄습니다. ㅋㅋㅋ

바람돌이 2022-09-27 16:16   좋아요 1 | URL
산티아고는 아니고 스페인에 고야 보러 갔어요. 그때 톨레도도.... 얼마전에 지만지 책 한권 샀는데 살때는 가격 보통 책하고 비슷해서 뭐 그냥 샀는데 온 책 두께보고 경악했어요. 진짜 비싸...ㅠㅠ

잠자냥 2022-09-27 10: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격 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허탈해지네요.
100자평 보니까 골드문트 님이 심지어 도서관을 이용하셨군요! ㅋㅋㅋㅋㅋ
저희 도서관에서는 받아줄랑가 모르겠네요. 책 값이 너무 비싸도 안 받아주더라고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2-09-27 10:0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망설여지는 가격이죠?
적립금 부자 잠자냥님만 주저없이 사실듯요 ㅋㅋ

잠자냥 2022-09-27 10:13   좋아요 2 | URL
흐;; 그렇긴 한데 그래도 참 비싸네요.
그리고 살 책이 왜케 많은지;;;; 아껴써야 해요...;

독서괭 2022-09-27 10:35   좋아요 2 | URL
지만지 책은 정말 다 비싸네요;; 이 책은 특히나 헉 하는 가격이군요;;

Falstaff 2022-09-27 13:48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있는 분이 더 무섭다니까요? 적립금 말입니다. ㅋㅋㅋㅋ
근데 적립금도 돈이니까, 비싼 건 비싼 거고, 너무 비싼 것도 너무 비싼 거예요.
아이고, 정말 책값은 하품 나와서리.....

stella.K 2022-09-27 1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격이 넘 비싸 대신 예비 독서로 <리스본의 밤>이라도 먼저 읽어 볼까
했더니 악명 높은 범우사. 그나마 절판이네요. ㅋ
그럴 리는 없겠지만 중고샵에 나오면 그때...^^

Falstaff 2022-09-27 13:50   좋아요 2 | URL
리스본의 밤은 레마르크의 대표작 세 작품하고 비교하면 좀 덜 재미있기는 하지만 ㄱ래도 썩 좋습니다. ㅎㅎㅎ 약 올리는 겁니다. ㅋㅋㅋㅋ
 
불타버린 사람들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64
패트릭 화이트 지음, 이종욱 옮김 / 범우사 / 200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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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대산세계문학총서 165~166번, 패트릭 화이트의 장편소설 <전차를 모는 사람들>을 정말 인상 깊게 읽고, 시중에서 찾을 수 있는 유일한 작품집 《불타버린 사람들》도 읽어보리라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읽었다. 내가 읽은 책은 2008년에 나온 중판. 초판은 화이트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1973년 11월 1일에 나왔다. 아시다시피 노벨 문학상은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해 몇 주가 더 지나야 한림원에서 작가에게 직접 전화를 해 수상소식을 알려준다. 상 받을 작가가 잠을 자고 있든지, 샤워 중이든지 전혀 신경 안 쓰고 무조건 스톡홀름 기준으로 업무시간에 전화 건다.

  1970년대의 별로 바람직하지 않던 우리나라 문화적 환경에서,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은 요새말로 블루 오션 취급을 받아, 문학상 발표가 나자마자 각 출판사들은 수상 작가의 책을 경쟁적으로 서둘러 출간함으로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별 지랄들을 다 했다. 이 책,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64번에 자리한 《불타버린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금속활자 시대에 내가 좋아한 출판사였던 비상하는 독수리, 범우사 역시 1973년 가을1에 기대하지 않았던 패트릭 화이트가 문학상을 받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화이트가 1964년에 출판한 작품집 《불타버린 사람들The Burnt One》을 허겁지겁 얻어와 외대 대학원 아프리카지역 연구학과에서 공부한, 또는 공부하고 있는 이종욱에게 번역을 의뢰한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하게 요구한 건 당연히 납기였겠지. 세상에. 번역에도 납기가 있다니. 그땐 그런 시대였다. 아마 저작권이고 뭐고 그딴 것들도 신경쓰지 않았을 거다. 남한이 북한보다도 못 살았던 시기2니까 뭐.

  그런데, 이거 참, 얘기하기도 민망한데, 원래 패트릭 화이트가 쓴 《불타버린 사람들》은 모두 11편의 중단편이 실려 있던 책이지만 열한 편을 다 번역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고 이종욱은 고백한다. 그리하여 중편 분량인 <말라죽은 장미>, <차 한잔>, <유쾌한 영혼>, <고양이를 길러서는 안 되는 여인>, 이렇게 네 편은 번역서에서 빠졌으며, 분명히 “지워지지 않는 활자”로 말하기를, “차후에 보완할 예정”이라고 했음에도, 사내가 이렇게 얘기했으면 못 먹어도 질러봐야 하는 게 당연하거늘, 내가 읽은 “같은 책의 중판”에도 어찌하여 똑 같은 서문을, 부끄럽지도 않은지, “ctrl + v”하고 자빠졌느냐, 하는 거다.

