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리처드 플래너건 지음, 김승욱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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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사람에겐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겐 과거만 있다.” (15쪽)


 주인공이자 외과의사이며 퇴직 대령인 도리고 에번스는 이것이 어디서 읽은 말인지, 스스로 만들어낸 말인지 도무지 알아내지 못한다. 여태까지 세상의 모든 소설 가운데 “긴 터널을 지나자 그곳은 설국이었다.”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품의 첫 문장.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그러나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첫 문장을 고르라면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를 들어야 하리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박형규 역, 문학동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연진희 역, 민음사)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모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이명현 역, 열린책들)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윤새라 역, 펭귄클래식 코리아)


 정말 숱한 소설이 이 문장을 인용 또는 변용한다. 이 문장을 변용한 “행복한 사람에겐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겐 과거만 있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과거가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남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진혼곡이다.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는 두 가지 과거를 지니고 있는 인물. 한때 고모부였던 키스Keith의 두 번째 아내 에이미. 굳이 관계를 따지자면 움고모다. 우연히 책방에서 만나 얼굴을 읽힌 에이미. 아미-아망트-아무르 ami-amant-amour 친구-연인-사랑을 뜻하는 단어들의 연상시키는 이름 에이미. 옛 고모부가 운영하는 호텔에 들러 우연히, 그리고 극적으로 재회하자마자 둘은 급격하게 친해지고, 사랑하게 되고, 몸을 섞는다. 첫 관계는 두 번째 불륜을 쉽게 만들고, 태평양전쟁 참전을 앞둔 에번스는 타는 갈증으로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에이미를 향해 달려간다. 약혼녀 엘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밀접한 관계를 이미 알고 있는 늙은 고모부의 마음은 어땠을까. 고모부 키스가 자기 처, 에이미에게 자신이 알고 있었음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심정을 고백하는 기분은. 전쟁에 뛰어들기 전에 약혼 상태에서 우연히 만난 치명적인 사랑에 대한 과거. 나중에 알게 된 고모부 호텔에서의 가스 폭발 사건으로 에이미는 에번스의 가슴에 깊은 낙인을 찍어버리고 영원히 과거로 남게 된다.
 다른 과거는 트라우마. 자바 섬에서 일본군 포로로 잡힌 군의관 에번스 대령. 그는 900명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포로와 함께 시암(타이)과 버마(미얀마) 국경을 연결하는 철도 공사를 위해 밀림으로 끌려간다. 그곳에서 만난 포로 수용소장이자 철도 건설대장 나카무라 소령.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은 서양인답게 노래하고, 휘파람 불며, 약식 연극 <워터루 다리: 우리나라 개봉은 ‘애수’>를 가설무대에 올려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를 흉내 내기도 하지만, 긴 행군과 열악한 급식, 가혹한 구타와 노동으로 점차 활기를 잃어간다. 일왕을 위한 철도 가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예전에 국제극장에서 본 데이비드 린 감독의 <콰이강의 다리>가 얼마나 형편없게 미화시킨 작품이었는지 화가 났다. 그렇다. 화가 나더라.
 영화에서는 경쾌한 ‘보기 대령 행진곡’을 깔고 콰이 강에 철도를 놓기 위해 작업장으로 절도 있게 행진해 들어가, 영국군과 영국인과 조지 4세를 위해 씩씩하게 일치단결된 힘을 다해 다리를 놓고 철길을 닦는 군인들을 자랑스럽게 그려놓았다. 실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철도 가설을 위해 투입된 군인들은 앞에서 썼듯이 열악한 급식, 구타와 극한의 노동, 그것도 모자라 말라리아, 콜레라, 이질, 뎅기열, 부종, 각종 감염증으로 숱한 인원이 희생됐고, 살아남은 자들도 영양실조로 앙상하게 뼈만 남은 상태였다. 전쟁이 끝나 구조된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들의 모습과 영화 <콰이 강의 다리>에서 포로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비교해보자. 

 

 위는 영화 <콰이 강의 다리>, 아래는 강제노역소에서 해방되어 나름대로 영양 보충을 받고 몸단장도 한 상태에서의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들


