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동아일보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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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흥미로운 요소와 사회적 여러 문제, 개인의 자존감에 관한 굵직한 주제를 품고 있지만 읽기엔 좀 불편한 책. 신뢰할 만한 부커 상을 수상한 작품. 내가 읽기에 불편하다는 것일 뿐 사소하고 얇은 이 독후감만 읽고 일독을 포기하지 않으시기 바람.

 1994년 4월,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함으로써 아라파트헤이트를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과거로 흘려보낸 남아프리카 공화국. 하지만 여전히 국부國富의 대부분은 네덜란드나 영국계 백인이 틀어쥐고 있던 상황. 이름하여 아프리카너. 정서상 유럽과 긴밀한 유대감을 갖고 있던/있는 이들은 정치적 측면 말고는 각계 각층의 최고 지도부를 몽땅 점령하고 있었다. 그중에 한 인물, 데이비드 루리. 쉰 두 살. 매주 화요일 오후 아주 괜찮은 여인으로부터 정기적으로 섹스를 사는 것으로 적절하게 삶이란 톱니바퀴에 윤활유를 공급하던 잘 생긴 외모의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어느 날 퇴근하다가 평소에 잘 다니지 않았던 길로 접어든 그는(문제는 언제나 하던대로 하지 않았을 때 발생한다는 동서고금의 진리를 외면한 이 지성인이) 앞에서 마치 열두 살 먹은 계집아이의 것같은 엉덩이를 옴찔옴찔 움직이며 가고 있던 같은 과 학생 멜라니를 만나 점심 한 그릇 사주고, 어때 집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실까? 뻔한 수작 끝에, 안돼요, 안돼요를 립 서비스로 생각하면서 약간, 정말 약간의 저항을 가볍게 물리치고, 독자, 그중에서도 남자 독자의 입장에선 바람직하진 않지만 적어도 강제적이었다고는 볼 수 없는 방법, 즉 적극적으로 합의하지는 않았으나 두 사람 다 모든 일에 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성인이란 측면으로 관찰할 때는 그나마 불법적이지 않았다는 의견을 낼 수 있을 정도의 방법으로, 한 번 했다. 그때 딱 한 번으로 그쳐야 했으나 그게 마음 먹은대로 되는 일이 본래부터 아니라서 몇번에 걸쳐 관계를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그런 거다. 아시는 분은 아실겨.

 다 커서 이미 성인이 된 여성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전적으로 본인 책임 아래 있지만 이제 그놈의 우라질 법적 성인의 테두리에 갓 전입한 여성이 쉰 두 살의 교수와 관계 했다는 건 사실 아름답지는 않을 텐데, 내 생각에 더 큰 문제는 교수가 댓가로 출석과 성적에 관해 부당하게 높은 평가를 했다는 거. 거기다가 멜라니는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고 골치 아프게 남친이 그들의 관계를 알고 있어서 학생도 아닌 것이 자기 수업에 들어와 깽판 비슷하게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 그 후 멜라니 본인의 의지라고는 전혀 읽히지 않지만(아무리 법적 성인이라도 아직도 열 두 살짜리 계집아이의 엉덩이를 갖고 있는 풋내나는 아가씨란 점을 감안하면 분명히 아니겠지만) 어쨌든 주위의 충동에 의해 한 것인지 아니면 본인의 의지인지 하여간에 멜라니는 데이비드 루리 교수를 지위를 이용한 성희롱 또는 성폭행으로 학교 윤리위원회에 제소해버렸다.

 데이비드 루리. 끝났다.

 무대가 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인종분리정책이 사라지자 그간 백인의 억압에 의하여 아슬아슬하게 지켜지던 사회질서가 한 방에 무너져버려, 그동안의 질서 속에서 살던 백인의 입장에선 무시무시한 무법천지로 돌변했다고 여기는 반면, 흑인의 입장에선 비록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범죄가 만연한 지경에 이르렀으나 자신들의 모든 행위를 속박하던 규정에서 벗어나 역사상 최초의 자유를 즐기고 있었던 거다. 아울러 남아프리카 지역 내에서의 사고방식, 행동규범이랄까 행동양식이랄까를 포함한 생존을 위한 거의 모든 사고방식 역시 송두리째 변화하고 있던 시점. 데이비드는 심신의 안돈을 위하여 시골에 정착해 사는 딸 루시의 집으로 잠시 거처를 옮긴다.

