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타이거 - 2008년 부커상 수상작
아라빈드 아디가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3월
평점 :
품절


 


  낯선 작가다. 이이의 바이오그래피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인도 남부 벵갈루루(구 방갈로르)에서 기차로 하루 쯤 걸리는 첸나이(구 마드라스)로 이주해온 마드하바 아디가 박사와 우샤 아디가 여사 사이에서 1974년 10월에 태어난 이 범띠 사내는, 태생부터 범상치 않아 수리야나라야나 아디가 할아버지가 인도에서 열두 번째 서열을 자랑하는 카르나타카 은행의 전임 행장이었고, 외증조 할아버지 라마 라오 씨는 유명한 의료 변호사로 활약하다가 의회에 진출한 이력을 자랑했으니, 비록 이들 가문이 북인도의 델리나 뭄바이 같은 대도시 출신이 아니었다 해도 상당한 카스트였음은 말로 할 필요도 없을 거 같다. 태어나기는 첸나이였지만 줄곧 벵갈루루, 책 <화이트 타이거> 후반에 주인공 발람이 정착해 성공하는 도시에서, 카나라 고등학교와 벵갈루루 성 알로이시우스 대학을 다녔다. 대학 재학중에 가족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로 이민을 간 아디가는 제임스 루즈 농업고등학교와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교(University)의 콜럼비아 대학(College) 영문과에서 사이먼 샤마를 사사하고, 1997년에 차석 졸업한다. 하여튼 검색하면 뭐든지 다 나온다. 차석. 자랑이지, 그럼 자랑할 만하지. 이외에도 지도교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허미언 리Hermione Lee 선생을 좇아 15세기 중엽에 초석을 박은 옥스퍼드의 막달렌 대학에서 공부하기도 했단다.
  그러나 화려한 학력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이력은 <파이낸셜 타임스>지에서 재무 저널리스트로 시작한다. 이 회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이제 다른 곳도 아니고 <타임스>에서 스카우트 해 남아시아 특파원으로 3년 동안 일하게 되는데, 이 시기에 쓴 소설이 바로 <화이트 타이거>다. 2008년에 <화이트 타이거>로 덜컥, 부커 상을 부여잡아 전 세계적인 스타덤에 오르게 되며, 인도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챈 그는 2010년 현재 인도 중서부 마하라슈트라 주의 주도인 뭄바이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그때부터 지금까지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될 시간이 지났음을 감안하시기 바란다.

 

  제목이 좀 낡아서 그렇지 재미있는 책이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는 ‘발람 할와이’라는 이름을 가진 천민계급 카스트 출신으로 원래는 과자를 만드는 일에 종사해야 하는 할와이 가문이지만, ‘나’ 발람의 아버지 비크람 할와이는 고향이며 깡촌인 락스만가르에서 인력거꾼으로 평생을 일하다가 백 쪽을 얼마 남기지 않고 그만 결핵에 걸려 가난한 생을 마감한다.
  원래 신생독립국이 다 그렇지만,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일에는 상당히 많은 부작용이 뒤따랐다. 1947년에 인도, 한 나라로 독립한 나라가 결국 1971년에 인도와 동·서 파키스탄, 이렇게 세 나라로 분리한 것부터 시작해 가뜩이나 큰 영토와 (엄격하고 쪼잔한 계급의식에 박혀있는)인구를 가진 나라가 오랜 진통을 겪었으니 이 와중에 신생국 공통의 현상이었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했을지, 부작용을 일부 겪어본 내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 와중에 비참한 수준으로 살고 있던 ‘나’ 발람은 사촌누이의 결혼 때문에 빚을 지고 그걸 갚기 위해 학교를 때려치우고 찻집 꼬마로 일할 수밖에 없는, 슬픈 과거라고 하기엔 당시에 너무 일반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학교 다닐 때 무료급식비와 교복과 무료 학습교재를 몽땅 중간에서 팔아 잡수신 담임선생 크리쉬나 씨가, 부모가 너무 무식해 이름도 지어주지 못하고 그냥 ‘아이’라는 뜻의 ‘무나’라고 불렸던 ‘나’에게 붙여준 이름이 발람이었던 거였으며, 왜 이름을 붙여주었느냐 하면, 수십 년 동안 자기가 가르친 학생 중에 거의 유일하게 힌두어를 읽고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크리쉬나 선생의 좋은 시절이 한 방에 훅 갈 뻔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파란 사파리 양복을 차려입고 단장까지 제대로 짚은 신사 장학사가 암행어사처럼 학교를 시찰했던 거였다. 장학사 양반이 학생들을 모아놓고 학력을 점검해보니 이게 개판이라, 아주 쉬운 문장의 뜻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였다. 그래 크리쉬나 선생이 ‘나’ 발람을 대표선수로 장학사 앞에 내세워 답을 하게 했는데, 원래 공부머리가 있던 ‘나’가 장학사 앞에서 청산유수로 떠벌떠벌 읊어내니까, 장학사가 ‘나’더러 화이트 타이거라고 칭해주었다.
  화이트 타이거. 한자말로 백호. 우리말로 하면 흰 범. 인도에서는 어떤 정글에 가더라도 가장 희귀한 짐승으로 한 세대에 딱 한 마리만 나타나는 영물로 추앙받는다고 한다. 하여튼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저 시골 촌 동네 락스만가르에서 인력거나 끌다가 한 세상 말아먹은 선량한 비크람의 맏아들로 태어나, 짧은 초등학교 시절을 거치며 ‘발람’이 되었으며 덤으로 ‘화이트 타이거’란 별호를 얻었지만 결국 최하의 빈민 소년으로 떨어진 머리 좋은 꼬마가, 나중에 기술 및 아웃소싱의 세계적 중심지라고 주장하는 인도의 방가로르(현 지명 벵갈루루)에서 자신을 기업가인 동시에 생각하는 인간인 “화이트 타이거”라고 소개하면서, 자유를 사랑하는 나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 살며 다음 주에 인도를 방문할 예정인 원지아바오 총리에게 보내는 길고 긴 여덟 통의 편지가 바로 이 책이다.

 

  원지아바오가 인도를 방문하는 목적. 인도는 중국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열악한 사회간접자본과 환경 인프라를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중국엔 별로 없는 “기업가 정신”이 충만하여 이를 직접 보고 배우기 위해서란다. 이를 들은 발람이, 비록 출신은 미천하였으나 도살되어 식탁에 오르기만 기다리는 닭장 속에서 튀어나온 수탉 신세에서 이젠 위대한 인도의 화이트 타이거의 자격으로, 인도 중부 최고의 공업도시에서 세계 최고 아웃소싱 업계의 대표로 있는 자신 말고 누가 있어 감히 기업가 정신을, 인도와 더불어 앞으로 세계를 선도해나갈 강대국 중국의 총리에게 이야기할 수 있으랴, 하여 ‘나’ 발람 할와이는 자신이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경험한 모든 것을 편지로 썼다.
  곤충 수준으로 살다가, 제복 입고 목에 황금색 호루라기를 걸고 다니는 버스 차장 비제이를 본보기 삼아 고초 끝에 운전을 배운다. 락스만가르에는 지주가 네 명 살았는데 가장 탐욕스러운 물소와 황새, 멧돼지, 까마귀로 불리는 가문이었다. 발람은 별짓을 다해 이 중에서 황새네 두 번째 자가용 운전사로 취직을 하고, 때마침 미국 유학을 끝내고 인도에 정착한 황새의 장남 아쇽 선생과 사모님 핑키 마담을 주인님으로 모시게 된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고 첫 번째 운전수가 회교도임을 밝혀내 잘라버리고 자신이 아쇽 선생을 따라 대 인도의 수도 델리로 가서 살게 되니, 월급이 무려 더블, 두 배가 되는 거였다.
  그런데 델리에서 정작 발람이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극도로 부패한 인도에서 살아가는 방법과, 수천 년 동안 내려온 계급, 천민 카스트에서 탈출해(마치 시장의 닭장에서 튀어나와 도망하는 것처럼), 신분 상승을 이루는 방법이었다. 신분상승을 위하여 발람이 선택한 것은, 작품을 시작하자마자 화자 ‘나’ 발람 할와이가 직접 말하고 있으니 스포일러가 아님이 확실하다, 자신의 주인님 아쇽 선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70만 루피를 빼앗아 남쪽에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 거였다. 그리고 화이트 타이거, 발람 할와이는 성공했던 거였다. 당당하게 중국의 총리 원지아바오에게 편지를 보낼 정도로.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시인이 네 명 있단다. 이 가운데 아크발이라는 작자가 있어서 그가 쓴 시 두 구절이 중요한 힌트로 제시된다. 옮겨보겠다.
  “그들은 이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 노예로 남아있다.”
  “나는 여러 해를 두고 열쇠를 찾고 있었도다. / 그러나 문을 줄곧 열려 있었던 것을.”
  이 시를 통해 발람의 개안, 신분에서의 탈출과 친절한 악당인 주인님 아쇽 선생 살해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구절, 열쇠를 찾고 있었지만 정작 문은 줄곧 열려 있었다는 건 어디서 읽어본 느낌이 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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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1-09-02 09: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말 재밌게 읽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발람의 어투가 폴스타프님 스타일과 비슷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Falstaff 2021-09-02 09:51   좋아요 2 | URL
앗, 그렇습니까!
ㅋㅋㅋㅋ 그럼 별호를 화이트 타이거나 발람으로? 이 책은 미미 님 낚시에 옆구리 꿴 겁니다. ㅎㅎㅎ 더 자주 낚아 주세요!!!