  여기서 한 술 더 떠, 뭐라고 보태느냐, 그대로 서문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한다.


  “비록 단편이긴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우리말로 옮기기에 만만치 않은 화이트의 작품을 서둘러 번역하느라고 졸역이 군데군데 있을 것을 생각하니 절로 부끄럽다.”


  어떠셔? 욕 안나오셔?3

  비록 단편이긴 하지만? 세상에나. 단편을 번역하는 것이 장편보다 훨씬 더 어렵고, 단편에 비하면 시 번역하는 게 지옥으로 가는 길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종욱한테는 거꾸로였나 보다. 좋다, 그건 그럴 수 있다고 치고, 우리말로 옮기기 만만치 않은 화이트라니. 어떤 외국 작가가 우리말로 옮기기에 편한데? 있으면 두 명만 대보셔. 하지만 무엇보다 경악을 금치 못했던 건 역자 자신이 졸역이 군데군데 있을 것을 스스로 알고 있으면서도 책을 찍는데 동의를 했다는 거다. 부끄러울 짓을 왜 해? 미치신 거 아니심?

  범우사도 똑 같…거나 더하다. 35년만에 중판을 내면서 그래 초판 서문까지 그대로 베껴? 그럼 초판에 빼먹은 네 편을 중판엔 보완을 해야 할 거 아닌가 말이지. 이종욱이 이젠 늙어 힘들면 다른 역자한테 부탁을 해서라도. 아마 못했을 거다. 35년 세월 동안 세상이 바뀌어 엄중해진 저작권 법 때문에 새로 네 편을 번역하려면, 특정시기 이전 번역물의 복사 말고는 불가능했을 테니까. 이렇게 콕 집어 얘기하면 범우사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얄미울까?


  그러나, 진심으로 이야기하는데, 내가 범우사 사장이고 이 책을 중판까지 찍을 정도로 아꼈다면, 새롭게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정식으로 출판하는 쪽을 선택했을 거 같다.

  내 말을 믿지 못하신다면, 이이가 쓴 장편소설, 분명히 부담이 되는 분량이긴 해도, <전차를 모는 사람들>를 읽어보면 넉넉히 짐작하실 수 있다. 지금 알라딘을 검색해봐도 아직까지 독후감 올라온 건 내가 쓴 거 하나 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인상 깊었던 책이다. 이 작품집 《불타버린 사람들》은 <전차를…>의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고드볼드 부인과 같거나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집중 관찰한 작품들로 채웠는데, 물론 11편 가운데 7편만 실려 있지만, 이때 52세였던 패트릭 화이트의 시선이 어찌 이렇게 감각적이고 쓸쓸하고 애잔하면서도 따뜻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삶에서 이중의 고통을 당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 동성애자로 살면서도 동성애 해방운동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그저 조용한 삶을 유지하는 편을 선택한 천성과 닮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섯 편의 단편과 하나의 중편 가운데 나이 든 부부가 다른 나이든 부부의 집에 정찬을 하러 가서 초청한 부부의 취미였던 새 울음 소리 녹음을 듣는 과정에서 그만 행복한 부부의 기초가 삐긋거리는 장면을 우연히 듣게 되는 <달밤의 할미새>와, 고물상을 하는 가족이 쓰레기장으로 소풍을 가 결코 이혼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부부싸움을 하고, 쓰레기장 옆 공동묘지엔 평생 분방하게 살다 간 자그마한 여인의 장례식이 진행되는데, 고물상 집 장남과 고인의 조카딸이 이 사이에 자그마하지만 예쁘기도 한 사랑을 만드는, 또는 시작하거나 배우는 내용의 중편 <쓰레기장에서>를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이 책의 초판이 모르긴 해도 내려쓰기를 했던 금속활자 시대의 것이었고, 그걸 그대로, 단 한 번의 추가 교정도 하지 않은 듯하게, 그대로 복사해서 책을 만들어 여기저기 눈에 거슬리는 철자법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그것”이라 쓰지 않고 구태여 “그 것”을 고집하는 거. 정말 한 시절 도약하는 독수리4, 범우사를 좋아하는 출판사로 꼽았었는데, 이제 더 이상은 미련을 두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할까 말까, 거 참 망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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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73년은 아직 특정 출판사를 좋아할 단계는 아니었다. 출간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월간지 '소년중앙'을 막 떼고, 이제 겨우 '학원'을 읽어볼까 생각했던 소년 시절. 불과 몇 달 후 단번에 집구석 거덜이 나서 학원은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지만.
  2.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7X년 우리나라 남자들 가운데 유일한 내 라이벌 신성일이 역사상 거의 최초로 일본 로케를 떠났다. 이때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동무’들을 술집에선가 어디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신성일더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라가 가난한 주제에 간나들이 무슨 영화를 찍으러 일본까지 오고 그래?”
  3. 이렇게 말하니까 “치키치키차카차카쵸코쵸코촉!”의 저팔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라디오 전성기 땐 아마 이런 손오공 주문이 유행했을 걸? “우랑바티바라움 무따라까빠따라까 쁘라냐!”
  4. 도약하는 독수리는 범우사라는 회사가 독수리 스타일이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회사 로고가 그랬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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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0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범우사는 걸드문트가 얄밉겠지만 일을 하라! ㅋㅋㅋㅋ

