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심장 훈련
이서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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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생. 2021년 <악단>으로 문학과사회 여름호 통해 신인문학상 데뷔. 아마추어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수준급으로 잠수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춘 것처럼 보인다. “작가의 말”에서 가장 최근 다이빙은 동해바다였고, 언젠가 코론 바다에 다시 가고 싶단다. 필리핀 코론 섬을 말하는 것 같다. 떠돌아다니는 걸 좋아해 안산, 서울, 발렌시아에서도 ‘거주’했으며 만 스물일곱 해 동안 나름대로 많은 일이 있었다니, 경험도 많았을 테고, 소설을 쓰기 위한 재료도 다른 작가들 보다 풍성하겠지만, 추억이 너무 많아도 나이 들면 쓸쓸한 걸 아는 입장에서 좀 안쓰럽기도 하다.


  나는 첫번째 작품 <검은 말>이 제일 좋았다. 단편소설 일곱 편 가운데서.

  “지금 당장 검은 말 한 마리를 상상하시라. 그것도 맹렬히 달리는 놈으로.”

  요즘 젊은 작가들 가운데 이렇게 강렬한 문장으로 작품을 시작하는 것을 읽은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21세기 일반 가정에서 ‘검은 말’ 감탄할 만한 준마를 보기는 힘들다. 작가의 검은 말도 다른 사물로 변용한다. 당장.

  “그 총, 내가 아홉 살 때 고모의 집에서 발견한 그 검은 총은 말을 닮아 있었다.”

  화자 ‘나’는 아홉 살 때의 ‘나’가 아니라 이제 성년이 되어 당시 사우스타코타에서 살고 있는 고모네 집에서 본 총을 연상했고, 총의 모습을 묘사해보려고 하니 검은 말을 닮았다는 의미다.

  이서아의 작품에 쓰이는 단어를 유심히 살필 것. 아홉 살 꼬마의 부모는 “엄마”와 “아빠”가 아니다. “어머니”와 “아버지”지. 어머니와 아버지는 엄마와 아빠에 비하여 조금 구식이고, 권위가 있고, 권위라는 말은 권력과 그리 멀지 않은데, 권력은 일방적인 물리적 힘, ‘나’의 행동을 구속하려는 압력, 특정한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만들려 하는 갇힌 상태를 의미한다.

  언어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진실되다”라는 말은 틀렸다. “진실하다”가 옳은 표현이고, “진실하다”의 피동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급기야 강박이 생긴다. 그러다가 대가리가 커지면 한국어 어문 규범이고 뭐고 간에 자기가 쓰고 싶어하는 단어를 만들어서라도 써야겠다는 강박. 바닷가에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라는 식의 틀린 문법을 번연히 알면서도 한 권 내내 이런 식으로 글을 쓴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문학과지성사 편집부가 이런 걸 무사 통과시킬 리 없다. 애초에 언어도 규범에 졸졸 따르지 않겠다는 젊은 작가의 뜻을 십분 살렸을 것이다. “배가 정박되어 있었다.” 이건 배의 현 모습이라기 보다는 사람, 특히 남자 어른의 완력에 의하여 줄에 묶여 있는 상태를 더 강조한다.

  이서아도 권력, 남자, 아저씨 들이 자기 또래에 틈만 생기면 함부로 행사하고자 하는 폭력에 적극 저항한다. 그리고 발렌시아에서도, 레바논 사하라 사막에서도, 필리핀에서도 마찬가지로 전 세계적 남자들의 몰양식적인 언어와 성적 비유와 눈길과 이상행동의 기미를 나타내는 행위, 인종차별에 진저리친다. 당연히 자신이 가장 많이 생활해봤을 “한국 아저씨”에 대한 모멸이 제일 심해서,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작가 자신의 “한국 아저씨”를 향한 차별과 혐오를 드러내기까지 한다.

  좋다. 자기가 싫으면 싫은 거니까.


