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작년, 2020년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 열 권을 추렸었다. 해당 글에 2021년에는 장강명의 <표백> 독후감을 읽고 싶다고 하신 분이 계셔서 내내 기억하고 있다가 이제야 독후감을 쓴다. 사람 마음이 참. 워낙 잘 나가는 작가라서 오히려 선뜻 집어 들게 되지 않았던 거 같다. 2011년에 <표백>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아 데뷔를 하고, 이후 굵직한 문학상을 수집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으며, 을지로 인쇄골목의 종이 값을 올리는데 기여한 작가다. 내는 책마다 대박이라, 억대 연봉으로 유명한 동아일보사를 때려치우고 지금은 전업 작가로 활약 중이다.

 

  <표백>. 발표했던 십년 전은 물론이고 지금 읽어도 젊은이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센세이셔널한 주제를 다루었다. 표백이라. 백 년 전까진 힘이 좋아 무쇠 칼을 휘두르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저편에 있는 적들을 쳐부수기만 하면 영웅의 관을 쓸 수 있었고, 일제강점기엔 독립투쟁을 하느라 목숨을 버리기도 했고, 전쟁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후에 독재에 저항하기 위해,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해 기꺼이 보도블록을 깨 같은 젊은 세대인 전투경찰을 향해 던지기도 했다. 이런 덜 성숙했던 시절을 지내며 이미 몇몇 선배들은 거대 담론을 독차지 할 수 있었으며, 큰 영광을 차지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른 꾀바른 몇몇은 어수룩한 시운을 타서 하다못해 아파트 투기 몇 번을 통해 탄탄한 중산 계급장을 깔고 앉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사회 전반은 틀이 꽉 잡혀 어디 한 군데 허술한 곳을 발견하기 힘들 지경이 되고,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경제의 확립은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 옴짝달싹 못 할 규격화 “만”을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내고 쌓아올린 스펙, 좋은 대학 졸업해 판검사 또는 5급 공무원이 되거나 의사가 되거나 반도체, 이동통신, 금융 같은 일류 대기업에 입사해야 하거나, 아니면 중견기업, 그것도 아니면 중소기업,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7급이나 9급 공무원, 하다못해 이것도 아니면 그저 루저가 되어 월 88만 원짜리 아르바이트생으로 빌빌거려야 하는 규격.
  위대한, 또는 영웅적인,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이슈는 모두 완결이 된 이후의 사회 속에서 사는 젊은이들의 허무. 이들 가운데 상위 천 분의 일에 해당하는 두뇌와 천부의 미모를 갖춘 정세연이란 젊은이가 현대의 사도로 등장해 소크라테스, 재프루더, 루비, 하비, 제리, 메리, 여섯 명의 제자를 두기에 이른다. 이들은 기성세대를 향하여 거대한 복수의 장을 마련하고자 하니, 어떻게 읽으면 이제 이들에게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영웅적, 또는 위대한 반항, 항의의 뜻으로, 자살을 선언하고 실제로 죽어버리는 일이다.
  어차피 세상살이는 선택으로 이러진다. 젊은이들이 현실에 고뇌하고, 탐색하다가 절망하고, 출구를 모색하고, 타협하고, 분노도 하는 건 언제나 같다. 이들이 기성에 항의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자살선언과 실행. 백 년 전에도 있었다. 다만 살해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 부모였을 뿐. 그래서 생긴 것이 살부계殺父契, 아버지 죽이는 집단. 이들의 아버지들도 살부계 자식들을 용인했다. 왜냐하면 자신들 역시 젊은 시절 살부계를 만들어보았기 때문. 물론 극히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말 생명의 결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도 제일 싫어하는 말이 “부모님을 제일 존경한다.”는 거다. 부모는 극복과 타도의 대상이지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키운 두 아이는 어려서부터 절대로 이런 얘기는 입도 벙긋하지 말라고 교육받아서, 어디 가서 “저는 부모님을 존경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는데, 미친다, 어감이 꼭 “우리 집구석이, 콩가루 집안이에요.” 라는 뜻 같기도 해서. 그것도 참.

 

  하여튼 자살선언서 작성, 자살 종교의 사도 재키 정세연과 여섯 제자, 그리고 주인공이자 2년 공부 끝에 7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과천 종합청사의 농림부에서 근무하는 ‘나’ 적그리스도. ‘나’가 적그리스도? 그렇다. 그럼 그리스도는, 당연히 사도, 재키, 정세연이다. 정세연. “정의 세우기 연대”가 아니고, 작가 장강명이 졸업한 학교 연세대학의 ‘연세’를 뒤집어 놓은 것도 아니고 오직 하나, 자살교의 교주이자 사도. 그럼 적그리스도는 비록 처음엔 그리스도와 한 편이었을지 모르지만 지혜와 판단을 장착해 나중엔 악착같이 그리스도, 라기보다 자살교 교주에 바락바락 기어올라 방해만 일삼을 거 아냐? 맞다.
  ‘나’ 적그리스도와 비슷한 성격의 등장인물이 하나 더 있는데, 나중에 주간지 기자가 되는 소크라테스 휘영. 아, 스포일러일 수 있는데 말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재키 정세연이 겨우 50 센티미터 깊이의 연못에서 고개를 들지 않아 자살에 성공하고 (말도 안 된다. 편의점에서 산 복분자술 한 병 마시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물속에서 고개를 들지 않았다고? 왜, 숟가락 놓을 때까지 숨을 안 쉬어보지 그랬어. 하여튼 그랬다고 치자. 이 정도는 돼야 현대의 ‘사도’라 이거지?) 5년 후에 재키와 약속한 대로 죽지 않은 이유가 그때까지 화려한 성공을 한 번도 못해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세연이 제자들에게 성공적인 자살을 위하여 인생의 절정을 맞았을 때 죽으라 했다. 그리하여 루비는 미국 동부의 모 대학에서 거의 모든 과목에 A학점을 받아 유수의 대학원 입학이 확정된 순간 호숫가에 자기 차 캠리를 세워두고 견인줄을 허리에 묶은 다음 호수로 걸어 들어가, 폐에 가득 물이 찰 때까지(가히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죽을 때까지) 견인줄을 잡아당기지 않아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데 성공한다. 하비는 아이비리그의 MBA를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이제 재계서열 6위의 대기업 진호그룹 회장의 장남 자격으로 기획실 과장 자리에 앉기 바로 전, 필라델피아 자신의 집에서 변사체로 발견되는데 결국 자살로 판명이 난다. 재프루더는 마포대교에서 죽겠다고 선언을 하고, 예정된 시간에 목에 끈을 묶은 상태로 약 10미터 아래로 자유낙하, 목뼈가 똑, 부러져 죽어버린다. 이때 재프루더는 바로 회계사 시험에 합격한 상태였다. 소크라테스도 조중동 같은 유명 일간지나 KBS, MBC, SBS 같은 방송국 기자로 취직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었겠지. 하여튼 이래서 루저들만 살아남는다는 책.

  근데 이게 다냐고? 아니지. 장강명이 만일 재키 정세연의 편을 들어 이 땅의 젊은이들한테, 죽어, 죽어, 죽으라고, 이제 자살하는 게 바람직한 시대정신이야, 라고 말했다 하면, 그의 인기가 이토록 하늘을 찌를 리도 없고, 한겨레문학상을 받지도 못해 아직 데뷔도 못한 상태일지도 모른다. 장강명도 이 책을 내고 쫄았을 거다. 나 같아도 쫄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만일 한 명의 젊은이가 책을 읽고 재키 정세연의 말에 감동을 받아 열심히, 열심히, 열씨미 공부해 행정고시 패스한 다음 날 자살선언서 한 장 쓰고 죽어버리면 조금 곤란했을 터이니까. 두 명이 죽었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사회문제가 되고, 세 명, 네 명, 다섯 명, 한 다스가 그러했다면 장강명은 이민을 갈 수밖에 없었을 거라서, 서문을 이렇게 써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어디에서도 자살선언문을 보게 되지 않길 바라며.”

