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열린책들 세계문학 275
카렐 차페크 지음, 송순섭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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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범한 인생>은 작년에 출간한 이래 대단한 성가를 누린 바 있다. 간혹 책 읽는 사람들은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작품을 읽은 감상을 과장하기도 한다. 나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평소에 카렐 차페크의 팬이라고 자임하는 입장에서 이번에는 출간과 동시에 읽기보다는 한숨 가라앉은 후에 읽기로 결정을 해, 책은 연초에 구입을 했을지언정 책꽂이에 열 달 이상을 묵힌 다음, 이제야 한 장, 한 장 읽어나갔다. <평범한 인생>은 <호르두발>, <별똥별>과 함께 차페크의 철학 삼부작이라고 불리는데 <별똥별>은 아직 못 읽어봤지만 철학 까지는 모르겠고, 그냥 사람 사는 이야기 정도 아니겠는가 싶다. 사람 사는 거, 이게 보통이 아니라서, 언젠가 얘기한 적 있지만, 지구 인구가 70억 명이라면 지구 표면적의 1/3에 해당하는 육지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 모두 한 편의 장편소설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즉 지금 무려 70억 권의 살뜰하고 애틋하고 징글징글한 소설책이 걸어 다닌다는 말씀.

  이 책에서 죽음이 임박해 자서전을 쓰기로 작정을 한 사람은, 홀아비이자 오랜 세월 공무원으로 재직하다가 은퇴한 남자로 위인, 영웅들의 전기작품을 읽다가 평범한 사람의 전기도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으로 자서전을 썼다. 주로 철도를 위해 장기 근속을 했고, 젊은 시절엔 국제열차가 지나가긴 하지만 정차하지 않는 작은 역을 매우 아름다운 정원으로 단장한 것을 자랑으로 삼던 독일 역장의 역무원으로 있을 당시 배운 정원 일로 친분을 쌓은 의사에게 죽음의 침상에서 그간 써온 자신의 자서전을 넘겨주고 눈을 감는다. 의사는 그저 친분이 있는 늙은 신사이자 고인이 된 자서전의 주인과도 알고 지내던 신사 포펠 씨에게 자서전 초고 묶음을 보여주어, 철끈으로 묶은 자필 전기가 펼쳐지면서 한 평범한 남자의 평범한 인생이 독자 앞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어가며 들었던 생각 하나. 이 정도라면 나도, 지극히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지나간 내 인생에 대하여 전기 형식으로 한 번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라는 것. 내 대뇌에 심어져 있는 가장 먼 기억, 정여사 부임지였던 경기도 모처(아마 지금의 고양시일 것 같다)의 겨울, 두터운 외투를 입고 머리엔 기름을 발라 오른쪽 가르마를 타고 외조부모 댁 대문을 나서던 장면. 아, 그것보다 더 먼 그림도 있다. 외가에서 자라 부모의 얼굴마저 낯이 설어 정말 잘생긴 아버지가 나를 안아들자 그만 울음을 터뜨렸던 유년의 시절. 밤과 낮이 없이 외손자 양말이면 양말, 내복이면 내복을 짜던 외조모의 털실뭉치 같은 것들을 약간의 조미료와 함께 백지에 옮기면 나름대로 그럴듯한 전기가 되지 않을까.

  좋다. 유년 시절이야 왜 못 쓰겠는가. 소년시절로 넘어와 아버지의 커다랗고 튼튼한 돼지저금통을 흔들어 바늘로 동전을 꺼내 만화를 빌어보고, 군것질을 하다가 그게 너무 잦아져서 동전 투입구에 바늘 흔적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커졌던 일. 조만간 구타로 인한 두 형제의 사망사고가 신문을 장식하리라는 믿음이 얼마나 컸던지 저녁마다 혼백이 날아갈 만큼 술을 자시고 귀가하는 아버지의 커다란 체구가 차라리 아름다웠다. 그러다 어느 일요일 아침, 일찍이 예상했던 바와 같이 정작 들통나 버렸을 때, 마루 한 가운데 돼지 저금통의 배를 갈라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그는 아무 말도 없었고, 마루엔 여전히 배가 갈린 돼지가 신문지 위에 놓여 있었는데, 오후가 되자 두 아들과 대중 목욕탕에 갔으며, 돌아오는 길에 중화요리집에 들러 당시엔 졸업식을 해야 한 번 먹는다던 자장면을 탕수육과 함께 배 터지게 먹고 들어온 일. 이것도 좋다.

  문제는 소년기를 넘어서자마자 득달같이 찾아온 염병할 사춘기부터다. 내가 경험하고 저지르고 여태 땅을 치며 후회하는 숱한 치기어린 행위들. 청년기 이후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을 온전히 “나의 전기”, “나의 자서전”에 담을 수 있느냐 하는 것. 농밀한 개인적 스토리를 허구라는 화학 조미료의 첨가나 수사법의 분식粉飾 없이 전기 형식으로, 이젠 전 세계적으로 별로 사용하지도 않는 백열전구를 환하게 밝혀 놓고 숱한 사람들의 맨눈에 전시할 수는, 없다. 없고 말고. 내가 비겁해서 그렇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만일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시면, 당신부터 한 번 써봐라. 있었던 그대로. 세상에 ‘아니 에르노’가 왜 딱 한 명인지 생각해보시라. 


  자서전의 주인공 ‘나’는 소목장이(나무로 가구나 문방구를 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이)의 아들이다. 아버지는 강하고 단순하고, 어린 ‘나’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다. 항상 싸구려 담배와 맥주, 땀 냄새를 풍기고 일요일마다 그동안의 땀과 일이 모여 있는 예금통장을 감상하는 것을 취미로 삼는 이로 돈을 교환가치 말고 근면과 절제를 미덕으로 하는 노동의 결과를 상징/대표하기 위한 장치로 이해한다. 평생 공무원, 그것도 될 수 있으면 고위 공무원에 대한 동경과 복종심을 갖고 있어서 ‘나’가 우수한 성적으로 동네 학교를 마치고 도시의 상급학교를 거쳐 프라하의 대학에 진학한 것을 가문의 영광을 알고 동네방네 자랑을 했지만, ‘나’가 1학년 시절에 시에 미쳐 2학년 등록을 하지 않은 것을 알고 한 걸음에 상경, 경제적 지원 등을 끊어버리고 만다.

  ‘나’는 원래 두번째 아들이지만 얼굴도 모르는 형이 어려서 죽어, 이게 한이 된 엄마가 사랑을 듬뿍, 그것도 너무 듬뿍 주는 바람에 응석쟁이라는 소년 시절의 사회적 평가를 받게 된다. 엄마는 상당히 예민한 성격과 ‘나’에 대한 사랑으로 넘쳐흐르던 분이었지만 소년시절부터는 어머니의 사랑이 외려 ‘나’에게 성가신 부담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동네 동무들로부터 ‘당연하게도’ 따돌림을 받았고,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공부에 몰두했으며, 뛰어난 학업 성적으로 위에서 쓴 것처럼 프라하에서 대학물까지 먹게 된다. 대학을 중퇴하고 철도청에 근무하다 폐결핵에 걸려 저 멀고 먼 산골의 외딴 역에 요양 목적으로 근무하다가, 독일인이 역장으로 있는 역으로 전보하고, 거기서 역장의 딸과 연애를 해 결혼에 성공한다. 성실한 일처리와 장인의 입김으로 좋은 역을 거쳐 젊은 나이에 자그마하지만 깨끗한 역의 역장으로 발령이 나고 이제 살 만해서 아이를 낳으려 했으나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체코를 위해 병력과 무기의 이동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해 반 독일 세력에게 전달하는 등의 애국활동에도 참여하다가 종전을 맞는다. 이후 프라하의 정부청사에 들어가 고위 공직자로 있다가 깨끗한 생활을 하지만 그게 오히려 약점이 되어 부정한 공무원들의 적의를 사 퇴직을 하고 만다. 아내는 죽고 성실한 하녀의 도움을 받아 살다가 지병인 심장 동맥경화로 삶을 마감한다.


  여기까지면 차페크 특유의 감상적인 산문으로 참 잘 읽히기는 하지만, 이 정도면 감히, 나도 나의 전기를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방진 생각을 할 여지가 있다. 그렇지 않은가. 딱 읽어보면 이상한 점이 하나 둘이 아니다. 어떻게 이렇게 완벽하게 선하고 삶에 적극적일 수 있을지.

