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 아셨나요?

 

 

  옛날 옛적에 창비라는 출판사가 있었는데, 이 회사가 업계에서 많이 늦게 세계문학전집을 발간하기 시작했답니다. 여태까지 다 해서 여든 권을 만들었으니 그래도 나름대로 열라 만든 편입니다. 별난 외국어 표기는 창비적 창의성이라고 치고, 그래도 작품은 나름대로 신중하게 선택해 출간하니 다른 회사들과 비교해 품질이, 그렇습니다, 좋습니다. 뭐 출판사라는 곳이 비슷하기는 한데, 특히 이 창비란 회사는 자신들이 우리나라의 최고급, 아주 최상의 지식인들이 모인 곳이라는 자만심이 대단해서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일반 시민이 질문을 해도 답변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앞으로 365일 안에 여의도 만한 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하고 비슷합지요.

  그런데 어쩐 일로 "리뷰대회"라는 경품을 건 겁니다. 워낙 안 팔려서 그랬을까요? 진짜 괜찮은 책이 많은 데도 말입니다. 솔직히, 창비가 세계문학 시리즈를 너무 늦게 시작해 여러 좋은 책이 다른 출판사하고 중복이 되는데, 그렇다고 다시 책을 사 볼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럼 후발에서 비롯하는 핸디캡은 그냥 떠 안을 수밖에요.

  1등은 세계문학 여든 권 몽땅. 2등은 기억나지 않는데 뭐 문화상품권이었던가 그렇습니다. 3등은 세계문학 가운데 두 권을 준다는 거였습지요. 그래, 두 권이라. 흠. 사려고 장바구니에 담은 책 가운데 창비 세계문학이 두 권 있었습니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쓴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두 권짜리 장편소설입니다. 그래 잠깐 스톱, 하고 이미 서재에 독후감 써놓은 거 <현혹>하고 <주군의 여인>을 여기다 올렸더니 덜컥 3등으로 뽑혔습니다. 우하하하...

  근데 3등으로 뽑힌 다음에 정신차리고 잘 읽어보니까, 책 두 권 보내준다는 게 "랜덤"이라는 조건이 있더라고요. 원하는 책이 아니고, 출판사가 골라서 아무거나, 아마 판매실적이 거의 없어 창고에 재놓고 있는 거 두 권을 주겠다는 의미 같았습니다. 그래도 혹시 알아요? 그죠? 그래 책이 도착할 때까지 주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첨자 발표가 5월 8일. 어제 라면박스보다 더 큰 박스에 두 권의 책만 달랑 든 채로 택배가 도착했습니다. 5월 21일. 딱 14일 걸린 겁니다.

  제가 지금 빌어먹고 사는 회사가 네 번째 회산데요, 네 군데 다, 5월 8일에 결정이 된 사안을 21일까지 질질 끌었다면 최하가 시말서고요, 보통이 징계에다가, 최고가 사직섭니다. 얄짤 없어요. 이 회사 경품잔치 담당자들은 무사했을지 참 걱정입니다. 아무쪼록 가벼운 시말서 수준에서 그쳤으면 좋겠습니다. 예? 창비라는 출판사의 평균 수준이 이 정도라서 아무렇지도 않을 거라고요? 에이, 설마.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 최고급 출판산데요.

  그러면 어떤 책을 받았을까요.

  정말 고맙게도, 라면 박스보다 더 큰 포장박스에 아무런 완충장치 없이 달랑 두 권의 책만 들어 있던 건데, 와, 대단한 고전들입니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쓴 불멸의 명작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백작 각하가 쓰신 <이반 일리치의 죽음>. 이런, 이런, 이렇게 고마울 수가. <젊은 베르터의 고뇌>는 제가 가장 싫어하는 고전 작품 가운데서도 무척 앞 줄에 있는 잡문이고요, <이반 일리치의 죽음> 딱 이 책은 2014년 8월 28일에 알라딘에 주문해 읽은 바로 그 책입니다.

 

 

  좋겠다고요? 좋아 죽겠습니다. 책 좀 읽어서 "리뷰대회"라는 곳에 독후감을 올릴 정도의 인간들에게 아주 어울리는 작품이잖습니까? 물론 제가 속물이라 기껏 선물을 받아놓고 고마운 줄 모르는 후안무치한 발언을 한다는 건 알고 있는데, 아놔, 어제 술김에, 또 술 마셨느냐고요? 그럼요, 일용할 양식인 걸요, 육회 만들어 한 병 깠습지요, 하여간 술김에 박박 찢어버리려다가 째려보는 마누라한테 한 소리 얻어 들었습니다.

  아, 창비는 정말 저하고 궁합이 맞지 않는 거 같아요. 책은 좋은 거 많은데 어찌 하는 짓마다 다 이리도 밉상인지 원. 몇 번을 얘기했다시피, 그렇다고 창비의 책을 읽지 않을 수도 없는 애증의 출판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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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5-22 09: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등 아니고 3등이시라고요? 그럴리가.

Falstaff 2020-05-22 09:37   좋아요 1 | URL
아이고 제 주제에 무슨 말씀을요. ㅋㅋㅋ

다락방 2020-05-22 09: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저 지금 이 페이퍼 읽고 너무 빡쳤어요. 저도 사려고 장바구니에 넣어둔 창비 세계문학전집 책이 있지만, 어떤게 올지 몰라 스톱한 상태거든요. 그런데 만약 저 두 권이 저한테 온다면... 저 진짜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저는 저 두 작품 좋아하긴 하지만, 둘다 읽었고 가지고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 두 권이 저한테 왔다면 저도 분노의 페이퍼를 쓰게 됐을것 같아요. 아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리고 저는 아직 못받았어요. 아오. 어떡하죠. 저렇게 두권 오면 어떡하죠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오 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이럴까봐 3등하기 싫었어요. 저는 2등 하고 싶었다고요! 그러면 제가 원하는 책을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3등이고, 출판사가 주는 대로 두 권을 가져야 한다니. 너무 자유가 없잖아요. 그래서 3등하기 싫었어요. 2등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3등이 되었고, 주는대로 2권을 받아야 한다니, 이럴거면 1등이 낫지 뭡니까!

아무튼 저 두 권은..아니 그런데 너무하지 않습니까? 창비 세계문학전집 읽고 리뷰 쓰는 사람한테 저 두 권이라니..무슨 ㅠㅠ 아오 빡치네요 진짜 ㅠㅠ

Falstaff 2020-05-22 10:08   좋아요 2 | URL
근데 다락방 님께 진지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다락방‘.... 이게 본명이세요? 대답은 비밀글로 하셔도 좋은데 정말 궁금합니다.
30명 명단에 유독 눈이 가는 이름이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정말로 이게 랜덤으로 보내준다는 건지 몰랐어요. 나중에 당첨된 다음에 보니까 으하하하하... 완전 뻘짓에다가, 그나마 다행인 건 버리는 데 돈은 들지 않는다는 것이더군요. 재활용품 내놓을 때 함께 내놓으면 되니까요.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5-22 09:57   좋아요 2 | URL
아 진짜 빵터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명단보고 저만 ‘다락방‘으로 너무 튀어서 ㅋㅋㅋㅋㅋㅋㅋㅋ그거 보고 ‘아, 나는 다락방 이란 이름으로 자존감이 겁나 대단하구나‘ 생각했습니다.
아니, 저는 그게 그러니까 온라인에서 열린 리뷰대회니까 ㅋㅋ 다들 작성해서 낼 때 닉네임 으로 적어서 낼 줄 알았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 혼자 다락방 이더라고요. 아 얼마나 뻘쭘하고 웃기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 다락방 자아가 너무 비대해서 생긴 일입니다. 본명은 그것이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5-22 11:28   좋아요 1 | URL
그나저나 저 정말 다락방 저 이름 보는 순간 뿜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이분 정말 재미나다, 나도 잠자냥이라고 할 걸 막 그랬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부터 다락방 님은 성은 다 씨요. 이름은 락방. ㅋ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정말 창비세계문학전집 꼼꼼히 챙겨 읽는 사람들이 여태 <젊은 베르테르> 쯤 안 읽었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휴 -_-;;;;;

다락방 2020-05-22 11:31   좋아요 1 | URL
전 정말이지 다들 그렇게 실명으로 적어내실 줄은 몰랐다니깐요?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케이 2020-05-22 1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짜로 주는 거라고 옛다! 하고 보냈네요. 참 성의없네요. 책표지도 왠지 걸레마냥 너덜너덜해보이고...

