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뒤락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9
애니타 브루크너 지음, 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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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전히 내 스타일. 이 책을 덮자마자 곧바로 애니타 브루크너의 다른 책을 검색해보았다. 한글로 번역한 책은 이거 말고 없다. 있었으면 보관함이고 뭐고 간에 단박에 사버리고 말았을 텐데. 책소개를 보니 1984년 부커상 수상작이란다. 크. 언제 내가 그랬잖은가. 내가 거의 유일하게 신뢰하는 문학상이 맨부커상이고, 그래서 그 상을 받은 한강이 더 좋아보인다고. 맨부커 상의 먼젓번 이름이 부커 상이다.

 이디스 호프. 당찬 이름의 필명으로 로맨스 소설을 쓰는 전업작가. "배들이 호수 위를 스치듯 지나고, 간이 선착장에는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보이고, 노천 시장이 열리고, 십삼 세기에 지은 성채의 쓸쓸한 잔해와 멀리 산의 경계마다 쌓인 흰 눈도 보이는" 스위스의 오래된 호텔. 뒤락. 오랜 호텔답게 완고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장식과 부대시설, 그리고 정찬. 오래되고 충성스런 고객들 중심의 경영방식으로 이름난. 그러나 성수기인 여름이 이미 끝나 객실엔 거액을 상속받은 늙은 퓨지 모녀, 거식증으로 인한 불임증 등의 이유로 남편으로부터 유배 조치를 받은 모니카. 고부 갈등으로 매년 여름 내내 호텔에 처박히는 귀머거리 노파 브뇌이유 부인이 들어 있을 뿐. 이디스 호프가 이들 사이에 또다른 한 명으로 보태지며 소설은 시작한다. 겨울을 맞아 호텔이 정기 폐장을 하는 시점까지.

 이디스 호프. "세상 물정을 제법 잘 아는 신중한 여자이고 친구들도 분별 없을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하며, "많은 사람들이 버지니아 울프와 겉모습이 많이 닮았다고" 하는 이. "집이 있고 납세 의무를 잘 지키고 요리도 꽤 잘하며 마감일이 채 되기도 전에 원고를 보내주는 사람". "어떤 경우라도 내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에 먼저 전화하지 않"으며 "책이 곧잘 나가는 편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어떤 권리 주장도 하지 않"는 이디스 호프는 그러나 호텔 뒤락에서 "자신이 운 나쁘게 저지른 잘못은 잊고 신중하고 착실한 원래의 성품을 뒤찾"기 위하여 "한 해가 저물어가는 이 시기에 집에 있어야" 하지만 "사람도 별로 없는 이곳으로, 잠시동안의 유배생활로 내몰았다". "이디스는 집이라는 곳이, 아니 그보다는 '자신의 집'이라고 해야 할 그곳이 갑자기 자신에게 적대적이 되자 일어난 일에 몹시 겁이" 나서 "친구들이 짧은 휴가를 제안하자 마지못해 따르기" 위해 스위스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따옴표 속에 나온 건 전부 책의 10~11쪽에 나오는 이른바 도입부의 설명이다. 이것으로 스토리는 독후감을 읽는 분들이 스스로 만들어보시고, 그것이 얼마나 적중할 지는 직접 책을 읽고 알아내시라.

 위에서 이디스는 스스로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하다고 했는데 소설의 등장인물에 대한 외모를 다른 소설가와 비교하는 건 일단 모른 척하고, 그래서 그런가? 하나 확실한 사실은 문체가 버지니아 울프와 비슷하긴 하다. 하지만 울프와 브루크너의 원문을 비교해 읽어본 것이 아니고 (읽어봤자 구별도 못할 거면서 말이라도 이렇게 써놓자) 한글로 번역한 두 이의 문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의식의 흐름? 브루크너도 소설에서 그걸 사용해, 울프를 읽는 듯한 느낌이 많이 든다. 울프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건 물론이고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면(아이고 징그러!) 바로 이렇게 쓸 거 같다.