  화자 ‘나’는 여기까지 쓰고 심장 발작을 한 번 일으킨다. 침대에 누워 꼼짝하지 말라는 진단을 받고, 정말로 3주 후 다시 원고를 쓰기 시작했을 때, ‘나’ 속의 또다른 ‘나’가 등장해 진술의 하나, 하나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진술에 관한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나’가 숭배하던 아버지는 사실 마음이 약하고 착하지만 엄마한테 크게 잘못한 뭔가가 있고, 엄마 역시 사랑이 넘치기는 한데, 마음이 악惡한 곳이 있었다. ‘나’는 비록 청렴했을지언정 “궁극적으로 인생의 올바르고 유일한 목표란 가능한 한 출세하여 자신의 명예와 지위에 기뻐하는 것”이며 “그것이 온전한 진실”이라 자백하고 만다.(129쪽) 물론 자신의 자백에 곧바로 의문을 품기는 했다. 그래서 작품의 뒷부분으로 가면 이런 자기고백은 ‘나’를 이루고 있는 세 명의 ‘나’들, 즉 ①평범하고 행복한 사람, ②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는 억척이, ③ 우울증 환자로 이루어진 ‘나’들 가운데 한 명 또는 각자의 고백일 뿐이기는 하다.

  이 세 가지 유형은 후에 다른 유형이 더 보태지는데, 놀랍게도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일요일 성당 앞에서 구걸하는 거지다. 이것까지 다 알려드릴 수는 없다. 하여간 이리하여 평론가들은 <평범한 인생>을 차페크의 “철학 삼부작”이라고 일컬을 수 있다는 말씀만 드리겠다.

  인생? 그건 살아 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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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18 09: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서…ㅎㅎㅎ 나도 언젠가부터 나랑 자주 이야기하는 데 내안의 나들이 싸워요 ㅋㅋㅋㅋ 인생 살아봐야 알죠 ㅋㅋㅋ 얘들 중에 누구랑 친하게 지낼지 ㅋㅋㅋ
ㅡ 치기 왕 걸드문트님의 청년시기 ㅋㅋㅋㅋ를 모르게 되어 다행이네요 ㅋㅋㅋㅋㅋ 아니 에르노 딱 한 명…ㅋㅋㅋㅋ 이것도 너무 맞는 말…. 그래도 걸님의 전기 나오면 제가 친히 읽어드릴게요 ㅋㅋㅋ 무엇보다 유년 많이 써주세요 ㅋㅋ 유년 귀엽다 ㅋㅋㅋ 포트노이 만큼 재미지는 도입부였슴돠 ㅋㅋㅋ

Falstaff 2022-10-18 13:23   좋아요 2 | URL
ㅋㅋㅋ 뭐 골치 아프게 지금 내가 내 안의 누구인지 굳이 알고 살 필요 있겠습니까. 그냥 나오는 대로 가브리엘이건 루시퍼건 간에 ‘승질‘ 나는대로 ‘승질‘ 부리면서 사는 겁죠. 몇 년이나 산다고요. ㅋㅋㅋㅋ

stella.K 2022-10-18 12: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차베크의 책이 제법 많네요.
저는 도롱뇽인가 뭔가하는 책 읽으면서 글빨 장난아니군 했는데
그 이후 이렇게 많은 책이 나왔다니.

자서전 꼭 쓰십시오.
나의 이야기라는 게 자신한테는 엄청 X팔린 것 같아도 읽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만큼
놀라거나 당황하진 않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은근 관심이 많죠.
곽재식 작가처럼 1쇄로 한 3백부만 찍으셔서 희귀본으로 만드시면 오히려 대박 효과를
낳을 수도...ㅋㅋ
문트님 유년 시절도 흥미롭지만 사춘기 시절도 기대됩니다.^^

Falstaff 2022-10-18 13:36   좋아요 2 | URL
저도 이 책 포함해서 모두 아홉 권의 차페크를 읽었는데, 아직도 더 남았어요. 와...
ㅋㅋㅋ 제 주제에 무슨 자서전 씩이나 쓰겠습니까. 그냥 서재에 독후감 올리는 것이 종이 아껴서 자연보호 하는 겁니다. ^^

coolcat329 2022-10-20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그 문제의 청소년기가 궁금하던 순간에...아니 에르노가 왜 한 명이겠느냐...에 역시 골드문트님! 웃었습니다. 유년기 이야기는 너무 좋네요...
골드문트님 자서전 쓰시면 바로 구입할거에요~~^^

차페크를 아홉 권이나 읽으셨군요! 차페크 책이 이렇게 많았다니 조금 놀랐습니다. 한 권도 안 읽어서 살짝 속상하네요. 조만간 읽어야 겠습니다.

Falstaff 2022-10-20 20:1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자서전을 저같은 무지랭이가 써서 뭐 한답니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
차페크, 재미나요. 호르두발이 좋았는데 좀 비싸서.... 도서관 이용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전 도롱뇽과의 전쟁도 재미났었습니다. 곤충극장도 매력 있고요. 근데 그건 희곡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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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너프 대산세계문학총서 167
빅토르 펠레빈 지음, 윤서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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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자 윤서현에 의하면 작가 빅토르 펠레빈은 “대중 매체에 얼굴 한 번 비추는 일 없이도 정재계 거물들이나 반체제 인사들 혹은 대담 프로그램 진행자들과 함께 러시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언급되는 작가”라 하며, 이이에 관한 정보는 “몇 안 되는 인터뷰 내용을 제외하면 이전 근무지의 이력서를 들춰보는 거나 주변 인물들을 취재하는 것”밖에 없다고 하니, 가히 러시아 판 토머스 핀천 급이라 할 만하겠다. 그리하여 펠레빈의 이력서 수준 정도로 빈약한 바이오그래피를 뒤져봤다.

  국립 모스크바 바우만 공과대학 군사학부 교수인 올레크 아나톨리예비치 펠레빈과 식료품점 감독원이었던 지나이다 세묘노브나 예프레모바 사이의 아들로 1962년 11월에 모스크바에서 출생했다. 1979년에 모스크바 제31영어특수중등학교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에너지공대 전기공학과에 입학해 1985년에 졸업, 학부를 6년 다닌 걸로 추리해보면 공부엔 그리 열심이었던 것 같지 않다. 전기공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까지 진학했음에도 학위를 얻지 않은 채 1989년에 고리키 문학대학에 통신 교육생으로 등록하고 잡지 통신원으로 1년간 활약하기도 하고 다른 잡지의 편집 및 출판 담당으로 일을 하면서 첫번째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1990년엔 고리키 문학대학 내 출판사 ‘하루’의 편집부에 근무하며 다시 단편소설을 써 ‘위대한 반지상’을 받고 다음해 고리키 문학대학에서 제적당한다. 나라도 대학에 안 다니겠다. 벌써 작품활동을 성공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문학상을 수상했는데 소설 쓰는 법을 더 배우며 뭐 하겠는가. 이후 경력은 계속 무슨 작품을 발표했고, 어떤 문학상을 수상했고, 이런 것들만 나온다. 지금 사는 곳이 어디인지, 어떤 여자를 만나 장가는 들었는지, 아이는 낳았는지, 몇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지, 이런 건 하나도 없다. 잘했다. 작가가 글만 잘 쓰면 되지 뭐 한다고 이딴 걸 세상에 널리 알리겠는가.

  펠레빈의 작품은 전에 <P세대>를 읽어봤다. 앱솔루트 보드카에 펩시콜라를 타서 마시는 러시아 청춘들을 P세대라고 했다. 물론 이런 의미 하나 가지고 많고 많은 청춘들을 싸잡아 P세대라고 했겠는가. 때는 바야흐로 러시아의 초대 대통령인 술주정뱅이 보리스 옐친이 극우파 군인들이 모스크바 시내로 몰고 나온 탱크 앞에 서서 극우 쿠데타를 저지하자고 TV 카메라 앞에서 열변을 토하던 시기. 이제 러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양철로 만든 통에다가 동전 몇 개를 집어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깡통에 든 펩시콜라가 쾅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시기를 만난 혼돈의 초기 자본주의를 경험하는 시대적 배경을 깔고 있어서, 무척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다. 그래 펠레빈의 이름을 기억해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지, 마음먹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어디 세상에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게 있어? 그만 흐지부지 하다가 작년 가을에 신간 <스너프>가 나온 걸 알고 일단 구입했다가 이번에 읽었다.

  <P세대>는 1999년, <스너프>는 2011년에 출간했다. 두 작품 사이에 12년이 흘렀다. 역자 윤서현은 <스너프>의 해설에서 “동시대 러시아의 사회적 부조리를 인간 존재에 대한 진지한 사유와 함께 신랄한 유머로 그려낸 작품”이라 했다. 여전히 초보 민주국가인 2011년 러시아에서는 하원 의원을 뽑는 총선이 있었고, 총 득표율이 선거 인구대비 146%에 달하는 희대의 코미디가 발생했는데, 이 선거는 12월에 있었으니 <스너프>에서 말하고자 하는 러시아의 부조리와는 거리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지금이야 철권을 휘두르지만 2008년 전세계를 강타했던 세계①금융위기의 여파로 나날이 지지도가 떨어지던 푸틴의 ②정치적 위기와, 언론의 힘이 약해진 틈을 ③인터넷이 파고 들기 시작한 현상을 기존 질서에서 벌어진 부조리 현상으로 봤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즉 정치-금융-언론의 약화 현상.

