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들 창비세계문학 47
후안 마르세 지음, 한은경 옮김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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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히 처음 듣는 작가. 2017년 11월 현재, 알라딘에서 이 작가의 모든 책을 검색해보니 <떼레사……> 말고는 <여대생과 좀도둑> 딱 한 권이 더 있는데 절판됐고, 출판사는, 망했다. 근데 이렇게 재미나게 소설을 쓰는 작가가 왜 이리도 알려지지 않은 것인지 참. 내가 읽은 책은 스페인에서만 7판 째 찍은 책을 번역한 거다. 그래서 맨 앞에 작가의 “7판 작가의 말”을 붙였다. 초판 찍은 다음에 10년 만에 7판을 찍었으니 스페인에선 말 그대로 베스트셀러였던 모양이다. 하긴, 우리나라 출판계에서 현대 스페인(어) 문학에 관심을 두어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한 건 영미, 불, 독, 일문학과 비교하면 얼마 되지 않긴 하지만. 책의 초판이 1966년이다. 무대는 1933년생인 작가가 23세였던 1956년. 그러니까 자신이 젊었을 때에 겪은 스페인 내 학생운동 세대의 지난 모습을 10년이 지난 다음에 뒤를 돌아보고 쓴 작품이란 뜻. 스페인 판 386이라고? 아몰랑.
 1956년부터 한 1년 반 가량의 시대에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벌어진 학생운동, 그 속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했던 젊은이들의 모습. 당시 유럽 어느 지역하고 비교해도 지난 세기 계급 또는 계급에 따른 차별이 강하게 잔존했던 시절에 (쁘띠)부르주아 계급의 자재들과 도시빈민 사이에 엄혹하게 존재했던 늪. 입으로는 평등과 분배를 웅변하지만 실생활에서 혈관을 타고 흐르는 계급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 젊은이들, 가운데 (쁘띠)부르주아 자재들은 결코 두 계급 사이에 입을 벌리고 있던 늪, 이젠 늪도 늪 나름이라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냥 더러운 물이 조금 고인 웅덩이 정도로 좁아졌을지언정 그걸 건너려하지 않는다. 반면에 빈민 그룹의 대표 젊은이, 삐호아빠르떼(‘신분상승을 노리는 속물’이라고 각주에 적혀있다. 이하 “속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마놀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신발을 신은채로 철벅거리면서 웅덩이를 건너 상대에게 손을 내민다. 한 방에 신분상승을 이루려는 속셈으로.
 이렇게 너절하게 쓰니까 재미없겠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 마르세가 깔아놓은 건 젊은 남녀 간의 상열지사. “마르떼”는 ‘쁘띠’도 아니고 그냥 ‘부르주아’의 딸. 속물 마놀로가 오늘도 생업에 충실하기 위하여 바르셀로나에서 고급 오토바이 한 대를 (나중에 팔아먹을 속셈으로) 훔쳐 타고 바닷가로 놀러갔는데, 거기 한 여름별장에서 (쁘띠)부르주아 처녀총각들이 모여 파티를 벌이고 있는 광경을 보고 만다. 갖고 있는 거라고는 잔머리와 용기밖에 없는 마롤로. 아무렇지도 않게 파티에 참석하고 아주아주 괜찮은 아가씨 하나를 발견했으나 금방 사람들 속으로 사라져버린 다음 그냥 괜찮은 아가씨를 발견, 진을 콜라에 탄 칵테일 꾸바리브레 한 잔을 들고 접근, 크, 키스에 성공한다. 그랬더니 이 아가씨, 금세 열이 올라 아랫배와 허벅지를 슬쩍슬쩍 마롤로의 몸에다 대고 비비적거리는 거 아냐? 으때, 재미 좋겠지. 그렇다. 읽는 재미, 죽인다. 이런 장면들이 야하지 않고 아주 장난스런 필체로 슬쩍, 마치 검지와 중지만 써서 튕기는 듯한 묘미. 이 다음이 궁금하시다고? 몇 달 후, 여름별장 2층 창문을 넘어간 마롤로. 드디어 달빛이 교교한 가운데 거의 홀랑 벗은 채 자고 있는 마루하 아가씨 방의 창문을 넘고, 숨죽여 침대에 올라 아가씨 옆에 눕는 데 성공하는데, 그러고 마느냐고? 아니, 다른 (모든)것도 성공한다. 알고 보니 마루하 아가씨, 프로페셔널을 아니지만 그래도 경험이 없는 게 아니라 (시절이 1956년이다) 그리 티내고 일을 치루진 않았지만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게 조용조용하게 만리장성을 쌓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아서 잠깐 붙인 눈은 여명이 밝아서야 깨고 만다. 그 순간, 우리의 속물 마롤로의, 잠에서 덜 깬 시선은 방의 바람벽에 머물게 되고, 여명은 바람벽의 옷걸이에 걸린 검은 공단 유니폼과 앞치마와 머리그물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몇 달의 고생을 바쳐 드디어 자빠뜨린 마루하 아가씨는, 아이고, 여름별장 주인집의 하녀였던 것이다. 이런 걸 ‘폭망’이라고 한다며?
