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보다 매혹적인 오페라의 세계로”라고 띠지를 단 책이 나왔나 봅니다. 이 책을 읽을 의향은 없지만, 많은 알라디너께서 에이, 진짜 드라마보다 매혹적인 오페라가 있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섣불리 오페라가 드라마보다 매혹적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재미’라는 측면으로 시각을 좁혀보면 확실히 오페라가 드라마보다 재미있습니다. 적지 않은 고상한 시청자들을 제외하고 제 수준의 일반인들이 TV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막장 드라마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그런데 아무리 양보해도 21세기 우리나라의 TV 드라마보다 19세기 유럽에서 작곡하고 공연한 오페라가 훨씬 더 엽기, 잔혹, 막장 드라마적 성격이 짙습니다.


베를리오즈, <트로이 사람들> 디동과 애네의 이중창 "가없는 환희의 밤이여"


  벨리니와 도니제티, 감탄할 수준의 절묘한 선율로 벨칸토의 정점에 선 작곡가들의 18번은 아름다운 여자 주인공이 헤까닥 미쳐버리게 만드는 건데요, 거품 물던 소프라노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면 오해 풀리고 남자 주인공하고 시집 장가들어 잘 먹고 잘 사는 해피엔드요, 끝까지 미쳐 있으면 아무 잘못도 없는 새신랑을 신혼 첫날밤에 칼로 푹 쑤셔 죽여놓고 피칠갑 한 잠옷 바람에 헤어진 애인 이름 부르며 노래하다가 죽어버리는 엽기, 잔혹, 막장의 비극 드라마가 됩니다.

  가장 웅대한 오페라라고 일컫는 <니벨룽겐의 반지>의 중요한 주인공인 지그린데와 지그문트는 같은 부모를 둔 쌍둥이 남매이면서 보자마자 뜻과 몸을 맞추어 아들 하나를 낳습니다. 이들의 아들 지크프리트는 고모 브륀힐데와 정식 부부가 됩니다만, 이런 복잡한 족보는 계약의 신이면서 계약을 합법적으로 깨뜨릴 주신 보탄의 잔머리에서 만들어집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오페라가 고급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입니다. 20세기 들어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만든 <장미의 기사>는 바람난 유부녀가 애인 정리하는 내용입니다. 고급은커녕 그냥 사는 수준도 안 됩니다. 즉, 음악이 없다면 누가 비싼 돈 들여 극장 티켓을 사겠느냐는 것이지요. 음악의 하위장르이면서 극작품일 뿐입니다. 여기서 작곡가들이 딜레마에 빠진다더군요. 음악이 먼저냐, 극이 먼저냐. 베르디는 결국 극이 먼저라는 입장으로 돌아섰다는 얘기를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오페라는 한 시간 동안 졸다가 아리아 하나 듣고, 또 한 시간 동안 졸다가 다른 아리아 하나 듣고 집에 가는 것.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 많습니다. 저는 한 명이 심각한 노래하는 것도 좋지만 역시 음악의 꽃은 둘 이상의 악기나 둘 이상의 화성이 섞여 빚어내는 하모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리아보다는 이중창, 트리오, 사중창, 심지어 팔중창 같은 것을 더 좋아합니다. 훨씬 더. 같은 선율을 따라 각기 다른 내용을 노래하는 감정의 뒤섞임 같은 건 오직 오페라 한 장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입지요. 물론 가오싱젠은 <버스 정류장>에서 사성이 확실한 중국어 발음을 이용해 희곡/연극에서도 오페라의 중창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 같습니다만(이건 제 생각일 뿐입니다. 다른 곳에서 인용하시면 심하게 창피당하실 수 있습니다).

  하여튼 오페라의 전성시대는 확실히 저물었습니다. 본고장 이탈리아에서도 오페라는 사망선고를 받아놓은 거 같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산소호흡기를 달아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위에 이탈리아 사람 몇 있(었)는데, 오페라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무릎 위에 대본(리브레토) 올려놓고 길고 긴 시간동안 졸며 들으며 감상하는 재미없는 예술형식으로 선을 딱, 그어버리더라고요. 이제 이탈리아에서 축구만 살아남았다고 하더군요.


핸델, <롱고바르디의 왕비 로델린다> 로델린다와 베르타리오의 이중창 "한 번 안아봅시다."


  <루살카>에서 루살카의 아리아 “하늘 높은 곳의 달님이시여”를 많이 좋아하시는군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드보르자크는 실내악과 교향곡 작곡가로 알려졌지만 아홉 편의 오페라를 출판하기도 했습니다(열 편이라고 주장하시는 분도 있는데, <성 루드밀라>는 오라토리오로 보는 것이 타당할 거 같습니다). 세계에서 배우기 가장 힘든 언어가 체코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건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 드보르자크, 야나체크에겐 큰 아픔입니다. 뛰어난 오페라를 많이 만들었는데 체코 외에서 공연을 자주 하지 못하니 서구 작품들과 비교해 무지하게 큰 핸디캡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드보르자크의 몇 오페라는 제가 참 애정을 갖고 있어서 작품이 거론되는 것이 반가워 그의 오페라 목록을 소개합니다.