  이제 뜸을 들일 만큼 들였으니 작품을 이야기해도 되겠다. 사실 이 책은 뒤에 나오는 역자 해설이 워낙 훌륭해서 독후감에서 따로 내용을 요약할 필요를 별로 느끼지 못할 정도이지만, 해설이라는 자체가 이미 책을 다 읽은 독자를 위해 쓰는 것이고, 나는 주로 아직 이 책을 읽지 않은 분들을 위해 독후감을 쓰는 인간이라 역자가 정성들여 쓴 해설과 조금 겹치는 일이 있다해도 그리 어긋난 일은 아닐 터이다. 나 스스로가 이 책을 읽느라 상당한 나날을 소비했다. 그러면서 헝클어졌던 머리 속 작품이 해설을 읽으면서 차분하게 정리가 되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누렸다는 것을 먼저 이야기해 두겠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을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고대문명’이라고 일컬으니 아무리 적게 흘러도 3천 년쯤 흐른 미래의 지구가 무대이다.

 고대에 양대 강국이 있었다. 아메리차와 츠히나. 서로는 겉으로 친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적대적 관계로 봐야 했는데, 세월이 흘러 두 나라는 내부 분열이 일어나 영토가 갈라진다. 예를 들어 아메리차를 보면, 아프리차에서 유입된 짙은 유색인과 남부 아메리차의 옅은 유색인들이 각기 특정 지역에 대거 몰려 살면서 독립 혹은 분리를 주장하는 식이다. 분리된 국가 가운데 하나가 멕시초를 포함한 아메리차 남쪽 지역의 아츠틀란. 이곳에서 인류가 수 천년 기다려왔던 구세주가 등장하니 바로 “마니투 안티크리스트”인데 민중을 구원하기도 전에 아츠틀란 정부는 이 마니투 안티크리스트를 잡아 살해해버린다. 이후 아츠틀란 정부는 원하는 모든 이에게 국적을 부여하고, 국민의 당연한 의무인 세금을 부여한다. 세금 내기를 싫어하는 건 지금이나 미래나 똑같아서, 현금이 많은 극도의 부자들은 반중력 기동장치를 발명해 지상 몇 백 미터 위에 떠 있는 구체의 커다란 도시를 만들어 조세회피처를 만들고 이를 ‘오프스피어’라고 부른다.

  단순한 조세회피처였던 오프스피어는 세월이 흐르면서 주로 부자들이 향유하던 문명인 영화, 과학, 금융, 정치 등이 옮겨왔고, 급기야 발권은행과 조폐국까지 생기면서 적은 수의 지배층 집단을 이루어 어떠한 혁명의 위협도 받지 않으며 평화로운 신세계를 창조해냈다. 반면에 지상에는 전 같으면 천민이나 노예, 잘 봐줘야 그냥 상것들만 남게 되는데 상부 주민은 이들을 오르크라고 칭하며 멸시한다. 지상에서 발발한 몇 차례의 핵전쟁으로 인해 오르크의 외모는 약간 변형되었지만 오프스피어 주민이나 오르프나 서로 인간인 건 마찬가지였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 법이라 세상에 몇 개 있던 오프스피어는 지도부의 죽음, 반중력 기동장치의 고장이나 오르크에 의한 파괴, 마법 같은 자연의 힘 등으로 소멸해버리고 이제는 단 하나, 우르카이나의 수도 슬라바 위에 떠있는 ‘비잔티움’만 남았다. 비잔티움은 빅비즈, 큰 사업, 빅 비즈니스라는 뜻일 수 있는데, 고대시대의 아메리차와 츠히나처럼 우르카이나의 오르크들과 상호 보완적이지만 속으로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한다. 비잔티움의 인간들과 우르카이나의 오르크를 정신적으로 이어주는 매개가 바로 ‘마니투’이다.

  마니투. 이게 이해하기 쉽지 않다. 딱 한 가지 현상이나 사물, 대상, 인격을 마니투라 칭하는 것이 아니라서 마니투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독자가 알아서 지금 이야기하는 마니투가 어떤 마니투라는 걸 구별해내야 한다. 마니투는 저 위에 이야기했던 마니투-안티크리스트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어떤 신이나 신격일 수도 있고, 돈을 세는 단위일 수도 있으며, 인터넷 등의 정보를 처리하는 개인용 컴퓨터나 그 기능을 보여주는 모니터일 수도 있다. 즉, ①금융-②종교(정치)-③정보(언론), 2008년 러시아를 덮친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러시아 내에서 벌어진 현상 가운데 대표적 세 가지를 총괄한다. 이 세 가지를 지탱하는 공통은,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 특히 우르카이나의 오르크들의 믿음을 위하여 비잔티움이 제작하는 것이 스너프다. 스너프는 사실 금지어 비슷하다. 실제로 살인을 하거나 강간, 폭행하는 장면을 촬영해 기록으로 남긴 것을 스너프라고 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오르크들의 신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댐젤 인 디스트레스 Damsel in Distress, 곤경에 처한 아가씨를 구출하는, 영화이기도 하고 뉴스이기도 한, 뉴스이기도 하고 영화이기도 한, 영화와 뉴스의 경계가 허물어진 영상을 뜻한다.

  Damsel in Distress의 대표적 사례는 이라크 전쟁 중에 포로로 잡힌 제시카 린이란 백인 일병으로, 무슬림에 의해 포로로 잡혔으니 온갖 고문과 강간으로 고생했을 것이라 여겨 위험을 무릅쓰고 구출해 낸 일이 있었다. 무공훈장을 받고도 몇 년이 흐른 후에 이 사건은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났다.

  작품의 주인공인 데미얀-란돌프 다밀롤라 카르포프, 줄여서 다밀롤라는 직업이 백퍼센트 재택근무하는 전투기 조종사로 감시와 통제를 목적으로 오르크 문화의 정신적 지평을 완벽하게 투시하여 오르크 문화를 창조하는 일을 한다. 정치적으로는 진보수적인 수구자유인이며 마니투를 향한 사랑의 노예에다가 후기 반기독교적인 세속적 실존주의자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냥 되는대로 사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진보-보수를 합친 진보수적이고, 편의에 의해 수구와 자유를 넘나드는 수구자유인이란 말. 다밀롤라는 오르크들의 마니투 신봉을 유지하기 위하여 스너프의 몇 장면을 만드는 일을 하느라 적당한 댐젤을 찾았으니, 연애중인 흘로야. 그림이라는 남자 오르크와 낚시를 하며 데이트를 하고 있었다. 다밀롤라는 흘로야를 댐젤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직업 ‘디스코스몽거’인 베르나르-알리와 의도적으로 흘로야를 곤경에 빠뜨린 다음 구해준다. 이 과정에서 훌륭한 영상을 얻게 된다.

  스너프를 제작하는 건 대개 비잔티움과 우르카이와의 전쟁 직전이다. 주로 정기적으로 발발하는 두 진영 간의 전쟁도 스너프와 마찬가지로 상호 적당한 의존과 긴장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번에 발생하는 것이 제221차 전쟁이다.

  다밀롤라는 또한 푸포갈이기도 하다. 푸포갈은 소위 ‘수라’라고 이름이 바뀐 리얼돌, 지금부터 몇 천년이 흐른 후의 리얼돌이니까 상당히 세련된 형태일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시라, 법정 성교동의 연령이 46세라서 도무지 어떻게 해소할 수 없는 리비도를 ‘수라’를 통해 해소하는 인간 암/수컷들을 말한다. 동성애자들을 일컫는 말은 ‘보갈’. 다밀롤라는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인 ‘카야’라는 이름의 수라에게 최고치의 개년성과 영성을 부여했다. 잘 읽으시라. 개년성. 개연성이 아니다. 막말로 해서, 잡년 같은 성격을 개년성이라 칭했다.

  이 정도면 할 말은 다 한 거 같다. 중구난방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는 세 가지 방향을 다 소개했다.

  첫째로 상부와 하부 사람들. 비잔티움 거주자들과 그들이 한껏 비웃어 최고지도자에게도 찢어진 콘돔이라는 뜻의 “터진 듀렉스”나 “터진 콘텍스”라는 이름을 부여한 오르크와의 갈등. 두번째로 스너프의 댐젤이었으나 상부로 올라온 그림과 흘로야, 마지막으로 다밀롤라와 최고치의 개년성과 영성을 동시에 지닌 수라인 카야.

