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망다랭 1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송이 옮김 / 현암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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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의 프랑스. 온 유럽을 말발굽으로 짓밟고 다니던 키 작은 코르시카 사나이가 1815년 6월 벨기에의 워털루 평야에서 영국과 프로이센 연합군한테 거의 다 이겼다가 마지막 카운터 펀치 한 방을 맞고 쌍코피를 흘린 이후에, 일설에 의하면 코르시카 사내가 자기보다 키가 큰 프랑스 남자들의 씨를 말려서 이후 순종 프랑스인 가운데 씨알 굵은 종자가 사라졌다고 하는데 확인한 바는 없지만 그래서 그런지, 55년 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1914년 1차 세계대전, 마지노 선을 우회해 아르덴 고원을 돌파한 1940년 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독일하고 붙었다 하면 얻어터지느라 해 지는 줄 몰랐다. 사실 기원전에 쓴 <갈리아 전기>를 보더라도 라인 강 동쪽에 터를 잡고 사는 야만인들을 정복하는 일이 카이사르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을 만큼 그쪽 인종들에게, 모르기는 몰라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많았던 거 같다. 갈리아 인이라고 같은 갈리아 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황제 근위병은 전부 이 라인 동쪽 골 족의 용병으로 채웠으며, 후계 없이 죽은 황제의 다음 황위는 거의 이 용병 게르만 족이 결정을 했거나 적어도 승인을 받아야 했을 정도였으니까. 로버트 그레이브스의 명저 <나는 황제 클라우디우스다>를 참조하셔도 좋다.
  1940년 5월 10일 프랑스 땅에 첫 발을 디딘 독일군은 5주 만인 6월 13일, 드디어 파리에 입성한다. ①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와 나치 일당을 나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렵다. 왜 전쟁을 벌였을까? 애초에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여기다가 미국까지 합한 연합군을 이길 수 있으리라고 시뮬레이션을 해보았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토록 훌륭한 시뮬레이션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진행했을까. 이 책 <레 망다랭>을 읽기 전에 페터 바이스의 역작 <저항의 미학>을 미리 읽으면 좀 더 편할 지도 모른다. 나도 <저항의 미학>을 읽기 전까지는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어찌하여 독일의 군비증강과 히틀러와 나치에 의한 전체주의화를 용인, 적어도 묵인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② 1차 대전으로 그렇게 곤혹을 겪고도 또 독일로 하여금 군대를 키우고 무기를 생산하게 내버려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②부터 말하자면, 1917년, 소비에트의 탄생이 주된 이유였다. 보라. 프랑스, 영국 등 전통의 연합국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자본주의, 라기보다는 부르주아 권력에 의한 국가였다. 예전에 러시아라고 부르던 영토에 자리잡은 소비에트 연방, 소련은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세계 적화를 목표로 공산주의의 확산에 전력을 기울였다. 1919년 레닌에 의하여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3 인터내셔널, 이라고도 하는 코민테른은 세계 각국에 지부를 두고, 심지어 당시 조선 공산당에도 심각한 영향을 끼칠 정도로 전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을 포함한 부르주아 국가들은 서유럽 국가들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보더border 지역으로 여겨, 독일의 군사력을 증강하는 것이 소련의 서진을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실제로 키 작은 오스트리아 아마추어 화가와 나치들은 한편으로 전체주의를 강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유대인과 공산주의자, 집시를 말살하기 시작했다. 이것, 즉 (집시는 모르겠고) 유대인과 공산주의자에 대한 수용소 처분과 학살을 서유럽과 미국이 반대했다고? 누가 그래? 알베르 코헨의 명작 <주군의 여인>에서는 프랑스 부르주아의 입에서 이런 대화가 등장한다. “글쎄 히틀러한테도 배워야 할 게 있다는 말이야.” 물론 소설 속의 주요 증오 대상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유대인이지만, 바이스는 작품을 통해 유대인보다 공산주의를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워했던 서방 국가들이 독일의 무장을 못 본 척했다고 주장한다.
  ①의 문제, 히틀러로 하여금 전쟁을 발발하게 만든 것 역시 연합군의 잘못이라는 관점이 대세다. 애초에 히틀러는 큰 규모의 전쟁을 계획하지 않았다고 한다. 체코를 억눌러 독일인들이 주로 살고 있는 지역을 통째로 삼킬 수 있어서, 이것 봐라, 하는 마음이 들게 했던 것이 첫 번째 잘못이고, 폴란드를 침공해도 다른 국가들에서 여전히 큰 문제로 삼지 않아 마음을 놓게 했던 것이 두 번째 잘못이라고 한다. 그래 처음에는 대규모 전쟁을 일으킨다면 도무지 승산이 없다고 봤다가, 점점 간이 커져 프랑스하고만 싸우면 확실하게 이길 수 있고 (사실 그랬다.), 영국이 프랑스를 지원해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봤단다. 이 시뮬레이션도 조금 무리라는 걸 우리는 안다. 영국이 참전했다 하면 다만 시간이 문제지 전통적으로 영국과 한 편이 되어 끝까지 가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뉴질랜드. 소련과 이 나라들을 무시한 것이 히틀러에게는 불능의 방정식이었는데, 일을 여기까지 끌고 오게 만든 건 전적으로 서방 부르주아 국가들에게 있다고.