Falstaff 2020-05-22 10:06   좋아요 1 | URL
ㅋㅋㅋ 표지 디자인은 저게 ‘빈티지‘ 스타일이라고 하더군요. 저래 계속 내다가 <금색공책>이든가 부터 디자인을 바꾸더라고요. 근데 박스가 책에 비해서 어마어마어마하게 컸어요. 책 말고 다른 소소한 기념품도 들었겠거니, 김치국물 꿀꺽꿀꺽 마셨답니다. ^^

잠자냥 2020-05-22 10: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사실 2등 노리고 도전했다가 3등했는데요.... 랜덤인줄 모르고 <주군의 여인> 골라야지 하고 있었는데 랜덤이라잖아요? 그래도 설마 이상한 거 보내줄까, 이번에 나온 요사 책이 딱 2권짜리라 그걸 보내주지 않을까 그래 괜찮다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저 두 권이라면 정말 실망스럽네요. 폴스타프 님처럼 저도 <베르테르의 고뇌>는 혐오하는 작품이고,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딱 저 책으로 책꽂이에 꽂혀있지 뭡니까! 진짜 리뷰대회에서 이런 상같지 않는 상 주는 출판사는 처음이네요.

다락방 2020-05-22 10:41   좋아요 1 | URL
잠자냥 님도 아직 받기 전이신거죠?

Falstaff 2020-05-22 10:47   좋아요 3 | URL
ㅋㅋㅋㅋ
저는 1등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그래도 재수없이 1등 하면 여든 권이 올 텐데 가득이나 좁은 책장을 어떡해야 하나, 걱정은 좀 했다는 거 아닙니까.
심지어 작년도 아니고, 재작년 11월에 올린 독후감으로 응모했으면서도요. ㅋㅋㅋ
랜덤인지 몰라서 2등이나 3등이나 아무 거나 하나 걸렸으면 좋겠다... 했는데, 에그머니.

잠자냥 2020-05-22 10:49   좋아요 3 | URL
다락방 / 네 저 아직 못 받았어요.
폴스타프 / 제 생각에는 저 두 권이 참 얇지 않습니까? 만원 안짝하는 가격, 그러니까 가장 싼 책으로 보낸 거네요. 저도 사실 1등하면 골치아픈데 그런 생각은 했어요.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창비가 참 멍청한 게 <까페드랄> 이 신간을 주욱 나눠줬으면 폴스타프 님 비롯해서 저, 다락방 님 같은 사람들이 리뷰 썼을 테고 그게 또 홍보가 됐을 텐데 참 어리석네요....

Falstaff 2020-05-22 10:51   좋아요 1 | URL
아, 박스 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잠자냥 님, 다락방 님, 두 분 다 박스의 위용을 보시고 큰 기대를 하셨을 것을....

단발머리 2020-05-22 18:08   좋아요 2 | URL
우아~~~ 창비 진짜 성의 없네요. 잠자냥님 말씀이 무조건 옳죠. 좋은 책 선물했으면 좋은 리뷰 쫘악 올라올텐데..... 마케팅 개념이 없는걸까요? 아쉽네요.

잠자냥 2020-05-22 1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책 오면 알라딘 중고에 팔아서 공적마스크나 사야지 했는데.... 마스크 값도 안 나오겠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5-22 10:55   좋아요 1 | URL
표지 넘기면 바로 보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창비 드림˝

잠자냥 2020-05-22 11:25   좋아요 1 | URL
윽 이럴 수가........... ㅠㅠ 그런 만행까지.... -_- 누굴 주나... -_-‘‘‘‘‘

coolcat329 2020-05-22 16: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ㅠㅠ 너무 웃기네요😂😂😂 상이라고 하기엔 정말 성의가 없어 보이네요. 완충제도 없이 라면박스보다 큰 데다 넣었다는것도 ㅠㅠ 창비드림! 도 너무 웃기고 ㅋ 그래도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Falstaff 2020-05-22 16:20   좋아요 2 | URL
아니아니... 이건 당선이 아니라 ‘당첨‘이라니까요. ㅋㅋㅋ
근데 박스가 크니까 속에 든 얇고 가벼운 책들이 전혀 손상이 안 가더라고요. 항공모함에 개미 두 마리가 만날 일이 없듯이 말이지요. ^^

coolcat329 2020-05-22 16: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빈티지한 창비표지 좋아하는데 위에 분이 걸레같다고 하셔서 🤣🤣🤣 평이 안좋은건 알지만 그래도 충격받았습니다.😤여기 댓글들이 다 너무 웃기네요ㅋㅋ

Falstaff 2020-05-22 17:03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그래도 제일 중요한 것은 ˝개인˝ 취향입니다. 누구의 취향이나 존중합니다. ^^

잠자냥 2020-05-22 19:38   좋아요 2 | URL
저도 바뀐 표지보다는 예전 걸레같은 표지가 더 좋아요! 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0-05-22 1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3등 축하드립니다. 축하가 싫으실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일단 축하는 받으시고요^^

5월 8일에 결정이 된 사안을 21일까지 질질 끌었다면 최하가 시말서고요, 보통이 징계에다가, 최고가 사직섭니다. 얄짤 없어요.

여기에서 빵! 터졌습니다. 그러지요. 그래서, 저도 어제 소극적으로 알라딘에 고객상담 문의를 넣었답니다. 이벤트 발표를 5월 8일에 했는데 선물은 누가 주냐. 알라딘이 주냐, 창비가 주냐. 왜 주소도 안 물어보냐. 했더니 알라딘에서 답이 책은 창비에서 보낼거고 6월 1일에 발송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Falstaff님 글을 읽었으니 다시 이건 무슨 일일까 생각한답니다. 하하하!

Falstaff 2020-05-22 17:18   좋아요 2 | URL
윽! 아직 주소도 안 물어봤어요? 어허.... 그럼 틀림없이 담당자 권고사직 아니면 징계해고일 텐데 이거 어쩌지요?
얘네들 단발머리 님에게 보내기 전에 이 페이퍼를 좀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좀 좋은 책, 신간이나 아니면 읽고 싶은 책 뭡니까, 라고 물어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ㅎㅎㅎㅎㅎ
축하 고맙습니다. 단발머리님도 축하합니다!

단발머리 2020-05-22 20:16   좋아요 2 | URL
저 지금 Falstaff님 댓글 보고 혹시나 하고 들어가보았더니 아...... 주소 보내달라고 이메일이 왔었네요. 그럼 저만 늦는걸로 하고요. 레삭매냐님도 Falstaff님과 같은 책이던데요. 하하하.
제꺼도 그럴까요? 하하하.

Falstaff 2020-05-22 20:19   좋아요 1 | URL
정말 아니기를 바랍니다. 참.....참담하....한 수준은 아니고 뭐 창비...라기보다 ‘창피‘스런 일입지요.

레삭매냐 2020-05-22 17: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의천도룡기에서 태극권을 연마하던
장무기처럼...
아예 이자 불고 있었네요.

집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과연
같은 책들인지 어쩐지 아주 궁금
하네요.

아예 언박싱 과정과 박스 사이즈
도 공개해야 하나 싶네요 ㅋㅋ

소장 책이라면 단골 카페에 기증
하는 것으로.

Falstaff 2020-05-22 17:18   좋아요 1 | URL
흠.... 쐬주 한 병 깐 다음에 독한 마음으로 포장 여세요. ㅋㅋㅋㅋㅋ

서산_影 2020-05-23 0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쑤, 축하드려요!

Falstaff 2020-05-23 07:26   좋아요 1 | URL
에휴... 고맙습니다. ㅎㅎㅎ

CREBBP 2020-06-04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동에서 이런 행사 많이 하죠. 한창 꽂혀서 열심히 리뷰쓸 때, 문동에서 세계문학 100권 받은 적 있어요. 통 크게 100권을 주면서도 100권 고르라고 하더라구요. 서재 뒤져 있는 거 체크 해서 빼놓고 고르는 거 일이더라구요. 열책 세계문학도 180여권 이북으로 구매했던 터라 문동까지 완전 흐뭇흐뭇했었죠. 그런데 두 권 주면서 랜덤이라니 리뷰까지 써서 선정된 독자에게 자신들이 선택한 그 책이 없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상상력의 부족 이네요. 저 책 중 한 권은 저한테도 있는데 말이죠.
물론 아주 많이 축하드립니다.