 

  이제 이 책이 나오고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직은 그렇지 않더라도 당시 20대 중후반이었던 등장인물은 30대 중후반이 되어 인생의 황금기를 우울하게 보내고 있을 터이고, 새로이 등장한 젊은 세대들은 또다시 십 년 전의 이들처럼 반란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흘러간다. 웃긴다면 웃기고, 드럽다면 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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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9 08: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은 바로 접니다 ㅋㅋㅋㅋ 태반은 금융치료 주식하고 비트코인 하며 살껍니다…ㅋㅋㅋ 그러니 코인에 세금때리겠다는 이 정부를 어찌 아니미워하겠습니까? 많이잡아 15퍼센트는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다시 읽는다면 아마 이 소설의 ‘나’를 한남충이라고 비웃을 겁니다 ㅋㅋㅋ

Falstaff 2021-11-19 09:04   좋아요 3 | URL
아 다 사는 방법이 있다니까요. 그냥 건들지 말고 냅두면 알아서 잘 살 텐데 코인 세금처럼 없는 거 만들어 귀찮게 하니까 더 복잡해지는 거 아닙니까.
장쟝님 이거 읽으셨군요. ㅎㅎㅎㅎ

- 2021-11-19 09:14   좋아요 3 | URL
네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뭐가 옳은지 저는 모르겠지만 세대로만 놓고보면 코인한탕 심리나 쿠데타 한번 거하게 일으켜서 힘좀 써보자 하는 심리나 그렇게 다르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바람돌이 2021-11-19 09: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 Falstaff 님 리뷰는 책을 안읽어도 왠지 읽은 듯한 느낌이 들게 하네요. ㅎㅎ 장강명작가 책은 에세이 한권 읽었는데 딱히 흥미롭진 않아서 살짝 미뤄뒀는데 소설은 또 다른 분위기네요. 기억해두겠습니다.

Falstaff 2021-11-19 09:58   좋아요 2 | URL
ㅎㅎㅎ 흥미로운 작가더군요. 발상도 발칙하지만 자살이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기자 출신답게 문장도 깔끔하고요.

그레이스 2021-11-19 09: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스토리만 보면 별로 읽고 싶지 않은책! 작가의 의도를 읽는다면 다르겠죠^^
작가가 걱정이 되긴 했겠네요 ㅎ

Falstaff 2021-11-19 10:02   좋아요 3 | URL
완전히 두뇌에 의존해서 쓴 글 아닌가 싶었습니다. 여기에 신문사 재직하면서 주워 들은 사건 사고 몇 개를 응용했을 거 같아요. 저도 자살선언 뭐 이런 건 줄 알았으면 안 읽었을 겁니다. ^^;;
이 책 읽고 죽어버린 사람 없는 것이 다행이고요, 있다면 드러나게 자살 선언문 같은 거 써놓고 죽은 사람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불행한 일이겠습니다. 읽는 내내 흥미롭긴 해도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씨. 애써서 사는 얘길 써도 부족한 시간에 스스로 죽는 얘길 쓰다니 말입니다.

coolcat329 2021-11-19 10: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장강명 작가 소설은 국정원 불법 선거개입을 소재로 한 <댓글부대>만 읽어봤는데 이때 느낀게 ‘와 이 작가 거침없네!‘였어요.
10년이나 지난 소설인데 내용보니 지금도 어필할 주제네요. 찜! 합니다.

Falstaff 2021-11-19 11:26   좋아요 4 | URL
댓글부대... ㅎㅎㅎ
거침없이 쓸 수 있는 세월이 얼마나 좋습니까.

잠자냥 2021-11-19 12:1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기자 출신 작가로 한국에서는 인기 독보적인 두 사람, 김훈, 장강명. 그런데 저는 이 둘 작품에 손이 안가요. 거참... 이상하죠? ㅎㅎㅎ 심지어 폴스타프 님의 이 매력적인 리뷰를 봐도 읽고 싶은 기분이 안 드네요. ㅋㅋㅋ

Falstaff 2021-11-19 12:36   좋아요 4 | URL
전 김훈은 한 권도 읽어보지 않았어요. 읽다가 지쳐 스르르르....
장강명도 이거 읽어보라는 권유가 없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듯하고요.
근데 이게 완전 취향이라 김훈, 장강명 좋아하는 분들은 그냥 흠뻑 취하더라고요.
그건 그렇고, ㅋㅋㅋㅋ 이 독후감이 매력적이라고요? ㅋㅋㅋㅋ 농담 잘하셔!!!

다락방 2021-11-19 13:09   좋아요 4 | URL
잠자냥 님의 댓글을 다락방이 좋아합니다. 공감도 드립니다.

페넬로페 2021-11-19 13:15   좋아요 3 | URL
저는 김훈 작가를 좋아하는데 장강명 작가의 책은 아직 한권도 읽어보지 않았어요. 한 권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폴스타님 리뷰로 했습니다.
처음 시작을 뭘로 하면 좋을까요?

stella.K 2021-11-19 18: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책을 읽어 본 적은 없는데
TV에 나온 거 보면 인상이 좋더라구요.
조근조근하고 착한 인상이죠. 교회 오빠 같은.ㅋ
저는 기자 출신 작가가 쓴 책 좋아합니다.
각이 딱 잡혔잖아요.
장강명 작가도 읽어 볼만할 텐데 왜 안 읽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ㅠ

Falstaff 2021-11-19 19:34   좋아요 2 | URL
기자 출신 작가가 쓴 거 좋아하시면 얼른 읽으셔요! 누구보다도 에피소드로 사용할 거리가 많을 거 같아요.
전 우연히도 노먼 메일러도 헤밍웨이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말입죠. 이게 다 팔잡니다, 그죠? ㅋㅋㅋㅋ 읽고 멋있는 리뷰 올려주세요!

Conan 2021-11-20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년전 아주 흥미있게 읽었던 책 입니다. 당시에 리뷰도 남겼었구요~
위에 언급된 김훈과 장강명의 책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특유의 매력이 있는 작가들이라 생각합니다.~

Falstaff 2021-11-21 19: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다 독자들의 취향 차이지요. 다 같은 감상이면 세상 재미없어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
 
결혼이라는 소설 1
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 김희용 옮김 / 민음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브라운 대학 동급생 세 명의 삼각관계 이야기라고, 아주 거칠게 이야기할 수 있다. 원래 애정을 깔고 하는 삼각관계라는 것이 워낙 재미있는 것이라 TV 드라마, 소설, 희곡 등을 망라해 비슷비슷한 내용을 복제해왔음에도, 21세기 A.I 인공지능의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여전히, 삼각관계라는 착착 달라붙는 감칠맛은 계속되고 있다. 이 책에선 한 명의 부르주아 여주인공 매들린 해나와 두 명의 브라운대 동급생 레너드 뱅크헤드, 미첼 그라마티쿠스가 등장한다. 매들린 해나는 코네티컷 대학 학장을 하다가 60대 중반에 벡스터 대학 총장으로 취임하면서 뉴저지의 프리티브룩으로 이사를 한 올턴 해나의 둘째 딸이다. 생전 돈에 관한 한 부족해본 적이 없다. 레너드 뱅크헤드는 거의 틀림없이 골동품 중개상을 하던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두 명 다 알코올 중독자인 것 같으며, 그들로부터 형질을 물려받아 심각한 조울증 상태에 빠져버린 생물학 전공자로 반half 천재 정도로 평가할 수 있는 두뇌의 소유자다. 부모는 벌써 이혼했다. 아버지는 벨기에에 사는 젊은 여자한테 날아가 정착해버렸고, 생활력은 강하지만 아버지와 같은 성gender이라는 이유로 레너드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어머니와 오리건 주 바닷가에서 불량하게 살다가, 딱 일 년 독하게 공부해 가장 건전한 가출 형식, 전 학기 장학금의 수혜를 받고 동부의 명문 브라운대학에 입학했다.
  이 브라운 대학이 바로 작가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모교다. 삼각관계의 세 번째 주인공 미첼 그라마티쿠스는, 부계가 그리스, 모계는 잉글랜드와 아일랜드이며, 대학을 졸업한 후에 유럽 각지와 인도 콜카타에 가서 마더 테레사와 합류해 자원봉사 경험을 하는데, 딱 유제니디스가 그랬다. 유제니디스와 다른 건 미첼이 종교학을 전공해 눈부신 성과를 냈다는 점 딱 하나. 심지어 자기가 태어났고 아직 부모가 사는 곳도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중산층)인 것도 같다. 그렇다고 미첼 그라마티쿠스를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도플 갱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소설은 어디까지나 허구다.

