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세니예프의 인생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3
이반 부닌 지음, 이항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불민한 독후감 때문에 전문全文이 화면에서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친애하는 서재친구 잠자냥 님의 서평이 기막혀 선택한 책.

 이반 부닌의 글이 정말 아름답다. 부닌을 번역한 이항재의 글과 단어 선택도 참 좋다. 물론 번역자와 출판사의 합의로 그랬겠지만, 작품의 80% 이상이 자서전 적 글이란 것을 처음부터 숱한 각주를 통해 독자에게 말해주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 좋은 글을 읽어가며 독자가 작가의 내밀한 유년시대, 소년시대, 청년시대를 고백한 작품인 것을 조금씩 알아가는 것도 매력 있었을 텐데.

 검색해보니 이반 부닌, 러시아의 시인이자 소설가란다. 책 읽어봐도 시를 먼저 썼고 후에 산문도 쓰는 과정이 나온다. 아시다시피 난 우리나라 시인이 쓴 소설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런데 부닌은 며칠 전 읽어본 <내 책상 위의 천사>를 쓴 재닛 프레임처럼 참 저릿저릿하게 문장을 쓰면서도 글을 읽는 것이 담담한 동감, 격렬하지 않아 오히려 더욱 몰입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지닌다. 그러고 보니 <내 책상……> 역시 자서전.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가장 놀라운 진실을 드러내기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을 수 있겠다.
 왜 난데없이 재닛 프레임을 들먹이는가 하면, 두 명 다 시를 먼저 쓰고 후에 소설을 썼으며, 나로 하여금 자서전이나 거의 자서전 격인 소설을 그들의 첫 작품으로 읽게 했고, 비슷한 수준의 동감으로 심금을 울렸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상당히 다르다.
 그래, 말 나온 김에 한 번 비교해보자.
 부닌은 농노를 거느린 지주계급이니까 러시아에선 귀족집안 축신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드라마틱하게 몰락해가는 지주. 19세기를 통틀어 땅만 가지고 떵떵거리던 러시아 시골 귀족들이 백 년 동안 차근차근 몰락해가는 모습을 당대 소설가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고골, 투르게네프 등을 통해 익히 읽어본 바 있듯이, 그게 당대엔 일종의 트렌드였던 모양이다. 부닌의 아버지 알렉산더 부닌께서도 읽어본 러시아 소설에서처럼 (가진 건 쥐뿔밖에 없으면서도)최상류 계급의 취향과 도박으로 1차 거덜이 났다가, 그나마 다행으로 후손 없는 고모님이 죽어주는 바람에 잠깐 기사회생했으나 자신의 버릇을 개에게 주지 못해 또다시 넓은 영지를 자신의 “취향”에 갖다 바친다. 아버지를 닮은 이반 알렉세예비치 부닌(이라 읽히는 주인공)은, 가난하게 지내다가도 일을 조금 했거나 쥐꼬리만 한 인세를 받기라도 하면 곧바로 최고급 호텔에 가서 먹고 자고, 옷도 맞춰 입고 뭐 이러다가 돈 떨어지면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일을 반복하는 반면, 오스트레일리아도 아니고 뉴질랜드 깡촌년 재닛 프레임은 정말로 지지리 궁상 빈민의 가정에 태어나서 오빠는 간질, 언니와 여동생은 일찌감치 물에 빠져죽고, 자신도 멀쩡한 정상상태에서 전전두엽 절제수술을 받아야 하는 위기상황에 처했다가 극적으로 구조되는 우여곡절을 겪어야 하는 여성. 이반 부닌과 제닛 프레임을 같이 이야기하는 이유가 이렇다. 이왕이면 두 사람의 인생을 다 읽어보시는 편이 좋지 않겠나, 하는 거.
 혁명 후 프랑스로 망명한 러시아 귀족자제 시인과, 다수와 다르다는 거 하나 때문에 비정상 판정을 받은 하층계급 출신의 시인.
 나는 이 두 명의 자서전 또는 자전적 소설을 읽고 부러워 미치는 줄 알았다. 이들이 행복을 찾았을 때 공통점이 있었는데, 가르쳐드릴까? 오직 자신만을 위해, 격하게 얘기해서 이기적인 삶을 살 때, 가장 행복했다는 거. 불행한 당신, 더욱 불행해지고 싶으면, 어제처럼 내일도 당신의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을 위해 살아라.