Falstaff 2020-06-04 13:06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알라딘의 극성스런 고객 분 가운데 선물 받으신/받으실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분들이 창비에게 부탁하고, 항의하고, 딴지걸고, 해서 다시 창비 쪽에서 새롭게 원하는 책 두 권을 주겠답니다.
그래 저도 <까떼드랄 주점에서의 대화> 두 권을 다시 받을 예정입니다.
저도 놀랐어요. 창비가 이렇게 양보하는 세상이 왔다니요. SNS 시대의 개가입니다.
 
지복의 성자
아룬다티 로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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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룬다티 로이는 1997년에 첫 번째 장편소설 <작은 것들의 신>을 써서 단 한 번 만에 부커 상을 받는다. 10년 후인 2007년에 언론에 <지복의 성자>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고는 뜸만 들이다가 다시 10년이 지난 2017년에 드디어 두 번째 작품 <지복의 성자>를 출간해 두 번째로 맨-부커 상의 1차 심사(Long list)에까지 오르지만 이번에는 조지 선더스의 <바도의 링컨>에 자리를 양보한다. 아룬다티 로이는 인도의 북동부 인구 20만 가량의 작은 도시 실롱에서 태어나, 불과 두 살 때 부모가 이혼해 엄마와 남자형제와, 이렇게 셋이서 외할머니 댁에 함께 성장하는데, 남자형제를 뺀다면 이 책의 두 번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틸로’와 유사한 점이 있다. 작품의 등장인물에 자신을 투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작 <작은 것들의 신>에서 로이는 남부 인도 아예메넴의 피부가 검정에 가까운 힌두 귀족 집안이 격변기를 맞아 불행을 당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낸 반면에, 20년의 세월을 보내고 나서 로이는 이제 시선을 북쪽으로 돌려 1950년대 델리에서 남자와 여자의 성징을 모두 갖고 태어난 양성자와, 저 카슈미르에서 발생한 인도-파키스탄 전쟁의 비극을 연계시키려 하고 있다.
  ‘지복의 성자’는 누구일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의 화신이다. 하즈라트 사르마드 사히드. 17세기에 활동하던 아르메니아의 유대인 상인으로 ‘신드’에서 만난 ‘아브헤이 찬드’라는 힌두교인 소년을 사랑하게 되어 인도로 왔던 모양이다. 인도는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믿으니 사르마드는 일단 유대교를 버리고 이슬람으로 귀의했고, 다시 몇 년 동안 맨몸으로 거리를 방랑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힌두교를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려면 먼저 이슬람을 버려야 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알몸활보의 죄가 아니라 배교의 죄로 훗날 공개처형을 당하고 마는 인물이다. 1960년대 초의 어느 날, 자하나르 베굼은 자신의 네 번째 아들,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모두 가진 아기를 출산했으나 언젠가 여자의 생식기가 저절로 메워지게, 또는 아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남편에게까지 비밀로 한 채 아들로 기른 ‘아프다브’를 데리고 하즈라트 사르마드 사히드의 영묘에 와서 간절히 기도한다.
  “제게 이 아이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소서.”
  이 시기 쯤 태어난 다른 한 명의 주인공 틸로는 훗날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여가로 연극반 활동을 하면서 주로 세트와 조명 디자인을 담당한다.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하며 남학생 세 명과 우정 이상의 관계를 맺는다. 같은 건축학부를 다니며 필생의 사랑이 되는 카슈미르 이슬람 해방전선의 지도자인 무사, 법적으로 유일한 남편의 자리를 갖게 될 유명 신문기자 나가, 진심으로 틸로를 사랑하지만 카스트 때문에 벌어질 가족의 반대에 애초에 순응해 그저 후원하는 선에 그치는 인도 정보국 카슈미르 부지부장 비플랍 다스굽타. 이들을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네 명의 갈등관계가 여러 모양으로 그려질 것인데, 그리 쉬운 그림이면 아룬다티 로이가 아니라는 점만 일러두고 상세 내용은 여기서 멈춘다.
  다시 아프다브. 아래로 다섯째 아이이자 진짜 남자애인 사키브가 생겼고, 다섯 살 때 우르두-힌디어 남학교에 입학해 불과 몇 달 만에 아랍어 쿠란의 대부분을 암송하는 총명한 재능을 뽐낸다. 여기에 부모는 머리보다 더 뛰어난 재주를 발견했으니 바로 음악. 그리하여 힌두스탄 고전음악의 걸출한 젊은 음악가 우스타드 하미드를 사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아서 아홉 살쯤 되니까 “쟤는 여자야, 쟤는 남자나 여자가 아냐. 쟤는 남자고 여자야. 여자-남자, 남자-여자”라는 놀림을 받기 시작했으며, 남동생 사키브가 할례를 할 때가 되니 더는 숨기지 못하고 엄마 자하나라 베굼은 남편에게 아이의 특징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후 학교를 그만둔 아프다브는 하루 시장에 갔다가 여자가 아니니 차도르를 할 필요가 없는 우아한 여성-남성 봄베이실크를 발견하고 하도 아름다워 이이를 따라가, 결국 자신도 열다섯 살이 됐을 때 이들이 사는 집, 콰브가에 합류한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세속에서는 ‘하즈라’라고 부른다는 것도 배웠으며, 결혼식 등의 잔치에 불려가 노래와 춤을 팔기도 하고 더 자주는 남자 고객을 상대해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을 버는 생활을 꾸려간다.
  “신이 왜 하즈라를 만들었는지 알아? 일종의 실험이었어. 신은 행복할 수 없는 생물체를 만들어보기로 결심한 거야. 그래서 우리를 만들었지.”
  정식으로 콰브가의 일원이 된 후 집안의 어른인 ‘우스타드’ 쿨숨비는 아프다브에게 새로이 ‘안줌’이란 여성의 이름을 부여하고 이후 안줌과 안줌의 생모 자하나라 베굼은 오직 한 군데, 하즈라트 사르마드 샤히드의 영묘에서만 드물게 만난다. 사랑의 성인, 지복의 성인을 기념하는 곳에서만.
  안줌은 삼십 년이 넘게 콰브가에 살다가 마흔여섯 살이 되었을 때 자기가 길러온 딸 자이나브가 자기 대신 새로운 하즈라인 사이다와 더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는 것을 알고 콰브가를 나와 국립병원과 시체 안치소에 면한 공동묘지에 터를 잡고 몇 년을 비탄에 잠겨 떠돌이 망령의 삶을 산다. 그러다가 천천히 상실에서 회복되어 공동묘지 터에 판잣집을 짓더니, 조금씩 확장해서 침대가 들어가는 오두막을 거쳐 작은 부엌이 달린 집의 순서로 여러 채의 건물을 짓고 빈털터리 여행객에게 방 두어 개를 세놓기 시작해, 또다시 몇 년이 흐르고는 ‘잔나트’ 게스트하우스를 완성시켜간다.
  이 게스트하우스, 카스트라면 가장 아래쪽의 몇몇 계급들과 위에 있다고 해도 계급에 신경 쓰지 않는 몰락한 인사들을 비롯한 ‘작은 것들’이 옹기종기 모인 이곳에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 사무소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하기도 했던 틸로가 입주함으로서 세계에서 가장 살인적 매연의 도시 델리, 그곳에서도 가장 추레한 곳으로 인도의 모든 지역, 계급, 종교의 차이를 위한 아주 작으나마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벌어지려고 한다.
  전작을 발표하고 20년이 지나 나온 두 번째 소설. 2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로이는 인도 남부의 한 가정에서 격변하는 시기에 발생하는 계급간 불통의 비극에서 시각을 넓혀 전 계층과 이질적 종교, 정치와 생활 속의 폭력과 다툼의 비참함, 부정과 부패 등 거의 모든 인도병印度病을 거시적으로 다룬다. 카슈미르 분쟁을 중요한 소재로 채택한 살만 루슈디의 <광대 살리마르>가 떠오르는데 그만큼의 스케일은 아닐지언정 인도와 카슈미르 내부에서 발생한 리얼리티는 독자가 카슈미르와 인도-파키스탄 분쟁을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왕 카슈미르 이야기를 하려면, 카슈미르, 더 근본적으로 원래 한 국가였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가 왜 세 나라로 분리가 되었는지 근원부터 깐깐하게 따졌으면 더 좋았을 뻔했다. 1947년 영국이 물러가면서 인도 독립을 위해 파견한 마지막 인도 총독 루이스 마운트베른 남작 새끼는(얼마나 후진 인간이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판국에 작위爵位가 다 뭐냐, 작위가) 인도에 관한 문화나 전통, 종교, 이런 거에 관해서는 아무 이해도 관심도 없어서, 복잡한 종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이슬람을 믿는 사람은 동, 서 파키스탄으로, 힌두교 및 기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양 파키스탄 아래로 임의로 국경을 만들어버리고 거의 강제로 이주시키면서, 초장부터 두 종교 그룹 간에 지역 이동을 할 때 부터 종교적 싸움을 벌이게 만든다. 그러다 아름다운 카슈미르 지방이 애매한 형국에 떨어져 두고두고 동족간에 서로 죽이는 난리를 치게 하고. 이렇게 카슈미르의 분할과 투쟁의 근본부터 시작했으면 더 좋았을 뻔 했을 거 같다. 하긴 인도 사람이 기본적으로 인도인에게 읽히려 쓴 책이니 다 알고 있으리라 전제를 했겠지만 하여튼 그렇다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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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82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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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후감을 쓰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좋다고 장안에 소문이 나긴 했는데 몇몇 이유로 오츠가 쓴 다른 책을 먼저 사서 읽어본 적이 있다. <사토장이의 딸>. 뭐 그리 인상 깊지 않았다. 그래 이 책도 뭉개다가 늦게나마 손에 들었다. 호, 우리말 문장도 생각보다 잘 읽히고, 내용도 흥미진진하고, 2부에 들어서자마자 뒤통수 확 후려 맞고(내가 원래 순진한 독자거든), 하여간 재미있게 마지막 장을 덮었다. 그런데도 독후감을 쓰기가 쉽지 않다.
