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 사카테 요지 희곡집
사카테 요지 지음, 기무라 노리꼬 옮김 / 연극과인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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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2년 3월에 일본 오카야마에서 태어난 사카테 요지는 게이오 대학에서 일본 문학을 전공한다. 게이오에서 사회의 동시대적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으로의 극장을 설파하던 비주류 극작가 야마자키 테츠를 사사하고, 후에 야마자키의 극단 “전위 21 Transposition 21”에 합류한다. 아울러 놀랍게도 1983년, 21세 약관의 나이로 자신의 극단 “인광극장 燐光群”을 차린다. 현재 사카테는 일본 극작가협회 회장, 일본 연출가 협회와 국제 극장 기구 일본 센터의 회장으로 재임 중이란다.
  사카테의 대표작은 오늘 소개하는 <다락방>(2002)과 레즈비언 공동체를 그린 <컴아웃>(1987), <도쿄 재판>(1988), <고래를 위한 묘비명>(1993)을 든다고 한다.

 

  《다락방》은 사카테가 21세기에 쓴 세 편의 희곡을 싣고 있다. 차례로 표제작과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2004), <공연되지 않은 “세 자매”>(2005). 세 작품 다 국내외의 사회, 정치적 현상을 묘사하고 있어, 이것이 사카테 요지 작품의 특징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일본 문학은 소위 ‘사소설’이 대표적일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일정기간이 지나기까지 지속한, 지독할 정도로 개인의 감정이나 사유의 골짜기를 파내려가는 까마득한 미학. 이런 천착을 통해 채굴하는 경이적으로 아름다운 문장들. 그러나 정작 다 읽고 나면 별로 남는 게 없는 특유의 장르, 라고 느껴 별로 정이 가지 않았다. 물론 고바야시 다키지 같은 사회운동에 복무하는 작가도 분명히 있었지만 우리에게 그리 크게 어필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판이 이런데 극작으로 사카테의 작품을 읽어본 건 나름대로 색다른 느낌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の 작가가 사회비판적이라니.
  <다락방>은 은둔형 외톨이, 히키코모리 또는 도지코모리에 관한 보고서다. 그런데 외톨이를 표현하기 위하여 등장하는 인물이 무려 쉰네 명. 요즘에 대형 극장 말고는 쉰네 명의 배우들이 다 등장해서 서 있을 수 있는 무대도 별로 없을 것이다. 하물며 우리나라도 그런데 땅값 비싼 도쿄에서는 말할 필요도 없을 듯. 이의 해결을 위해 사카테는 일인다역을 주문한다. 하여튼 일인다역을 하더라도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하다면 둘 가운데 하나다. 극이 대단히 복잡한 이야기를 가져 적어도 서너 시간 이상 공연을 해야 끝낼 수 있거나, 회화의 점묘법처럼 간단한 이야기들이 연속해 등장하며 주제를 심화시키는 이른바 옴니버스 형식이거나. <다락방>은 두 번째 경우다. 두 번째로 실린 희곡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는 놀랍게도 일본의 이라크 파병을 직접 타격하되, 같거나 더 중요한 문제로 전 세계에 위협이 되고 있는 지뢰 문제를 겨냥하고 있다. 이것 역시 <다락방>과 마찬가지로 옴니버스가 이어지면서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공연되지 않은 “세 자매”>는 2002년에 모스크바의 뮤지컬 극장을 점거한 체첸 공화국의 정치그룹이란 실화를 모티브로 해서, 정말로 그랬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원래 공연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체홉의 <세 자매>를 중단시키고 벌였던 인질극을, 다분히 체첸과 인질의 입장에서 보여주고 있는데, 이건 옴니버스가 아니라 시간적 배열에 따랐다.

 

  <다락방>이 인상 깊었다. 다락방이란 방과 지붕 사이의 공간을 비워두기 아까워 도배를 하고 창을 내 만든 방이다. 이 책에서는 아래 그림과 같이 누군가가 만들어 판매한 좁은 공간이다. 작품의 지문을 보자.

 

  “한 평이 채 안 되는 작은 공간.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천장이 낮다.
  천장은 맞배지붕 꼴인데 좌우 비대칭으로 기울어 있다.
  객석 쪽 벽은 생략되어 보이지 않는다.“

 

  대학 기숙사에 이런 공간이 있었는데 등장인물 ‘형’의 친동생이 이곳에서 히키코모리로 지내다가 자살을 해버렸다. 피가 많이 흘렀다고 하니 정맥을 끊은 것 같다. 흔히들 동맥을 끊는다고 하는데 말이 쉽지 동맥이 어디 쉽게 끊어지나. 그래서 시간이 흐른 후에 형은 동생이 지내던 다락방이라 불리는 공간에 들러보러 온 것.
  이어지는 장면은 형의 방문 당시 그를 안내해 다락방을 보여주던 기숙사 관리자 하세가와가 구매자가 있음에도 젊은 여자에게 다락방을 무료로 넘긴다. 이 다음에는 같은 다락방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다락방에서 소년이 역시 히키코모리 상태로 지내고 있는데 소녀가 방문을 한다. 소년은 소녀에게 몸의 결합을 요구하지만 소녀가 거절하자 보는 앞에서 혼자 처리해버린다. 다음 장면은 두 명의 형사가 길거리에 다락방을 설치해놓고 안에서 잠복근무에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다락방을 매개로 해서 갖가지 상황이 잠깐잠깐 쉬지 않고 나열된다. 다락방이라고 하는 혼자 틀어박힐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은둔형 외톨이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이유로 히키코모리들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될 정도로 많아진다는 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극을 통해 문제제기를 할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필요가 있지. 결국 은둔형 외톨이들도 자기만의 방, 다락방에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니까. 그리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이 해소될 때까지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책임이 있는 법이라서.
  엉뚱하지는 않지만 일본인이 왕궁에도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묻어두었던 지뢰가 여전히 매립되어 있다는 등, 물론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보다 세상의 누구도 지뢰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걸 말하는 것이겠으나 이라크 파병이나 체첸 공화국의 대 러시아 테러 같은 세계적 이슈보다는 <다락방>이 더 와 닿은 것은 물론이다. 이건 아직 내가 세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나 <공연되지 않은 “세 자매”>를 적극적으로 실감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연극, 희곡 수준이 대단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는 계기였다.
  우리나라 희곡도 더 찾아 읽어봐야겠다.