 

  우리말 제목을 “결혼이라는 소설”이라고 했다. 원래 제목은 “결혼 플롯: Marriage Plot." 영문과를 졸업한 여자 주인공 매들린 해나가 대학시절 내내 관심을 쏟는 것이 빅토리아 시대에 쓰인 소설 가운데 결혼을 플롯으로 한 작품을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제인 오스틴은 사실상 섭정시대 작가라 예외로 하고,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가 떠오른다. 또 헨리 제임스가 쓴 <한 여인의 초상>.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전 시대, 오스틴의 <에마>에서 볼 수 있듯이 결혼과 더불어 이야기를 종료하는 플롯을 채택하지 않고, 결혼을 하고나서 비로소 본격적인 갈등을 시작한다는 거. <미들마치>에선 도로시아 브룩이 16세 많은 국교회 목사 에드워드 커소번과 결혼해서 완전히 권위적인 가부장제에 질식해가며, <한 여인의 초상>의 이사벨 아처는 잘 생기고 매너 좋을 것 같은 길벗 오스먼드와 결혼해 이모부로부터 증여받은 7만 달러, 현재가치로 대충 250억 원 가량 되는 재산의 권리를 구사해보지도 못할 처지로 떨어져버리는 이야기다.
  18세기나 19세기 초반의 작가, 예컨대 새뮤얼 리차드슨의 <파멜라>나 제인 오스틴의 <에마> 등의 주인공이었다면, 이들은 이렇게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결혼에 골인해서 행복하고 모자람 없이 오래오래 살다가 둘이 손을 꼭 잡고 한날한시에 같은 침상에서 늙어 죽었답니다, 로 끝났을 것이란다. 즉 주인공 매들린 헤나가 전공하는 소설분야인 동시에, 메들린이 졸업을 하고 곧바로 동거를 거쳐 결혼에 이를 것이란 점은 처음부터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결혼이 결론이냐, 갈등의 시작이냐 하는 것만 남았을 뿐.
  주인공들이 각기 영문학, 생물학, 종교학을 전공한다. 그것도 매우 공부를 잘한다. 제프리 유제니디스는 여기에 제일 중요한 주인공 매들린의 주 관심사를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로 묶어버려, 헨리 제임스를 이어가려 하는 것처럼 보이는 영국의 앨런 홀링허스트와 비슷하게, 세밀하고 유장해서 자칫하면 장황하다고 느끼게 하는 문장과 단락을 사용한다. 매들린과 미첼의 전공을 설명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소설가와 그들의 작품, 신학적 용어와 예배의 형태 등을 묘사하기도 한다. 바로 이점 때문에 이 책이 기대한 것만큼 재미없다, 라고 느낄 수도 있겠다. 독자의 그런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스토리에 등장하는 작품들을 진짜로 읽어본 독자는 <파멜라>, <에마>, <다니엘 데론다> 등의 작품은 물론이고, 위에 인용한 작가들 외에도 로렌스 스턴, 헨리 필딩, 개스켈 부인 같이 여간해 거명하지 않는 작가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도 반갑고 흥미롭다. 그럼에도 민음사가 넉넉하게 편집을 했지만 해설 없이 1천 페이지가 넘는 두 권 분량의 장편소설을 쉽게 시작하기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을 듯하다.

 

  매들린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겨우 한 번의 성경험이 있을 뿐이다. 그게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그냥 한 번 해봤을 뿐, 상대를 사랑한다거나 뭐 그런 감정적인 영향은 거의 없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 이외에서 가장 큰 관심사는 당연히 사랑을 나누는 일이었는데, 이제 그걸 하려면 진짜 사랑이 필요했으며 그것도 급했다. 왜냐하면 여자의 몸 특정한 부분도 마치 귓불과 같아서 한 번 뚫어놓았으면 계속 사용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막혀버릴 것 같은 강박이 있었다고 한다. 입학하고 처음 친해진 미첼을 크리스마스 휴가 때 자기 집 프리티브룩에 초청해 함께 기차를 타고 가서 며칠을 묶으며 매들린의 부모와 더불어 재미있는 연말을 보낸다. 이 휴가 동안의 하루, 매들린은 2층 침실에서 잠잘 준비를 하던 미첼의 방에 들어가 페로몬을 분사하지만 미첼은 마치 당연하게, 아주 깍듯한 예의로 그냥 돌려보낸다. 이런 내용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매들린이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미첼에게 편지를 써 알게 된다.
  매들린은 3학년이 된 후에야 영화 제작자를 희망하는 첫 번째 진지한 남자친구 빌리 베인브리지가 생기고, 아늑하고 안락하고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성경험을 하지만 포경수술을 한 자신의 생식기에 크게 불만이 있고, 창문을 통해 매력적인 금발 여자와 이란 국왕의 조카딸 파티마 시라지, 이렇게 적어도 두 명 이상의 벌거벗은 여자애들과 나신으로 누워 있는 것을 목격하고 헤어진다. 다니브 칼라일이란 이름의 두 번째 남자는 연극 전공자로 연기 워크숍에서 만난다. 완벽한 육체를 지녔지만 모델 일을 잘 하기 위해 연극을 전공하며, 외모 말고는 높이 평가할 게 없고, 외모도 (브라운 대학이 있는)로드아일랜드의 프로비던스에서나 근사하지 뉴욕에 가면 쌔고 쌘 수준이라 끝을 냈다.
  세 번째 등장한 애인이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인 레너드 뱅크헤드. 문제적 인물이다. 극단적 조울증 환자이며 반 천재. 또는 준 천재.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설에서 말고 앨런 J. 파큘라 감독의 영화 <소피의 선택>에 나오는 네이선 같은 스타일이라고 하면 얼추 맞겠다. 조증이 돋으면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세상의 둘도 없는 캐릭터이지만 그것이 끝내 파멸로 갈 수밖에 없는 처지. 그러나 천재성이 자신의 질병을 치유할 정도는 되지만, 이 병력 때문에 앞으로 직업을 얻기도, 그것을 유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주위 사람의 이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임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 불운한 남자이기도 하다. 아, 레너드 이야기는 그만. 너무 깊이 들어간다.
  그리고 멀리서, 가까이서 이들을 관찰하며 찢어지는 가슴을 부여잡는 또 한 명의 주인공, 분량은 좀 되지만 그러나 조연에 가까운, 우리의 불쌍한 미첼 그라마티쿠스.

 

  잊히지 않는 대사. 조울증으로 늘 문제를 일으키는 레너드를 향해, 지친 매들린은 이렇게 묻는다.

  “내 말은, 가끔은 네가 우울을 즐기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라는 거야. 뭐랄까 우울하지 않으면 모든 관심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듯 말이지.”

  왜 잊히지 않을까. 읽어보시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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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11-18 09:53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아, 못 말리는 민음사의 교정교열. 오늘은 기가 막혀 한 가지 예를 든다.
작품은 이윽고 결말을 향해 긴박한 론도 알레그레토로 치달아, 불쌍한 미첼이 급기야 매들린을 침대에 쓰러뜨린 상태. 드디어 소원 성취하는 미첼. 이어지는 베드 씬. 2권 p.426

“뒤이어 밀려든 세부적인 사항들에 압도당해 미첼은 그 일을 즉각적으로 즐길 수가 없었다. 매들린의 옷을 한 겹 한 겹 벗겨 내면서 그는 오랫동안 상상해 온 것들의 물리적 실체에 직면했다. 둘 중 누구도 완전히 현실처럼 느끼지 못한 탓에 잠시 뒤 둘 사이에는 거북한 김장감이 감돌았다.”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는데 김장감이 감돌았단다, 김장감이. 김장감? 무, 배추, 고춧가루, 천일염, 파, 마늘, 생강, 새우젓, 까나리액젓, 기타 등등. 김은 샜지만 냄새 하나는 죽였겠지?

프레이야 2021-11-18 08:46   좋아요 2 | URL
ㅎㅎㅎ 김장감. 미치겠네요 치명적입니다. 게다가 옮겨 주신 문장의 번역도 별로네요. 번역이 아니라 해석만 한 느낌이랄지.
김장감 ㅎㅎ 멸치액젓,이면 더 강렬하겠습니다.

다락방 2021-11-18 08:47   좋아요 2 | URL
아니... 김장감 이라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진지한 순간에!!