 * 다시금 알아채는 시간의 위력. 행복은, 만일 그런 것이, 그 비슷한 것이라도 있다면, 왜 언제나 과거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 이 책에 관심 있으면 이 글에 앞서 달린 독자서평 "가슴 절절한 아름다움"을 읽으시라. 난 그만큼 쓸 자신이 없어서 여기서 줄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8-01-15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이렇게 몸 둘 바를 모르게...과찬을... ㅎㅎㅎ 감사합니다.

이 작품 정말 아름답죠? 좋은 책을 읽으신 것 같아 제가 다 기분이 좋습니다. ^_^

‘불행한 당신, 더욱 불행해지고 싶으면, 어제처럼 내일도 당신의 가족과 친척과 이웃들을 위해 살아라.‘ 격하게 공감합니다. ㅎㅎㅎ

Falstaff 2018-01-15 10:29   좋아요 1 | URL
ㅎㅎㅎ 사실을 사실대로 얘기하는 건데요.
덕분에 좋은 책, 즐겁게 읽었습니다!
복 받으실 거예요. ㅋㅋㅋ
 
과학의 나무 대산세계문학총서 63
피오 바로하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로하에 대해서 찾아보니까, 이이가 1956년에 죽었는데, 그때 관을 운구했던 인물 가운데 글쎄, 헤밍웨이가 있었단다. 원래 헤밍웨이가 스페인 언어권하고, 더 넓게 말하자면 라틴 문화권하고 유난히 친숙하더라니 급기야 대서양을 건너 가 이런 짓도 했다. 바로하가 우리나라에서는 완전 생소한 작가지만 스페인에선 뭐 대단한 찬양을 받는 모양인데, 당연히 나도 이게 처음 읽어보는 소설로, 정작 읽어보니까 사실 별 거 없다. 유럽 소설가들 특유의 철학적 사유가 27쪽 가량 등장하는 거 말고는 자신의 체험을 기반으로 거기다가 살을 좀 보태서 쓴 소설책이라 해도 많이는 틀리지 않을 거 같다.
 (당연히 철학적 사유, 주인공 안드레스 우르타도와 외삼촌 닥터 이투리오스가 나누는 대화를 담은 책의 4장, 스물일곱 쪽이, 너무 거창한 예와 비교를 해서 좀 안됐으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끝도 없이 이어질 거 같이 이어지는 조시마 장로 이야기처럼 소설에서 독립적으로 따로 떼어져 있으나 상당히 중요한 주제를 포함하지만, 문학이라기보다 너무도 철학 에세이처럼 읽히는 바람에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내가 원래 철학적으로 쓴 글, 추상과 사변을 강요하는 현학적인 것들을 많이 싫어해서 그렇겠다고 그냥 읽어치웠다.)
 위 괄호에서 말한 거 말고는 우리의 주인공 안드레스와 작가 바로하가 정말 많이 닮았다. 작가와 주인공은 똑같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학위(나중엔 박사까지)와 함께 의사면허증을 소지한 정식 의사였으나 의사 직을 때려 치고 주인공은 의학서적 번역 등의 출판업으로, 작가는 문학의 길로 접어들면서 문제의 1898년 사건을 접하게 된다. 1898년 사건이 뭐냐 하면, 이건 스페인 문학을 즐기시는 분은 상식으로 알아두시면 좋은데, 쿠바의 독립운동을 두고 미국인들이 개인 신분으로 참전을 하고, 미국 내에서 쿠바 독립채권 같은 걸 발행하는 것도 모자라 연일 언론으로부터 스페인이 쿠바를 학대했다느니 폭정이라느니 마구 떠는 꼴이 자존심 상해, 1898년 철없는 스페인 정부가 질 걸 뻔히 알면서도 미국에 선전포고 했다가 초전에 박살이 나 쿠바가 독립을 하고, 승전국 미국한테 푸에르토리코, 괌, 필리핀을 고스란히 갖다 바친 사건이다. 이것으로 스페인의 모든 해외 식민지는 완전히 없어지고 마는데, 일찍이 무적함대를 자랑했던 위대한 스페인의 그나마 알량하게 남아있던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지는 민족적 참사로 받아들이게 된 모양이다. 그러나 이 책에선 주인공의 현명한 외삼촌 이투리오스 선생은, 20세기가 되기 전에 스페인이 해외의 모든 식민지에서 손을 턴 일을 “다행”이라고 한다. 이거 좀 이상해. 하여간 이 당시 젊은 예술인들의 모임을 ‘98그룹’ 혹은 ‘98세대’라고 했고, 바로하가 이 세대의 가장 앞쪽에서 맹활약을 했던 거 같다. 내가 뭐 아나. 책 읽어보니 그렇다는 얘기지.
 소설의 분위기는 1888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재미난 책,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경이로운 도시> 참조)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과학에서 거의 완전히 변방으로 밀린 스페인의 후진성이 전반적으로 배경으로 깔려있고, 한 젊은이가 의사란 직업에 관한 투철한 목표의식 없이 의과대학에 입학해 의사가 됐다가 지방소도시와 수도에서 의사 직을 수행하며 회의를 느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독자가 스페인 사람이라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스페인에서 의사(과학자)가 겪어야 했던 숱한 시대적 난관을 체험하는 동시에, 선진 유럽국에서는 이미 과정을 거친 철학적 논의를 이제야 고민할 수밖에 없던 시대적 문제에 흥미를 느낄 수도 있었겠다. 이 사람의 이 작품도 그렇게, 미겔 데 우나무노의 <사랑과 교육>도 그렇고, 후발 유럽국, 그러나 화려했던 과거를 갖고 있는 후진국의 지식인들은 언제나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재미? 글쎄. 권하지 않겠음. 4장의 철학적 대화 장면 아니면 그냥 한 지식인의 이야기 책. 4장만 따로 떼어놓고 봐도 뭐 이젠 유효기간이 지난 과학 철학적 논의.