 감독이 철도 공사에 동원된 포로들의 사정을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차치하고, 실상을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포로들만큼 출연진들에게 체중을 감량을 요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들이 겪은 참상에 관해서는 더 쓰지 않겠다.
 작가 플래너건이 인도차이나의 철도 가설에 동원된 오스트레일리아 포로들만 묘사한 것은 아니다. 수용소 또는 가설부대에 속한 일본인 장교와 병사, 징병 조선인, 만주국에서의 일본인에 의하여 벌어진 학살과 생체실험, 일본 내에서 이루어진 포로들에 의한 노예 상태의 노동, 그리고 전후 전범 처리까지 다양하게 태평양 전쟁에서 있었던 비인간적 행위와, 소련과 또 다른 전쟁을 염두에 둔 미국의 적당한 타협 등을 파헤쳐 놓았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핵심은 철도 가설 부대 내의 가혹행위와 노예상태, 동서(일본-오스트레일리아) 문화의 이질성에서 오는 포로에 대한 개념 차이 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책은 궁극적으로, 제일 앞에 인용했듯이, 세월이 가도 과거가 삶의 중심에 틀을 잡고 앉아 행위를 조정하게 된 불행한 인간들을 위안할 목적으로 쓰였다. 그리하여 작가는 헌사에 이렇게 써 놓았다.
 “335번 포로에게”
 책 앞날개에 의하면 “실제로 이차대전 당시 일본군의 전쟁포로였던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쳤다”고 한다. 여기에 전쟁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숱한 사람들이 가슴 속 화인으로 찍힌 옛 사랑에 대한 사랑으로의 과거를 첨가해 가을에 읽기 좋은 책 한 권을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인물이 한 명 있었다.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일본계 영국인 소설가. 그가 쓴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의 주인공 마스지 오노. 마스지는 제목대로 탐미주의 화풍을 지닌 화백으로 2차 세계대전 후 전쟁당시에 저지른 모종의 행동으로 국가적 따돌림의 대상이다. 전쟁을 찬미하고 기꺼이 일왕을 위해 젊은 목숨을 바칠 것을 강요했던 예술행위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무수한 젊은이가 죽어나가 자기 딸의 결혼이 여의치 않고, 자신과 어울리는 계급으로부터 은근한 따돌림을 받자, 오직 딸의 결혼을 위해서 전쟁 중 자신의 행위는 잘못됐다는 취지로 ‘반성한다’는 발언을 한다. 그러나 곧바로 이렇게 선언한다.

 

 “저는 이 점(과거 잘못된 행동)을 깨끗하게 인정합니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당시 제가 선한 믿음에서 행동했다는 것뿐입니다. 저는 친애하는 동포를 위해 선한 일을 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제가 실수했다는 것을 이제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 푸른 들판 위의 독야청청한 소나무 같던 화가가 끝내 잘났다고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하는 고백이다.
 이런 인간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에서도 나온다. 시암-버마 철도 건설의 총책임을 맡고 있던 고타 대령. 초급장교 시절 만주에 주둔할 때 차고 다니던 군도로 중국인의 목을 벤 이후 얼마나 숱하게 사람의 목을 베었는지 '참수의 미학'을 깨달은 인물. 전후 조선인 하사관 최성민은 전범재판에 회부되어 교수형에 처해졌으나 현장에서 벌어졌던 모든 학살과 폭행, 노예노동의 책임이 있는 고타는 혈액은행의 중역이 되어 105세까지 천수를 누린다. 이 고토 대령이 왜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에서 나오는 화가 마스지 오노와 겹쳐 보였을까. 고토 대령도 죽기 전에 기회가 있었으면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참회했을 것이다.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 당시 제가 선한 믿음에서 행동했다는 것뿐입니다. 밀림에 뼈를 묻은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병사들의 원혼이 어떻게 되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일독을 추천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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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묘지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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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번역한 역자 이세욱. 24세부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불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단다. 당시 서울사대 불어과를 졸업하면 자동 교사임용이었던가 그랬다. 2017년 1월에 ‘안나 가발다’란 프랑스 여성의 작품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를 출간할 때 책을 낸 북로그컴퍼니의 포스트를 보면 역자 이세욱이 “베르나르 베르베르, 르 클레지오, 미셸 우엘벡 등 프랑스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수십 년간 번역해오신(아 씨, 간지러워!) 프랑스 문학 번역의 베테랑”이며, “이탈리아의 천재 작가 움베르토 에코에 심취하여 이탈리아어를 새롭게 공부한 뒤, 에코의 소설과 에세이를 옮겨서 평단과 독자들의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단다. 에코가 <장미의 이름>을 발표한 것이 1980년. 미국에서 번역 출판한 시기가 1983년. 우리나라는 놀랍게도 일본보다 빠른 1986년. 이세욱이 처음으로 학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쳤던 시기. 이탈리아어는 이때부터 배웠다고 감안하면 2008년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을 번역하기까지 20년 이상의 세월이 있으니 그럴 수 있겠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언어습득에 진정한 수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어 번역을 계속하면서, 심지어 다른 이도 아니고 에코를 번역할 정도의 높은 수준의 이탈리아어까지 구사한다니, 감탄의 넘어 한탄이 나온다. 에고, 여사님. 나도 이런 재주 하나 갖게 만들어주시지 어쩌자고 이 모양 이 꼴로 낳아놓으셨대요, 라고. 그럼 이이는 한국어, 불어, 영어, 이탈리아어, 이렇게 적어도 네 개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거 아냐. 거기다가 이 책 직접 읽어보시면 안다. 우리말도 어찌 그리 잘 쓰는지, 읽어나가는데 전혀 모자람이 없다. 오식이 눈에 띄지만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 가운데 typo 없는 책은 한 권도 없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넘어가기만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매끄러운 한국말 문장, 마치 에코가 한국어로 작품을 쓴 거 같은 느낌을 받는다. 진짜다(아니 조금 과장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책을 펼치면 목차가 나오고 바로 다음 페이지에 ‘일러두기’가 있는데 첫 번째 일러두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

 

 “여기 이 소설은 이탈리아의 대문호 움베르토 에코 선생의 『프라하의 묘지』라 하는 세계적 화제작을 이탈리아어에서 우리말로 옮긴 것이라.”