Falstaff 2021-11-18 08:57   좋아요 1 | URL
아, 글쎄 제 말이 그겁니다. 교정교열 잘 못 할 수도 있습니다. 이해하고요. 근데 하필이면 딱 그때 나 참. 허탈. ㅋㅋㅋㅋㅋ
원래 까나리액젓 앞에 멸치액젓을 넣었다가 너무 센 거 같아서 지웠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11-18 09:26   좋아요 5 | URL
찹쌀풀은 식혀야하는데요, 성급하게 섞었을까요? … 아 어쩔 … 김장..
소보루 아저씨 곰보빵도 아니고 ㅠ ㅠ

Falstaff 2021-11-18 09:26   좋아요 2 | URL
찹쌀풀.....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님 때문에 밋치네요.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 진짜 그건 생각을 못했습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1-11-18 09:49   좋아요 2 | URL
김장감이 감돌면 언능 일어나 김장을 담가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11-18 09:50   좋아요 3 | URL
아 어떡해요. 이제 앞으로 저 이런 순간에 김장감하고 찹쌀풀 생각나서 빵 터질 듯...ㅋㅋㅋㅋㅋ ㅠㅠ

Falstaff 2021-11-18 09:56   좋아요 3 | URL
그죠, 그죠? 오늘 최고의 댓글은 유부만두 님이셨습니다! ㅋㅋㅋㅋㅋㅋ

프레이야 2021-11-18 10:52   좋아요 2 | URL
ㅋㅋ 찹쌀풀도 썼다가 너무 김장감 돌 거 같아 멸치액젓만 던졌는데 고건 유부만두님이 첨가를 ㅋㅋㅋ 김장감 넘 웃겨요

페넬로페 2021-11-18 11:08   좋아요 2 | URL
아, 이 나이 되도록 스스로 김치를 담구지 못해 김장감을 이해하지 못해 어떡하지요 ㅎㅎ

coolcat329 2021-11-18 11:18   좋아요 1 | URL
아 ㅋㅋㅋㅋㅋ 지금 김장철이라 더 강력합니다.

- 2021-11-18 17:35   좋아요 2 | URL
오호라 댓글들이 댓글댓글 하구나 ㅋㅋㅋ 김장철처럼 바글바글 하구나 ㅋㅋㅋㅋ (크게 웃다 갑니다 🤣)

페넬로페 2021-11-18 11: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은근 ‘결혼‘ 들어가는 소설 좋아하시는것 같아요^^

Falstaff 2021-11-18 11:23   좋아요 3 | URL
아, 그렇습니까? ㅎㅎㅎ 오늘 청첩장 한 장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얘기해주었습니다.
아직 늦지 않았어. 다시 생각해봐.
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11-18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네이선! 아주 지긋지긋한 인물인데 여기도 나오는군요. 그래도 레너드가 네이선보단 나을 거 같은데요.

Falstaff 2021-11-18 11:25   좋아요 1 | URL
소설 말고요, 영화에서의 네이선, 영화 자막에 ‘네이단‘으로 나오는 인간하고 정말 비슷하답니다. 소설 속 네이선 보다 낫다는 건 확실하고요. ㅋㅋㅋ

coolcat329 2021-11-18 11:59   좋아요 1 | URL
아 영화는 소설 속 네이선보다는 낫게 나오는군요. 휴 다행입니다. ㅋ

Falstaff 2021-11-18 12:05   좋아요 3 | URL
영화에서는 을매나 멋있는 남잔데요!
같은 남자라도 닮고 싶다니까요. 그러다 발작이 나면 정나미가 떨어집니다만.

소설 속에서는 아무리 만딩고, 가 아니고 스팅고가 나이도 열 몇 살이나 많고, 이도 몽땅 빠질 정도로 고생해 훨 쪼글쪼글했을 소피를 연모하는 게 별로 이해가 가지 않는데요,
영화에 나오는 매릴 스트립은 흰 이를 모두 가지고 있는데다가 젊고 아름답답니다!
메릴 스트립이 눈부시지만, 네이단도 정말 끝내주거든요. 영화 꼭 보셔요!!!!

coolcat329 2021-11-18 12:10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캐빈 클라인이니 충분히 알것같습니다. ㅎ 넵~알겠습니다~^^

망고 2021-11-18 12: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책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리뷰가 너무 반가워요😄매들린이 제발 레너드랑 헤어져야 할텐데 하며 애태우며 읽던 기억이...ㅎㅎㅎㅎ

Falstaff 2021-11-18 12:09   좋아요 2 | URL
레너드가 그래도 최후의 양심도 있고 매들린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증거도 있어서 좀 측은하더라고요.
아, 아직 안 읽으시는 분들, 레너드가 마지막에 죽지 않습니다. 저는 주인공의 죽음으로 결말 내면 기본이 별 셋에서 시작해 더 아래로 내려보냅니다. ㅋㅋㅋ

바람돌이 2021-11-18 1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관심 1도 없던 소설을 항상 보고야 말겠다고 결심하게 만드는 Falstaff님
오늘도 Falstaff님 뽐뿌를 읽다가 첫 댓글 김장감에서 푸하 터졌습니다. ㅎㅎ

Falstaff 2021-11-18 13:58   좋아요 0 | URL
이런 애교스런 오타면 이걸 칭찬을 해야 하는지, 야단을 쳐야 하는지 말입니다. 근데 심했어요. 후끈 하는 순간에 그만 ㅋㅋㅋㅋ

그레이스 2021-11-18 13: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심리학에서도 우울증 안에 자신을 가두는 경우를 얘기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것도 자신이 어쩔수 없는 무의식의 작용이므로 어쩔 수 없겠죠?!
읽어보면 알거라는 말씀에 더이상 얘기 안할께요^^

Falstaff 2021-11-18 14:00   좋아요 2 | URL
저 친구 레너드는 좋은 머리를 이용해 처음엔 매들린 집안의 부를 이용하려 하거든요. 그 기미를 채고 매들린이 이렇게 물어본 것일 수도 있습니다.
ㅎㅎㅎ 이 양반도 빅토리아 시대 소설 풍을 따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읽는 일에 속도가 나지는 않습니다. 간혹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고요.
 
해무 김민정 희곡집 1
김민정 지음 / 연극과인간 / 2011년 10월
평점 :
품절


 


  1974년 당진 출생인데, 이 당시에 당진 가려면 천안, 온양 지나 신창고개부터 비포장도로로 하루 왼 종일 가야 했던 오리지널 아부지, 돌 내려가유, 였다. 단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예종에서 박조열, 윤조병을 사사하며 본격적으로 희곡 쓰기를 시작했는데, 여러 장르 가운데 희곡을 선택한 것이 기가 막혀서 데뷔작인 <가족 왈츠>가 국립극단 신작희곡 페스티벌에 덜컥 당선, 2004년 극단 움툼*이 연우소극장에서 초연을 한다. 이 책 《해무》가 김민정의 첫 번째 작품집으로 표제작을 포함해 모두 다섯 작품이 실려 있는데, 모두 연극제 당선이나 연극상 수상, 문화재단의 창작지원사업 선정 등의 영광을 누린 것들이다. 이 정도면 가까운 앞날에 김민정이란 이름이 우리나라 연극사에서 반짝, 빛을 발하리라고 짐작할 수 있겠다. 실제로 연극관련 전문 출판사 ‘연극과 인간’은 《해무》를 찍고 9년 후인 2020년에 이이의 두 번째, 세 번째 희곡집 《너의 왼손》과 《하나코》를 출간한다.
  소설이라고 그렇지 않겠느냐만, 보다 다중에게 접근하는 극문학으로의 희곡이라서 그런지 작품마다 다 사연이 있다. 소설은 작가 한 명이 작품과 관련한 인터뷰나 자료조사 같은 작업을 위해 소수의 인물, 사건, 이야기에 접근을 하겠지만, 연극은 희곡의 집필부터 극에 올라갈 때까지 스태프와 연기자들과 많은 관계자와 복잡하고 다양한 얽힘이 있어서, 작가는 책의 뒷부분에 “극작과 공연에 관한 후일담”을 재미있게 적어놓았다. 이것도 김민정의 재치고 배려라고 생각할 수 있다. 후일담은 대개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스토리가 많으니.

