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노소스 궁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29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박경서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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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잔차키스. <그리스 사람 조르바>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인물. 사실 나도 <....조르바> 말고는 <성 프란치스코> 하나밖에 더 읽어보지 못했다. <성 프란치스코>를 읽으면서 알았는데, 카잔차키스의 작품 세계는 거칠게 ① 일반 그리스 사람 이야기, ② 기독교 성인들 이야기, 그리고 ③ 희랍 신화에 대한 것들로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①과 ②는 읽어봤고, 나머지 ③을 위해 고른 책이 <크노소스 궁전>이다. 며칠 전 알라딘에 들러 중고책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하나 더 사왔다. 이건 몇 달 뒤에나 읽을 듯.
 이 책을 선택할 때, 거의 언제나 출판사 책 소개를 별로 읽지 않는 관계로, 설마 카잔차키스가 그리스 신화를 다시 썼겠어? 그것도 숱한 드라마 등의 예술작품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미노타우로스, 테세우스, 아리아드네 이야기를? 이렇게 생각하면서, 신화에 빗댄 19세기말, 20세기 초를 무대로 그리스와 크레테 섬을 그렸을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런데, 진짜로 서기 수 세기 전, 정말로 아테나이의 왕자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 잠입하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느 한여름 정오였다. 크노소스 위에 걸려 있는 태양은 그 유명한 크노소스 궁전에 빛을 내리비추었다. 청동 양날 도끼, 거대한 정원, 화려하게 채색된 지붕이 이글거리는 햇빛을 받아 눈이 부실 정도로 번쩍거렸다.” (7쪽)


 첫 문단. 이 책 가운데 가장 힘들게 읽었다. 역시 <그리스 사람 조르바>의 영향이 상당히 커서, 생각(또는 기대)을 20세기 초 그리스와 크레타 섬에서 근 3,000년 뒤로 넘겨 기원 수 세기 전 미노타우로스 신화의 무대로 갑자기 바꿔야 하는, 당혹감을 피할 수 없었다. 우습게도 아주 평범한 위의 글을 서너 번 읽어야 했다는 건 사실이다. 큰 덩치와 갈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미남자 테세우스가 크노소스 궁전에 잠입해 여기저기를 염탐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낮잠 시간에 잠이 오지 않아 창문으로 정원을 내다보고 있는 아리아드네의 운명적인 눈길에 테세우스가 포착되고, 이어 테세우스를 미행하고 있는 근위대장 말리스가 눈에 들어온다. 당연히 아리아드네는 이미 테세우스가 염탐하는 장면을 몇 번 본 적이 있어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으나 아직 본인 스스로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소설 속에는 미노타우로스의 탄생 설화, 즉 포세이돈의 미움을 받은 미노스 왕의 아내 파시파에가 대 발명가 다이달로스가 만들어준 나무 암소 속에 들어가 황소와 교접해 반인반수 미노타우로스를 낳았다는 얘긴 나오지 않는다. 전설이나 설화는 대개 특정 사실을 암시한 것이 일반적이라서, 나는 파시파에가 정말로 황소와 교접을 해 괴물을 낳은 것이 아니고, 불륜을 통해 덩치가 크고 사나운 ‘가문의 골치덩이’를 생산해 이를 수치스럽게 여긴 미노스 왕이 특별 감옥인 미궁에 그를 가두었던 것이 아닐까, 라고 누구나 추리할 수 있을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책에선 미노타우로스를 사람의 몸과 황소의 머리를 갖춘 흉물이자 괴물이고 정말로 1년에 아테나이에서 온 미청년 일곱 명, 미소녀 일곱 명을 산 채로 잡아먹어야 하며, 이카로스의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궁에 갇혀 있고, 미노타우로스가 죽으면 곧이어 크레타 섬이 멸망할 것이란 신탁이 내려오고 있다고, 신화에 아주 유사한 전제를 깔고 있다. 읽기에 따라서 아주 오래 전부터 크레타 섬에 있었던 괴물인데 미노스 시대에 와서 미궁에 갇히게 됐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리 중요한 건 아니다.