드보르자크 오페라 음반

왼쪽부터, <자코뱅 당원>, <반다>, <루살카>, <영리한 농부>, <고집쟁이 연인들>, <아르미다>, <왕과 숯쟁이>, <카챠와 악마>, <디미트리>

<자코뱅 당원>, <루살카>, <디미트리>가 명작이고, <고집쟁이 연인들>, <카챠와 악마>는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루살카>의 “하늘 높은 곳의 달님이시여”는 르네 플레밍을 많이 들으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하필이면 칼라스하고 동시대에 활약하는 동구권의 체코 소프라노라 실력보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밀라다 슈브라토바의 노래가 제 귀엔 훨씬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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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0-31 19: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페이지를 찜해서 오페라에 무지한 저에게 짙은 밤 손전등과 나침반처럼 활용해야겠습니다👍

Falstaff 2021-10-31 19:15   좋아요 4 | URL
에고, 손전등이나 나침반으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

mini74 2021-10-31 19: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탈리아에서도 마치 우리나라 판소리같은 존재가 된건가요 ㅠㅠ 오페라는 잘 모르지만 알고싶은 일인~ 저도 미미님처럼 찜해놓고 검색하며 읽어봐야겠어요 *^^*

Falstaff 2021-10-31 19:32   좋아요 4 | URL
거의 그꼴이 났다고 봐야 하는데, 우리보다 상황은 더 안 좋은 거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예솔아~ 할아버지가 부르셔, 녜~ 아니, 너 말고, 이 노래의 예솔이, 이자람을 비롯한 젊은 소리꾼들이 계속 나오고 있고, 젊은 관객들도 꾸준히 있는 반면에 이탈리아에선 오페라 구경가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그리하야, 이태리에서 오페라 전공하는 성악가 지망생도 아시아, 동구권, 러시아 학생들이 더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새파랑 2021-10-31 19: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는 드라마도 낯설지만 오페라는 미지의 세계 같아요 😅
폴스타프님우 역시 오페라도 전문이시군요. 막장드라마가 재미있기는 한가 봅니다 ㅋ

근데 요즘 이탈리아는 축구도 그닥 잘하지는 못하던데 ㅜㅜ

Falstaff 2021-10-31 19:56   좋아요 4 | URL
ㅎㅎㅎ 그래도 축구는 아직 잉글랜드, 스페인, 독일, 프랑스와 함께 이탈리아입니다!

붕붕툐툐 2021-10-31 20: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ㅎㅎ오페라 진짜 막장의 원조인 내용들 많죠~ 그래서 전 오페라 좋아라 하는데~ 드보르작 오페라도 찜해놨다가 공연하면 보러 가고 싶어요! 어차피 다 자막인데도 체코어는 공연이 어렵나 봅니다~~

Falstaff 2021-10-31 20:48   좋아요 4 | URL
ㅎㅎㅎ 예. 이탈리아 쪽은 치정, 살인, 복수 빼면 몇 남지 않을 거 같습니다.
아마 <루살카>는 국내 공연을 했었던 걸로 아는데, 나머지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할 듯합니다. 어쩔 수 없이 음반으로나마 찾아 들을 수밖에 없어요.
체코 오페라는 수프라폰 레이블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좋은 품질로 나왔었는데, 요즘엔 음반 값이 워낙 올라서 후덜덜합니다.

페넬로페 2021-10-31 23: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페라는 스토리와 음악이 함께 있는 것인데 저는 음악 위주로 감상하는것 같아요~~음악이 넘 좋으니 고급스럽다는 생각이 들고요.
막장은 우리 사람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인가요 ㅎㅎ
올려주신 영상의 음악 넘 좋아요.
소장하신 오페라 음반을 보니 클래식에도 조예가 깊으시다는것이 느껴집니다^^

Falstaff 2021-11-01 08:41   좋아요 1 | URL
아, 그럼요. 음악이 없으면 세상 누가 오페라 따위를 보겠습니까!
베르디와 이후 작곡가들은 스토리보다 ˝드라마˝라는 극적 요소를 염두에 두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그냥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무대미술 같은 장치와 가수들의 연기도 굉장히 중요하다, 뭐 이런 수준으로. 사실 저도 잘 몰라요. ^^;;;

링크 올린 베를리오즈와 핸델의 이중창은 대중적이진 않지만 숨어있는 명곡이랄 수 있습지요. 핸델의 것은, 왕과 왕비가 부르는 노래인데요, 카운터 테너 두 명이 부르고 있잖아요. 근데 대머리가 왕비 역할입니다. ㅋㅋㅋㅋㅋ 베를리오즈는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프랑스 말로 디동)와 트로이의 영웅 아이네아스가 바야흐로 첫날밤을 치루기 전에 분위기 잡는 것이고요.

- 2021-11-01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저 역시 문외한이라 오페라는 되게 고상한 고급 비싼 문화(?)라고 생각했는 데, 곁들여진 설명과 유튜브 살짝 보니까 오페러는 웅장한 스케일과 다양한 협동(?)이 만들어 내는 이야기라는 지점에서 현대의 영화와 비슷하게 대중들이 즐겼겠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심리적 허들이 낮춰진 듯 하옵니다.