  아직 젊어서 그런지 행위와 표현이 거칠다. 등장인물은, 그러기 위해서 아홉 살의 나이를 주어야 했겠지만, 미국의 공항에서 부모를 따라 탑승하지 않고 활주로를 빠르게 달려가 결국 비행기를 놓치고, 공항경찰에 체포당해 조사를 받고, 그 사이 과부가 된 고모가 와서 데리고 가야하는 일도 생긴다. 존경하는 선생이 죽자, 선생이 무연고자라서 며칠 안에 화장 처리된다는 걸 알고는 트럭을 몰고가 안치실에서 시신을 훔쳐온다. 대설예보가 있어 마을에 고립이 되었지만 (당연히 나이든 남자)변태 화가가 남아 있어서 트럭으로 친 다음 다친 육체를 고기 다지듯 트럭을 앞으로 뒤로 왔다 갔다 하며 확실하게 숨을 끊어 놓는다. 

  <검은 말>이 좋았다. 다른 작품에 대해서는 더는 말을 않겠다. 차별과 혐오는 상대가 누구든지 간에 언제나 나쁘다. 이렇게 활자로, 그게 단 한 번이라도 찍혀 나오면, 글자는 절대 지워지지 않는다. 문학을 하는 이들은 자기 몸에 연비를 뜨듯 글자를 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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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고 해밀턴
더글러스 스튜어트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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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쪽까지 읽었다. 이런 걸 왜 읽고 있나, 네 번째로 이 생각이 들었고, 더 이상은 참아줄 수 없어서 덮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덮었다. 내가 산 책이었으면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렸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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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8-02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웃었습니다 ㅋㅋㅋㅋㅋ

Falstaff 2024-08-03 06:0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우짜겠습니까, 세상 일이 다 그렇지요.

망고 2024-08-02 1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ㅠㅠ 저 이 책 샀는데요 아직 읽진 않았고요ㅠㅠ 그렇게 별론가요?

Falstaff 2024-08-03 06:08   좋아요 1 | URL
저 말고 다른 독자서평은 모두 별5더라고요.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세워 놓고, 아무리 자전적 기록을 좀 첨가했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막 처참하고 잔혹한 시절을 겪게 해도 되는지 화가 나더라고요. 여기서도 리틀 라이프를 반복하는 것이 무척 짜증났습니다.

coolcat329 2024-08-03 1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근데 별이 1개는 아니네요?
망고님 사셨는데...에고

Falstaff 2024-08-03 10:11   좋아요 0 | URL
그게...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한 인간이 바로 저라서 말씀이죠. ㅜㅜ
 
삶과 운명 3 창비세계문학 100
바실리 그로스만 지음, 최선 옮김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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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네이즈 장면을 생략한 전쟁과 평화. 오랜만에 읽은 진짜배기 리얼리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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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 진열실 을유세계문학전집 13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동렬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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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발자크. 또? 그렇다. 이번에는 말 그대로 대박인 걸. 물론 당연히 촌스럽다. 1839년 작품을 지금 시각으로 읽으면 촌스러운 게 자연스럽다. 게다가 무대도 촌이다. 발자크의 문장으로 썼지만 읽으면서 당대에 발자크와 비슷한 수준으로 일필휘지를 날리던 알렉상드르 뒤마가 생각날만큼 드라마틱하기도 하다. 발자크보다 겨우 세 살 아래인 대 뒤마를 진짜로 연상했다니까. 근데 역시 발자크인 건, 상황은 뒤마처럼 긴박하게 클라이맥스를 향하여 줄달음을 치건만, 클라이맥스 바로 앞, 여기서까지 특정인의 직업이 어떻고, 생긴 건 또 어떻고 정원 가꾸기가 취미인데 이이의 온실에 가면 어떻고 저떤 화초가 있어 그게 원산지 어디서 수입한 거고, 아이고, 아주 턱이 뚝 떨어진다. 웃기겠지? 정말 그렇다. 마음 같으면 그냥 후딱 넘어가고 싶지만 언제 또 결말을 품고 있는 복선 끄트머리라도 나올지 몰라 바득바득 읽고 있으면 실실 새는 웃음, 물론 헛웃음이지만 그걸 멈추지 못한다니까.

