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퇴를레스의 혼란 창비세계문학 84
로베르트 무질 지음, 정현규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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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가 전권 번역해 나왔다. 북인더갭과 나남에서. 난 북인더갭/안병률 2권까지 읽음. 마저 읽을까 말까 고민 중. 무질은 작중에 쉽지 않은 철학을 포함시켜 독자를 곤죽으로 만드는데, 무질 읽고 싶으면 <소년 퇴를레스의 혼란>으로 먼저 간을 보는 것도 상책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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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3-16 09: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예전에 울력 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읽고도 약간 곤죽이었는데요. 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3-16 11:12   좋아요 1 | URL
그래도 No 특성남에 비하면 월등하게 편안하더군요. 아유, 그건 정말 각오하고, 컨디션 좋을 때 골라서 읽어도 걍 자빠질 거 같아요. ㅋㅋㅋ

다락방 2022-03-16 10: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특성 없는 남자 1,2권 북인더갭 가지고있는데 ‘작중에 쉽지 않은 철학을 포함시켜 독자를 곤죽으로 만든‘다고 하시니 엄두가 안나네요 ㅋㅋㅋㅋㅋ 전권 몇 권인지 보고와야겠어요.

Falstaff 2022-03-16 11:36   좋아요 2 | URL
ㅋㅋㅋ 이 백자평 괜히 썼나 싶기도 합니다. 다른 분들도 <특성 없는 남자> 도전했다가 코피 나는 거 보고 킬킬 웃을 걸, 하는 심통도 나고 뭐 그렇네요.
저는 여러 곳에서, 여러 번 이렇게 얘기했습지요.
˝북인더갭의 안병률 사장께서 제일 잘 한 일은 무질 전문가이면서도 완간하지 않고 2권까지만 출간한 일이다.˝ ㅋㅋㅋㅋㅋ

북인더갭은 총 3권으로 출간한 반면 나남은 다섯 권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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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브 공작부인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9
라파예트 부인 지음, 류재화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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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파예트 백작부인은 1634년에 프랑스의 하위 작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1650년에 어머니가 재혼을 해서 열여섯의 나이로 궁정에 들어가 왕비의 시종이 되었다, 등등의 바이로그래피는 지금으로부터 너무 오래, 무려 370년 전의 이야기라서 그냥 넘어가겠다. 하여튼 프랑스에서는 대단히 유명한 작가인 것으로 안다. 어느 책이던가, 아니면 누구한테 들었던 바에 의하면, 프랑스 소설을 읽으려면 라파예트 부인을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해서, 문학동네 세계문학시리즈 89번이 세상에 나오고 11년이 지난 지금에야 허겁지겁 읽어봤다. 이 정도의 호언장담이면 19세기도 아니고, (발음 조심!) 18세기도 아니고, 17세기 작품을 오늘에 되살리는 이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면서.

  오늘은 결론부터 써보자.

  지금 시각으로 보면 그리 특별하지는 않지만, 이런 작품이 모여서 후배 작가들은 영향을 받고, 그리하여 19세기 소설의 시대가 도래했을 적에 프랑스 소설문학의 전성기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딱 한 마디로 하자면, 심리소설의 조상님이랄까.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심리묘사는 완전히 연애할 때 여자와 남자 당사자들이 품을 수 있는 갈증, 질투(아, 소설에서 질투야말로 얼마나 매혹적인 소재인지!), 오해, 계략, 허튼 짓 등 사람 마음 속 심리의 기승전결을 실감나게 써 놓았다는 의미다. 물론 쇼데를로 드 라클로가 1782년에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를 통해 다시 한 번 연애와 타락에 관한 아슬아슬한 심리의 극단을 보여주었지만, 드 라클로는 여사님보다 120년이나 지난 다음이었다. 모르긴 해도 클레브 백작부인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후대의 작가들 가운데 적어도 19세기에, 무조건 서사적 재미를 향해 질주했던 알렉상드르 뒤마 같은 이를 뺀 나머지 소설가들, 장황한 필설과 주인공들의 뇌 돌아가는 소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찰찰 흐르는 것 같은 소설을 쓴 작가들 모두 라파예트 부인에게 빚지지 않은 이들은 거의 없을 듯하다는 것.