 마루하네 주인집, 그 속에서 외동딸의 이름이 책의 타이틀 롤, ‘떼레사’다. 1950년대 중반 스페인의 학생운동을 주도적으로 해나가던 소위 집행부, 또는 핵심으로 활약할 정도의 좌파. 떼레사와 그녀의 처녀성 훼손에 온 정열을 바친(적이 있는) 루이스 뜨리아스 데 히랄뜨로 대표하는 이들은 몇 년 지나면 빠른 시간에 스페인 내 좌파 운동이 그냥 생활, 삶의 작은 한 부분으로 바뀌는 걸 실감하게 되고 근본적으로 (쁘띠)부르주아 태생답게 지극히 자연스럽게도 아버지가 운영하는 회사의 자회사 사장, 여자 친구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기업의 계열사 사장 등의 기업가, 변호사, 의사, 정치가, 그것도 아니면 룸펜 부르주아 등으로 퇴행해버리고 만다. 그럼, 자본주의 힘이 을매나 대단한데. 우리도 봤잖아? 젊어서 말 그대로 가열차게 학생운동의 선봉에 섰던 무수한 인간들이 보수당 국회의원도 되고, 도지사도 되고, 대기업 상무도 되고, 부사장도 되는 거. 여기나 거기나 자본주의가 여간 힘이 세야지.
 하지만 그건 10년 후에 일어날 일이고, 지금 1956년엔 철없는 부잣집 아가씨 떼레사는 마롤로, 이 작자의 온갖 행태, 경찰을 피하고 은밀하게 돌아다니고, 중의적 이야기를 잘 하고, 심지어 단문으로만 대답하는 것들로 자기 마음대로 넘겨짚어, 속물이자 양아치이자 오토바이 절도범이자 잘 생긴 바람둥이를 사회주의 운동, 즉 노동운동의 핵심으로 착각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다. 얼치기 운동가 떼레사가 마롤로에게 진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기막힌 역전 상황. 마롤로 역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금발의 미녀에다가 몸매 빵빵한 아가씨에게 접근해서 나스타샤 킨스키의 것과 비슷한 볼륨의 촉촉한 입술에 찐한 키스를 퍼붓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아무리 재수가 좋고 운이 좋아도 어디 세상에서 자기 마음대로 되는 일 있나? 마롤로, 온갖 곳에서 떼레사와 진한 키스를 하고 여기저기를 주물럭거려도 딱 마지막 하나, 그게 안 되는 거다. 이제 갓 스무 살 넘은 마롤로의 신체조건과 정념과는 무관하게, 예를 들어 나일론 팬티(이렇게 쓰는 거 보다 “나이롱 빤쓰”가 어감이 훨씬 좋긴 하다) 한 장, 딱 하나 남았는데 ‘바로 그 순간’(뮤지컬 노트 제목하고 비슷하지만 하여간 그 순간)에 요란하게 전화벨이 울려 늙은 식모가 출현해서는 눈알에 불을 키고 째려본다든지, 하는 식으로 끝장을 못 보는 거다. 그게 인생이지 뭐, 다 그런 거지.
 이렇게 저렇게, 자신의 사랑과 육체적 욕망을 사상적 동일성과 단단히 착각하는 떼레사. 떼레사를 사랑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하여간 그녀를 이용해 적어도 안정된 직장이라도 얻고 싶은 우리의 속물 마롤로. 그들을 둘러싼 (쁘띠)부르주아 계급과 도시빈민과 악당들과 (룸펜)인텔리겐챠 젊은이들. 그들의 환상이 비등점을 향해 끓어가는, 끓어갔던 시절, 1956년과 1957년의 스페인. 정말 재미나게 읽었다. 스페인(어) 소설, 은근히 끌리는 게 있단 말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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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0-04-21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부터 이거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 정말 재밌네요.
빨랑 읽고 재미나다고 알라딘 동네에 소문내고 싶은 심정입니다.
영화로 나왔어도 꽤 재미있을 거 같은데... 스페인에서는 나온 작품이 있을 것도 같아요.

