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살바도르 아파네카 이사벨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7월
평점 :
절판


예가체프 두메르소를 많이 좋아해서 그랬는지 이 커피는 진하게 내렸는데도 그리 인상 깊지 않더라고요. 오늘 처음 마셔봤는데 좀 더 마셔봐야겠습니다. 신맛이 원하는 만큼 안 나는 것도 같고 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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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10-20 18: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가체프 두메르소! 제가 알라딘 원두 중 첨으로 500g짜리 추가 구매한 원두입니다!

Falstaff 2021-10-20 19:25   좋아요 1 | URL
ㅎㅎㅎ 반 킬로씩 구매하는 게 훨씬 덜 귀찮더라고요. 예가체프 두메르소, 괜찮지요!

잠자냥 2021-10-20 21:01   좋아요 2 | URL
스탬프 마니 줘서 깜놀했어요. ㅋㅋㅋ 이런 식이면 스탬프 바꿔서 할인 쿠폰 금방 받겠다 싶더라고요?!
 
카이트
프랑크 베데킨트 지음, 김기선 옮김 / 성신여자대학교출판부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프랑크 베데킨트. 독일 최고의 악녀일 수도 있는 ‘룰루’의 창조자. 룰루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희곡 <지령地靈 : 땅의 정령>과 후속 작 <판도라의 상자>를 쓴 이다. 작곡가 알반 베르크는 이 팜므파탈의 대표선수 격인 룰루에게 매혹되어 1937년 오페라 <룰루>를 작곡했지만 완성을 하지는 못했다. 나는 <지령>과 <판도라의 상자>는 읽어보지 못했으나 <룰루>는 여러 버전의 DVD와 CD로 보고 들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쇼킹한 작품이다.
  프랑크 베데킨트, 벤쟈민 프랭클린 베데킨트는 미국으로 망명한 독일 의사와 헝가리 이민 출신 미국 국적 여배우 부부가 다시 독일로 돌아온 후, 하노버에서 태어난다. 1864년생. 60갑자가 처음 시작하는 해, 갑자년이다. 아빠가 의사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대단한 부르주아는 아니지만 비싼 장난감 가지고 놀고, 좋은 사립학교 졸업하고 선진국으로 유학시킬 정도의 지원은 가능한 부유층 가정이었다. 그래서 가족이 마지막 거주지로 정한 스위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뮌헨 등지에서 법학을 전공한다는 전제로 베데킨트 역시 아빠의 무한 지원을 받았으나, 법학보다는 문학, 미술, 음악, 연극에 훨씬 매력을 느껴 학업을 멀리하다가 급기야 일체의 금전적 지원이 끊기고 만 적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는 법, 스물세 살에 부자간에 화해를 해 다시 법률 공부를 하는가 했더니, 1888년, 일 년 만에 아빠가 갑작스럽게 세상 하직하는 바람에 이제 법률 공부를 작파하고, 자기가 상속받은 돈으로 파리, 뮌헨 등을 오가며 말은 작가활동이지만 본격적인 딴따라 생활로 접어든다.
  1894년에 이미 물려받은 재산을 다 까먹은 베데킨트는 95년에 첫 직장을 갖게 되니 소위 “낭독 예술가”라는 것. 이 별 볼 일 없는 직업을 자기 이름으로 갖는 것이 쪽팔린 줄은 알아서 ‘코르넬리우스 미네하’라는 가명을 썼단다. 하여튼 이 당시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1887년에는 거지꼴을 하고 드레스덴의 여동생 집에서 기숙을 했을 정도였다. 물론 이 와중에도 유부녀 프리다 스트린드베르히 부인과의 사이에서 아들도 낳고, 할 짓은 다 했다. 아 글쎄, 예술가라잖아, 예술가.
  이렇게 살면서 많은 희곡을 쓰고, 스스로도 무대에 올라 연기도 하며 한 평생 잘, 부유하게가 아니라 재미있게,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다가, 1차 세계대전이 있던 1914년에, 전쟁에 참전하는 대신 맹장수술을 받는다. 요즘 맹장수술은 메스를 쓰지도 않고 배에 조그만 구멍 몇 개만 뚫어 복강경으로 잘라버리거나, 그마저도 비키니 입을 때 티가 나서 싫으면 돈 더 많이 들여 식도로 내시경을 집어넣어 위장을 뚫고 대장 충수까지 진입해 입으로 끄집어내는 방법이 있으니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지만, 당시엔 칼로 배를 짜개는 개복수술 말고는 없었다. 근데 이이는 맹장수술이 잘못되어 염증이 도무지 낫지 않아 복막 전체로 번졌는지, 1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1918년에 숟가락을 놓고 만다. 이 양반은 죽는 것도 우화적이었다. 물론 지금 시각에 그렇다는 말씀이지만.
  이이의 작품에는 주로 제 5의 계층들, 예술가, 사기꾼, 보헤미안, 서커스 주변, 범죄자, 매춘부 등의 집단을 그리는 경향이 있으며 이들을 통해 인습적인 시민사회를 공격하는 아웃사이더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고 하는데 대표작인 <지령>과 <판도라의 상자>는 당연하거니와 넓게 보아 이 작품 <카이트 후작>도 이런 범위에 든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카이트 후작>을 읽으면서 내내 궁금했던 것이, 지문에서는 백작, 카이트 스스로는 후작, 시종 사샤는 남작이라고 호칭한다는 점. 이 책은 성신여대출판부에서 찍은 것으로 대학 출판부답게 작가소개와 해설이 대단히 세밀하고 좋아서 검색을 따로 할 필요도 없었는데, 왜 이렇게 카이트의 작위에 혼란이 있었는지는 설명이 없다. 제목은 분명히 <Der Marquis von Keith>, 카이트의 후작임에도.