  장소는 프랑스 궁정과 공작 계급이 거주하는 별장, 저택, 성 등등. 시대는 앙리 2세. 부르봉 왕가를 연 나바르 왕 앙리 4세는 지금 말한 앙리 2세, 카트린 드 메디시스의 남편과 먼 친척이긴 하지만 카틀린 드 메디시스의 아들들과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밤에 죽음 같은 갈등을 한 번 거쳐야 한다. 이때가 에스파냐, 영국, 프랑스, 신성로마제국이 얼키고설킨 시기로 ① 영국에서는 헨리 8세의 맏따님인 메리 1세, 피의 메리, 블러디 메리가 죽어 엘리자베스 공주가 여왕에 등극하고, ② 프랑스에선 앙리2세가 공주 엘리자베트를 에스파냐의 늙은 왕 필리페 2세에게 시집 보내는 걸 축하하는 스포츠 시합을 열어 스스로 기마 창싸움에 출전했다가 창이 부러지면서 튀어나온 나뭇조각이 눈에 박혀 11일 동안 고생만 하다 죽는 바람에 왕세자비이자 스코틀랜드의 여왕 메리 스튜어트가 왕비에 오르면서 왕비의 시어머니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본격적으로 악명을 떨치기 시작, 조만간 새로 등극한 샤를 9세도 젊은 나이에 죽자마자 메리 스튜어트 역시 메디시스 대비한테 스코틀랜드로 쫓겨나 험한 인생을 마감할 예정이며 ③ 에스파냐는 프랑스와의 종전 조건으로 처음엔 왕자 돈 카를로스와 엘리자베트를 정략결혼 시키려고 했다가 신랑을 아버지 필리페 2세로 바꾸자고 아우성을 치는 우여곡절을 거쳐 급기야 앙리 2세가 숨이 넘어가고난 다음에 에스파냐에서 이미 호호 할아버지인 필리페 2세와 첫날밤을 치루게 된 반면, 합스부르크 왕가라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샤를 캥(카를 5세)을 겸하며 에스파냐 최대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던 필리페 2세의 갓끈이 달랑달랑 끊어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햐, ① ② ③이 한꺼번에 일어났다는 게, 거 참, 신기하지? 좀 기다리면 스코틀랜드로 쫓겨난 메리 스튜어트까지 엘리자베스 여왕한테 목이 댕거덩, 잘려 죽는 일까지 벌어지고, 프랑스에선 신교냐 구교냐 하는 문제 때문에 수 만명이 몰살당하는 일도 벌어지는 유럽 중근세 역사의 가장 다이나믹하고 드라마틱한 시기이다. 물론 버지니아 울프 팬이라면 조만간 올랜도 역시 태어날 시기라고 주장할 수도 있고, 뭐 그렇다.


  등장인물을 출연 순서대로 한 번 보자. 정말 빵빵한 집안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야코죽지 말자. 다만 인물들은 정사에 나오는 대로가 아니라 라파예트 여사님께서 자기 마음대로 각색한 것이니 이들의 묘사가 진실이라 오해하지는 말자.


  앙리 2세. 프랑스 왕. 우아하고 친절하고 다정한 품성. 만능 스포츠맨. 아빠의 정부favorita였던 발랑티누아 공작부인의 정부paramour이자 애완견.

  발랑티누아 공작부인. 부왕의 애인이었다가 아들 애인도 겸했음. 식성도 좋다. 역사에 아무 도움 안 되는 인물.

  엘리자베트 드 프랑스 공주. 에스파냐 왕비 예정자. 총기있고 치명적인 아름다움 장착.

  메리 스튜어트. 프랑스 왕세자와 혼인. 외모, 지성으로 완벽.

  나바르 왕. 앙리 4세의 아버지. 기품있고 전쟁에 탁월.

  기즈 공작. 뛰어난 재능. 혁혁한 전공. 깊은 지성과 고상하고 품격있는 영혼? 그래서 저 훗날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밤에서 눈썹을 휘날리며 신교도 학살하라 명령. 몽모랑시와 권력 분할.

  로렌 추기경. 기주 공작의 동생. 야심만만, 총명한 두뇌. 놀라운 언변. 그 나물에 그 밥.

  콩데 공. 나바르 왕의 동생. 1대 콩데 공작. 고귀하고 위대한 정신.

  느베르 공작. 인생이 영광 그 자체. 세 아들이 있는데 둘째가 클레브 공작, 주인공의 남편.

  클레브 공작. 가문의 대표. 너그러우면서도 신중. (다른 말로 우유부단)

  샤르트르 대공. 방돔 가문의 후손. 안색좋은 미남. 늙은 바람둥이. 용감, 대담, 자유의 대명사

  느무르 공. 불어라서 “느무르”로 쓰지 우리 말로 하면 “느물느물”의 “느물” 대공. 남주. 자연의 걸작이라 불릴 만큼의 미남. 지성, 용모, 행동, 기타 등등 한 번 보면 눈길을 거둘 수 없는 남자. 그래서 문제아. 돈 많고, 쌈 잘하고, 잘 생기고, 게다가 공작. 재수없다. 남 주인공.

  몽모랑시 원수. 제롬 K 제롬의 빼어난 소설 <보트 위의 세 남자>에 나오는 주인공 수캐의 이름과 같지만 여기선 왕실업무 대부분을 관장하는 대신.

  생탕드레 대장. 왕의 왼팔. 총신 대우. 몽모랑시와 더불어 발랑티누아한테 잘 보이려 난리.

  당빌 공. 몽모랑시 원수의 둘째 아들. 메리 왕세자비를 향한 가망없는 사랑.