 소설의 내용은 진짜 별거 없다. 호텔에 들어 투숙객과 호텔 사장, 종업원, 가끔 보태지는 남자 손님들. 여자들 사이의 미묘하고 섬세하고 아무 쓸모없는 신경전, 남자가 하나 끼어들면 또다시 추가되는 특별한 경쟁. 이런 것들. 인생 사는데 전혀 필요하지 않는 것들. 근데 참, 인생이란 것이 정말 신기한 이유는 진짜 너절하고 쓸모없고 권태스럽고 비정하기도 한 잡스런 일상사에서도 '나'를 찾는 작업이 이루어진다는 놀라운 진실. 거기다가 애니타 브루크너의 교묘한 문장까지 섞이면 나처럼 이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이 더 있는지 얼른 검색해보게 만든다니까.

 애니타는 왜 런던을 급하게 떠나 스위스 산골까지 오게 됐을까? 호텔의 장기 투숙객들과는 어떤 심리적, 실제적 갈등을 빚을까? 호텔이라니 혹시 찐한 베드 씬도 나오지 않을까? 애니타는 유배형을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 퓨지 여사의 진짜 나이는 몇 살이나 될까? 궁금하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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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와 어둠의 공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4
크리스토프 란스마이어 지음, 진일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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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당히 기대를 하고 읽은 책. 그렇게 기대를 잔뜩 품고 읽은 책이 거의 언제나 그렇듯 생각보다 별로였다. 물론 전날 밤 쐬주, 맥주 장하게 들이켜 해골이 뱅뱅 도는 와중에 책을 읽는 바람에, 뇌활동이 원활하지 못했다는 것도 즐거운 독서에 언짢은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으리. 암만 핑계를 대도 이 <빙하와 어둠의 공포>가 작년 말에 읽은 <최후의 세계>에 미치지 못하는 건 분명하다. 아, 물론 아마추어 독자인 내 의견이다. <최후의 세계>를 얼마나 재미나게 읽었는지 당시 독후감에 아마 "1년에 한 편 나올 수준"이라고 의견을 달았을 거다. 그 책에선 말년까지 영화를 누린 베르길리우스와 달리 귀양지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친 오비디우스와 그의 걸작인 <변신 이야기>를 절묘하게 각색했었다(고 기억한다).

 <빙하와...>은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하여 쓰여졌다.

 첫번째는 1872년 부터 1875년 까지 약 3년간에 걸친 북극해 탐험에 관하여. 탐험은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골통 황제 프란츠 요제프를 위해(그러나 황제는 탐험가들의 이름이나 제대로 기억이나 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미지의 지역인 북극해에 황금을 가득 품은 땅덩어리가 있을 것이란 기대, 그것이 아니더라도 지구가 둥그렇다는 사실이 밝혀져 만일 북극해를 관통할 수 있다면 황금의 땅 인도와 일본, 중국으로 가는 뱃길을 대단히 줄여 경쟁국에 비교우위를 누릴 것이란 환상, 그것도 아니면 적어도 경쟁국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용맹한 모험을 시도해 성공했다고 폼을 잡을 수 있다는 어리석은 망상에 휘둘려 해상 지휘관 바이프레히트, 육상 지휘관 파이어 등 스물 네명이, 다수의 썰매 개, 고양이 몇 마리와 함께 출발한다. 베링해를 향해서. 항로의 경제성도 전혀 없고, 위험하기만 한 아무 쓸모없는 모험. 북극점 위에 선다해도 기껏해야 자기 이름이나 남길 수 있는 댓가로 목숨을 담보하기엔 어리석기 짝이 없는 광적인 모험의 시대.