아, 근데 왠지 <여대생과 좀도둑>이 곧 <테레사와 함께한 마지막 오후> 이 책일 거 같습니다.

궁금해서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같은 책 맞네요. <여대생과 좀도둑> 책 표지에 원제가 <Últimas tardes con Teresa>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Falstaff 2020-04-21 10:32   좋아요 0 | URL
그죠? 이거 정말 재미있어요.
엇, 제목만 보면 그럴 거 같네요. 전 <여대생..> 공연을 못봤거든요.
ㅋㅋㅋ 잠자냥님이 소문내면 금방 퍼질 겁니다. ㅎㅎㅎ

잠자냥 2020-04-21 10:33   좋아요 1 | URL
네네, 구글에서 검색해 보니 같은 책이네요. 유일하게 국내 출간된 작품이 이것 뿐이라니 왠지 아쉽?? ㅎㅎㅎ

Falstaff 2020-04-21 10:39   좋아요 0 | URL
아, 전 짱구 같아요. 난독증이 생겼을지도...
하신 말씀의 뜻을 잘 못알아들었군요. ㅠㅠ
내가 쓴 것도 모르고 공연 운운했다니 ㅎㅎ 웃음만 나옵니다. ㅋㅋㅋㅋ
 

 

 

 며칠 전, 이야기 끝에 이젠 너무 자주 입끝에 올라 식상한 주제, 무인도에 가면 어떤 책? 이 이야기가 나왔다. 아이고……. 진짜 아무 생각 안 났다. 그리하여 책 대신에 가스 라이터, 코펠, 칼, 3인용 텐트와 (낚시대 말고) 통발. 이렇게 다섯 개 골랐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무인도 운운이, 내가 평생을 두고 읽는다면 어떤 책을 선택하겠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고, 그게 또 멋을 좀 부리느라 만일 내가 자유로운 독서가 가능한 정치범 또는 사상범으로 교도소에 간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겠는가, 라고 바꿔봤다. 그러니 교도소 운운도 소위 "필생의 책"을 선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어제 마침 하던 일이 일찍 끝나 한 번 골라봤다. 다섯 개를 고른다는 전제로 시작했다.

 

 

 

1. 소포클레스, 천병희 역, <소포클레스 비극전집>

 누가 20세기에 그리스 비극을 읽어! 일갈을 하고 절대 나한텐 그리스 비극을 읽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 줄 알았다. 그리고 그건 내 장담대로 이루어졌다. 20세기에 난 그리스 비극은 절대 읽지 않았으니까. 세월이 흘러흘러 21세기가 되고, 카를 오르프가 작곡한 <외디페>를 보고 듣고, 어느새 내 책상엔 <소포클레스 비극전집>이 올라와 있었다.

 하루키가 나에게 가르쳐준 거의 유일한 가르침은 <노르웨이의 숲>에서 말하기를, "30년 이상 된 책을 읽어. 그건 이미 검증이 끝났다는 얘기야."란 대사.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는 30년 씩 100번을 더 지나 완벽하게 검증이 끝난 위대한 작품. 시대를 초월한다는 말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의 비극적 절망과 종말은 독자의 심장을 저며 놓는다.

진정으로 불쌍한 인류는 소포클레스를 읽지 않고 생을 마감하는 자들이다.

 

 

2. 베르길리우스, 천병희 역, <아이네이스>

 목마를 타고 침공한 그리스 군대에 의하여 완벽하게 괴멸된 트로이. 카산드라의 정확하지만 공허한 예언은 누구도 귀담아 듣지 않고 스스로 멸망한 가운데 장군 아이네이스는 늙은 아버지를 업고 불타는 트로이를 뒤로 한 채 새로운 약속의 땅 로마를 찾아 긴 항해에 나선다.