Falstaff 2021-11-01 09:13   좋아요 1 | URL
극의 내용만 미리 알고 입장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근데 워낙 많은 연주자와 성악가가, 그것도 있는 집에서 돈 처들여가며 배운 악기와 성악으로 폼을 잡으니 입장료가 비싸서 문제지, 오페라 자체는 그냥 오락거리예요. <아마데우스>의 뒤부분에서 <마술피리> 공연장면 나오잖아요. 일반 시민들도 막 미쳐 날뛰고 소리지르고, 따라부르는 거. 그게 진짜 오페라아니겠습니까.
요즘 오페라, 뮤지컬은 너무 엄숙주의, 뭐라더라, 관크. 아이고 저도 그거 드러워서 공연 구경하러 안 가요. ㅋㅋㅋㅋ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도리스 되리, 김라합 / 문학동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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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하노버에서 출생한 도리스 되리는, 독일 펜클럽과 영화 아카데미 회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이의 본분은 영화감독 겸 제작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아동문학과 단편소설, 몇 편의 장편을 쓴 작가이기도 하다. 하노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되리는 캘리포니아와 뉴욕에서 연극 영화를 공부한다. 스무 살이던 1975년 독일로 돌아와 뮌헨 TV-영화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매체에 영화평론을 게재해 조금씩 이름을 알린다.
  단편소설 열여덟 편을 묶은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아》, 원작 《Für immer und ewig: 한 평생》을 읽어보면 영화감독과 제작자답게 다분히 영화적 문법으로 작품을 쓰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한 편도 빼지 않고 감각적이다.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장면은 그대로 영화로 옮겨 놓으면 더욱 빛날 것처럼 반짝거리는데, 모르긴 몰라도 이런 점들이 이 책의 독자들이 후한 평가를 하게 만들었을 듯하다. 이것을 조금 바꾸어 말하면 작가가 등장인물을 조금 왜곡된 앵글로 바라보아 일상에서 벌어질 수는 있지만 사실 여간해 발견하기 힘든 별종의 성격을 갖게 만든 것 같다. 여기서 ‘것 같다.’라고 쓰는 것은, 1968년 이후의 독일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인들을 극동 아시아 사람이 그들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책에 실린 단편소설들 몇 개의 플롯을 따 영화 <파니 핑크>를 만들기도 했다. 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열서너 살의 소녀들이 삼십대 중후반이 될 때까지의 성장단계를 따라가며, 주로 사랑과 성을 중심으로 관찰한다. 관찰은 연인들 사이에 필연적으로 동반할 수밖에 없는 오해와 상실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오해는 의식 또는 현상을 해석하는 방식의 상이성에서 시작한다. 해석의 상이성은 자연스럽게 여성과 남성의 갈등으로 확대되는데 당연히 갈등의 마땅한 해결(방법)은 제시하지 않는다. 이렇게 써놓고 다시 읽어보니 무지하게 잘난 척을 한 것 같은데, 별거 아니다. 1968년 봄에 처음으로 사랑과 성에 눈을 뜨기 시작한 파니 핑크와 이 아이의 (열세 살 여자아이의 기준으로 암소처럼 큰 유방을 장착한) 친구 안토니아가 각기 스물세 명과 서른여덟 명의 남자와 연애를 했으면서도 아직 사랑과 행복의 향방을 알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적절하고, 경쾌하고, 심지어 감각적이기도 한 연애장면, 그리고 실연에 따른 좌절의 장면을 삽입해 경묘하게 읽는 즐거움을 준다. 어깨를 견줄 킬링타임 용 소설책을 구경하기란 쉽지 않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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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0-29 08: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이 감독 영화만 몇 편 봤는데 골드문트 님 리뷰 보니 소설도 영화랑 비슷할 거 같군요!

Falstaff 2021-10-29 08:36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하루 사이에 골드문트! 아주 둏습니닷!
전 영화 안 받거든요. 책 읽어보니까 영화도 본 거 같아요.

독서괭 2021-10-29 09:1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ㅋㅋㅋㅋ 감각적이고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는 책인가 봅니다. 어깨를 견줄 작품 찾기 쉽지 않을 거라 하시니 혹하네요!!

Falstaff 2021-10-29 09:23   좋아요 3 | URL
딱 하나, 킬링 타임 용 작품이란 것만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ㅋㅋㅋㅋ 골드문트. 진짜 격조있지요? 뭔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10대 때 그렇게 불러달라고 아우성을 쳤는데 책 읽어본 동무들이 한 놈도 없어서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ㅋㅋㅋㅋ

얄라알라 2021-10-29 09: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화적 문법˝을 바로 감별하실 수 있는 Falstaff님의 고품격 리뷰로 하루, 또 즐거운 자극받으며 시작합니다! <파니 핑크>의 모티브가 된 단편들도 등장한다니! 추천 감사드립니다.

Falstaff 2021-10-29 09:24   좋아요 2 | URL
아이고, 이거 추천은 아닙니다! 재미있고 가볍게 읽히지만 뛰어나지는 않은 거 같아요. 별점을 세 개 줄까, 네 개 줄까 하다가 에라, 좋은 게 좋은 거다, 싶어서 네 개 줬습니다. ㅋㅋㅋ

잠자냥 2021-10-29 09: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 넘나 잘 어울립니다. 특히 저 메인의 프로필 사진은 오랜 방랑 생활을 하며 맥주로 배를 채운 늙은 골드문트의 모습이랄까....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0-29 09:31   좋아요 4 | URL
ㅋㅋㅋ 그럼 이름 바꿀까요?
언제나 F 세 개를 기억할 필요도 읎잖어요?
이제 생각해보니까, 고딩 때 동무들 중에 책 읽어본 놈 있었으면 아예 까였을 듯, 자기가 골드문트 하겠다고 해서 말입죠. 진짜 헤세는 10대 시절에, 늦어도 스물다섯 까지 읽어야 제 맛입니다.
서른 넘어가서, 잠자냥님이 가재미 눈을 하고 째려보시는 <데미안>에서 말하듯 청춘이 가버린 다음엔 헤세 읽으며 그렇게 심쿵할 거 같지가 않아요. ㅋㅋㅋㅋ
전 싯다르타, 지와 사랑, 수레바퀴, 황야 이리, 다 좋았던 건 물론이고 딱 한 편만 뽑아라, 하면 싯다르타입니다만.... 으.... 이렇게 말하면서도 여태 재독하지는 않았다는 거. ㅋㅋ

잠자냥 2021-10-29 09:41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ㅋㅋ 골드문트 찬성 ㅋㅋㅋㅋㅋㅋ 생각해 보면 10대 남자들에게 골드문트 완전 이상형, 롤모델 아닌가요? ㅋㅋㅋㅋ 방랑하면서 온갖 여자랑 잘 수 있고ㅋㅋㅋㅋㅋㅋㅋ

정말 헤세는 10대 시절에 읽으면 장난 아닌 작가입니다. 전 수레바퀴랑 크눌프에 정말 와... 폭풍 감정 이입. 이 작품들은 지금도 좋아해요(다시 읽지는 않았지만;;)

서른 넘어서 <황야의 이리> 읽었는데 그렇게 좋지 않아서 ㅠㅠ 슬펐습니다. 나의 헤세여! 하면서 말이죠. ㅎㅎㅎㅎ

문득, 방랑하고 싶어지지 않는가, 그대 골드문트여~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10-29 09:54   좋아요 4 | URL
방랑하라니, 아, 불지르지 마세요. 가뜩이나 가을입니다. ㅜㅜ
 