  캐롤 오츠는 데뷔한 후 56년 동안, 중편과 단편은 별개로 하고, 장편소설을 58편 출간한 다작의 여왕. 전에 읽은 <사토장이...>도 900쪽이 넘는 장편이었다. <카시지> 역시 660쪽에 달하는 긴 작품이다. 그러니 글 쓰는 거에 관해서는 가히 도가 튼 사람일 텐데 내가 감히 따따부따 할 내공이 되겠는가. 그냥 쓴 대로 읽고, 읽은 느낌을 솔직하게 얘기할 밖에.
  뉴욕 주 북부에 카시지라는 도시가 있다. 물론 가상의 도시고, 카시지Carthage는 보통 트로이의 명장 아이네이스가 여왕 디도의 구애를 뿌리치고 이탈리아를 찾아 정처 없는 항해를 떠난 ‘카르타고’를 이야기한다. 책의 내용 속에 카르타고가 안고 있는 역사적, 혹은 신화 문학적 함의가 들어 있는지는 각자가 따져봐야 할 것인데, 구태여 끼워 맞추려고 하면 세상 어느 것인들 그렇게 하지 못할 건 없을 터.
  주인공 이름이 크레시다 캐서린 메이필드. 1986년 4월 6일생. ‘크레시다’는 트로이 전쟁 당시의 최고 예언자 칼카스의 딸 크리세이드의 영어식 이름. 책 속에서 자주 인용하는 건 제논의 역설. 즉 실생활 속의, 화살은 절대로 과녁에 박히지 않는다는 엉터리 수학적 무한성. 크레시다의 아버지 이름이 제노. 뭔가 크게 한 바탕 전쟁과 학살이 등장할 것 같은 분위기의 이름인데, 정작 전쟁과 학살에 참여하는 인물은 크레시다의 언니 줄리엣의 약혼자 브렛 킨케이드 상병이다.
  이 책을 잘 이해하려면 앞부분에 나오는 의미심장한 힌트를 염두에 두어야 하리라. 제노와 아를렛 메이필드 부부의 둘째 딸이자 막내인 크레시다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자폐증’일 가능성이 제기되었으며,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는 한 단계 위인 ‘아스퍼거증후군’일 가능성까지 제기되었지만 더 이상 확인해보지 않은 전력이 있다. 즉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대단히 높은 특성이 있는 인물.
  크레시다의 경계성 인격 장애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이 작품의 개연성은 단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물론 작가가 수시로 독자에게 이런 기본 조건을 납득시키고 있으니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지만.
  아를렛과 제노 메이필드 부부의 두 딸 가운데 맏이는 예쁜 것으로, 막내는 똑똑한 것으로 캐시지 지역에 소문이 났다. 대개 예쁜 사람들이 마음씨도 착해(내가 반대 경우의 여자와 30년 넘게 같이 살고 있어 잘 아는데) 줄리는 독실한 기독교적 분위기 속에서 일찌감치 공부도 잘하고, 잘 생겼고, 거기다가 만능 운동선수인 브렛 킨케이드에게 청혼을 받아 약혼을 한 상태. 동생 크레시다는 똑똑은 하지만 인격 장애가 정말 있는지 감탄보다는 조롱에 익숙하고, 천성은 착하지만 남들이 행복해 하는 것을 보면 고통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즉, 언제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는 위험요소가 가득한 캐릭터란 뜻.
  또 한 명의 주인공 브렛 킨케이드는 1990~91년 걸프전에 참전한 그레이엄 킨케이드 중사와 애설 사이의 외아들. 아버지 그레이엄은 브렛이 여섯 살 때 돈을 벌어온다고 집을 나가 마지막으로 요세미티에서 그림엽서를 보낸 이후 소식을 끊어버린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시절 속에서 아버지가 군인-형제, 군인이라는 공통점 하나로 형제 같은 관계가 된 이들과 무람없이 지낸 것이 추억 속의 음각화로 남아, 자신 역시 군인-형제가 있는 중사가 되면 좋겠다는 꿈을 꾸며 나이를 먹어갔다. 십여 년이 흘러 뉴욕주립대 플랫츠버그 캠퍼스에서 재무, 마케팅, 경영 수업을 듣다가 무역센터 빌딩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되자 충동적으로 친구들과 입대해버리고 만다. 그러나 브렛을 제외한 친구들 거의 모두는 입대취소를 결정한다. 2002년에 거의 모든 미국인들은 전쟁에 나갈 사람들은 흑인과 히스패닉 등으로 구성된 미국 하층민이란 걸 이미 알았고 국방부마저도 이를 파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국의 하층민으로 구성된 이라크 주둔지의 사병들의 세계에서 백인에다 대학까지 다니다가 군대에 지원한 브렛이 제대로 적응하기는 매우 곤란했던 모양이다. 킨케이드는 주둔지 키르쿠크에서 먹시, 브로카, 머핸, 라미레즈와 함께 조를 이루어 작전을 수행 했다. 주 업무는 전투이고 남는 시간, 사실 전쟁 중 가장 많은 시간은 전투가 아니라 ‘남는 시간’인데, 하여간 여유시간을 이용해 이들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애’들을 집단 윤간하고, 장면을 목격한 여자애의 가족들을 ‘처리’, 즉 몰살을 한다. 기념으로 살아 있는 소녀의 얼굴을 스위스 군용칼로 도려내고, 의료용 가위로 새끼손가락을 절단 후 살해하고, 브로카는 이를 휴대전화로 사진 촬영을 해 기념으로 보관했다. 이들 미군의 시각으로 볼 때 ‘미친’ 킨케이드는 이런 행위를 군 당국에 고발하지만 친구들, 소위 군인-형제들은 그에게 머저리 고자질쟁이이며 보복당할 거라고 경고를 하더니 진짜로 우군에 의해 고의로 터진 수류탄 파편에 치명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된 후 퍼플하트 훈장 하나를 받고 의병제대를 하고 만다.
  크게 말하자면 경계성 인격 장애를 가진 크레시다의 실종을 다룬 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실종된 날, 크레시다는 언니 줄리와 파혼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자신이 오랜 세월 짝사랑했던 브렛을 만나기 위해 늦은 밤에 건달, 술꾼들이 모이는 울프스헤드 호숫가의 술집 로벅인으로 갔다가, 그와 맥주 한 병을 마시고 브렛이 모는 랭글러를 타고 호수 주변을 달리다, 신경정신 치료약과 알코올을 함께 복용한 브렛의 혼몽한 의식 속에서 작은 사고가 나고, 그녀는 사라져버린다. 어떻게 된 걸까. 조수석에서 크레시다와 같은 B형 혈액이 몇 방울 떨어져있고, 역시 크레시다와 같은 검정 머리카락 몇 올이 발견되었으나 며칠, 몇 주가 지나도 크레시다의 시신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이렇게 곁가지 다 치워버리고 크레시다의 실종에만 초점을 맞춰 읽으면 독자는 편하다.
  근데 나는 이라크 최대 유전지대 키르쿠크에서의 에피소드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아서 책을 읽는 내내 문제였다. 마이클 치미노가 감독한 영화 <디어 헌터>를 자주 소환하게 된 것. 조이스 케럴 오츠의 관심은 절대적으로 이라크 전 참전 미국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 참전 군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때문에 스스로 최고의 아내감인 줄리와 파혼을 하고, 알코올 중독자 비슷하게 삶을 포기한 상태에서 전 약혼녀의 여동생을 강간 살인한 것처럼 보이고, 자기가 진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는 강간 살인을 오로지 죽기 위해, 사형당하기 위해 자백하고, 중죄인 남자 교도소에서 복역하는 일. 반면에 저 대서양과 지중해 너머 키르쿠크에서는 한 가족의 아무 죄도 없는 ‘여자애’가 거구의 미국인 네 명에게 집단 강간을 당하는 것을 부모와 오라비와 자매가 눈으로 보아야 했으며, 딸 혹은 누이의 왼쪽 귀 밑에서 턱 쪽으로 얼굴이 절개당할 때도 차마 눈을 뜨고 있어야 했으며, 그들의 기념품으로 자신들의 새끼손가락을 잘라준 후 죽음을 당해야 했던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오츠는 현장을 묘사만 했지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브렛이 이라크 여자 아이가 강간 살해당할 당시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원죄적 죄책감에 시달리기는 한다. 그러나 그의 시각 역시 완전히 가해자의 시선이라는데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가해자, 가해국의 작가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 안 된다고. <카시지>보다 딱 한 발자국 더 나가서 근본적인 문제점을 들추어내, 적어도 공론화시키려 하는 것이 작가가 할 일이 아닐까. 그런 시도가 사회적으로 문제제기가 되건 아니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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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리안 2020-05-2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린 나이에 본 <디어 헌터>의 러시안룰렛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중심인물들 외의 배경은 완전히 의식 밖으로 밀어냈던 것 같습니다. 이 글 읽으며 생각해보니 반전이라는 큰 메시지 하나로 퉁쳐버리기엔 베트콩에 대한 묘사도 찜찜하고 근본적인 모순은 모른 척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Falstaff 2020-05-21 19:49   좋아요 0 | URL
별 거 없는 독후감을 잘 읽어주셨다니 고맙습니다.

