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아송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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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보시라. 풍아송. 風雅頌. 아,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들인가. 난 제목 보고 이렇게 간판을 다는 작가가 쓴 책이라면 틀림없이 대박일 것이라고, 사람의 마음을 저리게 할 아름다운 스토리를 담은 숨겨진 명작일지도 모른다고 벌컥벌컥 김칫국을 들이켰다. 바람 풍風, 맑을 아雅, 칭송할 송頌.
 나 어려서 책장에 4서가 있었다. 논어, 맹자, 주역, 대학. 그리고 3경도 있었다. 시경, 서경, 역경. 당연히 두 개 더 포함해 5경도 있었다. 예기, 춘추. 문제는 너무 어려서 그냥 그런 책이 있었다는 것이지 읽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거다. 그러니 제목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아름다운 얘기니 뭐니 할 수 있었다. 풍, 아, 송이란 각각 시경을 구성하고 있는 편들인데, 풍은 남녀 간의 정과 이별에 관한 노래, 아는 공식 연회에서 쓰는 의식가儀式歌, 송은 종묘 제사에 쓰는 악시樂詩, 라고 두산 백과사전에 나와 있다. 물론 송이 악시를 얘기한다고 두음법칙이 적용된 즐거울 락樂을 감안해 ‘즐거운 시’라고 번역하면 큰 잘못임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듯.
 소설 <풍아송>은 중국의 고전문학을 전공하는 양커 부교수를 주인공으로, 이이가 바로 <시경>의 해석과 번역을 일생의 업으로 삼아 연구실에 틀어박혀 오랫동안 ‘맹렬정진’하여 <시경>에 관한 한 득도의 경지에 오른 권위자인데, 드디어 오랜 연구를 끝내고 벽돌 세 장 분량의 불세출의 저작 《풍아지송風雅之頌―<시경> 정신의 근원에 관한 연구》의 마지막 구두점을 찍고 그간의 노고에 대하여 아름다운 아내의 따뜻한 살이란 (힘들게 공부한 남편으로서 어쩌면 당연한) 어리광적 기대를 품고 냅다 교수 사옥으로 달려가 서슴지 않고 열쇠를 돌려 문을 열어 현관에 들어가 보니, 어라, 거실 소파 위를 한 무더기의 남자 옷과 여자 옷이 뒤섞여 어지럽게 점령하고 있었고, 아내 자오루핑의 눈부시게 희고 통통한 몸뚱이 위에 장작개비처럼 비쩍 마른데다 피부도 거무튀튀한 리광즈, 자기가 부교수로 근무하는 중국 최고 명문대학 칭옌淸燕대학 부총장이 포개져 있었던 거다. 이렇게 해서 600쪽에 달하는 긴 장편소설은 시작한다. 리광즈 부총장이 업무상 위계로 양커의 아름다운 아내 자오루핑을 성폭행 했다면 그나마 괜찮을 텐데, 남달리 야망에 불타는 자오루핑은, 남편은 아직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의 자기 경력과 꿈을 이루기 위해 리광즈의 권력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것. 그러니까 주고받은 거다. 하지만 막상 자기 아내가 나보다 돈도 많고 높은 지위를 향유하고 있지만, 못생기고, 늙었고, 침대 위 스테미너도 형편없을 것 같은 허접스런 작자와 바로 내 침대 위에서 숨이 넘어가는 콧소리를 내는 라이브 쇼를 직접 자기 눈으로 본 젊고 튼튼하고, 싸움도 잘하는 양커. 일단 뒤로 돈다. 그리고 고개를 약간 돌려 “먼저 옷 좀 입으시오.”라고 주문하고 문 밖으로 나가 잠시 시간을 준다. 옷을 다 입었을 즈음해서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간 양커. 그는 눈앞에서 자기 아내와 정을 통한 학교 최고의 권력자, 그러나 이젠 약점을 단단히 틀어쥐게 된 부총장 리광즈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식인으로서의 명예를 걸고 말하건대 첫째,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둘째,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아주십시오. 셋째, 무릎을 꿇고 간청하건대 제발 다음부터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아주십시오.”
 정말로 아주 힘차게, 마치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쓰러져 산 전체를 정복하려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리광즈 부총장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왜 책을 읽으면서 싱클레어 루이스가 쓴 재미있는 책 <배빗>이 생각났을까. 당연히 공통점이 있어서다. 배빗이나 양커, 둘 다 ‘속물’이기 때문. ‘속물’은 사실 좋게 표현하는 것이고 속물 아주 가까이, 손톱으로 그은 금 넘어 바로 저 편에 어떤 작자가 있느냐 하면 ‘잡놈’ 혹은 ‘잡년’이 있다. 작가 옌렌커가 ‘경성’ 또는 ‘황성’이라고 표시했으나 틀림없이 베이징일 도시에서 만나는 거의 모든 인간들은 빠짐없이 ‘속물’, 한 걸음 더 나가 ‘잡놈’과 ‘잡년’이며, 초장부터 양커의 아내 자오루핑과 리광즈를 잡놈과 잡년의 대표선수로 소개해마지않는다. 여기까지 양커는 그냥 속물 정도. 오직 하나, 자신이 중국 최고의 명문대학인 칭옌대학에 20년간 몸을 담았고 그 가운데 10년 동안은 부교수로 학부생과 석사, 박사 과정자들을 가르쳐왔으며, 희대의 저작이 될 《풍아지송風雅之頌―<시경> 정신의 근원에 관한 연구》를 탈고한 세계 최고의 <시경> 전문가인 지극한 지식인이란 허위의식에 완벽하게 몸과 마음이 절어 있는 인간으로 설정했다.