 

  첫 번째 작품 <가족 왈츠>는 전직 경찰관이자 단란한 가족의 가장인 아버지가 18년간의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돌아온 이야기다. 한두 해도 아니고 18년 복역이면 당연히 중죄인이었다. TV <인간극장>에 소개된 실화를 모티브로 했다는데 말 그대로 모티브, 힌트를 받았을 뿐이지 정말 이런 가족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일 듯. 아버지, 엄마, 이모, 그리고 인수, 이렇게 네 식구가 단란하게 생활하다가 새 집을 사서 이사한 날, 이모가 가르쳐주어 아버지와 엄마가 서투르게 왈츠를 춘다. 서로 발을 밟아가며. 그래서 제목이 <가족 왈츠>. 김민정에게 가족이란, 가족의 구성원으로 제일 중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식구들이 빠짐없이 모여 단란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것 같다. 18년 만에 출옥해 돌아온 아버지가 집에 오니 엄마, 집엔 아내밖에 없다. 이게 작품의 시작이다. 인수는 벌써 남미, 자신을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완벽한 자유지대로 떠나버렸다. 식탁에 앉은 부부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날을 맞춰 터벅거리는 특유의 발자국 소리를 내며 아들 인수가 집에 돌아온다. 스포일러가 아니라는 믿음으로 한 마디만 보태면, 엄마는 3년 전에 이미 자살을 해버렸다는 점.

 

  두 번째 <십 년 후>를 제일 재미나게 읽었다. 극단 작은신화의 우리연극만들기 공모 당선작으로 아주 평범하지만 조금은 특별한 30대 중반의 여자들이 10년 만에, 10년 전에 약속한 대로, 만남을 갖는 이야기. 하필이면 폭우가 내리는 날이다. 수진, 주리, 희남이란 이름을 가진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으니 한 남자를 사랑했다는 것. 수진과 주리는 몸과 마음으로 서로 사랑을 했고, 희남은 남자가 군대에 있던 시절 그이 앞에서 꼭지가 돌게 술을 마셨지만 남자는 앞에다 희남을 두고 두 여자 얘기만 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이들 셋은 함께 그 남자를 보러 면회를 간 적도 있고, 주리는 부대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제대하는 남자를 납치해 섬으로 떠났던 적도 있다. 이들 표현대로 한다면 적어도 수진과 주리는 ‘소시지 동서’ 사이다. 수진과 주리는 행복하지 못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중절수술 후유증으로 불임 판정을 받은 희남은 여전히 혼자 산다. 수진은 유럽에서 유학 중인 남편이 연애중이고, 주리는 자기가 다른 남자와 연애중이다. 이미 30대 중반에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를 챈 여자들의 수다. 10년 전의 복잡한 갈등도 이미 삶 속에 다 녹아버린.

 

  세 번째 작품이 조금 각색해서 영화로도 만든 표제작 <해무>. 앞의 두 작품과는 완연하게 구분이 되는 리얼리즘 극이다. 주로 학꽁치라고 부르는 공미리를 잡는 배 전진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가난이 죄다. 선장 강성진은 빚을 갚지 못해 이번에 공미리 만선을 하지 못하면 배를 빼앗길 처지이지만 이상기후 탓인지 공미리는 여간해 잡히지 않는다. 작품에는 선명하게 나오지 않지만 강선장은 ① 출항하기 전부터 이럴 때를 대비해서 공해상에 나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밀입국하려는 조선족 서른 명을 태워주기로 약속을 했거나, ② 어획량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무선 암호로 밀항에 가담하기로 했을 것이다. 그래 원래는 잡은 생선을 보관해야 하는 밀폐 창고에 서른 명이나 되는 밀항자들을 싣고 상륙을 해야 했지만, 때마침 근해에서 해경들이 정기 훈련을 하고 있어 예상보다 오래 바다에 머물게 된다. 그러다 열대성 저기압이 태풍으로 변해 북상하기 시작했고, 안전을 위해 밀항자들을 창고로 내려보내고 비바람을 견뎌내는데, 그동안 그만 창고 안의 밀항자들이 전부 질식사해버린다. 강선장이 내린 결정은 수장. 모두 바다에 빠뜨려 상어 밥을 만들려는데 어쩔 수 없이 밀려드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죄의식. 여기에 선원간의 갈등과 선장-선원 사이의 갈등,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로맨스도 섞인다.

 

  네 번째 작품 <나, 여기있어!>는 여섯 그룹의 독립적인 이야기를 섞은 복잡한 구도를 한 작품으로 역시 삶의 고단함, 가난으로 인한 가족간의 살인과 합동 자살 시도 같은 우울한 이야기를 담았다. 아무리 예술이라지만 과장된 패륜과 폭력이 독자로 하여금 눈을 찌푸리게 만들어 개운하지 않았다. 도시 빈민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한 편의 희곡 안에서, 리얼한 폭력과 살인과 유사 섹스를 보는 독자를 이렇게 한 방에 훅 가게 만들면 되겠어? 마지막 작품 <길삼봉 뎐>은 선조 22년에 실제 있었던 기축사화를 소재로 한 허구다. 서인 송강 정철이 정여립의 난을 치죄한다는 핑계로 동인들을 잡아 죽이는 과정에, 신하들의 권력다툼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임금 선조, 그리고 이에 반대하는 동인 측 사람들의 총체적 권력의지, 즉 더러운 정치판을 그린 사극. 결론은 정치엔 절대선도 절대악도 없고 오직 권력의지, 불나방같은 정치지향 뿐이란 건데, 새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섯 작품을 실었고, 이 가운데 세 편의 작품이 좋았으면 독자 입장에서 상당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중요한 작품이라 여태 몇 번에 걸쳐 공연을 한 바 있는 <해무>를 보면, 나는 영화로도 봤는데, 이런 작품을 쉽게 영화로 만들면 오히려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희곡을 읽은 후에야 확신했다. 소극장 공연을 조건으로 하고 쓴 희곡을 대형 스크린 상영이 목적인 영화로 만들기엔 무엇보다 장소가 너무 단조롭다. 영화를 보면 거의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그리 크지 않은 선박의, 벌써 여러 컷이나 찍은 같은 장소가 무수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기관실에서 동식과 홍매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조차, 조만간 비슷한 일이 비슷한 장소에서 벌어지겠다는 짐작을 할 수 있었을 정도였으니까. 그러다보니 배우들은 이를 만회하기 위하여 오버액션을 해야 하거나, 영화감독이 그렇게 주문을 했을 수도 있다. 하여튼 희곡을 읽으면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도 즐거움이라고 여겨야 할 듯.

 

 


* 극단 움툼. ‘움툼’은 ‘움이 트다’와 전혀 관계가 없다. 영어로 자궁womb, 즉 수태에서 시작해 무덤tomb 죽음까지 한살이를 아우른다는 의미로 작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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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11-17 10: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움툼의 작명 의미도 신박합니다.
읽어보고 싶은 희곡집이네요. 찜!
김민정 작가를
또 이렇게 소개받아 알게 되네요 ^^

Falstaff 2021-11-17 08:28   좋아요 5 | URL
저도 ‘움툼‘인지 ‘움틈‘인지 여간해 모르겠더라고요. 눈에 가물가물하게 보여서요. ㅋㅋㅋ 그래 검색을 해봐서 알아냈답니다. 좋은 작명입니다!
별을 하나 뺀 건, 다섯 작품 전부 다 좋다는 얘기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

프레이야 2021-11-17 10:46   좋아요 2 | URL
팔스타프 님 리뷰는 언제나 재미와 의미 모두 갖춘 완벽리뷰라 제가 좋아합니다.
눈이 ㅠ 고 심정 제가 넘 잘 알지요 ㅎㅎ
그래서 교정 보다가 요샌 놓치는 게 있어 파일로 받아 확대해서 본답니다 ㅋㅋ

Falstaff 2021-11-17 12:02   좋아요 0 | URL
아이고, 이런 황감한 말씀을 하시면.... 몸둘 바를 모르잖습니까. ㅎㅎㅎㅎ
눈이 참 기특하게도, 근시 난시에 노안까지 다 있는데요, 글쎄 책 읽는 거리만 딱 잘 보이는 겁니다. PC까지는 조금 촛점이 맞지 않아 요새 오타가 좀 많고요. ㅋㅋ

다락방 2021-11-17 14: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무>는 영화의 존재도 몰랐는데 희곡이 원작이었군요. 써주신 줄거리를 보니 뭔가 장편소설 됐어도 되게 좋았을 것 같아요. 무섭지만 뭔가 진한 소설이 됐을듯요.