케이 2020-05-22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진 않았지만, 디어헌터에 대해 쓰신 내용에 너무 공감합니다. 가해한 국가의 사람들은 불의를 보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나˝에 대한 연민과 동정 이상의 것을 도저히 알 수 없나봐요. 피해자에 대해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야할 것 아닙니까. ㅜㅜ 아... 이 소설 저 읽어보려고 했는데 강간씬이 나온다는 걸 사전에 안 이상 읽지 않는 게 낫겠습니다. 리뷰 감사합니다.

Falstaff 2020-05-22 12:00   좋아요 0 | URL
아, 씬, 장면에 관한 세밀 묘사는 전혀 없습니다. 그냥 단어만 써서 설명을 할 뿐입니다. 근데.... 오츠가 좀 그로테스크한 면이 있기는 하고요.
<디어 헌터>야말로 진짜 미국적인 작품이라 생각해요. 이 책도 역시 미국 소설이고요. 공감하신다니 고맙고 반갑습니다. ^^
 
껍데기는 가라 시인생각 한국대표 명시선 100
신동엽 지음 / 시인생각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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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회가 새롭다. 이제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는 건 물론, 수능시험에 가장 자주 출제되는 문제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1975년에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한 《신동엽 전집》은 나오자마자 박정희 정권에 의하여 금서 처분을 받고, 1979년에 창비시선 20호로 다시 찍은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역시 간행과 동시에 판매 금지에 걸려버렸었다. 하지만 내게는 부모가 사놓은 신구문화사의 《현대한국문학전집》의 마지막 18권 <52인 시집>이 있어 <껍데기는 가라>라는 제목과 신동엽이란 이름이 낯설지는 않았다. <52인 시집>이 나온 1965년 당시에는 많은 시가 당연히 4월 혁명에 관한 것이었으니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가 어린 눈에 그리 명편이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을 터이다. 오히려 학교에서 말랑말랑한 시만 배운 학생의 눈엔 좀 생경스런 시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얼마나 명품인가. 그걸 너무 늦게 깨닫고 만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中立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전문



  당시엔 심지어 몇 달 후에 읽을 조태일의 《국토》마저 금서였으며, 그리하여 선배의 하숙방에서 동녘에 붉은 새벽놀이 질 때까지 밤 새 읽을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다. 참여시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던 정지용의 모든 작품도 마찬가지 굴레가 씌워졌던 시절. 이제 세대가 바뀌어 늦게나마 모든 작품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때가 왔으니 무릇 사람이라면 이런 진보에 환호작약은 아닐지언정 좋은 마음으로 흐뭇해야 마땅할 터, 그리하여 나는 흐뭇하게 생전 처음으로 신동엽 한 권을 내 소유로 사서 기쁘게 감상했다.
  1930년 부여에서 출생한 똑똑한 소년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떡잎이었던지라 열세 살 때 조선팔도에 내로라하는 5백 명의 청소년에 뽑혀 ‘내지 성지 참배단’의 일원으로 보름 동안 일본을 다녀오기도 하고, 1945년 4월에 전주사범에 입학하기에 이른다. 이때 함께 전주사범에 다니던 동기생 가운데 한 명이 키가 커서 신동엽과 별로 교분이 없었던 소설가, <수난 이대>의 하근찬이다. 전주사범에 다니면서 주목해야 할 일이 벌어진다. 당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일제에 부역하던 부르주아들의 기득권을 유지시키기 위해 토지개혁을 흐지부지 끝내버리고 일제 청산 대신 일제 청산을 주장하는 반민특위 지지자 무리들을 싹 쓸어버린다. 신동엽은 이에 항의하기 위한 동맹휴학에 참여함으로써 만 삼 년을 다니던 전주사범으로부터 퇴학처분을 받는다. 당시 나이 19세. 애초에 내성적이고 차분하고 작은 체구로 천생 서생 체질이지만 10대 후반까지 다분히 아나키즘 적인 사상을 일구고 있었다고 하는 걸 이해할 수 있을 것.
  1930년생이면, 우리나라 근대사의 어느 세대가 그렇지 않았겠느냐만, 청소년 시절은 일제 치하와 해방직후 극심한 이념투쟁을 겪자마자 곧이어 한국전쟁에서 가장 큰 희생을 당했으며, 살아남았다 해도 전쟁 후 공황시기를 맨 몸으로 견뎌가면서 한 가족을 일구고 다시 생을 이어가야 했던 세대다. 여기에 아나키즘 적 취향의 왜소한 시인을 대입해보면, 1950년대와 60년대까지를 살면서 감히 아나키즘 적인 발언은 하지 못하더라도 민중위주의 이데올로기적 중립 통일과 평화를 노래한 것이 당연했을 거 같다.
  한국전쟁이라는 한바탕 큰 폭풍은 신동엽의 생애도 거침없이 휩쓸어간다. 당시 단국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던 신동엽은 전쟁이 터지자 인민군 치하의 고향에 돌아와 민청 선전부장을 지낸다. 아무리 신동엽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순진한 아나키즘 적 사회주의자 아니었겠나. 몇 달 후 인민군이 퇴각하면서 신동엽은 부산으로 내려가 전시 연합대학에 다니다가 12월에 소집되어 국민방위군에 편입된다. 전시 중에도 최대한의 착복과 부패로 악명 높던 국민방위군에서 헐벗으며 추위와 굶주림에 그 유명한 1950~51년의 겨울을 견뎌내긴 했으나 결국 방위대가 해체되기 전에 빠져나온 신동엽은 다시 고향까지 고된 길을 걸으며 그만 민물 게를 날 것으로 잡아먹어 겨우 아사를 면하는 처지에 떨어지고 만다. 그리고는 이 때문에 디스토마에 감염되어, 폐와 간을 손상, 후에 긴 세월에 걸쳐 폐결핵(의심증세)과 간암으로 조금씩 번져 결국 눈을 감기에 이르니 그의 나이 겨우 사십 세였다.
  일본어를 거의 모국어 수준으로 사용하다가, 순진한 아나키즘에 경도되고, 한국전쟁을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스스로 겪어냈으며, 동학농민전쟁 지역인 부여 농민 집안의 정체성, 여기다가 60년대 들어서자마자 터진 4월 혁명은 그를 전형적인 리얼리즘 시인으로 만들지 않았을까.
  나는 신동엽을 읽을 때마다 김수영이 말한 “시여, 침을 뱉어라!”의 가장 가까운 쪽에 서서 이 말을 그대로 실천했던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이의 시에 비분강개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랑>이란 시 한 번 읽어보자. 신동엽도 사랑시를 썼으니.