 내가 이 책을 통해 얻은 것? “아, 이런 책이 있구나.” 하는 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나라의 사각형 수학 오디세이 5
에드윈 A. 애벗 지음, 신경희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움베르토 에코의 저작 <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에서 주인공 얌보가 어린 시절에 감명을 받아 이후 기하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그리고 전혀 몰랐던 작품인데 예상 외로 찬사를 누리고 있는 작품인 것을 알게 되어 읽어보기로 결심한 책.
 모든 건 포인트, 점에서 시작한다. 에벗은 작 중에 구球ball의 입을 통해 점을 “하찮은 산물이고 차원을 갖지 못하지만 …… 우리와 같이 실제로 존재”하며, “점 하나가 자신의 세계이고 우주”라고 정의하면서도 자신이 하나이며 모두인, 오직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자기만족일 뿐이라 하는데, 에드윈 애벗이 언제 적 사람인가 하면, 1838년에 나서 1926년에 졸한 사람으로 이 책을 1884년에 썼으니 이 정도는 이해해주고 넘어가기로 한다.
 점이 무수하게, 말 그대로 무한대만큼 똑바로 서로 반대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이 선. 무한이란 무엇인가? 당신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큰 수자를 상상해보라. 그리고 그걸 N이라고 하자. 그런데 엉뚱한 한 숫자가 있어서 우리는 그걸 n이라고 부르는 것이 툭 튀어나왔다. 허, 알고 보니까 이 n이란 놈이 N보다 더 큰 수 아냐? 이때 n 정도의 숫자를 무한대라고 하는 거다. 이게 현대 해석학에서 무한의 의미. 사실은 n보다 1/n, 한 점에서 사방 1/n 거리 안에 있는 근방boundary 안에 들어오면 그것들은 “같다”라고 하는 걸 설명할 때 더 자주 쓰인다. 왜 그거 아시려나? 1이 크겠습니까, 아니면 0.99999……가 크겠습니까. 답은, 맞습니다. 언젠가는 두 수의 차이가 1/n 안에 들어올 테니, 그건 같은 숫자입니다. 이래서 화살은 과녁에 꽂히는 겁니다.
 하여간 그렇게 점들이 늘어서서 이제 1차원, 즉 선이 생겼다. 선의 나라 라인랜드에 가보니 한 가운데에 왕이 양쪽으로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제국을 통치하고 있는 거다. 그러나, 좌우, 책에선 남북 쪽으로 아무리 많은 백성들이 늘어서 있다고 해도, 왕이 볼 수 있는 유이한 백성은 자기하고 가장 가까운 남쪽과 북쪽의 백성 두 명밖에 없다. 그렇잖아? 점들이 죽 늘어서 있는 것이 선이니까 왕이 볼 수 있는 건 그저 왼쪽 오른쪽의 점 하나밖에 더 있겠어?
 이렇게 생긴 직선을, 1차원인 라인랜드의 왕에겐 무도한 반역적 의사표시일지언정 옆으로 좌악 밀어버리면 직선이 지나온 자국이 생기는데 그게 바로 사각형. 맞지? 이제 면적이 생긴 거고, 그 면적의 넓이를 알기 위해서는 가로 길이에 세로 길이(라인랜드의 왕과 백성들은 죽어도 알지도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세로”)를 곱해주거나, 라이프니츠가 발명을 해주었으니 함수를 적분하면 간단하게 구할 수 있다. 이제 면의 세계가 도래하여 이름을 플랫랜드flatland라고 칭하면 이 책의 원래 제목 <Flatland - A Romance of Many Dimensions> 평면나라-다양한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2차원 세계만 해도 구성원이 매우 많은 각을 가진 다각형인데 얼마나 다각형이냐 하면 거의 원에 가까운 성직자, 오각형 이상 N각형 미만의 톱클래스 귀족과 학자 변호사 등 지식인 계급인 사각형, 상인 및 부르주아의 정삼각형, 군인, 일반백성의 이등변 삼각형, 최하위 매우 뾰족해서 접근하면 곧바로 찔려 죽을 수도 있는 특별한 도형, 자세하게 보면 일종의 평행사변형이지만 하여튼 바늘처럼 무지하게 뾰족한 침을 가지고 있는 여성으로 구성되어 있는 매우 엄격한 체계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삼각형이건, 사각형이건 N각형이건, 하다못해 무한대 n각형, 즉 원이건 간에 보는 사람은 그걸 직선으로만 인식한다는 점. 동그라미 그려놓고 눈을 종이와 같은 높이로 해보셔. 