 

  1940년 6월 13일 독일군의 지배에 들어간 파리는 1944년 8월 25일, 미군에 의하여 해방된다. 왜 구구절절 말이 많았나 하면, 이 책 <레 망다랭>의 등장인물 거의 대부분이 좌파 진보세력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1944년 12월 24일, 동거 상태인 앙리와 전직 가수였던 폴(女)의 원룸에서의 조촐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시작한다. 파티에 참석한 인물은 유명한 작가이자 정치에 참여하려는 뜻을 갖고 있는 뒤브뢰유 씨와 이이보다 스무 살 젊은 아내 안, 열여덟 살 먹은 딸 나딘, ‘희망’이란 뜻의 신문 “레스푸아”의 운영자 앙리의 사무실에서 일하는 뱅상, 랑베르, 세즈나크, 샹셀, 그리고 앙리와 함께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한 무장 레지스탕스의 영웅이자 이름 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사마젤 등이다. 레스푸아의 뱅상, 세즈나크, 샹셀 역시 레지스탕스 출신이며, 랑베르는 자기 아버지가 유대인 애인을 나치 친위대에 밀고해 죽게 만들었다고 믿어 부자간 사이가 완전히 틀어진 청년이다.
  프랑스 문화계의 거물 사회주의자 작가 뒤브뢰유 씨는 새롭게 공산주의가 아닌 사회주의자들의 연합 S.R.L을 창설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으며, 이를 위하여 앙리의 신문사 레스푸아를 S.R.L의 기관지로 만들려고 자신의 제자이기도 한 앙리를 설득한다. 그런데, 20세기 공산주의를 보면, 공산당은 하다못해 스페인 내전 시기에도 끝없이 권력투쟁을 벌이고, 투쟁마다 승리를 거둬 공산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당파를 말살한다. “건전한 정신에는 우둔의 악취가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라고 농담 한 마디 했다가 청춘 시절 거덜난 밀란 쿤데라의 이야기는 익히 아실 듯. 공산주의와 공산당은 인정하되 결코 호락호락 활동하게 내버려두지 않았음을 21세기의 독자들은 알고 있지만, 좌파 무장 레지스탕스 경력으로 뭉친 1944년 말의 사회주의자들은 결코 공산당과 공산주의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뒤브뢰유 씨가 새로운 사회주의 당파를 만들려고 했던 것.
  앙리도 S.R.L이 기관지가 없으면 자기들의 주장을 펼 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곤란한 처지에 처해질 것임을 이해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기관지로 흡수된다면 모든 중도와 좌파 독자들 가운데 공산당이나 S.R.L과 뜻을 달리하는 독자들의 이탈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은 기관지가 되기는 하지만. 이때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스크리아신이라는 러시아 출신 망명자가 있다. <붉은 낙원>의 저자이기도 한데, 이이가 소련 내의 거대 수용소에 관한 기사거리를 가져온다. 티머시 스나이더의 <피에 젖은 땅>이 떠오르는데, 스탈린 정권은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생산에 종사하는 수 많은 프롤레타리아를 먹이고 입히기 위하여 특별한 생산 조직을 운영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하여 스탈린은 전국에 1천5백만에서 2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수용소라는 이름의 집단 노동형에 처해 하루에 열네 시간씩 무보수로 일을 하는 새로운 노예계급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저 극동지방 간도 지역의 조선 이민들 역시 1920~30년대에 집단으로 중앙아시아로 이주시켜 카레이스키라는 새로운 종족으로 만든 것도 이 때다. 즉 소련 내 유대인 뿐 만 아니라 독일군 포로, 소수민족 등등, 가리는 것 없이 노동할 수 있는 비 러시아인이면 이 노예계급에 합당한 신분을 가졌다는 것.
  사람들에게 “높은 덕성을 지니고, 이해에 좌우되지 않고, 정직하고, 공정하고, 용기 있고, 한결같고, 결점이 없으며 스스로에 대해 조금도 가책을 느끼지 않는” 성격의 앙리는 이런 내용일수록 좌파신문에서 고발기사가 나가야 하지 피가로 같은 우파 신문에서 특종을 내게 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S.R.L의 대표 뒤브뢰유와 담판을 벌인다. 뒤브뢰유는 이를 거절한다. 만일 레스푸아에 이 기사가 뜬다면 공산당으로부터 본격적인 공격이 들어와 결국은 S.R.L의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라서. 그래 앙리는 뒤브뢰유와 크게 다툰 후 그와 결별하고 다시 독자의 신문매체로 돌아와 1면에 소련의 노동 수용소 실체를 밝히게 된다. 결과는, 뒤브뢰유가 옳았다. 누구나, 심지어 프랑스 공산당 당원들도 알고 있었지만 유럽을 식민지로 만들려 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탈을 견제하고 있는 스탈린 소련에 반대하는 자체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다. 끝없이 권력투쟁을 벌여 빠짐없이 승리를 해온 공산당 집단의 당파성. 비록 자신들의 의견이 진실과 다름을 충분히,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음에도,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거나, 잘못한 행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좌파적 집단 의식에 앙리가 제대로 걸려버렸다. 그리하여 앙리는 그토록 믿었던 젊은이 라숌으로부터 신문지상으로 협잡꾼, 모리배, 사기꾼 등, 활자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가장 독한 욕설을 원없이 듣게 된다.
  굳이 독후감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은, 여기까지 진도가 나가야 <레 망다랭>이 별점 다섯 개의 계관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앞부분, 1권을 읽다가 생각보다 재미없다고 쳐도, 하여간 여기까지는 진도를 빼시라. 위에 쓴 것 말고도 참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여기에 <레 망다랭>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드는 건, 시몬 드 보부아르가 등장인물에 부여하는 성격이다. 완전하게 선한 인간은 한 명도 없다. 위 문단에서 마치 극단의 높은 인격을 갖고 있는 것처럼 인용한 앙리 페롱은 두어 살 많은 여인 폴과 동거하면서 그녀로 하여금 심각한 정신병에 걸릴 정도의 집착을 갖게 만들 정도로 자유연애를 구가하고 있다. 극 중에서도 포르투갈에 초청받아 몇 달에 걸쳐 여행을 할 예정이면서도 처음부터 폴과 함께 갈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계획에 없이 뒤브뢰유의 열여덟 먹은 천방지축 딸 나딘과 동행한다. 이건 사생활이라 치더라도, 공정하기 이를 데 없다는 랑베르의 찬사가 어느 순간에 배신과 위선으로 바뀌는 파렴치한 짓, 범죄수준의 허용되지 않는 행위를 공적으로 하기도 한다.
  나딘 뒤브뢰유는 스페인 국적의 유대인 청년 디에고와 연애를 하다가 디에고가 부헨발트에서 사망하자 프랑스 남자와 미국 군인들의 침대를 오가며 지내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엉뚱한 억측과 삐딱한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나딘의 엄마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안은 학회 참석차 뉴욕에 갔다가 시카고에서 인생의 연인 루이스를 만난다. 이후 일 년에 몇 달씩 루이스를 만나 멕시코와 라틴 아메리카를 여행하고, 시카고의 루이스 방에서 몸의 즐거움을 확인하고, 삶의 이유를 되찾아 다시 로베르 뒤브뢰유 곁으로 온다. 물론 이건 작가 시문 드 보부아르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연인이었던 넬슨 올그린을 모델로 써서 그런지 읽으면서 잘못됐다거나 나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용감한 레지스탕스로 이름이 높았던 세즈나크는 알고 보니 마약 중독자로 원래 부자였지만 모르핀을 사기 위해 모든 재산을 날리고, 그것도 모자라 비밀리에 독일군과 접선해 수백 명의 유대인을 그들의 손에 넘기는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이 발각난다.
  기타 전쟁이 끝나 극도로 어수선한 상태에서 파리의 레 맹다랭, 지식인들은 곧이어 3차 세계대전이 터질 것임을 공포스럽게 기다리며 미국과 소련이란 두 진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 불안이 시민들을 압도할 당시의 인간 모습, 이 가운데 전 프랑스, 아니, 전 파리 사람들에 비하면 비록 소수이겠으나 (프티)부르주아 인텔리겐치아들의 생활과 심리상태를 절묘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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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21 11: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점이 높아졌네요^^
말은 끝까지 들어보고, 책도 끝까지 읽어봐야 한다!
저는 리뷰쓰면서 별점을 더주게 되죠 ^^
레망다랭은 출간되었을때 도서관 희망도서로 받았다가 들춰보지도 못하고 반납했었습니다.^^;;