  발자크는 서문에서 이 작품이 “명문가 출신으로서 파리에 상경해서 파멸하는 가련한 젊은이들의 이야기”라고 아예 못을 박고 시작한다. 그런데 젊은이”들”이 아니라 빅튀르니앵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명의 명문가 자제가 말 그대로 “죽다가 깨나는 이야기”다. 발자크는 계속해서 멸망의 원인을 젊은이가 “도박에 의해, 빛나려는 욕망 때문이거나 파리 생활에 현혹당해서, 재산을 증식하려는 시도로 인해서, 행복하거나 불행한 사랑에 의한 파멸”이라고 미끼를 던지기도 한다. 서문을 읽고 혹하지 않기도 쉽지 않다. 독자를 매혹시키는 요소가 듬뿍 들었으니 이걸 어째? 역시 가장 큰 매력은 돈과 사랑, 특히 불륜이거든.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주인공 데그리뇽 백작이 지방 출신 젊은이의 다른 유형인 라스티냑의 반대형이며, 여기서 라스티냑은 <고리오 영감>을 비롯해서 <인생의 새출발>, <12인당 이야기>, <루이 랑베르>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하는 라스티냐크를 말하는데, 능란하고 대담한 라스티냑은 데그리뇽 백작이 패배하는 곳에서 성공을 거둔다고 분명히 그랬지만, 그는 그냥 주인공의 파리 생활에서 엑스트라 급으로 몇 장면에 스치듯 나오고 만다. 워낙 많은 작품을 쓰다 보니, 발자크 역시 사람인지라, 자기가 앞에서 한 이야기를 가끔 잊거나, 헛갈리기도 한다. 독자들이 너그럽게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서문에 큰 의의를 두지 말자.


  작품의 서두는 프랑스에서 가장 빈한한 현청소재지 중 한 곳의 도심 길모퉁이 집, “데그리뇽 저택”이라 관습적으로 부르는 집에서 시작한다. 이 저택의 주인의 정식 이름은 샤를르-마리-빅토르-앙주 카롤. 정통 프랑크 족으로 1,300여년 전 북쪽에서 내려와 강력한 골 족을 쳐부수고 봉건제를 확립한 영광스러운 카롤 가문의 후손이다. 그렇다니까. 유럽의 귀족들은 원래부터 사병을 이끌고 여기저기 약탈을 하고 다니던 비적 두목 출신이었을 확률이 대단히 높다. 그게 대를 이어 몇 백 년을 지나다보니 이제 자손들에게 조금씩 공맹의 도를 가르치고, 별 희한한 예절을 만들어 그것을 준수하게 하니 멋있게 보이는 것일 뿐이다. 동서양이 다 그렇다. 이 명망 높은 카롤 가문의 노 귀족을 사람들은 데그리뇽 후작으로 불렀다. 하지만 뭐든지 끝이 있는 법이어서, 역대 프랑스 왕가도 함부로 무시하지 못했던, 심지어 공작으로 승격을 권유하는 왕의 호의를 싹 무시하고 후작으로 남았던 대단한 가문도 1789년 대혁명을 만나 거의 완전히 찌그러지고 말았다. 영지의 대부분을 유실해서 이제 연수입이 겨우 9천프랑 이하로 격감을 해 원래 사용했으나 혁명의 와중에 모든 가구를 약탈당한 성chateau을 유지할 수 없어 포기한 채 청 소재지의 자기집이었던 저택을 충성스러운 공증인 쉐넬이 마지막 남은 루이 금화 5백 루이로 마련해주어 들어와 살고 있었다.