  샤르트르 양. 16세. 갖 사교계 대뷔한 샤르트르 대공의 조카. 클레브 공작과 애정 없는 결혼. 여 주인공. 역사상 가상의 인물


  기타 무지하게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거의 전부가 귀족이다. 저 루브루 왕궁 지붕에 올라가서 조약돌 던지면 귀족이 맞는다. 이들을 먹여살리느라 백성들 등골 빠진다는 이야기는 이때부터 300년 가까이 더 흘러야 말이 나오겠지만 하여간 귀족 나부랑이들은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른 건 하나도 없고 권력과 돈과 연애를 위해 아드레날린 분비에 여념이 없다. 다른 거? 일체 없다.

  책은 오직 하나, 연애와 연애를 하는 인간들의 대뇌 피질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을 묘사하는데 집중한다. 그래서 샤르트르 양이 클레브와 별로 애정 없이 결혼해 클레브 공작부인이 되고, 자연 최고의 조화라고 일컫는 느무르 공의 대책 없이 “느물느물한” 아니 "느무르느무르한" 대시와 이에 대한 클레브 공작부인의 대처를 그리고 있다. 작품의 스코프는 당시 격변하는 유럽의 역사와 비교하면 정말 사소한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느무르 공과 남편 클레브 공작, 그리고 공작부인의 심리에서 요동을 치는 광경을 묘사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냥 이게 다다. 사랑 없이 결혼한 유부녀의 외갓남자를 향한 사랑과, 한 독신 바람둥이 남자의 유부녀에 대한 사랑, 혼자만 아내를 열라 사랑하는 남편의 숙명적 트라이앵글.

  자, 이제쯤 책이 주장하는 바를 솔직하게 털어놓아도 좋겠다. 책의 결론은,


  “결혼은 미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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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3-15 0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럽의 왕가들이 서로 정략결혼한 때문에 사건이 연결된듯요.^^
올랜도! ㅎㅎ
느무르 공!
라파예트 작품 궁금했는데 감사합니다 ^^

Falstaff 2022-03-15 09:07   좋아요 3 | URL
ㅎㅎㅎ 역사적 이야기도 제법 나오기는 하지만 이 책은 전적으로 사랑에 관한 내용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백자평 포함해서 아래 잠자냥 님이 쓰신 대로 아이고, 징글징글하게 사랑 타령 나옵니다. ㅋㅋㅋㅋ

잠자냥 2022-03-15 08: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느무르공 진짜 너무 느묾느물하지 않아요? 으윽… 클레브 공작부인은 또 얼마나 예쁘다는 것인지 ㅋㅋㅋ 전 이 작품 보면서 <겐지 이야기> 생각 많이 나더라고요. 어떤 면에서는 많이 닮았어요. 두 작품 모두 각자 나라의 후대 문학에 큰 영향을 준 거 같은데….. 아이고 저는 그놈의 사랑 징글징글합니다. ㅋㅋㅋㅋ

Falstaff 2022-03-15 09:12   좋아요 3 | URL
초반 지나자마자 느무르 공이 느물공으로 팍 떠오르더라고요. 이후엔 이름도 안 잊히던 걸요. ㅋㅋㅋㅋ
<겐지 이야기>는 그렇게 긴 작품 속에 일본 왕궁의 진짜 별 거 없고 여자들 숨도 못 쉬게 하는 법도에 관해서 상세하게 적혀 있잖아요.
앗, 맞습니다. <겐지 이야기>가 없었더라면 일본 특유의 사소설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근데요, <클레브 공작부인>이나 <겐지 이야기>나 작품의 출현 시기를 감안하면 대단한 일일 거 같아요!!

다락방 2022-03-15 10: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 출근길 버스안에서 이 리뷰 올라온 거 보고 넘나 설레었어요. 진짜 오랜만에 제가 읽은 책이라서요. 크- 저는 이런 책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간 사랑에 대해 알지 못했던등장인물이 사랑에 대해 알게 되고나서 막 열정에 휩싸이고 사랑이란 무엇인가 깨닫게 되고 그러는거요. 크- 제가 이 책 하도 오래전에 읽어서 뭐라고 써놨나 봤더니 아주 사랑사랑하는 것만 인용을 잔뜩 해뒀더라고요? 사랑에 들끓는 클레브 공작부인 되시는 것입니다! >.<

Falstaff 2022-03-15 11:33   좋아요 1 | URL
ㅎㅎㅎ 근데요, 저는 이런 사랑은 해보고 싶었던 적이 없던 거 같아요. 서로 밀당하고 다른 사람한테 마음 가고. 우.... 별로예요.
걍 담백하게 둘이 사랑하고, 싫증나면, 이제 싫어졌어. 우리 찢어지자, 해서 이별하고, 다른 애인 생겨 또 연애하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전 애인 만나면, 오랫만이야, 가끔 생각났어. 잘 지내지? 하면서 악수하고나서 가던 길 가고, 이게 좋잖아요.
ㅋㅋㅋ 이렇게 쓰고보니 꼭 선수같네요. 근데 아닙니다. 연애경력 별로 없어요.