  카이트의 출생을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작품을 위한 초고는 <향락인간>이라고 한다. <향락인간>을 계속 손질하면서 제목도 함께 바뀌어 <추락한 악마>를 거쳐 <뮌헨의 장면들, 인생묘사>가 되었다가 이어서 <카이트 후작 (뮌헨의 장면들)>, 그리고 드디어 <카이트 후작>이 되었단다. <카이트 후작>에서도 ‘향락인간’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돈을 숭배하지만 결정적으로 필요할 때 돈을 구하지 못하는 인간. 가진 것이 없어 아침을 먹지도 못했고, 언제 집달리가 쳐들어올지도 모르는데도 캐비아를 곁들인 샴페인을 추구하고, 인터컨티넨털 호텔에서의 정찬을 바라는 주인공 카이트. 일찍이 쿠바 혁명 당시 대통령에 출마했지만 마지막 1달러를 구하지 못해 당선되지 못했다는 불운의 아이콘. 내 돈이 없으면 다른 부르주아의 돈으로 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으로 온갖 신분의 부르주아들로부터 거액을 기부받아 선녀궁을 건축하려는 야심에 찬 인물. 그러나 자금의 입출에 관한 아무런 영수증이나 회계 장부가 없는 윤O향 같은 인간. 어떠셔, 끝이 훤하시지?
  카이트는 대단히 머리가 좋지만 가난한 수학 가정교사와 집시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천민이다. 수학 좀 하면 대수인가, 엄마가 불가촉천민인 집신데. 이 아이가 아빠를 닮았는지 머리 굴리는 건 가히 천재적이라 전 세계, 그래봤자 유럽과 아메리카에 불과했지만 하여튼 세계를 자신의 무대로 활약하며 국제적인 사기꾼으로 명성을 높이다가 결정적으로 쿠바에서 뽀록이 나 고국인 독일 뮌헨으로 도망쳐 와서 후작을 사칭하고 다녔던 것. 이런 인간이니 후작이란 작위가 결코 중요하지 않다. 백작이건 남작이건 간에. 본인도 어떻게 불리는지 신경 쓰는 모습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남의 돈으로 선녀궁을 지으려는 이 작자는 사실 알고보면 예술가도 아니고, 건축가도 아니고 그냥 사기꾼일 뿐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으니, 이이가 작품생활을 했던 때가 세기말, 벨에포크 시대. 바야흐로 문학판엔 자연주의가 꽃피우고 있을 당시. 게다가 베데킨트가 중요하게 다루던 계층이 제5 계층인 사기꾼, 예술가, 보헤미안, 서커스, 범죄자 등이었으니 연출만 다양하게 하면 재미있는 드라마가 될 것임은 틀림없다. 극작가는 독자의 소망을 이루기 위해 카이트 주변에 꼬이는 인물에게 과감한 이분법적 성격을 부여한다.
  트라우테나우 백작은 카이트와는 정반대로 자신의 신분은 마땅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평민의 이름인 숄츠라 불리기를 바라며, 몇 번 실패한 인생을 쾌락으로 만회하기 위해 카이트에 접근한다. 애인 몰리는 카이트를 사랑하지만 결코 카이트로부터 진정한 사랑을 보답 받지 못하는 비운의 여인이며, 바그너 전용 헬덴 소프라노를 목표로 하고 있는 안나는 정작 노래보다 아름다운 얼굴과 빼어난 몸매로 인정받아 단 한 번의 연주회로 하루에도 몇 명으로부터 청혼을 받기에 이른다. 카지미어 영사의 철없는 열다섯 살 먹은 (바지역) 아들 헤르만은 아빠 몰래 허랑방탕한 생활을 하느라 누구에게나 조금의 돈을 얻어 쓰기에 바쁘다.
  이런 인간들이 많은 돈을 투자해서, 누구한테? 카이트 후작한테, 선녀궁을 지으려는데, 카이트는 광고효과를 높이기 위해 연주회와 불꽃놀이 등의 대규모 행사를 열기에 이른다. 이 연주회와 놀이가 크게 성공해 도취한 사람들이 난장판으로 어울리는 장면은 여지없이 동시대의 거장 에밀 졸라의 총서 가운데 (만일 있다면)희곡으로 쓴 한 편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다. 특히 <쟁탈전>과 <돈>에서 돈 놓고 돈 먹는 장면이나, 공매도와 공매수가 난리법석을 이루는 장면과 비견할 수 있을까. 물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무한한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소설과, 무대 위라는 한정된 공간만 허용하는 희곡의 근본적 차이를 감안하면 비교해도 그리 큰 무리는 아닐 듯하다. 재미있는 극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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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10-19 12: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곳 도서관에 <눈뜨는 봄>:청소년 비극 딱 한권 있네요😭 폴스타프님 리뷰읽고 궁금해져 <지령,판도라의 상자>가 궁금해서 알라딘에 찾아보니 대부분‘중‘급이고 한 권 있는 ‘상‘급은 25000원. 작가가 자유분방하게 살면서도 작품을 많이 남긴듯한데 국내 번역된 책이 몇 권 안되어 아쉬워요!