 또 하나 내가 알고 있던 신화와 다른 것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의 이별 장면. 신화에서는 낙소스 섬에 도착한 테세우스, 아리아드네 커플이 이미 할 거 다 해놓고, 아리아드네가 곤히 잠든 사이 이젠 그녀에게 싫증이 난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공주 혼자만 남겨 두고 토껴버렸지만, 카잔차키스는 아량을 베풀어 테세우스가 낙소스 섬에 도착해서 항해에 필요한 물품들을 보충하는 동안 아리아드네가 산보를 나갔다가 배를 한 척 발견했는데, 온통 포도덩굴로 치장을 한 배 위에 근사하게 생긴 남자가 옆에 앉은 표범을 쓰다듬고 있는 모습에 홀랑 반해 그 길로 디오니소스라고 짐작되는 인물을 따라 영원한 항해를 떠났다고 해놓았다.
 결정적인 장면은, 역시 굉장히 궁금해 했던 일종의 수수께끼였던 것으로, 크레타의 식민지 비슷한 처지에 불과해 미노스 왕의 명령을 좇느라고 아테나이 왕 아이게우스의 외아들 테세우스마저 7명의 남자 희생물 가운데 포함시켜야 했을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미노타우로스를 처치한 다음 어찌하여 그리 빠른 시기에 크레타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물론 이를테면 아테나이는 초승달, 크레타는 보름달, 뭐 이런 비유도 가능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카잔차키스는 최신식 무기의 등장을 생각해냈다. 그게 무엇인지는, 당연히 안 알려줌. 그것마저 일러드리면 이미 숱하게 알려진 신화를 소설로 만든 문학작품을 찾아 읽겠는가 말이지. 여태까지 소개한 내용도 이미 스포일러가 과한 감이 듦에야.
 문제를 푸는 중요한 인물의 이름이 누군가하면, 아리스티데스다. 그런데,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나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영웅 아리스티데스가 아니라 소설의 가상인물이다. 그러니까, 막강한 최신 무기에 대해서는 힌트는 하나도 드리지 않겠다는 얘기. 이걸 우리는 먼저 읽은 자의 특권이라고 부른다지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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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 / 모비딕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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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를 읽고 난 다음에 연달아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른쪽……>을 다 읽은 지금 다시 말하자면, 괜한 걱정을 했다. 꽁뜨보다는 길고 단편소설보다는 짧은 스물네 개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 <왼쪽……> 독후감에서도 이야기했듯 성인들을 위한 우화, 손바닥 장掌 자를 쓴 장편소설. 스물네 개의 짧은 이야기들이 빠짐없이 다 말하고 싶은 건, 누구나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선과 악, 그 미묘한 경계이다. (솔직히 이럴 필요까지는 없지만)굳이 가져다 붙이면 이이의 <마크로풀로스 사건>에 나오는 에밀리아 마르티, 300년을 살아 인간의 선과 악에 달통을 해서 여간한 것으로는 전혀 감동하지 못하는 불운한 인간이 작가 자신, 즉 카렐 차페크의 시선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깐은 할 수 있다. 다만 희곡의 주인공으로 이제 다시 300년을 더 살 것인가 그냥 죽을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 에밀리아 마르티, 혹은 엘레나 마크로풀로스와는 달리 48년 밖에 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카렐 차페크는 비록 자신이 흉악범, 살인범을 묘사하고 있을지언정 그들 속의 다른 면모, “자신만의 엄격한 도덕률”이 있어 “누구에게도 신세지지 않고, 남의 것을 훔치지도 않으며, 거짓말로 하지 않”는 선한 일면이 있음을 누차 강조한다. (따옴표 속은 56쪽에서 인용)