  1802년에 후작은 누아스트르 남작의 딸과 혼인해 아들을 낳았으나 예쁘고 어린 아내가 출산 중에 숨을 거두는 바람에, 이때 미모의 누이동생 마리 아르망드 클레르 데그리뇽 아가씨가 스물일곱 살이었는데 이후에 이 아이, 그러니까 데그리뇽 양의 조카 때문에 어여쁜 아가씨는 파파 할머니가 될 때까지 숫처녀로 살다가 죽을 운명으로 결정이 나버리게 된다. 어여쁘고 기품있으며 현명하기까지 한 아르망드도 즉각적으로 자기 팔자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따르기로 했는데, 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언감생심, 감히 생각도 하지 못한 낮은 신분의 은행가 뒤 크루아지에 씨가 아르망드에게 청혼했으니 이게 통할 일인가? 청혼 자체를 대단한 불명예를 당한 것으로 여긴 후작과 데그리뇽 아가씨는 그때는 몰랐다. 냉혹한 거절이 지역의 자유주의자들을 대표하게 될 밴댕이 소갈딱지 뒤 크루아지에 씨를 두고두고 스무 해가 넘을 때까지 복수심을 키우게 될 지는. 이이가 품은 극한의 복수심으로 작품은 놀랄만한 출력을 지닌 엔진을 달게 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뒤 크루아지에의 복수혈전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데그리뇽 저택은 당연히 현청소재지의 대표적인 랜드마크가 된다. 다른 한 곳도 있다. 데그리뇽 양에게 청혼했다가 미역국 먹은 뒤 은행장이 된 크루아지에의 응접실. 후작 저택의 살롱은 혁명 전부터 귀족이었던 가문 대대로 명망가의 자존심과 자부심과 명예와 예법 등의 이젠 세월이 바뀌어 전혀 돈 안 되는 것들을 잔뜩 짊어지고 사는 인간들의 모임. 하도 고릿한 냄새가 진동해 이들이 모인 살롱을, 자유주의자이자 공화주의자 등 진보 좌파적 입장을 유지한 부르주아, 웃기지? 진보 좌파 부르주아들이라니, 하여간 그들이 뒤 크루아지에의 살롱에서, 앙시앵레짐의 혜택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인간들이 모이는 데그리뇽 저택의 살롱을 “골동품 진열실”이라고 낮추어 불렀는데 이게 도시 사람들 입에도 짝짝 들러붙었던 거다. 그러니까 <골동품 진열실>은 19세기에도 여전히 명망가라고 폼잡으려는 철없는 귀족 나리들을 일컫는다고 보면 된다.

  근데 오노레 드 발자크 자신도 평생 왕정을 지지하던 보수 우파 출신이거든. 그가 자신처럼 왕정에 충성하는 오랜 귀족들의 모임을 낮춰 부른 말로 작품의 제목으로 했다고? 그렇다. 발자크는 정치적으로는 보수파였을 지 몰라도 과학의 세기라고 하는 19세기에 아직도 정처를 모르고 옛 시절의 구태에 머물고 있는 귀족 집단에게 일침을 가하고 있는 거다. 그는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구 귀족과 신규 부르주아의 다툼에서 일방적으로 옛 귀족의 손을 들어주지만, 결코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지 않는다. 승리인 듯하지만 결국 흐름에 굴복해야만 하는. 이크, 더 얘기했다가는 영낙없이… 스포일러?