 영웅과 사랑의 서사. 서양 문학을 알기 위한 기초 텍스트가 아니라 정말로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아름답고 영웅적인 개척자 이야기.

 

 

 

 

3. 황순원 전집

 

 

 

 

 

 

 

 

 

 

 

 위 책들. 모두 11권 가운데 열 권만. 11번째 전집은 황선생의 시들을 모아놓은 거다.

 조선어로 글을 쓸 수 없는 시절이 닥치자, 교사 직을 내려놓고 낙향해 침묵 속에 굳건하게 조선어로만 소설을 썼던 대나무 같은 이. 오직 작품으로만 말을 남긴 세계문학의 위대한 교사. 언어는 선생에게 종교였을 것이다. 개별 작품에 대한 호오는 다음으로 하고 시절을 뚫고 당대의 서정을 간결하게 품은 글의 만찬을, 교도소 안에서라면 만찬으로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4. 김수영 전집 1.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만, 김수영과 신경림으로 나는 시를 알았다.

 비록 이이가 혁명도 못하고 울화가 돋아 수유리 집구석의 방만 바꿔버리는 양계장 주인이었을망정, 그리하여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을 망정, 전후 폐허 속에서 진정한 선비였음이 그의 시 속에 온통 들어 있다고 나는 믿는다.

 

 

 

 

 

 

 

5. 최명희, <혼불>

 우리나라 소설문학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결정체.

 

 

 

 

 

 

 

 

 

* 이것들 말고 또 생각나는 것이 있다면 최인훈 전집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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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녀 창비세계문학 37
쿠라하시 유미꼬 지음, 서은혜 옮김 / 창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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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감각적인 문장의 나열과 구성. 일본 소설에서만 볼 수 있는 것 같은 섬세한 묘사가 매우 유혹적인 작품. 그러나......