Falstaff 2022-09-23 11:45   좋아요 2 | URL
ㅋㅋㅋ 바로 그게 제가 주장하는 바입니다!!!

그레이스 2022-09-23 08: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젠 저도 범우사 책에 손이 안가네요.^^

Falstaff 2022-09-23 11:46   좋아요 1 | URL
저는 애써서 좀 읽어보려 하는 축입니다만 자꾸 이러면 재미 없어요. ^^;;;

잠자냥 2022-09-23 08: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일단 범우사는 표지 디자이너도 없는 거 같아요…;; 요즘 나오는 책들도 음….

Falstaff 2022-09-23 11:47   좋아요 2 | URL
요즘 책은 더 정이 안 가서 말입죠. 에휴. 디자인에 돈 쓰기 싫고, 번역료에도 쓰기 싫으면, 문 닫으면 되는데 말입니다. -_-

stella.K 2022-09-23 1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각주가 더 재밌네요.ㅎㅎㅎ
예전에 삼중당 대 범우사였는데 다 한 시절의 유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잘 나가는 출판사도 앞으로 2, 30년 후에도 지금의 명성을 유지할지는
아무도 모르죠. 좀 안타깝네요.
작년에 임헌영 선생님 인터뷰 자서전을 읽으니 윤형두 사장 대단했더군요.
지금은 정말 초라해졌죠. 경영을 혁신해야할 것 같은데...
그래도 요근래 새로운 책도 간간히 나오고 뭔가 달라질 기미를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골드문트님의 전차를 모는... 리뷰 읽고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는데 짐작하시겠지만 저도 사 놓은 책이 많아서...요.ㅠ

Falstaff 2022-09-23 16:50   좋아요 2 | URL
앗, 그렇습니까! ㅋㅋㅋ 각주를 가끔 달 생각입니다. 다음주에도 하나 있답니다. ㅋㅋ
정말 삼중당, 범우사, 아직도 건재한 을유, 여기에 망한 정음사까지 대단한 출판사였는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아까운 바가 작지 않습니다. 에휴....
요새 나오는 범우사 책들 검색해보니까 거의 예전에 찍었던 거 같더라고요. 번역물은 저작권 물지 않는 것 위주고요.
<전차를 모는 기수들>은 분량이 끔찍하고 가격도 이에 비례해서 함부로 추천하기는 좀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주로 도서관을 이용하십사, 하는 편입니다. 새털 같은 날들인데 사 놓은 책 먼저 읽으시고 천천히 시작하셔요. ^^

바람돌이 2022-09-23 17: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범우사는 표지가 너무 구려요. 까치보다 더해요.
그나마 까치출판사는 아무도 안내는 양질의 책으로 승부수를 던지는데,
범우사는 좀 어정쩡한 느낌이에요.
그런데 진짜 35년만에 중판을 찍으면서 그대로 내는건..... 안타깝네요.

Falstaff 2022-09-23 19:02   좋아요 2 | URL
ㅎㅎㅎ 까치도 참 오랜만에 듣는 출판사군요. 거긴 주로 레프트 사회과학 서적과 철학 책을 찍지 않았나요? 물론 지금 생각하면 굳이 레프트라고 생각하기도 쉽지 않지만 당시만 해도 말입죠. ㅋㅋㅋ
요즘 까치는 표지 디자인이 나름대로 괜찮은 수준....아닌가요? ^^;;

바람돌이 2022-09-25 12:16   좋아요 1 | URL
아직 까치출판사 표지 괜찮은거 못봣어요. ㅎㅎ
특히 역사쪽으로는 학술서적들을 많이 번역해줘서 좋은 출판사인데 극악할 정도로 가독성이 떨어지는 촘촘한 편집으로도 유명해요. ㅎㅎ

Falstaff 2022-09-25 17:34   좋아요 1 | URL
지금 검색해보니 정말 그렇군요. 표지 ㅋㅋㅋㅋ
까치 같은 출판사가 돈을 좀 벌어야 하는데 제가 기여해주지 못해 미안한 바가 작지 않군요. ㅜㅜ

바람돌이 2022-09-25 19:12   좋아요 1 | URL
옛날이 많이 사 제껴서 저희집에는 많습니다. 요즘은 공부를 안해서 없군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