잠자냥 2022-03-15 12: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결혼한 부부가 다들 서로에게 애인 있는 걸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놀랐습니다. 물론 그러면서도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쏘쿨~ ㅎㅎㅎ 역시 프랑스인가~

Falstaff 2022-03-15 19:19   좋아요 2 | URL
유럽이 다 비슷하지만 이 가운데서도 제일 난장판이 프랑스 궁전인 건 더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만요. 프랑스 사람들 하여간 못 말립니다.
아 그래서 예술이 그리 창궐, 창궐? 창궐! 하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2-03-15 15: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19세기 위대한 프랑스 소설이 이 소설에 빚을 졌군요! 저는 19세기 전 소설은 너무 옛날이라 읽기 싫었는데 프랑스 문학에서 이 책은 필수라니 급 땡깁니다.
프랑스 소설은 유난히 불륜, 술수, 질투 이런게 많은거 같아요.😅

Falstaff 2022-03-15 19:21   좋아요 4 | URL
넵. 프랑스 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 작품이든지 17세기, 18세기 작품은 읽기가 쉽지 않더군요. 저는 그런 책들을 일종의 의무감 혹은 이후 세대 작품을 읽기 위한 훈련이다, 싶은 마음으로 읽고는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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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희곡우체통 낭독회 희곡집 국립극단 희곡우체통 희곡집
김옥미 외 지음 / 걷는사람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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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덟 편의 희곡을 실은 580쪽의 두툼한 책. 게다가 대부분 수준작이다. 함께 읽고 있는 서울 연극제 희곡집과 비교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정말로 무대 공연을 염두에 둔 희곡이 아니라 낭독을 위한 작품이라서 극작가들은 마치 영화의 대본을 쓰는 것처럼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절대로 선을 넘지 않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장례식장 사장이 사설 구급차 기사에게 오랜 우정과 불운을 미끼로 119 비상 무전을 도청해서 죽어가는 사람만 골라 수송해오게 만드는 첫째 작품 김옥미 작 <발화>부터 독자의 흥미를 조금씩 고조시키는데, 여자의 몸에 관해 손버릇이 좋지 않은 젊은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사가 통정하고, 임신한 간호사가 열차 자살해버렸는데 하필 현장에 있던 3류 기자가 시신에서 신분증을 훔쳐 자살자가 도지사의 가출한 딸이라는 작지 않은 스캔들임을 밝혀 특종을 내지만 권력에 의하여 오보로 알려지게 되는 어단비 작 <오보>에 이르면 이제 다음 작품엔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지적 장애가 있는 젊은 여성의 성 문제와 성적 약탈 그리고 장애인 가족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삶을 이어가는 지를 저격한 배시현의 <별을 위하여>도 사회적 논의를 요구하고 있고, 폭설이 내린 한겨울의 덴버를 배경으로 하는 해외 입양아 문제를 다룬 오예슬의 <클로이>도 독자로 하여금 조금은 불편한 생각 거리를 마련한다.

  연극에 출현하는 배우들을 예로 들어서 그렇지만 모든 창작물의 등장인물과 실제 인물들 사이의 간극을 다룬 윤영률의 <조니와 라디오>는 내가 줄곧 관심을 쏟아왔던 책장에 쌓인 책 속의 무수한 인물들, 예를 들어 아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오늘 이 순간까지 고도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술에 취해 넋을 놓고 있을 때 책 속에서 나와 나를 내려다보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과 연관해서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괴물 아버지에 의한 가정폭력으로 가족이 해체되는 이민규의 <평범한 가족>은 요새 작품집 안에 필수적으로 반드시 한 편 이상 들어야 하는 내용이라 새로운 건 없었으며, 이미 역사에서 사라진 사무기기인 ‘전동 볼 타자기’를 손에 넣기 위해 벌이는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그린 기하라의 <삼차원 타자기>는 다분히 교훈적 메시지를 전했다. 마지막 작품 유혜율의 <당신이 밤을 건너올 때>는 여전히 재야에서 가난하게 소외된 자들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주인공 형진을 등장시켜 80년대 민주화 운동 시절 고문당하고 죽어간 동지들과 이제는 변절해 기득권이 되어버린 대부분의 좌파 86세력에게 유감스러운 시선을 던지지만 나는 86 시절 이야기 자체를 듣고 싶지 않아서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그래도 끝까지 읽기는 다 읽었으니 이 정도면 괜찮은 편이다.


  책에 실린 것들은 전부 2019년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시내 몇 군데 극장에서 낭독극 형태로 공연을 한 작품이다. 이번에는 김옥미, 어단비, 오예슬, 윤영률, 이민규 등의 신인 극작가의 작품들이 실렸다. 유혜율도 문인 등단은 몇 년 전에 했더라도 극작가로의 등단으로 치면 첫 ‘연극’ 공연이 2020년이라고 하니 신인 극작가로 봐야 하겠다.

  국립극단이 진행하고 있는 희곡우체통 행사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세 권만 출판됐다. 이것으로 희곡우체통 희곡집은 모두 읽은 셈인데, 흥미진진한 행사가 2021년에는 열리지 않은 것인지, 열리기는 했으나 아직 희곡집을 출간하지 않은 것인지 궁금하다. 이 정도 수준의 우리나라 현대 희곡이라면 내가 아무리 백수 시대를 시작하고 있더라도 기꺼이 지갑을 열 용의가 있다.