Falstaff 2021-10-19 12:22   좋아요 4 | URL
아, 독일 국가대표 팜므파탈 룰루 때문에 그러시는군요!
아오, 정말 대단한 여잡니다. 물론 비극으로 끝나기는 하지만 세상에나...
제 솔직한 의견을 말씀드립자면, 2만원을 넘게 들여 읽으실 필요는 없을 듯하네요. 당분간 다시 출간하지도 않겠지만, 공연 있으면 그때 구경 한 번 가시는 게 훨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럴 생각이거든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1-10-20 2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맹장수술로 참 안타깝게 가셨네요. ㅠ
근데 룰루 처음 듣는데 찾아보니 엄청 복잡한 여자네요. 남자관계도 그녀 심리도...폴스타프님의 찰진 설명에 또 한 명의 극작가와 독일 최고 악녀를 알았네요~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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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설터. 본명이 제임스 아널드 호로위츠. 이름만 가지고도 러시아에서 이민 온 가족의 일원이란 걸 알 수 있다. 제임스 호로위츠는 뉴욕 맨해튼에서 자라, 호레이스 만 학교를 졸업한 후, 스탠퍼드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을 저울질 하다 17세 1개월의 나이에 미국식 못말리는 애국심에 충일한 아버지의 권고에 따라 아버지가 졸업한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에 입학한다. 이때가 2차 세계대전 중이라 더욱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1952년에 전투기 비행사로 자원한 호로위츠는 미그기 몇 대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쌓기도 했는데, 이때 한국 땅에서 보고 들은 걸 바탕으로 장편소설 <사냥꾼: The Hunters>을 출간하기에 이르고 이때 필명으로 제임스 소금쟁이, 영어로 제임스 솔터Salter를 사용한다. 이후 솔터, 우리나라 발음으로 ‘설터’가 자신을 호칭하는데 더 익숙해지자 아예 호로위츠 집안의 호적을 파버리고 맨해튼 설터 씨의 시조가 돼버렸다. 그래 두 아내와의 사이에 얻은 다섯 자식들, 앨런, 니나, 클로드와 제임스(쌍둥이), 테오 모두 설터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왜 이름에 집착했느냐 하면, 작중 주인공의 이름이 블라디미르 벌랜드, 애칭으로 비리 벌랜드인데, 선대에 정확한 지명은 주인공도 모르지만 하여튼 러시아 남부지방에서 이민 온 유대인이란 걸 몇 번이나 밝히기 때문이다. 비리처럼 러시아나 동부 유럽 출신으로, 비록 이민 3세인 비리는 구사하지 못하지만, 이디시 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을 흔히 아쉬케나지 유대인이라 한다. 이들에게는 다른 인종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특별한 재능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가 음악을 연주하는 천부의 능력이고 다른 하나는 세계를 제패한 고리대금 기술이다. 물론 순서로 치자면 고리대금 기술로 충분한 현금과 금 등 주로 유동자산을 확보하여 여유가 생긴 후에 음악을 연주하고 즐겼을 것이다. 작품의 또다른 주인공, 비리 벌랜드의 아내 네드라가 주장하기를, 돈이 없는 유대인은 이빨 없는 개와 같단다. 여기서 돈 없는 유대인, 이빨 없는 개는 당연히 자기 남편 비리를 일컫는 말.
  비리 벌랜드의 직업은 건축가다. 영국의 전설적인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피터 애크로이드, <혹스무어> 참조)을 숭배하지만 세속적으로 성공했다고 하기엔 조금 모자란 수준. 그러니까 아내한테 돈 없는 유대인 취급을 받는다. 자신은 런던과 파리 등을 견학해보았지만 아내는 아직 미국 땅에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다. 네드라 벌랜드는 소위 전업주부. 뉴욕 시외의 강변에 넓은 땅에 커다란 집을 짓고, 마구간과 작은 나무 숲, 정원을 가꾸며 산다. 말은 자신이 집안일을 모두 한다고 하지만 도무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가사일을 하면서도 두 딸 프랑카와 다이앤을 티 하나 안 묻히고 키우며, 오전에 뉴욕으로 장보러 나가서 레스토랑에 들러 점심 먹고 돌아와 요리를 하고 초청한 커플(들)과 함께 조촐한 저녁 파티 또는 만찬을 하는 걸 규칙으로 할 정도라면 말은 안 해도 도우미가 있었으리라 보인다. 근데 미국 영화에서 흔하게 보는 훌륭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벌랜드 여사님께서는, 이 여사님이 비록 시골 세일즈맨 홀아비의 외동따님이긴 하더라도, 스스로도 결혼을 잘 하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기가 바랐던 결혼 또는 배우자는 입고, 먹고, 자는 것뿐만 아니라 기타 행위를 위해서도 구애받지 않게 해줄 정도로 부유한 삶을 보장해야 했던 것. 비리 벌랜드가 가난한 유대인이라는 건 단지 네드라 벌랜드의 눈에 그렇다는 것이지 당신이나 내가 생각하는 가난과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걸 처음부터 머리에 콱 찍고 책을 읽기 바란다. 네드라가 바라던 포드가나 카네기가의 후손은 아닐지언정 부르주아 바로 아래의 중산층이란 것을.