 윽, 비위 상해. 근친상간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원래 근친간의 섹스는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구름 위의 신전에 거하는 유피테르와 유노 등 신족에게만 허여됐던, 지고로 신성하여 인간은 흉내 낼 수 없는 행위였다. 기독교의 신에 의하여 박멸된 북유럽 신화에서도 주신主神과 인간 사이의 남매 지크문트와 지크린데의 결혼도 주신 보탄의 아내이자 혼인의 여신 프리카에 의하여 죽음으로 끝난다. 그런 성스런 행위를 감행한 소녀 ‘미키’를 성소녀聖少女라고 쿠라하시는 주장하고 있는 건데, 아무리 작가의 문장이 매혹적이고 스토리가 기발해도 아, 난 싫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다 읽었다. 이런 내가 나도 싫다.
 이 주제를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진짜로 잘 쓴 소설이겠다. 이런 소설도 필요하고 더구나 쿠라하시 정도의 필력이라면 심지어 기념할 만하기도 하다. 근데 하필이면 왜 내가 읽었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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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지바르 또는 마지막 이유 대산세계문학총서 82
알프레트 안더쉬 지음, 강여규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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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지바르. 동 아프리카 케냐 밑에 있는 나라 탄자니아의 한 주州 또는 해당 주의 주도州都.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느냐 하면, 등장인물 가운데 열여섯 살 먹은 소년이 등장한다. 소년은 어부, 그러나 왕년에 공산주의자였고, 지금, 1937년 현재 나치에 완전하게 장악된 독일에서 유대인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핍박을 받아 제대로 걸리기만 하면 다하우 수용소 등지에서 고문 받아 죽거나 굶어죽거나, 아니면 별 이유도 없이 시비 걸려 얻어터져 죽는 걸 하도 많이 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정신건강에 문제가 많은 아내 때문에 숨죽여 살고 있는 성실한 성격의 어선 선장, 크누트센 씨의 조수로 있는데, 이제 자기 딴엔 다 큰 거 같아 소년 특유의 로망, 북해나 대서양 혹은 인도양 등 광활한 바다 건너 잔지바르, 보르네오, 서인도제도 등을 건넌방 가듯 항해하는 꿈, 이름하여 호연지기를 가지고 있다. 등장인물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면서 세상을 향한 건강한 꿈을 꾸는 소년, 즉 독일의 건강한 미래를 상징할 수도 있는 젊은이의 로망을 작품의 제목으로 딴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유디트란 이름의 아름다운 유대인 아가씨. 성경에서 나오는 유디트처럼 일찍이 몸종 하나 데리고 아시리아의 장군 홀로페르네스의 진영으로 들어가더니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로 그를 유인, 단칼에 모가지를 뎅겅 잘라 들고 온 용감무쌍한 캐릭터가 아니라, 독일 내 예절과 공손, 겸손, 미덕, 아름다움 등을 상징하는 여성으로, 함부르크로 추정되는 도시에서 스웨덴으로 도망가라는 어머니를 차마 홀로 두고 떠날 수 없어 엄마 말을 듣지 않자, 용감한 엄마가 딸 앞에서 독약을 먹고 죽는 바람에 모친의 유지를 받아 밀항을 위해 북해를 마주한 코딱지만 한 어촌이자 엄마 젊은 시절 잠깐 놀러와 본 적 있는 레리크에 도착. 과연 스웨덴으로의 밀항이 가능할까?
 목사 헬란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두 다리를 몽땅 잘리는 부상을 입어 의족을 단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목회를 이어가다가, 당뇨가 진행되는 바람에 절단 부위에 심각한 부종이 발생해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기 시작한 인물. 당뇨 합병증으로 더 자를 다리도 남아있지 않아 이젠 대퇴골에 이은 내장기관의 감염으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처지. 근데 정작 그의 가장 큰 근심은 나치에 의하여 퇴폐미술로 찍혀버린 조각가가 만든 <책 읽는 수도사>를 교회에서 몰수하겠다는 친위대의 강제 요청이다. 명색이 목사라 수도사 조각상을 끔찍한 범죄 집단인 나치에 넘겨줄 수는 없고, 그렇지 않다면 붙잡혀 악랄한 고문 끝에 생을 끝내야하는 진퇴양난의 지경을 맞는다. 그리하여 배를 가지고 있는 믿음직한, 그러나 사상적으로 종교를 절대 믿지 않는 동네 빨갱이 크누트센 선장에게 조각상을 가지고 스웨덴 교회에 전달해주기를 부탁한다. 이 과정에 자기가 믿는 신은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 도저히 스스로 만들었다고 하는 인간에게 관심이 있다고는 볼 수 없는 무관심으로 일관한다고 확신하는 단계로 치닫는, 몸과 마음과 정치적 상황이 모두 벼랑 끝에 서있는 단계에 이른다.
 이 <책 읽는 수도사>가 어떤 목각품이냐고? 한 번 보시라.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가로 찍힌 에른스트 바를라흐의 <책 읽는 사람>.

 

 

 