 남아프리카에서 목장을 경영하며 땅에 맨발을 딛고 살고 싶어하는 루시. 그녀가 겪고 있고 앞으로 겪어야 할 아프리카의 새로운 파도 또는 충격이 무엇이고, 그걸 극복해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 곳곳에 터질 준비가 되어 있는 지뢰가 묻힌 땅. 반드시 지뢰지역을 맨발로 건너야하는 숙명. 그게 데이비드와 루시 부녀가 걸어야할 길이라고? 당신과 내가 걸어야할 길이기도 하다. 정신차려! 까딱하다간 끝장이야. 물론 아무리 정신을 차리더라도 별 소용이 없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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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4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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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르한 파묵의 책은 나로 하여금('하여금'이 조사인지 부사인지 끝내 떠오르지 않아 결국 사전 찾아봤다. 부사란다. 그럼 떼어 써야지) 망설임 없이 고르게 만든다. 그렇다고 책방에서 '오르한 파묵'을 검색해 아득바득 찾아 읽는 수준은 아니고 이리저리 서핑하다가 눈에 띄면 아무 생각없이 장바구니에 넣는다는 말씀. 지난 1월 책 살 때 세 편의 파묵을 구입했던 것. 그 가운데 마지막 책이 오늘 독후감 쓰는 <새로운 인생>. 역시 이난아의 번역. 이 정도의 오탈자면 그냥 불평하지 않고 읽어준다. 근데 <고요한 집>에선 왜 그랬어!

 <검은 책>과 <내 이름은 빨강> 사이에 썼다는데, <검은 책>은 다음 분기에나 읽을 예정이라서 모르겠고, 하여튼 흥미로운 작품이다. 바로 뒷작품 <내 이름...>하고도 완전히 다른 감각.

 대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읽는 책은 그전과 완전히 다른 경우가 많다. 나부터도 열아홉 살 시절에 소위 "금서"란 딱지, 그게 얼마나 매력이 있었는지.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이런 것부터 시작해서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옥색 치마 휘날리며> 또 뭐가 있더라, 아 그새 다 잊었네, 까치, 돌베개, 한길사 등에서 찍은 책들. 거기다 며칠 전 얘기했던 <농무> <한국의 아이> <저문 강에 삽을 씻고> 같은 시집(전부 다 '창작과비평'에서 나온 거다. 당시 창비란, 백낙청이란 참!). 주관식 세대이긴 했지만 정규교육에선 전혀 생각도 못했던 글편들을 읽고는, 이전 12년의 교과과정이 관념을 얼마나 한정시켰는지 단박에 알아차리면서, 동시에 과거엔 틀림없이 모범생이었던 몇몇 동무들은 자신의 앞날을 여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실천적 운동으로 투신하게 만들었다. 물론 나중엔 피라미드 회사의 더블 다이아몬드가 돼 만날 골프만 치러 다니기도 하고, 실업자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고, 아직 국회의원 후보 공천 한 번도 못받은 인간도 되고, 대학에서 선생도 하고, 대기업 임원도 되고, 회사 다니다 하나도 명예스럽지 못한 명예퇴직도 하고, 닭도 튀기면서 나하고 별로 다른 인생을 살지 않지만 하여간 그런 동무들은 한 시절, 자신의 인생에 말 그대로 완전한 전환점을 이루었는데 대부분 첫 출발은 책 한 권으로 시작했던 거다. 비록 충격을 받았을지언정 자신의 인생까진 바꾸지 않았던 평범한 모든 나에게도 책들이 던져 주었던 충격은 가히 작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쉽게 말하여 여태까지 감고 있었다는 것도 모른 눈이 떠지는 느낌.