 그러나 양커로 말씀드리자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수 끝에 드디어 중원의 바러우산맥을 둘러싼 지역 모두에서 최초로 대학에 입학한, 그것도 최고 명문인 칭옌 대학에 입학한, 개천에서 난 용의 자격으로 드디어 황성으로 떠날 시기에, 이 양 부교수는 약혼상태였던 것이다. 약혼녀 링쩐의 가무잡잡한 얼굴은 전적으로 햇볕에 타서 검어진 것이란 건 들판에서 링쩐이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옷자락을 양 손으로 활짝 벌려 커다랗고 붉은 브래지어로 감싼 토플리스를 연출했을 때 알았는데, 옷에 가려진 피부는 “아주 희고 섬세하며 비단처럼 발그레”한 정도를 넘어 “한백옥의 표면처럼 부드럽고 아름다운 광채가” 날 정도였던 거다. 둘 다 벽촌에서 살았다면 아무 문제도 없었을 것을 양커가 칭옌대학의 학생으로 베이징에서 살게 된다는 건 일자무식의 약혼녀, 공중화장실에서 남男과 여女를 구분하지 못해 약혼자가 저기서 보고 있는데도 남자 화장실에 들어가 망신을 당하는 링쩐에겐 자신의 순정 위에 날벼락이 떨어졌을 것이었다. 실제로 경성으로 떠나는 전날 밤, 둘은 여인숙에 방 둘을 얻어, 당연히 양커가 약혼녀 링쩐의 방에 들게 되지만 링쩐은 한 마디 한 마디 우렁찬 구절로 또박또박하게 힘주어 다음과 같이 말했던 거였다.
 “양커 오빠, 솔직히 말해봐요. 나랑 결혼할 건가요? 결혼하고 나서 이혼할 수도 있잖아요. 날 아내로 맞아 변심하지 않고 평생 함께 살겠다는 한마디만 해주면 오늘밤 내 몸을 오빠에게 줄게요. 내가 가진 모든 걸 하나도 남김없이 다 줄게요.”
 양커는, 그냥 잤다.
 대학에서 모종의 사건에 연루되어 대학의 권력자들의 보신을 위해 대표로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탈출에 성공해 고향으로 돌아간 양커는, 동네뿐만 아니라 현 단위에서 유일한 대학교수로의 위치를 향유하게 되는데, 여기서 자신도 모르게 속물의 경계를 넘어 잡놈의 세상으로 들어간다. 다른 사람의 감상은 모르겠고, 내 생각에 양커 역시 자신이 갑의 자리, 지역 최고의 지식인이라는 허위의식뿐이지만 그것도 권력이라고 갑의 위치에 놓이자마자 자신의 생각엔 정당하고 지식인다운 행위라 여길지 모르겠으나, 독자의 눈엔 기꺼이 잡놈의 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어떤 행위를 보고 잡놈 운운하느냐 하면, 직접 읽어보시라 할밖에. 그의 온갖 기괴한 행위와 한 여인에 대한 철저한 갑질을.
 그런데 이 단계에서 묘한 건, 양커가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인물이란 거. 작가 옌렌커가 의도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어째 자꾸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 양커의 정신이 맑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당히 정상적인 수준으로 보아달라고 조르는 거 같은데, 나는 도무지 그렇게 읽히지 않는다. 역시 대뇌의 특정부분에 모종의 이상적異常的인 화학작용이 자주 발생하는 거 같다. 이거까지 말하면 정말 안 되는데, 어떻게 할까. 얘기를 할까 말까. 좋다. 이 독후감을 보시고 그래도 책에 관심이 있는 분은 독후감 읽은 다음에 한 석 달 열흘 지난 다음에 책을 읽으시라는 조언과 함께라면 그나마 좀 낫겠다,는 전제로 얘기한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는 아니고 유토피아, 또는 율도국을 발견한 양커. 거기서 족장 노릇을 좀 하다가 또 다른 유토피아를 향해 떠나는 마지막 장면. 소위 말하는 열린 결말을 독자에게 선물한 거까진 좋았지만 조금만 더 헷갈리게 해줬으면 더 좋았을 것을.