  빅튀르니앵은 말했다시피 고모인 아르망드가 업어서 키운다. 낳자마자 엄마를 잃은 가여운 아이. 자라면서 어땠겠어? 아버지 후작은 후작 가오가 있지 아들 키우는데 감놔라 배놔라 할 수 없어 그저 뒷짐 짚고 동생 하는 대로 맡겨 놓았을 것이 뻔하고, 작품에서 가장 교훈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작가가 직접 언급한 고모는 지성이 빠진 가장 순결한 덕성이 아이에게 어떤 해를 끼칠 수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면서 희극적으로 이야기한다. 무슨 말씀이냐 하면, 응석받이 자체로 키웠다는 뜻이다. 매사에 오냐, 오냐만 했지, 직접 낳은 엄마라면 따끔하게 혼을 낼 일조차 차마 그러지 못하고 감싸는 데만 전력을 기울인 거다. 이렇게 자라는 빅튀르니앵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작자가 하나 있었으니, 이 가문에 앙심을 품고 늘 복수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뒤 크루아지에. 그는 젊은 귀족이 받고 있는 교육의 오류 속에서 가혹한 복수의 가능성을 감지해, 어린 양을 어미의 젖 속에 빠트려 익사시킬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빅튀르니앵은 점점 자라며 우월성의 신조를 뒤집어쓰게 된다. 기막힌 미모로 태어난 데다가 키는 중키라 해도 매우 근육질의 단단한 몸에 놀라운 운동능력을 갖게 됐다. 사실 아름다운 외모라는 건 재산과 재능 이상의 가치가 있으며 모습을 드러내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는 조건으로 기능한다. 귀족신분의 아름다운 청년, 그리고 열렬한 정신, 무엇이든 이해할 수 있는 경이로운 능력과 뛰어난 기억력은, 그러나, 왕자처럼 이기적이고 중세의 혈기왕성한 추기경처럼 고집불통이며 무례하고 방약무인의 독선적인 성격으로 진화하면서 드디어 18세가 되어 지방 사교계에 데뷔했다.

  난리가 났다. 사교계의 귀족, 부르주아 아가씨들과 숱한 배우, 가수, 그리고 유부녀들도. 빅튀르니앵은 예전엔 자기 가문의 땅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히 남의 숲 속에 들어가 아무 짐승이나 사냥을 해, 가문의 충성스러운 공증인 쉐렐로 하여금 돈으로 해결하게 하더니, 처녀들한테 분별없이 결혼 약속을 하고 속고쟁이를 벗기는 바람에 신세를 망친 아가씨들과 가족이 난리를 쳐서 역시 쉐넬이 한 번 더 돈으로 막았으며, 노름판에서 함부로 발행한 약속어음이라는 노름빚도 대신 갚아주는 등, 18세부터 21세까지 쉐렐은 아버지와 고모 모르게 거의 8만 프랑의 자기 돈을 지출해야 했다.

  이러다가 1822년 10월이 오고, 현의 한 기사가 골동품 진열실에서 데그리뇽 후작과 면담을 청해, 이제 아들 데그리뇽 백작이 스무 살이 됐으니 파리로 올려 보내 궁에서 일자리를 얻게 해야 한다고 진언한다. 후작이 행각하기에 그 말이 마땅한지라 친척이기도 한 파리의 대 귀족 드 르농쿠르 공작에게 전할 서신을 써서 아들에게 주고 파리로 보낸다. 이때 쉐넬은 자신의 시골 소유지를 담보로 해 10만 프랑을 마련해서 고모 아르망드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빅튀르니앵의 초기 비용으로 1만 프랑을 주고, 한 달에 가용 용돈으로 2천 프랑을 줄 수 있도록 파리에 있는 공증인 동창에게 전권을 주라고 하면서. 하지만, 쉐넬의 동창생은 이미 죽고 말았다. 그리하여 후임 공증인은 빅튀르니앵에게 한 방에 10만 프랑 전부를 전해주는 기가 막힌 일을 해버렸고, 거의 최고 수준의 사치를 시작한 빅튀르니앵은 마구간과 마차를 보관하는 차고가 하나씩, 마차 끄는 말과 승마용 영국 말 한 필씩, 거처를 꾸미는데 5만 프랑, 이런 식으로 펑펑 써 제친다. 또 젊디 젊어 리비도가 풍풍 솟구치는 청년이 연애를 하지 않으면 말이 되나? 귀족신분에 아름답기까지 한데? 그리하여 열렬한 첫사랑을 시작하니, 상대는 당대 파리에서 예쁘기로 열 번째 안에 든다는 디안느. 이 여인이 바로 드 모프리뇌즈 공작부인이었던 거다. 이렇게 작품은 파란만장한 데그리뇽 백작, 빅튀르니앵의 불꽃 같은 허랑방탕과 급격한 몰락을 향해 급발진을 시작했던 거디었던 거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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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02 05: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다음 주 삽질:
월요일. 이서아, 《어린 심장 훈련》
화요일. 노먼 에릭슨 파사리부, <대체로 행복한 이야기들>
목요일.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쿠코츠키의 경우>
금요일. 콜슨 화이트헤드,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단발머리 2024-08-02 16:06   좋아요 2 | URL
아는 작품(읽은 작품) 다뤄주시는 금요일 기다립니다!