 고집쟁이에다 노랑이 장인을 도끼로 머리통을 세 번 내리쳐 죽인 사위에게 배심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판사는 법대로 사형 대신 “유혈 참사가 하늘에까지 미치니, 신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판결하노라. 피고 본드라체크는 그 두 밭에 사리풀(유럽산의 독초)과 가시덤불의 씨를 끝도 없이 뿌려야 하리라. 그리하여 죽음이 그대를 찾아오는 순간까지 이 증오의 밭을 끝없이 일구고 또 일구리라……”라고 신의 이름으로 선고를 하고 싶어 한다. (따옴표 속은 245쪽에서 인용)
 사실 스물네 개에 달하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적절한 코멘트라고 생각하는 건, 선인과 악인의 이면, 그 경계의 눈썹만한 차이에 의하여 인간의 생이 결정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 따라서 차페크의 <왼쪽……>과 <오른쪽……>, 다 합해 마흔여덟 개의 짧은 이야기들은 보편적 인간형이 모두 출현한다고 생각하면 별로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읽는 도중엔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지금 독후감을 쓰면서 이이의 장편소설 <호르두발>, 그 쓸쓸한 보헤미아 이야기가 떠오른다. 뼈골이 빠지게 아메리카까지 건너가 번 돈을 보헤미아의 아내에게 보낸 호르두발 집안을 둘러싼 악당과 주민들, 그리고 가족 이야기. 그러고 보니 <호르두발>에서도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어 바람이 나고, 딸을 혼인시키려 하고, 죽어가고 했던 것이다. 그저 삶의 이야기. 언제나 곤고하며 즐거움이란 숨이 넘어가기 바로 전에야 드문드문 한 번씩 던져두는 삶. 그걸 살아내기 위해 때로는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이기도 하며, 범죄자와 살인자를 체포하여 징역형과 사형에 처하기도 하는 것. 열정 바로 옆에 죄악이 있을 수 있고, 사랑은 어김없이 무서운 질투를 동반하며, 행운이 살짝 눈초리를 비틀면 불행이 땅거미처럼 세상을 덮는 인간살이. 평생 남의 가슴에 못 박은 적 없이 살아온 한 인간이 문득 뒤돌아보니 자신도 모르게 숱하게 저질렀던 남의 가슴에 못 박았던 행위. 나나 당신이나 다 그런 철길 위를 지나왔던 것이다.
 다만 조심할 것은, 책을 읽으며 내가 밟아온 자리를 떠올릴 기회, 그 섬뜩한 기회를 만날 수도 있다는 점.


 * 을유세계문학전집 87번째 작품, <첫 번째 주머니 속 이야기>란 제목으로도 출간했다.

 

다만 을유세계문학전집엔 <오른쪽……>만 실려 있고, <왼쪽……>은 아직 번역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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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카렐 차페크 지음, 정찬형 옮김 / 모비딕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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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만 260쪽인데 무려 스물네 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첫 번째 <늙은 죄수의 이야기>가 9쪽부터 시작하니까 사실 252쪽. 평균 하나의 이야기가 열 쪽 반의 분량으로 되어 있으니 이걸 뭐라 해야 하나. 단편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짧다. 심지어 순 본문 252쪽 가운데도 12쪽은 삽화가 실려 있으니 소설이라기보다 말 그대로 이야기 묶음이라고 하는 편이 좋겠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한때 손바닥 장掌 자를 써서 장편소설掌篇小說입네, 하고 책을 만든 기억이 새록하니 나는데, 정말로 손바닥 소설이란 장르가 있다면 딱 이런 작품들을 두고 하는 이야기이겠다.