아름다운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12
플뢰르 이애기 지음, 김은정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표제작과 <프롤레테르카 호>, 이렇게 두 편이 실린 작품집. ‘이애기’라는 작가 이름마저 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생소했지만, 수준 있는 작품으로 시리즈를 만들었던 민음사 모던 클래식의 타이틀을 달고 나온 책이라 기대하면서 읽기 시작했다. 오, 괜찮다. 다만 독자의 취향에 따라 호 불호가 극적으로 갈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무쪼록 신중하게 선택하시기 바란다.
  플뢰르 이애기는, 1940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옮긴이 김은정의 해설에 의하면,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재, 너무 이르게 찾아왔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던 주변 사람들의 죽음, 그리고 스위스 산골 구석에 있는 외딴 수도원 기숙사 생활로 점철된 어린 시절은, 절제와 거부, 고립 그 자체였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소년기의 거의 대부분을 수도원을 전전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수도원의 기숙생 생활은 <아름다운 나날>을 쓸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고 봐도 좋겠다. 고독한 청소년기를 끝내고 드디어 열여덟 살이 된 이애기는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미국과 유럽을 무대로 모델 경력을 시작해 7년간 유지한다. 이후 1968년 로마에서 잉에보르크 바흐만, 토마스 베른하르트 등과 교류를 맺는다.
  같은 해에 다시 밀라노로 가 아델피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작품생활을 하지만 그것보다는 로베르토 칼라소를 만나 결혼했다는 점이 더욱 중요해보인다. 계속 작가생활을 했으나, 1989년 마흔아홉 살에 발표한 오늘의 표제작 <아름다운 나날>이 이탈리아의 문학상인 프레미오 바구타 상을 받아 첫 번째 마스터피스로 꼽을 수 있단다. 이어서 예순세 살에 발표한 <프롤레테리카 호>는 영국의 문학주간지 Times Literary Supplement가 뽑은 2003년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한 편으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두 작품 다 일인칭 시점으로 썼다. 그런데 마치 <아름다운 나날>의 ‘나’가 <프롤레테리카 호>의 ‘나’이자 ‘요하네스의 딸’하고 같은 사람인 것처럼 읽힌다. 두 작품 사이의 터울이 14년이 나는데도, 화자가 십대 중반을 거치고 있으며 수도원의 기숙학생의 신분인 것으로 같고, 어머니는 브라질에서 두 번째 결혼생활을 하면서 수도원 부속학교에 재학중인 ‘나’를 원격조정 하는 것도 유사하며, 심지어 아버지와 더 친밀한 점도 일치한다.
  수도원 또는 수녀원 기숙학교를 무대로 하는 작품의 경우, 남학교와 여학교 간의 차이점은 은하계의 이편과 저편 사이만큼 까마득하게 멀다. 남자 기숙학교의 풍경이 이리wolves떼끼리의 전투를 먼저 치루고, 이어서 이리들 간의 서열을 확실하게 정하는 결투와, 서열 간의 핍박과 폭력, 착취, 배고픔, 그리고 이후에 이루어지는 배반, 보복 등 어린 악마들이 펼쳐내는 피의 세례가 주종을 이루는 반면, 적어도 20세기 중후반까지의 여학교에서는 한정된 범위 내에서 발산하는 풋풋한 젊음의 아름다움, 벗들 사이에 맺어지는 우정과 배신, 밤새 편지로 속삭이는 사랑과 꿈, 급우에게 끌리는 마음, 그리고 돋보이는 절대적 우상을 향한 경도 같은 것이 중요한 재료가 된다.
  플뢰르 이애기는 처음부터 스위스 산골에 감추어진 비싼 수업료와 기숙사 비용을 요구할 것처럼 보이는 고급 수도원의 부속 아펜젤 학교 이야기 <아름다운 나날>에서 여덟 살부터 수도원 기숙학교를 전전한 결손가정의 외동딸 ‘나’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아펜젤 학교에 프레데리크라는 전학생이 도착하면서 ‘나’의 학교생활은 변하기 시작한다. ‘나’는 프레데리크와 가까워지려 노력하고, 친구의 필체까지 흉내 내 거의 완벽하게 모사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고, 공통의 흥미를 만들기 위하여 별로 관심이 없었던 프랑스 문학까지 섭렵하는 스토리. 사실 이런 내용들은 그동안 숱하게 많은 작품에서 읽을 수 있었던 것으로 전혀 참신하지 않다. 그럼에도 이것도 그렇고, 이어지는 <프롤레테리카 호>도 그렇고 내가 초장에 말했듯, 오, 괜찮은 걸! 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전적으로 플뢰르 이애기가 쓰고 김은정이 번역한 ‘문장의 힘’ 때문이다.
  한 편이 백 쪽 내외의 짧은 작품 두 편. 결코 부드럽지 않다. 이미 누보로망을 경험해보아 이 정도를 ‘극도로’ 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누보로망을 읽을 때 눈알에 모래알이 드글드글 낀 것 같은 이물감, 그걸 느끼기 바로 전의 건조한 문장. 이 정도면 이해가 가실 터. 이런 드라이한 단어와 문장, 문단이라고 해서 작가가 자신의 감정을 풀어 전달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그리고 이런 경우, 독자에 따라 놀랍게도 신선함을 경험할 수도 있을 터인데, 다만 그러기 위하여 작가와 독자의, 이 사이에 역자까지 끼워서, 궁합이 맞아야 할 것이다.