다락방 2021-09-02 09: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읽어볼라고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뺐다가 넣었다가 뺐다가 해서 결과적으로 현재는 뺀 상태인데 다시 넣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저도 그냥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소설 한 번 써봤는데 덜컥 부커상 타가지고 깜짝 놀라고 싶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9-02 09:5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님, 부커 상 타시면 (그거 영어로 쓴 작품이면 누구한테든지 줍니닷!) 저한테 다른 거 모르겠고요, 소고기 생면전골 두 봉만 택배로....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9-02 10:00   좋아요 4 | URL
딱 기다리고 계셔요. 바로 보내드립니다. 네 봉 보내드립니다. 딱 기다리셔요. 부커상 타는 그 날 바로 보내드릴게요. 슝-

청아 2021-09-02 10:06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예전에 구매하신 책 탑에서 본것 같은데 필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제 기억이 틀릴 수도 있지만요.ㅋ그때 ‘다락방님도 사셨구나! 재밌으셔야 할텐데‘라고 생각했던 기억이ㅋㅋㅋㅋ
제 착각일수도 심지어 꿈일가능성도 몇프로 있습니다😆

잠자냥 2021-09-02 10:16   좋아요 2 | URL
앗, 다락방님 저랑 완전 똑같아요. 저도 장바구니에 넣었다 뺐다 하다가 결과적으로 뺀 상태였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다시 넣을지? 우리 오늘 또 우주점 쟁탈전 하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

그나저나 부장님 부커상 타시면 저도 소고기 전골 좀...굽십굽신 다부장지향올림

Falstaff 2021-09-02 10:14   좋아요 2 | URL
와, 미미 님 댓글이 사실이면, 진짜 대박입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9-02 10:18   좋아요 3 | URL
미미님/ 제가 미미님 리뷰 읽고 사려고 넣었다가 뺐다가 넣었다가 뺐다가... 로 어쨌든 뺐다가가 결론인데 미미님의 이 댓글 읽고 아닌가? 하고 지금 제가 책 구매하고 인증한 사진들 주루룩 보고 있었는데 아닌게 맞는것 같습니다. 안보여요.. 없을거에요. 그래서 살겁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님/ 제가 오늘 아침에 우주점에서 세 권을 주문하는 바람에 우주점 쟁탈전 해도 더 살 중고책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한 번 검색은 해봐야겠네요.
부커상 타면 잠자냥 님께도 소고기 전골 그거 네 봉 보내드립니다. 엣헴-

청아 2021-09-02 10:18   좋아요 1 | URL
아 제가 좀 다락방님 서재 찾아봤는데 언제인지는 기억나지않아 찾다 포기하고 말씀드린거라ㅋㅋㅋㅋ

다락방 2021-09-02 10:19   좋아요 2 | URL
(잠시후) 우주점에 상태 <중>인거 한 권 뿐이어서 저는 새 책 갑니다. 새 책 별로 안비싸더라고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9-02 10:36   좋아요 2 | URL
다락방 님 전 그냥 전자책으로 사기로 했습니다. 표지가 너무 구려서? ㅋㅋㅋㅋㅋㅋㅋ 그것보다는 이 책은 다 읽고 팔려고 해도 얼마 못 받으니까 걍 전자책으로.... 쿠폰 받아서 5천4백원에 합의.

다락방 2021-09-02 10:42   좋아요 2 | URL
표지가 너무나 구린건 사실이지만, 저는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새파랑 2021-09-02 12:16   좋아요 2 | URL
부커상 보다는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이 더 좋은거 아닌가요? 😆

다락방 2021-09-02 13:42   좋아요 2 | URL
아이, 새파랑 님도 참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9-02 10:2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부커상 작품 좋아하는데 좋아는 하는데...
이 책 제목 너무 촌스러워, 표지 너무 구려 이러면서 멀리하고 있습니다.
음 재미있겠군요. 앞으로 한동안 저 표지의 구림과 부커상이 저의 내면에서 격렬하게 싸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ㅎㅎ

Falstaff 2021-09-02 10:27   좋아요 3 | URL
책 표지에서 오른쪽 세로로 노란 띠 있잖아요. 그게 색깔을 다르게 한 게 아니라 다음 장이랍니다. 그거 때문에 손에 들면 좀 어색하고 그렇더라고요.
하여튼 디자인은 염병인데, 뚝배기보다 장맛인 건 확실합니다.
처음 보는 출판사와 역자라서, 이거 혹시 실수하는 거 아닌가 했다가, 잘한 선택으로 결론 봤습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1-09-02 10:34   좋아요 2 | URL
진짜 표지 너무 구려요..... 너무 구려서 멀리하게 됨. 책에 대한 모든 신뢰를 떨어뜨리는 표지. 심지어 엄청 재미없어 보임. ㅋㅋㅋㅋㅋ 디자인 염병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9-02 10:39   좋아요 1 | URL
차라리 존 버거의 <결혼식 가는 길>처럼 흰 표지에 색깔 있는 글씨로 깔끔하게.... 쓰려고 했다가, 조금, 아주 잠깐 생각해보니, 그 책은 미술 전문 출판사인 열화당에서 나온 거잖아요. 아이고, 하여튼 세상에 뭐 쉬운 게 하나도 없다니까요!
저 표지 때문에 매출 30 퍼센트는 깎아 먹었을 거 같습니다만, 우리 이거 비밀로 해두기로 하지 않겠습니까. 저 회사 디자인 담당자 어떻게 합니까. ㅠㅠ

독서괭 2021-09-02 11:4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예전에 <확신의 함정>이라는 책에 나와서 담아두기만 했던 것 같아요. 오래전에라 희미하지만.. 표지가 촌스럽긴 하네요 ㅎㅎ 덜컥 부커상 정말 부럽습니다~ 덜컥 이달의당선작만 해도 얼마나 좋은데🤣🤣🤣

Falstaff 2021-09-02 12:1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이달의 서평, 옳으신 말씀입니다.

새파랑 2021-09-02 12: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보관함에 있던데 ㅋ 제목이랑 표지가 끌리지 않지만 믿고 보는 폴스타프님 별 다섯개니까 다락방님이 버리신 중고로 눈을 돌려봐야겠군요~!!

Falstaff 2021-09-02 12:16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근데 제가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도 아시지요?

coolcat329 2021-09-02 14: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 저도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이에요~저 이거 보고 트레이더스 가서 조니워커 블랙 세일하길래 사와서 맛있게 마셨네용! ㅋㅋ
조니워커만 보면 와잇 따이거!가 생각나요.

Falstaff 2021-09-02 14:51   좋아요 2 | URL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까지는 압도적으로 조니워커 블랙이 최고였습니다. 조니워커 레드만 있어도 광분하던 시절인데 딱 한 번의 대중 노출로 조니워커가 뒷골목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무슨 일이었냐 하면,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씨가 젊은 가수와 여대생을 옆에 앉히고 술을 자시다가 세상에서 제일 믿던 김씨의 권총에서 뿜어져나온 총알을 머리통으로 막았을 당시 즐기던 미주가 ‘시바스 리걸‘ 숙성 12년짜리였던 겁니다.
이후 대한민국에서 급속도로, 과장 조금 해서, 단박에 시바스 리걸이 조니워커 블랙을 잠식해버렸던 겁니다.
ㅋㅋㅋㅋㅋㅋ 때마침 강남 개발을 시작해 땅 팔아 졸부, 천부가 막 생기기 시작하기도 했고요.

coolcat329 2021-09-02 15:00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술과 죽음은 참 가까이 지내는 친구같아요.