 이 외딴 어촌 레리크에 지독하게 평범한 외모와 입성과 행동거지를 갖고 있는 공산당 핵심, 일찍이 모스크바 코민테른에 유학한 전력까지 갖춘 그레고어. 소련에서 교육을 받고난 후 흑해 주변에서 백군과의 전쟁에도 참여한 투사이지만 모스크바에서 자신의 연인이 정치투쟁으로 죽임을 당했고, 나치에 의하여 뿌리까지 잘린 독일 내 공산주의 운동에 숨이 막히는 상태. 공산당원에게 가장 유용한 접선 장소로 교회당을 선택하여 크누트센 선장을 만났으나 서로 번하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행동을 할 것이며 무슨 전략을 사용할 것인가. 그러다가 <책 읽는 수도사> 조각상이 눈에 띄고 목사와 유대인 유디트 아가씨와 조각상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알게 된 그레고어. 이 공산당 핵심세포는 한 유대인과 기독교를 위해 과연 행동과 전략을 마련할까?
 이런 이야기. 총 여섯 명의 등장인물을 소개했다. 소년, 크누트센 선장, 유디트, 헬란더 목사, 그레고어, 책 읽는 수도사. 책의 주제는 도망치는 일이다. 소년은 지루하고 염증 나는 작은 어촌 레리크에서 대양으로, 크누트센 선장은 현재의 질서에서 숨죽여 살아남아 어떻게 해서든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도래를 기다리기 위하여, 유대인 유디트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독일을 떠나기 위하여, 목사는 이젠 기대해볼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의 손과 관심으로부터, 그레고어 역시 완전한 불모지 독일 내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을 벗어나기 위하여, 책 읽는 수도사는 기어이 자신을 유폐시키거나 폐기시키기 위해 눈알이 벌건 나치의 땅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들은 도망친다. 그리하여 나치 치하의 독일은 내일의 희망(소년)도, 미덕과 예의(유디트)도, 종교(헬란더 목사)도, 평온한 삶(크누트센 선장)도, 평등(그레고어)도, 지식 또는 지식의 유지(조각상)도 모두 독일로부터 벗어나는 꿈을 꾸는 것이다.
 올해 들어 나치 치하의 독일을 그린 소설을 많이 읽는다. 왜 젊은 시절엔 이런 책을 읽을 수 없었을까? <잔지바르…>도 1957년 작품이다. 세월이 이리 많이 흐른 다음에야 번역이 되고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거다. 1957년부터 참 오랜 세월, 이리 좋은 작품을 단 한 가지 이유, 공산주의자가 선한 역을 한다는 진짜 별 거 아닌 이유로 국민의 읽을 권리를 모른 척해온 대한민국의 입법부와 행정부. 참으로 딱하다. 그들 때문에 나 역시 나치 치하의 독일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다 집단최면에 걸려 나치에 동조하고 열광한 줄로 오해해왔다. 심지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1970년대와 80년대엔 금서였을 정도. 알고 보면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 독재에 저항하고, 투쟁하고, 그래서 고문 받고 수용소에 갇혀 거의 짐승 수준의 고통을 받다가 유대인처럼, 유대인들과 함께 죽어갔다. 그걸 왜 몰랐을까. 미국과 유럽의 1차대전 전승국들이 독일 히틀러 집단의 전비확장을 눈감아 준 이유도 여태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말이지.
 문학과지성사의 대산세계문학전집이 좋은 것이, <잔지바르…>가 190쪽 정도라 웬만하면 이것만으로 한 권의 책을 내겠는데, 아무래도 한 권의 책으로는 마땅하지 않겠는지 안더쉬의 단편집 <프로비던스에서의 나의 실종 - 9편의 이야기>를 통째로 뒤에 붙여 기어이 400쪽을 넘겼다. <프로비던스…>는 1968년부터 1971년 사이에 쓴 9편의 중단편을 싣고 있는데, 우연인지 처음부터 구성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서로 연관이 있는 듯, 없는 듯, 아니, 분명히 조금씩 연결고리가 있는 작품들로 이루어졌다. 안더쉬가 47그룹, 우라질 47그룹의 멤버이기도 하다던데, 내가 아는 어느 47그룹 멤버들(물론 귄터 그라스도 포함해서)보다 참 글이 좋다. 공산당 전력이 있어 프롤레타리아에 쉽게 접근하기 위해 간결한 서술을 사용해서 그런가 참 쉽게 읽히고 마음에도 와 닿는 작품이다. 책 뒤표지에 “독일에서는 고등학교의 독일어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현대소설을 읽고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기 휘한 모범적 작품으로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하는데, 읽어보시라, 그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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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2022-12-09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6년에 박영사에서 최후의 이유라는 제목으로 지명렬 역, 82년에 주우에서 마지막 이유라는 제목으로 안더쉬의 두번째 장편 레드(빨강머리 여인)과 묶어서 곽복록 역, 85년에 학원사에서 곽복록 역 재간했고 대산세계문학총서는 3번째 번역입니다. 유신시절이랑 5공시절에 번역이 나왔네요. 3번째 소설 에프라임도 83년에 번역이 나왔으니 오히려 군사정권시절에 번역이 더 활발했군요.

번역이 없던 단편집과 묶어내서 오늘날 독자들에게 깔끔한 새번역으로 찾아온 의의는 크지만 대한민국 입법부가 금서로 묶어놓은 적은 없습니다. 시장성이 문제였을뿐이죠.