  진하게
  진하게
  모란처럼 소복함 가득 담고 오너라


  참새스런 깡통한, 날매
  가슴차게 안겨오너라


  경憬이여


  장미처럼 매선 향기
  가시로 쏘아라


  화염華艶한 눈웃음은
  다음 장章으로  (전문)



 누가 신동엽 같은 시인에게 사랑을 받았을까? 위 시에서 사랑의 객체 경(憬)은 그의 아내 인병선이다. 북한의 농업경제학자 인정식의 따님으로 어머니와 단 둘이 월남해 갖은 고생을 하다 이화여고를 마치고 서울대 철학과에 입학했으나 신동엽과의 결혼생활을 위해 학교를 때려치우고 부여까지 내려가 양품점을 하며 남편을 먹여 살리던 여인으로 지금은 명륜동에 있는 짚풀생활사박물관장으로 있다는데, 이이의 호가 추경秋憬이다. 신동엽이 비록 짧은 생을 살았지만 아내를 두고 저런 시 한 수 남길 수 있었으니 세상사 큰 아쉬움은 없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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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우리나라 세계문학전집 가운데 정말 특색 있는 작품들이 많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이고요. 도대체 이런 작품을 찍으면 우리나라 책 시장에 먹힐 수 있을까 싶은 책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이야말로 이 총서의 진짜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이 팔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는 작품을 소개하는 일이 사실 ‘문화사업’이라 하는 출판 회사의 핵심 역할일 터이니까요. 총서는 현재까지 모두 157권이 출간되었는데 저는 번역시는 전혀 읽지 않는 관계로 시집을 빼고 이 가운데 제가 즐겁게, 공감하면서, 때론 고통스럽지만 많은 걸 얻으면서 읽은 책들을 소개합니다. 문학과지성사가 만든 이 총서의 또 하나의 매력은 시에 있을 겁니다. 다른 출판사들의 전집보다 월등히 많은 빈도수로, 하이네, 아폴리네르, 보들레르, 말라르메, 도연명, 이백 등등 시는 읽어보지 않았어도 이름만 들어도 괜히 기가 죽는 별들의 작품들을 출간했습니다. 이런 시집들은 포함하지 않는 추천이라 사실 반쪽짜리 글이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용기를 내봤습니다. 순서는 총서의 번호 순입니다.




4, 5. 호세 호아킨 페르난데스 데 리사르디, <페리키요 사르니엔토>

 

  무려 1816년 작품. 최초의 라틴 아메리카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으며, 대단히 재미있다. 제목 ‘페리키요 사르니엔토’는 우리말로 ‘옴쟁이 앵무새 새끼’라는 뜻으로 주인공 페르디요 사르미엔토의 별명이다. 참 여러 가지로 웃기는 장면이 나온다. 심지어 작품의 앞 쪽에 보다 더 효과적으로 자식농사를 망치는 법이 나오기도 한다. 프랑스 혁명 전에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해 19세기 초에 완성을 했으니 다분히 계몽적인 소설이라는 건 참작을 하시라. 하지만 당시 백인의 시각을 봐서 대단히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기도 하다. 매우 자유로운 사상을 가진 예상 외의 인물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을 것.


 

 


9. 안토니오 부에로 바예호,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 어느 계단의 이야기》

  스페인 내란 때 공화당을 지지해 형과 아버지가 총살을 당하고 자신은 감방에 박혀 구상한 희곡이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란다. 두 번째 작품이 <어느 계단의 이야기>. <타오르는....>은 부르주아의 맹인 자제들이 다니는 학교. 차이콥스키의 <이올란타> 장면이 떠오른다. 부르주아 자제들은 자신이 맹인인 것을 모른다. 완전히 규격에 맞는 정형화된 학교에 도착하는 순간 지팡이를 집어던지고 거의 완벽하게 자유로운 생활이 가능하도록 디자인된 교실에서 행동하니까. 세상 사는데 눈은 슬플 때 눈물을 흘리라고 하느님이 만들어낸 기관일 뿐. 여기에 하늘에 무수하게 박혀 있다고 하는 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호기심을 갖는 이상한 전학생 이그나시오가 등장하며 이야기는 묘하게 틀어지는데, 재미있겠지? 명작 드라마다. 두 작품 다.


 


10, 11. 이반 알렉산드로비치 곤차로프, <오블로모프>

 

  러시아 문학을 읽으려면 피해갈 수 없을 걸? 내가 읽어본 가운데 가장 게으른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부르주아 귀족으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 막대한 유산까지 유증 받아 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필요 없이 살 수 있는 상팔자 인간 오블로모프. 호화로운 넓은 침대에 누워 읽던 신문 한 장을 침대 아래로 떨어뜨리면 가비얍게 벨을 눌러 하인을 불러서 떨어진 신문을 주워달라고 부탁하면 그만인 인생. 좋을 거 같지? 하나도 안 부럽다. 이런 인간을 세상이 그냥 내버려둘까. 그저 꼬이느니 사기꾼에 양아치들, 재산이 조금씩 거덜이 나도 게으른 오블로모프는 지금 자기 형편이 어떻게 되가는지 모르는 잉여인간으로 점점 추락하고 있으니.

 


 


31. 미셸 뷔토르, <변경>

 

  누보 로망 작품. 대산세계문학총서에 이 책 말고 알랭 로브그리예가 쓴 대표적 누보 로망 작품 <밀회의 집>과 나탈리 사로트의 <어린 시절>이 있으나 로브그리예의 미분적 분석과 해체, 사로트의 완벽하게 건조시킨 문장들보다 이 책을 권한다. 로마에 애인을 둔 파리 남자가 기차를 타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자기 앞자리에 탄 인물들, 창밖 풍경, 자신의 직업인 타자기 판매, 연인과 만나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공상 등을 나열하지만 사실 사건이라고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 꼭 무슨 일이 벌어지고 스토리가 전개되어야만 소설이라는 형식이 완성되는 건 아니니까. 혹시 누보 로망은 읽고 싶은데 로브그리예와 나탈리 사로트 등이 지독하게 건조하다고 생각이 든다면 최고의 대안이 될 듯.


 

 


35.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 팡타그뤼엘》

 

  무려 1532년 작품. 말이 16세기 소설이지 온전히 지금 시각으로 읽는다면 두 편의 소설이 도무지 ‘문학’작품으로 읽히지 않을 수도 있으니 정말로 책을 읽으실 분은 미리 알아두시라. 그래도 될 수 있으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을 권하는데, 그건 프랑스 소설을 비롯해 무수한 유럽, 아메리카 소설 속에서 <가르강튀아>를 변주,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 라블레는 이 책을 고매한 술꾼과 고귀한 매독환자 여러분한테 헌정하고 있을 정도로 당시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해 볼 때는 매우 난잡하고 불순한 묘사가 넘쳐나지만 지금 읽으면 애교 만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경악할 수준의 과장과 해학과 익살로 일관하는 이 작품의 어디가 그토록 많은 작가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을까, 한 번 생각해보셔도 좋겠다.


 

 


39. 이보 안드리치, <드리나 강의 다리>

 

  강력추천. 보스니아. 하필이면 동서의 분기점에 자리 잡아 역사 속에서 언제나 전쟁의 현장이 됐던 곳. 다른 민족들이, 다른 종교를 가진 집단들이 하필이면 이 땅에 몰려와 싸움을 하던 드리나 강의 이 언덕과 저 언덕 사이에 16세기 초반, 웅장한 아치형 다리를 건설한다. 다리의 건설을 둘러싼 전설적인 이야기들과 이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약 4백년에 이르는 다리 주변 원주민들의 신난고난한 이야기들. 다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사람들이 벌이는 사건들에 관해 풀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 싸움과 죽음을 넘어 공존과 화해에 이르기까지, 이 책을 읽는 당신, 결코 후회하지 않으리라.