행복한책읽기 2021-09-02 15: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덜컥, 부커상을 부여잡아> 라는 문장에서 덜컥, 걸려버려 ㅋㅋㅋㅋ 웃다가 휘청거리다 어질거리다 긴 리뷰를 기어이 읽었습니다. 폴스타프님 글은 만연체에다, B급 같은데 왠지 고급진 듯한 아리까리한 유머가 있어 제가 발을 잘 못 맞추겠어요. ㅋ 근데 재미는 있습니다. 책은, 언제 읽을지 모를 책 같으나 찜해 두려 합니다. 다들 뭔 책들을 이리도 많이, 잘도 읽어내시는지.^^;;;

Falstaff 2021-09-02 15:4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어쨌거나 재미나게 읽어주시면 저야 장땡입니다. 기분도 삼삼하고요.
이 책 재미 있습니다. 그렇다고 강력추천 운운 하는 건 아니니,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제가 지지 않습니다. ^^;;;
만연체라 하시는데, 아이고, 진짜 유려한 만연체는 제가 지금 읽고 있고 다음 주 목요일에 독후감 올린 작품이 정말 고급진 만연체군요. 어떤 책이냐 하면, 당연히, 안 알려드립니다. ㅎㅎㅎㅎ
전 소싯적에 서라벌예대 동기동창 박상륭과 이문구를 탐독하다가 어떻게 이렇게 글이 길어지게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안 그랬습니다. 안 그랬던 거 같습니다. 흑흑...

고양이라디오 2021-09-02 17: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거 같은 책이네요ㅎ 근데 댓글들이 더 재밌는 거 같아요ㅎㅎㅎ 댓글상은 어디 없나요ㅎ

Falstaff 2021-09-02 19:1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댓글이 더 재미있으면 안 됩니다.
책이 훨 좋습니다. 물론 책임지지 않지만 말입니다. ㅎㅎㅎ

고양이라디오 2021-09-03 10:07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요새 읽을 소설이 없었는데 감사합니다^^

초딩 2021-10-13 0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선정되신거 축하드려요~
좋은 하루 되세요~

thkang1001 2021-10-1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alstaff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의 옛 연인
윌리엄 트레버 지음, 민은영 옮김 / 한겨레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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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흔히 윌리엄 트레버라고 칭하는 윌리엄 트레버 콕스 경(Knight Commander: KBE)은 1928년에 아일랜드 자유국(Irish Free State) 코크 주 미첼스타운에서, 아일랜드 거주 중산계급 영국인 은행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직업 때문에 대여섯 군데의 아일랜드 지역에서 자라다가 더블린의 콜럼바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트리니티 대학에서 역사학 학사학위를 받는다. 이 역사학도는 트리니티를 졸업하고 트레버 콕스라는 이름으로 엉뚱하게도 조각가로 활동하기도 하다가 1952년에 죽음이 이들을 갈라놓을 때까지 평생을 함께 할 제인 라이언과 결혼하고 2년 후엔 영국에 정착한다. 트레버의 바이오그래피를 다시 확인한 이유는, 그저 검색을 해봤을 뿐인데 두 아들의 이름이 패트릭과 도미닉 ‘콕스’라고 나와, 혹시 아들 둘 달린 돌싱하고 결혼을 했을까, 싶어서였다. 하여튼 이이가 아일랜드에 사는 잉글랜드 인의 자손이었다는 건 <루시 골트 이야기>에서 짐작을 했더라도, 세상 사람들은 윌리엄 트레버를 아일랜드의 소설가, 극작가, 단편작가로 여기고 있다.
  이이가 1964년부터 2008년까지 호손덴 문학상을 시작으로 영국과 아일랜드의 온갖 문학상을 싹쓸이 했는데, 아쉽게도 받지 못한 상이 두 개가 있으니 하나는 노벨문학상이고, 다른 하나는 다섯 번이나 최종 후보에 올랐다고 하는 부커상이다. 그의 숱한 작품 가운데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작품의 면면을 보면, 그까짓 노벨상이나 부커상 같은 건 받지 않아도 너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게 진짜로 트레버의 작품성이 뛰어나서 그런지, 아니면 그의 작품 속에 충일한 상실과 치유의 정서가 우리나라 독자들하고 딱 맞아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보기엔 두 경우 다인 거 같지만.

 

  윌리엄 트레버가 우리나라 책방에 소개된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올해 나온 <펠리시아의 여정>을 빼면 나머지는 2015년부터 18년까지 시중에 나왔다. 내가 마지막으로 읽은 트레버는 2018년 5월에 구입했다. 당시 구할 수 있는 모든 트레버를 다 읽은 셈이었고, 여전히 그런 줄 알았다가 그해 8월에 출간한 《그의 옛 연인》을 이제야 읽게 됐다. 3년 전이나 지금이나 트레버는 언제 읽어도, 그저 할 수 있는 말은 “좋다.” 말고 별로 찾을 수 없다. 여전히 좋다.
  열두 단편소설을 실었다.
  언제부턴가, 아주 오래전에 저지른 실수와 잘못들이 생각날 때마다 미치겠다. 진심이다. 물론 형사 입건이 될 정도의 잘못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젊은 시절 저질러놓고 당시엔 그게 창피한지도 몰랐던 것들이 떠오르기라도 하면 아무리 머릿속에서만이라도 창피하고 부끄럽고, 홧홧거리기도 해서 소리 내 책을 읽던지 혼잣말을 하던지 하는 경우가 많다. 진짜다. 내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이라면 이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꺼내 글감으로 쓸 수도 있겠지만 그럴 주제로 아니니 어떤 일들이었는지 타인에게 밝혀 굳이 새로이 쪽팔림을 무릅쓰기는 싫다. 나이 들면 다들 이렇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우울증의 초기증상일지도 모른다. 정말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저 먼 시절, 어쩌면 그냥 지나간 추억의 부스러기로 생각할 수도 있는 것, 생각하지도 않았던 기억이 수시로 불쑥 피부를 자극하는 기분.
  혹시 당신도 이런 증세가 있다면, 윌리엄 트레버를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을지 모른다. 누구나 까마득하게 먼 곳에, 아니면 까마득하게 먼 곳이라고 착각하는 곳에 두고 온 자잘하거나 덩어리가 져 있거나 아니면 커다랄 수도 있는 잘못, 실수, 착오, 오해, 비탄으로 끝난 연애, 저질러버린 불손 등이 있을 수 있어, 그것들 가운데 하나가 문득, 비록 짧은 시간일지언정 그게 언제까지 짧은 시간일지는 모를 상처, 딱지까지 떨어져 아문 줄 알았더니 여전히 아프게 벌어진 상처가 느닷없이 당신의 등골을 덮치는 증세가 있는 당신에게, 치명적이지는 않더라도 당신의 상처를 덮은 딱지와 말라붙은 붕대를 한 순간에 떼버리는 격통을 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라. 당신이 느낄 격통은 정신이나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아픔이 아니니. 당신이 이 책 《그의 옛 연인》을 통해 얻을 격통은 작품에 대한 깊은 공감에서 비롯하는 감각의 건강한 통증, 기원전 몇 백 년 전의 희랍 사람들이 말했던 ‘쾌락’과 매우 유사한 접촉성 엑스터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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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08-31 09: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윌리엄 트레버의 이력이 그렇군요.
이 작가의 글이 언제나 좋으니 열심히 읽어야겠어요. 젊은 시절의 잘못이 어쩌면 그때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어요^^실수는 당연하고요**

Falstaff 2021-08-31 09:16   좋아요 5 | URL
옙. 아일랜드의 물이 좋은 거 같아요. 그 동네 출신 작가들이 대단하더라고요.
에휴. 어쨌든 세상 살면서 안 할 수는 없지만, 실수 적게 하고 사는 게 좋아요. ^^;;

다락방 2021-08-31 10: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제가 읽어야 할 책이네요.
저 역시 폴스타프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과거에 제가 저지른 일들이 불쑥불쑥 떠오르고 그 때마다 너무 괴롭거든요. 다시는 그러지말자 라고 되새기긴 하지만 과거의 그런 일들이 떠오를때면 제 자신이 너무 밉고 싫어서 어서 빨리 다른 기억으로 옮겨가려고 하는데 잘 안돼요. 얼마전에 SNS 에서 보니까 그런 생각들이 찾아와 괴로우면 앞에 있는 물건을 쥐었다 놓는다든가 하는 어떤 액션으로 다른 생각,행동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하라더라고요. 앞으로는 그런 시도를 해봐야겠어요.