 

 

 


* 번역한 기무라 노리코는 1997년 이후 한국에 거주하면서 한국과 일본의 연극 교류를 위해 힘쓰고 있는 이다. 이 책 출간 당시인 2009년에 사카테 요지를 한국에 초치하여 <다락방>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제목을 바꾼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 공연을 주선하기도 했다. ‘오뚝이 아저씨 자빠졌다’는 실제로 우리나라 아이들의 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거의 같은 놀이라서 바꾼 제목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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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17 09:2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폴스타프님이 일본작품에 별 네개면 엄청 높은거 아닌가요? ㅎㅎ 가지고 있는 희곡이 별로 안남았는데 이책 찾아봐야 할거 같아요^^

Falstaff 2021-08-17 09:28   좋아요 6 | URL
ㅋㅋㅋㅋ ˝일본의 희곡 수준이 대단하다.˝라고까지 했습지요.
기무라 노리코가 이야기하기를, 일본의 노能와 가부키는 백제에서 온 것이지만 근현대 연극은 일본에서 한국으로 왔다고 합니다. 한국과 일본은 하여튼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군요.
그건 동의하는데, 제가 싫어하는 건, 본문에서 조금 이야기한 바와 같이, 지독한 사소설적 경향입니다. 다르기만 하면 얼마든지 좋아할 수 있습니다. ㅋㅋㅋ 제가 오에 겐자부로 팬 아닙니까!!!

다락방 2021-08-17 11:20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자꾸 다락방 다락방 나오니까 제가 자꾸 흠칫흠칫 했습니다..

Falstaff 2021-08-17 11:22   좋아요 5 | URL
ㅋㅋㅋ 저도 책 고를 때 흠칫, 했답니다.

잠자냥 2021-08-17 11:52   좋아요 3 | URL
저도 이 포스팅 보고 흠칫 ㅋㅋㅋㅋㅋ다부장님 이 책 표지 서재 프로필 사진으로 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8-17 12:13   좋아요 3 | URL
아이쿠... 저자하고 역자 순서를 바꿀 걸 그랬나봅니다!!
 
시월의 저택 폴라 데이 앤 나이트 Polar Day & Night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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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씨 451> 단 한 권을 읽고 브래드버리는 읽지 않으려 했었다. 그러나 SF 쪽으로 워낙 유명한 이라서 한 권만 더 읽어보자 싶어, 현대문학단편선 《레이 브래드버리》와 이 책, 둘을 놓고 싼 것으로 선택했다. 딱 한 권만, 이게 마지막이다, 이런 마음으로.

  그런데, 읽으면서 처음 느낌은, 브래드버리가 이런 작가였어? 하는 거. 이건 놀랍게도 <화씨 451>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장이었다. 왜 전에는 글 속의 이런 결을 알아채지 못했을까. 책 뒤에 쓰인 작가의 말 속에, <시월의 저택>은 1945년에 처음 집필을 시작해서 2000년에 간신히 작업을 끝낸 데 반해, <화씨 451>은 월요일에 착상을 얻고 9일 만에 단편의 형태가 완성됐다고 한다. 그만큼 오랜 세월 공을 들여서 그랬을까? 아니면 번역자의 우리말 실력 때문일까?

  정말 그랬다. 이 책을 요약하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다. 하지만 하룻밤을 재미나게 보낼 수 있었던 건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름 끼치는 여름밤의 스릴 때문이 아니라 작가의 유려한 문장을 감상하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문장들은 작품의 뒤편에 더 조밀하게 나온다. 하긴 문장 말고도 브래드버리의 귀신 이야기가 우리가 통상 알던 귀신을 다 망라하면서도 무지하게 색다른 면모를 보여, 거 참 별 귀신들이 다 있네, 하면서 저절로 읽게 되리라.

  지난주 밤에 읽었다. 아내는 몇 년 만에 친정 가서 일찌감치 전자레인지에 햇반 2분 돌려, 더우니까 얼음물에 말아 참기름 똑 떨어뜨린 명란젓 반찬으로 훌훌 들이마시고(백신 맞아 술도 못 마시고), 후딱 샤워 한탕 한 다음, 제일 작은 방에 틀어박혀 에어컨 틀었다. 그놈의 전기료 무서워서. 침대 옆에 펴놓은 상 위에 독서대 올려놓고 방바닥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상위가 너무 어지러워 도무지 거긴 앉지도 못하겠다. 아이가 쓰던 작은 방이다. 조명도 딱 책 볼 만큼만. 과격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귀신 이야기책에 몰두하는 모습. 짐작하실 수 있을 듯. 그러다가 갑자기 방 밖 어디서 무언가가 쓰러지는 따다닥, 소리. 어 이거 뭐야. 분명히 집 안에서 들리는 건데! 이미 내일이 시작된 시간, 에어컨 바람 때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소름이 팔뚝에 오소소. 나가볼까? 말까? 아, 가부장적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여. 명색이 가장이라 빈집이라도 확인을 해봐야 한다는 의무감. 불 꺼진 거실과 침실, 책방, 주방, 큰아이 쓰던 방, 앞 베란다, 뒷베란다, 화장실들. 아무도 없다. 그래도 여전히 오소소, 머리카락이 곤두선 느낌. 엣다 모르겠다. 확인하자마자 얼른 방으로 (도망치듯) 돌아와 다시 읽기 시작했다. 아무리 소프트해도 귀신 이야기는 귀신 이야기더라.