  이제 남은 것은 오직 하나, 당신의 쇼 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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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2-10-14 05: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척 재미있기는 하지만 진입장벽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리처드 파워스의 <갈라테아 2.2> 만큼은 아니겠지만, 러시아 언어에 취약한 저는 펠레빈의 언어유희와 쏟아지는 조어들, 그리고 이를 번역한 우리말에 갈 길을 찾지 못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책 한 권을 읽느라고 열흘간 ˝즐거운 끔찍함˝의 진퇴양난을 겪었다는 말씀입니다.

이하라 2022-10-14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학에서 다소 거리를 느끼다보니 생소한 작가와 생소한 소설이긴 합니다. 그런데도 3000년 후를 그리고 있다고 하시니까 왠지 흥미가 이는 것 같다가 진입장벽이 높다고 하시는 말씀에 시무룩해지네요.
아직 문학이 어려운 저이다보니 쉬운 소설들 부터 시작해야 겠구나 생각하게 됐습니다.^^;

Falstaff 2022-10-14 13:47   좋아요 1 | URL
아이고, 이하라 님 정도면 중원의 고수시지요. ㅎㅎㅎ 엄살부리기 없기 입니다. ^^

coolcat329 2022-10-14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두 번을 읽었는데도 너무 생소한 내용이라 어렵습니다. ㅎ
삼천 년 후 미래라니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무겁습니다. ㅎㅎ
골드문트님이 열흘이면 저는 30일쯤 걸리겠어요. ㅋ 아니면 중도포기던가요.

Falstaff 2022-10-14 13:4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아는 분께서 이 책 읽고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고약한 러시아 식 판타지.˝
아주 어울리는 촌평입니다. 무지하게 재미는 있지만 진짜, 고약합니다. ㅋㅋㅋ
댓글저장
 
로마제국 쇠망사 세트 - 전6권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 기번 지음, 송은주 외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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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7년도 아니고 1837년도 아닌, 1737년에 영국 서리주의 런던 근방에서 태어난 한 천재의 역작. 1752년, 열다섯 살에 옥스퍼드의 모들린 칼리지에 다녔으나 어린 시절부터 무수한 책을 독파해나가 능히 가르칠 교수가 없었다는 말이 전해질 정도의 에드워드 기번은 14개월의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가톨릭 주교 보쉬에가 쓴 책 등에 영향을 받아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해버린다. 영국에서는 가톨릭 교도들에 가해지는 불이익을 피할 방법이 없는 터라, 꼭지가 돈 아버지는 그를 스위스의 로잔으로 보내, 그곳에서 만난 칼뱅파 목사 파비야르의 배려로 2년 만에 다시 개신교로 개종을 한다. 그렇다고 독실한 개신교 신자까지는 아니다. 오히려 기독교에 대한 회의주이자 수준이랄까.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 1>의 내용 가운데 기독교에 관한 그의 관점이, 비록 적나라하다는 표현까지는 아니더라도, 짐작할 정도는 될 듯하다. 하여튼 그는 로잔에서 5년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라틴어를 완전히 숙달하게 되고, 목사의 도움을 받아 그리스어도 배웠으며, 위용을 과시하던 프랑스의 철학과 문학과도 만날 기회를 가졌는데, 무엇보다도 당대 최고의 프랑스 지성이라 일컫던 볼테르와 친교를 맺어 평생지기가 되었다고 하니 그로서는 훗날 <로마제국 쇠망사>를 쓰기 위한 지적 체력을 튼튼히 하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기번은 서른여섯 살이 되던 1773년에 <로마제국 쇠망사>를 쓰기 시작해 77년에 1권을 출간하면서 단박에 명성을 즐기기 시작했다. 이후 1787년에 6권까지 완성을 하고 이듬해인 1788년, 자신의 쉰한 살 생일에 맞춰 출간을 하고, 곧바로 현타에 빠져버렸다.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 사학자의 본능적인 호기심이 발동하면서 혁명의 진행과정에 관심을 두었지만 그것도 잠시, 대작을 끝낸 후유증이 만만치 않아 몸까지 쇠약해지고, 1793년 친구가 홀아비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로잔에서 마지막 여행 겸 귀국을 한다. 이후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고, 항생제가 없었던 때라 어려서부터 허약했던 체질이 수술 후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794년 1월 56세 8개월의 연치로 죽는다.

  예를 들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관한 연구에 관해 알고 싶다면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어야 할까, 아니면 전 예일대 예일 칼리지 학장을 역임한 도널드 케이건이 2004년에 쓴 같은 제목의 책을 읽는 것이 좋을까. 나는 케이건을 선택했었다. 당시에 아테나이 군의 장군으로 전쟁을 직접 경험한 투퀴디데스가 이 전쟁을 시작부터 끝까지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투퀴디데스의 역작이 고전으로의 성가를 누리고 있다는 이유 만으로 선택을 하는 것보다는, 무려 2,500년 동안 수많은 역사가들의 탐구를 바탕으로 세계적 석학이 쓴 21세기 역사서를 더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드워드 기번의 경우는 달랐다. 비록 내가 역사책 읽는 것을 즐기기는 하지만 기번의 문학적 성가가 워낙 대단한 것에 더해,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떻게 생각해봐도 역사학자가 아닌 시오노 나나미를 통해 로마를 들여다볼 수는 없는 일이라서, 아주 오래 전부터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기로 작정을 했다가, 퇴직 기념으로 내가 내게 주는 선물로 이 책 전권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테오도르 몸젠의 로마사도 있기는 하지만 그도 19세기 사람이라 그리 큰 고려대상은 아니었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로마의 오현제, 五賢帝, 다섯 명의 현명한 황제 시절부터 시작한다. 이제 1권을 읽었을 뿐이니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으나, 쇠망사라고 했으니까 로마가 드디어 막을 내릴 때까지가 아니겠는가 싶다. 몸젠의 로마사처럼 로마와 이탈리아의 진짜 고대 역사부터 시작하거나,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로물루스 이야기나 트로이를 탈출해 이탈리아에 도착한 아이네이스부터 시작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한니발과 포에니 전쟁, 로마 공화정,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가 승리를 거둔 두 번의 내전, 옥타비아누스가 최초의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되는 과정과 네로까지 이어지는 최초 황제의 가계에 대한 내력 등이 빠져 있는 건 아쉬웠다. 물론 이건 로버트 그레이브스가 쓴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를 재미있게 읽은 영향이 크기는 하다.

  꽤 오래 전에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를 읽을 당시에, 초대 황제 아우구스트 사후에 위를 잇는 과정은 원로원이나 집정관, 또는 황가의 권력자들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황제 근위병, 그것도 속주 출신 이민족 병사들이 숱하게 많이 포함된 근위병에 의하여 한 순간에 결정된다는 걸 알고 경악한 적이 있다. 이들이 원로원에 쳐들어가 자신들의 의견을 반대하는 원로들을 단칼에 처치해버리고 황족 중의 한 명을 무등 태워 대다수 근위병들이 환호하며 황제로 선임해버린다. 그럼 그가 황제가 되는 거다. 황제는 대신에 자신을 신 또는 신과 비슷한 인간으로 만들어준 근위 병사들에게 활수하게 보답을 해야 한다. 당연히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금화로.

  이런 형식으로 황제를 옹립하는 일이 아우구스트 왕조에 국한하는 것도 아니고, 이번에 읽어보니, 꼭 황제의 근위병만 황제 선택의 권리를 누린 것도 아니어서, 오현제 시대 이후에는 근위병을 비롯해 속주를 방어하고 있는 군단에서도 그냥 자기 군단장을 황제로 참칭해버리고 내전을 일으켜 이기기만 하면 상당한 금화의 보너스를 받는 동시에, 여태 자기들이 모신 군단장이나 장군이 황제가 되기 때문에 훗날의 콩고물도 얻어 걸리기를 기대할 수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가 정치에 너무 깊숙하게 관여하면 문제가 되지만, 사실상 영토확장을 완수했던 공화정 시대부터 제정 시대까지 너무 넓은 영토와 속주를 지키기 위해 막강한 군사력을 확보해야만 했던 로마 입장에서 군벌의 힘이 약해져도 큰 문제였을 터이다.