 

  이런 작품들을 숱하게 벤치마킹해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많지만 그중에서 청출어람은 정말 찾기 어려운 것이 진실. 아서라. 문학에 벤치마킹이 어디 있는가.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지 못할 것 같으면 일찌감치 주산, 타자, 속기, 용접, 금형, 미장, 도배 같은 거 배워 다른 돈벌이를 찾는 게 빠르고 복장도 편하다는 걸 꼭 가르쳐줘야 알까. 이 센텐스는 독후감 쓰다가 괜히 다른 생각 조금 들어서 끼어든 푼수 없는 짓이었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흠.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9천원으로 가격도 착하고, 중단편 정도의 길이로 비록 명작의 반열은 생각하지 못하지만 고품질 작품이다. 이탈리아 언어로 조금 편하게 쓴 뒤라스를 읽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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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1-10-28 08: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장의 신선함 보다 촉촉한 문장의 신선함 보다^^ 건조한 문장의 신선함
제목 끌리네요^^
착한 가갹도,ㅎㅎ

Falstaff 2021-10-28 09:06   좋아요 3 | URL
스토리는 언젠가 한 번 읽어본 거 같은 느낌인데, 이 책은 문장이 좋더군요. ^^

blanca 2021-10-28 1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리뷰 좋습니다. 폴스타프님 명작의 반열 언제 한번 엑기스만 뽑아 소개해 주세요. 따라 읽겠습니다. 명작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고품질의 작품 궁금합니다. ^^

Falstaff 2021-10-28 10:23   좋아요 3 | URL
ㅎㅎㅎㅎ 블랑카 님께선 안 읽으셨군요.
제가 뽑은 명작의 반열. 페이퍼 한 번 쓴 적 있습지요. ^^

https://blog.aladin.co.kr/729554277/12815773

잠자냥 2021-10-28 10:3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이 작품 불호쪽에 가까웠어요. ㅎㅎㅎ
읽고 냉큼 팔았던 기억이 납니다....

Falstaff 2021-10-28 11:01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 이게 인생입지요.
세상 사람들이 다 좋아하면 재미 읎어요!

그레이스 2021-10-28 11:57   좋아요 3 | URL
두 분 경향을 알아야 판단할텐데요 ^^

Falstaff 2021-10-28 12:12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ㅋ 이런 농담은 해도 괜찮을 듯합니다.
전 소주파고요, 잠자냥 님은 맥주파예요! 서울의 밤 맥주를 좋아하신답니다! ㅋㅋ

페넬로페 2021-10-28 13:56   좋아요 2 | URL
저는 맥주파인데 그럼 불호쪽입니까?
알라딘 독서계를 이끄시는 두 분의 의견이 엇갈리니 더 관심이 가네요^^

Falstaff 2021-10-28 14:06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 님께서 맥주파시면 불호 쪽일 수도 있겠습니다. ㅋㅋ
그리고요, 말씀은 고마운데요, 절 잠자냥 님하고 비슷하게 견주시면, 잠자냥 님 열 받으셔요. ㅋㅋㅋㅋ

잠자냥 2021-10-28 16:53   좋아요 2 | URL
푸하하 폴스타프 네 이놈 싸다귀 한대 까방권 한번 더 추가해주겠노라....

폴스타프 님, 황송하옵니다! 그저 제가 배울 따름입니다요!

(그리고 서울의 밤은 뭔가 옛날 드라마 제목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맥주는 ˝서울숲˝입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21-10-28 12: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건조한 문장이 뭔지 저도 읽고 싶어지네요.

Falstaff 2021-10-28 13:55   좋아요 5 | URL
건조한 문장의 끝장을 읽으시려면, 알랭 로브그리예와 나탈리 샤로트의 책을 읽어보셔요. 죽여줍니다. 이건 추천이나, 좋다는 의미로 쓴 거 아닙니다!!
로브그리예의 <질투>, <엿보는 자>, <밀회의 집>이 차례로 민음사, 을유, 문지에서 세계문학 시리즈로 나왔고요, 샤로트는 문지 세계문학 <어린시절>만 읽어봤는데, 20세기 소설문학의 학살자들입니다. ㅋㅋㅋㅋㅋ 소위 말하는 누보 로망.
본문 마지막 문장에 ˝조금 편하게 쓴 뒤라스˝, 뒤라스도 초기엔 골 좀 때렸습니다. <내가 태평양을 막나 못 막나 보자>를 읽고 뒤라스 페이퍼를 한 번 써볼까 하는 중입니다만, 항상 맘만 앞서서 이렇게 말하기도 ㅎㅎㅎ 쪽팔리네요.

coolcat329 2021-10-28 12:30   좋아요 3 | URL
누보 로망 이쪽이 너무 지겹다고 들었어요.특히 저 질투는 너무너무 지루하다고 들었는데요, 한 번 경험은 해보고 싶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

Falstaff 2021-10-28 13:05   좋아요 2 | URL
미셸 뷔토르의 <변경>을 읽으셔요. 누보로망 가운데 재미도 좀 있고, 문장도 훨씬 덜 깔끄럽습니다. ㅎㅎ

coolcat329 2021-10-28 13:35   좋아요 2 | URL
오~~콕! 찍어주시니 꼭!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스카와 루신다 1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7
피터 케리 지음, 김시현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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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부커상 수상작품이며, 20년 후인 2008년에 여태 부커상을 받은 작품 가운데 최고의 작품을 겨루는 베스트 오브 더 부커 후보에도 올라, 루시디의 <한밤의 아이들>에 이어 영광의 준우승을 거둔 작품이라고 해 상당한 기대를 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 주 바커스 마쉬에서 1943년 태어난 피터 케리, 라는 구구절절의 바이오그래피는 이이의 작가로서의 성과가 워낙 돋보여 애써 소개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대학에선 원래 화학과 동물학을 공부했지만 때마침 교통사고도 당하고, 원래 학업에 흥미가 없어서 일찌감치 때려치워, 결과적으로 대학에서 얻은 유일한 건 첫 번째 아내 리 위트먼 뿐이었다, 등등. 이런 거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작가로서의 피터 케리는 매년 오스트레일리아의 최우수 소설작품에게 주는 마일스 프랭클린 상을 세 번, 모든 영어권의 작품을 대상으로 최우수 작품에게 주는 부커 상을 두 번 받았으며, 매년 노벨 문학상에 가장 근접한 오스트레일리아 작가로 손꼽힌다고 한다. 근데 다들 아시지? 노벨 문학상 후보는 결국 만년 후보로만 끝나는 거. 이이가 벌써 77세. 기회는 그래도 남아 있지만 이러다가 결국 숨넘어간 작가가 한 둘이 아니니 안심하면 안 될 듯하다. 어쨌든 이렇게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작가가 쓴, 대단한 작품이니 어찌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지.