  일리노이주 북쪽. 태초엔 풀이 무성한 초원 한가운데 꼭대기에 뒤틀린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선 언덕이 있었다. 이곳에 저택이 왔다. ‘저택이 있었다.’가 아니라 저택이 왔다. 마치 중국식 황제의 묘지 같은 곳에 런던식 거대한 전면을 가졌고, 아흔아홉 개인가 백 개의 굴뚝이 솟은 저택. 수많은 전설과 미신과 주정뱅이의 헛소리에 의하면 단 하룻밤 만에 완성되었다고 전해지기도 하는 크고 큰 집. 그러나 이 저택은 미래의 자식들을 불러들이는 데 실패하고 마는 운명이기도 했다.

  백 개에 달하는 방의 모든 침대에는 거의 인간과 흡사한 존재들, 마당에는 미친개, 지붕엔 살아있는 가고일 등이 있었다. 어떤 존재가 살았을까. 혹은 깃들었을까.

  가장 나이든 존재는 청나일과 백나일 전체를 다스렸던 4천4백 년 전 파라오의 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이자 모든 걸 기억하는 이이며, 사자의 서에 기록된 역사를 완벽하게 들려줄 수 있는 영혼이며 위대한 파라오 네페르티티의 어머니인 네프. 온몸을 상형문자가 새겨진 파피루스 붕대로 감싸고 눈을 꿰매 아무것도 못 보지만 모든 것을 보는 천 번 고조할머니. 살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원히 죽은 것도 아닌 상태로 그저, 그렇게 사천 년 동안 다락방에서 살포시 잠들어 있었다. 오랜 세월 사하라의 모래와 먼지 속 거대한 무덤 안에서 평안을 누리다가 유럽 백인의 손에 의하여 꺼내 알렉산드리아로 보내지고 여기서 도중에 빼내어져 난데없이 미합중국으로 항해를 해 이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리노이주 북부의 언덕 저택에 터를 잡은 존재.

  제일 중요한 세시. 가족 중 가장 예쁘고 특별한 딸로 지혜의 여신과 다름없다. 이 지혜를 위하여 가족 모두는 깨지기 쉬운 도자기처럼 소중하게 다루어 원하는 만큼 자도록 배려하려 힘을 기울이는 존재. 거처는 다락방, 저택이 생긴 이후 연속해서 쌓이고 쌓인 먼지, 이 가운데서도 세월의 지혜와 감식안과 지난 세월의 경험을 함께했던 먼지들만 고인 속에서 잠을 자는 존재이면서 실체가 없다. 오직 영혼만이 남아 자유롭게 온 세상을 날아다니며 아프리카코끼리, 수염고래 등의 거대 포유류부터 짚신벌레나 아메바 같은 단세포 생물의 속으로도 깃들어 이들의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을 하고, 심지어 생각도 만들어낼 수 있는 특별한 존재. 당연히 가족 가운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티모시. 저택의 개구멍받이. 어느 날 밤에 셰익스피어로 발을 싸고, 포의 어셔가를 베개 삼아 바구니 안에 든 채로 저택 앞에 버려진 아이. 저택의 키가 훌쩍 큰 아내와 그보다 더 훌쩍 크고 마른 남편, 그리고 리어왕이 젊었던 시절에 이미 늙은 모습이었을 법한, 식탁에 올리면 안 되는 수프만 끓일 것 같은 수염 난 노파에 의하여 받아들여지지만, 거울을 가져다 대보니 모습이 비치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남편이 자신들과 다른 존재라는 분명한 이유로 접수 거부 의사를 밝혔건만, 세상에 아내 이기는 남편은 없는 법이라서 키 큰 여주인이 거두어 아들로 삼은 천생 역사가, 기록자. 그리고 유일한 인간의 아들.

  이들이 시월을 맞는다. 핼러윈 전야. 세상 각처에 깃들다가 몇 년 만에 친척들이 다 모여 떠들썩한 잔치를 베푸는 시월의 저택. 이들 다 유령.


  유령은 어떤 존재인가. 유령 세시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있는 존재들은 장님일 뿐이지. 하지만 세월에 몸을 적시고 대지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나 영원을 상속하게 된 우리는, 모래의 강과 어둠의 냇물에 부드럽게 떠다니는 우리는, 수백만 년이 걸려 도착해 대지에 쏟아져 내리는 별빛을 알고, 겹겹이 쌓인 지층과 사암층 위에 음각으로 새겨진 날개 달린 파충류의, 백만 년만큼 넓고 단 한 번의 숨결처럼 얇은 날개를 가진 짐승의 골격 아래 영원에 감싸인 채 씨앗처럼 묻힌 영혼들을 찾아낼 수 있단다. 우리는 시간의 파수꾼이니까. 지상을 걷는 이는 오직 한 순간밖에, 다음으로 숨을 내쉴 때면 사라져버리는 그 시간밖에는 모르지. 움직이며 살아가기 때문에 지킬 수 없는 거란다. 우리는 어둠 속 기억의 낱알들이란다. 우리의 장례용 단지는 우리가 품고 있던 빛이나 박동을 멈춘 심장만을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우물을,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깊은 비밀의 공간을 감추고 있단다. 시간 속에 사라진 모든 죽음을, 인간이 새로운 육신이 살 거처를 마련하고 돌을 쌓아 계속 위로 올라갈수록, 우리는 계속 아래로 내려간단다. 황혼에 물들고, 밤의 어둠에 감싸인 채로. 우리는 계속 쌓아 나가며, 작별할 때는 항상 분별한단다. 4백억 생명의 죽음은 엄청난 지혜라고 생각하지 않니? 그리고 대지 아래 차곡차곡 보관된 그 4백억 개의 죽음이, 지금 살아 있는 이들이 삶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니?”