  이 책의 실제적인 시작은 오현제 가운데서도 마지막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저 유명한 <명상록>을 쓴 철학자 황제부터다. 이전 황제 가운데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은 클라우디우스와 하드리아누스를 들 수 있는데, 두 명 다 소설을 통해 읽어본 인물들이라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기번은 비록 두 명의 안토니누스,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양자인 안토니누스 피우스와, 피우스의 양자인 마르쿠스 안토니누스를 말하는데, 이들이 제정 로마의 전성시대를 이끌었지만 모든 체제가 최고 전성기 시절부터 이미 쇠퇴의 씨앗을 발아시키듯이 이때부터 제정 로마는 망조가 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피우스 황제는 하드리아누스 전 황제의 유지를 받아 주제主帝가 되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첫번째 부제副帝, 그리고 향락을 누리는데 만 열성이고 나머지는 게을렀던 루키우스가 두번째 부제, 이렇게 세 명의 황제가 형식상으로는 공동으로 권력을 나누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르쿠스는 열일곱 살에 부제가 되어 마흔이 훌쩍 넘어 피우스가 죽기 전까지 전혀 황제가 되고 싶다는 내색을 보이지 않았고, 루키우스는 환락에 여념이 없을 뿐이지 의붓형인 마르쿠스가 얼마나 뛰어난지 잘 알고 있어서 욕심을 부리지 않아, 또는 부릴 수 없어서 평화로운 시기가 가능했지만, 후에 극도의 혼란기를 마치고 다시 나타날 4명 또는 6명의 황제 시기엔 당연히 두 명 이상의 야심가가 포함될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라서 국력을 쇠퇴시킬 내란은 이미 예약이 되어 있었던 거다.

  제정 시대의 로마는 정말 답이 없다. (크게 봐서)왕정 정치가 노답인 것은 세습 또는 지정되어 왕위에 오른 절대 권력자가 제 정신이 아니거나 무능하면 곧바로 국가가 망가지는 길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이건 로마 시대 뿐 아니라 전 세계가 마찬가지라 이후 펼쳐질 유구한 역사 내내 왕권과 신권臣權, 신하의 권리의 충돌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브리타니아에서 시작해 에스파냐, 라인 서쪽의 갈리아에서부터 사하라 북부 아프리카와 페르시아 접경에 이르기까지의 아시아라는 거대 속주를 거느리고 있던 로마는 각 속주들의 영토를 방위해야 한다는 커다란 과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속주 너머 자리하고 있던 야만인들의 세력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로마나 페르시아 같은 커다란 국가의 체계를 모방해 점점 세력을 불리고 있었던 것도 제정 로마가 부담해야 하는 시시포스의 바위였을 것이다.

  이 책은 제목처럼 “로마제국” 만 다루고 있다. 여섯 권 가운데 1권이다. 황제 가운데 다시 단일 황제 체제로 통일하고, 2권에 접어들면 그리스도 교를 승인하고 자신 스스로 죽음의 침상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비잔티움으로 천도를 하게 되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까지를 설명하고 있다.


  2022년에 읽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에드워드 기번의 역사관이나 역사적 사실의 확인이기보다 서문에 역자가 썼다시피 기번의 유려한 문장을 통해서 알기 쉽게 로마의 제정 역사를 배우는데 있다. 18세기 이후에 근 250년 동안 더 축적된 지식으로 무장해 세련된 시각으로 쓰인 로마사와 비교하면 내용상 좀 남루한 점도 있겠지만, 이 책을 읽는 나는 세계사에 그리 밝지 않은 아마추어이며, 아마추어 수준에서 기번을 읽는 것은 확실하게 유익하다.

  다만 기독교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종교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고, 흥미도 없으며, 굳이 알고 싶지도 않은 인간이, 그러나 로마와 유럽 역사를 통해 절대로 가볍게 지나가지 못하는 그리스도교 관련한 부분은 읽기가 고통스러웠다. 유럽인, 그것도 18세기 유럽인이라면 21세기 유럽인한테보다 한 1,270배 정도 더 중요했겠지만, 집 나간, 아니, 처음부터 벌판을 헤매고 있어서 이게 집을 나간 것인지 넓은 벌판 전부가 내 집인지도 모르는 검은 양 입장에선 전혀 관심이 없어, 마지막 두 장, 15장과 16장은, 읽다가, 읽다가 결국 대충 페이지만 훌훌 넘기고 말았다는 것은 고백해야겠다. 다만 이 이유 하나 때문에 별점 하나를 깎고 말았다. 이것은 책의 결함이 아니라 전적으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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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10-11 1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이 책을 읽으시겠다고 하시더니 정말 읽으시네요.
근데 뭘 그렇게까지 자책을...ㅎㅎ
그러니까 저 같은 기독교인은 별 다섯을 주고도 남겠네요.
근데 문제는 저는 역사엔 그리 밝지가 못해 저도 준다면 4개 이상
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네요.ㅠ
저는 지난 번 제 생일 날 나에게 주는 선물 오글거린다고 쓴적이 있는데
문트님 퇴직 기념으로 선물하셨군요. 잘하셨네요.
저도 가끔 나에게 주는 선물할까 봐요.ㅋㅋ

와, 근데 기번이 정말 똑똑한 사람이었군요.
미인, 재인 박명이란 말이 있는데 천재박명도 있긴하죠?
1700년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감히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요.ㅠ

Falstaff 2022-10-11 18:01   좋아요 2 | URL
ㅎㅎㅎ 맞습니다. 스텔라 님께서 읽으시면 별 다섯도 모자랄 수 있습니다.
근데요, 기번처럼 똑똑한 인간이 몸도 건강하고 생기기도 잘 생긴데다가 오래 살기까지 하면 정말 재수 없잖아요. ^^;;;
미인, 재인, 천재 박명은 다 하늘의 뜻입니다.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10-11 12: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이제 역사서까지.... 대단하십니다. 일단 응원의 박수부터 보냅니다. ^^
저는 역사책은 무조건 현대연구자들의 것부터 읽어요. 이런 책은 연구서라기 보다는 뭔가 문학작품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특유의 고어 문체들이 저는 너무 힘들더라구요.
골드문트님의 독서력이라면 이 시리즈도 충분히 독파하시리라 믿습니다. ^^

Falstaff 2022-10-11 18:08   좋아요 1 | URL
에고, 제가 역사책 좋아합니다. ㅎㅎㅎ
그죠, 역사책은 현대 연구자가 쓴 것이 좋습니다. 힘든 고어문체는 제가 예를 든 투퀴디데스가 그럴 것 같고 헤로도토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확실히 그렇습니다만.,기번은 읽기 편하더라고요.
ㅎㅎㅎ 고맙습니다. 일단 내년 상반기까지 여섯 권 다 읽는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

프레이야 2022-10-11 12: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두고 못/안 건드리고 있는 책 중 하나입니다.
골드문트 님의 대장정으로 따라가볼 수 있을까요.
여러 장르로 대단하십니다.

Falstaff 2022-10-11 18:09   좋아요 2 | URL
그게요, 역사책 만큼 흥미진진한 스토리들이 많은 책이 없잖습니까. ㅋㅋㅋㅋ

mini74 2022-10-11 1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언젠가는 읽겠다!! 결심만 삼십년 ㅎㅎ 입니다. 멋지세요 *^^*

Falstaff 2022-10-11 18:09   좋아요 1 | URL
하하, 고맙습니다! 미니 님도 언젠가는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역사책이 생각보다 재미있거든요.

coolcat329 2022-10-11 1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퇴직 기념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로마제국 쇠망사>라니 멋지세요~
저는 이 책 못 읽을 거 같지만 골드문트님 글로 배우겠습니다.

Falstaff 2022-10-11 18:10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오늘 한 권 읽는데 열흘 걸린 책 다 읽고 독후감까지 마쳤습니다. 기념해서 쐬주 한 병 했더니 시방 알딸딸해서리..... 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10-12 23: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에 읽다 중단하셨던 건가요?
요새는 이렇게 여러권으로 되어있는 책들은 감히 용기가 안나요.
10권짜리도 있고 한권 요약도 있는데 자꾸만 한권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요^^