 눈에 들어온 차페크의 작품에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와 <왼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다. 일단 두 권 다 사고, 어느 것부터 읽을까, 하다가 진짜 아무 생각 없이 <왼쪽……>부터 골라잡았다. 다 읽고 붉은 색으로 씌어있는 영어 제목을 보니까 <Tales from the Other Pocket>. 아, <오른쪽……>부터 읽었어야 했구나, 알았지만 그게 뭐 그리 큰 대수랴. 올해 초에 차페크가 쓴 동화책 <작은 새와 천사의 알 이야기>을 읽으면서 이이가 짧은 글도 많이 썼겠구나, 생각은 했지만 <왼쪽……>와 <오른쪽……> 둘 다 성인成人(왜 여기서 난데없이 성인聖人으로 읽힐 수 있을까를 걱정했지?)을 위한 짧은 이야기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궁리하지 못했다. 책 읽기 전에 정보를 소홀히 한 탓이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짧은 이야기는? 맞다. <이솝 우화집>. 차페크의 <왼쪽……> 역시 우화적인 측면이 강한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다. 예를 들어볼까? 첫 번째 이야기에 ‘얀데라’라는 이름의 작가가 등장한다. 이이가 전에 작품을 한 편 썼는데 프린터로 출력해 읽어보니(1929년 출간한 책이니 프린터 출력이란 인쇄 초고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하다) 어디선가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다는 아주 언짢은 생각이 드는 거다. 다시 읽어보면 오히려 더 그러해서 자기도 모르게 분명히 누군가의 작품을 표절했다는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어 고민을 하다가, 오랜 친구를 만나 사정을 얘기하기에 이른다.
 “여봐, 이거 좀 읽어봐. 최근 작품인데 어째 남의 것을 베꼈다는 느낌이 든단 말이야.”
 그랬더니 친구 왈, “한 눈에 알아봤는데 뭐. 체호프 작품을 베낀 거구만.”
 작가 얀데라가 아주 깨끗한 사람이라 이런 지적을 받자 마음도 가벼워지고 기분도 상쾌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친구한테 또 비슷한 얘기를 하기에 이른다.
 “믿지 못하겠지만 때로 작가는 표절을 하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거든. 예를 들어 내가 쓴 최근 작품도 남의 것을 베꼈다는 걸 알아챘어.”
 이 말을 듣자마자 이 친구는 이렇게 대답을 하는 거였다.
 “알고 있어. 분명히 모파상에게서 훔친 거지.”
 어? 그리하여 얀데라는 자기하고 가까운 모든 친구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기에 이르고, 그래서 자기가 쓴 작품이 고트프리트 켈러, 찰스 디킨스,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천일야화>, 샤를르 루이 필립, 크누트 함순, 테오도르 슈토름, 토머스 하디, 레오니트 안드레예프, 마테오 반델로, 페터 로제거,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 등을 표절했다는 다양한 의견을 접한다. 그래서 (놀랍게도 작가 얀데라를 가장한 차페크가 스스로) 내린 결론은, “한 사람이 사악한 길로 얼마나 깊숙이 빠져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글을 쓰는 일이라나? 뒷통수 한 방 쾅!
 이건 그냥 첫 번째 이야기 가운데서도 초반에 잠깐 소개하고 넘어가는 대목일 뿐이다. 짧은 이야기가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읽기에 이 책에는 다양한 새옹지마 스토리가 들어 있다고 하고 싶다. 새옹지마는 새옹지마인데, 차페크 주변에 프라하에서 경찰관으로 근무하는 친구나 친척이 있었는지 아주 다양한 범죄자들과 경찰, 판사를 비롯한 사법기관 종사원, 배심원들이 등장하고, 흥미롭게도 스파이와 유사(흉내뿐인) 스파이, 암호해독 전문가 등, 1차와 2차 세계대전 사이의 국제적인 간첩활동도 다양하게 소재로 삼는다.