 <새로운 인생>에 바로 그런 한 권의 책. 여태까지 잘 먹고 살던 인생을 한 방에 걷어차고 새로운 인생을 만들게 하는 딱 한 권의 책을 읽은 이들. 그 젊은이들이 어떻게 인생을 바꾸는지를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기억하시지?)메타포, 아주 큰 메타포를 이용해 그려나가고 있다. 우연히 아름다운 여학생(문학의 유구한 헛점. 여주인공은 언제나는 아니지만 대체로 예쁘고 똑똑해야 한다는 조건을 파묵 역시 따르고 있는 거디다) '자난'을 알게 된 우리의 주인공 오스만. 1970년대와 8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여대생들이 그랬듯 책 몇 권을 가슴에 끼고 다니던 자난은 자판기에서 커피 한 잔을 빼 마시기 위해 책을 테이블에 놓게 되는데 순간 오스만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그날 오후 학교 옆의 중고책 노점상에서 같은 책을 사 읽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책 한 권을 읽은 다음 눈알에 뺑그르르 돌아버린 오스만. 그는 길고 긴 버스 여행을 떠난다. 무대가 몇년대더라? 지금 당장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여간 제대로 질서 혹은 현대화가 되지 않았던 터키 전역을 밤새고, 밤새며 또 밤새워 달린다. 이때쯤 소설은 터키판 로드 무비도 전환. 근데 아무리 옛날이라도 참 교통사고 많이 난다. 교통사고. 오스만, 참으로 신기하지, 자신은 언제나 별로 다치지 않고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도 하다가, 구조하면서 이미 죽은 어떤 사내의 품 속에서 두툼한 지갑을 빼내 돈을 쓰며 또다시 로드 무비를 이어가며(물론 안 그랬다간 소설이 단박에 끝나버리기 때문에) 사고가 날 때마다 자신의 인생이 바뀌고 있다는 걸 알아채는데, 스토리는 여기까지만.

 여자 주인공 자난의 이야기? 안 하겠음.

 세상, 별 거 없다. 인류가 만든 거의 모든 탈출기는 주인공이 다시 원래 생활로 돌아오는 회귀의 순간 끝난다. 아니면 회귀 후의 회고와 에필로그로 끝나던지. 영화 <빠삐용> 보셨잖아.

 파묵의 모국이며 이 책의 무대가 되는 터키. 이슬람 국가라서 색다른 종교적 외피는 서비스로 책 전체에 깔려있는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도 혹시 이슬람 적 문제제기 아녔어? 읽어보시고 판단하는데 언제나처럼 당신이 내릴 판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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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룬과 이야기 바다 문학동네 청소년 14
살만 루시디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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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의 책은 <한밤의 아이들>과 <악마의 시> 두 편을 읽었을 뿐이다. <한밤의 아이들>은 처음부터 감탄을 거듭하며 읽었고, <악마의 시>는 막 읽고나선 뭐 별로, 이렇게 생각이 들다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자꾸 생각나게 하는 소설이었다. 당시 <악마의 시>는 읽자마자 독후감을 써놔서 아마 그리 좋다는 얘긴 하지 않았을 거 같다. (확인 중....20분 흐름) 내 말 맞다. 그랬다(아직도 <악마의 시>를 그렇게 걸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독후감 쓴 때만큼 후진 작품으로도 여기진 않는다. 그냥 읽어보실 분은 읽어보고 아닌 분은 아니고, 그러나 읽어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 수준으로). 하여간 문제적 작품 <악마..>를 실제로 읽는 수고는 하지 않고 아래것들이 결재올린 보고서에 훑어보고나서 완벽한 신성모독이라 결정을 내린 당시 이란 회교 민주주의 공화국의 정교 최고 지도자 호메이니 선생 왈, "세상의 모든 형제들이여, 지독한 신성모독을 저지를 루슈디를 처단하라고 명하니 이는 신의 뜻을 내 입으로 전하는 것이노라". 이후 9년 동안 세상의 모처에 틀어박혀 살던 중 아이를 위한 동화 비슷한 우화소설을 하나 썼으니 오늘 얘기하는 <하룬과 이야기 바다>.