Falstaff 2022-12-09 15:19   좋아요 0 | URL
아, 제가 알지 못하고 그랬거니, 짐작으로 쓴 거였군요. 그저 책방 재고 여부만 가지고 판단했으니 제가 잘못한 겁니다.
전 흥미롭게 읽은 책인데 잘 팔리지 않는 게 아쉽습니다.
좋은 댓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상속자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7
윌리엄 골딩 지음, 안지현 옮김 / 민음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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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랍게도 주인공이 네안데르탈인들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점은, 골딩이 서문 대신 써놓은 허버트 조지 웰스가 쓴 《세계사 대계》의 일부를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심각하게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일반상식 적的 지식에 입각해 책을 읽게 되고, 그 결과 나처럼 오리무중에 빠져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서문 대신 써놓은 조지 웰스의 글이 뭔가 보자.

 

 “……우리는 네안데르탈인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다. 하지만 털이 과다하게 많고 추하며 아래로 처진 이마와 돌출한 눈썹과 유인원 같은 목과 작은 키 때문에 추하거나 역겹고 낯선 모습을 띠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근대 인간의 부상을 조사한 해리 존스턴 경은 자신의 저서 『시각과 검토』에서 이렇게 말한다. ‘교활한 뇌, 느릿한 걸음걸이, 털로 덮인 몸, 튼튼한 이빨 그리고 식인종의 성향을 지닌 고릴라와 유사한 괴물들에 대한 어렴풋한 인종적 기억이 민담에 등장하는 거인의 기원일 수 있다…….”

 