Falstaff 2022-01-21 12:02   좋아요 5 | URL
옙. 높아졌습니다.
근데도요, 보부아르의 수다가, 이거 참,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한 얘기 비슷하게 한 번 더 하고. 이 끝없는 론도 모데라토가 참 ㅋㅋㅋㅋ
다시 읽으라면 제가 이렇게 되물을 겁니다.
을마 줄랴?
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01-22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놓고 아직 시작할 엄두를 못내고 있는 책이데 지난번 골드문트님 별점 보고 절망했다가 지금 이 리뷰보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ㅎㅎ 올해 가기전에 읽겠죠 뭐.... ^^

Falstaff 2022-01-22 18:56   좋아요 2 | URL
아이, 사셨으면 걍 읽어버리세요!
술술 읽히는 수준은 아니지만 전혀 어렵지도 않습니다. 으쌰, 으쌰!!!

stella.K 2022-01-22 19: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왠지 골드문트님 리뷰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ㅠ
문트님 리뷰는 정말 공익적인 느낌까지 들어 경의를 표하고 싶을 때가 많은데
이것도 그렇습니다. 고맙슴다.^^

Falstaff 2022-01-22 20:21   좋아요 1 | URL
책 안 사셨으면 선택은 당연히 독자 맘이지요.
이 책은 스타일에 맞고 안 맞고도 중요한 거 같더라고요.
저도 그래서 굳이 권하지 않습니다. ^^
 
