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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의 샘 1 ㅣ 펭귄클래식 143
마르셀 파뇰 지음, 조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4월
평점 :


책 표지 그림, 척 보기만 해도 유명한 삽화가, 장 자크 샹뻬다.
이 소설의 탄생이 재미있다. 작가 파뇰의 아름다운 아내 자클린 부비에가 영화배우였던 모양이다. 남프랑스 마르세유 근방의 촌놈으로 태어나고 자란 파뇰은, 늙은 화가 세잔이 자신의 노혼(老魂)을 바친 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 편의 영화를 만들어 아내에게 주인공 ‘마농’ 배역을 주었으니 이 때가 1952년. 영화는 당시 작품으로는 아주 예외적인 네 시간 가량의 길고 긴 런닝 타임을 갖고 있었으며 화면 가득 남프랑스의 매력적인 풍광이 넘쳐흘렀던 것 같다. 영화를 만들고 어느덧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1963년, 영화의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본 마르셀 파뇰은 이것을 다시 소설화하기에 이르고, 조은경은 이 소설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초역은 정성호, ‘주변인의 길’ 1992)로 번역해 웅진<뿔]에서 냈다가, (완전 내 짐작으로 말하자면)저작권 계약변경 등의 이유로 다시 펭귄 클래식 코리아를 통해 웅진<뿔]과 같은 표지의 번역본을 (재)출간했으며, 2018년 1월의 겁나게 춥던 어느 날 밤, 알라딘 중고책 서점에서 내 가방 속에 들어오게 된다. 영화는 1980년대에 이브 몽탕, 제라르 드 파르디유 등이 출연하는 리메이크 작품으로 다시 나왔고, 1부는 <장 드 플로레트>, 2부는 <샘의 마농>, 각 런 타임은 두 시간 가량으로 만들었다. 내 검색실력 가지고는 아마존에서도 파뇰의 아내 자클린 부비에가 등장하는 1952년 필름을 찾지 못하겠다.
어쨌거나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작품은 남 프랑스 에투알 산맥의 끝자락, 그것도 매우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나타나는 주민 150명가량의 작고 작은 산골마을 레 바스티드 블랑슈, 우리말로 ‘하얀 요새’라는 뜻의 촌 동네에서 한 발도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남자들은 주로 한 세기 전에 있었던 보불전쟁 또는 이번 세기의 제1차 세계대전, 아프리카 등에 산재한 프랑스 식민지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레 바스티드를 떠났다가 상처를 입고 다시 돌아와 동네의 이장 필록센 씨처럼 연금수여자 생활을 즐기거나, 아주 공부를 잘해 세관원 같은 사무 공무원이 되어 동네를 떠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자들은 물론 결혼을 통해 자연스레 다른 지방으로 이주가 가능했지만 그때에도 주변에 있는 비슷비슷한 폐쇄된 이웃동네로 결혼 이주하는 경우에는 시선이 아주 곱지 않았던 것은, 특히 여자 형제를 결혼시킬 때 남자 형제가 느끼는 독특한 상실감 같은 걸 감안하면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주민 150명 정도가 복닥복닥 살고 있는 폐쇄공간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물론 우리나라의 비슷한 장소도 마찬가지로, 이방인이 이주해올 경우 오히려 더욱 폐쇄성이 강화된다는 것이고 흔히들 이런 성향을 ‘텃세’라고 칭한다. 지금은 농촌의 노령화로 많이 순화되긴 했지만 우리의 경우도 이들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서, 이주민이 농사를 새로 배우며 지어야 하는 경우에 현지민이 적극적으로 다가가 이들을 교육시키거나 협조하려 하는 대신,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관찰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데, 개인적인 성향이 동양보다 훨씬 강한,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많이 섞인 갈리아인의 후예들은 작품의 주인공 가족인 꼽추 장 카도레와 오페라 <베르테르>, <내가 왕이었다면>, <마농>에서 노래했던 붉은 머리카락의 소프라노 출신의 아내 에메, 그리고 어여쁜 금발 소녀 아가씨 마농, 이 세 가족이 새로이 농사를 ‘책’을 통해 배우며 완전한 실패를 향해 조금씩 걸음을 내딛는 것을 바라볼 뿐이다. 가장인 꼽추 장 카도레가 또한 장 드 플로레트, 즉 이 동네 출신인 아름다운 아가씨 플로레트가 사이 나쁜 이웃동네 레 종브레로 결혼 이주해 낳은 아들이란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수베랑 가문의 생존자인 파페, 이름은 세자르 수베랑이지만 나이가 들어 ‘파페’ 라고 불리는 늙은이와 이이의 유일한 상속자인 조카 위골랭은, 한때 마르지 않는 샘이 흘렀지만 천하의 게으름뱅이 피크부피그가 오랜 세월 관리를 하지 않아 수원이 막혀 이젠 더 이상 물이 나오지 않는 숨겨진 옥토, 위골랭의 숙원사업인 카네이션 화훼농장을 위한 천혜의 장소에 장 드 플로레트가 입주하는 순간, 이들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완전한 실패를 확약하는 계략을 모의하고 실행한다. 바로 샘의 수원을 콘크리트로 막아버리는 것. 