  


● 책 속에서 미네르바 할리데이 양이 유령이 등장하는 작품으로 꼽은 것들

   : <햄릿>, <크리스마스 캐럴>, <폭풍의 언덕>, <나사의 회전>, <레베카>, <원숭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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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8-16 09: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별 네 개 반은 없었다.

잠자냥 2021-08-16 10: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시월에 읽으려고 사두고 계속 미뤄지기만 …. ㅋㅋㅋㅋ 올해 시월에는 읽겠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설마 출근?!

Falstaff 2021-08-16 10:35   좋아요 4 | URL
ㅋㅋㅋㅋ 출근이라니요. 하우스 코너, 집구석입니다. 이를 빼야 하는데 치과도 놀더라고요. 심심해서 하나 올렸습지요.
근데 브래드버리, 이 양반 글이 좋더라고요. 대개 이쪽 작가들은 스토리로 승부하는 거 같은데, 오호, 그래서 단편집 하나 더 읽기로 결정했습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1-08-16 12:24   좋아요 4 | URL
약간 낭만적이죠. 그래서 저도 좋아해요. ㅎㅎ

Falstaff 2021-08-16 12:58   좋아요 2 | URL
ㅎㅎㅎ 기대하고 있습니다!

coolcat329 2021-08-16 11: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화씨451 읽고 실망을 했는데...
레이 브래드버리는 단편에서 더 돋보인다고 들었어요. 이 책 재밌을거 같아요.
현대문학도 읽으실거죠? ㅋ


Falstaff 2021-08-16 12:06   좋아요 3 | URL
예. 현대문학에서 나온 단편집 읽을 겁니다! ㅎㅎㅎ

청아 2021-08-16 12: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와~ 저 분명 읽다가 멘붕이 와서(저에겐 잃.시.찾보다 난해했음)다시 펼치지 못했는데 폴스타프님 리뷰 읽고보니 재도전 하고 싶어지네요ㅋㅋ아무래도 캄캄한 밤 읽어봐야겠습니다.😊 (최근 공포영화 보다가 도시락통이 떨어져서 기겁했던 1인)

Falstaff 2021-08-16 12:56   좋아요 3 | URL
오, 그때 미미 님 컨디션이 별로였을 거라는 데 마넌 겁니다.
별로 어렵지 않고요, 심지어 글도 재미나게 잘 써요.
ㅎㅎㅎㅎ 그리고 무섭지도 않답니다.

초란공 2021-08-16 13: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화씨 451>을 먼저 봐서 원작은 더 재미있겠지라고 기대했는데 그건 아닌가봅니다. ^^

Falstaff 2021-08-16 13:30   좋아요 3 | URL
오... 영화를 못 봐서 뭐라 하기는 힘든데요, 책....은 뭐 그리 권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ㅎㅎ

mini74 2021-08-16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표지부터 제 취향인데요. 저 낫도 맘에 들고 ㅎㅎ

Falstaff 2021-08-16 20:16   좋아요 1 | URL
낫이 마음에 드세요? ㅋㅋㅋㅋ 엽기 미니님. 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21-08-17 0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잉 귀신 유령 다 싫은데.... 어떡하죠? ㅠ.ㅠ

Falstaff 2021-08-17 08:5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간단합니다. 안 읽으시면 되죠!
 
부룬디 기호로로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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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오, 좋은 걸! 뜨겁게 마셔도 좋고 얼음 넣어도 좋군. 좋아, 좋아, 스탬프도 열 개 생기고, 아, 난 언제나 스탬프 부자. 어떻게 좋냐고? 에이, 맛에 관해서는 아무나 말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기껏 생각해낸다는 게, 글쎄, 까끌까글한 맛? 하여튼 그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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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8-14 11: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금 이거 마시고 있습니다. 따뜻하게 먹다가 식혀서 얼음 넣고 동동.

Falstaff 2021-08-15 07:52   좋아요 2 | URL
향이 괜찮습니다. 여태까지보다 커피도 잘 부풀어 내라는 기분도 좋고요.
ㅋㅋㅋ 오늘 아침에도 잔뜩 내려놨습니다. 하루 종일 얼음 동동 띄워 마실 거예요.
근데, 오늘 커피는 실패. 종이 필터 냄새가 많이 나네요. ㅠㅠ

바람돌이 2021-08-15 0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까끌까글한 맛? 표현이 끝내주는데 어떤 맛인지 감이 잘 안와서.... ^^
아 저도 커피 스탬프 부자입니다. ^^

Falstaff 2021-08-15 07:53   좋아요 1 | URL
사실 커피 맛이 다 까끌까끌 하잖아요? ㅋㅋㅋ 곱지 않게 넘어가는 거.
그게 어떤 맛이라고 정확하게 쓸 수 있으면 저도 관광공사 사장 하게요? ㅋㅋㅋㅋ
 