Falstaff 2021-11-17 15:03   좋아요 2 | URL
예. <해무>를 장편소설로 썼다면 미스테리나 스릴러로도 좋았을 거 같습니다. 위에 얘기하지 않았는데 잔혹한 장면도 있어서 정유정이 썼더라면 말 그대로 피바다가 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ㅋㅋㅋㅋ
서른 명이나 되는 밀항자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coolcat329 2021-11-18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2,3번이 저도 맘에 드네요.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에 미스터리,스릴이 있는거 같아요.

Falstaff 2021-11-18 08:21   좋아요 1 | URL
연극이라는 장르가 사실을 좀 과장하는 측면이.... 있는 거 같아요.
저 잉글랜드의 셰익스피어도 예외는 아니었잖습니까. ㅋㅋㅋ
 
정상의 개들
우르스 비드머 지음, 정민영 옮김 / 연극과인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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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8년에 스위스의 바젤에서 번역일도 하는 고등학교 교사의 아들로 태어난 우어스 비드머Urs Widmer는 바젤과 몽펠리에 대학에서 불문학, 독문학, 역사를 전공하고, 1966년 전후 독일문학에 관한 논문으로 PhD를 취득한다. 희곡 쓰는 사람들은 대개 젊은 시절에 연극판에 뛰어들어 직접 연기를 하거나 스탭으로 참여하면서 희곡도 쓰기 시작하는데, 박사학위를 딴 인텔리겐치아가 1973년, 35세부터 희곡을 쓰기 시작하는 건 예외적이었다고 한다. 비드머는 희곡 말고도 장편과 단편 소설가와 에세이스트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나는 <정상의 개들>을 읽고 이이의 소설 작품 <어머니의 애인>을 보관함에 담아놓았다.

 

  1996년 취리히의 노이마르크트 극장에서 초연한 <정상의 개들 Top Dogs>은, 1981년 바야흐로 대서양 건너 로널드 레이건 미합중국 대통령이 미국 항공 관제사 노조가 파업을 시작하자마자 네 시간 만에, 앞으로 48시간 안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고해버리고 재고용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정말로 그렇게 한 사건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법률 개정을 통해 노동조합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한 일을 기점으로 전개된, 신자유주의 경제가 만들어놓은 구조조정, 다운사이징, 인원 합리화의 명분으로 해고된 사람과 그 가족이 어떻게 피폐해졌는지 보여주고 있다.
  근데 특이한 것은 이 피해고자들의 성분이다. 사실 구조조정의 와중에 직업을 잃는 사람들을 계급별 퍼센트로 보면 급여가 많은 저 높은 직책의 인물들이 하위직책자보다 많다. 물론 공장 가동중단의 이유로 일정 라인의 생산직 근로자 전원을 정리해고 하는 경우, 유통지점을 축소해서 버리기로 결정한 지점에서 일했던 판매원 전원이 일자리를 잃는 경우는 예외로 하면 그렇다는 얘기다. 상무나 전무, 부사장 자리 하나를 없애면 평직원 열 명 가까운, 때론 수십 명을 해고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 내가 사주라도 그렇게 하겠다. 물론 힘든 일은 상위 직급자가 먼저 한다는 명분도 세울 수 있어 사주 입장에선 일거양득이기도 하다. 이 극에 등장하는 피해고자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도 보통의 회사원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 물론 말이 그렇다. 일례로 대기업의 중역으로 근무했다 하면, 경력과 스펙의 화려함과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 게다가 여태까지 벌어놓은 돈을 다시 다방면에 걸쳐서, 토지, 아파트, 주식 등에 재투자해, 여생을 노동하지 않고도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만, 이런 사람은 극히 소수고, 중역이었다고 해도 꾸준하게 돈벌이를 하지 않으면 곤란한 지경에 빠질 보통의 인간, 여태까지 운이 좋아 남들보다 좀 더 잘 나갔던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이런 사람들의 제일 큰 공통점은, 자신이 무슨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 특정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자기가 없으면 안 될 줄 아는 착각에 빠져 있다는 거. 세상에 한 명 빠진다고 프로젝트가 돌아가지 않으면 그게 회사고 조직인가 말이지. 그래 일 년에 아홉 달을 터키 남부 건조한 지방의 댐 건설 현장에 파견 나가 말 안 듣는 현지인과 머리 터지게 다투면서 꾸역꾸역 일을 하고 있는 상무급 현장 소장을 하루는 취리히 본사 사장이 긴급 소환한다. 현장 소장은 음, 이제야 내 노고를 알아 본사근무를 명하려는 모양이구나, 벌컥벌컥 김치 국물 마시고 날아갔더니 사장이 임원회의를 하기 바로 전 회의실 출입문 앞에서 뒤로 돌아, 소장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그간 고생이 많았네, 소장도 알다시피 요새 회사가 많이 어려워, 세월이 80년대 같지가 않아, 자네한테 투입은 많이 하는데 기대한 만큼 성과는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했네, 나도 이러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 해고해야겠어, 율리카에게 안부 전해주면 좋겠네, 라는 말과 함께 구두 해고당하는 거다. 소장은 당연히 임원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인사팀장하고 쥐꼬리 같은 퇴직조건에 관해 합의한 다음, 서류에 서명을 한 시간부터 20분 이내에 회사 차량과 법인카드와 사원증과 기타 회사와 관계된 모든 것을 반납한 후, 경비원과 함께 회사 정문 밖으로 나가서, 먼저 회사가 요청하지 않는 한 다시는, 건물 출입문 안으로는 들어올 수 있으되 회사 사무실이 있는 층의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거나 사원증을 인식시키고 스테인리스 막대기를 덜컥덜컥 밀고 가야 하는 입구 안쪽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신분이 된다.
  해고를 당해 이렇게 치욕스럽게 정문을 나서기 이전에, 먼저 사장을 찾아가,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덕분에 집 사고, 자식들 교육시키고,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그간 한 것도 없는데 먹고 살게 해주신 걸 은혜로 알겠습니다, 하면서 사장 보는 앞에서 사원증 풀어 책상에 휙 던지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장실을 나오는 로망, 당신은 꿈꿔본 적 없나? 이때 사장한테, 그만두면 될 거 아냐 새끼야, 이런 험한 얘기하면 안 된다. 점잖게, 어쩔 수 없이 너 같은 인간한테 이런 얘기한다는 걸 눈치 챌 수 있도록 멋있게 한 마디 해야 진짜 폼이 나는 거다. 이 책에 나오는 숱한 피해고자들 역시 어찌 이런 로망이 없었을까. 그러나 정말로 위 문단 같은 경우를 당하면, 건물 밖으로 나가는 계단에 앉아, 전임 상무, 전임 전무, 전임 부사장이 두 손으로 머리를 헝클인 모습을 하고 엉엉 운다. 아, 실제라면 진짜로 눈물을 흘리며 울지는 않겠지만 정말 공감이 간다. 여자는 모르겠고, 해고당한 남자. 원시인류도 마찬가지였다. 사냥하지 못하는 수컷의 비애라니. 나도 요새 아주 절감을 한다. 농담 같지? 정말이다. 밤에 잠도 길게 못 잔다.

 