2017 서울연극제 희곡집
오세혁 외 지음 / 서울연극협회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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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그대로 2017년에 있었던 “서울연극제” 출품작품의 희곡을 담은 책이다. 2017 서울연극제에는 모두 열 편의 작품을 공연했지만, 세 편은 저작권 문제 때문에 이 희곡집에 담을 수 없었다고 한다. 책에 담지 않은 것 가운데 <벚꽃동산>이 포함되어 있다. 이게 체홉의 작품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안톤 체홉의 작품 맞다. 검색하면 다 나온다.) 연극제라고 해서 모두 초연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닌가 보다. 실린 작품 가운데서도 1980년 가을에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초연한 안민수의 <초혼>도 있다. 그러니 이 작품은 37년만의 리바이벌 공연인 셈이다. 초연 연출가이자 원작을 쓴 극작가인 안민수가 이 공연을 보았을까? 2019년에 세상을 떴으니 봤을 수도 있고, 건강상 아닐 수도 있겠다.
  저번에 말한 것처럼 나는 “희곡 우체통” 시리즈와 서울연극제 희곡집을 읽어 보기로 했다. 2020 희곡우체통은 읽고 “기대 이상으로” 만족을 해서, 서울연극제 희곡집도 2017년부터 2020년까지 네 권을 한 방에 구입했는데, 이 모음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희곡우체통은 좋은 희곡을 발굴하기 위해 작품을 상시 모집하고 이 가운데 작품을 선정해, 정식 공연은 아닐지라도 낭독공연을 해주는 신인 등용문 역할을 했던 것과 달리, 서울연극제는 각 극단이 참가 신청을 하고, 물론 특정한 기준에 의거해서 작품을 선정해, 공연할 무대를 깔아주는 것이라 희곡 자체 보다는 연출을 통한 “극”에 더 방점을 찍겠지만, 하여튼 관객이 아닌 독자가 “읽기에” 희곡우체통 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섭섭해 할 것을 알긴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처진다.
  “희곡”은 글로 쓰여진다. 그래서 한 번 활자를 타고 제본이 되면 이제 다시는 지울 수 없다. 인류 최초의 문학 기록물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돌에 쐐기문자를 새긴 것인데, 이래서 생긴 말이 “글로 쓴 건 지울 수 없다.”로도 해석하는 “Littera Scripta Manet.” 반면에 “극”을 포함한 무대에서 벌어지는 건 일회성이 특징이다. 아무리 여러 번 공연을 해도 원칙적으로 말해서 “같은 공연”은 한 번도 없다. 그래 연출가와 배우는 단 한 번의 공연으로 관객들의 뇌리에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오버를 한다. 2017년 서울연극제 희곡집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오버는, ① 쌍욕, ② 벗기기, ③ 보수권력 조롱하기다. 2017년 3월 10일,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인용하면서 박근혜를 대통령의 직에서 파면한다. 4월 26일, 수요일에 시작한 2017 서울연극제는 적어도 연초부터 준비단계에 접어들었을 것이고, 임기말에 닥친 박근혜 정권을 마음대로 조롱하기로 마음먹은 거 같다. 좋다,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어 있어야 하니까. 창작의 자유가 언제나 보장되는 게 아닌 거 같아 문제긴 하지만.
  또한 벗기기 연극. 연극에서 과도한 벗기기를 문제 삼은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긴 한데, 그것이 참. 여자 남자 배우를 벗기지 않아도 극을 얼마든지 진행시킬 수 있을 것 같은데도 극작가와 연출가는 일단 벗기고 보는 거 아닌가 싶다. 그리고 (지금이 대선 국면이라 이에 관해 얘기하기가 좀 거시기 하지만) 배우한테 뭐 이리 험한 욕설을 주문하는지 모르겠다. 나도 욕 좀 하는 인간이기는 해도 도무지 수습이 안 될 분위기에서 그냥 일상적으로 쌍욕을 뱉고 마는 거, 이런 것들이 전부 극의 장면을 과장하려는 거 아냐? 오늘날 셰익스피어나 실러처럼 극작을 하라는 건 아니지만, 하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어처구니없게, 가장 인상깊게 읽은 작품은 1980년 가을에 초연한 <초혼>이다. <초혼>은 당시 다양하게 시도했던 특정 대사가 없이 몸짓과 소리를 사용해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식을 채택한 극이다. <초혼>은 당시 <산씻김>과 더불어 당대에 히트한 작품으로 이번에 처음 희곡을 읽어보았다. 희곡 자체도 대단히 재미있다. 특히 지문 읽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예를 들어,

 

  “되풀이 또 되풀이
  어찌 서럽고 애통해서 오른손으로 왼 가슴을 치며 두 발은 껑충껑충 뛰는데 마치 춤추듯 무용하고 그러는 새 다시 입 맞아 외치는 소리는 노래 같다.”