그레이스 2024-08-03 10: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단락!
턱이 뚝 떨어지게 하는 발자크의 묘사들 ㅋ 완전공감합니다. ㅎㅎ

Falstaff 2024-08-04 06:13   좋아요 2 | URL
ㅎㅎㅎ 하여튼 발자크, 못 말리겠더라고요. ㅋㅋㅋㅋ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부스 타킹턴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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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스 타킹턴. 위키피디아 검색을 해보니 1919년에 <위대한 앰버슨 가>, 1922년에 <앨리스 애덤스>로 퓰리처 상을 두 번이나 받은 당대의 스타 작가였단다. 두 작품 다 작년에 우리나라에 번역 출판되었다. 그러니 몰랐지. 그래도 조금 이상했다. 유명한 아메리카 작가의 작품이 세상에 나오고 백 년이 넘어서야 번역했다고? 좀 이상하다. 하긴 퓰리처 상을 받았다고 해서 작품이 오래 간다는 뜻은 아니니까. 그래도 미국 현대 문학사상 퓰리처 상을 두 번 이상 받은 사람은 부스 타킹턴, 윌리엄 포크너, 존 업다이크,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와 콜슨 화이트헤드, 이렇게 네 명밖에 안 되고, 21세기엔 화이트헤드가 유일한 인물일 정도이니 가문의 영광이긴 하겠다.

  그러나, 부스 타킹턴은 조선이 제물포 조약으로 개항도 하기 전인 1869년에 출생한 사람이다. 벨에포크 시대를 젊은 시절에 향유했고, 1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는 나이가 많이 들어 눈물을 머금고 참전하지 못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에 세계의 공장이자 위대한 미국이 탄생하는 것을 목격하고, 2차 세계대전까지 승전해 전세계의 패권을 잡는 장면까지 보고 숨이 넘어가 좋은 시절은 다 보낸 셈이다. 취소. 타킹턴은 1920년부터 시력을 상실하기 시작해 몇 번에 걸쳐 수술을 했기 때문에 다 “보고” 간 건 아니고 주로 듣다가 갔을 거 같다. 원래 제목은 <앨리스 애덤스>이지만 책 좀 더 팔아볼까 싶어서 그랬는지 우리말 제목을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이라 붙인 책을 읽어보니까, 딱 그 시절, 20년대 전형적인 미국식 소설이라서 또한 전형적인 미국식 결말을 맺어 독자의 헛심을 푹 빼놓고 말았다. 갈등의 순간까지 흥미진진했다가, 난데없는 절정을 거쳐 “미국식 결말” 즉 한 큐에 급커브를 도는 해피엔드라는 말이다. 읽는 도중 내내 잘만 하면 20년대식 프랭크 노리스를 발견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말씀이지. 물론 외모는 미국 최고 미남의 소설가 노리스하고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주인공 앨리스 애덤스는 애덤스 부부의 맏딸이다. 두루두루 예쁜 아가씨. 집에서가 아니면 가만히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는 평인데, 무슨 말씀인고 하니 그저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따님이 도시 최고 부르주아 계급의 자제들과 같은 수준의 사교를 하고 싶어, 부모가 진력을 다 하지만 가랑이가 찢어져 마땅하게 받쳐주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메꾸기 위해 안달복달을 하다보니 그만 과하게 오버하게 되고, 그게 또래들 눈에 확실하게 보였는데, 그것도 한두 번이지 하도 자주 그러는 바람에 쉬운 말로, 내 놨다, 이거다. 그저 외모만 그럭저럭 예쁜 아이라고 할까?