원도 직선처럼 보이겠지? (그럼 어떤 모순이 나오나 하면, 2차원에서 서로를 인식하는데 모든 것이 직선이라고 보이는 건 뭔가가 위도 도톰하니 솟아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높이, 즉 3차원의 도형이 필요하다는 거. 물론 앞에서 말했던 1차원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기에 관해서는 그냥 넘어가자.) 그래도 2차원엔 선과 달리 움직일 수 있는 평면 공간이 있어서 서로 옮겨가며 서로를 만져가며 이게 몇 각형인지 구분할 수도 있고, 거리감으로도 대강 알 수 있단다. 물론 거리감, 즉 시각으로 정확하게 구분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1차원 라인랜드에선 아무도 자신들의 2차원 세계에서 한 차원을 더 늘여 공간을 만들려고 생각하지 못한다. 당연하지. 점과 선의 나라에서도 아무도 자신들의 세계를 확장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하다못해 3차원의 세계에서도 이 책이 나오고 21년 후인 1905년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아인슈타인 이전엔 마찬가지였으니. 이렇게 생각하시지? 천만의 말씀. 그건 일반인들이 그렇게 짐작하고 있는 것이고 사실은 차원의 초월은 대수학algebra代數學에서 먼저 출현한다. 대수학에선 4차원도 아닌 n차원까지, 당연히 수학적 이론으로 가능이 아닌 “확정”을 하고 있었다. 책에서도 “정확하게 유추법에 들어맞는다.” (171쪽)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2차원 세계에서 사각형 학자 앞에 크기를 원하는 대로 바꾸는 원 하나가 등장해, 자신이 3차원 세계에서 왔다고, 당신의 모습 사각형을 동서남북이 아닌 위로 확장할 수 있으며 그러면 부피를 갖는 육면체가 된다고 설득한다. 세상에, 2차원 세상에서 충분하게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던 사각형은 완전 딜레마에 빠져버린다.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거다. 어떻게 ‘위’로 자신을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 이 시점이 1999년의 마지막 날. 사실은 천 년에 한 번씩 3차원에서 2차원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는 틈을 타고 공 하나가 플랫랜드에 들어온 것이다. 설득과 설명을 하다하다 진이 빠진 공이 엇다 모르겠다, 사각형을 데리고 3차원 스페이스 랜드로 빠져나와보니, 자신의 집에 있는 모든 다각형과 집의 구조, 돈과 영수증이 있는 금고 안까지 훤하게 보이는 거 아닌가. 그리하여 드디어 3차원에 대하여 이해를 하게 되고, 워낙 머리가 좋은 사각형은 여기서 n차원 세계까지 유추하고 만다. 공한테 하는 질문. 4차원에 가면 당신 내장도 다 보이는 거예요? 3차원에 와보니 2차원 다각형들의 몸속까지 훤히 보이니까 분명 4차원에 가면 3차원 생물들, 부피를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속까지 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리고 이어서 5차원, 6차원 이런 것들까지. 사실 공의 부피를 알려면 방법이 아주 까다롭기는 하지만 원의 방정식을 두 번 적분하면 구할 수 있고, 이젠 방법이 아무리 까다로워도 아 컴퓨터가 있잖아, 그냥 식만 구해서 입력하면 금방 나온다(아마 엑셀에선 안 될 걸?). 그렇다고 내가 4차원으로 가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미적분 이야기하니까 조금 수학 같아?
 천만의 말씀.
 난 이 소설을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읽었다. 이 작품을 보고 수학의 차원에 대하여 뭔가 배우려 하면 오산. 더 이상 새로운 티칭teaching으로는 도저히 읽히지 않는다. 오히려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를 위하여 무수한 대중을 희생시키는 당대 제국주의로의 대영제국을 확 비튼 비평적 소설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상당히 유명한 책이다. 이름값만 믿고 한 번쯤 읽어봐도 무방한데, 수학에 관심 없으신 분들은 동네 도서관으로 가실 것을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화이트 노이즈