 

 책의 마지막에 ‘옮긴이의 말’을 빌어 또 이리 썼다.

 

 “번역을 시작하기 전에 에코가 『프라하의 묘지』 번역자들에게 보내는 짤막한 지침을 받았다. 그중에서 문체와 관련된 항목은 두 가지였다.”

 

 본인이 이렇게 얘기할 정도면 정말 이탈리아어 직역이라고 인정해야 하는 거다. 누구처럼 중역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데 이탈리아 출판사에 계속 로열티 지불하는 건 아니겠지. 서울대 홈페이지에도 이세욱을 가리켜 ‘스타 번역가’라 해놓고 대표작으로 에코의 이 책을 꼽는 걸 보면 말이지. 우리나라 출판계가 조금, 아주 조금, 진짜 쬐끔 개판이라 이런 천재가 나오면 의심부터 하게 되는 일(프랑스어 번역 책보고 다시 중역하면서 가끔 원서를 참고한 거 아냐?)이 웃프다, 웃퍼.
 그럼 이세욱이 도대체 누구야? 구글 검색하니 사진이 나오긴 하는데, 남의 얼굴을 함부로 개인 서재에 올리다 나중에 코피 터질까봐 사진 말고 스케치를 골랐다. 사진보다 약 20배는 잘 생기게 그렸다.

 

 

 다시 <프라하의 묘지>로 왔다.
 이거, 남의 일기 훔쳐보는 일이다. 파리에 사는 세 사람의 시선이 나오는데 먼저 화자. 그리고 달라 피콜라라는 이름의 퉁퉁한 신부. 한 명 더. 문제의 인물, 이탈리아 피에몬테에서 1830년에 태어난 시모네 시모니니. 일기는 이 시모니니가 1897년 3월 24일부터 시작해 1898년 12월 20일에 쓰기를 중단한다. 남의 일기를 가끔 피콜라 신부가 훔쳐보며 대담하게도 같은 일기장에 끼어들어 시모니니가 모르는 내용을 끼워 넣기도 하고 사실과 다르다고 시비도 한다. 이 세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글자체를 달리해서 사용한다. 이건 에코가 주문했던 바라고 ‘옮긴이의 말’에 설명한다.
 그럼 제일 중요한 것, 도대체 시모니니가 누구야?
 책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에코의 말이 진실이라면, 유일하게 창작된 가공의 인물이란다. 이 시모니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할아버지는 돌이킬 수 없는 왕정주의자에다가 교황 성하를 모시는 가톨릭 맹신자인데 반해, 아버지는 공화주의자로 가리발디든가 마치니든가, 하여간 그들 수하에서 전투를 수행하던 중 전사해버리는데, 이들도 진짜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하니 할 말 없다. 젊어서 아버지가 전사해버림으로 해서 주인공 시모니니는 할아버지의 반유대주의와 반 프리메이슨 사상을 확실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된다. 법학을 전공했으며 당시 관습으로는 법과대학을 졸업하면 습관적으로 변호사라고 호칭했단다.어쨌거나 시모니니가 '변호사 선생'으로 불리게 되자마자 할아버지가 졸卒하면서, 담당 공증인이 사문서를 근사하게 위조하는 바람에 졸지에 거지꼴이 되어 사기꾼 공증인 사무실에서 사무원으로 일하게 된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정의감이나 소명의식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던 시모니니(인간이 확고한 철학을 갖게 되면 내 아버지처럼 일찍 죽게 되어 있는 법이야!), 타고난 천재적인 글자 위조와 문장력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희대의 사기꾼으로 성장한다.
 그의 화려한 변신, 가리발디의 수하에 소속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피에몬테 지역의 왕정주의자와 양다리를 기막히게 걸치고 있던 시모니니는 가리발디를 돕기 위해 프랑스에서 배를 타고 시칠리아에 도착한 알렉상드르 뒤마와도 만나고, 아무 가책도 없이 가난한 염초장焰硝匠(화약전문가)를 이용해 배를 폭파시켜 수십 명을 어복魚腹에 장사지내게도 한다.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반 프리메이슨, 반 유대 음모를 총 정리해, 전 세계에 산재해 있는 메이슨 또는 유대인집단의 우두머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세계멸망, 즉 프리메이슨이나 유대인들의 천국으로 만들기 위한 상상 속의 회합, 회합에서 논의한 주제와, 결론 또는 성명서 등을 꾸며낸다.
 그러면 이들이 어디서 만나는 것으로 할까. 런던이나 파리, 또는 베를린이나 빈, 아니면 로마나 취리히? 너무 큰 도시면 근 백 명에 달할 이들의 대표단들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을 도리가 없으니 안 돼, 안 돼. 잠깐 고민하던 시모니니는 프라하를 점찍게 되고, 이왕이면 프리메이슨들이나 유대인들의 음습한 기질과 맞는 장소로 공동묘지가 좋겠다고 못을 박는다. 그래 책의 제목이 <프라하의 묘지>가 되는 것. 작 중 누구도 체코 프라하에 있는 유대인 묘지를 직접 방문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오직 주인공의 뇌 속에서만 모일某日 자정, 프라하의 유대인 묘지, 묘지 확장을 거부하는 주민들의 압력으로 인해 관을 아래로 겹쳐 묻을 수밖에 없어 촘촘하게 묘비들이 박힌 음습한 밤, 프리메이슨의 각 분파대표들 또는 유대인 대표들이 모여, 전 세계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줌과 동시에 물가도 올려 결코 노동자들의 생활을 향상시키지 않게 하며(윽, 지금 대한민국에도 프리메이슨들이 도처의 중심에 있는 거 아냐?), 오락과 스포츠 등에 광분하게 하고, 고리대금업을 비롯한 금융과 철도 등 산업 전반을 손아귀에 넣고, 정치, 군대 등을 장악해야 한다고, 토론하고 선언문을 발표한다, 라고 시모니니는 몇 번에 걸친 고서류를 만들어 비싸게 팔아먹는다. 한 마디로 사기꾼. 자기가 한 일에 관해 한 점 후회도, 반성도 없다. 심지어, 놀라지 마시라, 1894년의 드레퓌스 사건의 발단이 되는 첩보문서도 이 시모니니가 작성한 것으로 설정했다.
 재미있겠지? 재미있다. 프리메이슨의 분파들과 반예수, 흑미사, 사탄찬미 등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에서 나왔던 주제들이 잠깐 거론되지만 그 책들처럼 머리 저린 서술이 아니라 음모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 등장해 비교적 가벼운 접촉만 이루어진다. 음모와 사기로 점철한 한 기회주의자의 일생을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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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하일지 지음 / 민음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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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들어 사람들 입 끝에 가끔 오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포스트에선 오직 하일지의 소설에 관해서만 이야기하겠다.