 당연히 하룬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모험담. 그의 아버지 라시드 칼리파는 알파벳 도시의 독보적인 이야기꾼. 근데 어느날 당대 최고의 설레발장이 라시드의 입이 꽉 다물리고 만다. 얘기할 거리가 몽땅 떨어졌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것. 그런데 진짜 큰 문제는 얘기를 들려줘 댓가로 먹고 사는 인간인데, 이야기거리조차 말라버려 더 이상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없다는 거. 아, 이쯤이면 눈치를 채야하지 않겠는가 말씀이야. 라시드는 작가 루슈디 스스로를 조금쯤 일컫는구나.

 그럴 수 있는데 라시드의 말문을 꽉 다물게 한 인간이 바로 친아들 하룬이라는 사실. 어느날 하룬의 어머니 소라야 여사께서 사무원으로 일하는 이웃집 놈팽이 생굽타 선생하고 눈이 맞아 남편, 아들을 버리고 내빼버린 겁니다. 생굽타는 '허풍대왕'이라는 별호를 즐기고 있던 하룬의 아버지 라시드 알기를 맨날 '사실도 아닌 이야기를 맨날 해봐야 그게 무슨 소용인데?'라고 우습게 알고 있었는데, 그 별볼 일 없는 작자가 다른 여자도 아니고 엄마를 데리고 날라버린 것이 거 참 묘해서 아버지한테 정말로 이렇게 물어봤던 거.

 "아버님. 사실도 아닌 얘기를 맨날 떠들고 다니는데 그게 국민생활에 무슨 도움을 주겠나이까. 세 가지만 알려주시면 황감하겠나이다."

 라시드, 이제 세상에 하나 남은 아들 하룬으로부터 이따위 얘길 듣고 입이 꽉 닫혀버린 거다.

 그 후 라시드 선생이 떠벌리고 다니는 이야기의 원천 '이야기 바다'를 향하는 버스를 우연히 얻어타게 되고 그리하여 드디어 이야기 바다에서 '이야기' 폐색증에 걸릴 위험천만의 상황에 맞게 되는데, 동화의 형식을 띠고 있음을 감안하면 당연히 해피 엔드로 끝나야 하는데 말씀이야.

 (모험의 내용은 함구! 한 번 얘기하면 끝장을 봐야할 거 같다)

 완전 살만 루슈디라는 이름 하나 보고 읽은 책. 원래 내가 동화책도 즐겨 읽기는 한다. 근데 다 읽고 잠깐 생각해보니(내 인생에 곰곰히 생각했다고 말하고 썼던 건 전부 구라다. 겪어보니 곰곰히 생각해보나, 밤새워 고민해보나, 잠깐 생각해보나 결론은 다 비슷했다. 오히려 잠깐 생각해보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이었다) 동화라고 하기엔 좀 무겁고, 소설이라고 하긴 숨어있는 내용이 문제고, 하다가, 에라, 소설이라고 하자, 결론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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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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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 저렇지 않았다면 진즉 읽었을 텐데 제목만 보고 어째 청소년용 로맨스 소설 같다는 선입견으로 여태 미뤄두다가 이제 읽었다. 읽은 소감을 짧게 얘기하자면, 제목처럼 달콤 쌉싸름하지는 않지만 참 맛있게 잘 쓴 전형적 라틴 아메리카 소설. 이제야 이리 예쁜 소설을 읽었다는 게 아쉬웠을 정도. 못 믿으시겠다고? 읽어보셔. 정말 작품이 참 예쁘다니까. 당연히 전 연령층 독서 가능, 하지만 성인독자가 읽으면 더 재미있을 그런 소설. 내가 젤 싫어하는 것이 뭔 얘기 하면서 "더 재미있을 '그런' 소설", 이따위로 애매하게 얘기하는 일. 근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다 이해하시리라 믿는다.