 

  “되풀이 자꾸만 자꾸만 되풀이
  이제는 내고 뛰는 것이 넘쳐서 입도 발도 모두가 제각각인 것이 마치 미친 이들 같다.
  그러다 지쳐서인지 지인들이 하나하나 언제인지 모르게 뒤걸음쳐 나가고 아들만 있는 곳에 가솔들의 곡성은 멀리멀리 아득해진다.”

 

  찾으면 더 있겠지만 그냥 펼친 한 페이지 안에서 골라도 이 정도다.
  <초혼 2017>의 영어 제목을 어떻게 뺐느냐 하면, <Ah-e-Goh>다. <아이고>. 우리나라에서 초상이 생기면 상주와 문상객들이 곡을 하는 소리가 아이고,니까 이렇게 지은 거 같은데 말 그대로 초혼招魂으로, evocation이라 하면 더 좋았지 않을까 싶다. 관객 또는 독자에겐 제목을 지을 권리가 없으니 그저 희망사항일 뿐.
  <초혼>의 1980년 초연 당시에 “혼을 부르는 사람들 (여)” 명단 가운데 한 명의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온다. 한영애. 신촌블루스의 멤버로 <누구 없소>와 <조율>을 히트시킨 가수 겸 배우. 내가 사는 아파트 길 건너 밥집 유량북어찜 아줌마가, 자기 친구까지는 아니고 적어도 지인은 된다고 주장하는데, 바로 그 한영애가 출연했던 건 맞는다.

 

  하여간 이제 서울연극제 희곡집을 처음 읽었다.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첫 번째 시도란 것에 만족하고 2018 서울연극제 희곡집을 기대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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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20 13: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희곡집은 골드문트님께!

Falstaff 2022-01-20 14:53   좋아요 2 | URL
ㅎㅎㅎ 저도 희곡과 연극, 이 동네는 잘 몰라요. 그래서 더 읽고 있는 겁니다. 좀 알고 싶어서요. ^^;;;

stella.K 2022-01-22 19: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극도 그렇다는 말을 듣기는 했습니다만
오죽하면 그럴까 싶기도 하네요.
영화는 말할 것도 없죠. 굳이 안 벗겨도 다 이해하는데 꼭 벗겨요.
그거 보면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더군요.
연극도 검증된 것만 재탕, 삼탕 나중엔 십전대보탕까지
우려 먹으려 드니 연극을 한다는 게 좀 김빠지는 일이긴 하죠.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니 작품 보단 어떤 배우를 쓰느냐가 더 관건이겠죠.
저도 몇년 전에 비슷한 구성의 희곡집 읽은 적이 있는데
대체로 의욕적인 느낌은 들지만 과연 이 작품이 진짜 무대에 올라갔을까?
의문스럽긴 하더군요.
근데 골드문트님 대단하십니다.
이 책을 시리즈로 한꺼번에 구입하시다니.
연극계가 좀 알아줘야 할텐데....ㅋ^^;;

Falstaff 2022-01-22 20:19   좋아요 1 | URL
혹시... 스텔라 님 일이 드라마터지 아니세요?
그냥 팍, 느낌이 그래서 말입죠 ㅋㅋㅋ
말씀이 콕콕 찌르는 느낌이랄까 뭐, 하여튼 그렇습니다. ^^;;;

stella.K 2022-01-22 20:28   좋아요 1 | URL
앗, 너무 나댔나 봅니다.ㅠ
안 봐도 비디오 같은 천리안 아니겠습니까.ㅋㅋㅋㅋ
 
아버지의 책
우르스 비트머 지음, 이노은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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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놀랍네! 우르스 비드머가 이런 작품을 만들었어? 게다가 9천 원이야?
아아, 알아. 명작의 반열은 아니지. 그래도 어때? 아우, 난 정말 괜찮더라고.
누구나 다 장편소설 한 권은 가슴 속에 담고 사는 거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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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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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두 편의 단편을 실은 단편집. 윌리엄 트레버가 76세였던 2004년에 출간했다.
  트레버의 책은 읽을 때마다 곱게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다. 어느 쓸쓸하지만 보이지 않는 얇은 손톱이 있어 단어가 눈을 스칠 때마다 휘익 살갗을 베는 것 같은 서늘함이, 뭐라 말해야 하나, 그렇다, 애간장을 녹인다.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한 트레버의 책 일곱 권, 전부 마찬가지다. 이제는 트레버의 책을 새로 번역해 출간했다는 말을 듣기만 해도 저절로 구입하고, 구입한 것들 가운데 제일 먼저 읽어야 하는 책이 되어버렸다. 당신은 안 그런가?
  그러나, 트레버의 작품을 명작이나 걸작이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다른 독자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더라. 물론 현금 삼십만 원 주고 명작이라 말해달라고 하면 깊이 생각해볼 만하다. 이십만 원도 뭐 괜찮다.
  게다가 더욱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밀회>가 일곱 번째 트레버인데, 이제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작품의 분위기와 내용 같은 것이 애초에 기대했던 것과 거의 정확하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터무니없을 듯한데, 작품 하나하나가 이미 트레버의 다른 책에서 읽은 듯한 느낌을 받는다. 물론 같은 작가가 쓴 것이니 당연하다. 그러나 트레버 특유의 단어와 문장과, 문장들이 모인 트레버의 핑거 프린트, 단락이 워낙 독특해, 이런 기시감을 더욱 느끼게 만드는 건 아닌지.
  만일, 트레버와 같은 지역, 적어도 영어권에서 살며, 이이의 작품이나 작품집이 나올 때마다 몇 년 터울로 읽는다면 매번 위에서 말한 얇고 투명한 손톱에 할퀴어 대책없이 애간장만 녹일 것이다. 그러나 나 같은 경우에 2018년에만 네 권, 작년에 두 권에 이어 또다시 트레버를 읽으니, 조금 문제가 된 거 같다. 작년 8월 이후에만 세번째 만나는 트레버. 꽃노래도 삼세번, <밀회>가 바로 이 삼재수에 걸려버렸다. <밀회>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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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1-18 08: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칭찬하시던 작가에게 별 3개를 주셔서 깜놀!
트레버를 많이 읽으셔서 그러신듯요^^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트레버의 핑거프린트를 말씀하시는 골드문트님의 표현이 멋지십니다~