Falstaff 2022-10-13 06:4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이제 읽기 시작한 겁니다.
기번이 6권으로 구성해서 썼기 때문에 독자 역시 한 방에 다 읽을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요, 1~2개월에 한 권씩 읽으려 합니다.
천천히 읽으셔요. 새털 같은 나날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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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프랑크 베데킨트 지음, 이재진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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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땅의 정령: 地靈>과 <판도라의 상자> 2부로 되어 있는 연작 희곡 <룰루>. 희대의 팜 파탈 룰루와 그를 둘러싼 남녀들이 벌이는 엽기발랄한 잔혹극이다. 지난 세기 말에 알반 베르크가 작곡한 동명의 오페라 <룰루 Lulu>의 대본을 읽으면서 경악했던 경험이 있다. 역사상 가장 엽기적인 팜 파탈은 은쟁반 위에 다소곳하게 올라온 세례 요한의 목을 들고 피가 빠져 창백하게 변한 입술에다 대고 키스를 날린 오스카 와일드의 살로메일 것이고, 가장 널리 알려진 팜 파탈로는 프로스페르 메르메가 쓴 <카르멘>의 타이틀 롤을 꼽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알반 베르크의 오페라의 대본을 읽으면서 들은 이후 원본 희곡이 궁금하긴 했지만 희곡을 읽는 것보다는 실연을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우리라 생각해 여러 종의 DVD를 보았다. 그러나 세 시간을 훌쩍 넘기는 베르크의 미완성 오페라를 쇤베르크를 이어받은 현대음악으로 보고 듣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아서 DVD 감상마저도 호락호락하지는 않았다. 당시에 대본을 꼼꼼하게 살폈다면 <룰루>가 <땅의 정령>과 <판도라의 상자> 2부로 이루어진 작품이란 걸 알았겠지만 그저 베데킨트의 <룰루>만 열심히 찾아 다녔을 수밖에. <땅의 정령> 대신 <지령地靈>과 <판도라의 상자>라고 제목을 단 책이 성균관대학 출판부에서 나와 있는 것을 모르고 열심히 <룰루>만 찾았으니 이렇게 한심할 수가. 그러다 올 여름, 지만지 드라마 시리즈에서 <룰루>를 출간했음을 알았고, 득달같이 내가 사는 동네의 시립 도서관에 도서구입을 신청해 어제(09.24, ’22)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모두 읽었다. 확실히 영상물을 보는 것보다 머리 속으로 극을 “나 홀로 연출”해가며 읽는 재미가 훨씬 좋다는 것도 새삼 확인해가면서.


  프랑크 베데킨트의 바이오그래피는 전에 <카이트 후작> 독후감에 소개한 바 있어 작가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하고 곧바로 <룰루>로 들어가자.


  우리나라에서 <룰루>는 겨우 두 번을 공연했다. 첫 공연은 1980년 서울 문화회관(세종 문화회관의 오기인 듯) 별관에서 <루루>라는 제목으로 원작을 김창우 드라마터지(혹은 드라마투르기)가 공연에 맞게 대본화한 것이었고, 두번째는 1999년 동숭 아트센터에서 올린 <룰루>였는데, 1979년 파리 공연의 짧은 오페라 대본, 오페라를 목적으로 작곡가 알반 베르크가 직접 고쳐 쓴 축약본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정상적인 <룰루>를 한 번도 공연한 적이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봐도, <룰루 – 괴기 비극>은 1988년, 희곡을 쓰고 거의 백 년이 지난 후에야 처음으로 수정 없이 원본 그대로 연출한 공연이 함부르크에서 막이 올랐다. 공연에 무려 다섯 시간이 들었다고 하니 제대로 무대에 올리기가 얼마나 힘든 작품인지 알 것도 같다. 우리나라에선 1999년 공연 당시 성균관대학에서 급하게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대본의 번역을 시도해 《지령, 판도라의 상자》를 출판부에서 찍었는데 이때 번역을 주도한 사람이 이 책의 역자인 이재진 단국대 명예교수이었으며, 나중에 보니까 당시의 번역이 하도 참담하여 이번에 다시 작업을 했다고 주장한다.

  독일에서도 독일어로 된 희곡의 정상적인 공연에 거의 백 년이 걸렸던 것은, 겉으로 보면 공연 전에 애초 희곡을 출간할 당시부터 문제가 됐던 비윤리성, 부도덕성, 성적 혼란, 음란함 등의 충격 때문이 아니라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가 복잡해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싶은 것이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의심이다. 어떤 내용인지 간략하게 보자.


  모든 일은 그리 크지 않은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는 쇤 박사의 선행에서 시작한다. 몇 년 전 겨울에 쇤 박사는 길거리에 맨발로 서서 꽃을 팔고 있던 어린 소녀를 거두어 교육도 받게 해주고 잘 먹여 통통하게 살이 오르게 해준다. 당시에 이름이 없던 이 소녀가 룰루인데, 쇤 박사는 아이를 ‘미뇽’이라 불렀다. 아이가 성장해 십대 후반이 되고, 당시 십대 후반이라면 이미 완전한 여성으로 성장했다고 봐도 되는데, 그래도 쇤 박사가 미뇽하고 성적 접촉이 있었는지 아닌지 작가는 확실하게 밝히지 않지만, 쇤 박사는 미뇽을 배뚱뚱이의 늙고 자그마한 영감인 병원 원장 골 박사한테 시집 보낸다. 골 박사는 룰루를 새 이름 ‘넬리’라고 부르면서 아내이기 이전에, 혹은 아내이면서 귀여운 소유물 정도로 취급하며 룰루에게 피에로 복장을 입혀 화가 슈바르츠한테 초상화를 그리도록 부탁한다. 슈바르츠는 여태까지 보았던 모든 여성보다 흰 피부와 통통한 몸매에 환상적인 눈빛을 가진 룰루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져버린다. 그림을 그릴 때조차 골 박사는 룰루의 곁을 비우지 않아 애만 태우던 슈바르츠는, 어느 날, 역시 화백 슈바르츠에게 쇤 박사가 부탁한 자기 약혼녀의 초상이 얼마나 완성되었는지 보러 와 골 박사-룰루 커플을 만났다가 골 박사만(룰루는 모델을 해야 하니까) 자기 아들 알바가 연출하는 공연의 시연회에 거의 억지로 데려가는 틈을 타 룰루에게 손을 대려 한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고 시간만 흘러 나중엔 마치 <배따라기>에서 쥐도 못 잡은 형수와 시동생 꼴이 되어버린 이들 앞에 허겁지겁 나타난 골 박사는 둘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어 뇌 깊숙한 곳의 혈관 하나가 퐁, 터져,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만다.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되어버린 룰루는 슈바르츠 화백하고 두 번째 결혼을 해서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씨 좋은 쇤 박사가 자신의 배경을 이용해 슈바르츠가 그림 그리는 실력과 별 상관없이 대단히 유명한 화가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거의 백만장자의 자리까지 오르게 해준 결과였다. 이제 유명한 화가가 된 슈바르츠가 자신을 ‘이브’라고 부르며 계량할 수 없이 사랑하는 것도 아는 룰루. 그러나 룰루는, 앞에서 말했듯이 자신의 육체적 첫 남자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쇤 박사가 참의원 폰 차르니코프 씨의 외동딸 샤를로테 마리 아델라이데 양과 약혼한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신이 쇤 박사를 사랑하는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 저 속에서부터 밀려 올라오는 질투를 어찌할 줄 모른다. 이 와중에 쇤 박사는 도덕적 기준이 높은 화가에게 자신과 룰루의 관계를 털어놓고 이를 들은 화가는 쇤과 룰루가 했네, 했어. 그것도 여러 번, 매우 많이 했네, 이렇게 생각해 좌절감을 이기지 못해 골방으로 홀로 들어가 새파랗게 날이 선 면도칼로 자기 목을 스윽, 그어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쇤 박사는 약혼을 취소하고 이제 본인이 룰루와 결혼해 살고 있는데, 결혼하면 좋을 거 같았지? 천만의 말씀. 쇤 박사는 앞에서 죽은 골 박사만큼은 아니지만 이미 많이 늙어 몸과 마음, 특히 몸의 특정 부분이 시들시들해지는 바람에 도무지 만족을 할 수 없는 룰루가 여러 남자, 그러니까 예스럽게 말해서 샛서방을 두고 있는 처지였다. 그런데 그깟 샛서방들을 빼고 얘기해도, 쇤 박사와 룰루 사이에 젊은 남자가 하나 있었으니, 골 박사 죽기 전 잠깐 얘기했던 쇤 박사의 아들 알바. 시인인 것은 확실하고 작곡가인지 극작가인지 하여튼 극공연을 위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인물로, 룰루를 아버지가 전에 부르던 애칭인 ‘미뇽’이라고 자기 새엄마를 부르는 거였다. 룰루가 보기에 알바가 참 딱해서 오래된 진실 하나를 고백한다. 자신이 알바의 엄마이자 쇤 박사의 아내를 독살했다는 거. 그럼에도 룰루에 대한 알바의 사랑은 식지 않는다. 이 둘의 이야기를 2층 난간에서 듣고 있던 쇤 박사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오직 룰루 하나만을 위해 유력한 집안의 외동딸과의 약혼도 취소해버리지 않았는가 말이지. 자신은 룰루를 위해 큰 희생을 하나 했던 거였는데, 자기 전처가 죽은 내력은 귓등에도 들어오지 않고 알바와 하는 짓이 눈에 시어 권총을 들이밀고 그걸 룰루의 손에 쥐어준 다음 자살을 하라고 총구를 룰루의 가슴에 향하도록 만든다. 이러다가 집안 구석구석에 숨은 샛서방들이 도처에서 도망하려고 튀어나오는 찰나, 틈을 잡은 룰루는 총구를 쇤 박사 쪽으로 돌리고, 때마침 등을 지고 선 쇤 박사를 향해, 권총의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무차별 난사하기에 이른다. 죽어 늘어진 쇤의 머리를 자기 무릎 위에 올려놓은 룰루, 이미 영혼이 떠나 창백해진 입술 위에 자기 입술을 포개며 1부 <땅의 정령>의 막이 떨어진다.