 19세기 적 신사 숙녀 이야기를 연속해서 읽다가 별 부담 없는 우화적 이야기책을 읽는 재미도 괜찮은데, 문제는 아직 읽지 않은 <오른쪽……>도 마저 읽어야 한다는 것. 재미있는 책도 연속해 읽기는 좀 부담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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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2-24 1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오른쪽부터 읽고 연달아 읽기는 뭐해서 왼쪽은 말씀하신 첫 번째 작품까지만 읽고 아직 안 읽었어요. 연달아 읽지 않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ㅎㅎ

Falstaff 2018-02-24 14:29   좋아요 0 | URL
연달아 읽어도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ㅎㅎ
 
페르미나 마르케스 세계문학의 숲 14
발레리 라르보 지음, 정혜용 옮김 / 시공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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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발레리 라르보가 누구인지 전혀 몰랐는데, 책 앞날개 보면 1958년에 당시 벨기에 박람회가 선정한 프랑스 대표작가 10명에 포함된 사람이라고 한다. 이 평가가 정당하다고 가정하면, 철학자이면서 작가이기도 한 빛나는 별들은 빼고라도, 라블레, 몰리에르, 라신, 볼테르, 위고, 뒤마, 발자크, 모파상, 플로베르, 졸라, 프루스트, 뒤 가르, 베를렌, 보들레르, 말라르메, 랭보, 기타 등등 가운데 누가 탈락의 고배를 마셨을까? 흠. 인정한다. 요새가 올림픽 시즌이라서 그런가, 꼭 등수 안에 들어야 환호하는 세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점. 어쨌든, 라르보가 10대 프랑스 작가의 범주 안에 들던 들지 않던 간에, 프랑스 내에서 상당히 중요한 작가라면 말씀이지, 어찌하여 아직 대한민국에서 그의 번역물이 <페르미나 마르케스> 하고, 번역에 관한 중요한 에세이라 칭하는 <성 히에로니무스의 가호 아래> 딱 두 권밖에 없느냐 하는 것도 문제다. 하긴 라르보의 생애가 작가뿐만 아니라 번역가로도 명성이 높아 번역을 통한 프랑스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고 하니 저서가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는 개연성은 있을 수 있겠다. 사실 책 한 권 읽으면서 이런 거 아는 게 중요하지는 않다. 독자의 유일한 권리는 즐기는 것. 지금부터 즐겨보자.
 저기 라틴 아메리카에 누에바 그라나다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이름을 새로이 ‘콜롬비아’라고 고치고, ‘세계만방에 고하야 콜롬비아의 독립국임과 콜롬비아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한 바 있었다. 이 콜롬비아에서 지배층으로 사는 인간들은 대서양 건너 동쪽에 있는 스페인 출신 백인으로, 현지 원주민을 하도 잔혹하게 학살한 결과 원주민의 개체수가 엄청 줄어들어 도무지 요구 노동력을 확보할 수 없어지자 아프리카에서 새로이 흑인 노예까지 수입해가며 무진장한 부를 축적한 인간들이었다. 이 살인마들이 신세계에서 무한대로 금덩이의 홍수를 맞으면서도 꿀리는 것이 하나 있으니, 지옥(아니면 적어도 아수라) 같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자식들에게 도무지 좋은 교육을 시킬 수 없다고 판단해 아들의 경우 열 살이 넘자마자 유럽 대도시(근방)의 사립 기숙학교로 유학을 보내곤 했다 한다. 물론 저자 발레리 라르보가 어려서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녀 각국의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스페인어를 쓰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들이 대다수이고 나머지는 페르시아, 인도말레이반도, 중국 등의 아시아 출신, 그리고 극소수의 프랑스 청소년들로 구성된 남학생용 사립 기숙학교 생토귀스탱 중등학교를 작품의 무대로 설정했다. 