  좋은 행사를 기획, 진행하고 있는 국립극단의 노고에 갈채를 보내며 곳곳에 숨어 있는 우리나라의 젊은 극작가와 극작가 지망생들의 건필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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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2-03-15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저도 골드문트님 대열에 끼어야 할 텐데 이렇게
게을러 리뷰만 읽고 있습니다.
작가들이 그렇게 써 내도 실제로 무대에 올라가는 건 몇 작품 안 될 것 같아요.
제작자들이 검증된 작품만 올리려 하겠죠.
이렇게 낭독회라도 하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겠지만...
공연 보러 잘 안 가지만 낭독회 어떻게 하나 기회되면 함 보러가야겠어요.

근데 백수 되시니까 어떠신가요? 책을 원없이 많이 읽으시니까 좋으신가요?^^

Falstaff 2022-03-14 18:03   좋아요 1 | URL
저도 국립극단에서 하고 있는 낭독공연회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정식 공연이 아니라도 이렇게 무대에 올려주는 것만 가지고 극작가들한테 얼마나 힘이 되겠습니까.

백수되니까요, 오히려 책 읽을 시간이 더 적은 거 같아요. 한 방에 꾸준하게 읽는 대신 짬짬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암만해도 아침에 책 들고 도서관으로 날라야겠습니다. ㅠㅠ
게다가 초기라서 정리해야 할 것도 남았고요. 주로 소위 4대보험 관련한 것들, 아 정말 귀찮습니다.

조성래 2022-03-18 0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발화> 좋죠!

Falstaff 2022-03-18 06:08   좋아요 0 | URL
넵!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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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즈버그, 오하이오 세계문학의 숲 49
셔우드 앤더슨 지음, 김선형 옮김 / 시공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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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작품 진짜, 진짜 좋은데 어째 팔리지 않는 거 같네. 우화 같은 죽음을 맞은 작가. 은퇴 후 크루즈 여행을 떠나 어느 날 선상 파티에서 코냑을 곁들인 송아지 고기 정식을 거하게 자시고 느긋하게 이를 쑤시다가, 이쑤시개를 삼켰고, 그게 배 속에서 창자를 무참하게 찔러 장 천공으로 숟가락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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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2-03-12 1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죠??!!!!! 근데 전 중간까지만 읽었음요. 엄청 ㅇ상한 사람들 이야기인데 파워 오브 도그, 분노 등이 연상되더라고요.

Falstaff 2022-03-12 10:09   좋아요 2 | URL
댓글을 빨리 주셨군요! 전 사실 상세 내용은 거의 잊었고요, 이제 무척 좋았다, 하는 감상만 남아 있답니다. 아휴, 그래서 책 읽은 담엔 독후감을 늘 써야 한다니까요!

유부만두 2022-03-12 10:17   좋아요 2 | URL
아시겠지만 저의 ‘좋죠’는 책에 대한거에요;;; 천공은 좋을 수가 없으니까요.

잠자냥 2022-03-12 10:47   좋아요 2 | URL
앗! 저도 절반만 읽었는데! ㅎㅎㅎ 오늘 아침 무슨 책을 읽을까 책장 살피다 이 책 마저 읽을까 하는 순간 골드문트 님 이 100자평을 보니까 신기하네요. ㅎㅎ

Falstaff 2022-03-12 1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에 필적한 죽음은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손톱 밑을 파고든 장미 가시.
토마시 브루시히의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에서 나오는 장면. 남 아시아 해변의 코코넛 나무 밑에서 낮잠을 즐기다가 떨어진 코코넛에 맞아 뇌출혈로 즉사하는, 오, 나의 로망!

그레이스 2022-03-12 16: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알고리즘이었군요
잠자냥님 ‘읽고 싶은 책‘ 댓글 달고 왔는데,,,
제 옆에 쌓아놓고 있는 책!
페낙의 소개로 산 것 같은데...^^
저도 빨리 읽어야겠어요.