 하여간, 풍아송風雅頌. 이 멋진 제목만 가지고 섣불리 선택했다가는 불륜, 매매춘, 살인 등등을 구경할 것이니, 그렇게 생각하신 분은, 아직 독서 전이라면 이 독후감을 먼저 읽은 것이 조금은 다행일 수 있을 터. (이 맛에 독후감 쓰고, 그걸 서재에 올린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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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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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새 들어 스페인 어 권 작품을 자주 읽는 편이다. 책을 사놓고 그게 몇 권 쌓이면 출판한 순서로 읽는 것이 내 습관인데, 이런 독서법은 대개 후반에 들어갈수록 스페인어 권圈 작품이 많아진다. 앞부분은 주로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작품들이 차지하는 반면. 이번에도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로 시작해서 조지 엘리엇의 <다니엘 데론다>, 이어서 이디스 워튼이 쓴 <기쁨의 집>의 순서로 나가다가 유쾌한 설레발장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스페인 어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요사의 <리고베르토 씨....>다음에 한 권 건너 <바람의 그림자>. 또 한 권 건너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작품 가운데 세 번째로 읽게 되는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가 걸린다. 무슨 의미인가 하면, 문학의 힘도 국력 순서 비슷해서, 무적함대가 하워드 경이 이끄는 영국의 수병에게 거덜이 난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 이후 프랑코 개자식 시대까지 무려 근 400년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유럽의 거지 국가 비슷한 상태로 떨어지는 바람에 덩달아 다른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빈궁을 견딜 수밖에 없었을 것이란 의견이다.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의 소설 작품을 보면, 대개 우리가 즐거이 읽고 있는 건 <라 만차의 시골 기사 돈 키호테>를 빼면 거의 20세기 작품부터이지 않은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을 때, 위 내시경 검사는 당연히 매년 받는 것이고, 대장 대시경은 대강 3년 터울로 당하는데, 대장 내시경을 위해 전날 점심 식사 이후 금식하는 것은 물론이고, 오후 8시에 물 500cc에 희한한 물약(또는 가루약)을 타 벌컥벌컥 마시고, 8시 30분에 또 한 번 벌컥벌컥 마시고(이때쯤이면 아주 약한 수준의 물고문이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10시 경에 다시 벌컥벌컥 들이켜는데 이땐 벌써 거의 밸브 망가진 수도꼭지에서 상수도 뿜어 나오듯 완벽한 물똥을 대여섯 번째 뿜어낸 다음이기 십상이다. 그렇게 자정까지 이젠 맑고 연한 노란색 담즙 섞인 물만 찍, 찍 발사될 때쯤이면 이게 몇 년에 한 번 하는 행사이기 망정이지, 탈수 증세를 직접 느낄 만하게 영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 증상을 즐기는 방법은, 스스로 최면을 걸어 내 몸이 지금 체내에 똥 한 방울 없는 거의 완전하게 정화된 상태라고 위안하는 일 말고는 없다. 물론 다음날 아침 일곱 시에 다시 500cc의 물을 한 번 더 벌컥벌컥 들이마시고 한 번 더 연노랑 색 500cc의 물이, 앞이 아니라 뒤, 그러니까 항문을 통해 발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두 번 더 확인해야 비로소 검진을 받을 수 있는 상태가 되기는 하지만.
 왜 초장부터 좀 지저분한 얘기를 하느냐, 하는 건데, 먼저 먹고 싸는 일은 전혀 지저분한 부류가 아니고, 지저분한 부류에 들 수도 없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없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라는 걸 들어야 하고, 두 번째로 이 책의 주인공, 로마인이자 귀족가문의 일원인 폼포니오 플라토 선생(철학자이기도 하니까 ‘선생’이라고 칭해줘도 존칭 인플레이션은 아닐 것이다)이 어느 날 파피루스에 씌인 어떤 강물에 관한 비밀을 알게 되는데, “그 강물을 마신 사람에게 지혜가 생긴다”고 하며 심지어 암소가 그 강물을 마시면 흰 소로 변한다는 신비의 강물이어서, 철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미덕이 바로 지혜인지라, 신비의 강물을 찾기 위해 멀고 먼 길을 떠나 어느덧 중동의 화약고, 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 그 중에서도 당시에도 작은 마을이었던 나사렛까지 갖은 고생을 마다하고, 그곳까지 도착하며 흐르는 물이란 물은 몽땅 벌컥벌컥 마시는 바람에, 이걸 우리는 “물을 갈아 마신다”라고 칭하는 바로 그 짓을 서슴지 않은 대가로 시도 때도 없이 물똥을 찍찍 갈겨대는 동시에, 오아시스를 떠나 다음 행선지로 향한 말 위에선 웅장한 칼데라 호수라도 만들 수 있는 화산의 분화 비슷한 방귀를 뀌는 바람에 말 등 위에서 한 길이나 솟구쳐 모래사막에 머리부터 거꾸로 처박혔으며, 말은 방귀 소리에 깜짝 놀라 주인이 곤두박질을 쳤던지 말든지 그냥 꽁무니가 빠져라 달아나버렸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사막 한 가운데 홀로 떨어진 폼포니오 선생이 아랍 상인과 두 로마 군대에 빌붙어 간신히 도착한 나사렛에 누가 살고 있었느냐 하면 바로 예수.
 우리말로 된 감탄사 가운데 이런 말이 있다. “이런 염병할!” 또는 “에이, 우라질!” 이걸 영어로 번역할 때 가장 (점잖게)적절한 건 아마 다음과 같으리. “Oh, Jesus!" 그래, 바로 그 Jesus, 우리가 알고 있는 슈퍼스타, 예수 그리스도가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우리의 예수, 구세주 예정자는 아직 열 살 소년에 불과하고, 이 책에선 목수 아버지 요셉이 문제다. 나사렛에서 가장 부유한 애풀론 씨를 살해한 혐의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형벌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그것도 작은 나사렛 동네의 유일한 목수라서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자신이 만들어야 하는 처지. 폼포니오 선생은 그러거나 말거나, 한갓 유대인 남자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예정이거나 말거나 그게 무슨 상관? 하지만 오랜 유랑생활에 거의 거지꼴 비슷한 처지로 떨어졌으며 게다가 주머니엔 땡전 한 푼 없는 진짜 거지이기도 해서, 자신의 아버지가 아무런 죄가 없음을 확신하는 예수가, 은화가 든 주머니를 은근히 ”로마인“ 폼포니오의 품 안에 찔러 넣으며 아버지 요셉의 무죄를 증명해달라고 부탁하는 바람에 이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특히 아폴론), 유대교 야훼, 바알 신 등이 총 출현하는 유쾌한 추리극을 만들어낸다.