카트린 M의 성생활 - 개정판
카트린 밀레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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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다가 간혹 작가나 등장인물이 다른 책을 이야기하는 일이 있다. 그러면 호기심이 생긴다. <카트린 M의 성생활>도 그래서 샀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이었을 거란 짐작만 할 뿐. 저자 카트린 밀레는 우리나라에도 광주 비엔날레 등의 강연을 위해 두 번 방문했고, 이 책 말고도 다른 저작 두 권이 번역되어 나와 있다. 이이의 직업은 작가, 미술비평가, 큐레이터, 현대미술과 설치미술을 다루는 잡지 “아트 프레스”의 설립자이자 편집인. 이 정도면 알라딘 MD 최성혜의 말마따나 “뭇남성들이 만만하게 씹어댈 수 있는 여성이 아니”다. 어떤 이야기를 써서 책으로 내도 말이지. 이왕 알라딘 MD의 말을 인용했으니 하나만 더 따보자.
  “결단코, 그녀는 타자와의 성경험을 이야기한 것이지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접촉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얼핏 읽으면 밀레가 레즈비언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을 텐데, 책 속의 카트린은 비록 여성을 애무해본 적은 있어도 확실히 이성애자다. 그러니 ‘타자’는 99% 이상 남성이라서, 남성과의 성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럼 뭐야? 성경험이지만 신체적 접촉은 아니라고? 가장 농밀한 신체적 접촉이 바로 섹스, 성 경험 아닌가? 소위 말하는 물·빨과 부르르한 집중력의 시간. 카트린의 주장에 의하면, 남자들은 “자기 정말 내 거 원하지? 대답해봐.” 또는 “날 불러줘. 어서, 날 불러줘.”라면서 흔히들 자기(이름)들과 자기들의 성기를 요구해달라고 주문하는 반면, 여자들은 “내 밑이 빠져버리게 해줘.”나 “다시! 아, 날 괴롭혀줘!”하는 식으로 자기들을 아프게 하거나 다치게 해달라고 요구하기까지 한다는, 오르가슴에 이르는 과정이 신체적 접촉이 아니라니, 거 참.

 

  그래, 그래. 뭘 말하고 싶은지 안다, 알아. 포르노가 아니라는 뜻이겠지. 외설이라고 보지 말라는 뜻이잖아. 카트린 밀레 역시 위 문단에 쓴 것처럼 오르가슴에 달한 남자와 여자의 멘트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영화 또는 영상물을 본 결과가 아닐까 의심한다. 카트린 자신은 쾌감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이런 영화나 외설, 포르노의 경험에 의한 연기나 이 비슷한 것이 재현될 자리가 없어지면서, 드디어 오르가슴에 도달했다하면, 골반을 놀리는 것은 물론이고 다리와 팔도 움직여 마치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듯 발뒤꿈치로 파트너의 엉덩이와 넓적다리를 반복적으로 때리기도 한단다. 아이고, 놀래라. 도대체 쾌감이 얼마나 크면 카트린이 가장 좋아하는 소위 남성상위 자세에서 발뒤꿈치로 상대방의 엉덩이를, 그것도 반복적으로 때릴 수 있을까? 아니, 아니. 어떻게 해서, 왜 난 평생 단 한 번도 엉덩이나 넓적다리를 발뒤꿈치로 걷어 채여본 적이 없는 건가, 자괴감이 든다. 그놈의 자괴감이.
  근데, 나만 그래? 당신이 남성이라면, 정말로 아내나 애인의 발뒤꿈치로 엉덩이나 넓적다리를 두드려 맞아 봤는지 묻고 싶다. 아이들이 어려서 함께 방을 쓰는 경우, 예전에는 집집마다 거의 다 그랬는데, 대개 엄마, 작은 애, 큰 애, 아빠의 순서로 잠을 자다가 애들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잠잠해지면 엄마나 아빠가 못 이기는 척 슬쩍 몸을 옮겨 서로를 만지다가 이윽고 관계하고, 기분이 삼삼해지는 듯하더니 한고비 올랐어도, 과연 엄마의 발뒤꿈치가 아빠의 엉덩이를 내리칠 수 있을까? 아이들 옆에서? 카트린이 이 책 301쪽에 썼듯이, 생각 외로, “오르가슴의 순간에 많은 남자들은 아주 차분한 표정을 보여준다.” 경험이 증명하는 내 생각에도 그렇다. 뭐 표정이야 어떻게 얼굴을 구기든지 그건 다음 문제로 하고 말이지. 제목 그대로 섹스는 정상인의 생활이다. 성‘생활’이라잖아.
  열여덟에 성생활을 시작한 카트린은 처녀이기를 그만두고 몇 주 후에 파르투즈, 즉 세 사람 이상이 함께 하는 섹스 파티에 참석해보고 빠른 속도로 ‘파르투즈의 거장’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처음 경험했던 파르투즈에 함께 했던 남자 셋과 여자 둘 모두가 임질에 걸려, 여성은 증상이 늦게 발현되는 관계로 파트너 가운데 한 명이었던 앙드레가 사실을 재치있는 편지글로 써서 보냈고, 그걸 엄마가 읽었으며, 결국은 이미 열여덟 살이 됐기도 하고 했으니 이 김에 그냥 독립해버린다. 한 명의 여자가 같은 자리에서 몇 명의 남자와 교접을 할 수 있는가, 라고 하면 이 질문 자체를 매우 모멸적으로 받아들일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이 경험했던 섹스와 남자의 수를 1부에서 먼저 밝히고자 했던 카틀린 M은, 한 번의 파르투즈에서 백 명에 가까운 콘돔 미착용 남성과 섹스를 한 적도 있다고 말한다. 이건 미친 짓 아닌가? 임신은 필을 복용해 예방했다고 쳐도, 인유두종 바이러스를 비롯한 치명적 감염은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지 싶다.
  하여튼 이런 무수한 경험을 거치고, 어느덧 나이도 중년에 이른 카트린은, 드디어 섹스 중에 방귀를 뀌는 경지에 도달한다. 이건 물론 서슴없이 방귀를 뀌고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을 정도의, 거의 모든 성적 기교에 통달해 이를 능가하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서 그렇다고? 천만의 말씀.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섹스도 방귀와 마찬가지로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일 뿐이라서, 생활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생활의 한 장면을 따 와 그것에 무수한 가필과 연출을 넣어 과장하는 일련의 지루한 일을 우리는 포르노라고 부른다. 카틀린 M은 자신이 겪어온 생활 자체를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에세이가 되고 한 시절의 문제작이 되고, 무수한 판매 부수 덕에 돈벼락을 맞을 수 있었겠지. 그렇겠지. 나도 인정한다. <카틀린 M의 성생활>은 포르노가 아니다. 심지어 외설이라고 하기도 좀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포르노가 아니더라도 자극적인 건 자극적인 거고, 드러운 건 드러운 거다. 보수 없이 콘돔 미착용 남자 수십 명의 정액을 한 몸에 받아들이는 일, 임신을 피하기 위해 배란기에는 생식기 대신 소화기를 사용하는 행위 등을 과장 섞인 감탄사를 쓰지 않고 “지성적이고 가차 없으며 비범하게 솔직한” 서술을 했기 때문에 멋있다고 하기는 힘들다. 지성적이고 가차 없는 섹스의 묘사를 읽는 독자의 대뇌 역시 포르노를 읽을 때와 비슷하게 열심히 장면을 그리고 있음에야 말이지. 뭐라? 내가 속물이라서 그렇다고? 뭐 그럴 수도 있고.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가끔은 완전히 까발리지 않는 은밀한 즐거움이 더 좋을 때도 있는 법이라서.