  확실한 건, 돈 많은 사람들이나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나 똑같이 행복을 바란다는 거. 이 책의 등장인물들이 공통적으로 몰두하는 것이 행복이다. 이들이 행위 하는 건 이미 숱하게 많은 TV 드라마, 막장 드라마 말고, 보통의 드라마를 통해 익숙한 장면들인데, 그렇다고 책이 쉽게 읽히는 건 아니다. 둘째 딸 다이앤이 다섯 살에 <가벼운 나날>이 시작해 두 딸의 엄마가 될 때까지 시간이 후르륵 지나 속도감도 있는 작품인데도 그렇다.
  비리와 네드라는 두 딸을 키우며, 행복하게 지내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부부가 사랑하는 건 당연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침실에 놓인 두 개의 침대에서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것이 배려가 되는 과정을 겪는다. 고인 저수지도 가끔 비워줘야 하는지라, 비리는 작은 아파트를 얻어 새로 고용한 아름다운 비서 카야 다우트로와 하고 한 날 낮거리를 벌인다. 그러다가 카야에게 새롭고 막강한 남자가 생기자 실연당해 크고 큰 슬픔에 젖는 비리. 네드라는 네드라대로 벌써부터 비리가 자주 집에 초대하고는 했던 친구 지반과 뼈와 살이 타는 휘청거리는 오후를 보내고, 지반 하나 가지고는 만족을 하지 못해 새롭게 하나를 더 장만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이들의 외도는, 실제로는 그렇기가 참 힘든데 용하기도 하지, 끝까지 서로에게 들키지 않는 천생 연기자들 수준이다.
  비리는 네드라만 인정하지 않는 그럭저럭 성공한 건축가. 네드라는 유한 여성. 이들에게 모자란 것이 무엇일까. 가정은 남들이 보기에 행복한 수준 이상이고, 둘 다 바람을 피우고 있을지언정 서로 사랑하는 마음까지는 변하지 않은 부부, 건전한 의식수준과 교양. 비리는 네드라의 오랜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드디어 런던으로 여행을 떠나, 그렇게 숭배했던 17~18세기의 거장 크리스토퍼 렌이 지은 교회 건물을 감상하고, 박물관 구경을 하며 런던에 매료되어버린다. 이때 벌써 네드라의 나이가 마흔. 부부는 그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서로를 만족시키고 행복하게 하는 쪽으로 노력해왔으며, 행복의 형태 역시 결혼을 시작했을 때와는 다르다는 것에 동의하고 여행의 마지막 밤에 아내 네드라는 “오늘 나는 당신을 몹시 사랑해. 내 가슴을 다해서 당신을 포옹해.”라고, 남편 비리가 잠에 빠진 동안 새로운 남자 앙드레에게 편지를 쓴다. 네드라는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빠진 것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자유.