 첫 하일지가 1990년의 <경마장 가는 길>. 민음사에서 나왔고, 신문광고를 보고 제목이 특이해서 얼른 사 읽어봤는데, 느낌이, 드디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작가가 출현했구나, 라는 감탄이었다. 완전히 건조한 문체로 쓴 소설. 프랑스 유학 동안 뜨겁게 사랑을 불살랐던 남녀. 남자는 유부남이고 여자는 미혼녀. 여자는 남자가 유부남인 걸 처음부터 알았으며, 귀국해서 이혼해버리고 둘이 결혼할 계획이었는데, 이혼은 안 되고 여자는 남자를 귀찮아한다. 뭐 이런 내용이었다. 참, 귀국한 다음에 연인(이라기보다 그냥 남녀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관계)이 식당에 가서 참 열심히, 자주 먹던 음식이 육개장이란 거, 파리에선 거의 하루도 빼지 않고 몸의 즐거움을 나누던 여자가 서울에선 하도 이리 빼고 저리 빼는지라 억지로 관계를 하는 바람에 팬티스타킹이 찢어졌고, 찢어진 팬티스타킹을 내려다보는 여자의 눈길이 지금도 훤히 보이는 거 같다. 28년 전 기억이니 혹시 사실과 다르더라도 양해해주시라. (뭐 그동안 작가가 내용을 바꿨을지도 모르잖아!)
 이후 <경마장은 네거리에서>, <경마장에서 생긴 일>까지 읽고, 초년 대리답게 쇤네도 먹고 살려고 아등바등하느라 책을 끊어버렸다. 조국의 현대화를 위해. 장하지?
 그리하여 큰 기대를 갖고 <손님>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얼라?
 하일지가 28년 전의 하일지가 아니다. 문장은 쉬운 단어들과 감정이 넘실거려 쉽게 팍팍 읽히고, 감정이 넘실거리게 하느라고 (쇤네 전공인) 상스러운 욕설을 남발한다.
 ‘하원’이라는 시골동네가 무대다. 동네에 허표, 허순, 허도, 이렇게 삼남매가 산다. 허표는 심각한 결핵에 걸려 언제 죽을지 기약하지 못하는 허도를 데리고 산다. 그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니라, 장가도 못간 허도를 죽을 때까지 누가 챙겨주긴 해야 하겠는데, 여동생 허순이 아들 둘 달린 이혼녀로 택시 운전을 하는 개망나니 석태와 동거중이라 마나님의 눈치를 보며 거두어준 것뿐이다. 이 마나님이란 작자가 또 보살 흉내라도 내면 좋겠는데 폐병쟁이 시동생이 어디 눈에 들어오기나 할까. 허도는 폐병에 좋다고 어디서 들었는지 동네 하원 입구 고욤나무 밑에서 땅을 슬슬 파다가 실한 지렁이가 기어나기만 하면 낼름, 산 채로 집어 먹으며 소일하고 있다. 그림 그려지시지? 근데 하일지는 형수가 영양식을 도무지 챙겨주지 않아 허도가 지렁이를 잡아먹는다고 얘기하는데, 2012년에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
 허순은 근처 고등학교에서 방과 후 무용을 가르쳐 먹고 산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무용 대회에 참가했던 모양이다. 거기서 미스터 슈를 만나 친교를 다지고, 그저 농담으로 어이, 미스터 슈, 언제 한 번 하원에 놀러와, 라고 했겠지. 그런데 한국 태생의 미국 입양아 출신인 엉클 슈가 진짜로 고속버스를 타고 하원에 놀러 오면서 사달이 나기 시작한다. (외국인한테 이런 얘기 하지 마라. 진짜 온다.)
 좋아, 좋아. 소설가의 변신이란 자유이며 권리니까, 하일지가 이런 식으로 변한 것 역시 이해하지 못할 바 아니다. 그게 쇤네의 취향이건 아니건 말이지.
 하일지가 만든 허씨 남매들이 전부 문제가 있는 인간들이다. 어떻게 문제가 있는 인간인지 차마 구차해서 여기다 옮기지는 않겠지만, 오죽이나 그랬을까, 쇤네가 두 번이나 책을 덮고, 이쯤에서 읽기를 때려치우자고 작정을 했으나, 읽는 장소가 파티션에 둘러싸인 사무실 구석이어서 이 책 읽는 짓 말고는 할 일이 없어 기어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어버리고 말았다. 첫째 허표는 슬슬 눈치를 보며 자기한테 이득이 될지 아닐지를 먼저 생각한 다음에 불고염치하고 사소한 이득을 얻고는 인사도 없이 후딱 사라지는 염치없는 인간이고, 둘째 허순은, 쇤네가 주로 얘가 하는 파렴치한 행위 때문에 책을 덮었을 정도로 형편무인지경의 잡년. 이에 못지않은 잡놈 석태 하는 짓도 가관 중에 가관이다. 폐병이 깊어 오늘 낼 하는 허도란 새끼는 이제 열여섯에서 열여덟 살의 여고생들이 손님이 베푼 활수한 씀씀이에 대하여 몸으로 갚아주지 않는 걸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아쉬워하니, 이게 사람의 새끼냔 말이지. 근데 어째 하일지는 은근히 허도의 시선을 옹호하는 듯해서 쇤네를 극히 불쾌하게 했으니, 이게 쇤네 잘못일깝쇼?
 하여간 쇤네가 읽기에 하일지의 <손님>은 잘 쓴 글도 아니고 재미있는 책도 아니고, 심지어 독자 알기를 매우 우습게 아는 책이었다. 독자는 벌써, 아주 벌써 손님의 정체를 이미 훤하게 알고 있는데, 심하게 친절하게도 여름용 브래지어와 팬티만 입은 채로 손님과 9월 밤의 호수에서 수영을 한 여고생 유나의 입을 통해 “장난이 아닌 물건”을 가진 손님의 정체를 발설하게 만들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작가의 변신은 자유이고 권리. 작가가 변신한 모습을 보고 좋다, 망했다를 결정하는 건 독자의 자유이자 권리. 하일지, 쇤네의 인생에서 사라졌고, 책 <손님>은 “버릴 책”으로 분류되어 책꽂이에 꽂히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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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단편소설을 실은 <순박한 마음>을 다 읽고 책 끝의 '옮긴이의 말'을 보니까, 놀라워라, 이런 문장이 있다.