 

  이 책을 썼을 때가 카트린의 나이 54세. 같은 나이의 남자가 썼으면 어떤 내용이었을까?
  젊어서는 하도 빨리 끝나는 거 같아서 그걸 좀 늦춰보려고 섹스 중에 반야바라밀다심경을 외우거나 구구단, 태정태세문단세 또는 국민교육헌장을 외웠는데, 나이가 드니까 물건 죽기 전에 얼른 끝내려고 아무 생각 없이, 딴 생각하면 죽는다, 딴 생각하면 죽는다, 작업에만 열중하게 된다고?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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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13 09: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ㅋ 그 추후 공개 하시겠다던 문제(?)의 리뷰군요. 저 이책 중고로 샀는데 폴스타프님의 리뷰를 보니 괜히 산 느낌? 🙄

잠자냥 2021-08-13 09:27   좋아요 1 | URL
낚인 겁니다! *껄껄*

새파랑 2021-08-13 09:29   좋아요 0 | URL
이책 우주점에 있어서 배송비 아낀다고 2만원 채워서 산건데 ㄷㄷ

Falstaff 2021-08-13 09:34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제가 제대로 낚았나요?
심지어 100자 평보다 별점을 하나 낮추기까지 했더군요. 이런 괘씸한 폴.... -_-;;

coolcat329 2021-08-13 10:09   좋아요 1 | URL
헉 사셨군요...

새파랑 2021-08-13 10:25   좋아요 0 | URL
이렇게 또 한번 낚였습니다 😅

잠자냥 2021-08-13 09: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어느 책에선가 언급되어서 샀던 걸로 기억해요. 그 책이 무슨 책일까요?......? 전 이거 지난번에 폴스타프 님이 처음 언급하셨을 때 오랜만에 책장에서 꺼내서 몇 장 읽다가 다시 그냥 넣어뒀습니다. 재미가 없더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은밀한 즐거움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 ˝왜 난 평생 단 한 번도 엉덩이나 넓적다리를 발뒤꿈치로 걷어 채여본 적이 없는 건가, 자괴감이 든다. 그놈의 자괴감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부터 회사에서 모니터 보고 빵터집니다.

Falstaff 2021-08-13 09:38   좋아요 1 | URL
그래서 작가들은 글 속에 함부로 다른 책 이야기 하면 안 된다는 걸, 문장강화 9조 8항으로 못박아 놓아야 한다니까요. 아니면 이걸 구태여 샀겠습니까. ㅎㅎㅎ

흠. 그니까 엉덩이나 넓적다리를 실제로 차 본 여성도 거의 없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엔 그놈의 ˝우다˝가 별로 없어서 그런가.....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8-13 10:10   좋아요 2 | URL
ㅋ 저도 입틀막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장도요...딴 생각하면 죽는다!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8-13 09: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헐...100명...
참 대단하네요.
‘은밀한 즐거움‘이 당연 더 좋습니다.
이렇게 직설적으로 다 보여주는건 통증으로 다가옵니다. ㅠㅠ

잠자냥 2021-08-13 09:35   좋아요 3 | URL
휴... 정말 그 100명 언급하신 부분 읽을 땐 제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어요... 드러워요;;; 우욱 (아침부터 쏠림;;) 병 걸렸을 거 같아요;;

암튼 남자나 여자나 자기 섹파 많다고 자랑하는 거(성경험 많다고 자랑하는 거) 세상에서 가장 덜 떨어져 보여요...;

Falstaff 2021-08-13 09: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그것도 한 두 번이 아니고요 무지하게 상습적으로 그랬다고 자랑 비슷하게 한다는 거 아닙니까.
내돈내산 아니었다면 그 부분에서 책 접었을 듯합니다.

다락방 2021-08-13 1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에로틱한 거 되게 좋아하는데 이 책은 리뷰 읽고나니 겁나 읽기 싫으네요. 재미도 없을 것 같고요. 하나도 안궁금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1-08-13 10:18   좋아요 1 | URL
옙. 다락방님한텐 애초부터 비추! 였습니다. ㅋㅋㅋ

페넬로페 2021-08-13 1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지 않아도 폴스타프님 글로 완전히 어떤 내용인지 알게 되었어요.
세상엔 이해못할 사람들이 어찌 이리 많은지요~~

Falstaff 2021-08-13 10:19   좋아요 2 | URL
ㅎㅎㅎ 무려 70억 명이 살고 있다더라고요. 제가 요새 시간이 없어서 직접 세보지는 못했습니다만....

바람돌이 2021-08-14 0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음..... 그렇군요. 남편의 자존감 상승을 위해 이 한몸 불살라 엉덩이와 허벅지를 차 주도록 하겠습니다. 꼭요!!!

Falstaff 2021-08-14 09:50   좋아요 1 | URL
아, 눈물이 앞을 가리는 분골쇄신입니다. 흑흑흑.....
 