  십여 년 전에 “우리 이혼하면 행복할까?”란 카피가 유명했다. 네드라는 여전히 비리를 사랑하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한 달 후에 이혼해버리고 유동자산의 절반을 지닌 채 집을 나간다. 물론 집을 비롯한 부동산도 소유의 절반은 네드라의 것이고, 두 딸이 비록 다 크긴 했으나 얼마 남지 않은 양육의 책임은 비리가 지기로 한 것 같다. 자세한 설명은 없더라도. 어쨌든 네드라는 지금도 비싸기로 악명이 높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인근의 아파트를 구하고 새롭게 연극에 관심을 둔다. 반면에 비리는 이혼의 충격으로 새롭게 우울증을 비롯한 각종 스트레스에 푹 빠져 도무지 헤어나올 줄 모른다. 비리의 돈벌이에 관해서는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이 없어 독자들이 알 방법은 없지만 그것도 잘 해봤자 현상유지 아니겠나 싶을 정도의 의욕상실 상태다. 네드라는 연극에 관심을 가져 배워보려 했으나 나이 때문에 거절당하고, 개성있는 연극배우와 사랑에 빠진다.
  때는 1970년대 초반. 네드라는 직업이 없는 이혼녀. 천성이 사치스러운 40대 초반. 내 눈엔 앞길이 캄캄하다. 유동자산이란 건 말마따나 일단 쓰고 뒤 돌아서면 없어져버리는 것이다. 여태 살아온 수준이 있어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옆의 비싼 아파트를 얻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월세를 꼬박꼬박 물어가는 것도 힘들 텐데, 연극을 배워보겠다고 하고, 연애도 해야겠고, 연애 상대는 걸뱅이 비슷한 연극배우. 네드라도 참 딱하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조금 더 큰 책임도 져야 한다는 걸 오랜 세월을 두고 꼬박꼬박 잊은 듯. 그리하여 몇 년 후, 네드라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젊은 여자와 새살림을 시작한 비리에게 편지를 해 만 달러‘만’ 빌려달라고, 나중에 꼭 갚겠다고 얘기했다가, 어린 이탈리아 여인에게 거절을 당하고 말지. 나 같으면 굶어 죽더라도, 전 남편을 아직도 사랑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런 편지는 혀를 끊는 한이 있더라도 안 보내겠다.


  내가 말은 이렇게 해도, <가벼운 나날>은 이런 서사를 중심으로 읽으면 바람직하지 않다. 사람이 한 세상을 사는 모습, 그 쓸쓸함을 좇아가는 작가의 시선을 보는 것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는 데 필요할 듯하다. 누구나 다 옳고 그른 삶을 산다. 한 사람이나 한 식구들의 사는 모습에 집중하는 것보다 가정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무수하고 무수한 가벼운 날들이 모여 만든 삶을 느껴보는 것이 백 번 좋다.
  작가의 시선이 내 수준엔 동감하기 힘든 상류 수준이라 유감이긴 하다. 네드라 눈엔 이빨 없는 개 같더라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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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1-10-18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십니까 첨 인사드립니다. 여러분들 페이퍼에서 소문 듣고 살짜기 서재구경하러 왔습니다. 친구 수락 감사합니다^^ 수년전 사놓기만 하고 못 읽은 설터 중 한 권이네요. Falstaff님 덕분에 읽은 느낌이에요ㅎㅎ; 예전에 직장동료들과 얘기하다가 부자의 기준이 너무 달라서 당황했던 기억 나네요. 제가 어떤 이에 대해 와 부자사람이었구나 감탄했다가 그게 뭐가 부자냐며 비웃음 당한-_-;;;;

Falstaff 2021-10-18 20:16   좋아요 1 | URL
아이고, 뭐 별 거 있나요. 그저 그냥 사는 얘기 위주로 할 뿐인데요.
반갑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마시고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ㅋㅋㅋ
 