 멕시코에 데 라 가르사, 라는 가문이 있었는데 이 빌어먹을 가문의 빌어먹을 전통 가운데 하나가, 참 말도 안 돼, 막내딸에겐 부모님을 봉양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 부모가 죽을 때까진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거. 이 가문에 드디어 막내딸 티타 데 라 가르사 양이 태어났는데 티타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자신이 이 가문의 막내딸로 결혼도 못하고 따라서 자손 하나 없이 외로운 일생을 보내야 한다는 걸 안다는 듯이 배냇기름으로 허연 몸뚱이를 거꾸로 들고 엉덩이를 찰싹 때릴 것도 없이 그냥 앵앵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럴 것이 티타가 나오던 날 밤에 아버진 읍내에서 테킬라 두 병을 안주도 없이 장하게 자시고 먼 길을 걸어오다 동네 돌다리 위에서 푸짐하게 싸 놓은 개똥을 밞아 미끈덩, 다리 아래로 떨어져 흐르는 개울물에 익사를 했던가 아니면 그냥 추락사던가 하여간 숟가락 놔버렸으니, 독자는 이 사건으로 미루어 짐작하여 티타의 사주엔 애초부터 막내딸로 태어나게 되어 있었으리라고 짐작할 수 있으리.

 하여간 그렇게 세상으로 내쳐진 티타. 얘네 엄마, 그것도 친엄마 엘레나 여사, 앞으론 이 여자를 편의상 마마 엘레나로 부를 것인데, 하여간 이 여잔 졸지에 죽어자빠진 남편 덕에 티타를 낳고도 그만 기가 팍 질려서 당연히 티타가 먹어야 하는 인간의 모유가 완전히 말라버려, 이후 티타는 늙은 부엌데기이지만 참으로 애정이 넘치는 요리의 고수, 나차의 손에 자란다. 친엄만지 웬순지 잘 모르겠다 싶은, 마마 엘레나 입장에서 생각해주자면 티타를 볼 때마다 저년이 내 서방 잡아먹은 년이야,하는 억하심정이 솟아나 그런 것이 분명하다 싶을 만큼, 앞으로 나 죽을 때까지 저 애가 나 뒷바라지를 다 해야 하는, 딸이라기보다 종년에 더 가까운 인종이라고 생각하는 듯 마마 엘레나는 티타의 사소한 잘못에도 예외없이 야물딱지게 귀싸대기 한 대 씩을 올려붙였는데, 그놈의 사소한 잘못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너무 '사소'하기 때문에 긁어내기로 작정을 한다면 언제든지 하나 씩은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서 티타는 날이면 날마다 귀싸대기 얻어 터져가며 길고 긴 유년시절, 소녀시절, 청소년 시절, 사춘기 시절을 다 보내야 했다. 참 이정도면 팔자도 이리 드런 팔자 별로 없을 듯.

 세상 이치라는 것이 참. 티타도 어느덧 자라 앞가슴이 봉긋해지고 엉덩이가 둥그렇게 커지면서 그만, 세상에 빌어먹을, 사랑이란 걸 하게 된다. 평생 엄마 뒷바라지하고 나아가 늙어 움직이지 못하면 똥오줌 다 받아내야 하는 가문의 빛나는 의무를 진 아가씨가 연애를 해? 이거 뭐가 잘못되도 크게 잘 못된 거다. 지금이야 막내딸한테 패악질을 서슴지 않는 마마 엘레나라고 해도 나중에 나이먹어 늙어 움직이기 힘들면 그때가서 평생 얻어맞고 산 거 차근차근 다 돌려주며 즐길 수 있지만 그건 나중 일이고 제일 중요한 건 동네 준수한 청년 페드로와 당장 결혼을 하고 싶다는 거. 잘 배운 페드로 도련님 역시 이 사건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결론을 내 심사숙고 끝에 아버지 대동하고 티타네 집을 방문해 정식으로 청혼이란 절차를 거친다.