 

  작품은 끝날 때까지 이름을 밝히지 않는 홉킨스 가문의 화자 ‘나’의 길고 긴 독백이다. 화자가 이야기하고 싶은 인물은 자신의 증조부 오스카 홉킨스로 생몰연대가 1841~1866, 겨우 스물다섯의 청춘에 삶을 마감한 성공회 신부다. 화자의 집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진 인물은 당연히 어머니. 어머니는 집을 방문하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북동부 그래프턴 시의 성공회 주교들을, 감히 상석이 아닌 은판 사진이 정면으로 눈에 들어오는, 테이블의 한 가운데 자리에 앉히는 습관이 있을 정도로 증조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하다. 이 오스카 증조부는 1866년 당시에 사나운 야생동물과 곤충, 그리고 식인도 마다하지 않는 원주민 등, 살벌한 밀림의 한가운데였던 이곳, 벨린전으로 자그마한 세인트존 교회를 배에 싣고 와 온 세상에 은혜로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인물이기 때문이었다.
  화자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증조부가 아니라, 플리머스 형제회 소속이며, 왕립학술원 회원이었던 박물학자인 40대 홀아비 고조할아버지, 티오필러스 홉킨스부터 시작한다. 플리머스 형제회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의 모임이다. 헨리가 캐서린과 이혼하는 과정에서 생긴 성공회가 벌써 3백년이나 잉글랜드를 드르르륵 누비고 또 다졌건만 어찌된 일인지 유독 런던에서 티오필러스 홉킨스 선생이 이주해 와 자리잡은  데번 주 헤나컴 지역은, 오히려 성공회 신자들이 홉킨스 선생의 설교에 넘어가 플리머스 형제회의 회원이 되는 거였다. 홉킨스 씨가 신봉하는 플리머스 형제회는 크리스마스마저 이교도적, 가톨릭적이라 규정해서 성탄을 기념하지도 않고 대신 ‘율타이드’라 칭하며 그날도 들에 나가 노동을 하라고 가르친단다.
  많은 일들이 크리스마스를 기념해서 일어난다. 주인공 오스카 홉킨스는 아버지 말고 젊은 나이에 암에 걸려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질산을 피부에 떨어뜨리는 잔혹한 치료 도중에 숨을 거둔 엄마를 닮아 목이 길고 섬세한 외모를 갖고 태어났다. 외모에 어울리게 힘도 별로 없어서 성공회에 다니는 동네 아이들이 오스카만 봤다하면 이지메를 가하고, 심지어 모래나 자갈도 억지로 먹게 했다니 애초부터 외톨이의 별자리를 갖고 태어났다고 해도 무방하리라. 때를 맞춰 집에 새로운 가정부 패니가 들어왔다. 패니가 보기에 성탄절을 열다섯 번이나 지냈음에도 아직 오스카가 푸딩 맛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는 걸 알고, 이런 세상에나, 한숨을 한 번 쉰 다음, 다가온 성탄절에 버터와 우유, 달걀, 채에 거른 곱고 흰 밀가루, 설탕, 소금 기타 온갖 맛나는 양념을 동원해 일생일대의 커스터드 소스를 얹은 푸딩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인생 최초로 등장한 커스터드 소스 얹은 푸딩을 처음으로 입에 넣어, 위아래 이를 서로 부딪칠 것도 없이 저절로 녹아드는 순간, 입천장에 처음엔 얇디얇게 곧이어 점점 두껍게 엉기는 밀가루의 접착, 건포도와 설탕의 단 맛에 온통 돌기가 돋을 거 같은 혀의 미세한 떨림, 그리고 이 모든 물질들을 감싸는 침의 효소작용으로 조금씩 식도로 밀려드는 쾌감! 오스카가 난생 처음 천국의 맛을 감각하고 있는 바로 이때, 티오필러스 홉킨스, 강건한 몸집의 고집스런 아버지가 부엌에 들이닥쳐 왼손으로 오스카의 목을 굳세게 잡고, 오른손으로는 억지로 진한 소금물을 삼키게 하여, 이미 위의 분문을 통과한 푸딩의 모든 잔재까지 모두 거꾸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아버지에 따르면 푸딩은 우상숭배자들이나 먹는 악마의 살이라서.
  그렇다고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다. 오히려 사랑하기 때문에 다가올 심판의 날에 구원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양육을 하고 있던 터. 이런 불친절한 사랑이 계속 이어지고, 목에 아버지의 엄지와 검지로 인한 멍이 든 성탄 후의 부활절이 지난 다음 주, 오스카는 새롭게 하느님의 소명을 받는다. 그리하여 배교를 해버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좋아하며 다양한 관점에서 공정해지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신도들을 부당하게 꾀어 빼내가는 티오필러스 홉킨스만 예외로 치는 성공회 휴 스트래턴 신부에게, 귀순하는 것. 스트래턴 신부는 의외의 신학적 수확을 한 셈. 적의 아들이 손 안에 들어왔으니. 게다가 식사할 때 건포도를 골라놓는 오스카는 분명히 부름, 사제의 소명을 받은 걸로 보였다. 성공회 사제이지만 사실 지극한 속세 인물이기도 한 스트래턴 신부는 몇 년 만에 차분하고 강인한 표정으로 아이를 자신의 모교이기도 한 옥스퍼드의 오리얼 칼리지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생각보다 이 책이 재미없어진 이유 가운데 하나가, 화자가 너무 빨리, 너무 자주 오스카와 특히 루신다의 앞날에 관해 언급하기 때문인 것 같다. 루신다를 소개하는 초장에 화자는 “후에 전 재산을 나의 증조할머니에게 잃고 하룻밤 새 알거지가” 된다고 소개해버리는 것을 필두로. 그러니까 알거지 신세가 될 루신다의 아버지 르플래스트리어 씨는 1852년 종려주일을 앞두고 뉴사우스웨일스 패러매타 처치 스트리트에서 갓 이민 온 꼬맹이 엘리자베스 멀린스가 선생이 타고 온 말 앞에서 알짱거려 신경이 쓰인 말이 뒷발로 일어서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말 잔등에서 내동댕이쳐져 머리부터 추락, 호두 깨는 소리와 똑같은 소리를 내며 두개골이 깨져 즉사하고 만다. 나를 비롯한 독자들은 문제 소녀 엘리자베스 멀린스가 오스카하고 나중에 어떻게 연결이 될 걸로 기대하게 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루신다의 엄마 이름도 엘리자베스인 것만 빼고. 말이 나온 김에, 루신다가 열일곱 살 때 스페인 독감으로 죽을 팔자인 엄마 엘리자베스는 런던에 매우 친한 친구가 있으니 이름이 ‘매리 앤 에번스’다. 누구냐 하면, 우리가 흔히 조지 엘리엇으로 알고 있는 여성이다. 그러니까 루신다는 부르주아 인텔리 집안에서 나중에 문학적으로도 성숙하지 못한 알거지가 될 인물.
  르플래스트리어 씨가 죽고 몇 년 있다가 엄마 엘리자베스도 대서양과 인도양, 태평양까지 건너온 스페인 독감에 걸려 죽는다. 일 년 후 1859년 5월 10일에 열여덟 살이 된 루신다 르플래스트리어 양은 어린 나이에 대농장을 분할해 판 거금을 은행 환어음의 형태로 갖고 패러매타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최고의 도시 시드니로 들어온다. 그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시드니의 달링하버에 있는 유리공장을 사는 것. 전 재산의 반을 투자해서. 열여덟 살짜리가 유배된 범죄자들의 나라, 이 가운데서도 제일 큰 공업도시 시드니에 떨어져 혼자 회사를 통째로 살 수는 없었으니, 성공회 울라라 교구의 신부 데니스 헤잇에게 도움을 청한다. 처녀수태와 부활, 구약의 기적들을 전혀 믿지 않는 헤잇 신부는 유리에 관한 박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회사 경영에 관해서는 별로다. 이쪽을 보완을 위해 도움을 받는 사람이 답스 앤드 피그 사무소의 회계사 답스 씨. 루신다는 답스 씨의 집에 들락거리면서 재미나게도 카드 게임, 도박에 재미를 붙이기도 한다.
  그런데 19세기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여자가 회사의 사장을 하기엔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직원들이 기꺼이 루신다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유리회사에서 가장 고급한 기술자는 유리 대롱을 불어 형태를 잡는 유리 불기공. 이 가운데 가장 고참인 아서 펠프스의 도움을 받아 회사를 경영하는데, 가장 불행한 일은 이 세 명에게 회사를 맡겨놓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회사의 소유자가 되려고, 즉 결혼을 하기 위해 런던을 방문하는 것. 그러나 믿음과는 달리 조지 엘리엇은 아쉽게도 식민지에서 온 촌년이 도무지 런던의 풍습에 맞추지 못해 함께 어울려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사교계에서도 순식간에 떨려나 결혼도 하지 못한 채 리바이어던 호를 타고 귀국길에 오른다.
  이 배에서 만난 인물이 물 공포증에 시달리는 잉글랜드 출신의 성공회 사제 오스카 홉킨스. 이리하여 문제적 인물 오스카와 루신다가 이 바닷괴물 리바이어던 호에서 처음 만나고 시드니에서 다시 어울려 한 방에 둘 만 앉은 채 카드 게임을 하다가 들켜버리니 책표지를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파도, 빨강머리 남자, 유리로 만든 교회가 그려진 카드를 표지로 삼을 수 있었던 것.