Falstaff 2022-01-18 09:19   좋아요 2 | URL
ㅎㅎㅎ 좋아하는 음식도 한 번에 자꾸 먹으면 좀 그렇잖아요.
이번에 그게 걸린 거 같습니다.
흠. 칭찬은 아무리 많이 들려도 질리지 않는데 말이지요. ㅋㅋㅋㅋㅋ

stella.K 2022-01-18 09: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30만원이면 본전 뽑겠는데요?ㅎㅎ

Falstaff 2022-01-18 10:17   좋아요 3 | URL
본전 뽑고도 쐬주 한 병은 사 마실 수 있을 거 같아요. ㅋㅋㅋㅋ

바람돌이 2022-01-18 11: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 이책 보려고 사두었는데요. 저는 아직 펠리시아의 여정 1권밖에 안읽었기 때문에 아직 트레버의 마법에서 벗어나려면 멀었음으로 안심입니다. ㅎㅎ 저도 마음에 드는 작가가 있으면 보통 전작주의로 가는데 읽은게 어느 정도 쌓이다보면 권태기가 오더라구요. 그러면 또 내려놓습니다. 우리에겐 읽어야할 수많은 작가와 책이 너무 많이 쌓여있으니까요. ㅎㅎ

Falstaff 2022-01-18 12:09   좋아요 2 | URL
앗, 그러시면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닷!
맞아요, 전작주의가 꼭 좋은 건 아닙니다. ㅜㅜ

새파랑 2022-01-18 12: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트레버의 책은 좀 간격을 두고 읽어야 겠군요~! 같은 작가의 책은 한달에 한편씩만 읽어야 겠습니다~!! 전작주의가 좋은게 아니었군요 ㅜㅜ

Falstaff 2022-01-18 12:23   좋아요 3 | URL
오. 전작주의가 좋지요! 그런데 언제나 좋은 건 아니라는 의견입니다.
저도 지난 달에 오에 겐자부로 3부작 한 방에 읽었다가 나가 떨어졌다는 거 아닙니까. 오에는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일본 작가였는데도 말입니다.
전작을 읽더라도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읽는 게 훨씬 바람직해 보입니다.

잠자냥 2022-01-18 13: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저는 한 작가 책 한번에 쭉 몰아읽는 분들 정말 대단해 보여요. 전 그렇게는 절대로 질려서 못 읽거든요. 저도 전작을 읽더라도 시간을 들여서 텀을 두고 읽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도 사두고 아직 안 읽은 거라고 핑계를 대봅니다.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1-18 13:2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사실이 그런데 핑계는요. 천만의 말씀을.

coolcat329 2022-01-18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생각에도 한 작가의 작품은 간격을 두고 읽는게 좋은거같아요.

Falstaff 2022-01-18 19: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죠? 다 비슷한 거 같아요!!
 