여기서 아시아 학생들은 하도 인간 같지 않아 정말로 단 한 번도 해당 지역 학생들은 언급조차 하지 않으며, 주로 라틴 아메리카 출신 학생(악당)들과 프랑스 현지 학생의 일화로 작품이 채워지는데, 멀리는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나 가까이 알랭 프루니에가 쓴 <대장 몬느>를 통해 읽어본 듯한, 아니면 비슷한 범주의 소설이라고 해도 크게 까탈은 잡히지 않겠다. (물론 완전 아마추어 독자인 내 생각이다.) 아, 역시 책 앞날개 보니, 이 작품이 나온 다음에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다룬 문학이 봇물을 이루”었다고 하며 그 속에 프루니에의 <대장 몬느> (책 속엔 <몬 대장>)을 언급한다. 뭐 그렇다는 얘기다. 책 한 권을 읽으며, 과거로 돌아가 다시 본고사 볼 것도 아닌데 이딴 거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다.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0대 남자들, 열 살이 넘자마자 부터 19세 다 자란 청소년들이 모여 사는 기숙학교. 더구나 공동침실 형태의 기숙사. 바야흐로 사춘기에 접어든 숱한 어린 수컷들의 모임에 절대로 빠질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아마 여성들은 별로 감이 잡히지 않겠지만, 바로 폭력성이다. 수컷들의 폭력성은 내가 흔히 잘 쓰는 말로, 두 발로 걷기 이전부터 유구하게 수컷들의 혈관을 타고 흐르던 기질로, 우리처럼 유교적 장유유서의 질서가 전혀 없는 유럽에선 기숙학교 내 서열은 전적으로 힘과 덩치와 돈으로 결정이 됐다. 1번이 힘(과 깡다구), 2번이 덩치, 3번이 돈. 이것들 가운데 하나도 없는 아이들은 그냥 주면 먹고, 때리면 맞고, 비웃으면 한 번 씨익 쪼개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작은 정글을 생각하면 딱 맞는다. 딱 두 가지 예외가 있는데, 하나는 남들보다 월등하게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 (사례를 좀 쓰다가 얘기가 길어질 거 같아서 삭제했다.) 탁월하게 공부 잘하는 딱 한 명 정도는 정글의 법칙에서 제외된다. 다른 한 경우는 매우, 매우, 그리고 매우 아름다운 누나, 누이동생을 둔 경우.
 생토귀스탱 중등학교에 콜롬비아에서 온 열두 살짜리 어린 마르케스가 있어 하고 한 날 아이들한테 모욕을 받고 얻어터지기를 일 분 동안 뛰는 맥박 수만큼 당하고는 했다. 근데 어린 마르케스에게 작은 누나와 특별하게 아름다운 큰 누나가 있었고, 이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들은 나이 40줄에 든 고모하고 매일 같이 학교를 방문해 일정 시간 어린 동생하고 산책을 하는 시간을 갖도록 학교의 허락을 받았던 것이다. 당연히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어린 수컷들만 바글거리는 기숙학교 교정에 매끄러운 흰 피부와 고급 드레스, 잘 화장한 아름다운 미모의 잘 빠진 아가씨가 살랑살랑 산책을 하니 아이고, 청춘들, 그 모습만 보고도 죽어 자빠지는 공황상태에 빠져버렸다. 아가씨들이 어린 마르케스의 누이들임을 알고 아이티 포트로프랭스 출신의 건장한 흑인 학생이 과감하게 마르케스의 팔을 비틀어, 즉, 고문을 통해 누이의 이름을 밝혀내기에 이른다. 작은 누이가 필라르. 큰 누이가 바로 페르미나. 바로 그날부터 페르미나는 생토귀스탱의 모든 침대 시트를 새벽마다 뻣뻣하게 풀을 먹이게 하는 베누스의 대관을 쓰게 된다. 작품이 간행된 것이 1911년. 당연히 시트 풀 먹이는 장면은 나오지 않으며, 전적으로 내가 상상하기에 그렇다는 거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라. 건전한 성장소설이다.
 꽃이 있으면 벌 나비가 꾀는 법. 책에서는 대표선수 세 명이 등장한다. 학급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고 생기기도 끝장을 내게 잘 생겼으며, 나중에 아버지가 멕시코의 장관 자리에까지 오르는 멋쟁이지만 몽마르트르 언덕의 숱한 유흥가에서 질탕하게 놀 줄도 아는 매력남 산토스. 그의 조연(또는 이른바 ‘꼬붕’)으로 앞에서 말한 바 있는 포트로프랭스 출신의 흑인 학생 드무아젤은 빼고 얘기하자. 언제나 최우등의 학업을 지속하며 자신이 비록 외모는 별 거 없지만 카이사르와 보나파르트를 꿈꾸는 시골부자의 외아들이자 프랑스 인이라기보다 로마 제국의 후예임을 주장하는, 사실상의 주인공 조아니. 마지막으로 학교 최고의 열등생으로 난폭한 급우들로부터 폭력과 멸시, 조롱으로 언제나 죽고 싶어 하다가 페르미나를 본 순간, 저 여자를 정복하면 순간에 자기 팔자가 역전이 될 거란 생각에 들뜬 열세 살짜리 꼬마 카미유.