 

 “플로베르의 작품은 초기 습작을 제외하면 여섯 권에 지나지 않는다.”


 얼른 내가 읽은 플로베르를 세어봤다. 이 <순박한 마음>, 책의 앞날개에 쓰인 대로 원제목이 <세 가지 이야기>가 여섯 번째 플로베르였다. 초기 습작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다 읽었다는 말씀. 책의 발간 순으로(위키피디아 참고) 하면 이렇다.


 <보바리 부인>  1857
 <살람보>  1862
 <감정교육>  1869
 <성 앙투안느의 유혹>  1874
 <세 가지 이야기>  1877
 <부바르와 페퀴셰>  1881


 <세 가지 이야기>, 우리 제목으로 <순박한 마음>이란 책에 (사실 단편집은 『순박한 마음』, 해당 작품은 <순박한 마음>, 이렇게 써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막 쓸 테니 알아서 읽어주시면 좋겠는바) 마지막 이야기에 <헤로디아>가 나온다. 그러하다. 오스카 와일드가 <살로메>를 1893년에(초연은 96년에) 냈으니 와일드보다 16년 빨리 헤로디아의 친 딸 살로메의 ‘일곱 베일의 춤’을 만든 셈이다. 뭐 꼭 ‘일곱 베일의 춤’이 아니면 어떤가. 춤을 췄고, 의붓아버지가 의붓딸이 춤추는 모습에 미쳐서 자기 재산의 절반과 나라 땅의 절반을 뚝 떼 주겠다고 하는 거, 그렇지만 살로메는 쟁반 위에 요카난의 머리를 담아 달라고 땡깡을 부리는 거까지 같으면 그냥 와일드보다 16년 앞섰다고 해도 무방하지 뭐.
 이 <헤로디아>는 쥘 마스네가, 역시 이 책에 실린 <구호성자 쥘리앵의 전설>은 카미유 에르롱쥐Camille Erlanger가, <보바리 부인>은 엠마누엘 봉드빌Emmanuel Bondeville이, <살람보>는 모데스트 무소르그스키가 미완성 오페라로 만들었고, <보바리 부인>은 무려 8번에 걸쳐 영화로 만들어졌단다. 책을 겨우 여섯 권 낸 작가로는 진짜 대단한 성과라고 해야 하겠다. 지금 같으면 판권만 가지고도 한 평생 즐기면서 살기에 충분하지 않았을까?