Falstaff 2022-03-12 18:56   좋아요 2 | URL
옙! 얼른 서두르셔요! ^^
댓글저장
 
스파숄트 어페어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1년 8월
평점 :
절판




  앨런 홀링허스트는 그의 첫번째 장편소설 <수영장 도서관>을 출간하고 16년이 지난 2004년에 <아름다움의 선 Line of Beauty>으로 부커상을 받는다. 친애하는 서재 친구 잠자냥 님의 소개로 <아름다움의 선>을 통해 앨런 홀링허스트를 처음으로 읽었는데, 작중 주인공 닉은 옥스포드 영문과를 졸업하고 런던 대학교 대학원에서 헨리 제임스의 문장으로 석사 논문을 준비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름다움의 선>은 21세기에도 제임스 식 방식, 제임스 식 문장으로 소설 쓰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듯, 비록 번역문만 읽어본 주제에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용서해준다면, 헨리 제임스의 문체를 충실히 계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세밀한 묘사로 주변을 탐색했던 제임스 당시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다른 작가들을 압도하는 치밀한 문장들의 집합으로의 문단paragraph. 이게 21세기에 살아난 것을 확인한 일 자체가 기적적이었다. 실제로 가장 최근에 읽은 헨리 제임스, <대사들>에서 사용하는 문장과 그것들의 소집단, 문단을 비교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 등장인물 군group 역시 스스로 노동하여 밥을 얻을 필요가 없는 부르주아 계급에, 최고의 교육을 받았으며, 지덕체를 완비한 반듯한 신사계급이면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극소수의 그리스 신 같은 사람들이다. 이 가운데 주인공이 있거나, 가장 중요한 화자가 있다. 화자일 경우엔 부르주아들 옆에서 관찰하지만 결코 같은 계급이라 할 수 없는, 약간 처지는 빅토리아 시대의 젠트리 정도의 계급 출신도 포함한다. 이것 마저도 헨리 제임스와 비슷하다. <아름다움의 선>은 런던의 켄징턴파크 가든스의 페든 씨 가족의 장남이자 옥스포드 출신, 출중한 미모를 갖춘 조정 선수인 토비의 대학시절 친구 닉이 주인공이며, <수영장 도서관>의 화자이자 주인공 윌리엄은 할아버지로부터 거액의 현금을 유증받아 일찌감치 노동을 하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옥스포드 출신의 귀족에다가, 용모 근사한 청년이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실제로 보면 참 재수없는 인간들이란 얘기.

  홀링허스트가 부커상을 받을 때까지의 초기작 두 작품과 이번에 읽은 <스파숄트 어페어>의 주인공은 다 남성 동성애자, 게이다. 홀링허스트 본인이 옥스포드 모들린Magdalen 칼리지에서 포스터, 퍼뱅크, 하틀리, 3인의 동성애 작가를 연구해 석사를 받은 게이 작가여서 그랬을 확률이 높다. 비슷한 분위기의 작품들인데, 20세기 말, 21세기 초의 소설인 만큼 게이 섹스의 노골적인 장면도 등장하는 바, 특히 <수영장 도서관>에서는 아직까지 적응이 되지 않아서 읽다가 난데없이 깜짝 놀랄 정도의 행위묘사에 나는 그만 질려버렸다. 그런 장면이 마땅하지 못하다는 뜻 보다 아직까지는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의미다. 시간이 더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그래서 비록 특이한, 지금 시대에 놀랄 만큼 전통에 기반한 유장한 문장, 헨리 제임스를 빼다 박은 문단과 구성이 매우 매혹적이었기는 하지만 이제는 그만 읽겠노라, 이별을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이이의 다른 작품을 속속 번역해 출간했다는 소식과 함께 경끼를 일으킬 묘사는 더 이상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단박에 주문을 넣지 않을 수 없었다. 읽을 당시엔 독자를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고 할 수 없으나 그의 책이 눈에 보이면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게 하는 많지 않은 작가 그룹 가운데 한 명이다.


  앨런의 아버지 제임스 홀링허스트는 글로스터셔의 은행 지점장이었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공군으로 복무했다. 후에 2차 세계대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하는 <스파숄트 어페어>의 첫번째 주인공인 데이비드 스파숄트는 원래 브레이지노스 소속 공학 전공자로, 1940년에 옥스포드를 비롯한 많은 대학에서 학생들이 입대하는 바람에 정부에서 학생들을 징발해 옥스포드로 보낸 전학생 가운데 한 명이었으며, 지금은 옥스포드의 조정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조정은 여덟 명이 노를 젓는다. 그래 이 팀을 에이트Eight라고 한다. 에이트는 하다못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자기들끼리 모여서 먹을 정도다. 이게 다 팀웍을 증진하기 위한 전통이다. 모든 단체 운동이 그러하지만 특히 조정만큼 팀웍이 중요한 경기도 거의 없을 정도라서. 에이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특히 상체 근육의 발달이다. 그래 데이비드 역시 1940년에 18세를 몇 개월 앞 둔 시절, 창문가에서 몸에 착 달라붙는 런닝 셔츠만 입은 채 기구운동을 규칙적으로 하고 있었는데, 맞은편 건물에서 자신의 몸을 유심히 관찰하던 학교 문화 클럽 멤버들의 시선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유명 작가들을 초빙해서 꽤 괜찮은 저녁 식사를 대접하는 조건으로 옥스포드 학생들에게 강연과 최신작 낭독을 부탁하는 단체로 지금은 새로 클럽 총무를 맡은 3학년 프레디 그린(화자)의 방에, 화가 피터 코일, 찰리 파몽거, 에버트 닥스가 모여 있다. 이 가운데 피터 코일과 에버트 닥스는 확실하게 게이고, 찰리 파몽거는 이후에 한 번도 다시 거론되지 않으며, 이들보다 한 학년이 위인 프레디 그린은 게이라고 단정할 만한 근거는 전혀 없지만, 당시로는 놀랍게도 게이에 대한 편견 역시 하나도 없고, 병역을 면제받은 청년이다.