 

 


65. 모옌, <홍까오량 가족> 또는 <붉은 수수밭>

 

  원래는 박명애 번역의 <홍까오량 가족>이었으나 박씨와 계약이 끝났는지 역자를 바꿔서 제목을 <붉은 수수밭>으로 다시 내놓았다. 나는 <홍까오량 가족>으로 읽었고 굳이 <붉은 수수밭>마저 읽을 정성은 없다. 말이 필요 없는 모옌의 대표작. 중국소설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데, 아무리 안 좋아해도 이 작품의 일독은 권할 수밖에 없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 초까지 위대한 강태공의 제나라 땅에서 벌어진 남녀상열지사에다 항일 전쟁의 불행하고 참혹하고 참담한 광경을 읽기에 재미있으면서 실감도 나는 표현으로 일관한다. 영화 <붉은 수수밭>보다 훨씬 재미있다. 무척 길지만 한 번 첫 페이지를 열었다하면 날 새는지 모르고 일박 이일이면 해치울 수 있을 터.


 

 


71.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 <별과 사랑>

  폴란드인 아버지, 파리 출생, 멕시코에 정착한 복잡한 인류, 포니아토프스카. 로렌소 데 테나라는 이기적 지식인의 일생. 그의 이기심은 그러나 멕시코의 발전을 위한 헌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스스로도 천문학 연구를 빼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이 많은 어린애 수준의 인간. 대부분의 천재가 이런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이 하던 일에 관해서 한 번 옳다고 생각하면 그게 증명될 때까지 온갖 무리를 써가며 고집을 부린다는 것. 그게 주위의 많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걸 본인만 모르는 편. 멕시코를 위시한 라틴 아메리카 특유의 환상소설 기법을 과감하게 배제한 리얼리즘 소설.


 

 


72, 73. 쓰시마 유코, <불의 산>

 

  쓰시마 유코는 다자이 오사무의 딸. 다자이 오사무를 좋아하는 분들 많지만 난 그이보다 쓰시마 유코가 백 배 더 좋고, 글도 백 배 더 잘 쓴다고 생각한다. 메이지 유신 시대부터 태평양 전쟁 패전까지 5대에 걸친 가족사 이야기. 5대에 걸쳤으면 그게 아무리 보통의, 평범한, 별 거 없는 집안이라도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장면이 하나쯤 있을 건 분명하고, 너무 웃어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장면 또한 하나쯤 있을 것도 분명하다. 작품의 시간적 공간을 이리 길게 잡아놓고, 분량 또한 천 쪽에 이르면 가히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작품이 되기 십상이다. 이 책은 이런 의견이 매우 타당하다는 증거가 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섬세한 문장으로 탄탄한 벽돌집을 만들어내고 있다.


 

 


82. 알프레트 안더쉬, <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

 

  이 총서의 진짜 매력 가운데 하나가 처음 듣는 작가의 좋은 작품을 많이 소개하는 일. 이 책도 그중의 하나다. 안더쉬가 47그룹의 일원이라 하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 안더쉬는 1937년의 (함부르크 근방쯤으로 상상할 수 있는)독일을 무대로 광활한 대양을 건너는 호연지기를 품은 소년과, 그냥 독일에 머물겠다는 딸을 위해 독약을 먹고 숨을 거둔 어머니의 뜻을 따라 외국으로 도망할 계획인 유대인 유디트 아가씨, 더 이상 공산주의 운동을 하면 이젠 다하우에 끌려가 흰 연기가 되어 나올 수 있다는 아내의 바가지 때문에 이젠 공작원과의 접선을 꺼리는 어부 크누트센 등이 등장하고, 무엇보다 퇴폐미술로 찍힌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목각 <책 읽는 수도사>를 지키려 애쓰는, 몸 아픈 목사 헬란더 등이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바 작지 않다. 짧지만 예상외의 감동을 줄 수도 있는 책이니 유념하시라.


 

 


87. 토마스 브루시히,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

 

  동독인으로 독일의 통일을 바라보는 입장은 어땠을까? 말이 동서 동격에 의한 합의 통일이지 누구나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인 것을 아는 바에. 40년이 넘게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통일이라는 낯선 현실을 만나는 어색한 순간을 변화가 그리 심각하지 않은 시절의 1965년생 작가 토마스 브루시히가 때로는 익살스럽게, 가끔 통렬하게, 자주는 희화적으로, 열 명 가량의 서로 다르고 낯선 등장인물들이 이리저리 얽혀 크게 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작품으로 나는 이 한 권으로 브루시히의 팬을 자처했다. 그의 다른 책들이 모두 절판이라 더 읽을 책이 없는 게 아쉽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죽음을 맞는 법도 소개하는 책이니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한 번씩 읽어보시면 좋겠다.


 

107. 맬컴 라우리, <화산 아래서>

 

  엉덩이가 질기거나 인내심이 좋은 독자에게 추천. 처음부터 끝까지 술 마시는 이야기. 1938년, 알코올 중독 증세가 있는 영국 영사 제프리 퍼민이 멕시코 고유의 축제 11월 2일 ‘죽은 자의 날’ 열두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을 섬세하게 담았다. 퍼민은 영국이 멕시코와 국교를 단절하는 바람에 귀국을 포기하고 멕시코의 악명 높은 두 화산 사이의 마을에 은둔하며 살고 있는데, 사실 은둔이라기보다 알코올 중독, 술을 마셔도 너무 마셔서 아내 이본, 가족과 친척, 그리고 조국에 의하여 버림받은 신세에 떨어졌다는 것이 옳은 상태. 책은 결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과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전편을 타고 흐르는 애잔한 슬픔이 아름다움으로 변환하는 행간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116. 슈테판 츠바이크, <초조한 마음>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굳이 추천을 하지 않아도 다들 찾아 읽으실 책. 요사이 우리나라에 츠바이크 신드롬이 퍼져 그가 쓴 작품이라면 구별하지 않고 거의 베스트셀러의 수준으로 판매가 되는 거 같은데 그중에서 <초조한 마음>이 문학적 완성도가 가장 돋보이지 않나 싶다. 물론 아마추어가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헝가리 외곽지대. 파견 온 호프밀러 소위와 지역 유지의 선병질적인 외동딸 에디트 케케스팔바 사이의 사랑과 연민과 불행. 이런 스토리보다 주인공들에 대한 놀라운 심리묘사가 훨씬 돋보인다.


 

 


120. 엘리자베스 클레그헌 개스켈, <남과 북>

 

  마거릿 헤일과 존 손턴. 마거릿은 애정과 인정 많고 자주적인 성격의 남부 출신이고, 존은 냉정하지만 매사 정확해서 똑 떨어지고 개혁적인 성격인 북부 깍쟁이 사업가. 이들이 결혼해 한 가정을 이루어 공장 바로 옆에서 신혼살림을 꾸린다. 개스켈은 놀랍게도 조지 엘리엇의 시대인 1855년에 남녀의 갈등구조를 자본가와 임금노동자들의 대조적인 삶의 형태로 구분해놓고 결국 인정 많은 마거릿의 포용을 존이 받아들임으로써 해피엔드로 만들어낸다. 역시 처음 읽은 개스켈이었고, 이 책으로 이이의 다른 책을 찾아 읽기 시작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해서 개스켈은 당시에 이런 시선을 가질 수 있었을지 매우 궁금해 했던 기억이 난다.


 

 


133, 134, 135. 페터 바이스, <저항의 미학>

 

  이 책이야말로 엉덩이 질기지 않으면 애초에 포기하시라. 거대한 주제들을 장대한 분량으로 장황하게 써내려간 바이스의 놀라운 작품. 난 이 책에 소위 뻑 갔지만, 이후 바이스의 다른 작품에 도전하기가 머뭇거려져 겨우 <소송, 새로운 소송> 한 편만 더 읽었을 정도다. 책을 출간한지 4년이 넘었는데 올라온 독자서평은 내가 쓴 잡문 하나뿐이다. 작품이 너무 방대해 짧은 평으로 쓰기가 쉽지 않다. 수다한 미학적 관점으로 본 예술작품들과 공산주의 운동, 2차 세계대전 전후의 세계정치 같은 것들에 관해 거의 논문 수준으로 설명이 되어 있다. 시간이 넉넉한 분들은 차분한 마음으로 꼼꼼히 읽을 수만 있다면 양질의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일 터이다. 하지만 정작 책은 사 놓고 추천한 나를 욕하기 없기.