 작가 에두아르도 멘도사가, 내가 읽어본 <사볼타 사건의 진실>과 <경이로운 도시>에 국한해 이해한다면, 시대를 기원 10년으로 해서 추리소설을 쓰지 말라는 아무런 이유도 발견할 수 없고, 아니, 추리소설을 만들었다는 것이 자연스러우며, 오히려 추리극을 경쾌한 터치로 그렸다는 것이 재미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딱 마음에 들어 누구에게 권할 수준은 아니지만, 살다보면 이런 것도 읽고 저런 것도 읽고 그렇지, 그런 게 사는 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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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하는 근본주의자 민음사 모던 클래식 60
모신 하미드 지음, 왕은철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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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01년 9월 11일 아침, 아메리칸 항공과 유나이티드 항공 소속의 민간여객기 두 대가 뉴욕의 랜드마크인 110층의 세계무역회관 쌍둥이 건물을 각각 들이받는 모습은, 그런 화면이 드라마나 영화가 아닌 뉴스 시간에 나온다는 것이 이상하리만큼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여객기가 대형건물을 들이 받은 것도 충격적이었고, 이어서 110층 건물이 거의 동시에 그 자리에 가라앉는 것도 내 사고 능력을 초월하는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아무리 봐도 도무지 진짜 벌어진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화면을 지금 생각해보면 TV를 통해 한 달 정도 하루도 빼지 않고 연속 상영됐다고 기억한다. 21세기에 접어들자마자, 지구 상 유일한 경찰국가임을 자임해 온 미국 땅에서 타국인이 미국의 재산과 인명을 살상한 가장 큰 사건이 벌어졌던 거다. 인명과 재산은 차치하고, 정말로 여객기가 건물과 부딪히고, 이어서 그렇게 거대한 건물이 폭삭 무너지는 건, 비록 사건 자체는 어마어마한 비극이며 결코 발생해서는 되지 않을 극악한 짓이었지만, 사건 장면을 보는 행위,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아 내가 언젠가는 이 감정에 대해 벌을 받지), 일종의 쾌감, 물론 적절한 단어는 아니지만 쾌감의 다른 형태였던 것, 아니면 화면을 보는 시각 행위 속에 이런 감정에 비슷한 것이 끼어있음을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하도 숱하게 봐서, 영화를 만든 바로 그 미국 스스로가 피해 당사자가 됐다는 아이러니도 터무니없는 감정의 아주 중요한 매개 또는 이유였을 수도 있겠지만, 아마도 제일 중요한 건 1945년 이후 세계의 모든 방면에 패권을 잡고 아무거나, 아무 나라나 쥐고 흔들어대던 미국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는 것 아니었을까. 그러나 누구한테도 테러 장면을 보면서 은근한 쾌감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는 얘기 대신 야, 그거 정말 대단하더라. 말도 나오지 않더라고, 등등의 수사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만큼 비극적인 사건이었다. 남의 불행을 보고 쾌감 운운하는 건 정말 천벌을 받을 일이다. 돌아보면, 내 주위의 많은 또래 한국인들도 강조에 강조를 거듭하면서, 영화에서나 볼 일이 진짜 일어났다거나, 내 말하고 아주 똑같이, 대단하다, 대단하고 또 대단하다, 굉장하다, 라는 수사에서 말을 멈추었던 것으로 보아 그들도 모르긴 모르지만 나하고 비슷한 감정을 가졌으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 드러낼 수 없는 참담한 일이었다는데 동의하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 빌어먹고 사는 직장의 911 테러 당시 미국 본사 회장이 파키스탄 출신 미국인이었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정상적인 남자들은 모두 군대 경험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숱하게 테러리스트들에 의한 무차별 테러를 경험했(다고 구라를 풀)고, 일찍이 영국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에서 태어나 소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거의 완벽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는 것으로 봐서 파키스탄의 중산층 이상이었던 것 같은데, 이 자가 일찌감치 미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나 대학을 졸업한 나이가, 놀라지 마시라, 열네 살. 열여섯 살에 회사를 만들어 키워 팔아먹고, 서른다섯 살도 되지 않아 내가 '아직도' 빌어먹고 사는 다국적 기업의 회장 자리에 등극했는바, 왜 이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책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의 주인공 화자 ‘찬게즈’가 스물한 살에 프린스턴 대학을 졸업한 파키스탄 인이고, 소설의 작가 모신 하미드(비록 소설의 주인공보다 약 열 살 가량 많지만) 역시 열여덟 살 때 프린스턴으로 날아가 <빌러비드>, <재즈>, <술라>를 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토니 모리슨을 사사했기 때문이다. 작가 또는 책의 화자 찬게즈에 의하면 제삼세계 출신의 유학생이 미국 본토 학생보다 학업성취도가 월등하게 높은 이유는, 정말로 소수 정예만 골라, 골라서 유학을 보내기 때문이라지만, 난 예전의 파키스탄 출신 전ex 회장새끼 때문에 아직도 파키스탄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알면서 영 고쳐지지 않는다.
 파키스탄 출신의 똑똑한 영재 하나가 프린스턴을 졸업하고(개츠비하고 동문이다), 미국에서 가장 유망하며 대졸 초임으로 2001년 당시 8만 달러 더하기 성과급을 주는 기업 평가 컨설팅 회사 ‘언더우드샘슨’에 입사를 하며 160쪽의 짧은 소설은 시작한다. 꿈의 직장에 취직을 하고, 여섯 명 입사한 가운데 1등을 차지하여 말 그대로 탄탄대로를 달리는 찬게즈. 거기다가 회사에서 가장 막강한 권력을 가진 짐에게 살뜰한 지원을 받고 있는 찬게즈는 언더우드샘슨에 취직하며 먼저 받은 돈으로 그리스 여행을 떠난 프린스턴 멤버 가운데 한 명인 에리카와 사랑에 빠진다. 짧은 소설이라 구체적 상황은 소개하지 않겠는데, 하여간 입사해서 스물두 살짜리가 퍼스트 클래스에 타고 필리핀으로 업무출장을 가는 도중에 911이 터지고, 사랑은 생각대로 되지 않고(생각대로 되면 그게 사랑이냐, 바보같이!), 911 이후 미국에서 이슬람을 믿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은 은근히 삐딱해지는 거 같고, 그러면서 같은 종교를 믿는 이웃국가 아프가니스탄을 맹렬하게 폭격해 수많은 인명이 죽어가고, 조국 파키스탄 역시 다른 종교를 믿는 인도와 일촉즉발의 핵전쟁 가까이 근접해있는 가운데 미국은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는 걸 깨닳는 찬게즈. 과연 찬게즈는 어떤 장단에 춤을 출까? 미국 내에서도 꿈의 직장에 근무하면서 (내 엑스회장새끼처럼) 승승장구하여 일신 상 영달을 도모하고 아름다운 미국여자를 아내로 맞아 행복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그딴 거 다 때려치우고(1960년대 아랍권과 이스라엘 전쟁당시 전쟁 발발과 동시에 아랍권의 있는 집 아들들이 다 유학길에 오른 것과 대비해 이스라엘 유학생들은 서둘러 조국으로 돌아와 총을 잡은 일과 비교 당하는 것이 수치스러워) 조국과 종교를 위해 군화를 신을 것인가, 이건 직접 알아보시라.