그런데 이 리뷰를 읽고나니 저만 그런게 아니라서, 누구나 과거의 잘못으로 때로 고통받는다는 걸 알게되어서 조금은 위로가 되네요.

Falstaff 2021-08-31 11:18   좋아요 2 | URL
아휴.... 그렇다고 과거의 실수가 잊혀지지는 않더라고요. 흑흑흑....
하여튼 제가 누구에게 위로를 줄 수도 있었다니, 이거 참, 보람차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도 위안이 되는군요.

그레이스 2021-08-31 11: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딱지와 말라붙은 붕대...에서 몸이 움츠러드네요.

Falstaff 2021-08-31 11:31   좋아요 4 | URL
음. 뭐 조금 과장이었습니다. 그 부분은 써둔 독후감을 실제로 올리면서 좀 더 인상적으로 보이려고 가필을 한 건데, 그레이스 님처럼 귀신같이 찾아내시는 분들이 꼭 계셔요.

그레이스 2021-08-31 11:29   좋아요 3 | URL
^^

mini74 2021-08-31 14: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처방전같은 책 소개네요 ㅎㅎ 제 요즘 증상과 유사합니다. 하루에 한편씩 식후에 읽으면 되나요 ? *^^*

Falstaff 2021-08-31 15:09   좋아요 3 | URL
아, 이런 증상이 보편적이군요! ㅎㅎㅎ 다행스럽기도 합니다. ^^

바람돌이 2021-08-31 17: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펠리시아의 여정으로 윌리엄 트레버를 알았으니 앞으로 계속 달려보겠습니다 ^^

Falstaff 2021-08-31 19:15   좋아요 2 | URL
어느 책을 선택하셔도 괜찮을 겁니다.
이렇게 자신하는 몇 안 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

coolcat329 2021-08-31 17: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과거 쪽팔린! 실수 없는 사람 없을거에요.ㅠ
저도 그 증세가 느닷없이 오거든요 ㅋ 그래서 폴스타프님 리뷰 믿고 좀전에 중고로 나와있길래 시간은 없고 2만원은 채워야하고 해서 아이 책 끼워서 주문했습니다~^^

Falstaff 2021-08-31 19:16   좋아요 3 | URL
오호, 그것도 저럼하게 얻으셨으니 좋습니다.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 엄원태 시집 창비시선 363
엄원태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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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대구에서 태어나 지역 명문 경북고를 거쳐 서울농대에서 학사,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 일반대학원에서 박사를 하고, 대구 가톨릭대학 환경원예조경학부의 조경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시에 대구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환경문화센터 소장으로 있단다. 이 양반을 아무리 검색해도 바이오그래피는 뜨지 않는다. 다만 1987년부터 만성신부전증으로 일주일에 세 번씩 혈액투석을 하며 교수 생활의 삶을 견뎌왔단다. 2013년에 나온 이 시집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의 제일 뒤에 나오는 “시인의 말”과 실린 시의 내용을 유추하면 2007년 이후 대구 동북쪽 변두리 아파트로 이사를 해 고속도로 건너편 초례봉 산자락 들길을 오가는 산책을 즐겼으며, 지병인 신장병 때문에 특별히 병원치료를 받았던 것처럼 보인다.
  이 시집이 시인 개인적으로 “생의 가장 중차대한 고비에 한 매듭처럼 묶이는 것”들로 모았다고 하니, 자신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시집일 수 있겠다. 다만 시인에게 중요한 의미가 있더라도 독자가 공명하지 못하면 오직 시인에게만 의미있는 시집이 될 우려와 염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의 어느 시인이 시집을 내면서 그 책자가 자신에게 가장 중대한 고비가 되리라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 시집의 행간을 통해 읽을 수 있는, 시인이 그간 겪은 고초와 일신상의 변화가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시의 업을 변호하고자 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자주 이야기하는 분류법에 따르면 엄원태의 시는 착하다. 즉 독자가 시 읽기를 마침과 동시에 시인이 주장하거나 그린 현상, 사물 또는 감정을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우리 요즘 시의 난수표나 암호화, 파편화된 시를 읽느라, 아니, 읽어내느라 고생했던 걸 생각하면 이런 시집을 읽는 일이 반가울 수 있다.
  그런데, 더욱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동안 요즘 시들의 특징을 그토록 비난했으면서도 정작 이런 시를 읽으니 조금은 촌스럽다느니 낡았다느니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새 나도 모르는 동안 요즘 난해한 시에 익숙해져서, 쉽게 말해 “겉멋이 들어서” 그런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는 모두 4부로 만들었다. 이 가운데 1부에는 아픈 사람들과 병원을 소묘하는 시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시들이 조금씩 아프다. 책 뒤에 실린 평론가 양경언의 해설 “수행의 미학”을 비록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첫 번째 실린 시 <타나 호수>의 부분을 제일 앞에 인용해놓았다. 나도 <타나 호수>의 전문을 인용해보자.

 


  이제 너는 타나 호수로 돌아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타나 호수, 내 침침한 흉강 한쪽에 넘칠 듯 펼쳐져 있다. 거기에 이르려면 슬픔이 꾸역꾸역 치미는 횡경막을 건너야 한다. 고통의 임계 지점, 수평선 넘어가면 젖가슴처럼 봉긋한 두개의 섬에 봉쇄수도원이 있다. 우리는 오래전 거기서 죽었다. 파피루스 배 탕크와는 한때 내 몸이었다. 언젠가 다시 그곳에 가리라. 그때면 너는 물론 거기 없을 테지만, 한 무리 펠리컨들이 너를 대신해서 오천년쯤 날 기다려주리라. 그때, 내 입에선 문득 악숨 말로 된 노래가 흘러나올 것이다.  (전문. 띄어쓰기는 본문에 따름. 다른 인용도 같음.)

 


  타나 호수는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큰 호수로 해발 1,830미터에 위치하며 청나일강의 유수지다. 사람이 태어나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1,001가지 절경에도 든다는 관광지이지만, 설마 시인이 독자한테 관광지 광고를 하기 위해 시를 쓰진 않았겠지. 그에게 타나 호수는 청나일강을 시원하는 태고의 생명을 품은 곳이자 그리하여 이승을 마치면 돌아가야 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고통의 임계지점”이라 하니 삶과 죽음의 바로 그 가는 경계선일 터. 수평선 너머엔 “젖가슴처럼 봉긋한 두개의 섬에 봉쇄수도원이” 있다는 클리셰를 어떻게 할지는 독자 각자가 알아서 하되(하여튼 뭔가가 둥글기만 하면 남자나 여자나 다 젖가슴 운운하는 건 말리지 못한단 말이지) 시인이 먼 훗날 타나 호수에 당도하면 한때 자신의 몸이었던 파피루스로 만든 배도 있고, 태고의 언어인 악숨 말로 만든 노래가 들린다니 아니 그러한가. 이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말한 청산靑山과 매우 유사한 곳이리라.
  몸이 불편하면 마음이 외로운 법. 이때 시인의 눈엔 자신 말고 또 다른 외로운 생명체가 눈에 띈다. <극지에서>라는 시에 외로운 포유류가 둘 등장하는데 북쪽의 북극곰과 남극의 얼룩물범이다. 북극곰의 외로움의 총량은 구백 킬로그램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따듯해지는 봄에서 다시 겨울이 올 동안 제 몸에 저장된 고독을 태워버리면 삼백 킬로그램 정도로 비쩍 말라붙는단다. 반면에 남극의 얼룩물범은 색다른 방법으로 외로움을 견딘다.

 


  얼룩물범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너무 외롭고 심심해서, 물범은 애써 잡은 먹이 목도리펭귄을 갖고 논다. 상처입은 먹잇감을 수면에 가만히 띄워놓고 무슨 공처럼 입으로 툭툭 치며 논다. 그 방심의 순간, 펭귄은 죽을힘을 다해 육지로 도망친다. 하지만 이미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붉은 피로 가슴이 물든다. 도적갈매기들이 이를 놓치지 않는다. 물범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더 많이 먹으려면 외롭더라도 물속 깊이 숨어서 먹어야 하는 거다.  (<극지에서> 부분)

 


  2부와 3부는 “시인의 말”에서 나오듯이 대구의 동북쪽 변두리 아파트 주민들과 초례봉 산책길에서 본 풍경들의 소묘가 많이 등장한다. 변두리라서 아무리 아파트에 산다 하더라도 자기 땅인지 아닌지는 다음으로 하고 하여튼 작은 짜투리 땅에 푸성귀 심어 먹는 할머니도 있고, 비닐하우스를 지키는 개도 있고, 목줄도 안 했지만 움직일 기분이 전혀 들지 않을 만큼 늙은 개도 등장한다. 그래 자기가 사는 아파트, 또는 살지는 않더라도 시로 쓰고 싶었던 작은 아파트 단지를 많이 등장시킨 2부의 첫 번째 시 <별마을아파트>를 인용해본다.