 


147. 리온 포이히트방거,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

 

  “도대체 18세기 말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시작한다. 유대인 작가 리온 포이히트방거가 나치 치하에서 외국에 체류하고 있다가 퇴폐문학 혐의로 그의 모든 저서가 불태워지는 화를 당했는데, 당시를 18세기 말의 스페인 왕실에 횡행했던 어처구니없는 미신에 비유한 건 아닐까? 여기에 18세기 기준으로는 매우 발칙하고 맹랑한 화가가 있었으니 벨라스케스의 뒤를 이어 유명 궁정화가가 되는 프란시스코 고야. 그래도 스페인 궁정과 왕실은 고야가 자신들을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린 가족 초상화를 보고 바보처럼 훌륭한 작품이라 했을지언정 탄압하려 하지 않았고 고야가 자유로운 주제로 그림과 판화를 그리고 만들 수 있게 내버려 두었다. 재미있는 책이지만 좀 길다. 해설까지 합해 약 830쪽. 역시 인내력 테스트에 통과하신 분들에게 추천.


 

 


156. 마거릿 드레블, <찬란한 길>

 

  <찬란한 길>, <타고난 호기심>, <상아의 문>으로 이루어진 3부작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라 하는데, 640쪽 분량의 장편을 다 읽으면 나머지 두 편도 얼른 번역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생긴다. 삼부작 중 첫 작품은 1979년 12월 31일 새해 이브 파티로 시작한다. 평생 여섯 명의 남자와 자본 적이 있는 주인공 리즈는 이 파티에 이름도 모르는 네덜란드 남자를 제외하고 다섯 명을 불러놓고 흐뭇한 마음으로 이들을 바라다보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없는 집 출신이지만 깨나 성공한 리즈와 그렇지 못한 그의 두 친구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시절의 신자유주의 시대를 만나 휘몰아치기 시작하는 영국사회를 관통하는 이야기를 그렸다는 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나머지 두 편이 그리울 정도로 재미있는 책.


 


 


  번외
  이 책들 말고도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 헨리 필딩의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개척자들>, 이탈로 스베보의 <제노의 의식>,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트리스트럼 샌디>는 오래된 책이지만 여전히 포스트 모던하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세련되고 기발한 아이디어가 만발한 작품으로 다른 출판사를 통해 읽은 책입니다.

 

  <업둥이 톰 존스 이야기>는 19세기도 아니고 18세기 작품이라 이제 현대 독자에게 흥미를 이끌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만 유럽의 여러 작품 속에서 고루 인용하는 책이라 참고삼아 읽을 수 있습니다. 다만 두 권으로 되어 있어 책 읽는 시간도 많이 필요해 과감하게 추천하지는 못하는 심정, 이해하시리라 믿습니다.

 

 

 

 

  <개척자들>은 <모히칸 족의 최후>에서도 나오는 내티 범포, 가죽스타킹으로 특히 다른 미국소설에 많이 재등장하는 인물입니다. <개척자들>이 너무 길고 지루하다고 생각하시면 대신 <모히칸 족의 최후>라도 읽어두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제노의 의식>, <파우스트 박사>,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무조건 읽어주어야 하는 명작입니다만 저는 다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읽었습니다. 특히 <제노의 의식>은 대산세계문학총서가 유일한 직역이니 이 책을 선택하시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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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5-15 0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산세계문학총서 정말 소중하죠!
폴스타프 님이 말씀하신 책 중 제가 안 읽은 것도 많지만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 어느 계단의 이야기》
<오블로모프>
<초조한 마음>
<거장과 마르가리타>
<제노의 의식>

이건 정말 강력 추천합니다.

특히 <타오르는 어둠 속에서> <오블로모프> 이건 정말 안 읽고 이 세상 떠나는 분들은 후회할 명작. ㅎㅎㅎ <오블로모프>는 올해처럼 집콕할 때 한 번 더 읽어봐야겠어요. 침대에 누워서 ㅋㅋㅋㅋㅋㅋ

Falstaff 2020-05-15 10:15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대산총서 진짜 대박이예요. 위에 쓰지 않았지만 리스트에 올릴까 말까 고민한 것들도 많아요. ㅋㅋㅋㅋ

다락방 2020-05-15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에서부터 쭉 읽어내려오면서 어쩌면 이렇게 읽은 작품도, 아는 작품도 없단 말인가! 하다가, 드디어 가지고 있는 몇 개의 작품을 만나게 되네요. <드리나 강의 다리>, <남과 북>, <홍까오량 가족>을 제가 가지고 있는거 아니겠습니까. 아직 읽지 않았지만요.

<남과북>은 글 쓰신 거 보니 남주와 여주가 결혼해서 사는 이야기들이 나오는가 보군요. 저는 영화로 먼저 보았는데, 거기서는 결혼해서 사는 것 까지 나오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하거든요. <붉은 수수밭
>도 중학생 때 공리 주연의 영화로 먼저 보았는데, 그 때 어린 나이에 꽤 지루하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소설로 읽으면 또 이렇게나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그래서 사둔 책일텐데... 왜 안읽고 있을까요?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아주아주 힘겹게 며칠에 걸쳐서 읽은 기억이 나요. 러시아 소설 특유의 그 낯선 이름들이 튀어나오는 통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던것 같아요. 다 읽고서는 다 읽었다는 해방감만 느낀 책이었어요. 한 번 더 읽으면 좀 더 쉽게 읽지 않을까 생각하긴 했지만 차마 다시 읽을 엄두는 나질 않는 책입니다. <초조한 마음>은, 크, 저도 엄청 좋아햇던 책이에요. 서투른 연민은 사람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 감탄하면서 읽었더랬죠.

최근 읽은 <출신>에서도 <드리나 강의 다리>작가가 언급되는데, 어휴,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책들, 먼지도 털겸 읽어야겟어요. 방금전까지 장바구니에 책 담으면서 책 사려고 으르렁댔는데, 저는 살 필요가 없네요. <드리나 강의 다리> 읽으려고 했는데, 1박2일이면 읽는다는 <홍까오량 가족>을 먼저 읽을까봐요.

아, 이 페이퍼 너무 신나네요. 별찜해두어야겠어요. *^^*

Falstaff 2020-05-15 10:21   좋아요 2 | URL
읍. 다락방님께서 제 서재까지 마실을 해주시다니 감격입니다.
가지고 계신 세 권의 책, 재미있는 걸로만 고르셨네요.
근데 이 시리즈는 독자는 생각하지도 않고 문학성 또는 문학적 가치 위주로 작품을 고르는 것 같아서, 전 이게 제일 불만이고, 동시에 이 시리즈를 가장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하여튼 쉽게 읽히는 책이 별로 없더라고요.
종종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coolcat329 2020-05-15 11: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 폴스타프님의 이런 글 정말 정말 좋아합니다. 아는 작가가 모옌 , 츠바이크밖에 없지만요. <오블로모프> 꼭 읽고 싶네요. <초조한 마음>도요.

Falstaff 2020-05-15 12:30   좋아요 2 | URL
ㅎㅎㅎ 기꺼운 마음으로 읽어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좋은 선택을 하셨군요.
하여튼 이 총서는 매번 각오하고 책을 사셔야 할 겁니다. 만만하게 그냥 휙 넘어가는 책이 거의 없어서요. ^^

잠자냥 2020-05-15 12:46   좋아요 1 | URL
<오블로모프>는 정말 새롭고 강렬한(?!) 캐릭터를 만날 수 있고요.
<초조한 마음>은 한번 잡으면 내려놓기 어려울 정도로 재미나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GoldenSlumber 2020-05-18 10: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문지판을 먼저 읽었지만 개인적으론 민음사판 번역이 훨씬 좋았습니다. <초조한 마음>, <붉은 수수밭>도 좋아하는데 추천해주시니 반갑네요^^

Falstaff 2020-05-18 10:30   좋아요 1 | URL
<거장...>이 그렇군요.
전 민음사 판으로 읽고 어딘지 조금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지금 다른 출판사 판으로 한 번 더 읽어볼까, 망설이고 있는 중이거든요.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