 다만 한 가지. 이보 안드리치의 걸작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에서 ‘예니체리’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주저하는 근본주의자>를 읽다가 뒷부분에서 난데없이 이 ‘예니체리’를 거론하고 있어 깜짝 놀랐다. 예니체리에 관하여 두산 백과사전은 이렇게 설명해놓았다.
 “오스만투르크 제목에 정복된 유럽 속령 내의 그리스도교도 중에서 장정을 징용하여 이슬람교로 개종시키고 엄격한 훈련을 실실한 다음 술탄의 상비친위군에 편입시켰다. 결혼하거나 상업에 종사하는 것은 금지시켰으나 고봉(高俸:high salary)을 받고 고위, 고관에 영전하는 등용문이었으므로 자기 자식을 지원시키는 그리스도교도도 있었다.”
 이건 사전적 설명이고, 오스만투르크가 이웃한 그리스, 마케도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 세르비아 등을 침략해 현지의 소년들을 거의 납치해 혹독한 훈련을 거쳐 자신의 친위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예니체리 출신의 터키 장군이 석조 다리를 드리나 강에 건조하고, 다리를 둘러싼 역사적 사건들을 그린 것이 <드리나 강의 다리>다. 왜 장황하게 이 이야기를 들먹이는가 하면, 미국을 필두로 하고, 일본이 뒤를 이어, 주로 제삼세계 국가 출신의 청년 학생들에게 비교적 수월하게 박사 등의 학위를 수여하고, 정말 인재라 생각하는 재원은 미국 시민권을 주어 미국인으로 살게 하고, 아니면 다시 그들의 고국으로 돌려보내 제삼세계의 핵심 지도부의 성원이 되게 지원한다. 그들은 각기 자기 조국에서 대표적 친미파로 행위 하는데, 이걸 보고 <주저하는 근본주의자>의 작가 모신 하미드는 주인공 찬게즈를 예니체리와 비교하려 했던 것이다.
 책은 모처에서 찬게즈가 건장한 미국인과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음식을 먹고, 미국인이 묶은 호텔까지 데려다 주는 장면까지, 전적으로 찬게즈가 미국인에게 하는 대사로 되어 있다. 따라서 스스로는 자신을 찬게즈라고 이야기하지 않으며, 미국이란 말 대신에 ‘당신네 나라’라는 말을 사용한다. 미국의 군사자산에 의지하여 영토를 방위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은 완전히 동의하기 힘들지만, 미국과 제삼세계, 특히 이슬람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잠깐의 숙고를 요구받을 것임을 알고 책을 선택하시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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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22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로도 있다고 하는데 한 번 보고 싶습니다.

그나저나 모신 하미드의 신간은 언제나 나오려
는지 궁금하네요.

예니체리는 미군에서도 이름만 달리 해서 채택
하고 있는 시스템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Falstaff 2018-03-22 15:13   좋아요 0 | URL
오,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미있을 거 같아요. 개봉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신 아미드는 지금 검색해보니까 ˝모신 하미드˝란 이름으로 문학수첩에서 한 권이 나와 있더군요. 책 소개글 보니 <...근본주의자>와 마찬가지로 2인칭 소설인 모양입니다.

레삭매냐 2018-03-22 15:26   좋아요 0 | URL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도 상당히 재밌게 읽었습니다.

신간은 제목이 <Exit West>네요.

영화 <Reluctant Fundamentalist>는 2012년
에 만들어졌네요. 케이트 헛슨과 리브 슈라
이버 그리고 리즈 아메드가 주연으로 나왔
네요.

Falstaff 2018-03-22 16:10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많이 읽고 보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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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그림자 1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정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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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들어와 아직까진 제일 재미있게 읽은 스릴러 소설. 두 권 800여 쪽의 장편소설임에도 이틀이면 독파가 가능하다. 근데 난 엿새 걸렸다. 오지게 마신 술과 이튿날의 숙취로 이틀 동안 휴가까지 낼 정도로 벌벌 기었고, 오랜만에 토요일, 일요일 또다시 이틀 동안 완벽하고도 보람차게 놀았다. 작은 아이가 깔아준 PC 게임하느라 날 새는 줄 몰랐다. 하여간 요새 남자들은 그놈의 게임 때문에 인생 망칠 위험이 높다. 내 인생에 술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렇게 살지는 않을 거라고 후회하듯, 현대의 젊은 청년들 역시 언젠가 후회하게 될 날이 오지 않으리라는 걸 누가 보장하겠는가. 게임의 속성이 대부분 전쟁을 수반한 땅따먹기. 인류가 네 발로 걷던 시절부터 수컷들의 가장 큰 충동을 화면에다 옮겨놓았으니 완전 몰입하는 거 같다. 이래저래 문명이 발달할수록 수컷들의 경쟁력은 날로 내리막길이고, 이 경향은 앞으로 길어야 3만년 안에 인류가 멸망할 때까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아, 이런 장황하고 터무니없는 각설이 또 있을까. 책 얘기하자.