에쿠우스 범우희곡선 6
피터 셰퍼 지음, 신정옥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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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터 셰퍼는 1926년 5월, 영국 리버풀에서 앤소니의 쌍둥이 형제로 태어난다. 런던 세인트 폴스 학교를 졸업하고 돌아와 3년간 광부 생활을 한 후에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사학을 전공했다고 했으니 여유 있는 가정은 아니었겠다. 졸업 후에 쌍둥이 형제 안소니와 합작한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단박에 저 소련의 스트루가츠키 형제를 떠올리는 대목이지만, 셰퍼 형제는 그들과 달리 합작 작업을 한 5년 만에 끝내고 각자 독립적으로 희곡과 소설을 쓰게 된다. 앤소니는 희곡 <탐정>을 써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도 하지만, 피터가 <5중주>와 공전의 히트상품 <에쿠우스>를 발표해 훨씬 유명세를 탄다.
  <에쿠우스>는 1973년 여름에 영국 런던 올드빅에서 국립극단에 의하여 초연되고, 74년 10월에 뉴욕 폴리머드 극장에서 공연하기 시작해 77년 10월까지 1천2백 회 공연하는 기염을 토한다.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역은 앤소니 홉킨스가 맡았고, 이어서 리처드 버튼, 레너드 리모이, 앤소니 퍼킨스가 뒤를 이었다. 우리나라에도 1975년 9월 실험극단 전용 소극장에서 초연한 이후 1991년 5월 현재 1천8십 회를 공연했다고 한다. 내가 연극 <에쿠우스>를 본 것은 1980년인지 81년인지 그랬는데, 역시 안국동 실험극장 공연이었으며 당시 열일곱 소년 알런 역은 이미 고인이 된 강태기가 열연했다. 다른 배우들은 아쉽게도 기억나지 않는다. 세월이 무섭다. 벌써 40여 년 전 일이다.
  작품은 소아 정신과 의사가 말(horse)을 향해 병적이고 종교적인 매력에 빠진 열일곱 살 먹은 소년을 치료하는 내용이다.
  피터 셰퍼는 1970년경 차를 타고 영국의 시골을 달리다가, 서포크Suffolk 근방의 작은 마을에서 열일곱 살 소년이 여섯 마리 말의 눈을 찌른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친구에게 약 1분 동안 듣는다. 이게 전부다. 셰퍼는 이 사실만 가지고 두 해 반에 걸쳐 희곡 <에쿠우스> 작업을 한다. 따라서 여섯 마리 말의 눈을 찌른 사건 이외의 것은 전부 창작이다.

 

  작품을 번역한 신정옥 선생은, 이미 셰익스피어 독후감에서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특히 드라마 번역에 권위가 있는 영문학자다. 내가 지금 어떻게 <에쿠우스>의 독후감을 써야 할지 고민하면서, 도무지 풀리지 않아 선생의 해설을 뒤적이다가 손바닥으로 무릎을 쳤다. 단 한 문장으로 두 명의 주인공, 청소년 신경정신과 전문의 다이사트 씨와, 환자 알런 스트랑의 상태를 정확하게 설명해놓았다.

 

  “알런에게서 슬픈 반역과 이단과 원초에의 정열을 찾아볼 수 있다면, 다이사트에게서는 회의와 권태와 무력감과 자기 연민의 소리를 읽을 수 있다.”

 

  인용하고 보니, 이것이 작품의 주제다. 한 젊은이의 반역과 이단, 원초적 정열과, 중년의 권태와 무력감과 자기 연민의 충돌.
  권위적인 가정과 부모 슬하에서 평범하게 지내던 알런. 지금도 여전히 소년이지만 5년 전 썰물의 해변에서 말을 타고 알런 곁을 지나치던 선량한 청년이 말을 타보고 싶어하는 알런을 눈치채고 말 등에 태워준 적이 있었다. 말의 목줄기에서 흐른 땀이 알런의 허벅지를 적시면서 따스한 말의 체온과 근육의 움직임을 다리로 느끼는 동시에 말의 훈김에 따라 후각을 자극하는 말 냄새. 재갈을 물린 입. 크게 뜨고 응시하는 눈. 알런은 단박에 말, 에쿠우스의 매력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 빠른 속도로 구보하는 말 위에 탄 외아들을 본 아버지 프랑크 스트랑 씨는 당장 기수 청년에게 항의하고, 알런을 내릴 수 있게 거칠게 잡아당겨 기어이 말에서 떨어뜨리고야 만다.
  이후 알런은 특히 아버지에게 본격적으로 반항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세상에 일부러 아들의 뜻을 꺾으려 드는 아비가 몇 명이나 될까. 인쇄업자 스트랑 씨는 나름대로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에서 바보상자, TV 수상기를 없애고 책과 친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인쇄업자의 아들이 책을 읽지 않는 점이 마땅하지 않은 것. 나도 아버지란 거 좀 해봤는데, 아쉽다. 애초에 자식한테 이기길 포기한 내가 똑똑한 거 같다. 아니나 달라, 알런은 옆집에 가서 TV를 계속 본다.
  이런 식이다. 알런은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방과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이곳에서 다섯 살 많은 질이란 아가씨와 친해진다. 원래 성실한 성격의 알런은 질이 마굿간에서 일하는 걸 알고는 주말에 자신도 그곳에서 일할 수 있게 말해달라고 부탁해, 비록 배설물 치우는 일에 불과하지만 마굿간 일을 얻는다. 오년 전 썰물의 바닷가에서 경험한 말의 매혹을 잊지 못했던 것. 알런은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마굿간 주인 해리 달턴 씨의 마음에도 들어, 한밤이 되면 몇 주에 한 번씩 알런이 몰래 말을 끌고 나가 실컷 달리다 온다는 걸 알고도 모른 척할 정도가 된다. 그러나 항상 최고의 순간에 사건이 생기는 법.
  질이 알런을 꼬드긴다. 시내에 나가 성인 영화를 보자고. 못 이기는 척하고 따라간 알런. 스웨덴에서 만든 성인 영화에서는 어린 여자아이가 토플리스 차림이 되고, 점점 기분이 묘해지는 찰나에 이르러 알런의 뒤편에 앉아 있던 아버지 프랑크 스트랑 씨와 눈이 마주친다. 당장 알런의 이름을 부르며 기어이 아들과 여자친구 질을 영화관 밖으로 끌어낸 스트랑 씨. 질이 먼저 자기가 졸라 저질 영화관에 오게 되었다고 말했고, 스트랑 씨는 포스터 제작 등의 사업상 일로 영화관 주인을 만나러 갔다가 관객석에 없는지 찾아보러 들어간 것이라 변명한다. 알런은 처음엔 속으로 아버지가 더러운 놈, 늙은 사기꾼 일벌레라고 욕을 하다가 정확하게 알게 된다. 아버지 역시 볼품없는 생식기를 달고 다니는 평범한 남자인 것을.
  질은 바로 이날 밤, 알런과의 섹스를 위해 장소를 모색하다가 여섯 마리의 말밖에 없는 마굿간을 떠올리고, 알런과 함께 안으로 든다. 질은 전혀 상관하지 않지만, 알런은 말들이 자신과 질이 벌거벗고 있는 것을 보는 일이 지독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리하여 건초를 모은 창고 안으로 갔고, 그것도 모자라 질더러 문까지 꼭 닫으라 주문한다. 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 이제 본격적인 행위로 들어가는데,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여러분도 다 아시지 않는가. 알런이 말 여섯 마리의 눈을 모두 찔러버린다는 것을. 그리고 주제 가운데 하나가 젊은이의 슬픈 반역과 이단과 원초에의 정열이라고. 이 정도면 됐다. 명작 가운데 한 편이니 직접 읽어보시기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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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0-15 10: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우, 에쿠우스! 전 아쉽게도 강태기가 하는 에쿠우스를 못 봤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강태기 때문에 유명해진 연극은 아닐까 싶습니다. 전 그때 넘 어려서 실험극장이 어딨는지 몰랐다능ᆢㅋㅋ