돈 드릴로 지음, 강미숙 옮김 / 창비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블랙스미스란 이름의 소도시가 미국에 있(었)다고 치고, 배비트와 잭 글래드니 부부가 거기서 살았고, 둘 다 초혼이 아니라서 (잭은 심지어 다섯 번째 결혼이기도 하다) 아주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태어난 네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이게 다가 아니라, 소설책에 그냥 잠깐 얼굴만 비치는 딸이 하나 더, 이름만 등장하는 다 큰 딸도 하나 더 있어서 하여간 최소 여섯 명의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을 중심으로, 복잡한 소설을 만들어 놨다. 주로 등장하는 네 자식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제일 나이 많이 먹은 아이가 하인리히(14). 이제 본격적으로 사춘기에 접어들었으나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보다 생애 처음으로 부모가 하도 열등해서 하찮게 보이는 시점을 맞이하여, 이젠 부모의 말을 자신이 알고 있는 최신의 과학적, 기술적 필터를 거쳐 접수하는 바람에 사사건건 또박또박 말대답을 올려 부치는 머리 좋은 (잭의) 아들. 드니스(11)가 둘째로, 아주 집요한 성격으로 친엄마 배비트가 요새 건망증이 부쩍 심해진 것을 확인하고는 왜 갑작스런 건망증이 시작되었는지 탐색하다 의붓 아빠와 힘을 합쳐 급기야 원인을 밝혀내는데 성공한 딸. 셋째는 다시 잭의 딸로 원래 이름인 스테파니를 “얘, 스테파니야!”라고 부르면 오지게 열을 받는 관계로 ‘스태피’(9)라 칭하는데 요새 왜 자기 역시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유방이 나오지 않는지 잔뜩 불만에 차 있어, 하루에도 댓 번씩 젖멍울이 섰는지 아닌지 거울에 비쳐보는 걸 드니스가 발견했고 드니스는 그걸 엄마한테, 엄마는 다시 아빠한테 정보를 제공하는 바람에 가족 거의 전부가 알고 있다는 걸 스태피 혼자 모르고 있다. 막내둥이 와일더는 이제 서너 살 정도의 유아지만 겨우 스무 단어 정도로만 의사소통을 하는 귀염둥이로 친엄마 배비트의 삶에 가장 의지가 되는 꼬맹이. 그래도 무시하지 마시라, 세발자전거를 타고 고속도로를 횡단하는 호연지기를 품고 있는 미국의 희망이다.
 여기까지 얘기하면 소도시 미국의 평균가정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아빠 또는 의붓 아빠 잭의 직업은 대학교수. 그것도 학과장이다. 무슨 학과냐 하면, 놀라지 마시라, “히틀러 학과.” 미국 대학과 학문의 틈새시장을 적절하고 기묘하게 파고들어 미국 최초로 “히틀러 학과”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고 스스로 학과장 자리를 꿰찬 미국 판 김 선달. 잭에게도 세 가지의 고민이 있으니 첫째가 자신의 애독서이자 먹고 살기 위한 필독서인 <나의 투쟁>을 독일어 원본으로는 읽어보지 못했다는 거. 즉 독일어를 하나도 모른다는 것. 불과 몇 달 후 전 세계에서 몰려온 히틀러 전공자를 모아놓고 3일간 학회가 열릴 예정인데 미국 최고의 히틀러 전공 교수인 자신이 정작 독일 말을 하나도 모른다면 말이 돼? 그리하여 새로이 그리고 비밀리에 독일어를 배우고 있는 것. 둘째는 집에서 눈으로 보이는 거리의 고속도로 위에서 어느 날 산업 폐기물을 잔뜩 싣고 가던 트럭이 전복되는 바람에 살충제 폐기물인 극강의 유독물질 나이어딘 D를 기체 상태로 흡입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피소에서 컴퓨터로 조회해보니 앞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데이터가 나오는 바람에 죽음에 대한 극한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아내 베비트 역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다가 공포 방지의 묘약이자 신약으로 인체실험 중인 다일러를 구하기 위해 미스터 그레이와 몇 주에 걸쳐 시외 지저분한 모텔에서 대낮에 관계를 맺었다는 고백을 들은 일이다. 이 세 가지만 아니라면 미국 중소도시의 약간 상위 중산층의 전형으로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지녔겠지만 세상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되면 그건 삶도 아니고, 하다못해 소설도 아니다.
 위에서 말한 잭의 세 가지 고민은 전적으로 본인의 지극히 사적인 문제이긴 하지만, 작가 드릴로는 여기에서 국한하지 않고 거의 모든 현대인의 삶에 깊숙이 개입한 테크놀로지와 화학적 또는 과학적 삶의 분석(인간의 사고와 생각이란 건 대뇌피질 속의 뉴런 간 화학적 조합에 불과할 뿐이닷!), 개인성의 데이터 화(01001110010011110101010 같은 이진법의 세계정복), TV와 영화에 의한 인간의식의 획일화 및 감각적(포르노 적) 통일성, 넘쳐흐르는 상품과 상표의 홍수 속에 선택만 강요당하는 20세기 말의 군상, 최대의 행복을 위한 산업발전의 이면에 감춰진 환경오염 문제까지 정말로 거대한 담론을 잭의 세 가지 고민 속에 다 용해시켜 놓았다. 여기에 유년기를 벗어난 인간이라면 누구나 예외일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 문제까지 섞이면, 과연 드릴로, 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구글 검색해봤더니 이렇게 생긴 양반이다. 