 2001년에 사폰이 써서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책 <바람의 그림자>. 당시엔 완전히 유럽 폭격과 유사했던 모양이다. 아니, 유럽을 필두로 북아메리카, 그리고 브라질을 제외한 대륙의 모든 국가가 스페인 어를 사용하는 라틴 아메리카까지 <바람의 그림자>가 휩쓸어버렸다니 그 바람이 정말 대단하긴 대단했던 모양이다. 우리나라에는 2005년에야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번역이 이루어졌는데, 한국에서도 역시 베스트셀러 대열에 섰었다고 봐야겠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일단 순문학, 소위 ‘순수문학’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 것으로 짐작이 가는데, 그게 뭐. 문학이면 문학이지 순문학, 장르문학, 대중문학을 따진들 무엇 하겠는가. 잘 쓴 스릴러물이라는데 이견이 없다.
 안개가 끼고, 바닷가에서 밀려온 습기로 인해 음습한 바르셀로나의 한 골목길에 ‘잊힌 책들의 묘지’라는 창고가 있다. 고서점을 운영하는 홀아버지 손에 이끌려 책들의 묘지에 들어가게 된 열 살짜리 다니엘. 묘지엔 엄격하게 지켜야하는 규칙이 있으니, 처음 묘지에 들어 선택한 책은 일생에 걸쳐 마치 자기 자신인 듯 평생에 걸쳐 책을 보호해야 하는 것. 다니엘이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책 한 권을 뽑아드니 생전 처음 듣는 소설가 ‘훌리언 카락스’라는 인물이 쓴 <바람의 그림자>였다. 여기서 주목할 것. 이때 주인공 다니엘의 나이 열 살. 열 살 소년에게 비밀이 있을 수 있을까? 아이는 당연히 책에 관한 자신의 의무를 이해하고 받아들였지만 <바람의 그림자>를 자신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결코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온갖 동네를 다니며 자신이 희귀본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를 따발따발 떠들고 다니기에 이른다. 무지하게 돈이 많아 직업인 고서적상은 심심풀이로 하고 있는 돈 구스타보 바르셀로가 거액을 제시하면서 자신에게 팔 것을 제안했으나 단칼에 거절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하이고, 열 살 먹은 꼬마가 돈 구스타보의 조카이자 앞을 못 보는 천하의 미인 클라라에게 난생처음 사랑을 느껴 <바람의 그림자>를 줘버리고 말았다는 걸, 이걸 어째.
 다니엘이 훌리안 카락스가 쓴 <바람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의 앞에 등장하는 하이드 씨, 아니, 라인 쿠베르 씨. 심각한 화상으로 얼굴 전체가 뭉개지고, 모든 신체에 끔찍한 경화현상이 벌어진 쿠베르 씨는, 책을 자신에게 넘길 것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왜냐고? 도무지 훌리오 카락스를 참아주지 못할 정도라서 그가 쓴 모든 책을 불살라버리려는 의지 하나 때문이다. 이것을 계기로 다니엘은 <바람의 그림자>를 비롯해 훌리오 카락스에게 진지한 호기심이 생겨 카락스의 생애를 파헤치기로 결심을 하는데, 아뿔싸,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가 한 명도 없다.
 유방에게 한신과 장량이 있었고, 항우에겐 범증이, 유비에게 제갈량이, 조조에게 순욱이 있었듯 진정한 주인공한테는 언제나 출중한 조연이 등장한다. 홈즈에게 왓슨이 있었던 것처럼. <바람의 그림자>에서도 비록 뼈만 남은 알량한 체격이지만, 현명하고 깡다구 있고, 다니엘에게 충성스럽고, 불의와 파시즘과 폭력집단에 결연히 저항하는 현인wise man이 등장하니 ‘페르민’. 다니엘이 ‘잊힌 책들의 묘지’에 들른 후 몇 년이 지나 본격적인 사춘기에 접어들어 돈 구스타보의 앞 못 보는 조카딸 클라라에게 홀딱 빠진 것까지는 좋았는데(아, 이 대목에서 이순원이 쓴 <19세>를 읽어보시면 좋겠다), 사춘기의 불타는 갈증, 미인의 피부와 생식기관에 대한 말 못할 화염 같은 충동은 다니엘에게 한밤에 클라라 혼자 있는 저택에 방문하여 그냥 그녀의 냄새라도 한 번 맡아볼 것을 추동했고, 그리하여 <바람의 그림자>를 읽어주며 친해져 이젠 무람없이 클라라의 방에 들락거리던 다니엘이 깊은 밤, 열린 창문을 통해 달빛이 교교히 흐르는 천상의 클라라의 방문을 열었을 때, 그녀는 피아노 선생이자 스페인의 유망한 작곡가 아드리안 네리 씨의 벌거벗은 엉덩이를 부여잡고 콧소리를 킁킁내고 있던 것이었는데, 이게 웬 망측한 일이냐고 기분이 엉망이 된 아드리안 네리 선생이 급하게 옷을 대충 추려 입고, 자신보다 훨씬 더 기분을 잡쳐버린 우리의 다니엘의 귀싸대기를 몇 방 후려갈겨 입술을 터뜨리고는 현관 계단에서 내 팽개쳐버렸을 때, 바로 이때, 한 거지발싸개같이 현관 앞에서 밤을 보내고 있던 무숙자homeless 페르민이 등장하는 것이다.