 또 하나는 100년 전 오스트리아-헝가리 탐험대의 일지 등 자료를 읽고 경탄한 마치니란 이름의 젊은이 이야기. 연상의 여인과 내밀한 관계를 유지하던 중에 갑자기 필을 받아 그들과 같은 항로를 한 번 보고싶다는 의지로 짐을 꾸리는데, 간단한 여행에 어울리지 않게 짐이 많아보인다. 하여간 이 청년 노르웨이 북쪽 끝 도시 트롬쇠 항으로 가, 쇄빙선을 타고 북극해를 둘러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여행 중인 1981년, 썰매와 개들과 함께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이 두 가지가 책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줄기. 두번째 이야기를 보면 마치니가 100년 전 탐험을 했던 이들의 행적을 좇는 것으로 나와 있으니 당연히 책의 거의 대부분은 19세기의 북극해 탐험을 위하여 쓰여 있다. 란스마이어, 이 사람은 당초 <최후의 세계>에서 보여주었듯, 이 책에서도 실제 탐험가들이 만든 기록물들과 그걸 읽은 100년 후 마치니의 또다른 기록, 이 사이에 빈 것들을 자기 상상력을 동원하여 채워나가고 있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숱하게 나오는 변신(Verklaerung)이 은유하는 바를 자신의 상상력을 총 동원하여 근사한 소설 <최후의 세계>를 쓴 것과 비슷하게. 굳이 이야기를 하자면 메타 픽션으로 분류할 수 있으나 꼭 문학작품을 한 테두리 안에 두려고 하는 건 정말 부질없다. 더구나 책에선 탐험 소설에서 흔히 기대하는 극적 반전드라마, 선상반란, 배신과 황금 같은 것도 나오지 않는다. 19세기에 북극해를 항해했으니 고생이야 오죽했겠느냐마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기록과 기록 사이를 이어가는 작가의 상상력, 다분히 건조한 문체로 써내려간 흔적들과 나름대로 정의한 해당 탐험의 의미 뿐이다. 극지 탐험에 관심 있는 분에겐 적극 추천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 독자들께서 굳이 읽겠다면 말리지 않을 정도.