 마마 엘레나. 참, 인간도 아니다. 하시는 말씀이, 우리집 전통에 의하여 티타는 평생 처녀로 부모 봉양의 의무를 져야 하는 일종의 가비家婢라서 결혼이라니 당치 않다. 하지만 티타 대신 맏딸 로사우라하고는 결혼할 수 있다. 로사우라 역시 미모와 좋은 예절을 갖고 있는 마춤한 규수이니 한 번 신중하게 생각해보시라. 페드로? 잠깐, 오래도 아니고 잠깐 생각하더니, 아이고 장모님 그거 참 좋은 생각이올시다. 해버리고 만다. 왜? 그게 평생 티타 옆에서 그녀를 보며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서. 근데 그게 마음대로 될 거 같아? 마음 먹은대로 되면 그게 인생이야?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페드로와 로사우라의 결혼식이 벌어지고, 티타는 정성을 다해 '차벨라 웨딩 케이크'를 굽는다. 굽긴 굽는다. 그러면서 어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있었으리오. 부엌 바닥을 눈물에 발목이 잠길 정도로 울며 울며 또 울며 그러나 지성껏 성의를 다해 보기에도 먹음직하고 아름다운 케이크를 구워 결혼식 파티장에 내가니 하객마다 어찌 큼지막한 포크를 들고 크게 한 입 먹어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 기막힌 맛이여. 달콤하여 혀 위에 올려놓자마자 사르르 없어지는 부드러운 밀가루의 오비디우스 적인 변신의 맛이여. 그러나 차벨라 웨딩 케이크엔 억장이 무너진 티타의 마음과 넘쳐나는 눈물이 다 들어 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경탄할 수밖에 없는 미각을 주면서 동시에 견딜 수 없는 비탄의 맛은 하객들의 유문 괄약근에 갑자기 경색현상을 일으키게 하는 동시에 분문이 활짝 열려 파티 석상에서 위에 담은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시 식도와 구강을 통해, 먹었던 것과 정확하게 반대방향으로 뿜어내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저택의 넓은 정원엔 어디 한 구석 하객들이 분수처럼 뿜어낸 토사물을 뒤집어 쓰지 않은 곳이 없었고 수많은 하객들 모두 토사물을 뒤집어 쓴 채 서둘러 최악의 피로연에서 도망하게 만들어버렸다.

 여태까지 쓴 것이 소설의 도입부. 이제부터 진짜 이야기가 벌어지는데 난 언제나 진짜 얘기는 해주지 않겠다. 요리와 음식을 매개로 한 재미난 라틴 아메리카 소설. 그동네 특유의 환상문학적 요소도 적절하게 가미되어 있고, 특이하게 음식이름으로 된 모든 장章이 재료부터 레시피를 소개하는 시늉을 하면서도 할 얘기는 다 한다. 책은 티타의 손자가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쓴 형식으로 되어 있으니 티타가 어떻게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은 모양이지? 글쎄, 정말 그랬을까? 감질나게 약올리지 말고 시원하게 말 해보라고? 약오르면 직접 읽어보셔. 아 글쎄 재미난 책이라니까.



 * 로사우라와 페드로의 결혼식 전날 밤. 밤새 웨딩케이크 구울 준비를 하다가 시간이 잠깐 나서 마마 엘레나의 엄한 눈길을 피해 마굿간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눈물바람을 하고 있던 티타. 그녀가 노래한다.


 "이제 밤도 깊어 고요한데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잠 못 이루고 깨어나서 창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사람은 간 곳이 없고 외로이 남아 있는 저 웨딩 케익.
  그 누가 두고 갔나 나는 아네 서글픈 나의 사랑이여.
  남겨진 웨딩 케익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네." 