궁지 - 위스망스 단편 (구) 문지 스펙트럼 25
조리스-칼 위스망스 지음, 손경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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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짐>, <부그랑 씨의 퇴직>, <궁지>. 이렇게 세 중∙단편을 실은 책.
  위스망스는 몇 번 변신을 한 대표적인 작가다. 처음엔 에밀 졸라를 위시한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로 시작한다. 가난했던 졸라가 그의 대표작 <목로주점>을 발표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그때 번 돈으로 파리 근교 메당에 살롱을 열었을 때부터 소위 ‘메당의 야회’에 참가한 것은 물론이고, 졸라가 직접 헌사를 써준 초기 위스망스의 대표작이지만 우리나라엔 아직 번역, 출간하지 않은 <바타르 자매>는 출간 이틀만에 모두 팔려 파리 시내의 종잇값이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졸라가 <목로주점>과 <대지>를 발표하고는 몇몇 작가와 비평가한테 거친 욕설을 얻어들었을 때, 위스망스는 이미 <거꾸로>를 발표한 상태였음에도 졸라에게 지지를 표명했다.
  <거꾸로>는 당시에 거의 혁신적인 방식의 퇴폐미와 댄디즘을 과시한 작품이다. 애완 거북의 등껍질을 온갖 보석으로 치장한다는 발상을 여태 자연주의를 지향해왔던 작가가 어떻게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싶은 정도로 화려함과 사치의 극을 달린다. 오죽했으면 졸라가 <거꾸로>를 읽어보더니 “자연주의에 치명타를 날렸다.”라는 코멘트를 달았을까. 이때가 1884년. <거꾸로>를 출간할 당시만 해도 위스망스는 자연주의 작품을 포기한 건 아니지만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 마음은 보이지 않았던 듯하다. 실제로 <거꾸로>는 이 책에 실린 <궁지>와 같은 해인 1884년에, <부그랑 씨의 퇴직>을 88년에 발표했다. <거꾸로> 역시 대단한 성공을 거두지만 위스망스의 퇴폐미는 자연주의로의 회귀 대신 신성모독과 악마숭배 쪽으로 향해, 1891년에는 사드 후작의 귀싸대기를 후려갈길 악마숭배, 신성모독, 유소년 살해, 연금술 등을 소재로 하는 <저 아래>를 쓰기에 이른다. <저 아래>는 <거꾸로>와 조금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퉁 쳐서 그냥 세기말주의 또는 세기말적이라 칭하며, 결과로 이젠 자연주의와는 돌이킬 수 없이 멀리 떨어지게 된다.
  사는 일이 다 그렇다. 자연주의에 반反해서 세기말주의로 전화한 위스망스. <저 아래>로 세기말의 저 아래 막장까지 가 본 그는 <저 아래>를 발표하고 단 1년 만에 너무 끝까지 간 또 한 번의 반동, 즉 합合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럴 듯) 스타피스트 수도원으로 피정을 가더니 그곳에서 가톨릭에 귀의한다. 위스망스도 결국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님”이 된 것. 그를 퇴폐주의의 극단까지 내몰게 된 원인 가운데 중요한 하나가 안나 뮈니에의 정신병이 아닌가도 싶다. 위스망스는 적성에 맞지도 않는 법학을 공부하고 평생 시청의 말단 공무원으로 살며 틈틈이 글을 썼다고 하는데 (아내와 비슷하지만 아내는 아닌) 안나 뮈니에가 오랜 세월동안 정신병으로 발작을 일으켜왔으니, 이의 치료를 위해서 경제적으로도 어려웠지 않을까. 정신적, 경제적 결핍이 그를 악마주의로 몰았듯이 결국 가톨릭에 귀의하게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에잇, 짐작이다. 아니면 말고.

 