호텔 월드
알리 스미스 지음, 이예원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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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어 벗 포 더>를 읽으면서 작가의 발상에 깜짝 놀라 곧바로 검색해 산 책. 이번에도 역시 앨리 스미스 특유의 전환적 발상으로 책 읽기를 끝내자마자 이이의 다른 책 <가을>을 또 샀다. 앨리 스미스의 작품을 명작이나 걸작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따르지만 이이만이 낼 수 있는 독특함의 향취는 세대를 넘어가리라고 기대한다. <호텔 월드>는 전환적 발상, 독특한 문장과, 작가의 지문이라고 일컫는 문단의 조화가 오, 읽기가 정말 좋았다. 적어도 읽는 동안은 행복했다. 이이가 쓰는 문장, 문단의 이어짐은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작가들에 의하여 활짝 핀 의식의 흐름을 생각하게 만든다. 시간적 공간과 등장인물의 독립적 시각 등의 혼용은 한 사건과 사건 이후 관련한 사람들의 사고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독자에게 호소하는 적절한 형태 아니었을까.
  앨리 스미스가 얼마나 기발한 작가인지 <데어 벗 포 더>의 ‘경악스러운’ 사건을 통하여 알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남자가 디너파티에 참석해 사라지는 일. 집주인 부부가 다음날 일어나보니 남자는 어제 떠난 것이 아니라 2층의 예비침실에서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거였다. 이렇게 스스로 낯선 집의 낯선 방에 스스로 유폐된 남자. 황당한 집주인 부부. 이를 대서특필하는 언론과 구경꾼들. 남자를 방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소환된 엉뚱한 사람들의 난장판. 이 모든 것들의 사소한, 지극히 사소한 오해.

 

  <호텔 월드>는 더욱 우연하게 경악스럽다.
  세라 윌비라는 열아홉 살 먹은 아가씨가 글로벌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나보다. 원래는 버터플라이, 접영 수영선수와 다이빙 선수를 겸하는, 주변 지역에 물속에서는 당할 적수가 없던 활달한 아가씨라는 것을 나중에 알 수 있긴 하지만, 처음 장면에는 그런 거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독자는 세라가 아르바이트인지 인턴인지, 아니면 그저 룸 메이드인지도 모르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 2층이나 3층 식당에 가면 1층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나르는 소형 엘리베이터 보셨을 터, 그저 박스만 한 상자 안에 기어 들어갔고, 박스만 한 상자에 기어들어간 곳이 4층 꼭대기였지만, 명색이 호텔이니 1층 로비는 말할 것도 없이 층고가 높은 건물이어서 엘리베이터의 콘크리트 바닥이 있는 지하층에서 거기까지의 높이가 땅에서 무려 20미터 이상 30미터 이하 정도였고, 겨우 접시들이나 나르는 좁은 장소로 신체 건강한 세라가 무릎을 가슴께 까지 끌어올리고 고개도 무릎을 향해 힘겹게 구겨 넣은 순간, 음식과 접시를 나르는 용도의 스테인리스 박스와 세라를 합친 무게를 견디지 못한 소형 엘리베이터의 철선이 끊어지면서, 엘리베이터와 그 안에 잔뜩 몸을 구겨 넣은 세라가 자유낙하를 하기 시작해 불과 3초가 안 되는 사이에 세라는 등이 부러지고, 목이 부러지고, 얼굴이 부러지고, 머리가 부러지고, 심장을 감쌌던 새장(갈비뼈)까지 터져 심장이 쏟아져 나와, 가슴에서 튕겨 나와 입에, 심장이 덥석 물려, 난생처음, 그러나 너무 뒤늦게야 자기 심장의 맛을 알게 된다.
  나는 잔혹한 장면을 싫어한다. 위 장면을 얼핏 읽으면 정말 잔혹하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과연 누가 이 죽음의 장면을 묘사했을까. 여름이 한창 절정에 올라 가지마다 푸른 잎사귀가 무성했던 시절에 벌어진 일을 지금, 겨울 한복판에 기억하는 건, 죽음이라는 처음이자 마지막의 호된 신고식이며 씁쓸한 최후로의 비행이며 몸을 실은 작은 박스가 지하실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면서 틀림없이 있었을 먼지와의 마지막 입맞춤을 되새기는 일, 이것을 유일하게 상세하게 묘사할 수 있는, ‘것’이라 하기에도 이상하고,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어서, 그냥 ‘형상’ 또는 ‘존재’라고 부른다면, 바로 세라의 유령이다.
  이렇게 먼지의 맛을 경험하고 기억하는 세라의 유령의 다음 이야기는 시간의 흐름에 관한 이야기. 우리 주위에 흔하디흔하게 널려 있는 흐른 시간의 집적. 무엇일까. 먼지다.


  “돌돌 말린 머리카락과 바싹 마른 잡쓰레기, 한때 우리 피부의 일부였던 티끌 등등 그 정수만 남은 숨 탄 것들의 영화로운 잔존물들을 곱게 빻아, 닳아빠진 거미줄과 나방 찌꺼기와 투명하게 분해된 금파리의 날개 오리* 따위를 풀 삼아 덕지덕지 빚어낸 먼지더께.”


  모든 곳에 있으면서 빛을 반사해 시각이 가능하게 만드는 먼지가 이렇게 시간과 연계한 생명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세상에. 글쎄 세상에, 언어, 문자로 아름답게 만들어내지 못할 미물이나 추물이 하나라도 있기는 있을까? 이런 환상 같은 문장이 쏟아지면서 세라의 유령이 어떻게 자신이 지난여름에 사고를 당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1장, “과거.”