  이제 총아로 등장한 데이비드 스파숄트. 너니턴 출신으로 철강공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는 아버지와 고향지역 백화점의 프리먼 커튼 매장 직원인 어머니 사이의 외아들. 옥스포드의 문학 클럽 회원들에 비하지 못할 계급이기는 하지만, 옥스포드의 유일한 인도인 학생인 다스는 그를 보고 그리스 신화에서 나오는 신을 보는 것 같다는 감상평을 남길 정도다. 아주 거만해 보이는. 이 말을 들은 프레디 그린은 그리스 신화의 신들 역시 거만했을 거란 생각을 하고 만다. 아름다운 청년은 거만함도 매력이다.

  이런 스파숄트의 누드 초상을 그리겠다고 제일 먼저 접촉한 인물은 1942년, 전쟁중 선박 위장 업무를 수행하다가 전사할 예정인 피터 코일. 보디빌더 같은 가슴과 복근, 교묘하게 잘라낸 목덜미와 무릎, 희미하게 처리한 음경과 고환을 그린 ‘벌거벗은 남자의 붉은색 초크화’. 심미안을 가진 몇몇 사람들에게 충격을 줄 소품은 피터가 징집되기 전에 프레디에게 넘어가고, 프레디로부터 스파숄트를 소유하기 위해 애가 닳는 에버트 닥스, 당대의 위대한 작가이자 다음 번에 옥스포드에서 강연과 낭송회를 부탁할 A.V. 닥스의 아들에게 전해진다. 그리고 저 먼 훗날, 동성애자 에버트가 자손 없이 죽을 때, 그림의 모델인 데이비드의 아들이자 성공한 초상화가 조너선 스파숄트에게로.

  에버트 닥스는 데이비드 스파숄트를 너무도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스파숄트는 벌써 애인 콘스탄스, 코니가 있으며 가장 바라는 바는 아들을 얻는 것이다. 내년 1월에 18세가 되는 남자애가. 즉,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에버트 닥스가 지독히 시골스럽고 전근대적이지만 아름다운 조정선수인 스파숄트를 소유할 수 없을 터. 겨우 세 번 홀링허스트를 읽고 이렇게 얘기하면 많이 무리겠지만 작가는 이를 위하여, 스파숄트로 하여금 상위 부르주아인 에버트 닥스가 다음달에 스탠리 고일의 추상화 한 점을 구입할 돈에 약간 미치지 못할 금액을 당장 마련하지 못하면 퇴학당할 위험에 떨어뜨린다. 이를 알게 된 에버트는 기꺼이 스파숄트가 필요한 돈을 빌려주고, 어쨌거나 겉으로 보기엔 대가로 데이비드를 소유하게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성간 성 결합 하나만 가지고 작품의 제목을 “스파숄트 어페어”라고 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2부로 넘어가면 1966년. 어느 새 26년의 세월이 지나갔는데, 데이비드와 코니 사이에 데이비드가 바라던 아들 조너선 스파숄트, 조니가 열네 살의 사춘기 소년이 된다. 공학을 전공했던 데이비드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종전 시점에 23세의 최연소 비행 중대장이란 기록을 세우고, 공군십자훈장까지 받은 전쟁영웅이 된다. 이런 경력을 가지고 새삼스레 옥스포드에 가서 공부를 계속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제대 후 고향 너니턴에 가서 “D.D 스파숄트 엔지니어링”이란 회사를 설립해 성공적으로 성장한다. 나이 들어 아들이 회사를 잇고자 하지 않자 팔아 평생 쓰고도 남을 현금을 손에 쥘 때까지.

  하여간 자신의 회사가 절정기에 달할 때, 스파숄트 사장은 아내 코니, 아들 조니, 아들의 프랑스인 친구 바스티앙, 그리고 시의회 소속의 중요한 자리에 있는 핵스비 부부와 함께 콘월에 있는 레슬리 스티븐스 의원의 별장에서 일주일 간의 휴가를 즐긴다. 의원이 소유한 25피트짜리 보트 가니메데스 호를 무상으로 즐기면서.

  글쎄. 읽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데이비드 스파숄트를 적극적인 동성애자로 보지 않는다. 처음 옥스포드에서 곤란을 겪을 때, 빠른 시간 안에 필요한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잣집 아들 에버트 닥스가 제공하는 돈을 위하여 동성애자가 자신을 소유하는 것을 허락한 것과 같이, 사업상 필요에 의하여 특정인의 힘을 빌려야 했을 때, 부패한(이라고 평가를 받는) 의원 레슬리 스티븐스와 그의 졸병 클리퍼드 핵스비가 요구하는, 여전히 강건하고 매력적인 몸을 동성애에 관한 의식 없이 그저 뇌물처럼 제공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조너선의 친모 코니와 20년이 넘는 혼인을 지속했고, 스티븐스 의원과 핵스비 씨와의 집단 행위가 사회적으로 발각이 나 유죄판결을 받아 이혼을 당하고는 자신의 비서 준과 또 40년의 결혼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을 터. 어쨌거나 1966년에 동성애를 했다는 죄목으로 유죄판결을 받아, 스파숄트 어페어, 또는 스파숄트 스캔들이 성립이 되었을 뿐이다. 불과 서너달 후에 만해도 무죄였을 테니 얼마나 땅을 쳤겠는지.