 (게다가 북극곰을 수십마리 잡아먹고 추위를 견뎌낸 이 탐험대의 고생담을 다른 책에서 벌써 읽어 알고 있었던 거디다. 그러니 이 책을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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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집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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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 민음사 왜 이래. 판형이 세계문학전집하고 같은데 양장본이다. 이거 문학과지성, 창비 등에서 찍으면 얄짤없이 한 권 분량이다. 2011년의 민음사. 자세히 모르겠지만 한 시절, 우리나라 문화 출판 업계의 불황에 대하여 뭐라고 신문, 방송, 인터넷에 나왔느냐 하면, 세상에, 민음사도 적자 났댜, 이랬다. 그 시절인가? 아니면 적자 나기 바로 전 시절인가? 좋은 책만 열심히 골라 출간하느라 몰랐다가 어느 날 문득 들여다 보니 경영상 적자가 날 거 같아 책에 글자 적게 들어가라고 폭을 좁게 만들면서, 여성 독자들 손에 쏙 들어가게 만들어 휴대성에 편리를 주었다고 광고하고, 글자 수 넉넉하게 만들어 한 권이면 충분할 것을 조금 비싼 양장본 두 권짜리로 만들었나? 좋다. 여기까지 봐준다. 사흘 굶어서 담 안 넘는 인간 없다니까. 그.런.데. 양보해 생각하더라도, 당시에 유행처럼 번지던 소위 "인력구조조정"을 심각하게 했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진다. 경영상 적자가 날똥말똥 하니, 언제나 심각하기 마련인 인건비 절감을 위해 돈 많이 받는 고참 직원들 싹 내보내고 젊은 피 수혈해 조직의 참신성과 진취성을 확보하고, 대신 반대급부로 독자들이 별로 지적하지 않을 만큼의 오탈자를 발생시키기로 했나? 뭐 좋아. 책 한 권 읽으면서 오탈자 하나 나오는 거 가지고 읽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데도 시비 걸만큼 쪼잔하진 않다. 다만, 민음사. 그래도 대한민국의 메이저 레이블이고 고 박맹호 선생의 유지를 받아 "시대의 불의에 저항하고 백성의 소리를 올곧게 듣겠노라"했으면 흉내라도 내야지, ① 한 권이면 충분할 것을 두 권의 양장본으로 만들면서, ② 역자 이난아가 하필이면 오진 숙취에 시달릴 때만 퇴고 작업을 한 것이 틀림 없으며, ③ 실력있는 교정 교열 전문가 다 내쫓고 전문교육 제대로 받기는 했지만 실전 경험이 별로 없는 시쳇말로 신삥 교정 교열 담당자에게 작업을 맡겼으며, ④ 그것도 좋은데 책 만들면서 마지막으로 오케이 사인 하는 작자 누구야, 그 회사 관리자 역시 희망퇴직 권유를 받아 다른 출판사 자리 알아보느라 그랬는지 어땠는지 그냥 팍팍 도장 찍어준 거 아냐? 크게 양보해서 어쩌다 그럴 수 있다고 감안해도 ⑤ 책 나온 다음에 역자를 포함해 책 만드는데 관계한 인간들은 이 책을 '독자의 눈'으로는 단 한 번도 읽어보지 아니했으니 중쇄를 찍어도, 3쇄를 찍어도(내 책이 초판 3쇄니까) 여전히 오탈자가 기어 나오는 거 아니냔 말이지. ⑥ 역자 이난아도 참 그런 것이 적어도 자기 이름 달고 책 내놓는데 뭐 초판 1쇄 찍을 때까지는 소주 세병 마신 다음 날에만 우연히 퇴고를 했다고 해도, 책 나온 다음엔 일 끝났으니까 자기 이름의 책, 어떻게 나왔는지 정말 다신 안 읽어보는 거야? 나 같으면 쪽팔릴까 겁나서라도 내 책 읽어보고 또 읽어보겠다. 왜 이딴 식으로 책 만들었을까? 우리나라에 터키 어 전공한 인간들 별로 없다는 희소성 때문에 어깨에 후까시 팍 들어갔나? 여보 이난아 선생. 정신차려. 당신 경쟁자 나오면 난 다시는 당신이 번역한 책 안 읽을 거고,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어. 후배들 무서운 줄 알아야지. 근데 뭣보다 중요한 것이 역시 실력있는 교정 교열 담당자. 왜냐하면 이 책의 역자 이난아 처럼 자기가 알고 있는 단어가 틀린 말인줄 모르고 아까 썼던 오자 이번에 또 쓰고 다음에도 또 쓸 경우, 그것이 내가 쓰는 버전 한글 2010의 필터에도 걸리지 않을 때가 무척 많은데 이런 때는 작가가 열라 퇴고에 퇴고를 거듭해도 결코 그걸 고쳐낼 수 없을 테니. 물론 이 책이 다른 출판사 '열린책들'의 기념비적인 양심불량적 (책도 아니고) 지랄발광의 찌라시 인쇄물 <서부전선 이상없다>에 비하면 아주 출중하지만 그런 책에 비하자니 내가 그동안 민음사에 쏟아부은 돈이 너무 아까워 그런가, 그딴 저질 출판물하고는 비교하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애하는 민음사 관계자 여러분께서 심각하게 알아두실 건, 책 좀 읽는다 하는 인간들이 (자주는 아니고) 우연한 기회에 이런 저런 얘기할 기회가 생길 때, 민음사의 교정 교열 실력을 일컬어 '수준 이하'라고 조잘댄다는 거.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이 재미난 책 <고요한 집>에 관해서 더 이상 얘기하기도 싫어진다. 기본이 되지 않은 '책'을 읽고 감상이 이러니저러니 할 맛이 나겠는가 말이다. 하여간 작품 <고요한 집>에 관해서는 글피 쯤에 독후감 쓸 파묵의 <하얀 성>에 잠깐 비출 예정이니 참고하시압.

