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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수 없는 일이야 ㅣ 현대지성 클래식 16
싱클레어 루이스 지음, 서미석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1월
평점 :
루이스 작품은 미국 중서부의 백인 중산층 부동산소개업자 배빗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들의 속물성을 풍자한 <배빗Babbit> 딱 한 권 읽었다. 작품이 나름대로 재미있고 생각이 발칙해 귀여운 작가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글쎄 이이가 미국문학에서 과대평가되어 있는 소설가라서 지금이라도 당장 평가절하를 해야 한다고, 미치너의 <소설>에서 평론가와 편집자가 진지하게 대화하는 장면을 읽었지 뭔가. 그래 다른 소설의 경우는 어떤가 싶어서 사 보게 되었다. 물론 이런 평을 알게 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책방 보관함에 꿍쳐두었던 소설책이지만 하여간 결정적으로 집어 들게 된 건 그런 이유다.
미국의 역사를 보면 1776년 7월, 독립전쟁에 승리함으로서 독립선언을 하게 되는데, 이후 15년이지나 1789년에 미국의 초대 대통령에 취임하는 조지 워싱턴이 3대 대통령 추대 거절 이후 유일하게 3선을 하는 프랭클린 루스벨트(1945년 졸)를 빼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까지, 선한 관습법으로 또는 1947년에 개정한 미국 수정헌법 22조에 의거하여 누구도 2선을 초과하여 대통령의 직을 수행한 사람이 없다. 한정된 권력만을 사용하게 허락함으로써 미국은 어느 대통령도 독재 정치를 행할 기반을 제거해버렸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미덕인데, 이 책은 수정헌법 22조를 공포하기 전인 1936년부터 1939년까지 3년 조금 미치지 못한 시기동안, 미국에서도 독일, 이탈리아, 일본, 터키, 소련과 유사하게 독재자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라는 상상력을 보여준다. 책의 초간이 나온 시기가 1935년. 그러니 디스토피아에 입각한 미래소설, 또는 가상 역사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인터넷 책방에서만 읽을 수 있는 출판사 책 소개를 보면, 1980년대 중반에 장안의 화제가 됐던 미국 드라마 <V>가 이 소설을 바탕으로, 또는 이 작품이 모멘트가 되어 만들었다는데, 뭐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듯하고, 달리 생각하면 참 잘도 가져다 붙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1930년대 초중반에 미국에서도 독재자가 발호한다는 싱클레어 루이스의 생각은, 당시 키 작은 독일의 독재자나 검은 유니폼을 입은 이탈리아의 두체, 그리고 동토의 땅에 자리한 스탈린이라는 이름의 북극곰을 관찰해서, 각개의 악마적 특징을 미국 땅에서 그대로 적용시키면 소설로 작업하기가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참 독특한 아이디어이긴 했을 터이다. 1936년 겨울. 미합중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민주당 차기 대통령 지명대회에서 전 국민에게 연 5천 달러의 수입을 공약한 버질리어스 윈드립 상원의원에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리를 넘겨주고 만다. 윈드립은 기세를 몰아 대선에서도 공화당 후보를 단방에 넉 다운 시키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데, 오랜 세월 동안 다락방 구석에 처박혀 먼지만 켜켜이 쌓아왔던 단어 ‘각하’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불러주기를 바란다. 놀랄 만큼 명석한 참모 리 새러슨은 곧바로 대통령의 사병조직 미니트맨, 언제라도 대통령을 위한 출동을 대기하고 있어서 명령만 내리면 곧바로 행동한다는 의미로 Minute Man들을 전국적으로 구성해 단숨에 경찰력을 장악해서 조직을 급속히 거대화하고, 국가의 행정구역을 새로 재편해 각 단위의 우두머리로 전국적 양아치들을 수집해서 한 자리씩 주고는 이름을 ‘코르포스’ 즉 'Corporate'의 약칭이자 복수형인 'Corpos'라고 칭한다. 이어서 당연한 수순으로 야당과 공산당, 유대인, 학자, 언론인, 기타 체제에 반감을 가질 소지가 높은 지식인들을 중점으로 숙청을 하고 전국에 대형 수형소를 건설해 잔인한 고문과 총살형을 재판도 거치지 않고 집행해버린다.
이 책의 주인공은 책이 시작할 때 60세로 출발하는 언론인 도리머스 재섭. 언론인이라고 해도 뉴욕이나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지에 있는 굴지의 언론사 대표라는 말은 아니고, 지역 신문을 운영하면서 주필도 겸하고 있는 나이든 신사 정도로 생각하면 될 터. 지역사회에서 신망을 얻고 있고, 기본적으로 진보적 성향을 취하고 있는 지식인이지만 공산주의에, 정확하게 말해 모스크바에 터를 잡고 있는 독재자 집단에게는 묘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데, 싱클레어 루이스 자신이 공산주의와 어울리기엔 너무 고상하거나 속물적인 사람이었을 듯하다. 재섭 씨는 윈드립 정권이 하는 일마다 마음에 들지 않고, 해도 너무 한다고 숱하게 불평을 하지만 성향 자체가 내놓고 웅변하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그냥 그렇게 소나기를 피하는 심정으로 나날을 견디고 있는 상태. 자기 집 하인 비슷하던 덩치 크고 게으르기만 한 섀드 레듀가 하도 버릇이 없어 견디다 못해 해고하자마자, 레듀는 미니트맨에 들어가고 급기야 지역 군수 정도의 자리를 차지해서는 사사건건 재섭을 물 먹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재섭의 머릿속에 벼락같이 떨어지던 자각. 이것이 책의 주제인데, 지금의 독재 상태에서 온 국민이 겁박을 당하며, 미국이 벌일 다음 전쟁으로 수많은 미국 청년을 죽음으로 행진하게 만드는 이 모든 일이 바로 자기, 도리머스 재섭과 같은 이들, 숱한 재섭들의 책임이라는 것. 생각 속에는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들의 책임. 이를 통감한 도리머스 재섭은 곧바로 반정부 투쟁에 들어가 지하 신문과 유인물, 소책자들을 인쇄, 배포하기 시작한다. 내용은 이하 생략.
싱클레어 루이스는 독재정권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다. 따라서 책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의 전부가 자신의 뇌 속에서 재구성한 그림들일 것이며, 그것들은 1935년 이전에 독일, 이탈리아, 터키, 러시아 등에서 벌어진 일을 신문이나 책에서 읽고 자기가 살을 더 붙여 만든 것이리라. 책 속의 독재 체제에 신음하는 미국 사회를 읽어보면, 멀리 갈 것까지도 없이 1980년대 중반까지의 대한민국과 현재 시점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겪어본 사람은 단박에 공감을 할 것이다. 지독한 수준의 경찰국가. 그리고 우습게도 ‘아주 조금’은 2019년의 대한민국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완벽한 민주주의 국가는 아니라서 그런지 몰라도.
이런 책이 하필 독재 체제를 경험하지 못한 미국에서 나와서 그랬을까. 한껏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설명하고 있는데, 숱한 죽음과 고문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어째 공감이 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수십 년 전에 읽은 <안네의 일기>에도 미치지 못한다. 왜 그럴까. 이유는 혹시 작가가 반독재 투쟁에 절실하지 않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투쟁의 경험이 없어서 그랬을까? 정작 당대에 파시즘 또는 지독한 독재에 시달리던 독일, 이탈리아, 터키, 러시아에서는 이 비슷한 글은 쓸 엄두도 내지 못했으리라. 이건 언제나 벌어지고 있는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