  이 책에 실린 세 편의 작품은 다분히 자연주의적 시각으로 쓴 것들이다.
  <등짐>은 프러시아-프랑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위스망스 본인이 전쟁을 코앞에 둔1870년 3월에 입대했지만 곧바로 이질에 걸려 물똥만 찍찍 싸다가 병원으로 후송되어 파리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 이후에 1871년 파리 코뮌 기간까지 병무부 전속으로 마르세유에서 근무했으니 졸라의 <패주>에서 보듯 무수한 프랑스 청년들이 스당에서 대책없이 죽어가는 동안 이이는 전쟁과 별 상관없이 편하게 지냈다고 보는 게 맞을 터. 그래도 양심이 있는지라, <등짐>의 주인공 외젠 르장텔은 참전을 위해 소집되어 이질에 걸린 상태로 전쟁터로 갔으나 전선에 배치도 받지 못하고 다시 후방의 병원에 입원하는 것으로 그렸다. 외젠은 부모, 그중에 어머니로부터 적지 않은 돈을 송금받아 틈만 나면 느슨한 병원에서 빠져나와 단짝 프랑시스와 시내를 다니면서 초호화판으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신다. 1875년에 쓴 이 작품 속에서도 나중에 <거꾸로>에서 자주 보게될 댄디즘의 작은 자락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기도 하다.
  <부그랑 씨의 퇴직>은 위스망스가 40세 때 작품으로, 배경 역시 당시 시청 말단 공무원이었던 자신의 페르소나일 수 있는 부그랑 씨가 업무능력 저하라는 핑계로 해고를 당한 이후의 삶을 그렸다. 당시 40세면 자타가 공인하는 중년이었다. 그러나 안나 뮈니에를 책임져야 했던 말단 공무원보다는 퇴직 후에 급격하게 남아도는 시간을 어쩌지 못하는 늙은 퇴직자, 평생 책상물림 말고는 아무것도 해본 일이 없어서 세상물정도 어둡고 민첩하게 대응하지도 못하는 독신남성이 자신의 생활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아 몰락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맞다. 나도 변화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오랜 동안, 아마 고 이건희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회사 경영진을 모아놓고 “마누라하고 새끼 빼고 다 바꿔!”를 주창한 이후부터 우리나라에 열풍처럼 번져갔던 단어일 것이다. 갑자기 변화를 당한 부그랑 씨. 저 먼 구석기 시대였다면 졸지에 다리나 팔 하나가 잘려 사냥능력을 상실한 수컷 영장류가 된 느낌과 비슷하겠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상류 포식자일수록 죽을 때 험하게 죽는다는 건 아시려나. 뭐 그냥 힌트다.
  마지막 작품이자 책의 표제작인 <궁지>를 위스망스가 경애해 마지않았던 에밀 졸라가 썼다면 6백 쪽에 이르는 루공 마카르 총서 가운데 한 편일 수도 있을 재료다.
  늙은 공증인 르 퐁사르 씨는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가서 공증인 자격을 얻었는데, 아버지가 죽자 마음을 다잡고 고향인 마른 주의 보샹에 와서 터를 잡았다. 젊은 르 퐁사르 씨의 팍팍 회전하는 두뇌는 돈 많고 못생긴 여자를 아내로 맞는 일을 성공시킨다. 그래 자기도 돈이 많아졌고, 못생긴데다가 병약하기까지 한 딸을 낳았다. 딸이 점점 자라 초경을 하는 걸 확인하고는, 자신의 친구 비슷하게 지내는 스물다섯 살 랑부아와 결혼을 시켰다. 그리고 자신은 홀아비가 됐다. 사위 랑부아 역시 못생긴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 쥘 랑부아 하나를 만들고 곧바로 홀아비가 된다. 그런데 아내가 자신의 지참금 십만 프랑을 아들에게 상속을 한 것이 문제. 아들은 파리로 가서 공부도 하고, 연애 비슷한 것도 하다가, 발랑 까진 도시 처녀들에게 기겁을 하고 순진한 시골 아가씨 스타일을 바라면서 딱지도 못 떼고 있었다. 그러다가 착한 심성을 지닌 시골 출신 소피를 만나 연애를 하고, 임신을 시키고, 염병에 걸려 죽어버리고 만다.
  내가 랑부아면 어떻게 할까? 당연히 소피를 데려와 아이를 낳게 하고, 아이 크는 걸 낙으로 삼아 남은 평생을 보내려 할 거 같다. 소피는 새로 결혼을 하거나 얌전하게 아이를 키우면서 살겠지. 이게 정상 아냐? 근데 랑부아와 르 퐁사르 씨의 경우는 전형적으로 프랑스 자연주의 소설의 예를 따르느라고, 법적 해석과 판례를 들어, 쥘이 죽기 전에 공증을 받아 서면 유언을 하지 않았으면 10만 프랑의 재산 가운데 5만은 르 퐁사르에게, 나머지 5만은 랑부아에게 유증된다는 걸 알고는, 공증인 르 퐁사르가 파리로 달려가 불쌍한 소피에게 23일치 하녀 임금인 33프랑 75상팀만 주고 입을 닦으려 한다. 어떻게 될 것 같은가? 당연히 부르주아가 이긴다.
  여기에 소피가 시골에서 돈 많은 지주의 아들에게 능욕을 당하고 집에서는 아빠한테 그놈하고 결혼도 못했으면서 줄 거 다 줬다는 굴욕과 함께 심하게 얻어터져 파리로 오게 된 사연까지 합하면, 정말 장편소설 한 권 정도의 스토리가 꾸려지지 않겠는가. 아직 소개하지 않은 소피와 소피의 친구들이 만드는 연합도 있고 말이지. 정말이다. 졸라라면 총서가 21번에서 끝났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하긴,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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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1-17 10: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극단은 잘 통한다고들 하던데 위스망스가 그걸 몸소 보여주는듯 합니다. 본인은 극단을 오고가느라 아무래도 힘들었겠지만 관찰자입장에선 재밌네요. <저 아래>사놓길 잘했습니다🤭

Falstaff 2022-01-17 12:04   좋아요 1 | URL
으... <저 아래>. 저도 읽고 별 다섯 개든가 평가를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추천하지 않을 책인데요. ㅋㅋㅋㅋㅋ
위스망스, 라기보다 세기말 퇴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저처럼, 재미는 없지만 흥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22-01-18 07:06   좋아요 2 | URL
위스망스 시작은 줄리언반스의 빨간코트 입은 남자였지만....골드문트님과 미미님 덕에 저 아래까지 소장한 1인 추가 ㅋㅋㅋ중고서점에서 샀는데 어찌된 일인지 래핑도 안 풀린 봉인서가 와서 잘 모셔뒀어요. 키워드 세기말 퇴폐미 이런 거에 홀렸네요...

청아 2022-01-18 07:08   좋아요 2 | URL
저도 세기말,퇴폐미에 홀렸어요ㅋㅋㅋㅋ
별 다섯인데 비추라하시니 더 궁금해요! 래핑도 그대로라니 열반인님 완전 득템하셨군요👍

Falstaff 2022-01-18 08:21   좋아요 2 | URL
오... 열반 님도, 미미 님도 <저 아래>를 구입하셨다니.
ㅋㅋㅋ 갑자기 리뷰 어떻게 쓰실지 팍팍 궁금해지네요!
래핑 안 뜯은 중고책, 이런 거 걸리면 정말 기분 좋은데 말입니다. 축하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