 

 

  408호 꼬부랑노파별은 오년째 연락조차 없는 떠돌이별 아들 때문에 기초수급권 박탈은 물론 두달 기한 퇴거처분통보까지 덤처럼 받았다. 초신성 폭발이란 늙은 별의 장렬한 최루를 일컫는다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던 밤이었다. 결코 이천만광년이나 떨어진 은하의 일만은 아니었다. 1509호 우울증아저씨별은 석달 전 폭발은커녕 한순간 소리조차 없이 명멸하는 별똥별로 스러져갔다. 재개발이며 재건축 따위는 그저 먼 이웃 은하의 얘기였다.

 

  읍내 노래방 나가는 704호 도우미아지매별의 퇴근길 노래가 긁힌 엘피판처럼 밤 깊은 마포종점에서 몇번이고 되돌이표별로 흐르는 밤이었다. 살다보면 개밥바라기같이 외로운 행성이라는 걸 누구나 알게 될 테지만, 이 별마을은 자체발광 대신 자주 자가발광을 해서 생의 에너지를 보충하곤 한다. 부부별 싸움에 아래윗집별 싸움, 아이별 싸움에 어른별 전쟁이 그것들이다. 회사의 부도 소식이 전해진 날에도 별반 다를 바 없이 한판 악다구니가 휩쓸고 지나간, 들판 가운데 홀로 우뚝 선 별마을 임대아파트의 얘기였다. 뭇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전문)

 


  그런데, 엄원태의 시집은 처음 읽는 바, 저 위에서 <타나 호수>를 인용하면서 슬쩍 얘기한 것처럼, 수상경력이 많은 시인에게는 참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는 불경한 얘기지만, 유난히 클리셰가 눈에 많이 띈다. 엄 시인을 좋아하는 분들은 도대체 어떤 시구를 클리셰라고 하느냐고 따질 수도 있으나, 그것들을 진짜로 밝힌다면 오히려 더욱 민망한 일일 거 같아 인용하지 않는 선의를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그렇다고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내가 느낀 감상을 그대로 쓰는 것이 책이나 시집을 읽은 독자의 권리이기 때문에.
  또 시 읽기 경험이 일천한 나는 과한 의미의 과장도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촛불 앞에서”라는 부제를 단 <아름다운 얼굴>이 특히 그랬다. 시를 인용하지는 않겠다. “엄원태 아름다운 얼굴”로 검색하면 읽어보실 수 있다는 선에서 그만하겠다.
  착한 시집이다. 착한 시집이라고 다 내 취향에 맞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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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책읽기 2021-08-30 11:0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폴스타프님. 마지막 문장에서 웃음이 터졌어요. 맞아요. 사람도 착하다고 좋아지는 건 아니더라구요. 님도 읽으셨고, 저도 지금 읽고 있는 <나는 고백한다> 베르나트도 말하잖아요. 자기는 진짜 변덕스런 인간인데, 똑똑한 아드리아가 계속 친구로 남아 자기 변덕을 참아준다고요. 둘이 취향이 맞았겠죠.^^ 엄원태는 몰랐던 시인이라 일단 검색 돌입요. 제 취향에 맞을 수 있으니^^

Falstaff 2021-08-30 11:15   좋아요 3 | URL
맞습니다, 맞아요.
저하고 안 맞는 것이지 다른 분하고는 모르지요. 수상경력이 많다는 건 그래도 빵빵한 시인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
근데 시집을 권해드리기는 좀 그렇습니다. 제가 만족하지 못한 걸 읽어보시라고는... ㅋㅋㅋㅋ

2021-08-30 1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1-08-30 11:1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이 시 읽기 경험이 일천하다고 하시면 다른 사람들은 어쩌라고요 😅 폴스타프님과 착한 것은 안어울리는 것으로 😆

(아름다운 얼굴 찾아서 읽어봤습니다. 전 어렵네요 ㅎㅎ)

Falstaff 2021-08-30 11:24   좋아요 4 | URL
아이고.... 저하고 착한 게 안 어울린다니요.
제가 을매나 착한 인간인데요. ㅋㅋㅋㅋㅋㅋ
 
우연한 방문객
알리 스미스 지음, 민승남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1968년 어느 밤,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차를 몰고 두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휴양도시 노포크, 라고 짐작할 만한 곳에 젊고 세련되고 날씬하고 오만한 한 가임기 여성이 도시에 하나뿐인 영화관에 가 테렌스 스탬프가 나오는 <불쌍한 암소>란 영화를 보다가, 그 주에 벌써 이 영화를 세 번째 보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벌떡 일어나 그 줄에 앉은 관객들의 다리를 밀치고 지저분한 통로를 지나 비상구로 가서 커튼 틈 빛 속으로 나갔다. 마지막 회라 극장 안 카페는 의자를 모두 식탁 위에 올리고 젊고 잘생긴 종업원이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이 여성이 종업원이 들고 있는 의자를 빼앗아 바닥에 내려놓고는 신발을 벗고 코트 단추를 풀었다. 계산대 뒤에서 오렌지 주스 기계가 여전히 회전날을 돌리며 통 밑바닥에 찌꺼기를 쌓았고, 벽에 붙은 액자에선 줄리 앤드루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내려다보는 아래에서 이 여성은 종업원의 허리를 감은 허벅지에 힘을 주었고, 이 결과로 그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인물 알람브라가 태어나게 되었던 거였다. 알람브라는 아이를 임신한 극장의 이름이었다.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세상에 고개를 디밀게 된 알람브라는 엄마에게서는 ① 역경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것, ② 신비의 힘을 이용하는 것, ③ 원하는 걸 갖는 능력을 물려받았고, 아빠에게선 사라지는 능력, 존재하지 않는 능력을 물려받았다. 사람들은 아이의 이름 알람브라를 줄여서 줄곧 호박琥珀을 의미하는 앰버라고 불렀으며, 아이가 서른 하고도 네 살이 되어 다시 세상에 등장하는 2003년 노포크에, 하필이면 이곳으로 여름휴가를 와 몇 달을 지내는 문제 가족 스마트 씨 댁과의 얼키고설킨 이야기를 재미나게 쓴 것이 이 책이다.

 

  스마트 씨의 가정은 부모와 1남 1녀로 구성되어 있다. 아버지 마이클 스마트 박사. 대학에서 영문학과 종신 교수로 재직하는 40대 초반의 잘 생기고, 잘 빠진 몸매의 소유자로, 인생에서 가장 흥미로운 의미는 좋은 학점을 위해서든지, 충실한 논문지도를 바라서든지, 아니면 자신의 외모에 넋을 잃어서든지 어쨌든 자신에게 접근하는 20대 초반의 여학생들과 성적 접촉을 맺는 일이다. 스스로는 세상에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자신 말고는 없으리라 꿈꾸지만, 실제로는 대학과 가정 모두가 훤히 알고 있다는 걸 자신 혼자만 모르고 있는 인간이다. 마이클은 학교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톰, 마조리 틴트, 기타 중요한 인물들은 모두 서포크로 휴가를 떠난 반면 자신만 홀로 노포크로 휴가를 오는 이런 일을 계속하다가는 절대 학과장 자리에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하면서도, 방학 중에, 가족 휴가 중에 홀로 텅 빈 대학에 들러 공부 잘하는 필리파 노트 양의 필립 로스에 관한 논문을 특별지도해주기 위한 자신의 사무실에서, 스무 살 아가씨 필리파 노트 양으로부터 발뒤꿈치로 수없이 엉덩이와 허벅지를 걷어차이며 섹스 테크닉을 특별 지도편달 받기에 이른다. 소아기호증이 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수학자 루이스 캐롤과는 달리 자신은 그래도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하여튼 마이클 스마트 씨는 이날 아침 집에서 앰버 양을 만나게 되는데, 차가 길가에서 퍼져버려 어쩔 수 없었노라는 얘기를 듣고 여자의 차에 가보니 별 이상이 없는지라 그냥 차를 휴가차 몇 달간 빌린 집 앞에 대놓는다. 런던에 가서 볼 일(필립 로스에 관한 논문지도)과 할 일(섹스 테크닉을 지도편달 받는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앰버, 보티첼리의 작품 <봄>에 등장하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꽃이 뿌려진 여자 같은 인물한테 은근히 호감이 생기는 바가 작지 않았는데 이건 확실하게 말하노니, 성적 끌림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거 있잖은가. 많은 사람이 날 볼 때 생기는 사람 자체에 대한, 나도 상대가 그런 감정을 가졌구나 하고 알 수 있는 호감 말이지.