 

 

 

 이 해골 같이 생긴 아저씨에 대해 창비는 “1936년 이딸리아 이민 2세로 뉴욕 브롱크스에서 태어나고 (……) 토머스 핀천과 더불어 포스트모던 소설의 양대 축을 형성한다는 평가를 받고”있다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 이 책 <화이트 노이즈> 역시 지극히 포스트모던한 작품으로 읽어야 하며, 내 경우에 국한해서 말하자면, 토머스 핀천의 작업보다 훨씬 친숙하게 읽을 수 있어서 (가장 최근에 읽은 토머스 핀천이 한 달 반 전 <바인랜드>였으나, 읽은 당시엔 감명까진 아니어도 재미있다고 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뭔 내용이었는지 거의 잊었다) 당장 이 해골 아저씨의 다른 책을 검색해서 일단 보관함에 넣어 놓았다. 진짜다. 한 번 읽어보시라. 재미난 책이다.
 오늘, 책의 극히 일부만 소개했을 뿐이다.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는지는 직접 보시라는 뜻에서.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8-01-0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저도 돈 드릴로를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ㅎㅎ

Falstaff 2018-01-09 13:41   좋아요 0 | URL
문제가.... 독자평이 극과 극으로 갈린다는 점인데 말씀이죠.
하여간 전 재미있어서 다른 작품 찜해 놓았습니다. 올해 안에 읽을 거예요. ㅎㅎ

레삭매냐 2018-01-09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지 않아도 돈 드릴로의 책들을 하나둘씩
사모으고 있던 차에 <화이트 노이즈> 잘 감상
했습니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히틀러 학과라니요...
역시 대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네요.

돈 드릴로는 이 책부터 읽어야지 싶네요.
<바인랜드>는 사서 잘 모셔 두고 있습니다만.