 페르미나는 누구인가. 특정한 인물이라기보다 청소년기의 한 가지 환상. 결코 닿지 않는 무지개 같은 몽환적 숭배의 대상이라 할 수 있을까?
 세월은 흘러흘러, 화자가 충분히 나이 들고, 추억의 작은 정글 생토귀스탱 중등학교는 어느덧 폐교가 되고 이제 폐허인데, 그곳을 찾아 한 시절을 회상한다. 옛 시절의 소년들은 지금, 혹은 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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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별 - 어떤 유토피아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4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지음, 김수연 옮김 / 아고라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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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과 혁명동지였다가 사상투쟁에 격렬히 부딪혀 당에서 제명까지 당했던 알렉산드르 보그다노프. 이이가 완전히 제명당한 것이 1909년. 1905년의 제 1차 러시아 혁명이 화르르 불타기만 했던 다음, 사회(공산)주의는 완전한 붉은 혁명을 위해 모든 것을 태웠던 시기이며, 무엇보다 아직 레닌이 확고한 정권을 잡지 못한 상태라서 목숨은 건졌을 것이다. 레닌하고 한 바탕 붙어서 당에서 제명까지 당했으나 레닌보다 4년을 더 살다가 1928년 모스크바 수혈 연구소장을 지내면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는데, 이이의 죽음을 두고 온갖 (더러운)헛소문이 만발하였으나, 후세의 사가들은 암살로 추측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혁명가의 삶으로 이 정도면 장땡은 아니더라도 칠땡은 된다. 책의 앞날개엔 보그다노프와 레닌이 정식으로(심판까지 두고) 체스를 벌이는 사진이 실려 있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정적이 되는 것이 정치 아닌가.
 책은, 읽은 독자도 그렇고 책의 각주에도 씌어있듯이, 총 3부작으로 구성한 것 같다. 1부가 <붉은 별>, 두 번째가 책에 실려 있는 <엔지니어 메니>, 마지막으로 그저 구상 목적으로 시 한 수만 써놓은 <지구에 좌초된 화성인>. 읽어보면, 물론 전적으로 과학도였다가 혁명에 참가해서 학교에서 잘린 다음 다시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가 쓴 ‘소설’작품을, 내가 문학에 대해 뭐 아는 건 없지만 하여간 백퍼 문학작품으로 간주해 읽자면, 1부 <붉은 별>은 어떻게 SF 소설이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2부 <엔지니어 메니>는, 실례하지만, 수준 이하로 평하겠다. 물론 지금 난 독후감을 쓰고 있지 결코 주제넘게 서평을 논하는 게 아니라서, ‘수준이하’ 역시 책을 읽고 난 다음의 ‘내’ 느낌, ‘내’가 동감한 수준을 말하는 거다.
 1부 <붉은 별>을 발표한 시기가 211쪽의 각주에 보면 1908년이라 한다. 제 1차 러시아 혁명이라고 일컫는 1905년의 사건. 거의 1년 내내 양대 수도(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와 지방도시, 심지어 전함 포템킨의 수병까지 합세해 벌인 파업과 내전 시도가 박살이 난 다음에, 모르긴 하지만 보그다노프 등의 인텔리겐치아들은 농민 노동자들의 교양사업, 의식화 교육을 모색해야 했을 것이고, 그 일환으로 가상의 세계, 이 책에선 ‘붉은 별’, 즉, 화성에서 화성인들이 건설한 모범적 사회주의 세상을 알기 쉽게 그려 보여주었지 않을까 싶다.


 

 * 1905년 혁명이 어땠을까 궁금하시지?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11번 사단조 작품의 표제가 <1905년>이다. 혁명의 막바지에 황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한 경종Tocsin이 울리는 4악장의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다. 한 번 들어보시라

 

 

다른 좋은 연주도 있으나 4악장만 가져올 수 있는 것, 4악장 가운데 마지막 부분의 경종을 잘 표현한 음원을 골랐다.