 

 어쨌거나 플로베르의 전편을 다 읽어본 인간의 특권으로 좀 잘난 척을 하자면, 나도 알고 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보바리 부인> 하나만 읽고 플로베르는 졸업한 줄 알던 족속이긴 하지만, 

 

플로베르 하면 숱한 사람들이 <보바리 부인>을 연상하고 다른 작품들도 그와 비슷하리라고 지레짐작을 하기 십상일 거 같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정말 다양한 상상력을 그의 작품들에 쏟아냈다. (난 <감정교육>은 재미없게 읽어서 그건 별도로 하자.) <보바리 부인>에 이어 두 번째로 읽은 <성 앙투안느의 유혹>은

 

 

상상도 하지 못한 플로베르의 다른 면모를 일별할 수 있는 기회였으면서,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기점으로 눈에 띄는 플로베르란 플로베르는 모두 읽어보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공연할 수 없거나, 정말로 공연하기엔 매우 불편한 희곡의 형태를 갖춘 소설로 결코 짐작도 하지 못했던 예상외의 모습에 경탄을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예전에 ‘열린책들’에서 최고의 작품을 선정하는 작은 행사가 있었는데, 나는 서슴없이 <성 앙투안느의 유혹>을 꼽았었다.

 

 다음에 큰 기대를 한 상태에서 <감정교육>을 읽고 플로베르한테 잠깐 감정이 생겼었다가,

 

 

 시간이 좀 지난 다음에 <살람보>를 읽게 된다. 이 작품은 난데없이 1차 포에니 전쟁 이후의 로마도 아니고 카르타고를 무대로 벌어지는 내전을 다뤘다.

 역시 새로운 플로베르의 모습으로 41세, 어떤 의미에서 인생의 절정기에 달한 그가 모르긴 몰라도 프랑스의 웬만한 도서관은 다 뒤졌을 만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역사 소설을 썼다. 전쟁 이후 카르타고에 남은 성난 용병들이 보상을 요구하고, 이를 진정시키기 위한 카르타고의 집정관 간에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내전. <보바리 부인>을 플로베르라고 생각한 나는 여지없이 코피 터졌던 기억이다.

 

 다섯 번째 플로베르는 <부바르와 페퀴셰>.

 

 미완성 작품이긴 하지만 대단한 완성도를 지니지 않았는가 싶었다. 조카딸의 파산을 면해주기 위해 전 재산을 다 쏟아 붓고, 자그마한 도서관애서 나오는 미미한 돈에 의지해 가난하고 고독한 말년을 꾸리던 작가가 지난 삶을 돌아보며 썼음직한 참 쓸쓸한 희극이었다. 이 작품은 몇 년 후 은퇴해서 시간이 남아돌면 꼭 다시 한 번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다.


 마지막 플로베르 <순박한 마음>에는 표제작과 위에서 잠깐 언급한 <구호 성자 쥘리앵의 전설>과 <헤로디아>가 함께 실려 있다.

 이 가운데 내가 제일 좋게 읽은 건 표제작 <순박한 마음>. 단언하는데, <순박한 마음>은 21세기인 오늘, 프랑스가 아닌 우리나라의 어느 작가가 발표한다고 해도 여전히 독자의 정서에 공감을 줄 수 있고 그들의 가슴 속에 숨어있는 따뜻한 심상을 확인하게 해줄 수 있다. 즉 보편적 인간애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다는 말씀. 플로베르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1876년 4월에 어머니의 고향 퐁레베크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퐁레베크라는 도시에 사는 오뱅 부인과 하녀 펠리시테를 등장시킨다. 청춘과부 오뱅 부인과 처녀로 늙어 죽는 펠리시테. 이 외로운 커플들 사이에 어김없이 발생하는 삶의 비극들. 남편이 죽고, 첫사랑이 군역을 피하기 위해 돈 많은 늙은 여자한테 장가들고, 딸이 죽고, 아들도 죽고, 홀로 늙어가는 하녀의 위안이지만 친절하지 않았던 늙은 앵무새도 죽고, 기어이 오뱅 부인도 먼저 가고, 펠리시테도 평생 누었던 침상에서 숨을 거두는 이야기. 이렇게 건조하게 말하니까 그냥 그런 소설이겠거니 할 수도 있으나 정말 읽어보면 그 쓸쓸함이라니. 줄리언 반스는 이 <순박한 마음>을 영국에서 읽고, 어느 날 도버해협을 건너 플로베르가 살았던 프랑스 각지를 돌면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앵무새의 박제를 찾는 노정을 기록했으니 그게 바로 <플로베르의 앵무새> 아니겠는가. (내 말은 믿지 못하더라도 줄리언 반스는 믿겠지.) 참 마음에 와 닿는 단편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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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9-21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박한 마음>은 짧지만 참 좋죠. 저도 이 작품 참 좋아해요. 제목도 왠지 좋고. 근데 저도<감정교육>은 1권까지만 읽고 2권을 못 읽고 있어요. <성 안투안느의 유혹>이 그렇단 말이죠? 꼭 읽어보겠습니다. 참, 추석 연휴 소주와 책과 함께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연휴 때 몇 병 드셨는지 나중에 계산 좀.... ㅋㅋㅋㅋㅋ