 

  엄마 이름은 이브. 이브 스마트. 원래부터 스마트였던 건 아니고, 젊은 작가 지망생 시절 지하철에서 우연히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전자제품 회사 유니폼을 입은 잘 생긴 청년의 명찰에 아담이라고 쓰인 것을 보고, 난 이브예요, 라고 말을 건넸고, 많은 여성이 저한테 와서 이브라고 하더군요, 라는 대답을 들어(삐쳤다!), 자기가 내려야 하는 정류장도 아닌데 그냥 내렸다가, 다시 지하철을 타기 위해 뒤를 도는 순간 아담이 바로 뒤에 서 있어서, 제 집이 바로 여긴데, 라면 먹고 가실래요? 해서 인연을 맺었다. 그리하여 아들 매그너스를 낳았고, 5년 터울을 두고 애스트리드를 낳아 키웠으나, 도무지 아담이 사회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의욕이 전혀 없단 걸 절감하면서 더 이상 함께 살 수 없다고 다짐해, 이혼하고, 다시 결혼해 스마트라는 성을 지니게 되었다. 앰버가 등장한 순간, 앰버 역시 마이클의 애인 가운데 한 명이라고 지레짐작해 마이클에게 어깃장을 놓느라고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긴 했는데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보다 사춘기를 시작하는 단계거나 한창 무르익은 사춘기의 아이들이 앰버를 무지하게 잘 따르고 예의바른 행동을 하는 걸 눈치채고, 일단 자기들이 휴가차 빌린 집에 계속 머물렀으면 하는 마음이 생긴다.

 

  열두 살 애스트리드 스마트. 자신이 애스트리드 스마트인지 애스트리드 베렌스키인지 고민하는 걸로 작품을 시작하는 가족의 막내는 생일 선물로 받은 소니 디지털 캠코더 미니 디브이 테이프에 2003년 7월 10일부터 18일 금요일까지의 새벽 풍경을 담았다. 엄마와 마이클은 늘 철부지 어린애들처럼 못되게 굴고 진짜 위험한 말을 함부로 했지만 애스트리드는 이미 초월한 상태다. 그들이 사준 휴대전화는 아직도 할부금을 내고 있는데 3개월 전에 이미 학교 쓰레기통에 전원을 끈 상태로 던져버렸다. 다시는 학교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의 한 조각이 그렇게 해버린 모양이다. 학교엔 로나 로즈, 젤다 아휘, 레베카 켈로우, 이렇게 세 년이 자기 이름을 갖고 애스(ass) + 팃(tit), 즉 엉덩이-젖꼭지라고 부르면서 글쎄 얼굴을 소 엉덩이처럼 생겼으며 레즈비언에다가 괴물이라고 괴롭히기 때문이었다.
  비록 열두 살밖에 안 됐지만 이미 세상의 모든 것을 통달했다고 자부하기에 게으름이 없는 아가씨가 문제의 금요일에 새벽 촬영을 마치고 자기 방에 들었다가 조금 후 다시 1층으로 내려갔더니 어떤 여자가, 누구긴 누구야, 앰버지, 소파에 누워 있는데, 겨드랑의 털도 깎지 않은 걸 보고, 여자의 겨드랑에 그렇게 많은 털이 조밀하게 날 수 있다는 것에 놀라고, 반바지를 입어 허옇게 노출된 허벅지와 종아리도 제모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에 다시 놀라고 말았다. 앰버는 애스트리드를 보고는, 나도 아버지가 없어, 난 아버지를 본 적도 없어, 라고 말해 동질감을 만들고는 애스트리드의 머리에 손을 대더니 두 번 세게 두드렸는데, 이 순간 뭔가가 분명히 시작되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앰버는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얼마나 짜릿한 말이던지.
  ”잘 들어. 다른 사람한테 말하면 널 죽여버릴 거다. 농담 아냐. 진짜 그럴 거야.“

 

  어느 평범한 화요일에 자신이 벌인 일. 여학생의 머리를 떼내 다른 몸에 붙인 것. 물론 매그너스 스마트 혼자 한 일은 아니다. 제이크 스트로더스가 평소에 사귀고 싶어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교무실에 갈 기회가 생겼고, 우연히 여학생의 서류에서 사진을 발견한 제이크는 그걸 가져와 휴게실에서 앤톤에게 보여주었다. 앤톤의 사물함엔 포르노 잡지가 있어서, 제이크가 가져온 사진을 포르노 모델의 얼굴 위치에 올려놓았고, 이 두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된, 두 불량학생과는 종류가 다른 평소의 모범생 매그너스가 두 사진을 스캔해, 여학생의 머리통을 잘라 포르노 모델의 얼굴 부위에 올려놓아 완벽한 합성사진을 만들어 사진 파일을 이 메일 주소로 발송을 해버렸다. 며칠 후 딘스 고등학교 12학년에 재학중인 캐서린 매슨은 집의 화장실에서 단 한 번의 시도로 자살에 성공하고 말았다.
  캐서린의 자살에 충격을 받은 매그너스는 서서히, 그러나 여름 휴가차 도착한 노포크의 세든 별장에선 거의 폐인 수준에 도달해, 엄청난 죄책감은 자신 역시 화장실에서 옷을 묶어 대들보에 매달고, 매듭을 지어 매듭 안에 목을 들이민 상태로 욕조에 올라 발을 완전히 허공에 띄워버렸다. 그래 목을 맨 상태로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는데, 불과 몇 초 되지 않아, 누군가 가슴으로 자신의 다리를 꽉 붙잡아 기도폐색을 멈추게 했으니, 바로 앰버였다. 이러니 지옥의 문 앞까지 갔다 온 매그너스가 앰버 말을 듣겠어, 안 듣겠어.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서른네 살의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앰버와, 이제 우리 나이로 열여덟의 전성기를 시작한 매그너스한테 굉장히 중요한 그거, 그거 있잖은가, 그거. 하여튼 그거도 넘치게 가르쳐주는데 말이지.
  이렇게 앰버는 한 가족을 장악해버리고 말았다.
  재미있겠지? 재미있다. 그러나 품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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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8-27 0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당시에도 딥페이크가 있었던거군요. 죽일놈인데 왜 살려놨을까요, 앰버는..
그렇지만 어쨋든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아서(사실 첫 단락부터 그랬어요) 사겠다, 읽겠다! 했는데 품절이라뇨.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폴스타프 님 앞으로 품절 책 리뷰 금지입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8-27 09:28   좋아요 3 | URL
고등학생들을 지독한 악당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었나봅니다. 아이들은 결국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처벌을 받고, 부모에게 사과를 하고, 부모들이 격려를 하고, 퇴학을 당하고, 가고 싶은 학교로 진학을 하지 못하고 하다가 차근차근 보통 시민이 되는 정도로 만들어놨습니다.
이 책 읽으면서 ㅋㅋㅋㅋ 다락방님 읽으시면 열냈다가 좋아했다가 다시 열냈다가 참 재미나겠다, 싶었습지요. 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8-27 09:31   좋아요 4 | URL
이거 중고로 있길래 방금 주문했어요! 그렇지만 우주점 배송비 안내려고 다른 책들 두 권 더 샀어요. 인생... Orz

Falstaff 2021-08-27 09:49   좋아요 3 | URL
저하고 아주 똑같은 방법으로 사신 겁니다. 전 영등포 타임스퀘어 점에서 샀습니다.
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8-27 09:56   좋아요 1 | URL
마지막 줄에 품절이다, 라고 약올리시다니!!

다락방 2021-08-27 11:39   좋아요 2 | URL
만두님 어떡해요? 잠자냥 님과 제가 우주점 재고 다 가져왔어요. 이제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약올리기)

잠자냥 2021-08-27 11:45   좋아요 1 | URL
유부만두 님 어떡해요. ㅋㅋㅋㅋㅋㅋ 락방이랑 제가 재미나게 읽어볼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1-08-27 11:55   좋아요 2 | URL
뭐 전 ‘데어 벗 포’ 시작하는 입장이라 아직은 머… (그래도 세 분이 이러시면 너무 하신거 아닙니꺄?!?!)