Falstaff 2021-10-15 11:05   좋아요 3 | URL
그때 먼저 책을 읽고 극장엘 갔으면 더 좋았을 뻔했습니다. ㅎㅎ 너무 먼 시절이네요. 그립지만 다시 가고 싶지는 않은. ㅋㅋㅋㅋ

청아 2021-10-15 1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서 끊으시다니ㅠㅠ 그러나 저에겐 <에쿠우스>가 있습니다ㅎㅎ🤭 반역과 연민의 만남이라..극과 극이네요!

Falstaff 2021-10-15 11:31   좋아요 1 | URL
ㅋㅋㅋ 독후감 올리려고 들어갔더니 미미 님 뒷모습이 보이는 거 아니었겠습니까!
얼른 읽으셔요. 재미납니다. ^^

잠자냥 2021-10-15 1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같은 책인데, 지만지는 가격이.... 16,800원! 후덜덜.......

Falstaff 2021-10-15 12:14   좋아요 1 | URL
아이고... 지만지 거 참. 좀 너무해요. 하긴 지들 마음이니까 뭐라 할 얘기는 없지만서도. ㅋㅋ

coolcat329 2021-10-15 14: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 제가 태어나 처음 본 연극입니다. 공짜표가 있다고 누가 꼬셔서 갔죠 ㅋ
그때 기억나는건 말들이 일렬로 서 있고 정동환 배우가 의사 역을 했었어요. 정동환 배우의 고뇌에 찬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심각한 내용에 즐기지는 못했던거 같습니다.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Falstaff 2021-10-15 15:05   좋아요 2 | URL
아, 그렇군요! 정동환이면 다이사트 의사 역으로 대빵이었을 거 같습니다.
그 양반이 배우 가운데서도 발음 정확하기로 유명하잖아요. 냉정하게 대사 치는 거 하고요. 그래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도 조시마 장로 역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책 읽어보셔요. 제가 희곡은 여간해서 추천하지 않잖아요. 근데 이건 예외입니다. 더구나 예전에 극을 보셨다면 꼭, 꼭 읽어보셔요. ㅎㅎㅎ

coolcat329 2021-10-15 15:25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그 분 발성과 발음이 굉장히 까랑까랑 정확해서 그거에 홀려서 본 기억이 지금도 나네요. 책 꼭! 보겠습니다.
 