 솔직하게 얘기할까?
 좋다.
 1. 페르민의 등장은 좀 과하게 설정한 티가 난다. 왜냐하면 페르민은 홈즈의 왓슨과도 비교 불가, 이이에겐 왓슨 따윈 아무것도 아니고 제갈량이나 장량 같은 치밀한 뇌 활동과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 그리고 일찍이 합종설合從說을 주장한 소진처럼 엔진 혹은 발동기를 장착한 세 치 혀를 지니고 있는 슈퍼스타이기 때문이다.
 2. 책의 또 다른 주인공, <바람의 그림자>를 쓴 훌리오 카락스와 그의 친구들이 얽히고설킨 악연이 과하게 유별나지 않나 싶다. 이 정도면 인생불운의 전 지구적 대표선수들만 추슬러 모아놓은 수준이다.
 3. 잘난 척을 좀 하자면, 훌리오 카락스의 책을 모두 찾아내 불태우려는 욕망에 가득 찬 괴기스런 인물 라인 쿠베르 씨의 정체가 처음부터 누구 아닐까, 싶다가 점점 확신에 가까워지는 기분. 즉 획기적인 반전은 아니라는 거.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릴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최고로 즐길 만한 흥미진진한 작품이라는 거. 얼마나 재미있느냐 하면, 난 이 책이 해피 엔드로 끝날지, 아니면 비극적 종말을 고할지, 마저도 절대로 가르쳐드리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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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 1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김현철 옮김 / 새물결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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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에포크(Belle Epoque) 시대. 우리말로 하면, 좋은 시절, 네이버 검색해보면 주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1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 문화가 넘치고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큰 전쟁도 없던 시대. 딱 이때 활약하던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 만 28년 4개월만 살다가,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매독 균이 길고 긴 잠복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자 숟가락 놓은 천재화가. 클림트의 영향을 받아 표현주의적인 작품들을 많이 생산했다는데, 구글 검색해서 이 화가의 그림을 구경해보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강렬하다는 것, 사납다는 느낌, 혹은 그걸 초월해 좀 괴기스럽기도 하고 자세가 하나같이 불안정한 것까지 다 합해, 딱 한 마디로 불편하다는 거, 근데 상당히 색다르고 매력적으로 보인다는 점. 두 번째가, 요새 감상자 수준이 아니라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감상자라면 외설이라고 단정할 수도 있었을 거 같다는 거. 실레, 또는 쉴레 이전까지 누드화에선 거의 대부분, 물론 그러지 않은 화가도 제법 됐지만 어쨌든 많은 화가들이 여성의 누드를 그릴 때 풍만한 가슴을 자랑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랫도리엔 털도 나지 않은 이상한 사람을 그린데 반해서, 실레의 여성누드는 매우 불편한 자세에다가 뼈에 살갗을 살짝 도배해 놓은 듯 마른 여성들, 그래서 빈약한 가슴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엔 제법 삐죽하니 털이 돋아 있는데, 가슴의 발달정도와 털의 숱으로 미루어 짐작하면,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않은 소녀, 남자의 경우에도 (거대 남근을 자랑하는)자화상을 제외하면 소년의 누드가 주를 이룬다는 걸 알아챌 수 있다. 독특한 선과 색, 모델의 기형적 포즈,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알았는데 엄지손가락을 거의 그리지 않은 독특하게 길쭉한 손가락 등의 개성은 그가 그린 그림이 유독 책 표지에 많은 쓰인 이유가 되지 않았을까, 잠깐 생각해보았고, 간단하게 을유문화사하고 민음사에서 낸 세계문학 시리즈의 책표지를 보니, 정말 많이도 썼다. 그림을 한 번 보자. 차례로, 앉아 있는 아가씨 <라이겐>, 예언자 <프랑켄슈타인>, 어린 소년 <필립과 다른 사람들>, 우정 <도둑일기>, 웅크림 <상속자들>, 자화상 <의식>, 토시를 입은 자화상 <피라미드>,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인간 실격>.

 

 

 왜 난데없이 에곤 실레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책 속에 갓 열 살이 넘은 폰치토라는 꼬마가 아주 중요한 등장인물인데, 이 폰치토가 에곤 실레를 좋아하고, 도를 넘어 숭배하는 수준을 간단히 능가해 자신이 실레가 환생한 인물이라고 착각할 정도다. 나도 위에서 얘기한 거, 실레가 그림에 유독 엄지손가락을 숨기려했다는 것도 폰치토가 말해줘서 알았다. 에곤의 아버지가 어린 아가씨와 결혼해 신혼여행을 떠났지만 너무 어린 아가씨라서 첫날밤의 구름이 비를 만드는 묘한 조화를 알지 못해 첫날밤은 그냥 잤지만 다음날도 그러는지라 화딱지가 솟구쳐, 그래 너 혼자 자라, 난 나대로 해결하겠다, 해서 곧바로 매독에 걸려, 오랜 잠복기간 동안 아들 딸 낳고 살다가 한 순간에 발병을 해 정신착란으로 죽었다는 가정사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하여간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요사스런 일, 뒷담화들 참 많이 안다. 인정한다.
 성적 환상과 에로티시즘에 대한 담시.