 정말로 화성인 과학자 메니(2부에 나오는 ‘엔지니어 메니’하고 다른 인물)이 지구를 방문해서 과학자이자 혁명가이며 화자話者인 ‘나’를 설득해 우주선 에테로네프를 타고 화성에 도착한다. 그곳이 바로 사회주의 유토피아이며, 지구보다 두 배 더 오래 존속해 (지구에 비하면) 지표면에 물이 별로 없고, 그래서 땅과 식물 등이 붉은 색을 띠는 별.
 지구는 화성에 비해 태양과 가깝기 때문에 더 다양하고 많은 생명체가 살고, 그래서 더욱 생존경쟁이 활발하며, 어쩔 수 없이 보다 더 전투적인 생명체인 인간이 살고 있다. 화성인들은 지구인과 비교해 투쟁적인 면이 덜해서 훨씬 가벼운 정도의 계급투쟁을 겪고 전 화성적인 사회주의 공동체를 이룬지 벌써 300년이 가깝다. 지구 세월로. 화성의 시간개념으로는 한 160년 정도. 화성이 아직 사회주의 건설에 다다르지 못했을 당시 또 한 명의 메니라는 공학자가 있어서 화성의 건조한 대륙을 관통하는 거대한 수로 또는 운하 또는 이명박 씨가 좋아했던 몇 대 강 공사를 성공적으로 수행해 전 화성의 육지는 사람 살기 좋은 환경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인데, 이건 필연적으로 화성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가져오고, 식량부족을 초래했고, 방사능을 이용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해야 할 단계까지 도달했다. 첫째가 금성을 식민지로 만들어 금성에 무한정으로 쌓여있는 방사능 물질을 가져오는 일. 둘째가 방사능 무기를 이용해 지구의 인간을 깡그리 전멸시킨 다음 금성보다 훨씬 가까운 지구에서 방사능 물질을 채취하는 방법.
 1부 <붉은 별>은 여기까지만. 190x년대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서 무장 투쟁을 결의하려는 혁명가들이 생각했던 유토피아. 그건 어떤 모습일까. 당연히, 안 알려줌.
 2부 <엔지니어 메니>는 위에서 얘기했듯 전 화성의 대륙을 관통하는 운하를 뚫는 공사를 담당했던 과학영웅, 그러나 사회주의나 노동조합을 이해하기 전 세대의 천재 메니에 대한 전기라고 읽을 수 있다. 러시아 사람이 쓴 운하 이야기. 어딘가 벌써 읽어본 느낌. 그래,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예피판의 갑문>. 일찍이 2미터의 거한 표토르 대제의 명에 의하여 모스크바에서 흑해까지 닫는 운하를 파다가, 파다가 코피 나는 이야기가 <예피판의 갑문>이라서 혹시 러시아 작가들의 혈관 속에선 운하 파는 주제에 뭔가 혈전 같은 것이 맺힌 게 있는 거 아냐,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봤다. 아주 잠깐. 화성 전체를 사통팔달한 운하를 뚫는 일을 총 지휘하는 메니. 일 잘하다가 부르주아와 욕심 많은 권력자들의 거미줄에 걸려 15년 형을 받고 수감 중, 메니를 감방에 보내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노동자들의 각성에 의하여, 부르주아와 권력자들이 골로 가고 다시 메니가 복권해 공사를 거진 다 마친 다음에 보니, 메니 역시 구세대 틀딱에 불과하다는 엄정한 진보 역사의 판정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 <엔지니어 메니>를 수준 이하의 문학작품이라고 보는 건, 이 소설이 아무리 1913년에 나왔다고 하더라도, 문학 작품이라기보다는 의식화 교재를 읽는 듯한 느낌이 훨씬 더 강해서다. 열아홉, 스무 살의 청년이라면 아하, 혁명의 수행과 인류의 진보는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구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지금 조금 후회하는 건, 1부 <붉은 별>을 읽고 난 다음, 굳이 2부를 읽을 필요가 있을까, 책을 덮고 싶은 아주 센 유혹을 참고 나머지도 읽은 시간이 좀 아까운 생각이 든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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