물이 없는 남 프랑스에서는 두 주일 이상 비가 오지 않으면 이집트 콩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농사도 성공할 수 없으나, 장 드 플로레트가 꿈꾸는 것은 토끼 농장이며, 토끼의 사료를 위해 아시아 박을 재배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많은 물이 필요한 상황. 세무 공무원이었던 장이 거친 산골에서 물을 구하기 위해서는 모진 고생, 스스로를 격심한 위기상태로 몰고가야할 만큼 격렬한 노동을 피할 수 없다. 바로 자기 땅의 올리브 나무 바로 아래에 마르지 않는 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장이 믿는 것은 통계적 수치. 수십 년간 축적된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월별 비 오는 날 수와 강우량으로 아시아 박을 얼마든지 가꾸어나갈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에, ‘책’에서 얻은 그의 계산은 현실과 달리 처음으로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 자신에게 꿈을 꿀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러나 자연의 불규칙성과 불확실성은 언제나 엄혹한 법인 것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파페, 즉 세자르 수베랑이 유독 장의 몰락을 기원한 것은 이제 수베랑 가문에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속인이자 조카 위골랭을 통해 가문을 이어가고 싶어 하는 반半 본능적 욕구가, 위골랭의 성공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 그건 아니다. 세자르가 평생 독신으로 사는 이유는,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아름다운 아가씨 플로레트였으며, 자신이 식민지에서 벌어진 전쟁에 참전하는 새를 참지 못하고 원수 같은 이웃 레 종브레의 대장장이에게 시집간 그녀가 낳은 아들이 바로 장 드 플로레트였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유추하는 건 독자의 권리이고 나는 바로 그 권리를 사용하여 세자르, 즉 파페가 유독 장의 가족에게 혹독했던 건 바로 사랑, 그것도 지독한 외고집 사랑의 반대급부로의 미움 때문이었다고 결론짓는다.
내용은 여기까지. 영화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서 상당히 재미나다. 영화라는 장르 특유성으로 인해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등장하는 치명적 반전을 독후감에 써버린다면 독후감으로는 좋겠지만 이 책을 정말 읽어볼 분들께는 “<식스 센스>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알고 보니 유령이었대!”라고 얘기해주는 것하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스토리 소개는 여기서 끝.
하나 덧붙이고 싶은 건, 유럽 사람들이 심술부리는 것은 우리 눈엔 정말 살벌하다는 것. 자기가 놓은 덧에 걸린 산짐승을 훔쳐갔다고 총으로 쏴 죽이는 등 하여간 수틀리면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해 결과가 죽음에 이르더라도 별로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 살 떨리고 소름끼친다.
지금부터 진짜 하고 싶은 얘기.
진실을 감춘 세자르와 위골랭. 자신의 농장에 항상 넘쳐흐를 수 있는 샘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장. 그러면 나머지 주민들은? 물론 샘이 농장 안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것도 농장의 집에서 바로 내려다볼 수 있는 가까운 거리, 즉 진짜 있는 위치까지 알면서도, 단 한 사람만이 돌 위에 화살표를 그려 암시하는 수준으로 힌트를 준 것을 빼면 아무도 항상 넘쳐흐르는 샘에 대하여 농장의 주인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꼽추이며 전직이 세무 공무원인 서생출신이 물 한 동이를 얻기 위해 맨발로 노새 한 마리를 끌고 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미스트랄 속에서 일사병에 걸릴 때까지 산꼭대기 샘으로 쉼 없이 왕복하는 것을 번히 바라보면서도. 동네에서 가장 부유한 수베랑들에 의한 일종의 폭력 또는 기만을 주민 150명이, 단 한 명만 빼고, 모두 침묵을 고수함으로써 그들의 폭력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왜 난 이 장면을 읽으며 2018년 한 ‘여자’ 검사에 의하여 촉발되고 ‘여류’ 시인의 폭로로 번지기 시작한 한국의 Me too 운동, 오랜 세월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으로 방치하거나 동조해온 성희롱, 추행, 폭행의 관례가 떠올랐을까. 직접 샘을 시멘트로 막은 수베랑 사람들만이 죄인이 아니라,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 라 바스티드 주민 전부 다가 죄인이며, 그리하여 모두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마르셀 파뇰은 이미 60여 년 전에 웅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면서 오랜 세월 입 닫고 산 모두가 죄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