Falstaff 2018-01-09 14:28   좋아요 0 | URL
소설 하나에 하도 많은 이야기를 해서 그 속에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더군요.
하여간 말빨 하나는 정말 죽여줍니다. ^^

AgalmA 2018-01-09 2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리뷰 <작가란 무엇인가> 돈 드릴로 인터뷰 작품만큼이나 역시 좋았어요^^b

Falstaff 2018-01-10 09:24   좋아요 0 | URL
아, 그 책이요!
그렇군요. 기회가 닿으면 시도해봐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미친 사랑 세계문학의 숲 32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사 / 2013년 5월
평점 :
일시품절




 읽다가, 음, 이거 번역한 자가 누구지? 책 표지를 다시 보니 김석희. 다시, 흠. 이 양반 책은 좀 읽어봤지. 외국문학을 읽기 위해 피해갈 수 없는 역자 가운데 한 명. 서울대 문리대 불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국문과를 다니다가 말았는데, 무려 4개 국가의 언어에 달통하니, 한국어, 불어, 영어, 그리고 일본어. 독후감을 쓰고 있는 2018년 1월 3일 현재 인터넷 책가게 알라딘 검색해보니 품절, 절판인 책 빼고, 성황리에 팔리고 있는 책이 168권. 품절, 절판된 책 포함하면 334권. 지금 만 나이로 65세. 워낙 머리가 좋아서 중학교 3학년 시절이었던 만 15세부터 번역 일을 하기 시작했다고 계산하면 334권 ÷ 50년 = 6.7권/연, 대학 신입생 시절엔 미팅도 하여간 좀 놀았을 테니 1년 빼고, 대학 2학년 만 20세부터 군대 면제받았다 치고 번역 책 냈으면 334권 ÷ 45년 = 7.4권/연. 어떻게 계산해도 적어도 1.6개월에 한 권, 즉, 석 달에 두 권씩은 책을 번역해냈다,가 아니라 번역한 책이 출판 돼 나왔다. 물론 이제는 더 이상 팔지 않아서 목록에 뜨지 않는 책은 한국의 출판사에 애초에 없었다고 가정해도 그렇다는 거. 석 달에 두 권.
 근데 내가 이 양반한테 정말로 경악하는 것은, 무려 세 달에 두 권씩을 팍팍 번역해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독자가 번역한 한국의 언어를 읽어나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는 거. 어떤 경우엔 모르긴 몰라도, 원문도 김석희 선생이 번역해 놓은 것보다는 매끄럽지 못할 걸?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로. 아, 이해한다. 전문 번역가라고 하면 번역만 해서 생계를 꾸려야 하는데, 석 달에 두 권 번역했다고 해도 번역료를 최대 권 당 1,000만원 잡으면 연 8천만 원. 그래, 만일 서울지역에서 산다면 이 수준으로 해야 그냥저냥 살림 꾸리는 수준일 것이다. (아무나 권 당 천만 원 받는 게 아니라는 거, 명심하시라.)
 우리가 번역가 김석희를 기준으로 생각해보야야 할 것. ① 적어도 석 달에 두 권씩 45년간 쉬지 않고 팍팍 번역할 수준 아니면 다른 길을 택하는 것이 경제적이다. ② 아무나 석 달에 두 권 번역하는 게 아니다. 원문을 능가할 정도라고 독자가 오해할 수준의 균일한 문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쉬지 않고 45년간. ③ 국내 최고 수준의 교정자에게 자신의 글을 교정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출판계에 끗발이 있어야 한다. 자신의 책을 끝까지 감수하며 퇴고 등등을 하기엔 석 달에 두 권은 너무 많으니까. 그러므로, 위의 네 가지 조건을 다 맞추기 힘드니, 결론이기도 한데, ④ 번역가의 길은 집구석에 돈 많은 사람이 심심풀이로 하는 것이 대빵이다. 하긴 어느 건 안 그래, 씨.
 근데 나는, 번역가 김석희의 문장이, 위에서 얘기했듯, 원문보다 더 매끄러운 것(처럼 읽히는 것)이 어째 마음에 들지 않아 같은 텍스트라면 이이를 피해가는 입장이었지만, 번역문학을 즐기는데 김석희를 피해간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도저히 피해갈 방법이 없다. 또 영어 번역판에 여사님 한 분, 흠. 그이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 하여간 일 년에 일고여덟 권의 책을 번역하는 초인적 작업을 홀로 해나가는 외로운 슈퍼맨이 이번엔 일본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痴人の愛>를 번역했다. 이걸 <미친 사랑>이라고 한 것에 무지 불만이었다가, 책 뒤에 역자 해설을 보니 ‘미친 사랑’은 역자의 의도라기보다 책 많이 팔아먹기 위해 출판사 편집위원들의 권유를 그냥 수긍한 것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는 제목을 <어느 바보의 사랑>이라고 뽑았다는데, 나도 한 표. <미친 사랑>이 뭐야. 하여간 이 책, 이번엔 일본책도 김석희, 정말 얄밉게 매끄러운 문장들로 잘도 바꿔놓았다. 거기다가 책을 읽어나가다가 흐름을 자주 끊을 정도로 상세한, 읽은 다음 몇 초 정도밖에 기억하지 못하고, 중요하지도 않은 각주까지 제공하는 세심함까지. 이러면서 1년에 7.4권 씩 45년간을 꾸준하게. 아, 놀라워라. (슈퍼 파월?)