Falstaff 2018-09-21 12:39   좋아요 0 | URL
<성 앙투안느....>는 아마 극과 극일 겁니다.
제 경우에 좋았다는 얘기라서요, 언제나처럼 책임지지 않습니다. ㅋㅋㅋ
옙. 고맙습니다. 한 바탕 잘 때려먹고, 쐬주도 장하게 마시고 오겠습니다.
잠자냥님도 즐거우시기 바랍니다. (어디 길게 여행이라도..... ^^;)
 
1Q84 1 - 4月-6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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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택시 라디오에서는 FM 방송의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곡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이렇게 시작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장편소설. 무려 2,000 쪽에 달하는 장편을 펼치기 위해 작가는 비교적 덜 대중적인 체코 작곡가 레오슈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실황녹음을 꺼내들었다. 독후감 시작하기 전에 우리도 <신포니에타> 실황을 먼저 들어보자.

 

Jukka-Pekka Saraste, 서부독일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2007

 

  극도의 정체를 겪고 있는 도쿄의 수도(고가高架)고속도로 위, 도요타 크라운 로열살롱 택시 안에서 도무지 약속시간까지 장소에 도착하지 못할 것 같아 초조해하는 우리의 주인공 아오마메는 <신포니아>를 들으면서 야나체크가 이 곡을 작곡한 해가 1926년이고, 1926년이면 다이쇼 일왕이 죽고 새로 쇼와로 연호가 바뀐 해이며, 유럽에서는 양차대전 사이 잠깐의 평화시기인데 2년 전에 카프카가 불우했던 세상을 뜨고 곧 히틀러라는 키 작은 남자가 불쑥 나타나 아담하고 작은 나라 체코를 덥석 집어삼킬 시기임을 떠올린다. 책을 다 읽으면 이게 중요한 복선이라는 걸 늦게나마 알게 된다. 왜 하루키는 여기서 굳이 2년 전에 죽은 카프카를 언급했을까. 카프카의 대표적 주인공 가운데 한 명이 ‘그레고르 잠자’. 2,000쪽, 정확하게 1,997쪽의 긴 소설 가운데 카프카가 만든 주인공 이름이 딱 한 번 나온다. 그것도 ‘잠자’라는 성姓으로만. ‘잠자’는 다 알다시피 어느 날 갑자기 딱정벌레로 변신한 은행원.
 시간이 촉박하다는 얘기를 들은 택시 기사는 고가 고속도로에 비상구가 있는데, 비상구를 열고 계단을 타고 지상까지 내려가, 거기서 지하철을 타고 가면 늦지 않을 거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고가도로로 건설된 수도고속도로의 비상계단을 내려간다는 특별한 일을 할 경우엔 일상풍경이 평소와 조금 다르게 보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나 겉모습에 속지 말라고. 현실은 언제나 하나란다.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아리송하다. 아오메마도, 대사를 읽는 독자들도. 하지만 쉽게 알아차리지는 못할 것. 아오마메가 정말로 택시에서 내려 비상구로 가 가로로 놓인 철책을 건너기 위해 하이힐을 벗고, 짧은 치마가 허리까지 말려 올라가는 것을 무릅쓰고 다리를 번쩍 들어 넘어간다. 맨 스타킹 발로 철제 계단을 내려가 지상에 도착했다. “겉모습에 속지 않도록 하세요. 현실이라는 건 언제나 단 하나뿐입니다.” 운전사의 말을 떠올리며.
 잠자는 어느 아침에 딱정벌레가 돼버렸고, 아오메마는 거미줄을 헤치며 오랜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은 적 없던 오층 높이의 (거의 사다리 수준의)철제계단을 내려오면서 잠깐 마치 뱃멀미처럼 속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는데 그게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선 거였다. 즉 카프카는 잠자의 외형을 변화시킨 반면 하루키는 평행우주(라고 일단 가정하자. 지금 차원이 아닌 다른 시간 속의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양쪽 우주를 연결시키는 고리를 건너게 한다.