 

  이 책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무수하게 많이 등장한다. 하나하나를 읽어보면 재치 만발인 문장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합쳐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재치있는 문장을 모두 합친 글의 덩어리로 읽으면 이상하게, 정말 의아스러울 만큼 독자를 덜 흥분시킨다. 왜 그런지 짐작은 하겠지만 아마추어, 기껏해야 딜레탕트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는 주제에 내 생각을 밝힐 수는 없다. 여차하면 관련된 분께 누가 될 일을 함부로 떠벌일 수는 없는 일.
  이만한 스케일로 작품을 구상하고 전개시킬 수 있는 작가가 그리 흔하지 않을 듯하다. 그리하여 비록 재미있게 읽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이가 쓴 다른 부커상 수상작품인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를 읽어보기로 결정했다. <켈리 갱……>을 읽음으로 해서 <오스카와 루신다>는 단지 나의 독법이 잘못 된 것일 뿐이란 게 증명된다면 나중에나마, 나도 좀 덜 거북할 거 같다. 다른 분들께선 아무쪼록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러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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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0-27 09: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아니, 화자가 막 책에서 스포일러하면 어떡합니까... 몹쓸 화자네;; -_-;;;

그나저나 저도 이 책 폴스타프 님이 재미없다고 하셔서, <켈리 갱>부터 읽어볼까 뭐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도서관에 있기에 휘리릭 넘겨보니 그게 더 재미나 보이더라고요. 하하하하하.....

Falstaff 2021-10-27 10:02   좋아요 2 | URL
마지막에도 썼지만,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고, 재치 만땅인 문장도 많은데요, 크게 한 덩어리로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에 들지 않는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켈리 갱...>은 사놨습죠. 12월 아니면 1월에 읽을 거 같네요. ㅎㅎㅎㅎ

2021-10-27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1-10-27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켈리 갱 읽다가 말았는데...

그런데 왜 읽다 말았는지 기억이
나질 않네요. 마저 다 읽어야 하는데.

Falstaff 2021-10-27 16: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메냐 님은 읽다 잠깐 쉬는 책이 워낙 많아서요.
켈리 갱은 읽기에 즐겁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coolcat329 2021-10-28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이상하게 켈리 갱부터 느낌이 별로였는데요,.ㅋ
근데 부커상을 두 번이나 받았군요!