  이 책에서 브라게라는 남자는 해고를 당하니까, 아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떠나버린다. 남편이라는 작자가 아직도 연간 30만 마르크를 벌어오는 줄 착각해 집안일도 돌보지 않고, 신문 보는데 말 시키지 말라고 하고, 모계사회로 변한 집구석에서 아직도 갑의 유세를 떨려하는 걸 도무지 눈꼴시어 못 보는 거다. 그렇다고 자기가 돈 벌어 남편 수발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남자여, 아니꼽게 생각하지 마시라. 사냥 능력 없는 수컷의 끝장은 언제나 그럴지니, 그러게 평소 주머니에 좀 있을 때 잘 하지 그랬어. 에휴. 나도 연습 좀 해보려고 지난주엔 일주일 동안, 때마침 아내가 과도에 손가락을 베는 바람에, 설거지를 도맡아 해봤다. 근데 이것도 우리사회의 문제다. 도대체가 말이지, 싱크대가 여성의 체형에 맞춰 설계가 되어 있는 바람에, 너무 낮다. 지나치게 낮다. 그래서 가뜩이나 별로 좋지 않은 허리가 끊어지는 줄 알았다. 다리 벌리고 서서 하면 된다고? 해봤다. 마찬가지다. 비단 싱크대뿐만이 아닐 것이다. 아직 내가 해보지 않아서 그렇지. 싱크대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일반 남자 키에 맞춰 만들면 안 될까? 키 작은 사람들은 발판 위에 올라서면 되니까. 뭐든 해결방법은 있는 거다. 다만 철학자들이 문제를 해석하려 할 뿐, 해결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지. 이거 헤겔이 한 말이다. 싱크대에서 헤겔을 들먹인다고 뭐라 하지 마시라. 어차피 인생인 걸.
  브라게라는 중역은 해고를 당하자마자 스위스에서 카리브해로 가는 삼주짜리 크루즈 여행상품 가운데 최고 중의 최고 서비스를 선택해 떠났다. 태양, 모래, 짙푸른 물, 나이든 부자들의 젊디 젊은 애인들을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해고가 아니면 언제 올 수 있을지 누가 아느냐고 주장하면서. 기운차게 크루즈 선박에 오른 브라게 씨는 3주 동안 최고급 스위트룸 안에서 면도 한 번 하지 않고, 방으로 배달되어 오는 밥도 죽지 않을 만큼만 여간해 먹지 않고, 술만 홀짝이며 날이면 날마다 어디다 하는지 국제전화만 하고 있었다. 스위트룸에서 송장 하나 치우는 거 아닌지 승무원은 물론이고 승객들도 궁금해 할 정도가 되면 그때야 겨우 한 번 얼굴을 비치는 브라게 씨는 3주일 후 몰라보게 초췌한 몰골을 하고 스위트룸에서 꼬질꼬질 때가 묻은 흰 와이셔츠에 수트만 걸치고 하선을 하고 만다.
  전직 중역 뮐러의 꿈은 등산광인 사장하고 함께 등산을 가보는 거였다. 저 아이거 북벽 정상에 올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정복의 희열을 느끼고 있을 사장을 슬쩍 떠밀어, 자유낙하를 하면서 불쑥 튀어나온 바위에 코끝이 살짝 걸려 몸에서 코가 제일 먼저 분리되고, 진공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몸이 먼저, 떨어진 코가 뒤를 이어 추락하다가, 사장이 보기에 파랗고 파란 빙하가 자기한테 맹렬한 속도로 전진해오고, 이어서 퍽, 빙하와 몸이 만나는데 머리통이 먼저 닿아, 뭔가가 머리에서 흘러나온 상태를 만들고, 그 상태를 자기 눈으로 보고 싶어 한다.

 

  대개 해고, 하면 집단 노동자가 대량으로 해고를 당하고 이에 굴하지 않는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하여 고용인이라는 거악과 한판 대결을 펼칠 것을 기대할 터인데, 이런 면에서 <정상의 개들>은 깼다. 비록 공감하는 독자들은 별로 없겠지만 아이디어 하나는 기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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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1-11-16 0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top dogs를 정상의 개들이라고 번역했군요. 개와 직접 상관 없이 많이 사용되는 말로 알고 있는데...

Falstaff 2021-11-16 09:07   좋아요 2 | URL
옙. 그저 ‘윗자리 사람들‘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에서 해고당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윗자리에 있던 봉급쟁이들이니까요.

- 2021-11-16 09: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싱크대에서 헤겔 들먹이는 거 유잼 포인트 ㅋㅋㅋㅋㅋㅋ 밤에 잘 못자는 골드문트님 어제 시킨 골드문트가 오늘 제게로 옵니다 (근황보고)ㅋㅋ

다락방 2021-11-16 10:04   좋아요 2 | URL
오오 골드문트 읽을거에요, 쟝님?

- 2021-11-16 10:09   좋아요 1 | URL
네 ㅋㅋㅋ 데미안만 아는 나 ㅋㅋㅋ (인생 책인데 ….)ㅋㅋㅋㅋ

다락방 2021-11-16 10:17   좋아요 1 | URL
나도 골드문트 읽어야지. 책은 이미 가지고있음 ㅋㅋㅋㅋㅋ

- 2021-11-16 10:18   좋아요 1 | URL
같이 읽자 ㅋㅋㅋ 이리가레 잠쉬밀어두고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1-16 10:23   좋아요 2 | URL
와, 드뎌 읽으시겠네요. 저는 그저 입꾹. ㅋㅋㅋㅋㅋ
두 분 다 이십대 초반, 책 읽기에 아주 좋은 시기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2021-11-16 11:44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제나이 스물한 살 아직 골드문트 읽기 좋은 나이.

다락방 2021-11-16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헤겔은 알아야 하는 것이로군요.

Falstaff 2021-11-16 10:24   좋아요 0 | URL
헤겔이 이 말을 했다, 이것만 알고 있답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것보단 낫지요 뭐. ㅋㅋㅋ 이렇게 자뻑하며 삽니다.

유부만두 2021-11-16 1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주에 (채칼에) 손가락을 베었는데 말입니다;;;
메디폼 리퀴드 라고 바르는 밴드?약? 이 좋습니다. 방수와 항균을 겸합니다. 전 헤겔 보다 미세스 골드문트의 상처에 더 격하게 공감했습니다.

Falstaff 2021-11-16 10:44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고맙습니다. 이게 11월 첫 주 이야깁니다. 이제 다 나았어요.
저도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설거지 하는 거 허리 아파서 넘 힘드니 다른 일 하겠다고요. 그랬더니 거실 걸레질하랍니다. ㅋㅋㅋㅋ

페넬로페 2021-11-16 1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 책 얘기말고 다른 얘기해서 죄송한데
제가 허리가 안좋을때에 저도 설겆이 할때마다 허리가 아파 넘 힘들었어요.
싱크대 높이의 문제만은 아닌듯 해요.
그러니 운동하셔서 허리를 건강하게 하셔야 합니다.
제 댓글 아내분께서 읽으시면 안되는것 같은데요, 어쩌죠~~

Falstaff 2021-11-16 11:08   좋아요 2 | URL
앗, 그렇습니까! 흑흑... 사실 배가 좀 나오긴 했습니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특히 운동 안 하고 하루 죙일 책상에만 앉아 있어서....
정말 운동 좀 해야 하는데 에휴....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내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아서 제가 여기서 이런 얘기하는지도 모릅니다. 아참! 걸레질도 생각보다 운동이 되더군요!! ㅋㅋㅋ

유부만두 2021-11-20 1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 불수능 국어에 헤겔이 나왔다고 합니다.