 

 

 

 

 

 

* 이 책의 실제 교정 교열 수준에 비해 비난이 과했을 수 있습니다. 책의 수준은 같은 출판사에서 찍은 이탈로 칼비노 전집 가운데 <힘겨운 사랑>에 비하면 하느님이긴 하지요. 책을 읽으며, 읽는데 크게 불편을 주지 않는 수준의 오탈자, 그래서 독자가 항의하기엔 어딘지 좀 야박해 보일 책들이 많아서 뭐라 하지도 못하고 지내다가, 딱 걸린 경우일 뿐입니다. 실제로 읽기에 그렇게 후진 책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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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빵 햄 샌드위치
찰스 부코스키 지음, 박현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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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분신 행크 치나스키의 성장소설. 누군가는 책의 제목에 '호밀'이 들어간다는 것, 성장소설이라는 것 때문에 셀린저의 <호밀밭 파수꾼>하고 비교하고 싶은가본데, 만일 누가 나더러 둘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선택'이라는 것에도 종류가 있지 하필 이런 걸 선택하라고 하느냐고, 너부터 호로비츠와 루빈슈타인, 델 모나코와 디 스테파노 가운데 누가 더 좋은지 먼저 말해보라고 하고나서 일단 그렇게 물어본 작자의 왼쪽 눈을 향해 라이트 훅을 날리겠다. 근데 솔직히 얘기하자면 샐린저가 만든 비행소년 홀든 콜필드보단 애초부터 독립군의 피를 타고난 우리의 행크 치나스키 쪽으로 손을 들 거 같다. 작년 이맘때 부코스키의 다른 작품 <우체국>을 읽고, 타임이던가 뉴스위크던가에서 명작의 반열로 꼽은 걸 보고 고른 책인데, 아이고 깜짝이야, 마치 타락한 천상병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의 자유로움과 정말 자기 생각대로 사는 용기와 반대급부로서 딱 그만큼의 삶의 곤고함에 반하고 말았다. 자연스럽게 그의 다른 작품을 수배하여 이번에 읽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즐겁게 읽었다고 하여, 당신도 이 책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심각한 오해일 수도 있다. 독일에서 태어나 두어살 때 미국으로 이민 온 행크와 부모. 그들은 처음부터 뉴욕판 삼팔 따라지 신세. 처음부터 가난한 집에서, 세상을 거친 반항의 프리즘을 통과한 빛으로만 이해하려 하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이런 아버지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전근대적 어머니 사이에서 일주일에 두어번씩 곡소리나게 얻어터지며 유년시절을 보낸 행크. 소학교부터 일찌감치 폭력과 따돌림 문화 속에서 오직 하나, 살기 위해 강해져야 하는 강박 속에서 정말로 '센 놈'으로 커가는 그의 행동과 언어가, 좋은 가족관계 속에 살았고 반듯한 학교 교육을 받은 당신에겐 지독한 속물로 보일 수 있고, 거지같은 새끼처럼 느낄 것이며, 쳐다보기만 하더라도 어제 먹은 고등어 조림의 비린내가 올라올 수도 있다. 거기다가 자기 맘대로 술 마시고, 싸움질을 벌임에야. 만일 자기 스스로 생각해봐서, 자신이 '잘', 또는 '곱게' 성장했다고 믿는 사람은 말 그대로 '잘' 생각해보고 선택하시기 바람. 당신 생각엔 터무니 없는 단어들이 총공격을 할 것이다. 그걸 읽고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으면 후회하지 않겠으나, 견디기 아름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인류들도 꽤 많을 거 같아서 좀 길게 얘기했다.

 나?