  2부 <판도라의 상자>까지 모든 이야기를 소개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할 듯하다. 그건 직접 책을 사거나, 빌리거나 해서 읽어보시기 바란다. 하여튼 이런 작품이 20세기 초반에 다른 나라도 아니고 독일에서 출간을 했다니, 나오자마자 곧바로 검열에 걸려 모든 책에 대한 회수조치 처분을 받았다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 터. 위에서처럼 골 박사, 슈바르츠 화백, 쇤 박사, 알바 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참 다양한 인물이 추가된다. 생각해보시라. 공연 시간만 다섯 시간이 넘는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등장인물이 나올 지. 그런데 이들의 행동양식에 관해 이야기해보자면, 독후감이 너무 길어질 거 같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진짜로 책을 읽은 다음 든 생각은, 독일어 사용권의 스위스 사람인 베데킨트가 혹시 독일의 부조리 문학을 선도한 것은 아닌가 싶었다는 점만 이야기하고 오늘의 독후감을 접겠다.

  아무쪼록 많은 분들 역시 흥미진진한 독서생활을 경험할 특별한 기회를 잡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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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10-07 0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완전 빨려들어갈 듯 이 리뷰를 읽었네요. ㅎㅎ

Falstaff 2022-10-07 12:10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그러셨습니까. 2부 <판도라의 상자>로 가면 내용이 완전히 달라져요! 무대도 독일에서 시작해 파리를 거쳐 런던까지 옮아가고요.

그레이스 2022-10-07 1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배따라기 ...^^
흥미진진하긴 하네요.
광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Falstaff 2022-10-07 12:18   좋아요 2 | URL
화가하고 룰루가 숨바꼭질 하는 장면은, 읽자마자 배따라기부터 생각나더라고요. ㅋㅋ
베데킨트가 없었다면 독일 드라마는 무지하게 재미 없는 상태가 계속되었을 거라고들 하더군요.
한 여자한테 넋이 빠져 난리가 나는 작품이 또 생각납니다. 카렐 차페크가 쓴 드라마 <마크로풀로스의 비밀>입니다. 열린책들 <곤충극장>에 실린 희곡인데요, 거기서는 소녀 티를 막 벗은 여자가 아니고 무려 3백년을 산 절세미녀 마르티 이야기. 읽어보셨을 듯합니다. ^^

mini74 2022-10-07 23: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이 정신없는 집구석은 뭔가요 ㅎㅎ 룰루 몸에 꿀 발렸나요. 이게 무슨 ㅎㅎㅎ

Falstaff 2022-10-08 17:20   좋아요 1 | URL
ㅋㅋ 꿀 발라요? 나인 하프 위크. 명작입니다. 진짜 꿀 바르는 장면 나옵니다. ㅎㅎ

coolcat329 2022-10-08 14: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대의 팜므 파탈이라니 이 자체로도 엄청 끌립니다.
저는 우선 카르멘으로 워밍업을 하고 룰루로 가겠습니다.😅

Falstaff 2022-10-08 17:21   좋아요 2 | URL
카르멘은 비제가 워낙 잘 만들어서 그런지 메르메 원작이 별로더라고요. ㅎㅎㅎ

coolcat329 2022-10-08 18:09   좋아요 2 | URL
그럴 거 같아요. 오페라 전혀 모르지만 카르멘은 정말정말 보고 싶어요.
노래, 의상, 내용 다 너무 좋아요~

독서괭 2022-11-09 16: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아요 눌러놓고 자세히 못 읽었던 리뷰인데, 넘 재밌네요. 줄거리가 정신없이 달려가는데, 1부 마지막이.. 그럼 2부 내용은 대체?? 완전히 달라진다니 궁금합니다. 쇤 박사 골 박사 왠지 웃겨요 ㅋㅋㅋ

Falstaff 2022-11-10 05:30   좋아요 2 | URL
전 1부가 더 재미 있었습니다. 근데 스토리는 넘 흥미롭지요? ㅋㅋㅋ 기가 막힌다니까요. ^^

바람돌이 2022-11-09 20: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막장 쇤박사님 집안에 진짜 룰루는.... ㅋㅋ 항상 다음 내용을 궁금하게 쓰시는 골드문트님이십니다.

Falstaff 2022-11-10 05:31   좋아요 0 | URL
하여간 스포일러는 좋지 않다고 믿거든요. ㅋㅋㅋ 이 책처럼 재미나 경우는 더 하고요. 그래야 새로 읽는 분이 더 재미나지 않겠습니까. ㅋㅋㅋㅋ

잠자냥 2025-07-24 1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품 공연하기 참 힘들었을 거 같아요. 일단 배우들이 머리가 엄청 좋아야 할 것 같습니다. 대사가 무지막지하게 많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는 희곡˝이라고 명명한 것에 공감합니다. 암튼 폴 님 덕분에 좋은 작품 잘 찾아읽었습니다요!

Falstaff 2025-07-25 05:54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 전막 공연하는 데 백년이 걸리지 않았겠습니까.
공연하는 사람도 대단해요. ‘읽는 희곡‘을 무대에 올려 공연을 하고 마는 인종들이니 말이지요. 실제 공연 영상을 보면 무대 장치도 기가 막힙니다. 이제는 극 공연도 아이디어 경쟁이 치열하더라고요.
댓글저장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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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모신 하미드의 근본을 따라가면 펀자브와 카슈미르 출신의 후예, 그러니까 <악마의 시>를 써 세계적 명성을 누리기 시작한 살만 루시디와 한 고장 사람이다. 하지만 하미드 개인으로 보자면, 세 살 때 미국 스탠퍼드로 유학을 한 아빠의 손을 잡고 캘리포니아에 가서 아홉 살 때까지 지내다가 파키스탄으로 귀국해 파키스탄 라호르의 미국인 학교에 다닌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하미드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동부 뉴저지 주의 프린스턴을 최우등으로 졸업한다. 이 정도면 파키스탄 은수저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하미드는 한 술 더 떠서 전공인 경영학 외에도 심심풀이로 토니 모리슨 등을 사사하며 소설을 쓰기도 하다가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하기에 이른다. 이게 2000년. 이듬해 하미드는 연봉 8만 달러의 대졸 초임을 주는 기업평가 컨설팅 업체에 취직해 필리핀 등지의 아시아 지역을 출장 다니는 한편 소설 쓰기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모신 하미드의 작품 목록에, 비록 그가 파키스탄 아메리칸이기도 하지만, 아시안 무슬림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제로 2001년에 911 테러가 발생한 후 이후 무슬림 아시아 국가 또는 정부와 아주 복잡한 상황에 직면했으니.

  우리나라에 번역되어 소개한 모신 하미드의 책을 원본의 출간 순으로 보면 <주저하는 근본주의자>(2007),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2013), <서쪽으로>(2017)의 순인데 <주저하는…>에는 뉴욕 무역센터 빌딩 테러 이후 미국에 의한 아프가니스탄 공격과 무슬림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냉담한 시선 등을 잘 그리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서구의 공격을 피해 유럽으로 피난하는 아시아 난민들을 묘사했다. 이 두 작품 사이에 발표한 <떠오르는….>은 이것들과는 다르다. 오히려 아라빈드 아디가가 써서 맨-부커 상을 받은 수작 <화이트 타이거>를 한 번 더 읽는 느낌이 든다. 일단 현대화, 근대화 말고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파키스탄이나 인디아를 예상할 수 있는 가상 공간을 배경으로 시골 출신, 그것도 깡촌 출신의 소년이 대도시로 옮겨와 온갖 고난과 부정부패 속에서 살아가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모으고, 거부가 되고 등등의 장면을, 모신 하미드는 시치미를 뚝 뗀 채 이게 무슨 자기계발서인 것처럼 가볍게 읽기에 즐거운 2인칭 소설을 써 놓았다.

  세상에 소설문학이 다 진지할 필요는 없다. 비록 삶이, 당신의 것이나 내 것이나 마찬가지로 온통 비극으로만 직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소설마저 전부 비극이어야 한다면 과연 그걸 읽을 필요가 있을까? 나부터 당장이라도 소설 읽기를 멈추고 말리라. 만일 당신이 이 책을 읽으려 한다면,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같은 묵직한 주제를 기대하는 대신, 한 발랄하고 기발한 작가가 자신은 경험해보지 못한 가난한 열대 아시아의 촌놈을 오로지 자신의 상상력에 의하여 조금씩 신분상승의 기회를 부여하고, 자본주의와 부패와 권위주의의 밀림 속에서 성공적으로 생존하게 하는 경쾌한 독서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하시면 좋겠다. 물론 이 와중에 적절한 애정, 제일 재미있는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이 등장하고, 거기에다 약간의 베드신까지 등장하면 금상첨화일 터이다. 힌트를 드리자면,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베드신도 있다, 있어.