 문제는, 조지(핫따, 거 이름도 참. 자꾸 ‘조지’, ‘조지’ 그러니까 우습네그려!) 웰스가 《세계사 대계》를 쓴 것이 1920년(네이버 지식백과). 골딩이 <상속자들>을 쓴 시점이 1955년. 그러니까 웰스의 1920년 저작물을 1950년대 초에 인용을 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아는 네안데르탈인은 큰 키(성인남성 평균 1.65미터. 호모 사피엔스 가운데 동아시아 한반도에 살던 종의 성인 수컷 평균 신장이 1.65미터를 넘기까지는 예수가 죽고 근 2,000년 더 필요했다.)에 큰 골격, 큰 비강과 추위를 극복하는 놀라운 체력, 불을 다루고 석회암 동굴 벽에 들소를 비롯한 채색화까지 그린 사람 속屬의 한 종이다. 따라서 이 서문을 읽지 않고 그냥 상식에 입각해 책을 읽으면 자주 곤란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책에서와 마찬가지로 네안데르탈인은 사냥을 하거나 다른 육식동물이 잡은 먹이를 약탈하는 포식자였으며, 포식자의 입장에서 당연하게 호모 사피엔스와 조우하여 그들을 죽일 기회가 있으면 당연히 호모 사피엔스의 시체를 먹었을 것이다. 물론 반대도 마찬가지다. 네안데르탈인 멸종의 가장 큰 이유가 호모 사피엔스들이 사냥해 먹어치웠기 때문이란 기사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인터넷 신문기사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골딩이 가장 애착을 가졌던 소설이라는 <상속자들>에 출연하는 네안데르탈인, 로크, 파, 라이쿠, 말, 늙은 여자, 하, 닐 등은 상상을 초월하는 평화주의자들로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이유 하나만 가지고 생전 처음 보는 호모 사피엔스 무리들에게 큰 호감을 지닌다. 물론 결과는 죽임을 당하거나 포로가 되긴 하지만.
 이 책이 골딩의 두 번째 작품. 첫 작품인 <파리대왕>에서 골딩은 소년들을 오스트레일리아 주변이라고 추정되는 외딴 무인도에 떨어뜨림으로 해서 인간종이 갖고 있는 권력과 지배 등의 속성을 까발려, 처녀작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의 대표작으로 인식하게끔 한다.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하자면 뭐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이리상태’ 정도, 이미 익숙한 내용을, 아직 제대로 완성되지 못한 인간 종으로의 소년들 무리 속에서 발견함으로써 방점을 찍은 것이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이어서 두 번째 소설 <상속자들>이 나오는데, 이 작품도 전작 <파리대왕>과 지독하게 닮아있다. <상속자들>에서 등장하는 것 역시 아직 문명을 완비한 인간 종으로 발전하기 전 원시 상태의 호모 사피엔스와 인간 종과 가장 유사한 사람 속屬 네안데르탈인을 등장시켜 호모 사피엔스, 그러니까 현대인의 아주 깊은 곳, 원시적 유전자 속의 잔인함과 폭력, 지배 인자들을 밝히려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책 읽기가 좀 불편한 건, 내가 알고 있는 네안데르탈인과 많이 다른 특색, 1920년대 지식으로 만든 야만족, 히말라야나 알프스의 사스콰치안 닮은 털 많고 큰 원숭이 정도로 그들을 묘사해 놓은 것에서 시작한다. 책 속의 그들은 여차하면 사슴이나 “다람쥐처럼 팔다리를 모두 사용하며 뛰어가”고(240쪽), 단순히 가시덤불을 휘두르며 돌(칼)을 ‘던짐’으로 하이에나를 퇴치하고 하이에나가 사냥한 사슴고기를 탈취(58쪽)한다. 실제의 그들은 완전한 직립보행과 무리사냥을 했고, 돌칼을 나무 장대 끝에 매달아 창으로 쓸 줄 알았다. 이건 21세기 인류라면 당연하게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1955년에 발표한 소설에선 그렇지 않았던 거 같다. 더 심각한 과학적 오류가 맨 처음부터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오류는 시대적 한계이니 그만하고, 다만 그것 때문에 책 읽는 독자의 오해가 발생한다는 정도만 꼽아 놓겠다.
 또 하나는 번역의 문제. 번역에 관해 말을 아끼고 싶다. 분명히 역자 안지현은 원작에 충실하게 될 수 있으면 원문을 그대로 표현하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네안데르탈인의 의사소통 방식이 짧은 대화와 암시에 이은 텔레파시. 텔레파시라고 해봐야 서울 부산처럼 떨어진 곳에서 의사소통을 정확하게 하는 수준은 아니고, 집단 사냥하는 무리들이 예를 들어 들개 같은 종들이 사냥을 하면서, 나는 직진, 너는 우회하여 가젤을 몰고 와, 그럼 3번, 네가 지칠 때까지 쫓고 이어서 4번, 그 다음에 내가 끝까지 쫓아갈 테니까. 하는 식의 텔레파시. 물론 그것보다 훨씬 높은 단계이긴 하지만 진짜 그림을 펼쳐놓고 ‘이런 식이다’라고 할 수는 없는 정도란 뜻이다. 작가는 자기 모국어로 이런 의사소통 방식을 자유자재로 써놓았겠으나, 역자는 그걸 이방의 언어로 바꾸면서 뜻이 훼손당하지 않아야 하니 고생을 좀 했겠다, 싶긴 하다. 그러나 안지현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 책 좀 읽는 수준의 독자 나는, 책의 많은 부분을 안개 속에 두고 책을 덮고 말았다. 그리하여 비록 270쪽에 불과한 얇은 분량이지만, 읽는 자체가 많이 까다롭고 같은 문장을 몇 번 읽어야 해독이 가능한 경우가 많았다. 저자 혹은 역자와 독자 사이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많았다는 뜻이다. 독자가 읽기에 모호한 서술이 지속되면 그건 독자 책임인가? 아니면 저자나 역자의 책임인가.
 물론 책을 다 읽으면 어떤 내용인지, 작가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해가 되지 않았던 부분은 뒤에 나오는 작품해설을 읽어보면, 아 그랬구나, 딱 알아채고 그 부분을 다시 읽어볼 수도 있다. 근데 이 모든 것을 감안하여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난 이후 윌리엄 골딩의 책은 더 이상 찾지 않겠다고 작정해버리고 말았다. 저역자와 독자의 책 속에서의 의사 불통. 그 위력은 이런 것이다. 그게 저자 혹은 역자 또는 독자, 누구의 책임이 됐건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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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11-0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이 책 읽어보려고 보관함에 넣어뒀는데 그냥 패스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Falstaff 2017-11-07 10:04   좋아요 1 | URL
전 이상하게도 골딩의 책 읽으면 골이 딩,해집니다. ㅠㅠ

syo 2017-11-0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읽는 내내 다층적으로 난감한 책이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데, 오냐 그게 골딩 너의 의도라면 나도 안 되겠다- 하면서 덮었습니다....

Falstaff 2017-11-07 11:55   좋아요 0 | URL
헤맨 사람이 저 하나가 아니란 게, 짓궂게도, 위안이 됩니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