 책을 출간한 시점이 1925년. 1차 세계대전 용 군수산업의 발달로 시작해 농촌인구의 지속적인 도시 집중화가 진행되던 시기. 우쓰노미야 촌놈 전기기사, 숫총각인 주인공 조지가 일 끝나면 할 일 없어 늘 다니던 카페에 한 꼬맹이 아가씨 접대부에 호감을 느낀다. 정말이다. 15세. 우리나이로 16세. 중학교 3학년. 생긴 것도 괜찮고, 말도 별로 없고 좀 우울한 성격이긴 한데 조지 말도 잘 듣는다. 음. 어감이 이상해. 조지 말도 잘 들어? 무슨 얘길, 16세 꼬마 아이한테. 그래서 이 아이를 데려다 영어도 가르치고 음악도 가르치고, 하다가 사랑하게 되고, 결혼까지 하고, 미치도록 사랑하는 얘기. 이것이 다다. 하지만 이리 간단하게 얘기를 끝낼 수 없는 것이 328쪽에 이르는 작품을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하루에 읽어치우게 만드는 문학의 힘. 정말 우스운 사랑 이야기, 원 제목에서 보듯 한 바보 남자의 쪼다 같은 사랑 이야기에 독자를 빠뜨리는 힘을 (일단 잘난 척부터 좀 하자) 우리는 문학의 효용이며 쾌락이라고 한다.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를 얘기할 때, 여인의 몸에 대한 탐닉이니, 사도-마조히즘과 결합한 에로티시즘이니 하는 모양인데 1920년대엔 그랬다고 쳐도, 근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은, 그냥 탐미주의, 이렇게 간단하게 말하면 안 될까?
 여기에서 작가가 탐하는 대상이 한 여인 또는 여인의 몸― 읽어보시라 한 여인의 정신세계는 절대 아니다 ―에 대한 탐닉이어서, 탐닉의 대상, 빌어먹을 행실을 결국 개 못주는 젊은 여인을 사랑하거나 추구하는데 어떤 장애 또는 장해도 불사하는 경향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 쓴 작품이라고, 간단하게 얘기할 수 있는데, 이런, 책의 모든 것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여인의 무릎 아래 머리를 조아리고 조공하는 남자, 이름이나 다른 걸로 하지, 조지가 바로 책의 원래 제목에서의 치인痴人(원래 한자는 癡人), 즉 ‘바보’다. 서양소설에서는 이런 종류의 바보들이 왕왕 등장했는데(보바리 여사한테 남편 샤를이 바보 아니었나?), 동양 소설 안에서는 처음 발견했다. 사실 독후감에 ‘사도-마조히즘’에 대해선 쓰지 않으려 했다. 당신이 책을 읽은 다음에 이 소설 <미친 사랑>을 생각할 때마다 저절로 그것과 아주 유사한 장면들 위주로 책을 떠올리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래, 여기까지 하자. 왜 이름만 들어도 왠지 불편해지는 사도-마조히즘을 생각하게 될지는 책을 직접 읽어볼 분들의 권리로 내버려두는 편이 좋겠다.
 한 가지 힌트를 드리자면, 읽는 내내 주인공 조지의 행동이 너무 바보 같고, 바보 같아서 안타깝고, 나중엔 조지가 진짜 안타깝기만 해서(책 속에 들어가 도와주거나 충고해줄 수도 없잖은가!) 욕 나오고 콱 때려주고 싶다. 탐미주의 소설이라는 거. 준이치로와 그의 분신인 조지가 미학을 느끼는 것은 어린 소녀 나오미의 몸이라는 거. 이만하면 다 알려준 셈이다. 나머지는 당신 몫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자냥 2018-01-08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 김석희 선생 정말 대단하죠. 이 포스팅을 보니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근데 저도 제목에는 좀 불만이 있었어요.... <치인(痴人)의 사랑>이라고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싶은...

2018-01-08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08 1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22-09-13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리뷰 오늘에서야 읽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신나게 읽고, 석 달에 2권, 계산해 두신 거 보고 한참 웃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2022-09-13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