새파랑 2021-08-27 08: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 품절 전문 폴스타프님이네요~

Falstaff 2021-08-27 09:28   좋아요 3 | URL
한 작가한테 꽂히면 별 수 없더라고요. ㅋㅋㅋ

유부만두 2021-08-27 09:5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침 데어 벗 포, 가 제 주말의 메인 디쉬 입니다. ^^

Falstaff 2021-08-27 10:03   좋아요 2 | URL
ㅋㅋㅋ 축하합니다.
주말이 금방 지나가겠군요. ^^

잠자냥 2021-08-27 1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재미나겠네요. 저도 얼마전 영등포 타임스퀘어 점에서 3권 샀는데.....
또 하이에나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려봐야겠네요. 이 책 갑자기 중고서점에서 경쟁 치열하겠는데요. ㅎㅎ

ㅋ 저도 중고로 구매 완료- 전 부천점에서..... 배송료 아끼려고... 그 덕분에 3권 더 삼...; =_=

다락방 2021-08-27 11:37   좋아요 2 | URL
제가 검색했을 때 우주점에 2권 있었는데 상태가 한 권은 중, 한 권은 상 이었거든요. 전 그중에 상인걸 선택해서 잠실새내점 에서 주문했어요. 그렇다면 잠자냥 님이 아마도 상태 중을 선택하신 것 같고, 이제 우주점에 남은 재고는 없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다락방과 잠자냥이 우주점의 재고 휩쓸어버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승리했다!! (뭐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튼 저는 상태가 상이라 두 권 더 주문해서 총 세 권으로 가볍게 배송비 패쓰했어요. 그럼 이만..

Falstaff 2021-08-27 11:41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이 두 분은 왜 이리 웃기냥! ㅋㅋㅋㅋㅋ
우주점에 진짜로 재고가 사라졌네요. 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8-27 11:41   좋아요 2 | URL
맞아요. ‘중‘이에요. ㅋㅋㅋㅋ 빠르게 그래24에도 가서 검색해봤는데, 거긴 판매자들이 9천원에 판매하는 거 달랑 두 권뿐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잽싸게 와서 ㅋㅋㅋㅋ ˝중이라도 괜찮아 그냥 사!!˝ 손 부들부들 떨며 광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막차를 탄 자냥과 락방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8-27 11:46   좋아요 2 | URL
제가 잠자냥 님보다 빨라서 상을 가져왔네요. 😌

coolcat329 2021-08-27 13: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댓글들 넘 웃겨요. 폴스타프님 이 작가 작품 중 딱 한 권 강추하신다면 뭘까요?!

Falstaff 2021-08-27 13:53   좋아요 2 | URL
아 몰라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하이페츠가 좋아, 오이스트라흐가 좋아?
세잔이 좋아, 모딜리아니가 좋아?
황순원이 좋아, 김동리가 좋아?
뭐 이런 걸 물어보셔요! ㅋㅋㅋㅋㅋㅋㅋ

이건 투표해봐야 합니다. 전 일단 데어 벗 포 더

다락방 2021-08-27 14:07   좋아요 1 | URL
앗 저 데어 벗 포 더 없는데... 말입니다? 흐음.... 이를 어쩐담.....

Falstaff 2021-08-27 14:10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자, 자, 심호흡을 먼저 하세요. 자, 하나, 둘, 셋.
아예 안 읽어도 무병장수에 전혀 이상 없습니다. 하나, 둘, 셋.

잠자냥 2021-08-27 14:23   좋아요 3 | URL
폴스타프 님이랑 제가 이 작가 책 처음 읽고 더 읽어봐야겠다, 생각한 계기가 <데어 벗 포 더>입니다. 전 아직 그 책 한 권밖에 안 읽어서 더 말씀드리긴 뭣하네요. ㅎ

coolcat329 2021-08-27 15:58   좋아요 1 | URL
<데어 벗 포 더> 알겠습니다! 이번에 또 <겨울>이 나왔더라구요.

잠자냥 2021-08-27 16:24   좋아요 1 | URL
쿨캣 님, 락방 님 근데 <데어 벗 포 더>는 호불호 갈릴 수 있어요..... ㅎㅎ


Falstaff 2021-08-27 16:37   좋아요 3 | URL
잠자....까지 쓰고 보니까, 저 체코산 딱정벌레 중에서 잠자라는 이름이... 있지 않나요? ㅋㅋㅋㅋㅋ
걱정하지 마세요! 쿨캣님, 다락방님 다 잠자냥님 취향 알고 있으실 겁니다.
또, 아니면 좀 어때요. 다 인생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8-27 16:43   좋아요 3 | URL
저 데어 그거.. 안읽으려고요 ㅋㅋㅋㅋㅋㅋㅋ 패쓰 ㅋㅋㅋㅋㅋㅋㅋ 리뷰들 다시 보고 패쓰하기로 했어요. 🤭

잠자냥 2021-08-27 16:50   좋아요 4 | URL
다락방 님 잘했어요. 전 다락방 님이 그 책 읽고 리뷰 쓰면 어떤 단어 썼을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하, 이 미친놈이...깊은 빡침............나오라고, 나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1-08-27 17:18   좋아요 4 | URL
아 잠자냥 님 저를 너무 잘 아시는 거 아닙니까! ㅋㅋㅋ
저 그거 읽다가 되게 스트레스 받을 것 같더라고요. 저는 그건 패쓰하고 제가 구한 소중한 중고만 읽겠습니다.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8-27 17:21   좋아요 3 | URL
아 추천을 하는데 호불호갈릴수있다,다 인생이다 ㅋㅋ
역시 두분은! 달인들이셔요.ㅋㅋ
저는 그래도 읽을 리스트에 넣겠습니다.

- 2021-08-28 20: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 왘ㅋㅋㅋㅋㅋㅋㅋ 리뷰보면서 흐음흐음… 댓글 보면서 깔깔깔깔 (알라딘 우주점이 내 웃음지뢰가 될 줄이야…)

Falstaff 2021-09-04 18: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왜 내가 댓글을 안 달았을까... 생각해보니 툐요일에 답글을 쓰셨군요!

초딩 2021-09-04 1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금주의 북플 뉴스레터 선정 축하드려요~
좋은 주말 되세요~

Falstaff 2021-09-04 18:34   좋아요 1 | URL
근데요, 정말 몰라서 묻는 건데요, 축하해주시는 건 고마운데요,
˝금주의 북플 뉴스레터˝가 뭔가요?
지난 주에도 몇 분이 축하를 받으시던데 도무지 그게 뭔지 몰라서 말이죠. ㅠㅠ

초딩 2021-09-05 22:58   좋아요 0 | URL
아 그게 알라딘에서 토요일에 메일을 버냅니다. 매주 북플 글 몇 편을 뽑아서요.
혹시 메일이 안 오셨다면 알라딘 개인 설정에
북플 뉴스 레터 수신 호락 하셨는지 보세요~

Falstaff 2021-09-10 16: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허걱!
품절 상품 읽고 독후감 쓴 게.... 이달의 리뷰?
와우, 알라딘 세련되어가는 중인가 봄!

새파랑 2021-09-10 16:24   좋아요 1 | URL
알라딘이 폴스타프님 무서워하는거 같아요😆 축하드립니다~!!

독서괭 2021-09-10 16: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이 글 제가 못 읽었던 글이네요. 댓글도 재밌군요 ㅋㅋ 당선 축하드립니다~^^

Falstaff 2021-09-10 16:23   좋아요 1 | URL
ㅋㅋ 별 거 없는 독후감인데 상(보다 상금)을 주네요. ㅋㅋㅋ 고맙습니다.

잠자냥 2021-09-10 16: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거 왜 이달의 당선작 뽑혔는지 알 거 같아요!
다락방하고 잠자냥 낚은 솜씨 인정! 폴스타프 한 번 축복 아니면 날벼락 맞아봐라! 옛다!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9-10 16:38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못 말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9-10 17:35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ㅋ 댓글상도 있으면 늘 당선!