소녀와 여자들의 삶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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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캐나다의 대표적 단편소설 작가 앨리스 먼로, 사실 나는 이이와 합이 별로 좋지 않아 처음 《디어 라이프》를 읽고 나서 ‘그냥 그런, 흔한 작가’ 정도로 취급을 했고, 두 번째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정말 별로였는데, 세 번째 《거지 소녀》에 읽은 다음에야 그럴듯한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 읽은 <소녀와 여자들의 삶>이 그러니까 네 번째 먼로인데, 이 책이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또한 내게는 마지막 먼로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작품이 읽는 사람 나름대로 다 적절한 감상이 있을 것이다. 독자가 어떻게 느꼈는가, 하는 점은 모두 개별적이라 당연히 존중받아야 한다. 나는 비겁하게 이렇게 실드를 쳐놓고 독후감을 시작하려 한다. 그만큼 앨리스 먼로의 애독자층이 두텁다는 이야기도 되겠다.

 

  출판사와, 평론가와, 책가게는 이 작품을 장편소설이라고 주장한다. 모두 여덟 부part로 나누어져 있고, 이 순서는 주인공 델 조던 양의 소년기부터 시작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를 떠날 때까지다. 자연스럽게 성장소설로 구분할 수 있다. 잘 쓴 성장소설은 거의 모두 작가의 경험이 바탕이 되어 있다고 독자가 믿는다. 정말 자기 이야기인지 단순히 허구 이야기거나, 이웃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각색한 건지는 오직 작가만이 아는 영역이다. 여기까지는 동의하는데, 여덟 부part가 마치 개별적인 단편소설로 읽힌다. 그 정도로 독립적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소위 말하는 연작 장편이라고 이야기하는 편이 옳겠다.
  내가 생각하는 문제는, 각 부가 너무 독립적이고 완성된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거의 완벽한(솔직히 얘기하자면 단편소설의 ‘거의 완벽함’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면서 사용하고 있지만) 단편의 형태를 지닌다는 것. 앞쪽의 파트(에피소드)를 읽고 불과 몇 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다른 에피소드)를 주인공인 델 조던 양과 같은 시선으로 봐야 한다는 의미다. 그리 다르지 않은 배경을 지닌 같은 시각을 연이어 경험하는 것이 독자에게는 무지하게 지겨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내가 그랬다. 조던 양이 더 성장해서 사춘기를 맞고, 연애 비슷한 이성교제를 하고, 가벼운 페팅도 하는 단계에 이르면 이 지겨움이 많이 사라지지만 작품의 초, 중기까지는 읽다가, 내가 이러다가 미치고 말지? 하는 심정이었다. 오죽하면 내 독법이 비루하여 이렇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해 다른 독자들의 서평을 찾아 읽어볼 생각까지 했을까.

 

  앨리스 먼로가 1931년생이다. 13학년, 우리식대로 하면 고3 졸업시험을 앞두고서야 개신교 연합 부흥회에서 처음으로 흑인을 보았을 정도로 격리된 시골의 작은 마을과 도시. 그러니까 1940년대의 캐나다 시골을 무대로 하고 있다. 그러니 이곳에서 있었던 것들을 별다른 의식 없이 그대로 묘사하기만 해도, 전쟁 중 도는 전후의 남성, 권위적 사회상이 그대로 노출될 수 있다. 전쟁이란 빠짐없이 여성의 수탈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까. 당시에 10대를 지낸 먼로 역시 자기가 보고, 듣고, 경험한 사실을 묘사함으로써 여성이 어떻게 차별과 피해를 당하고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먼로가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페미니즘의 기치를 든 건 아니지만 일단 문제를 제기한다는 의미는 있다.
  재미있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나처럼 한 번 책을 잡으면, 책을 끝날 때까지 오직 읽고 있는 작품에만 몰두하는 스타일의 독자에게 권하지는 않겠다. 한 파트를 읽고 며칠 있다가 다음 한 파트, 한 주일쯤 있다가 또 한 파트, 이렇게 읽을 수 있는 독자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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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10-14 12: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이건 저를 위한 책이군요.
전 책 읽다 딴짓 많이하거든요.ㅎ
노벨문학상 저와는 별 인연이 없다고 생각하고 관심 없었는데
작년인가? 티저북 읽은 적이 있는데 의외로 괜찮아서 뭐래~했습니다.
폴스타프님은 참 성실한 독자십니다.^^

Falstaff 2021-10-14 12:35   좋아요 2 | URL
앗! 그렇습니까. ㅎㅎㅎ 어찌 됐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그죠, 노벨상보다 부커나 공쿠르 받은 책들이 더 좋아요. 물론 언제나 그런 건 아니지만요.
흠... 만일 제가 성실하다면 좀 일찌감치 성실했더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그럼 이모양으로 살 거 같지 않은데요. ㅋㅋㅋㅋ 물론 지금 후회하며 사는 건 아닙니다만, 말이 그렇다는 것입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