  아버지 버질 애덤스 씨는 램브 컴퍼니를 근 삼십 년 가까이 나름대로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Lamb Company”를 “램브 컴퍼니”라고 번역했다. 회사와 사주 J.A. 램 씨는 버질의 능력과 업무에 만족하여 입사 2년차에 급여를 올려주고 이후 2년마다 꼬박꼬박 다시 올려주었으며 지금은 몇 년째 잡화부서의 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임원이 아닌 사람이 오를 수 있는 제일 높은 자리이며, 스스로는 “자기한테 일을 많이 시키기 위하여 임원자리를 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는 반면, 램 씨 후계자인 여러 아들들은 “나이가 들며 업무능력이 떨어져 해고시키는 것이 타당하지만 아버지의 평생직장 신념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애덤스 가족이 살고 있는 작은 목재주택은 지은지 15년 남짓 되는데, 애초부터 집장사들이 허술하게 지은 탓에 곳곳에서 수리가 필요하다고, 즉 당장 돈 좀 달라고 입을 벌리거나 삐거덕대고 있지만 용케 잘 견디고 있다. 가구는 주로 애덤스 부인의 어머니가 쓰던 것과 결혼할 때 들어온 선물로 구성되어 있으며 눈에 잘 띄는 벽난로 선반 위에는 앨리스가 하도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람에 아버지가 램브 컴퍼니의 부서 사람들한테 선물받은 나이아가라 폭포 현수교의 강판 인쇄를 떼고 거대한 콜로세움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아버지는 이를 속으로 매우 서운해하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눈이 있는 사람이 본다면 나이아가라 현수교 강판 인쇄나 콜로세움 흑백 사진이나 오십보 백보였다나? 애덤스 가족의 문화적 수준을 타킹턴 씨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니까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애덤스 가족은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 앨리스를 지원해주고 있는 중이었다. 말썽꾸러기 아들은 아예 빼놓고 이야기하겠다. 그러다가 몇 달 전 에덤스 씨는 자세하게 나오지 않지만 아마 약한 뇌졸중 아닌가 싶은 병이 들어 휴직을 하고 집에서 간병인을 고용해 치료 중이다. 사장 J.A. 램 씨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직접 집에 들러 안부를 물으며 요양을 하는 동안에도 빠짐없이 급여를 지급했으니, 이만한 사장 있으면, 한 명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만, 두 명만 나와보라 그래. 집의 가장이 이렇게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데 오늘 앨리스의 하루 일정을 보면, ① 도시의 최고 부르주아의 딸인 밀드레드네 집에 가서 오늘 그 애가 주최하는 댄스 파티에서 어떤 옷을 입을 지 확인하고, ② 시내 양품점에 가서 시폰 한 개와 댄스용 구두에 묶을 얇은 리본을 사오는 거였다. 하지만 밀드레드는 앨리스가 찾아오는 게 지긋지긋해 그냥 건성으로 응, 응, 대꾸하는 것뿐이고, 앨리스가 오늘 무슨 옷을 입든, 무슨 댄스화를 신든 쳐다보거나 심지어 신경 쓰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을 예정이었다. 모든 친구들이. 물론 아직 친구가 아니라 타지에 와서 오늘 처음 시내 젊은이들 사교계에 데뷔하는 아서 러셀은 예외로 하자.

  이런 집의 딸이 길을 나서는데, 어떻게 차려 입었는지 한 번 볼까? 잉글랜드 식으로 옅은 금색 밴드가 둘린 풋사과 색깔 터번을 머리에 쓰고, 황갈색 베일이 달린 모자에, 대단히 현대적으로 단순하게 디자인한 황갈색 코트를 입은 채, 전신거울 앞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매무새를 살핀 후, 테두리에 섬세한 은빛 무늬가 들어간 비어 있는 검은 가죽 명함지갑에 자기의 두 가지 명함 가운데 어느 것을 넣을까 잠깐 생각하다가 평범하게 미스 애덤스라고 쓴 명함을 골라 넣고, 산뜻한 흰 장갑을 낀 후, 화룡점정 나온다, 상아 손잡이가 달린 말라카 지팡이를 겨드랑이에 낀 채 현관문을 열었다는 거다.