잠자냥 2021-09-10 17:39   좋아요 1 | URL
헤헤헤

이하라 2021-09-10 1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09-11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모나리자 2021-09-1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주말도 행복한 시간 되세요~^^
 
아프리카인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애영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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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르 클레지오가 부계는 영국, 모계가 프랑스. 그래서 영어와 불어 둘 다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뭔가 정치적으로 수가 틀려서 프랑스 말로만 작품을 쓰겠다고 작정을 했다, 이렇게 들은 거 같은데 아닌 모양이다. 하, 여태까지 그런 줄 알고 잘난 척하고 막 그랬으니 진상을 아시는 분들이 들었을 때 속으로 얼마나 욕을 바가지로 해댔을꼬.
  르 클레지오는 엄마는 남프랑스의 니스, 아빠는 프랑스의 북서쪽 브리타뉴의 남쪽 해안에 있는 모르비한 사람들이란다. 다만 부계 쪽에 프랑수아 알렉시 르 클레지오 할아버지가 처자식을 솔가해서 1798년에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섬 동쪽, 인도양 왼쪽에 있는 작은 섬 모리셔스로 이주해 거기서 계속 살았다가 몇 년 가지도 않아 영국이 섬을 통채로 프랑스한테 빼앗아 졸지에 영국인이 된 거였다. 영국은 모리셔스 섬의 프랑스 언어와 풍습 등을 계속 사용하고 누려도 좋다고 승인을 해서 그냥 눌러 살았단다. <아프리카인>을 읽어보면 1960년대 모리셔스가 독립을 하게 되어 J.M.G 부친의 영국 국적이 말소되고 한 방에 모리셔스 국적으로 갈아탄다. 그리하여 현재 J.M.G 르 클레지오는 프랑스와 모리셔스의 국적을 다 가지고 있는 이중국적자이며, 스스로 모리셔스를 ‘작은 아버지 나라’라고 부른다나. 이래서 르 클레지오의 작품 속에 모리셔스 섬이 자주 나오는 거였다.

 

  르 클레지오의 아버지 르 클레지오 씨가 젊은 시절에 작은 식민지 섬 모리셔스에서 모종의 사고를 치고 섬을 떠나 영국으로 간다. 어떤 사고인지는 책에도 다른 자료에도 안 나와 있어서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시는 섬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작정을 한 아버지는 런던에서 공과대학을 다니다가 다시 의과대학으로 전과를 했는데, 여차해서 향토장학금(변방의 부모가 보내주는 학비와 생활비)이 끊기는 바람에 졸업 후 조건이 있는 장학금을 받을 수밖에 없었나보다. 게다가 전공으로 한 것이 열대지역의 풍토병 같은 거라서 처음엔 카메룬 산악의 반소 지역 병원으로 발령을 받았다. 연애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이때 결혼 초기였고, 아내와 함께 부임한 신임 의사는 산악지형인 카메룬에서 극도로 안전하고 행복한 신혼생활을 하며, 멀고 먼 곳까지 부부가 함께 말을 타고, 때로는 걸으며 왕진여행을 다니는 동안 첫째 아이를 임신한다.
  아무리 평화롭다 해도 척박한 아프리카에서 출산을 하긴 어려워, 어머니는 임신한 몸으로 해산을 위해 고향마을 남프랑스의 니스에 와 J.M.G와 그의 형을 출산한다. 아이를 낳을 때 아버지도 휴가를 받아 먼 길을 떠나 이들의 모습을 보고 즐거워했던 건 물론이다. 그러다가 이들 가족의 행복에 금이 간 건 2차 세계대전의 발발. 프랑스 사람들은 독일이 아무리 세도 프랑스 중부지역에서 전쟁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나치 군대가 물밀 듯이 쳐내려와 현역 영국 의무장교의 가족은 고향 니스를 떠나 피난길에 올라야 했다.
  이때 나이지리아에서 근무하고 있던 아버지는 처자식 걱정에 날 지새는 줄 모르고 있다가 하루는 결심을 한다. 내가 직접 프랑스에 가서 처자식을 데려오고 말리라! 그는 군인정신에 충일하여 나이지리아에서 사하라 사막을 건너는 대상, 낙타 대상은 아니고 트럭 대상의 한 자리를 빌어 알제에 도착,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니스로 가 장인, 장모는 모르겠고, 아니, 안되겠고, 장인, 장모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처자식만 달랑 데리고 오겠다는 오진 꿈을 꾼다. 그러나 장대한 원정길 도중 알제리 근처 야영지에서 자기 몸을 거부하는 오아시스 물을 마셨다가 아래·위로 거의 모든 수분을 따 뽑아내고는 어처구니없게 체포당해, 어느 군대에 체포당했는지는 몰라도 다시 나이지리아로 회군(그렇다, 군인 아버지였으니까 ‘회군’이란 용어를 용서하기로 하자!)하기에 이르렀으니 참 가상한 남편, 아빠였다.
  그리하여 처자식이 다시 나이지리아에서 아버지를 상봉했을 때가 1948년. 전쟁은 아버지를 어떻게 말로 하지 못할 만큼 피폐시켰던 건 사실이다. 아버지는 그동안 아프리카 사람들, 이 가운데서 성인 남자가 여자와 아이들에게, 특히 아이들에게 어떻게 훈육하는지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두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프리카 성인 남자와 거의 비슷하게 아이들을 엄하게 훈육하기에 이른다. 프랑스 땅에서는 성질 더러웠던 J.M.G도 생전 처음 나뭇가지로 만든 회초리가 자기의 종아리를 그렇게 따끔하게 갈길 수 있다는 걸 아는 기회를 갖기도 하고, 팔꿈치가 식탁에 닿기만 하면, 설마 진짜로 이러지는 않았겠지만, 숟가락으로 머리통을 후려갈기기도 했을 것 같다.
  그러나 왕진 여행이 잦던 아버지만 눈에 띄지 않았다 하면, J.M.G 형제는 다른 아프리카 검은 아이들과 똑같이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진 채, 치누아 아체베의 고향에서, 치누아 아체베의 작품처럼 “사바나의 개미언덕”을 향해 지평선에서 자기네 집이 안 보일 때까지 뛰어가 몽둥이로 흰개미 언덕을 퉁퉁 두르려 속이 찼는지 아닌지 알아보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어린아이들 특유의 공격성으로 개미언덕을 무차별 파괴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그저 일화 몇 개를 소개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아프리카인을 자칭한 아버지에게 아프리카란 무엇이며, 그의 아들인 자신에게는 또 무엇인지, 어떤 것을 아프리카라고 하는지 저 먼먼, 1940년대부터 60년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독립을 쟁취했거나 얻어낸 시기까지를 흑백 사진을 들여다보며 사색에 잠기는 일이다. J.M.G는 참 묘한 방법으로 한 시절 완고하고, 겁나고, 심지어 공포스럽기도 했던 아버지에 대한 정과 사랑을 표현한다. 전쟁으로 인한 고립과 고독, 불안, 걱정, 의료장비와 약품의 공급이 끊긴 상태에서의 의사라는 상황. 이런 모든 것들이 아프리카 대륙에 홀로 남은 유럽인에게 한꺼번에 몰아닥친 것. 한 번 유럽을 떠나 은퇴하기 전까지 아프리카를 벗어날 수 없었던 한 남자의 초상이 쓸쓸하게 그려져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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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6 09: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6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6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청아 2021-08-26 10:3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자전적인 소설인가보군요? 아버지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춘? 저는 잘못하면 항상 긴 자로 손을 맞곤 했던게 생각납니다. 넓은 면으로는 제법 버티니 옆?으로 때리셨던 충격과 공포😳

Falstaff 2021-08-26 10:48   좋아요 3 | URL
예. 아버지가 느꼈을 고독과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상상하면서, 사진과 곁들여 잔잔하게 써놓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 누구나 부모라는 짐을 어깨에 올려놓는 거 같아요. 그게 회초리가 됐든, 30cm 대나무 자가 됐든. 아니면 늦게 들어와 잠에 빠진 아이들을 굳이 깨워 먹게 했던 스펀지 케이크이든 (제 얘기 아닙니다) 간에 말이지요.

coolcat329 2021-08-26 11: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파란만장한 아버지의 애잔하면서도 쓸쓸한 이야기로군요.
저는 우선 강추하신 <황금 물고기>를 읽어야하지만 이 책도 그 다음으로 꼭 읽고 싶네요.

Falstaff 2021-08-26 12:07   좋아요 3 | URL
이 책은 나중에, 아주 나중에 읽으셔도 괜찮을 듯합니다.

바람돌이 2021-08-27 0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Falstaff 님 서재에서는 항상 작가들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한편으로는 좀 부담스럽기도 해요. 아니 이런 작가가 하고 아 이 작가도 읽어야 하는구나라면서 책탑만 쌓여간다는.... ㅎㅎ

Falstaff 2021-08-27 08:21   좋아요 1 | URL
호호호.... 고맙습니다.
이 책은 특히 작가가 자기 아버지를 이야기하는 바람에 출생부터 유년기까지가 다 나와 있어서 바이오그래피를 더 상세하게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