 나야 태생이 부코스키, 아니, 치나스키 옆동네라 그냥 동네 형 이야기인가 싶어 하나도 거슬리지 않았다. 그런데 말씀이야, 세상의 모든 껄렁쇠들이 다 행크 같지는 않다. 공부하기 싫은 건 마찬가지겠지만, 식당에서 접시를 닦더라도 생계를 위해 최소한의 것만 얻을 수 있다면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다락방의 작은 공간 안에서 타이프 한 대만 가지고 자신이 쓰고 싶은 거 쓰면서, 남과 어울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평생 그렇게 살고 싶다는, 진짜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간 말이다.

 그리고 이 인간 행크 치나스키. 아니면 찰스 부코스키. 진짜로 비슷한 일생을 살다, 갔다. <우체국>도 그렇고 <호밀빵 햄 샌드위치>도 그렇고 자유로운 영혼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현대의 허상과 위선. 그걸 따라 인생의 구도를 만들어가고자 어려서부터 지어낸 이정표를 밟는 대한민국의 인간들. 어째 그리도 똑같은가 말이지. 우리 속에서도 행크는 도처에 잠복하고 있으리라. 그들의 빛나는 성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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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7-05-29 11: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세상의 모든 치나스키들을 위하여 건배하고 싶어지는군요. 흐흐흐흐.

Falstaff 2017-05-29 12:33   좋아요 1 | URL
지난 주 월요일에 읽었거든요. 그래서 토요일까지 하루도 안 빼고 치나스키를 위해 건배 했습니다. 몸 축나데요. ㅋㅋㅋ

레삭매냐 2017-05-30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작년에 사서 아직도 안 읽고 있네요 ㅠㅠ
자극 받아서라도 읽어야겠습니다.

책이 책상머리 바로 옆에 있어서 더 그러네요.

Falstaff 2017-05-31 08:23   좋아요 0 | URL
ㅎㅎㅎ 뭐 그럴 수 있지요. 저도 몇 권 읽은 줄 알고 산 적이 있습니다.
읽어보세요. 재미납니다. 조금 거칠기는 하지만요.
 
사막
J.M.G. 르 클레지오 지음, 홍상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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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양 모리서스 섬을 영국이 점령하니까 열 받은 르 클레지오. 엄마가 프랑스 사람, 아빤 영국 사람. 두 나라의 언어 모두를 모국어로 삼는 작가가 마음 먹기를 앞으로 내가 드런 영국말로 글을 쓰나 봐라. 해서 프랑스 소설가가 됐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프랑스란 나라, 20세기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이마를 맞대고 흥정하기를, 모로코 우리 줘라. 대신 너넨 이집트 먹고. 마치 미국과 일본이 동경 요릿집에서 이마를 맞대고 너넨 필리핀 잡숫고, 우린 조선 먹는 거야, 오케이? 가쓰라 태프트 밀약과 비슷하게 결정을 해버린 건 정말 몰랐을까? 충분히 알았다. 안 그러면 <사막>이 나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테니.

 유럽 백인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 뭔지 아시나? 그건 바로, 탐욕이다. 남의 것이라도 힘으로 때려서 기어코 내 것으로 만드는 행위. 그것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났던 사실史實은? 십자군 전쟁. 누구는 십자군 전쟁을 일컬어 포피와 귀두의 전쟁(요새 읽은 책에 나오지만 어떤 책인지는 헷갈려 아무리 궁리해도 모르겠다), 우리 말로 고치면 안 깐 놈들이 깐 놈들한테 처들어가 벌인 패싸움, 이라고 하더만 천만의 말씀. 동양의 귀두족(깐 놈들)은 애초부터 싸울 마음도 먹지 않았었다. 거의 백프로 유럽백인들의 탐욕 때문에 집단 살상과 수탈이 벌어졌던 거다. 그것을 기점으로 역사는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오고, 중세시대 이래 끊임없이 유럽 각국에서 전적으로 필요했던 건 단두대와 금화였으며 이를 위한 동양 수탈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잠깐. 오늘 하루 종일 시간 있다. 어제 술 왕창 때려마셨더니 아침에 일어나 거울 보니깐 꼬라지가 완전 불그죽죽. 이 모양을 하고 회사갈 마음이 나지 않아 아예 하루 휴가 내고 지금 PC 앞에 앉았는데, 때마침 고맙게도 마누라가 외출까지 해주셨다. 그리하여 잡담 꽝.