 아오마메. 푸른 콩, 청두(靑豆)란 이름의 여인의 기억 깊숙이 새겨진 한 남자. 남자라기보다 소년 덴고. ‘증인회’라는 소수 종교에 깊이 빠진 부모 때문에 어려서부터 또래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자란 아오마메. 일요일마다 NHK 방송국의 수신료 수금원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도시를 돌아다니며 지내야 했던 덴고. 덴고는 덩치도 크고, 힘도 세고, 모든 교과에 우수하고, 그 중에서도 산수, 특히 수학에 관한 한 신동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소학교 시절에 벌써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술술 풀어낸 수재 덕에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을 뿐. 과학시간 그룹과제를 하다 따돌림을 당하자 덴고가 아오마메를 자기 팀으로 들어오게 하여 원만하게 마무리 지어준 일이 있었다. 소학교 4학년 때. 그해 12월, 아무도 없는 빈 교실에 둘이 남게 된 날. 창밖을 바라보고 섰던 둘. 아오마메가 덴고의 손을 꼭 잡고 한 동안 있다가, 손을 놓고 교실 밖으로 나간다. 두 소년소녀는 급작스럽게 성장하여 소년은 여인의 모습을 그리게 되고, 소녀는 몇 달 후 초경을 경험한다. 그러나 5학년이 되자마자 도시를 떠난 아오마메. 도시와 함께 가족에게서, 절대 이탈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종교의 굴레에서도 소녀는 떠나고 만다. 이후 아오마메와 덴고의 저 깊숙한 가슴 속에서는 서로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의 끔찍스럽게 질긴 사랑으로 점점 고착되고 있었음을 아무도 몰랐다.
 그때부터 20년이 지난 1984년.
 덴고는 학원의 수학 강사이면서 아직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유망한 작가지망생이 됐고, 매주 금요일 오후에 자신의 아파트를 찾아오는 열 살 위의 유부녀와 오직 몸의 즐거움을 정기적으로 누리며 살고 있다. 최근에는 ‘후카에리’라는 열일곱 먹은 아가씨가 쓴 소설 <공기 번데기>를, 뼈대를 유지하고 문장을 바꿔 쓰는, 소위 리라이팅re-writing을 해 약간의 수입을 올리기는 했지만 책 속의 모델이 되는 종교집단과 매우 위험한 관계에 빠져들고 만 것을 그리 심각하게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아오마메는 부모로부터 떨어져 나와 소프트볼 특기생으로 대학까지 마치고 지금은 유명 스포츠클럽의 인스트럭터로 이름이 높아져 유명인들의 개인 인스트럭터 일도 겸하면서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를 찾았다. 스물여섯 까지 처녀였다가 이후 조금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면 가끔 바에 들러 두상이 잘 생긴 중년 남자를 골라 성욕을 만족시키고는 했다. 그러나 아주 간혹이긴 하지만 아오메마는 섬세한 손끝에서 나오는 천재적 감각의 침술로 외상外傷없이 한 목숨을 거두어가는 연쇄살인범이기도 하다.
 이들은 우연하게도 다른 세상에 떨어져 서로 어디 있는지 모르나 사실은 걸어서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살게 된다. 덴고는 다른 차원의 세상을 “고양이 마을”이라 부르고, 아오마메는 1984년을 “1Q84”년이라고 칭한다. 진짜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질 수 있는 걸까? 모르겠다. 간절하게 바라는 일을 이해하고 있더라고, “진짜” 간절하게 바라는 일은 이해할 수 있을까? 거꾸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진짜 간절하게 바라지 않아서였을까?
 두 번째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하루키의 어쩔 수 없는 먹물기가 곳곳에 배어있다. 사할린에 징용간 조선인의 아들로, 홋카이도 고아원에 살다가 도망쳐 자위대 특수병과에 입대해 인간병기로 길러진 게이가 도피생활에 접어든 여성에게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권하면서 감방에 가거나 도피하면서 읽기에 적당한 책이라 말하고, 비트겐슈타인과 쉬르레알리즘을 서슴없이 입에 올리긴 쉽지 않을 텐데. 뭐 그럴 수도 있지. 한 명 정도면. 비록 그가 일본 최악의 카스트일지언정. 이 책을 읽으면서, 하루키는 당연히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단, 밥 딜런이 같은 상을 받았다는 측면에서만. 대중적이고, ‘새롭지는 않지만’ 재미있고, 또 많이 팔릴 책을 쓰는 능력. 이건 세계 제일인 거 같다. 움베르토 에코도 이렇게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지 한 바 있었듯이.


 “어떤 음모를 폭로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팔아먹으려면 독창적인 내용을 구매자에게 제공해서는 안 되고, 오히려 구매자가 이미 알아낸 것이나 다른 경로를 통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만을 제공해야 한다.”  (움베르토 에코, <프라하의 묘지 1>  146~147쪽, 열린책들 2013. 밑줄은 쇤네가 그었음.)


장르소설이라 할 수 있다. 평행이론이나 차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외계 등등에 관심이 있는 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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