 딱 한 문장으로 쓴다면 위와 같이 이야기하겠다. 이제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해 정수리엔 몇 올 남지 않은 50대 남자 리고베르토씨가 10년 전 갓난 아이 하나 딸린 홀아비 시절에 젊고 포동포동하고 육감적이고 겨드랑이 털을 말끔하게 밀어버려 애초부터 악취를 제거해버린 반면 다리 사이엔 삼각팬티의 양 옆으로는 빼꼼하니 조밀한 털이 삐져나오는 매력적이고 육감적이고, 참 아름다운 여인인 루크레시아와 결혼을 했다. 당시 갓난아기가 이제 열한 살이 조금 넘어 에곤 실레에 푹 빠져 사는 폰치토이며, 폰치토와 새엄마 루크레시아는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하여간 미성년자 성추행 아니면 성폭행 비슷한 혐의를 받아 지금은 리고베르토씨와 별거 중이다. 책을 읽어보면 거의 틀림없이 루크레시아의 행동과는 별개로 똑똑하고 되바라지고(가끔 선의로 얘기하는 사람들은 조숙하다고 하는데, 되바라진 건 되바라진 거다!), 정말 귀엽고 아름답고 이런 걸 다 합해 잘생겼으며, 어떻게 보면 예수의 심성이고 어떻게 보면 유다의 심성을 가진 폰치토, 이 아이의 도발로 인해 아동 성추행 또는 성폭행의 죄명을 뒤집어 쓴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정확한 건 알려드릴 수 없다.
 하여간 그래서 현재는 별거 상태이며, 루크레시아는 폰치토한테 무지하게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소학교에 다니고 있는 폰치토가 오후 수업을 땡땡이치고 새엄마가 사는 집의 벨을 누르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하는데 뭐 별 스토리는 없다. 별 스토리가 없는데 그걸 여기다 쓸 수는 없잖아? 그래서 그것도 생략.
 그러면, 천하의 설레발꾼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별 얘기도 없는 책으로 무려 두 권 454쪽짜리 책을 썼겠는가. 천만의 말씀이지. 그리하여 내가 애초에 이 책은 성적 환상과 에로티시즘에 관한 담시라고 얘기한 거다.
 젊은 아내의 이름이 루크레시아. 서기전 510년 근방에 로마로 하여금 왕정을 물리치고 공화정이 들어서게 만든 정절녀 겁탈 사건의 피해자 주인공이 루크레시아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여주인공의 이름을 처음 봤을 때 조금 불길한 기운을 숨길 수 없었는데, 그건 괜한 걱정. 처음부터 끝까지 요사의 쉬지 않는 두뇌활동, 손목과 손가락에 의한 타이핑은 독자로 하여금 진짜, 진짜 매력적인 성적 환상, 그리고 진정한 에로티시즘의 세계, 그러나 가끔 허파가 빠지게 웃긴 에로티시즘의 세계를, 미친 척하고 아주, 아주 진지하게 그려낸다. 나, 이럴 줄 알았다.
 뭘 보고 그러느냐고?
 리고베르토 선생이 아름다운 루크레시아와 별거하는 1년 동안 루크레시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갖 환상적인 성적 몽상을, 아들 폰치토의 입을 통해 밝히는 에곤 실레의 그림 속 변태적 성적 취향과 섞어서 껌벅 넘어가게 만들었다.
 루크레시아는 수많은 고양이가 침대 위에서 가르릉대는 가운데 온 몸에 꿀을 바르고 리고베르토씨가 모르는 남자와 믿기지 않는 정사를 벌인 다음, 모든 과정을 남편의 귀에 대고 속살거리기도 하고, 남편의 양해 또는 권유에 따라, 젊은 시절 루크레시아를 짝사랑하다 이루어지지 않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현재 MIT 단과대학장 자리에 오른 남자와 유럽 여행을 동반해 벌어지는 침대 의식 역시 리고베르토씨에게 빠짐없이 이야기함으로써 리고베르토씨를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 중 언제나 신사적이고 도덕적인 자세를 유지한 학장 선생에게 믿기지 않는 인내에 대한 선물로 루크레시아는 아래와 같은 그림의 여자와 똑같은 자세를 구경시켜줌으로 보답하기도 하고,

 

앙리 제르벡스, <롤라>

 

 드디어 마지막 날 밤엔 그동안 밀린 만리장성을 쌓기도 하는데, 진짜로 만리장성을 쌓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 정중하고 틀림없이 신사인 학장선생은 우렁차게 큰 목소리로 “돌아오라 쏘렌토로”를 노래하기 시작했고, 장안長安에서 시작해 요동반도까지 이어지는 만리장성을 쌓는 내내 이태리 칸쪼네는 물론이고 페루의 유행가와 민요에 이르기까지 온갖 노래를 함으로써, 급기야 호텔 지배인이 조용히 해달라고 전화를 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것까지, 얼마나 요절복통을 하게 만드는지, 이건 읽어본 사람만 안다. 그것뿐인가. 루크레시아의 성적 모험은 동성애와, 남편과 더불어 다른 여인까지 참가하는 쓰리 섬까지, 틀림없이 요사가 주장하는 성적 가능성, 포르노가 아닌 에로티시즘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선까지 몽땅 다 그려놓는 바, 작가의 주장이 뭔가 하면, 서로 합의하여 진행하는 둘, 셋 또는 네 명까지, 절대 네 명을 넘어서지 않으며, 결코 혼자서도 아닌 정사행위다.
 야할 거 같지? 천만의 말씀. 유쾌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뿐 절대 외설로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침대 위 행위를 수반한 요사의 세계관마저 읽을 수 있는 재미가 아주 진진하다. 예컨대, 애국심이라는 것은 악당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등, 지역주의를 비롯한 모든 패거리 문화를 배격하는 세계인으로의 요사를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재미있지만 절대 외설적이지 않아서, 난 지금 쓰는 독후감을 마치자마자, 대학졸업 후 지금 본격적으로 백수시대白首時代로 진입한 작은 아이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하려 한다. 백수생활이 얼마나 힘들겠나. 이거 읽으면서 기운 좀 내라고. 낄낄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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