  그러나 아들 조너선, 조니 스파숄트는 태생이 동성애자다. 그리고 결혼 외로 딸을 하나 두었다. 나중에 팻이라는 남자와 법적 결혼을 한다. 딸 때문에 양성애라고 판단하면 오해다.

  작품의 2/3 이상이 바로 아들, 조니 스파숄트의 이야기. 이것까지 차마 독후감에서 떠들어댈 수 없다. 재미있는 작품이다. 분량만 보고 주저할 필요 없이 잘 읽힌다. 이 작품에서는 홀링허스트 안에서 헨리 제임스의 그림자를 추적하는 일이 별로 의미가 없다. 물론 영문학자에겐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일반 독자인 내가 읽기에는 헨리 제임스의 그늘에서 기꺼이 빠져나온 것 같다. <스파숄트 어페어>. 여태까지도 좋았지만 이제 더 좋아진 홀링허스트를 읽는 기회가 되겠기에 독자들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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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2-03-11 08: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스파숄트가 적극적인 동성애자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그의 행적이 이해가 가고요. 암튼 전 여태 읽은 홀링허스트 작품 가운데 이 작품이 가장 좋았습니다. 계속 읽고 싶은 작가라는 골드문트 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Falstaff 2022-03-11 11:37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래서 <이방인의 아이>도 사놨어요! 이것도 얼른 읽을 생각입니다!

잠자냥 2022-03-11 11:41   좋아요 3 | URL
저도 그거 사놨는데 그건 거의 800쪽! 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3-11 08: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닛 한동안 북플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영장 그분 아니십니까 ㅎㅎㅎ

잠자냥 2022-03-11 09:3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수영장 그분 ㅋㅋㅋㅋ 아 다락방님이 이빨 안 닦는 잭 리처 이미지 창조에 한 기여 하시더니, 제가 홀링허스트를 수영장 그분으로 만들었군요. 이거이거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3-11 09:58   좋아요 2 | URL
잠자냥님이 대댓글 달고 계시네요 ㅋㅋㅋㅋㅋㅋ 역시 수영장마니아이십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2-03-11 11:36   좋아요 3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제가 왜 남의 서재에서... ㅋㅋㅋ 요즘 골드문트가 설거지 하느라 주부습진 생겨서 제가 대신 자판 쳐드렸습니다. ㅋㅋㅋㅋ

독서괭 2022-03-11 11: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골드문트님 반응이 궁금합니다😂

Falstaff 2022-03-11 11:39   좋아요 3 | URL
ㅋㅋㅋ 주부습진 어떻게 아셨을꼬? 건성피부라 그런지 아휴, 보통이 아닙니다. 무척 가렵고 신경쓰여요! 오늘도 이제야 랩탑 열었습니다.
수영장 그분 맞아요, 독서괭님! 처음 읽기가 고단해서 그렇지 한 번 잡으면 계속 읽어야 하는 의무감 비슷한 게 생기는 작가랍니다.

다락방 2022-03-11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40 페이지나 되네요. 읽어보고 싶은데 말입니다. 흐음.

잠자냥 2022-03-11 09:32   좋아요 0 | URL
홀링허스트 작품 대부분 짱 길어요. ㅋㅋㅋ 근데 재미있습니다.

Falstaff 2022-03-11 11:40   좋아요 0 | URL
이 책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금요일 저녁에 퇴근하고 시작하시면, 일요일까지 무난하게 끝내실 겁니다. 물론 와인 한 병만 따지 않으신다면요!

새파랑 2022-03-11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책 많이 두꺼워서 손이 안가던데 북플 셀럽 두분이 인정하셔서 이 책은 읽어야 할거 같군요~! 수영장 보다 약하다는데 ㅎㅎ

잠자냥 2022-03-11 09:32   좋아요 1 | URL
수영장에 비하면 거부감 드는 장면 없습니다!

Falstaff 2022-03-11 11:43   좋아요 2 | URL
아, 다락방 님 댓글에 답글을 썼더니 ㅎㅎㅎ 하여튼 시작을 해보셔요.

coolcat329 2022-03-11 10: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헨리 제임스를 먼저 읽어보고 싶습니다. 경기 일으킬까봐 멀리하는 작가인데 이왕 읽는다면 상받은 아름다움의 선을 읽고 싶네요. 😁근데 책 표지부터 좀 그래서...

Falstaff 2022-03-11 11:51   좋아요 3 | URL
<대사들>은 피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주 장황해 곤혹스러울 지경이었다니까요.
<한 여인의 초상>, <워싱턴 스퀘어> 재미있습니다. ^^

coolcat329 2022-03-11 12:19   좋아요 2 | URL
네 ~ 대사들은 진작에 리뷰읽고 걸렀습니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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