Falstaff 2021-11-21 19:28   좋아요 0 | URL
아 그렇습니까? ㅋㅋㅋ 이쯤 되면 저도 조만간에 작두 한 번 타는 걸로.... ㅋㅋ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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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1월 1일, 컬럼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변호사 부부 알프레도 바스케스와 파니 벨란디아의 아들로 태어난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는 어려서부터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서 그랬는지 어려서부터 글짓기 하나는 잘했다. 물론 공부도 잘 했겠지. 10대 시절에 본격적으로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장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카를로스 푸엔테스 등을 섭렵했으나, 정작 보고타 시내에 있는 로사리오 대학에서는 법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그런지 바스케스의 장편소설은 대부분 보고타 시내, 주로 로사리오 대학 주변을 무대로 한다고. 법학을 공부하면서도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훌리오 코르타사르 등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을 탐독하면서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 등에 관심을 갖는다. 1996년 “<일리아드>에서 합법적 본보기에 입각한 복수”로 학위를 따지만 이미 작가로서의 커리어를 쌓기로 결심한 상태였다.
  졸업과 동시에 바스케스는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당시 컬럼비아를 휩쓰는 폭력과 범죄의 일상이 두려운 것도 있어서 파리 소르본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문학을 공부하고 이후 16년간 파리, 벨기에 아르덴, 바르셀로나를 거쳐 2012년 다시 조국 컬럼비아의 보고타로 귀환해 여태 살고 있다. 이 동안 전 세계 코카인의 80% 공급했던 메데인과 칼리의 마약 카르텔은 괴멸됐고, 80~90년대를 풍미했던 무차별 폭발 테러, 기관총 테러와 암살 같은 치안도 비교적 정상을 되찾았다. 정작 작가 자신은 범죄와 폭력이 판을 치던 당시엔 조국을 떠나 선진국에서 잘 먹고 살다가 평화로워진 다음에야 귀국을 했으면서, 그의 대표작인 <추락하는 모든 것의 소음>에서는 폭력이 판치던 시기에 스물여섯 살 때 애먼 총알에 맞아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에 시달리는 젊은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2009년 중순에 화자 ‘나’는 뉴스를 통해, 보고타에서 250킬로미터 북쪽에서 흑진주 색의 1.5톤 하마를 사살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나’ 안토니오는 얌마라 하마에 관한 뉴스를 통해 1995년 말의 기억을 소환한다.
  당시 며칠 있으면 26세가 될 청년 안토니오는 2년 전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대학을 수석졸업하고, 지금은 역사상 가장 젊은 교수로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면서 대단한 권위를 즐기고 있었다. 가히 인생의 황금시기였으리라. 자신의 과목을 들었던 여학생과, 이젠 더 이상 가르칠 기회가 없어진 상태에서 연애를 시작했고, 지금은 모르겠지만 조금 있으면 임신을 하고, 결혼까지 하게 될 예정이다.
  이때 젊은 교수님의 취미 가운데 하나가 당구였는데, 같은 장소에서 당구를 즐기던 늙수그레한 리카르도 라베르데가, 당시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신화적인 영토였던 나폴레스 아시엔다의 개인 동물원을 탈출한 하마를 취재해 내보낸 TV 방송을 보고 “동물들은 죄가 없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던 것.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누구인가 하면, 마약왕. 암흑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철권의 사나이로 ‘암흑왕’의 집권 시기는 1980년대부터 시작해 컬럼비아 특수부대와의 싸움 끝에 탈출하다가 총에 맞아 1993년에 죽을 때까지였다. 그는 자기 사업에 방해가 되는 인물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보고타에서만 무려 4백 명에 가까운 시민들을 죽이거나 죽이도록 사주했는데, 많은 피해자가 무고한 시민들이었다. 누가 재수 없게 표적 근처에 서있거나 지나가라고 했느냐고. 이렇게 변명하면서.
  반면에 전성기 시절 약 250억 달러의 재산으로 세계에서 일곱 번째 부자로 포브스에 이름을 올린 에스코바르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거대한 동물원을 자신의 영토 안에 짓고 적도에서는 구경할 수 없었던 벵골호랑이, 아마존의 과카마야 앵무새, 조랑말, 손바닥만 한 나비, 코뿔소 한 쌍, 사자 등을 들여왔는데 여기에 하마가 끼어 있었던 것. 93년 말에 에스코바르가 한 세상 잘 때려먹고 44세의 나이에 험하게 죽자 그의 영토를 돌보는 사람도 뿔뿔이 흩어져 정부에 의해 대강대강, 대충대충 유지되고 있었다. 이때 일가를 몰고 짐승우리를 탈출해 적도의 강에 자기 영토를 분양받은 것이 바로 흑진주 색의 하마였던 것. 그러니까 탈출하고 10년이 넘는 동안이다. 그간 강 근방의 논밭을 얼마나 망가뜨려놓았으면 웬만한 피해쯤은 천주의 뜻이라고 여길 컬럼비아 촌사람들이 지방정부에 의뢰해서 사냥을 해버렸겠느냐고.

 

  근데 흑진주 색 얌마라(동물원 이름) 하마는 스토리를 끌어내는 기재에 불과하다. 리카르도 라베르데가 한 말 “동물들은 잘못이 없어.”는 저 뒤, 책의 막판에 다시 한 번 화자 ‘나’의 입에서 리카르도의 딸 마야를 향해 나올 뿐이고, 정말로 중요한 건, 1996년에 갑자기 리카르도에게 돈이 필요해졌고, 자기한테 곧 큰돈이 생길 것이니 그걸 받으면 이자까지 즉각 돌려주겠다고 약속해서 믿을 만한 사람에게 돈을 빌렸으나, 돈이 필요했던 사유가 소멸되어 비통한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비틀비틀 보고타 시내를 걸어가다가, 오토바이를 탄 두 명의 남자에게 총을 맞아 죽어버린다. 이때 검은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에 탄 두 명의 남자, 이 가운데 뒷자리에 앉은 남자의 품속에서 은빛 권총이 나오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해 리카르도를 향해 돌진해 팔을 잡아당기던 오지랖 넓은 ‘나’ 안토니오의 복부에도 총알이 하나 덤으로 박혀버린다. ‘나’의 배로 진입한 총알은 친절하게도 장기를 전혀 손상하지 않고 그저 근육과 힘줄만 지나 골반뼈 위에서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왜 리카르도 라베르데에게 돈이 필요했느냐고? 리카르도는 근 20년 동안 교도소에 있다가 나온 인물이다. 무슨 죄목으로 복역을 했는지, 알고 있지만 구태여 아직 안 읽은 분께 가르쳐드리기는 싫다. 하여튼 그 전에 저 존 F. 케네디가 승인을 해서 설립한 미국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플로리다에 살던 일레인 프리츠가 컬럼비아로 파견되어 오는데, 처음엔 보고타의 가난한 집에 하숙을 하다가 후에 몰락한 부유층 댁인 라베르데 가로 이사를 하면서, 이 집의 외아들이며 대 페루 전쟁의 위대한 영웅 조종사 라베르데 대위의 손자인 리카르도를 만난다. 소설책이니만큼 둘은 보자마자 확 한눈에 ‘반했다’기 보다 끌리는 느낌이 들었고, 며칠 안 있어서 드디어 뜨거운 사이가 되고, 나중에 결혼도 한다. 미국 새댁 일레인과 시부모 사이는 끔찍하지만. 일레인이야말로 시금치도 안 먹는 새댁이었다.
  일레인 엘레나 프리츠, 미국여성이라 자기 성을 고집하던 아내는 남편 리카르도 라베르데가 석방되어 보고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득달같이 보고타를 향해 비행기를 탄다. 아메리카 에어라인 965편, 보잉 757기. 직행편은 아니다. 칼리에서 갈아타야 하지만 가장 빠른 비행편을 고른 것이다. 이 비행기가 칼리 근처에서 갑자기 자동항법장치가 고장이 나고, 고장이 나자마자 비상상황을 알 수 있도록 설계되지 않아(이 사건 이후에 항법장치 고장의 알람 설계를 개선했다고 한다.) 낌새를 너무 늦게 알게 된 기장과 부기장은 나름대로 성실하게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이어 서서히, 서서히 포기하면서 엘딜루비오 산 서쪽허리에 충돌해 155명 승객 가운데 네 명만 중상을 입고 나머지는 모두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일레인 프리츠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중상을 입은 채 살아남아 지독한 고통을 겪는 대신 죽는 순간까지 위험도 모르고, 긴장도 하지 않은 채 순식간에 삶을 접어버리고 말았다.
  리카르도 라베르데가 이 비행기의 블랙박스 녹음 사본을 얻기 위해 돈을 필요로 했던 것. 일레인이 돌아와서 예전과 비슷하게 여생을 보내려고 일을 해 조만간 큰돈이 생길 것이었는데 그것보다 더 빨리 돈이 필요했던 것임을, 아주 오랜 후에 알게 된다.

 

  재미있다. 전형적인 소설이다. 어떤 사건을 알게 되고, 그것으로 지난 시절의 한 인물을 떠올리고, 그 인물의 사연을 조금씩 알게 되는 내용을 여러 에피소드를 섞어 풀어나가는 구성. 익숙해서 쉽게 읽히기도 한다.
  이 작가가 일곱 편의 장편소설과 두 권의 단편집을 냈다는데 우리말로 번역한 건 이 책 한 권밖에 없는 게 아쉬울 정도다. 물론 명작이라고는 못하지만 컬럼비아의 흥미롭지만 어두웠던 시절을 훔쳐보는 취미를 만족시킬 수 있다. 어제 오늘 이 책 덕에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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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15 09: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매. 풀어주신 내용만 보면 대하소설느낌인데요? 재밌게 읽으신게 느껴지는 글 ㅋㅋ 좋은 아침입니다 퐐스타프뉨!

잠자냥 2021-11-15 10:30   좋아요 1 | URL
글쎄 우리의 골드문트는 좋은 아침 아닐걸 숙취와 월요일 콜라보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1-15 10:38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일취월장. 일요일에 취하면 월요일이 장난 아닙니다.
다 늦은 시간에 마누라가 해장국에 쐬주 사가지고 기어 들어오는 거였습니다. ㅠㅠ
장쟝님. 분명 무지 재밌게 읽었는데 다 읽고나니 뭔가 남는 게 없는 거 있지요? ㅋㅋㅋㅋ

- 2021-11-15 11:29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해장국에 쏘주 ㅋㅋㅋㅋ 월요일 아침부터 헤비해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