Falstaff 2021-10-28 12:29   좋아요 0 | URL
앗, 켈리 갱도 별롭니까? 으흠....

coolcat329 2021-10-28 12:31   좋아요 1 | URL
아! 아닙니다 저 안 읽었습니다. 책 소개만 읽고 별로였다는거였네요. 표지 제목 등등 다 그냥 별로였다는 의미였어요~~

Falstaff 2021-10-28 13:03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렇군요. 그럼 제가 먼저 읽어보는 걸로... ^^
 
타란느 교수 20세기 프랑스 희곡선 2
아르튀르 아다모프 지음, 임수현 옮김 / 연극과인간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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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세기 프랑스 연극계의 기수로 치는 세 명의 인물이 있으니, 우연하게도 모두 외국 출신 프랑스 거주자로, 첫째가 루마니아 사람으로 프랑스에 흘러들어온 외젠 이오네스코요, 둘째가 아일랜드에서 배 타고 온 사뮈엘 베케트이며, 셋째가 아르메니아계 러시아 출신인 아르튀르 아다모프라고 한다. 이오네스코는 1970년에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의 영광을 얻었고, 베케트는 그 1년 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만, 아다모프는 두 명의 성공을 목격한 후 1970년, 중증 알코올 의존증에 따른 정신질환으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한다.
  이 세 명의 극작가들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입에 올리는 것이 부조리극이다. 또는 누보 떼아뜨르, 반연극, 초현실주의 등. 이들의 대표작이라면 나란히 <대머리 여가수>와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지만, 아쉽게도 아르튀르 아다모프의 작품은 별로 생각나지 않는다. 아다모프는 비록 2차 세계대전 발발 이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며 초현실주의 운동에 참여한다. 극작 경력은 1950년, 그의 나이 마흔두 살에 <침입>과 <파로디>를 초연하면서 시작했다. <타란느 교수>는 1953년 쉰한 살 때 초연을 한, 그의 중요 작품 리스트 가운데 한 편이다. 극작가로 데뷔한 아르튀르 아다모프의 초기작은 주로 부조리극으로 분류한다고 하는데, 이 <타란느 교수>는 부조리극이라기보다 작가 자신의 열등감이랄까,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대한 (막연한) 공포 비슷한 감정을 비유한 것처럼도 읽힌다.

 

  <타란느 교수>는 당연히 타란느 교수를 위한 무대다. 장면은 단 두 개. 하나는 경찰서. 다른 하나는 호텔의 사무실.
  경찰서에 잡혀 온 타란느 교수의 죄명은 음란공연죄. 추운 겨울날, 물가를 산책하던 타란느 교수가 갑자기 옷을 훌렁훌렁 벗었다고 물가 근처에서 놀고 있던 소년 여러 명이 신고를 했다. 타란느 교수는 자신이 대학에서 강의하는 유명인사임을 강조하면서 자기가 어떤 인물인데 그따위 짓을 했겠느냐, 한겨울에 몸살로 앓고 싶어 환장하지 않으면 어떻게 그것도 찬바람 부는 물가에서 옷을 벗을 수 있겠느냐고 주장하며, 교수라는 자신의 사회적 신분을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다. 물론 독자는 타란느 교수를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철없는 장난꾸러기들의 단체 고발도 믿을 수 없다. 여기에 신문기자와 신사 네 명이 등장했음에도 아무도 타란느 교수를 알아보는 인물이 없다. 마지막에 등장한 귀부인이 마침내, 여기서 교수님을 뵙는군요, 반갑게 아는 척을 하지만, 자세히 보더니 ‘메나르 교수’인 줄 잘못 알았다고 하는 거다.
  형사부장은 그저 약간의 벌금만 내면 아무 흔적 없이 깨끗하게 끝나는 일이니까 조서에 서명만 하고 가라 하지만 자존심 센 타란느 교수가 어떻게 한 번 주장한 사실, 옷을 벗은 적이 결단코 없다는 걸 번복해 서명을 하고 벌금을 내겠는가 말이지. 그러다가 슬쩍 등장인물들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두리번거리는 교수 역시 사라져버리는 것으로 첫 번째 장면이 끝난다. 빼어난 연극비평가인 것처럼 보이는 역자 임수현은 해설에서 타란느 교수의 옷을 벗는 행위를 ”아다모프의 은밀한 강박관념들─죄의식, 수치심, 불안, 공포, ‘나’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아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는, 작가에겐 일종의 거울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두 번째 장면인 호텔의 사무실에서는 처음엔 앞 장면의 연장인 듯 두 명의 경찰이 와서 교수에게 계속 벌금 낼 것을 요구한다. 장소를 바꾸지 않고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 동생 쟌느가 애초에 타란느 교수를 초빙하려 했던 벨기에 대학 학장이 보낸 편지를 무표정하고 건조한 목소리로 읽으면서 이에 교수가 반응하는 것이 극의 절정을 이룬다. 앞에서 거명했던 두 명의 부조리 거장들, 외젠 이오네스코와 사뮈엘 베케트가 성공적인 삶과 지위를 이어가는 가운데 끝내 비극적인 종말을 맞아야 했던 아르튀르 아다모프의 차이점이 조금은 눈에 보이는 듯해서 마음이 좀 쓸쓸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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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10-26 09:2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부조리 연극의 삼인방이 있었군요. 다른 두 작가에 비해 약간 다른 느낌이 드네요~ <대머리 여가수>의 충격이 있어서 부조리극은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

Falstaff 2021-10-26 09:44   좋아요 4 | URL
<대머리 여가수> ㅎㅎㅎ 전 그래도 마음에 들었더랬는데요.
전 부조리극하고 맞는 거 같더군요. <대머리 여가수> 외에도 <고도를 기다리며>,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촛불> 등등이 다 좋았습니다.
20세기 프랑스 희곡을 집중해서 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은 부조리극을 더 읽고 싶어서이기도 하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