  주인공의 이름은 책이 끝날 때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저 2인칭 대명사인 ‘당신’으로만 대신한다. 이이가 사는 아시아의 시골을 소개해보자면, ‘당신’이 1930년 전후 출생인데, ‘당신’이 혈중 빌리루빈 수치가 급격하게 상승해 노란 색을 띤 눈의 흰자위를 갖는 질환, 즉 황달에 걸렸지만 높은 소아사망율에 단련된 부모는 ‘당신’이 그리 쉽게 죽지는 않을 거란 믿음을 갖고 있던 시절이니 한 1935년 정도일 가능성이 높은 시기에, ‘당신’은 물론이고 동네의 누구도 초콜릿, 리모컨, 스쿠터, 운동화라는 것을 단 한 번도 구경해보지 못했을 정도였다. 이거 혹시 하미드의 첫번째 에러 아닌가 싶다. 이후 ‘당신’의 80대 중후반까지 시간이 흘러 201X년이 되는 터, 70~80년 전, 대략 1940년으로 말할 거 같으면, 파키스탄이나 인디아의 멀고 먼 시골이 아니라 도쿄는 아니더라도 교토에서도 초콜릿과 운동화는 먹어보고 신어본 아이도 있었겠지만, 리모컨, 스쿠터라는 건 구경조차 못했을 터이다. 하여튼 일제 강점기 말 조선반도의 시골 정도로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다. 그러나 이깟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쩌면 독자로 하여금 착오를 일으키려고 작가가 의도적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소도구를 가져온 것인지도 모른다. 뭐 솔직히 말해, 그건 아니겠지만서도…

  원래 소작농이었던 아버지는 도시로 나가 월 1만을 받는 요리사로 있다. 1만이라는 돈이 시골에서는 큰 돈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도시에선 결코 그렇지 않아 할머니, 엄마, 누나, 형, 그리고 ‘당신’까지 다섯 입을 부양하기엔 턱없이 부족해 그저 1년에 서너 번 집에 들러, 밤이 깊어 아이들이 잠에 빠지거나 빠진 척을 하면, 엄마의 손을 이끌고 벌판으로 나가 사랑을 나누고 한 주일 정도를 보낸 다음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는 했다. 물론 자식 사랑도 깊은 양반이긴 했지만 빈 주머니에선 자식 사랑마저 그리 깊게, 많이 나오는 법이 아니니 독자가 이해해야 할 밖에. 이렇게 살다가, 황달 걸린 아들에게 약이랍시고 무즙만 떠먹이는 아내를 보던 아버지는 드디어 함께 도시로 가자고 선언을 해, 선언 한 달 만에 온 가족이 콩나물 시루처럼 빽빽하게 승객을 실은 버스의 지붕에 올라 몇 시간이고 달려서 도시에 도착한다. 이제 서막이 올랐다는 거다.

  도시에 도착한 후 펼쳐지는 본론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까? 그건 책의 목차에 다 나와 있다.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당신’처럼 일단 ① 도시로 나가서, ② 적어도 조금은 교육을 받고, ③ 사랑엔 빠지지 말아야 하며, ④ 꿈이나 좇는 이상주의자는 멀리하고, ⑤ 중원의 고수를 찾아가 그에게 배움을 얻어야 한단다. 여기에 ⑥ 스스로, 자신만을 위해 일을 하고 ⑦ 폭력 사용도 마다하지 말아야 하며, ⑧ 무엇보다 부패한 관료와 친구가 되고, ⑨ 전쟁 기술자들을 후원해야 한단다. 이후에도 세 가지 해야 할 일이 더 있는데, 그건 이미 더럽게 성공한 다음에 고려하는 사항이니 굳이 아까운 지면에 보탤 이유는 없다. 다만 이후에 나올 세 가지 가운데 마지막 두 개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바가 작지 않다는 정도만.

  서론을 소개했고, 본론으로 목차를 올리니까, 정말로 아라빈드 아디가의 소설 <화이트 타이거>하고 비슷하겠지? 그렇다. <화이트 타이거>를 읽어본 분은 굳이 이 책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을 읽을 필요까지는 없을 듯한데, 그것도 쉬운 결정이 아닌 건, <화이트 타이거>가 그만큼 재미 있었을 것이니. 하여간 가벼운 분량의 책이라 앉은 자리에서 뚝딱 해치울 수 있어 부담없이 하루를 재미나게 보내기에 맞춤하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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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10-04 07: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목차만 봐도 재밌습니다. ㅋ 남은 세 가지가는 또 뭘지 ㅎㅎ 궁금하네요.
킬링 타임용 책으로 찜해두겠습니다~^^

Falstaff 2022-10-04 11:44   좋아요 1 | URL
ㅎㅎㅎ 정말 가볍게 읽기엔 최고입니다. 마지막 세 가지, 이건 클라이맥스라서 말씀드리지 못하는 아쉬움을 어엿비 여겨 주세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2-10-04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심금을 울리는 항목은 읽는 자에게!;;
9개도 어떤 흐름으로 갈지 짐작이 갑니다^^

Falstaff 2022-10-04 11:44   좋아요 1 | URL
오, 근데 예상 외일 수도 있답니다. 착한 소설의 결말이 대개 그렇듯이요. ^^

다락방 2022-10-04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목보고 자기계발서인줄 알았는데 저자가 모신 하미드여서 뭐라고? 하고 읽었던 책입니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가 굉장히 강렬했거든요. 그 911테러에 대해 주인공이 느끼는 지점에서 아무리 미국인이 되고 싶어서 미국에서 공부하고 미국에서 직장을 얻고 미국 여자를 사랑해도, 사람의 본질인 그 안에서 변화되지 않고 있다,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전 그 책 되게 좋아했거든요.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되는 법을 읽고 저도 나쁘지 않았는데 뭐라고 써놨더라 봤더니 별은 네개 주고 슬펐다고 썼네요. 사람이 참, 기록을 자세히 해야 되는데, 내용 기억나지도 않으면서 슬프다고만 써놔가지고 어린 시절부터 사랑에 빠졌던 남녀가 늙어서도 만났다 뭐 이런 어렴풋한 것만 기억이 납니다. 하하하하하.

그나저나 제가 골드문트 님 리뷰를 읽고 화이트 타이거를 살려고 했었는데 그 다음이 기억이 안나네요. 샀나 안샀나..

Falstaff 2022-10-04 11:47   좋아요 1 | URL
모신 하미드가 경영대학 출신이잖아요. 그가 자기계발서를 썼다고 해도 하나도 놀랄 일이 아니라서 그저 휙~하고 지나쳤는데요, <서쪽으로> 독후감을 올렸더니 다락방님이 이 책을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하미드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던 차에, 아하, 그랬나? 그러면 읽어봐야지, 하고 샀다가 이제야 읽은 책입니다.
ㅋㅋㅋ 다락방님 덕에 재미난 책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레이야 2022-10-04 09: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이트 타이거 다시 읽는 기분이라고요.
읽진 않았고 영화를 보았어요. 대충 그런 이야기구나 짐작이 되네요. 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부터 읽어봐야겠어요. 이 책도 데려갑니다.
기대에 못 미치는 베드신이 있긴 있다고요 ㅎㅎㅎ 늘 그렇듯 재미있게 리뷰 읽었습니다 ^^

Falstaff 2022-10-04 11:48   좋아요 1 | URL
근본주의자, 좋습니다.
ㅎㅎㅎ 제 독후감을 늘 좋은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stella.K 2022-10-04 13: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신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겠지만 베드신도 있다, 있어.ㅎㅎㅎ
왠지 딱 제 수준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 베드신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ㅋㅋ
작가가 진짜 은수저네요.
소설가들은 2인칭 소설 잘 안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 신경숙이 ‘경숙의 난‘ 있기
바로 전 <엄마를 부탁해>인가 어디서 2인칭 소설 썼는데 괜찮았는데 말이죠.

Falstaff 2022-10-04 14:30   좋아요 2 | URL
작가 같은 사람, 프린스턴 경영학과 나와, 소설가도 되고, 초봉 8만 달러를 받기도 한데, 만일 거기다가 몸 좋고 생기기도 잘 생겼으면 얼마나 재수 없었을까요? ㅋㅋㅋㅋ
제가 읽은 2인칭 소설 가운데 제일 좋았던 건,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의 <알렉시>였습니다. ㅎㅎㅎ 전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 영숙이 얘기는 안 한답니다. ^^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