 

  다음 주인공은 엘즈베스Elspeth. 노숙자다. 글로벌 호텔 정문 밖에 마치 벽감처럼 몸이 있을 만큼만 쏙 들어간 공간의 터줏대감 까지는 안 되고 그냥 그 자리를 노상 지키며 구걸하는 병들고, 몸에서 독한 냄새를 풍기는 이다. 수시로 컹컹 짖는 수준의 기침을 해대, 기침 소리를 호텔 안 리셉션에서 근무하는 리즈Lise가 걱정이 되어 건물 안에 들어와 비어있는 방에서 몸을 녹이라고 권할 정도. 그러나 문제는 엘즈가 아니라 엘즈에게 돈을 몽땅 빼앗긴 구걸소녀한테 벌어진다. 누군가 하면 클레어 윌비. 지난여름에 사고가 나 죽은 세라의 동생. 엘즈베스 다음, 다음에 등장하는 주인공. 세라가 운송 엘리베이터에 들어가고, 쇠줄이 끊어지고, 과연 얼마동안 더 있다가 죽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하여 엘즈가 묶고 있는 호텔의 4층에 올라가 갖은 방법을 다 써서 결국 폐쇄한 엘리베이터 입구를 뜯어내고 신발을 벗어 떨어뜨려 3초 정도가 걸렸다는 걸 알아내는 동생.
  읽는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나는 세라 동생 클레어가 이미 죽은 언니 세라에게 보내는 길고 긴, 약 50쪽 분량의 편지글이 심금을 울렸다. 아, 괜한 오해 마시라. 똑똑하고 공부도 좀 했을 거 같고, 체력이 좋아 수영 하나는 확실하게 끝내주었던, 매사 자신과 비교해 탁월했던 언니에게 늘 좋은 감정만 가졌던 건 아니다. 그리하여 신파의 골짜기로 절대 빠지지 않는다. 클레어는 이제 또 언니가 부럽기도 하다.

 

  & 어쨌거나 어쩌면 이제 언니는 공기 위도 걸을 수 있을지 모르니까
  & 어쨌거나 언니가 이제 어디에 있건 우리를 나 & 엄마 & 아빠를 안전하게 보호해 줄 거란 걸 아니까
  & 어쨌거나 언니는 여기 있었으니까 분명히 있었으니까

 

  클레어는 글쓰기를 즐겨하지도 않았다. 그래 어눌하고 자주 어울리는 단어를 발견하지 못해 공란으로 그냥 내버려두는 문장으로 이제 다 끝났음을, 마지막 잠수를 하던 날, 두 다리 두 팔을 거꾸로 매달린 채 옴짝달싹 못하게 구겨져 있던 때, 언니가 진짜로 빨리, 진짜 진짜 빨리 떨어졌다는 걸 알려준다.
  4초도 안 걸렸더라 4초가 채 안 걸렸어 고작해야 3초하고 조금 더 그게 다였어 그것밖에 안 걸렸어 내가 알아 내가 언니 대신 재봤거든

 

  아, 정말 매력적인 작가다. 다음에 읽을 작품 <가을>도 기다려진다. 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쳐들어오면 <가을>을 읽어야지.


 

 

 

* 오리 : "오라기"의 방언. 실, 헝겊, 종이, 새끼 따위의 길고 가느다란 조각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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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1-08-12 09: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저도 <가을> 사두고 아직 안 읽었는데, 이 작품도 별 다섯이군요! 이 작품도 잘 새겨두겠습니다.
<데어 벗 포 더>보다 더 경악스러운 작품이라니, 궁금합니다.
일단 다가오는 가을에 가을부터.... ㅎㅎ

Falstaff 2021-08-12 09:40   좋아요 4 | URL
ㅋㅋㅋ 경험상, 너무 상찬을 하면 나중에 읽는 독자들이 실망할 확률이 높아서 말씀입죠, 굳이 이야기하자면, 조금, 아주 조금 <데어 벗...>보다 ˝우연하게˝ 경악스럽더란 것이지요. ㅋㅋㅋㅋ
아, 기분 좋아. 이거 먼저 읽은 사람의 특권, 맞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1-08-25 13:25   좋아요 1 | URL
폴스타프 님 이번 겨울에는 이거... ㅋㅋㅋㅋ

http://aladin.kr/p/b4LXz

Falstaff 2021-08-25 13:48   좋아요 0 | URL
크.... 그것 참.
<우연한 방문객> 읽었거든요. 이제 알리 스미스의 어법이 눈에 들어오네요.
당연히 겨울엔 겨울을 읽어얍지요. ㅋㅋㅋㅋㅋ 고맙습니다. 낚시질.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8-12 16: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재밌을거 같아요. 경악스럽다는 표현도 너무 끌리구요 ~~^^
가을에 가을을 읽으시는것도 참 좋습니다.ㅋ
궁금하진 않으시겠지만 저는 요즘 여름을 읽고 있습니다.ㅋㅋ

Falstaff 2021-08-12 19:10   좋아요 1 | URL
아, 재밌습니다.
근데 책임지지 않습니다. 역시 쿨캣 님한테도 먼저 읽은 사람으로 폼을 좀 재야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 이디스 워튼은, 물론 백퍼 제 취향에 입각해 얘기하자면, 아예 비교를 하지 마세요. 글쎄 같은 영어가 아니라니까요.
흠흠흠... 들립니다. 돌 날라오는 소리. ㅋㅋㅋㅋ

Falstaff 2021-08-12 19:12   좋아요 1 | URL
으, 이 정도로 악담을 했으면 저도 양심이 있지 <여름>은 한 번 읽어봐야겠는 걸요.
아으... 또 워튼을 어떻게 견디나.... 저는 디킨스도 안 읽는 인간인데요. 흑흑....

coolcat329 2021-08-12 19:30   좋아요 1 | URL
어멋 폴스타프님 여름 안 읽으셨나요? 저는 당연히 읽으신줄 알았습니다 ㅎㅎ
악담 아니시구요~~저는 책에 관한 어떤 의견이든 다 감사하고 즐겁습니다!

Falstaff 2021-08-12 19:39   좋아요 1 | URL
ㅋㅋㅋ 전 워튼 안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