  이런 딸을 바라보는 어머니, 애덤스 여사의 마음은 찢어진다. 저렇게 아름답고 착하고 참한 딸을 제대로 뒷바라지를 해주지 못해 자기 생각에, 앨리스 혼자서 절친이라고 여기는 밀드레드한테도 따돌림을 받는 거 같고, 램 씨네 세 딸은 대놓고 앨리스가 차리고 다니는 걸 비웃는 것 같아서. 어머니 가슴이 멍들기 시작한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이때마다 자기네가 밀드레드 네나 램 씨처럼 갑부가 아닌 것을 한탄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한 클릭, 한 클릭 방향을 바꾸어 남편 버질 애덤스 씨한테 바가지를 벅벅 긁어대기 시작했다. 렘브 컴퍼니의 사장 J.A. 램 씨가 지시하여 기술자와 애덤스 씨가 책에서는 ‘풀’이라고 하는데 이게 죽 쒀서 만드는 풀인지, 접착제인지, 공업용 본드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풀 만드는 기술을 개발한 적이 있었다. 이때 완성된 제품을 상업화하지 않고 그냥 기술을 잠재우고 있는 동안 기술자가 죽어 이제 애덤스 씨 혼자 제조 기술을 알고 있게 된 것. 마나님은 애덤스 씨한테 풀 공장을 차리라고, 그래서 사업을 시작해 돈을 왕창 벌어오라는 게 바가지의 주요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애덤스 씨 생각엔 그건 어디까지나 램 씨의 지시에 의하여 연구한 결과니까, 램 씨 기술이어서 자기가 사업을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부처님 가운데 토막 비슷하게 어진 성품과 활수한 사업가 J.A. 램 씨를 배반하는 일이라면.

  그러나 딱, 보면 아시겠지? 앨리스를 왕따 시키지 않고 오히려 홀딱 반한 새로운 청년, 하긴 서른 살이면 청년도 아니지만, 아서 러셀은 앨리스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애덤스 씨는 결국 마나님 바가지를 견디지 못해 탄탄하고 좋은 회사를 때려 치우고 풀 공장을 차리게 되며, 원래 착한 사람이 한 번 화딱지가 났다 하면 제대로 오지게 나는 법이라 램 씨는 즐거운 마음으로 애덤스 씨를 파산하게 만들 것임을? 처음엔 아서 러셀이 육촌 누이인 밀드레드의 약혼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 잘 생기고 우아하고, 친절해 보이고, 완벽한 데다가, “굉장한 부호” 남자가 약혼이나 뭐 그런 게 아니라 새로운 도시에서 새로운 사업을 할 생각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자기 딸하고 열라 데이트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집에 초대해 저녁 한 끼 제대로 대접하지 못하는 신세가 어머니 입장에서는 답답했겠지.

  하지만 걱정 마시라. 많은 20년대 미국 소설은 흥미진진하게 스토리를 엮다가 기꺼이 아름다운 해피엔드를 준비하고 있으니. 걱정해봤자 당신 머리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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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8-01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국식 결말. 알아둬야겠네요. 참, 제가 뭐 미국소설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모 아니면 도인 게 많아 선뜻 고르기가 뭐하더군요. 근데 뭔가 이책은 관심이 가네요. 아름다운 해피엔드라니. ㅋ

Falstaff 2024-08-01 19:20   좋아요 1 | URL
ㅎㅎㅎ 미국식 결말이라고 소설만 말하는 거 아니고요, 거 있잖아요, 결말은 전혀 걱정할 필요없는 헐리우드 영화 같은 거요. 이거 완전 헐리우드 판이랍니다.

moonnight 2024-08-01 1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Falstaff님 글이 재밌긴 한데.. 앨리스 모녀 이야기 읽으면서 속 터질 것 같..ㅠㅠ;;

Falstaff 2024-08-02 05:0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모녀간에 치열한 독자 복장 터뜨리기 대회를 치룹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