 이거 진짠지 거짓말인지 궁금하시지? 글쎄 직접 읽어보시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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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의 겨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31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 지음, 나송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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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참 재미나게 읽은 책 중에서 <폴란드 기병>이 있다. 얼마나 재미나던지 다 읽은 즉시 인터넷 책방 '알라딘'에 쳐들어가 <폴란드 기병>을 띄운 다음 작가의 이름을 클릭했더니 그가 쓴 다른 책이, 없었다. 그런줄 알고 근 일년을 보내다가 민음사에서 '안토니오 무뇨쓰 몰리나'가 쓴 <리스본의 겨울>이란 책이 있는 걸 발견했다. 흠. 중간 이름 '무뇨스'와 '무뇨쓰'가 이렇게 중요한 차이구나.

 각설하고, 책 얘기하자.

 습기가 가득하고 어두운 실내. 더블 베이스가 마치 퍼커션 처럼 둥둥 울리고 그 위를 체념한 듯한 피아노가 불협화음으로 절뚝거리며 거닐기 시작할 때 쯤해선 아직 악기를 손에 들고만 있는, 시거를 입에 문 트럼펫 주자의 목엔 주름을 따라 땀이 투명한 선으로 그어진다. 흐를듯 말듯.

 듀크 엘링턴이나 텔로니어스 멍크 같은 이들만 피아노를 하는 건 아니어서, 즉 뉴 오를레앙, 아 실례, 뉴올리언스에서 시작한 재즈는 시간이 흐르며 북상을 거듭했고, 순식간에 대서양을 건넜다. 유럽에선 자연스럽게 백인 재즈가 만들어지는데 가장 높은 곳엔 트럼펫의 성인聖人 빌리 스완이 있으며, 평생 그를 흠모하게 되는 우리의 주인공이자 피아니스트 비랄보, 또는 자코모 돌핀이 있다. 돌핀. 입에 문 담배 연기가 위로 올라 눈을 자극하고 그래서 가득 눈을 찡그린 것도 모자라 허리를 한껏 뒤로 젖혀 오직 팔과 가는 손가락만으로 무심한 듯 건반을 두르리는 남자. 잠깐 자리를 더블 베이스나 트럼펫에 물려주는 틈을 타 오리지널 버번 위스키를 크게 한 모금 마시며 늘씬한 웨이트리스의 엉덩이와 종아리를 감탄하듯 바라보는 것 같은, 그러나 사실은 강한 조명 때문에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무대 앞쪽 취객들의 발목이상이 아닌 알콜중독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뇌쇄적인 육체와 아름다운 얼굴의 루크레시아. 물론 우리의 주인공 비랄보의 눈에 그렇다는 얘긴데, 이름만으로도 이미 한껏 능욕을 당했을 것같은 색다른 매력의 여인. 그녀의 동업자이자 동거인이며 동시에 범죄자, 심지어 살인자이기도 한 말컴. 그의 엄중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비랄보와 루크레시아는 어느새 돌이킬 수 없고, 세월마저 희석시키지 못한 정열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니 이 또한 인생이 아닌가. 여기에 말컴보다 더한 권위를 갖는 범죄자 커플이 등장하여 절도와 사기와 살인, 그로 인해 범죄자들이 얻어낸 결과물은, 범죄자 집단과 이런 류의 소설, 영화 등이 거의 언제나 그러하듯 한 사람의 손에 들어오고 나머지 악당들은 바로 그 한 사람을 찾아내 취득물의 회수와 동시에 복수를 위해 접근한다.

 얘기 돌리지 말자. 재즈의 블루, 우울하고 퇴폐적이고 알콜에 푹 전 삶의 모습과 기막히게 어울어진 범죄 이야기. 루크레시아라는 이름의 팜 파탈. 진정한 재즈의 성인 빌리 스완이 죽음의 침상까지 자신의 가장 순수한 혼을 불사르는 재즈 트리오. 내겐 범죄 이야기 보다는 재즈 연주가들의 삶에 훨씬 관심이 갔고, 오직 그거 하나만을 위해서라도 이 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책의 근간은 범죄 스릴러. 이런 쟝르의 책에 관해 여러 얘기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얻어맞을 만한 일이다. 그걸 알기 때문에 오늘은 여기서 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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