 동양, 특히 동아시아에선 그러지 않았다. 대국 중국이 이유없이 옆나라 먹어치우고 막 훔쳐가고 그런 거 별로 못봤다. 주변국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소위 조공을 바쳤다. 먹고 살기 팍팍한데 조공을 왜 바쳐? 천만의 말씀. 하다못해 여러분들이 영광스럽게 생각해마지않는 고구려조차 쉼없이 조공을 퍽퍽 바쳤다. 정말이다. 역사책에 다 나온다. 왜 그랬게? 조공을 받은 큰나라, 체신없이 조공 받고 입 싹 닦지 않았다. 세 개를 받으면 열 개 정도를 줘야 대국 체면이 선다고 생각했다. 땅은 넓으나 기후가 별로라서 경제력은 막강하지 않았던 고구려, 이걸 노려 시도 때도 없이 조공을 팍팍 바쳤다. 그러니 전쟁도 별로 없이 크고 작은 나라들이 비교적 사이 좋게 잘 지낼 수 있었던 거. 우리 살갗 누런 인종들은 저 유럽 망나니들하곤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말씀)

 하여간에, 나중 유럽이 금속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대포와 총기등의 선진무기가 등장하자 본격적으로 각 대륙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는데 그 땅이 벌판이건 산악지대건 사막이건 간에 가리지 않았다. 참, 새끼들, 식성도 좋아. 먼저 종교, 즉 기독교를 가장하여 선교사를 보내 정찰을 한 다음에 군대를 이끌고 총 공격을 해버리는 거다. 사막의 오아시스에 모여 살다가 자기들의 터전에서 쫓겨나 광막하고 덥고 건조하고 작열하고, 때론 부드러워 발목을 집어삼키는 통에 걸음걸음을 힘겹게 만들고, 때론 날카로운 돌조각의 벌판을 건너는 맨발을 피투성이로 만들어가며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야만 했던 원주민. 유사이래 누천년 광활한 사막에서 푸른 옷의 전사로 용맹함을 날렸으나 이제 눈과 마음이 없는 기관총탄에 난사당해 사막모래를 잠시 검붉게 적셔야 하는 넝마 입은 흑인. 수없이 많이 동족과 가축의 죽음을 무릅쓰고 사막을 종단했으나 그들이 찾은 도시는 그리스도란 이름의 유대인을 믿는 백인들의 협박이 무서워 사막에 살았던 동포를 포용해줄 수 없는 처지. 결국 또다른 도시로 걸어가다 지쳐 쓰러져 서서히 처참하게 죽지 않기 위해 유럽에서 온 백인들의 기관총을 향해 칼과 창을 휘두르며 돌진해야 했던 종족. 그리고 그들의 후예.

 후예들, 몇 십년이 흘러도 결국 도시에 입성하지 못하고 변두리 지역에서 기름종이를 나뭇가지에 얽어맨 루핑집에서 필연적으로 불결한 환경 아래 생을 이어가는 이들. 그러나 이쪽 한 발 너머는 끝도 없는 사막이며 이쪽 한 발 너머는 지중해. 글자를 포함해 거의 모든 문화에서 소외되었음에도 혈관을 통해 이어지는 사막의 기운. 응시. 그들의 후예, 그들의 딸을 본 유럽인은 "구릿빛 얼굴에 길고 매끄러운 몸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이 눈부셨는데, 이건 프랑스, 마르세유나 파리 역시 수없이 수도 없이 광막하기만 한 사막이었던 것이기 때문, 아니었을까.

 오늘. 책 얘기는 하나도 하지 않았다. 직접 읽어보시라고. 내가 좋은 책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이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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